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생각
― 사진 둘 (4346.2.2.흙.ㅎㄲㅅㄱ)

 


비를 맞아 젖은 신
섬돌에 기대면
세 살 작은아이
아버지 손짓 따라
다른 신 얌전히 곱게
섬돌에 기댑니다.

 

여섯 살 큰아이
까르르 웃고 노래하면
세 살 작은아이
누나 따라 웃고 노래하며,
아이들 어머니가
고운 눈빛으로 들길 걸으면
아이들도 어머니 따라
고운 눈빛 되어 들길 걸어요.

 

겨울이기에 겨울바람 불고
봄에는 봄바람 불지요.
여름에는 여름햇살 드리우고
가을에는 가을햇볕 쏟아져요.

 

철을 느끼는 살갗은
사랑을 느끼는 가슴.
날씨를 헤아리는 살결은
꿈을 헤아리는 마음.
사람을 생각하는 넋이
사진을 생각하는 넋이기에,
내가 선 곳
내가 사는 터
내가 숨쉬는 데
내가 사랑하는 자리
어떤 모습인지 바라봅니다.

 

어버이 쓰는 말이
아이들 쓰는 말이듯,
숲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웃을 바라보는 눈빛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몸짓이
사진으로 살아가는 몸짓입니다.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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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5

 


어떤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진인가
― I dream a world
 Brian Lanker 사진·글
 Stewart,Tabori & Chang 펴냄,1989

 


  브라이언 랭커(Brian Lanker) 님이 일군 사진책 《I dream a world》(Stewart,Tabori & Chang,1989)를 들여다보면 미국 사회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흑인 여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책에 나오는 미국 흑인 여성은 널리 이름난 사람일 수 있고, 미국 사회에만 잘 알려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못한 사람이라 할 때에 옳지 싶어요.


  사진쟁이 브라이언 랭커 님은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를 빚은’ 사람으로 ‘흑인 여성’을 꼽았다고 합니다. 다만,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라 할 때에는, 전쟁미치광이가 있는 미국 사회가 아니요, 작은 나라 씨앗을 모두 사들여 유전자 건드린 채 비싸게 팔려는 미국 사회가 아닐 테지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괴롭히는 미국이라든지, 전쟁무기 끔찍하게 만들어 이 지구별에 전쟁판 불러일으키는 미국도 아니리라 느껴요.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꽃피우면서 널리 퍼뜨리려고 힘쓴 사람들이 있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사랑을 속삭이고 꿈을 노래하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어둡고 퀴퀴한 정치와 사회와 경제 먼지띠를 걷어내면서, 따사롭고 너그러우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려 하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사람을 담는 사진쟁이들은 으레 ‘여러 갈래 여러 자리’에서 일하거나 힘쓰는 사람들 얼굴을 담곤 합니다. 어느 사진쟁이는 달동네 가난한 이웃 얼굴을 담고, 어느 사진쟁이는 정계·재계 권력층 이웃 얼굴을 담습니다. 글쟁이나 그림쟁이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고, 굿을 하는 사람이나 인간문화재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어요. 아이들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으며, 나라밖에서 맑은 웃음빛을 찾으려는 사진쟁이가 있어요.

 

 

 


  모두 이웃을 찾으려는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어떤 이웃이 당신한테 가장 살가우며 반갑고 아름다운가 하는 삶결을 찾으려는 몸짓입니다. 달동네 가난한 이웃 얼굴이든 정계·재계 권력층 이웃 얼굴이든 똑같습니다. 모두 우리 이웃이에요. 한국에서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분들 얼굴이든, 티벳이나 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얼굴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저마다 우리 이웃입니다.


  누구를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찍으면 됩니다. 누구를 찍었기에 더 낫지 않고, 누구를 아직 못 찍었기에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나를 둘러싼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가 하는 꿈을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사진학교를 안 다녔어도 사진을 즐겁게 찍습니다. 사진책을 얼마 못 읽었어도 사진을 재미나게 찍습니다. 사진강의를 모르지만 사진을 웃으며 찍습니다. 사진이론을 들은 적 없어도 사진을 해맑게 찍습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서로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서로서로 따사롭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이웃입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꿈을 꾸면 됩니다. 내 살가운 이웃이 누구인가 하고 꿈을 꿉니다. 나는 누구하고 살가운 이웃으로 지낼 때에 즐거운가 하고 꿈을 꿉니다. 내 이웃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지 꿈을 꿉니다. 나하고 이웃한 사람하고 어떤 사랑을 꽃피우며 활짝 웃고 싶은지 꿈을 꿉니다.


  ‘꿈을 찍는 사진’이라는 말이 찬찬히 퍼지는 까닭을 생각해 봐요. 사진이 어떻게 꿈을 찍을 수 있는지 헤아려 봐요. 내 사진은 ‘내 꿈’을 얼마나 담는지 곱씹어 봐요. 내 사진이 ‘내 이웃 꿈’을 얼마나 담는지 되새겨 봐요.


  꿈을 찍지 못할 때에는 이웃을 찍지 못합니다. 꿈을 찍을 때에는 이웃을 찍습니다. 꿈을 찍지 못한다면 ‘내 사진’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꿈을 찍기에 ‘내 사진’이 싱그럽게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진이 즐거울는지, 어떤 사진이 사랑스러울는지, 어떤 사진이 싱그럽게 빛날는지, 어떤 사진이 고운 이야기 꽃피울는지,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요. 사진 하나로 주고받는 이웃사랑·이웃잔치·이웃노래입니다.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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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빚기
― 다시 쓰는 사진

 


  숨을 거두어 이제 다시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없는 분들 작품이 ‘회고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걸리곤 합니다. 이제 이 땅에 없는 분들 작품을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아직 팔팔하게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길을 걸어갈 분들 작품이 ‘회고전’이나 ‘초대전’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다시 걸리면 적잖이 서운합니다. 왜 같은 사진을 다시 걸어야 할까요. 전국을 두루 돌며 사진을 보여주는 잔치마당이라 한다면, 같은 사진을 들고 전국을 돌 만하지만, 지난번에 내건 사진을 새 잔치마당에 거는 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다섯 해 앞서 내놓은 사진을, 열 해 앞서 내놓은 사진을, 스무 해 앞서 내놓은 사진을, 새삼스레 들추는 사진잔치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창작하는 사람입니다. 사진작가는 사진을 늘 새롭게 빚는 사람입니다. 생각을 빚으면서 삶을 빚고, 삶을 빚으면서 사진을 빚습니다. 사진을 빚으면서 이야기를 빚고, 이야기를 빚으면서 사랑을 빚어요.


  지난 어느 한때 아주 놀랍구나 싶은 사진을 찍었기에, 이 사진들을 두고두고 새로 내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주 놀랍구나 싶은 사진을 찍어서 한 번 선보였다면, 이 사진들은 사진책에 알뜰히 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주 놀랍구나 싶은 사진은 사진책에 아름답게 담아서, 이 사진책을 사람들이 즐겁게 장만하도록 북돋우고, 사람들은 즐겁게 장만한 사진책을 언제라도 기쁘게 꺼내어 들여다보아야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작가라 한다면, 새로운 사진책을 꾸준하게 펴낼 수 있게끔, 새로운 창작(사진)을 꾸준하게 선보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날마다 새로운 넋이 되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에 새로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만화로든 춤으로든 노래로든, 또 사진으로든 빚기에, 삶이 거듭나면서 문화와 예술이 자랍니다.


  작가는 ‘재탕(다시 쓰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작가는 늘 ‘창작(새롭게 일구는)’하는 사람입니다. 새 삶을 일구면서 새 사진을 일구지 못한다면, 이녁은 ‘작가’라는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새 사진도 새 삶도 새 넋도 일구지 못하는데, 어찌 ‘빚는 사람(작가)’라는 이름을 쓸 수 있나요.


  나는 일본이나 미국이나 서양을 가 보지 못했기에, 이들 나라에서도 ‘다시 쓰는 사진’으로 잔치마당 여는 사진작가들 있는지 잘 모릅니다. 나는 한국에서 살아가기에 내 둘레 적잖은 사진작가들이 ‘다시 쓰는 사진’으로 잔치마당을 자꾸 열고, 사진책마저 ‘다시 쓰는 사진’을 거듭 싣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한국 사진밭은 너무 좁은가요. 한국 사진밭은 너무 얕은가요. 꾸준하게 창작하기보다는 한 번 아주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으면 더는 창작을 안 해도 될 만한가요. 아주 놀랍다 싶은 사진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사진은 더 찍을 수 없는가요. 아니,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놀라우며 날마다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는가요. 사진도 삶도 생각도 사랑도 언제나 아름답게 빛낼 수 없는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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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작품과 사진

 


  사진길을 걷는다고 하는 오늘날 적잖은 이들은 ‘사진쟁이’ 아닌 ‘예술쟁이’로 나아가곤 합니다. 이들은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다든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다든지 합니다. 곧, ‘예술이라 할 만한’ ‘작품’을 만들곤 합니다. 멋들어진 모습을 찍는대서 잘못이 아니요,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을 찍는대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멋들어진 모습이란 그저 멋들어진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 또한 그저 남들은 아직 안 찍는 모습입니다.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 작품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품이요, 사진이 아닙니다. 작품을 만들면 작품을 만들 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면서 생각을 빛내고 사랑을 나누는 하루 이야기를 찍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이란,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입니다. 삶이고 생각이며 사랑이요 이야기를 가만히 엮을 때에 알알이 빛나는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가 드러나서 사진이요, 사랑스러운 이야기이기에 사진이고, 삶이 묻어날 때에 사진입니다.


  작품은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작품은 돈이고, 이름값이며, 권력입니다.


  사진은 이야기 있는 삶입니다. 사진은 사랑이고, 생각이며, 꿈입니다.


  사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삶을 누리면 됩니다. 저마다 누리는 삶을 사랑하고 아끼며 좋아하면 저절로 사진이 태어납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하며 즐길 때에 손에 사진기를 쥐면 사진이 태어나고, 내 삶을 내가 좋아하며 누릴 적에 손에 연필을 쥐면 글이 태어나요.


  작품을 만들 때에는 예술쟁이나 작품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쟁이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누리는 삶빛일 때에 사진빛이에요. 사랑을 나누는 사랑씨앗일 때에 사진씨앗입니다. 꿈을 펼치는 꿈날개일 때에 사진날개예요. 사진을 아름다이 즐기려는 분들이 사진을 스스로 곱게 보살피면서 활짝 웃는 하루를 알뜰살뜰 꾸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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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 사진을 읽는 사진

 


  사진을 읽고 싶은 사람은 ‘사진을 읽으’면 됩니다. 딱히 다른 것은 없습니다. 사진을 읽고 싶으니 사진을 읽을 뿐입니다.


  문학이론이나 예술이론을 읽고 싶은 사람은 ‘문학이론이나 예술이론을 읽으’면 됩니다. 이뿐이에요. 더도 덜도 없습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사진을 읽습니다. 곧, 나 스스로 사진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꾸밈없이 읽고 싶으면, 이대로 ‘꾸밈없이 읽으’면 되지요. 어떤 이론을 내세워 사진을 조각조각 자르고 싶으면, 이렇게 이론을 내세워 조각조각 자르면 돼요. 꾸밈없이 읽는대서 더 훌륭한 사진읽기는 아니고, 이론을 내세운대서 더 나쁜 사진읽기이지 않아요. 모두 스스로 즐기는 사진읽기입니다.


  누군가는 ‘배운 티를 내려’는 사진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배운 티를 내려고 해야지요. 이녁 삶이 이와 같은걸요. 누군가는 ‘바라보며 느낀 그대로’ 사진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며 느낀 이야기가 절로 쏟아지는걸요.


  사진읽기란 삶읽기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가 느껴 읽는 사진’이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 생각하는 결에 맞게 내 삶이 이루어지고, 나 스스로 즐기는 삶결에 맞춰 사진읽기가 거듭납니다. 사진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이론을 들춘다 한다면, 이녁은 여러 이론을 배우며 사진을 읽고 싶은 마음이니, 이 마음 그대로 사진과 만나면 돼요. 가슴에서 샘솟는 느낌을 찾아 사진을 깨닫고 싶다 한다면, 그저 내 눈과 가슴을 믿으며 사진을 만나면 돼요. 더 낫거나 덜 떨어지는 사진읽기는 없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진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이론을 배운 적 없을 뿐더러, 이론을 생각할 틈이 없으니,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대로 사진을 맞아들입니다. 흐르는 사진을 바라보고, 흐르는 사진을 즐깁니다. 재미있구나 싶으면 재미있게 느끼고, 즐겁다 싶으면 즐겁다 느낍니다. 예쁘다 싶으면 예쁘다 느끼면 돼요.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는 모양새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무늬와 결대로 사진을 읽습니다. 나를 찾고 나를 생각하며 나를 읽으면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즐기며 나를 빛내면 됩니다. 사진읽기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합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 모두를 들여 이룹니다. 434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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