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책 보내는 날짜 : 8월 29일 

- 리뷰 마감 날짜 : 9월 25일 (추석이 있어서 좀 넉넉하게 잡았어요) 

- 받으시는 분들 : 소설 분야 신간평가단


도마도, 싱새, zarm, 단팥빵, 순심이, Soli, Quasimodo, 피오나, 비의딸, 팜므느와르, 

읽기쟁이아톰, 새벽11, 학진사랑,_o-n_n-o_, mvbelt, 히로, karma, 헤르메스, kaonic, 행인01

 

기억해주세요!

 

하나!


리뷰 작성하실 때 하단에 꼭 아래 문구를 텍스트로 넣어주세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둘! 


그리고, 리뷰가 늦으시는 분은 소설 분야의 파트장 '헤르메스' 님께 메일 보내주세요.

메일 주소는 초기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잊어버리신 분은 propose@aladin.co.kr로 메일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셋!

 

각 도서별 1명씩 좋은 리뷰를 선정해 1만원권 알라딘 상품권을 드리고 있습니다.

각 도서별 좋은 리뷰 선정은 파트장님이 수고해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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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과, 나도 이렇게 된다..
    from 막무가내도서관 2013-09-02 15:24 
    소설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다 같은 한글이고 그냥 문장과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일 뿐인데,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소설의 분위기나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구병모. 나는 구병모라는 작가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꼭 나이 지긋한 남자의 향기가 느껴졌는데, 작가 소개란에는 웬 젊은 여성분의 사진이 떡 하니 있어서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도 스쳐지나갔다. 구병모 작가를 모르고 살았으니 당연히 이 『파과』가
  2. 파과
    from 이미지, 텍스트, 아우라 2013-09-08 07:20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서 죽음의 종류가 있다면 그 중 살인은 가장 기묘한 방식의 죽음이다. 죽음이라기보다 죽임 당함, 이라고 해야 옳을 이 애매모호함은 전반적인 살인의 성격이다. 예컨대 죽임당하는 '나'의 의지가 개입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인자가 행위 자체를 온당히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죽음은 온전히 죽임당하는 자의 것이니까) 어쨋든 죽이는 자는 사라지게 한다는 점, 죽는 자는 사라진다는 점을 봤을 때 그 의지는 온전히 죽이는 자에게 있다. <
  3. 파과破果의 파과破過 이야기 - 구병모 『파과』
    from 꿈꾸는 글방 2013-09-08 18:58 
    자취방 한켠에 놓인, 덜덜거리는 소음으로 존재를 한껏 과시하며 돌아가는 작디 작은 냉장고. 그 얕고도 깊은 동굴 속 어딘가 시커먼 비닐봉지 속에서 언제 사 들여놓았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한 형체 불명의 시큼퀴퀴한 냄새를 뿜어대는 물러터지고 썩어문드러진, 한 때 과일이라고 불렸을 그 정체불명의 사물. 작가가 실제로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이 경험이야말로 구구절절 얕고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거의 유일한 조각이었습니다. 작품의 제목과, 예순이
  4. 문드러진 복숭아에서 엠에스지 맛이 조금 나요
    from hey! karma 2013-09-09 11:20 
    기억이 가물가물해 찾아보니 2년 전 딱 이맘때였습니다. 그때도 9월이었습니다다. 구병모 작가의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고 구병모 작가의 소설들은 마치 차갑고 깊은 물 같다고 썼습니다. 2년만에 다시 그녀의 장편을 읽게 됐습니다. 제목은 '파과(破果)'. 냉장고에 넣어놓고 잊어버려 단단하던 형체를 잃어버린 과일. 매달 꼬박꼬박 내는 전기세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의 냉방기능도 지켜내지 못한 과육. 작가는 그 흐물어져내려 형체를 잃은 사
  5. 《파과》 달콤한 시절이 지나가고 난 뒤, 생의 잔여에 대하여.
    from 피오나님의 서재 2013-09-09 11:46 
    <파과>의 주인공은 65세 할머니 킬러이다. 손톱이라는 의미의 '조각'이라는 가명으로 45년간 킬러로 살았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현직킬러이다. 청탁 받은 존재들을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제거하는 청부살인업자이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친척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고, 집을 나와 주방 일을 하던 시기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미군을 방어하다 죽인 것이 그녀의 첫 살인이었다.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6. 인연이라 부를 수조차 없었던 이름 없는 모든 것들.
    from 학진사랑의 블로그랍니다. 2013-09-09 19:52 
    킬러가 노년에 이르게 되면 평범한 삶을 그리워 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조각에게만 해당되는 것들일까. 나이 어린 투우와 조각 사이의 간극은 세월만큼이나 멀어 보이나 투우가 늙었을 때 조각과 같은 모습일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으니 역시 킬러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생경스럽다. 어린 시절 모로 누워서 잠을 청해야 했던 좁디 좁았던 그 집에서 형제들과 부대끼며 어린 시절 지냈다면 그녀는 지금처럼 외롭지 않았을까. 조각에게는 늘 가족에 대한 그
  7. 죽는다, 결국
    from 공감지수만땅 2013-09-13 11:13 
    그러니까 설마라도 이 소설이 아드레날린의 폭발적인 분비를 유발하는 킬러 미스터리 서스펜스인 줄 알고 선택했을 누군가에게는, 번지수가 달라 미안하다는 이야기. (작가의 말 중) 킬러 이야기라고 했다. 킬러의 이야기이긴 하되, 생물학적으로 은퇴를 코앞에 둔 킬러의 이야기라고 했다. 무슨 퇴물 기생도 아니고, 퇴물 킬러라니.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까. 킬러도 물러지고, 흐트러져 결국에는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 앉게 될 날이 있다는 이야기인 걸
  8. 과일은 부서져도 바래지 않았다. 구병모 <파과>
    from 카간님의 서재 2013-09-15 23:42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가 말했다. "새내기 때는 주량이 세병이었는데 인제는 힘들다." 동기놈이 질세라 한 마디 거든다. "형 저도 예전엔 네병 마시고도 멀쩡했는데 요새는 예전같지 않아요, 나이 들었나봐요." 그러자 선배가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 벌써 나이 걱정을 하냐며 동기놈에게 핀잔을 준다. 하하 둘 다 아직 젊은 사람들이 나이 타령이고. 대충 이야기에 마무리를 지어보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정말 걱정되는 건 지금의 나이가 아니라 나
  9. 파과
    from 잡동사니상자 2013-09-16 16:40 
    파과지은이 : 구병모출간시기 : 2013년 7월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고, 문자의 나열에 긴장이 느껴졌다. 흔하지 않은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단어는 아니었지만, 의도와 고뇌가 삐그덕대고 있었다. 젊은 시절 흔한 것 같기도 한 고난을 겪고, 은인을 사랑하고, 은인이 소멸한 후 그 그리움을 가두어둔 나이든 여자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라고도 불리운다. 애써 선택한 초반의 단어들, 그리고 한 껏 멋들여 세공한 문장들은 집중을 방해한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길이 지난
  10. 그녀의 문장 사용법
    from 그냥 헛짓! 2013-09-16 23:30 
    기대가 너무 컸을까. 유려한 만연체 문장을 구사하는 줄 알았다. 다 읽은 지금, 피로에 지친 채 숨은그림찾기를 마친 기분이다. 참을성 없는 나 같은 독자를 피곤과 짜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글쓰기 방식이었다. 음미하며, 섬세하게 읽는 편인 나로서는 도돌이표 달린 악보를 보듯 몇 번씩이나 앞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어쩌다 나타나는 '삐걱거림'현상이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 단계를 넘어섰다. 단순한 실수에서 온 것이라면 한없이 관대해질 준비가 되어 있다.
  11. 한 편의 영화같은 소설...파과
    from Quasimodo님의 서재 2013-09-22 13:05 
    가끔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를 본 건지 책을 읽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렇게 혼동이 올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소설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등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윌리엄 랜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가 그러했다. 그런데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라는 소설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내겐 이름마저 낯선 구병모의 신간 <
  12. 65세 할머니 살인청부업자라고?
    from 행인이 오다가다 2013-09-22 23:28 
    파과란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한자로 뭐일까? 였다. 破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작가는 후기에 破果도 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느 한자가 당신의 결론인지 묻는다. 정말 불친절한 후기다. 시작은 분명 破果인데 破瓜를 같이 놓으니 사실 헷갈린다.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도 어느 한자가 더 적합한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10대나 2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당연히 후자지만 65세 살인청부업자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13. 예상 이상, 그러나 끝내 남는 아쉬움
    from 싱새의 책둥지 2013-09-22 23:53 
    구병모의 -파과- 하루하루 마모되어가는 여 킬러가 있다. 평생을 ‘현역’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늙음이란 곧 육체의 훼손이다. 그녀의 몸에 퍼진 자잘한 금과 녹은 이제 어떤 기름칠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부상이 늘고 실수를 연발한다. 닳고 깨어진 틈바구니마다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회한 때문에 그녀는 자꾸 멈춰 선다. 그녀는 고장 나고 있는 것이다. ‘그 고장을 고칠 수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뚜렷이 직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14. 문득, 리베르탱고
    from SOMETHING ABOUT US 2013-09-24 10:05 
    문득, 리베르탱고―구병모,『파과』를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문득, 리베르탱고가 듣고 싶어졌다. 평소에 이런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요즈음 나는 리베르탱고에 꽂혀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리베르탱고였을까. 그럴 듯한 이유를 댈 순 없지만, 감상을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리베르탱고를 듣고 있다. 스페인어로 자유를 뜻하는 단어인 ‘Libertad’에 'tango'를 합친 단어가 리베르탱고이니 해석하자면 아마 ‘자
  15. 흘러가는 것과 남겨진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
    from 감정의 기억 2013-09-26 05:21 
    어느날이었던가,처음 본 물건을 살피기 위해 무심코 손에 쥐었을 때, 경험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번뜩 스친다. 이거 예전에 만져보았던 거야, 손에 쥐인 그 감촉 끝에 기억이 매달려 있다. 저 멀리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기억을 간신히 건지고 건져서 살펴보았더니, 아아 예전에 그런 경험도 있었구나, 다시 그 기억이 꽃을 피웠다 그렇다, 무엇이든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과 직면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움이기에 그 새로움을 경험하는
  16. 파과가 되었다한들 무어 그리 대수란 말인가?
    from 헤르메스님의 서재 2013-09-26 05:39 
    그러니까 이토록 더운 여름날 사람의 몸이란 으례 그렇다. 찜통 안에서 찜져지고 있는 과일처럼 몸도 의식도 갑자기 연체동물로 퇴화해버린듯 흐물흐물해져 버린다. 그야말로 '파과(破果)'와 다를 바 없다. 사실 '파과(破果)'란 우리와 그리 먼 존재가 아니다. 노쇠가 필연적인 우리들은 늘 마모와 상실의 감각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아가니까. 시간이 소멸이라는 종국적인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사포와 같이 매일 우리들을 갈아대고 있는 형편이니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
  17. 꽃이 피네 - 구병모<파과>
    from   2013-09-29 00:43 
    책을 읽기 전에 책을 유심히 본다.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한다. 책도 예쁜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예쁘기만 한 책은 싫다. 책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것을 지나쳐 홀로 자기주장을 하는 표지도 싫다. 아직 펼쳐보지 않은 책의 겉모습에서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기를 원한다. 책을 중간쯤 읽다 덮었을 때 다시금 보게 될 책의 표지가 그 흐름을 깨지 않길 원한다. 파과는 작가의 이름이 제목만큼 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제목과 작가, 출판사가 기본적
  18. '파과', 상처와 치유, 그리고 불멸
    from 새벽님의 서재 2013-10-05 21:04 
    '파과'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문학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학은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삶이란 바로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훌륭한 문학이라면, 치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하여 모든 훌륭한 문학은, 상처에 대한 아프고도 깊은 응시를 생명처럼 지니고 있다.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근원을 찾아나서는 작업 없이, 치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상처에 대한 깊은 사유의 계기 하나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