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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과 철학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학문들이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계속 발전을 거듭해 온 전통 있는 학문들이지만
한편으론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도 가지고 있기에 두 학문을 모두 잘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우리처럼 교과과정을 인문계와 자연계로 구분하고 있는 상황에선
한 쪽에 속한 학생이 다른 계열의 전공학문을 제대로 알기는 정말 어렵다.
물론 기본적인 건 공통으로 배우긴 하지만 과학 같은 경우
문과와 이과가 배우는 수준은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게다가 과학과 철학은 기초학문이다 보니 그 필요성과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난해하고 흥미가 떨어져 보통 사람들은 그다지 가까이 하지 않는 학문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분야들이기 때문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는 차에 과학과 철학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이 책의 제목이 확 끌렸다.
저자도 알고 보니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던 장하준 교수의 동생이라서 왠지 더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아서', '과학철학에 실천적 감각 더하기', '과학지식의 풍성한
창조'의 세 개의 파트로 나눠 과학지식이 도대체 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방법론에 있어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정상과학이라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과학을 얘기하는데 각기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지만 솔직히 뭐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과학사를 살펴 보면 현재로는 당연한 것들을 과연 어떻게 알아내고 확립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온도, 무게, 길이 등 기준 자체가 없던 시절에는 과학을 위한 측정 자체가 어려웠을 것인데
이런 부분이 정리되면서 과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쿤의 과학혁명 이론이
이 책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과학혁명의 구조를
여러 사례들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과학도 결국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여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의 견해처럼 막연한 진리를 추구하는 실재론보다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실재에 대한 것을 최대한 배워야 한다는 입장인 실재주의가 좀 더 타당할 것 같다.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토대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연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지식의 체계를 더 크게
늘려가고 더 정합성 있게 재구성하는 '진보적 정합주의'도 설득력이 있었다.
한편 라봐지에의 산소개념 중심의 화학혁명은 기존의 플로지스톤 개념의 화학체계를 무너뜨렸는데
쿤의 이론을 적용하면 라봐지에의 패러다임이 플로지스톤 패러다임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정상과학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로지스톤 이론도 나름의 가치가 있었음에도 일방적인 폐기를 당하고 말았는데
라봐지에의 화학체계와 공존했다면 화학이 더 발전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밖에 물의 분자식이나 항상 100도에서 끓는지 등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얘기가
과연 진짜인지 확인해보는 부분에서 우리가 과학을 주입식으로 교육한 병폐가 잘 드러났다.
과정이나 원인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결과만을 암기하다 보니 문제해결이나
창의적인 연구는 애초부터 엄두를 못낼 지경이라 할 수 있는데
과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과학에 대한 저자의 다원주의에 공감이 갔는데, 관용의 이득과 상호작용의 이득을 낳는
다원주의는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과학과 철학이 만난다는 책 제목만 보고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학자들의 철학과의 만남인줄
알았는데 과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었다. 막연하게만 인식하고 있던
과학의 실체와 올바른 방법론을 과학의 역사를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