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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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0 ― 아이를 사랑하면 돈벌 생각을 말자
 : 마저리 쇼스탁, 《니사》


- 책이름 : 니사
- 이야기 담기ㆍ글 : 마저리 쇼스탁
- 옮긴이 : 유나영
- 펴낸곳 : 삼인 (2008.9.19.)
- 책값 : 24000원



 (1) 아기와 함께 지나온 여섯 달


 어제 낮 생협 나들이를 마친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빙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파김치가 됩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워 좀 오래 아기를 안고 걸었더니, 아기는 집에 닿기 앞서부터 새근새근 잠들고, 애 아빠는 아기 옆에 드러누워 콜콜 곯아떨어집니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해서 먹은 다음 아기와 놀자니 다시 졸음이 밀려들면서 어느 결에 아기와 함께 잠듭니다. 옆지기는 생채식 하며 몸에 깃든 찌꺼기를 털어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찾아본다며 늦도록 인터넷을 살핍니다.

 애 아빠는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깹니다. 엊저녁 못 다 쓴 글을 마저 쓰려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기는 얼굴이 간지러운지 잠든 가운데에도 한손으로 북북 긁으려 합니다. 부시럭 소리가 나서 휙 돌아보며 후다닥 달려가 아기 손을 붙들고 아빠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탁탁 두들겨 줍니다. 몇 번 이렇게 되풀이하여도 아기가 깊이 잠들지 않아, 물을 덥히고 나무숯물을 타서 아기 얼굴과 머리를 살며시 닦아 주고 풀물을 발라 줍니다.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지는데, 그렇게 하고도 다시 부시럭거려서 그예 셈틀을 끄고 아기 옆에 누워 한참 토닥입니다. 아기 돌보랴 밤잠을 못 잔 옆지기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내도록 토닥이고 있으나, 아기는 엄마젖을 먹어야겠는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엄마를 깨우고, 아기한테 젖먹이느라 허리가 아픈 옆지기는 겨우 일어나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젖을 물고 잠든 아기를 보며 겨우 마음이 놓여 다시 일손을 조금 붙잡은 다음, 인천에서 서울로 떠나는 첫 전철이 지나고 둘째 셋째 넷째 전철이 지나는 소리를 들을 무렵 비로소 잠자리에 듭니다.


.. 태어나서 평균 44개월 동안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온통 독점하다시피 하고, 첫 36개월 동안은 엄마젖이 주는 영양과 편안함을 제한 없이 마음껏 누린다. 서너 살쯤 되면 이전처럼 엄마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 아이는 이제 엄마와 계속 부대끼는 것보다는 또래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뛰노는 일이 더 재밌어진다. 동생이 태어나고 몇 달쯤 지나면 아이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데 정신이 팔려 가족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다가 결국 동생이 태어나서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비로소 스스로 형이나 언니 노릇하는 일을 즐기게 된다 ..  (79쪽)
 





 새벽에 못 자고 일을 한 탓에 아침에 아기가 똥을 누었어도 일어나 치우지 못합니다. 아침똥을 눈 다음 씻겨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일어나지지 않습니다. 송림동성당과 답동성당에서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을 칠 무렵 또 한 번 아기가 똥을 누기에, 이때 비로소 물을 덥혀 냉온욕을 시킵니다. 그런 다음 풀물을 온몸에 바르고 바람에 말립니다. 겨드랑이까지 물기가 다 마른 뒤 웃옷을 두 벌, 바지를 한 벌 입힙니다. 이제 아기는 옆지기한테 맡기고, 저는 씻는방으로 가서 밀린 빨래를 합니다. 밀린 빨래를 하는 김에 제 바지도 한 벌 빱니다. 오늘은 날이 궂어 옥상마당에 빨래를 널어 말리지 못합니다만, 뜨거운 물이 있을 때 빨래를 한 점이라도 더 해내곤 합니다.

 오늘 밀린 기저귀 빨래는 모두 여섯 점. 지난밤에는 여덟 점. 요사이 아기 기저귀 빨래가 무척 줄었습니다. 아기가 몸이 안 좋은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기들은 크면서 오줌 기저귀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빨 때에는 빨래가 끊이지 않아 걱정이고, 갑자기 반으로 뚝 줄어드니 또 줄어서 걱정이고.

 이웃동네에 사는 일흔네 살 아저씨는 ‘아기 때는 많이 아픈 법이니, 너무 걱정 말고 슬기롭게 지나가도록 즐겁게 지내’라고 도움말씀을 건네주었습니다. 어느 아기든 아프면서 크지, 아프지 않고 크는 법이 없다면서,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여야 아기도 엄마아빠도 튼튼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흔넷임에도 하프마라톤을 뛰는 그 아저씨(할아버지) 말은 당신이 그동안 살아낸 발자국으로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책에 나왔다든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씻는방에서 허리 쑤시도록 빨래를 하며 아저씨 말을 떠올리는데, 아기가 아플 때에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기보다, 우리 삶을 두루 걸쳐 똑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듯, 제 몸을 썩혀 뿌리내리는 씨앗 한 톨이라고 하듯, 가을에 떨어지는 잎이 거름으로 썩어 다시 나무한테 좋은 밥이 되듯, 밀알 하나가 수백 밀알로 다시 태어나듯,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내느냐에 따라서 그이 삶자락은 아주 새롭게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쿵 아이들은 형제끼리 평균 네 살 정도 터울을 두고 태어난다. 피임을 하지 않는 집단치고는 유난히 긴 터울이다 … 사실 출산 간격은 아이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다음 아기를 너무 빨리 가지면, 새로 태어난 아기와 앞서 태어난―그래서 이미 많은 애정을 쏟아부은― 아기 둘 가운데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매일 대단히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쿵족의 식단으로 보통 그 정도 영양을 충당할 수 있지만, 둘이나 되는 아이에게 먹일 정도로 많은 모유를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102∼103쪽)


 여섯 달을 꼭 채울 무렵, 아기는 몇 대목에서 크게 달라집니다. 첫째, 낯가림 없고 방아찧기 좋아하는 이 녀석이 뒤집기와 엎기를 지 마음대로 합니다. 둘째, 잠들 무렵 엄마 젖무덤께에서 드러누워 있던 녀석이 오줌 누고 낑낑대어 깨어나 살필 때 보면 꼭 엄마 아빠 머리께로 기어올라와 있습니다. 셋째, 처음에는 두 손으로도 책을 못 들더니 이제는 한손으로 거뜬히 책을 집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다른 장난감이나 숟가락 따위를 집어들려고 합니다. 넷째, 죽도 곧잘 먹지만 무 조각이나 푸성귀 줄기도 지 깜냥껏 잘근잘근 씹어먹는 시늉을 합니다.

 참말 하루하루 크는 모습이 남다른데, 이렇게 하루하루 크는 모습은 아기뿐 아니라 우리 어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지난주와 오늘이 같지 않으며 지난달과 오늘이 같지 않습니다. 지난해와 오늘이 다르고 지지난해와 오늘 또한 다릅니다. 이웃과 동무도 매한가지입니다. 어제와 오늘 같은 이웃이 없습니다. 그제와 오늘 같은 동무가 없습니다. 그끄제와 오늘 같은 선후배가 없어요. 좋게든 얄궂게든, 반갑게든 얄밉게든, 모두들 하루하루 달라집니다. 날마다 새 얼굴이요 새 마음이요 새 몸입니다.

 조금씩 배우기도 하고 조금씩 잊기도 합니다. 조금씩 새로 얻기도 하며 조금씩 새로 잃기도 합니다. 조금씩 아름다운 사람으로 새로워지는 이웃과 동무가 있는 한편, 조금씩 돈맛과 이름맛과 힘맛에 길들어 가는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 !쿵 사람들은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위험을 추구하거나 용기를 입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다. 위험한 상황을 적극 피하는 일은 비겁하거나 남자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어린 소년들이 공포를 다스리고 어른답게 행동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에 대해 !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잖아!” … 아이가 그 상황에서 겁을 집어먹었으니 나중에 자라서도 겁쟁이가 될 거라는 식의 생각도 않는 듯했다. 그 아이에게는 위험한 동물과 맞서고 죽이는 법을 배울 시간이 아직 충분히 있고, 또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건 아이의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  (124∼125쪽)


 우리 아이는 책을 읽을 줄은 모르나 저희 엄마 아빠가 늘 책을 끼고 사니까, 자기한테도 책이 있습니다. 엄마가 책을 볼 때 옆에 나란히 누워 보는 책……,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옆에 엎드려 입으로 물어뜯는 책……. 그리고 아빠가 사진을 찍을 때면 찰칵 소리에 눈을 깜짝이면서 쳐다보고, 사진기를 들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사진기를 집어들고 싶어합니다. 사진기 끈을 북북 긁으며 끈에 새긴 무늬를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여느 집 사람들처럼 살았다면 아기 놀이는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집 사람들처럼 ‘아빠는 밖으로 돈 벌러 회사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살림 꾸리’고 했다면, 아기 매무새는 지금과 같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다른 집 아기를 보고 아이 키우는 어버이를 볼 때면, 아기와 어버이 매무새는 닮았습니다. 아이와 어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매무새가 어슷비슷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즐기는 매무새와 아이와 어버이가 걸어가는 길은 한 흐름이곤 합니다.

 제 긴머리를 보고 ‘남자가 왜 머리가 길어?’ 하며 묻거나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묻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뭘 몰라서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집과 어린이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늘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란 그대로이기에 이처럼 묻습니다. 바지를 입건 치마를 입건, 머리가 길건 짧건, 까만 살결이견 누런 살결이건 흰 살결이건, 밝은 옷차림이건 어두운 옷차림이건, 키가 작건 크건, 걷건 자전거 타건 자가용 몰건,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리는 아이가 되자면, 어른 스스로 먼저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 먹는 어버이가 살아가는 집에서 아이들이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를 안 먹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억지로 못하게 하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답답한 속을 꽉 눌러 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꽝 하고 안 터뜨리게 될 수 없습니다.


.. !쿵 어린이들은 성별에 따라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성도 순종적이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받지도 않으며, 사람에게 타고난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강요받지도 않는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하면서 크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많은 문화권에서처럼 남자아이들이 싸움 기술을 연습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일도 찾아볼 수 없다. !쿵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으며 처녀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여성의 몸을 특별히 가리거나 숨겨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나다닌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경쟁이 개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같은 활동을 나란히 공유하면서 놀지, 집단의 규칙을 정하고 놀지는 않는다 … !쿵 어른들도 경쟁이나 개인의 위계를 가르는 일을 애써 피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사람 사이의 차별을 억제하는 문화 덕분에 !쿵 사람들은 누구를 승리자, 최고의 미인, 가장 성공한 사람, 또는 최고의 춤꾼, 사냥꾼, 주술사, 음악가, 구술 공예가 등으로 규정하는 일을 되도록 피한다 … 그러한 재능에 주목하는 일은 매우 좋지 못한 태도로 여겨진다 ..  (157∼158쪽)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너무 바지런해서 엄마 아빠가 고단합니다.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요. 낮에도 낮잠은 자는 둥 마는 둥이니까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기 때에는 누구나 그러하고 조금씩 크면서 밤잠과 아침잠이 늘어난다는데, 돌쯤은 되어야 잠꾸러기 아이로 달라지게 되려나 손을 꼽게 됩니다.

 하기는, 아기 때 누구나 그러하다면 저나 옆지기도 아기였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잠을 못 자게 괴롭혔을 테고, 어머니 아버지 또한 당신이 아기였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잠 못 자게 괴롭혔겠지요. 우리 아이도 커서 누군가한테 엄마가 되면 또 제 아이한테 시달리며 잠을 못 자게 될 테고요.


 (2)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날


 이제 다섯 살 되는 아이 유치원 값으로 다달이 50만 원씩 낸다는 동무녀석 이야기를 들으면, 유치원에 보내는 값만 50만 원이지, 이밖에 들어가는 다른 돈을 따지면, ‘벌써부터 애 대학교 보내는 돈과 같다’면서 한숨이 짙습니다. 우리는 아직 유치원 생각은 안 하지만, 우리 동네에 마땅히 보낼 유치원이며 어린이집이 없음을 헤아리면(있어도 잘 안 받아 주어서. 초등학교에 딸린 유치원은 그 초등학교 교사네 아이가 아니면 안 받아 주고. 사립 유치원은 참으로 비싸고), 또 가까운 둘레까지 살펴도 공동육아를 하는 데가 없음을 돌아보면,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동무를 사귀며 놀게 하자면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보내야 할 텐데, 이곳에서 조금 비싸게 받아도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걱정이 없으나, 어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한글 일찍 떼기’와 ‘영어와 한자 가르치기’를 거의 밑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야 하기에, 아이가 글을 익힐 때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예닐곱 살 무렵이고, 아이한테 한자 지식이 있어야 한다면, 한글을 모두 떼고 스스로 한글로 된 책을 읽고 생각이 깊어질 무렵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학생이 되는 열서너 살 무렵에야 한자를 가르쳐도 가르칠 노릇이고, 영어를 이때 가르쳐도 하나도 안 늦는 일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아이 엄마나 아빠나 모두 그때 외국말을 배웠고, ‘그때부터 배웠다고 제대로 못 배우거나 엉터리로 배웠다’고는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오두막이나 집을 짓는 데 큰 수고가 들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 중 한쪽이 거처를 옮기는 일도 간단하다. 게다가 모든 재산은 공동소유가 아니라 개인에게 속하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놓고 분쟁이 벌어질 소지도 없다. 부부가 이미 성관계를 맺었느냐 여부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 “지내다가 그 사람이 나를 원하면, 거절하지 않고 같이 누웠어. 속으로 ‘내가 왜 그리 내 성기에만 신경을 썼을까?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내가 그를 마다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 나는 그에게 나를 주고 또 주었어. 이제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누웠지. 그리고 내 가슴은 아주 크게 부풀었어, 나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던 거야.” ..  (188, 234쪽)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천에서는 거의 모든 인문계 학교가 중학생 때부터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잡아 놓고 ‘자율 아닌 자율’과 ‘보충 아닌 보충’을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골마루를 누비며 두들겨패면서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 싱그러운 나이에 오로지 형광등 불빛에 눈이 어두워지면서 시험공부 지식만 머리속에 달달 집어넣어야 한다면, 이와 같은 학교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어른을 믿게 되며, 어떤 세상을 어떤 눈길로 익히게 될지 근심이 쌓이고야 맙니다.

 더구나, 반드시 학교 울타리에서만 또래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는 또래 동무를 못 사귀는지,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무를 못 사귀는지, 또래 동무란 고향 인천에만 있어야 하는지, 온누리 구석구석 또래 동무를 골고루 사귀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한테 고향나라와 고향마을은 틀림없이 소담스러운 어릴 적 생각바탕이며 마음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담스러울 어린 나날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막개발과 철거용역만 판치는 인천 같은 데에서 어떤 또래 동무를 사귀게 될는지를 헤아리면, ‘글쎄요?’ 하는 생각만 떠오르게 됩니다. 다른 동네로 살림터를 옮긴다고 해 보아도 그리 나을 듯하지는 않습니다만,


.. !쿵 여성들은 되도록이면 혼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최대한 덜 받고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는데 그 덕분에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쿵 문화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로 여겨지지만, 초산일 경우에는 다른 여성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어린 산모들은 되도록이면 친정어머니나 가까운 여자 친척들이 같이 있어 주길 바라지만, 시집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시집 쪽 여자 친척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어 준다 해도 진통과 분만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신이 변덕스럽게 개입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산모 자신이다. 순산을 하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때 산모는 조용히 앉아서,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쳐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분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한다 … !쿵 여성들은 가임기에 평균 4∼5회 출산을 경험한다. 출산을 거듭할수록 혼자서 이상적인 분만을 치러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 아기에게 대신 젖을 먹여 줄 수 있는 다른 여성이 없을 경우에는 아기를 2∼3일씩 굶기기도 한다 … 명확히 정해진 ‘산후 조리’기간은 없지만, 일상생활을 재개할 만큼 튼튼해졌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는 일상적인 활동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채집 생활을 하느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다져진 훌륭한 신체 조건 덕분에 대부분은 금세 회복한다 … “아기를 낳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서로 관계를 안 해. 남자들은 산모가 회복할 때 흘리는 피를 두려워하거든. 아기가 좀 자랄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애 낳고 한 달 정도만 기다렸다가 다시 남편과 한 이불에 들지” … “아기, 그래…….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날이 다가오면 맘이 정말 무거워. 하지만 일단 낳아서 모래 위에 눕혀 놓고 보면 아기는 정말 멋진 선물이지.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맘이 행복해져. 그래 그 조그만 아기한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지. 하지만 아기를 낳을 때의 그 화와 고통이란……. 그런 건 왜 있는지 모르겠어!”  … “아기는 그저 누워 있었고 그렇게 사흘이나 굶긴 다음에야 한쪽 가슴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날 밤에 다른 쪽 가슴에서도 젖이 나오고. 가슴이 좋은 젖으로 가득 찰 때까지 나쁜 젖을 짜서 버렸어. 아기는 정말 끝도 없이 젖을 빨고 또 빨다가 겨우 배가 차니까 잠이 들었지.” ..  (253∼273쪽)


 책 하나를 읽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니 너도 즐겁게 읽어야 해’ 하면서 건넬 수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여도 ‘엄마 아빠가 아주 맛나게 먹은 밥이니 너무 맛나게 먹어야 해’ 하면서 들이밀 수 없습니다. 옷 한 벌을 입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신나게 입은 옷이니 너도 신나게 입어야 해’ 하면서 내밀 수 없습니다.

 아이 엄마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고, 아이 아빠는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나라에서 보면, 엄마는 중졸이고 아빠는 고졸입니다. 요즘 세상에 대학 안 나온 엄마 아빠가 어디 있을까 모를 노릇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대학을 안 가고 대학을 안 마친’ 일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 훨씬 너른 사람을 만나면서 훨씬 깊은 삶을 들여다보았고 훨씬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느꼈습니다. 학점에 매여 읽거나 익히는 책이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라거나 쓸모있거나 아름다워지고나 읽거나 익히는 책이요 학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 기대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하면서 어떻게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맞이해야 하는가를 따지고 익혔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돈에 기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 어른한테서 익힙니다. 앞서 나온 훌륭한 책에서 배웁니다. 앞서 ‘돈에 안 기대고 아이를 돌보던’ 사람들한테서 슬기를 받아먹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서도,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제 삶을 고이 엮으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고, 이와 같이 나아가도록 늘 힘쓰려 합니다.


.. 가축떼는 영구적인 샘물을 중심으로 점점 더 넓은 범위를 뜯어먹으면서, 아직까지 !쿵족이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츠와나와 헤레로 마을들이 전통적인 !쿵족의 샘물 주변을 에워싸고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쿵식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유한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일은 이제 용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한때 직접 고기와 식량을 구해다 가족을 부양했고, 품위를 지키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던 !쿵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지위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한 환경 변화가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많은 !쿵 사람들이 마을 농가에서 빚어다 파는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우기에 이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쿵족의 연장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그들은 전통 문화의 산증인으로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다니고 소젖을 짜고 염소와 당나귀를 돌보고,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우물을 파는 법을 배운 손자들에게 그들이 지닌 지식과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아버지가 ‘베사, 난 자네가 맘에 안 들어. 내 딸을 데려가겠네. 이 애한테는 황야에서 살고 황야를 아는 남자를 찾아다 붙여 줄 거야. 나는 이 애가 마을 남자랑 결혼하길 바라지 않네.’ 하셨고,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결국 식구들은 나를 데리고 떠나고 베사는 거기 남았지.” ..  (300∼312쪽)


 요즈음 ‘청소년 사진’을 찍으면서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부대끼는 푸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열 몇 해가 있어야 푸름이가 될 테지만, 열 몇 해라는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아 금세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주하는 푸름이들이 낯선 남남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한편, 스무 해 앞서 제가 푸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청소년 문화가 한국에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없는 청소년 문화를 사진으로 담으면 어찌 될까’ 하고 생각을 잇다 보면, 우리 어른 스스로 ‘어른 문화가 한국에 있도록 하지 않는 동안’에는 청소년이든 어린이이든 아무런 문화가 없이 그 애틋한 나날을 허투루 스쳐 보내게 될밖에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다시 어른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치는 삶자락을 보면, 그리고 아이가 다시 어른한테 가르칠 삶자락을 살피면, 거의 다람쥐 쳇바퀴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를 말하는 사람이든, 지식을 외치는 사람이든, 보수를 지키려는 사람이든, 나라와 겨레를 외는 사람이든, 자기부터 스스로 진보나 지식이나 보수나 나라나 겨레가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지거든요. 입으로 외는 무슨 주의자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어떤 빛줄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붓끝으로 끄적이는 무슨 주의가 아니라, 몸뚱이로 부대끼어 저절로 터져나오는 슬기나눔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곰곰이 따지면, 진보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하며 보수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평등을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하며 평화를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종교를 외쳐도 돈하고 헤아져야 하며 학문을 외쳐도 돈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권력을 붙잡아도 사랑이어야 하며 권력하고 동떨어져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니,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게 하는 자동차는 진보와 어긋납니다. 지금 세상을 아름다이 지키고 싶으니, 지금 세상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도록 망가뜨리는 자동차는 보수와 어긋납니다. 모두가 고른 권리를 누리는 삶을 바라니, 가난한 낮은자리 사람들 삶터와 여린 목숨붙이 보금자리를 밀어내는 아파트는 평등과 어긋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까닭은 더 많은 자원을 더 값싸게 끌어들여 더 많이 넘치게 쓰면서 홀로 배부르려는 속셈에서 비롯하니, 엄청난 자원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도록 하는 아파트 짓기와 허물기와 새로짓기는 평화와 어긋납니다. 부처님처럼 살든 하느님과 한몸이 되든 내 것이 아닌 나 아닌 것이 되면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해야 하니, 내 주머니에 쌓이는 돈과 종교는 어긋납니다. 나 하나 똑똑해지고자 파고드는 학문이 아니라 나와 내 둘레 삶터 모두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슬기로움을 갈고닦는 학문이니, 학문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게 되는 일은 서로 어긋납니다.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며 나라를 튼튼히 돌보겠다는 권력자는, 오로지 사랑일 때에만 겉과 속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세상 얕은 흐름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즐겁고 조촐하게 살려는 사람한테는, 미움이나 등돌림이 아닌 사랑을 가슴에 붙안아야 나부터 즐겁고 조촐한 삶으로 꾸리게 됩니다.
 





.. 어머니 주변에는 항상 도와줄 누군가가 있고 아이들 주변에는 항상 같이 놀 친구가 있다. 어머니와 단둘이 따로 떨어져 심심해하는 아이를 어머니 혼자 감당하는 풍경은 !쿵족의 일상에서 흔치 않다 … !쿵 어린이들은 양쪽 부모와 매우 편안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와 신체 접촉을 하거나 함께 앉아 있거나 대화를 나누는 빈도도 잦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두려워해야 할 권위 있는 존재로 굳어져 있지 않다. 양쪽 부모 모두 자녀들을 지도하며,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이나 똑같은 무게를 지닌다 … 남성이 채집을 열심히 하는 것은 유별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기는커녕 특별히 언급할 만한 사건조차 못 된다. 식물에 대한 남성들의 지식은 여성들 못지않으며, 남성들도 원하면 언제든지 채집을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전체 채집 식량의 20퍼센트를 충당한다 … !쿵 사람들은 대개 몸가짐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데, 그들이 성장하는 환경을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그 분명한 한 예가 어린 소녀들이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하는 사회 환경이다. 마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녀들은 자신과 비교할 때 동년배 친구들이 없거나 있다 해도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심하게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분위기를 경험하지 않고, 오랫동안 주목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난다 … 이러한 경험이 자부심을 높여 주는 것 같다 ..  (331,339, 371쪽)


 옆지기 배속에서 새 목숨이 꼼틀거리게 될 때에도 이에 앞서도, 우리 두 사람은 새 목숨이 튼튼하게 세상에 나와 살아가게 되기까지 오로지 한 가지, 사랑밥을 먹이기로 다짐했습니다. 돈밥이나 책밥이나 종교밥이나 학교밥이나 얼굴밥 따위는 먹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먼 뒷날 이런 밥이 좋다고 여기며 나아간다면 그리 나아가도록 스스로 걸어갈 노릇이지만, 우리가 아이한테 주어야 할 밥은 아이 스스로 착하고 슬기롭고 튼튼하고 씩씩하고 똑똑하고 올바르며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가는 데에 배를 굶지 않도록 차려 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으면 좋은 연예인이 되도록 거들어 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할 일입니다. 교사가 되고 싶으면 좋은 교사가 되도록 손을 보탤 뿐, 나머지는 알아서 할 일입니다. 농사꾼이 되고 싶으면 좋은 농사꾼이 되도록 이끌어 줄 뿐, 나머지는 혼자서 부딪히고 부대낄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두 식구,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더 잘 키우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벌이가 거의 없게 되어 살림이 아주 쪼들리게 되어도 이런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아이와 함께 두 사람이 집살림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품안에 기르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품안에 있어야 할 때에는 우리 품안에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를 얹지 않고 아이를 안아야 하니까요. 우리 집에서만 키우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사랑과 믿음을 받아먹어야 할 아기 때에는 마땅히 엄마 아빠가 아기와 함께 밤잠 낮잠 아침잠 모두 잊어 가면서 아기와 부대끼고 놀아야 하니까요.

 여느 사람들 일터에서는, 아이 낳아 기르는 사람이 있을 때 마땅히 이 일꾼이 ‘아이가 어느 만큼 클 때까지’는 유급육아휴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어느 가게나 단체나 관공서나 대중교통이든,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엄마 아빠가 고단하지 않도록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이와 어버이한테뿐 아니라 장애인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주노동자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모두한테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이며, 떨꺼둥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3)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사람 이야기 《니사》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쿵’사람 이야기를 담은 《니사》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 책을 아기를 낳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처음으로 읽었고, 100일이 지날 무렵 비로소 덮었으며, 그 뒤로 석 달 동안 책상맡에 얹어놓고 새록새록 되넘겼습니다.

 !쿵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은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쿵사람을 만났으며, 1975년에 다시 찾아가 더 만난 다음 열 해에 걸쳐 !쿵사람 말을 영어로 옮기고 갈무리하여 《니사》를 펴냈다고 합니다. 그 뒤 1991년에 《니사》라는 책 주인공 ‘니사’를 다시 만나서 2000년에 《Return to Nisa》를 냈다고 하는데, 정작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나 당신 두 번째 책을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는군요.


.. 많은 !쿵 남성들은 동부의 인력 시장으로 태워다 줄 운송수단을 찾아, 그곳에서 남아공의 금광에서 일할 인부로 등록한다. 그렇게 해서 몇 달 또는 몇 년을 일하고, 그때까지 번 돈과 더불어 바깥세상에 대한 새로운 물정과 지식을 얻어 가지고 돌아온다 … 도베 지역의 !쿵족들처럼 개중에서도 문화 접촉이 적었던 산족들은 자기 조상들이 수렵채집을 영위해 온 땅의 소유권을 스스로 지키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 순진하기에, 아마도 보츠와나의 다른 지역에서 그랬듯이 불법 침입자로 전락하든지 부유한 농장에서 소몰이꾼으로 궁핍하게 살아갈 것이 뻔했다 … 1966년 이후 북나미비아 흑인 민병대와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있는 남아공은, !쿵 남성들을 반란 진압군으로 남아공 군대에 입대시키기 위해 !쿵족과 다른 토착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공공연히 조장해 왔다 ..  (472, 474쪽)
 





 《니사》를 읽는 동안, 우리가 우리 아이 사름벼리를 낳기 앞서 이 책이 나와서 읽게 되었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인 한편, 아이를 낳고 길러 가는 훨씬 긴 나날 동안 아이와 함께 즐거운 삶은 무엇일까를 곱씹을 수 있으면 이 또한 보람있는 책읽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거짓스런 평등이 아닌 삶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평등을 보여주고, 겉치레 평화가 아니라 삶에서 스스럼없이 배어나오는 평화를 보여주는 《니사》입니다. 있는 만큼 땅에서 거두어 먹고, 있는 만큼 이웃과 나누어 즐기며, 있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하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쿵사람입니다.

 책 《니사》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어느 겨레 이야기인데, 찬찬히 헤아리면, 오늘날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거나 버리긴 했으나, 우리 겨레 또한 !쿵사람과 마찬가지로 거짓없는 평등과 스스럼없는 평화를 고이 나누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습니다. 신분과 계급과 돈과 땅으로 사람을 나누던 권력자 말고, 낮은자리 여느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으로 우리 삶을 고이 가꾸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알맞게 먹고 알맞게 일하고 넉넉히 쉬면서,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되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다스리는 삶은, !쿵사람이든 한겨레이든 이웃 다른 겨레이든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차근차근 이어져 오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어요.


..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과거 수렵채집 시절에 관한 지식에서 우리가 뭘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렵채집민들이 지닌 풍부한 유산일 것이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이 끊임없이 궁핍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식생활, 적당한 노동, 풍부한 여가, 자원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가족과 사회와 경제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평등한 상태를 누렸다. 게다가 오늘날 !쿵족을 비롯한 수렵채집민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지역을 독차지했던 선사시대의 수렵채집민들과 달리 대부분 극한 환경으로 내몰려 있다 ..  (33∼34쪽)


 그렇지만 우리 겨레는 알맞는 삶을 버리고 있습니다. 아직 얼마쯤 남아 있는지 모르나, 일찌감치 송두리째 버렸는지 모릅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빠른 차와 더 큰 집과 더 단단한 가방끈과 더 배부른 밥과 더 높은 이름자리에 허덕이면서, 정작 더 따뜻한 사랑과 더 넉넉한 믿음과 더 아름다운 나눔에서는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돈을 안 들이고 주고받는 사랑을 잊고, 돈 없이 함께하던 믿음을 잊으며, 돈이 아닌 나눔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습니다. 돈을 벌어도 사랑을 잃고, 돈이 넘쳐도 믿음을 잃으며, 돈으로나마 나누려는 몸짓조차 잃습니다. (4342.3.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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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소동
전수일 지음 / 작가마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9 ― 돈바라기 삶이 ‘페놀소동’과 ‘경부운하’ 부른다
 : 전수일, 《페놀소동》



- 책이름 : 페놀소동
- 글 : 전수일
- 펴낸곳 : 작가마을 (2008.12.20.)
- 책값 : 1만 원



 (1) 물과 바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자동차를 장만하신 뒤부터, 우리 집은 수돗물을 안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끌고 큰 물통 여럿을 차에 싣고는 약수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에 물통 여럿 가득 채워 돌아오면, 4층에 있는 집까지 나르는 일은 형과 제 몫이었습니다. 이웃집들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데 우리 집만 아버지가 남달리 약수터 나들이를 하며 물을 떠와서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를라치면 이웃집 들을라 부끄러웠습니다. 다들 먹는 수돗물 똑같이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기름 쓰고 시간 버리면서 약수터까지 다녀온다고 그러시는지 하면서.


.. “이 기사는 냄새가 느껴집니까?”흠, 흠,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머금었던 수돗물을 뱉어내며 이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수돗물이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정상기나 이준성, 두 사람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수돗물이지만 정지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정수계장 마규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정상기의 뇌리에 맴돌던 막연한 불안감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하여 현실화되어 갔다. “정 기사, 수돗물은 그냥 묵어도 되는 기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수돗물을 날로 먹는 사람도 없으니까.” ..  (21쪽)


 몸을 더 튼튼하게 지키려면 수돗물은 안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었을 테지만, 이러는 한편으로 ‘자가용 없고 수돗물만 마시는 다른 집 앞에서 자랑하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줄곧 약수터 물만 드셨고, 제금나와 사는 저는 홀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수돗물만 마십니다.

 그러나 수돗물을 마시면서 이 수돗물이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흘러서 저절로 깨끗해지는 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다루어 맑게 보이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나라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물 맑거나 산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골짜기 물을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마시기도 하지만, 돈과 집이 없는 여느 사람한테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마시는 셈이라 할 텐데,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뽑아올리느라 이 나라 땅이 푹 꺼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울릉도 앞바다 밑에서 퍼올린다는 물이나 제주섬에서 길어 온다는 물도 걱정스럽습니다. 제주는 물이 모자란 땅인데 그렇게 모자란 물을 자꾸자꾸 바깥으로 빼내어 돈벌이를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 페놀유출사건을 규탄하는 아우성이 사라질 무렵 또다시 구미의 선도전자에서 페놀이 유출된다고 보도되었다. 유출 이유는 페놀 저장탱크 수리와 선도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제품이 중단되면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것이다. 낙동강가의 주민들은 또다시 아우성을 쳤다. “이 기사,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선도전자가 독점하는 제품을 생산하드라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기가 흥분하자 이준성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서울사람들은 낙동강 물 안 묵는다 이거지요.” 정상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낙동강이 하수처리장입니까? 저장탱크가 하나만 있으란 법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희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선도전자는 높은 데하고 모두 이야기됐으니까 걱정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지예, 국가 자체가 환경에 대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  (57쪽)


 어릴 적, 1980년대 첫머리에도 인천 앞바다는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쓰레기물 때문에 그리 안 맑았습니다. 그러나 갯가에서 망둥이를 낚거나 쏘가리를 낚곤 했고, 영종도 갯벌은 꽤 깨끗했습니다. 오늘날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에다가 새로 짓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한테 영종도는 섬을 한 바퀴 빙 걸어서 돌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기도 하다가 아무 바닷가집에나 “계셔요, 물 좀 얻어 마실게요!” 하고 소리지르곤 들어가서 무자위를 길어 등목을 하고 물 얻어마시고 하던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종섬에 두루 걸쳐 있던 넓디넓은 소금밭.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까지, 아버지는 장봉섬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일했기에, 어머니와 형과 저는 방학 때면 함께 섬에 들어가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을 잡아 섬 나들이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주마다). 이때면,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배를 타고 들어간 다음, 섬 버스를 잡아타고 삼목도까지 갑니다. 그런 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들어갔는데, 영종도에서 막 배에 내려 섬 버스를 타고 사십 분 남짓 구비구비 섬을 구석구석 돌아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금밭에 또 소금밭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으로 이런 모습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운전사 자리 바로 옆에 겨우 낑겨 타며 버스 앞창으로 내다보는 마을 모습은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두 사람이 주위를 살펴도 하수구와 연결된 옥계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다 … 어젯밤의 소나기로 옥계천에는 황토물이 고르게 밀려오고 고물상 뒤편으로 하수관 두 개가 매복호의 총구처럼 두 사람을 겨누고 있다. “야아, 절묘하네, 절묘해. 저런 곳에 하수구를,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살인을 위한 총구 같아.” 이웅찬의 감탄에 정상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오폐수의 무단방류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살인행위지. 이 나쁜 놈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비만 오면 무단방류를 해. 예상 강수량이 삼사십 밀리미터 이상 되면 틀림없이 폐수를 방류하지. 그날도 주말에다 일기예보에 한 삼 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계산해서 마음 놓고 페놀을 내뿜은기라. 그런데 이튿날 비가 그치는 바람에 들통이 났지. 이 나쁜 놈들, 그래도 물어 보면 저거만 재수가 없어 들켰다 그럴끼라.” ..  (152∼153쪽)


 1993년 어느 날, 원자력발전소 쓰레기(핵폐기물)를 모으는 곳을 안면섬에 짓겠다고 하여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진 적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94년에 이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짓겠다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천이란, 온갖 화학공장 제철소 제강소 유리공장을 비롯해 쓰레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공장이 꾸역꾸역 지어져도 시민들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혐오시설’이라 일컫는 시설을 지어도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내쫓길 뿐 군소리를 못한 곳이었거든요. 그리 많지 않은 안면섬 주민은 저렇게 싸워서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못 들이게 막았다지만, 인천이라는 데는 막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더구나 고작 일곱 사람만 살던 작은 섬 굴업도를 후보지로 삼았다고 했으니.

 그때 일은 지금 와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천을 모르고 인천 앞바다를 모르는 다른 곳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는 어차피 똥물인데 그깟 핵폐기물쯤이야 인천 앞바다에 있는들 무슨 대수냐?’ 하고들 대꾸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진보니 사회운동이니 환경이니 이야기하는 선배나 동기 들도 하나같이 시큰둥해 했고, ‘거긴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외진 곳이니 괜찮지 않냐?’ 하는 대꾸뿐이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무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겠니? 뭐, 인천은 옛날부터 그랬잖아.’ 하면서 싸우기 앞서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으로 겪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나마 아버지가 장봉섬 같은 데에서 여러 해 일한 탓에, 그 장봉섬 물이 ‘인천 앞바다임에도 얼마나 맑고 파랗던가’를 잘 알았습니다. 굵기가 팔뚝 만한 도라지를 섬에 있는 얕은 산에 올라 캘 수 있었고, 섬에 사는 아이들은(그땐 저도 아이였으나 저보다 어렸던 아이) 맨손으로 갯벌에서 낙지를 잡았으며, 섬에서 기르는 김은 ‘진짜 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일 돕는 섬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왔으니 아주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호미로 땅을 파더니 구더기를 잡아서 ‘이거 드셔 보셔요. 얼마나 맛이 좋고 몸에 좋은지 몰라요’ 하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주시니 먹기는 먹어야겠지만 차마 못 먹었는데, 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몸이니 꺼렸을 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얀 구더기는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섬에서는 참말 ‘귀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봉섬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뭍사람한테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관광객이 수십 수백 수천 사람 몰려오면서 깨끗하던 물과 모래밭과 산과 나무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분교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고 몇 해 뒤 다시 장봉섬 옹진분교를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본 분교는 ‘여름철 피서객과 교회 젊은이들이 깨뜨린 유리창과 더럽힌 건물과 운동장과 ……’ 차마 더 돌아볼 수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 정상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일과를 마치고 세 단체(정수장 공무원, 페놀유출 회사 직원, 시민단체)의 저녁식사 모임에 앞서 정상기는 수도과에서 여비를 받았다. 특별하게 지급될 조건도 아닌 관내 출장업무인데 많은 돈이 봉투에 들어 있었고 신길태의 여비도 똑같았다. 페놀 피해 조사를 실시하는 날 저녁회식은 언제나 선도그룹에서 주최하였다. 밥과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순서였다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선도그룹에서 택시비가 지급되었다. 일인당 이만 원이었다. 마산의 끝자락 댓거리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택시요금은 삼천 원이 채 못 나온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절 표시에도 이산두의 끈질긴 노력으로 택시비는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의기양앙하게 돌아온 이산두는 절도 있는 손동작을 보이며 소리쳤다. “돈 앞에는 장사 없어요.” ..  (164∼168쪽)


 나고 자란 곳이지만 새파랗게 젊던 때는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곳인 인천에서 보고 듣고 겪는 온갖 모습은 예나 이제나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걸어서 오간 학교길에는 늘 제일제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일제당 옆으로는 개천 하나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개천은 늘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하여, 이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길에 이 길로 안 가고 돌아가면 곱배기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자면 ‘옐로우하우스’ 앞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또다른 길은 연안부두에서 인천제철이니 유리공장이나 제재소니 하는 월미도공단으로 큰짐 실어나르는 산업도로 옆이라서 이쪽으로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마찬가지였기에, 공장에서 내뿜는 온갖 빛깔 쓰레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다가는, 코를 막고 몇 초 동안 숨을 안 쉬고 이 더러운 개천 옆을 지나갈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해 보면 늘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하고 캑캑 재채기가 나와 더 많이 구린 냄새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비라도 온 날은 냄새뿐 아니라 질척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제일제당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나가야 하는 연탄공장에서 까만 연탄재를 맡으며 몸을 털곤 했습니다.

 딱히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환경 지키기’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991년에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어 크게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뭐야?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는 허구헌날 저렇게 코를 찌르는 쓰레기물이 흐르고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연탄공장과 식품공장 옆에 있는 학교 본 적 있어?’ 하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화학공장과 원목처리장이 학교 둘레에 있어서 ‘우리는 화학공장 옆에서 온갖 매캐한 연기 다 마시고 사는데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 흐르던 쓰레기물은 ‘정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과 섞이지 않’고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 인천 앞에 있는 섬 갯벌을 더럽히고 바다에 사는 목숨붙이를 죽일’ 뿐이어서 이야기거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은데, 바다로 흘러든다고 해서 우리가 안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이 물을 마시고 우리는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 똑같이 ‘쓰레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꼴’입니다. 인천 앞바다로 흘러나가는 쓰레기물은 연평섬 둘레 게한테도 조기한테도 갈치한테도 실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이 물이 흘러흘러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또다른 물고기와 바다목숨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2) 소설 《페놀소동》과 우리 삶


 소설 《페놀소동》을 읽습니다. 금세 읽어냅니다. 소설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부호 잘못된 곳이 참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릴 만큼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글쓴이 전수일 님은 문학쟁이가 아니라 아직 글 여밈새는 어수룩한 곳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룩함이야 이분이 처음으로 내놓은 문학작품인 만큼 앞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하면서 한결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전수일 님 당신이 몸소 겪고 치러낸 ‘페놀소동’ 이야기 속내로 빠져듭니다.


.. 한국 같으면 복개하여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실적을 쌓았을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 하천에서 푸른 물이 폭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상큼한 물 냄새까지 솟아올랐다. 마산의 하천이라면 쥐새끼가 먹이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자리에 버섯 모양의 하얀색 기구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다. “저기 뭐이고?” 마규현이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소형 폭기조 같은데?” …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개되는 하천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코를 박고 누워 있다. 정상기는 자기도 몰래 얼굴이 찌부러졌다. 어릴 적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 하천은 이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꿈이 되는가? 무산보다 더 복잡하고 현란한 오사카의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머리속에 울려나온다. 오사카의 도심 하천을 넋 빠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에 정상기는 짜증이 났다 ..  (127, 173∼174쪽)


 책을 덮으면서 일본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님이 쓴 《소설 복합오염》이 떠오릅니다. 일본사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 쓴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가 떠오르고,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가 떠오릅니다. 세 가지 모두 일본에서뿐 아니라 일본 밖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환경문학’이라고 하는데, 소설 《페놀소동》은 이에 못 미치지만, 곰곰이 읽고 생각하고 되짚을 우리 삶이 아니냐 싶습니다.

 문득, 일본은 일본대로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치르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구나 싶은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수없이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있지만, 한바탕 ‘소동’으로만 그치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문학으로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습니다. 소동이 터지는 그때부터 얼마 동안 세상을 뒤흔드는, 그러니까 바람 따라 지나가는 이야기거리로만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정 기사님, 우리 실장님은 맑은 물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  (114쪽)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미국이든 러시아든, 또 유럽이든 아시아든, 환경을 업신여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아픔은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돈 앞에 다른 모두를 눈감은 매무새 때문에, 또한 돈을 휘두르는 이 앞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똑같은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원진병과 온산병은 똑같고, 온산병과 페놀오염은 똑같으며, 페놀오염과 중금속오염은 똑같습니다. 중금속오염은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수은 문제와 똑같고, 예방주사 수은은 식품회사에서 ‘이제는 MSG를 더는 안 쓴다’고 밝히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느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 “정 기사님, 지금도 낙동강 원수에서 페놀이 잡힙니다. 비가 오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  (201쪽)


 참말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애써 번 돈은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쓰고 있을까요. 돈을 버는 동안, 또 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땀흘려 일을 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 터전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뚫으려는 물길은, 나라를 살리는 물길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는 돈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돈푼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돈벌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만 쌓아 놓으면서 물길을 파고 있음을 꿰뚫어보았기에 거침없이 돈바라기 물길을 뚫으려고 하며, 이런 물길트기를 손뼉치며 반기는 사람도 꽤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2.2.14.흙.ㅎㄲㅅㄱ)


글쓴이 전수일 님은
1955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고, 영남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마친 뒤 1983년부터 남해군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1987년에는 마신시 칠서수자원관리사무소 실험실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청수환경’ 대표로 일했다. 소설 《페놀소동》은 전수일 님이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환경 문제에 등돌리고 있는 잘잘못을 파헤치면서 고발하고픈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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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플라스틱 - 쓰레기와 떠나는 슬픈 항해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7
홍선욱.심원준 지음 / 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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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외치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망가뜨린다
 [잠깐 읽기 25] 홍선욱+심원준, 《바다로 간 플라스틱》



- 책이름 : 바다로 간 플라스틱
- 글 : 홍선욱, 심원준
- 펴낸곳 : 지성사 (2008.12.31.)
- 책값 : 8000원



 (1) 내 밥그릇이 무엇인지를 알아야지요


 요즈음 라면 한 봉지는 700원을 넘어섭니다. 850원짜리도 있고 1000원 넘는 녀석도 있습니다. ㅇ마트나 ㄹ마트에 가면 봉지에 적힌 값보다 꽤 싸게 사들일 수 있다고 하나, 비싸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밀 라면’은 값이 얼마나 할까요? 1100원입니다. 항생제와 비료와 풀약과 갖가지 몸에 나쁜 짓을 하면서 짓지 않은 곡식으로 만든 라면 한 봉지 값이 1100원일 때에, 나라밖에서 온갖 항생제와 비료와 풀약을 쓰는데다가 나라안으로 사들일 때에 또다시 약품을 치는 곡식을 화학물질을 섞어 가면서 식품회사 공장에서 만드는 라면 한 봉지 값이 700원이라 하면, 어느 쪽이 비싸고 어느 쪽이 값쌀까요?

 생협매장에서 사서 먹는 순부두 400그램은 1000원 안팎입니다. ㅇ마트나 ㄹ마트에서 아주 값싸게 사서 먹을 순부두 400그램이라면 500원쯤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500원에 두 봉지를 주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 유전자조작을 하지 않은 콩으로 빚은 순두부하고, 유전자조작을 한데다가 수없이 많은 풀약과 항생제를 쓴 콩으로 빚은 순두부하고, 이만한 값벌어짐이라면, 어느 쪽이 비싸고 어느 쪽이 값쌀까요?

 세겹살을 싸게 파는 곳은 한 사람 몫(1인분) 200그램에 5000원도 하고 3500원도 합니다. 드물게 2000원 하는 집이 보이는데 이러한 집은 200그램이 채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주 싸다고 하여 200그램이 3000원이라고 치면, 600그램에 9000원입니다. 그런데 생협매장에서 세겹살을 사면 650그램에 9000원이 안 됩니다. 여느 고기집에서 사면 훨씬 눅을 테지만, 우리가 고기구이집에 가서 사먹는 돈을 헤아릴 때에 생협매장 나들이를 해서 ‘항생제 안 먹이고 화학처리된 사료 안 먹이는’ 고기를 사먹는다고 했을 때 드는 돈은 그리 많이 안 듭니다.

 다만, 생협매장에는 늘 물품이 넘치게 있지 않습니다. 늘 모자라게 있어, 공급날짜를 놓치면 장바구니가 비게 됩니다. 미리 어떤 물품을 받으려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장보기가 쉽지 않은 셈이지만, 쓸데없이 사들이는 물품이 없도록 살림을 맞출 수 있고, 꼭 써야 하는 물품만 쓰게 되는 한편, 우리 몸과 밥상과 둘레 터전을 한결 두루 살필 수 있기도 합니다.


.. 어두운 밤하늘에 예쁘게 퍼지는 불꽃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준다. 촛불이 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고 사라지듯 불꽃도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태우고 사라지는 환상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폭죽을 터뜨리고 난 다음날, 같은 해변을 거닐어 볼 것을 권한다 … 가볍고 작아서 사람들 눈에는 잘 안 띄지만, 먹이를 찾는 바닷새들에겐 먹이로 착각하기 쉬운 크기이다. 담배필터를 먹이로 알고 잘못 먹는 새들이라면 이런 폭죽쓰레기도 먹게 될 것이다 ..  (31∼33쪽)


 생협매장은 전국 곳곳에 있지 않습니다. 큰도시 몇 곳에 몰려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손수 지어 먹으면 되니 구태여 생협매장이 들어설 까닭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곰곰이 따지면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시골에도 생협매장이 있어야 합니다. 몸소 땅을 일구어 먹지 않는 도시사람 모인 곳에는 마땅히 생협매장이 있어야 하고요.

 농사짓는 사람이 허튼 농사를 안 지어도 일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생협이 차츰 자리를 잡아야, 시골이 살고 우리 살림이 삽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 몸이 바뀌고, 우리 몸이 바뀌는 흐름에 따라 우리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 생각 흐름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가려보는 눈길이 달라지고, 옳고 그름을 가려보는 눈길을 머리속 지식만이 아닌 온몸 삶으로 부대끼게 된다면, 우리 세상은 밑바탕부터 튼튼하게 새로워집니다.


.. (갯벌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그들과 함께 나뒹구는 스레기들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들이 먹고 버린 과자봉지, 우유팩, 도로변에서 낚시하다 버린 엉킨 낚싯줄과 미끼통, 술병은 늘상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줄 끊어진 기타가 발견된 적도 있다. 물속에는 오래 전에 버려진 의자, 세발자전거, 생활정보지 거치대 등이 갯벌에 박혀 세월을 보내고 있다 ..  (47쪽)


 인천에서 오랫동안 지역 역사를 파헤쳐 온 어르신이 언젠가 “지식인들은 밤낮 민중을 말하지만 밤낮 맥주만 마셔” 하고 따끔한 한 마디를 들려주어서, 옆에서 이 말씀을 듣다가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게 말야, 참말 그러네’ 하고 생각했는데, 맥주를 마시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 ‘허구헌날 술자리에서만 떠들 뿐이지, 온몸으로 이웃사람과 부대끼면서 이 땅 삶과 참모습을 알아보고 함께하려 하지 않는다’는 소리이거든요.

 인천에서 살고 있으니 인천을 돌아보지만, 서울에서 지낼 때 서울을 돌아보면서, 또 충청도에서 살아가며 충청도를 돌아보면, ‘자기 텃밭에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틀’을 깨부수면서 땀흘리는 사람을 찾아보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서 홀가분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이웃 마을 삶터까지 헤아리지 못하기 일쑤이고, 이웃사람 삶과 아픔을 내 삶과 아픔으로까지 삭이지 못하고요.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좁을까, 왜 이렇게 마음주머니를 북돋우지 못할까 하고 곱씹는데, 아무래도 자기 삶부터 다부지게 붙잡지 못하니 이러지 않겠느냐는 데로 생각이 모아집니다. 어떤 일을 하든 먼저 자기가 어느 집에서 살며 어떠한 밥을 먹고 어떻게 집살림을 꾸리느냐가 그이 삶과 생각을 크게 움직인다고 느낍니다. 밥 한 그릇 좀더 옳게 먹으려 마음쏟지 못하면서 이웃 삶터를 좀더 옳게 헤아리도록 마음쏟지 못합니다. 배고픈 이웃한테 라면상자 선물하면 좋은 일이 될까요? 영구임대아파트가 집없는 사람한테 가장 나은 보금자리가 될까요? ‘일자리 백만 개 만들기’를 하면 실업자가 사라지고, 돈없어 애먹는 사람이 사라질까요? 그러면 그 일자리 백만 개란, 무슨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 일자리일까요?


..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그 시작점은 알 수 없지만 다도해의 아름다운 바다공원이 거대한 하얀 목걸이를 두르기 시작했다. 낯설고 괴이한 목걸이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스트로폼으로만든 부표들이다. 굴과 김 등을 양식할 때 어디에 양식을 하고 있는지 소유주가 위치를 표시하거나, 해수면 아래로 굴의 종묘를 늘어뜨릴 때 가라앉지 않도록 띄우는 역할을 하는 어구이다 … 1년에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는 스티로폼 부표는 3500만 개 이상이 된다. 바람에 날리고 파도에 휩쓸린 스티로폼 부표는 다도해의 수많은 섬으로 퍼져 나간다 … 스티로폼은 손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떨어져 부스러기가 생길 정도로 약하다 …원래 부표는 깨지거나 망가지면 되가져와 다시 사용하거나 처리해야 하지만, 떨어져 나간 부표를 찾아다니는 인건비가 새로 사는 비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린다 … 본디 파랗던 바다는 어디로 갔을까? … 생각보다 자주 바다쓰레기가 배들의 항해를 방해한다. 배들의 불안한 항해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선박 사고의 1/10이 바다쓰레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여객선을 타고 가는데 바다 위에서 이유 없이 멈춰 선다면 아마도 대부분 바다쓰레기 때문일 것이다 ..  (52∼60쪽)


 대통령 이명박 님은 서울과 부산 사이에 물길을 내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도 물길을 트면서 ‘엄청난 일자리를 마련하고 엄청난 돈돌리기를 이룬다’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런 물길트기만이 아닌 ‘새 고속도로 또 뚫기’와 ‘새 고속화도로 자꾸 뚫기’와 ‘고속철도 늘려 뚫기’와 ‘새 아파트 끝없이 다시 짓기’만 하여도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 정치꾼도 똑같이 되뇝니다. 우리는 어느 정치꾼을 뽑아도 똑같은 정책이 되풀이되고, 똑같은 토목건설 바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꾼 공약과 정책으로만이 아닌 우리 스스로, 집값이 오르기를 꿈꿉니다. 주식값이 오르기를 꿈꿉니다. 일삯이 오르기를 꿈꾸고, 물건값은 안 오르기를 꿈꿉니다.

 그러나 자기 사는 집값이 오르면 물건값이 안 오를 수 없습니다. 물건값이 오르는데 일삯이 올라 보았자 달라질 구석이 없습니다. 물건값이 오른다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쓰는 물건값만 오를 뿐인데다가, 가난한 사람이 팔아야 하는 물건은 값을 올리기 어렵습니다. 달걀 하나 넣는 오방떡 하나가 1994년에도 500원이었고 2009년에도 500원입니다. 군고구마 한 봉지가, 붕어빵 한 조각이, 떡볶이 한 접시가, 열 몇 해 앞서와 오늘날 얼마만큼 벌어졌을까요. 우리 입에 냠냠짭짭 씹혀 우리 밥통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우리 손까지 오게 될까요. 우리는 이 먹을거리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생각하며, 얼마만큼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요사이 어느 식료품이든 ‘MSG無첨가’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딱지를 하나도 안 붙였습니다. 예전에는 ‘엠에스지’라는 녀석을 안 넣었기에 안 붙였을까요 넣었어도 안 붙였을까요. 그런데 ‘엠에스지’를 안 넣었다는 식료품치고 화학착색료와 화학착향료 들을 안 넣은 식료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가운데 생각있고 뜻있고 넋있다고 하는 분들, 더욱이 지식인과 지성인이라고 하는 분들은 이런 먹을거리를 얼마나 속깊이 제대로 알고 있으려나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떻게 빨아서 입고 있지요? 빨래를 할 때 빨래틀이라는 녀석을 쓰나요, 두 손을 쓰나요? 빨래하는 데 쓰는 비누는 어떤 세제인가요? 빨래는 어디에서 어떻게 말리나요? 옷은 얼마나 사입고, 우리가 사입는 옷은 어떤 천으로 지어졌는지 아나요? 커피와 초콜릿만 공정무역을 하면 될까요? 이런저런 흐름은 알 까닭 없이 그저 ‘공장노동자’이면 다 똑같은 ‘노동자’일까요? 이 나라에서 지식인이라 하는 분들은 얼마나 자기 집살림을 알고 있을는지, 얼마나 스스로 옳게 집살림을 꾸리고 있을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집살림을 이웃나눔으로 펼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성을 아버지와 어머니 한 글자씩 붙여 ‘김신 아무개’나 ‘최박 아무개’처럼 적으면 두 성을 평등하게 다루는 셈일까요? 어머니 또한 당신 아버지한테서 받은 성일 텐데?


.. 이렇듯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은 해로운 화학물질들이 우리가 늘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 제품을 생산할 때에 사람의 건강이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생산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진 결과이다 ..  (96쪽)


 지난날 신동엽 시인이 피를 뿜으며 외친 “껍데기는 가라”는 온갖 쇠붙이 무기만 가라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전쟁무기만 없으면 된다는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삶자락 어느 구석이든 겉치레와 겉발림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살림을 꾸려야 하고, 우리 손으로 우리 삶을 가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두 손에 비누거품 가실 날 없고 진물이 빠질 날 없는 손으로 연필을 들고 깃발을 들고 가방끈을 조여야 합니다. 두 손으로 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어르며 밥짓고 찌깨 끓여낼 수 있은 다음에 논문을 쓰든 소설을 쓰든 기사를 쓰든 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 듣던 귀로 민중이든 시민이든 국민이든 서민이든 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옆집 아이한테 놀이노래 불러 주고 자장노래 불러 주는 입으로 역사든 진보든 혁명이든 보수든 개혁이든 반동이든 읊어야 합니다. 바닥 없는 하늘이 없고, 기둥 없는 집이 없습니다. 모래알에 기둥을 박아 보았자 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단단하게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어떠한 일이건 운동이건 뭣이건 해낼 수 없고 이룰 수 없으며 맞이할 수 없어요.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주제에 무슨 사회운동이며, 오로지 돈밖에 모르는 주제에 어인 대학졸업장이며, 오로지 돈셈밖에 안 하는 주제에 웬 자기계발입니까.

 사회운동은 자기 삶을 고치는 일입니다. 대학교란 자기 마음을 뜯어고치는 일입니다. 자기계발이란 나한테 있는 사랑과 믿음을 송두리째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는 일입니다. 






 (2) 《바다로 간 플라스틱》이 밝히는 바다쓰레기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고작 150쪽 조금 넘기는 얇은 책입니다. 집에서 아기 어르고 재우고 먹이는 틈틈이 책을 넘기고 들추고 하니 며칠 만에 다 읽게 됩니다. 줄거리를 살피면, 잘게 잘게 쪼개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가면 쓰레기로 남을 뿐 아니라, 바다를 삶터로 두는 온갖 목숨붙이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들이 찬찬히 눈길을 두지 않으면서 망가지는 바다 이야기를 하고, 우리들이 알면서도 더럽히는 바다 이야기를 합니다.


.. 바다에서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앨버트로스의 비극은 일어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하늘 높이 나는 앨버트로스가 항공기나 높은 관제탑에 부딪쳐 몇 년 사이 수천 마리가 죽었다.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새가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과, 언제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안전한 바다는 이제 없다.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만이 남았을 뿐이다 ..  (71쪽)


 단출하게 참 잘 엮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살가운 이야기를 살가이 녹여낼 만한 가슴이 우리들한테 얼마 없겠구나 싶은 생각 또한 듭니다. 참말,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책을 지식으로만 여기고 우리 매무새를 고쳐나가는 삶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하는 일도 골칫거리이지만, 도시에서 불꽃놀이 하는 일도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불꽃놀이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과 눈길도 안타까운 한편, 이런 불꽃놀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기사로 다루고 하는 우리 마음결도 슬픕니다. 바닷가에서만 안 하면 될 불꽃놀이는 아니니까요.


..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생활용품이 모래톱이나 갯벌에 더 깊이깊이 박혔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언젠가 유물로 발견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 마구 쓰레기를 버려대면 아마 여기저기 썩지 않는 유물로 가득한 유적지가 너무 많아서, 우리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보존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유적이 아닌 몰상식한 선조들의 더러운 쓰레기더미로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하다 … 이곳의 어민들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가꾸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오래오래 후손들까지 안정적으로 고기잡이를 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다 .. (81, 82, 87쪽)


 구멍가게에서 맥주 한두 병 사다 마시면서, 맥주 겉에 붙은 종이딱지를 살며시 뜯어내어 말리곤 합니다. 하루쯤 두면 빳빳하게 되어 책갈피로 쓸 수 있거든요. 동네 마실을 하면서 자동차 앞유리에 끼워진 광고쪽을 빼들거나, 전철 광고판에 꽂힌 또다른 광고쪽을 빼내어 책갈피로 쓰곤 합니다. 모두 쓰레기가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게 될 일을 생각하면, 한 장이라도 덜 쓰레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손전화값 알려주는 청구서가 오면 알맞게 잘라내어 책갈피로 씁니다. 잘 갈무리를 해 둔 다음, 나중에 아이하고 종이접기를 할 때 써도 되고요.

 요즈음 세상은 우리 스스로 쓰레기를 안 만들려고 애써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나오고 넘치고 널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한 사람 움직임은 그저 나비 팔랑거림밖에 안 된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한 목숨 살아가면서 조그맣게나마 몸부림을 치면서 살고 싶고, 이렇게 몸부림을 치는 동안 제가 바라보는 길과 제가 걷는 길을 좀더 곰곰이 되짚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저는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쓰면서 살아야 할 테지만, 돈에만 매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착한 돈은 50만 원 겨우 벌 수 있다면 50만 원만 벌고, 50만 원도 못 벌게 된다면 못 벌면서 살림을 꾸릴 생각입니다. (4342.2.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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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폴 콜먼 지음, 마용운 옮김 / 그물코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2 ― ‘환경파괴’는 이명박 아닌 우리가 하고 있다
 : 폴 콜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책이름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
- 글쓴이 : 폴 콜먼
- 옮긴이 : 마용운
- 펴낸곳 : 그물코 (2008.8.20.)
- 책값 : 12000원



 (1) 도시에서 듣는 소리


..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밤이고 낮이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소리만 계속 들릴 것이며, 이곳 주민들은 평화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  (269쪽)


 지난달(또는 지난해. 2008년이니까) 첫머리에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 아기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며칠 머물며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만 하루이틀 길어지면서 ‘성탄절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고, ‘새해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으며, ‘아버님(장인 어른) 생일까지는 있어야지’가 되었습니다. 그렁저렁 지내는 사이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머물게 되었고, 저 혼자 인천과 일산을 오가면서 집살림을 꾸리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고 겨울에 집이 얼지 않게 보일러 돌리고 하면서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제, 옆지기 어머님이 차를 몰아 우리 식구를 인천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외곽순환도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데, 창문을 닫아 놓고 있음에도 우리 차에서 나는 소리와 옆을 싱싱 달리는 차에서 나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참 시끄러웠습니다. 차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언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  (208쪽)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옆사람과 이야기하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차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웃한 다른 손님들이 내는 소리가 몹시 크기 때문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오면, 맞은편에서 건네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애를 먹는데다가, 내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소리를 높여야 하니 괴롭습니다. 자가용이든 전철이든 버스이든, 길에 나와서 무슨 탈거리에 몸을 싣고 움직이는 삶이 이어지다 보면, 저절로 우리 목소리는 커지고 짜증이 묻어날밖에 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가만히 있어도 귀가 막히는 느낌입니다.


..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정경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골목에서 길을 일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  (168쪽)


 아기를 안고 옆지기와 함께 골목마실을 할 때면, 도시에서 그나마 귀가 뚫리면서 시원합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깊숙한 골목을 거닐 때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도 넉넉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더러, 골목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살며시 들을 수 있습니다. 골목집 텔레비전 소리가 골목으로 흘러나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보일러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마 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며, 마루를 뛰는 아이들 소리가 들립니다. 많지 않아도 참새 소리를 듣고, 때에 따라서 어치와 박새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길고양이가 소리 없이 담과 지붕을 넘어다니며 먹이를 찾거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네 마실을 하는 가벼운 소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빨래줄에 걸린 채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 소리를 듣고, 할머니들 지팡이 짚고 걷는 소리를 듣습니다.


.. 2001년 11월 10일, 루마니아에서는 말이 끄는 수레가 주요한 교통수단인데, 나는 이것이 아주 정겹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미소를 짓거나, 서로를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  (154쪽)


 인천집으로 오니, 늘 듣던 전철소리를 집안에서 다시 듣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겨울이라 문을 꼭 닫고 있어 조금은 작게 들립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가 없습니다. 라디오도 듣지 않아 라디오 소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아기 칭얼대는 소리, 아기 젖 빠는 소리, 아기 꽁꽁대는 소리와 어울리는 애 아빠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옆지기 식구들 집에서 지내다 보니, 아기를 그리워하게 된 아기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손전화로 아기한테 말 거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 할머니와 손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 아빠는 글쓴다며 언손을 비빕니다. 슥삭슥삭 손 비비는 소리가 우리 사는 작은 방 한 칸에 살며시 감돕니다.


.. 네덜란드는 벨기에보다 자전거도로가 더 많았고, 누구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듯 보였다. 자전거도로가 형편없고, 차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영국 런던이 이곳을 본받아 자전거도로를 확충했으면 좋겠다. 요즘 런던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대기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마치 스타워즈 영화에 나오는 다스 베이더처럼 보인다. 이곳 네덜란드에서는 어린 아기 때 자전거 손잡이에 장착된 의자에 앉기 시작하여, 자라면서 자전거 뒷자리에 앉다가, 나중에는 작은 자전거를 타고 부모와 나란히 달린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것들이 아주 안전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자전거 타기는 환경보호에 아주 좋다 ..  (138쪽)


 아기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혼자 뒤집기를 합니다. 눕히면 싫어하고 어깨죽지를 잡고 일으켜세워 주어야 좋아합니다. 그렇게 일으켜세워 주고 있으면, 지 혼자 방방 뜁니다. 아직 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기를 좋아하다니. 하긴, 서지도 못하면서 앉지도 않고 서려고 하니까.

 이제 좀더 자라고 돌이 될 무렵이면, 또는 돌을 조금 지날 무렵이면, 우리 집 자전거에도 아기 태우는 바구니를 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잣거리 나들이를 다니건 골목마실을 하건, 자전거 바구니에 아기를 앉히고 자전거를 끌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는 바람소리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고, 바람소리와 바람결을 느끼는 아이는 무슨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할까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아이는 페달 밟는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큇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도 차츰차츰 익숙해지리라 생각합니다.


 (2) 우리 둘레에서 보는 모습


 서울 서교동에 자리하고 있던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 내내, 동네를 도는 경찰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서교동에 깃들어 지내는 ‘대통령 아들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었고, 둘씩 짝을 지어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동교동 골목을 지날 때면 으레 경찰들을 마주했습니다. 동교동에는 ‘대통령 되신 분이 살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네 골목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집 둘레로도 경찰들이 틈틈이 짝을 지어 지나다닙니다. 동네를 지켜 주고자 돌아다니는 일은 고마운 한편으로, 구멍가게에 간다든지 골목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때마다 늘 마주쳐야 하니 퍽 껄끄럽습니다. 저이들은 ‘내가 구멍가게에 가는 회수마저 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조용한 동네 골목에 이들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거닐거나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면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에 살든 저기에 살든, 또 저곳으로 가든 그곳에 있든 경찰이며 군인이며 아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막아야 한다는 전경도 많지만, 휴가를 나오는 군인 또한 꽤나 많아요. 크고작은 도시며 시골이며 군부대 없는 데가 없고, 미군부대도 퍽 많이 남아 있는데다가 서울 한복판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청와대 가는 길목이나 광화문 미 대사관 둘레는 온통 경찰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 대사관 앞을 굳이 지나갈 일이 없지만, 어쩌다가 걸어서 지나가야 할 때면 등골이 오싹하거나 소름이 돋습니다.

 여느 때에도 부러 군인옷을 입는 분들(거의 해병대)이 많은 가운데 의경은 둘씩 여럿씩 짝을 지어 길을 다 차지하고 서 있거나 막아서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라고 이야기됩니다.


.. 대체 어디서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큰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드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한 지역주민이 “돈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가까이에서 즐기기 위해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하고 설명했다. 이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기며 살기 위해 산비탈이 사라졌고 숲을 파괴한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 수많은 건설공사는 일부 사람들만 부유하게 만든다. 때로는 이러한 건설사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당선시키기도 한다 … 계룡산에 도로와 터널을 건설하려면 국민세금 수천억 원이 들어갈 것이다. 이동시간을 줄여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하기 위해 국민세금을 들여 도로를 만든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일만 좇는 삶은 어디로든 빨리 가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  (264, 266쪽)


 프랑스 학자는 우리네 아파트 건설을 바라보면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파트 문명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이 먼저 나왔음직하지만, 우리네 지식인들 또한 아파트 문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나게 즐기고 있기에, 한국판 《아파트 공화국》이란 나오기 아주 힘듭니다. 더욱이 이 책을 칭찬하거나 높이 사는 분들 또한 아파트 삶에서 떠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아요. 아니, 아파트 삶에서 벗어난다기보다, 아파트를 얻으면서 할 수 있는 돈굴리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한국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이렇게 해 보자》나 《놀라운 아파트 전도 어프로치》 같은 책을 써냅니다.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살게 되니 마땅히 아파트에 찾아가서 종교를 퍼뜨리는 데에 마음을 쏟겠지요.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무섭습니다. 참 끔찍하기도 하고요. 참 너무한다 싶으면서, 어리석구나 싶고, 우리는 스스로를 옭매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면서 살밖에 없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아파트만 보이니, 프랑스 학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쓰고, 종교인은 《아파트 전도 ……》를 쓰며, 이 나라 여느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 주기를 바라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파트만 그려지고, 어른들이 아이한테 읽히거나 보이려고 쓰고 그리는 동화책과 그림책에도 아파트만 그려질 테지요.


.. 해안 대도시를 만나게 되면서 일본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다. 맨 처음으로 나타난 도시는 나고야였는데, 이곳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요타 같은 큰 기업과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조밀하게 서 있는 건물과 고속도로는 콘크리트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곳 온도는 다른 곳보다 몇 도나 더 높은 것 같았다. 길가에는 나무나 그늘도 거의 없어서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으며, 다시 걷기에 합류하게 된 고이치와 나는 열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열사병에 걸린 것은 처음이었는데 … 수많은 트럭과 자동차들이 다니는데, 크고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컴퓨터까지 장착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일본에서는 보행자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거대한 도시들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으며, 오직 소비만이 삶의 방식이었다. 도쿄는 한마디로 ‘약에 취한 디즈니’ 같은 곳이었으며, 미래의 암울한 세계를 그린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  (228쪽)


 쌀을 씻어 담그고 마늘을 까며 아침을 마련하는데, 집 앞 길가에서 교통경찰이 주차단속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집 앞 길로 시내버스 하나가 지나가는데, 앞길은 두찻길입니다. 어느 한쪽이든 차가 서 있으면 버스가 지나가기 힘듭니다. 그런데 자동차 모는 이는 한쪽만 차를 세우지 않고 두 쪽 모두 세워 버립니다. 그러면 다른 차는 어찌 지나가라고 그럴까 싶지만, 차를 세워 놓고 볼일 보는 이들은 이런 데에는 마음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만 못 지나가게 될 뿐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나쁜데 말입지요.

 그래도 이 길은 버스라도 다니니 교통경찰이 단속을 합니다. 골목길 안쪽에 세워 둔 차를 놓고 단속하는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시내에서도 찻길 한쪽에 세워진 차를 단속하는 일이 드물어요. 찻길을 닦은 까닭은 한쪽을 차대는 곳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 아닐 텐데, 전국 어디이든 찻길 한쪽은 어김없이 차대는 곳이 되고 맙니다. 이에 따라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이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나,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나, 전동휠체어 타는 사람이나, 모두 다니기에 안 좋습니다.

 온통 자동차이고, 온통 자동차와 얽힌 교통 흐름이며, 온통 자동차에 쏟아붓는 나라살림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판이면서도 고속도로에 들이붓는 정책과 돈과 품은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이 말라간다고 하면서도 고속도로 새로 닦는 일은 멈추지 않고, 외려 더 늘어납니다.


..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그곳 관리 한 사람이 “콜먼 씨, 지금 밖에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한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을 만나려고 몇 달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들어오게 할까요?”라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할머니에서 아들 손자에 이르는 한가족이 왔는데, 할머니는, “우리는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서 당신을 보고는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난한 농사꾼 가족이지만, 지금 이 땅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잘 알아요. 내가 젊었을 때에는 신발은 없었지만 물은 풍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신발은 신을 수 있지만, 물을 긷기 위해 12킬로미터나 걸어가야 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 환경문제는 이들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  (68∼69쪽)


 이제는 아기를 낳아 기르니 똑똑히 알고 있는데, 지난날 머리로만 ‘천기저귀 쓰기와 종이기저귀 쓰기가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따졌을 때에는, 천기저귀를 쓰면 물을 아주 많이 쓰게 되는 줄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종이기저귀는 ‘빨래할 일’이 없으니 물을 안 쓰게 된다는 대꾸에 딱히 맞서지 못했어요. 그러나 손수 천기저귀 빨래를 하노라면, 기저귀 한 장을 빠는 데에 손바닥 한 뼘 길이가 되는 작은 대야에 반쯤 담는 물이면 넉넉합니다. 종이기저귀를 쓰자면 공장을 돌려야 하고 비닐로 물건을 싸야 하는데다가 마트에 쟁여 놓으며 전기불을 가득 켜 놓아야 합니다. 종이기저귀 사오는 이들은 자가용을 끌고 마트에 가서 수레에 담아서 산 다음 카드로 긁어서 사고 다시 자가용을 끌고 집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 쓴 종이기저귀는 쓰레기봉투에 담는데, 쓰레기봉투도 종이기저귀와 똑같은 흐름을 거쳐서 만든 다음 놓입니다. 더욱이 쓰레기봉투에 담긴 종이기저귀는 청소부가 하나하나 들어서 치워야 하고 쓰레기묻는 데로 가져가서 묻습니다.

 이런 흐름을 살필 때, 천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하고, 종이기저귀 한 장에 들어가는 물과 자원 씀씀이를 견주면 어찌 될까요. 우리가 마트에서 사들이는 값은 ‘꽤 싼 편’일지 모르지만, 이 싼값 뒤에 숨은 엄청나게 큰 돈과 품과 자원 씀씀이가 있음을 우리들 모두 잊고 있습니다.


..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던 기회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2백 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에 어느 어린 남자아이가 손을 들더니 “배가 고픈 적은 없었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나는 “물론 있지”라고 대답하며 루이지애나에서 하마터면 뱀을 밟을 뻔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그 뱀을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중에 뱀이 도망가 버린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학교를 떠날 때 교장 선생님이 모자를 주셨는데, 그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신이 다시는 굶지 말라고 아이들이 점심값을 모아 주었소.” 나는 멕시코에서 한 번도 배를 곯은 적이 없었다. 멋진 집과 많은 봉급, 예금통장, 주식과 채권을 가진 미국사람들이 더 부유할까? 아니면 소박하지만 활력과 인정이 넘치는 멕시코사람들이 더 부유한 것일까? ..  (52쪽)


 (3) 걸으면서 고향과 세상을 지키려는 사람


 영국사람 폴 콜먼은 두 다리로 지구를 걷고 있습니다.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지난 2008년 8월에 한국에서 낼 때까지 자그마치 서른아홉 나라 사만칠천 킬로미터를 두 다리로 걸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뒤 여러 달이 지났으니, 폴 콜먼 님은 틀림없이 또 어느 나라에선가 ‘평화사랑’과 ‘환경지키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뚜벅뚜벅 걷고 있으리라 봅니다. 당신 스스로 늘 느낀다고 하듯, 평화를 사랑하는 일은 말로 할 수 없으며, 환경을 지키는 일 또한 입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온몸으로 해야 합니다. 온삶을 바쳐서 이루어야 합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와 우주가 담겼으면, 어느 한때 한 번 비우는 밥그릇만 헤아릴 일이 아니라, 날마다 비우는 밥그릇을 늘 헤아려야 합니다. 밥그릇을 받을 때에도 헤아릴 평화와 우주이지만, 밥그릇으로 얻은 기운으로 살아가는 여느 때에도 한결같이 헤아릴 평화와 우주예요. 그러니, 평화사랑이라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고이 잇는 일이 됩니다. 환경지키기도 이와 함께 온삶에 걸쳐서 하게 됩니다.

 ‘지구환경의 날’ 하루에만 할 수 없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에서 해 줄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환경 이야기를 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알 수 있는 환경지키기가 아닙니다. 새벽과 밤에 청소부가 길거리 쓰레기를 치운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지키기입니다. 환경부담금을 내면 환경지키기가 이루어질까요. 탄소배출을 꾸준히 줄이는 일은 환경지키기와 얼마나 이어져 있을까요. 맥주 한 병과 볼펜 한 자루와 버스표 한 장에도 간접세금이 붙어 있듯, 이런 물건과 차편 하나에도 생태환경이 얽혀 있습니다.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걸어갈 때와 자전거를 타고 갈 때와 자가용을 타고 갈 때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갈 때가 사뭇 다릅니다. 똑같은 밥을 먹더라도 손수 짓거나 길러 먹을 때와 생협에서 사다 먹을 때와 재래시장에서 사다 먹을 때와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가 크게 다릅니다.


.. 한국은 생물다양성협약과 습지보호를 위한 람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인데도 이토록 중요한 습지이자 야생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2008년 람사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한 정부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 내가 전 세계 곳곳을 다녀 보았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건설 공사가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과거에는 신성하게 여겨지던 전국의 산들이 커다란 굴착기와 폭약으로 마구 훼손되고 있었다 … 4번 국도를 따라 대구로 들어가는 길은 한국에서 걸은 최악의 길이었다. 차들이 하도 많이 다녀 소음이 어찌나 심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면 고함을 질러야 할 정도였다 … 수천억 원이 들어갈 공사에 몇 사람은 즐거워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15분 빨리 가려고 대구 시민들의 안식처이자 자연환경의 보고를 파괴해도 좋은 것일까? … 부산에도 커다란 터널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경부고속철도 터널이 관통하게 될 금정산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아름다운 산들을 파헤치고 터널을 뚫는 것이 한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인 것 같았다 ..  (254, 266, 269, 270쪽)


 통신사에서 공짜 전화기를 준다 한들, 이 전화기가 참말 ‘공짜’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주머니에서 곧바로 나가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마실 물과 공기는 지저분해집니다. 우리가 디디는 땅은 거칠고 메말라 갑니다.

 어느 텔레비전 풀그림에서 ‘오렌지를 한 방울도 짜넣지 않고 색소와 화학조합물만으로도 오렌지쥬스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런 풀그림을 보는 우리들 삶이 달라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미국에서 교통경찰이 차 짐칸에 콜라를 상자째 넣고 다니면서 사고 현장에 흐르는 피를 말끔히 닦아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콜라를 사다 마시고 있는데, 우리들 삶이 어느 만큼 거듭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같은 책이 곧잘 나오지만, 햄버거집이나 피자집이 문닫는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되레 나날이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더 좋아하고 즐긴다는 소리만 듣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아이들이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기 앞서, 어른들부터 햄버거와 피자를 즐겨먹고 있는걸요.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는 까닭은 어른 범죄가 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시지옥이 풀리지 않는 까닭은 어른들이 가방끈에 따라 사람을 푸대접하거나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얼굴과 몸매에 온마음을 쏟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얼굴과 몸매에 따라 재며 값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나어린 주제에 돈을 밝히는 까닭은 어른들이 허구헌날 돈타령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며 학교에서며 돌림뱅이 짓을 하는 까닭은 어른들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눌 뿐더러 이주노동자를 살빛에 따라 갈라 놓는데다가 학력과 갖은 연줄에 따라서 계급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을 걸으며 아주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는 도로와 아파트를 건설하는 모습은 보기에 흉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한국보다 몇 배나 큰 나라만큼 도로가 많이 건설되고 있었다 …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파괴적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할 주체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부와 소비 형태를 선택한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 당장 석유가 고갈된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 그렇다면 한국이나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이 왜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정부와 산업계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출근시간을 줄이고 제품을 수송하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라고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차를 구입하고 교통량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런 소비 행태를 통해 우리는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등을 끄지 않은 채 놔두거나, 모든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력회사는 더 많은 댐과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  (282∼283쪽)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더없이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를 훌륭한 그대로 받아들일 가슴이 이 땅에 얼마나 있을까 하고.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대로 받아먹을 마음자리가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탱자탱자 놀면서 살 수 있던 폴 콜먼이 모든 돈과 놀음놀이를 벗어던지고, 베낭에 나무 한 그루 꽂고는 뚜벅뚜벅 걷는 까닭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곱씹을 넋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하고. (4342.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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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지구온난화 시대에 도시와 시민이 해야 할 일
정혜진 지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도시에서 착하게 사는 길을 어떻게 찾을까
 [잠깐 읽기 16] 정혜진,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책이름 :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 글쓴이 : 정혜진
- 펴낸곳 : 녹색평론사 (2007.11.7.)
- 책값 : 1만 원



 (1) 내가 찾는 길


 옆지기가 스탠 냄비를 장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노래하기에, 개수대 밑에 쟁여 놓기만 하고 안 쓰던 스탠 냄비를 꺼냅니다. 혼자 살던 예닐곱 해 앞서, 옛동무와 어머니한테서 받은 스탠 냄비인데, 혼자 먹고살면서 쓰기에는 크고 무겁다고 느껴서 고이 모셔 두기만 하고 있었는데, 이 냄비들을 꺼내니 옆지기가 깜짝 놀랍니다. 왜 이 좋은 스탠 냄비를 여태 쓰지 않고 그렇게 두었느냐고.

 뒷통수를 긁적입니다. 어떤 냄비를 써야 하는가를 잘 몰랐고, 냄비 하나가 우리 밥차림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아 왔습니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기도 했으나, 저 스스로 알아보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선물해 주는 냄비는 으레 값비싼 녀석이었습니다. 저는 늘 값싼 냄비를 쓰고 있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저 비싼 녀석을 쓸 까닭이 없으리라 생각했고, 또 아깝다고 여겼으며, 선물 받은 모양새 그대로 모셔 두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쓰던 양은 냄비며 법랑 발린 지짐판이며 모두 개수대 밑으로 들어가고, 이제까지 개수대 밑에서 잠자던 네다섯 개나 되는 스탠 냄비가 밖으로 나옵니다. 전기밥솥도 그만 쓰기로 하고 냄비로 밥을 하고,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을 부치고 볶음밥을 합니다. 물을 안 넣고 감자와 고구마를 찝니다. 찐빵을 찌거나 구을 때에도 물을 붓지 않고 기름을 두르지 않습니다. 찌개를 끓일 때 스탠 냄비는 훨씬 빨리 달궈지고 더욱 오래 따뜻함이 이어갑니다. 끼니에 맞춤하게 짓는 밥은 여태까지 먹던 밥맛과는 견줄 수 없이 맛있습니다.


..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거나 절약하는 행위는 지역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에너지를 덜 쓰려면 외곽에 있는 쇼핑몰보다 동네 슈퍼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혼자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이웃 혹은 직장 동료와 카풀을 하면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좀더 걷고 자동차를 덜 쓰면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역사회 전체적으로는 공기가 더 맑아지며 교통 혼잡 비용이 줄어든다. 절약해서 남는 돈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면 지역사회 전체 문화 수준도 올라간다 … 거대 기업이 들어와서 단지 사업의 목적만을 위해 옥수수를 싹쓸이할 때에는 농산물값 폭등까지 이어지지만, 도시 공동체 사람들의 삶의 양식도 함께 바뀔 때에는 노는 땅이 에너지 작물을 키우는 땅이 되고, 깨끗한 기름을 쓸 수 있고, 폐기름을 줄이게 되며, 공기도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  (6, 62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가 바꾸지 못한 삶은 무엇이고 내가 바꾼 삶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 마음을 기울이고 어디에는 마음을 못 기울이고 있는지. 내 스스로 바꾸지 못하겠다며 손을 흔드는 삶은 무엇이고, 미처 깨닫지 못할 뿐 바꾸려 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삶은 무엇인지.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에 ‘자동차 별거기’라고 해서 나이먹은 분으로서 자동차를 멀리하고 자전거를 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자전거 타기만큼은 좀더 찬찬히 생각하면서 이 하나는 바꾸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던 때, 신문배달로 먹고살며 짐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긴 했으나, 서울 시내 헌책방을 찾아나설 때에는 전철을 탔습니다. 이문동에서 안암동까지는 자전거로 갔어도, 혜화동이나 종로부터는 전철로 움직였습니다. 아직 서울이 낯설기만 한 시골도시 사람은 짐자전거로 멀다고 느껴지는 길을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다섯 해쯤 서울에서 지내다가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출판사로 자리를 옮기니 자전거하고 멀어집니다. 집과 일터가 퍽 멀기도 했지만(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강서구 방화동) 자전거로 오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신문배달 하던 때에는 달삯이 아주 적기는 했어도 내 자전거가 있었기에 따로 자전거 장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니 내 자전거는 없으나 일삯은 예전과 견주면 일고여덟 갑절이라서, 살림돈 십만 얼마와 책값과 필름값 삼십만 원을 빼고 모두 은행에 맡겼고, 자전거 없이 보내던 삶은 오래지 않아 끝내고 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제 자전거를 장만합니다.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서울시내 꼼꼼길그림도 함께 장만하면서 길을 눈에 익힙니다. 이제는 전철이 아닌 자전거를 몰며 헌책방 나들이를 다닙니다. 종로구 평동에서 신촌으로 오가는 길은, 전철은 빙 돌아서 가는데다가 버스 타는 곳은 집에서 너무 멀어서 으레 사십 분이나 걸리곤 했는데, 자전거로 움직이니 짧으면 8분, 길어도 12분이면 넉넉했습니다. 이제, 웬만한 곳은 모두 자전거로 움직이는 버릇이 붙고, 대중교통인 버스나 전철마저 가까이하고픈 마음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도, 옆지기와 함께 돌아다닐 일이 아니라면 혼자서 자전거를 몰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갈 때에도 자전거를 타면 전철로 갈 때와 거의 같거나 좀더 빠릅니다(동인천에서 마포큰다리까지 50분, 광화문까지는 1시간 2분). 다만, 자전거를 타면 책을 못 읽을 뿐입니다.

 그래, 이 하나, 자전거 타기만큼은 아주 잘 바꾸었다고 느낍니다. 모르는 일인데, 신문배달을 자전거로 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많이 익숙해졌고, 신문배달 짐자전거로 웬만한 오르내리막을 두루 꿰다 보니 자전거로 서울 시내 돌아다니면서 아무런 어려움을 못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 ‘저탄소 도시’나 ‘친환경 에너지 도시’처럼 온실가스 배출 감축,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확대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지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민은 지구 표면의 2%에서 자원의 75%를 소비한다 … 어떤 지자체에서는 화석연료의 안락에 길든 도시 생활을 바꾸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설치에만 열을 올린다. 그런 단체장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아직도 ‘눈에 보이는 한 건’을 원하고 있다 ..  (34∼35, 58쪽)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자전거 다음으로는 옷이 있을까. 신문배달 하던 때에는 늘 헌옷 모으는 통에서 옷을 주워서 입었지(예전에는 옷 모으는 통이 열려 있었습니다). 또, 가까운 대학교에서 행사를 할 때마다 나눠 주는 옷을 슬쩍 끼어서 얻어입기도 하고(우리 신문 독자인 학생들이니까). 형이 안 입는 옷을 치수가 많이 크지만 고맙게 물려입기도 하고. 길에서 2000원에 파는 반바지 몇 벌 사다가 입고, 청바지 두어 벌은 길에서 5000원에 파는 녀석으로 장만했고. 출판사 사장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당신 아들내미가 안 입는 옷을 한 보따리 안겨 주기도 했고.

 그 다음으로는 가게에서 주는 비닐봉지를 안 받고 천가방을 챙기며 다니는 버릇.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을 새것으로 안 쓰고, 다른 이가 쓰고 버린 것을 주워서 씻어 말린 다음 가방에 챙겨넣고 다니면서 쓰는 버릇. 길바닥에 널부러진 종이조각이나 광고명함 주워서 책갈피로 쓰는 버릇. 둘레에 많이 버려지는 이면지를 내 공책이나 편지지로 삼는 버릇. 그리고 ……, 음, 세탁기 안 쓰고 손빨래 하기? 텔레비전 안 모시고 살기? 운전면허증을 아예 안 따기? 값싸고 질긴 고무신 신고 다니기? 음식물쓰레기가 아예 나오지 않게끔 포도알 포도껍질 사과알 사과속까지 냠냠짭짭 먹으면서 먹을거리 다스리기? 손전화기는 마르고 닳도록 쓰고 쓰다가 망가져서 더는 못 쓰게 되어서야 바꾸어 주기? 밑 닦을 때 휴지는 한 칸이나 두 칸만 쓰기?


 .. 차를 타고 달릴 땐 사람들이 아닌 차만 보였던 걸까. 새로울 것도 없는 사람 사는 풍경이 마치 신기한 이국 풍경인 듯, 자가용을 타지 않는 나는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던 풍경을 새삼스레 즐겼다 … 질적으로 검소한 것은 소비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지 않고 필요한 기술이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 것을 뜻한다. 무분별한 소비로 괜히 쓰레기만 만들지 말고, 창의적인 기술과 서비스에 제값을 지불하자는 것이다 ..  (38, 65쪽)


 다음으로, 무엇을 쓰고 사는가 손꼽아 봅니다. 무엇보다 첫째로는 책. 둘째로는 필름. 셋째로는 술. 넷째로는 ……, 넷째, 넷째가 있나. 모르겠네. 이밖에 돈 나가는 데라면 집삯과 전기삯과 물삯 따위인데. 몇 군데 시민단체에 보내는 돈 얼마, 길에서 만나는 동냥꾼한테 건네는 돈 얼마, 성당에 내는 돈 얼마.

 그렇군. 쓸 데가 많지 않으니 처음부터 많이 벌 생각도 안 하는 듯하군.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에는 비앙키 자전거 하나 갖고픈 꿈을 키웠는데, 이제 이 꿈은 이루지 못할 물거품이나 뜬구름이지. 아이를 키우려면 돈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지만,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을 뿐, 아이를 어디 학원에 넣을 일 없지 아이를 연예인처럼 예쁘장하게 꾸밀 일 없지 하니, 딱히 무엇을 더 쓰거나 누려야 할까 싶고.

 그저 재개발이니 재생사업이니 하면서, 우리처럼 밑돈 없는 사람이 겨우 깃들어 사는 골목집을 밀어내는 정부정책이나 없으면 더 바랄 일이 없습니다.


.. 인도는 분명히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닌데도 도시 곳곳의 인도들이 차들로 점령당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신경질만 내고 나면 그만이다. 자전거에서 내려 잠시 차도로 내려갔다가 다시 인도로 올라가면 되니까. 그런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전동휠체어를 모는 노인들, 그리고 큰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은 … 걷다가 인도에 주차된 차들을 만나면 자전거를 탈 때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차를 이곳에 주차한 이 사람은 예의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일까 … 차를 몰든 안 몰든 똑같이 낸 세금으로 닦아 놓은 도로를 그들은 질주하면서, 역시 세금으로 만든 인도까지 그들이 점령한다. 똑같이 세금 내면서 차를 몰지 않는 이들은 도로에 세금 퍼주고, 차량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공유하고, 인도까지 운전자들에게 점령당한다. 그런데도 인도를 점령한 운전자들은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  (148∼149쪽)


 늘 골목마실을 하면서, 틈틈이 동네 이웃을 만나면서, 꾸준히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한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맛보는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돈을 많이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다고 느낍니다. 5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5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5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든, 자전거 타는 기쁨은 매한가지입니다. 보증금 없이 10만원짜리 달삯집에 살든, 보증금 천만 원에 달삯 없는 집에 살든, 싯가 이십억짜리 아파트에 살든, 또 몇 억에 이르는 아파트에 살든,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를 바 없을 뿐더러 사람 사는 즐거움이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니 자꾸만 남 앞에서 우쭐거리고픈 옷을 입고 차를 몰고 집을 얻지 않으랴 싶습니다. 마음이 허거프니 자꾸자꾸 남 위에 올라서면서 이웃나눔과 어깨동무하고는 멀어지면서 살지 않으랴 싶습니다. 마음이 메마르니 숱한 물질문명을 누리는 일이 세상 사는 기쁨인 줄 잘못 알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 몸마저도 망가뜨리지 않으랴 싶어요.

 자가용 끌고 출퇴근하면서 ‘운동이 모자라’ 헬스클럽에 가는 일은 얼마나 자기 삶을 좀먹는 일인가요. 몸 갉아먹으면서 한 해에 억대 연봉을 받는 일을 한다지만, 이렇게 일하면서 갉아먹힌 몸을 추스르느라 적잖은 돈을 보양식에 쓰고 어디 물 좋고 공기 좋은데 놀러가서 쉬는데 쓰고 있으니, 고작 며칠은 쉴는지 모르지만 정작 훨씬 긴 자기 삶은 쉼없이 휘몰아치며 두 손에는 아무것도 안 남고 말지 않습니까.

 더 빨리든, 더 많이든, 더 크게든, 누군가 더 천천히 가야 하기에, 또 더 적게 가져야 하기에, 또 더 작게 웅크려들어야 하기에 누릴 수 있습니다. 이웃을 눌러야 더 빨라집니다. 동무를 꺾어야 더 많아집니다. 살붙이를 멀리하거나 등쳐야 더 커집니다. 이와 같은 삶이, 이처럼 무언가 누리는 듯 보이는 삶이, 참으로 우리한테 도움이 되거나 웃음꽃이 피어나게 해 주고 있는지,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곱씹을 수 있어야지 싶은데.


.. 술값 몇 만 원 아끼는 것과 전기요금 몇 만 원 아끼는 것은 간접비용의 차원이 다르다. 술값에는 간접비용이 별로 없다. 과음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뒤에는 원자력 발전소 뒤치다꺼리 비용, 송배전 인프라 비용 등이 있다. 숨어 있는 비용을 계산한다면 술값 몇 만 원과 전기요금 몇 만 원은 결코 같은 몇 만 원이 아니다. 그런데 당신과 다른 단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몇 만 원을 같은 금액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두뇌회전을 즐기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당신의 계산이 필요하다 ..  (212∼213쪽)


 (2) 스스로 길찾기를 막고 만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몇 해 앞서 《태양도시》라는 책을 펴낸 정혜진 님은 대구에 있는 〈영남일보〉 기자입니다. 우리 나라 기자가 보여주는 여느 모습을 돌아볼 때, 정혜진 님처럼 생태와 환경에 눈길을 깊이 두면서 ‘우리가 지금 삶터에서 좀더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지는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몹시 남다르면서 훌륭하다고 느껴집니다.

 여러 달 앞서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사기는, 나오자마자 책방에 달려가서 샀는데, 책을 사서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무거웠습니다. 무거움은 자꾸만 더해 갔고, 나중에는 응어리까지 맺히면서 풀리지 않습니다.

 책을 다 읽고 책꽂이 한쪽에 꽂아 놓습니다. 여러 달 잊고 지냅니다. 그리고 다시 끄집어내어 펼칩니다. 정혜진 님 책을 두 권째 읽는 동안, 어딘가 아쉽다는, 아니 어딘가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는, 어쩌면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이야기로는 반갑거나 놀라울는지 모르나, 정작 우리 스스로 어떻게 길찾기를 하면서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꾸려가는 삶을 일구면 좋은가 하는 생각을 얻기가 어려웠는데, 그 실마리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펼칩니다.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과다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이건 너무 많은 안락을 추구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문제의 원인을 부시나 다른 사람에게 돌릴 일이 아니다. 당신이 편하게 살아온 만큼 당신도 책임이 있다. 그러니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성’이 출발이다 ..  (199쪽)


 정혜진 님 말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한테 ‘지구온난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는 왜 생겨났을까요. ‘온실가스 배출’ 때문일까요? 그러면 온실가스 배출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많은 안락을 추구하다” 보니까 생겨났다고 할 만할까요? 그러면 우리가 여태까지 누려온 “너무 많은 안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안락’을 누리면서도 조금도 ‘안락을 누린다’고는 여기지 않으며 ‘더 많은 안락’을 좇게끔 길들여져 있을까요? 왜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 모두 ‘더 많은 안락’으로만 나아가고 있을까요? 정혜진 님이 몸담은 언론사 〈영남일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쪽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기사를 실어서 대구 사람들한테 읽히고 있을까요?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도록, 경제가 어떻게 꾸려지도록, 문화가 어떻게 뿌리내리도록, 교육이 어떻게 펼쳐지도록 바라면서 기사를 풀어내고 있을까요?

 우리들은 틀림없이 ‘뉘우쳐야(반성)’ 합니다. 지금처럼 꾸리는 삶이 얼마나 우리 스스로를 좀먹는지 뉘우쳐야 합니다. 지구를 무너뜨리거나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어서 뉘우친다기보다, 무엇보다 내 삶을 망가뜨리고 내 삶터를 엉망으로 흔들며 내 몸과 마음을 내 손으로 갉아먹고 있음을 못 느끼며 살고 있는 지금 흐름을 뉘우쳐야 합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없어서 안 쓰고, 낭비할 수 없어 아끼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기후변화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우리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몇몇 훌륭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시의 풍요를 ‘건전하게’ 누리는 수준일 것이다 ..  (마무리글 / 229쪽)


 그러나 뉘우침은 첫걸음이 아니지만, 마지막 걸음도 아닙니다. 뉘우침을 넘어서 ‘삶을 두루 돌아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눈’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뉘우침’을 한다면 마땅히 ‘지금 누리는 것 가운데 꽤 많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회개와 고해성사는 있는데 달라지는 삶이 없다’면, 이러한 회개와 고해성사는 거짓 회개와 껍데기 고해성사일 뿐입니다. 회개를 못하고 고해성사 또한 할 용기가 없을지라도, 다문 한 가지나마 자기 삶을 바꾸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됩니다. 하루에 한 가지가 어려우면 한 달에 한 가지, 한 달에 한 가지조차 어려우면 한 해에 한 가지씩 자기 삶을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 삶에서 ‘놓아도 되는 대목’은 놓으면서 바꾸어야 비로소, 어떤 정책이나 대책이나 대안을 나라나 지자체에서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서민 스스로 ‘문화도시’도 이루고 ‘착한 도시’도 이루며 ‘깨끗한 도시’도 이루는 가운데 ‘살기 좋은 도시’가 마련됩니다.

 그런데 정혜진 님 책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할 수 있는 길찾기를 처음부터 금을 그어 놓고서 “아끼는 삶 = 과거로 돌아가는 것”인 듯 풀이를 내려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곳곳에 밑줄을 긋기는 하지만 선뜻 가슴으로 스며들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건전하게’ 누리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또렷하게 밝혀 보이지 않고 ‘건전’이라는 낱말을 섣불리 쓰고 마니까, 입에서 까끌까끌하게 맴돌기만 할 뿐, 제 몸으로 스며들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예전 시대로 돌아갈” 까닭이 없습니다만, “예전 시대에서 훌륭한 대목은 기꺼이 배워야” 합니다. 예전 시대에서 잘하던 대목, 예전 시대에서 놀랍게 이루어 낸 대목은 앞으로도 고개숙여 배워야 합니다. 새로운 대체에너지만이, 새로운 대안운동만이, 새로운 기술개발과 유럽 선진국 사례 모으기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닙니다. 나중에 세 번째 책을 엮어낼 꿈을 품으신다면, 모쪼록, 앞선 두 책을 넘어서 주기를, 아니 앞선 두 책을 정혜진 님 스스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물음표를 찍고 찬찬히 읽어 보아 주기를 바랍니다. (4341.10.2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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