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23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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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10



내가 쳐다보는 곳에 있는 두려움

― 백귀야행 23

 이마 이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시공사 펴냄, 2015.2.25. 5000원



‘미소 너머로 도움을 구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알아채지 못한 우리 역시 같은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츠키는 어린 여동생을 구해 주었다. 그러면서 미츠키 본인도 구원 받았을 거라 믿고 싶다.’ (50쪽)


‘사람은 공포에서 달아나긱 위해 기억을 바꾸지만, 진실이 어떻든 모르는 것보다 아는 편이 공포는 줄어든다. 그래서 난 탐정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괴로운 비밀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서.’ (166쪽)


“만지면 안 됩니다. 그쪽은 함정이에요. 여자라면 저도 모르게 열어 보고 싶어지죠.” “아까 왔던 인형사가 놓고 간 건가요?” “아뇨.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성질을 가졌습니다. 실체가 없으니 무시하면 사라질 겁니다. 뭐, 그 무시한다는 게 꽤나 어렵지만 말이죠.” (199쪽)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서 모르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적이 없는 사람은 무릎이 까진 사람이 왜 절뚝거리는지 모르기 일쑤예요. 무릎이 까진 사람이 걸음이 늦는 까닭을 모르지요. 농약 냄새가 어질어질한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 바람이 불 적에 새나 벌나비가 떨어져서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을 마시고 죽는 시골 이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농약이 참말 무엇인가를 모르기 마련이에요.


  《백귀야행》 스물셋째 권에서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길하고 두려움을 끝내 붙잡는 길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습니다. 두려워서 이웃한테 도와 달라고 눈빛으로 말하지만 이웃은 이를 못 느끼곤 해요. 두려워서 입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빛으로만 바라는 사람을 겪거나 만난 적이 없다면, 스스로 이러한 두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면, 참말 우리는 이웃 눈빛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모든 두려움은 스스로 떨쳐야 하고, 스스로 이겨야 합니다. 이웃이 도와주더라도 스스로 일어서려는 마음이 없고서야 도움을 못 받아요.


  그러니까 두려움을 떨치거나 벗기는 맨 첫째 일이라면, 스스로 일어서기입니다. 두려워할 만한 곳을 바라보지 않고서 사랑할 만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두려움이 가득한 곳을 자꾸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사랑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하기가 어려우니 두려울 수 있겠지요. 네, 그래요. 다들 이렇게 못하니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 보려고 한 걸음씩 씩씩하게 내딛을 적에 두려움이 조금씩 걷힙니다. 어려워서 못한다는 말을 치울 줄 알기란, 두려움을 털어내는 작은 걸음이에요. 어려워도 조금씩 해 보겠다는 마음이 두려움을 벗고서 사랑으로 가는 걸음마입니다. 2017.7.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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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5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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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8



서로 도우며 걷는 길

― 이누야샤 5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2.4.25. 4500원



“도망, 가.” “싫어!” “바보. 말 들어.” “그래, 바보다! 혼자 도망가는 건, 죽어도 못해!” (59쪽)


“미안. 나 때문에 깼어?” “아니. 생각하고 있었어. 왜, 나 때문에 울었어?” “그러니까, 네가 죽어 버리나 해서.” “…….” “무릎, 무릎 빌려줄래?”

 (71쪽)


“어때? 좀 편해졌어?” “응. 너, 좋은 냄새가 나.” “뭐? 뭐, 뭐야? 내,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느니 할 땐 언제고?” “그거, 거짓말이야.” (72쪽)



  혼자서 길을 갈 수 있어요. 혼자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어요. 씩씩하게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외롭다고 느낄 겨를이 없겠지요. 혼자 모든 일을 짊어지느라 바쁘니 외롭다느니 쓸쓸하다느니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홀가분하게 생각을 짓고, 길을 닦아요.


  혼자서 길을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고 둘레에서 딱히 돕거나 이끌지는 않아요. 그동안 여러 사람들 품에 고이 묻혀서 지냈을 뿐이에요. 따로 꿈을 짓거나 세워 보지 않았을 뿐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스스로 걸어갈 만한가 하는 대목도 그다지 헤아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어떻게 걸어갈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우리 길을 누구하고 걸어갈 적에 기쁠까요?


  《이누야샤》 다섯째 권에서는 어느 길을 함께 걷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냥 이 길을 함께 걷는 사이가 아닌 줄 이야기합니다. 오랜 마음이 비로소 만나면서 새롭게 길을 찾아서 걷는 사이인 줄 이야기해요.


  옆에 있기에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아끼기에 먼발치에서 도울 수 있어요. 옆에 있지만 안 도울 수 있어요. 마음으로 안 아끼니 어디에 있든 도울 뜻이 없어요.


  삶은 사랑으로 피어나고, 하루는 꿈으로 자라납니다.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이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이 길을 걷는 곁님이 문득 마음벗인 줄 깨닫고는 빙그레 웃음을 짓습니다. 2017.7.2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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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4 -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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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85



누구한테 잘못했다고 말해야 할까

―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4

 히가시무라 아키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7.2.25. 4500원



  만화책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학산문화사,2017) 넷째 권은 짝꿍을 제대로 사귈 줄 모르면서 서른이라는 나이를 지나 마흔으로 달려가는 길목에 선 아가씨들 모습을 찬찬히 그립니다. 굳이 짝꿍을 사귀어야 하지는 않을 텐데, 이 만화책에 나오는 세 아가씨는 짝꿍이 꼭 있어야 할 듯이 여겨요. 이러면서 처음에는 사로잡히다가 차츰 어딘가 아쉽거나 모자라거나 안 맞는구나 싶은 모습을 느껴요.



“영화 얘기 외에 뭐 싫은 거 있어?” “없어. 상냥하고, 밥도 해 주고, 집도 깨끗하고.” “그럼 참아. 그까짓 거.” (29쪽)


‘그런데 생각났다. 남자와 사귄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지. 상대에게 맞춰 얘기하고, 마음쓰고, 더럽게 따분한 이야기라도 응, 응, 재미있다는 듯 들어주고.’ (35쪽)


“가령 둘이서 휴일에 시간을 내 느긋하게 얘길 나누고 그러면서 마음이 맞아 즐거우면 그날 하루는 행복한 거잖아? 느낌이 오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서 느낌이 오지 않는 대화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이어가는 건 행복한 게 아니잖아.” (55∼56쪽)



  즐거움을 헤아려 본다면, 세 아가씨는 서로 아끼는 동무로 지낼 만합니다. 서로서로 즐거운 동무로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어요. 꼭 남자를 짝꿍으로 곁에 두고서 한집살이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혼자 살아도 되고, 동무들이 함께 살아도 됩니다. 꼭 혼인이라는 틀을 갖추어야 하지 않아요. 사람이 살아갈 적에는 졸업장이 굳이 없어도 될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갖춰야 하지 않거든요. 꿈을 이루는 길에는 혼인이나 졸업장이나 돈이 대수롭지 않아요.



‘우린 대체 누구에게 사과하면 될까. 미래의 나 자신에게 사과하면 되는 건가?’ (71∼72쪽)


‘아아, 난 틀려먹었어. 이 할아버지들보다 더 생각이 낡아빠졌어. 완전히 졌어. …… 이런 작은 기획은 무시하고, 깔보고,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천하의 바보야.’ (102, 103쪽)


‘일하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사람들 말처럼, 지금 시대는 거기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이런 시골 마을의 노인들조차 그런 비전을 갖고 있는데, 난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108쪽)



  어떤 일을 잘못했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날 그곳에서 이렇게 느끼면서 되새기면 됩니다. 잘못해 보는 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치르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잘했다고 할 적에도 우리 삶에서 겪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잘못했느냐 잘했느냐를 따지려는 삶이 아닌, 날마다 치르거나 겪는 수많은 일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나 이야기가 되는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주눅이 들거나 풀이 죽지 말고, 우리 꿈을 늘 새롭게 되새겨야지 싶어요.



“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당신 이상해. 정상이 아니야. 평범한 젊은 남자가 아니야. 왜 그렇게 자꾸 나한테 상처 주려는 거야?” (148∼149쪽)


“그럼 당신이 직접 전화해. 당신들은 늘 그런 식이야.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서 여자들끼리 몰려다니고, 떠들고. 있는 일 없는 일 온갖 망상을 하고, 흥분하고, 그걸 바탕으로 별 생각도 없이 행동하지. 그래서 나도 경계하는 거야. 이봐. 대체 뭘 위해 나이를 먹은 거야, 당신들. 당신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나. 그런 여자와는 연애할 수 없어.” (152∼153쪽)



  수수한 사람도 수수하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다른 사람도 남다르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수수하면서 수수하지 않기 마련이고, 남다르면서 남다르지 않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서로 똑같다면 어떠할까요? 우리가 서로 비슷하거나 같은 대목이 없다면 어떠할까요?


  남이 나한테 생채기를 주는 일이란 없는 줄 알 수 있다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늘 내가 나한테 생채기를 주는 줄 알아차린다면 스스로 사랑을 슬기롭게 찾아서 즐겁게 누릴 만하지 싶습니다.


  나이를 왜 먹는가,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려는가, 삶과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여러 가지를 아직 철없는 아가씨들이 아직 철없는 사내들한테 둘러싸인 채 알아내려고 합니다. 2017.7.1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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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10
이와키 히토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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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6



싸움님 이야기와 울타리 자유 이야기

― 히스토리에 10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7.5.30. 5000원



  하느님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느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을까요? 임금님 마음속뿐 아니라 시골지기 마음속에도 하느님은 있을까요? 갓 낳은 아기를 따스히 보듬는 어머니 품에서뿐 아니라, 총칼이 춤추는 싸움터에도 하느님이 있을까요?



‘예전부터 아바마마는 곧잘 ‘신들이 없는 전쟁터에서’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난 그리 생각지 않아. 이곳에도 필시 신들은 계셔!’ (52쪽)


“즉, 병사 하나하나의 개성을 묵살하고, 통일 규격에 육체를 맞추는 훈련을 하는 거잖습니까? 그것도 나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그와 반대로 육체의 특성에 맞춘 부대 편제를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요. 즉, 오른손잡이 부대 아홉에 왼손잡이 부대 하나!” (148∼149쪽)



  《히스토리에》(서울문화사,2017) 열째 권에서는 드디어 알렉산드로스 왕자가 싸움터에 나가서 처음으로 적군을 맞닥뜨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겉보기로는 차분하고 조용하거나 얌전하거나 여린 듯 여길 수 있으나, 막상 싸움터에서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요. 아무런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이 칼을 휘두르면서 싸움님(전쟁신)이 된다고 할까요.



당시 알렉산드로서의 ‘무차별 참격 질주’는 어디까지나 적의 대열을 어지럽히기 위한 것일 뿐, 살육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아테네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기 때문인지 혹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겁을 먹은 것인지, 누구 한 사람 덤벼들거나 칼을 휘두르는 이가 없었다.’ (102쪽)



  싸움터에 있기에 싸움님을 부릅니다. 평화로운 보금자리에 있다면 따스하고 아늑한 사랑님을 부르겠지요. 숲에 깃들면 숲님을 부를 테고, 밥상맡에서는 밥님을 부를 테고요.


  마음속에서 고이 잠자던 숨은 님을 우리 스스로 깨웁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숨은 님을 우리 스스로 일으켜세워요. 마음속에 있던 님을 깨운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대단한 힘을 끌어내요. 이 대단한 힘은 아주 가볍게 둘레를 잠재우지요.


  고작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릴 뿐이지만 아무도 창을 휘두르지 못해요. 기껏 한 사람이 걸어다닐 뿐이지만 여럿이 이 한 사람을 둘러싸며 칼을 찌르지 못해요.



“누구나 다 동경하는 ‘자유’란 결국 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이 아닐까? 넓고 좁다는 차이는 있더라도 지평선까지 쭉 이어지는 ‘자유’ 따윈 있을 수 없어.” “울타리라 다음번에 좀 먼 곳으로 여행 가지 않을래요? 정말로 울타리가 있는지 한번 보러 가 보죠. 어쩌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울타리 따윈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170∼171쪽)



  《히스토리에》 열째 권은 앞쪽에서 왕자 이야기를 다룬다면 뒤쪽에서 서기관 이야기를 다룹니다. 서기관은 자유를 찾아 이제껏 그 숱한 싸움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새로운 울타리를 맞닥뜨려요. 울타리에 갇힌 꽃밭 같은 자유를 맞닥뜨리고, 이 갇힌 자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아요.


  서기관은 다시 울타리 자유를 내려놓고서 먼 여행길을 나설 수 있을까요. 울타리 자유가 아닌 들판 자유를 품을 수 있을까요. 서기관을 따라서 울타리 자유를 함께 벗어나서 들판 자유로 나아갈 벗님은 나타날 수 있을까요. 2017.7.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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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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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4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면?

― 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5.31. 5500원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사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기였을 적이나 무척 어린 아이였을 적에는 이 대목을 딱히 궁금해 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아기나 무척 어린 아이일 적에는 그저 무럭무럭 자라면서 신나게 뛰노는 데에 온마음을 기울이지 싶습니다.


  이러다가 차츰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이 대목, ‘어떻게 태어나’고 ‘왜 태어났’는지를 궁금해 하지 싶어요.



처음에 그것은 구체였다. 단순한 구체가 아니라, 온갖 것들의 모습을 본뜨고 변화할 수 있는 구체. 나는 ‘그것’을 이 땅에 던져놓고 관찰하기로 했다. (7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새 만화책 《불멸의 그대에게》(대원씨아이,2017)를 내놓습니다. 이녁은 앞선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서 목소리에 담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우리 목소리는 입으로만 나오지 않고, 마음에서 먼저 샘솟는다고 하는 대목을 여러모로 짚었지요.


  《불멸의 그대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서 왜 이곳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만화라는 얼거리로 풀어내 보려는 뜻을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삶과 죽음을 파헤쳐 보려 하고, 사랑과 꿈을 헤아려 보려 합니다. 너와 나를 생각해 보려 하고, 이웃과 동무를 돌아보려고 해요.



“나 여길 떠날까 생각 중이야.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끼고 싶어. 분명 좋은 일만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난 세상을 알고 싶어.” (33쪽)


“안 돌아가. 난. 그렇게 폼 안 나는 짓을 어떻게 해? 식량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내일도 걸어갈 거야. 모레도, 글피도.” (47쪽)



  맨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였다고 하는 데에서 이야기를 엽니다. 어느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일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해요.


  지구라는 별이, 지구가 깃든 별누리가, 또 지구가 깃든 별누리를 품은 더욱 커다란 별누리가, 참으로 어떻게 태어났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부터 이야기를 짚어 보자고 이끌어요.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는 처음에는 동그라미였지만, 돌도 되어 보고 이끼도 되어 봅니다. 이것저것 되어 보다가 늑대가 되어 보기도 해요. 그리고 늑대를 곁에 두고 아끼던 어느 어린 사내 모습이 되어 보지요. 그러니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획득했다. 획득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자극’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낄 것이다. 소년이 그리 하고 싶어 했듯이. (80∼81쪽)



  돌이나 이끼가 되어 보았을 적에는 딱히 어려운 일도 없고 말썽도 없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되어 볼 적에는 늑대처럼 네 다리를 써서 걸어야 하고, 때때로 무언가 먹기도 해야 합니다.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때로는 갈갈이 찢겨서 죽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서 또 죽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다가,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목숨을 만나서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해요.


  자, 그러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이제 ‘사람이 하는 말’을 배워서 쓸 수도 있을까요?


  아마 그러할 테지요. 아직은 겉모습만 사람으로 보일 뿐이지만, 말을 익히고 몸짓을 배우며,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길까지 지켜본다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제 나름대로 거듭나기를 하리라 느껴요. 이른바 진화를 하겠지요.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스스로 어른이 되길 선택하면 되는 거야!” (174∼175쪽)



  만화책 한 권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만화책 한 권에서 ‘태어나고 죽고 살아가는 뜻’이 무엇인가를 모두 살피거나 배우거나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도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이 만화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가만히 되새겨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꿈은 무엇이고, 우리가 스스로 나누려는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하고 외치면서, 뜻없는 죽음은 손사래치겠다고 일어서는 몸짓은, 낡은 모습은 끊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첫걸음이 됩니다. 어린 가시내를 어느 님(신)한테 바치는 낡은 관습은 지키지 않겠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앞으로 새로운 살림(문명)이 태어나도록 이끄는 첫 발자국이라 할 만해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따른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생각을 해 보면서 바꾸거나 고치는 길이에요. 처음에는 그저 뒤따르기만 하더라도, 차근차근 스스로 생각을 지피면서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길이에요.



“조안, 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날 쭉 기억해 줘.” (69∼70쪽)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입니다.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니, 곰곰이 따진다면 꼭 죽었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그렇기에 ‘불멸’이라 할 테고, 이 만화책 이름이 《불멸의 그대에게》가 되는구나 싶어요.


  죽은 뒤에 늘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대로 새로운 모습이 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어린 사내가 남긴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새겨요. “기억해 줘”라는 말을 새기지요. 그래서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하는데요, 우리가 이 땅 이 별에서 살아가는 뜻도 어쩌면 되새기거나 떠올리고(기억) 싶은 마음 때문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잊지 않고 싶어서,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 다시 살아내면서 이제는 무언가 이루어 보고 싶어서, 자꾸자꾸 새로 태어나서 살아가려고 하지 싶어요.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백 살 언저리에 삶을 다해서 죽음으로 가는데, 이 죽음 뒤에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있다면 우리는 이 삶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이 삶을 한 번 마치고 새로 맞이할 적에는 어떤 길을 가면 좋을까요? 굳이 죽음 뒤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삶은 우리한테 어떤 뜻이라고 생각해 볼 만할까요? 가볍게 읽고 덮을 수도 있는 만화책이지만, 이 만화책 한 권을 되읽으면서 우리 삶을 조용히 되짚어 봅니다. 2017.6.2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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