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모험 클래식 리이매진드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소피아 마르티네크 그림, 민지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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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에 처음 출간된 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셜록 홈스의 소설을 듬성듬성 읽다 보니 이 소설을 놓치고 있었다.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나와 반갑게 선택했다.

그런데 그림체가 이전에 알고 있던 홈스 속 삽화와 많이 달라 어색한 느낌이다.

화가를 통해 검색하니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번역자로 나온 판본이 있다.

단순히 이 책의 판본만 놓고 보면 상당히 많이 있어 선택의 폭은 넓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홈스의 활약을 보면서 셜로키안의 감탄에 공감했다.

미드 CSI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셜록의 활약 속에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시간순은 아니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첫 단편인 <보헤미아 스캔들>이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거나 놀라운 추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홈스의 실패 중 하나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홈스의 오만과 방심이 빚어낸 실패담인데 상대의 놀라운 관찰력도 한몫했다.

다른 소설 등에서 <빨강머리연맹>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익숙하게 느꼈던 것은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른 곳에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아무 대가 없이 선행을 베풀었다면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이 연맹 덕분에 누군가는 이익을 분명히 봤지만.


<신랑의 정체>는 쉽게 범인의 추정이 가능했는데 아마 어딘가에서 본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 영국 여성들이 어떤 분위기 속에서 살아갔는지 잘 보여준다.

<보스콤 계곡의 비밀>은 이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결혼 문제를 다룬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홈스가 보여주는 수사 방법은 너무나도 낯익은 CSI의 모습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홈스가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과 관대함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은 미국의 KKK가 등장한다.

홈스가 의뢰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죽게 만들지만 그의 강력한 의지가 돋보인다.

그런데 마지막에 알려주는 정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약간 어리둥절했다.


<입술이 뒤틀린 사내>는 상당히 특이한 전개와 마무리다.

갑자기 사라진 남편, 남편의 실종을 호소하는 부인.

혹시 남편이 죽었을까 걱정하는 아내와 그 사건의 이면을 파고드는 홈스.

쉽게 단서를 찾지 못하다 어느 순간 찾아낸 단서와 놀라운 반전은 아주 흥미롭다.

<녹주석 보관>은 보물이 사라진 사건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가 돋보인다.

아버지를 실망시킨 아들, 이 아들이 보석을 훔쳤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집 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보석, 이 사건을 듣고 직관적으로 범인을 알아챈 홈스.

관찰과 추리로 범인을 찾아냈다고 해도 몸을 움직여 사건을 해결하는 홈스.

엇갈린 감정과 탐욕, 뒤틀린 욕망 등은 인간의 신뢰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준다.


<얼룩무늬 띠의 비밀>은 예상한 결과이고, 다른 유명한 단편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엔지니어의 엄지손가락>은 아주 낯익은 설정인데 뜬금없이 손가락 봉합수술 생각이 났다.

<귀족 독신남>이야기도 읽다가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반만 맞추었다.

<푸른 카벙클>은 보석 도둑 방식이 익숙하지만 그 과정이 재밌다.

기이한 사건과 상황을 따라가는 과정이 알지만 흥미롭게 펼쳐진다.

<너도밤나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띄엄띄엄 떨어진 집에 대한 지적이다.

이런 곳에서 벌어진 범죄는 알려지지 않아 더 무서울 수 있다는 부분이다.

어느 순간 인적 없는 주택 등을 보면 평온과 여유보다 범죄의 한 자락을 생각한다.

현대 범죄 과학수사 기법들이 하나씩 녹아 있어 읽으면서 감탄했다.

잊고 있던 홈스의 재미를 다시 발견했고, 다른 책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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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찾던 무서운 이야기
코비엣TV 엮음 / 북오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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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유튜버 코비엣TV가 수집한 실화 괴담이다.

유튜브를 잘 보지 않고, 보는 것도 한정적이라 이 유튜버는 잘 모른다.

하지만 구독자들과 유튜버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란 점이 나를 유혹했다.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는 잘 보는 편이 아니지만 소설은 종종 본다.

이런 공포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읽어왔고, 나오면 눈길이 가는 편이다.

대부분 구독자들이 보낸 경험담으로 채워져 있지만 몇 편은 유튜버가 겪은 일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다.

30편의 이야기가 어떤 대목에서는 서늘하게 다가오지만 익숙한 이야기도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이야기는 1인칭으로 전개된다.

수많은 구독자들이 보낸 경험담이 글로 바뀌면서 상당히 간결해졌다.

이 간결한 문장과 이야기가 상상력과 잘 맞아 떨어지면 순간적인 서늘함을 준다.

공포 이야기의 전형적인 마무리로 풀어내는 대목은 아쉽지만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에서 무당들이 등장한다.

영을 감지하는 역할을 그들이 맡으면서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는 것이다.

재밌는 대목들은 이 무당들이 귀신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사간 집에 살던 귀신이 쫓아내지 못하면서 이사를 가는 일이 생긴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사 온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아! 교회가 들어선 곳은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귀신을 봤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있다.

이전에 공포묘지 귀신은 이미 과학적으로 소명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시체닦이 아르바이트 부분도 한때 많이 나왔던 것인데 변주된 것이다.

마트 야간보안이나 많은 이야기에서 CCTV에 찍힌 귀신이 나오는데 솔직히 의문이다.

유리에 비추어지지 않는 존재가 유령이나 귀신이란 설정에 익숙한 탓이다.

배달알바 이야기는 무섭기보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더 다가왔다.

이 이야기들에서도 폐가, 저수지, 동떨어진 집 등이 중요한 무대로 등장한다.

이 익숙한 장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이런 공간은 이전에 본 영상 등으로 이미지가 쉽게 만들어졌다.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활자로 보면서 공포가 많이 반감되었다.

앞에서 말한 익숙한 설정이 없다면 이미지에 제한이 생겨 무서움이 덜해진다.

가로등은커녕 달빛도 없는 길을 걸으면 그 원초적인 암흑에 절로 공포가 생겨난다.

혼자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홀로 간다면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집안에서 갑자기 느끼는 서늘함, 죽은 자의 집, 무언가를 본 듯한 느낌 등도 마찬가지다.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무서움을 느꼈다면 바로 이런 경험들 때문이다.

독자가 이런 경험들이 있다면, 혹은 그런 분위기라면 더 무섭게 다가올 것이다.

흔한 도시 괴담이 아니란 점에서 한 번쯤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아니 더 무서운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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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김이은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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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물농장>이란 제목만 보면 조지 오웰이 떠오른다.

실제 검색해도 조지 오웰이 소설들이 먼저 나오고, 작가 이름을 넣어야 이 책이 나온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의 소설과 같은 제목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는 <산책>으로 만난 적 있지만 아직 낯설다.

하지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이번 소설로 이 작가의 다른 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책 소개를 보면 계급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시리즈 첫 소설이 영상화와 수출 계약이 되었다고 하니 축하할 일이다.

동시에 <하인학교>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다.


이 소설은 통쾌한 복수극이다.

마루그룹이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복수를 한다.

중심 인물은 두 명인데 강태은과 김선우이다.

이 복수극의 가장 핵심은 김선우인데 그는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안 후 진로를 바꾼다.

비행기 조종사에서 경영학과로 바꾼 후 마루기업으로 들어간다.

단순한 입사가 아닌 회장 아들의 후배이자 수족으로.

그는 내부에서 마루그룹의 허점을 파헤치고, 거액을 챙기려고 한다.

이 일을 위해 피해 입은 사람들을 모았고, 그 중 한 명이 강태은이다.

 

강태은은 집안이 몰락한 후 엄마와 필리핀에서 힘들게 살았다.

엄마가 필리핀 남자에 붙어 살았는데 딸을 겁탈하려고 하자 칼로 찔렸다.

태은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엄마는 필리핀의 열악한 감옥에서 힘들게 살았다.

머리 좋은 태은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엄마가 감옥에서 풀려나 같이 살지만 지하를 벗어나려면 아직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 지하를 벗어나려고 선택한 것이 비밀도박장 매니저다.

소설 첫 부분에서 보여준 수상한 헌책방의 모습은 이 도박장과 관련 있다.

하지만 주인의 배신은 그녀를 또 다른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이때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그녀를 끌어당기는 인물이 바로 김선우다.


김선우는 최현백의 마루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 피해 입은 사람들을 모았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등을 빼앗긴 두 명의 컴퓨터 천재가 먼저 합류했다.

태은은 늦게 참여했지만 실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이 계획을 위해 태은 가족의 과거사가 흘러나오고, 둘이 어떤 인연인지 말한다.

선우는 둘째 아들 최재건의 오른팔로 있으면서 내부 핵심 정보를 얻는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최현백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동물농장이고, 그들을 이어주는 앱도 동물농장이다.

비리와 불법으로 성장한 마루그룹의 비리와 불법을 알리는 것이라면 간단할 수 있다.

이들은 마루그룹으로부터 천 억을 받아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비리와 부패, 자신도 모르게 바뀌게 되는 삶의 모습, 탐욕 등이 흘러나온다.

이 과정에 수십 억의 돈은 너무나도 쉽게 흘러간다.

탐욕은 스스럼없이 불법을 저지르고, 돈은 이것을 입막음한다.

복수의 큰 그림은 동료들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단편적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재벌의 힘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면서 위기가 생긴다.

작가가 풀어놓은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고, 생략과 비약이 일어난다.

소설 전체에서 이런 생략과 비약은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이 부분을 다루었으면 한다.

읽으면서 몇 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오갔고,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들은 왠지 비현실적이지만 이 험악한 세상에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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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뭐래 창비시선 489
정끝별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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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 이전에 다른 시집을 읽은 기억은 없다.

5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어렵고 재밌고 흥미로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1부의 시들이 어렵게 다가왔다.

표제시 <모래는 뭐래?>는 간결한 시 속에서 ‘설마 모래가 너일까?’ 묻을 때 ‘나’를 떠올린다.

모래를 비유한 글과 모래를 이용한 과학 등도 간결하게 녹아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 동물들을 가끔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보면서 읊조린 <회복기>의 한 대목은 순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제 봄이겠구나 /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 봄이 다디단 이유일 거야”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에서 가슴 아픈 사랑 하나를 만난다.

국도에 버려진 개 이야기로 시작해 끝내는 자신의 감정으로 마무리하는 그 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는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와 이미지가 겹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알래스카의 바다코키리와 열대 늪지대에 사는 브리질 악어의 처절한 몸부림이 말이다.

절박이 절벽을 부르고 / 착각이 착란을 부른다”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부분)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의 부분)


오래된 이야기로 넘어가면 다시 추억과 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너였던 내 모든>에서 이해 부족과 오해가 만들어낸 이별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청파동 눈사람>에서 “청춘이란 그렇게 / 파국을 향해 직진하는 것 / 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말한다.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갈매기의 꿈’을 둘러싼 시들이 몇 편 있다.

1974년 판권을 그대로 붙인 시를 읽다가 오래 전 떠올린다.

언니와 엄마에 대한 추억과 회상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시가 두 편 있다.

<언니야 우리는>과 <응암동엔 엄마가 산다> 등이다.

전편이 같은 여성인 가족이 겪은 지치고 힘든 감정을 잘 풀어내었다면 후편은 늙으신 엄마의 사랑이다.

여든여덟살배기 엄마가 막내딸 방귀 뀐 것을 종아라 한다.


<처용가>와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쓴 시들도 재밌다.

<시는 어디에?>에서 한-이란 친선 시 낭송으로 시작해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로 넘어간다.

<처용가>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미니교와 마니산을 엮는 상상을 한다.

<시인은 누구?>에서는 <공무도하가>를 논문으로, 노래로, 만화영화로, 소설 등으로 변주된 이야기를 한다.

이 노래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파고드는 곳에 시인의 꿈이 또한 혼란스럽게 녹아있다.

해설이나 출판사 리뷰에 애너그램을 활용한 시들이 눈에 띈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다.

입속으로 읊조리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리듬을 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일상과 추억과 애상을 파고든 감상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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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
사노 요코 지음, 황진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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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의 엄마 시즈코상>의 개정판이다.

출판사도 바뀌었고, 번역자도 바뀌었다.

사노 요코가 암 선고를 받은 후 잡지에 연재한 것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첫 한국 번역판은 2010년 4월에 나왔고, 작가는 동년 11월에 별세했다.

사노 요코의 책들을 몇 년 전부터 읽었지만 자주 이 사실을 까먹는다.

출간된 목록을 검색하다 보면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사후 출간된 것들이다.

이번 이 에세이를 통해 이 작가의 다른 에세이에 더 관심이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더 읽고 싶은 데 그 이유는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 때문이다.


네 살 즈음 요코가 엄마의 손을 잡았는데 엄마가 혀를 차면서 손을 뿌리쳤다.

이 경험이 두 번 다시 엄마 손을 잡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녀와 엄마 시즈코 상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도쿄대 출신 아버지, 2차 대전 당시 중국에서 유복하게 살았던 시절 이야기.

패망과 함께 귀국하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오빠와 남동생의 죽음.

오빠가 죽었을 때 망연자실한 엄마의 모습과 다른 남동생이 죽었을 때 대비되는 모습.

일곱 명을 낳았지만 네 명만 살아 남았는데 장녀가 사노 요코다.

그녀가 엄마 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가 <오싱>과 비교한 부분이다.

<오싱>의 주인공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엄마의 폭언과 폭행은 그녀가 자라는 동안 멈추지 않는다.

시골에 살 때 물통을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면 바로 구타로 이어진다.

귀환 후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도 엄마의 근검 절약하는 모습과 깔끔함은 집을 안정적이게 한다.

엄마의 뛰어난 요리 실력은 몇 십년이 지난 후에도 친구들이 말할 정도다.

하지만 사노 요코와 그 여동생들은 집이 한 번도 그리운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 삶이 더욱 깊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세 딸은 각자 다른 성격과 행동으로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본다.

각자의 삶 때문에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데 이때 그녀들의 눈치는 요코의 아들보다 못하다.

아니 어쩌면 딸들이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저녁에 싸우지만 속궁합이 좋았을 것이란 작가의 생각.

일곱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녀가 가장 정을 둔 오빠의 죽음과 진솔한 속내.

자라면서, 성인이 된 후에도 그녀에게 엄마는 불편하고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이런 엄마이지만 아버지 사후에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네 명을 모두 대학에 보낸다.

지금보다 더 대학가기가 어려운 시절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괴롭혀왔다.

이것이 해소되는 계기가 엄마의 치매라는 것은 재밌는 대목이다.

자기 집에서 며느리에게 쫓겨난 엄마, 자업자득이란 생각까지 한 작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 튀어나온 “미안해요”란 표현과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란 엄마의 말.

그러다 갑자가 누군가에게 용서받았다고 느끼고, 온 세상이 다른 모습으로 온화해졌다고 느낀다.

이때부터 그녀가 치매에 걸린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편해졌다고 한다.


읽다 보면 내내 시즈코상에 대한 험담으로 가득하다.

좋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허세와 거짓으로 가득한 장면들만 기억에 남는다.

작가가 경험한 일들과 엄마와 엮인 이야기들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자매들이 어떻게 엄마를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들은 성격에 따라 갈린다.

유명 작가인 요코가 엄마의 비싼 요양원 비용을 내고 말하는 대목은 너무 인상적이다.

엄마를 돈으로 버렸다는 그 말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그녀도 이미 환갑을 지났고, 치매에 걸린 엄마에게 이 말은 한다.

늙은 부모님과 젊지만 늙은 자식의 모습은 이제 결코 낯설지 않다.

부제인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다’는 극적 화해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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