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큰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버스를 탄다. 큰아이 무릎과 다리를 주무르는데 “아까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쳤어요. 피 났어요. 괜찮아요. 다시 일어났어요.” 하고 말한다. 큰아이는 씩씩하게 잘 다니지만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걸음이 더디거나 다리힘이 적어 으레 작은아이만 살피다가 큰아이가 넘어진 줄 몰랐다. 문득 큰아이 무릎을 살펴보니 곳곳에 넘어져서 다쳤다가 아무는 자국이 보인다. 참 자주 넘어져서 다쳤다가 아무는구나. 앞으로 오래도록 안 넘어지고 뛰놀면 이 모든 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질 테지. 아이들은 꼭 넘어져서 다쳐야 자라지는 않을 테지만, 하나씩 새롭게 느끼고 마주하며 겪는 일이 있기에 자란다. 넘어지는 일이든 노래하는 일이든 춤추는 일이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울려 노는 일이든, 새롭게 맞이하면서 누리는 삶이 밑거름이 되어 자란다. 그림책 《찢어진 가방》을 읽는다. 저 혼자 ‘예쁜이’라고 여기던 분홍 가방은 어린 조카들이 갖고 놀다가 그만 찢어진다. 한쪽이 찢어지면서 그만 울보가 된다. 가방 임자는 찢어진 데를 기워서 언제나처럼 아끼지만, ‘찢어진 가방’이 되었으니 더는 사랑받지 못하리라 여긴다. 참말로 가방 임자는 ‘찢어진 가방’을 사랑하지 않을까? 찢어진 가방을 안 사랑하는데 찢어진 데를 기워서 쓰려 할까? 냇물과 같은 이야기가 흐른다. 4347.7.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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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가방
김형준 지음, 김경진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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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1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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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일산에 닿다.

지치고 고단한 아이들은 먼저 잠들다.

곁님과 함께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튿날 낮에

인천에 있는 경인방송으로

라디오 취재를 하러 간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할 텐데

그곳 방송작가나 다른 이들이

인터뷰 하는 동안 잘 놀아 주겠지.


아무래도,

일산에서 인천까지 전철로

두 아이 데리고 가기에는 힘드니

택시를 타고 가야지 싶다.


고흥에서 일산까지

버스와 전철과 다시 버스와 전철과...

열 시간 가까이 애먹은 아이들을

다시 전철을 못 태우겠다.


잘 자고,

아이들이 즐겁게 일어나서

기운을 차리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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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표현력


  지난날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난날에는 학교란 데가 없기도 했어요. 그러면 옛날 글꾼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요? 삶을 가꾸면서 글을 썼어요. 날마다 하루를 새롭게 짓고, 밥이며 옷이며 집이며 스스로 지으면서 글을 썼어요. 예전에는 삶도 밥도 집도 살림도 글도 생각도 스스로 지었습니다.

  들과 숲에서 풀을 뜯으며 글을 씁니다. 멧골에서 나무를 하며 글을 씁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며 글을 씁니다.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을 골고루 누리거나 마주하면서 글을 씁니다.

  지난날에는 상상력이라든지 표현력 같은 말을 안 썼습니다. 그저 글을 써서 나누었을 뿐이요, 이야기를 오순도순 주고받았습니다. 기나긴 날에 걸쳐 슬기와 사랑을 가다듬어 삶글을 이루고 빛글을 낳아 물려주었어요. 그러니까, 작품이 되도록 하거나 문학이 되게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저마다 이녁 삶에 비추어 들려주고 이녁 말씨로 밝혔어요.

  스스로 늘 삶을 지으니 생각도 늘 짓습니다. 생각힘, 곧 상상력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늘 삶과 밥과 집을 지을 뿐 아니라 말을 지으니 말힘, 곧 표현력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참말 예전에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말을 스스로 지었습니다. 바로 사투리입니다. 오늘날에는 삶도 밥도 집도 말도 스스로 짓지 않고 학교만 다니고 책만 읽습니다. 오늘날에는 새로 짓는 삶이 깃든 새로운 말이 태어나지 못하고 새 글이 좀처럼 태어나지 못해요.

  문학이 나오고 대학교 문예창작학과가 생기며 문학강의가 넘칩니다. 그러나 삶을 밝히거나 가꾸려는 빛은 자리를 잃어요. 글은 늘 삶을 담았으나, 학문이나 예술이나 문화나 문학이 되면서 삶을 잃거나 등집니다. 노래가 되지 못하고 이야기로 뻗지 못하니 오늘날 문학은 어린이책에서도 어른책에서도 표현력만 자꾸 따져요. 상상럭이 없으니 억지로 쥐어짜요. 가장 쉽고 사랑스러운 길에서 그예 멀어지기만 합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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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 잔뜩 하며 책읽기


  시외버스에 나란히 앉은 작은아이는 잔다. 나도 곧잘 걸상에 기대어 자는데, 눈에 힘을 주고 깨어나 책을 읽는다. 잠이 쏟아지고 속이 울렁인다. 오늘 아이들 데리고 마실 나오려고 지난밤에 제대로 못 잔 탓이지 싶다. 참말 하품이 끊이지 않고 눈물까지 난다. 그래도 손에서 책을 안 놓는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책으로 입을 가린 채 후품을 하기도 하지만, 그예 책 한 권 마친다.

  다 읽은 책을 가방에 넣는다. 새로 한 권 꺼낸다. 문득 생각하니 책을 손에 쥐어 한 장씩 넘길 적에는 차바퀴 소리를 안 들었고 덜컹거리는 느낌도 받지 않았다. 입으로는 자꾸 하품이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책 하나 읽었구나.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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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조용한 시골집 떠나
서울 거쳐 일산으로
치과마실 가는 길

강냉이 먹고
오이 먹고
물 마시고
순천 버스역에서
살짝 쉬는 동안 뛰놀다가
시외버스 걸상에 기대어
고개 폭 떨구며 잠드는 데에
15분.

반소매 웃옷 한 벌 덮는다.
네 살 작은아이
사근사근
고요히 잔다.


4347.7.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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