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파닉스 1 (본책 + 스토리북 + MP3 CD 1장) - 전면개정판 기적의 파닉스 1
한동오 지음 / 길벗스쿨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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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공교육에서 영어를 배우는 시점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부터 영어를 자연스레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엄마표 영어'라고 집에서 각종 오디오 자료와 원서, 학습지 등을 이용해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기 전까지 어느 정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엄마표 영어는 사실 초등학교까지가 최적기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학습지의 종류도 많고, 파닉스 책도 너무 많아서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만나게 된 것은 '아이가 중심인 기적의 학습법을 연구해 기초 학력과 자기 공부력을 키우는 '기적의 학습서' 시리즈로 유명한 길벗스쿨의 <기적의 파닉스>이다. 하루에 4페이지, 단 3개월이면 혼자서도 영어책 읽기가 가능해진다는 문구처럼, 전 3권 짜리 책으로 파니스의 기초를 제대로 정리해주는 책이다. 각 권은 본책과 스토리북, 그리고 MP3 CP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권을 시작으로 아이와 함께 파닉스 기초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파닉스란 알파벳이 가진 소리와 발음을 배워서 '영어를 읽는 법'을 깨치는 학습법이다. 사실 지금의 부모들은 파닉스로 공부를 했던 세대가 아니라서 주입식 암기나 딱딱한 문법책부터 떠오를 텐데, 파닉스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재미있게 영어를 시작할 수 있는 학습법이다.

 

 

이 책은 알파벳부터 시작해, 파닉스 발음 익히기, 단어와 문장 읽기, 파닉스 스토리 읽기로 체계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을 끝내면 스토리북을 통해 파닉스 규칙이 담긴 영어 동화 읽기까지 자연스럽게 완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나 학습과 복습을 교차하는 반복 공부법이 효과적인데, 오늘 학습 분량 두 페이지와 전날 배운 파닉스 복습하기 두 페이지가 하루의 학습량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각 페이지마다 QR코드가 수록되어 있어 바로 음원을 들으며 학습을 할 수 있어, 엄마 입장에서도 굉장히 편하게 공부를 시킬 수 있어 좋았다.

 

기적의 파닉스 시리즈 전 3권은 1권 알파벳 음가, 2권 단모음, 장모음, 3권 이중자음, 이중모음으로 되어 있는데, 가뿐하게 1권을 한 달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3개월이면 파닉스의 기초를 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생 또는 예비 초등학생을 위한 파닉스 교재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초등 1,2학년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본기를 다지기에는 딱 좋은 교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초등학생 때부터 속칭 '영포자(영어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런 아이들에게는 공교육 자체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다고 하니 부모로서 이런 저런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매일 등교를 하지 않고, 원격 수업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아 학습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홈스쿨링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기사들을 읽으면서, 초등 영어 학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 이 책으로 '기적'의 학습 효과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매일 일정한 분량을 꼬박꼬박 하기만 하면 되니 아이도 부담없이 할 수 있고, 다양한 색감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이 처음 마주하는 영어 공부를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적의 파닉스> 시리즈 3권이면 알파벳 이름, 발음부터 시작해서 단어 읽기, 문장 읽기, 짧은 스토리 리딩까지 3개월에 모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쉽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이고, 학습에 필요한 자료들도 충분히 제공되고 있어 홈스쿨링에 관심이 있는 초등 학부모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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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 스토리콜렉터 97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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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소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누카이의 사수는 같은 아소반의 부스지마가 맡고 있는데 도저히 그 남자를 전폭적으로 신용할 수가 없다. 형사로서 촉도 뛰어나고 수사 수법도 나무랄 데가 없다. 일개 수사원으로서 평가는 높지만 인간성은 또 별개 문제다. 이누카이가 배웠으면 하는 점은 많지만 배우지 말았으면 하는 점도 있다. 여하튼 그의 비아냥으로 말하면 일본 제일이고, 독설은 천하일품인 남자다. 그런 부분을 배운다면 앞날이 걱정스럽다.     p.16

 

이 책은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소설가 부스지마가 형사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작을 읽으면서 부스지마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느꼈다면, 이 작품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전작에서 소설가이자 형사로 등장했던 부스지마는 '재작년에 일이 생겨 그만뒀는데 바로 형사 기능지도원으로 재고용'되었다고 소개되었었다. 형사를 그만두고 발표한 소설로 신인상을 받았고, 한창 잘나가는 미스터리 작가로 활동 중이었다. 출판계를 둘러싼 살인 사건의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스지마였지만,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디스트 독설가'에 아무리 흉악한 용의자도 진저리를 칠만한 취조 실력, 성격 나쁜 냉혈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형사들이 조언을 듣기 위해 그를 찾곤 했으니, 대체 형사 시절에는 어땠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다섯 편의 연작 단편으로 진행되는 이번 작품에서는 형사 부스지마의 활약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부스지마는 경시청 1위라는 누구도 트집 잡지 못하는 성적에, 하나를 말하면 열로 반론할 정도의 달변가라 동료는 물론 상사들조차 그를 꾸짖거나 잔소리를 하진 못했다. 두뇌도 명석하고 논리적인데다 뛰어난 통찰력도 갖추고 있지만, 신랄한 독설가에다 용의자를 대하는 태도 또한 지나칠 정도로 비인간적이라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한다. 승진 시험도 쉽게 통과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출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게다가 그 이유가 사냥개로 사냥감을 찾아서 모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라나. 이제껏 그 어떤 작품에서도 만난 적 없는 독보적인 형사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말이죠, 마유코 씨. 사람이 살의를 느끼는 동기는 원한이나 증오만이 아니라, 싫어하는 감정도 있거든요. 흔히들 신분 상승이라고 하는데, 암튼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어 해. 자신이 위로 못 올라가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을 철저하게 밟아. 자신이 하층에 속해 있다는 현실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아서 나오는 행동인데 싫어하는 사람을 배제하고 싶다,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은 꽤 강한 동기가 된다는 생각 안 듭니까?"     p.157

 

5월의 황금연휴 기간,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일주일 간격으로 가까운 곳에서 동시간대에 동일한 사살 사건이 발생했지만, 평범한 회사원인 두 명의 피해자 사이에는 그 어떤 연관 관계도 없어 보인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출판사 두 곳에서 연쇄 폭파 사건이 일어나 꽤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한밤중에 여성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각각 벌어지는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이들을 조종한 배후에 '교수'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수'라는 인물이 범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살인을 교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힌트와 지식을 준 것에 불과해, 실행 의지는 각자 본인에게 달린 거라 입건한다고 해도 법률적으로 제대로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교수'라는 인물을 찾아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자와 교활하고 가차없는 최악의 형사가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조종해서 악행을 저지르는 극악한 짓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철저하게 파고들어서 자아를 붕괴시키는 최악의 행동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극악과 최악의 싸움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다채로운 수사 방법과 흔치 않은 통찰력, 온화한 표정에 반하는 신랄한 말투와 집요함. 형사로서는 분명 우수해도 인간으로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극중 아소 반장의 말처럼, 부스지마의 능력은 뛰어 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 때문에 동료들은 그를 늘 불안한 눈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이 작품 만의 특별한 재미가 생겨난다.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독립적으로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고, 전작을 읽었다면 부스지마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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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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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위험하고 신경 쓸 일이 많음에도 파도타기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도타기는 어린 시절 해 질 녘까지 “한 번만 더!”를 외치며 타던 미끄럼틀과 비슷하다. 경사면을 주르륵 타고 내려올 때의 그 즐거움을 안다면 누구나 중독될 수밖에 없다. 파도타기는 스키, 스케이트보드, 썰매, 스노보드를 타는 것과도 비슷하다. 파도타기가 그런 탈것들과 다른 점이라면 타고 내리는 경사면이 물로 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p.58

 

몇 년 전에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도시 포틀랜드로 날아간 이우일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 년 중 절반이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우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이 년 동안 살면서 그들이 겪은 현지의 소소한 일상들이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뭔가에 꽂히면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이우일의 요즘 관심사는 파도타기이다. 대화의 소재부터 심지어 꿈에도 파도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살면서 한 번도 스포츠를 즐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몸치에 온갖 운동에 대한 트라우마를 한가득 가지고 있는 그가 어떻게 파도타기에 빠져들게 된 걸까.

 

 

이 책은 하와이에서 시작해, 강원 양양 남애 3리, 부산 송정, 제주 중문 색달 해변 등 파도를 좇아 바다 곳곳을 다닌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에세이와 일러스트, 그리고 진솔한 파도수집노트(일기)와 촌철살인의 4단 만화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잘 펴지고 튼튼한 사철누드 제본이라 보기도 편하다. 오십 평생을 방구석 생활자로 살던 만화가 이우일이 오직 파도타기를 위해 30년째 고수하던 소위 장롱면허를 탈피해 운전도 시작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푹 빠져 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겪으면서 쓴 서핑 에세이라 생생하고, 유쾌하고, 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취향이 마이너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취향의 결과물이 인기가 없는 건 알아서 감수해야 한다. 순전히 자기가 좋아 시작한 짓이니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만약 운이 좋아 그 취향이 더 많은 사람의 방향과 맞아 떨어져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크게 가슴 아파할 건 없다.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새벽부터 일어나 혼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다.      p.155

 

이우일에 따르면 어떤 보드를 사용하는지와 상관없이 파도타기는 일종의 '시합'처럼 할 수도 있고, 홀로 걷는 '산책'처럼 할 수도 있다. 모든 건 타는 이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시작할 때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광을 즐기며 파도를 타자고 마음먹지만, 바다 위에 떠 있다 보면 곧 다른 서퍼들과 경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아내의 눈에는 그런 남편이 바보처럼 보인다고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 위에서 단지 파도를 먼저 타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니 말이다. 그래서 바다 위에서 아내는 '산책'을 하고 자신은 일종의 '경쟁'을 한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이런 것에서도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구나 싶어서 재미있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누가 진정한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지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서핑과 보디보드(부기보드) 타기는 사실 다르지 않지만, 대부분 보디보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여러 보드의 종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말이다. 오십이 넘어 시작한 부기보더의 좌충우돌 일상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익숙한 즐거움을 누리며 탈 것인가 아니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나 어릴 때는 뭐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세상을 많이 겪을 수록 우리는 익숙한 즐거움에 안주하게 된다. 실패보다는 안전을, 도전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생각해보라. 내게 남겨진 나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좀 더 늙고 지친 나일 것이다. 그러니, 저자처럼 조금 무섭고 겁이 나더라도 뭔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용기를 내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는 것이다. 몸치 만화가의 유쾌한 늦바람처럼 그 도전은 우리를 치유하고 전보다 좀 더 나은 영혼으로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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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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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억압하는 원인이 가족을 영속시키고 세습재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의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여자가 가족을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이러한 절대적 예속에서도 벗어난다. 만일 사회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면서 가족을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여자의 운명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다. 공유재산제가 우세한 스파르타는 여자가 남자와 거의 동등하게 취급받은 유일한 도시국가였다.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처럼 양육되었고, 아내는 남편의 집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모든 아이가 공동으로 전체 도시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여자들 또한 한 명의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았다.      p.141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 <재2의성>은 국내에는 1973년에 소개되었다. 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프랑스 저작권사와 공식 계약하고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전면 개정하면서 오역은 물론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나 실존주의나 현상학과 동떨어진 용어 등 그동안 안고 있었던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새롭게 출간되었다. 번역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 그리고 친절한 해설과 꼼꼼한 역주, 도판 50여 점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천 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게가 무겁지 않고, 사철제본과 PUR제본을 혼합해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보부아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고 현대 페미니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보부아르는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선생님이었고, 사르트르와 함께 정치철학 잡지를 창간한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 페미니즘 사상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49년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 책 <제2의 성>으로 당시 프랑스의 가부장 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이 책은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남성이 부여한 여성 역할이나 이미지를 역사, 사회학, 철학, 인류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분석한다. 여성 조건에 대한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서이자,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여성학 바이블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심리적•경제적 운명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암컷이 띠고 있는 모습을 규정하지 않는다. 문명 전체가 남자와 거세된 남자의 중간 산물을 공들여 만들어 내어, 그것에다 여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직 타인의 개입만이 한 개인을 타자로 구성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성적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에게 신체는 우선 주관성의 발현이며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실현하는 도구다. 그들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눈과 손을 통해서이지 성적 부분을 통해서가 아니다.       p.389

 

여성들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많은 것들 참아와야 했다.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부담을 짊어 지고 살아야 했다. 그게 여성스러운 거니까,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라는 무언의 속박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무급으로, 저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터는 여성을 위해 기능하지 않으니 말이다. 위치에서부터 근무 시간, 규제적 표준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생활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왔고, 여자들이 하는 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 또한 여전한 게 사실이고 말이다. 보부아르는 사회가 여성에게 특정한 방식의 외양과 행동 방식을 요구하며, 여성은 이에 따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사회가 종종 여성을 '제2의 성'으로 여기고, 남성보다 열등하고 뒤떨어지는 성별로 강등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70년이 더 지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자각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남자들도 타자이자 객체화된 여자의 시선에 자기를 이상화시키는 자기소외의 꿈과 그 꿈을 가능케 한 특권을 떨쳐 내기를, 그리하여 여자들이 초월성을 회복해 남녀가 함께 자유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호소한다. 엄청난 분량뿐만 아니라 다루고 있는 내용들 또한 매우 방대해서 선뜻 시작하기엔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의 여성학, 젠더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문학적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단, 소화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 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역자의 해제가 꽤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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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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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읽고 아연했다. 이런 어이없는 이유가 범행 동기란 말인가.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이유를 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기가 어이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에 걸린 것은 '직접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 진정성 있는 태도라는 말을 듣고'라는 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정말로 그런 식으로 얘기했을까.      p.189

 

해안 도로변 차 안에서 흉기에 찔린 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정의로운 국선 변호인으로 명망이 높던 변호사로 주변 사람들 모두 그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한다. 살해 동기가 전혀 짐작되지 않아 단서 하나 못 잡고 수사가 미궁에 빠질 뻔 했지만, 사건은 백여 페이지도 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해결이 되어 버린다. 한 남자가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33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히며 논란을 일으킨다. 이미 공소시효는 만료되었지만, 당시 체포되었던 용의자가 결백을 증명하고자 유치장에서 자살을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두 개의 살인 사건에 대한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경찰이 아니라,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진상을 납득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 는 정도를 넘어서 평소의 가치관과 말투로 미루어 봤을 때도 자신의 아버지가 했을 법한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한다. 분명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그것을 꼭 밝혀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이미 끝났다는 식이고, 검찰이나 변호인은 오로지 재판 준비에만 골몰하고 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쓸데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로 적의 입장이 되어야 할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목적이 같았기에, 그들은 한 팀이 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극중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누구라도 각자의 사정에 감정 이입이 된다. 그렇게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도 똑같은 눈빛인지 모른다, 라고 미레이는 생각했다. 범인이 자백을 했고 이제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졌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리고 그 진상을 바탕으로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이 세상에 어머니와 자신뿐이라고 미레이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가해자의 가족도 역시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p.274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5주년을 맞아 올해 4월에 발표된 작품이다. 560페이지의 두툼한 두께의 작품을 단 몇 개월 만에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신작 역시 가독성 뛰어난 페이지 터너다운 면모를 뽐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의 작품이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 작품을 읽었던 것이 무려 15년 전이니 그 시간 동안 작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서로 적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이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설정과 원죄와 속죄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통찰이 있었기에 후반부의 묵직한 감정이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작가 생활 3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에 걸 맞는 수준을 보여주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모두 선사해주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색다른 소재와 반전으로 추리 소설로서의 매력도 크지만, 그 속에 항상 '인간'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있어 긴 여운을 남긴다. 사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서, 젊은 시절의 모습이나 과거 같은 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관심이 없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유품을 정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거나, 이 작품 속 사건처럼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넘어갔을 일들을 의도와 상관없이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를 숱하게 감동시키고, 울고, 웃게 만들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35년이 담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만나 보자. 선과 악, 죄와 벌, 정의와 공정,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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