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엄마야 저학년이 좋아하는 책 1
이금이 지음, 한지희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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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3


 

지구별은 어머니이면서 아버지

― 땅은 엄마야

 이금이 글

 한지희 그림

 푸른책들 펴냄, 2000.3.1.



  나무가 있기에 지구별이 푸릅니다. 나무 곁에 풀이 자라기에 지구별이 푸릅니다. 나무 곁에서 자라는 풀에서 꽃이 피기에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 곁에서 자라는 풀이 숲을 이루어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아가기에, 사람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두면서 날마다 즐겁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지구별은 푸르지 않아요. 나무 곁에 풀이 자라지 않으면 지구별에 푸른 빛이 피어나지 못해요.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숲에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지 않으면, 사람들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 달님은, 사탕을 문 것처럼 탐스런 강이의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강이의 입가에 방시레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달님의 뽀뽀가 강이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었나 봅니다 ..  (12쪽)



  지구별은 어머니입니다. 뭇 목숨이 살아갈 수 있도록 따스하게 품으니 어머니입니다. 나무는 어머니입니다. 온갖 목숨이 푸른 바람을 마실 수 있도록 포근하게 감싸니 어머니입니다. 풀은 어머니입니다. 모든 목숨이 즐겁게 얼크러지면서 밥을 얻도록 따숩게 건네니 어머니입니다.


  지구별은 아버지입니다. 뭇 목숨이 사랑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품으니 아버지입니다. 나무는 아버지입니다. 온갖 목숨이 웃으며 사랑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감싸니 아버지입니다. 풀은 아버지입니다. 모든 목숨이 기쁘게 노래하면서 사랑하도록 신나게 어깨동무하니 아버지입니다.



.. “땅은 엄마야!” 강이가 아빠 손을 잡으며 불쑥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아빠는 강이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봐, 아빠.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 다 땅에서 나오잖아. 나도 엄마 배에서 나왔잖아. 그러니까 땅은 엄마지.” ..  (39쪽)



  이금이 님이 글을 쓰고 한지희 님이 그림을 그린 《땅은 엄마야》(푸른책들,2000)를 읽습니다. 외딴 멧골자락에 조용히 깃든 세 식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다리를 접니다.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멧골자락에서 나무내음을 맡고 풀바람을 마십니다.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노래를 듣습니다. 나무에 앉은 새가 노래합니다. 풀밭에서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논과 둠벙과 냇물에서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살아가는 아이는 마음속에 노래를 품습니다. 노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따사로운 빛을 마음속으로 품습니다.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사랑합니다.


  아이는 아기붕어가 달한테 묻는 말, “달님, 사람들은 왜 우리한테 모든 걸 빼앗아 가려는 걸까요(50쪽)?”를 들었을까요. 아이는 아기붕어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지구별(땅)이 어머니와 같은 줄 깨달을까요. 아이와 지내는 어버이는 아기붕어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또는, 지구별 목소리나 숲 목소리나 풀밭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 “붕어가 어디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할까, 한번 생각해 보자. 좁고 물도 뿌연 유리병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할까?” 강이는 유리병을 바라보았습니다. 뿌연 물 속에서 아기붕어가 괴로운 듯 아가미를 뻐끔거렸습니다. “아, 아니오.” ..  (72쪽)



  사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이룹니다. 사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이룹니다. 사랑은 어버이와 아이가 나란히 이룹니다. 사랑은 사람과 숲이 같이 이룹니다. 서로 아낄 때에 사랑입니다. 함께 웃을 적에 사랑입니다. 나란히 노래할 적에 사랑입니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삶을 가꿀 적에 사랑입니다.


  동화책 《땅은 엄마야》는 ‘땅은 엄마’라 하는, 아주 쉬우면서 마땅하고 따사로운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줍니다. 다만, 여기에서만 그치니 아쉽습니다. ‘땅은 엄마’라는 외침말 한 마디에서 그치지 말고, 땅이 얼마나 너르며 따사로운 어머니 품인지, 또 이 땅이 사람과 뭇 숨결한테 얼마나 반가우며 고마운 아버지 품인지, 조곤조곤 보여주면서 밝히면 한결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5.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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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 모모네집 이야기 6
마쓰타니 미요코 지음, 이세 히데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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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2


 

네 노래를 내 마음에 담아

― 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

 마쓰타니 미요코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양철북 펴냄, 2005.3.25.



  저녁에 개구리가 얼마나 대단하게 노래하는지 모릅니다. 오월이 무르익어 바야흐로 마을마다 논을 갈아엎고 물을 대니, 개구리들이 왁왁거리며 노래잔치입니다. 일찌감치 모를 심은 논이 있고, 모내기를 기다리는 논이 있습니다. 모내기를 앞두니, 무논에서 개구리는 힘차게 노래하면서 저녁을 맞이하고 아침을 누립니다.


  저녁이 되어도 날이 포근합니다. 방문과 마루문을 활짝 열고서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해가 기울면서 경운기 소리라든지 풀깎이 소리는 더 들리지 않습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없습니다. 오직 개구리 노랫소리입니다.


  제비는 처마 밑에 깃들어 조용합니다. 낮에 깨어 돌아다니는 멧새와 들새도 모두 잠듭니다. 온통 깜깜해서 별이 돋으면 밤에 깨어 돌아다니는 멧새가 고즈넉하게 노래할 테지요. 밤새 두 가지 노랫소리가 우리 집으로 스며듭니다.



.. 아카네는 양말 탓타를 품에 꼭 안았어요.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헤어진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요. 옛날 옛날……이라고는 해도 겨우 몇 년 전이지만, 아무튼 아카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아카네한테 양말을 짜 주었어요 … 아카네는 젖먹이 때부터 탓타와 타아타랑 늘 함께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겨우겨우 다시 만났는데, 말없이 축 늘어져 있기만 해요 ..  (9, 13쪽)



  어버이가 듣는 노래를 아이가 듣습니다. 아이가 듣는 노래를 어버이가 듣습니다. 어버이가 부르는 노래를 아이가 듣습니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어버이가 듣습니다. 어버이는 어릴 적에 이녁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물려받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줍니다. 보금자리를 일구며 부르던 노래가 흐릅니다. 흙을 갈고 풀을 뜯으며 부르던 노래가 흐릅니다. 아이를 안고 어르던 노래가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부르는 노래가 흐릅니다.


  서로서로 노래를 마음에 담습니다. 서로서로 노래를 가슴으로 품습니다. 서로서로 사랑을 노래에 싣습니다. 서로서로 꿈을 노래에 얹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고받는 말마디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읊는 말마디는 늘 노래입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소리는 맛깔스러운 노래입니다. 샘터에서 물을 긷고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소리는 싱그러운 노래입니다. 자전거로 들판을 달리는 소리는 신나는 노래입니다.



.. 미국이 남쪽 섬에서 엄청나게 큰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어요. 엄마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어요. “전에 없이 엄청난 실험이었나 봐. 지구가 또다시 화상을 입었겠구나. 사람들도 그렇고.” … ‘핵폭탄 반대, 핵무기 반대, 핵실험 반대.’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핵폭탄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요. 심지어 일본사람 중에도 핵폭탄이 보통 폭탄과 달리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  (28, 29쪽)



  마쓰타니 미요코 님이 쓴 글에 이세 히데코 님이 그림을 담은 어린이책 《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양철북,2005)를 읽습니다.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모모네 집 이야기’ 가운데 여섯째 권입니다. 어린 모모가 자라 씩씩한 언니가 되고, 어린 아카네는 귀여운 동생입니다. 모모와 아카네가 어머니하고 지내는 삶을 그리는 책입니다. 모모와 아카네가 아버지하고 헤어진 채 살던 나날을 그리는 책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살면서 어떤 마음일까요. 아이는 아버지가 없이 지내면서 어떤 느낌일까요.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사랑노래를 물려받으면서 어떤 넋일까요.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꿈노래를 물려받지 못하는데, 어떤 숨결로 새 하루를 맞이할까요.



.. “있어. 있는데 지금 우리 아빤 아파. 그래서 먼 곳에 있어.” “흐음. 우리 아빠는 되게 튼튼한데. 우리 아빠 이름은 데츠로야. 너네 아빠 이름은 뭐야?” “으음, 으음…….” 그 순간, 아카네는 자기가 아빠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빠는 그냥 아빠일 뿐, 이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어요 … “똥한테도 아빠랑 엄마가 있어. 그런데 아카네한테는 아빠가 없어.” 아카네의 뺨에 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요 … “그런데 아카네는 하나도 울지 않아요.” “아카네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죄다 말라 버렸어. 하지만 모모는 울고 싶어도 줄곧 꾹꾹 참아 왔거든.” ..  (51, 84, 154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카네는 양말 한 켤레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양말 한 켤레는 아카네하고만 속닥속닥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카네는 기쁜 일과 슬픈 일 모두 양말 한 켤레한테 털어놓고, 양말 한 켤레는 아카네가 힘들거나 망설일 적에 슬기로운 길을 알려줍니다.


  아마 아카네 언니 모모도 모모만 한 나이였을 적에 얘기동무가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아카네와 모모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어린이한테는 속 깊은 얘기동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얘기동무는 양말일 수 있고 병뚜껑일 수 있습니다. 얘기동무는 종잇조각일 수 있고 나뭇잎일 수 있습니다. 얘기동무는 구름일 수 있고 무지개일 수 있습니다. 얘기동무는 별님이거나 해님일 수 있습니다.


  작은 들꽃이 얘기동무가 됩니다. 작은 돌멩이가 얘기동무로 지냅니다. 작은 풀벌레가 얘기동무로 찾아옵니다.



.. “마코토, 만날 우리 집에 와서 ‘흐음, 이 집에서는 여자 냄새가 나.’ 하고 말하는 것도 실례야.” “사실인걸 어떡해.” “그치만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잖아. 사실대로 말하면 슬프단 말야.” “그런가…….” 마코토는 퍼뜩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어요. 그래, 그렇구나 … 여름밀감나무가 가냘픈 소리로 하소연했어요. “이 집 사람들은 나를 여기에 심어 놓은 채 어디론가 가 버렸어. 나는 해마다 열매를 가득가득 맺지만 먹어 주는 사람이 아무더 없어. 너무 무거워. 너무 힘들어.” ..  (121, 140쪽)



  꿈을 꾸며 자라는 아이들은 언제나 노래합니다. 꿈을 꾸며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까르르 웃습니다. 꿈을 꾸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상냥합니다.


  어른들도 모두 아이였어요. 어른들도 누구나 꿈을 꾸었어요. 어른들도 다 같이 꿈꾸면서 즐겁게 노래했기에 무럭무럭 자랐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부터 노래를 잊거나 잃는다면 어찌 될까요. 어른이 된 뒤에는 노래를 안 부르거나 등돌리면 어찌 될까요.


  어른은 노래가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어른은 꿈꾸지 않아도 살 만할까요. 어른은 사랑을 속삭이지 않거나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아도 삶이 재미있을까요.


  아이를 낳은 어른은 노래를 부릅니다. 어릴 적부터 즐겁게 부른 노래를 찬찬히 되새기면서 새롭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르다가 어버이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금 새롭게 노래를 빚습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부르는 새 노래를 들으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가꾸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듯, 노래가 노래를 낳습니다. 꿈이 꿈을 낳듯,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습니다.



.. 엄마가 말했어요. “네, 좋아요, 아버님. 어머, 새빨간 꽃이 피어 있네, 산골 마을에서는 온갖 나무의 꽃이 죄다 한꺼번에 피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말했어요. “가을이면 단풍이 새빨갛게 물들지. 조용하고 아주 아늑하단다. 좋은 묘지야.” … 아카네가 말했어요. “야옹아, 나중에 저 무덤에 가 봐. 튀김이 있으니까.” 모모도 말했어요. “우리 아빠 무덤에 가끔 놀러 가 줘.” 그러자 고양이가 조그만 입을 벌리고 야옹 하고 울었어요 ..  (163, 166쪽)



  우리 집 일곱 살 아이가 혼자 이를 닦습니다. 일곱 살 아이는 스스로 옷가지를 잘 갤 줄 알고, 동생이 옷을 입을 적에 도와주며 신을 꿸 적에 거들곤 합니다. 일곱 살 아이는 자전거를 달릴 줄 압니다. 일곱 살 아이는 글을 혼자서 읽습니다. 일곱 살 아이는 스스로 종이를 잘라 편지를 써서 띄웁니다. 일곱 살 아이는 노랫말과 노랫가락을 스스로 지어서 부릅니다.


  일곱 살 아이는 무엇을 못 할까요. 아마, 무엇이든 다 하겠지요. 소꿉놀이를 하면서 밥을 짓고, 여느 때에 씩씩하게 설거지를 척척 해냅니다. 넘어졌어도 곧 일어나서 먼지를 탁탁 텁니다. 혼자 머리를 빗고 고무줄로 머리카락을 묶습니다. 밤에 혼자 쉬하러 다녀올 수 있습니다.


  예쁘게 말하고 예쁘게 노래합니다. 예쁘게 웃고 예쁘게 걷습니다. 예쁘게 달리고 예쁘게 잠듭니다. 예쁘게 일어나고 예쁘게 사랑합니다. 4347.5.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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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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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님 문학을

아이도 어른도

즐겁고 아름답게 읽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밑힘으로

삼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


어린이책 읽는 삶 51



“나 대신 아파 달라.”
― 몽실 언니
 권정생 글
 이철수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4.4.25.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입니다. 비는 사월에도 오월에도 내립니다. 유월에도 칠월에도 내리겠지요. 지난해를 돌이키면, 지난해 여름에 고흥에는 비가 거의 안 내렸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줄기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고흥은 예부터 물이 모자란 곳이었기에 그동안 둠벙이나 못을 무척 많이 팠어요.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지난여름에 물이 모자란 곳은 드물었습니다. 다만, 못이나 둠벙을 파지 않고 새로 일구는 비탈논이나 비탈밭이었으면 모두 메말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여름에 비가 달포 남짓 한 방울조차 안 내리니, 마을마다 큰일이 납니다. 그동안 이 나라 시골은 관행논으로 바뀌어 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사짓기를 합니다.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논도랑도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이제 시골 논자락에서 미꾸라지를 잡지 못하고, 시골에서 반딧불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반딧불이가 있자면 다슬기가 살아야 하는데, 다슬기가 살 수 없도록 시멘트도랑으로 바꾸었어요. 게다가 시멘트도랑은 깊어 개구리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에 잠겨 죽습니다. 때 없이 농약을 치니 논에 논거미가 없어요. 논거미가 없을 뿐 아니라, 밭자락에 벌이나 나비가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비닐집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시켜요. 벌이나 나비를 부르지 않고, 개미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벌이나 나비가 없고 풀벌레도 자취를 감춥니다.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모든 벌레가 살 수 없는 터전으로 만들었거든요. 이리하여 새들은 애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애벌레를 잡아먹으며 생태계 균형을 맞추던 새이지만, 이제는 곡식을 쪼아먹고, 밭에 심은 씨앗을 캐먹습니다.


.. 만주나 일본 같은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줄지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조국의 품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쌀쌀했다. 그래서 말만으로 해방된 조국에 빈몸으로 찾아온 그들은 살아갈 길이 없었다 … 밀양댁의 울음소리는 골짜기에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개 위에서 몽실은 밀양댁의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눈자위가 씀벅거려지고 코가 찡하게 더워져 왔다. 몽실은 입슬을 꼭 깨물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 잘못이 아니야…….” … 가물가물한 남폿불을 걸어 놓고 모두가 열심이었다.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이 자라게 한다 ..  (7, 44, 68쪽)


  지난날에는 시골이든 도시이든 제비집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에다가 둥지를 틉니다. 처마 밑을 좋아해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요. 그러면, 둥지를 드나들며 똥을 누지요. 새끼 제비가 똥을 누도록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도록 해서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 똥구멍을 살몃살몃 쫍니다. 그러면 새끼 제비는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면서 똥을 영차 하고 누고,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똥구멍으로 내보낸 똥을 부리로 잡아채서 바닥으로 떨구어요.

  다른 새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새도 이처럼 어미 새가 새끼 새 꽁지를 살몃살몃 쪼아 똥이 나오도록 하지 싶어요. 고양이도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똥구멍을 핥으면서 똥이 나오도록 해 줍니다.

  그러니까, 처마 밑 제비집은 날마다 똥벼락입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장대로 제비집을 허뭅니다. 이때에 암제비가 알을 품었다면 그만 알이 다 깨져요. 어린 제비가 아직 자랄 때라면, 어린 제비는 아직 날갯짓을 못하는 채 떨어져 죽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인천에서도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은 으레 학교 건물 처마 밑 제비집을 찾아다니며 떨구었어요. 긴 장대를 마련해서 제비집이란 제비집은 모두 치웠습니다.

  둥지와 새끼를 잃은 제비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씩씩하게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새 둥지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 둥지를 지어서 다시 알을 까면 어른들은 또 제비집을 헐어요. 몇 차례 되풀이합니다. 이리하여, 중국 강남에서 한국으로 찾아오던 제비들은 그만 새끼를 못 낳은 채 슬픈 날갯짓으로 태평양 건너 중국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 이 산골 마을 이름은 댓골이라 했다. 뒷산 골짜기로 보리둑나무가 무성하여 달밤엔 은빛 잎사귀가 아름다왔다 … 아버지 정씨는 주인집에서 세 끼 밥을 먹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몽실이 혼자 밥을 지어 먹었다. 산나물을 뜯어다가 죽도 끓였다. 누더기 같은 아버지의 옷을 깨끗이 빨고 집안 청소도 했다 … 북촌댁은 다소곳이 말이 없는 여자였다. 몸이 약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따금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나타나곤 했다. 가난하고 적막한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매만졌다. 몽실의 해진 저고리를 예쁘게 기워 주고 아버지의 고무신도 자주 깨끗이 씻어 주었다 ..  (9, 18∼19, 52, 55쪽)


  비가 오는 아침에 두 아이를 씻깁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나는 빨래기계를 안 쓰고 내 두 손을 씁니다. 빨래기계 없이 스무 해 넘게 빨래를 하며 살기도 했지만, 두 손으로 아이들 옷가지를 복복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 몸과 넋을 헤아립니다. 이 작은 옷을 입는단 말이지? 이 작은 옷이 이렇게 흙투성이 되도록 뛰놀았단 말이지?

  작은 옷을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아끼고 살림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잘거리고 놉니다. 어느새 네 살이 된 작은아이는 일곱 살 누나가 읊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 저도 부르겠다면서 똑같이 따라합니다.

  두 아이가 노는 소리를 한귀로 들으며 빨래를 하다가, 우리 집 씻는방 바깥문 모기그물을 문득 봅니다. 지푸라기 같아 보이는 무언가 모기그물에 있기에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 지푸라기가 아닙니다. 사마귀입니다. 아직 사월인데 무슨 사마귀인가 하고 입김을 호 붑니다. 저런. 지난가을께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죽은 사마귀인 듯합니다. 넌 어쩌다가 이 모기그물 한쪽에 갇혀서 그만 목숨을 잃었니. 이 모기그물 언저리에 모기가 많이 앉으니 모기를 잡으려다가 그만 발이 끼어서 빠져나가지 못했니.

  시골집을 여러 날 비우고 돌아오면,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굶거나 말라서 죽은 벌레를 곧잘 봅니다. 용케 어느 빈틈으로 들어온 듯한데 나갈 구멍을 못 찾은 셈입니다. 작은 새는 빈집이나 빈 건물에 살그마니 들어가서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잘못 들어갔다가 나올 구멍을 못 찾아서 그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갇혀서 죽는 새도 있습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잡아먹고는 배앓이를 하고 죽는 들고양이가 있습니다.

  시골이라는 데는 사람을 살리는 모든 먹을거리를 일구어 거두는 곳이지만, 농약바람이 분 뒤 시골은 삶터이기보다는 죽음터로 흐르기 일쑤입니다. 지난여름에 달포 남짓 비가 안 오면서 논마다 멸구가 많이 생기니 마을마다 농약을 날마다 엄청나게 뿌렸는데, 이때에 온 마을 제비와 참새와 딱새가 참 많이 죽었습니다. 새들은 농약을 맞아서도 죽고, 농약 묻은 곡식을 쪼아먹다가 죽으며, 농약 맞아 해롱거리는 애벌레나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먹다가 죽습니다.


.. 자주 어머니와 싸우긴 했지만, 역시 몽실의 진짜 아버지는 한없이 가난한 그 아버지뿐이다 … 할머니는 몽실에게 수다스러울이만큼 심부름을 시켰다. “몽실아, 애기 기저귀 빨아 오너라.” 몽실이는 기저귀를 빨았다. “설거지 해라.” “마루를 훔쳐라.” “방을 쓸어라.” 이제 여덟 살인 몽실은 시키는 것을 싫다고도 할 수 없었다 … 맑은 개울물에 기저귀랑 저고리랑 담그어 놓고 방망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빤다. 몽실이와 순덕은 딴 아이들보다 빨래도 잘한다 … 집에 와서 몽실은 가지고 온 쑥떡을 북촌댁 앞에 내밀었다. “이건 떡 아니니? 어디서 난 거야?” “남주네 거여요.” “너 먹잖고 왜 갖고 오니?” “난 먹었어요. 그러니 어머니 잡수셔요.” … 어쩐지 몽실은 밀양댁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기를 가졌어도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북촌댁은 왜 굳이 이런 곳에 시집을 왔을까? 그러고는 그 가난을 이렇게 견디고 있을까? ..  (12, 21, 33, 78, 79쪽)




  지난 2007년 봄에 권정생 님이 죽었습니다. 아프디아픈 몸으로 살다가 그예 죽었습니다. 권정생 님은 안동 조탑마을 조그마한 흙집에서 지낼 적에 이녁을 찾아온 손님이나 이웃한테 늘 “나보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기예요. 나 대신 아파 주면 좋겠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권정생 님더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하고 안부를 여쭈던 이들은 머쓱해 합니다. 뒷통수를 긁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느껴요. 권정생 님은 아파서 죽지 못하던 몸이었고, 권정생 님을 찾아온 이들은 안 아프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없는 몸이니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이나 몸을 얼마나 알까요.

  권정생 님은 허리에 구멍을 뚫어 노란 호스를 끼운 채 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산다.”면서 “이렇게 아픈데 참 죽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프다거나 죽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손님들이 아뭇소리를 못 합니다. 바람이 싸합니다. 그러면 권정생 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돌립니다. “저거 저 풀 아나? 한 번 뜯어 봐.” 하고 묻습니다. 사람들은 권정생 님이 가리키는 풀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뭐라더라, 요즘에는 허브라고 하던가? 다들 그런 풀을 꽃집에서 사다가 화분에 두는가 보더만, 우리 나라에도 옛날부터 향긋한 풀이 있었어. 박하라고. 얘가 박하풀이야.” 하면서 손수 박하풀을 뜯어서 코에 대 보라고 건넵니다. 박하풀 한 줌을 건네받아 코에 대다가 입에 넣어 살짝 씹습니다. 냄새로도 맛으로도 참말 박하풀 냄새가 그윽하며 좋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어지르고 사느냐고 하지만, 아픈데 어떻게 치우겠어요. 누가 와서 집을 치워 준다면 하지 말라고 말려. 다 어지르고 사는 듯이 보이지만, 아파서 드러누울 적에 손에 닿는 자리에다가 물건을 놓았으니 하나도 건드리면 안 돼. 다 그 자리에 있어야 찾아서 쓸 수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무엇이고 저것은 어느 때에 쓰는 무엇이라고 알려줍니다. 한번은 빨랫줄을 가리키면서 “저기 봐요. 저것은 전기 공사 하는 이들이 버리고 간 건데, 굵은 전깃줄이 하도 아깝다 싶어서 살짝 휘어 놓으니까 빨래집게가 돼.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래집게는 비 오고 해 나면 삭는데, 굵은 전깃줄 조각은 비가 오든 해가 나든 그대로 두면 돼. 평생 쓸 수 있는 빨래집게야. 내 발명품이야.” 하고 이야기합니다.


.. “누가 그걸 곧이듣니? 할아버지가 잘못한 거지. 아무리 자식이지만 빨갱이한테 떡을 해 주고 닭을 잡아 주다니, 그건 백 번 천 번 잘못한 거야.” “아버지!” 몽실이 정씨 얼굴을 쳐다봤다. 어두운 움막 속에서도 그걸 알 수 있었다. “…… 그렇지 않아요. 빨갱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가 될 수 없어요. 나도 우리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갔다면 역시 떡 해 드리고 닭 잡아 드릴 거여요.” “…….” 정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말이 맞죠?” 정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날 이후 몽실은 딴사람처럼 되었다.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61, 84쪽)


  2004년과 2005년에 한두 차례씩 조탑마을에 찾아간 적 있습니다. 나는 조탑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으나, 조탑마을에 찾아가는 분이 함께 찾아뵙자고 해서 여러 차례 인사를 여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는 권정생 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이 둘레를 오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러면서 권정생 님이 다른 분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가만히 담았습니다.

  어느 날에는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다고 보면 안 돼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여러 차례 들려주었습니다. 권정생 님이 쓴 동화 가운데 여러 권이 널리 사랑받아 꽤 많이 팔린다고 하지요. 그러나 권정생 님은 제발 그런 이름을 내려놓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온누리에 대단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스스로 작게 살고 작은 이웃을 언제나 어깨동무하면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상을 몇 가지 받는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국회의원으로 몇 번 뽑힌다거나 대통령이 되었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시장이나 군수가 되면 대단할까요? 내가 쓴 책이 백만 권이나 천만 권이 팔리면 대단할까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굶겠지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하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재채기를 해요. 숲이 우거져서 바람이 싱그럽고 맑으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즐거워서 활짝 웃어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해가 나지 않으면 추워요. 해가 나서 햇볕이 골고루 비출 적에 비로소 지구별이 따스해요. 바람이 숲을 따라 불면서 도시와 시골을 살살 어루만져야 모든 숨결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어쩌면, 권정생 님은 너무 아픈 몸이었기에 여러 가지를 남보다 일찍 깨달았는지 몰라요.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아프지 않고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 예쁜 각시를 만나서 오붓하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시는 마음을 알겠어요. 어느 날에는 “나더러 글이 좋다고 써 달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앞에서 말한다고 해서 내 몸이 좋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손님을 만나 30분 말하면, 손님이 가고 난 다음 한나절 드러누워서 앓아야 해. 그렇게 앓아누워 끙끙거리다가 원고지에 한 줄 쓰고, 또 앓으며 끙끙거리다가 한 줄 쓰고,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쓰기가 힘들어.” 하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좀 안 아프다 싶어서 원고지 몇 장을 썼더니, 바로 이튿날에 꼼짝도 못하고 하루 종일 드러눕기만 했어.” 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우리는 동화책 《몽실 언니》를 하루, 아니 몇 시간, 아니 한 시간만에라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몽실 언니》라는 책 하나만큼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앓아눕고 얼마나 끙끙거렸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요.




.. 몽실은 벌떡 일어나 앉아 인민군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인민군 여자는 몹시 슬픈 표정이었다. “왜 그러니?”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그리고 누가 더 착한 거여요?” “…….”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여요?” 인민군 여자가 누운 채 말했다.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다.” … “몽실아.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 의용군 아이가 어깨에 멘 총을 벗겼다. 그리곤 돌아서서 총구멍을 겨누었다. “왜? 넌 나 같은 아이도 죽일 줄 아니?” “그래, 죽일 줄 안다.” 몽실의 눈에 파아랗게 불길이 올랐다. “죽여 봐! 어서 죽여 봐!” “…….” 의용군 아이와 몽실의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둘은 그렇게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용군 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이…….”  ..  (114, 122∼123쪽)


  동화책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 펴냄)는 1984년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나는 이 동화책을 1984년에 읽지 못했습니다. 1984년은 나로서는 국민학교 3학년입니다.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였으니 아버지가 이 동화책을 알아보고 사 주실 만했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를 마치기까지 동화책을 사 준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학급문고로 동화책을 사서 갖추셨을까요?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어버이가 교사로 일한다 하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책을 읽히지는 않겠지요. 책을 읽히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아름다운 책을 추리거나 가리거나 골라서 읽히지는 않겠지요.

  나는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1994년 겨울에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에서 ‘1984년 첫판’으로 찍힌 낡은 동화책을 보았습니다. 낡은 판으로 만난 책이기에 절판이 된 책인지 꾸준히 사랑받는 책인지 몰랐습니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나온 동화책이네’ 하고 생각하며 사 둔 뒤, 군대에서 스물여섯 살을 살아내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이 책을 읽었습니다.


..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 몽실은 영원히 이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겨울바람이 추웠지만 최씨집은 매우 따뜻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 몽실의 눈에 물기가 젖고 있었다. 난남이도 그랬었다는 걸 알았다. 최씨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무리 알뜰하게 보살펴 줘도 난남이는 어딘가 사랑에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럼, 엄마는 어쨌어?” “엄마는 그냥 많이 아파서 돌아가셨단다.” “우리 엄마가 죽었어?” 난남이는 몽실이 잡고 있는 손을 그만 놓아 버리고 뒤로 돌아앉았다. 커다란 눈으로 바람벽을 줄곧 바라보는 사이에 눈물이 괴어 올랐다 굵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  (116, 175, 182, 192쪽)


  어릴 적에 《몽실 언니》를 읽었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와 이웃과 시골과 마을과 정치와 교육과 문화를 더 슬기롭게 들여다보는 눈길을 틔울 수 있었을까요. 《몽실 언니》를 스물네 살에 읽었으니 외려 이 동화책이 들려주는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한결 차근차근 받아먹을 수 있었을까요.

  어릴 적에도 읽고 나이든 뒤에도 읽으며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참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동화책을 모르는 채 산다 하더라도 내 삶이 안 아름다우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 하나를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놀라운 스승을 만나서 배워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권정생 님은 아무한테서도 동화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 곁에는 이오덕 님이 있어 언제나 말동무가 되고 삶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길을 걸었어요. 그러나 이오덕 님은 권정생 님한테 ‘동화 작법’이나 ‘글쓰기 이론’을 한 차례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은 그저 이녁이 태어나서 살아온 길을 가만히 더듬고 헤아리면서 피를 뱉으며 원고지를 채웠습니다. 원고지 한 장을 쓰고 피를 한 움큼 쏟고, 다시 원고지 한 장을 쓰며 피를 한 움큼 뱉았다고 해요.

  참말 어떤 기운이 권정생 님을 이끌어 글을 쓰도록 했을까요. 원고지 한 장을 30분에 걸쳐 겨우 마무리지으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 울컥하고 나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픈 몸이면 그저 드러누운 채 누군가 돌봐 주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왜 아픈 몸을 자꾸 움직이며 살았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그토록 글을 썼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자꾸자꾸 새롭게 글을 쓰고 이웃들한테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까요.


.. “언니, 왜 안 먹고 가만 있어?” “아냐, 먹을게.” 몽실은 밥을 떠 입안에 넣었다. 떠넣으면서 이건 어느 집에서 얻은 것이고, 이건 또 누구네 집에서 얻은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 “난남아, 넌 아버지 모시고 집에 있거라. 언니 혼자서 밥 얻어 올게.” “응, 갔다 와.” 난남은 쉽게 대답했다. 어른들이 입는 해진 군복을 허리 밑까지 외투처럼 입은 몽실 언니가 깡통을 들고 집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난남은 자꾸만 슬퍼졌다 ..  (201, 222쪽)




  “이 문고리에 줄을 달았어. 누가 찾아오면 힘들어서 서지도 못해. 이렇게 문간에 앉아서 문고리를 붙잡아야 해. 그런데 문고리를 잡아도 힘들어. 그래서 한동안 문고리를 잡고, 힘들면 문고리에 매단 줄에 팔을 걸쳐. 이렇게 잡아야 앉아서 얘기할 수 있어.” 힘든 몸인데 곧잘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십니다. 힘겨운 몸이지만 아침에 밥을 끓입니다. 가끔 고등어를 사다가 굽기도 합니다. “내가 밥을 하루에 한 번만 해. 아침에 밥을 해서 밥통에서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 반은 아침에 먹고 반은 저녁에 먹어.” 권정생 님을 찾아온 손님이 빵 한 조각을 잘라 건넵니다. “얘, 정우야. 예전에 네 아버지(이오덕 님) 살아 계셨을 적에는 이런 것 못 먹었다. 이런 것 먹으면 나쁜 것 먹는다면서 꾸짖으셨어.”

  권정생 님은 하루하루 살면서 나이를 먹었고, 할아버지 나이까지 살았습니다. 1937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2007년에 조용히 숨을 거두기까지 이녁이 낳은 아이는 없었으나, 이녁 둘레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를 이녁 아이로 여겼습니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쓴 힘은 바로 이 땅 모든 아이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아프기에 글을 쓰고, 아프기에 생각을 하며, 아프기에 하루하루 살아냈다고 느낍니다.

  동화책 《몽실 언니》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은 모두 아이들한테 동무가 되는 글입니다. 아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힘든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슬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그리고, 안 아픈 아이와 안 힘든 아이와 안 슬픈 아이한테도 동무가 됩니다.

  모든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는 꿈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넋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글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입니다. 동화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입니다. 책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로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가는 슬기입니다.


..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 … 난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로 현관문 기둥에 기대어 서서 몽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  (269, 270쪽)


  동화책 《몽실 언니》에 나오는 몽실이는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친아버지도 새아버지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도 새어머니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사랑합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앳된 군인도 사랑하고, 이남에서 올라가는 젊은 군인도 사랑합니다. 부산 길바닥에서 숨진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풀빵장수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몽실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절름절름 걷습니다.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아픈 몸이요 마음일 테지만, 몽실이는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말 씩씩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꼭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 한 가닥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다리가 다쳐도, 배를 곪아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어도, 애틋한 동생하고 헤어져야 해도, 몽실이는 눈물 한 움큼을 삼키고 다시 일어섭니다. 권정생 님 스스로 피를 뱉고 다시 뱉으면서도 원고지와 연필을 놓지 않았듯이, 몽실이는 언제나 새롭게 일어나서 이 길을 걸었어요.

  나는 권정생 님이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나 대신 아파 달라.” 한 마디를 늘 가슴에 새깁니다. 아프게, 아프게, 이 말 한 마디를 새깁니다. 그리고, 동화책 《몽실언니》에 나오는 몽실이가 난남이한테 선물한 책 《안네의 일기》처럼, 몽실이도 안네도 이 땅 모든 어머니와 딸과 할머니는 모든 이웃과 숨결을 사랑하며 살았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아픈 몸으로 새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끙끙 앓다가도 일어나 글을 한 줄 적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하늘을 우러러보고 별을 바라보며 박하풀 한 줌 뜯어서 이웃한테 건넬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 비가 내리니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조용합니다. 빗물이 살짝살짝 들을 적에는 제비들이 바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더니, 빗줄기가 굵으니 모두들 제비집에 가만히 옹크리면서 서로 깃을 부빕니다.

  사랑이에요.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지구별을 밝히고 모든 보금자리에 숲내음이 감돌도록 북돋우는 힘은 사랑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이요, 평화를 바라는 이라면 사랑스럽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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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3-0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뵌 적이 있으시네요.
그토록 편찮으셨다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삶과 문학이 일치했던 작가라는 책소개 글에 목이 메입니다.
권정생님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2016-03-03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0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 혀로 배우는 인간과 생명의 역사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3
권은중 지음, 심상윤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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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4



밥 한 그릇을 먹으려고

―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권은중 글

 심상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4.4.19.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절구질을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을 일구면서 한 해를 기다렸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땠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과 돌을 써서 집을 짓고 부엌을 만들며 무쇠로 솥을 지었을 뿐 아니라, 키로 쌀을 까부르고는 조리로 일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만들고 그릇을 만들었으며 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흙을 북돋우고 풀을 아꼈으며 나무를 사랑했습니다.



.. 쌀밥 한 그릇과 같은 음식에는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엄청난 생명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근대사는 음식이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 문제는 기계 덕분에 사람이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영국이 대량으로 값싼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면직물 가격이 폭락합니다.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의 인도인이 실업자 신세가 되어 굶어죽게 돼요. 그 과정에서 영국은 잔인한 계략을 쓰기도 합니다. 경쟁국을 견제하고자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인도 방직 기술자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랐죠 ..  (17, 20쪽)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돈을 법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밥집에 가거나 전화를 걸어 시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전기밥솥이나 여러 가지 기계를 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을 먹으려고 가시내한테 한 마디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서른 살이 되어도 밥을 지을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흔 살이건만 밥과 국과 반찬을 정갈하게 차릴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밥 한 그릇 얻기까지 어떤 땀과 품과 손길을 들이는지 모르기 일쑤입니다. 날마다 세 끼니 꼬박꼬박 밥을 먹는다지만, 정작 밥 한 그릇이 어떤 숨결이요 넋인지 헤아리지는 않습니다.



.. 햇빛과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만 있다면 식물은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는 포식 행위 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생명체를 키울 수 있는 깨끗한 산소를 내놓습니다 …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많아지는 것도 음식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학 첨가제가 잔뜩 들어간 과자와 사탕을 입에 달고 사니까요. 우리 몸의 신장이나 간은 이런 합성물질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거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떻게든 이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려는 과정에서 보이는 몸의 과민함이 바로 아토피라고 합니다. 아토피는 사실상 약이 없어요. 음식물에 쓰이는 각종 화학 첨가물은 아토피뿐 아니라 ADHD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  (54, 130쪽)



  남이 지은 나락을 빻은 쌀하고 내가 지은 나락을 빻은 쌀은 맛이 다릅니다. 그만큼 사랑과 숨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은 나락은 내 온 사랑이 깃듭니다. 내 숨결과 손길이 고스란히 감돕니다. 내가 지은 나락을 내 손으로 밥으로 지어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맛있습니다. 남이 지은 나락으로 밥을 짓는대서 맛이 없지는 않으나, 내가 손수 거둔 쌀하고 맛을 견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낚은 물고기하고 남이 낚은 물고기하고 맛이 같을 수 없어요. 내가 뜯은 나물하고 남이 뜯은 나물은 맛이 같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 스스로 손길을 들일 때에 가장 맛있습니다. 언제나 우리 손빛을 담을 때에 가장 몸에 좋습니다.


  이모나 고모가 아이를 잘 돌봐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살가운 이모와 사랑스러운 고모보다도 제 어버이한테서 살갑고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늘 기다립니다. 곁에서 어버이가 가장 아름답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저희를 어루만질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흔히 ‘어머니 손맛’이라고 하지만, 꼭 어머니 손맛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손맛이나 아버지 손맛이나 똑같습니다. 할머니 손맛이나 할아버지 손맛이나 똑같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베풀면서 물려주는 손맛일 때에 즐겁고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손맛’이란 내 어버이가 물려주는 삶맛입니다. 손맛이란 우리 어버이가 나한테 베풀면서 내가 우리 아이한테 이어줄 사랑맛입니다.



.. 독립국이 된 미국은 영국의 비싼 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해요. 당시 커피를 생산하던 중남미와 지리적으로 훨씬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먹는 감자를 만들어 낸 그들의 손, 자신을 닮은 그들의 손이 부각되게 그렸다”라고 말합니다. 먹는 표정과 속도만 부각시키는 요즘의 ‘먹방’과 달리 고흐는 먹는 사람의 마음마저 헤아렸던 것이죠 ..  (176, 181쪽)



  권은중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살피면 우리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어떻게 먹었는가 하고 돌아보면 우리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야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리는 밥상을 살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즐기는 밥상을 보면, 우리 문화와 역사를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요리나 음식과 얽힌 문화는 궁중에 없습니다. 요리나 음식과 잇닿는 역사는 책에 없습니다. 우리 혀에 문화가 있어요. 우리 눈과 손에 역사가 있어요.


  먼먼 옛날인 거의 오천 해 앞서인 때부터 쑥과 마늘이 있었다고 해요. 쑥은 들에서 나는 풀을 대표하고, 마늘은 사람이 손수 심는 풀을 대표해요. 들에서 스스로 자라는 풀을 먹는 한편, 사람이 사랑으로 심어서 꿈을 담아 돌보는 풀을 먹을 때에 비로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을 옛 신화에서 들려준다고 느껴요. 쑥떡을 먹고 마늘장아찌를 먹는 한겨레는 스스로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길을 걸으려는 몸짓이지 싶어요.


  대단한 요리를 해서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 1등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날마다 가장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차리면 됩니다. 밥 한 그릇을 언제나 웃으면서 차리고 노래하면서 먹으면 됩니다.



..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곰팡이는 생명체를 키우고 다시 순수한 원자 자체로 돌립니다. 원자에서 시작해 생명으로 그리고 생명이 다해 다시 원자로 돌아가는 그 긴 과정을 곰팡이들은 함께합니다 … 콜라는 출발부터 다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음식들이 농부나 어부의 손에서 시작했다면 콜라는 ‘공장’에서 출발한 ‘상품’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대지나 바다가 아니라 공장에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 세계 최장수 지역으로 꼽혀 온 일본 오키나와에도 햄버거와 피자를 판매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이 들어온 이후 평균 수명이 일본 본토보다 떨어졌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  (195, 202, 221쪽)



  푸름이와 함께 읽는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인문책은 한겨레 문화와 역사보다는 서양 문화와 역사를 더 다루기 마련이라, 이 책도 서양 요리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돌아봅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온 여느 사람들 손길과 손빛과 손맛이 깃든 작고 살가운 밥 한 그릇을 이야기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푸름이가 스스로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밥 문화는 책에 없습니다. 우리 밥 역사는 교과서에 없습니다. 우리 밥 예술은 요리전문가가 알려줄 수 없습니다.


  잘 알아야 할 일인데, 배추김치가 한겨레 반찬이 된 지는 아직 얼마 안 되었습니다.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한겨레가 쓴 지는 이제 겨우 백 해가 될락 말락 합니다. 배추를 한겨레가 먹은 지도 천 해가 될까 말까 한다고 해요.


  우리는 무엇을 먹었을까요. 우리 옛사람은 지난날에 배를 곯았을까요? 우리 옛사람은 배추도 무도 감자도 고구마도 오이도 몰랐을 지난날에 어떤 밥을 먹으면서 어떤 삶을 노래했을까요? 고추도 수박도 토마토도 당근도 양파도 없었을 지난날에 우리 한겨레는 무엇을 들과 숲에서 얻으면서 몸을 살찌우고 삶을 빚었을까요?



..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 어머니표 밥상, 저에겐 나이가 들면서 가장 소중하고 그리운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지식을 외우기보다 감자 샐러드나 멸치 국물을 내는 요리를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쉬운 요리를 하나씩 하다 보면 금세 연관된 요리를 몇 가지 더 할 수 있습니다. “학원 가느라 바쁜데 어떻게 요리를 해요”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리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건강과 감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  (221, 237쪽)



  《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라는 책이 우리 겨레 밥살이를 더 돌아보면서 찬찬히 다루었다면 훨씬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쓰신 분뿐 아니라, 오늘날 여느 어버이와 수많은 아이들은 아직 한겨레다운 삶을 모릅니다. 겉보기로는 한겨레요 한국사람이지만, 늘 먹는 밥이 ‘한국 밥’이라고 할 만한지 알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흐른 뒤를 생각해 보셔요. 2200년이나 2300년에 오늘날 한국을 돌아볼 적에 ‘한겨레 밥 문화’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이 누리는 밥이란 얼마나 우리 문화요 역사이며 삶이라 할 만할까요?


  밥 한 그릇을 먹으려고 예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나누려고 예부터 사람들은 서로서로 돕고 어깨동무하면서 웃었습니다. 요즈음 이 나라 국민소득이 꽤 높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굶는 사람은 많고, 가난한 이웃도 많아요. 게다가 북녘에서 나고 자라는 한겨레는 너무 배고플 뿐 아니라 너무 괴롭습니다. 이와 달리 남녘에서는 밥쓰레기가 해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요.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한국사람은 어떤 밥 문화를 누리는가요.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면 될까요? 밥 한 그릇 냄비밥으로 끓일 줄 모를 뿐 아니라, 배를 곯거나 굶어죽는 한겨레가 있는 줄 모르는 채 ‘한국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는 대학교’에 척 하니 붙으면 그만일까요? 밥과 문화와 역사란 무엇일까요? 오늘 이곳에서 열예닐곱 나이로 살아가는 어여쁜 푸름이가 ‘새로운 밥 이야기’를 써서 새로운 책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4.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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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의 자리 - 경계의 문학, 소통의 문학, 청소년문학을 말하다!
박상률 지음 / 나라말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3



열여섯 살에 읽을 책

― 청소년문학의 자리

 박상률 글

 나라말 펴냄, 2011.8.20.



  스물여섯 살이라면 어른이라고 합니다. 서른여섯 살도 마흔여섯 살도 어른이라고 합니다. 쉰여섯 살이나 예순여섯 살도 똑같이 어른이라고 할 테지요. 일흔여섯 살이나 여든여섯 살을 두고도 어른이라고 해요. 여섯 살은 어린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열여섯 살은?


  옛날을 생각하면 열여섯 살은 어른입니다. 다 큰 나이인 만큼 어른입니다. 스스로 제 몫을 할 만큼 일할 수 있는 나이인 터라 열여섯 살은 어른입니다.


  오늘날을 생각하면 열여섯 살은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 있는 사람을 두고 ‘청소년’이라는 한자말을 따로 지어서 가리킵니다. 한국말로는 ‘푸름이’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열여섯 살쯤 되면 낫질을 제법 잘 할 수 있습니다. 지게질도 썩 잘 할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밥을 지을 수 있고, 아픈 이를 돌본다든지 아기를 어를 수 있습니다. 열여섯 살쯤 된다면 혼자 먼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혼자 집을 볼 수 있으며, 모내기며 가을걷이며 소꼴베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 1990년대에는 동화가 돈이 되었다. 그랬기에 아동문학과 그다지 관련 없는 출판사들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화책을 냈다 … 대부분의 작가들이 청소년에 댜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서둘러 작품을 쏟아내기 때문에 요즘 청소년소설은 청소년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 문제다 … 청소년은 왜 오늘이 아닌 미래에만 주역이고 내일에만 주인이 될까? 오늘에도 주역이고 주인이면 안 될까 ..  (13, 14, 31쪽)



  밤이 되면 시골은 어둡고 조용합니다. 어두운 시골은 별빛을 환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는 멧골에서 울려퍼지는 새소리를 가만히 들을 수 있습니다.


  시골은 여름밤이 그리 무덥지 않습니다. 흙이 있고 풀이 있으며 나무가 있는 시골은 여름밤이 시원합니다. 흙과 풀과 나무가 없다면, 시골도 도시와 똑같이 무덥거나 후덥지근합니다. 마당을 시멘트로 바른 시골은 도시와 비슷하게 덥습니다.


  요즈음은 봄이 봄 같지 않다 말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끝나서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라고들 해요. 도시에는 흙도 풀도 나무도 모두 밀려나야 하니까, 저녁이 되어도 봄볕이 식을 수 없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 수 없어요.


  이런 도시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시골을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루 빨리 도시로 갈 생각인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시골 중·고등학교에서도 입시공부만 하거나 입시학원을 다닌다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 요즘 나오는 청소년소설들은 한결같이 감동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 그럼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를 맛보자는 것일까? 그건 그렇지 않다. 재미는 그저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맛이 나는 것이고, 감동은 어떤 느낌이 있어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 게임을 하거나 오락물을 보면서 감동까지 받고자 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 청소년소설이 자꾸만 그런 것들의 꽁무니를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다 … 제대로 된 문학은 어린이용이든 청소년용이든 어른용이든 재미가 우선이 아니고 감동이 우선이다. 그러면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  (21∼23쪽)



  한국에서 2000년대 열여섯 살은 어떤 나이일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에서 열여섯 살은 어른이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닐 뿐더러, ‘학생’으로 여깁니다. 열여섯 살이기에 모두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으나, 이 나이에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여깁니다.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도 학생으로 여겨요. 이뿐 아니라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조차 학생으로 여깁니다. 아니, 요새는 서른 살까지 학생이기 일쑤요, 마흔 살짜리 학생까지 있습니다.


  열여섯 살이지만 밥을 못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스물여섯 살이지만 국을 못 끓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른여섯 살이지만 아이와 어떻게 놀며 아기를 어떻게 재우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책을 꽤 읽었다지만 삶을 모르는 마흔여섯 살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직책이 높고 돈을 제법 모았으며 아파트 한두 채를 거느린다지만 삶을 깨우치지 못하는 쉰여섯 살이 많습니다.


  예순여섯 살 어른은 얼마나 어른다운 한국 사회인지 궁금합니다. 일흔여섯 살 어른은 얼마나 슬기로운 어른다운 한국 문화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값을 잊거나 잃으면서 사람다운 빛을 함께 잊거나 잃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 작금의 청소년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아주 극단적인 청소년상을 보여주고 있는 건 바로 어른의 시선만으로 청소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 많은 청소년소설들이 인위적인 성장을, 나아가 강요된 성장을 그리고 있다 … 이론적인 정의를 평생 공부해 봐야 시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시에 대한 그럴싸한 생각만 가지를 쳐 가며 나올 것이다. 시는 문학 이론서  몇 권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시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나온다. 세상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끙끙 앓으며 살아가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시는 나오는 것이다 ..  (33, 35, 86쪽)



  박상률 님이 쓴 《청소년문학의 자리》(나라말,2011)를 읽습니다. 청소년문학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밝히려는 글을 모은 책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문학이 참말 청소년문학다운가를 묻고 따지는 글을 모은 책입니다.


  청소년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어린이문학 다음은 청소년문학이고, 청소년문학 다음은 어른문학인가요? 누가 청소년문학을 쓰고 누가 청소년문학을 읽어야 할까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문학이 아닙니다. 청소년문학도 청소년만 읽을 문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요즈음 태어나는 청소년문학을 ‘청소년부터 모든 어른이 읽도록’ 쓰거나 엮거나 빚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는 청소년문학이 ‘청소년부터 모든 어른한테 삶을 밝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는가? 그렇다. 무지막지하게 많이 읽는다. 그런데 그들이 읽는 책은 인간의 삶과 존재를 이해하는 책이 아니다. 오로지 시험문제로 나옴직한 것들이 버무려진 책이다 … 아이들이 시험에 필요한 책만 책으로 알게 된 게 그들 탓인가? 아니다. 그들 뒤에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책을 읽지 않는 어른들이 버티고 있다 ..  (154, 155쪽)



   열여섯 살에 읽는 책은 교과서여야 하지 않습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이나 연애소설이나 무협지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땅 열여섯 살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이 나라 열여섯 살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스스로 밥 한 그릇 짓지 못하는 열여섯 살이 시험성적만 잘 나오면 될까요? 스스로 바느질이나 빨래를 할 줄 모르는 열여섯 살이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많이 쓰기만 하면 될까요?


  청소년을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는 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을 돌보며 아낄 어버이는 푸름이와 함께 어떤 삶을 빛내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는지 궁금합니다. 굳이 청소년문학이라는 갈래를 나눌 까닭이 없이 아름다운 문학을 빚고, 아름다운 책을 엮으며, 아름다운 삶을 일굴 우리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따로 청소년책을 선보여서 읽히기보다는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며, 사랑스러운 노래를 함께 부를 우리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열여섯 살에도 여섯 살에도 스물여섯 살에도, 또 서른여섯 살과 예순여섯 살에도 우리가 읽을 책은 늘 하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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