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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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는, 입자의 파장이 매우 작아져서 고전 물리학적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이다. 예를 들어 전자와 같은 미세한 입자들의 운동을 설명할 때, 고전 물리학만으로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때 드 브로이의 공식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일상적인 것들에는 언뜻 보기에 양자역학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양자역학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물질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화학 반응과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모든 것에 색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P.106~107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과학책들을 흥미롭게 읽는 중이다. 하지만 사실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도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양자역학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양자역학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대칭, 배타 원리 또는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몇 가지 기본 아이디어를 이해함으로써 누구나 원자 세계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난해하고 직관에 반하는 학문이지만 그 점을 이용해서 신성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힌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두 개의 서문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물리학자의 서문과 작가의 서문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와 그의 아내인 언어학자이자 극작가인 셀린 브뢰카에르트가 함께 이 책을 썼기 때믄이다. 물리학자인 남편의 글을 작가인 아내가 일상 언어로 쉽게 풀어낸 양자역학에 관한 책은 아마도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그만큼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양자역학은 실재하며, 우리는 기술을 급격히 변화시킬 두 번째 양자 혁명의 초입에 서 있다고 양자역학 교수가 말하면, 작가는 세상에 수학과 양자역학이 있지만 삶에는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이 책을 읽으며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 부담없이 양자 역학의 세계에 입문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아름다움을 단어로 표현해주고 있어 더 좋았던 책이기도 하다. 




현재 양자역학과 중력은 깊고 넓은 바다로 나뉜 두 개의 대륙과도 같다. 그 사이를 무한한 지평선이 구분 짓는다. 미세한 나노 입자와 거대한 중력의 대립이다. 아스펠마이어는 이 두 세계, 즉 이 두 이론을 실험적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첫 번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실험은 무한대라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과감하게 도전에 나선다. 모험하지 않으면 성과도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일관된 이론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환상일까? ... 어쩌면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론이 맞지 않는다면, 혁명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P.375~376


양자역학은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이론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의식과 평행우주에서 자유의지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적 렌즈이기도 하다. 양자물리학은 모든 현대 기술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물리학 덕분에 우리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망원경 너머 저 먼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시계, 레이저, 의학용 스캐너, 그리고 컴퓨터도 모두 양자물리학 덕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양자역학과 그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16세기 시몬 스테빈에서 시작하고 그 이후 양자를 둘러싼 500년 역사를 돌아보며, 과학자들의 성과를 하나씩 살펴본다. 갈릴레이, 뉴턴, 해밀턴 경, 에미 뇌터를 거쳐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드 브로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에 이르기까지 과학사를 차근차근 짚어 본다. 이 책은 물리학 책이 아니라 양자역학에 관한 책이고, 양자역학의 본질은 수학이 아니라 그 뒤의 개념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식과 수학에서 벗어나 설명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과학책이 생각보다 너무 술술 잘 읽혀서 놀라게 될지도 모르겠다. 양자역학의 거의 모든 과학적 성공은 리처드 파인만의 "닥치고 계산하라"는 태도 덕분이라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이론, 실험, 예측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양자역학은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것이 상상을 초월하고 직관에 반하더라도 그것이 마법적인 것으로 간주될 필요는 없다고, 실험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면 된다는 뜻이다. 실험 결과가 이론과 일치하면 계속 나아가면 되고, 실험이 맞지 않으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태도가 결국 과학적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 속의 신비한 현상과 수학적 형식을 탐구하는 양자역학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자역학을 이해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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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지능 -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지성을 깨워라
앵거스 플레처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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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고 싶은 어리석은 행동이 있다면, 이런 질문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보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런 결과를 무릅쓰고 그 일을 할 것인가/' 루시 그레이 같은 싱글턴에게, 답은 항상 '그렇다'이다. 결국 패배해 역사에서 사라지고 존엄성을 잃더라도 또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죠. 죽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어리석은 행동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p.107


우리의 교육은 정답을 빨리 맞히는 법은 가르치지만 불확실할 때 스스로 판단하는 법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잘 푸는데, 인생은 풀리지 않고, 더 똑똑해졌지만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의 교실에서도, 회사의 회의실에서도, 군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정답을 풀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탁월한 결정을 내리고, 제대로 된 방향을 감지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 미 육군 특수부대는 문제의 조짐을 발견한다. 젊은 신병들이 의사결정, 전략 계획, 리더십에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고 있었던 거다. 이상한 건 신병들의 IQ는 매우 높았고, 아이디어 창출, 합리적 분석을 비롯한 다른 지표에서도 최고 수준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정신 능력이 취약함을 드러냈다.  또한 그들은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고, 인간관계을 망치고, 쉽게 약물 중독에 빠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젊은 미국인들의 정신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육군은 해답을 찾기 위해 지능을 개발하는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저자에게 연락을 해온다.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자는 육군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리더십 과정에 참여하는 고위 장교를 대상으로, 민간 분야에서 의사, 조종사, 기업 임원, 우주비행사 등에게 훈련을 했고, 이를 통해 의사결정, 혁신, 소통, 리더십이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 교육은 더욱 확대되어 대학과 공립초등학교에까지 적용되었고, 여덟 살 어린이들조차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된다. 그것은 어떤 훈련이었을까? 어떻게 이처럼 효과를 볼 수 있었을까?




스토리씽킹은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의 삶을 이끌어왔다. 신석기 시대 선조들이 도구를 발명하고, 사냥을 계획하고, 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스토리씽킹 덕분이다. 그리고 이 힘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상징이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축 또한 셰익스피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혁신, 회복탄력성, 의사경정, 소통, 코칭, 리더십 분야의 개척자들은 하나같이 셰익스피어의 <햄릿>, <오셀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읽고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의 힘을 키웠다.              p.324


인지과학자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며 신경과학과 문학을 융합한 독창적인 연구로 주목받아왔다. 또한 그는 세계 최고 스토리 연구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내러티브' 소속이기도 하다. 그는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와 함께 인간에게는 AI가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고유의 사고 방식, 원시시대부터 사용해온 본래의 의사결정 능력인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것을 복원하는 훈련을 개발한다. 이 책은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이라는 네 가지 고유지능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AI는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4가지 힘과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6가지 전략을 실제로 고유지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와 마리 퀴리처럼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라, 베토벤과 특수 요원처럼 미래를 창조하라, 벤저민 프랭클린과 주식 투자자처럼 순간을 지배하라, 아인슈타인과 스티브 잡스처럼 판을 새로 짜라, 조지 워싱턴과 우주비행사처럼 승부수를 던져라...고 말하는 식이라 누구나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에, 데이터에 의존하는 AI보다 수백만 년 앞서 인간의 두뇌 속 가장 오래된 영역에 본연의 지혜와 창의성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대단히 희망적으로 바꿔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능력이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셰익스피어가 왜 필요한지를 빈센트 반 고흐, 마리 퀴리, 스티브 잡스 등의 사례를 통해 고유지능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며 깨닫게 만들어 준다. 논리와 데이터보다 직관과 상상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책은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AI를 뛰어넘는 인간지능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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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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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날 두 사람은 제일 비싼 수박을 사 들고 신이 나서 집으로 향했다. 소우의 3평짜리 작은 자취방에 쪼그리고 앉아 수박 위에서 작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부터 매년 생일에는 수박을 먹자고 약속했다.

"여름에 태어난 특혜야. 특혜."

리호를 만난 이후 소우의 삶엔 특혜가 많이 생겼다. 별거 아닌 것들이 둘만의 문화가 되고 금세 서로의 취향이 되었다.             p.68


리호는 7년을 만난 남자친구 소우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의 죽음은 리오에게 온 세상의 배신이자 버림이었다.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캐나다에서 열심히 일했던 리호는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소우가 살았던 속초에 작은 집을 얻고, 함께 살기 위해 벌었던 모든 돈을 다 쓰기로 하고 술에 취해 지내며 삶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소우의 첫 번째 기일날, 밤 9시에 전화가 걸려온다. 분명 소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전화기 속 소우는 리호를 알지 못했다. 그의 정체는 평행우주 속에서 1년 전 시간대를 살아가는 '임소우'였다. 좋아하는 것도, 아이스 초코를 아이스 핫초코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같았지만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같은 꿈을 꾸던 소우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소우이면서 소우가 아닌 존재가 다른 세계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30대가 되면 해수욕장 앞에서 살자던 소우의 꿈은 스물아홉에 멈춰 버렸다. 그와 함께 살면서 작은 애견 미용숍을 여는 것이 꿈이었던 리호의 마음도 거기서 멈춰 버렸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사이에 없는 사이 좋아하던 여름밤 천문대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해버린 소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물론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소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 밤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화기 속 '임소우'는 현실 속 '소우'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밝히지 않았던 가족 관계나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리호는 점점 그가 낯설게 느껴진다. 몰랐던 친형이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없는 줄 알았던 가족들의 존재도 알게 되며, 사진관에서 일하며 카메라를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여름밤 천문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라진 천문대 해설사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정황까지 듣게 되자 리호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래, 우아함은 돈이구나. 돈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우아해질 수 있어, 소우야. 그 말이 소우를 질리게 했을까. 별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리호를 배신하고 먼 우주를 향해 제 발로 뛰어내렸다. 어쩌면 그 배신감이 소우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우리'라는 단어에 유일하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던 리호의 가장 가까운 사람, 리호의 진짜 모습에 가장 가깝던 사람은 사실 죄다 거짓말이었고 사과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p.83


이 책을 읽으면서 죽어버린 전 남자친구의 다른 우주 버전이 나타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당황스럽겠지만, 그래도 반갑지 않을까. 내가 몰랐던 그의 다른 부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무섭고 슬프기도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렇게 어쩐지 아련한 분위기의 타임슬립 로맨스로 가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꾼다. 소우가 천문대에서 스스로 뛰어 내려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는데, 그의 집에 찾아가 짐을 정리하다보니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렇다면 소우는 왜 죽은 걸까. 설마 누가 소우를 죽였다는 걸까. 리호는 다른 세계의 '임소우'와 정보를 주고 받으며, 현실 세계의 '소우'가 왜 죽은 건지 그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평행 우주 속 '임소우'와 함께 현실 속 '소우'가 죽은 이유를 밝혀낸다는 설정이 흥미로운 이 작품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안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준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나가야 하는 존재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 없이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이들에게 작가는 다시 내일을 기다릴 수 있도록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극중 리호가 매일같이 가는 술집의 마스터는 갈 때마다 내는 돈에 비해 과한 음식들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는 건 좋은 거야.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살 수만 있으면 살아야 하는 거야. 매일 맛있는 걸 주면 안 죽을까 해서 나 매일 노력했다.” 라고. 덕분에 리호가 그 순간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셈이다. 생일 케이크 대신 수박을 나눠 먹고, 별과 은하수처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연인들의 모습이 슬프게만 그려져 있지 않아 더 좋았던 작품이다. 그래서 에필로그 속 마지막 장면을 기분 좋은 여운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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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망명 공화국 - 제2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파란 이야기 23
노룡 지음, 카인비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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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는 장래 희망이 뭐야?"

느릿느릿 점심 먹고 교실로 막 들어온 서로에게 물었다.

"음. 장래에 희망해 보려고 생각 중이야."

"그러니까 그 희망하는 게 뭐냐고."

"그러니까 장래에 생각해 본다고. 장래에 생각하라고 장래 희망 아냐?"             p.49


마수리 마트는 물건을 산 사람들에게 선물 뽑을 기회를 준다. 75인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공기 청정기 등이 계산대 뒤로 늘어서 있어 기대감을 높여 준다. 서로와 아빠는 냉동 피자와 라면을 사고 선물 뽑을 기회가 생겼다. 서로는 꽝을 뽑았고, 아빠는 '창고 3회 이용권'이 걸렸다. 사장 아저씨는 창고에 다른 세상에서 몰래 들여온 물건들이 가득하다는데, 과연 어떤 물건들을 상품으로 받게 될까? 단, 바라는 게 있으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에 홀로 앉아 기도를 한 뒤에 오라고 했다. 아빠는 받고 싶었던 75인치 텔레비전을 아쉬운 듯 돌아보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빠는 몸이 아프다며 회사에 휴가를 냈고, 5시까지 방에 앉아 기도를 시작한다. 아빠는 과연 갖고 싶은 물건을 받게 될까? 


방랑이의 장래 희망은 어릴 때부터 의사였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가르쳤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방랑이의 생활 통지표에는 '매우 잘함'으로 가득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방과 후 수업과 번갈아 학원 네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습지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방랑이는 과연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느 날 방랑이는 친구들과 함께 마수리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사장 아저씨는 선물 뽑을 기회를 주었고, 서로는 꽝, 탁수는 아이스크림 1개, 그리고 방랑이는 '레알리모콘'을 뽑았다. 사장 아저씨는 텔레비전 리모콘과 독같이 생긴 '레알리모콘'을 주며 "잘 쓰기게. 잘 쓰면 조용해진다네." 라고 말했다. 레알리모콘은 무슨 기능이 있다는 걸까? 




사고를 친 건 탁수였다. 나 빼놓고 여기 올 때, 내 손을 놓고 잽싸게 내 뒷주머니에서 뻥튀기 돋보기를 빼간 거였다. 방랑이가 날 데리고 오는 사이 그걸 들고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시냇물 옆에서 발견한 도롱뇽에게 돋보기를 비춘 것이다.

"도롱뇽이 공룡이 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미안하다 미안해. 응? 그래도 그 덕분에 낙엽 미끄럼 신나게 탔잖아!"             p.129


이 작품은 100% 어린이 독자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제2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마수리 마트의 선물들은 세상의 소리를 차단시킬 수 있는 레알 리모콘, 세상 모든 걸 소화하는 슈퍼 소화제, 시간을 멈추는 스톱워치, 뭐든 순식간에 키워주는 뻥튀기 돋보기 등 기상천외한 물건들이다. 이서로, 장방랑, 은탁수, 소우주 네 명의 아이들은 각자 어른들의 기대와 욕망으로 인해 현실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수리 마트의 선물들은 그런 아이들을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나라 ‘초딩 망명 공화국’이 탄생한다. 무조건 놀 수 있는 그곳에서는 누구도 절대 명령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안 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일 등도 꼴찌도 없다. 


실제로 이렇게 어린이들이 망명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 어린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공부 스트레스, 가정 폭력 같은 문제를 비롯해서 학교 내 왕따나 열등감, 친구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어린이들의 현실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도록 세상의 전원을 꺼 버리고, 위험한 순간이나 피하고 싶은 순간에는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정말 든든하지 않을까. 세상은 어린이답게 놀고, 꿈꾸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만큼은 어린이들이 아이다움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껏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다. 다소 황당무계하게 느껴질 정도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그들만의 스트레스를 완전히 날려줄 것 같다. 어른들의 욕망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은 마수리 마트 마술 선물로 그 현실을 가뿐히 넘어선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린이들도 각자 나름의 고단함이 있게 마련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뭘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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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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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이란 달리 말하면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 중년을 통과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작'이라는 허들과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고작해야 이거였나? 이게 내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이런 식으로 절망 어린 축소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때 고개를 드는 것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진짜 인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한 조각조차 없다면 현재는 과거에서 넘어온 의무를 해치우는 부역으로 전락하고 만다.               - 김성중 '새로운 남편' 중에서, p.49~50


혜숙은 청소 일을 하는 예순 살 여성이다. 소설가인 딸과 둘이 살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매우 단순하다. 오피스텔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잔다. 볕이 따뜻한 오후에는 텅 빈 정원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커다란 기쁨도, 엄청난 슬픔도 없고, 웬만한 일은 그냥 참으면 되므로 분노를 표출할 일도 없다. 출근할 때는 간단한 도시락을 싸는데, 반찬이 뭐든 불평 없이 먹기 대문에 대단한 걸 싸진 않는다. 퇴근길에 친한 언니를 마주치는데,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는 말에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다음에 가겠다며 거절하고는 집으로 향한다. 네 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하면 캠핑 의자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본다. 겨울 정원엔 언 배추 몇 포기가 있다. 요즘은 이렇게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서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 같다. 소소하고,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속에 슬픔과 행복, 그리움과 회한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극중 딸이 엄마에게 "엄마는 단순한 게 아니라 성실한 거였어. 단순함이라는 개념에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이거야말로 진짜 어려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뭉클해졌다. 혜숙은 딸이 추천한 큰글자도서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의류 부자재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부인과는 사별했으며 딸이 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을 알게 된 후 혜숙은 자신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소박한 그 연애는 남자의 딸들이 찾아오면서 끝나 버린다. 무례한 그의 두 딸을 이해했기에, 남자에게는 말하지 않고 그냥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조금 울었고, 슬펐지만 이별 또한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잊혀져 간다. 저자는 수상 소감에서 혜숙에 대해 '너무 많이 슬퍼 본 적이 있기에 많이 슬프지 않고 조금 슬픈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의 작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보다 큰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마도 세상의 많은 딸들이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틱한 서사 없이도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어떤 경우든 저는 그 현실에서 제 마음의 빛을 찾아냈어요. 거기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었죠. 하지만 두려움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거기가 바로 견고한 현실에서 꿈이 나누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에요. 그러면 조금 뒤의 세계에서 빛이 흘러들어오지요. 그럴 때 저는 앞에 붙은 행선지만 보고 버스에 올라탄 승객과 같아요. 버스는 제 예상대로 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승객은 경로를 결정할 수 없어요. 그건 운전사의 몫이니까요. 승객은 목적지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어떤 순간에도 저는 목적지를 잊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중에서, p.103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이십여 개의 문예지에 실린 256편의 작품 중에 예심에서 올라온 8편과 심사위원 네 명이 각자 두 편의 추천작을 선정해 본심에 올렸다. 이 책에 수록된 것은 그렇게 무려 16편의 소설을 두고 토론해 선정된 작품들이다. 기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은 수상작의 분위기에 맞는 표지 이미지였다면, 이번에는 파격적으로 수상작과 수상 후보작의 제목과 작가명으로만 채웠다. 그만큼 이 작품들간의 치열한 논의 과정이 있었다는 뜻인 것 같아 수상 후보작인 김성중의 「새로운 남편」, 김연수 「조금 뒤의 세계」, 서장원의 「히데오」, 임선우의 「사랑 접인 병원」, 최예솔 「그동안의 정의」 등 다섯 편의 작품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수상작인 <겨울정원>을 비롯해서 수상 후보작까지 여섯 편의 작품이 고루 수준이 높아 인상깊게 읽었다. 오랜 만에 만나는 김연수 작가님의 신작은 반가운 마음으로 제일 먼저 읽었는데, 여전히 너무 좋았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성이 '조금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게 된다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는데, 현실과 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여성은 소설가인 화자가 처음으로 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와 그녀의 과거가 현재와 교차 진행되며 입체적인 세계가 만들어 진다.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그 속에서 다른 걸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라고,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장편소설 신작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소설 보다> 시리즈로 만났던 서장원 작가님의 작품도 있었고, <하다 앤솔러지>에서 사랑스러운 유령 개 이야기가 참 좋았던 임선우 작가님의 작품도 기대하며 읽었다.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남편'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김성중 작가님의 작품도 재미있었다.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일상에 깃들어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느껴보고,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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