작은 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9
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111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 작은 산

 박철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4.29. 8000원



  작은아이가 파란 빛깔을 좋아합니다. 분홍도 좋아하고 노랑도 좋아하며 풀빛도 좋아하는데, 문득 파랑을 퍽 좋아하는 마음으로 흐릅니다. 큰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놀도록 한 뒤에 작은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오는 길에 작은아이한테 물어봅니다. “우리 곁에 파랑이 어디에 있을까?” “음, 몰라.” “잘 생각해 봐. 하늘은 무슨 빛깔일까?” “하늘? 오늘 구름 많이 껴서 하얀데.” “그래, 이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파랗지.”


  작은아이하고 이야기를 잇습니다. “바다는 어떤 빛깔일까?” “파랑.” “바다는 왜 파랑일까?” “몰라.” “바다는 하늘이 파라면 파래. 해가 질 적에 하늘이 붉으면 바다도 붉어.” “누나하고 바다에 가고 싶다.” “바람이 가라앉고 볕이 좋으면 바다에 가자. 하늘이 파랑이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몰라.” “바람은 어디에 있지?” “하늘에?” “그래. 바람이 하늘에 있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이지?” “몰라.” “생각해 봐. 하늘이 파랑이고, 바람으로 하늘이 이루어졌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개화산에서)



  여섯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가는 작은아이하고 파랑과 하늘과 바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들이를 합니다. 둘이서 오붓하게 읍내마실을 마치고 시골버스에 오릅니다. 마을에서 읍내로 갈 적에는 큰 버스였는데, 읍내에서 마을로 올 적에는 작은 버스입니다. 작은 시골버스에 타고서 가방에서 시집을 한 권 꺼냅니다. 시인 박철 님이 빚은 《작은 산》(실천문학사,2013)입니다. 버스에서 살짝 읽어 보려고 챙겼습니다.


  시를 한 줄 읽다가 다시 파랑 이야기를 묻습니다. 시를 두 줄 읽고서 파란 하늘과 파란 바람 이야기를 잇습니다. 우리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늘빛을 파랑으로 느끼면서 바라보지만, 정작 바람한테는 아무 빛깔이 없는듯이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숨을 쉴 적에는 바로 이 바람을 마시고, 우리가 마시는 바람이 바로 하늘을 이루니, 우리는 늘 하늘을 마시는 셈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파란 숨결을 맞아들여서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노릇이라고 알려줍니다.



요즘 나는 늙으신 부모에게 / 이별에 대해 가르치는 중이다 / 불쑥 들어설 것 같아 하루 종일 / 마당가에 앉아 있다는 어머니 / 참기름처럼 고소한 상추 잎들이 /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 손에서 시들어간다 (작은 산)


요즘은 또랑 보기가 참 어렵구나 /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시냇물을 떠올리다가 / 우물도 볼 수가 없지 겨울이면 얼음 더께가 두둑한 / 우물가로 가던 여인네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 근데 왜 그 추위에 우물가에선 웃음이 넘쳐났을까 (또랑)



  작은아이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큰아이가 마당에서 반깁니다. 한 시간 반 남짓 동생하고 떨어진 큰아이는 이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 둘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함께 놉니다. 저녁을 먹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지고, 그 뒤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나도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었을 적에 동생처럼 밥을 먹다가 잠들었어?” 고작 너덧 해 앞서 일이지만 큰아이는 예전 일을 못 떠올리는가 봅니다. 그렇지만 나는 잊지 않아요. “그럼, 너도 자주 그랬어.”


  낮에 작은아이한테 들려준 파랑이랑 하늘이랑 바람 이야기를 큰아이한테도 들려줍니다. 큰아이는 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기는 하지만 아직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파랑하고 하늘하고 바람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대목을 깊이 헤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어릴 적에는 이 대목을 무척 궁금하게 여겼어요. 하늘이란 바로 바람일 텐데, 하늘을 보면 파랑이지만 왜 바람은 빛깔이 없는 듯할까 하고 궁금했거든요.



할머니의 오랜 동무가 발밑에 사는 것을 / 그래서 아이는 지구가 할머니의 놀이터고 / 지구 너머 우주의 꽃들도 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도, / 모든 것이 아이의 작은 손과 이어져 있음을 (노인과 아이)


우리는 제각기 서서 / 한 그루 나무로 /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 (해빙 12, 나무)



  부엌을 치우고 나서 시집을 마저 읽습니다. 큰아이가 혼자 놀다가 그림책을 보는 동안 시집을 더 읽습니다. 큰아이한테 찢어진 책을 어떻게 손질하는가를 보여주고는, 잠자리에 들 적에 즐겁게 꿈을 꾸면서 포근히 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를 큰아이 스스로 일기로 쓰도록 돕습니다. 이제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작은아이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아무 말을 않고 마당으로 나가서 쉬를 합니다. 쉬가 마려워서 스스로 깼군요.


  졸음이 가득하지만 쉬를 잘 가린 작은아이가 대견해서 이 아이를 안다시피 이끌어서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긴 뒤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이를 닦아 줍니다. 아이가 혼자 할 일이지만, 졸음돌이가 폭 잠들기를 바라며 하나하나 재빨리 챙겨 주고 자리에 누입니다. 자리에 누운 작은아이는 이내 다시 꿈나라로 갑니다.


  초를 켜서 시집 《작은 산》을 마저 읽습니다. 고요한 밤바람을 살며시 느끼면서 마지막 줄을 읽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싯말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라고 노래하는 싯말을 되새기고, 작은 산에서 바라보는 먼 곳을 헤아리는 싯말을 되새깁니다. 이러면서 ‘작은아이’를 일컬을 적에 쓰는 ‘작은’이라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어제 못다 내린 눈이 마저 내리러 왔네 / 어제 못다 걸은 길이 마중을 나왔네 (흰 눈)



  나한테는 형이 있기에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아이’로 컸습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나로서는 두 아이가 모두 “(몸이) 작은” 아이입니다. 두 “작은 아이” 가운데 동생은 ‘작은아이(둘째)’이지요. 작디작은 아이가 바로 둘째요 동생입니다.


  이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갈라치면,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얼마나 노래를 신나게 하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면, 고흥에서 서울까지 가는 다섯 시간 가까운 버스길에서 내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외버스에서 내처 노래를 부르면 다른 손님이 잠을 못 주무시니 부디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해요.


  노래돌이인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니 신나지만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없어서 힘들어합니다. 도시로 나와서 버스나 전철이나 택시를 탈 적에도 늘 노래를 부르는데, 집에서처럼 목청껏 불러요. 어쩜 이렇게 아무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가 싶어서 놀라지요. 이때에도 노래는 부르되 목소리는 낮추어 주렴 하고 속삭이면 싱긋 웃으면서 목소리를 줄이는 듯하다가 다시 키웁니다. 이러다가 한마디를 해요. “아버지, 얼른 집에 가자. 노래하고 싶어.”



헌법 제1조 1항은 / 대한민국은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다로 바꿔야 합니다 (이상한 시)



  시집 《작은 산》은 거의 ‘짧은 시(작은 시)’로 이루어집니다. 이 가운데 꼭 하나 〈이상한 시〉만 깁니다. 그리고 이 긴 시인 〈이상한 시〉에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헌법 제1조 1항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흘러요.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촛불에 기대어 이 시를 읽으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목소리를 죽이면서 노래해 보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이 다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만 나오는데, 이 헌법이 ‘그냥 민주공화국’이 아닌 ‘어린이를 가장 높이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으로 바뀔 수 있으면, 아니 거듭날 수 있으면, 아니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전쟁무기가 아닌 평화로 돌아서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높이 아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입시지옥도 학벌도 모든 신분이나 계급도 걷어치우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거룩히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이라면 불평등이나 반민주가 그야말로 발을 디딜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일면식이 없는 /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버리긴 아깝고)



  자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한마디를 읊습니다.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자그마한 시집을 가만히 덮으면서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작은 이야기에 온사랑이 있네.” 작은 목소리로 작은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한테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흘러나옵니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한테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작은’ 어른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챙기거나 찾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가 아니라, 다 같이 ‘작은’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라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작은 아이가 큰 마음이고, 작은 사랑이 큰 꿈이요, 작은 숨결이 큰 살림이지 싶습니다. 2016.2.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문예중앙시선 7
이경림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시 108



할머니는 먼지가 되어 난다

―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이경림 글

 중앙북스 펴냄, 2011.6.30. 8000원



  아이하고 살면서 늘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는 어른과 다르기 때문에 어른처럼 생각하지 않고 어른처럼 바라보지 않아요. 그래서 어른인 나는 어른다운 내 모습을 가만히 내려놓고는 아이다운 눈길이 되어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곤 합니다. ‘ㅅ’으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를 늘 새삼스레 돌아본다고 할까요. 삶도 살림도 사랑도, 또 사람도 시골도 숲도 모두 ‘ㅅ’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를테면, “달은 왜 떠?”라든지 “아침은 왜 와?”라든지 “겨울인데 왜 더워?”라든지 “여름인데 왜 추워?”라든지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라든지 “별은 왜 안 뜨거워?”라든지 “밥은 왜 먹어?”처럼 끝없이 묻고 가없이 물으며 그지없이 묻는 말마다 ‘이제껏 딱딱하게 굳은 머리통’을 마치 수박을 쪼개듯이 쩍 갈라서 생각을 열어 놓습니다.



어떤 이는 바람 소리라 하고 / 어떤 이는 풀벌레 뒤척이는 소리라 / 또 어떤 이는 지구 돌아가는 소리라 / 신음 소리라 / 뉘 우는 소리라 / 하는 그 소리, 밤새 들으며 (우리가 한 바퀴 온전히 어두워지려면)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푸른 호랑이)



  이경림 님이 빚은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중앙북스,2011)를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틈틈이 이 시집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을 차리다가 한두 쪽씩 찬찬히 이 시집을 읽습니다. 밥때랑 밥때 사이에 샛밥을 챙긴다든지 주전부리를 내밀면서 이 시집을 다시 한 번 들춥니다.


  어느새 ‘할머니 시인’인 이경림 님은 할머니다운 숨결로 할머니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다만, 할머니이기 앞서 시인입니다. 그리고 시인이면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이기 앞서 어머니요, 어머니이기 앞서 딸입니다. 어머니이기 앞서 시인이고, 또 딸이기 앞서 시인입니다. 여러 모습이 한몸에 어우러진 삶이요 살림이고 사랑인 이경림 님입니다.



아버지, 살구씨 하나를 뜰에 심었는데 왜 /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장의 떡잎이 나오나요 (살구마누 장롱)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건 육만 년 전 / 내가 우리 딸을 낳은 건 삼만 오천 년 전 / 우리 딸은 지금 제 배 속에다 팔천 년째 아기를 키우고 있네 (늪)



  우리 어머니는 나를 언제 낳았을까요? 거의 안 떠오릅니다. 마흔 몇 해 앞서 나를 낳았을까요, 아니면 마흔하고도 사만 몇 해 앞서 나를 낳았을까요? 내가 우리 아이들을 낳은 때는 언제일까요? 열 해쯤 앞서일까요, 아니면 십만 해나 백만 해 앞서일까요?


  오늘 나는 이곳에서 살지만,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 앞서는 어떤 몸뚱이를 타고 이 땅에서 삶을 지었을까요? 아이들하고 ‘선문답’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는 틈틈이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머리통을 자꾸 쪼개고 다시 가르며 새롭게 쩍쩍 잘라 봅니다. 굳은 머리가 되지 말고, 열린 머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수수께끼를 헤아립니다.


  왜 지구는 늘 빙글빙글 도는데 우리는 안 어지럽다고 느낄까요? 어쩌면 우리는 늘 어지러운데 어지러운 줄 잊지는 않을까요? 왜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을까요? 왜 애벌레는 제 몸을 녹여서 나비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왜 잎사귀는 애벌레가 갉아먹힌 뒤에도 새로 돋을 수 있을까요? 왜 나무는 가지가 잘린 뒤에도 새로 날 수 있을까요? 왜 모든 주검, 사람 주검이든 벌레 주검이든 곧 흙으로 바뀔까요?


  아이가 아버지한테 이것저것 온갖 수수께끼를 물을 적에 나도 이 아이한테 갖은 수수께끼를 내놓아 봅니다. 우리는 서로 수수께끼 놀이를 합니다. 아이는 아이한테 궁금한 대목을 묻습니다. 나는 나한테 궁금한 대목을 묻습니다. 얘야, 먼지란 뭘까? 얘야, 참말 밥이란 뭘까? 얘야, 왜 떡이나 빵은 달고 자꾸 손이 갈까? 얘야, 이는 왜 닦아야 할까? 얘야, 이 지구별 한복판에는 뭐가 있을까? 얘야, 왜 사람은 날지 않을까? 얘야, 왜 사람은 우주에서 살 생각을 안 할까?



할머니가 컸을 때 그림자도 있어? / 음― 할머니는 이제 크지 않아 / 왜? / 너무 오래 컸으니까 / 너무 오래 크면 그림자가 이 방에 누울 수가 없으니까? / 응, / 그럼 할머니는 어떻게 돼? / 조금씩 작아지지 / 계속 작아지면 어떻게 돼? / 먼지가 되지 / 먼지가 되면 어떻게 돼? / 먼지는 너무 가벼워 소파 뒤로 장롱 위로 날아다니지…… / 먼지도 그림자가 있어? / 먼지 그림자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을걸 (하룻밤, 푸른 호랑이 11)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는 마치 수수께끼 꾸러미 같습니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 꾸러미는 퍽 즐겁습니다. 할머니 시인이, 아니 그냥 할머니가 아이하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시 하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흐름을 살피면서, 나는 오늘 우리 살림집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아직 봄이 아니어 퍽 쌀쌀한 날씨이지만, 신도 안 신고 맨손으로 흙놀이를 하는 두 아이가 자꾸 아버지를 부릅니다. 왜 부르니? 아버지는 오늘 깍두기를 담느라 바쁘거든? 아이들이 부르는 데로 쭐래쭐래 가 보면 흙으로 빚은 떡이며 빵이며 밥이며 국이 있습니다. 뒤꼍에 저희 흙놀이터를 마련해 주었더니 날마다 틈틈이 소꿉밥을 지어서 아버지를 불러요.


  그래, 그렇구나. 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너희들을 부르니, 너희도 너희 사랑스러운 손길을 담은 꿈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밥을 지어 너희 어버이를 부르는구나. 아버지는 너희 몸을 살찌우는 밥을 주고, 너희는 아버지한테 마음을 살찌우는 밥을 주네.



넋 놓고 가다가 문득 돌아보면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 낯모르는 바람이 툭 어깨를 치고 간다 (사람아, 사람아)


나, 한때 벚꽃나무 아래 집을 지었지 / 벚꽃 아래서 밥 먹고 벚꽃 아래서 책 보고 / 벚꽃 아래서 연애하고 벚꽃 아래서 널 낳고 / 하늘만 한 벚꽃 모자를 쓴 채 죽었지 (벚꽃들, 푸른 호랑이 25)



  시집을 읽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구나 하고 문득 느낍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시 한 줄을 설명문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시 두 줄을 신문 사설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시 석 줄을 아홉 시 새소식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시 넉 줄을 사건 보도처럼 읽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시 다섯 줄을 문학비평으로 읽을 수 없어요.


  모든 시는 언제나 내 삶에서 내 사랑을 열어서 내 살림을 내 손으로 기쁨으로 가꾸는 소담스러운 숨결로 읽을 수 있을 뿐이지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이, 온갖 ‘ㅅ’을 잇는 손짓으로 읽는 시이지 싶어요.


  살구꽃도, 살내음도, 산들바람도, 사과나무도, 사진 한 장도, 수수팥떡도, 소꿉놀이도, 술래잡기도, 싱그러운 햇살도, 수수한 밥 한 그릇도,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ㅅ’을 살몃살몃 끄집어 내어 누리는 살림집에서 생생하게 살피는 싯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신들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 ―이거 더 싸게 안 돼요? / 주인이 앙칼지게 신들을 뺏어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 ―여긴 도매상이에요 (神들의 도매상, 가방 도매상에서)



  시를 쓰는 할머니는 먼지가 되어 납니다. 먼지에도 그림자가 있을 테지만, 이 그림자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여느 때에 먼지를 알아보는 사람도 드물지요.


  내 눈앞에 먼지가 가만히 날아갑니다. 먼지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마음껏 춤을 추면서 날아갑니다. 이 먼지 한 톨은 시인 할머니가 바뀐 몸일까요? 어쩌면 시인 할아버지가 바뀐 몸일는지 몰라요. 아니면, 시골지기 할매랑 할배가 바뀐 몸일 수 있고, 무시무시한 임금님이 바뀐 몸일 수 있어요. 착한 아이들이 바뀐 몸일 수 있고, 상냥한 이웃님이 바뀐 몸일 수 있어요.


  깔깔거리며 마당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시집을 조용히 읽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시집을 마저 읽을 틈을 기꺼이 내줍니다. 고마워, 아이들아. 이 시집을 다 읽고서 다시 깍두기를 버무려야겠구나. 소금이 잘 밴 무토막에 양념을 고루 섞어서 맛난 깍두기를 담글게. 2016.2.2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114



시와 빈자리 (빈자리 든자리 난자리 보금자리)

―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글

 문학동네 펴냄, 2010.6.28. 7500원



  “든 자리 난 자리”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 말을 흔히 들으면서도 그냥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그 어릴 적에도 어머니가 하루쯤 집을 비우면, 어머니 한 분이 안 계신 집이 얼마나 쓸쓸한가 하고 깊이 느꼈어요. 마치 집안이 멈춘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릴 적에 학교에서도 동무 하나가 하루를 거르면, 한 반에 쉰 남짓 바글거리더라도 꼭 그 “난 자리”가 허전했습니다. 한 자리라도 비면 어쩐지 제대로 차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어떤 시인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하고 / 어떤 화가는 평면을 보면 모두 일으켜세워 / 그 속을 걸어다니고 싶다고 한다 / 나는 쓸데없이 널려 있는 낡은 널빤지를 보면 / 모두 일으켜세워 이리저리 얽어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님이 빚은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문학동네,2010)를 읽습니다. 1925년에 태어나고 2015년 가을에 숨을 거둔 홍윤숙 님은 2010년에 이 시집을 선보이면서 ‘마지막 시집’이 될 듯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집을 선보이고 나서 2012년하고 2013년에 새로운 책을 한 권씩 더 내셨어요. 마지막 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더 새롭게 시를 엮어서 선보일 수는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떠나셨으니까요.


  떠나고 없는 자리를 고요히 돌아보면서 시집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방에서 시끌벅적하게 뛰면서 노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싯말을 하나하나 새겨 봅니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다가오는 하루를 새삼스레 느끼면서 시집에 깃든 노래를 헤아립니다. 늦겨울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카랑카랑 마른 내 뼛속에는 / 고장난 바이올린이 숨어 있나보다 / 작은 바람에도 큰 소리 울리며 / 반음쯤 틀리는 소리를 낸다 (반음半音)


명아주 까마중 괭이풀 토끼풀 / 고만고만한 풀들이 서로 기대고 비비며 / 한 세상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서면 / 문득 어린 시절 잃어버린 꽃반지 하나 (풀밭에서)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는 홍윤숙 님이 아픈 몸으로 적바림한 노래라고 합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에 느낀 쓸쓸함이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서, ‘시란 바로 쓸쓸함과 싸우면서 쓰는 글’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엮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여든을 지나 아흔으로 나아가면서 어릴 적 꽃반지를 떠올립니다. 망가진 몸에서 나는 소리는 망가진 바이올린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합니다. 반음쯤 틀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반음쯤 틀리더라도 이 소리는 ‘악기가 내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노랫소리예요.


  낡은 널빤지를 세워서 집을 지으며 살고 싶다는 마음처럼, 아이들은 뭔가 있으면 하나하나 갈무리해서 새롭게 지으면서 놉니다. 아이도 어른도, 어린이도 할머니도, 참말로 누구나 새로 지으려는 몸짓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집을 짓든 장난감을 짓든, 살림을 짓든 밥을 짓든, 시를 짓든 꿈을 짓든, 우리는 저마다 마음에 품은 생각대로 하루를 지으면서 이 길을 걷는구나 싶습니다.



눈을 감으면 떠돌던 내가 / 내 안으로 돌아오고 / 온 세상 소요도 잠잠히 잦아들고 / 내 안의 물결치던 크고 작은 이랑들이 / 하나로 모여 허공을 만들고 (눈을 감고)


다복솔보다 키가 큰 그는 / 바다를 가리키며 /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노라고 이야기했다 / 그리고 문고판 작은 헤세 시집 한 권을 주었다 (헤세의 시집)



  낮볕이 덥다던 아이들은 “아버지, 오늘 봄이야? 겨울 맞아?” 하고 묻습니다. 밤바람이 차다는 아이들은 “아버지, 아직 겨울이야? 봄인데 왜 이리 추워?”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을 뿐 딱히 아무 말을 안 합니다. 조금 뒤 “네가 스스로 생각해 봐.” 하고 말합니다. 달력에 적힌 숫자 말고 우리 몸으로 느끼는 날씨하고 철을 생각해 보면 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날씨를 알려주는 방송으로는 봄인지 겨울인지 알 길이 없어도, 우리가 스스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결을 느낄 수 있으면 오늘 이곳이 어떤 날이며 철인지 알 테니까요.


  눈을 감고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감고서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둘레에서 퍼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번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스스로 이녁 마음속 목소리를 들으려 하듯이, 나도 아이들하고 우리 시골집에서 마주하는 바깥소리 말고 우리 마음속 노랫소리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자, 자, 이제 손발낯 씻고 자리에 누워야지?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 신나게 꿈나라를 날아야지?


  이부자리를 반반히 깝니다. 아이들을 눕힙니다. 이불깃을 턱 밑까지 여밉니다. 토닥토닥 달래니 어느새 두 아이 모두 곯아떨어집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합니다.



거울 속의 내가 / 거울 밖의 나를 / 탄식하며 고개 돌린다 / 거울 밖의 나는 / 거울 속의 나를 / 무섭고 낯설어 / 고개 돌린다 (거울 앞에서 1)


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다 // 문 앞에서 맴돌다 / 놓쳐버린 막차 (일생 2)



  밤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올 무렵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엽니다. 아이들이 언제 일어나든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늘 내가 일어나야 할 때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다시마도 알맞게 끊어서 불려 놓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서 재잘거리며 놀다가 배가 고플 즈음 되면 찬찬히 밥을 지어야지요.


  내가 짓는 하루는 내가 새롭게 쓰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시인이 아흔 해를 걸어오며 적바림한 공책은 “낙서로 가득한 / 빈 공책”이라 하지만, 그 ‘낙서’란 바로 ‘숱한 이야기’이리라 느낍니다. 그때그때 휘갈긴 글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때그때 새삼스럽고 기쁜 숨결로 맞이한 하루를 가만히 적바림한 글이라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삶자리를 가꾸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이 꿈을 키우면서 보금자리를 일구자고 다짐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언제나 이 자리에서, 웃음이 퍼지는 웃음자리를 누리고, 노래가 흐르는 노래자리를 누리며,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자리를 누리자고 생각을 다스립니다. 내 “든 자리”를 고이 돌보는 마음이 된다면, 나는 오늘 이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봅니다. 2016.2.1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을 더듬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1
유종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112



시와 주름살

― 얼굴을 더듬다

 유종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9.19.



  아이들 손이나 볼을 살살 쓰다듬다가 문득 놀랍니다. 아이 손이나 볼이란 이렇게 보드랍구나 하고. 그렇다고 어른인 내 손이나 불은 꺼칠하거나 울퉁불퉁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근심이나 걱정을 담지 않으면서 밝게 웃으면서 삶을 짓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이 들어도 살결이 보드랍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늘 물이나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여도 마음 가득 기쁨이 흐르는 웃음이라면, 주름살이 아닌 보드라운 살결이 되지 싶습니다.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 오늘은 술이나 받게 (마음)


땅이야 나눈다지만 하늘을 나눌 순 없어 // 성북동 옛집 담장에 화분들이 올라 있다 (경계의 꽃밭)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시를 쓰는 유종인 님이 빚은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면서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이 시집을 떠올리고, 밤에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적에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모아 다시 덮어 주면서 이 시집을 돌아봅니다.


  ‘얼굴 더듬기’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냥 얼굴을 더듬어 볼 수 있고, 떠오르지 않는 모습을 더듬듯 그릴 수 있습니다. 따스한 손길로 살그마니 더듬을 수 있고, 아무 느낌이나 생각이 없이 그저 더듬을 수 있어요. 내가 내 얼굴을 문지르거나 비빌 적에도 아무 생각 없이 문지를 수 있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손길로 비빌 수 있습니다.



징검돌을 건너가는 여름 아이의 발뒤꿈치, / 바람에 멱을 감는 미루나무 휘인 허리를 / 저 해는 지지도 않고 첫날밤처럼 붉게 샜다 (이발소 그림을 보다)


꽃게에 물린 손가락 가만히 들여다보니 // 새만금 변산 앞바다 // 내 떠날 줄 미리 알고 // 썰물로 // 빠질 리 없는 // 이정표를 박았구나 (꽃게에 물린 자국)



  《얼굴을 더듬다》를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에 깃든 노래는 ‘시조’라고 합니다. 《얼굴을 더듬다》는 시조집이라 하는군요. 문득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인들 시조인들 그리 대수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도 시조도 모두 우리 삶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슬픔으로 달래면서 빚는 글일 테니까요. 글 한 줄에 웃음을 싣고, 글 두 줄에 슬픔을 담으면서, 글 석 줄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하는 시요 노래라고 느낍니다.



싸락눈이 내리치니 // 겹처마가 떠올랐다 // 싸락눈이 쳐대니 // 나막신이 걸어왔다 (싸락눈)



  겨울에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에는 손을 빠르게 문지릅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손이 곱기 때문입니다. 곱은 손을 비빔질로 녹인 뒤 불을 올리고 도마질을 합니다. 뜨거운 물을 틀어서 틈틈이 손을 녹이면서 푸성귀를 다듬고 국을 끓입니다. 행주로 밥상을 훔치고 수저를 올립니다. 바야흐로 밥을 다 차리면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부르지요.


  이제 아이들은 의젓하게 자라서 깔개도 스스로 놓고 손도 스스로 씻습니다. 한두 해 앞서까지만 해도 아이들 손이랑 낯을 모두 씻겨야 했으나, 이제는 말로만 타일러도 되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이들 몸짓을 바꿉니다. 내 손에서 태어나는 밥 한 그릇이 아이들 몸으로 스며듭니다.


  밥상맡에 다 같이 둘러앉은 뒤 국그릇을 두 손으로 고이 감쌉니다. 따스한 기운이 손바닥으로 들어와서 온몸으로 퍼집니다. 나는 이 두 손으로 일을 하고, 바람을 어루만지며, 기저귀를 빨았고, 이불을 건사하고, 살림을 돌봅니다. 귀가 간지럽다 하면 귀를 파 주고, 손톱이 자라면 손톱을 깎습니다. 나이에 따라 손에도 낯에도 몸에도 주름이 질는지 모르지만,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주름살마다 아이들하고 누린 삶이 사랑스러운 결로 깃들리라 느껴요.



아파트 육 층까지 비질 소리 올라온다 // 귀뚜리가 // 지구 위에 두 줄 수염을 내려놓고, // 뭘 쓸까 // 고민하다가 // 빈 마당에 // 소스라친다 (비질 소리)


누군가 내다 놓은 깨진 거울 속으로 // 문짝을 두드리듯 가만히 눈발 친다 (들판의 거울)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얼굴을 더듬다》에 흐르는 노랫가락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이제 겨울이 저물려 하고 봄이 오려 합니다. 아침에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제 봄이야?” “음, 아니. 아직 겨울이고, 봄이 오는 문턱이야.”


  아이한테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하다가 불현듯이 놀랍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들었다고 느껴요. 아마 내가 아기였을 무렵 둘레 어른들이, 또 우리 어버이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냥 ‘봄이 온다’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 말했고, ‘봄이 문지방을 타고 넘는다’ 같은 말꽃을 피웁니다. ‘봄바람이 귀를 간질인다’라든지 ‘봄볕에 옷섶이 짧아진다’고도 해요.


  유종인 님이 아파트 육 층에서 비질 소리를 노랫소리로 듣듯이, 슥슥거리는 소리가 온 지구를 쩌렁쩌렁 울린다고 느끼듯이, 우리 삶자락은 온통 시로 태어날 소리요 결이요 무늬요 사랑이며 살림이지 싶습니다. 시골집 마루문을 때리는 눈발은 사라지고, 길게 드러눕던 겨울 그림자도 짧아집니다. 낮에는 처마 밑으로 햇볕이 들지 않아요. 해가 차츰 높아집니다. 나무마다 겨울눈이 봉긋봉긋 이쁘게 돋는 겨울 끝자락입니다. 4349.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애지시선 35
손병걸 지음 / 애지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시 108



아이는 빛노래로 아빠를 키우고

―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손병걸 글

 애지 펴냄, 2011.3.19. 9000원



  시를 쓰는 손병걸 님은 서른 살 즈음에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서른 살 즈음까지는 언제나 ‘두 눈으로 몸소 본 것’만 믿고 살았다는데, 두 눈을 잃고 난 뒤로는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하루가 되었다고 해요.


  두 눈으로 보다가 두 눈을 쓸 수 없으면, 그야말로 삶이 뒤바뀌지요. 두 손을 쓰다가 두 손을 쓸 수 없어도, 또 두 다리를 쓰다가 두 다리를 쓸 수 없어도, 아니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삶은 뒤바뀌지 싶습니다.


  나는 두 눈으로 바라봅니다. 두 손을 쓰고 두 다리를 움직입니다. 빨래를 할 적에 빨래기계한테 맡기기도 하지만, 으레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굽니다. 두 손으로 밥을 짓고, 두 다리로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로 저잣마실을 나가면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졸립거나 힘들다 하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한 아이를 한팔로 안고, 다른 아이도 다른 한팔로 안으며 걷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눈이며 손이며 다리이며 온몸이며 쓰다가, 그만 어느 한 곳이 다치면 아무것도 못 하기 일쑤예요.



저수지 둑길을 걷는데 /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 고인 물 일어나는 소리 / 천 년의 잠을 깨는 것 같아서 / 화들짝 귀가 열렸다 (소리를 보다)


들숨 날숨 몰아쉬며 / 숨이 넘어가도록 / 땀을 쏟는 일이겠지 (하모니카 소리)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애지,2011)를 읽으면서 가슴이 짠합니다. 손병걸 님은 처음 두 눈을 잃어야 하던 무렵, 그야말로 술로 하루를 보냈다고 털어놓아요. 하루 마시고 이틀 마셔도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주 마시고 두 주 마셔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내처 마셔도 쓰라림도 아픔도 가시지 않았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던 삶이었는데, 이제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다면, 오직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껴야 하는 삶이라면, 그리고 두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삶이라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직접 보지 않으면 / 믿지 않고 살아왔다 //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 두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점자책을 펼치니 / 와르르 쏟아진다 /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 흩어진 점자를 더듬어 가는데 / 들려온다, 별들의 이야기 (빛의 경전)



  우리 집 아이들이 틈틈이 피아노를 치거나 피리를 불 적에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 서서 눈을 살며시 감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밤에 뒤꼍에 올라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저 별에서 이 지구로 흘러오는 빛살뿐 아니라 소리는 무엇일까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밥을 끓이면서 밥 끓는 소리를 듣고 밥 익는 냄새를 맡습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이 밥을 맛나게 함께 먹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물’이 되어 주기까지 골짜기를 흐르던 물줄기를 헤아립니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면서 ‘옷가지를 보송보송 말려 주는 햇볕’에는 어떤 기운이 서렸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잊고 있었다 / 어둠 속에서도 숲은 / 묵묵히 자란다는 것을 / 모르고 있었다 / 왜, 저 빌딩들이 숲을 향해 /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지 (어느 숲)


깨진 유리컵에 베인 손가락 / 점자책을 더듬을 때 아파서 / 며칠째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한 / 내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병걸 님은 시를 쓰면서 이녁 아이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에는 두 눈을 잃은 아픔도 드러나지만, 두 눈을 잃고서 새롭게 뜬 ‘마음눈’ 이야기도 흐르고, 무엇보다도 손병걸 님 딸아이하고 얽힌 기쁜 사랑이 새삼스레 흘러요. 이제까지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했다고도 할 만한 새로운 사랑이지요.



아빠 식사해요 / 밥때만 되면 / 아이의 목소리 들린다 //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 고작, 초등학교 3학년 /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 이제 아홉 살짜리다 // 밥상에 앉으면 / 이건 김치, 빨개요 /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 아이의 입은 바쁘다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밥때만 되면 아빠를 챙기는 아홉 살 딸아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손병걸 님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지요. 아홉 살 딸아이도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입이 바쁘’고, 이런 딸아이 사랑을 받으면서 숟가락을 드는 손병걸 님도 밥을 먹는지 사랑을 먹는지 눈물을 먹는지 웃음을 먹는지 모르도록 ‘입이 바쁘’겠지요.


  이 깜찍하고 상냥하며 착하고 어여쁜 딸아이 몸짓과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베푸는 딸아이 숨결과 넋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먹먹한 사연이 끝나고 / 이어지는 출연자 소녀가장 / 사회자 : 올겨울 추위를 어떻게 해요? / 소녀 : 연탄불 구멍을 열면 돼요. (생방송)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요? 모름지기 사랑은 눈으로도 보고 마음으로도 볼 텐데, 두 눈을 감으면 한결 환하면서 고요하게 드러나지 싶어요.


  코앞에 잔칫밥을 차려야 사랑이지 않아요. 눈앞에 값진 선물을 늘어놓아야 사랑이지 않아요. 비싼 밥집에 찾아가서 밥술을 들어야 사랑이지 않을 테지요? 아홉 살 아이가 이것저것 알려주는 목소리에 맞추어, 김치요 된장찌개요 밥이요 반찬이요 물이요 하고 느끼는 손길로 받아들이는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알아차리겠지요?


  두 눈을 잃은 손병걸 님이지만, 마음에 있는 눈을 새로우면서 크게 뜨는 삶을 짓는 손병걸 님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두 눈을 한동안 고요히 감으면서, 마음에 깃든 열 가지 눈동자뿐 아니라 스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 그윽한 눈동자를 기쁨으로 새롭게 뜨는 손병걸 님 발걸음이리라 생각해요.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기쁨으로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이 보금자리를 돌아봅니다. 사랑은 우리 눈앞에 있다는 대목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먼발치가 아니라 우리 곁에, 저 먼 별나라가 아닌 우리 살림살이마다 고운 사랑이 흐른다는 대목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눈을 떠야지요.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떠야지요.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려는 눈을 번쩍 떠야지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