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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란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한자로 뭐일까? 였다. 破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작가는 후기에 破果도 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느 한자가 당신의 결론인지 묻는다. 정말 불친절한 후기다. 시작은 분명 破果인데 破瓜를 같이 놓으니 사실 헷갈린다.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도 어느 한자가 더 적합한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10대나 2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당연히 후자지만 65세 살인청부업자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전자에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후자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결론을 말한다면 솔직히 상관없다. 둘 다 모두 가능하다.

 

65세 할머니 살인청부업자 조각.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방역업자라고 부른다. 문맥을 보면 수많은 신부름센터 중 하나 같이 보이지만 할머니가 속한 조직을 보면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엄청난 조직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월급쟁이처럼 일하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청부살인을 방역으로 부르는데 이것을 위해 그녀는 늘 운동을 한다. 나이를 넘어선 엄청난 근육을 보고 감탄하거나 놀라는데 이 때문에 방송작가도 엮인다. 그녀 직업 상 당연히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점점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은퇴를 고민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바로 이때 과거의 한 방역으로 인한 인연이 슬며시 나타난다.

 

할머니 킬러 조각 이야기다. 동시에 그녀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극단적 현실 표현이다. 살인청부가 난무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단히 비현실적인데 읽다보면 한국형 느와르 소설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지점까지 작가가 나가지 않았다. 액션보다 조각의 심리 묘사와 변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액션 비중이 적다고 느와르 소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작가가 그런 지점까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적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에서 빌려온 장치와 설정마저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을 잘 사용하여 재밌고 흥미로운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었다. 뭐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장르소설의 외형 속에 잔잔히 흐르는 조각의 마음은 순정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자신을 킬러 세계로 인도한 류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것이다. 조각의 회상 장면을 보게 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 한 자락이 잘 나타나 있다. 많은 형제자매와 무관심한 부모. 식모 생활. 실수와 오해. 술집 생활 등. 여기에서 뻔한 전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류의 존재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 실력을 가졌고,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번다. 조각의 재능이 이 뻔한 역사의 전개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를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보다 못하다. 삶의 안정을 전혀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류의 가정이 파괴되고, 류와 그녀마저 다른 업자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 조그만 틈이 생기면 그 틈새로 수많은 변화가 들어온다. 조각에게 그 틈은 노쇠다. 노쇠는 일반적인 방역도 약간의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엿보게 만든다. 살짝 드러난 비밀을 강 박사가 덮어주지만 불안한 그녀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 이런 그녀를 뒤따르며 엿보는 젊은 방역업자 투우가 등장한다. 먹이사슬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20년 전 방역의 피해자였던 투우의 호기심과 엇나감 감정이 변수를 만든다. 심리 묘사가 중심인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투우다. 과거와 현재가 어느 시점에서 만나고 충돌한다. 그때 바로 새로운 인생의 실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지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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