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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의 주인공은 65세 할머니 킬러이다. 손톱이라는 의미의 '조각'이라는 가명으로 45년간 킬러로 살았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현직킬러이다. 그녀는 청탁 받은 존재들을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제거하는 청부살인업자이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친척 집에서 눈치 밥을 먹으면서 자랐고, 집을 나와 주방 일을 하던 시기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미군을 방어하다 죽인 것이 그녀의 첫 살인이었다. 살인의 시작에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 ''에 의해서 전문 청부살인을 시작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그녀 삶의 전부가 된다.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살인은 아니었지만, 평생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살인을 했고, 무려 6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조각이 어떤 캐릭터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을 보자.

 

그녀가 심란한 이유는 팔이 붙잡힌 순간 곧바로 소매를 뿌리치려고 했으나 투우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데, 자신의 신체적 노화가 일상의 노력을 추월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초조함이다. 베일 철을 지난 이삭은 고스러지게 마련이고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자의 당연한 힘 차이라는 건 이 상황에 고려 대상이 아니며 지금은 업자 대 업자일 따름인데 조각으로선 사소하고 순간적인 장면이라 한들 이 코흘리개한테 졌다는 게 핵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 반응보다 부실한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실망 때문에 그녀는 투우가 천천히 힘을 풀고 소매를 놓았음에도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미처 못 하고 다시금 소파에 주저 앉는다.

 

물론 육 십대의 그녀가 삼 십대의 투우와 힘 싸움으로 이길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녀가 아무리 노련한 킬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투우는 조각을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걸고, 그들은 그렇게 늘 부딪힌다. 그래서 이런 순간에도 <부실한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실망>을 느끼는 그녀의 마인드야 말로 그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여태껏 그 누구한테도 기대거나, 혹은 기대어보려고 마음을 먹거나 한 적 없이 자립적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온 강단 있는 여성 캐릭터라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는 외부에서 노인들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의 처음 지하철 내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은, 우리가 매일같이 실제 보는 그 풍경이다.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나이 듦'을 권력으로 이용하려는 횡포와 실제 그들의 쇠락한 육체가 비춰지는 모습까지 말이다. 하지만 '조각'이 여느 노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의 킬러로서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의뢰를 받아서 방역 업무를 하고 있으며, 젊은 그 누구에게도 실력으로 밀리지 않는다.

 

조각은 길 잃은 개 무용과 함께 지내는데, 무용을 집에 데려온 뒤로는 항상 창문을 열어둔다. 그리고 창문을 밀어젖히는 모습을 몇 번이고 무용에게 보여주며 확인시킨다. 언젠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혹은 어느 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그때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라고 가르쳐주기 위해서. 너는 나가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개 장수들한테 잡히지 말고. 사람들이 너를 안락사 시키지 않도록. 늙은 개는 누구도 맡으려고 하지 않을 게 뻔하니까. 이런 순간에야 조각이 평범한 65세 할머니처럼 느껴진다. 혼자 남겨질 누군가를 걱정해야 할 만큼, 이제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나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평소와 달리 방역 작업 준비 중에 만난 폐지 수거 노인을 도와주다, 작업을 망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친 자신을 몰래 치료해준 강박사의 가족에게 연민을 가지고, 그의 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처음으로 '연민'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것이 노화의 증거라고 스스로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복숭아, 그 뒤로 복숭아를 어떻게 했더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조각은 냉장고를 연다. 혼자 살면서 식료를 쟁여둘 일이 없으니 냉장고는 300리터다.

이 참에 한꺼번에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단 채소 칸을 연다.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여름에 남자친구가 복숭아를 한 박스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주문하면서 모양 예쁜 걸로 잘 골라서 담아달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래서인지 도착한 복숭아 한 상자엔 멍들지 않고, 탐스러운 복숭아들이 가득했다. 색깔이 변하지 않게, 물러지지 않게 빨리 먹어야지. 마음 먹었었는데, 워낙 집에서 뭘 잘 안 먹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 주쯤 지난 뒤에 어김없이 모양이 망가진 '파과'들을 냉장고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 써준 남자친구에게 미안해서 그것들을 골라 잘라서 조각을 내고, 성한 부분만 모아서 복숭아 잼을 만들었다. 잼을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복숭아의 유통기한을 늘려주는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싱싱한 과육 상태일 때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미안함 마음이 남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달콤하고 상쾌하던 것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간이 자연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한 젊음이란 없으니까. 과일이 만들어질 때부터 방부제로 보존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조각은 투우와의 마지막 결전의 날을 앞두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콜트 45구경을 꺼낸다. 오래되었다고 해도 구한 지 15년은 넘지 않았고, 밀봉상태였으니 불발탄이 나올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하루가 달라지는 자신의 몸만큼이나 그것의 기능이 불안해 점검을 받으러 나선다. 사람의 영혼을 포함해서 자연히 삭아가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노후 된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원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파과'라는 제목만큼이나 작품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복숭아의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아마도 사라져 버린 것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느낌에 내가 지난 여름의 그 과육에 대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리고 같은 시기에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미 많은 이들이 리뷰에서 이 두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올렸지만, 같은 소재로 이렇게나 다른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이 나도 몇 자 끄적이게 만든다.

 

구병모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김영하의 이야기는 다소 '후일담'같은 느낌이다. <파과>의 문장은 호흡이 매우 길어 대충 흘려 읽으면 의미가 분명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어,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어야 한다. 대신 주인공이 왜 킬러 일을 하게 되었는 지와 그녀가 '방역'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어 스토리 자체는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문장은 단문이라 속도감 있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늙은 살인범이 기억과의 사투를 벌이는 스토리는 서사가 툭툭 끊어지며 전개되어 불친절하다. 그가 왜 살해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동기와 살해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없기에 모호하다. 누군가는 구병모의 긴 문장이 술술 읽히지 않고 자꾸만 걸린다고 불편해하고, 누군가는 김영하의 이야기에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두 명의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진 작가가, 정확히 같은 시기에 유사한 소재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것 자체가 독자 입장에서는 꽤나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간결하고 압축되어 짧은 남성적인 문체의 너무나 잘 읽히는 작품과 호흡이 길고 수식이 많아 긴 여성적인 문체의 너무나 어렵게 읽히는 작품. 그러나 전자는 스토리가 모호하고, 반면에 후자는 스토리가 명확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70세 김병수는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다. 30년 동안 사람을 죽였지만, 마지막 살인으로부터 25년이나 흘렀다. 그리고 그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신의 사라져 가는 기억과 사투 중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려고 한다. 이제 그에게 마지막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내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 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적어둔 기록도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김병수의 첫 살인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들겨 팼던 아버지에 대한 살인은 그 이후에 30여 년 동안 행했던 살인과 인과관계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가 왜 아버지 이후에, 다른 사람들을 계속 죽여야 했는지에 대해서 작품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 자체가 모호해진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이니 독자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파과>는 반대로 주인공 65세 조각이 왜 킬러가 되었고,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실제 그녀가 사람을 죽이는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 스토리가 매우 명확하다. 3인칭으로 쓰여진 시점이라 각 캐릭터 별로 사연과 감정선이 분명하게 보여진다. 김영하의 작품이 150페이지 정도의 아주 가볍고 짧은 책으로, 수식 없이 단문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스륵스륵 책장이 넘어가는 것에 비해 내용을 모호하게 만들었다면, 구병모의 작품은 스토리가 명확한데 비해 호흡이 긴 문장들로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렇게나 다른 두 작품이지만, 사실 두 작품 모두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들이 많다. 으깨진 과일.에서 소멸하는 육체에의 비유를 발견하고 이팔청춘이 지나가버린 늙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만든 구병모 작가도 멋지고,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고, 살인일지를 쓰는데 문장력이 부족해 시 강좌를 듣는다는 설정을 한 김영하 작가도 멋지다. 구병모 작가는 독자들이 페이지를 빨리 넘기는 것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좀 들여서 읽으라는 뜻으로 긴 문장을 썼다고 하는데, 그에 따라 누군 가에게는 그 긴 호흡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이번 작품이 하루에 한두 문장, 한 단락 정도만 쓰는 날이 많았을 정도로 천천히 쓰였다고 하는데, 그와 반대로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너무' 잘 읽혀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병모 작가의 결말은 어딘지 쓸쓸하기 보다는 따뜻하고, 김영하 작가의 결말은 서늘하고 섬뜩하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부서지고 소멸에 가는 것들에 대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어쩐지 그의 짧은 소설은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피식 웃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 남아 있는 건 찝찔한 슬픔의 맛이 남아 있다. '육체적인 소멸과 더불어 사회적인 시선에 저항하는 방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킬러라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하는 구병모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소설은 늙어서 약해져 가는 인간에 대한 애틋하고도 달콤한 맛이 나는 우화처럼 느껴진다.

 

이런 두 작가의 '다른'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건, 같은 시대를 사는 독자로서의 즐거움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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