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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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재밌게 읽는 요나스 요나슨의 신작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 번 펼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번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나아가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즐겼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유쾌하게 즐기기에 이처럼 좋은 소설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한국이 나온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한참 기다렸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달콤한 복수를 의뢰하는 한국인이 나온다. 이 부분을 보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유난히 더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100세 노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는 한 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좀 더 복잡하다. 교활하고 위선적인 미술품 거래인 빅토르, 그에게 전 재산을 빼앗긴 전 아내 옌뉘, 갑자기 나타난 빅토르의 아들 케빈, 케냐 사바나의 마사이족 치유사 올레 음바티안, 스웨덴 최고의 광고맨에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대표가 된 후고 등이 중요인물이다. 작가는 앞부분에 이들의 이야기를 한 명씩 늘어놓는다. 이전 작품들처럼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것을 웃돈다. 이 부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소설은 황당함에 멈추고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황당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예상 외의 행동들을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행동에 빠져든다.


복수. 이 얼마나 살벌하고 달콤한 말인가. 현대 사회는 개인의 복수가 금지되어 있다. 이 금지된 것을 대신해주는 회사가 있다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하지만 잠시 입장을 바꾸면 그 복수의 대상이 겪게 되는 일들이 과연 그 정도의 피해를 입을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의뢰자의 입장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책 중반에 후고가 회사를 설립하고 몇 개의 의뢰를 처리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기발한 발상에 놀라면서도 상대방이 겪게 될 고통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잠깐이나마 의뢰자의 입장에 공감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속에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이다.


서로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하나로 모이게 된 데는 빅토르의 역할이 컸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검은 색 피부의 아들 케빈을 케냐 사바나에 사자 밥이 되도록 놓아두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케빈이 나무에서 떨어질 때 지나가던 인물이 아들 없는 치유사 올레다. 올레는 케빈을 아들로 여기고 마사이 전사로 키우려고 한다. 마지막 관문인 할례 의식을 앞두고 있었다. 악어가 가득한 강을 헤엄치고, 창을 들고 사자를 사냥하는 용기를 가졌지만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두려운 케빈은 아빠의 물건을 훔쳐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예전에 머물던 집에 살고 있는 옌뉘를 만난다. 둘 다 경제활동은 젬병이다.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를 발견한다. 이렇게 이어진다.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꼬이면서 유머를 잔뜩 뿌리는 것은 올레 음바티안이 케빈의 편지를 받고 스웨덴으로 오면서부터다. 현대인의 필수품 중 하나인 신분증이 없는 상황을 황당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여기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분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준다. 신분증이 없다면 그가 그 자신임을 증명할 수 없다. 케빈의 이야기 중 하나도 이것이다.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되고, 빅토르가 사망신고를 한 지 5년이 지나면서 죽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이때 발생한 이야기는 상당히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우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재밌게 웃으면서 자신의 신분증을 잘 챙기면 된다.


사건이 소용돌이 치는 것은 케빈이 올레의 집에서 가져온 그림 때문이다. 케빈은 아빠가 그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는 이르마 스턴의 작품이다. 나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상당히 익숙한 붓 터치가 눈길을 끄는 작품을 그린 현대 여성 화가다. 실제는 더 유명하겠지만 무지한 나에게 현재 그 정도의 지식 밖에 없다. 달콤한 복수를 위해 처음 그들이 짠 계획은 이르마 스턴의 모조를 이용해 그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었다. 단순히 작품 모조만으로 부족해서 동물과 그 짓을 하는 인물로 만들기로 했다. 이 작업은 성공을 거두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올레가 오면서 이 그림이 진짜 이르마 스턴의 작품이란 것이 드러난 것이다. 상황은 또 한 번 바뀐다. 올레가 스웨덴에서 벌이는 기이한 행동들은 또 어떤가. 유쾌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네오나치즘 등을 표방한 인종주의와 혐오주의를 만난다. 이르마 스턴은 히틀러에 의해 탄압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아들마저 부정하고 죽이려고 한 빅토르는 뼈 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다. 생각은 그런데 성욕은 색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중적 잣대를 잘 보여준다. 점점 세계적으로 혐오와 인종주의가 심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무심히 볼 수 없다. 이 경계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정말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다. 보통 이런 종류의 글이라면 중간에 잠시 헤매는 순간도 있는데 요나스 요나손은 멋지게 캐릭터들을 살리면서 재밌고 유쾌하고 기발하게 이어간다.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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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1 와일드카드 1
조지 R. R. 마틴 외 지음, 김상훈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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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시리즈 1권 <와일드카드>가 출간된 후 현재까지 29권이 나온 엄청난 시리즈다. <얼음과 불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조지 R.R. 마틴이 프롤로그와 단편과 막간극을 쓰면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공동편집자로 멀린다 M. 스노드그래스가 보인다. 나에게 익숙한 작가는 로저 젤라즈니 정도다. 다른 작가들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화려한데 익숙한 작품이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SF 장르의 빈약한 시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대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과연 어디까지 나올지도 궁금하다. 개인적 바람은 끝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번에 번역된 <와일드카드>는 확장판이라고 한다. 세 작가의 작품이 더 들어 있다. 초판본을 읽은 적이 없으니 소개글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이다. 이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가 40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단한 협업이다. 1권에만 1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각각의 작가가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 거대한 SF 세계관의 문을 연 것은 조지 R.R. 마틴이다. 하워드 월드롭의 <브로드웨이 상공 30분!>은 이 세계 최고의 영웅인 제트보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전에 지구에 이 바이러스를 보낸 타키온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가 나온다.


타키온의 행성이 지구인을 통해 와일드카드 바이러스를 실험하려고 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 타키온이 지구로 왔는데 이 바이러스가 담긴 캡슐을 놓쳤다. 문제는 이 캡슐을 핵무기로 생각한 악당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협박으로 큰돈을 뜯어낼 생각이었다. 이들의 공격을 제트보이가 완전히 막지 못하고 공중에서 산화한다. 캡슐은 터져 뉴욕에 와일드카드 바이러스가 퍼진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90%는 죽고, 살아남은 10% 중 9%는 괴물 같은 외형을 가진 조커가 되고, 1%만 초능력을 가진 에이스로 변한다. 이 바이러스 노출에 의한 참혹한 광경은 로저 젤라즈니의 <슬리퍼>에서 잘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 중 한 편이다.


월터 존 윌리엄스의 <증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에이스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매카시즘의 광기가 이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준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에이스들을 자신들의 이념과 권력 아래 두기 위해 조작한 여론이 초능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가진 그들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매카시즘 속에 변전한 에이스 골든보이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이겠지만 씁쓸하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이들은 계속 나온다. 네 명의 에이스를 다룬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판타스틱 포>가 떠오른다. 또 다른 초능력자 ‘터틀’을 볼 때 머릿속에서 ‘닌자 거북이’가 스쳐지나갔다.


타키온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 <실추의 의식>은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사랑의 상실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보여준다. 여기에 조커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사회계층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닥터 타기온의 부활이다. 매카시 광풍이 얼마나 많은 에이스들을 두렵게 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파워스>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던 CIA 정보 분석가가 다른 에이스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알릴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은 냉전 시대와 엮여 있다. 마지막에 그의 요원명으로 ‘스톱워치’로 불릴 때 잘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평온한 일상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단편이 추가되면서 역사의 흐름을 좇아간다. 60년대 히피 문화가 나오고, 빠르게 70년대로 넘어간다. 한때 악명 높았던 뉴욕 지하철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는가 하면, 에이스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아주 나쁜 쪽으로 사용하는 악당까지 등장시켜 능력과 행동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스티븐 리의 <꼭두각시> 속 악당은 등장할 때부터 극악했는데 성장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잘 아는 인물로 나온다. 초능력과 에로틱한 묘사를 미스터리와 잘 엮었다. 이렇게 이 시리즈는 다양한 캐릭터를 기존 역사적 사실과 엮어 풀어낸다. 그들이 지닌 거대한 능력을 각자의 성향이나 바람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적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이야기와 무한한 확장성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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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시스터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9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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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9권이다. 무심코 본 숫자인 89가 천천히 그 의미를 음미하자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그 목록들을 대충 훑어보니 읽은 책도 몇 권 보이고, 낯익은 제목이나 표지도 몇 권 보인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가끔 읽다 보면 인식의 틀을 깨부수는 글들을 만난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나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의 환기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소설 속 두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가 잊고 있던 가치 몇 가지를 다시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치앙마이와 베를린. 이나와 주나 자매가 엄마와 아빠를 따라 한 달 동안 머문 도시다. 이나는 이모의 출산으로 도와주려고 온 엄마와 치앙마이에 머문다. 주나는 전시회 목적으로 온 아빠와 베를린에 있다. 한때 이 자매는 아주 친했고,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둘 사이는 서먹해지고 함께 있기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하나의 설정을 더 넣는다. 이나의 휴대폰이 물에 빠져 먹통이 된 것이다. 휴대폰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는 이나이기에 고치지도, 새로 사지도 않고 산다. 보통의 소녀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서먹한 두 자매는 이메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치앙마이, 땡모반, 타패 등은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치앙마이를 몇 번 여행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치앙마이란 지명인지도 모른다. 이모의 남편은 태국 남자이고, 함께 작은 호텔을 운영한다. 이모와 엄마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다. 이모가 우주를 낳은 후 엄마와 이모는 자주 싸운다. 이나가 보기에 이렇게 싸우고도 같이 머무는 두 어른이 신기한 것 같다. 이나는 자신의 일상을 작은 그림으로 그리는데 이것을 본 직원 중 한 명이 그녀를 미술교실로 데리고 간다. 똥소녀 채강을 만나고,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주나. 아빠를 따라 베를린에 간 소녀는 심심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 놀라운 소식을 SNS를 통해 본다. 자신이 짝사랑했던 서준을 절친 라임이 사귄다는 소식이다. 자신이 얼마나 서준을 좋아하는 지 아는 라임이 그 사랑을 뺏아간 것이다. 톡을 차단하고, 다른 친구를 통해 온 톡도 답신하지 않는다. 이 감정을 언니 이나에게 메일을 보낸다. 낯선 이국에서 경험한 일들이 메신저가 아닌 이메일을 통해 한 번 정제된 채 전달된다. 서로 다른 시간대이고, 아직 감정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방식의 교류는 서로를 조금 떨어진 상황에서 마주 보게 한다. 이 메일의 길이는 뒤로 가면서 점점 길어진다. 감정의 깊이도 더 깊어진다.


방학이라고 하지만 십대 소녀들을 학원에 돌리지 않고 장기간 해외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이 함께 가지 않고 각각의 부모를 따라 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이 이유는 나중에 나온다. 어린 소녀들의 낯선 도시 생활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맞이한다. 이나는 그림을, 주나는 한국어와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주나가 어릴 때 한 수술은 주나에게 부모가 좀 더 관대하게 대하게 한다. 이나가 보기엔 차별이지만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덕분에 주나는 이나보다 끈기가 조금 더 부족하다. 주나는 이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한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있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논다고 정신이 없었다. 시간은 그 친구들을 한 명씩 떠나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남은 친구들이 많지만 그렇게 절실했던 친구가 어느 순간 잊게 되기도 한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소설 속 소녀들처럼 작은 일에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든다고 이것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생활에 파묻혀 살다 보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잠시 잊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어른들의 관점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어쩌면 이 소녀들의 생각이 작가의 경험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베를린보다 치앙마이에 더 많이 마음이 가는 것은 내가 그곳에서 한 여행들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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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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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이력을 간단히 보면 화려한 수상 경력이 나온다. 이런 화려한 수상 작가도 가끔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아니다. 에드거 상을 받아 기대를 하면서도 고딕 문학의 전통이란 대목이 약간 걱정거리를 던져 주었다. 이런 걱정은 진도가 나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단히 빠르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 가상의 작가와 가상의 소설을 만들어 둘의 연관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R.M 홀랜드의 <낯선 사람>이 실려 있다.


이야기는 세 명의 여성 화자를 내세워 진행한다. 홀랜드를 연구하며 교사로 살아가는 클레어, 클레어의 딸 조지아,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하빈더 등이다. 클레어, 하빈더, 조지아 순으로 진행되다 클레어의 순번이 한 번 빠진다. 왜일까? 고딕 문학의 전통이 3의 반복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옮긴의 말에 나온다. 이런 전통보다 나의 시선을 더 끈 것은 엄마가 잘 모르는 딸의 모습이다. 클레어도 딸 조지아 하얀 마녀라고 부르는 여성에게 글쓰기를 배운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빈더의 엄마도 딸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모른다. 딸들이 사실을 숨겼다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인 내 새끼는 내가 잘 안다는 믿음을 그대로 깨뜨린다.


<낯선 사람>의 도입부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리고 한 여교사의 죽음을 알린다. 클레어의 절친 교사인 엘라가 살해당했다. 엘라는 학교의 학부장 릭과 잠을 잔 적이 있다. 속된 말로 공공연한 비밀이다. 처음 이 사건을 맡은 하빈더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절친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처음 클레어를 봤을 때 하빈더는 약간 삐딱하게 쳐다본다. 클레어의 마르고 큰 키와 풍기는 표정이 선입견을 심어주었다. 이 약간의 반감은 사건이 더 일어나고,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생기고, 의심의 씨앗을 사라지게 만들 사건도 생긴다. 가장 큰 역할은 하는 것은 역시 허버트다. <낯선 사람>에도 같은 이름의 개가 등장한다.


친구의 죽음으로 고통을 받는 역할이 클레어라면 하빈더는 드러난 증거를 가지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증거가 많고 분명하다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이 살인자는 증거 물품을 남기지 않았다.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났을 때 그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클레어인데 그 과정도 재밌다. 약간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시체가 이 작은 낭만을 산산조각낸다. 두 번째 살인은 <낯선 사람>의 죽음과 동일한 방식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클레어의 일기에 기록된 낯선 사람의 말들. 지옥은 비었다. 서늘한 표현이지만 이 문장은 <맥베스>에 나오는 문장이다. 두려움에 떨며 다른 기록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동일범의 소행이다.


클레어가 화자로 나올 때 일기는 또 하나의 도구다. 그녀의 내밀한 기록을 읽은 하빈더가 학교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두 번의 장례식과 새롭게 드러나는 과거의 사실들이 상황을 한 번 꼰다. 조지아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보게 하고, 용의자 중 한 명을 조용히 지우는 역할을 한다. 어른과 다른 위치와 시각에서 상황을 본다. 인도 시크교 신자인 부모와 함께 사는 하빈더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매력이 하나씩 드러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열정이 가득하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영국에서 인도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일들을 알려준다. 하빈더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고딕 문학의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빠른 전개나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불러오는 부분은 약하다.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이 흡입력을 발휘하고, 각 장마다 나오는 <낯선 사람>에 대한 좀 긴 인용은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범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찾은 방식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범인이 있고, 아닌 사람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그때 딱 그가 떠올랐다. 작가는 마지막에도 약간의 트릭을 사용한다. 재밌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상황이다. 현대 스릴러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을 내지는 못하지만 고딕과 견실한 스릴러가 만들어내는 재미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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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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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 좋은 작품들을 선별해 번역한 덕분일 것이다. 작가는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고,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차세대 줌파 라히리’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고 묵혀 두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작가의 시선에 미국의 시선이 혹시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번 하기 위해서다. 내가 잘 모르는 인도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주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나의 시선으로 해석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지반, 러블리, 체육교사 등이다. 지반은 가난한 환경 탓에 중등학교 중퇴한 후 쇼핑몰 직원으로 일한다. 어느 날 밤 그녀 집 근처 기차역에서 테러가 발행해 100명 이상이 죽는다. 그녀는 이 내용을 공유하고, 허세에 차서 정부를 규탄하는 글 하나를 올린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테리범의 동료로 간주한다. 그녀가 페이스북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이 테러범 모집자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각종 증언이 쏟아진다. 진실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토해낸 것들이다. 그녀가 범인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하나도 없다. 격해진 여론과 그것을 두려워한 경찰이 그녀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여기에 더욱 황당한 것은 그녀의 고백을 왜곡한 언론이다. 이 언론 보도를 보고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현실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블리. 여자가 되고 싶은 여장남자다. 히즈라라고 불리는데 구걸을 하면서 생활한다. 러블리가 바라는 것은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다. 수업료를 내고 연기수업을 받는다. 지반은 러블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 그녀가 가지고 간 보따리의 정체는 교과서였다. 유명 배우가 되기 위해 러블리는 열심히 노력한다. 돈을 들여 프로필 CD를 만들고, 에이전시에 등록도 한다. 완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전 동료 한 명이 마취도 되지 않은 불법 수술을 받은 후 죽었다. 그녀는 이 수술을 받을 마음이 없다. 이 소설에서 러블리는 이전에 몰랐던 인도의 풍습 하나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녀는 지반을 위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체육교사. 우연히 한 유명 정치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가 마이크를 고쳐주는 작은 도움을 준 후 정치에 발을 내딛는 인물이다. 그는 지반이 학생일 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떠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 불만을 더 부각해 경찰에 증언한다. 이것보다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은 평범했던 체육교사가 한 정치인으로 자라는 과정이다. 권력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가 현실 문제를 말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가짜 증언이다.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비 올 때 매번 넘치는 학교 앞 하수구를 바로 수리한 것이다.


서로 다른 위치의 세 남녀를 화자로 내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밀어 넣었다.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바퀴 중 하나가 살짝 드러난다. 사실보다는 가짜 뉴스가 더 힘을 발휘하고, 물증보다는 심증이 더 앞선다. 인도 사회에 내재한 오랜 문제 중 하나인 종교적 갈등도 드러난다. 이성보다는 군중심리로 대변되는 감정이 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계급과 부는 감옥마저 차별한다. 순수한 감정은 성공에 대한 욕망에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서로의 이해가 맞을 때 잠깐 눈을 감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비극의 수레가 너무 빨리 굴러간다. 놀라운 가독성과 낯선 삶의 모습은 나를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21세기 찰스 디킨스라는 표현을 보면서 디킨스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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