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0일, 전남 장흥, 장흥도서관에서 장흥 어른이웃하고 청소년과 함께 모여서

이야기마당을 나누었다. 이때에 들려준 이야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또 궁금한 대목을 물어보는 대로 이야기를 했고,

이 글은 이야기마당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나중에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써 둔 글이다.


..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살기

- 장흥 청소년과 어른들한테



  해마다 가을이면 고등학교 앞에는 뭔가 걸개천이 걸립니다. ‘뭔가 걸개천’이라고 했는데, 이 ‘뭔가 걸개천’이 그야말로 뭔가 하면 ‘대학입시’하고 얽힌 걸개천입니다. 서울 같은 큰도시이든 장흥이나 고흥 같은 작은 시골 군 단위이든, 고등학교 앞에는 어디에나 걸개천을 내걸지요. 대학교에서 붙이는 광고 걸개천도 있고, 학원에서 붙이는 광고 걸개천도 있으며, 무엇보다 학교에서 스스로 붙이는 걸개천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대학교에 얼마나 많이 보냈느냐’를 놓고 걸개천을 붙이는데, 이 가운데 ‘서울대학교’라는 곳에 한 아이라도 보냈으면 자랑하려고 애씁니다. 서울대학교에 아이들을 많이 보내는 학교라면 더욱 크게 자랑하기도 하겠지요.


  저는 고흥에서 살기에 고흥 이야기를 한다면, 고흥에서는 ‘서울대학교’가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라도 붙으면 걸개천을 큼지막하게 붙입니다. 학교 앞에도 붙지만 마을 앞에도 붙어요. 면소재지나 읍내에도 걸개천이 붙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가 아니어도 ‘박사 학위’를 받는다든지 ‘진급·승진’을 한 일도 으레 걸개천을 붙여서 알립니다.


  장흥은 어떠한지 궁금하군요. 장흥도 고흥처럼 ‘군대에서 계급 하나 올랐다’고 하는 이야기라든지 ‘공무원 급수가 하나 올랐다’고 하는 이야기를 걸개천으로 붙이는지요?


  저는 고흥이라는 곳에서 산 지 다섯 해입니다. 처음 도시를 떠나 고흥에 올 적에 우리 식구를 보면서 ‘가서 잘 살라!’고 북돋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시골로 간다고 해도 ‘도시하고 그렇게 멀리 떨어진 시골까지 굳이’ 가야 하느냐고 묻기 일쑤였습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못 보기라도 할 듯이 여기기도 했고, 도시하고 가까운 시골도 아니고 전라남도에서도 맨 끝자락, 게다가 장흥이든 해남이든 강진이든 그나마 길(고속도로)이라도 잘 뚫린 데도 아닌 고흥처럼 아주 구석진 곳으로 간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아마 도시에 사는 분들은 고흥이라는 곳을 잘 모르겠지요. 장흥이라는 곳도 잘 모를 테고요. 지도를 좍 펼쳐서 서울은 여기요 부산은 여기이고 고흥과 장흥은 여기라고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 그제서야 ‘우와, 이렇게 멀리 있네!’ 하고 생각하리라 느낍니다.


  맞는 말입니다. 고흥이나 장흥은 도시하고, 아니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하고 아주 멉니다. 게다가 고흥은 광주하고도 시외버스로 두 시간이 넘는 길이에요. 거리로 치면 고흥하고 광주는 그렇게까지 멀지 않지만, 광주와 서울 사이를 오가는 길보다 광주와 고흥 사이를 오가는 길이 훨씬 멉니다. 같은 전라남도에 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고흥하고 장흥 두 곳을 오가는 길은 고흥이나 장흥에서 광주로 오가는 길보다 더 멀어요. 재미있는 일이에요. 장흥하고 고흥 사이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꼭 한 번입니다. 그렇지만 장흥하고 고흥은 광주를 오가는 버스가 무척 많고, 서울로 오가는 버스도 너덧 차례가 넘어요.


  이제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보지요.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시골에서 살든 서울 같은 큰 도시로 오가는 길은 가깝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로 맞닿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서로 오가는 길이 무척 멉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으로 시골과 시골 사이를 다니려면 1박 2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곳이 있어요. 그런데, 시골과 시골 사이를 다니더라도 서울을 거치면 그리 멀지 않기 마련입니다.


  제가 왜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한국은 무엇이든 서울 같은 큰 도시에 몽땅 쏠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은 ‘서울에 그대로 남아서 서울에서 밀리지 않는’ 학교교육을 받습니다. 서울 아닌 다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은 ‘서울로 들어가서 살아남는’ 학교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서울 아닌 다른 도시에서는 ‘서울로 못 가면 우리 도시에라도 남아서 살아남는’ 학교교육을 받아요. 자, 그러면 시골에서는 어떤 학교교육을 받을까요? 장흥이나 고흥 같은 시골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어떤 학교교육을 받을까요?


  굳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장흥에 계신 분이라면 다 알리라 생각합니다. 첫째, 서울로 간다. 둘째, 서울 옆에 있는 인천에라도 간다. 셋째, 부산이나 대전처럼 큰 도시로 간다. 넷째, 정 안 되면 광주로 간다. 다섯째, 그도 안 되면 순천으로 간다. 여섯째, 그마저도 안 되면 읍내에 있는다. 그러면 일곱째는? 일곱째는 없어요. 장흥이나 고흥 같은 시골에서 받는 학교교육으로는 ‘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이 바로 이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사는 길’을 받지 못합니다.


  교과서를 보아도, 국정 교과서에서는 ‘시골 농사’를 안 가르칩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서 씨앗 갈무리와 씨앗 심기와 열매 거두기를 가르치는 교과목은 없습니다. 시골에서조차 농업고등학교가 사라져요. 요즈음 시골에 ‘농고’가 어디에 있을까요? 농사를 가르치는 학교는 몽땅 자취를 감추었다고 할 만합니다. 충청도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를 빼고는 농고라는 이름조차 안 써요. 그렇다고 홍성 풀무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이 다 농사꾼이 되지도 않아요. 풀무학교를 마친 아이들 가운데 농사꾼이 되겠다는 아이는 몇 사람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시골마다 늙은 할매와 할배밖에 없습니다. 젊은 농사꾼이 없습니다. 그나마 귀촌한 농사꾼이 있으면 삼십대나 사십대 농사꾼이 더러 있지요. 정년퇴직을 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육십대 농사꾼도 생기지요. 그런데, 이십대 농사꾼이 없어요. 십대 농사꾼은 더더구나 없지요.


  가만히 보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농사는 농사가 아니라 ‘농업’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입니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잔뜩 쓰고 비닐과 시설과 기계를 잔뜩 쓰는 ‘산업인 농업’이에요. 이런 ‘농업’은 돈이 있고 땅도 넓어야 돈을 벌 만합니다. 그러니, 땅도 돈도 얼마 없는 젊은이는 농업 언저리에 들어서기도 어렵습니다.


  학교에서 받는 직업훈련은 ‘돈을 잘 버는 길’만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길을 열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스스로 꿈을 키우는 직업을 찾도록 도우려 하지요.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알맞게 벌어서 즐겁게 삶을 가꾸는 직업을 찾아서 살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그러면,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돈 많이 버는 농업’이 아니라 ‘알맞게 자급자족을 하면서 스스로 꿈을 키우는 길’을 가도록 돕는 ‘시골학교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돈을 버는 농업이 아니라 자급자족을 하는 농사를 짓는다면, 네 식구를 잣대로 삼으면 논 100평이면 네 식구 먹을 쌀을 얻고도 남습니다. 100평 논농사로도 이듬해에 심을 씨나락을 남기고 밥도 배불리 먹어요. 다만 ‘돈’은 안 남지요. 김치를 담거나 반찬으로 삼을 텃밭을 가꿀 적에는 몇 평이 있으면 될까요? 다섯 평이나 열 평으로도 넉넉해요. 스무 평 텃밭을 가꾸면, 무나 배추는 다 못 먹고 이웃한테 나누어 주어야겠지요.


  자급자족을 하는 농사로 논밭을 일구면 이러한 들일은 매우 수월합니다. 시간이 그리 많이 안 듭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살며 자급자족으로 논밭을 ‘완전한 자연농’으로 하면서 ‘돈이 되는 일’을 따로 거느릴 수도 있어요. 돈을 굳이 바라지 않는다면, 자급자족을 하면서 오일장에 내다 팔 푸성귀를 조금 더 지어서 살림돈을 이럭저럭 얻을 수 있겠지요.


  장흥이나 고흥쯤 되면 시골이라면, 우리 장흥군이나 고흥군은 이곳이 ‘도시’가 아닌 ‘시골’인 줄 똑똑히 깨닫고, 제대로 바라보면서, 장흥 어린이와 고흥 어린이가, 또 장흥 청소년과 고흥 청소년이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기쁨과 보람’을 누리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야지 싶습니다. 요즈음 도시에서 시골로 귀촌하려는 사람들은 땅이나 집을 마련하려고 그렇게 머리를 태우고 근심걱정도 크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대로 시골에서 살 수 있으면, 머리를 태우거나 근심걱정을 할 일이 없어요.


  도시로 가서 이름을 드날리거나 큰돈을 벌어들이거나 자가용을 몰거나 큰 아파트를 거느린다면 ‘성공’을 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은 ‘성공’을 했다고 할 적에 즐겁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웃고 넉넉하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면 즐겁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자, 둘레를 살펴보셔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일에 치여서 죽으려고 합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휴가 한 번 받으려고 그야말로 죽을 동 살 동 밤을 새우면서 회사에 얽매입니다. 그러다가 기껏 이레쯤 휴가랍시고 받아서 어디를 가나요? 서울에서 휴가를 누리나요? 외국에 나가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서울사람은 ‘바람과 물 맑고 숲과 나무 아름다운 시골’로 가려고 해요.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도시로 보내려고 안달을 하고 용을 쓰는데, 정작 도시사람은 ‘어떻게든 아득바득 휴가를 내어 시골로 휴가를 가서 몸과 마음을 쉬려’고 합니다. 참 웃기고 재미있는 노릇이에요. 시골사람은 시골을 싫어하고, 들과 숲과 골짜기와 바다와 멧등성이와 냇물만 있는 이 시골을 안 좋아하지만, 서울사람은 바로 이러한 시골을 그리워 하니까요.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돈으로 움직입니다. 시골에서는 언제나 흙으로 움직입니다.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대형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뽑아낸 전기하고 석유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시골에서는 햇볕과 바람과 냇물로 움직입니다. 서울에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아니면 밟거나 만질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풀과 꽃과 나무를 언제 어디에서라도 만집니다.


  나무 한 그루는 돈으로 사서 키우지 못합니다. 백 년 된 나무나 오백 년 된 나무는 돈으로 따지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으리으리한 도시 건물도 백 년을 못 버티지요. 서울에 있는 63빌딩은 앞으로 언제까지 버틸까요? 서울에서 40층이나 50층으로 솟는 아파트는 앞으로 언제까지 버틸까요? 그런 집이나 건물이나 아파트나 상가가 몇 억이나 수십 억원이라 하더라도 고작 100년은커녕 50년도 못 버텨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50년 된 나무는 아직 ‘아기 나무’입니다. 적어도 200년이나 300년쯤 되는 나무라야 그늘도 아름답고 우거져서 멋지지요. 그리고 500년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은 목숨이 500년입니다. 300년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은 목숨이 300년이에요. 이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 천 년 된 나무를 베어서 지은 시골집은 천 년을 갈 테지요? 무량수전이라고 하는 절집이 천 년을 넘도록 버틸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수수께끼와 실마리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 시골사람은 시골을 먼저 제대로 바라보고 알면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부터 제대로 바라보고 배우면서 이 시골마을을 어린이와 청소년이 제대로 알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골에서 사는 어른들도 이 시골이 어떠한 삶터요 보금자리인가를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배워야지요.


  장흥에 계신 어른들이 아시는가 모르겠지만, 서울사람은 서울 막걸리를 마셔도, 맛없는 수돗물에다가 수입 쌀과 밀을 섞은 막걸리를 마십니다. 장흥에도 수입 쌀이나 밀을 섞은 막걸리가 있을 테지만, 장흥은 맑은 물을 바탕으로 이 고장 쌀로 멋지게 빚은 막걸리가 있겠지요. 늘 마시는 바람하고 물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사람이 살기에도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서울은 사람이 많이 살아서 돈 될 일이 많은 곳이니,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면 서울에 가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아야지요. 서울에서는 돈만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맑은 바람이나 물은 바랄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는 맑은 물을 돈을 비싸게 치러서 사다 마셔야 할 테지만, 시골에서는 맑은 물을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껏 누립니다.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제가 사는 고장인 고흥에서 나고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어른이 이 시골마을을 아름답게 사랑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같은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바로 숲이라고 하는 터전, 시골이라고 하는 터전, 흙이랑 풀이랑 풀을 만지면서 삶을 짓는 터전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국어학자가 돌보거나 가꾸는 한국말이 아니라, 시골사람이 시골스러운 손길로 시골스러운 사랑을 북돋울 때에 새롭게 태어나는 한국말이에요. 고맙습니다. 2015.9.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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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2. 들꽃아이



  스물하고도 여러 날 만에 두 아이를 데리고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군내버스를 타고 두 아이 옆에 함께 앉는데, 문득 우리 아이들은 ‘들꽃아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들녘에서 씩씩하게 피어나서 뿌리를 내리고 퍼지는 들꽃 같은 아이라고 할까. 큰아이는 들꽃순이요 작은아이는 들꽃돌이가 될 테지. 나는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삶을 지으면서 보금자리를 가꾸려 한다. 그러면 어버이인 나는 어떤 길로 나아갈까. 나는 이제껏 여느 어버이였다면 슬기로운 어른이 되는 길을 걸어갈 노릇이고, 제대로 철이 들어서 ‘숲사람’으로 거듭나야지 싶다. 숲어른이자 숲아비(숲어버이)가 되는 길을 간다고 할까. 이동안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물려받을 테니, ‘들꽃아이’에서 ‘숲아이’로 거듭난다. 큰아이는 숲순이가 되고 작은아이는 숲돌이가 된다. 나는 숲집에서 숲밥을 짓고 숲말로 숲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숲아이와 숲어른은 모두 숲바람을 마시고, 숲넋을 다스리면서 숲결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맞아들이기에 아이들은 처음에는 누구나 들꽃아이요, 이 아이들한테 어떤 숨결로 어떤 바람을 마시도록 이끄는가에 따라 숲아이도 될 테고 ‘다른 아이’로도 되리라 느낀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나아갈 길은 ‘숲아이’이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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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1. 사름벼리 산들보라 이름



  어제 면소재지 놀이터에서 두 아이를 놀도록 하려는데, 이곳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놀겠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 이름을 묻는다. 그러면서 저희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이름이 ‘넉 자’이고 ‘성이 없다’고 하는 대목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한다. 여덟 살 큰아이는 이곳 학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아무 말을 못 하고 놀지도 못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타이를 수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 아이들을 불러서 그만 가자고 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 이름이나 삶이나 동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자전거를 달려서 면소재지를 벗어나 들길이 나올 무렵 큰아이한테 얘기한다. “벼리야?” “응?”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마.” “응.”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어. 모르겠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묻는다고 벼리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어.” “알았어.”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모르겠어. 다시 한 번 얘기해 줘.” “누가 벼리한테 이름을 물으면,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라고 해.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누가 벼리한테 벼리 이름을 물으면 말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음, 못 들었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해.” “그 사람한테 그 사람 이름을 먼저 말하라고 했어요.” “벼리야, 이름이 뭔지 알아?” “음, 몰라.” “벼리하고 보라한테 붙인 이름은, 벼리와 보라가 이곳에 태어난 까닭이야. 그리고, 벼리와 보라가 앞으로 살아갈 사랑이야. 그래서, 벼리하고 보라 이름을 아무한테나 함부로 알려주지 않아. 마음으로 사귈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어른도 우리 아이들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들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못 알아듣기 일쑤이다. 왜 그러한가 하면, 아이들 목소리와 눈높이에 제 마음을 맞추어서 귀여겨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읊는 말을 한 번에 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늘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웃은 그야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똑같은 한 사람 숨결’로 아이들하고 마주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웃은 우리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나 누구하고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맺는 멋진 숨결이다. 자전거를 들녘 한복판에 세운 뒤 큰아이하고 찬찬히 이야기를 더 나눈다. “벼리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한테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말하지 않지?” “응.” “왜 그럴까?” “모르겠어.” “벼리야, 어머니 이름은 뭐지?” “응, 뭐더라.” “아버지 이름은?” “숲노래.” “그래, 어머니 이름은 라온눈이야.” “아, 그렇지.”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스스로 붙인 이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랑이야.” “응. 알았어.”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이름을 스스로 아끼면서 써. 벼리 이름도 보라 이름도 모두 뜻이 있고 사랑이야. 자, 아버지가 뭐라고 했지?” “벼리 이름에도 뜻이 있고 사랑이라고 했어요.” “우리 이 이름을 잘 생각하자.” 4348.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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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60. 함께 달리는 자전거



  어제 낮에 열엿새 만에 자전거를 다시 달렸다. 아직 오른무릎이 다 낫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걷기라든지 뭔가 몸을 움직이기는 해야겠다고 여기면서 자전거를 달려 보았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는 으레 두 아이를 태우고 수레까지 끄는 자전거인 만큼, 앞에서 끌어야 하는 힘이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언제나 발판을 씩씩하게 굴러 주니, 이 아이를 믿으면서 오른무릎은 살살 쓰면서 자전거를 달릴 수 있다. 큰아이는 혼자서 자전거를 버티어 주기도 한다. 얼마나 대견하면서 멋진가. 아이들은 어버이를 기다려 주고, 어버이는 아이를 기다려 준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본다. 다친 오른무릎이 천천히 아물면서 낫듯이, 내 가슴속으로도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이 새롭게 자라는구나 하고 느낀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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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59. 일을 맡길 적에



  자전거 사고가 난 지 꽤 지났어도 오른무릎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조금만 움직이거나 일을 해도 온몸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이러다 보니 두 아이한테 말로만 시켜야 하는 일이 부쩍 는다. 손으로 빨래를 못 하고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는데, 다 마친 빨래를 널 적에 아이들을 부른다. 여느 때에도 빨래를 널 적에 아이들을 부르기는 했으나 이제는 아이들이 더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에 나는 아이들한테 어떤 목소리로 심부름을 시키거나 일을 맡기는가? 문득 가만히 돌아본다. 아픈 오른무릎을 어루만지면서 대청마루에 앉아서 여덟 살 어린이한테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내 말이 여덟 살 어린이가 잘 알아들을 만한가를 돌아본다. 여덟 살 어린이한테 내 말이 따스하거나 너그러운가 하는 대목을 되새긴다. 어버이로서 아픈 몸이 아니었으면 그냥 혼자서 집일을 하거나 툭툭 내뱉는 말로 일을 맡기기도 했을 텐데, 아픈 몸으로 보름 남짓 지내고 보니,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한테나 하는 짧은 말마디일지라도 사랑을 어떻게 담아서 들려주어야 하는가를 새롭게 배운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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