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 더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110



새벽에 까마귀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는 생물학자

―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정은석 옮김

 더숲 펴냄, 2016.9.19.16500원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가까운 시월 끝자락이니, 시골은 벼베기로 부산합니다. 벼베기를 마친 논을 겨우내 묵히기도 하고, 품앗이로 마늘을 심기도 합니다.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이름도 배고픔도 잊힌 지 오래라, 벼베기를 마친 논에 보리를 뿌리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한가을이나 늦가을 즈음이면 빈 들에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봄부터 첫가을 무렵까지는 까마귀가 한두 마리씩 따로 다니는데,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들면 수백 마리에 이르는 까마귀가 크게 무리를 짓고 한꺼번에 돌아다니곤 해요. 이에 질세라 까치도 수백 마리가 까마귀떼에 맞서서 들이나 하늘을 까맣게 덮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거닌다든지 자전거마실을 다니다가 이 까마귀떼하고 까치떼를 보면 걸음을 멈추거나 자전거를 세워요. 그야말로 하늘을 까맣게 덮으면서 우렁차게 우짖는 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느끼고, 쫙 펼친 커다란 날개를 새롭게 느껴요.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는 태양의 황금빛이 강물의 검고 파란 물방울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다리 건너편에 있는 마라니쿡 호수 위에서 조용한 아비새 한 쌍의 검은색 실루엣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러더니 노랑솔새 한 마리가 가까이 와서 우리 쪽에 있는 버드나무 덤불로 가서는 맨 마지막 저녁 간식인 하루살이를 찾아다닌다. (361쪽)



  까마귀를 몹시 좋아하면서 까마귀 연구를 하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이 쓴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더숲,2016)를 읽으며 까마귀떼나 까마귀를 문득 떠올립니다.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어린 까마귀를 이녁 아이처럼 살뜰히 아끼면서 돌보기도 하고, 다 자란 까마귀가 숲으로 돌아가도록 보내 주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헨리 데이빗 소로 님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는 이 오두막에서 살며 까마귀를 비롯해서 숲살림을 곰곰이 살피기도 한대요. 이녁이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을 오두막으로 불러서 몹시 추운 겨울에 보름쯤 함께 먹고자면서 온몸으로 숲을 느끼고 살피도록 이끌기도 한답니다.



난 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생한 꿈을 꾸어 본다. 난 내 아들 스튜어트가 이 땅이 주는 굳건하고 안정적이고 친숙한 느낌을 느끼며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길 바란다. 또한 내가 아름다운 대자연의 어머니 같은 여인을 나의 이브로 삼아 이곳에서 사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139쪽)


나는 그가 어떻게 ‘삼림을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는 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 그냥 농부다. 하지만 그의 숲은 예일대학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삼림 감독원이 돌보는 숲처럼 아름답다. (329쪽)



  새를 연구하는 학자이니 학교에 머물 수 없을 테고, 도시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어렵겠지요. 새는 연구실이 아닌 들이나 숲에서 살기에 새를 연구하자면 연구실이나 실험실이나 강단이 아니라, 참말로 숲에 깃든 고즈넉한 오두막에서 조용히 살면서 새를 살필 수 있어야겠지요. 생물학자로서는 들이 배움터일 테지요. 숲이 학교요 멧자락이 책방이며 냇물이 도서관이 되겠지요.


  베른트 하인리히 님은 오두막집에서 홀로 살며 새를 비롯한 크고작은 짐승하고 푸나무를 살피면서 《홀로 숲으로 가다》를 쓰는데, 이 책은 자연관찰기이기도 하면서 문학이기도 합니다. 숲을 그리는 문학이요, 숲이 베푸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그리는 문학이며, 숲에서 깨닫는 삶하고 살림을 그리는 문학이라고 할 만해요.


  책을 읽다가 때때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가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살며 새벽마다 듣는 멧새 노랫소리를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로 찾아드는 수많은 새가 베푸는 기쁜 노랫소리를 떠올립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에도 새로 깨어나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헤아립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니 조물조물 깨어나는 갓잎하고 유채잎을 빙그레 웃으며 마주합니다. 가을볕에 열매가 익고 씨앗이 굵는 소리를 고요히 그리기도 하고, 바람이 들려주는 싱그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3일 후인 7월 14일, 금속을 두드리는 (까마귀) 잭의 빠른 걸음 소리와 지붕 위에서 부르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에 아침 5시 30분 잠에서 깨었다. 멋지군. 그러다 조용해졌다. 잭을 불렀다.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도로 근처에서 라이플 총소리가 들렸다. 밀렵꾼 놈들! (72∼73쪽)



  모든 사람이 생물학자 한 사람처럼 숲에 오두막을 짓고 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기도 해요. 자동차가 너무 많아서 자동차 구르는 소리에 파묻히는 풀벌레 가을노래를 잊는 이 도시를 차분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지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아서 ‘그 높다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틈이 거의 없는 이 도시를 다시금 돌아보면 어떠할까 싶어요.


  우리가 즐겁게 바라볼 곳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우리가 기쁘게 귀를 기울일 소리나 노래나 말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바쁜 도시살이를 하는 바람에 그만 잊거나 잃은 따사롭거나 넉넉한 품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요. 우리가 수수하게 되찾으면서 투박하게 어깨동무를 할 손길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30분일 수도 있고 한 시간 30분일 수도 있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처럼 쳐다보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마도 이곳에 온 지 5개월이 다 되는 동안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매료되었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주변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잠길 수 있었다. (156∼157쪽)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가만히 몸을 맡깁니다. 해가 좋은 날에는 평상이나 마루에 앉아 해가 움직이는 결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 따라 춤을 추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도 나무를 따라서 마당에서 춤을 추어 봅니다.


  10분도 좋고 30분도 좋아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살더라도, 한동안 셈틀을 끄고 손전화를 닫은 뒤에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어 보기를 바랍니다. 하늘빛을 올려다보고 큼큼 가을내음을 맡아 보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되어 시드는 들꽃을 보려고 길바닥에 쪼그려앉기도 하고, 이 가을이 되니 새로 돋는 들꽃을 살피려고 골목을 걸을 수도 있어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어요.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이 사랑스러움을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또 숲과 바다에서도 함께 누려요. 2016.10.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미 한자루 농법 - 귀농, 귀촌 그리고 도시농부를 위한 9가지 농사 비법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3
안철환 지음 / 들녘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108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누구나 농사꾼

― 호미 한 자루 농법

 안철환 글

 들녘 펴냄, 2016.9.26. 13000원



  낫 한 자루를 손에 쥐고 풀을 벨 수 있습니다. 낫으로는 벼를 벨 수도 있어요. 요즈음은 기계로 벼를 베고, 또 기계로 풀을 베곤 해요. 기계를 쓰면 벼베기나 풀베기를 아주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기계를 쓰면 기곗소리가 대단히 커요. 기계를 쓰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고요.


  낫으로 풀을 베거나 벼를 베면 어떠할까요? 낫질을 할 적에는 서걱서걱 풀포기가 눕는 소리만 퍼집니다. 낫질은 무척 조용하다고 할 만합니다. 낫질은 사람이 몸소 하는 일이기에 기름이 들 까닭이 없습니다. 조용히 낫질을 하기 마련이라, 낫질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때로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호미로 땅을 쫄 적에도 무척 조용해요. 관리기라는 기계를 쓰면 아주 빠르게 땅을 갈 수 있지만 무척 시끄러워서 말소리도 안 들립니다. 이와 달리 호미를 손에 쥐고 밭자락에 앉으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고, 일노래도 부를 수 있어요.



모두가 흙에서 살 때는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돈도 필요 없었다. 들이나 산에서 나물을 캐 먹든, 논밭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든 다 그렇게 살았으니 먹고사는 일이 배부르지는 않았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쪽)


원래 땅이 가진 능력을 초과한 양을 생산해야 하니 땅을 보호하는 농사가 아니라 땅을 수탈하는 농사를 짓게 된다. 이른바 ‘수탈농사’이다. 수탈농사를 하니 땅이 병들고 병든 땅엔 병충해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더더욱 농사가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15쪽)



  경기도 안산에서 바람들이농장을 일구기도 하고, 전통농업연구소를 꾸리기도 하는 안철환 님이 쓴 《호미 한 자루 농법》(들녘,2016)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호미 한 자루’로 흙을 살리고 만지고 가꾸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경운기도 트랙터도 콤바인도 아닌, 예초기도 농약도 비닐도 아닌, 오직 호미 한 주를 손에 쥐고서 땅을 만지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호미 한 자루만 쥐고서 흙을 만진다니, 얼핏 보자면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골 할매는 호미 한 자루로 모든 일을 건사해 냅니다.


  호미 한 자루로 씨앗을 심어요. 호미 한 자루로 풀을 매고 나물을 캐요. 호미 한 자루로 땅을 북돋우지요.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살림을 지어요.



흙의 주인은 이런 하찮은 생명들이다. 이런 생명들이 땅을 갈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들은 땅을 부드럽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 양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양분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땅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양분이란 바로 유기물을 뜻하고 유기물이 풍부해야 땅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46쪽)


직파할 때는 물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뿌리가 먼저 나온다. 땅속에 수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주지 않으니 땅속의 물을 빨아 먹으려고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내린다. 뿌리가 건강하니 그 힘으로 밀어 올려진 싹도 건강하다. (111쪽)



  ‘호미 한 자루’를 이야기하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오직 호미만 말하지는 않습니다. ‘낫 한 자루’라든지 ‘괭이 한 자루’나 ‘삽 한 자루’도 말해요. 때로는 낫이나 괭이나 삽을 쓰고, 때로는 호미를 씁니다. 그러니까 ‘호미 한 자루’란 더 많은 농기계나 농약이나 비닐에 기대지 않는 흙살림을 밝히는 실마리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어요. 관행농법에서 벗어나, 예부터 손수 씨앗을 심고 가꾸어 갈무리한 뒤, 이 씨앗을 이듬해에 새롭게 심고 가꾸는 조촐한 살림을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호미 한 자루 농법》를 쓴 안철환 님은 이녁 스스로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고 밭벼도 심은 살림살이를 풀어놓습니다. 이녁 스스로 먼저 오랫동안 해 보고 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싶은 이웃들한테 ‘흙 만지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이웃들한테도 ‘흙일이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이야기도 들려주고요.


  섣불리 땅을 갈기만 하기 때문에 땅이 되레 딱딱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밭에 물을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대목을 알려줍니다. 땅속에서 막상 흙을 살리고 기름지게 하는 흐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곡식이나 남새에 따라 어떻게 다루고 살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누구나 손수 익혀서 아이들한테도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땅짓기를 하자고 북돋아 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2014)를 보면 끝없는 옥수수 단작 평원 너머 어마어마한 흙바람이 이는 장면이 있다. 분명히 옥수수에 의한 심각한 토양 수탈의 대가였을 게다. 감독은 그걸 어떻게 알고 옥수수 평원을 찍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139쪽)


우리 조상들은 콩을 재배하면서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콩 종자의 가짓수를 많이 번식시켜 왔다. 과연 얼마나 콩 가짓수를 번식시켰을까? 자그마치 4천여 가지가 넘었다고 하면 믿을까? (148쪽)



  호미 한 자루로 농사꾼이 되어 보자는 《호미 한 자루 농법》은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 ‘즐거운 흙일꾼’을 꿈꾸는 길을 밝히려고 해요. ‘땅을 지어 돈을 버는 길’이 아니라 ‘땅을 짓는 재미와 보람과 웃음’을 찾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모든 사람이 농사꾼이 되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어요. 내가 손수 땅을 일구면 내 밥상에는 내가 키운 곡식하고 남새가 오를 수 있어요. 남이 지어 준 곡식하고 남새를 사다가 먹을 수 있지만, 어느 만큼은 손수 가꾸는 텃밭살림을 해 볼 수 있어요.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꾸준히 밥살림을 바꾸고 마을살림을 고칠 수 있어요.


  도시에서도 조그맣게 텃밭을 가꾼다면 우리 똥오줌도 스스로 거름으로 바꾸어 땅을 살리는 일을 작게나마 할 수 있어요. 바로 호미 한 자루를 쥐면 말이지요. 2016.10.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70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다

―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황풍년 글

 행성B잎새 펴냄, 2016.8.24. 15000원



  한국말사전에서 ‘촌(村)’을 찾아보면 “= 시골. 마을”로 풀이합니다. ‘시골’을 찾아보면 “1.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른다 2. 도시로 떠나온 사람이 고향을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다음으로 ‘도시(都市)’를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풀이합니다. 이러한 뜻풀이를 깊게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드물리라 봅니다. 어쩌면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는 분조차 드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시골·도시’를 바라보고 살피는 눈길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기만 할까요? 시골이란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기만 할까요? 그리고 도시는 참으로 “정치·경제·문화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만 할까요?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촌이란 우리 모두의 태생지이자 지금도 우리의 목숨줄을 부지해 주는 생명의 곳간인 것이다. (29쪽)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행성B잎새,2016)을 읽으면서 시골하고 도시 얼거리를 새삼스레 되새겨 봅니다. 황풍년 님은 〈전라도닷컴〉 대표를 맡으면서 전라도 이야기를 온나라에 고루 퍼뜨리는 일을 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전라도닷컴〉은 전라남·북도 이야기를 다루는데, 전라남·북도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이야기를 다루어요. 남원이나 전주나 광주나 순천이나 여수나 광양이나 목포나 군산 같은 도시 이야기는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룬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은 세 가지 이야기를 다루어요. 첫째,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둘째, 물(냇물하고 바닷물)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셋째, 숲과 멧골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지요.


  이처럼 오로지 시골 이야기만을 다루는 잡지가 바로 〈전라도닷컴〉이고, 시골에서 흙이랑 물이랑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정갈하게 갈무리해서 들려주려는 잡지가 〈전라도닷컴〉이에요. 황풍년 님이 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은 ‘전라도’라는 삶터를 놓고 쓴 이야기입니다만, 넓게 보면 ‘이 나라 시골’을 다루는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남동떡 엄니의 손에 들린 오이는 잘쭉한 듯 둥그렇고 노리끼리한 빛이 영락없는 ‘물외’다. 비바람 무시로 들이치는 한데서 햇빛 달빛 쪼여가며 몸피를 불린 오이들도 시골 엄니들을 닮았나 보다. 엄니들은 오이를 한사코 ‘외’라 하고, 노란 참외와 구분해서 ‘물외’라 한다. (130쪽)



  전라도에서 살기에 전라도 이야기를 다루고 씁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경상도에서 산다면 경상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고, 강원도에서 산다면 강원도 이야기를 다루고 써야 마땅할 테지요. 그리고 전라도에서는 전라말을 쓰고, 경상도에서는 경상말을 쓰며, 강원도에서는 강원말을 쓰겠지요.


  황풍년 님이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서도 찬찬히 밝히는데, 시골사람이 쓰는 시골말은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집에서 시골마을을 이루고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시골사랑이 고스란히 담아낸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책으로 배운 말이 아닌 시골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말인 시골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시골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입과 몸과 손과 마음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은 이 시골말은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다 다른 대목은 소릿값하고 결하고 생김새가 달라요. 비슷한 대목은 어느 고장 어느 시골에서든 시골사람 스스로 모든 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오메! 어찌까. 별라 맛도 없는디.” “하이고, 이런 짜잔흔 음식을 뭐던다고 자랑해.” 우리네 엄니들의 첫 반응은 대개 이러하다. “늘 드시는 대로 차려서 수저 하나만 더 얹으시면 된다”라며 졸라대지만 솔찬히 질긴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해도라문 허겄제만, 넘덜한테 자랑할 만한 음식은 아닌디.” (194쪽)



  시골사람이 하는 시골일은 학교나 책으로 배우지 않아요. 늘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혀요. 손으로 배우고 눈코입으로 익히지요.


  한국 문화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한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임금님이 계신 궁궐 이야기도 우리 겨레 옷이나 밥이나 집이 되겠지요. 그러나 임금님을 둘러싼 권력자는 0.1퍼센트도 아닌 0.001퍼센트도 될까 말까 할 만큼 아주 작습니다. 99퍼센트뿐 아니라 99.999퍼센트가 넘는 ‘한겨레 옷밥집 문화’란 바로 시골사람 문화예요.


  시골사람이 손수 흙을 지으면서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며 집을 지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말을 지으면서 아이를 가르치고 마을살이를 이루어요. 시골사람이 손수 숲을 가꾸고 냇물하고 바다를 돌보면서 언제나 정갈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온누리를 이루어요.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찍거나 연극을 하거나 배우·연예인이 연기를 해야만 문화일까요? 학교를 세워야만 교육일까요? 권력과 행정과 벼슬아치가 있어야만 정치일까요? 수출 수입을 하거나 공장을 세워야만 경제일까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가슴 한쪽이 시큰거린다. 평생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 어찌 그리도 따숩고 명징한 논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시방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질겁게 해 주문 나도 팽야 질겁게 되는 벱이여.” “한 식구는 굶어 죽어도 열 식구는 안 굶어 죽는다고 허잖여. 내 입보다 놈의 입부터 챙겨 줌서 그라고 찌대고 사는 것이 사람이여.” “사람도 따땃헌 디서만 산 사람은 쪼깨만 추워도 혹석을 떨어. 고상을 해 본 사람은 어려워도 의젓허제. 원망한다고 되는 일이 있가디. 이담에는 잘 될 것이여, 허고 희망을 가져야제.” (334∼335쪽)



  황풍년 님은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삶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황풍년 님하고 함께 〈전라도닷컴〉을 빚는 기자들도 시골 할매하고 할배한테서 살림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문학자나 교육학자나 이런저런 전문가한테서 배우는 삶이 아닙니다. 시인이나 소설가한테서 배우는 문학이 아닙니다.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숲을 만지는 투박하고 수수한 시골사람한테서, 시골지기한테서, 시골님한테서 넌지시 배워 싸목싸목 웃음짓는 살림이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언제인가부터 ‘사람은 나면 도시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마따나 오늘날 시골은 가뜩이나 사람이 줄어들어서 적은데, 아직도 시골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도시로만 나아가서 대학생이 되거나 회사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시골에서 시골지기나 시골사람이나 시골님이 되도록 이끄는 학교 얼거리나 행정 얼거리나 사회 얼거리나 문화 얼거리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깨지고 찌그러진 새카만 손톱 열 개는 흙투성이로 살아낸 수십 성상과 나락 한 톨에 뿌려진 일곱 근의 땀방울을 여실히 웅변한다. 그 손은 살리는 손이요 생명의 손이다. 초록을 살리고 쌀을 살리고 밥을 살리고 세끼 밥을 먹는 우리들의 목숨을 살려온 손이다. (271쪽)



  잡지 〈전라도닷컴〉이나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이라고 하는 책에는 한 가지 뜻을 이웃님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흐른다고 느낍니다. 바로 ‘시골에서 길어올린 고운 살림을 노래하려는 뜻’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값지거나 값나가는 옷이 아닌, 한 땀 두 땀 정갈한 손길로 지은 고운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대단하거나 멋진 밥이 아닌, 구수하면서 웅숭깊은 밥 한 그릇을 함께 먹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어요. 커다랗거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닌, 소담스러운 살림을 싱그러운 숲집에서 조촐하게 가꾸는 사랑을 나누려 하지 싶습니다.


  나락 냄새가 나고, 갯내음이 퍼지며, 숲바람이 일렁이는 자그마한 책을 읽으면서 시골이라고 하는 터전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시골이란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들과 숲과 바다를 가꾸어 살림살이를 손수 짓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개발이 덜 된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물려주면서 고운 삶을 조용히 가꾸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이란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이 시골이란 이웃을 아끼고 뭇짐승하고 푸나무를 돌볼 줄 아는 사랑이 흐르는 터전이라고 해야지 싶습니다. 2016.10.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리 표본 도감 한국 생물 목록 19
정상우 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107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놀이벗이던 잠자리

― 잠자리 표본 도감

 정상우·배연재·안승락·백운기 엮음

 자연과생태 펴냄, 2016.9.19. 22000원



  어릴 적에는 잠자리를 잡고 놀면서도 잠자리마다 어떤 이름인지 또렷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밀잠자리, 왕잠자리, 나비잠자리 같은 이름은 알았어요. 이밖에 다른 잠자리는 잘 몰랐어요. 둘레 어른들도 잠자리 이름을 또렷하게 가리지 못했어요.


  학교에서는 교사한테 못 묻지요. 방학숙제로 잠자리를 잡아서 표본을 만든 뒤에 내면 모를까, 여느 때에는 ‘잠자리 잡으며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는 꾸지람을 들을 테니 교사한테 물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잡아도 모자라 입에 물기도 하고, 또 두어 마리를 손가락 마디마다 겹쳐서 잡기도 합니다. 동무하고 잠자리 바꾸기도 하지요. 나한테 없어도 너한테 있으면 서로 바꾸어요. 워낙 많은 잠자리를 날마다 잡으면서 노니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암수 잠자리를 우리끼리 쉽게 가눌 수 있기도 했습니다.



잠자리는 유충시기에는 수서생태계에서, 성충시기에는 육상생태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환경지표 및 진화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곤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6000여 종이 알려졌으며(2015년), 우리나라에는 122종이 보고되었지만(환경부) 일부 종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6쪽)



  《잠자리 표본 도감》(자연과생태,2016)이 새로 나왔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잡던 잠자리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펼칩니다. 그렇다고 어릴 적 잡던 잠자리가 어떤 잠자리인지 이제 와서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도감을 천천히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요. 그래 그래, 이렇게 많은 잠자리가 있네. 그렇구나, 몸통이며 꼬리이며 날개이며 저마다 이렇게 다르게 생기면서 조금씩 다른 이름이 있네.


  《잠자리 표본 도감》을 펴낸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는 2012년에 《한국의 잠자리》(정광수 씀)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요즈막에 새로 나온 《잠자리 표본 도감》은 ‘잠자리 표본’을 바탕으로 새롭게 엮은 잠자리 도감이라 하는데, 이 도감에 실린 잠자리 표본은 한 사람이 예순 해 남짓 갈무리했다고 해요.



1923년 평안북도 평양에서 태어난 고 이승모 선생은 2008년 4월 15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60여 년 동안 잠자리류, 나비류, 갑각류 등 한국 곤충분류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남한과 북한의 곤충을 연구한 학자로서 5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으며 (7쪽)



  예순 해 남짓 잠자리를 비롯해서 나비나 갑각류를 잡아서 표본을 만들었다는 이승모 님이라고 합니다. 이녁은 남북녘 곤충을 함께 살핀 학자라고도 합니다. 남녘과 북녘이 서로 갈린 채 퍽 긴 나날이 흐르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표본 자료는 더욱 뜻깊다고 느낍니다. 개발하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들하고 숲하고 갯벌을 잔뜩 파헤치면서 자취를 감춘 잠자리가 있을 테니, 이승모 님이 갈무리한 잠자리 표본은 더더욱 뜻이 있을 테고요.


 아직 사람들은 남북녘을 홀가분하게 오가지 못하지만, 잠자리는 휴전선도 철책도 국경도 없이 남북녘을 가만히 날아다니겠지요. 도시도 자동차도 자꾸 늘기만 하면서 잠자리가 살 터전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 잠자리는 하늘을 힘차게 가르면서 날아요.



잠자리의 서식처는 물 흐름이 있는 유수 지역부터 정체되어 있는 논, 습지, 저수지까지 담수생태계에 풍부하게 분포한다. 심지어 해안가의 염분이 있는 지역에서도 상당수가 분포하며, 제주도에서는 기생화산이라고 불리는 오름에서도 다양한 잠자리가 서식한다 … 열대 지역보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역에서 잠자리의 종수와 개체수가 급감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계속되는 개발과 편의시설 이용으로 서식처가 파괴되고 소실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19쪽)



  아침 낮 저녁으로 여러 가지 잠자리를 만납니다. 마당에서도, 빨랫대에서도, 평상에서도, 뒤꼍 나무에서도, 풀밭에서도 잠자리를 만납니다. 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다가 멈출 적에 잠자리가 자전거 손잡이에 앉기도 합니다.


  사람하고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면서 끊임없이 날벌레를 잡아먹어 준 잠자리를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하고 오랜 나날 동무가 되어 준 잠자리를 떠올려 봅니다. 요즈음 도시 아이들은 잠자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요. 잠자리를 맨눈이나 맨손이 아닌 동영상이나 책으로 더 쉽게 만날 듯합니다. 시골에서도 농약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예전처럼 잠자리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날렵하고 가벼우면서 단단한 몸통인 잠자리가 날갯짓을 할 적에는 파라락 소리가 제법 큽니다. 풀밭에 서서 잠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잠자리는 날개를 천천히 낮추면서 머리를 나한테 돌려요. 눈이 마주칩니다. 서로 바라봅니다. 커다란 눈알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서 넌지시 말을 겁니다. 이 가을에 우리 집에 찾아와 주어서 반갑구나. 우리 집에 너희 먹이가 넉넉하니? 이곳에서 느긋하게 날개를 쉬었다가 신나게 하늘을 가르며 놀렴. 2016.9.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 여행은 끝났다 - 12,000km 자전거로 그린 미국 여행기
박현용 글.사진 / 스토리닷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69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로 배움마실

― 서른 여행은 끝났다

 박현용 글·사진

 스토리닷 펴냄, 2016.6.24. 13800원



  2011년 10월 4일부터 2012년 3월 6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할리우드까지 1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고 하는 박현용 님은 ‘자전거 여행기’인 《서른 여행은 끝났다》(스토리닷,2016)를 씁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는 꿈을 품고서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를 편지로 얼마든지 부칠 수 있지만,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자전거를 달려서 손수 건넬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이처럼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로 달려서 건네면 더욱 멋지겠다는 생각했다고 해요.



자전거라는 것이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쑤시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흔히 다리만 아프겠지 생각했는데, 엉덩이, 어깨, 목, 발바닥, 팔꿈치, 손바닥, 손가락 등 신경이 연결된 모든 곳이 아프다. (29쪽)


다음날 비가 그치고 다시 멤피스로 향하는 길에 마주 오는 차량에서 한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욕을 했다. 이렇게 욕을 먹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슨 이유로 나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원수라도 되는 듯이 욕을 던지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고, 화도 났지만, 이방인의 뫼르소도 이유가 있으니 이들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다 생각을 했다. (68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쓴 박현용 님은 자전거로 먼 길을 달린 적에 이때까지는 없었구나 싶습니다. 서른 즈음에 이르러 비로소 자전거로 먼 길을 달려 보았지 싶고, 이때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오래 타면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대목을 깨달았지 싶어요.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이 대목을 앞으로도 모르고 살았겠지요. 서른을 앞두고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해 보았기에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나 ‘여러 달에 걸쳐 자전거를 달리는 일’이 몸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새삼스레 배웠지 싶어요.


  삶은 온통 배움거리라고 느낍니다. 자전거 달리기도 배움거리일 테고, 자전거가 아닌 달리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어도 배움거리가 되리라 느껴요. 자전거도 달리기도 아닌 걷기로 뉴욕부터 할리우드까지 가려 했다면 이때에도 새로운 배움거리가 될 테고요.


  비행기로 날아가면 비행기로 날아가는 대로 배우고, 자동차로 달리면 자동차로 달리는 대로 배워요.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대로 배우고, 두 다리로 달리거나 걸으면 두 다리로 가는 대로 배워요.



겨울도 오고 있구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울바람이 매달려 있다. 목깃은 순간 싸늘해지고, 두 손으로 지퍼를 최대한 위로 올린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리도 쌀쌀했을까……, 그랬다면 미안하게 됐네.’ (77쪽)


상당히 피곤한 스타일의 경찰이다 생각하며 불만의 한숨을 내쉬며 (천막에서)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경, 경찰은 뜨끈뜨끈한 코코아와 검은색 빵모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84∼85쪽)



  열 살로 접어들면서 삶을 새삼스레 바라보며 배웁니다. 스무 살로 넘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마주하며 배웁니다. 서른 살로 들어서면서 삶을 새삼스레 헤아리며 배우지요. 글쓴이는 앞으로 마흔 살이나 쉰 살이나 예순 살로 다가서며 다시금 새롭게 여러 가지를 돌아보며 배우리라 봅니다.


  겨울 문턱에 이르기에 몹시 추운 날씨에 천막을 치며 자는데 새벽 세 시에 경찰이 박현용 님을 깨웠다고 해요. 새벽 세 시라면 추위가 고빗사위에 이를 무렵일 텐데, 하루 내내 자전거를 달리느라 고단했을 테니 일어나기 귀찮겠지요. 구시렁거리면서 일어나니 경찰은 뜻밖에도 ‘추위에 얼지 말라’면서 뜨끈뜨끈한 코코아를 건네고, 자전거를 달리며 얼굴이 얼지 않도록 빵모자까지 내밀었다지요.



휴가를 나온 군인답게 작별인사는 거수경례를 한 군인들은 빅밴드 국립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나에게 그곳이 차가 없이는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경고도 해 주었다. (152쪽)



  비행기로 쌩 하니 날아간다면 뉴욕하고 할리우드 사이에 사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빠르게 달릴 적에도 ‘말을 탄 경찰이 건네는 코코아’를 마실 일이란 거의 없지 싶습니다. “차가 없이는 가혹한” 길을 한겨울에 자전거로 달리기에 여러모로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픈 일이 잇따른다고 할 텐데, 이처럼 고단하거나 고되거나 고달프기에 뜻밖에 만나는 새로운 이웃이 있고, 기쁘게 만나는 새로운 동무가 있어요. 서로 한마음이 되어 걱정해 주고, 서로 한뜻이 되어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2012년 3월로 접어든 무렵이었다. 목표지점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나는 스스로의 위대함에 잔뜩 빠져 있었고, 그것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원동력이었다. 언제부터 그것이 원동력으로 나를 할리우드까지 오게 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뉴욕을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188쪽)



  자전거 여행을 마친 박현용 님은 ‘시나리오를 손수 건네어 멋지게 영화판에 들어서기’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아직 이 꿈을 못 이룬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꿈을 꼭 서른에 이루거나 스물에 이루어야 하지 않아요. 마흔이나 쉰에 이룰 수 있고, 예순이나 일흔에 이룰 수 있어요. 어쩌면 여든이나 아흔이 되어도 못 이룰 수 있습니다.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리고 꿈은 마지막까지 걸음을 내딛지 못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던 나날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어요.


  사람들이 굳이 자전거를 달려서 ‘자동차보다 천천히’ 어떤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까닭은 ‘더 빨리 가야 할 까닭이 없다’는 대목을 온몸으로 새롭게 배우려는 뜻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욱 차분히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자전거조차 아닌 두 다리로 걸어’서 더욱 천천히 마실길을 가기도 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지구를 도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굳이 두 다리로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날에는 ‘걷는마실’ 이른바 ‘트레킹’이나 ‘도보여행’이 새삼스레 퍼집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으레 걷는마실이었어요. 천천히 거닐며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쬡니다. 천천히 거닐며 어여쁜 마을에서 며칠쯤 느긋하게 머물기도 합니다. 천천히 거닐며 나무 그늘에서 다리를 쉬지요. 천천히 거닐다가 골짝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해요.



이제는 실망스럽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연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뭔지 아직 모를 뿐이다. 그저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뿐이다. (204쪽)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덮으면서 내가 예전에 해 보았던 자전거마실을 떠올립니다. 나한테 곁님이나 아이들이 아직 없던 2006년에 한 해 내내 사흘마다 15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어요. 충북 충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린 뒤, 사흘쯤 쉬고 다시 서울에서 충북 충주로 자전거로 돌아왔고, 이러기를 한 해 내내 되풀이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자전거로 보냈어요.


  처음에는 팔다리에 온몸이 쑤시다는 생각이었지만 달이 가고 철이 흐르면서 ‘내 몸’ 말고 ‘길’을 볼 수 있었어요.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바람’하고 ‘나무’를 볼 수 있었어요. 더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가 아니라 더 즐겁게 달리는 자전거가 되도록 조금씩 거듭났어요. 그때까지 잊거나 놓치던 숨결을 가만히 헤아렸어요.


  이제는 시골집에서 곁님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숨결을 마음에 담아요. 삶은 늘 배움거리이고, 살림은 언제나 배움잔치라고 느껴요. 배울 수 있는 눈과 마음과 귀와 손이 되기에 늘 젊은 삶이 되는구나 싶어요. 어떤 일을 겪든 어떤 사람을 마주하든 언제나 배우자는 몸짓이 된다면 참으로 젊은 넋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를 마친 박현용 님은 자전거마실은 끝냈을 테고, 이제 새로운 배움마실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천천히 나아가면 즐겁게 모든 꿈을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2016.9.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