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서점이니까 - SE.1 페가수스 서점 기치조지점
아오노 케이 지음, 임지인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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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들 평대만 신경 쓰지만 서가에 책을 꽂아두는 방식도 중요하다. 5밀리만 튀어나오게끔 정돈한 뒤 일직선으로 책등이 보이게 한다. 가름끈이 책등 쪽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매출 전표도 튀어나오지 않게 책 마지막 페이지에 끼워 넣는다. 그런 세세한 부분을 챙기는 것이 바로 서점 직원이다. 시간을 들여 한 단씩 정돈한 서가는 보기만 해도 즐겁다. 손바닥의 감촉으로 책을 실감하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그 근처는 공기가 침체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p.49


페가수스 서점의 부점장 리코는 올해 마흔으로 최근에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남자는 거래처인 대형 출판사의 영업부 차장으로 서글서글하고 평범한 면을 좋아했었지만, 결국 어린 여자 직원과 바람이 나서 삼류 드라마같은 결말에 이르고 말았다. 더는 젊지 않은 나이에 다음 연애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게다가 이제는 남자 보는 눈도 까다로워졌고 자존심도 강해져 남자에게 연애 감정을 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스물일곱인 직원 아키는 예쁘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일로 여직원들 사이에서 겉도는 존재다. 서점에서 인기있는 남자 직원과 사귀다가 헤어지고 출판사의 만화부 편집자와 사귀더니 몇 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말이다. 


아키의 결혼식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보수적인 워커홀릭인 40대 싱글 부점장과 자유롭고 솔직한 20대 직원, 이렇게 두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실판 서점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평소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리코와 아키가 부딪히는 일이 벌어져 결혼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작은 오해로 아키는 음치인 게 만천하에 들통나버렸고, 전 남자친구의 이름이 식장 내에 울려 퍼지기도 해서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본의아니게 아키가 던진 부케가 리코 쪽으로 가서 받게 되는데, 일부러 자신을 망신 주는건가 싶어서 리코도 기분이 확 상한다. 그렇게 말다툼이 시작되어 급기야 아키가 리코가 낸 축의금 봉투를 돌려 주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과연 이 파란만장한 결혼식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그래도 상관없어.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게다가 이왕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좀 더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잘못돼다는 게 아니라, 그 의욕을 이용당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아. 서점 직원을 홍보에 이용해서 싸게 해치우려는 출판사도 많으니까. 교정지를 읽거나 감상을 보낸다한들 돈을 받는 것도 아니잖아? 자기가 쓴 문장이 홍보 문구로 쓰여도 원고료가 나오는 것도 아닐 테고."                   p.174


이 작품은 출판사 편집자였던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현실판 서점 이야기로, 1권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7권까지 나왔다. 일본에서 누계 5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곧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일상과 관계에서 빚어내는 갈등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고, 서점과 출판사의 리얼한 디테일들이 담겨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번쯤 책장에 꽂힌 책등을 만져보며 책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기울여 본 적이 있다면, 좋아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쓰며 그런 글을 쓰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본 적이 있다면, 책을 펼치고 상상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을 사랑한다면,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매혹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작품들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이 책은 정말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세상에 재미있고 매력적인 책은 많지만, 그런 책을 소개하는 것은 재미있거나 매력적이기 쉽지 않다. 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잘 몰랐던 책을 '발견'하거나 좋은 책을 '소개'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서가에 책을 진열하는 방식부터 잡지 부록을 일일이 래핑하고, 클레임 손님을 대응하고, 재고를 확인해 반품시킬 종류를 선택하고, 새로 주문을 하며, 이벤트를 기획하고, 작가와 행사를 계획하는 등 실제로 서점과 출판사에서 책을 팔기 위해 하게 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씩 보여준다. 또한 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고민들은 여느 회사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직장인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삼사십대가 된 커리어 초중반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고민들과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건가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니 말이다. 


매일 새로운 책이 나오고 세상에는 책이 넘쳐흐르니까 어지간해서는 눈에 잘 안 띈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 이유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서점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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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증인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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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로등은 길 양쪽에 세 개씩, 모두 여섯 개가 늘어서 있는데 그중 하나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도스가와에게는 그게 우연한 고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온 사람은 아주 주도면밀한 자다. 외딴섬에 실제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 아니라 바 '로맨스' 안에는 작년 달력에 작년 살인 사건 기사가 실린 신문까지 갖춰 뒀다. 이 모든 게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 '역시' 하고 도쓰가와는 생각했다. 범인은 1년 전 살인 사건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하려는 것이다.                p.41


경시청 수사1과에서 일하는 도쓰가와 경부는 새벽에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중 둔기에 맞아 그대로 쓰러진다. 얼마 뒤 낯선 섬에서 깨어 난다. 그곳은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콘크리트 도로 끝에 건물이 늘어서 있고,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사거리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어 꼭 죽은 도시 같았다. 실제 도시의 한 구역을 통째로 떼어다 옮겨 놓은 듯한 이곳은 어딜까.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걸 만든 걸까. 곧 도쓰가와는 자신 외에 일곱 명의 남녀가 같은 방식으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노인이 나타나 1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감옥에서 병사한 아들의 무죄를 밝히고 싶다고 말한다. 


일년 전, 스물한 살인 사에키는 바 '로맨스'에서 술을 마시다 같은 자리에 있던 남자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인다. 마담의 중재로 그 자리는 일단 가라앉았지만, 가게를 나선 뒤 치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자를 뒤쫓아 당시 지니고 있던 15센티미터 남짓한 칼로 그의 등을 찔러 살해했다. 가해자는 강도 전과 1범으로 주소 불명, 무직으로 전형적인 살인범의 프로필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피해자는 손꼽히는 대형 상사의 영업과장으로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사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두 사람의 사진과 약력만 보더라도 영랑없는 범인과 전형적인 피해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일곱 명의 증인이 하나같이 그의 범행을 증언해 9년행을 받는 걸로 사건은 끝이 났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 사건을 다시 재조명하겠다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 당시 증인이었던 사진작가, 재수생, 바의 마담과 단골, 은행 부지점장과 여직원까지 일곱 명과 사건과 관련이 없는 형사 한 명이 필요했다. 그렇게 증언이 차례로 재현되면서 조금씩 모순이 드러나는데... 과연 그는 죽은 아들의 무죄를 밝혀낼 수 있을까.




“내 아들을 위한 일이니까. 남의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사키 씨의 반론이 훌륭했다고 해서 그 추리가 옳다고 증명된 건 아닙니다. 그 점은 사사키 씨도 잘 아실 겁니다. 다만 증명은 아니더라도 아드님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은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증인 다섯 분도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p.278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이다. 데뷔 이후 6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누적 판매부수 2억 부를 돌파한 일본의 국민 추리소설가인 니시무라 교타로는 열차나 관광지를 무대로 도쓰가와 경부가 활약하는 트래블 미스터리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을 꽤나 오랜 전에 읽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국내에 2014년에 소개되었던 <종착역 살인사건>과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작가이고, 이후 <살인의 쌍곡선>을 마지막으로 읽었는데 그게 2020년이었으니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블루홀 6에서 2022년 <화려한 유괴>, 2024년 <묵시록 살인사건>으로 꾸준히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을 소개해 오고 있는데, 이번 작품을 계기로 놓쳤던 작품들도 다시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 작품은 살인 사건 당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실제 거리와 건물 들을 외딴섬에 고스란히 옮겨 놓은 뒤, 증인들을 한 곳에 모아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본다는 설정부터 매우 흥미로운데, 이미 재판이 끝나고 범인까지 확정된 사건이 다시 무대 위에 올려지는 과정이 굉장한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1977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니 니시무라 교타로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전 초기작인데도, 수준급의 완성도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새삼 감탄하며 읽었다. 거의 5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낡거나,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지 않는 것도 대단했고, 고전적인 플롯으로 만들어 나가는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도 인상적이었다. 법정에서 오간 증인들의 증언은 정말 진실일까, 아니면 각자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왜곡된 사실의 조각일까. 각자의 발언이 복원되고, 대조되고, 비교되는 과정을 통해 모순점이 드러나고, 논리가 무너지는 과정이 대단히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사적인 재심이지만, 그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무인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논리 대결이 궁금하다면, 고전 추리소설과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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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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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일에는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아."

지카가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면서 툭 내뱉었다. 말은 들었지만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이즈미가 묻자 지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직은 말 못 해. 어쩌면 단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그래도 조사해 볼 가치는 있어... 네가 나한테 찍은 배신자라는 낙인을 기필코 지우고 말겠어."                  p.41


스물한 살 여대생이 스토킹하던 남성이 휘두른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와 손님으로 알게되어 집요하게 치근덕거리다가 급기야 협박하고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스토킹 행위가 점점 더 악질적으로 변하자 부모가 경찰을 찾아갔지만, 담당자는 여러 달 동안 피해 심고서 접수조차 해주지 않았고, 수사 결정을 하고 나서 얼마 뒤 살해당했다. 언론은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인해 여대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몰아붙였고, 경찰 조직 전체가 거센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거기다 경찰이 신고 접수를 미룬 이유가 직원들의 워크숍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경찰서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현경 홍보과 직원 모리구치 이즈미는 사건을 단독 보도해 특종을 얻은 요네자키 신문사의 기자이자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쓰무라 지카를 의심한다. 경찰 내부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기사화되었으니 말이다. 이즈미와 지카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둘 다 모자 가정이라는 공통점으로 더욱 가깝게 지냈던 친구 사이다. 대학을 진학한 뒤로는 소원해졌다가, 두 사람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재회하게 되면서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는 사이였다. 저녁을 먹다가 자신이 무심코 워크숍 건에 대해 말을 했었고, 절대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그런데 이 사단이 났으니 이즈미 입장에서는 친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카는 자신이 기사를 쓰지 않았다며, 이 일에는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이 조사해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지카는 강 하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렇지만,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고통스러운 숨 사이로 간신히 짜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헨미는 눈앞에 놓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잔이 비었다. 이소카와가 술을 채웠다. 

이소카와가 따라 준 술을 단번에 비운 헨미의 고개가 푹 꺾였다.

"넌 이 일에 더 이상 깊이 개입하지 마."

그건 불가능하다. 절친이 살해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즈미를 생각하면 여기서 손을 뗄 수는 없다.              p.265


이즈미는 친구의 말을 믿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지카가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그녀가 죽기 전에 무엇을 조사하고 있었는지 추적해보기로 한다. 분명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지카는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고, 오명을 벗기 위해 그 점을 조사할 거라고 말했었다. 절친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절친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자신은 형사도 아니었고, 지카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이 최선을 다해 수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짝 친구였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었다. 사건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형사도 수사관도 아닌 경찰 홍보과의 사무직원이라는 점이 진실을 향한 추적을 더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게 해주었다.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내부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약간의 거리감과 피해자의 친구라는 입장에서 정의를 밝히고자 하는 마음이 서사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고독한 늑대의 피>, <반상의 해바라기>, <최후의 증인> 등의 작품으로 만났던 유즈키 유코의 신작이다. 여대생 스토킹 살인 사건, 경찰서 출입 기자의 죽음, 기자가 접촉을 시도한 여성의 자살, 신문의 특종 기사와 제보자, 사이비 교단의 존재 등 각각의 사건은 끊어질 듯 가늘면서도 몹시 억센 실로 이어져 있는 듯 연결되어 있다.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그것들을 연결하는 실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 흩어진 조각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경찰이 아닌 여주인공은 과연 이 조각들을 연결하는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유즈키 유코의 기존 작품들이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강했는데, 이 작품 역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탄탄한 미스터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뜨겁고 치열한 남성 주인공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죄책감과 의심, 진실을 향한 추적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죄와 맞서는 일에는 늘 부조리한 면이 섞여 있다. 범인이 확실한데도 증거가 불충분해서 체포하지 못하고 풀어 줘야 할 때도 있고, 범인을 체포하고 송치하더라도 기소까지 못 갈 때도 있다. 공판까지 원활하게 진행되더라도 말 도 안 되게 가벼운 형이 선고될 때도 있다.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애쓰는 것이 삶이라는 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벚꽃이라는 암호명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이 궁금하다면,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찰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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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벚꽃
유즈키 유코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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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드러나는 거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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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삶의 태도
장하석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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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생각하다 보면, 지구가 참 신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간들은 어떤 일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면서도 또 다른 많은 일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이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의 거의 모든 순간을 땅에 붙어서 살면서도 그 땅덩어리가 정확히 어떤 형태이고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다. 그러한 내용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다.               p.78


현대 문명은 과학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는 과학지식과 그것을 응용한 기술을 통해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과학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과학이 가져다주는 지식의 내용뿐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을 몸에 익혀야 하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이라 하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은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인 저자가 과학적인 태도와 사고방식의 필요성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온도계의 철학>을 비롯해 과학철학을 다루는 책들을 다수 출간해 왔다. '과학철학'이란 과학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학문으로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 설명해주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한 과학서에 비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 분야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제목이기도 한 '과학하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과학하는 마음에 담긴 것은 예외 없는 규칙들이 아니라 어떤 태도와 정신이라고 말이다. 경험 이외의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항상 끝없이 배우려는 태도이며, 내가 다 안다는 오만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이 무한히 있음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다. 




또 상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인생의 의미는 직접 경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계산기를 쓰더라도 어린이들에게는 산수를 가르쳐서 직접 계산하는 법을 우선 깨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숫자를 곱하고 나누고 해본 경험 없이 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방정식을 풀어보고 미적분을 해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다. AI가 번역을 해주니 내가 애써 번역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외국어를 직접 힘겹게 배우면서 이국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또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는 일은 AI가 대신 해줄 수 없다.                    p.287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중앙일보>에서 2021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매달 발표했던 칼럼들을 다듬고 보충한 것이다. 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크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인공지능의 무서운 발달 등 전 세계를 휘청거리게 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통찰도 만날 수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엮인 글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하나하나 쓰였던 글들이라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는 가독성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없이 원하는 주제의 글을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천문학 등 여러 영역을 다루면서 과학사의 중요한 장면들도 짚어주고 있어 과학 교양서로 만나기에도 좋다. 또한 과학과 과학적 태도가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각종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부터 전세계적인 팬데믹과 테러, 재해, 기후 문제, 그리고 일상에서 겪는 가족 문제, 회사에서의 고민, 연인 관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걱정까지 우리의 삶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실 불확실성은 과학지식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확답을 주지 못하는데 왜 과학을 신봉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확실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학자와 그들이 얻어낸 지식에 기반해 정책을 세우는 정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이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면서도 따라주는 것이 성숙한 시민이 보여주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그 '겸허함에서 나오는 과학의 권위'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과학을 신뢰할 수 있고 진정한 권위가 생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과학의 정신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면, 인생 자체도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과학하는 마음'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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