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먹었기 때문에 잔다. 몸이 괴롭고, 마음이 생각을 새로 할 수 없어서 잔다. 자는 동안에 ‘앞서 먹은 것’을 씻어내고, 이제 가벼운 몸에 즐겁고 홀가분한 생각이 흐르도록 ‘꿈’을 꾼다. 꿈을 다 꾸었으면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몸에 밥을 안 넣으면(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온다. 몸에 밥을 안 넣을 적에는 잠을 자야 할 까닭이 없다. 이때에는 마음이 또렷하다. 어느 모로 본다면 ‘마음이 또렷한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주체할 수 없거나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밥을 먹는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또렷한 몸인 채 꽤 오래도록 움직였다고 여겨, 이제 몸을 쉬고 싶다고 느끼면서 밥을 먹는 셈일 수 있다. ‘마음이 또렷한 몸’이 낯설거나 두려운 나머지 밥을 퍼먹기도 한다. 이리하여 마구 먹고서 깊이 잠들려 하겠지. 그러나 꿈자리에는 ‘앞서 먹은 것’을 바탕으로 꿈이야기가 펼쳐지기 마련이라서, 즐거운 꿈을 못 꾸는 이가 많다. 왜 그러한가? 무엇을 먹든 먼저 ‘먹을거리한테 마음으로 말을 걸어’서 ‘어떠한 먹을거리라도 우리 몸빛에 걸맞도록 숨빛이 달라지도록 해놓아’야 하는데, 이를 안 하면 힘겨운 꿈에 시달린다. 자, 더 생각해 보자. 잠을 안 자기에 이튿날 찌뿌둥할까? 잠을 안 자면 몸이 찌뿌둥하다고 여기는 ‘사회의식에 길든’ 탓에 찌뿌둥하고 여기지 않는가? 우리는 며칠 동안 잠을 안 자도 멀쩡하고, 며칠 동안 안 먹고 안 자도 몸이 튼튼할 뿐 아니라 외려 한결 거뜬하기 마련이다. 이제 사회의식을 버릴 때이다. 즐겁게 꿈을 꾸고 싶기에 모든 먹을거리를 즐거운 숨결로 돌려놓고서 즐겁게 누리면 된다. 2016.12.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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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모든 벌레는 의사이다. 모든 벌레는 사람한테 찾아와서 이 몸뚱아리에서 막힌 데를 뚫어 주려고 한다. 벌레가 사람 몸뚱아리를 보듬거나 다루거나 짚는 모습을 살핀 눈밝은 이는 나중에 뛰어나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한 의사 노릇을 한다. 몸에 바늘을 꽂거나 째거나 뚫는 벌레 몸짓도 배우지만, 벌레가 좋아하는 풀잎이며 열매도 찬찬히 보면서 배운다. 2016.12.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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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 : 아이들이 거친 말씨라면, 아이들이 누구한테서 그런 거친 말씨를 배웠기 때문일 테지. 아이들이 거친 말씨를 쓰니, 먼저 아이들한테 그런 거친 말씨는 바로 너희 마음이랑 삶을 거칠게 하는 줄 찬찬히 짚고 이야기로 들려주면 된다. 그리고 어른 스스로 얼마나 거친 말씨로 이 삶터를 옥죄는가를 돌아보면서 손질할 노릇이겠지. 생각해 보라. 어른이 이룬 이 삶터에서 아름답고 상냥하며 착하고 즐거운 말씨를 쓴다면 온누리 어떤 아이가 거친 말씨를 쓸까? 아름다운 어른 곁에서 아름다운 말씨를, 상냥한 어른 곁에서 상냥한 말씨를, 착한 어른 곁에서 착한 말씨를, 즐거운 어른 곁에서 즐거운 말씨를 배우리라. 그런데 텔레비전이며 영화이며 유투브이며, 게다가 갖가지 책에도 그저 거친 말씨가 춤을 춘다. 아이들 거친 말씨를 아예 탓하지 않을 수 없지만, 뿌리를 보고 둘레를 볼 노릇이다. 1987.12.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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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날 때 : “언제 이런 걸 다 했어?” “뭐, 그냥 틈날 때 했어.” “너무 바빠서 빈틈이 없네.” “그러게, 바쁘니까 내는 때가 틈인걸.”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따라서 ‘틈’은 다르다. 너무 바쁘니까 틈을 못 내기도 하고, 너무 바쁘기에 틈을 내기도 한다. 남이 만들어 주는 틈이 아닌, 스스로 내는 틈이다. 그리고 이 틈이야말로 모든 일을 즐겁게 이루어 사랑스레 맺는 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틈을 내는 사람은 마음을 틔우니 눈길이 트고 생각을 새로 연다. 틈을 내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마음을 틔우지 못해 눈길도 생각도 새로 열지 못하거나 않는다. 보라, 책 하나 읽을 틈이 없는 사람하고, 책 하나 읽으려고 쪽틈을 내는 사람을. 또 보라, 꽃 한 송이 냄새 맡을 겨를이 없는 사람하고, 꽃 한 송이 냄새 맡으려고 길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앉아 들꽃에 코를 대는 사람을. 두 사람 틈에는 무엇이 있는가. 1999.9.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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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쓰는 글 : 그림책은 누구나 읽는 책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그림이며 글을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많이 배운 사람만 알아볼 수 있다든지, 어린이가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말은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쉬운 말’이 누구한테 어떻게 쉬운 말인가를 찬찬히 알아야 할 테지. 세 살 아이한테 ‘쉬운 말’이란 무엇일까? 다섯 살 아이한테 ‘쉬운 말’이란 무엇일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는 무턱대고 ‘쉬운 말’을 쓰지 않는다. 첫째로는, 줄거리를 살필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춘 말’을 쓴다. 둘째로는, 줄거리에 담은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추면서, 이 말을 바탕으로 생각을 새롭게 지피도록 잇는 다리 구실을 하는 말’을 곁들여서 쓴다. 두 갈래 말을 그림책에 써야 하는 셈일 테지. 보기를 들어 보면 이렇다. “개미가 짐을 지고 가네.” 같은 글줄이 나올 수 있는데, 아이는 ‘짐’을 모를 수 있다. “‘짐’이 뭐야?” 하고 물으면 “응 ‘지는’ 것을 ‘짐’이라고 해요. 그래서 “짐을 지고”라 하지.”라 보탤 만하다. 이다음으로 “개미는 짐이 많아 지게에 지고서 가요.” 하는 글줄이 나올 수 있으니, 아이가 다시 “‘지게’가 뭐야?” 하고 물을 테고 “응, ‘지는’ 것을 담으려고 하는 것을 ‘지게’라고 해. 우리가 뭘 집을 적에 ‘집게’를 쓰지? 집을 적에는 ‘집게’, 짊어질 적에는 ‘지게’를 쓰지.”처럼 들려줄 만하다. 그러니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흐르는 말은 삶이며 살림이며 사람이며 숲이며 사랑을 읽는 바탕이 되는 말이 하나이면서, 바로 이 바탕말에 살을 입혀서 찬찬히 너비나 깊이를 더하는 말이 둘인 셈이다. 다릿목처럼 잇는 말을 쓸 노릇이라고 할까. 보기를 더 들어 본다. 어른한테는 익숙할 한자말 ‘항상’일 테지만, 그림책이나 동화책에서는 이 한자말이 아닌 ‘늘·언제나’를 비롯해서 ‘한결같이·줄곧’ 들을 쓸 적에 말빛을 슬기롭게 일깨울 만하다. 왜 그럴까?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을 하나둘 입으로 터뜨리고 눈으로 보여주고 줄거리란 살을 붙여서 이야기로 들려줄 적에 아이는 마음으로 이모저모 생각이란 씨앗을 스스로 심을 수 있다. 단답형 시험문제처럼 외워야 하는 낱말이 아닌, 이 낱말을 듣고 헤아리면 다른 낱말을 어림할 수 있고, 그 다른 낱말에서 새로운 낱말을 생각하고 깨닫도록 하는 낱말이 바로 슬기요 노래가 된다. 한자말 ‘음악’이나 영어 ‘뮤직’은 어떨까? 이런 말도 나중에, 아마 열대여섯 살쯤 지나서 쓸 수 있으리라. 그러나 어린이는 ‘노래’ 하나를 바탕으로 삶을 더 깊고 넓게 읽도록 하는 길을 둘레 어른이 상냥히 이끌어야지 싶다. 즐겁게 노래하고, 새랑 풀벌레가 노래한다. 놀이를 하며 노래를 한다. 같이 노래를 하고, 혼자 노래를 한다. 일하며 노래하고, 마실하며 노래한다. 하루를 노래하고, 별빛을 노래한다. 어린이노래라는 ‘동요’란 ‘단출히 지은 이야기인 동시’에 가락을 입힌 숨결이니, 이 모두가 어떤 노래란 숨인지 두고두고 다스리고 누릴 적에, 이다음으로 온갖 말을 건사할 만하다. 한국은 아직 ‘그림책 글’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다루거나 돌보거나 손보는 눈길이 없다고 느낀다. 어린이 눈높이를 안 살피는 그림책 글월이기도 하고, 어린이 살림결을 안 읽는 그림책 옮김말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그림책에서뿐 아니라 어른문학이나 인문책이나 여느 교과서도 사회 곳곳에서 쓰는 모든 말도 ‘삶을 바탕으로 새롭게 생각을 지피는 말’을 써야 아름다울 텐데. 2019.12.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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