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Green 리빙그린 - 먹을거리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친환경 생활 지침
그레그 혼 지음, 조원범.조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알려고도 안 하니 세상이 안 바뀝니다
 [잠깐 읽기 13] 그레그 혼, 《Living Green》



- 책이름 : Living Green
- 글쓴이 : 그레그 혼
- 옮긴이 : 조원범, 조향
-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2008.8.11.)
- 책값 : 11000원


 (1) 지구 환경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누구


.. 매일 50∼100종의 야생 동식물이 인간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이 세계 자원의 25퍼센트를 소비한다. 소비된 자원의 대부분은 결국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물로 버려지거나 태워진 후 대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장기간에 걸쳐 황폐하게 한다 …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따라 사는 평균적인 미국인 한 사람은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스를 한 해 평균 24톤 이상 배출하고 있다 ..  (29쪽)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쉰에서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사람처럼 살려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Living Green》에 나오듯 날마다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서 사라지는데(예전에는 훨씬 많이 사라졌으나 요즈음은 ‘사라질 만한 생물종이 벌써 많이 사라졌’기에 이만한 숫자로 줄어들었습니다), 세계 인구가 100이라 한다면 미국사람은 5퍼센트 숫자로 25퍼센트라는 숫자나 되는 자원을 쓰고 있으니,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여덟 곱절이 넘는 자원’을 쓰는 셈이며,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같은 ‘과소비’ 나라를 빼고서 헤아린다면, 이른바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한 가지 들풀이나 들짐승조차 죽이지 않으나, 미국사람은 날마다 쉰 가지쯤 죽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사람들 자원 소비량을 따져 보아야 할 텐데, 우리들 한국사람도 날마다 열 가지쯤 되는 들풀과 들짐승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미국사람들 때문에, 또 미국사람과 같은 살림살이를 꾸리는 한국사람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숫자나 부피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도시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가용을 몰면서 일터를 오가거나 볼일을 보는 동안 꽃 하나가 죽고 나무 하나가 시들며 들짐승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예 저승으로 가고 맙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조금 적게 죽인다고 하지만, ‘죽이는 꼴’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해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일터에서 일하고, 정 어쩔 수 없으면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논밭을 일구며 살듯, 도시에서도 우리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오갈 거리에 있는 일터가 아니라, 집 가까운 곳 일터를 얻거나, 일터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먼 기름을 먹는 교통 흐름을 줄이고, 사람(바로 우리)들 때문에 애꿎게 죽어 나가는 풀과 짐승 보금자리를 지킵니다(말은 참 쉽다고 하지만, 더 많은 벌이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벌이가 좀 적더라도 생각과 매무새를 고친다면, 더 나아진 삶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한결 넉넉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면서, 사람다운 길이 무엇인가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 재품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져 볼 때 즉석 식품은 값이 턱없이 비싸다. 또한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 그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  (67쪽)


 저는 손빨래를 하고, 손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서 찬거리를 마련하고, 손수 다듬어서, 손수 밥을 하고 손수 밥상을 차리고 손수 설거지를 합니다. 그제 저잣거리에서 버섯 한 근을 오천 원어치 산 다음 미역국을 끓이는 데에 반을 넣고, 감자와 빨간무와 양파를 썰어서 함께 무치는 데에 반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이틀치 네 끼니를 먹을 수 있더군요. 두 식구가. 모두 여덟 끼니치가 나온 셈이니 한 끼마다 버섯을 배불리 먹어도 한 사람 앞에 600원 조금 더 치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섯밥집에 가서 버섯찌개를 시켜서 먹었다면, 두 사람 한 끼니에 만 원을 훌쩍 넘었을 터이며, 찌개에 버섯보다 버섯 아닌 푸성귀가 훨씬 많이 들어 있었을 겝니다. 더욱이 갖가지 화학조미료를 잔뜩 뿌렸을 터이니 우리 몸에 좋을 턱이 없습니다.

 버섯을 다루는 밥집까지 찾아가는 데에 드는 시간, 밥이 나오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 밥을 먹으며 치르는 돈,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헤아려 보면, 제 두 발로 저잣거리를 찾아가서 버섯을 산 뒤 집에 와서 손질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무침을 마련하는 데 들어간 품이나 시간이 훨씬 적습니다(‘탄소배출량’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밥집에 가서 밥을 시켜서 먹기 때문에 밥집에서 따로 전기를 돌리고 간판불을 켜고 물을 쓰고 직원을 쓰며 가게를 꾸미고 하는 것들도 따로 돈이 들어간 일이라서, 돈 몇 푼 치르고 밥을 사먹은 셈이라고만 쉬 넘길 수 없습니다). 몸에는 더욱 좋고 맛은 훨씬 나으며 돈은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 일회용 기저귀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는 여러 쓰레기들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180억 개의 일회용 기저귀가 사용된다. 그리고 500만 톤의 배설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로 기저귀와 함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  (84쪽)


 이웃 할머니가 당신 손주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고, 옆지기 어머님이 당신 막내아들(내 처제)을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습니다. 천으로 된 이 기저귀들은 날마다 마흔 장쯤 빨아야 아기 똥오줌에 댈 수 있습니다. 우리는 1회용 기저귀를 써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1회용 기저귀를 쓴다고 치면, 며칠에 한 번쯤, 큰 상자를 하나씩 들여야지 싶습니다. 1회용 기저귀가 오줌을 여러 번 받아들여서 덜 갈아 주어도 된다고 하지만, 오줌을 누었을 때 바로바로 닦이고 기저귀를 갈 때와 여러 번 누도록 그대로 둘 때하고, 아이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1회용 기저귀를 쓰게 되면, 이 1회용 기저귀는 곧바로 쓰레기가 되어 땅에 묻혀 버리니, 아이가 살아갈 터전을 더럽히는 셈입니다.

 날마다 1/4씩 빨래를 하는 데에 쓰면서 한 달쯤 보내다 보니까, 엊그제부터 어깨죽지가 결리고 등 힘살이 모두 굳어집니다. 오늘은 기저귀를 빨 때 몹시 힘겹습니다. 그래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옥상마당에 널어 놓고 말린 다음 거두어들이는 동안, 이 일이 고되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얼른 빨래를 마치고 아기와 옆지기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옆지기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기가 잘 자거나 노는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얼른 미역국을 끓이거나 덥히고 찬거리 하나 마련합니다. 아기는 우리가 평화로이 밥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에, 밥을 차려도 삼십 분쯤은 밥숟갈을 못 뜨는데, 말을 못하는 아기한테 우리 삶을 맞춰야지, 우리한테 아기를 맞출 수 없으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들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돈벌러 일 나가고 어머니 혼자서 집에서 살림 다하고 밥 다하고 빨래 다하면서 아기까지 돌보았을 텐데, 몸풀이나마 제대로 하면서 그 일을 다 치러 내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수월해지거나 가벼워지는 쪽을 찾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구태여 기계와 전자제품을 쓰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아이가 느껴 주기를 바라고,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오래오래 많이 타면서 아이가 자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삶터에 하나라도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도록 하는 삶이 아닌 가운데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몸으로 느낍니다.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은 책이나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고, 아이 어버이인 우리 두 사람이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이 스스로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떠드는 ‘자연스러운 삶’을 꾸리면서 도시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치러 내면서 자연스러울 삶을 찾아나가야, 이런 어버이들 부대낌이 아이한테 하나하나 스며든다고 느껴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야 아이도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착하고 곱게 살도록 힘써야 아이도 착하고 곱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기를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우리 삶터를 1회용품과 갖가지 전기제품으로 무너뜨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기 몸과 자기가 디딘 땅을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2) 알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세상인데


 ‘푸르게 푸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게 된 어느 미국사람이 쓴 《Living Green》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주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이름값도 드높은 분입니다. 그러나 똑똑함은 지식이 많음일 뿐이었고, 돈이 많음은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주머니만 불리는 일이었으며, 이름값이 드높음은 말짱 헛것이나 뜬구름이었다고 깨닫습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몸이 아프고 저리고 쑤신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고, 자기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돈벌이와 이름값 올리기와 도시에서 물질문명 누리기’를 저버리지 않는 가운데 ‘푸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 나는 양상추가 펼쳐져 있는 거대한 들판에 서서 밝게 빛나는 녹색 잎사귀로 꾸며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생각했다. 이 광대한 녹색 들판에 감탄하다가 나는 농장 인부들이 긴 소매 옷을 입고 두꺼운 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얼굴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 농장 주인 말에 의하면 상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대 50가지 종류의 살충제와 살균제 그리고 제초제를 평균 12번 정도 밭에 뿌린다고 했다. 고무장화와 장갑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매일 먹는 화학 물질로부터 농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였던 것이다! … 내가 화학제품을 사용한 상추를 사기 때문에 농약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토양이 오염되는 것이다 ..  (44쪽)


 며칠 앞서 ‘국민과의 대화’를 했던 대통령 이명박 씨가 ‘탄소배출량’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탄소배출 문제를 꺼내기는 했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자기는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하나도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탄소배출을 엄청나게 늘릴 ‘뉴타운 개발’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농촌도 뉴타운으로 한 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하고 공장도 짓고 쇼핑센터도 세우고 뭣도 해야 발전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는 동안 쏟아져나올 탄소는 어찌하게 될까요. 논밭과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어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만큼 ‘나무를 심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나무가 조용히 잘 자라던 땅에 있던 나무를 베어낸 뒤, 어디에다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이미 심겨진 자리에 또 심을까요? 나무와 나무 사이는 몇 미터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무 백만 그루를 심을 땅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요? 아니, 우리 나라에 나무 심을 땅이 남아 있기나 한지요. 그리고 나무만 심는다고 환경사랑이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람사조약에 가입을 해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람사대회를 치르기로 한 한국이면서, ‘새만금 메우기를 대법원에서 인정’해 버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환경생각이 없었고, 법조계 분들도 환경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법조계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론계는 어떠하며, 교육계는 어떠할까요. 재계는 어떠하고 과학계는 어떠할까요. 건설업 하는 분들은 어떠하며, 여느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지요.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환경생각을 하면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을까요.


.. 이것이 왜 문제인가?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181쪽)


 이야기책 《Living Green》을 덮으면서, 예전에 읽은 《즐거운 불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오늘저녁이면 다 읽게 될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이라는 책이 자꾸만 겹쳐집니다.

 그러나 《모래 군의 열두 달》(알도 레오폴드)이나 《씨앗의 희망》(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나 《회색곰 왑의 삶》(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이나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이나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나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 같은 줄거리나 마음결을 바라면서 《Living Green》을 읽지 않았습니다. 또, 바랄 수 없으며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Living Green》을 쓰신 분은 ‘미국사람으로서 자기 소비 문화를 버릴 생각이 없는 가운데, 될 수 있는 만큼 환경파괴를 줄이는 길을 찾기’로 걸어간 보기 드문 분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환경파괴를 일삼고 있는 자기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모두인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만큼 알아보고 생각하고 자기 삶도 조금은 고치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한데, 《Living Green》에는 ‘즐거운 불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조금 더 돈을 치르면 얼마든지 더 환경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린 헬스, 그린 홈, 그린 퓨처”로 나뉘어진 《Living Green》에서 말하는 ‘푸름(그린/녹색)’은 ‘좀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문화로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한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자기 아이들(글쓴이한테는 손자)한테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나라안에도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박경화) 같은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만, 이 책도 ‘자기 실천’에서는 그다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정혜진)라는 책은 《Living Green》과 견주어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삶이란 없기에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고, 글쓴이 나름대로 환경 이야기를 쓰는 기자로서 입으로만 떠들지 않겠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터는 ‘녹색 소비’만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라면, ‘녹색 소비’만으로는 세상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풀빛을 닮지 않으면, 스스로 풀빛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을 넘어서면서 ‘풀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구 삶터 지키기나 가꾸기는 이룰 수 없습니다. 환경사랑은 쓰레기 줍기부터 실천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쓰레기 안 버리기가 먼저요, 쓰레기 안 만들기가 먼저요, 삶터를 푸르게 가꾸기가 먼저입니다. 삶터를 푸르게 가꾸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번 더 많은 돈으로 나무를 심겠다’는 ‘탄소상쇄’는, 우리 삶터 밑뿌리는 곪은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잎과 꽃만 예쁘게 키우려는 마음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나마, 알려고 애쓰니 이만한 책 《Living Green》을 쓰고, 이만한 책이라도 읽고서 다문 한 가지라도 ‘녹색소비’를 해 준다면 우리 삶터는 아주 티끌만한 크기로라도 달라질 테지만, 날마다 수십 수백 가지 목숨붙이가 죽어 사라지는 마당에, 터럭만큼 나아지게 하는 삶으로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지구는 너무 더러운 땅덩이가 되고 맙니다. (4341.9.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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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 2
최엄윤 지음 / 이매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63 ― 도시가 고향인 분한테 바치는 선물
 : 최엄윤,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책이름 :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글쓴이 : 최엄윤
- 펴낸곳 : 이매진(2007.9.21.)
- 책값 : 9000원



 (1) 골목 문화


 촬영작가로 일하는 분하고 인천 골목길을 걷습니다. 촬영작가는 ‘인천 배다리에서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을 찍으려 한다면서 찾아왔고,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은 촬영작가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비가 오는 낮, 한 사람은 비옷을 입고 비옷 안쪽에 사진기를 가리며 걷습니다. 한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고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걷습니다. 인천시장이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1자로 죽 잇는 길’을 낼 생각으로 뚫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공사 예정터’ 울타리가 높이 가로막은 골목길을 걷습니다. 숱하게 걸은 이 길을 또 걷습니다. 서울 옥수동과 금호동 쪽에서 살다가 중학교 적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촬영작가한테 이 오래된 골목길은 옛생각을 떠오르게 해 줄지, 아니면, 그냥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그럴싸하게 다가갈 모습일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고즈넉한 동네로 느껴질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바라면서 함께 거닐 뿐입니다.

 울타리는 어른 키보다 높아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울타리 바로 옆으로 죽 잇닿은 골목집마다 크고작은 텃밭을 가꿉니다. 텃밭이 없으면 꽃그릇에 꽃과 풀을 심어서 가꿉니다. 가지가 달리고 고추가 맺히고 상추가 웃자라며 깻잎이 우거집니다.

 산업도로 공사터를 들여다볼 개구멍을 찾는데 모두 막혀 있습니다. 시청 공무원이 어느새 나와서 죄다 막아 놓았군요. 다시 뜯어내지 못하게 아무 야물딱지게 조이고 동여 놓았습니다.

 이 동네에서 ‘바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볼썽사나운 울타리를 쳐 놓아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게 합니다. ‘곧 재개발로 쓸어낼 동네에서 안 떠나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햇볕 쬘 권리’조차 없구나 싶습니다. 한 몫 사람 대접을 바랄 수 없구나 싶습니다.





.. 문화 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스스로의 가치마저 쉽게 외면해 버리는 대표적 공간 중 하나는 바로 ‘철거지역’이다. 근대문화의 가치들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고 부동산의 가치만이 존재할 뿐 아니라, 대부분 철거지역은 도시 빈민이 밀집한 지역인 경우가 많아 문화 활동 공간 역시 전무하다 ..  (9쪽)


 금곡동과 창영동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유동으로 접어듭니다. 골목에서 찻길로 나오니 시끄럽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가 귀가 멍멍합니다. 차를 모는 분들은 차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못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차에서는 노래를 듣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테지요. 이런저런 소리에 갇혀서, 차가 뿜어내는 소리와 차가 뱉어내는 방귀와 먼지와 차가 쏟아내는 뜨거운 기운이 거님길을 오가는 사람한테 옴팡 뒤집어씌워지는 줄 느끼지 못합니다.

 유동을 가로질러 율목동으로 접어들 무렵, 무슨 모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듯한 할머님과 마주칩니다. 길을 내어 드리고 옆으로 지나갑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좁은 골목을 지납니다. 낮은 천장을 따로 줄기를 뻗는 덩굴을 보고, 여름내 고추를 말리려고 마련해 둔 길다란 말림대를 봅니다. 올망졸망 붙어 있는 집들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텔레비전 소리일지 밥하는 소리일지 식구들이 얘기하는 소리일지 아이들한테 숙제하라고 채근대는 소리일지 전화하는 소리일지 어렴풋하게 헤아려 봅니다.

 차 다니는 길로 나옵니다. 두찻길로 된 두 찻길을 따라 하염없이 서 있는 차들, 그리고 이처럼 서 있는 차 사이로 삐쭉빼쭉 머리 디밀며 빠져나가려는 차들. 그리고 이 차들한테 치이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비키면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살금살금 길을 건너면서, 시멘트벽을 하얗게 바른 골목집 앞에 자라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낯익은 잎사귀인데 무슨 나무인지 아리송하다고 느끼려는 이때, 푸른빛 싱그러운 뾰족뾰족 가시가 눈에 뜨입니다. 밤송이입니다.


.. 다시 한 번 여쭈었다. 왜 재개발에 동의할 마음이 없으신가요? 그제야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첫째, 재개발을 하면 서로 얼굴을 못 본다는 것이다 … 둘째, 이천맨션이 아무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 셋째, 이천맨션의 위치가 백화점, 재래시장, 시내 중심부에서 가깝고 다양한 버스노선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이다 ..  (27쪽)





 밤나무구나. 이름으로만 ‘밤나무골(栗木)’로 남은 율목동이 아니라, 이렇게 밤나무를 기르는 집이 있구나.

 이 골목집은 언제부터 밤나무를 길렀으려나. 바닥은 온통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 흙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골목집에 깃든 분은 열 스물 남짓 되는 온갖 꽃그릇에 흙을 옮겨담아서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를 기릅니다. 율목동 골목집 밤나무도 땅이 아닌 꽃그릇에서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풋밤송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있습니다.

 참 용하지.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밤송이를 달 수 있을까. 이 집은 밤을 사다 먹지 않겠지. 집에서 길러 먹는 밤맛하고 사다 먹는 밤맛이 같을 수 없으니까.


.. 이천동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재미는 화분들이다. 골목은 공동의 정원이라고 했던가? 많은 주민들이 개인의 화분을 골목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전해 준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의 골목일 뿐이다 ..  (37쪽)


 좀더 안쪽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깊은 골목에는 바깥 소리가 모두 막혀 있습니다. 아주 호젓합니다. 호젓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리 넓지 않은 골목 담벼락을 따라서 꽃그릇이 한 줄로 죽 이어져 있습니다. 자동차가 지나다닐 만한 넓이로 된 골목에는 꽃그릇이 거의 하나도 없지만,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에는 꽃그릇이 수두룩합니다. 이곳에 자전거가 지나다닐 일도 없이 사람만 드문드문 오갈 터이니, 한 사람 지나갈 너비만 남기고 쪼르르 꽃그릇을 놓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흙땅이 없으니 풀이 자랄 수 없고, 풀이 자랄 수 없으니 싱그러운 바람결을 마실 수 없는 도시이지만, 골목마실을 하며 꽃그릇으로 이루어진 꽃골목을 지나면서는, 늘 소담스러운 바람을 들이쉬고 냄새를 맡습니다.




.. 어느 날 재개발의 무지막지한 폭격이 우리를 공격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오늘을 즐겁게 살며 도시의 옛 고향, 이천동에 문화의 작은 씨앗들을 뿌려갈 것이다 ..  (99쪽)


 율목공원 조금 못 미친 제법 가파른 골목길. 한쪽은 계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계단이 없다면 겨우내 얼어붙는 길에 모두 미끄러지겠지요. 길게 이어지는 계단 한쪽에 플라스틱통이 놓여 있고, 이 통에는 고양이밥으로 보이는 사료가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 길고양이 굶지 말라고 밥을 놓아 두었네요.

 계단을 하나둘 밟으며 올라갑니다. 낮은 빌라 앞에 마련한 꽃밭 앞에 꽃그릇이 한 줄로 놓였고, 이 꽃그릇은 ‘이마트 끈’으로 버팀나무를 엮여 있습니다. 무슨 꽃을 심으셨나 둘러보는데 보라빛 도라지꽃이 보입니다.

 아직 익으려면 더 있어야 하는 토마토 꽃그릇을 봅니다. 무궁화 심어 놓은 꽃밭을 지납니다. 덩굴풀에 매달린 풋열매를 봅니다. 이제는 꽃망울을 떨군 봄꽃들은 푸른 잎사귀만 남겨 놓습니다.

 율목동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구멍가게 앞에는 낡은 장판으로 바닥을 댄 평상이 하나 있습니다. 평상에는 꽃그릇 두엇 놓여 있고, 꽃그릇 옆으로 소주병 하나 막걸리병 하나 놓여 있습니다. 골목집 어딘가 사는 분이 잠깐 들러서 한 병씩 들이킨 다음 조용히 자리를 뜨셨나 보군요.

 이럭저럭 걷는 사이 신흥동2가 골목. 걷는 길에는 이곳이 ‘율목동’인지 ‘유동’인지 ‘신흥동2가’인지 ‘신흥동1가’인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골목이며 이웃집입니다. 길그림책으로는 뚜렷하게 금으로 갈라진 길이고, 행정을 맡는 공무원한테는 동호수와 번지수로만 나누어질 집일 터이나, 이 언덕받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숫자나 금으로 나눌 수 없는 삶터입니다.

 신흥동2가 22번지 골목네거리에 섭니다. 오른쪽으로는 지은 지 몇 해쯤 된 아파트숲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집을 허물고 주차장을 짓는다는 공사터가 보입니다. 그 건너편 집 지붕에 모여 있는 고양이 너덧 마리 보입니다. 웬 고양이가 저렇게 모여 있을까 생각하면서 사진기를 들어서 몇 장 찍으려는데, 할머니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빗자루를 저어서 고양이를 쫓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쫓기지 않고 옆으로 살짝 다시 옆으로 폴짝 하면서 놉니다. 할머니가 저를 알아보고 손짓하며 부릅니다.





.. 건축이 예술로서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일 것이다 … 역사적 유적을 보존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1950년대 이후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기간이 짧다고 하여, 그 보존을 허술히 한다. 특히 한 마을이 사라져 버리는 일은 단 몇 개월도 걸리지 않는 일이 돼 버렸다 ..  (121, 122쪽)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데에서 일하는 분’이 아니냐 생각해서 부른 할머니는, 당신이 이 집에서 사는 스물 몇 해 동안 ‘처음에는 이쁘다고 기르다가 길에 내다 버려서 외톨이가 된 불쌍한 고양이’한테 밥 주는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아까 본 고양이밥도 이분이 놓은 밥통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는 왜 고양이 기르냐며 욕을 해댄답니다. 고양이를 내다 버린 어느 집에서는 ‘자꾸 밥 주지 말라’고 하더니,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준 밥에 몰래 세제를 풀어서 굶주리던 고양이를 싹 죽여 버리기도 했답니다. 어미고 새끼고 그냥 세제물 먹고 죽었답니다.

 우리를 붙잡고 한참 고양이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몸소 우리를 이끌어서 당신이 밥 주는 자리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율목공원 안쪽에 숨어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하는 고양이 세 마리도 소개합니다. 공원 바로 앞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이 고양이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풀숲에서 쫄딱 맞는다고 합니다.




 (2) 아파트 집값


 고양이 할머님은 ‘야생동물보호협회’ 연락처를 알고 있지만 아직 전화를 걸어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심지에 버려진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이 고양이를 거두어 갈 수도 없을 테고, 또 어떤 마음좋은 수의사라고 해도 길고양이마다 붙잡아서 불임수술을 시켜 줄 수 있겠느냐며, 그예 고양이 밥주기만 부지런히 하신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저로서도 할머니한테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깃든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 길고양이는 좀처럼 우리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벌써 저희끼리 집을 나가서 꿋꿋하게 살아갈 법도 하건만.

 밤마다 집 밖으로 다녀 보기도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길고양이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팍팍하거나 힘겹다고 느껴서, 우리 집에서 주는 먹이를 냠냠짭짭하면서 남은 삶을 보내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머니는 ‘아직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고양이한테 밥 주고 살지만, 이 동네를 다 재개발해서 아파트로 새로 지으면 고양이는 어디 가서 사느냐’고 걱정입니다.


.. 어느새 한국의 아파트들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의 올림픽 정신처럼 급성장해 이제 15층은 고층아파트 축에 끼지도 못한다. 20년도 안 된 도시를 부수어 금세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이 아파트들은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서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  (25∼26쪽)


 할머니가 들려주는 걱정을 듣다가 가슴이 움찔합니다. ‘고양이 걱정’? 그래, 고양이 걱정. 길고양이뿐 아니라 길개도.

 장난감처럼 수십만 원씩 주고 샀다가 아무 미련 없이 내다 버려서 떠돌이 삶을 보내는 짐승들. 이 짐승들한테 우리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쌍하다면서 없는 살림 털어서 밥을 주고 있는 분들이 몇몇 있지만, 이분들한테 ‘쓸데없는 짓해서 동네 더럽히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청에서는 길고양이와 길개가 ‘쓰레기봉투 찢어 놓아서 못살겠다’면서 모조리 붙잡아서 안락사를 시킨다고 합니다.

 골목 동네를 재개발한다고 할 때에는, ‘많지는 않아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알맞는 만큼’ 살림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대책 하나 세우지 않고 밀어붙입니다. 지금은 서른 평짜리 집에서 느긋하게 살지만, 아파트로 재개발 하면 열 평짜리 전세집에도 못 들어갈 만하게 바뀌어 버리는 골목사람들 앞날을 헤아리는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길가에 자라는 꽃과 풀과 나무를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길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와 비둘기 들을 근심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을 테지요. 공무원과 개발업자한테 그런 따순 마음을 바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골목사람 스스로도 이렇게 가녀린 짐승과 푸나무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랄 수 없었을까 싶습니다.





.. 더구나 이 구역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로 보증금 100∼200만 원에 5∼1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면서 생활하는데, 재개발로 철거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쪽방 등지를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결국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주민들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 당국의 장삿속만 보인다는 이야기다 ..  (33쪽)


 율목동 언덕받이에서 내려옵니다. 경동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고욤나무집 옆을 지나다가, 좀더 안쪽 깊숙이 가 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 시간째 쉬잖고 걸어서 다리가 꽤 아프고 발가락도 부었습니다. 그러나 어그적어그적 걷습니다.

 비오는 날임에도 빨래를 밖에 널어 놓아 비를 쫄딱 맞힌 몇 집을 봅니다. 에그머니. 다시 빨아야 할 텐데.

 아는 사람만 아는, 아니 이곳 골목사람만 아는 골목인 경동 5번지 안쪽으로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오가는 사람은 이 골목에 사는 사람뿐이라 매우 조용한 길입니다. 발자국 소리를 더 죽이면서 사뿐사뿐 걷습니다.

 한 집에서 내다 놓은 긴 나무걸상 옆에 섭니다. 촬영작가한테 말문을 엽니다. “이 나무걸상은 스티커를 붙여놓았으면 쓰레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잘 닦아서 길 한쪽에 내놓으면 좋은 쉼터가 돼요. 이런 골목길 때려부수고 아파트 지은 다음에 돈 수 억 들여서 근린공원이라고 짓잖아요. 그 근린공원은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술담배 피는 우범지역이 되다시피 하지만, 이 골목길 작은 쉼터는 어느 곳도 우범지역이 되지 않아요. 아파트숲 근린공원에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가르치는 어른도 없지만, 아이들이 무서워서 꾸짖지도 않거나, 그저 남 일로 여겨 나 몰라라 하지요. 그러나 이곳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마구 놀면 바로 뛰어나와서 예끼놈 하면서 꾸짖어요. 아이들을 가르치지요. 여기는 남이 아닌 우리가, 자기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가꿉니다. 그런 대목이 골목길하고 아파트가 달라요. 지금 우리 세상은 모두들 돈만 바라보고 있어서, 집을 지어도 사람이 살 만한 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집이냐 아니냐로 따집니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우리들이 골목에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이 마음을 간직해 줄 수 있으면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면 좋겠어요. 여기 앞에 송림동 달동네를 허물며 주공아파트 2700세대를 지으면서 그곳 꼭대기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라고 지었어요. 달동네 집을 다 허물고 수십 억 들여서 달동네 집을 다시 만들어 놓고 박물관이라고 꾸몄지요. 서울 송파구 거여동도 그곳 달동네를 싸그리 밀어붙인 다음에 송파구에서는 거기다가 ‘달동네 박물관을 복원’한다고 하더군요. 웃기지 않아요? 돈벌려고 아파트 짓는다며 때려부수는데, 그 때려부순 집을 되살려서 박물관을 만든다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그 달동네 집을 고이 간수하고 손질해 놓으면 돈도 안 들고, 살아 있는 박물관이 돼요. 그리고 그곳 달동네에서 민박을 치면서 ‘민속마을’처럼 꾸미면 돈도 벌 수 있어요. 골목집 사람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요. 돈 한푼 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을 벌 길이 있는데, 이런 길로는 안 가요. 다 함께 나누려는 길이 얼마든지 많은데 그런 길을 찾는 데에는 머리를 안 기울이고, 몇몇 기득권이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는 그 뛰어난 머리를 모으고 있어요.”


.. 프랑스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대체적으로 그 가족들은 몇 세대에 걸쳐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은 물론 가족들의 작은 소품들까지 몇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면서 가족의 역사를 보존하는 모습 속에서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마치 작은 개인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집이란 이처럼 그 속에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사람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진 작은 그릇이다 … 집의 분위기는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경험과 흔적들이 집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과 어울리면서 이루어진다 … 대구, 서울, 부산, 인천 등등 전국 큰 도시들에는 어김없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는 차들이 다니는 길이 더욱 넓어지고, 인공공원을 조성하면서도 난개발로 생태환경을 점점 파괴해 가는 모순적인 모습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다 … 오래된 낡은 건물 하나가 도시 역사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도시민들의 삶의 발자취가 묻어나고 그것이 오늘에도 이어지는 도시의 다양한 표정들이 바로 문화 도시를 위한 기초인 것이다 ..  (117, 120쪽)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마주보고 선 골목집 옆으로 걷습니다. 골목집 벽과 문에 판박이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 이 집 꼬맹이들이 새겨 놓았겠지요. 또는 이 동네 꼬맹이들이 새겨 놓거나.

 꼬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집에서 살아간다면, 자기들이 어릴 적 해 놓은 자국을 보면서 쑥스러워 할까요. 아니면 자랑스러워 할까요.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겨 살다가 오랜만에 옛 동네를 찾아와 보다가 이 판박이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 느낌은 어떠할까요.


.. 우리에게 집이란 그저 돈의 가치로 환산될 뿐, 그 아파트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설계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나타나지 않는다 ..  (132쪽)


 태어난 곳이 아파트이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고향이란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증에 새겨지는 숫자로 그칩니다. 짧으면 몇 해, 길어도 스무 해가 지나지 않아서 자기 고향이자 옛집인 ‘아파트’는 모두 헐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걸어서 움직이기 좋도록 짓지 않고, 자동차가 드나들기에 좋도록 꾸며 놓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차에 치일까 걱정이 되어 코딱지만한 아파트 놀이터에조차 놀지 못하게 막습니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파트 밖으로 가 보지 못한 아이들한테는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이나 이웃사랑을 ‘책 읽히며 따로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촬촬 넘치고, 단추 하나 누르면 뜨신 물이 여름겨울 가리지 않고 흘러나옵니다. 통에 휙 집어던지면 잘 빨려서 말려 나오는 빨래기계가 있고, 돼지코만 꽂으면 알아서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기계가 있습니다. 누워서 똑딱 하고 누르면 아프리카며 중남미며 미국이며 일본이며 유럽이며 …… 못 가는 나라가 없습니다. 손전화 들고 쑹얼쑹얼 하면 먹고픈 모든 밥이 집으로 척척척 금세 날라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쩌다가 한 번 맡는 날이 돌아와도 지겹고 더럽다며 꺼리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왔다!’임을 깨닫습니다.


.. 경제의 논리로 아파트의 무덤 속에 혹은 고향을 떠나 변두리 어딘가로 계속 떠돌고 있는 수많은 오늘의 도시인들은 바로 도시의 문화적 빈민일 것이다 ..  (149쪽)





 (3) 작은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은 큰 선물


 20대 젊은 날 절반을 프랑스에서 공연과 극장에 푹 빠진 채 살았다고 하는 최엄윤 님은, 몇 해 앞서부터 대구 이천동 골목길 한쪽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몇 해째 조촐하게 ‘마을잔치’를 열면서 마을사람들하고 마을사랑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겪고 듣고 보고 깨달은 생각을 갈무리해서 조그마한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을 써냈습니다.


.. 결국 어른들은 집과 이웃을 잃고, 젊은 세대들이 새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다 … 이웃이 사라지는 것은 결국 환경파괴, 즉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과도 같다 ..  (29쪽)


 그대로 프랑스에 머물면서 공연과 극장을 더 즐기면서 남은 삶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최엄윤 씨를 한국땅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땅에서도 서울이라는 남녘땅 한가운데 아닌 대구로, 또 대구에서도 골목길 한켠 자그마한 집으로 깃들이게 했을까 궁금합니다.


.. 불행하게도 남도극장에 관한 기록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책으로 기록된 건 전무하다 …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던 곳, 아무도 찾지 않는 지하 창고의 낡은 물건들처럼 이제 일상의 추억들은 유물처럼 어딘가에 묻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흔적도 없이 아파트의 높은 콘크리트 아래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인가? ..  (51, 55쪽)


 그런데, 최엄윤 씨는 그 대구 이천동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깃들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이 대구 이천동 골목집을 알뜰히 꾸미고 사랑스럽게 돌보면서 이웃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배우고 익혀 온 여러 가지를 마을사람한테 나누어 주고, 마을사람들이 한삶을 거쳐 얻고 느껴 온 여러 가지를 고이 받아먹으면서 한 동네 이웃으로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사는 인천은 관청과 학교와 전철역과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높은 아파트와 공장을 빼고는 거의 모두 갈아엎어서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쇼핑센터로 바꾸는 막삽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엄윤 씨가 사는 대구도 인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깃들인 서울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 ‘시멘트ㆍ물ㆍ모래ㆍ자갈’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이 자원을 섞어서 아파트 올려세울 기계 움직일 기름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아파트로 지은 다음 아파트를 돌릴 기름과 전기가 얼마나 넘실넘실 넘쳐난다고, 이렇게 온통 온누리 ‘아파트 공화국’이 되도록 뒤흔들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모르겠습니다. 어느 하나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리한테 얼마나 넓은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우리한테 얼마나 값나가는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가를 모르겠습니다.

 골목집은 마흔 해 쉰 해뿐 아니라 백 해도 거뜬히 견디면서 고즈넉한 집자리로 이어왔습니다. 아파트는 스무 해 채우기도 벅찰 만큼 막 짓고 막 부숩니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새 집으로 옮기고 집살림 갈무리하고 다시 싸서 또 옮기고 하느라 바빠야 합니다. 한 집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가꾸거나 껴안을 틈이란 없는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데에도 우리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야 하나요. 우리 자신도,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이 낳아서 기를 아이들까지도? (4341.7.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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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엄윤 2008-11-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은지 긴 시간이 지났고 이제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근근이 이어오던 소박한 마을잔치가 이제 두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올봄에 새롭게 거리를 거닐면서 작년겨울 스산한 삶을 견디지 못한 이웃 할머니의 죽음를 몇개월이 지나서야 알게되기도 했었습니다.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에 할말을 잃었던 시간도 어느덧 두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있으면서도 아직 제 정체를 찾지 못하는 제게 오래도록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주셨었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조용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어떤 활동으로도 드러나지않기 때문에 때론 나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다 지치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웃은 좀 더 많아졌고 서로의 눈빛이 좀더 따뜻해 졌고 거리엔 예술의 흔적들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추운 계절이 왔습니다. 건강하세요.
 
곤충.책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 양문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51 ― 수수한 애벌레한테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곤충ㆍ책》



- 책이름 : 곤충ㆍ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대
- 글ㆍ그림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옮긴이 : 윤효진
- 펴낸곳 : 양문(2004.10.20.)
- 책값 : 12000원



 (1) 내 삶터에 함께 있는 꽃과 풀


 망초가 있고 개망초가 있습니다. 살구가 있고 개살구가 있듯, 둘은 조금 다릅니다. 개망초가 먼저 꽃을 피우고, 망초는 조금 늦게 꽃을 피웁니다. 이 풀꽃 이름을 놓고 이런저런 옛이야기가 있는데,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다만 한 가지, 우리들한테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풀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농사꾼들도 무척 싫어하는 잡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돋는 망초,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자라는 망초. 끈질기디끈질기기 때문에 풀약을 치지만, 풀약에도 꿈쩍을 않는 망초입니다.

 이러한 망초이지만, ‘망초’는 느즈막이 꽃을 피우고(7월이 넘어야), ‘개망초’는 일찌감치 꽃을 피웁니다(6월이 되기 앞서). 먼저 꽃을 피운 개망초는 자기 씨를 널리널리 퍼뜨립니다. 느즈막이 꽃을 피운 망초는 일찌감치 개망초한테 자리를 빼앗겨 차츰차츰 구석으로 몰립니다. 구석으로 몰리다 못해, 도시에서는 골목길 담벼락 밑자락 틈바구니에 겨우 보금자리를 틀곤 합니다. 개망초는 손바닥 만한 땅뙈기라도 있으면 먼저 차지를 해 버립니다. 개망초가 한창 꽃을 피워도 푸른 꽃잎만 내보이는 망초를 보고서, ‘오호라, 넌 여기에서도 잘 자라는구나.’ 하고 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질기네. 어쩜 저런 데서도 살아나나.’ 하면서 징그럽게 여기는 사람만 많습니다.

 조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망초와 개망초. 때때로 한갓지기도 하여, 또는 공원 걸상에 잠깐 앉기도 하여, 사람들은 이 풀이 피워낸 꽃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이때마다 ‘이야, 조그마한 꽃이 퍽 예쁜데?’ 하면서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조그맣고 예쁘장한 꽃이 무슨 풀인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되면, ‘뭐야, 그랬단 말야?’ 하면서 고개를 모로 돌리곤 합니다.


.. 무르익은 파인애플의 모습이다. 껍질이 엄지손가락만큼 두꺼워 깎아내고 먹어야 하는데, 자칫 어설프게 깎았다가는 날카로운 가시에 혀를 다칠 수도 있다. 포도, 살구, 까치밥나무열매, 사과, 배를 뒤섞어 놓은 것처럼 맛이 절묘하다 ..  (18쪽)


 지난 일요일 아침, 형과 함께 동인천 뒤편 골목길을 거닐었습니다. 우리 모두한테 고향인 인천이고, 어릴 적 참말로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놀던 곳인 동인천 둘레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인천으로 돌아와서 거의 날마다 이곳 골목길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처음 인천으로 돌아와서 다닐 때에는, 어릴 적 그토록 신발이 닳도록 다닌 길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낯설기도 했지만, 하루이틀 다시 걷고 또 걷는 가운데 예전 일이 하나둘 떠올랐고, 어릴 적 걷던 일도 차츰차츰 생각났습니다.

 늘 걷는 골목이지만,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철 따라 골목길 꽃이 다르고, 꽃이 다 진 뒤에도 날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꼭 한 해를 보내고 난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도 새삼스럽습니다.

 송현동 골목길을 거닐다가, 늘 지나가는 길을 거닐다가, 낯익인 듯 낯익지 않은 듯한 열매나무를 보았습니다. 뭐지? 앵두인가?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살그머니 열매를 만져 봅니다. 말랑말랑합니다. 앵두 같은데. 그러나 앵두가 열매 맺힐 때 이런 모습이었나? 형은 “앵두는 아닌 듯한데. 앵두 열매를 보면 다르게 생겼잖아?” “그런가?”


.. 이 아메리카 버찌는 유럽의 버찌와는 맛이 틀리다. 하얀 꽃과 붉은 꽃을 같이 피운다. 나무의 크기도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자라는 버찌나무보다 크지 않다. 만약 이곳이 이윤에 덜 눈이 멀고 느긋한 농장주들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이 버찌들도 좀더 완숙한 맛을 내게 되지 않을까 ..  (32쪽)




 나중에 집에 와서 도감을 살펴보고, 찍은 사진을 둘레에 보여주니 ‘앵두가 맞다’고 합니다. 그래, 앵두. 그러나 척 보고도 앵두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앵두인 듯 아닌 듯 느끼는 가운데에도, 앵두나무 줄기가 이렇던가, 앵두잎이 이렇던가 하면서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습니다. 정작 앵두를 먹으면서 살아도, 또 ‘앵두 같은 내 입술 예쁘기도 하지요’ 하는 노래를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어도, 앵두나무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날, 형과 골목길을 거닐던 날, 앵두나무 꽃그릇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토마토 꽃그릇’을 보았습니다. 처음 토마토 꽃그릇을 보면서도, 이 꽃그릇에서 자라는 녀석이 토마토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란 꽃이 어여삐 피기는 했는데, 무슨 꽃일까 한참 헤아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헤아리다가, 바로 옆에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앙증맞은 토마토 열매를 보고서는, 비로소, 아하, 깨달았습니다.


.. 나는 유별나게 생긴 이 애벌레가 어떻게 변신할지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런데 1700년 8월 10일 볼품없는 나방으로 변해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별 볼일 없는 녀석이, 평범하게 생긴 유충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탄생하는 일은 흔하다 ..  (50쪽)


 거리마다 은행나무가 가득입니다. 요사이는 벚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서, 봄마다 사람들은 벚나무 구경을 갑니다. 가을이면 은행나무를 쿵쿵 찧으면서 은행 열매 거두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태껏 한 번도 은행꽃을 못 보았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은행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알아볼 수 없기도 했을 테지요(키높이에서는 은행 열매가 보이지도 않으니, 은행꽃이 피어도 여느 사람 키높이로는 알아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벚나무가 그렇게 곳곳에 피고 지고 하는데, 정작 버찌 열매는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안 큰 벚나무도 많아서 벚꽃은 눈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왜 버찌는 구경할 수 없는지. 누군가 미리 따 가기 때문일는지. 들새가 모조리 따먹어서 버찌를 구경할 수 없었을는지.


.. 수리남에는 형형색색으로 다양한 종류의 포도나무가 사방에 우후죽순처럼 자란다. 가지를 꺾어 땅에 꽂아두기만 해도 6개월만 지나면 어느새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만약 매달 심는다면 1년 내내 포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년에도 몇 차례씩 포도 수확이 가능한 수리남으로 포도주를 챙겨 온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98쪽)


 성당 나들이를 다녀온 옆지기가 쥐눈이콩 한 봉지를 사 옵니다. 우리는 서리콩도 먹고 까만콩도 먹고 푸른콩도 먹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한테 배우면서 콩을 심어 거두어서 먹곤 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사먹는 콩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국민학교 1학년 그 어린 날, 제가 손수 심고 날마다 가꾸어서 열매를 맺어 손수 콩깍지를 까서 밥에 넣어 먹은 그 콩맛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으며 군침이 도는 콩맛입니다.

 그때, 콩 열매만 먹는 줄 알고 콩잎 먹는 줄은 몰랐습니다. 고추를 먹으면서도 고추잎을 먹는 줄 안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깨와 깻잎을 이어서 생각한 지도 몇 해 안 되었습니다. 호박과 호박잎, 무와 무잎, 그리고 김치와 날배추잎, 이 모두를 한동아리로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못해 온 삶이었다고 할까요.

 도시내기니 어쩔 수 없다지만, 도시내기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배속만 채우는, 슬픈 삶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어떤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콩맛이 달라지며, 쬔 햇볕에 따라서 콩맛이 어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저 무슨 콩이 영양소가 어떠하다는 수치와 정보만으로 콩밥을 먹는다면, 너무 딱한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 플로스 파보니스는 높이가 280센티미터 정도이며 노란 꽃과 붉은 꽃을 피운다. 씨는 출산 진통을 겪는 임산부를 위해 사용된다. 네덜란드인들 밑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여성 노예들은 아이를 지우기 위해 이 씨를 사용한다.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나 앙골라에서 끌려온 흑인여성 노예들은 보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 무자비한 착취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  (127쪽)


 논이 있고 밭이 있는 시골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 논도 없고 밭도 없는 도시에서 자동차 씽씽 달리는 길에 둘러싸인 채 전기불 아래에서 밥 한 그릇 받을 때하고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해와 바람과 물과 흙으로 빚어낸 밥 한 그릇과 돈 몇 푼으로 얻는 밥 한 그릇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히 갈무리된 도감과 그림책을 보면서 익히는 꽃 이야기, 풀 이야기, 나무 이야기하고, 우리가 손에 흙을 묻히면서 심고 가꾸는 꽃과 풀과 나무 이야기하고 같을 수 있겠습니까. 꽃집에서 소담스레 만들어 주는 장미꽃다발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서 씨앗을 받아서 심는 꽃 한 송이도 틀림없이 곱습니다.


 (2) 《곤충ㆍ책》과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수리남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면서, 풀과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벌레 또한 가만히 살핀 이야기를 담은 《곤충ㆍ책》이 있습니다. 1600∼1700년대 수리남 자연 삶터를 담았다고 할 만한 책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오늘날 수리남과 견주면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거의 300∼400이라는 햇수이니까요. 열 해만 되어도 강산이 바뀐다고 했거늘,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동안 사라지는 푸나무가 있을 테며 새롭게 생겼다고 할 만한 푸나무가 있습니다. 삼백 해와 사백 해라는 세월 동안 달라지는 우리들 사람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백과 사백이라는 숫자를 놓고도 달라지지 않거나 고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백 해가 아닌 오백 해나 천 해가 가도록 바뀌지 않는 우리들 사람 삶 또한 있습니다.


.. 출판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들어간 비용만 회수되면 족하다. 나는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했다. 곤충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려는 일념으로 저명한 장인에게 동판화의 제작을 의뢰했고, 가장 질 좋은 종이를 사용했다.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그것으로 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이다 ..  (12쪽)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리남 사람들 삶터는, 식민지로 부리던 살갗 하얀 사람들 때문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수리남사람 스스로 즐거웁거나 기쁘도록 농사를 짓고 문화를 가꾸고 마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이 먹고마실 먹을거리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수리남사람끼리 신나게 어울리며 애틋하게 사랑을 나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리남 삶은, 또 삶터는, 또 자연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나아지고 있습니까. 나아졌다고 할 만할까요.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을는지요. 우리하고는 너무 먼 나라이니까, 우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이니까, 그곳이 어찌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일인지 모르고, 또 우리들은 우리들 일로도 너무 바빠서 그런 곳까지 헤아릴 까닭이 없을지 모릅니다만, 수리남 사람과 자연 삶터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요.


.. 메리안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리남 식민사회를 지배하는 오만한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갈등관계에 놓인다. 그는 흑인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농장주들을 비난했고, 그들은 메리안을 돈도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괴상한 여자라고 비웃었다. 노예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나 노예를 데리고 열대림을 누비는 행동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안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농장주들을 의식하지 않았고, 또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 메리안은 아무리 혐오스러운 생물일지라도 가까이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 주목받지 못하는 미물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로 하여금 열대의 자연을 더욱 놀랍고 감동적으로 체험하게 했다 ..  (헬무트 데케르트/189∼190쪽)


 어쩌면, 《곤충ㆍ책》을 그리고 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고 하는 사람한테도, 더구나 1600∼1700년대 그때에, 게다가 여자라는 몸으로 미루어보건대, 수리남이라고 하는 식민지 나라에, 또한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고 있지 않던 ‘수리남 벌레들 탈바꿈’에 눈길을 두는 일은 몹시 철없는 짓이고 어처구니없는 짓이며 시간과 돈이 남아도니 하는 짓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할 만한 일이 무엇이고, 자기가 애틋하게 바라볼 만한 일이 무엇이며, 자기가 몸바쳐서 이루어내면 좋을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식민지 지배자들 편견과 끔찍한 날씨와 말라리아와 어려운 살림살이 모두를 견디어내거나 이겨내면서 책 하나를 빚어냈습니다. 《곤충ㆍ책》을. 그리고 새로운 꿈도 꾸었어요. “(도마뱀은) 죽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구하지 못하면 개미나 파리를 먹기도 한다. 만약 이 책이 독자의 호평으로 많은 판매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런 동물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24쪽).”는 꿈을. (4341.6.6.쇠.ㅎㄲㅅㄱ)

***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1647∼1717)

동판화가이자 역사가이자 지리학자이자 서지학자로 이름을 날린 ‘마테우스 메리안’이 낳은 딸. 그렇지만 마테우스 메리안 후광은 식구들한테 조금도 퍼지지 못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낳은 어머니는 ‘마테우스 메리안이 나중에 얻은 여자’였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자 그 집안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보잘것없는 신분에 하잘것없는 살림에 아무것도 없는 형편으로 스스로 모든 삶을 일군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독일 마르크돈 500마르크짜리에 얼굴을 새기기도 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이이가 조그마한 벌레 삶을 헤아리며 그림으로 남기던 때에는, “애벌레나 구더기들이 더러운 쓰레기에서 생겨난 악마”라고 여기던 때. 마녀로 도장찍혀 죽을 수 있었고,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오랜 경험과 지켜보기로 빚어낸 책과 그림을 놓고 ‘거짓말’이라고 깎아내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서 쓴맛을 견디어내야 했다. 그러나 자기 연구와 예술을 지키고 가꾸조가 가시밭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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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23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 소화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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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7 ― 아름다운 지구가 왜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 우자와 히로후미,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책이름 :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글 : 우자와 히로후미
- 옮긴이 : 김준호
- 펴낸곳 : 소화(1997.1.6.)



 (1) 날씨와 공무원과 내 몸


 무르익은 봄을 알리는 비가 오는가 싶더니, 봄비가 아닌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는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함을 싹 가시게 하는 찬비였습니다. 그렇게 제법 긴 날이 흐른 뒤 밤새 짙은 안개가 끼더니 날이 살며시 포근해집니다.


..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농업, 입업, 어업이다. 농작물이나 수목의 생육은 그 토지 고유의 기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또한 어패류의 생식도 바다의 온도가 조금만 변화해도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17쪽)


 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이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번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그 뒤로는 두 달 가까이 날씨가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꽁꽁겨울이었습니다. 이 겨울이 풀리는가 싶더니 보름 만에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웁기까지 했습니다. 봄이란 없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오느냐 싶다가, 굵은 비 몇 차례 들은 뒤 어느 만큼 알맞는 날씨로 자리잡습니다. 선뜻 여름 들머리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날씨입니다만, 집에서는 거미와 바퀴와 모기가 깨어납니다. 파리도 바깥에서 날아듭니다. 들새는 들새대로 어린 새끼를 치면서 먹이를 찾느라 바쁩니다. 도서관이나 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끼새 가냘픈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꽃은 골목길마다 활짝활짝 피어납니다. 벌써 져 버린 꽃이 있고,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으며,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함을 물씬 느끼면서 사는 새날이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즈음인데, 이러다가 들이닥친 차가운 비에다가, 모진 바람에다가, 쿵쾅쿵쾅 울리는 벼락이라니.


.. 중국, 인도를 비롯해서 발전도상국이 모두 미국과 같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전도상국에 대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리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선진공업국이 화석 연료의 소비를 대폭으로 줄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71∼72쪽)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겨울옷을 찾아서 입습니다. 벗었던 속속옷도 다시 입습니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두꺼운 겉옷도 꺼내어 입으십니다. 저는 반바지차림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집회터에도 반바지차림으로 갑니다. 새벽부터 비바람을 옴팡 뒤집어씁니다. 낮이 되자 골이 띵합니다. 집회터에 더 버티고 서 있기 어렵다고 느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시간 반쯤 누워서 쉽니다. 두 시 오십 분쯤 일어나 동구청으로 갑니다. 동구청에서 인천시 도로건설과 공무원과 종건본부장 들이 찾아와서 주민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토론자리를 마련하면서 시공사한테 ‘공사중단’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주민들은 집회터에 그대로 비바람 맞으면서 있다고 합니다.

 네 시 반쯤 되어서야 금창동사무소로 옮겨서 토론자리를 엽니다. 긴소매 웃옷을 걸치고 동사무소로 찾아갑니다. 시에서 일하는 높은자리 공무원 분들은 말씀을 아낍니다.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스터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인천시 공무원)는 원칙을 지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주민들이 ‘그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미 보상비가 들어갔기에 도로부지를 다르게 쓸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이 길을 놓아야 할 까닭(타당성)이 없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왜 정치를 펼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이 묻습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되면 인천시 다른 곳하고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연수동은 왕복 12차선이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여기에서만 통학에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고등학생하고 초등학생이 같습니까.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네 군데나 직접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이 왕복 6차선으로 줄인 길이라고 하시는데, 폭이 50미터가 넘습니다. 이 길을 초등학생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높여 따집니다. 인천시에서 나온 높은자리 공무원은 말이 없습니다.


.. 선진공업국에서는 낭비를 미덕으로 물질적 쾌적함과 풍요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추구하고 있다. 지구 환경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며 지구온난화를 비롯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에도 거의 반성다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77쪽)


 저는 옆에서 시 공무원들 말과 주민들 말을 수첩에 받아적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받아적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볼펜대에 눌려서 아픕니다. 골은 더욱 띵하고 다리는 뻑적지근합니다. 혼자서 받아적고 사진 찍고 왔다갔다 하노라니 어서 이 토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세 시간이 다 되어 가는 토론자리는 마무리가 될 낌새가 없습니다. 시에서 오신 분들은 아무런 다짐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지,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느낀 대목이 있으니 다시 검토를 하겠다든지, 무슨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내놓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립니다. “여보시오, 지금 여기 동구에 육십오세 이상 노인이 몇 사람이 사는지 아십니까?”

 속으로 외칩니다. ‘아, 모를 테지요. 아니, 생각을 아예 안 할 테지요. 이 공무원 분들은 길닦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내세울 뿐, 길이 나는 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어울리며 사는 사람들인지는 조금도 살피지 않는데요. 도로과 공무원들은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았고, 교통영향평가도 하지 않았어요.’

 ‘길을 내야 한다면서, 정작 길이 지나가는 곳 터전은 어떠하고, 이곳에 깃들이고 있는 사람들 삶은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는 시 공무원들이에요. 흔히들 쇠밥그릇이라고 말을 하지만, 쇠밥그릇이라기보다는 ‘동네 형편을 조금도 모르는 책상물림’이에요.’


..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 때문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직업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이 집을 떠나 돈벌이를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은 록카쇼무라의 농민을 말 그대로 지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  (169쪽)


 모든 것을 숫자로만 따지는 공무원입니다. 동네사람 한 달 벌이를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쯤인지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이 사는 집을 돈이라는 숫자로만 따집니다. ‘만족도 조사’라고 있다면, 이 또한 숫자로 금을 죽죽 긋습니다. 숫자 아닌 사람들 목소리를, 손과 발을, 얼굴과 몸뚱이를, 가슴과 마음을, 눈과 머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그 숫자놀이 가운데 ‘소음공해 기준치’를 여러 달에 걸쳐서 따졌을 때, 진작에 훨씬 넘어서며 말썽이 있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이러한 보고서 숫자는 아예 펼치지 않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적을 수 있을까. 이 공무원들한테는 동네 골목길에 심긴 꽃나무와 푸성귀는 ‘몇 푼어치’ 안 되는 것들이라서, 이 꽃과 나물을 싹 밀어내고 얼마쯤 갚아(보상)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집값 얼마 갚아 주고, 집 옮기는 돈 얼마 보태어 주고, 어여 이곳을 떠나 주기만을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몸살이 납니다. 이튿날 하루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드러눕습니다. 그 다음날 입술이 부르틉니다. 그 다음날 입안이 헐고 붓습니다. 밥을 못 먹고 말도 못 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몸살과 붓기가 가라앉습니다.


 (2) 자동차와 길과 사람과 삶


 돈 뽑으러 은행을 다녀옵니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와서 건너려는데 옆에서 큰 차가 빠르기를 늦추지 않고 싱 달려오더니 사람을 칠 듯합니다. 움찔 놀라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운전사를 바라봅니다. 차가 끼이익 멈춥니다. 틀림없이 푸른불로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건너고 있지만 이 자동차는 그냥 내달렸습니다. 치일까 걱정되면 푸른불이라 해도 비키라는 뜻인가요.

 오늘뿐 아닙니다. 다른 때에도 으레 이렇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대전에서도 꼭같은 일을 겪습니다. 조금 넓은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뒤에서 차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와 느긋하게 손잡고 걷고 싶으나 손을 놓고 길가 담벼락에 찰싹 붙어야 합니다. 골목에서도 사람은 깨갱이고 자동차는 빠방입니다.


.. 자동차는 이중의 의미에서 지구온난화의 요인이다. 우선 자동차의 생산 공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화석 연료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승용차를 1대 생산하는 데 평균 884kg(탄소환산)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한다. 두 번째로 자동차를 사용할 때는 당연히 석유를 필요로 한다. 그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일본의 경우 소형승용차 1대당 1년 간 평균 64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  (76쪽)


 우리 집 둘레로 문방구 도매상이 줄줄 잇닿아 있습니다. 이 도매상 앞에는 늘 차들이 뒤죽박죽입니다. 물건을 싣느라, 또 부리느라 북적북적입니다.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두찻길인데, 차가 한 줄로만 서 있어도 막히고 두 줄로 서 있으면 거의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볼일을 보아야 한다는 짐차들은 시내버스가 빵빵 울려도 비켜 줄 생각을 않습니다. 집안에서 이 빵빵질 소리와 운전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낱낱이 듣습니다.

 차댈 곳이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도매상거리를 이루도록 허가를 내준 구청 공무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신지.


.. 자동차가 가져온 가장 커다란 해독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이다 …… 현재 자동차의 교통사고로 일본 전체에서 매년 1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백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동차에 의한 피해는 한신대진재가 매년 두 번 일어나는 셈이다 …… 또한 자동차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운동 부족에 빠지며 오염된 대기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건강을 해치는 위험도 높아진다 …… 문화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면 이와 같은 관계를 갖는 기회가 적어지고 ..  (86∼88쪽)


 낮 두어 시 무렵, 초등학교 앞은 노란 차들로 가득합니다. 학원마다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법석입니다. 학교 마치고 곧바로 집까지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터이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돌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얼마 동안 집과 학교 둘레 골목을 거닐어 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만나는 이웃 어른은 부모와 학원 교사와 학원차 운전기사를 빼고 누가 또 있을까요.


.. 일본의 도로는 원래 보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폭도 좁으며, 구부러진 길이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은 길에서 놀거나 즐겁게 통학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자동차가 좁은 길에 침입해 왔을 때, 어린이들의 통학은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 길에서 노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린이 공원은 자동차의 보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117∼118쪽)


 그제,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시위 대학생 물결을 마주칩니다. 대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비싼 등록금’과 ‘미친소병 소고기 문제’를 외칩니다. 알록달록 깃발을 들고 종로거리를 걷는 대학생들이 퍽 많았으나, 훨씬 많은 대학생들은 이 시위 물결에 함께하지 않습니다. 서울 아닌 곳에서 배우는 대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시위대가 종로거리를 지나가니 닭장차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닭장차가 움직이니 여느 차와 버스는 꼼짝을 못하고 멎습니다. 교통경찰이 넓은 길 한복판에 나와서 여느 차 움직임을 막고 닭장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틉니다. 어느 시민도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교통방송에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는지.


..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에서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 이와 같은 육교가 눈에 띄는 곳은 없다 ..  (118쪽)


 종로에서 명륜동까지 걸었습니다. 창경궁을 옆으로 끼는 길을 걸었습니다. 차소리가 아주 큽니다. 차소리가 없다면 고즈넉한 길일 테지만, 이 기나긴 길을 걷는 내내 옆사람하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싶어도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고 배기가스와 차소리로 고달프기 때문에, 어딘가 들어갈 때까지는 쉼없이 걸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띄엄띄엄 한둘만 보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는 바보였나.

 누구라도 걷고픈 마음이 안 생길 테지요. 차가 싱싱 달리는 길가에는, 차소리로 시끄러운 길 둘레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아닌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셔야 하는 거님길에는, 어느 누가 걷고플까요.


.. 보행자는 언제 자동차에 치일지 모르는 길을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허파 가득히 들이쉬면서 걷는 셈이다 …… 주택도 직접 차도에 면한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무 등을 심고, 사람들의 생활이 자동차의 배기가스ㆍ소음ㆍ진동으로부터 보호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22쪽)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을 잔뜩 사들이니까, 또 사진장비를 이고 지느라 어깨가 고단하니까, 둘레에서 ‘웬만하면 작은 차 하나 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라 말하면 ‘왜 운전면허가 없어? 면허부터 따야겠네’ 하고 덧붙입니다. ‘차를 왜 몰아야 할까요?’ 하고 되묻거나 ‘차에 넣는 기름은 어찌하나요?’ 하고 되물으면 ‘무거운 짐으로 몸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다’고 대꾸해 주고, ‘더 부지런히 일해서 돈벌면 되잖아’ 하고 대꾸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돈벌이가 되어 차를 굴릴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쭙니다. ‘책 많이 팔면 되잖아?’ ‘어떤 책을 많이 팔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읽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 차 없는 사람은 차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노릇.

 더운 여름날 부채질로 더위를 나고 있으면,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안 놓느냐는 타박을 듣습니다. 추운 겨울날 불때기를 적게 하면서 겨울나기를 하면, 기름 아깝다 하지 말고 보일러 돌리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냉장고 안 돌리며 틈틈이 동네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며 푸성귀를 사먹으면, 김치 어떻게 먹느냐고 마트 가서 쟁여놓고 좀 먹으라는 핀잔을 듣습니다. 텔레비전 안 켜고 연속극 하나 안 보며 살면, 요즘 세상에 원시인 될 일이 있느냐며 눈총을 받습니다.

 대학교도 나와야 하는데, 어차피 나오려면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회사원이 되어야 하는데, 어차피 하려면 연봉 몇 천만 원이나 억대는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는데, 작은 차로는 멋대가리없으니까 되도록 큰 차로 뽑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연속극뿐 아니라 뉴스며 영화며 스포츠며 뭐며 두루 꿰어야 합니다.


..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도시의 형태도 도시간의 교통 체제도 모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  (138쪽)


 머리가 어지러워서 두 손을 듭니다. 두 발까지 들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는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될까요. 아니,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쳐도, 아니, 제도권 학교는 안 다닌 채로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되는가요. 한 해 삼천만 원도 아닌 천만 원도 아닌, 한 달로 치면 삼사십만 원만 벌면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지요.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이 아니라, 알맞는 만큼만 벌어서 알맞는 만큼만 쓰며 살면 안 됩니까.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듣고 신문도 안 읽으면 세상에 어두운 바보인가요.

 이웃 아주머니가 한 마디 쏩니다. “그러면 산에 가서 살지, 여기서 왜 살아?”

 싱긋 웃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어디 산 같은 산이 남았나요?” 하고 대꾸하고 싶으나 속으로 삭입니다.


 (3)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책


 ‘성장이론가­’로 이름을 날린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가 1996년에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책을 펴냅니다. ‘경제성장’을 파헤치는 교수님이 어인 ‘지구온난화’ 책을 다 내느냐 싶은데,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책끝에 붙이는 말에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덕분이다.(181쪽)”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글쓴이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머리로 알고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군요. 날마다 숨쉬지 않으면 안 되는 공기(대기)가 얼마나 사람한테 소중한가를, 또 사람과 이웃한 자연 삶터에 소중한가를 깨닫고 있군요. 숨 안 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숨은 안 쉬어도 경제성장만 해도 되겠습니까. 숨은 덜 쉬면서 돈을 많이 벌면 우리 삶이 넉넉해집니까. 숨은 못 쉬어도 자동차만 굴릴 수 있으면 우리 삶은 기쁨이 넘칩니까. 숨은 막혀도 수십 억짜리 아파트 푹신걸상에 앉아 리모콘 단추를 누를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습니까.


.. 지구온난화 문제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다면 하는 꿈을 품고 있었던 차였다 ..  (11쪽)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밥과 숨과 물이 있어야 비로소 삽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누구한테라도 가장 좋은 밥이어야 하고, 가장 깨끗한 숨이어야 하며, 가장 맑은 물이어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이 더러운 가운데 어떤 물질문명을 누릴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지저분한 가운데 어떤 과학기술이 꽃피울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형편없는 가운데 어떤 개발을 하고 어떤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까.

 재개발(뉴타운)은 밥ㆍ숨ㆍ물이라는 테두리에서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을 엉망으로 무너뜨린다고 한다면, 재개발은 함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는 큰물길로 경제효과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밥ㆍ숨ㆍ물을 망가뜨리게 된다면, 억지로 정치힘을 써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나라밖에서 유전자조작 먹을거리(GMO식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까닭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네 밥ㆍ숨ㆍ물을 흐트리기 때문입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구정물을 마실 수 없고, 값이 눅다고 하여 농약으로 씻은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나와 내 이웃 모두 자기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꿀 수 있는 밥과 숨과 물을 곁에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이곳에서 비롯해야 합니다.


.. 사회적 공통자본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적 존엄을 지켜 시민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정적인 사회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44쪽)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책 하나입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거듭나고 내 이웃이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책 하나입니다. 돈을 바라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돈을 바라서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돈이 되니까 읽자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돈에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몸뚱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고 서글픕니까.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서 핫도그 하나 사먹다가, 새로 마련하신 듯한 튀김떡볶이가 있어서 여쭈었더니 하나 집어서 먹어 보라고 합니다. 안 되지요, 하면서 500원어치를 시킵니다. (4341.5.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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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44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 이시무레 미치코, 《슬픈 미나마타》



- 책이름 : 슬픈 미나마타
- 글 : 이시무레 미치코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12000원



 (1) 영화 한 편 보려고


 황윤 감독이 찍은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인천을 뺀 나라안 큰도시 모두에서 지난 3월부터 걸렸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걸렸는데, 그때는 충주에 살고 있었기에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전국 개봉관에서 건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러면 우리 동네에서도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인천만 빠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에서만 걸더군요.

 그러다가 엊그제 4월 15일부터 드디어 인천에서도 자리 하나 얻어서 겁니다. 황윤 감독 인터넷방에서 소식을 보고는 부랴부랴 인천 개봉관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그러나 상영 소식이 없습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전화를 겁니다. 받지 않습니다. 하루 지나 16일 낮에 다시 겁니다. 인천 개봉관에 걸린 지 이틀이 되도록 인터넷방에는 소식이 없기에 “황윤 감독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인터넷방에는 올라오지 않아서요. 지금 상영하고 있나요?” “네, 그런데 상영 주최가 달라서 인터넷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응? 상영 주최? 상영 주최가 다르든 말든,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으면 알림글 한 줄이라도 달아 놓아야 하지 않나? 주최가 달라도 자기 극장에 걸고 있으면, 시간표라도 적어 놓아야 사람들이 찾아가지, 시간표도 없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알고서 이 영화를 본다고. 더우기, 영화를 틀어 주는 시간은 낮 두 시와 저녁 여섯 시. 회사원들이 일 마치고 찾아가서 보기에도 뻘쭘한 때. 살림하는 분들이 밥차리다가 찾아가서 보기에도 어중간한 때.


.. 아이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유기수은에 중독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 생선이라곤 먹어 본 적도 없는 젖먹이 아기가 미나마타병일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시내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며 어구들을 내다 팔아야만 했다 ..  (23쪽)


 히유, 그래도 먼 데까지 비싼 찻삯과 품과 시간을 안 들이고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 테지요. 며칠까지 영화를 걸어 주느냐고 여쭙니다. “아마 4월 말일까지는 걸 거예요.” “그러면 4월 30일까지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볼 수 있지요?” “그럴 겁니다.”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쌀쌀맞다 싶은 안내전화를 끊습니다. 오늘(16일)은 늦었고 내일(17일) 짬을 내어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먼저 큐헤이가 죽을 줄 알았지. 나도 한숨도 못 자고. 눈도 안 보여, 귀도 안 들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인간 같지도 않은 소리로 울어대면서 날뛰는 거예요. 아이고, 이제 제발 죽자, 이게 지옥이 아니고 뭐냐, 우리가 있는 여기가 지옥이지……. 우물을 조사하고, 된장단지를 검사하고, 심지어는 단무지까지. 소독을 한답시고 몇 명이나 다녀갔는지 몰라요 … 물건을 살 수 있기를 하나, 물도 받으러 안 가면 안 되지. 가게에 가도 겁먹은 가게 주인은 동전도 제 손으로 안 받아요 … 다시 태어나고 일곱 번 다시 태어나도 못 잊지. 물도 못 얻어먹던 그 한을” ..  (42∼43쪽)


 17일 낮 한 시. 이제 가방을 챙겨 극장으로 가야 할 때. 도서관에서 하던 일을 마치고 살림집으로 올라갑니다. 옆지기는 누워 있습니다. 흔들어 보지만 꿈쩍을 않습니다. 요사이는 밤새 배속 아기가 꿈지럭거려서 잠을 못 잔다고 하는데, 몸이 고단하여 못 일어나는 듯. 그렇다면 어떡하나. 내일과 모레와 글피는 꼼짝없이 도서관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다음주에? 다음주에는 아무 일 없으려나?


.. 선생님은 노인을 위로하며, “할아버지 안 추우세요?” 하고 묻는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퉁명스럽게 “어나”라고 대답한다. 미나마타병에 걸린 일흔네 살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는 병에 걸려 본 적이 없었고, ‘의사선생님’에 몸을 맡겨 본 적도 없었다 ..  (54쪽)


 고이 잠든 옆지기를 그대로 둔 채 옥상마당으로 나옵니다. 눈부신 햇볕을 눈을 안 찡그리며 쬐며 섭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다고, 이불빨래 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널찍한 뒷간으로 들어갑니다. 뒷간이자 씻는방. 이 집은 겨울에 몹시 추운 대목이 얄궂지만, 씻는방이 넓어서 이불빨래하기에는 매우 좋습니다. 따순 물 쓰자면 보일러 돌리는 기름값에 땀이 비질비질 나지만, 그래도 집에서 걱정없이 씻을 수 있는 대목은 그지없이 즐겁습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에도 겨울추위가 걱정이었으나, 빨래할 때 바닥에 죽죽 펼쳐놓고 할 수 있다는 대목과 이불빨래 신나게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아주 좋았어요.


.. “그 당시 바다색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 바다가 저리 된 줄도 모르고 참 잘도 고기잡이를 나갔네 그려. 뭐랄까, 바다가 걸쭉해졌다고나 할까……. 도대체 그때, 회사는 뭘 만들고 있었던 걸까요? 이물질이 질펀하게 떠 있는 바다를 가르고 나가면 배도 끈적끈적한 이물질로 묵직해져 오죠. 기분 나쁜 물질을 흘려보낸 게 분명해. 우리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이야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물질은 빨리 대학교 선생님들한테 가져가서 봐달라고 했어야 옳았어요” ..  (76∼77쪽)


 밟고 비빕니다. 꾹꾹 밟는 만큼 비눗물이 넘실거립니다. 깨끗한 물을 틀어서 새로 받고 또 밟고 비비고, 다시 헹구고 또 물을 받고, 또 밟고 …… 이불을 헹군 물은 씻는방 바닥에 널찍하게 뿌리면서 바닥솔로 신나게 쓱쓱싹싹 합니다. 이불을 빨 때는 씻는방 바닥 닦기도 함께 하는 셈.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면 아기를 씻기면서 이불을 빨 생각이고, 이불을 헹구면서 아이한테 솔을 쥐어주고 바닥 닦이를 시킬 생각입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너덧 해는 지나야 하겠지만.


.. “시집와서 3년도 안 돼 이런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애석타. 나 혼자서는 단추도 못 채워 … 나 다시 한 번,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부모님이 일해서 먹고 살라고 주신 몸인데. 병 같은 거 앓아 본 적이 없었는데. 난, 전에는 손이고 발이고, 어디가 됐든 끄떡없었는데 … 지금쯤이면 보리 갈 땐데. 보리도 갈아야 하고 거름도 내야 하는데 … 일 생각만 하면 맘이 맘이 아니네. 그러고 또 숭어철인데.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안절부절 애가 타서 죽겄네 … 일하고 싶어라, 내 이 손발로 … 나는 세 살 적부터 배 위에서 커서, 바다는 우리 집 앞마당이나 진배없어요 … 바다에 가고 싶네 … 우리는 처음에 폐병환자 옆 병동으로 보내졌는데, 그 폐병환자들조차도 우리를 싫어했어. 미나마타에서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이 왔다, 옮는다더라 하면서. 그러더니 우리가 있는 병동 앞을, 그 폐병환자들이 입을 손으로 막고 숨도 안 쉬고 내빼듯 지나가는 거야. 자기네가 진짜 전염병인 주제에” ..  (126∼137쪽)


 어느덧 이불빨래는 끝납니다. 물은 다 짜지 않고 고무대야에 담은 채로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담벼락에 널어야 하니, 이불이 머금은 물기를 조금씩 담벼락에 쏟습니다. 담벼락을 얼추 물로 닦아낸 뒤 이불을 넙니다. 조금 뒤 이불 아래쪽을 쭉쭉 잡아당겨 물을 쪽 뺍니다. 자, 이제 제 몫은 다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오로지 햇볕한테 맡기면 됩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덜컹덜컹 전철 소리를 듣다가는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젖은 고무신은 창턱에 올려놓아 말립니다.


..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까? 나 역시, 다른 것으로 말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원이 없겠네. 다시 한 번 영감하고, 배를 저어 바다에 나가고 싶어. 내가 측면 노를 젓고 영감은 앞 노를 젓고. 어부의 아내가 되려고 아마쿠사에서 시집왔는데” ..  (154쪽)


 책상 앞에 앉습니다. 쓰다가 만 글을 다시 쓸 생각입니다. 너저분한 책상에 쌓인 책도 좀 갈무리를 해 봅니다. 보내야 할 편지도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은 책방 나들이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아차,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다 빠졌다는 동무네 집에도 찾아가서 바람도 넣고 자전거 손질도 좀 해 주어야겠습니다. 햇볕도 좋은데, 슬금슬금 걸어가며 찾아가 볼까 싶습니다.


.. “여보, 새댁, 미나마타병은 가난한 어부가 걸린다, 그러니까 쌀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걸린다고들 하는데, 난 정말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봐요, 나처럼 평생을 고기 낚는 배 한 척, 아내 한 사람, 나는 집사람 하나만을 내 여자라고 믿고 … 도쿄에는 사람 수보다 차가 더 많아서 어디 다니지도 못한다더구먼. 집도 사람도 너무 많아져서 햇빛도 제대로 안 든다면서.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가늘디가는 버섯같이 된다대. 도쿄사람들은 그러니까 불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 들으니까 도쿄 어묵은 썩은 생선으로 만든다는데, 새댁 그거 알어? 익혀서 먹어도 식중독에 걸린다더라고. 그러고 보니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신선한 생선 맛도 모르고 햇빛도 제대로 못 쐬고, 불쌍하게 살다 가겄네. 우리가 봐도 도쿄사람들은 정말 불쌍해. 도미도 청어도 물들여서 팔고 있다잖어? … 새댁, 그거 알아요? 물고기는 하늘이 주신 거라고. 하늘이 내려주신 것을 공짜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 잡아서 그날 하루를 사는 거여” ..  (179∼181쪽)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부시시 일어나서 ‘왜 안 깨웠느냐’고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다가 ‘깨웠어도 못 일어났을 거’라고, 몸이 많이 무겁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함께 옥상마당으로 올라갑니다. 말리고 있는 이불을 뒤집습니다. 햇볕이 아주 좋아서 저녁이 되기 앞서 다 마를 듯합니다.

 다시 전철 소리를 듣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전철 소리가 너무 큽니다. 전철 회사에 이 끔찍한 소음 공해를 따질 수 없을까 옆지기한테 이야기를 하니, 옆지기는 전철보다 아래층 도매상에서 자동도르레를 쓰면서 내는 소리가 더 크다고, 저 소리를 이 집 임자한테 따지고 싶다고 대꾸를 합니다.

 앞에서는 차 소리, 옆에서는 전철 소리, 아래에서는 도매상 도르래 소리. 여기에다가 머잖아 인천에 아시안 게임을 치른다며 온 동네를 재개발지구로 삼아서 파헤치려고 하는 쇠삽날 소리까지 하면.


.. 신문기자나 잡지사 기자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묻는다. 그들은 메모지와 펜을 먼저 꺼내든다. ‘저, 생활수준은?’ ‘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밭은 몇 평이고 배는 몇 톤짜립니까?’ ..  (201쪽)


 아침나절에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를 들었는데, 요즈막이 고양이들 발정기가 아니냐 싶습니다. 엊그제 옆동네를 거닐며 발정난 고양이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몹시몹시 괴로워하며 날카롭게 니앙니앙니앙 하더군요.

 동네 비둘기는 우리 집과 이웃집 창턱이나 옥상 담벼락에 앉아서 구우구우 웁니다. 옛날 집 창턱은 들새가 앉기에 넉넉합니다. 빈집 창턱은 들새가 사람 걱정 없이 해바라기를 하면서 쉴 만한 터입니다. 겨울에는 힘들지만 여름에는 요 창턱에서 새근새근 잠들 수 있어요.


.. “나무에도 풀 한 포기에도 영혼은 있다고 나는 믿어요. 물고기에게도 지렁이에게도 영혼은 있다고 믿는데. 우리 유리한테는 그것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요?” “하아∼ 세상에 없던 병이라잖어.” “병하고는 달라요. 대여섯 살 한창 예쁠 나이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빼앗겼는데 … 유리는 이미 빈껍데기라고, 영혼은 이미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이라고, 신문기자가 그렇게 썼데요. 아마도 대학 선생님 소견이겠지요. 그렇담 여보, 유리가 뱉어내고 있는 저 숨은 대체 뭐지요? 풀이 뱉어내는 숨인가? ……” “그만 좀 해, 여보.” “안 할게요, 안 할게요. 영혼이 없는 아이라면, 유리는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  (219∼220쪽)


 저와 옆지기가 보려고 하는 황윤 감독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치여 죽은 짐승(영어로 하면 ‘로드킬’)’ 삶터를 담아낸 97분짜리 작품입니다. 영화 본 사람들 이야기와 소개를 살피면,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우리 나라 ‘국도’에서 치여 죽은 수천 마리에 이르는 짐승들을 몸소 찾아나서며 담아냈습니다.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는 분들은 잘 못 느끼고,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다녀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길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 날마다 ‘치여 죽은 짐승 주검’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납니다. 제가 충주에서 살며 서울로 자전거로 오갈 때에는, 날마다 열셋∼스물둘에 이르는 ‘새로운 주검’을 늘 보았습니다.

 국도를 달리는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아요. 100킬로미터도 아닌 120킬로미터나 140킬로미터 빠르기로 내처 달리기만 합니다. 길가에 자전거가 달리건 할매 할배가 걷건 그예 빵빵질을 하거나 위협운전을 합니다. 사뿐사뿐 다니는 운전자도 많지만, 아슬아슬 달리는 몇몇 운전자 때문에 많은 사람들 간이 콩알만해지고 옆마을 마실을 느긋하게 다니지 못해요. 그나마 짐승들은 씽씽 달리는 차에 치이면 어떻게 되는 줄 하나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치이고 밟히고 죽고. 이렇게 죽어서도 또 밟히고 자꾸 밟혀서 아예 떡이 되어 버리고.


.. 햐쿠켄 배수구가 있는 코이지섬 근처에 멸치나 미역이 이상번식해서, 채취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은 우리 마을까지 금세 전해지게 마련이다. 미나마타병 미역이라도 봄의 미각. 그렇게 믿는 나는 그 미역으로 된장국을 끓인다.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된장이 응고되어 미역 된장무침이 만들어진 것이다. 입에 넣으면 그 된장이 걸쭉하니 기분 나쁘게 잇몸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미역은 뽀득뽀득 마찰음을 낸다. ‘회사는 밤이 되면 냄새나는 기름 같은 것을 바다에 흘려보내. 밤낚시 나가서 물속에서 팔을 집어넣으면 그놈의 것이 살에 딱 들러붙는데, 끈적끈적한 것이 꼭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니까!’ 어민들이 희귀병 발생 당시에 주고받았던 말을, 나는 멍청히 입을 벌린 채 기억해 낸다 ..  (235쪽)


 국도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짐승 주검을 볼 때마다, 이 짐승들은 온몸을 내던져서 ‘빠르기에 목매다는 사람들’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느꼈습니다. 짐승들은 ‘우리는 이렇게 죽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목숨 값어치를 아느냐’고 자꾸자꾸 되묻는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없이 죽어 가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이 땅에서 얼마나 시간을 아끼고 큰차를 즐기면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고 캐묻는다고 느꼈습니다.


 (2) 삶과 전통


.. 젊은이들이 마을에, 그러니까 어부로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  (15쪽)


 가만히 생각하면, 저는 굳이 〈어느 날 그 길에서〉 같은 영화를 안 보아도 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치여 죽는 짐승’ 이야기를 여태껏 줄기차게 보면서 사람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세상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막개발 삽날이 아닌 사랑스러운 동네 문화를 북돋우려고 일손을 거드는 움직임이라면,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야기를 온몸으로 살고 있는 셈이라고도 느낍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 우리 이웃들하고 이 영화를 함께 보면서, 지금 우리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동네 문화를 꺾으려고 하는 인천시장 마음 씀씀이를 좀더 깊이 헤아려야겠다고 느낍니다. 머리로 아는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 영화 이야기를 이웃 아주머니와 할머니들한테 해 주면서,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이끌 수 있습니다. 영화 전단지라도 몇 장 챙겨 보여드리면서 시간 날 때 영화 보러 가시라고 이끌 수 있습니다.


.. “위로금 인상이라……, 그게 없으면 목에 풀칠하기도 어렵지요. 우리 큐헤이는 병에만 안 걸렸어도 이제 어엿한 어른인데. 남자애들은 중학교만 올라가도 이 근방에선 어엿한 어부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위로금은 아직 아이라고 고작 일 년에 3만 엔 ..  (29쪽)


 그동안 치여 죽은 이들은 들짐승이요 산짐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길에서만 들짐승과 산짐승, 때때로 시골 아지매와 할배였습니다. 한국사람 거의 모두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개발(뉴타운) 바람에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과 마찬가지’인 더 아래인 밑바닥으로 나동그라집니다.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서민들 사는 집터는 ‘낡고 허름하니 빨리 없애야 할 나쁜 것’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판입니다. ‘재개발 이익을 동네 주민한테 돌려 주겠다’고 한들, 우리 삶이 돈 몇 푼으로 무엇이 나아집니까. 어느 날 갑자기 천만 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만큼, 그 천만 원에 값하도록 우리는 살림터에서 떠나야 합니다. 천만 원을 냉큼 챙기는 그때 우리 집터 임자는 우리가 아니라 개발업자와 시청 공무원입니다. 천만 원에 눈이 돌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앞날은 오로지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생각에 젖어듭니다. 그런데 기껏 그 천만 원으로 어디 가서 집 얻고 사나요.


.. “그런데 후생성이라고 찾아가 봤자 아무도 몰라요. 미나마타에서 왔다고 해도, 미나마타라는 데가 어디 있는 동네냐고. 규슈에 있는 벽촌으로, 지도를 꺼내서 어디 있는 데냐며 짚어 보라고 하고. 게다가 그 미나마타 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있는 츠키노우라니 유도니 모도니 아무리 말해도, 상대도 안 해 주는 거라. 전혀 듣지를 않아요. 들어줘도, 도쿄사람 특유의 콧소리로, 아, 그래, 그래요? 하면서 흘려듣기만 하더라 이거예요” ..  (91쪽)


 우리 나라 ‘온산병’이나 ‘원진병’, 이웃 일본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 그리고 미국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뜨려서 생긴 ‘원폭병’, 우리 나라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걸리고 연탄공장 옆에 살던 사람이 걸리던 ‘진폐증’, 더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기름배 사고 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이 돈에 매이고 돈만 바라보면서 터져나옵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일, 무기를 끊임없이 만드는 일, 무기 팔아먹는 일 또한 제 배만 불리고 이웃 배는 굶어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정작 참다운 삶과 아름다운 삶에 눈을 두고 있다면, 무기개발과 군대거느리기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지 말고, 사회문화와 보건복지에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바다 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다 속에는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  (140쪽)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푸념을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우리가 날마다 타고다니는 자동차(대중교통까지) 문제를 먼저 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흰구름과 뭉게구름을 볼 수 없는 하늘을 탓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과 종이잔부터 해서, 온갖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거나 안 나오도록 살아갈 수 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빗물을 그릇에 받아서 먹던 지난날이 그립다고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전기제품을 돌리면서 꾸리는 살림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면서 꾸리는 살림이어야 합니다.

 벼농사를 지어야만 땅살리기가 아닙니다. 텃밭농사를 지어야만 땅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에 눈길을 두고, 우리가 함께할 만한 일에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 “여보 새댁, 우리 부부는 누더기 같은 옷이지만 찢어진 것은 기워 입고, 하늘이 먹여주신 것을 먹고, 조상을 섬기고, 신들을 믿음으로 받들고, 다른 사람 원망하지 않고, 남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 살아왔다오” ..  (182쪽)


 새 대통령 이명박 씨가 벌이는 ‘서울-부산 물길’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아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명박 씨가 놓으려는 ‘서울-부산 물길’ 막기에만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명박 씨한테서 ‘서울-부산 물길’을 앗아가 버리면, 이이는 그 다음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할까요. 여태껏 돈을 들여서 공사를 벌여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분인데, 이분 머리에서 무슨 생각이 나오게 될까요.

 이명박 씨뿐 아니라, 이명박 씨가 거느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씨와 이명박 씨 둘레사람뿐 아니라, 우리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들도 그렇습니다. 대한주택공사가 해 온 일이 무엇이며, 산업자원부가 해 온 일이 무엇이고, 건설교통부가 해 온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땅장사 집장사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한결 나은 삶을 바라는 우리들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를 꾸준하게 말하는 가운데 ‘서울-부산 물길’이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깨닫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바보스럽게 살면서 바보인 줄 모르는 바보한테 우리 모두 즐거울 길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함께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미나마타병이었다고, 죽어도 말 안 할 생각이여. 벌써 옛날에 거기를 떠나왔고, 우리 고향 미나마타라고 하면 갈 곳이 없어진다고” ..  (254쪽)


 제주 물맛이 좋아 ‘삼다수’라는 먹는샘물을 팔려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제주 물맛이 좋으면, 우리 사는 이곳에서 마시는 물도 제주섬 물맛 못지않게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도록 동네 삶터를 가꾸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들여놓고 즐기는 물맛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먹으면서 싱긋 웃을 수 있는 맛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삶터를 찍으려고 멀리멀리 ‘깨끗한 나라’로 비행기 타고 떠나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우리 삶터가 오래오래 아름다운 자연 삶터가 되도록 ‘돈을 이 나라 이 땅에서 쓰면서 우리 삶터를 가꾸어야’ 할 노릇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정으로, 시민들은 골목골목이며 사거리며 텔레비전 앞에서 열을 올려가며 말하고 있었다. 미나마타병 환자 111명과 미나마타시민 4만5천 명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말들이 들불처럼 확산되더니, 갈수록 대합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 ‘질소공장을 지켜라! 회사를 지켜라!’와 같은 구호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  (275, 278쪽)


 (3) 덮을 수 없는 책, 《슬픈 미나마타》


 어른들이 읽을 만한 ‘미나마타병’ 이야기책은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병》(한울,2006)과 《하라다 마사즈미-끝나지 않은 수은의 공포》(대학서림,2006) 두 권이 있습니다. 어린이책으로는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가 있습니다. 세 권 모두 한 사람이 쓴 책입니다. 여기에 1927년 쿠마모토현 아마쿠사군에서 태어난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아주머니로 집안살림을 꾸리는 가운데 1969년에 펴냈던 《슬픈 미나마타》(우리 나라에는 2007년에 옮겨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에 앞서 ‘미나마타병’을 다룬 책이 더 있는가 헤아려 보면, 《구와바라 시세이/구와바라 가즈꼬 옮김-미나마타의 아픔》(을지서적,1990) 한 권이 있습니다. 제 다리품이 모자란 탓이 있을 텐데, 여태까지 제가 알아본 ‘미나마타병 이야기’를 다룬 책은 이 다섯 권이 모두입니다.


.. 미나마타병을 잊어버려야 한다면서, 결국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과거 속으로 묻어버려야 한다는 풍조,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매몰되어 가고 있는 그 암흑 속에 소년만이 우두커니 혼자 남겨져 있다 ..  (31쪽)


 이 다섯 권 가운데 꾸준하게 읽히는 책은, 어린이책으로 나온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 한 가지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보도사진으로 담아낸 《미나마타의 아픔》은 일본 사회에서나 큰 울림을 이루어냈을 뿐, 한국 사회에서는 터럭만한 울림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하라다 마사즈미 님 두 가지 번역책은 적잖이 전문책이라 할 만하지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들조차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 어민들은 상처입고 지치고,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는 더없이 고독해 보였다 ..  (110쪽)


 그래도 아이들을 믿어 볼 수 있을까요. 어린 날부터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을 아이 가운데 하나라도 뒤엉킨 우리 세상과 뒤틀린 우리 사회를 깨달아서, 차근차근 고쳐 나가는 데에 힘을 쏟으리라 믿어 볼 수 있을까요.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어부의 아내 사카가미 유키의 목소리 ..  (151쪽)


 교수님도 하지 않고 지식인도 하지 않으며 의사들은 등을 돌리는 가운데 기자 또한 하지 않던 ‘미나마타병 참모습 캐기’를,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온몸으로 다부지게 부딪히면서 《슬픈 미나마타》라는 책 한 권을 여미어 놓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병든 몸으로 혼자 살아갈 힘도 벅찬 할아버지가 옥구실 같은 동화를 수없이 남겼습니다(권정생). 동화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풀 같은 아주머니들이, 우리 가슴을 시리게 하는 알뜰한 이야기책을 꾸준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평교사 한 사람이 우리 말과 글을 올곧게 추스르는 이야기책을 수없이 남겼습니다(이오덕). 평교사 한 분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꽃 같은 헌책방 일꾼들이, 먼지구덩이를 파헤치고 뒤지면서 오래도록 빛이 나는 고운 책들을 꾸준하게 되살려 내고 있습니다.


.. “할아버지 댁의 할머니도 미나마타병이 아닌가요?” 이렇게 묻기는 쉽다. 하지만 미나마타병은 문명과 인간의 존재의 의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205쪽)


 수은공장(질소공장)에서는 미나마타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수은공장 사장은 끝까지 ‘우리는 지역발전에 힘을 썼을 뿐이다’면서 핑계를 대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아무 책임을 안 지려고 발뺌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수은공장이 있습니다. 수은공장 못지않게 다른 온갖 공장에서는 우리 공기와 물과 흙을 더럽히는 쓰레기들을 쏟아냅니다. 제대로 걸러내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채 돌아가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쇠붙이 다루는 공장 옆에 1분만 서 있어 보십시오. 숨이 막히고 코가 뚫어질 듯 아픕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공장보다 더하다고 할 만한 공해물질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추 하나로 텔레비전을 켜고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와 청소기와 에어컨을 돌리고 겨울을 여름같이 살고 있습니다. (4341.4.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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