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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취방 한켠에 놓인, 덜덜거리는 소음으로 존재를 한껏 과시하며 돌아가는 작디 작은 냉장고. 그 얕고도 깊은 동굴 속 어딘가 시커먼 비닐봉지 속에서 채굴된, 언제 사 들여놓았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한 형체 불명의 시큼퀴퀴한 냄새를 뿜어대는 물러터지고 썩어문드러진, 한 때 과일이라고 불렸을 그 정체불명의 사물. 작가가 실제로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이 경험이야말로 구구절절 얕고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거의 유일한 조각이었습니다.

 

 작품의 제목과, 예순이 넘은 할머니 킬러의 활약과 이울어짐을 볼 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거기에 사연 많고 한 많은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 사람들을 처치하는 킬러의 생애에서 비롯된 기구하고 영화같은 이야깃거리들이 일견 신선하고 흥미진진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캐릭터가 생각보다 잘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시크하고 무심하기 이를데 없는, 산전수전 다 겪고 주변에 결코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것 같은 콘크리트 내면에 비해 너무 잔정이 많습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 그렇지... 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수십년간 사람 죽이며 단련해 왔을, 혹은 칼로 사람을 찌를 때 마다 한줌씩 혹은 한움큼씩 버려왔을 인간본성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외부효과와 나이듦 때문에 할머니 마음이 흔들리고 그로 인해 사단이 벌어진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그 사소한 바람에 흔들릴 나뭇이파리 같은 여인이었더라면, 파란만장한 생애가 진도를 쭉 빼기 전, 수십년 전에 진즉 스스로 명을 거두어들이고 말았을 것 같기 때문이지요.

 

 뭔가 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것 같이 폼 잡고 거들먹거리고 일 벌이는 투우와의 얽힘도 그저 그렇게 임팩트 없이, 잔향도 파동도 없이 무심하게 끝나 버렸다는 것 역시 조금 아쉽습니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잔혹무도한 혈전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에 그 정도 사연과 과거를 열심히 깔아 둔 것에 비해 실로 매가리 없이 마무리 지어져 버려, 슬근슬근 옮겨다 둔 초석과 포석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연 많고 한 많은 무자비한 킬러 할머니의 특정적 이야기가 아니라, 저물어가는 내리막 어딘가에 발딛고 서 있는 수많은 인생들의 공통적인 삶과 회한을 더듬는, 서늘하지만 온기서린 손길의 쓰다듬입니다. 인생이고 삶이고 간에 육십 년을 넘게 살다보면, 아무리 행복하게 살았거나 별 탈 없이 큰 무리 없이 잔잔하게 살았다 한 들, 불콰하게 한 잔 걸치고 읊을 넋두리 한 소절 없는 사람 없으며, 적막한 새벽녘에 잠깨어, 날이 밝지 않아 그런 것인지 눈이 어두울대로 어두워져 버린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컴컴한 암흑 한 가운데, 불현듯 무심히 짚어 본 상념 한 조각 속에 피와 눈물로 얼룩진 회한 한웅큼 없는 사람 없을테지요. 검붉은 피보라 흩뿌리며 사람 찌르고 해체해 온 칼 아니라, 고기써는 칼 수십 년 휘둘러 온 푸줏간 할머니가, 나이드니 고기 한 근 제대로 맞춰 못 썰겄네, 이 보검寶劍으로 허연 잡뼈도 그냥 썰어제꼈는데 이제는 무딘 칼날 보다 손목이 먼저 나가겄네 하며 푸념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선명한 주제의식 만큼이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소재도 꽤나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이 조금만 더 다양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독특하면서도 빈틈없는 이야기를 써낸다면, 굳이 아리송가리송 공감이 될 듯 말 듯한, 이게 번역이 잘 된 것인지 원문이 이런 것인지 끝없이 의심하며 전진해야 하는 외국 문학 번역서 따위 읽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입안에 머금고 혀로 싸안아 휘돌리며 음미해 보게 만드는 그런 텍스트 였습니다.

 

 걸어온 여정의 길이만큼이나, 기괴하고 기구한 사연과 폭설처럼 켜켜이 쌓인 시리고 눈부신 한의 높이 만큼이나 긴, 호흡 긴 문장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심코 스쳐지나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그로부터 이끌어 낸, 쓴웃음 절로 지어지게 만드는 제법 다양한 양상들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예리하게 반짝이는 그 칼로 단 일초식이면 슥삭 해치울 수 있는데, 멋부리느라 잔뜩 힘들어간 채로 일초식부터 십팔초식까지 굳이 팔아프게 모조리 시전하며 미리 힘빼고 지치게 만드는 과도함도 살짝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허황되고 일견 화려해 보이는 양 많은 십팔초식 보다 전광석화, 정확하면서도 눈부신 한 줄기 섬광, 단 한 초식이 더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파과破果였느냐, 파과破戈였으냐(작가는 후기에서 파과破課냐 파과破瓜냐 묻고 있지만)... 결국은 파과破果이면서 파과破戈이기도 한 이야기, 혹은 파과破科이면서도 파과破過이기도 한 이야기. 쓸데없는 언어유희 늘어놓아 보면서 제목 한 번 잘 지었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말하면 입아플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슬로건. 파과破過한 할머니 킬러가, 혹은 동네 어귀 그 어딘가쯤의 푸줏간 할머니가, 시큰시큰 아픈 무릎 부여잡고 기어코 다 내려온 내리막 끝에 끝없이 이어질 평지를 천천히 주변 경치 만끽하며 언제고까지 서주하며 완주하기를 바라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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