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
김준호 지음 / 따님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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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사람과 자연
- 글쓴이 : 김준호
- 펴낸곳 : 따님(2001.5.20.)
- 책값 : 6800원


 익산에 사는 할머님 한 분이 보내준 된장과 간장으로 밥을 해먹습니다. 요 된장을 풀어서 끓이면 어떤 찌개든 맛깔스럽다고 느낍니다. 다른 간은 안 합니다. 된장만 반 숟가락 풀어서 국수를 삶거나 버섯찌개를 합니다. 김치나 감자나 빨간무나 호박 들을 두루 넣어 섞어찌개를 할 때도 있고요. 익산 할머님이 보내준 된장은 당신이 콩씨까지 하나하나 가려서 심고 풀약이나 비료를 하나도 안 쓰고 길러서 거둔 뒤, 손수 삶은 다음 메주를 띄워서 빚어내었습니다. 손수 띄워서 빚은 된장을 나날이 먹는 밥으로 먹어 보기는 스무 해 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열서너 살 나이 때까지는 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을 담그셨거든요. 문득, 그때는 그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만으로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우리는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자연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국토 면적이 좁을수록, 또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더 자연보존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보존되어 온 자연마저 개발한다면 장차 이 땅에는 손바닥 만하게 보존된 자연마저도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자연보호와 자연보존을 혼동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연보호만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개발만 하려는 생각이 판을 치게 되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145쪽〉


 오랜 술동무 하나가 힘겹게 몸앓이한 끝에 아들아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저저번달에 돌잔치를 했고, 저번달에 그네가 사는 동네로 찾아가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집에서 손님 대접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라 그네 식구가 자주 찾는다는 오리고기집에 갔는데, 오리고기집은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논 한복판에 있습니다. 오리고기를 얻어먹으며, ‘어떻게 논 한복판에 오리고기집을 차릴 생각을 다했을까?’ 싶었습니다. 김포공항 둘레에는 아직 논밭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 논밭은 머지않아 모두 갈아엎고 높은 아파트를 올린다고 합니다.

 농사짓는 분들로서는 곡식 거두어 보았자 돈이 안 되고 빚만 되니까, 그 땅이나마 좋은(?) 값에 팔아 딴 데로 떠나거나 고기집 장사를 하는 편이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요. 재개발업자는 공사 한 건 얻을 테니 돈방석에 앉을 테고, 시나 구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으니 공사업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힘껏 재개발에 나설 테지요. 논밭 둘레 높직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네 아파트 옆에 논밭보다 높직한 아파트가 나란히 서 있어야 집값이 올라 돈을 번다고 생각하겠지요.


.. 큰 도시가 생기고 생활환경이 열악해짐에 따라 식물은 일방적으로 수난을 당하게 되고, 사람의 마음은 자꾸 황폐해지고 있다. 무엇이 사람과 식물을 이간질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가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숲이 바로 안식처였고 생활 터전이었다. 사람은 메마른 마음을 살찌우려고 정원을 만들고 공원을 꾸민다. 정원은 각 민족의 오랜 정서를 모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  〈67쪽〉


 도시개발 하는 모습을 보면, 여태까지 고이 이어오던 산을 깎고 들을 뒤집어엎어 시멘트로 바른 뒤 아파트를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흙을 퍼 오고 나무를 사 오고 꽃을 심고 하며 ‘근린공원(‘근린공원’이란 “가까이 있는 공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아파트 재개발을 한 곳에 가까이 마련한 공원이란 소리입지요)’을 조그맣게 만듭니다. 처음부터 재개발을 할 때 숲과 산과 들판을 고이 지키면서 ‘사람 살 집’만 알맞춤하게 지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 때려부수거나 갈아엎은 뒤 돈으로 바릅니다. 그리하여, 뒷날 ‘이번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낡았다고 여겨지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뒤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아파트 옆에 있던 근린공원마저도 똑같이 허물고 부수고 새 아파트를 올린 뒤 새 근린공원을 만듭니다.

 있는 것을 지키거나 가꾸기보다, 있는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돈이 된다고 하는 요즘 세상이라서 이렇게 돌아갈까요. 그러면 그 돈이란 어디에서 나오고, 이 돈은 어디에 쓰일까요. 이 돈은 밑도 끝도 없이 샘솟기만 할까요. 돈은 샘솟아도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곳,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아늑하게 깃들 수 있는 곳이 다 파헤쳐지거나 무너진 뒤에는 어찌 될까요. 오늘은 4월 5일, 박정희 독재자가 세운 ‘나무심는날’입니다. (4340.4.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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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백작 - 농부는 백가지 일을 하고 백가지 작믈을 기른다
후루노 다카오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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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백성백작
- 글쓴이 : 후루노 다카오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6.7.22.)
- 책값 : 8000원

 
 이 책 하나 14 - 백성백작
 : 추위를 견디니 달콤한 봄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겨우내 긴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무논에서 왁왁 울어댔습니다. 멀리서도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눈이 오며 확 쌀쌀해지니 개구리 소리가 잦아듭니다. 설마 무논에서 꽁꽁 얼어붙었을까요.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어찌 되었을는지.


.. 나는 30년 가까이 벚꽃 피는 계절에 이런 일만 해 왔다. 여러 해 농사를 지었건만 씨를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는 불안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나날이 계속된다. 올해는 토마토, 가지, 피망 등 모두 순조롭고 균일하게 싹이 터 두 잎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보통은 표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는 균일하지 않다. 쌍잎의 방향, 본잎이 나는 방식 등 어느 하나인들 같은 모가 없다. 인간의 얼굴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듯이 자연계는 진정한 뜻으로 다양성에 충만해 있다. 농업은 생산력을 올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능한 한 이 다양성을 균일화하는 행위일 것이다 ..  〈188∼189쪽〉


 굳이 옛사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보면 그이 삶과 성격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을 뚝딱 해치운다고 했습니다만, 김치는 배추김치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무김치도 갓김치도 오이김치도 겉절이도 물김치도 있습니다. 무채도 있고 깍두기도 있으며 섞박지도 있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무나 배추나 오이 들을 날것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날이 풀리는 봄이면 들풀과 멧나물을 뜯어서 흙만 털고 먹어도 좋고요. 이처럼 밥 한 그릇을 비워도 온갖 반찬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모습을 고이 간직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기 입에만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는 반찬에만 손을 대고 흰 쌀밥만을 먹는 사람은, 고이 지닌 자기 모습을 못 찾거나 못 보지 싶어요.


.. 우리들은 달빛 아래 낫으로 벤 벼를 모아 콤바인에 떨었다. 나는 달빛 아래 가족이 함께 일하는 행복을 갑자기 느꼈다.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으로 돈가스와 맥주가 최고였다 ..  〈165쪽〉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만한 곡식을 거두는 논밭은 아주 조그마해도 넉넉합니다. 식구가 늘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네 식구 논밭은 50평으로도 좋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다면 100평쯤이면 꽤 넓을 테지요. 이만한 크기라면 기계 없이 손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계란 한꺼번에 많이 심고 농약과 비료로 한꺼번에 다스리며, 마지막에도 한꺼번에 거두어들여 일손을 적게 들이고 더 많이 얻어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씁니다.

 장사를 할 때 먹고살 만큼만 벌겠다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먹고살 만큼을 넘어, 다른 데에도 돈쓸 일이 있기 때문에 하루 열 몇 시간씩 몸이 무너지도록 일에 시달리고 맙니다.


.. 이곳은 확실히 포도밭이 넓다. 그렇지만 한 집 앞 면적은 작아, 360평에 불과하다. 1년 수입은 15만 엔쯤이라고 한다. ‘사치만 하지 않으면 가족 네 사람 먹고 지낼 만해요.’ 햇빛에 그슬린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농민 우씨는 말했다 ..  〈159쪽〉


 없는 이한테는 ‘사치’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살아가기’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을까요. 있는 이들 재산은 이들이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받은 셈인지요. 또한, 없는 이들은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버는 셈인지요.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어서,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받는 돈이 다릅니다. 여기에 학력 푸대접이 있어서, 둘이 똑같은 날 회사에 들어가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일을 해도 둘이 받는 돈이 다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서 파는 값과 길가 좌판에서 파는 값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일한 만큼 올바르고 알맞는 대접을 받고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몸이 망가지도록 일에 시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 대접, 일한 대접을 못 받으니까 삶이 팍팍해지고 일이 괴로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한편 1950년대 논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물장군, 소금쟁이, 새우, 거머리, 참개구리…… 잠자리도 고추잠자리만 아니라 실잠자리, 가는실잠자리, 갈구리측범잠자리, 왕잠자리, 밀잠자리, 검은물잠자리, 물잠자리 등 다양한 잠자리들이 있었다 … 논에 물고기가 없어지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농약과 제초제 이전에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논의 경지정리로 연못과 툼벙이 메워지고, 물길이 3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 있다 … 독자 여러분, 논에 물고기가 살았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모르는 분은 상상해 보세요. 논이나 물길에 물고기가 살고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잡습니다. 먹을거리 교육이다, 환경이다 하면서 인공 정보를 부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논에 물고기가 뛰노는 풍경을 재생하면 됩니다. 이것이 아마 아파트 세대의 의무일 것입니다 ..  〈154∼155쪽〉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사람 대접을 받기를 바라며 학교에 넣습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커 가는 길에 대학교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올바르고 씩씩하고 훌륭하며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교육으로 몰아세웁니다. 자격증이라는 종이쪼가리가 없어도 차근차근 일을 배우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이 자격증 문서를 보고 사람을 뽑고 일삯을 주기 때문에, 현장과 동떨어진 학원에 돈을 쏟아붓고 시간을 헤프게 씁니다.

 세상 어느 지식이 쓸모가 없겠느냐만, 너무 많은 세상 지식은 외려 우리를 좁은 우물에 가둔 채 더 널리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책을 보며 물고기 이름을 외우고 꽃피는 철을 익힌들 무엇하겠습니까. 길가에 자라는 풀이름을 모르고, 어시장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서 다듬거가 반찬으로 다룰 줄 모르는데. 한국사람들이 꼬맹이 때부터 영어를 빈틈없이 배운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한국말은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영어 낱말과 말투를 어설피 한국말에 뒤섞으며 지식 자랑을 하는데.


.. 유기농업의 일 가운데 나는 풀매기를 가장 좋아한다. 혼자면 천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여럿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요컨대 잡풀도 해충도 자연의 다양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농업은 생태계 진화의 법칙을 따르면서 이 법칙을 인공적으로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하여 노동력을 투입한다. 나의 경우 스낵 완두콩의 제초작업니다. 요즘 ‘농업은 환경을 지킨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생태계 진화의 일반 법칙으로 비추어 보면, 이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다. 농업은 다양해지려고 하는 환경을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 잡풀이나 해충이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추어 무시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  〈128∼129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혼자일 때는 제 빠르기에 맞추어 달리며 둘레를 구경할 수 있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여럿일 때는 함께 바라보는 둘레 모습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다가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시골도 도시도 차가 지나칠 만큼 늘어나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을라치면 앞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때문에 화들짝 놀랍니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차에 치이지 않으려면 마음이 조마조마, 마음을 바짝 조여야 해요.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는 귀를 째듯 시끄럽습니다. 게다가 도시는 큰길가뿐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한갓지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갖가지 소리들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흔듭니다.

 오늘날 문명은 우리들이 ‘온갖 소리에 무덤덤하도록 길들이는’ 문명일까요. 더 크고 많고 빠르고 힘센 것을 좇도록 하면서 온갖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내모는 문명일까요.


.. 1950년대 경지정리를 하기 전 우리 마을의 논은 모양이 다양했다. 세모꼴, 바나나꼴, 부채꼴, 긴 막대꼴 등 여러 모습이었다. 논의 높낮이도 제각각이었다. 논 한복판을 손으로 판 배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버드나무가 자랐다. 그 당시 논의 둑에는 감나무나 치자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경지 정리 이후 논은 대체로 100m×30m의 긴 네모꼴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 등 기계작업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논의 풍경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워 아무 재미도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보기 지루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  〈122∼123쪽〉


 학교 건물을 보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집니다. 높은 울타리, 모두 똑같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굳게 닫힌 창문과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골마루와 교실,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빈 운동장, 겉보기로 좋으라고 플라스틱 잔디를 깔아 놓은 운동장, 똑같은 옷(학교옷)에 똑같은 머리길이와 머리모양, 똑같은 신에 비슷비슷한 가방을 멘 아이들…… 저 아이들은 가슴에 붙여야 하는 이름표에 적힌 글자만 다를 뿐, 모두 틀에 박힌 붕어빵처럼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세상일을 똑같은 눈길로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줄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가용에 아늑하게 타서 학교 문앞까지 가는 아이들이 늡니다. 어버이 자가용이 아니더라도 마을버스나 학원버스가 학교 문앞과 집 둘레 골목길 또는 아파트 들머리를 오가며 아이들 다리가 힘을 안 써도 되게 해 줍니다.

 제 어릴 적 동무들과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다 다른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머리길이에 누가 누구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비슷비슷 매한가지로 느껴집니다. 그나마 조금씩 다르구나 느껴지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중학교라는 곳에만 들어가면 한결같이 붕어빵이 되고 맙니다. 한국땅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아이들, 가장 지루하고 딱딱하고 메말라 보이는 아이들이라고 할까요. 모두 어슷비슷하게 되면, 이 아이들 머리통에 지식쪼가리 집어넣기는 수월할 테지만, 이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기란 별따기와 같을 테지요.


.. 밭에 채소만 여러 해 심으면 잡초가 늘고 해충이 늘고 이어짓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는다. 그래서 3년 밭으로 사용하면 다시 논을 만든다. 거기 벼를 심으면 벼만 계속 심던 논보다 튼튼하게 잘 자란다. 거꾸로 논을 밭으로 만들면 잡초나 해충 발생이 매우 적다 ..  〈104쪽〉


 저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 으레 다음처럼 합니다. 먼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힘껏 해서 돈을 법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둔 뒤 지갑을 채우고 자전거를 타고 책방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책방은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제법 먼 곳에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고 찻길도 가로지르노라면 이곳저곳에서 저마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대낄 수 있습니다. 어느덧 가고자 한 책방에 다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갑니다. 땀을 들이며 느긋하게 몇 시간 동안 책을 고릅니다. 딱히 어떤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책방에서 만난 온갖 책을 하나씩 살피며 제 주머니에 든 돈에 알맞는 만큼 책을 고릅니다. 그리곤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새책은 새책대로 읽고, 헌책은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걸레는 제가 손빨래로 빨아 놓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손에 볼펜을 듭니다. 읽으며 제 눈길을 끌거나 마음에 와닿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빗금을 치거나 별을 그립니다. 빈자리에 이것저것 적바림할 때도 잦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 두는데, 꽂아 두기 앞서 스캐너로 책 겉그림을 긁고, 책읽은 느낌도 몇 줄이나마 적어 봅니다.


.. 그렇게 말하면 ‘뙤약볕 아래 열심히 논에서 일꾼으로 일했던 오리 친구를 잡아먹다니 가엾지도 않아요?’라고 걱정을 듣는 일도 있다. ‘당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채소, 쌀도 먹을 것 아니에요? 그들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청둥오리도 소도 돼지도 닭도 생선도 쌀도 채소도 인간도 생명은 하나, 모두 같습니다.’ 그런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청둥오리가 가엾다기보다 ‘왜 사람은 평상시 먹는 것에 대하여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고 버리는 시대에 우리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  〈97쪽〉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는 말을 처음에는 너무 대단한 말이라고 느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뭇 목숨붙이를 가만히 돌아보는 동안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밥알 하나도 소중한 목숨이고, 김치 한 조각도 소중한 목숨입니다. ‘밥’과 ‘김치’이기 앞서, 이들은 저마다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던 풀목숨이었습니다.

 물고기를 먹든 뭍고기를 먹든 똑같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르기 앞서는 모두 목숨이었어요.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른 뒤에도 목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목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라는 목숨 하나가 하루 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나 하나 살자면 다른 목숨 몇을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붙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사람 삶도 ‘더 있는 사람이 나누어 덜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더 있는 것을 기꺼이 쓰거나 나누고, 나한테 모자란 것을 기꺼이 얻거나 받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밥알 하나 함부로 흘릴 수 없고, 땅바닥에 떨어진 밥풀도 스스럼없이 주워서 먹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이웃이나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푸대접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일한 대가를 알뜰히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쓰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목숨이니, 고달프거나 힘겨운 이를 보면 따순 손길을 나누고 싶고, 한손을 내밀어 돕고 싶습니다.


.. 그렇기는 하나 요즘 논밭에서 일을 거들거나 노는 아이들이 매우 줄었다. 일본 논밭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대지에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라는 편리하고 위험한 독물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은 또 경제의 고도 성장과 궤도를 같이한다 … 밭을 ‘간다’는 것은 마음을 가는 것이고, 동시에 일을 거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내면 외국의 수입 농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았던 것같이 외국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 수는 없다 ..  〈88∼89쪽〉


 우리가 읽는 책은 돈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돈을 내고 사거나 빌려 깃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돈을 치르고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 하나면 거의 모든 옷밥집이며 문화살이를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참말로 돈 하나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책, 마음을 살찌운다고 하는 책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책이라는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책에 담긴 ‘줄거리’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치러서 책이라는 ‘물건’을 산다고 해서 책에 담은 ‘줄거리’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요. 값싼 헌책 한 권을 사면 ‘줄거리’를 못 얻을까요.

 큼직큼직한 책방에 마일리지 쌓으러 가고, 인터넷책방에서 턱없이 깎아주거나 끼워팔기마저 하는 책을 손쉽게 산다고 해서 ‘책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책을 산다면, 틀림없이 책이라는 ‘물건’은 우리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하나가 이루어지는 ‘땀방울과 흐름’은 못 느끼지 싶어요.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빚어내려고 애쓴 글쓴이 땀방울, 책에 담는 줄거리를 알뜰히 엮어내어 살가이 보여주려고 힘쓴 출판사 손길, 애써 꾸려낸 책이 우리들한테 두루 보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책방사람 움직임, 책방을 둘러싼 우리네 마을과 사회 터전, 이 여러 가지까지 함께 느끼며 책에 담은 ‘줄거리’를 느끼자면,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  〈79쪽〉


 시골집에서 밥을 해서 먹을 때와, 서울 같은 큰도시에 있는 밥집에서 돈을 치르고 사먹을 때 맛이 크게 다릅니다. 밥하는 사람 마음도 다르겠지만, 쓰는 물도 다르니까요. 제아무리 유기농으로 지은 쌀로 밥을 한들, 도시에서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쌀을 씻는 물이, 그 좋은 쌀이 익으면서 어우러지는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깨끗한 물을 멀리서 사들인 뒤 짓는다면 밥이 맛있을까요? 글쎄, 얼추 비슷해지기는 해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깨끗한 물 길어 와서 쓰면 뭐해요. 이웃들은,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물에 더러운 공기로 살아야 하는걸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누구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든 깨끗한 물과 공기를 즐기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릴 찻길을 끝없이 새로 닦는 공사판보다, 사람들 살림집이 조금 낡았다고 해서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알뜰살뜰 살아오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고 재개발한다고 싸그리 무너뜨리는 막개발보다, 서로서로 웃고 어우러지며 살아갈 신명나는 한마당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 아이들을 죽순 캐는 데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눈높이가 낮아서일까, 죽순을 정말 잘 발견한다. 흙 표면에 낙엽을 뾰죽이 치밀어 올리는 죽순을 차례차례 발견하면서 좋아라 날뛰고 있다. 죽순 찾기에 싫증이 나면 나무를 오르거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다. 뒷산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이 일하는 옆에서 놀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풍경의 하나다 ..  〈24쪽〉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이어서 하는 일을 보기 힘들어지는 우리 삶터입니다.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남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고, 어버이부터 딸아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이름을 한껏 날리며 몸을 덜 쓰며 아늑하게 일할 자리를 얻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 어버이가 아닌 딸아들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떠한가요.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딸아들한테 물려줄 만한지요. 자기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동무나 동생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을 하고 있는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한테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이어주고 싶은지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먹고사는 길로 할 만한 일이라면,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며 온삶을 같이 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싶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자기 딸아들한테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이웃이나 동무한테든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물려줄 수 없겠지요.


.. 식물의 잎은 태양의 빛을 받게끔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속이 앉은 배추 쪽이 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시금치도 연둣빛을 띠고, 잎끝이 조금 갈색이 되어 있다. 데쳐서 먹어 보면 뿌리도 잎도 달아 맛이 각별하다. 잎이 땅바닥에 기는 당근도 입안에서 녹듯이 부드럽고 달다.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  〈14쪽〉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에 부드럽고 단 빨간무입니다.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 빨간무라면, 비닐집에서 키운 빨간무라면 부드럽고 달 수 없습니다. 산에 들에 자라는 산딸이나 나무딸이나 들딸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을 있는 그대로 머금어서 달고 새큼하고 달짝지근하고 시기도 합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물만 잔뜩 머금고 굵직굵직하게 나오는 비닐딸은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설탕을 묻혀 먹지 않으면 단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퍽퍽하거나 푸석푸석하지요. 땅에 없는 기운을 비료로 먹였으니까요. 햇볕이 아닌 전깃불을 먹였으니까요. 하늘을 흐르는 바람과 땅을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공기와 억지로 퍼올린 수도물을 마셨으니까요.

 이야기책 《백성백작》은 “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우리한테 건넵니다. 농사꾼만이 아니라 농사꾼 아닌 우리들 모두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으로 이 세상을 보듬고 살아갑니다. 아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들은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을 품기보다는, 한두 가지 일만 하려들고 몇몇 사람만 만나려 하며 좁은 생각 몇 가지로 울타리를 쌓고 재미없거나 따분하게 자기 삶을 옥죄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언제쯤 높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기는 너른 땅으로 뛰어나올 수 있을까요. (4340.3.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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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
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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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글쓴이 : 박경화
- 펴낸곳 : 북센스(2006.1.16.)
- 책값 : 9500원


 낮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눈은 그쳤습니다. 조용한 밤입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도 안 들립니다. 좋습니다. 이 조용함이 좋습니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은 눈을 보면, ‘아, 이제 이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또 꼼짝 못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히유, 얼어붙은 눈이 녹으려면 또 한참이 더 있어야겠군’ 하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눈이 마냥 밉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미운 마음이란 없습니다. 겨울이니까 눈이 와야지요. 오더라도 펑펑 와야지요. 펑펑 와서 길이 다 막히고 무릎이 푹푹 잠겨야지요. 겨울인걸요.


-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1급수 맑은 물에만 사는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34쪽)


 이제 날이 새고 아침이 밝아 오면 길을 쓸고 치우는 손길로 부산할 겝니다. 차 많이 다니는 큰길에는 모래를 뿌린다고, 염화칼슘을 뿌린다고 법석이겠지요. 눈이 오는 날, ‘이야, 흰눈이다. 눈이다. 펄펄 내리는 눈이다!’ 하면서 소리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습니다. 눈싸움을 하자고, 눈사람을 만들자고, 눈놀이를 하자고, 눈사진을 찍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니, 눈이 펑펑 내려 길을 덮어도 사람들 지나다니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걸어다닐 때 조금 미끄럽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렇게까지 미끄러웠는가 모르겠어요. 길을 쓸거나 치워야 한다면, 모두 차가 잘 다니라고 쓸거나 치우지 않을까요?


..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중개상과 다국적 기업들은 콩고의 광부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국립공원이 얼마나 파괴되었고 고릴라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  〈24쪽〉


 눈이 펑펑 내린 날은 버스도 쉬고 기차도 쉬고 비행기도 쉬고, 모두모두 쉬면 어떨까요. 청소부도 쉬고 구멍가게도 쉬고 신문사 배달직원과 우유 아줌마도 쉬면 어떨까요. 구두닦이도 쉬고 길거리 장사꾼도 쉬고 은행도 쉬면 어떨까요. 먹고살아야 하니 쉴 수 없고, 먹고살아야 하니 차가 싱싱 달릴 수 있게 재빨리 길에 쌓이는 눈을 후다닥 치워야 할까요.


.. 덤은 많이 못 줘도 비닐봉지 인심은 풍년이다. 애써 장바구니를 챙겨 온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대형할인점은 아예 야채와 과일을 따로 포장해서 가격표를 붙여 준다. 때문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도 별 쓸모가 없다. 장을 볼 때마다 찬장에 비닐봉지가 자꾸 늘어간다. 그럴 때마다 비닐봉지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  〈84∼85쪽〉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불을 끄고 눕는데 창밖에 환합니다. 달빛과 별빛은 없는 밤이지만 온누리를 하얗게 덮은 눈 덕분에 바깥이 환하게 보이는군요. 도시에서도 온 동네 불빛이 다 꺼진다면 세상이 온통 밝고 하얗게 보일 테지요(그럴 일은 없겠지만). 밤에 눈빛이 얼마나 하얀지, 또 밝아 온 아침에 눈이 얼마나 하얀지 느낄 수 있겠지요.


.. 외출해서 차를 기다리고 차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걷는 짧은 시간만 추위를 느낄 뿐이므로 굳이 내복을 챙겨 입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옷맵시에 신경을 쓰는 멋쟁이들은 두꺼운 내복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겨울철에 반드시 내복을 입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  〈113∼114쪽〉


 겨울다운 겨울을 잃는 우리들은 봄다운 봄을 잃고 여름다운 여름을 잃습니다. 지난해 가을은 여태까지 맞이한 가을 가운데 가장 ‘가을답지 않은 가을’이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가을은 지난해보다 더 ‘가을답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우리들 씀씀이는 줄지 않으니까요. 자동차를 사려는 우리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입으로만 ‘가까운 거리는 걷자’고 읊고, 몸으로는 죽어도 안 걸으려고 하니까요. 그러면서 늘 같은 말을 되뇌이겠지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4340.1.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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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지음, 작은 우주 옮김 / 달팽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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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2006.11.27 02:11

- 책이름 :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 글쓴이 :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 옮긴이 : 작은우주
- 펴낸곳 : 달팽이(2004.7.21.)
- 책값 : 12000원


.. 그는 해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 들판을 돌아다녔다. 학교를 빼먹고 숲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  〈43쪽〉


 아침마다 작은 새들이 저를 깨웁니다. 새들은 창가에서 파닥거리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내거든요. 요즘은 딱새 몇 마리 구경하는 일로 아침 한때가 즐겁습니다. 딱새는 하늘에 뜬 채로 몇 초 동안 가만히 있기도 하는데(쉼없이 날갯짓을 하며), 저 작은 몸에, 날개에, 저렇게 빠른 날갯짓으로 참 잘 나는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박새와 콩새도 자주 보이는 새 가운데 하나. 요 작은 새들은 아주 조금만 먹어도(사람과 견주어) 되겠지요. 조금만 먹어도 얼마든지 자연 삶터에서 잘 어우러지는 목숨붙이일 테지요.


.. 세상의 압박받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 (알도 레오폴드/편지) 〈63쪽〉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많았고, 날이 퍽 포근했습니다. 예전 겨울이었다면 눈이 왔을 날씨인데, 요즘 겨울은 퍽 따뜻하기 때문에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눈구름이 아닌 비구름임을 느끼는 이 드뭅니다. 이 눈(아닌 비였지만)이 따뜻하게 온 세상을 덮으면서 크고작은 날벌레들을 모두 죽여서 땅에 묻히게 하여 이듬해에 흙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흐름은 차츰차츰 깨지는데, 이를 느끼는 이도 드뭅니다. 아직까지 모기가 다 죽지 않았음을 느끼기는 해도, 왜 모기가 안 죽었는지 깊이 생각하며 자기 삶을 돌이켜보고 바꾸려하는 이도 드뭅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맘때에는 몹시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는데(올해와 견주면), 올해는 그다지 안 춥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보다 지지난해가 덜 추웠고, 지지난해보다 지지지난해가 덜 추웠습니다. 0도 아래로 10도쯤 떨어지는 날씨는 아무것도 아닌 지난날이었지만, 이제는 0도 아래로 1도만 내려가도 강추위가 온 듯이 느끼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몸은 몸대로 여려빠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곪아버렸달까요.


.. 생물학자들 대부분이 개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오폴드 교수님은 개체군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 개체군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때, 교수님은 생태계와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 교수님은 자연의 보존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  〈246쪽〉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또 서울에서 시골로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자동차와 부대낍니다. 이 자동차들을 가만히 보면, 다른 자동차한테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도 보이지만, 다른 자동차를 윽박지르듯이 다니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와 자동차끼리도 싸우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사람들이, 자동차와 자전거였을 때, 또 자동차와 사람이었을 때, 또 자전거와 사람이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경주하는 자동차는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찻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도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자전거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무기는 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무기를 많이 만들어 가진 나라치고 힘여린 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은 나라란 없는 지구 역사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고 맨 먼저’라고 외치면서 ‘자연은 사람들 목적에 알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치고 ‘자연에서 먹을거리-입을거리-쓸거리-잠잘곳’을 안 얻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4339.11.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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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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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소박한 삶
- 지은이 : 레기네 슈나이더
- 펴낸곳 : 여성신문사(2002.2.15.)
- 책값 : 8000원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람들만 겪는 돈 문제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원과 에너지가 어떻게 낭비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22쪽〉


 돈으로 물건을 사서 쓰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풉니다. 자기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는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누구한테 무엇인가를 선물할 때에도 돈을 주고 살 뿐이지, 손수 마련하는 일이란 보기 드뭅니다. 떡국도, 만두도, 김치도 다 사서 먹으니까요.

 

 이렇게 돈으로 모든 일을 풀다 보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밖에 없고, 이러는 가운데 ‘물건도 돈으로 사고, 쓰레기도 돈으로 치우면 그만’이라는 버릇이 몸에 배어듭니다.


.. 값비싼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시간이 너무도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선물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것이다 ..  〈51쪽〉


 적잖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어’ 하고 떠올리는 옛모습이란, 사람다운 마음, 이를테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는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 사람과 온갖 목숨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음쓰던 삶터,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는 마을 문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리워하는 지난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은,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삶에서 빠져나오기 싫기 때문이지 싶어요. 자기부터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사람들한테 펼치고픈 마음은 없이, 남들이 자기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테고요. 자동차를 몰 때는 경적을 울리기만 할 뿐, 빠르기를 늦춰 다른 차가 먼저 가도록 마음을 쓴다거나, 자전거나 걷는사람이 먼저 가거나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눈길을 두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도 느낍니다.


.. 미래에는 산업생산품의 풍요가 아니라, 그런 걸 만들어내느라고 우리가 파괴해 버린 것들, 즉 자연ㆍ시간ㆍ공간ㆍ여유ㆍ건강ㆍ환경 등이 중요해진다. 이제 한적함과 고요함이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걸 얻으려면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늘날엔 시장을 보거나 자동차를 몰 때,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소란과 번잡을 참아내야 한다. 다세대 주택의 벽들은 너무나 얇아서 이웃들이 내는 별별 소리가 모조리 들린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도 자극을 받은 나머지 이제는 오히려 고독과 정적을 겁내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낯설어진 것이다 ..  〈27쪽〉


 장마가 걷히니 날이 푹푹 찝니다. 방 온도가 27도나 됩니다. 잠깐잠깐 집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쐽니다. 오랜 비가 내린 뒤끝이기 때문에 밤하늘 별이 대단히 잘 보입니다. 안경을 끼고 올려다보니 미리내도 얼핏 보일 듯합니다. 다른 별도 깨끗하게, 굵게 보입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고, 차 나다니는 소리도 없습니다. 개구리와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제가 사는 산속은 사람이고 자동차고 들어올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야 집이 이런 시골이니, 밤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느끼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느끼는 모습을 보려고 시골로 휴가를 떠나시겠지요? 그러면 저는 맨날 ‘휴가를 즐기는’ 셈인지 모르겠네요. (4339.7.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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