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의 단두대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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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상이니 진실이니 하는 건 공짜가 아닐세. 대개 뭔가 희생을 치러야 손에 들어오는 법이지.

따라서 탐정 활동은 남에게 민폐를 끼쳐.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면 그게 제일이야."

하스노가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            p.268


네덜란드의 부호 림스테이크는 오래 전 일본인 골동품상에게 팔았던 괘종시계를 되사러 일본을 방문한다. 아버지와 거래했던 일본인 골동품상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손자가 시계를 다시 거래할 수 있도록 답장을 보냈다. 손자인 이구치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청년 화가였고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했던 림스테이크는 그에게 작품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의 그림은 담백한 화풍으로 그린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이었는데 림스테이크는 유독 한 작품에 사로잡힌다. 우아한 새가 눈앞에서 갑자기 날개를 펼친 듯한 인상을 받은 그림이었다. 이구치는 그 그림을 2년 전에 그렸고, 발상의 원천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똑 닮은 그림을 멀지 않은 과거에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미공개작이 어떻게 캘리포니아주의 유품 정리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과 같을 수 있을까. 이구치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림스테이크에게 그림을 팔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인 하스노와 함께 도작범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해 나간다. 자신이 속한 예술가 모임인 흰갈매기회 회원들이 집에 온 적이 있었기에, 그들이 아틀리에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조사를 해나가는데... 그렇게 도작과 위작을 밝혀내기 위한 추리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그대로 모방한 듯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왜 범인은 시체를 극중 인물 같은 차림새로 꾸미는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걸까. 도작은 이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런 모임을 열지 말았어야 했어. 나한테 탐정 같은 흉내는 무리야."

"정말 그래. 보통은 탐정이 용의자를 모으면 '자, 이 중에서 범인을 지목하겠습니다'라고 하잖아? 그런데 넌 '드디어 용의자가 모두 모였군요. 이 가운데 무시무시한 사건의 범인이 있습니다. 대체 누구입니까? 자, 말씀해주십시오!'라고 한 셈이지. 역사상 유례없는 대담한 탐정이야. 미수에 그쳤지만. 그전에 엔도가 시체가 돼서 난입했으니까."                p.487


화가 이구치와 전직 도둑 하스노는 탐정 역할을 하며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이 작품의 페이지가 600페이지가 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서사의 중심에 있는 도작 사건과 위작 사건을 비롯해서 천재 예술가의 죽음과 비밀을 품은 무대 여배우의 이야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나의 그림을 둘러싼 기만이 출발점이 되어 벌어지는 연쇄 살인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꽤나 복잡한데, 색다른 상상과 신선한 발상으로 지루할 틈없이 읽을 수 있었다. 탐정의 '동기'와 범인의 '동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밀도 높은 이야기 끝에 만나게 되는 결말 또한 굉장한 여운을 남겨 준다.


<방주>라는 놀라운 작품으로 만났던 유키 하루오의 신작이다. <교수상회>, <시계 도둑과 악인들>에 이은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세번째 작품이다. <시계 도둑과 악인들>은 <교수상회>의 프리퀄이고, <살로메의 단두대>는 <교수상회>보다 몇 달 후의 일을 다루고 있어 출간 순서, 또는 내용 순서대로 읽어도 무방하고, 단독으로 읽어도 내용 이해에는 무리가 없다. 백 년 전 다이쇼 시대의 정서와 풍경이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 색다른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진상과 진실은 그냥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냈을 때, 마지막 살로메의 단두대에 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어떤 희생을 치를 것인가.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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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재미있지 않나요? - 기묘한 지구, 뒤틀린 우주, 과학의 수상한 사건들
강성주(항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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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예상 못한 것을 발견하거든요.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려다 새로운 재료를 개발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의 우주 운송 수단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끊어진다면?' 이 질문은 사실 이런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끊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 위험을 먼저 상상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설계로 이어지니까요. 언젠가 정말로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게 될까요? ... 하지만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져보는 건, 충분히 재미있지 않나요?               p.91


블랙홀로 타임머신을 만든다면 시간여행이 가능할까, 지구에 토성 같은 고리가 생긴다면 어떨까, 우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끊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행성 하나를 지구로 가져올 수 있을까, 빛과 똑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 황당한 가정들을 진지하게 따져가다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현실의 그 어떤 과학보다 과학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것은 유튜브 〈안될과학〉을 통해 137만 구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과학을 알려주는 과학커뮤니케이터 '항성'의 첫 책이다. 황당한 질문과 진지한 과학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호기심으로 시작해 과학적 사고와 추론, 계산을 거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한번 생긴 궁금증을 집요하게 놓지 않는 과학자의 생각법을 따라가다 보면 '쓸모없는 답이라고 해도, 알면 재미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지구 반대편까지 터널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상상이었다. 한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시작해 드릴을 꽂아 지구 중심을 그대로 내려가면, 이론상 아르헨티나 동쪽 대서양 어딘가로 나오게 된다. 물론 발아래로는 지각과 맨틀, 그리고 섭씨 6,000도에 달하는 핵이 차례로 놓여 있다. 이 터널에 몸을 맡기면 중력이 끌어당기고, 연료도 엔진도 없이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할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언젠가 미래에 진짜 누가 이런 터널 개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천재가 답을 찾았다는 과학사가 아닙니다. 어떤 발견은 누군가에게 도달합니다. 하지만 언제 도달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티코의 기록과 케플러의 판단이 같은 시기에 만났기 때문에, 행성의 움직임은 그때 비로소 새롭게 설명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과학의 돌파는 진실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 진실을 보여주는 데이터와 그것을 읽어낼 사람과, 그것이 만나는 시기가 함께 와야 합니다. 알면 재미있지 않나요?                p.330


왜 하루는 24시간밖에 안 되는지,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에게 '하루가 두 배가 된다면'이라는 상상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수면 시간을 줄여 보기도 하고, 새벽 기상에,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늘 일상에 쫓기며 살고 있는 나에게도 말이다. 그래서 '하루가 48시간이라면' 문구를 보자마자 이건 진짜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읽어 보았다. 만약 하루가 48시간이라면 잠도 더 자고, 일도 더 하고, 쉬는 시간도 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얼핏 단순하게 들리는 이 상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루가 48시간이 된다는 것은 시간이 더 생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천천히 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는 약 24시간을 주기로 한 바퀴씩 돌고 있다. 그 속도가 절반이 되면 해가 뜨고 지는 속도가 달라지고, 낮과 밤이 길어지고, 바람이 도는 방식이 달라지는 등 지구 자체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 속 호기심들은 그저 재미를 넘어서 과학적인 정확성을 통해 풀어내고 있어 좋았다. 


또한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저자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특별하고 독특한 우주를 일러스트로 수록했다. 상상력을 고스란히 펼쳐놓은 일러스트라 내용 이해는 물론 과학을 더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기발한 과학 문답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과학에서 중요한 건 이미 알려진 것들을 '아는' 게 아니라, 왜 그런지 끝까지 '묻는' 태도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 기발하고 정교한 과학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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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
사쿠라이 치히메 지음, 김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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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기, 만약에.”

내 말에 하나코가 천천히 반응했다. 나를 보는 듯 보지 않는 듯한 크고 검은 눈동자.

“만약 딱 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면 누구를 죽일 거야?”

“뭐야, 그게.”

하나코는 웃었다. 어이가 없다며 내 말을 일축해 버릴 듯한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p.129


하나코의 최애는 아이돌 그룹 '백 투 더 나우'의 멤버 후지카와 이사미이다. 백 나우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건 잘생기고 노래도 춤도 뛰어난 데다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다이가지만, 하나코는 두 번째로 인기가 많은 이사미를 더 좋아한다. 다이가처럼 천재형이 아니라 노력해서 자신을 갈고닦는 유형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건축가인 아빠와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엄마는 항상 바빠서 하나코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낯을 가리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왕따는 아니지만 딱히 친구도 없어 학교에서도 외톨이이다. 그런 하나코에게 아사미는 유일한 기쁨이자 삶의 낙이며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처럼 입학 이래 누구와도 말을 섞찌 않던 남자애 쓰키미야가 하나코에게 말을 건다. 아사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라고 말이다. 같은 멤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두 사람은 금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컴퓨터를 잘하는 쓰키미야는 SNS 게시물을 구석구석까지 확인해 이사미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내고,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고 소문난 초고층 맨션을 찾아가 멀리서 이사미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총기 마니아인 쓰키미야는 엄한 아버지로부터 늘 잔소리를 듣고, 어머니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집에서도 별채에서 따로 지내는데, 하나코를 초대해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하나코는 쓰키미야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고, 이사미가 최애인 친구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쓰키미야는 이사미의 팬이 아니다. 그저 하나코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이사미를 좋아하는 척 접근한 것이었다. 




다섯 사람은 그대로 첫 곡을 선보였다. 음악에 맞춰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였고 힘찬 노랫소리가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무대 위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조명이 빛났고 원색의 유성들이 흩어졌다. 옆에 앉은 하나코의 옆모습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틀림없이 후지카와 이사미를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후지카와 이사미를 죽이겠다고.                  p.294


한편 이사미는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이가에게 끊임없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고, 멤버 중에 특별히 가까운 히로히토와의 관계를 BL 망상으로 좋아하는 팬들과 그걸 가지고 자꾸 놀려대는 멤버들을 향한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유명세와 맞바꿔 자기 생각을 억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고, 팬들에게 자신은 만들어진 이미지인 '동양풍 꽃미남'이라는 살아 있는 인형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러한 마음들이 쌓여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 감정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팬들이 있는 자리에서 다이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식으로 문제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팬들의 비난 어린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그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사미는 완전히 나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완벽한 아이돌이라 믿어 왔던 최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의 몰락과 함께 하나코의 세계도 산산조각나는데...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다. '줄곧 이사미에게 속았으니까. 아름답지 않은 이사미 따위 필요 없어. 죽어 버려.'라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때 떠오른 것은 “만약 딱 한 사람을 죽여도 된다면, 누굴 죽이고 싶어?”라는 쓰키미야의 질문이었다. 게다가 쓰키미야는 이사미가 사라져야 하나코가 혼자가 된다고,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위험한 충동은 무대 위의 이사미를 향하는데, 과연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그 목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잘 나가는 스타가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문제는 그 몰락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최애를 위해 쏟았던 시간과 감정, 마음이 산산조각 나면서 그를 사랑했던 팬들 역시 함께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그러한 감정이 조금 더 깊고, 심각했기에 끔찍한 비극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 도를 넘은 사생팬들의 문제에 대해 보도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생팬'이란 연예인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추적해 침해하는 극성팬을 뜻하는 말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사생팬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 처절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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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 - 히라가나는 모르지만
도쿄잇초메(최제이) 지음 / 길벗이지톡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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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식권 자판기를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 아니라 그런지 그림은 하나도 없고, 온통 일본어로 표기된 메뉴들만 빽빽하게 있었다. 번역기 어플을 써봐도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는 메뉴들이 많아 대충 감으로 몇몇 메뉴를 시켜서 먹으며 허둥댔던 기억이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계획된 장소,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필수로 가는 유명한 식당도 들르지만 갑작스럽게 일정이 변경되서 현지의 로컬 식당에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한글 메뉴판은 커녕 영어로도 표기가 안되어 있는 곳이라면 정말 난감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일본어를 능수능란하게 하지 않더라도, 로컬 식당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 나 같은 경험을 해본 이들을 위한 완벽한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이라니... 어쩐지 무작정 신뢰가 가는 책이다. 




이 책은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여행 정보와 꿀팁, 일본어를 친근하고 유쾌하게 알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도쿄잇초메의 첫 책이다. 저자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일본어 첫걸음을 떼고 약 2년 만에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합격, 이후 4년간 도쿄에 살면서 쌓은 정보들을 30만 팔로워에게 나눠주고 있다. 일본 여행을 더 재밌게 즐기고 싶은 독자들의 가려움을 정확히 긁어줄 이 책은 초보자가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일본어부터 여행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일본 문화, 그리고 각종 쓸모 있는 여행 꿀팁들이 담겨 있다. 


딱딱한 학습서가 아니라 여행 에세이처럼 사진과 글을 구성해 술술 잘 읽히고, 현지의 베테랑 가이드처럼 꼭 필요한 내용들만 쏙쏙 정리해두어 현지에서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각장이 끝날 때마다 귀여운 캐릭터의 만화 구성으로 틈새 퀴즈가 있어 내용도 확인하고, 재미도 더해준다. 




일본어 회화 책을 꽤 봐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은 가장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어 인사부터 시작해 음식점 주문, 라멘집, 스시집, 카페, 이자카야, 편의점, 쇼핑, 호텔, 교통수단 등 각 장소와 상황에 필요한 일본어들이 구성되어 있는데, 정말 히라가나도 모르더라도 이 책만 있으면 문제없이 주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저자가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며 거르고 거른 현지 밀착형 일본어만 보은데다, 실제로 이어질 대화의 흐름대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어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다. 


웨이팅 할 때 써먹는 초간단 일본어, 식당 메뉴판 공략법, 스시집에서 현지인이 쓰는 은어, 계산대 앞에서 무조건 써먹는 표현 모음, 화장실 생존 일본어, 일본 여행에서 해볼 64가지까지 알찬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각각의 장은 모두 QR 코드를 통해 원어민 음성을 들어볼 수 있는데, 일본어 발음뿐만 아니라 우리말 해석까지 같이 녹음이 되어 있어 듣기만 해도 표현을 익히기에 아주 좋을 것 같다. 




레트로 감성의 일본 킷사텐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편인데, 이 책에 코메다 커피도 소개가 되어 있어 매우 반가웠다. 오전 11시까지 모닝 세트를 판매하는데,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곳이라 여행 중에 들르기 너무 좋다. 일본 편의점도 무조건 방문하는데, 새로운 제품 앞에 신발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는 사실과 영수증은 절대 바로 버리지 말라는 팁이 유용했다. 한국의 1+1 행사처럼 일본에도 공짜로 하나 더 주는 이벤트가 있는데, 편의점 영수증 맨 아래에 무료라는 한자와 함께 바코드와 사용 가능 날짜가 있는지 꼭 확인해야겠다. 


그밖에도 부록으로 알아두면 쓸모 있는 11가지 한자, 여행할 때 꼭 써먹는 22가지 단어, 급할 때 바로 펼쳐 보는 33가지 문장 리스트가 잘 정리되어 있으니 활용해 보자. 도쿄잇초메의 입담과 글빨이 유쾌하고 재미있게 일본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현지에서 백퍼 통하는 일본어 책을 찾고 있다면, 꼭 필요한 내용만 군더더기없이 담은 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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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지친 밤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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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스다 미리의 책들을 좋아한다. 몽글몽글 귀여운 캐릭터 일러스트도 사랑스럽고, 소소한 일상 속 이야기들이 가볍게 펼쳐지지만 그 속에 삶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는 것도 참 좋다. 30대 여성들의 현실과 삶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수짱' 시리즈에 이어 이번 신작은 50대의 일상과 중년의 삶에 대해 차분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수짱'시리즈가 탄생한 지 16년이 흘렀으니, 작가도,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쌓인 시간만큼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위스키 하이볼을 마시는 것이 생각보다 되게 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 여자가 이러면 사연 있어 보이지만, 중년 여성에겐 그냥 현실감 넘치는 풍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이볼을 마시며 왠지 중년에 지친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디선가 내 마음 속 생각과 똑같은 말이 들려온다. 중년에 지쳤다며 대화 중인 두 여성은 마침 나이도 같은 50이다. 만담 콘테스트를 준비하겠다는 두 여성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바로 뒤 자리에서 우연찮게 엿듣게 된 '나'는 그 뒤로 종종 심야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게 된다. 혹시 오늘도 그들이 와 있으려나 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렇게 50살 중년의 웃픈 일상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년'이라 하면 청년과 노년 사이의 단계로 보통 40대에서 60대 초반을 의미하는 나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우두둑하면서 푹 자도 찌뿌둥해지는 나이, 티셔츠가 이제 안 어울리는 것 같고, 뭐든 새롭게 잘 어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나이, 화장도 예전처럼 마음에 들지 않고, 앉았다 일어날 때 영차가 저절로 나오는 그런 나이다. 마스다 미리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사소하지만 분명한 변화들을 그려낸다. 어쩐지 서글퍼지는 순간도 마스다 미리의 작품 속에는 툭툭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적당한 무심함과 무겁지 않은 진지함이 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음'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몸의 시스템은 40대 이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고 하던데, 주위를 둘러보면 40대가 되면서 확실히 체력이며, 건강이 달라진 걸 느꼈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변화는 50대, 60대가 되어가면서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좀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에너지 넘치게 삶을 대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이런 경쾌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것이 우리에게 마스다 미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나이 드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들이 계속 태어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어떤 세계가 꾸준히 사라진다. 자연의 이치이지만 사실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중년이란, 흔히들 느끼는 것과 달리,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그렇게 늦은 때는 아니다. 나이 듦을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고민한 필요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다. 


중년에는 지쳤고, 나이 먹는 건 재미없지만, 그럼에도 나이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다정한 작품이었다. 매번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읽고 나면 특유의 긍정 마인드가 내게도 전염되는 기분도 들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에 대한 걱정들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기분이랄까.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니까,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마음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책을 덮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항상 소소한 즐거움을 챙기며 살자고 다짐해본다. 찬란한 날들은 이미 다 지나가버린 것 같지만, 나이를 먹어서야 깨닫게 되는 기쁨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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