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이라는 분이 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 보았습니다. 문득, 나도 이 ㅎ님처럼, 누군가를 비평하거나 어느 작품을 비평할 때, 좀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미리 ‘마무리말(결론)부터 내려 놓고 밀어붙이기’를 하지 않았는가 싶어서, 또 ‘내 생각만 옳은 듯 칼부림 글을 쓰지 않았는가’ 싶어서.

 제가 적은 댓글은 이렇습니다. “어떤 작품을 이야기할 때, 그 작품을 쓴 사람이 그동안 이루어 온 다른 작품들을 함께 살피지 않고 이야기를 해야만, 올바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규석 같은 사람 다른 작품들은 인터넷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이가 다른 작품을 어떻게 펼쳐내고 있는가를 좀더 차근차근 살피지 않고, 이 작품 하나로만 평가와 결론을 내리는 일은 적잖이 섣부르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군요. 이른바 게으름이라고 할까요. 한편, 최규석이라는 분한테는 손수 인터넷편지를 띄워서, 이 만화를 어떤 생각으로 그렸는가 하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알아보고 쓰는 글하고, 자기 생각만으로 결론을 다 내려버린 다음에 쓰는 글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4340.10.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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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창가로 밝은 빛이 스며든다. 늦었나 싶으면서도 몸이 고단하여 조금 더 눕는다. 그러다가 이제는 더 어기적거리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여덟 시 반. 히유. 그다지 늦은 편은 아니구나. 열 시가 넘은 줄 알았는데.

 기지개를 켜고 찬물 한 잔 마신다. 씻는방에 들어가서 낯과 손을 씻은 다음, 어제 담가 놓은 빨래를 세 가지만 한다. 닷새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다닌 탓에 몸이 많이 찌뿌둥하다. 잠도 모자라다. 다음 한 주는 집에서 멀리 나가는 일을 줄여야겠다. 밀린 일도 많고.

 빨래 두 가지는 집안에 넌다. 하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서 빨랫줄에 건다. 잠깐 해바라기를 한다. 아침햇살은 늘 따뜻하고 반갑다. 담벽에 기대어 이웃집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추잠자리 세 마리가 잰 날갯짓을 하며 내 옆쪽 담벽에 앉는다. 잠자리가 나오는 철인가. 지난달에도 잠자리 한 마리 보았는데. 가만히 잠자리를 들여다보다가 사진기를 꺼내 와 몇 장 찍는다. ‘좀더 가까이’를 생각하며 살살 다가서니 호롱 하고 날아간다. 먼곳 사물을 잡아당겨 찍는 렌즈가 없으니 아쉽다. 도서관으로 내려와 창문을 하나씩 열고 물을 반 잔 마시고 밀린 설거지를 한다. 조금 있으니 배가 살살 아파서 책 한 권 들고 살림집으로 올라가 뒷간에 들어간다. 책을 펴고 똥을 눈다. 개운하게 볼일을 마치고 나온다. 마당 담벽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고추잠자리는 한 마리만 보인다. (4340.10.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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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20 : 어떤 책을 선물할까


 모리모토 코즈에코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조폭 선생님》을 봅니다. 주인공은 조직폭력배 후계자인 딸이자 고등학교 수학선생. 조직폭력배 집안에서 태어나 조폭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 이 가운데 학교 교사들은 조폭을 쓰레기처럼 여겹니다. 어린 딸아이는 커서 교사가 되기로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에 아이들이 물들지 않으면서 자기 꿈을 키우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산바치 카와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4번 타자 왕종훈》 쉰두 권을 다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배정서를 잘못 받아 엉뚱한 학교로 가게 된 시골아이 왕종훈은 야구 솜씨가 하나도 없었지만, 농사꾼 아들답게 땀방울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면서 자기가 사랑하고 아낄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갑니다. 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땅꼬마이지만, 이 땅꼬마는 터무니없다고 할 만큼 연습과 훈련을 거듭하면서, 겉모습으로만 얕잡아보는 사람들 매무새를 속속들이 깨뜨립니다.

 “일본사람은 엉터리라서 일본만화가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하늘을 날아도 “네, 하늘을 나는군요” 하고 받아들일 뿐이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만화에서도 “사람이 하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일”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한국만화 가운데 적잖은 숫자는 억지나 거짓으로 느껴집니다.

 《기독교의 전도자 6인》(신구문화사,1976)을 읽으니, 조선 시대에 천주교를 받아들여 온몸으로 믿고 따르던 정하성이라는 분은, 천주교리 참뜻을 헤아리며 착하고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쓸 뿐, 자기 뱃속을 차리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살에 관한 어두운 백서》(종로서적,1981)를 읽으니, 프랑스 사회에서도 엉터리 같은 일이 참 흔히 일어나는군요. 공무원들은 ‘공무집행’만 하고, 자기가 하는 공무집행 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살아갈 빛을 잃으며 목숨을 끊는 사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댁의 문제지요. 저는 돼지고기 상점의 보건 상태를 조사할 뿐입니다. 시설개조를 못하신다면 영업을 계속 하실 수 없을 겁니다.(150쪽)”라고 말하며.

 《오카방고의 숲속학교》(갈라파고스,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아직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아이들이 어머니를 따라 아프리카로 삶터를 옮깁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도 보츠와나가 어디 있는지 찍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차 뒷자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170쪽)”을 보게 되고, 저마다 자기한테 무엇이 중요하고 아름답고 고마운지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를 읽습니다. 독재정권이 그림 그릴 자유를 억눌렀지만, 이 억누름은 이응노 님 스스로 새 그림세계를 열도록 도와주기도 했군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펴낸 책이 하나둘 나와 출판기념잔치를 벌입니다. 이 책들은 누구한테 주려고 만들까요. 이 책들에는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살가운 동무한테 선물할 만한 책으로 이어갈까요. (4340.9.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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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에서 볼일을 본 어제 낮, 자전거를 몰고 남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보라매공원을 스쳐서 영등포에 이릅니다. 영등포역을 웃지르는 고가도로를 탑니다. 영등포역 둘레에 조용히 자리한 지붕 낮은 집이 몇 군데 보입니다. 비바람에 지붕 날아가지 말라며 벽돌로 꾹꾹 눌러놓았네요. 어느덧 여의도를 지나 당산역. 한강시민공원으로 잠깐 접어듭니다. 여섯 달 만에 지나가 봅니다. 그때나 이제나 자전거 타고 시민공원 들어가는 길은 참 알쏭달쏭입니다. 길이 익숙한 사람 아니고는 들어갈 구멍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길알림판이란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파른 구름다리 계단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올라갑니다. 차라리 들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까. 한강다리를 건너고 합정동으로 나옵니다. 자전거가 안쪽 길로 들어가도록 마음써 주는 자동차가 좀처럼 없었으나 그예 한 대가 살살 멈춰 줍니다. 고개 꾸벅. 홍대전철역 앞을 지날 무렵,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을 듯 마구 모는 스포츠카 한 대. 버스는 정류장에 반듯하게 대지 않아 뒷차는 하는 수 없이 길에 뻘쭘하게 서고. 차방귀와 자동차에서 내는 뜨거움을 옴팡 뒤집어쓰며 동교동에 닿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다른 곳에서 달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기 딸아들이 자전거를 몰고 볼일을 보러 다녀도 앞뒤옆에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갑자기 끼어들까요. 당신한테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는 사람이, 또는 살가운 벗님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와 놀래킬까요.

 동교동 헌책방에서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책을 구경합니다. 제 뒤로 지나가다가 툭 치는 책손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구경하는 자리에 밀치고 들어오는 책손도 있군요. 마침 그림책을 살피고 있는데, 책방 문을 열자마자 제 옆자리로 밀치고 들어온 분은 아이들 영어 그림책을 고릅니다.

 신촌에 있는 헌책방 한 군데 더 들릅니다. 오늘은 몸이 찌뿌둥해서 책 구경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신촌닷거리에서 애오개로 내닫습니다. 덩치 큰 버스는 자전거한테 1미터를 내주기보다는 빵빵거림으로 주눅들게 합니다. 노란 학원버스는 어디에서나 신나게 내달립니다. 저 버스에는 틀림없이 아이들이 타고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뒷날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게 될 때에 어떤 매무새일까요.

 어린이책은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고 아버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좋은 책’을 많이 사 주십니다. 비록 중학교 들어가는 때부터는 ‘좋은 책’은 뚝 끊어지고 ‘학습지와 참고서’로 바뀌긴 해도. 그나저나 우리 어버이들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책을 읽고 삭이고 되뇌인 뒤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있을까요. 어린이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보다 가난하거나 힘없는 이를 돕고, 잔꾀 부려 남을 괴롭히지 말며, 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살라’일 텐데. (4340.9.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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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ㅎ출판사에 원고뭉치를 보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책 한 권 내기로 합니다. 그렇지만 ㅎ출판사 분들은 이 일에 치이고 저 일에 바빠서 제 원고뭉치를 책으로 묶어낼 낌새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반 해가 지나도록 제 원고를 살펴볼 틈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먹고살 돈이 바닥을 칩니다. 이 원고뭉치로 책 하나 묶어내면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애가 타고 혀가 타고 입술이 타고 온몸이 바싹바싹 마릅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예전 원고뭉치는 없애기로 하고 새 원고꾸러미를 마련하기로 이야기합니다. ㅎ출판사 분들은 제 원고를 읽어 보지 않으셨으니 그 글 그대로 책 하나 묶어도 좋은지 모자란지 모르실 테지요. 반 해가 지나고 한 해가 되어 가는 동안 제 스스로 느낍니다. 예전에 쓴 제 글이 참 엉성하다고, 어줍잖다고, 어설프다고. ㅎ출판사에서 제 원고뭉치를 곧바로 책으로 묶어 주었다면, 저는 적잖은 글삯에다가 책 하나 세상에 더 내놓았다는 훈장을 가슴에 달 수 있었겠지요. 어쩌면 어렵지 않게 살림이 펴지면서 제 글을 좀더 단단하게 여미거나 튼튼하게 추스르는 쪽으로는 마음을 덜 기울여 버렸겠지요.

 프랑스 만화가 ‘기 들릴’이라는 분이 일 때문에 평양 나들이를 하게 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만화로 담아낸 《평양》(문학세계사,2004)을 보고 있습니다. 평양 시내에 큼직하게 걸린 포스터 하나를 17쪽에 옮겨 그렸는데, 포스터 아래쪽에 적힌 ‘한글’을 한국사람이 못 알아볼 만큼 옮겼습니다. 프랑스사람한테 한글은 낯설고 어렵고 꼬불탕꾸불탕거리는 지렁이 움직임이었을까요.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박병태란 분 글조각을 모아 엮은 《벗이여, 흙바람 부는 이곳에》(청사,1982)를 읽다가 “만약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발전을 막고, 인간으로서의 가치의 발현을 제거해 버렸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 자를 벌해야 할까.(82쪽)” 하는 물음에 잠깐 책을 덮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람은 법에 따라 죄를 물린다지만,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고 그지없는 꿈을 짓밟은 사람은 어떤 법으로 죄를 물릴 수 있을까요.

 서울 대방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서울의 양심》(시인사,1988)이라는 시모음 하나 만납니다.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어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제자리에 놓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제 책꽂이에서 《서울의 양심》을 찾아내어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습니다. 세상은 정희수 시인을 절름발이라고 가리키지만, 정희수 시인을 가리켜 절름발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눈매가 바로 ‘절름발이’ 아니겠느냐고, “자네가 만든 그 팻션 중에 / 장애자가 입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증인신문 4―앙드레 김에게)”라는 말처럼 비장애인들이야말로 절뚝절뚝 걷고 있지 않느냐고 되뇌입니다. 〈시민사회신문〉 18호 1쪽에 실린 광고를 봅니다. “20년 간 안심할 수 있는 신개념 주택”이 “사기 위한 집이 아닌 살기 위한 집”이랍니다(SH공사가 지은 아파트). (4340.9.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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