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억하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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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비휴머니즘(실상은 반휴머니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랏님이 부덕하여 역병이 창궐한다는 미신처럼, 인간이 잘못해서 지구가 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나름의 미신을 좀처럼 떨쳐내기 어렵다. 어느 때 보다 빠른 속도로 백신을 내놓아도,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에 옮아다니는 바이러스 앞에서 모두가 좀 더 겸손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겸손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딱히 가지고 있는 답은 없지만ㅋ, 내 경우 다소 터프한 어떤 정념(;;)이 확고해졌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는 별 기대를 하지말자. 이대로라면 우리는 얼마안가 멸종한다. 혹은 이대로 멸종한대도 지구님께 억울해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잘한 건 없으니깐요😬에 가까운 자세와 태도랄까… 물론 이 따위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몸짓을 가진 사람치고는 퍽이나 열심히 운동하고, 고기도 덜 먹고, 사회적 거리를 지나치게 두며, 플라스틱에 신경을 많이쓰지만… 에 또, 그거랑은 별개로 ㅎㅎㅎㅎ 


그런데 뭐 나만 그런 건 아닌건지 얼마전 넷플릭스에서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나와서 우린 다 죽었고 곧 망한다고 정신 좀 차리라고 노래를 부르더라ㅋㅋㅋㅋ 아놔, 1월 1일에 보기에 매우 적절한 영화여서 보다가 빵터졌잖수. 지구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분명히 미국 놈들의 탓이 8할 이상인 것 같은 데… 그걸 자기 자신이 풍자하면서 고걸로 또 돈을 벌어들이는 이 미국 놈들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내가. 




어쨌든 ‘코로나19라는 대위기를 인류가 어떻게 힘을 모아 극복 할 것인가?! 지금은 힘들지만, 우리는 언제나 처럼 답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 하는게 아니라 ‘휴먼, 당신들 되게 중요한 종족인 줄 아는 것 같은 데, 너 자신이 너무 소중하다고 이렇게 민폐를 끼쳐야 되겠냐? 정신 좀 차려. 니들 그러다 진짜 X된다’라고 생각 중이던 인간 종의 개체1인 나는 <이토록 뜻 밖의 뇌과학>을 읽고 별 다섯개⭐️⭐️⭐️⭐️⭐️를 꽝꽝 박을 수 밖에 없었으니… 여러분 좀 읽으세요. *인류여, 우리 이걸 읽고 자기 객관화를 하자.*


그러니까 최신 뇌과학의 연구 결과를 쉽게 풀어쓴 이 책의 제목이 ‘이토록 뜻 밖’인 이유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는 기관인 인간의 ‘두뇌’야 말로 진화의 최종 산물이며, 이 ‘두뇌’를 잘 굴리는 사람이 가장 ‘인간다운’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종류의 믿음을 엿바꿔 먹으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게 아니고요. 뇌과학의 최신 연구가 그렇다네요?🙄 과학자 말을 듣자, 여러분! ㅋㅋ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본격 강의에 앞서 맨 먼저 인간 두뇌가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믿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31)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

알로스타시스. 이 무슨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며 인간 중심의 근대를 열어제낀 데카르트 아저씨가 관 뚜껑 열고 나와 호통칠 소리냐 싶겠지만… 인간의 ‘생각’이란 것은 이 알로스타시스(배럿의 용어를 풀어말하면 신체 예산 조절 능력)를 하는 데에 조금 더 도움될까 싶어 진화 과정에서 우연찮게(?) 만들어진 부산물 쯤에 불과하단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실이라면

“(50~51) 더욱이 다른 동물들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들을 진화시켜왔다. 우리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없다. 우리는 자기 체중보다 50배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우리는 절단된 신체 부위를 재생시킬 수 없다. 이러한 능력들은 우리에게 초인적인 힘으로 여겨지지만, 작은 생물들은 늘 해오던 일이다. 박테리아조차 당신의 장속이나 우주 공간과 같이 혹독하고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 같은 특정과업들을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게 해낸다. … 자연선택은 우리를 향해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특정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돕는 특정 적응력을 갖춘 흥미로운 동물 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동물들이 인간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다. 동물들은 각자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주변 환경에 적응한다. 당신의 뇌는 쥐나 도마뱀의 뇌보다 더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르게 진화한 것이다.”

지구 상의 수많은 생물들이 인간보다 열등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흥!🐯!! 자자, 생각하는 인간은 겸손해집시다. 니들 아무리 생각해봤자 박테리아와 다를 바가 없다구!! 


‘생각하는 뇌’라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면 ‘종으로서의 나’와 ‘자아를 갖춘 나’ 모두는 더불어 겸손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나의 두뇌는 나의 본질이 아니지만, 굳이 몸의 부위 중 어떤 것을 본질로 삼아보자면, 그것은 심장보다는 두뇌일테고 두뇌를 선택한 까닭은 나의 기억과 감정과 생각(자아)이 들어있다고 믿어서기 때문인건 데… 정작 내 뇌의 주되는 사용처는 생각이나, 기억이 아니었다고 하면, 캬~ 이거 좀 반전이잖아ㅋㅋㅋㅋ 나만재밌나 또 나만 재밌어? 여~알라딘 소설파들아, 비문학 좀 읽어다오. 나랑 놀자~


이 사실이 놀랍거나 말거나 내 뇌🧠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씩씩🔥🔥 거리며 문단을 구성하는 데에 그 기운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신체🏃🏻‍♀️를 운영하고 조절하는 데 본인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살짝 또 바꿔서 생각하면? 그렇다면 내 몸이란, 내 뇌를 거의 다 써서 운영되고 있는 내 몸이란!!!! 그저 살아있기만 한 걸로도 얼마나 대단하고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밥도 잘 먹이고 잠도 잘 재우고, 운동도 좀 시키고 해야할 것 같았으므로… 지난 달 이 책을 완독한 저는 곧바로 쿨하게 필라테스 6개월을 현금 플랙스 하고 왔답니다(응?). 뇌의 수고로움을 좀 덜어주는 데는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아직까진 주3회 잘 다니고 있어여….


여기까지😤!! 이 책의 도입부 만을 소개해 본 것인데, 이 후에도 뜻 밖의 뇌과학은 계속해서 펼쳐지므로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 맞다. 그런데 또 여기까지 쓰니까 제가 오늘치 뇌를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책을 통해 알아가시면 좋을 듯 하네요🥱. (졸려서 급하게 마무리) 


-- 다음 날 아침, 이어서 ---


지금 읽(다말)고 있는 <느끼고 아는 존재>에서도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뇌와 따로 떨어뜨리는 것이 불가능한 신경계와 몸 전체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한다. 똑 따로 떼어낸 두뇌라는 것이(있을 수도 없지만) 인간에게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될 때(뇌의 자기객관화ㅋㅋㅋ)… 이성(뇌-인간-남성-주체)과 감정(몸-자연-여성-타자)을 분리해내던 쉬운 이분법들은 그 설자리가 또 한번 희미해지는 듯도 하다는 말을 적고 싶었다. 


언젠가 김상욱이 양자물리가 등장하던 1920년대시기의 과학자들은 1차대전의 생존자들이었다며 인간 이성을 의심하는 급진성을 띌수 밖에 없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양자물리라는 급진적인 과학 이론을 내놨다고 말했던걸 들은 기억이 있다. 비슷한 느낌으로 최신의 뇌과학이 가리키는 방향이 인간중심주의와 이분법을 흔드는 연구 결과들을 내놓은 추세라면, 그를 기준으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추측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훗날의 인류는 코로나19 전후의 과학을 인간 중심주의에서 지구 중심주의(?)로라고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대세는 역시 비휴머니즘!!!;;;;;;;; 그 어느 때 보다 인류의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하기, 다락방의 2045 인류 영생론에 맞서 그전에 인류멸망 할거다를 여기서 또 주장하고 있는 나…)


또 나는 이 책에서 이 부분도 재밌었다. 

“(115~6)하지만 군인의 뇌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의 뇌는 외부세계의 감각 데이터들이 있는데도 예측에 집착했다. 이런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어날 수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뇌가 그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뇌는 정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배선되어 있다. 당신의 뇌가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 뇌는 당신의 현실을 만든다. 예측이 틀렸을 때도 뇌는 마찬가지로 현실을 만들어내며, *바라건대 그 실수를 통해 배운다.*그 군인의 동료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상황을 다시 보게 해 뇌가 새로운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상식을 위협하는 마지막 결정타를 살펴볼 것이다. 바로 이 모든 예측이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과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무언가를 감지하고 그다음에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적을 보고 그 다음에 소총을 드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뇌에서는 감지가 사실상 두 번째에 해당한다. 뇌는 집게손가락을 방아쇠로 가져가고, 그 움직임을 지원하기 위해 신체 예산을 변경하는 것과 같이 행위에 먼저 대비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또한 뇌는 이러한 예측들을 감각계로 전송해 손가락 끝의 차가운 강철의 느낌과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예측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군인의 뇌가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손을 총으로 옮기고, 존재하지 않는 적을 보도록 이끌었다. *그렇다. 뇌는 당신이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이 역시 내 입말로 좀 더 풀자면 … 우리의 두뇌는 신체 예산 조절능력을 가장 효율화 하기 위해 항상 예측하고 있고, 생각을 한 후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에 따른 행동을 두뇌-몸이 미리 하고 있다는 요지인데,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배럿 여사는 이러저러한 예시를 들어가며 이렇게 말해준다.   


“(123)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할 수 있을지 모두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든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이 부분을 이러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선택을 의심할 것.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한 것일 가능성이 높음.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지 않다는 것. 인식도 전에 몸은 이미 행동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한계 속에 엄연한 자유가 있으니, 당신 뇌의 배선을 더 신경써서 가꿔가기 위해 오늘을 살아갈 것. 바라건대, 당신이 실수를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118)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 행동을 개시하는 예측들은 난데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다면 지금 물어뜯는 일도없을 것이다. 친구에게 던진 후회막심한 말들을 아예 배운 적이 없다면 지금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더라면 트위즐러를 그렇게 먹어치우지 않았을것이다. 뇌는 과거 경험을 사용해 당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한다. 마법처럼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오늘 당신의 뇌는 다르게 예측할 것이고 다르게 행동할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세상을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조금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 


뇌과학을 ‘자기 계발서’처럼 읽는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뇌가 이렇게 저렇게 생겨 먹어 작동하니까, 당신의 뇌를 위해 바로 지금(!)부터라도 조금 다른 선택과 경험을 해보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용기를 내라!는 종류의 권유들은 나에게 확확 와서 팍팍 꽂힌다. 그것은 내가 조금은 더 잘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내 뇌의 예측 배선을 변화시켜왔다는 걸까나. 응. 나는 노력했다. 


요즘의 나는 내가 노력해온 것들을 운이 좋아 수월하게 얻어낸 것 처럼 이야기하지 않기 위한 연습 중이다. 처한 환경과 조건 하에서 나를 먹여살리고, 사회에서 살아남는 데에 모든 알로스타시스를 쓰고 돌아와 미세하게 남은 여분의 뇌 역량으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그것 역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과거의 내 노력들이 자랑스럽다. 먹고 사는 데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당장 쓰일 곳도 없는 스펙(?)과는 무관한 책을 읽은 것. 그리하여 이제는 책을 읽는 종류의 인간이 된 것. 읽고 쓰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 


새벽 세시 스탠드를 켜놓고 예닐곱 권의 책을 번갈아가며 뒤적이다가 시간 가는 것을 아까워하는 나를 만날 때, 인류멸망주의자(?)는  2045년 인류 영생 쪽으로 아주 살짝 마음이 기운다. 아, 이 모든 것을 실컷 읽고 소화하려면 영원히 사는 쪽에 배팅해야하는 것일까나. 이토록 뜻 밖의 반전이라고? 


내 친구가 자주쓰는 말이 있다. 인생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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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1-15 1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중심주의나 이성-감정 이분법을 극복하도록 하는 방편 중 하나가 된다는 점이 특히 의미있는 것 같아요!! 근데 생각이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로 설명된다면, 물질이란 실재에서 생각이란 관념이 발생된다는 논리적 비약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논리적 비약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신념을 위해 효율이나 생존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인간의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ㅎㅎ

공쟝쟝 2022-01-15 10:46   좋아요 3 | URL
저는 거의 극단적인 유물론자라서 (인간 의식-관념 조차 물질이다) 라파엘님이랑 읽기의 접근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인간 뇌 자체는 신체를 유용하는 예측기계에 불과합니다. 관념은 그 기계의 예측을 더 잘하기 위해 여러 신체 반응처럼 고안된 부수적인 기능 중에 하나이고요. 신념은 해당 인간이 고유하게 고안해낸 예측방식이겠지요? 전 이렇게 건조하게 읽었지만 ㅋㅋ 그렇다고 배럿이 저처럼 막말을 하진 않아요 ㅋㅋ 대단히 인간 종을 사랑한다고 느꼈어요 ㅋㅋ
물질-관념에 대한 부분을 이슈로 두고 읽지는 않은데다 벌써 읽은지 한달이 넘어가서 ㅋㅋㅋㅋ 대답해드리기 어렵지만, 라파엘님의 접근 방식으로 이 책을 독해할 때는 어떤 식으로 읽힐지도 저는 궁금합니다. 짧고 얇고 쉬운 책이니 읽고 리뷰 하나 써주세요 ㅎㅎㅎㅎㅎㅎ 인간의 ‘의식’의 본질에 관한 뇌과학 책은 지금 읽고 있는 <느끼고 아는 존재>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어요 ㅋㅋㅋ 저는 읽을 건데 ㅋㅋㅋ 그 친구 자꾸 밀리네요 ㅋㅋㅋ 아 주말이 얼마 안남았다 ㅋㅋㅋ

라파엘 2022-01-15 10:57   좋아요 2 | URL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조차 물질이라고 설명하려면 뇌과학만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저도 조만간은 아니지만 나중에 뇌과학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쟝님 말씀대로 비문학도 정말 재밌어요!! ^^

공쟝쟝 2022-01-15 11:03   좋아요 2 | URL
적어 주신 첫 문장의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기에 그를 심오하게 톺지는 않아요. 말씀 주신 그 ‘공백’ 혹은 비약이 비약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다능!! 그런데 종교를 갖고 계시는 단발님은 그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보고 끝까지 파보실(?) 작정이신가 보더라고요 ㅋㅋ 그리고 그런 맥락으로 양자역학에서 신을 도출하고 계셔서 제가 놀랐던 페이퍼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당 ㅋㅋㅋ (저는 저를 놀라게 하는 책과 글과 말과 사람을 애정합니다)~~ 아 정말 인류는 싫은데 개별 각각의 인간은 재밌습니다. ㅎㅎㅎㅎ

라파엘 2022-01-15 12:35   좋아요 2 | URL
양자역학은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신존재의 근거도 될 수 있고 유물론의 근거도 될 수 있고요.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것은 인간의 한계와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시간 날 때 단발님 페이퍼도 찾아봐야겠네요 ㅎㅎ 쟝님 말씀대로 인간은 재밌고 또 사랑스럽기도 해요 ^^

psyche 2022-01-15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완전 끌려요!

공쟝쟝 2022-01-15 10:52   좋아요 1 | URL
오늘도 이렇게 영업에 성공하고 마는 알라딘 관계자도 출판 관계자도 하다 못해 넷플릭스 관계자나 뇌과학관계자도 아닌 저 자신 ㅋㅋㅋ

잠자냥 2022-01-15 14:34   좋아요 1 | URL
쟝쟝/ 홉스 관계자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1-15 15:01   좋아요 1 | URL
오로지 홉스랑만 관계자 ㅋㅋㅋ ㅋㅋㅋㅋ

sijifs 2022-01-15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아리아나 그란데 끌리네요.ㅋㅋㅋㅋ 노래가 뭔지 궁급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1-15 11:14   좋아요 1 | URL
소개가 늦었습니다. 영화는 <돈룩업>이고요 대 유잼이니 넷플릭스 구독자면 보시고요, 노래는 저스트 룩 업 인데요 ㅋㅋㅋ 진짜 가사에 맞게 아주 노래 너무 잘해버림 ㅋㅋㅋㅋ

persona 2022-01-15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류는 더디게 발달하는 열등한 종입니다. 짝짓기 가능할 때까지 최소 12-18년을 키워야 하고 독립할 때까지 20년은 끼고 살아야하는 동물이 어딨습니까. 또 자유의지 그딴 거 없습니다. 자유 의지 발생하기 직전에 그 생각을 쏘아올리는 다른 뇌파가 있’읍’니다. 사실 내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유전자가 널리 퍼지려는 방향으로 나를 이용하는 거죠. 그리고 정신 못차리고 이렇게 살다간 멸종합니다.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다 지구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행성과 박살이라도 나버려라… 지구가 절딴나지 않아도 우리에겐 곧 종말이 다가옵니다. 이상기온과 역병. 인간들은 지들끼리만 비극이라고 하지만 지구를 위해선 아주 굿초이스고 지구도 진화하니까(?) 자신이 생존 가능한 방향으로 상황이 선택되는 겁니다. 다른 생물종들을 위해서 인간이 사라지는 건 아주 해피한 현상입니다. 등등등 저도 그런 생각이 가득 차있었는데 양자물리 신경과학 진화학을 공부한 탓이죠. ㅋㅋㅋ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생물처럼 그냥 거대한 회로 기판이다!
이 지점에서 사회학과 종교가 필요한 거 같아 수혈하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맑고 뜨겁고 따뜻한 열정으로 구라를 쓰는 소설이 제일 좋아요. 제가 살려면 따땃한 게 필요해. 배운 거 다 쓸따리 없네요.

공쟝쟝 2022-01-15 12:36   좋아요 2 | URL
아놬ㅋㅋㅋ 펄손아님ㅋㅋㅋㅋ 지금 이 댓글 인티제 완전 돋아버린 것임 ㅋㅋㅋㅋㅋㅋㅋ 이 지독한 파괴욕망ㅋㅋㅋㅋ 뒤에 오는 잔잔한 가능성에 대한 희미한 바람 ㅋㅋㅋㅋ 나도요 ㅋㅋㅋ 나도 비슷해 ㅋㅋㅋㅋㅋㅋ

persona 2022-01-15 12:43   좋아요 2 | URL
인생과 인간들은 환멸나지만 그런 이유로 죽을 순 없고 저희에겐 고양이와 돌멩이가 있으니까 흥분하지 말고 참아야지. 어쨌거나 언젠가 심판 받을 때까지 삶은 일단 계속 돼야 하니까요. 삶과 죽음은 제 자유의지의 영역이 아닌건데, 납득은 가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곧죽어도 싫으니 죽음에도 자율성을 허하라 주의잡니다.
오늘은 마음을 정화해야겠어요. 🖤

공쟝쟝 2022-01-15 12:44   좋아요 2 | URL
죽음에 자율성과 고양이까지 ㅋㅋㅋ 개똑같아서 소름돋았당 ㅋㅋㅋㅋ 저는 스파이더맨 볼거야 ㅋㅋㅋㅋ 우하하하하 개싄나!!

persona 2022-01-15 12:45   좋아요 2 | URL
전 고양이 없는 인티제. ㅋㅋㅋ 저는 반려 돌멩이들 데리고 산책 다녀올게요. ㅋㅋㅋ

공쟝쟝 2022-01-15 12:48   좋아요 2 | URL
전 달리고 들어가는 중ㅋㅋㅋ 주말 잘 보내고요 ㅋㅋㅋ 암흑의 검은 하트 감사해요 🖤역시 내 심장의 색깔은 블랙 ㅋㅋㅋㅋㅋ 이거 레드 하트보다 좋은 거인거 난 알아본다 ㅋㅋㅋ

persona 2022-01-15 12:52   좋아요 2 | URL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
속이 씨꺼멓게 타들어가도/ 썩었어도 심장은 뛴다가 희망의 메시지라는 거. 알쥬? ㅋㅋㅋㅋ 좋은 주말 되세요!

난티나무 2022-01-15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쟝쟝님을 존경합니다. (존경은 이모티콘이 없네요…❤️‍🔥❤️‍🔥❤️‍🔥 불타오르네~^^)

공쟝쟝 2022-01-17 12:23   좋아요 0 | URL
퐈이어여어어어~~ 퐈이여어어어어~~ BTS의 비쥐엠이 깔리는 비주얼의 댓글!! ㅋㅋㅋ

단발머리 2022-01-15 2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 뇌의 제일 주요한 기능이라는 저자의 뜻은 알겠어요. 인간 중심주의 타파, 좀 더 겸손해지자는 맥락도 이해하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제 안에 남아있는 끈질긴 인간 중심주의ㅋㅋㅋㅋㅋㅋㅋㅋ 동물과 인간은 다르다는 그 ‘신념‘이 인간에게 혹은 인간에게만 ‘의식‘ 혹은 ‘영적인 영역‘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 자리를 전 아직은 ‘뇌‘라고 생각하기에 그 흔적을 찾고 싶습니다.

118쪽의 내용은 자기계발서처럼 읽힌다기 보다는 너무 ‘자기계발서‘라서 좀 그러네요.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내일은 바꿀 수 있고, 그 변화는 오늘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아, 뇌과학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이런저런 생각은 많은데 정리할 시간이 없네요. 요즘은 상반기의 책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페미니스트>에 푹 빠져있거든요. 거기에서도 생각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렇게 재미있고 진지하며 유익하고 지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내 친구라는 사실에 무한 기쁨을 느낍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쟝님이 아니라 쟝님의 뇌가 아닌가 싶어요. 굿나잇이요!!!

공쟝쟝 2022-01-17 12:31   좋아요 1 | URL
제 뇌 말고 절 좋아해주시면 안되요? (꺅-)

인간 중심주이가 우얘 나쁘겠습니까. 다만 시간이 흐르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두드러지는 현재... 인간 아닌 것들과의 공존이 그 휴머니즘 이라는 전제 안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인간이 그래왔듯이 판을 뒤집어서라도 다른 길을 모색할거라는 것. 이미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최신 과학 책과 최신 영화에서 그런 맥락들이 보이는 것도 같아서 리뷰를 써 보았습니다. 모처럼 쓰면서 신났음! 에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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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흐르듯 쓴 독후감/링크해두기/에 달린 에로이카님의 댓글이 내 아이러니에 대한 주석을 조금 더 덧붙이고 싶게 만들었다. 이 글은 소설을 통해 경험한 질문을 사회학자 에세이의 해석/정제된 언어들로 엮어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독후의 감. 본문의 인용은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이  대부분이므로 이 책에 분류해둔다. 에세이는 근대를 횡단하는 방식으로서의 '미적 태도' '예술적 삶'을 주문하지만 대부분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의 한계가 그러하듯 어쩌자고 싶어지긴 한다.) 

나는 나르치스다. 경험하기보다는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흥미로워하지만 그걸 살아보고 싶지는 않다. 눈 떠있는 대부분을 이성과 언어와 관념에 기댄다. 종종 글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에 대한 집착도 결국 '의식화'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들이 만들어낸 말들이 없다면 그들의 언어로 상처를 포섭하지 않았다면, 삶을 애써 해석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병에 걸려) 죽었을 것이다. 세계에 이미 존재하게 되어버린 이상 존재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다. 그냥 어디든 삶은 공기처럼 꽉꽉 들어차 있고, 이처럼 압도적으로 편재되어있는 있는 생이라는 조건을 어떻게든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에 태어나 유년을 통과한 인간은 저마다 나름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있는 듯하다.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라고 하더라도, 설령 운이 좋아 부자 부모를 만나 얻어 쓰고 빌려 쓰는 방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삶)은 그냥 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는 빈대 근성을 훈련해야 하는 것이고, 혹은 다 제 능력인 줄 아는 뻔뻔함이라도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정유라- 능력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나의 경우 방구석에 들어앉아 덩어리째인 그것들을 잘게 쪼개 분석함으로써 생의 능력을 +1, +1, +2 적립식으로 획득했다. 잠시 대학시절을 보냈던 고시원 방을 제외하고는 혼자 있을 방구석이 없었기 때문에 삶을 다루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얼떨결(어쩌면 내가 원해서)에 혼자가 되고, 규칙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고, 생산-재생산 활동으로 가득 차 있는 일상에 ‘(자기)분석의 시간’을 루틴처럼 추가한 후에야 조금 나 자신을 다루는 방법을 알겠더라.

세상과 사람, 나 자신, 삶. 뭐 그런 것들에 입혀진 글씨들을 읽을 때야, 말들이 만들어져야, 스스로를 덜 학대할 수 있었다. 나에게 언어 없이 세상에 내몰려 그저 감각하고 겪어내며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었다. 내 감정에 마저 이름을 하나하나 붙일 수 있었을 때(그것이 옳든/그르든 혹은 합리적/비합리적이든), 느끼는 것마저 해석 가능한 것이 되었을 때야 가까스로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았다. 겨우 겨우 내게 향하는 화살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쳐낼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 지(심지어 끼니 메뉴를 고르는 것까지도) 이제는 조금 안다. 이미 선택된 것들 안에서 조금씩 배치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나처럼 생겨먹은 인간에게 세상은 너무나 풍부했다. 해석하고 분석할 것은 나 자신 말고도 천지였다. 그것이 근대가 주입한 어떤 훈육의 결과라 하더라도 나는 그게 체질에 맞았다.

“(168)*근대적 주체는 이성적 인간과 비이성적 인간이란 이분법 안에서 작동한다.* 대상화란 우월한 존재들의 타고난 능력인 지성의 판단 아래 여러 다른 삶을 단순화, 객관화, 일반화하는 것이다. 다른 것, 즉 타자는 아직 모르는 것이거나 계속 모르는 것이다. 타자는 공존을 요청하지만, 세계의 재현 가능성과 인식 가능성에 대한 근대적 믿음은 타자를 이성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유함으로써 바깥을 처음부터 배제한다. 타자는 대상이기에, 말하자면 추제가 아니기에 이미 문명화된, 이미 아는 주체의 도움과 연민을 간구할 뿐이다. 성적 대상 화건 인종적 대상 화건 모든 대상화는 주체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대상화는 타자에게서 삶을 빼앗는다.* 대상화는 타자를 주체의 시선 안에 둠으로써 느끼고 말하고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타자를 삭제한다. 한편 주체는 인간의 오감 중 가장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환원됨으로써 탈감각화된다. 주체는 타자의 타자성의 반격을 물리칠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타자를 향유한다. *연민과 동정은 타자를 무력화할 때 출현하는 쾌락이다. 거리를 확보하고 타자를 즐기는 주체의 시각적 쾌락과 지식욕은 오늘날의 전 지구적 폭력이다.* 지식은 그렇기에 미미 포르노적이고 근대적 봄 자체가 포르노다.” 


어쩌면 ‘생각/지성’이라는 방식은 저 글이 가리키는 것처럼 징그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그들을 ‘대상화’ 하지 않았더라면 ‘거리 두지’ 않았더라면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못살았을 것 같은 데. 징그럽더라도 살아있는 게 내게는 좋지 않을까. — 그런데 그것은 정말 좋은 것인가— 이것 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이 방식으로 삶을 운용해보는 것을 도입하고 조금은 살만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혹은 애석한 것은) 백인 - 남성 - 서구인 -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것. 불행인 것(자명한 것)은 근대는 이미 파산해가는 중이지만 계속해서 근대이긴 할 것이라는 것.

“(208) 인간은 언어를 배우면서 앎과 행위의 주체이자 문장의 주어가 된다. 나는 주어이고 주체이다. 나는 문장의 기능이면서 자신을 하나의 고유한 실체이자 본질로 간주한다. *주체화에 성공한 사람은 세계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는 이 세계에 대해, 대상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의 대상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존재를 나의 사유의 대상으로 대체하고, 그것을 내가 처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언어적 주체라는 확신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삶에 대한 근대적 왜곡이고 폭력이다. ”


그리하여 근대적인 유형의 인간에게 다가온 ‘탈근대’의 시간은 혹독하다(차라리 과거의 인류를 질투하는 이유). 겨우 주체화되었는 데, 이게 왜곡이며 폭력이라고? 아, 어쩌면 타자화되기 쉬운 젠더, 계급, 계층, 국가(민족) 출신인 주제에 감히 나르치스라는 (근대적) 성정을 타고나서 생긴 버그가 내 아이러니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타협한다. 내가 만들어낸 가장 안전한 길은… 골드문트의(예술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느낀 것들을 읽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나르치스 형의 예술. — 골드문트가 삶으로 만들어낸 예술품을 나르치스는 진정으로 향유한다! 그는 그것에 ‘오직 진짜 인생’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며 자신의 삶이 초라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180) 당신은 배워야 한다. 관념을 사용하지 ‘않기를’, 거리를 취하지 ‘않기를’, 판단하지 ‘않기를’, 지식에 호소하지 ‘않기를’, 주체가 되지 ‘않기를’! 오직 당신의 몸, 감각, 느낌을 사용해서 뛰어들기를, 즐기기를, 행동하기를! 행복이나 불행은 그저 상황을 재현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임을, 안전과 안정은 감각을 억압하는 지성의 교란임을, 단 한 번뿐인 삶을 내 삶으로 만들어야 함을, 그러므로 불행이 곧 행복임을 행복이 곧 불행임을 동시에 느껴야 함을 우리는 긍정해야 한다. (…) 우리는 이 삶에, 이 순간에, 이 경이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아이는, 그리고 예술가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새로운 시간으로, 익숙해지지 않는 놀이로 똑같이 겪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삶, 예술가의 삶, 니체적 삶 혹은 나르치스가 소설에서 ‘오직 진짜 인생’이라고 명명한 그것. 내가 사랑하는 삶이지만, 동시에 내가 두려워하는 삶인 골드문트는 근대가 파괴하고 싶은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르치스의 세계가 끊임없이 균열을 거듭하는 고로, 나르치스조차도 나르치스답게 살아갈 수 없는 근대-이후의 시간을 하필 내가 살아가고 있네? 


아아, 바야흐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펜데믹과 긱 이코노미, 하이퍼링크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시대 — 세상은 더 나빠졌는가? (글쎄- 더 나빠진 것 같지 않다고,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점점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근대인들의 성장방식 때문에 인류 멸종에는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그도 지구에겐 좋을 일이다) 만약 나빠졌다면 그건 나르치스들의 세상인 거고, 사실 골드문트과의 인간들에게는 의외의 부와 ‘좋아요’도 문득 안겨다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인 거 아닐까?

“(175) 정의로 무장한 법이나 가치로 무장한 도덕 없이 오직 일어남이라는 일회성 안에 머무르려는 이러한 윤리는 그 자체로 미적이다. 미적 판단은 이것은 무엇에 좋은가,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배제할 때에만 일어난다. 그것은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고, 말과 행위에 아무런 목적성이나 의도 없이 계속 머무르는 것이며, 사건의 일회성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아남아야 하는 나는 나르치스의 방식(대상화)으로 골드문트들의 삶(감각)을 베껴보기로 한다. 

한 번 지켜보세요. 나르치스의 예술적 예술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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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짚고 넘어갈 것은 있다. 헤르만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말하는 ‘궁극의 어머니’가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다. 짐작도 못하겠다. 골드문트적 상황에 놓인 나르치스라는 상황은 사실 나르치스 일수도 골드문트 일수도 없었던 나의 젠더, 섹슈얼리티를 반영한 분열이었나.

덧붙임 2, 이분법이야 말로 근대의 산물인고로, 탈근대 시대를 살아갈 방식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그래서 16가지 분법인 mbti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백자평을 달아보았음ㅋㅋㅋ) 나는 사실 근대적 인간 나르치스인지라 이분법의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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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2-08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는 나르치스다˝라는 문장에서 저기 퐐~ 골드문트 떠올라서 빵 터진 사람 나만 그런 거 아니쥬?

나르치스여, 그대 이 글을 보니 그대는 정녕 나르치스도다......

공쟝쟝 2021-12-08 10:28   좋아요 1 | URL
시대를 잘못만난 나르치스… 하지만 골드문트를 사랑하는 나르치스…!! 나다!!

에로이카 2021-12-08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 아.. 친히 거명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지난 번 댓글에서 요즘의 행복이 응시/음미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 때 공쟝쟝님이 참 아리스토텔레스-아렌트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철학자들은 그것을 관조(contemplation)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맨 앞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인식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 (All men by nature desire to know).˝ 니체(와 푸코)는 여기서 저 ˝인식한다˝, ˝안다˝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지식은 지배의 욕망의 부산물이라고 보지요. 인식에 대한 욕망은 곧 지배에 대한 욕망인 것이지요. 이 내용이 아마 인용된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의 저변에 깔려 있는 통찰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페이퍼 역시 아이러니스럽지요. 공쟝쟝님께서 양효실님을 인용하시는 것은 나르치스(아리스토텔레스-아렌트)가 골드문트(니체-푸코)를 인용하는 것 같으니까요. 나르치스의 예술적 예술 방식, 응원하겠습니다!! 공쟝쟝님, ˝볼매˝세요!!

공쟝쟝 2021-12-08 10:33   좋아요 2 | URL
에로이카님이야 말로 볼매세요! 글좀 써주세요 😭 으어… 정확하십니다. 아, 너무 정확해요!!! ㅋㅋㅋ 난 뭘 이렇게 주절주절했니 ㅋㅋㅋㅋ 짧게 쓰고 싶다!!! 정리하면 저는 니체처럼은 못살지만 그를 좋아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인걸로 (꼬르륵)_ 현재 저는 뭐시기냐 소요학파입니다(산책중) ㅋㅋㅋㅋ

scott 2021-12-08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장쟝님 볼!매!
(ღ•͈ᴗ•͈ღ)

제가 헤드 헌터 였다면 장쟝님 영입! 👆순위로 ^^

공쟝쟝 2021-12-08 12:25   좋아요 3 | URL
알라딘에서 사랑받는 인재…. 어서 헤드헌터가 되십쇼 !!! 스캇님!! 그치만 요즘 젊은이들 다 열심히 산다니까 그래…ㅋㅋ

새파랑 2022-01-07 17: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3관왕이시네요 ^^ 역시 프리렌서 공쟝쟝님 축하드립다. 그래도 유튜브가 더 좋아요~!!

공쟝쟝 2022-01-07 22:09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아놔 ㅋㅋㅋ 저 3관왕이예요 여러분… 찢었다…

mini74 2022-01-07 18: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3관왕 축하드려요 ~ 어떤 책 사셔서 소개해주실지 궁금합니다 !~

공쟝쟝 2022-01-07 22:1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오 적립금 탕진 영상 한번 가야겠네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01-07 1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플루언서 쟝쟝님 축하드려요~

공쟝쟝 2022-01-07 22:10   좋아요 2 | URL
진짜 알라딘 인플루언서만큼 왕관이 무거운 자리가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우 내가 인풀루언서라닠ㅋㅋㅋㅋ

물감 2022-01-07 2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리뷰당선 축하!
쟝님이 하도 골드문트, 나르치스 하길래 내 궁금해서 책까지 샀다 아임니까!
이제는 어떤 리뷰를 써도 그 두사람이 나오고 있군요 ㅋㅋ

공쟝쟝 2022-01-07 22:1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욬ㅋㅋㅋㅋ 그런데 그 책 정작 별은 4개 줫다 ㅋㅋㅋ 재밌었지만 제가 나이를 좀 먹어서 ㅋㅋㅋ 이젠 설레지 않았어요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1-07 2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못하는 게 없는 공쟝님 축하,축하요♡

공쟝쟝 2022-01-07 22:12   좋아요 1 | URL
올해 첫 스타트를 3관왕을 해부리다니 ㅋㅋ 감격 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

서니데이 2022-01-07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공쟝쟝 2022-01-07 22:12   좋아요 2 | URL
덕분에 즐거운 금요일이 될듯 합니다 ㅋㅋㅋ 퍼마시면서 읽을 겁니다 ㅋㅋㅋ

thkang1001 2022-01-07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휴일 보내세요!

공쟝쟝 2022-01-07 22: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러블리땡 2022-01-08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thkang1001 2022-01-08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Book]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 비대면 시대에 우리가 일하는 방법
김개미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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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붕어빵도 찾기 어렵지만, 호떡이야 말로 하늘에 별 따기라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 새롭게 개척중인 산책 코스, 집이랑 멀지 않은 삼거리에서 호떡 트럭 발견!😆 왠지 맛집일 것 같아 눈도장으로만 찍어두었다. 지난 주 부터 기온도 떨어지고 밤의 시간이 부쩍 길어져 기분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세로토닌의 부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적정 수준의 일조량을 축이기 위해 저녁 달리기를 줄이고 오전 산책을 일상에 추가했다.

도로 옆이 아니고서는 이어폰도 끼지 않고 세상의 부스럭거림을 배경 음악 삼아 걷는다.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에 게으른 나는 혼자 지내면서 달리기나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 거의 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내 귀에는 자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구나한다. 에어팟의 주요 용도는 음악을 틀지 않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 그러고 보니 클럽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데, 신입생 때 딱 한번 가본 나이트(클럽이 없는 지방 도시였다)에서 스피커를 견디기 너무 힘들어서 이런 곳에 다신 오지 않아야지 마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 음악을 항상 즐기는 종류의 사람은 아닌가 보구나, 적으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또 한번 알아가는 군.

어쨌든 오전 중에 하는 산뜻한 산책은 프리랜서의 특권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스러이 흐뭇했다. 더구나 요즈음의 하늘은 치명적이고, 가로수의 단풍은 감동적일 정도라… 대낮의 햇빛을 반사해 진한 색으로 빛나는 도로와 건물은 보는 이의 시선을 구석구석 잡아두고 마는 것이다. 작년이라면 카페인에 의지해 집중력을 불태울 이 시각에 그야말로 정처 없이 걷고 있구나 깨닫는 건, 그런데 발길이 가 닿는 곳 마다 근사한 낙엽들이 뒹군다는 건 나를 미소짓게 한다.


“(105) 한동안은 일이 없다가 한동안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들어오는 대로 받기 십상이라 그러다가는 일에 파묻혀 있다가 오히려 빵꾸만 내고 건강도 망가질 수가 있다. 그러니 애초에 게으름을 피우면 그럴 일이 없다. 따지고 보면 그게 나한테 맞는 전략이다. 꼼꼼하거나 치밀하지는 못해서 계산을 하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나도 욕심이 없지는 않아서 대개는 일단 받고 본다. 까딱하다가는 한 치 앞도 못 보고 일을 그르친다. 게으름은 욕심과 이로 인해 생길 탈을 통제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런가하면 프리랜서의 단점도 있다. 이를테면, 이번 주의 경우 두 개의 마감이 겹친 주제에 주말마저 신나게(마치 직장인처럼)놀아버린 나 자신의 만용때문에 건너건너 이틀이나 밤을 새워 일해야 했다. 심지어 어제 오전 열한시에서 오늘 아침 8시까지, 밥 먹는 시간 잠깐 외에는 거의 20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 더 잘까하다가 사과 한 알을 먹고 나와 햇살 받으며 걸었다. 뚝뚝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를 멍 때리고 생생히 감상하다보니 놀랍게도 피곤이 가셨다. 나는 3시에 잠들어 8시에 일어나고, 보통 밤이 깊어질수록 집중이 잘되는 올빼미 족이며, 오전 시간을 꾸물럭 거리면서 가사노동을 하며 졸음을 커피로 쫓는 편인데, 저녁 달리기를 이제부턴 오전에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싫은 날은 산책하고. 어, 뭔가 라이프 스타일이 더 효율적이어진 것 같아! 나 자신이여, 🤭 이렇게 또 진화하는 것인가!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자기 규율까지 만들어가며 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삶이 나에게 적합한 형태의 삶임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을 직접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감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혼자 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과 고립 속에서도 온전한 충만감의 조각 같은 것들을 발견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낮밤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은 웬만하면 깨어있을 예정이다. 재밌는 스릴러 소설을 찝어 두었고, 봐둘 영화도 선택해 놓았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잠에 대한 욕심이 없어진 것도(틈틈히 낮잠시간도 껴서 언제나 넉넉히 잔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지 싶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일을 막 끝낸 시점이라서 느끼는 기분이고, 평소의 일없는 놈팽이 나는 대체로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것만 같은 불안함과 고독한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오늘의 자유 산책은 매일매일 반복하고 싶은 종류의 어떤 것이라서 가능하면 대낮 산책을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프리로 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free. 이 불안을 자유의 대가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불안, 모든 것을 나 혼자서 조절하고 설계해야한다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겨 만나면 또왔구나 상냥하게 인사해봐야지.. 불안이 찾아오면 산책하고 달리고, 외로움이 찾아오면 재밌는 책을 읽고, 맡겨진 일은 성실하게 잘해내고, 일상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기분과 빈 시간의 자유로움 충분히 만끽하면서 그렇게 오래 오래 건강히 지내면 좋겠다.

마주친 노점에서 올해 첫 귤을 한 봉지 샀다. 주황색 바탕의 이 책이 생각 났던 것은 (나 자신을 과신해서 이번 주가 개망진창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일과 삶을 잘 조율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지 싶다. 책에서 만난 혼자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과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애석하게도 업으로 삼은 일을 좋아하기 보다는 할 수 있어서 하게 된 축에 속한다. 생각해보면 나의 사회 생활이란 ‘일을 너무 좋아해서 일이 곧 나’인 사람들과 ‘일하기 싫어서 떠넘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은 없는 건가… 하는 부정의 부정 연속이었다. (전자는 위험했고 후자는 한심했다. 나는 어땠나. 후자가 되기 싫어 전자라고 최면을 걸어보았으나, 아닌 건 아니라는 씁쓸한 인식만 남아) 이젠 일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일을 떠넘길 수도 없게 된 제3의 지대를 개척해야한다.

사실 일단 그저 살아남자🔥 살아남아야 한다!!🔥모드 였는 데, 회사에서 처럼 무조건 존버!도 아니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도 내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라 어리둥절이었다. 그리하여 혼자 일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 이야기는 도움이 되었다. (다들 기본 적으로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라 멋있어서 좀 쭈그러든 건 사실임..) 신입 때 눈물 콧물 쏙 빼가며 일을 배우는 것 처럼, 내가 나를 잘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프리랜서로의 기량을 갖추는 출발점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퇴사를 하고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불안함도 있지만 이제야 내 삶이 내 것이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더 많다.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오전의 햇살을 가로질러 산책하고, 집안을 정돈하고 책상 앞에 앉아 저녁 늦게까지 집중해서 일하고, 맥주 한잔 하면서 책이나 영화를 보는… 나는 나랑 잘 지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신입 프리랜서다. 


“(210) 가끔 나는 자문해본다. 혹시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가? 조금만 피곤하면 쉬라고 하고, 작은 미션 하나라도 완료하면 마구 보상을 주려 하니, 이거 너무 자신을 삼대독자 대하듯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캄캄하고 외로운 터널에 들어선 이상, 나는 억지로라도 나에게 잘해주려는 태도를 조금 더 고수하고자 한다.
(…)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별다른 게 아니라 마음이 요구하는 바를 귀담아듣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그다음에 온다. 스스로를 아낀 힘으로 타인도 아끼고, 자기 내면을 살핀 눈으로 세상도 살피고 헤아리는 일. 그래서 세상에 꼭 필요한 목소리와 시선을 만들어내는 일. 쉽지 않은 그 단계를 가능케 하는 마음의 근육이 사실은 자기 돌봄의 지난한 노력 속에서 키워지는 거라고, 집순이는 오늘도 굳게 믿고 있다.”


저는 종종 휘청입니다. 저에게는 포기되지 않는 상실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을 비뚜름한 눈으로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희구합니다. 저는 주저앉아 웁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씁니다. 울음 사이에 떠도는 공기에서 단어를 가져와 글을 씁니다. 저에게는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부유하는 탐조등처럼 제 쪽을 아주 가끔 비춥니다. 환상처럼 나타나는 그 세계를 등대 삼아 더듬더듬 나아갑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방황을 계속해왔습니다.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의 유구한 게으름과 한량 같은 태도와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성질을 규율과 성실로 덮어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읽고 쓰는 것을 너무 사랑해서 저를 바꿨습니다. 필요하다면 저는 저를 몇 번이고 바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읽고 쓰는 일을 하는 삶이라니. 부럽기도 하지만 괴로울 것도 같은 그 일을 너무 사랑한다는 천재 북튜버 김겨울님 - P21

나는 나를 ‘능동형 외톨이’라 부른다. 능동형 외톨이는 글을 쓰며 살기 적합하다. 능동형 외톨이가 되면 좋은 점은, 외톨이가 될 확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외톨이니까 외톨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외톨이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 상황이 아니다. 조만간 ‘은둔형 외톨이’같이 부정적인 외톨이 말고 긍정적 의미를 가진 다양한 외톨이들이 생겨날 거라 믿는다. 어떤 외톨이가 됐든 긍정적 의미를 가진 외톨이가 되려면 외로움을 견디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김개미 시인의 외톨이론. 천재다. - P35

다른 한편으로 SNS는 직장인보다 프리랜서에게 더 해로울 수도 있다. 출근하면 별일 없는 한 월급은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이다. 그렇다고 해도 생산성만 따지는 삶은 너무 팍팍하다. 딴짓도 약간은 해야 기름칠이 돼서 부드럽게 굴러간다.
🥺은 북플에 빠진 나인가… 하며 읽었다. 오전내내 기름칠만하던 나여… - P96

결국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2020년 들어 어쩔 수 없이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는 홈트레이닝을 꾸준히 한다는 점이다. 유튜브에서 만난 ‘자세요정’ ‘듀잇’ 채널은 비대면 시대에 나의 체력 관리를 돕는 스승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사랑은 유명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어봐도, 자신을 지탱하고 견뎌내는 힘의 근원은 체력 관리와 규칙성에 있다.
회사의 구성원일 때는 내가 아파도 대체할 사람이 있다. 반면 혼자 일하는 나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체력은 자신감의 근원이자 실력이다.

🥺 건강! 명심!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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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2-09 2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공쟝쟝 2021-12-10 00:1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잭와일드 2021-12-09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12-10 00: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처럼의 당선이라 벅차오르네요 ㅋㅋ

초란공 2021-12-09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전통시장 옆에 사는 저는 붕어빵이나 호떡, 수수부꾸미 같은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워 졌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런가? 싶었네요. 건강 잘 관리하시길요~

공쟝쟝 2021-12-10 00:12   좋아요 1 | URL
수수부꾸미... 하앗! 초란공님 <단순한 진심>이라고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있는데요.. 거기 부꾸미 나와요 ㅋㅋ 응?! 먹구 싶다.. 12시...

러블리땡 2021-12-10 0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요즘 공쟝쟝님 아이디만 보면 페미책장이 생각나요 ㅎㅎ 굉장히 부러워했다는 ㅎㅎ)

공쟝쟝 2021-12-10 08:49   좋아요 1 | URL
흐하하하 그 책장은 아침밤낮으로 제가 계속 감상중인데 아주 오져죽겠어요. 우주 대 석학이 된 기분이고 ㅋㅋㅋ 자신에 대한 긍정이 막 혈관타고 한바퀴 돌고 내가 내 자신에게 치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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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제국주의 - 누가 블록체인 패권을 거머쥘 것인가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40
한중섭 지음 / 스리체어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하나, 2000년대의 한창 모 지방의 대학 강의실. 참여 민주주의의 확대로 기대되던 인터넷이란 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고 있는지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세상에 이런 걸 배울 수 있다니(!) 대학생이 되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더란다. 이제 막 친구들과 싸이월드 도토리를 주고 받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인터넷 상업화와 관련한 리포트를 써야했을 땐 머리에는 쥐가 났을 테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해피 캠퍼스’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지더라. 리포트란 돈주고 ‘살’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 


둘, 페이스북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아무말 대잔치가 지겹다고 생각하던 시기 넷플릭스 다큐 <소셜 포비아>를 봤다. 확증 편향을 다루고 있는 내용을 기대했지만(당연히 그 내용도 다루고 있다!), 더 놀라웠던 건 공짜라고 여기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개인정보 데이터들이 페북에 어떤 식으로 돈을 벌어다주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십오년 전처럼 역시나 공짜는 공짜가 아니었다. 웹브라우저에 주렁주렁 달려 귀찮게 따라붙던 광고 팝업들이 SNS안의 소름 돋는 맞춤형 광고서비스로 바뀌어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나는 한껏 팔려있었던 거였다. 그 뿐이겠는가. 예측 가능한 나의 소비패턴으로 적절하게 생산-유통 된 제품들은 아마도 누군가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셋, 플랫폼 노동 관련 독서 중이었다. 맙소사 이 따금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클릭했던 귀찮은 사진들이 구글의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나의 무료 노동이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온 인류가 함께 해운 봉사 덕에  데이터들은 ‘빅-데이터’가 되어 4차 산업혁명의 원료로 쓰이게 되었다. 10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완전하게 세계를 장악한 실리콘 밸리의 플랫폼 기업들이 그 모든 데이터로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 은퇴한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겠다며 온라인 원서 접수를 도와달라 하신다. 큐알 체크인도 못하는 아빠가 카카오택시 서비스는 할 수 있을까? 염려를 내색 하지 않으며 괜시리 자율주행 자동차를 검색해본다. 그러고 보면 꾸준히 나는 그런 것들에 흥미를 느끼고 궁금해했다.


마지막,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지금이야 투기와 한탕주의의 대명사처럼 언급되고 있는 것이 “비트코인”이지만 이 기술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 금융자본과 달러 패권을 비난(!)하면서 등장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난 석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크립토 관련해서 처음으로 다산북스의 <넥스트 머니>를 읽다가 얼마나 황당+당황했던지…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군.) 탈중앙화와 프라이버시의 깃발을 휘날리며 등장한 사이퍼 펑크(cypher-punk)들이 주장하는 세계는 초창기 인터넷 무정부주의자들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크립토지지자들이 안내하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토큰경제가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에 기반한 글로벌 시민들의 보다 민주적인 경제활동을 열어줄 것이라는 낙관적 세계에 기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69) 그러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전으로 인터넷 기업을 일궈 낸, 한때 순수했던 괴짜들은 대부분 상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권위적인 (표면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주창하지만) 황제로 변했다. 디지털 제국의 황제들이 각국의 정치인들과 결탁함으로써 인터넷은 이제 완벽한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한때 분권화, 민주화를 꿈꿨던 인터넷의 부식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이 모든 부작용을 염두에 둔 채 악의를 가지고 아이폰을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는 대부분의 기술 예찬론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인 기술의 긍정성에만 주목했을 뿐이다. 설사 그가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예견했을지라도 애플 제국을 최고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을 꺾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조심스러운 추측이다.”

“(208)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인해 디지털 제국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디지털 제국주의 1.0이라면 *블록체인은 디지털 제국주의 2.0이라는 의미다.* 탈중앙화를 부르짖는 블록체인 이상주의자들의 계획은 상업화와 규제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오히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기득권 국가와 기업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책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제국’의 입장에서 비트코인의 전망을 내다보는 책이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거대한 사기극으로 취급한다거나, 사토시 나카모토가 NSA라는 음모론을 펼친다거나, 유시민 아저씨의 말마따나 “(14)비트코인 도박판의 승자는 채굴, 거래소, 그리고 투기 자본을 운용하는 주체”라는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저자는 ‘디지털 금’이라고 표현하며, 향후 비트코인 본위제까지 내다본다) 설명하되 인간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대해서 짚는다. 인터넷이 어떻게 상업화되고 강대국의 이익에 복무했는지 살펴보면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비트코인 생태계를 환기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111)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의 상업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외에도 블록체인의 탈중앙화가 실현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기존에 권세를 누리던 제국주의자 상인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는 점이다. 특히 월가의 금융 자본과 실리콘밸리의 산업 자본이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120)  키프로스 사태는 2008년 금융 위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 실패한 경제 정책 및 저조한 성과의 책임을 져야 할 소수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정부는 다수의 시민들로부터 재산을 상납할 것을 요구했다. 시민들의 세금을 걷어 대형 금융 기관을 구제한 2008년의 불공정 거래가 똑같이 재현된 것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비트코인 덕분에 시민들이 중앙 권력의통제를 피해 재산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키프로스 사태뿐 아니라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울 때마다 비트코인은 빛을 발했다.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북한의핵 실험 등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상승했다. 이는 비트코인의 안전 자산으로서의 잠재력을 시사한다.*”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관점(자본주의 비판)은 내게 매우 익숙하다(독서 주종목 이었다고나 할까🤭ㅋㅋㅋ) 읽으면서는 그 어느 책을 읽을 때 보다 집에 온듯한 편안함을 맛보았다. 물론 나에게 익숙한 시각이 좋은 시각은 아니란 건 안다. 그러나 이 편안함이 너무 오랜만인거라 문득 페미니즘이 얼마나 어렵고 심오한 사상인지 깨달았… 😲 


아무튼 책은 내가 크립토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부럽고도(아직도 천진할 수 있다니) 의아했던(약을 잘파는 데?) 부분을 해소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이 현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와도 시선이 가장 닮아있어 내놓는 전망에도 수긍이 갔다. 기술과 현상 자체는 건조하게 인정하면서도 너무 모여라 꿈동산은 아닌 태도. 다 좋다치자. 기술 좋고, 의미 알겠고, 낙관 좋은데, 솔직히 그렇게는 안될 것 같은 데? 블록체인이 인터넷처럼 상용화 될 거 같긴 한데, 그게 더 좋은 세상 확실해? 이게 만약 극단적으로 간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등등. 그게 좋을 수는 있는데 정말 좋은 건가? 그게 나쁠 수 있는 데 그게 진짜 나쁜건가?의 태도랄까.


“(239) 시민들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블록체인 식민지는 서서히 금융 시장을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에 내줄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분명 블록체인 식민지가된다. 완전히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시민들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며 얻는 경제적 혜택에 만족할 테니까.* 하지만 국내 금융 기업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을때 쯤, 국내 금융 산업 관계자들은 부랴부랴 ‘한국형 비트코인은행’, ‘한국형 디지털 자산 플랫폼‘ 따위를 논할 것 같다. 그러나 부디 여기에 세금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인터넷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도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산업이다. 이미 우리는 ‘한국형 유튜브’, ‘한국형 넷플릭스’, ‘한국형 페이스북’을 만들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블록체인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규제 환경과 금융산업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바뀌어야 한다. 아니, 지금부터 바뀐다고 하더라도 이미 너무 늦었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아서 뭔가 더 뼈 때리는 문단도 맘에 들었다…. 옮겨다 적지 않았는 데, 빅데이터 시대의 시민들이 정말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정보 좀 넘겨주고 더 편하게 사용하고 돈도 받으면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는 문단도 어디서 봤었다ㅋㅋㅋ 빅 브라더에 대한 자발적 동의, 어, 그러네. 어쩐지 묘하게 설득력 있어…


“(106) 그러나 탈중앙화가 본격적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탈중앙화는 유토피아다. 다시 말해 실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탈중앙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실현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이상주의자들의 희망 사항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철학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고 앞으로도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들이 이미 인터넷 산업 선배들이 빠진 늪으로 발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상업화의 유혹과 정치권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어떤 가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믿을 만한 % 보다는 심리적인 문제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지식과 정보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소화하지 않는다. 정보과잉의 시대에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느끼는 걸거다. 가치(혹은 성장 전망)에 대한 믿음이란 결국 그 사람이 가진 욕망의 종류를 보여주는 문제랄까. 나라를 믿고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기대할 것이 있었던 사람들일 테고, 비슷하게 지금의 ‘코인충’이라고 불리는 크립토 지지자들은 (그들이 희망하는 미래가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결국은) 저성장 사회에서 한몫 단단히 잡아보려는 계급 상승욕망이 투영된 이들인 것이다. 기술에 따르는 탈중앙화는 그럴 듯한 명분. 


나 역시 그렇다. 만약 내가 비트코인의 가치를 강하게(!) 믿는다면, 그건 내가 투자를 해서 믿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나는 이 가치를 아주 아주 미약하게 믿는다.ㅋㅋㅋ 가치가 아무리 강해져봤자 득볼게 없을 만큼, 가치가 아무리 떨어져봤자 아쉽지 않을 만큼을 믿어. 거의 나라 걱정 하는 것과 비슷하게 믿어… 기대와 믿음의 분산 투자랄까…🙄 


책이 설명해주는 대로 인터넷 상업화의 역사를 주욱 따라가다 보니, 스무 살의 강의실이 떠올랐고, 이걸 쓰면서 그때 써서 냈던 내 레포트를 찾아 보았다. 당시의 내가 전망했던 미래가 궁금했다. 하지만 레포트는 유실되었고 레포트를 쓰면서 투덜거린 싸이월드 일기가 발견되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가관이다. “결국 인터넷도 빈익빈 부익부다. 나는 가난해서 스킨을 입힐 돈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 난 똑같다. 한결같아. 한결같이 가난하고, 한결같이 불만이 많으며, 궁금해만 하고 그걸로 금전적 이득되는 일을 추구하지는 않고, 그러다가 말고… 😭 문제다. 15년 뒤에도… 또 이러고 있는거 아냐? 안되는 데, 집사야 되는 데.


8월이 시작되면서 노동소득 모드의 나를 동기화 중이다. 오랜만에 일하려니 온 몸이 배배 꼬아지고 죽겠다. 지난 시기 노동모드일 때는 하루가 너무 바빠 감히 투자?? 재테크?? 금융소득??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덕에 ‘집’ 이라는 선명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고, 오로지 적금 뿐이었던 경제 관념에서 벗어나 이것 저것 두리번 거리게 되는 것이다. 실은 백수기간 동안 주식관련 책을 읽으려고 했었는 데…. 멀어진 친구가 코인으로 집을 샀다는 소문이 들렸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은 코인에 아주 제대로 물려서 표정들이 부쩍 안좋아졌고… ㅋㅋㅋ 이 지경이 되도록 나만 모를 수 없어서 코인 책을 읽기 시작했는 데(코인을 할 생각을 안하고 코인 책을 읽기 시작했)… 재밌었다. 어떤 기술과 아이디어, 그것들을 추동하는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함수, 미래에 대한 전망 등등 지적으로 무지 동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백수 기간 동안 오로지 유희만을 위한 독서 중 유일하게 나의 금전적 욕망(?)이 투여된 분야는 크립토 책읽기였다…. 많이 읽었으니 이제 그만 읽고, 주식 책을 좀… 이라고 해놓고… 오늘 도착한 책에 또 비트코인 책이 있네… 😱 나여, 적당히하자… 이제 그만!!



인상적인 것은 초창기 인터넷 산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반권위주의, 무정부주의 가치관을 지녔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6년 존 페리 발로John Perry Barlow가 인터넷에올린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 선언문’은 "산업 사회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넌덜머리 나는 괴물아. 나는 새로운 마음의 고향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두고 떠나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네게는 없다"로 시작한다.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 혁명이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 P45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피조물을 창조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과 사토시 나카모토에게는 비슷한 면이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창조한인물(혹은 그룹)이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인터넷에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 이라는 9페이지의 백서를 올렸다. 백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금융 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 화폐다. 주요 특징은 개인 간네트워크를 통한 이중 지불 방지, 조폐 제도 혹은 다른 중앙화 기관 배제, 참여자의 익명성, 해시 스타일의 작업 증명에 기반한 화폐발행 등 이다. - P80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것은 디지털 제국이다. 정보의 바다를 장악한 인터넷 기업들이 가치의 길목마저 장악해 전 세계를 상대로 금융 산업을 전개한다. 월가 금융 기관들은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리콘밸리 인터넷 기업들과 제휴를 맺으려 들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비트코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다면 중앙은행들과 IMF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 P158

비트코인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은 결코 비트코인이 성공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오해다. *비트코인의 대중화로 가장 득을 보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의 금융 자본은 비트코인을 하나의 대체 자산으로 분류해 새로운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산업 자본은 비트코인에 기반한 금융 및신원 인증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달러를 대체할 기축 통화라기보다는 금과 같은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트코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들이 대중화될수록 미국의 감시 범위는 확장된다. 미국이 자국의 인터넷 기업들을 활용해 전 세계 정보의 흐름을 감시했던 것처럼 돈의흐름마저 감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209

종합하면, 인터넷 생태계가 미·중에 의해 철저히 양분된 것처럼 *블록체인 생태계도 결국 미·중의 주도하에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트코인과 비트위안은 각 진영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은 미국이 설계한 질서하에 전 세계적으로 쓰일 것이고 비트위안은 중국 내수시장에서만 쓰이거나 일부 반미 국가에서도 통용되는 수준으로 제한된 확장성을 지닐 확률이 높다.
- P212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은 미국 인터넷 기업이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통 금융 기업의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자산은 미국 인터넷 기업들의 금융 사업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자산의 잠재력을 간파한 미국의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은 전 세계를 무대로 금융 사업을 벌이기 위해 발 빠르게 네트워크를구축하고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두 네트워크는 바로 스타벅스 - ICE - 마이크로소프트와 골드만삭스-애플이다. 페이스북은 아직 월가 금융 기관을 네트워크에 포섭하지 못했는데, JP모건, 씨티 등과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월가 금융 기관과 실리콘밸리 인터넷 기업 간의 네트워크 형성은 앞으로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 P215

저자는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다. 냉철하게 다가올 미래를 인식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생존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진정한 개인화와 분권의 시대는 오지 않겠지만, 정보와 자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을 방법은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등장하는 새로운 개념들은 이해할 새도 없이 우리의 삶에 뿌리내린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거대 제국이 이끄는 세계, 제국에 복무하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돈.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면 10년 후의 미래를 더 명확하게 그려 낼 수 있다*. 역사를 바탕으로한 현실 인식 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제국의 시대에 대비하는 창조적 파괴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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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8-08 09: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페이퍼 맛집 맞군요. 큰 깨달음을 얻기에 저는 너무 일천하지만, 찬찬히 두 번 읽고 좋은 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돈은 사람 사이의 약속‘ 뭐, 이런 정의에 밑줄을 긋고 살고 있네요. 거대한 세계 자본 앞에서 쪼꼬미 한국 자본이 무슨 힘이 있을까요. 한국은 블록체인 식민지가 된다, 너무 암울한 전망이기는 한데, 코인은 커녕 코인책도 안 읽는 나는 어쩔.... 쟝쟝님 통해서 배운만큼이라도 이해하자,가 제 목표입니다.
오늘도 덥대요. 그렇다고 하네요^^

공쟝쟝 2021-08-08 10:43   좋아요 3 | URL
암울하지 않아요~~!! 식민지가 되어도 우린 좋은데? 이럴 수 있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 네이O 카카O가 없없으면 저희는 이미 구글 페북 식민지 됐을텐데요! 하지만 식민지가 그렇게 나쁜가 싶은 게 전 넷플릭스보고 지메일씁니다ㅋㅋㅋ (주식은 카카오에...꺄하하~) 그래도 나름 든든한 국내산 플랫폼 서비스가 양대 산맥으로 있으니 너무 속수무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블록체인은 정말 모르겠어요~ 되려 삼성이 삼성페이로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고 책에 나와요!! 우리 기업들도 실리콘밸리 걔네들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보면 제국주의자들인 거겠죠. 이제 한국은 식민지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새파랑 2021-08-08 1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시 일 시작하시나 보네요~!!이젠 일과 투자 두마리 토끼를 집는 건가요? 공쟝쟝님의 금전적 욕망 달성을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1-08-08 11:55   좋아요 3 | URL
욕망엔 끝이 없는 법이죠 엣헴!!!!!!!! 이곳은 일하기 싫어서 더 자주 출몰할 수 있습니다.

2021-08-08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8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8-08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류의 책을 읽는 대신 이런 류의 책을 읽고 써주는 쟝님의 리뷰를 읽겠습니다.
본문중에 페미니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제가 처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온 몸으로 흡수하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그걸 재미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보다 뭔지 알겠어! 하면서 막 짜릿하던 순간들이 페미니즘 책들 안에 있었어요. 크- 좋았습니다.
비록 지금 읽는 책들은 다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쟝님 책 많이 읽고 리뷰 많이 써줘요. 알았죠? 같이 똑똑해지자. 더불어 똑똑해지자!!

공쟝쟝 2021-08-20 16:52   좋아요 0 | URL
그럼 다부장님을 위해 제가 맞춤형(?) 천자만자 리뷰로 4차산업혁명의 세상을 안내….😂😂
저도 페미니즘 책을 온몸으로 흡수하던 좋은 옛 시절이 있었지요…. 막 막 나에게 언어가 생기던 입문서 읽기의 시절 🥰 똑똑헌 후렌드들을 만나 지금은… 그 쫙쫙 흡수된 언어들의 두꺼븐 원본들을 읽고 있는 데! 제 안의 익숙한 (이분법/남성중심) 언어들이 자꾸 눈을 비비게 하옵니다. 그러나, 행복해요! 전! 생각하는 방법마저 다시배우는 즐거움😘
 
부의 미래, 누가 주도할 것인가 -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혁명
인호.오준호 지음 / 미지biz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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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그림. 책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 데이비드 호크니의 <A bigger splash>. 그의 그림은 살아있는 작가들중 가장 비싸다. 그림 한장에 1000억원하는 것도 있다. 몇년 전에 그의 전시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 데, 액자 포스터 사려다 너무 비싸서 엽서 한장 사서 왔던 기억. 그런데 호크니 그림 2점을 2019년에 9900원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겐 세일 뭐 이런건 아니고, 호크니 그림에 대한 소유권을 ‘분할’해서 판매한 것이다. 


어떻게? 이더리움 토큰으로(맞다, 소설 <달까지 가자>에서 주인공이 영혼끌어서 투자한 그 이더리움. 비트코인 다음으로 잘나가는 코인.)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엄청 비싼 그림을 130명이 함께 사고 그 작품을 공동 소유한다. 산 그림은 어디에 있냐고? 애석하게 내가 샀어도 우리집엔 없어서 남들한테 보여줄 수가 없다. 근데 무슨 소유권이냐고? 소유했다는 권리는 블록체인에 저장된다. 나는 내가 산 호크니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거나 굿즈를 만들어서 팔았을 때 생기는 수익을 배당 받는다. 만약 그 그림의 가치가 올라가면 소유권을 팔아서 차익을 남길 수도 있다. 


예전에도 공동소유라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130명의 증명서를 떼주고 부터 등등의 과정을 맡아줄 중개자가 필요하고 거기엔 비싼 수수료가 드니까 안한 거다. 아날로그 자산이 디지털 자산으로 바뀌어가는 게 왜 혁명급이냐면 바로 이 수수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계약서-약정만 제때 제때 블록체인 플랫폼에 업데이트 해두면 수익분배 뿐만 아니라 소유권 양도도 거의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 은행이나 국가는 끼지 않는다. 거래는 국제적이다.


책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예시가 가장 직관적이라 느껴져서 가져왔다. 얼마전엔 뱅크시 그림도 이렇게 팔렸고 젊은 세대들 중심으로 이런 식의 아트테크가 유행한다는 후문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팔 수 있는 것은 그림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을 무제한으로 팔 수 있으며,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의 꿈 부동산을 그렇게 공동으로 사고 수익을 남길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아직 법제도 보완 필요) 이건 미래가 아니다. 그냥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유의 개념 자체가 바뀔거라고 책은 말한다. 


비트코인 / 암호화폐 / 블록체인 

두어달 관심갖고 이래저래 살펴 본 까닭은 가까이 있는 지인들의 코인으로 인한 흥망성쇠를 지켜보았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돈이 바뀐다는 데 어떻게 바뀐다는 건지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돈버는 지 알려주는 책들보다는 누구나 말하고 있는 이 기술이 어떻게 돈/투자/소유권 등 세상을 바꿔갈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더듬더듬 찾아서 읽었다. 대분의 책들은 새롭게 바뀌어갈 세상에 대해 낙관하고, 기술의 발전에 제도나 정책들이 따라오지 못해 대중들이 새로운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에 하나다. (걔중에 가장 약파는 느낌이 덜하면서 정리가 잘된 느낌이다.)


“(267)디지털 자산혁명은 세 가지 측면, *즉 자산의 토큰화, 거래의 자동화, 플랫폼의 탈중앙화라는 측면에서 혁명적*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가 디지털 토큰이되어 유동화합니다. 은행, 정부, 플랫폼 중개자 등 각종 중간 관리자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스마트 계약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래가 자동화합니다. 경제활동의 범위는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대되고, 부의 흐름이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 플랫폼 안에서 일어납니다. 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걸쳐 존재하되 거래와 관리는 절대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부동산, 천연자원, 기계 장치, 농산물, 예술품, 콘텐츠, 주식·채권, 탄소배출권, 개인데이터 및 빅데이터가 디지털 토큰으로 유동되고, 거래되고, 관리될 것입니다.이러한 디지털 자산혁명은 준비된 혁신가들에게 부의 미래를 차지할 기회를 줍니다. 그 기회는 디지털 자산의 가치 흐름을 잘 포착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 흐름 속에 크게 세 가지 비즈니스 기회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디지털자산의 가치 평가 및 투자 컨설팅, 둘째는 디지털 자산 신탁 및 토큰 발행, 셋째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와 기타 안전하고 편리한거래 환경 조성입니다. 이미 발 빠른 플레이어들은 가치사슬 흐름에 뛰어들어 서비스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입니다.” 


나는? 나는. 그닥 낙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암호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보다는 이제 ‘암호자산’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할 정도로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렸고(난 이 현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까지 된 건 일종의 학습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들 보다는 국가의 감시망을 피해거래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이용되고 있을거라 짐작한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것.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낸 맥락에 의존한다. (…) 포르노그래피 산업은 군대에서 개발한 모든 통신수단을 민간 상용 서비스로 재빨리 응용했을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댔다. 포르노와 군대, 현대과학기술의 상관 관계를 추적해온 과학전문기자 피터 노왁Peter Nowak이 직접 포르노 산업의 경영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단속과 법망을 피해 콘텐츠를 전달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 2000년대 중반 이후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보급되면서부터 모든 사람이 포르노그래피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전후 닷컴 기업들이 활로를 찾는 과정에서 포르노의 쓸모가 더욱 분명해졌다. 마땅한 수익구조를 찾지 못했던 닷컴 기업들은 포르노가 현금을 불러오고, 그 현금으로 포털사이트들의 광고수익이 보장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다. 2001년 야후와 MSN에 접속한 8,100만 명 중 3,000만 명이 이들 사이트를 거쳐 성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같은 시기 독일과 이탈리아 전체 웹 트래픽의 약 40%가 포르노 사이트로 향했다. 웹 트래픽은 포털사이트들이 광고면을 팔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전체 검색어의 25%가 성인 콘텐츠였고, 전체 웹사이트의 3분의 1이 포르노 사이트였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하루 조회수가 6,800만 건에 달하고, 1초에 2만 8,000명이 포르노를 본다.”

-알라딘 eBook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권김현영 지음) 중에서


이미 한국이 IT강국이 된게 포르노에 대한 욕망이었는 데, 뭘 더 바래. 저 책 읽을 때 전체 웹사이트의 1/3 포르노의 충격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처음에 비트코인썼던 애들 다 저런거 사고 N번방에 돈내고 그랬을 것 같다는 의심. 그러니까- 이 유용한 기술이 정말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줄 지에 대해서는 도대체가 좋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제발 나쁜놈들이 나쁘게 쓰는 것보다는 좋은 놈들이 좋게 쓰길 바란다. 진심으로. 정말로. 물론 현실의 함수에서는 선의와 이상보다 이해관계와 욕망이 더 쎄게 작용하겠지? 가만, 내가 선의와 이상이라고 했나. 암호화폐에 영끌하는 밀레니얼의 대부분은 어쩐지 생존의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러니까 이 책을 탁 덮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모두가 그래야하나. 우리 모두가 이 바쁜 와중에, 매끼니도 걱정해야하고, 오늘 업무량도 달성해야하고, 유행하는 넷플릭스도 봐줘야하고, 가족 지인 경조사도 챙기면서, 청소기도 돌리고, 틈틈히 건강을 위한 스트레칭도 해줘야하는 이 와중에 좋은 기회와 가치있는 종목을 찾아서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야하나. 이젠 정말 적금을 꼬박꼬박 부어서 그걸로 사는 집 평수 조금씩 넓혀가며 소박한 한끼를 행복하게 먹는 그런 삶은 갔나 싶은 것이고. 난 그런 삶을 원하지만, 그런 삶 정도를 원해서는 내 몸 정도를 겨우 눕힐 방하나도 갖게 되지 못할까봐 그게 걱정이고. 그러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모두가 그래야하는 삶’에 휘적 휘적 어정쩡하게 발을 얹어 놓는다.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삶을 만들고 있는 공모자들 중에 한 명.


부의 미래,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음. 어쨌든 나는 주도 못할 것 같다.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하려는 사람들의 대열에는 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좋아짐이 진짜 좋아짐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더 나빠질 것 같은 세상의 징후들이 감각되었을 때, 잠깐 멈춰 사색해 보는 것. 대세를 거스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너무 휩쓸리지도 않는 선택을 하는 것. 


나는 노력하고 있다.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더 나빠지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이런 내가 잘됐음 좋겠다. 그냥. 그렇다고. 



덧붙임,

그럼 기술자나 유관종사자 아닌 사람이 이 기술을 알아서 돈을 어떻게 버나요?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블록체인 기반해서 중개해 줄 플랫폼에 투자하라(호크니 그림을 블록체인으로 팔아주는 플랫폼).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시험 보지말고 부동산 블록체인 중개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할 기업의 주식을 사라(외국엔 있다). 당신이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될성부른 작가의 작품을 사서 미리 투자해라. 같은 방식으로 영화나 내 최애 아이돌에도 함께 투자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다 ㅎ 그런 식으로 건강한 가치에 소액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세계가 열릴 거니까 이젠 모두가 투자자가 되어야하는 세상이.. (오지마!! 싫어!!)

부가 증대하는 정도와 더불어 세계가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그렇지는 않다. 인류 역사에서 자산 불평등은 늘 있어왔지만,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는 동안 글로벌 차원에서 자산 불평등은 확연히 심해졌고, 양극화는 커졌다.
그렇다면 디지털 경제의 미래는 어두운 것인가? *그 대답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 고조기에 주목받은 블록체인 기술은 꾸준히 혁신을 거듭했다. 디지털 자산 혁명은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을 발판삼아 조용하지만 멈춤없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자산혁명은 자산과 서비스를 아날로그 세계의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끊임없는 혁신, 증대하는 풍요, 정의로운 분배가 선순환하는 부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 P36

그런데 비트코인을 ‘돈‘이라고만 여기는 것은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기반하여, 다수의 컴퓨터로 지급 결제를 검증하는 분산 컴퓨팅 시스템이다. 그런데 기존의 분산 컴퓨팅은 중앙 관리자 역할을 하는 메인 컴퓨터의 운영 지휘하에 여러 컴퓨터의 연산·저장 능력만 빌려다 활용하는 데 비해, 비트코인 시스템은 중앙 관리자 없이 모든 참여자가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합의제로 운영되는 ‘탈중앙 컴퓨팅’ 이다. 비트코인은 독자적 화폐로 지급 결제를 실행하는 최초의 온라인 탈중앙 컴퓨팅인 것이다. - P56

비트코인이 선보인 탈중앙 지급 결제 컴퓨팅은 *탈중앙 스마트 계약 컴퓨팅*, 즉 탈중앙 거래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 중개자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 온라인에서, 중개자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혁신적인 시스템의 이름은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탈중앙 거래 플랫폼의 이름이고, 이 플랫폼에서 지급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암호화폐는 ‘이더ether’다. 이더리움은 2014년 갓 스무살의 천재 비탈릭 부테린에 의해 세상에 선보였다. - P60

*탈중앙 디지털 화폐/(비트코인)/* 시스템, 그리고 *탈중앙 거래 플랫폼/(이더리움)/*의 등장으로 디지털 시대의 부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앙 관리자의 통제하에 존재하는 디지털 경제의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디지털 자산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자산혁명은 디지털 경제를 중앙 관리자의 통제로부터 해방시켜 진정한 글로벌 경제로 발전시킬 것이다. 또한 자산과 서비스의 디지털화를 촉발해 디지털 경제를 이상적인 수준으로 진화 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자산혁명은 이전까지 부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소유자, 금융기관, 대기업, 독점 플랫폼의 지위를 흔들고 *다수 대중을 새로운 부의 주체로 등장시킬 수 있다.* 소수의 손에 아날로그 자산이 집중된 사회로부터, 다수가 디지털 자산의 이익을 공유하는 사회로의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과연 그럴까요? - P63

디지털 경제 시대, 가치 있는 재산, 즉 자산은 무엇이든 디지털 토큰으로 변환되고 글로벌 차원에서 유통될 것이다. 암호화폐가 돈을 토큰으로 만든 것이라면, 부동산·슈퍼카 호화 크루즈선 기업도 그 가치를 토큰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디지털 토큰화tokenization 라고 한다. 토큰화의 대상은 예술 작품, 개인 정보, 지적재산권, 탄소배출권 등으로 계속 넓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모든 사물, 정확히 말하면 그 사물의 권리인 소유권, 사용권, 수익권 등이 디지털 토큰으로 잘게 쪼개져 유통될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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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7 13: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투자는 공쟝쟝님 글로 배워야 겠어요. 부의 미래는 공쟝쟝님이 주도 해주세요 😏

그림 정말 시원하네요~!!

얄라알라 2021-07-17 16:36   좋아요 2 | URL
저는 공장냥님 리뷰 읽으며, 제가 이해를 반도 못하는 수준으로 세상의 변화 따라 잡는 데 뒤쳐져 있다는 걸 느끼겠네요. 열심히 배우는 마음으로, 주도해주시면 따르겠나이다^^

공쟝쟝 2021-07-17 22:42   좋아요 2 | URL
저는 주도할 생각이 없어요 파랑님 ㅋㅋ 소소한 40평대 아파트를 위해 달려갈 뿐입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1-07-17 22:44   좋아요 3 | URL
얄라님 뒤쳐졌다니요. 전 모두가 그래야할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솔직히 말하면 제가 맺고 있는 관계 중에서는 알라딘 서재 동네가 거의 유일하게 투자의 무풍지대 ㅋㅋㅋ 그런 곳입니다 ㅋㅋㅋ 매우 소중 ㅋㅋ

scott 2021-08-06 15: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이달의 당선 추카~
호크니 그림보다 값진 ㅎㅎ 👆

공쟝쟝 2021-08-08 10:45   좋아요 2 | URL
(9900원 보단 책값삼만원 속닥속닥)

mini74 2021-08-06 15: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 첨벙 대신 당선 축하 *^^* ㅎㅎ 축하드려요 ~~

공쟝쟝 2021-08-08 10:46   좋아요 2 | URL
이 제도가 은근 쏠쏠하네요.감사합니다 >_<

그레이스 2021-08-06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공쟝쟝 2021-08-08 10:46   좋아요 1 | URL
아휴, 먼곳까지 오셔서 일일이 이렇게! 고맙습니당~

2021-08-06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8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1-08-06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공쟝쟝 2021-08-08 10:48   좋아요 1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8-06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공쟝쟝 2021-08-08 10: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위 건강하게!

서니데이 2021-08-06 18: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08-08 10:49   좋아요 2 | URL
언제 여기까지 오셨어요? ㅋㅋ 감사드립니당!

새파랑 2021-08-06 18: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완전 축하드려요 제테크의 달인이심! ^^

공쟝쟝 2021-08-08 10: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 2021-08-14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1-08-14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