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과 영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책 보내는 날짜 : 12월 29일 

- 리뷰 마감 날짜 : 1월 19일

- 받으시는 분들 :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평가단



순수의결정체, 서흔(書痕), 김찰칵, Nykino, 고군분투, 카쿠군, Quasimodo, 더불어숲, 

초록연두, 흔적, 원더북, 아잇, dreamdie, 컹컹컹, teem, 탕기, 모시빛, 봄밤, 바람향, 서랍






 

기억해주세요!

 

하나!


리뷰 작성하실 때 하단에 꼭 아래 문구를 텍스트로 넣어주세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둘! 


그리고, 리뷰가 늦으시는 분은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의 파트장 '컹컹컹' 님께 메일 보내주세요.

메일 주소는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잊어버리신 분은 wendy@aladin.co.kr로 메일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셋!

 

각 도서별 1명씩 좋은 리뷰를 선정해 1만원권 알라딘 상품권을 드리고 있습니다.

각 도서별 좋은 리뷰 선정은 파트장님이 수고해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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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원히 지속될 투쟁의 울림소리
    from savvy? 2016-01-10 12:04 
    미치도록 난해하고 빌어먹게 꼬부라진 말들. 감상이랄 것도 없이 대강의 요약을 통해 간략히 머릿속을 정리하는 편이 나으리라. 먼저 상상계ㅡ이미지와 애증의 세계ㅡ라는 거울(이라는 하나의 단계)이 있다. 그리고 인판스(in-fans). 말을 모르는 아이, 말이 없는 자. 능동적이기도 수동적이기도 한, 포악한 전제군주. 이 거울로 인한 단절은 (희미하게나마?)자기와 타자의 구별을 가능케 하고 이 시점에 말(파롤)의 차원인 상징계가 개입한다. 그러나 이 말, 즉
  2. 나, 세상, 그리고 삶을 깨닫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from 김찰칵님의 서재 2016-01-11 20:01 
    소위 '일본의 니체'라고 불린다는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으로, 만만찮은 볼륨으로 그의 풍부한 사유를 범접하려는 독자를 압도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종의 상관관계에 있는 라캉과 르장드르, 푸코의 이론을 순서대로 하나씩 해체해나가며 성찰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전개해나간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가 해제(解題)를 시도하는 세 사상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다면 매우 흥미로운 지적 생산활동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본다'. 필자의 뉘앙스에 명확성
  3. 집요한 개의 영원한 춤
    from Gyrocompass 2016-01-16 15:58 
    2016년 1월 16일 푸념. 우선 옮긴이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독자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삶이 사회화되느니 과정에 대한 지적 호기심, 성찰의 욕구가 있다면 읽을 수 있다.” (909쪽) 저자 사사키 아타루도 (특히 라캉 부분에서) 거듭 말한 바인데, 독자의 자질이라는 것이 있다. 단순한 지식의 양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리라
  4. 사회속의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from Quasimodo님의 서재 2016-01-18 02:45 
    몇해 전이던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에 이끌려 처음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접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사키 아타루가 어떤 분야의 책을 쓰고 있는지, 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무엇을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책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 책이 내게 있어 처음 읽어 본 책과 문학 그리고 혁명에 관한 사상서가 되었다. 아마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어 본 독자
  5. 라캉, 르장드르, 푸코의 어긋나지만 기이한 공명관계를 해명한 책
    from 흔적의 서재 2016-01-18 18:09 
    ‘야전(野戰)과 영원(永遠)’은 사사키 아타루의 푸코, 라캉, 르장드르 독해기(讀解記)이다. 저자는 푸코와 라캉을 대립관계로 보면서도 르장드르를 포함시켜 그 세 학자가 불가사의한 배음(倍音)과 이상한 공명(共鳴)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야전과 영원’이지만 영원한 야전으로 읽어도 좋다. 저자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의 이상한 공명을 야전과 영원의 시공간이라 부른다. 라캉의 난해함은 라캉적 주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6. 거짓의 요새와 순간, 진실의 야전과 영원
    from 냐옹이님의 서재 2016-01-19 10:41 
    책을 쓰는 사람은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저기 쓴 글을 긁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책을 쓰려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는 내용을 아는 방식으로 쓴다면, 그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괄적인 계획은 있다. 오랫동안 작성해온 노트도 있다. 자료도 충분히 모아왔다. 하지만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연성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모르는 내용, 알 리가 없는 내용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해하는 일이다.
  7. 무게와 두께가 보증하는 깊은 사유의 즐거움
    from Red Herring 2016-01-19 22:42 
    “하지만 『야전과 영원』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의 이로는 이처럼 있지도 않은 ‘통일된 시점’, ‘필연성’, ‘전체성’을 보장하는 ‘끝’을 무슨 일이 있어도 부정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영원’한 ‘밤’의 ‘투쟁’에 바치는 책이므로, 여기에는 끝이 없다. 시계는 어둡고 도통 믿음직스럽지 않다. 그것의 승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쓰는 일의 우연성이야말로,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도박이라는 사실이야 말로 『야전과 영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책의 중
  8. 텍스트의 실천과 해석
    from 모시빛 서재 2016-01-20 00:08 
    ■ 텍스트의 해석과 실천 라캉, 푸코. 그리고 르장드르. 명확성, 명료함과는 상관없이 라캉과 푸코에 빠져든 때가 있다.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집착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줄곧 내 스스로 이해하는 것으로 텍스트를 읽어가라고. 이해되지 못하면 반복하고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위안하며 독려하면서 놓지 못하던 텍스트들. 그리하여 타인에게 라캉이나 푸코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 줄 깜냥
  9. 끝 없는 어둠 속에서의 투쟁
    from 서랍 속엔 아무 것도 없다 2016-01-20 10:20 
    끝 없는 어둠 속에서의 투쟁-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 언젠가 그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주 단호하고 명쾌한 그의 문체에 단숨에 매료된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철학책들을 읽다보면 사상의 체계가 치밀할수록 읽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에 반해 깔끔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는 사사키의 문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전과 영원>은 그의 사상의 전반적인 체계가
  10. 푸코, 라캉, 르장드르에 대한 안내서: '영원'한 '밤'의 '투쟁'을 위하여
    from dreamdie님의 서재 2016-01-20 16:03 
    미셀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란 세 거장들에 대해본문만 800여쪽에 달하는 책을 봤을 때,그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해 압도된 바가 있었다. 더구나 책 제목 또한 '야전'과 '영원'이다. 다행히도,책의 내용은 학술적인 관심이 있거나 학계에 있는 사람이라면,소화하기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다.라캉과 후기 푸코에 대한 비판적 독해와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종합한 르장드르를 통해서'주체화에 대한 저자 나름의 철학적 사유를 펼쳐낸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을
  11. 읽고 쓰는 모든 행위에 대한 성찰 『야전과 영원』, 사사키 아타루 저, 안천 옮김
    from 잡학서재 2016-01-21 11:10 
    읽고 쓰는 모든 행위에 대한 성찰 『야전과 영원』, 사사키 아타루 저, 안천 옮김, 2015. 11. 자음과모음.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15쪽)’ 안다면, 쓸 필요가 없다는 저자 사사키 아타루의 태도가 리뷰를 쓰게 한다. 아타루의 저작은 - 학문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 - 학문하는 과정 그 자체다. 읽는 행위는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일 텐데, 쓴다는 것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과정이다. “계획 없
  12. [야전과 영원] 현재 속에서 나를 찾는 힘은 무엇인가
    from 순수의결정체님의 서재 2016-01-23 20:19 
    자아찾기의 어려움지금의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개인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자 두려움은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나’와 ‘현재’가 어떠한지 모른다는 ‘무지’에 많은 이들이 떨고 있으며, 그 불안을 이용하여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착취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아 찾기’는 ‘현재 찾기’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제적
  13. 나만의 철학이란 이런 것
    from 초록연두의 책다락 2016-01-26 10:41 
    나만의 철학이란 이런 것《야전과 영원》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의 니체'라고 불린다 한다. 니체는 시대의 주류 사상을 뒤엎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낸 망치 철학자이다. 그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열에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사상을 전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니체의 잠언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역시 철학적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내가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라캉의 사상에서 출발
  14. 희망을 위한 논증, <야전과 영원>
    from 파한집 2016-01-27 22:27 
    *별점은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독해력 때문. 양심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학부를 막 마친 인문학도 임에도 라캉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지난 학기였나. 열정적으로 라캉과 지젝의 글에 대해 설명하는 한 교수님을 만나 정신분석학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으나 처참한 학점과 함께 실패했다. 이에 더해 르장드르는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한 철학자였고, 푸코가 그나마 친숙하다지만 그의 논지를 백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탓에 <야전
  15. 나는 가끔 물어본다
    from 물이 되는 꿈 2016-01-30 03:10 
    영성, 스피리추얼리티라니. 푸코는 어떻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푸코의 명석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우리의 이로에서 보면 푸코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706p 이것은 부분 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말을 수시로 털어낸다. 라캉, 르장드르, 푸코를 이야기 하는 이 책은 과연 한 권인가. 이 뒤로 얼마나 많은 책이 그림자로 겹겹인가. 그러나 그 그림자가 얼마나 두껍간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