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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 ㅣ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장민주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견디기 힘든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미레이는 여름날 1인 전용 카페에서 먹었던 푸딩을 떠올린다. 푸딩과 푸딩 틀을 나이프로 분리한 다음 접시를 덮고 뒤집는다. 틀을 빼내면 접시에 푸딩이 해방된 것처럼 떨어졌다. 뚜껑을 덮은 마음, 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때 주인장이 푸딩에 찔러 넣었던 미니 나이프를 보여주었던 것 같은데... '양날.' 양면성, 이면, 모든 방향. 한쪽만 보면 알 수 없는 진실이 있는 게 아닐까. 양면을 볼 때 비로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p.104
도시의 어느 거리 한구석,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호젓이 자리한 작고 비밀스러운 카페가 있다. 카운터에 의자 다섯 개, 정원에 테이블 세트 하나가 전부인 작은 카페 도도. 주인장 소로리는 도시의 바쁜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이곳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1인 전용 카페라서 손님들은 모두 혼자서 방문한다. 오늘은 저녁에 문을 열고 얼마 안 되어 벌써 만석이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안개 속의 페이스트리 파이'이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누군가 지켜보는 걸까 싶어 가슴이 철렁하면서 손님들은 페이스트리 버터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흠뻑 들이마신다. 안개 속에 있는 모두의 마음이 언젠가는 화창하게 개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소로리는 손님들에게 오늘의 메뉴를 가져온다.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장 소로리는 키가 훤칠하고, 수줍은 눈웃음을 띠고 있는 남자다. 진지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차분한 이미지에 비해 약간 덜렁대기도 하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인물들을 위로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신비로운 음식을 개발해 내 놓는데, 지난 1권과 2권에서는 이런 음식들이 등장했었다. 자기긍정력을 높여주는 주전자 커피, 비 내리는 날의 샌드위치, 나를 돌보는 달콤한 디저트 마시멜로 구이, 숲의 선물 버섯 타르트, 꿈에 잘 듣는 스튜, 행복을 가져오는 통사과구이 그리고 그대만의 정답 스패니시 오믈렛, 상처받지 않도록 오이 포타주, 시간을 되돌리는 버섯 아히요, 자신감을 주는 앙버터 토스트까지 이름만 보더라도 어떤 음식인지,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메뉴들이다. 겉보기에는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주택가의 한구석에 이런 카페가 있다면 갑자기 초현실적인 공간에 빨려 들어온 듯한 기분도 들 것만 같다. 어쩐지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메뉴들이니 말이다.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오차즈케.
변함없이 독특한 메뉴 이름이군요. 소로리는 그날 방문하는 고객의 얼굴을 상상하면서 레시피를 생각하나 봅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 모르겠네요. 소로리가 생각한 메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저절로 이 숲을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고개를 숙인 채 골목에 나타난 이 손님도 틀림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테죠. p.162
'카페 도도'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이자 마지막 이야기가 나왔다. <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카페 도도에 오면 마음의 비가 그칩니다>에 이어 <시간이 멈춘 카페 도도>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을 때, 도시의 떠들썩한 소음으로부터 떨어져 조금은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이곳을 찾아 온다. 주인장 소로리가 개발한 ‘오늘의 추천 메뉴’에 따라 각 장이 구성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안개 속의 페이스트리 파이, 견디기 힘든 마음에 뚜껑을 덮는 커스터드푸딩, 흑백을 가르지 않는 케이크 살레,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떠오르길 기다리는 오차즈케, 잠시 멈춤을 위한 미트소스 그라탱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실직과 이혼으로 인해 평소 함께 하던 도예 교실 동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없고, 누군가는 의류 업계에서 일하면서 프리랜서 판매원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위축되어 있고, 또 누군가는 근속 연수가 긴 베테랑임에도 매번 혼잡한 지하철 역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이다. 직장에서 퇴직 후 엄마를 도와주다 혼자 베이커리를 운영하게 된 누군가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가게 이전 때문에 고민이다.
이렇게 나이도 하는 일도, 성격도, 처해 있는 상황도 모두 다른 4명의 여성들은 카페 도도를 통해서 멈춤의 시간을 가진다. 지치고 힘든 손님들이 카페 도도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도 힐링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카페 도도를 찾아온 손님들은 ‘오늘의 추천 메뉴’ 한 접시로 위로 받고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는 더 많이, 더 많이,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바라며 살고 있다. 사실 행복의 허들을 내리면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 작품은 행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고, 특별한 이름이 붙은 오늘의 추천 메뉴를 만나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실제로 도쿄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탄생했는데, 카페 도도같은 곳이 정말 있다면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날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음식과 깊고 향긋한 커피 향이 반겨주는 곳, 카페 도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