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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가 말했다. "새내기 때는 주량이 세병이었는데 인제는 힘들다." 동기놈이 질세라 한 마디 거든다. "형 저도 예전엔 네병 마시고도 멀쩡했는데 요새는 예전같지 않아요, 나이 들었나봐요." 그러자 선배가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 벌써 나이 걱정을 하냐며 동기놈에게 핀잔을 준다. 하하 둘 다 아직 젊은 사람들이 나이 타령이고. 대충 이야기에 마무리를 지어보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정말 걱정되는 건 지금의 나이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늙을 거라는 사실. 


모든 존재는 세상에 던져진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예외는 없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의 권위 앞에서는 영속성을 내려 놓는다. 소실점을 향해 부단하게 나아가는 우리는 그런 점에서 보면 살아간다기 보단 죽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방역업자 조각도 예외는 아니다. <파과>는 사람들에게서 의뢰를 받아 청부 살인(방역)을 업으로 하는 주인공 '조각'의 이야기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사람 죽이는 일을 하며 살아온 조각에게 삶과 죽음은 뭉친 흙덩이처럼 구분이 무의미하다. 


... 애당초 유지라는 게 있지도 않았으며 방역업을 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더 오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그것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 

구병모 <파과> 255p



그런 주인공 조각의 건조한 삶에 관성을 흐트러놓은 사건이 일어난다. 강 씨와의 만남이다. 강 씨를 향해 마음에 품은 그것이 이성으로서의 사랑인지 인간으로서의 연민인지 존경인지 가리는 것을 떠나, 어쨌건 그로인해 조각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다. 조각은 그제서야 자신의 삶을 의식한다.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고, 강 씨와의 나이차를 헤아려 본다. 조각은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강하게 느낀다. 조각은 살고 싶다. 방역업자의 신분으로 45년 간 셀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의뢰라는 미명하에 살해해왔으면서.


사실 까놓고 말해 고상하게 표현해서 방역이지, 조각이 해온 일은 사람의 목숨을 헤치는 살인이다. 작품 분량의 거의 대부분이 방역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줄거리만 놓고 보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조각의 삶을 옹호하는 것은 힘들다. 그럼에도 <파과>가 사람 죽이는 킬러들의 이야기이기 보단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공감하며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탁월한 내면 묘사나 문학적 스킬(재밌게도 조각의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순간에는 과일이 등장한다.)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보편적 정서에 기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저도 작가의 의도와 역량에 달려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수하고 생소한 방역업자의 인생을 걸어온 조각의 삶에 가끔씩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늙어감에 따라 더욱더 삶을 갈망하는 조각은 방역업자이기 이전에 우리들 중 한 명이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결말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서장에서 종장까지 그 쏜살같은 내달림 위에 흩뿌려지는 주인공 조각의 삶과 함께 작가가 본질적으로 긍정하는 주제가 윤곽을 드러낸다. 우리는 막연하게도 나이를 들어가는 것이 무가치, 무의미의 목적지로 이르는 무한히 뻗은 내리막길이라 생각한다. 시간의 축적과 동시에 소중한 무언가를 덜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두렵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문학 작품처럼 기승전결로 무 자르듯 딱 부러지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가치는 결코 나이에 맞추어 찾아오지 않는다.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버텨온 조각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작품 전체로 에둘러 은은하게 할 말을 담아내는 작가의 기지가 빛난다. 


파과는 부서진 과일을 뜻한다. 손에 쥐자마자 부서져 버릴 정도로 오래되어 푸석해진 과일. 이미 먹어야 될 때를 한참 지난 그 과일도 분명 잘 익어 단 맛이 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난 이야기, 부서져버린 과일 따위에서 무슨 가치를 찾는단 말인가? 그런 물음에 구병모는 담담하게 과일 조각을 집어 들어 보인다. 아직 부서진 과일은 빛깔을 잃지 않았다. 구병모의 작품 <파과>는 모든 늙어가는 것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책을 덮은 지금, 더이상 늙는다는 것이 걱정스럽지만은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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