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지식산문 O 10
존 비게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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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갈수록 침묵의 성소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조용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가? 쩌렁거리는 라디오, 재잘거리는 텔레비전, 지지직거리는 스피커, 삑삑거리는 자동차 경보, 따르릉대는 전화, 끽끽거리는 모터, 털털거리는 에어컨, 웅웅거리는 냉장고, 부르릉대는 상공의 비행기, 그리고 그 밖에도 기계시대가 우리 삶에 가져온 갖가지 침입적 소음이 일찍이 1888년에도 예이츠가 그리워했던 "꿀벌 소리 울리는" 고독을 삼켜버리지 않았던 세계를?                p.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발걸음, 카트를 끄는 소리, 공사장의 드릴 소리... 밖에 있던 집에 있던 마찬가지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면 집에서도 각종 전자음과 사물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소음에 지칠 때면 물 속에 머리를 가만히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잘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수영장에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리들로부터 벗어나 잠시 침묵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물 속에서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귀가 수중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 속에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평소에 워낙 소리에 예민한 편이고, 소음에 유난히 잘 지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 지식산문 O 시리즈의 주제가 '침묵'이라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지식산문 O 시리즈는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판형과 부담없는 분량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Object Lessons(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책들을 선별해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있다. 현재까지 열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 동안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등 사물을 주제로 해왔던 것과 달리 형체도 질량도 없는 '상태'에 가까운 침묵이라는 주제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로런스 스턴의 백지가 독자에게 잠시 멈추라고, 침묵의 공간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화자의 언어로부터 피신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종이에 적힌 글 속의 빈 공간은 모두 저자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날 기회, 심지어 탈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읽기를 멈출 때 침묵 속으로 피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늘 주절거리는 의식을 끊고 끼어들어 재잘거리는 화자의 목소리를 음 소거하는 것뿐이다.            p.115


현대사회에서 '침묵'이란 사치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자동차도, 냉장고도, 각종 전자제품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공항의 라운지라던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등 침묵과 부를 연관 짓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상적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주로 가난한 이들이며, 부자들은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침묵을 구매하고 있으니 말이다. 침묵이 일종의 사치재가 된 오늘날, 침묵은 사고파는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소음과 침묵의 분리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실현하기도 한다. 침묵이 부자의 사치품이라면 소음은 가난한 자의 질병이며 불평등을 드러내는 계급장인 셈이다. 이 밖에도 강자 집단이 약자들에게 침묵을 강제하는 경우를 비롯해 일상적 차별의 예시와 사회와 기존 권력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사유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침묵의 읽기' 파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독서란 침묵의 토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의견도 흥미로웠다. 누구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잘 쓰인 문장에 휩쓸려 자신을 잊고 상대의 의식 속에 빠져들었다가 전화벨 소리 같은 것이 방해하는 바람에 퍼뜩 정신 차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서란 어느 한 시점에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의식의 목소리 둘 중 하나가 침묵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란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상대의 의식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와 번갈아 발화하며 대화하도록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의 신경학 연구에서 묵독이 실제로 침묵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흥미로웠다. 뇌가 '말없이' 읽기를 청각 현상으로 해석한다는 증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층적인 시선으로 침묵을 탐구하고 있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어딘가에 침묵의 지대를 설정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날,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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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편해지는 갱년기 상담소 - 산부인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내 몸의 변화와 신호 80가지
카트린 샤우디히.카트린 지몬센 지음, 김현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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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갱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시작되고 더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도 한다. 우리는 풍부한 정보를 가득 담은 이 책을 통해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응원하고자 한다.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면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훨씬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갱년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p.6


갱년기란 우리 몸에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복합적인 생물학적 과정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지만, 누구도 같은 증상을 겪지는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증상도 너무나 다양해서 각자가 겪게 되는 갱년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같은 모습일 수가 없다. 푹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피곤하고, 매사에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내 몸이 좀처럼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우리는 대부분 갱년기의 신호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책은 '호르몬의 변화로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풀어낸 건강 안내서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수많은 여성을 진료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갱년기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갱년기의 생물학적 원리부터 다양한 변화와 증상들, 그리고 이럴 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도 차근차근 알려준다. '제2의 사춘기'라고 불리는 갱년기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통해 모두가 스스로 결정하며 두려움 없이 이 격동의 인생 단계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폐경 전후기와 폐경 후기를 구분하고 수면 장애, 우울감, 홍조, 방광염, 복부 지방, 탈모, 장 문제 등 다양한 증상을 다루고 있어,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너무나 좋을 의학 정보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아직 갱년기를 겪지 못했지만, 보통 몸이 확 달아오르는 열성 홍조 증상에 대해서만 티비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갱년기 증상만 해도 30가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갱년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갱년기에도 호르몬이 다시 한번 요동치며, 그 후 우리 몸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들은 폐경 전후기에 비하면 오히려 사춘기 때가 훨씬 수월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갱년기를 겪는 우리가 사춘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p.282


보통 폐경 전후에 시작되는 갱년기를 통해 여성의 몸은 수년에 걸쳐 호르몬 변화를 겪게 된다. 갱년기를 거치면서 가임기가 서서히 끝나고 마침내 비가임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갱년기에 접어들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부인과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폐경 전후기의 호르몬 수치는 충분히 신뢰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많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갱년기 초기 증상은 불명증으로, 한밤중에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호르몬 변화로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겪기도 하고, 집중력 저하, 건망증, 피로감, 감정 기복, 눈에 띄는 예민함 등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모든 증상을 겪을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증상만 경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개인차가 큰 증상이다. 그러니 갱년기 동안 호르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과정을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닥쳐온 증상들을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사춘기 청소년을 배려하듯이, 갱년기를 겪는 여성에게도 자연스럽게 이해와 배려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사회적인 배려를 정착시키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면, 우리부터 스스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갱년기라는 것이 단순히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는 시기가 아니라 심혈관 건강과 골밀도, 근육량, 대사 기능, 인지 기능 등 전신의 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생애 전환기라면, 정확한 지식을 통해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80가지 질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현실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갱년기를 앞두었거나 현재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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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2 세트 - 전2권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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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는 늘 그렇듯이 이 집사의 번뜩이는 착상과 추리력, 그리고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고약한 성격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리무진의 안에서 레이코에게 사건의 상세한 정보를 들은 직후에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 안에서 그냥 설명하란 말야! 일부러 나를 한밤중에 농막까지 데리고 와서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에 동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불만을 폭발시키던 레이코는 이제 곧 자신에게 밀어닥칠 중요한 일을 문득 떠올리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 1권, p.141


대대로 농가인 듯한 넓은 부지에 순수 일본풍 저택에 있는 오래된 창고에서 한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72세의 남성으로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로 최근까지 은퇴하기 전에 모아둔 저축과 연금으로 홀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었다. 유일한 취미는 골동품 수집으로 원룸 아파트 정도되는 넓이의 창고에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모든 벽에 천장까지 닿을 듯한 선반이 있었고, 그 중앙에 엎드린 자세로 시신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조금 떨어진 마룻바닥 위에는 피로 쓰인 듯한 검붉은 글자가 있었는데, 과연 그 다잉 메시지가 범인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창고의 보물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였지만, 문제는 사건 현장이 밀실이었다는 거다. 과연 밀실과 다잉 메시지는 사건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한 자산가의 저택에서 교살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가족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했다. 목 주변에 로프에 졸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교살이었다. 첫 발견자를 비롯해 주변에 수상한 인물들뿐이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는 상태에 체인 록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있었고, 별관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연결 복도밖에 없었다. 이변을 알아차린 가족들이 별관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때, 연결 복도 중간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범인은 대체 어떻게 했는가. 실내에 인간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없고, 욕실이나 화장실, 벽장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현관으로 몰래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집 안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내부인의 소행이 분명했다. 범인은 이 '클로즈드 서클' 범죄를 어떻게 가능하게 한 걸까. 




레이코는 옆에 대기하는 집사를 향해 별 생각 없이 - 그렇다기보다 너무 생각 없이,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솔하게 -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가게야마가 태도를 가지런히 하더니 "실례입니다만, 아가씨"라고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생각은, 부디 무게 추를 달아서 다마강의 강바닥에 가라앉혀주십시오. 정말이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추리입니다."                - 2권, p.258~259


재벌 총수의 외동딸이 현직 형사로서 활약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등장하는 상사에, 순진하고 엉뚱한 신입까지...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돌아왔다. 이 시리즈는 누적 판매량 444만 부를 돌파했고,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2년 세 번째 권을 끝으로 잠정 휴식에 들었던 시리즈가 9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손목에 티파니 시계를 찼지만 재벌가 영애라는 신분은 숨긴 형사 호쇼 레이코에게 신입 형사가 생겼다. 풋풋함 만점에 박력 빵점, 어휘력 평균치 이하에 눈치도 없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형사 와카미야,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로 착각할 만큼 새하얀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가자마쓰리 경부가 다시 팀에 복귀했다. 가자마쓰리 역시 롤렉스를 차고 다니는 재벌가 도련님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가자마쓰리 경부가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빤한 추리를 선보이고, 그의 견해를 들으며 레이코는 속으로 불만이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매번 레이코의 집사인 가게야마이다. 집사이면서도 우수한 탐정으로서의 자질도 갖춘 번뜩이는 착상과 추리력으로 매번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본다. 문제는 방약무인한 태도와 아주 심술궂은 말씨와 고약한 성격이다. "아가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잠꼬대는 주무시고 계실 때 해주시겠습니까?" "아아, 아가씨, 혹시 한눈을 팔고 계셨습니까?" ""실례입니다만, 아가씨. 혹시 뱃멀미를 하고 계십니까? 하시는 말씀이 주정뱅이처럼 지리멸렬하십니다." 등 정중한 태도와 공손한 어조로 말을 건네지만, 지적인 안경 아래에서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모시는 아가씨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그 말을 들으며 레이코는 매번 버럭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추리력에 도움을 많아 수많은 사건을 해결로 이끌어온 것도 사실이다. 1권, 2권 모두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는데, 살인과 트릭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방식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매력도, 시트콤처럼 펼쳐지는 인물들의 티키타카도 너무 재미있었다. 일본 열도에 ‘수수께끼 열풍’을 일으킨 메가히트 수사물의 진수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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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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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이 읽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윈이 예상되는 반론에 일일이 답하면서 논증을 전개하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6장의 "이론의 어려운 문제들"부터 제8장의 "잡종 형성"까지는 이런 반론에 집중적으로 답하는 장이지만, 다른 장에서도 이 방법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제3장의 이 부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분명 읽기에는 다소 까다롭지만, 이렇듯 어려운 서술 방식이야말로 <종의 기원>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p.104~105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도 없을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이지만,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성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렵다. 그저 '진화론'을 다루고 있는 교양 과학서를 통해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생물학 이론을 다루고 있지만,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읽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종의 기원>이니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유명세만큼이나 읽기 어렵다는 악명이 높은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고도, 읽은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1859년, 모든 생물은 완벽하게 창조되었기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대였다. 신이 이 자연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였지만 찰스 다윈은 그러한 믿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남미와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20여 년 동안,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종의 기원>은 당시 사회의 시대사조를 뒤집어엎는 혁명적인 사건이 된다. 사실 <종의 기원>은 다윈 시대의 생명과학 지식과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엄청나게 다양하고 또 매우 생소한 생물들에 대한 관찰 결과와 수많은 인물들의 조사 결과가 인용되어 있으나 이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본문에 소제목이 없어 읽어 내려가기가 매우 힘들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으로 두터운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생물학 전공자들도 어렵게 느낀다고 하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로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는 바로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준다. 




만약 진화가 일부 종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오랫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는 종이 존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기온이나 강수량과 같은 물리적 환경이 안정된 지역에서는 굳이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왜 모든 종이 교체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다윈의 답은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생물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이다. 설령 물리적 환경이 변하지 않더라도, 같은 지역에 사는 단 한 종이 변화하면 그 영향은 다른 종들에게 연쇄적으로 미친다.               p.289


이 책은 먼저 <종의 기원>의 전체 구조를 큰 틀에서 설명하고, 같은 구성으로 원전의 일부를 인용한 뒤 그 내용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오류를 꼼꼼하게 바로잡고, 원전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해설해주며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가이드 해준다. 19세기에 쓰인 방대한 분량의 책을 오늘날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핵심만 콕콕 짚어주니 진화론에 대한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원전을 단순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이 밝혀낸 새로운 지식을 더해 <종의 기원>을 더욱 업그레이드해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에도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히 큰 반향을 일으켰고 높이 평가한 이들도 많았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시된 자연선택설 자체가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변이가 축적되어도 종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 즉 변종은 결코 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던 이들을 향해 다윈은 변종과 종이 연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변이가 축적되면 종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다. 다윈은 그렇게 개별창조설을 명확히 부정함으로써 진화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책은 <종의 기원>이 발표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 시대적 배경과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적 시선으로 해설해준다. 독자들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말이다. 자, 원전을 펼쳐놓고 함께 읽는 듯한 진짜 “읽은 척” 가이드가 궁금하다면, 진화생물학을 탄생시킨 고전 중의 고전 <종의 기원>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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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 사랑을 쓰려거든 콩으로 쓰세요 띵 시리즈 29
봉태규 지음 / 세미콜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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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나 눈앞에 차려진 따뜻한 밥상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자주 놓쳤다. 그것은 내가 깨어 있는 시간에 오지 않았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정으로 놓이지도 않았다. 대개는 모두가 잠든 뒤에 시작되어 냄새로만 남았다. 콩이 익어 가는 냄새, 메주가 마르는 냄새, 장독대 주변에 오래 머무는 짭짤하고 쿰쿰한 냄새. 어릴 때는 그 냄새가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다. 어떤 사랑은 향기롭지 않고, 조금 투박하고, 오래 발표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p.41~42


어린 시절부터 콩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밥에 콩을 넣어야 하는지 늘 불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밥에 넣는 콩은 좋아하지 않는다. 콩이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포케라는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부터이다. 샐러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 중에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가끔은 완두콩이나 강낭콩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을 때는 콩을 골라낸 적이 없다. 콩은 이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밥에 들어간 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인생의 모든 '띵'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을 그리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띵 시리즈' 스물아홉 번째 책의 주제가 바로 그 애증의 '콩'이다. '음식 에세이' '띵' 시리즈는 각 권마다 하나의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여러 음식을 하나로 아우르는 데 모두가 납득할 만한 주제를 선정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 이번 책은 영화배우 봉태규가 주자로 나섰다. 아내 하시시박 작가와 시하, 본비 두 아이들과 꾸려가는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 속에서 온갖 콩과 관련된 음식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꼭 거창한 고백을 들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에 어떤 재료를 늘 두는지, 빵은 얼마나 굽는지, 양파의 아린 맛을 얼마나 빼는지, 올리브유를 어느 정도 둘러야 맛있다고 느끼는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지도가 되었다. 나는 원지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 지도를 조금씩 읽었다. 가본 적 없는 도시의 이름보다, 그곳에서 혼자 차려 먹었을 아침의 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후무스는 낯선 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내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닿는 부드러운 길 같았다.               p.173


어떤 음식은 맛보다 먼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에겐 두유가 그렇다고 한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아낸 시간보다, 그것을 해내겠다고 마음먹은 한 사람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유를 마실 때면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이 떠오르고, 차갑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콩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자 맷돌을 옮기고,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어주던 오른손이 떠오른다고 말이다. 젓가락질을 못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아버지께 혼이 나던 어린이는 자라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건강한 채소를 먹이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아빠가 되었다. 콩이 싫어서 콩밥에서 콩을 하나씩 골라내던 어린이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에게 콩을 먹이려고 애쓰는 대신 콩을 빼버리고 밥을 한다. 콩 대신 각종 잡곡들을 가득 넣어서 말이다. 달라진 건 어른이 된 나는 콩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이도 언젠가는 콩을 가리지 않고 먹게 되지 않을까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부, 콩자반, 콩밥, 된장, 두유 등 콩은 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그 본질은 항상 같다. "그러니깐 콩이 달라졌는데, 그게 결국 콩이라는 거네."라는 극중 문장처럼 말이다. 무슨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콩이라는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닌 것처럼, 가끔은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은 순간이 있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된장찌개 한 그릇으로 오기도 하며, 작고 하찮은 자숙콩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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