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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 메리앤이 탄성을 올렸어요. "옛날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황홀한 느낌에 휩싸였는지 몰라! 산책하면서, 바람에 날려 사방에서 소나기처럼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즐거웠는지! 낙엽, 계절, 공기가 어우러져 내 안에 일으키던 감정들은 또 얼마나 풍부했는지! 이젠 그렇게 바라볼 사람도 없겠네. 귀찮은 일거리로만 여기고 황급히 다 쓸어서 눈에 안 보이는 데로 치워버릴 테지."
"모든 사람이 너처럼 죽은 나뭇잎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건 아니야." 엘리너가 말했지요. p.140
사실 대부분 제인 오스틴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남녀가 서로 오해하고, 헤어지고, 갈등하고, 다시 만나는 서사, 즉 로맨스 소설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다. 하지만 그 편견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것이 1811년에 출간된,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이다. 로맨스, 이성과 감성의 대립 구도 외에도 당대의 중요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사회적 문제의식을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게 구현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선형 번역가는 이 작품에 대해 '번역만으로는 옮길 수 없는 중요한 행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은 <디어 제인 오스틴>이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은 매사에 지나치게 신중한 맏딸 엘리너의 절제된 이성과 매사에 지나치게 감정적인 둘째 메리앤의 정직한 감성이 가족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로 인해 오랜 세월 살아온 저택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게 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 맏딸인 엘리너와 둘째 메리앤의 완전히 상반된 성격의 차이가 사사건건 부딪히며 극에 재미를 더해준다. 두 자매의 성향 차이는 각자의 남성관에도 반영되어 이들의 로맨스 서사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의 감성은 21세기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타인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이성적인 면에 있어서는 이해는 하지만 다소 안타까운 부분도 들 것이다. 두 자매의 행동과 사고는 지나치게 극단적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두 가지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성과 감성이 모두 필요한 것이기에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야 할텐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두 자녀의 이야기를 보며 언제쯤 이성과 감성이 '소통'할 수 있게 되느냐에 포인트를 주는 것도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엘리너는 차마 명랑할 수 없었어요. 그 기쁨은 종류가 달라서 다른 감정은 몰라도 명랑함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메리앤이 구사일생으로 회복해 삶, 건강, 친구들을 되찾고 애지중지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섬묘한 위안의 감각으로 가득 차올라 열렬한 감사로 뜨겁게 팽창했어요 ─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기쁨도 드러나지 않았고, 어떤 말이나 미소로도 표현되지 않았답니다. 오직 엘리너의 가슴속에서만, 그 고요하고 강인한 만족감이 머물러 있었어요. p.477~478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은 제인 오스틴이 태어난 지 정확히 250주년이 되는 2025년 12월 16일을 시작으로, 매년 두 권씩 삼 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작가가 생전 완성된 여섯 권의 소설을 출간된 순서에 따라 출간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이 나왔고, 내년에 <맨스필드 파크>, <에마>, 그리고 내후년에 <노생거 애비>와 <설득>이 차례로 출간된다. 그리고 두 작품에 대한 번역가의 에세이도 해마다 함께 출간된다. 제인 오스틴의 생일에 맞춰 초판 발행일자를 맞추는 것부터 번역가의 애정 가득한 에세이를 함께 내는 것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기획이다. 각 소설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건져 올린 번역가의 단상들을 엮은 에세이도 매우 기대가 된다.
<이성과 감성> 역시 다양한 판본으로 이미 나와 있지만,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이 특별한 것은 바로 '각주'에 있다. 김선형 번역가는 영미권에서 출간된 여러 유력한 오스틴 판본과 연구서, 제인 오스틴 북클럽 등에서 얻은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방대하고 꼼꼼한 주석을 달았다. 고전 문학을 읽을 때, 옮긴이의 주석을 꼼꼼히 다 살피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선형 역자의 각주들은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을 만큼 깊이 있고, 재미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부연 설명을 비롯해 이 두 단락은 오스틴의 작품 중 남자 주인공을 처음 소개하는 묘사 중에서도 가장 길고 친절하다 라던가, 이 대화는 독자가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식이다. 또한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는 표현에 대한 원문과 해석, 단어의 문맥적 의미 등 깨알같은 팁들로 가득하다. 각주를 잘 따라가다 보면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더욱 잘 이해해 이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역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앞으로 이어질 다른 작품들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