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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타인
임수진 지음 / 문이당 / 2025년 9월
평점 :
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재밌게 읽어 첫 번째 소설집에도 관심이 생겼다.
소설 이전에 수필을 주로 쓴 듯한데 이 이력도 흥미롭다.
다양한 인물들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첫 단편을 읽고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 추측은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여덟 편의 단편 속에 다른 나이와 성별로 그들의 심리 상태와 상황을 그려낸다.
어떤 대목에서는 극단적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 극단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유리 벽>은 문장 하나가 강하게 마음 속으로 다가왔다.
“공포는, 위험은 밖에 있지 않았다. 모든 게 내 안에 있었다.”
남편의 과보호와 잔소리, 결혼 7년만에 동창과 떠나는 여행.
갑작스러운 동창의 취소, 여행지에 출몰한 성폭행범 출몰 뉴스.
기대한 것과 다른 산장의 모습과 낯선 남자의 등장.
마음 속에 자라는 불안과 공포. 의심의 눈초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폭발.
이 과정들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어딘가에서 봤거나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간결하게 압축된 감정과 상황이 위의 문장과 딱 맞아 떨어진다.
<다시, 숨>은 코로나 19로 냄새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가.
이탈리아 가이드 일을 하다 코로나로 더 버틸 수 없어 귀국한 남자.
감염으로 후각을 잃었고,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상실감만 가득 채운다.
후각을 찾기 위한 노력, 절망, 자살 욕구 등으로 삶은 한쪽으로 기운다.
이때 한 음식 냄새가 그의 후각을 깨우는데 약간 뻔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으로 무난히 넘어간다.
<숙주>는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화가 태이의 이야기다.
그녀는 아빠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체 살았다.
이 폭력을 오빠가 엄마에게 가하는 순간 가정은 산산조각난다.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 화가의 끊임없는 연락과 그녀의 무력하고 가라앉는 삶.
그를 버린 엄마가 어떻게 늙었는지 궁금해하는 그의 마지막 문장은 울림을 준다.
<내 속의 타인>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고모와 조카 이야기다.
하지만 이 둘은 환경에 의해 위계가 뒤바뀐다.
오빠와 부모님의 죽음으로 고모 비움은 조카 채움의 비서처럼 살아간다.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강압은 채움의 일탈을 가속화하고, 이때 비움은 방패 역할을 한다.
외할아버지는 손녀의 발레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만 사고가 난다.
이 이면에는 채움이 비움의 남자 친구를 유혹한 것과 미국의 연인이 있었다.
사람들 눈에 화려하게 비친 채움의 진짜 모습을 알고 비움의 감정은 복잡하다.
이 복잡함과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잘 엮여 있다.
<사랑일까>는 아내의 속옷 모델 썸낭을 찾아 캄보디아에 온 남자 이야기다.
성공적인 아내의 속옷 사업과 달리 그의 대학에서의 교수 가능성은 점점 사라진다.
우연히 순두부집에서 만난 썸낭, 자주 방문한 그, 그녀의 모델 활동.
갑자기 사라진 그녀와 유적 촬영을 핑계로 유적지에 온 그.
아내도 만지지 못하게 한 카메라를 현지 여성에게 만지게 하는 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마지막이 썸낭을 찾는 그의 모습과 닮았다.
<그림자놀이>는 예전에 흔하게 듣고 보던 이야기와 닮아 있다.
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욕심이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가정을 파탄낸다.
프랑스 파리와 한국의 고시원으로 대비되는 두 공간과 기억들.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찾아온 그림자놀이의 기억.
<함께 있어도 혼자>는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식은 영국에 처자식과 살고, 남편은 코로나19 응급실 뺑뺑이로 사별했다.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는 일정선 안에서 이어진다.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찾아오지 않는 아들을 원망하는 그녀.
추억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홀로 서려는 마지막 장면은 약간의 희망을 엿본다.
<너는 너를 의심했다>는 처음 ‘너는’을 ‘나는’으로 잘못 읽었다.
화자인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심리를 조금씩 풀어간다.
의부증에 걸린 남편의 이 행동은 가족 여행에서도 감시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아내가 사라진 후 나타나 일상을 회복한 듯하지만 의부증은 가족의 파탄만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