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는 일주일 더 해야 한다. 약 하루에 0.15킬로그램씩 증량 중이다ㅋㅋ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병상 일지 페이퍼를 쓰라는 권고를 들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쓰라는 건 안 쓰고. 어제는 쇼파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안착하여 밀린 <눈물의 여왕>시청으로 감정 낭비를… 하느라 그만 지치고 말았다. 


[독서 중독자는 이 책이 뭔 책일지가 궁금하다]


용두리의 엄마 사투리가 넘나 고향 집이 생각나서(워매. 으째야쓰까잉. 엄마……) 즐겁게 보다가 막화에 드라마 속도가 너무 질질… 주인공이 “내 기억이 바로 나”라고 하는 장면들에서 정말 그럴까? 그렇긴 하겠지만. 그것만이 정말 너야? 따지고 들고 싶었다. “나로 살았으니 나로 죽겠다”라는 말. 그 완고한 [‘나’ 임 = 일종의 자긍심]에 대해 인정, 킹정 드리고 싶었지만.


논리적으로… 너에 대한 기억은 네 해마 말고도(몸도 있고). 모두가 나눠서 가지고 있잖아. 그 사람들의 기억들 역시 너라고. 즉 그들과 함께라면 너 자신을 잃어도 아주 다 잃은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살아. (드라마 넘 늘어지쟈냐) 얼렁 뇌종양 수술해. (참고로 여자 주인공 평소에 논리왕 임) 새로 태어나서, 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다 흡수해서 또 너를 만들어 가!


어쩌면 이것은 나의 사춘기 이후 (나름의 심각한 숙고를 거친 관계론적) 세계관이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세계관이 얼마나 나 자신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게 되는 논리로 수월하게 작용했던지에 대해서 적고 싶진 않다. 즉, 해인은 옳기도 하다. 나는 죽도록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만겠는 사람들에 대해 차츰 차츰 이해하고 싶어져왔다.


다, 다르잖아. 누군가는 영혼을 질식시키느니 가스 오븐에 머리통을 스스로 넣어 질식사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예)


다리 다치고 난 뒤 느닷없는 불안이 우주 통째로 밀려와서 밤에 잠들기 전에 엉엉 울었던 날, 딱 하루 있다. 불안한 건 너무 당연하지. 실컷 울고 나니까 개운해서 푹잤다. 몇 년 전에는 그걸 느끼지 않으려고 술을 잔뜩 마셨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다. 아마, 다쳐서 술을 마실 수도 없었겠지만. 그때에 비해 상황이 딱히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의 ‘실체 있는’ 불안을 셈할 수 있을 만큼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니. 역시 지금이 좋아. 가벼운데다 한가하기 까지 한 나는 드라마 속 무언가가 너무도 중요한 해인의 괴로움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았다.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것(남편 이름)을 외우면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 나는 무엇을 잃을 때, 가장 아까우려나.

불러야 할 것 같은 사람 말고 정말로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을까.

머리가 아닌 입술로 외워야 하는 이름이?

.

.

.

.

없다.

.

.

없네.

.

.

내 가벼움의 증거이며. 관계론 인생관 어쩌고로 살다가 제대로 큰코다친 자의 고독한 최후이다. (😭크흡)

.

.

.

나는 눈을 감기 전에 다시 태어날 내게 당부할 것으로 인간의 이름이 아닌 단어를 하나 정해두기로 한다. 체력, 체력, 체력 … 새로 태어난 쟝쟝아 너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야. (*나여, 온 몸에 새겨진 운동 못함 기억*을 상실해 줘.) 다시 태어나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시냅스들은 연결 안돼도 되니까… 근육 좀…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난 운동을 이렇게 못하는가. 왜 신은 내게 몸치, 박치, 음치, 런치를 주셨는 가.



서론이 길었네. 드라마 리뷰 아닙니다. 독후감 맞고요.

매일 쓰는 병상 일지는 좀 무리고 몰아 쓰는


#병상읽기 1.

“(55)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다리 부상으로 정형외과에서 읽기 좋은 책에 #카프카 의 #변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나는 출근을 안 해도 되고, 부모님은 내가 아직 그레고르가 된 것을 모르시며(영원히 모르게 할 계획), 살뜰히 들어둔 보험이 있는 데다, 각자의 *불행 앞에서만* 강해지는 자매애를 지닌 여동생이 둘이나 있다(그녀들은 마치 그레고르의 여동생처럼 청소기를 돌려주고 갔다). 그렇지만 고양이 털들과 먼지는 매일 쌓이는 법이다. 매 끼니는 내가 나에게 해서 먹여야 하는 것이다. 처음엔 확실히 거동이 힘들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든 것은.


“(60) 마침내 그 다리로 그가 원하는 동작에 성공했어도, 그 사이에 다른 다리들이 모조리 해방이나 된 듯이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버둥거렸다.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안 돼.” 그레고르가 혼잣말을 했다.”


ㅋㅋㅋㅋㅋㅋ 아....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이 나의 궁극의 수련 목적인 거시지만. 나는 타고 나기를 <눈물의 여왕> 속 홍해인이 아니라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에 이입하기가 더 수월한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불러보는 그 이름 잠자,냥) 드라마 속 홍해인은 재벌 3세라서 수술 만 받으면 살겠지만…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성원에게 닥친 불행을 인식하는 순간 부턴 잠자 씨네처럼 계산 촤륵촤륵 머리 굴리겠지.


- 꼭 살아. 살기만 해.

를 부르짖는 변호사 남편 김수현? 드라마는 판타지다. 로맨스는 판타지여. 즉 바쁜 현대인의 감정을 몰아서 쓰게 끔 잘 설계되어 있단 말. 나는 끊임없이 철철 눈물을 흘리는 두 배우의 절절함에 자동으로 함께 울고 웃는 것에 걸끄러운 나 자신을 의식하며 찔끔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아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왜냐, 우리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찬찬히 느끼면서 곱씹기엔 할 일도 많고 걱정도 많고 사야 할 물건들이 너무 많으시다.


바퀴벌레가 된 *평사원* 그레고르는 일단 출근부터 생각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대출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부장제란 무엇인… 사랑의 공동체인가. 기능의 공동체인가. 카프카는 알고 있다. 가족이 사실은 서로에 대한 명분의 공......읍읍🫢


아들 그레고르는 출근을 해야 했지만. 2024년 출근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들들이. 일자리가 없어요. 아, 그럼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맞추어 자기 계발을 해야죠. 살뜰히 남는 시간에는 투자를. 주식을. 코인을. 돈 벌기 참 쉬운 시절입니다. 부의 파이프라인을 2개 만드세요. 부업으로 자동 수익화를. 여러분 가난은 지능 순이며, 수저 타령은 루저들이나.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모든 것은 여자들이 살만하니까 눈이 높아져서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재벌3세는 나를 잃는 게 싫고, 소설 속 그레고르는 출근 못하는 걸 걱정하고, 현실의 청년 그레고르들은 출근을 하.고.싶.어.서. 걱정일 것이다. 


뭐 그건 이제 여남 상관 없다. *취업 당사자*가 되려면 이미 변신된 그레고르 취급을 받으면서 스펙을 쌓거나, 시험 공부를 하며. 집이 그 처지도 안된다면 똥 값인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경력은 쌓이지 않는다. 숙련이 필요없는 플랫폼의 시절이니까. 키오스크가 대체해서 알바 마저 쉽지 않다. 누구나 투자자가 돼버린 현대사회는 누구나 녹아내린 돈을 복구하기 위해 엔잡을 뛰어야 하는 상황. 나랏님은 대파 값도 모르시니 알아서 각자도생 모두가 경쟁하는 한국은 빨리 빨리. 그런데 정이 많은 한민족 우리에겐 걱정도 참 많고 이 걱정 저 걱정 남눈치 보며 방어하기 위해 사야할 물건들이 특별히 더 많으시다. 바쁜 우리 쉴 때 도 가성비 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다 보면 안된다. 유튜브로 한번에 몰아보기. 


지난 주 수업 마지막 날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 뭔 책을. 왜 (일반인이) 푸코 강좌를? 이렇게 열심히?

대략 이런 대답을 했다.

- 선생님. 저 역시 이런 걸 읽고 싶어 하는 제가 괴짜라고. 뻘짓이라고. 현실 도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걸 하고 있으면. *적어도 다른 걸 덜 해요.* 어려워서… 읽으면 지치거든요. 집중하지 않으면 못 읽고요. 유튜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만 뒤처진 것 같고, 인스타 보고 있으면 뭔가 사야 할 것 같고, 내가 엄청 못나 보이고. 어차피 느낄 자괴감이면 차라리 어려운 책 읽으면서 느끼자 싶더라고요. 다들 각자가 욕망하는 것을 선망/책망하는 구조라면 난 책으로 하겠다. 물론 그것도 책 읽어서 알게 된 거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지금은 좋아요. 읽다보니 남들한테 중요한 것이 나한테는 안 중요해졌어요. 그게 주는 해방감이 있다. 그러니 샘, 더 열심히 공부하셔서. 공부 많이 나눠주셔야 해요. 저는 알 것 같아요. 인문학? 철학?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이 평범한 사람일 수록 더 필요해진 세상 같아요.


#병상읽기 2.


어쩌다 보니 #나카마사마사키 의 책들을 좀 훑어봤는데. 이 사람 문체가 재수 없다. 사람이 뭣도 없이 저렇게 시건방을 떨면 내가 동질감이…읍읍🫢🫢 아니다. 뭐시 있으니까 건방진 것이다. (나는 없지롱 ㅋㅋㅋㅋㅋ 무지의 지가 아니라 무지의 건방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캉. 푸코. 아마추어. 푸하하. 미리미리 나대지 말자고 일러두길 다행. 안 그랬으면 이거 읽고 수치스러워서 냅다 던졌음. 나대는 스스로를 나댄다 알고 있기를 다행인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치고는 행동이 교정이 안된다. 나.는.내.가.기.특.하.단.말.이.다. 김수현도 없는 데 누가 나를 기특해하나. 나나 나를 기특해... 


또 얼마 전에 주워듣게 된 풍문이 있는 데. 철학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현대 철학은 너무 쉬워서 쳐주지 않는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웅. 헤겔 레스토랑 읽다가 알 것 같아지긴 했다ㅋㅋㅋ너무 쉬운 것도 어려운 나 자신을 인정합니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것이. 내가 아무리 서백남 통째로 재수 없다 씹어도 걔네가 그냥 세계 제패했겠냐고 뭐가 있응께 했겄제. 인정한다니까? 근데 남들이 쳐준다고, 나도 쳐줘야 하는 거냐?? 


제대로 읽은 사람들의 고상함이야 내 알 바 아니고, 각자는 각자의 읽기가 있지. 나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그걸 이해를 못하더라) 나의 아마추어임은 겸허하게 인정하는 바지만... 그렇다고 겸손해지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 프랑스 철학 쉽게 읽는 사람들은 좀 쉽게 써달라. 나는 내 기량에 맞게 조금씩 더 어려운 것을 긴장하며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 아, 나는 못 읽어. 보단 이 태도가 낫지 않나? 그럼 마저 자뻑을 하면서 일본에서 건너온 입문서들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암튼 철학 꼰대 냄시 철철 나는 나카마사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 시간>을 읽다가 점점 감탄하게 되어버려서 사람이 궁금해. 마지막 부분 저자 후기 먼저 읽다가 깨닫고 말았다. 나 *이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을 함께 싫어*한다. …… (역시 좋지는 않은 데. 싫지도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동질감을 느끼며.

“(520)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고) 세부 묘사 중에는 이러저러하게 불만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영화 관람이 끝나고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누구의 시점에 동화되고 감정을 이입할까? 거칠게 말해서 세 가지 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아렌트, ② 아이히만, ③ 아렌트를 아이히만의 편이라고 말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 그중 하나가 ‘정답’인 것은 아니다. 다만 무척 확실한 것이 있다. 아무런 의미 없이 ①에 동화하여 ‘감동’해 버리는 사람은 아렌트의 사상과 전혀 무관하다. 아니, 어떤 계기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상가를 만난다면 곧장 ③처럼 행동할 사람들이리라.

이런 질문을 하면 문화연구에 한쪽 발을 들인 바보들 중에 낭패 한 표정으로 이렇게 외치며 뛰쳐나올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니야, 제4의 선택지가 있어. 그건 이 영화도 표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야. 여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나카마사는 수가 얕다고 해야겠지. 역시 심오한 사상을 이야기할 만한 인사가 못돼!” 영화 자체를 보지 않더라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이런 생각을 트위터에 중얼거리며 낄낄거리는 놈들에게는 듣는 약도 없다. ①에 단순히 동화하는 사람들보다 질이 더 나쁘다.”

그러니까. 나는. 푸하하 나카마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제기랄. 팬심보다 강한 건 안티의 동질감이다. 정체성의 정치와 혐오의 쾌락이 그토록 위험하면서 치명적인 이유다.


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마도 ③번의 시점에 이입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정희진에게 배운 영화를 보는 방식이며. 아렌트와 관련한 책들을 읽을 때 스스로 가장 긁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적 당하는 순간의 부끄러움. 아렌트가 요구하는 끝끝내 사유하기를 중단했던 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어쩔 수 없었음. 핑계대고 싶음. 다 그렇게 살아라는 익명성 속에서 책임을 면피하고 싶은 자기 기만. 그리하여 내가 사유하게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음.에 머물러 있다. 현실직시의 어려움에 대한 현실직시일까나. 


#병상읽기 3.


아렌트를 좋아한다. 멋있다. 나와 많이 달라서다. 아렌트를 배우고 싶다.

#사만다로즈힐 은 이렇게 <한나 아렌트 평전>을 마무리 짓는다. 거의 98프로에 가깝게 동의한다.

“(309)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한나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것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나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병상읽기 4.

다시 돌아가서 까먹기 싫어 써두자 싶은 부분이다. (이거 쓰려고 앞의 썰 풀다 보니 엄청 길어짐 🫠)



토요일에는 결국 나카마사의 <현대 철학의 최전선>까지 구매해서 1장을 순.식.간.에 읽고 말았는데. 두둔. 탁월하다. 그래서 더 재섭다. (1장 한정) 롤스의 ‘정의론’으로 뿌리(맥락이랄까) 잡고 논쟁적인 부분들 탁탁 잡아채 정리하는 데. 이해를 명쾌하기가 이를 데가 없네. 와. 정석적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의 노트다.


이런 책의 장점은 왠지 다 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지만… 그게 저자가 제일 싫어하는 읽기 일 게 뻔하지만… (나카마사 아재여, 당신의 빼어난 필력이 자국 내 트이타 날라리 철학 평론 사태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랑가요? 아님 말고ᄏᄏᄏ) 하지만 <XXX의 인생 강의>류의 철학서 에세이조차 자기계발 시장에 밀리는 한국의 독서 생태계를 생각하면 이런 본격 인문학 입문서의 독자 시장 층이 형성되어 있는 일본 좀 부럽다.



그만 부럽고 <1장. 정의론 - 공정한 사회의 근거를 둘러싸고>을 읽다가 롤스와 하버마스에 동의가 절대로 안 되는 것이… 나의 당파성에 기인한 것임을 눈치 깠다. (아마 이래서 공부를 못했나 보다. 성질 급한 것도 있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과 학문의 ‘전제’에 동의가 잘 안됨.) 


이들의 (고상한) 주장에 대한 짜증스러움과는 별개로 그분들이 세우고자 하는 체계의 가치와 방향의 의도… 즉, 모종의 절박한 책임감으로서의 세계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인정하게 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언제나 우리의 문제는 [이론+도그마+기득권(옹호 무의식) => 내맞너틀, 내로남불]인 것이다. 그들의 이론을 무전제로 추종(?) 하는 세력들은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물음표를 압살한다. 그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데, 나더러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므로… 기분이 드러워서 나의 물음표는 결국 ‘권력’으로 가게 되어버린 것도 같아. (여기서 푸코 쉼표, 한번 눌러주기ㅋㅋㅋ)


주체할 수 없는 나이브함과 직관은 내 읽기의 강점이지만. 내가 느끼는 책임감보다는 훨씬 더한 책임감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 세상에 책임질 거라고는 나불대는 내 손가락과 나 자신뿐인 안 겸손한 나는 겨우겨우 겸손을 찔끔 배운다. (나에게도 차릴 체면이 있었으면 좋겠...지않다. 없어 다행.) 그러나 겸손을 배운다고 재수 없는 기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는 나의 이 감정이 곧 지성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책의 54페이지를 가져오겠다.


“(54) (롤스를 포함한 자유주의자들 전제의 역설을 지적한 아시아인 최초 노벨 경제학 상에 빛나는 아마르티아 센과 그의 공동연구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잠재 능력 측면에서 가장 곤란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되는 (개도국의) 여성을 기준으로 그녀가 어떤 처지에 있든 반드시 있어야만 할 최소한의 잠재 능력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 가치 옹호 차원에서 정당화하려 시도한다. 단, 누스바움은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처하게 만드는 관습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여성들, 요컨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자연’이라 여기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잠재 능력의 목록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그런 것을 제안받아도 갈팡질팡하거나 도리어 성가셔 할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하고있다. 이는 노르웨이의 분석적 마르크스 주의 철학자 욘 엘스터(1940~)가 <신포도>1983에서 이라 칭한 문제로, 페미니즘과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 확대와 급진적 사회 변혁을 동시에 표방하는 사회사상 분야에서는 늘 부딪히게 되는 난제다. 누스바움은 적응적 선호 형성이 건전한 인간성의 발전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이미 그런 식으로 적응되어 버린 사람에게 무리하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적응적 선호 형성’. 나는 내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엄청나게 스스로 처박았다.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좀 억울했지만 그 빡침을 이리저리 방사하던 시기도 지났다. 그게 나의 조건과 처지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선 거기까지가 다였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서 ‘자연화’해 버린 나의 자기 기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성가시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만나기 이전까지 아니 그것을 포함하여. 나의 ‘스스로’가 있었는가. 있었던가. 있었을까. 질문을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실은 모두가 ‘적응적 선호 형성 중’인 것이다. 자기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거기서 성가셔서 멈춘다. 멈춘 채로 살다가 더.는.이.렇.게.는.못.살.겠.을.때. 그때. 그때.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어쩌면 살만해질 때 질문은 끝난다.) 시작한 질문을 언제 어디까지에서 멈추는… 어쩌면… 거기까지가 딱 그 사람이 도달하는 인식이겠지만. 나는 치열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과정이 정말 너무 좋다. 고작 읽는 것뿐일 테니. 그 정도의 성가심은. 감수하다가 말겠지. 성가셔서 멈출 때 까지. 


아마도 그런 것 아닐까. 그 딜레마란 게. 특별히 제3세계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의 조건 아닌가. 홍해인에게도 잠자에게도 누스바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모두에게. 모두가. 각자의 적응적 선호 조건이 있다. 기억이. 재화가. 경험이. 문화가. 가까운 인간관계와. 매체들. 우리의 잠재성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 특히 나 자신이 가장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딜레마는 해결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간파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롤스의 정의론이 가진 역설들처럼. 심지어 다소 자명해 보이는 수학도. 물리학도. 아무리 엄밀한 체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에는 구멍과 역설이 있다. 누스바움의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것들이 화학 작용해서 빚어내는 알 수 없는 결과들을 진보로 애써 해석하지도 않지만. 다만. 이해를 다르게 하는 쾌락은 있다. 그 쾌락이 (이것 만큼은 공리주의적으로다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나도 책을 읽는 기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건 내게는 참 다행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로즈 힐.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변하는 현실이 있고. 내 삶이 있고. 계속 배열하는 내가 있다. 내게도 이야기가 있다. 내가 누군가가 아닌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가진 딜레마를 간파하고 싶은. 다른 딜레마로. 다른. 또 다른. 


*


그날 달리지 않았던 게 좋지 않았겠느냐고?

- 아니요. 지금도 빨리 나아서 달리러 가고 싶은데요.

- 왜요?

- 달리지 않았다면 달릴 줄 몰랐을 테니까. 이제는 달릴 줄 알고(물론 잘 달리지는 못한다), 그 쾌감을 느끼며, 조심히 살살 달리면서, 바닥도 잘 살피면서, 느리게 천천히 달리면 돼요.

- 그걸 꼭 넘어져서 다리 부러져 봐야 알아요?

- 꼭 넘어져야만 아는 건 아닌 데, 달려봐야 알아요. 음~~~청~~ 못 달려도요. 달리는 걸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카프카를 생각한다. 일과 글쓰기. 글쓰기와 일. 생존과 실존. 그는 분열 속에 살았다. 딜레마 속에 살았다. 나는 그의 글에 깊게 감동했다. 문학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철학 역시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논쟁되며 열려 있는 채다. 괴델도 하이젠베르크도 결국 그걸 말한다. 인간의 인식이 장담할 수 있는 닫힌 완결은 없다는 거다. 요즘 들어 자주 낙담하는 동생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겨. 물론 삶을 꼭 길게 살 필요도 없다. 


자, 이제 생존하러 갈 시간이다. 나의 딜레마를 껴안는다. 미래를 설계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불안해하느라 술을 마시게 될 테니까. 다시는 그렇게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낮잠을 잘거다. 나는 시간이 많다. 느끼지 않기 위해 취할 시간은 없다. 매일의 절단면을 만들어 둔다. 할 수 있는 걸 한다. 못하는 건 미룬다. 쓸 데 없이 침대에 누워있으면 안돼? 놉. 돼. 침대에 누워있어도 돼. 쓸데 없지 않으니까. (다만 누워 있을 때 폰은 끄자.)


시간이 흐르면 다리는 붙을 거고. 나는 일어날 거고. 충분히 누워있어도 된다. 누워 있는 것이 쓸 데 없다는. 생각.이 바로 현대인의 질병이다.


덧붙임, 참고 참으며 읽다가 병상 읽기4에서 결국 읽기를 포기한 당신. 이 있다면. 미안하다… 4장은. 오로지 미래의 나를 향해서 쓴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8) 나는 애도가 언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애도가 언제 충분해지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이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기존 생각을 바꿨다. 그는 성공적 애도가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의견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원래 우울증과 관련되어 있는 incorporation이 애도 과제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 하지만 나는 대상의 완전한 대체 가능성을 우리가 지향하기라도 하듯이 다른 사람을 잊는다거나 다른 무엇이 대상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 성공적인 애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애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어쩌면 영원히 변하게 된다는 점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아마도 애도는 미리 그 변화의 본격적인 결과를 알 길이 없는데도 그런 변화를 겪겠다고 (어쩌면 변화를 감수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동의하는 것과 상관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뭔가를 잃는다는 경험이 있는가 하면 또 상실이 초래하는 변화라는 결과가 있다. 후자는 그려질 수도 계획될 수도 없다.”

“(85) 내가 ‘너’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내지 않고서는, 너를 알려면 나의 언어가 부서지고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언어로 바꿔 말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내가 ‘우리’를 소환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너는 이 방향감각의 혼란과 상실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되는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존재하게 되는 방식이다. 다시 또다시,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서.”

- 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 -폭력, 애도, 정치>


사랑해서 아픈 거였더라고. 아픈 거 보기 싫다 치우라는 마음이 사랑을 없던거라 밀어내버리는 미운 마음이라 어찌나 분노했던지. 애도할 겨를도 없었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더 미안했어. 10년 전 그때는.

삶이 사랑과 이별과 애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슬픔과 고통을 쉽게 몰아내는 게 아니라 느끼고 인정하고 내 안에서 숨쉬게 살려둘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워. 나는 많이 변했어. 내 세계는 변했고… 그래도 잃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면서 그렇게 기억하는 중이야. 어쩌면 온전히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는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은 순간에서 또 나는 변하겠지만.

작년에는 <너와 나>를 봤어. 영화 보고 나서 그냥 그 말 해주고 싶더라고. 나도. 나도 사랑해🎗️


마지막으로,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 되게 해주는가? 우리의 위치와 역사가 다르다 해도, 내 생각에는 "우리"라는 말에 호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상실은 우리 모두를 어설프게나마 "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상실을 경험했다면 그것은 뭔가 소유했다는 것, 욕망하고 사랑했다는 것, 욕망을 위한 조건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4-16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틀러 책, 참 좋네요. 저는 오늘 처음 봤어요. 그러고 다시 봤더니 맨 마지막 페이지는 마리 루티 문장인가보다 ㅋㅋㅋㅋㅋㅋ맞나요? 고통에의 직면, 정면승부는 어려운 일이죠. 제대로 해내는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난, 생각합니다.
단지 그 과정을 지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의 곁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겠죠. 다시 쓰지만....
그런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쉽게 만나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쟝쟝 2024-04-16 22:49   좋아요 1 | URL
고릿적 ‘우울증적 이성애‘ 때 부터 버틀러의 애도와 기입(incorporation, 합체라는 번역을 참을 수 없다)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 데... 그걸 이렇게 정치철학적 비평으로 풀어내니... 버틀러... 넘...🥹🥹😩😩
짚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의 재난이란 911이란 말이죠. 911이후의 미국의 왜곡된 애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엇나갔는 지 어렴풋한 기억이 있고... 당시 ‘느닷없이 공격 받았다는‘ 미국 내의 정서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직면하기 힘든 미국의 어떤 징후(피해자의 오만..이라고 정희진의 워딩가져와봅니다)를 드러내는 버틀러의 정치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온전해지자.‘ 가 아니라. ‘우리 모두 상처 입었으므로 취약함을 살피자‘고 하는. 것은. 사실 고차원 적이죠. 아름답다와 별개로.

맞습니다. 마지막 검은 캡처는 루티(ㅜㅜ 그를 애도중인 나)입니다. 마리 루티나 제가 고통에 정면 승부 하자는 아니고요. 저는 10년 전의 ‘세월호‘를 떠올리면 일베와 장례 자체를 유난 떤다고 하던 어떤 사람들의 신경질적임이 생각 나거든요. 애도할 겨를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 조차 참을 수 없어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문장이라 가져왔어요.

고통 혹은 고통의 곁의 곁까지는 사실. 엄두 안나고. 다만 저는 애도요.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과 충분히 헤어지면서 혹은 간직하면서 다른 내가 되는 것요.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애도하는 일에 가혹해지지 않고 싶습니다. 음. 헤어짐의 고통은 소중합니다. 몸에 기입된 사랑의 흔적이니까요. 그건 재난이나 참사가 아니라도 언제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이기에. 거기서 ‘어설픈 우리‘를 도모해보자고 하는 버틀러의 제안을 찬찬히 따라 읽어가도록 해보겠스읍니다.
 


오늘은 왜 책 탑 사태가 이토록 웅장한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합리화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탑이 이 지경이 된 이유는


“(33)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효용성이나 상품의 사용가치를 따지면서 합리적으로 소비를 하는 게 아니다. 특정 상품이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사회가 그 대상에 어떤 기호를 부여하였는가를 의식하면서 *현대인은 자발적으로 강요된 소비를 한다.* 상품은 이제 사용가치를 넘어 특정한 의미를 지시하는 기호로 소비되고 있으며, 인간은 기호를 통해 욕망을 실현한다. — 김석 <자아>”


제가 소비에 능한 현대인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군군자자부부신신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유교사상(이번 생은 수신에만 머물러있기로 결단함)에 쩌들어있긴 하지만 책 많이 읽어서 제법 현대인이 된 고로. 이젠 “(33)타자의 욕망을 구조적으로 욕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무한정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만족이 아니라 결핍감만 더 커”진 좀비 상태 되겠습니다🧟‍♀️. 어쩌란 말인가. 나의 지적 초조함과 독서에 대한 허기는 무한정 욕망을 추구할 수록 더 갈급해지나니. 이 결핍-욕망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마음을 꾹 다잡고 손가락을 (쓱싹쓱싹) 아니, 왜 손이 이렇게 거친가? 핸드크림을 (처발처발) 향이 좋구나. (손가락을 자를 집중력도 없음...ㅋㅋㅋ) 



정신건강의학은 물론 뇌/신경과학까지 자기계발시장에서 활약하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그 이면: 나를 내가 어찌할 수 없음으로서의 자아) 실현의 대상이나 뒤늦은 적성검사가 아닌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각종 심리학/사회학 이론 + 라캉과 함께 콤팩트하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읽는 중 입니다만 ‘자기 기만’에 포인트를 두셨지 싶은데요, 기만하는 나 자신을 훑어내는 일은 꽤나 시금 털털하지만 한 번에 크게 많이 아픈것 보다는 조금씩 자주 아파 버릇해 두는 게 낫지 싶습니다. 그래도 전 아픈 게 싫어요. 좋은 책이라서 다 읽고 독후감 쓰고 싶은데. 결국 안 쓸 자아를 알아서 여튼 요 <배반 인문학 시리즈> 눈 여겨 두도록 합니다. 



타발적 고립 속에서 명란한(앗 오타인데 어쩐지 그대로 두고 싶다) 은둔자…모드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외롭지 않아!라고 떠드는 것이야 말로 자기기만이기 때문에 (아, 나는 어쩜 왜 이렇게 솔직한지)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를 구매하였습니다. 필사적으로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롭지 않고도 고독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싶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제가 터득한 방법이 있는 데.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적 최면으로 “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천재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저런, 겉으로 해버렸네) 뇌가 지치도록 어려운 책이나 읽는 것입니다. 뻘짓거리를 덜하게 됩니다. (책 쇼핑은 부작용) 아. 잡소리 그만. 그러니까 이 책은 고독한 천재 작가들의 유명한 글들을 모은… 앤솔로지입니다. <월든>도 <자기만의 방>도 <뉴잉글랜드 수녀>도 이미 다 책 있는데 (게다가 읽었는 데)🥲  그래서 책 받아보고 실망했지만. 


제가 읽고 싶었던 건 #엘리자베스케이디스탠턴 이었고(대단한 연설은 아니었으나 그 의의에 만족하는 걸로) 구매를 못 참은 건 바로 나의 사랑 #비비언고닉 슨상님의 아래 문장 때문입니다. 


“(148) 그러나 이 유럽인들과 지적 위상을 나란히 한 유일한 미국의 선구적 사상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이 펜을 든 첫 순간부터 ‘그들’이 아닌 ‘우리’라고 썼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가 되고서야 우리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페미니즘이 미국의 것이 된 이유다*. 울스턴 크래프트에서 보부아르에 이르기까지 유럽 지식인들은 자신의 이등 시민 지위에 분노했지만 남성 세계에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압도적인 갈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유럽 문화가 내면화한 힘은 엄청났다.) 이 갈망은 —강제하는 힘이 에로틱한—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분열로 무력해진 의지와 하나로 묶어버렸다. 한편 미국의 선구자들은 낭만적으로 끌어당기는 세속성의 힘을 향해 마음의 등을 돌리고 페미니즘을 에로틱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권리는 일편단심 열정이 되었다. 그들은 비할 데가 없을 정도로 단결해 평등을 추구했고, 비할 데가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었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은 지적인 뿌리를 유럽에 두고 있지만, 오직 이곳 미국에서만 자리를 잡고 운동이 되었다.”


- 비비언 고닉 <멀리 오래 보기>


역시 지적 오르가슴은 유럽 페미. 전투력은 미국 페미. 나는 누구? 한국의 점진적 소멸을 담당하는 중인 K-페미 되시겠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4B는 타발적입니다. 연애는 비싸고 감정 노동이며 나는 기력이 없다.) 오늘도 엄마는 카톡으로 꽃을 찍어 보내시며 피었을 때나 이쁘지 꽃이 다 지기 전에 시집을 가라하네. 그러든가 말든가 심드렁한 나는 시집이나 읽고 싶네.


여기까지 쓰니까 또 3,000자이기 때문에 주요 부분 위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페이퍼에서 아구아 비바를 읽으며 돼지 국밥을 말아먹음을 시인한 바 있는 저는… 사실 순대 국밥을 먹고 싶었는데… 집 앞 순댓국이 드릅게 맛이 없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좀 더 걸어서 돼지 국밥을… 왜 그러니까 왜… 하필 우리의 이름부터 고상하기 이를 데 없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언니의 문장을 읽으면서 내장순대돼지국밥이 그렇게 땡겼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구입한 언니의 두꺼운 일기장 (ㅋㅋㅋㅋ) <세상의발견> 추천사에 이런 문장이 떡하니 있는 겁니다.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뜨거운 내장을 내 손으로 쥐는 일 같았다”




아… 이거였네. 나는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돼지국밥(우적우적)을 먹으러 간 것. 쳇. 필력 부럽네.

제가 느낀 것도 비슷했다구요. 그저. 쓰지 못하고 먹으러 갔을 뿐… ㅋㅋㅋㅋㅋㅋ


저의 점심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오전 내내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해버려서 특별히 더 허기가 집니다. 오뎅탕을 데펴서 밥 말아으려고 준비해뒀는데, 지금 돼지국밥 각입니다. (응?)


컴북스 이론 총서 여성 지식인들을 쪼매씩 모으고 있습니다.  친구한테 선물 받았지요. #세일라벤하비브 #앨리러셀혹실드 


그러고 보면 책갈피에 남자 지식인들만 나오는 거 섭섭하다고 말하기 무섭게... 계속 발간되는 책들이 여성인거 보면...  세계 지성의 성비는 어느 정도 얼추 들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 지적인 여성들이 활약했기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문득 이번 총선 정치인의 성비는? 


물론 갈 길은 멀지만 책의 세계를 바라보며 낙관을 해 봅니다. (근데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이제 책 아예 안 읽기로 결단 한 걸까요? 자기계발서 말고는? 어쩐담.) 집 거실에 서양 철학사 연표가 붙어있는데요(앗 이것도 알라딘에서 판매중입니다 위에 링크 ㅋㅋ) 거기에 벤하비브, 이리가레, 아렌트, 보부아르 여성은 일케 딱 네 명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컴북스에서 나오는 책들이란... 재밌어요. 재밌는 일이 세계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느 정도 모이고 읽은 량도 늘어나면 컴북스이론 총서 여성들의 지성미 돋는 책장 사진 찍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푸코 읽다 철학에 진심된 여성의 거실 벽면...  미감 적으로는 썩 좋지 않다....>


음. (급 배고파져서) 이런 저런 재미없어 보이는 두꺼운 책들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걸 재밌게 설명하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닌데다 ㅋㅋㅋㅋ 너는 왜 이런 책을 읽는가?라고 묻는다면. 똑똑한 척 하려고가 1번이긴 한데… 사실 내가 너무도 평범한 지능의 인간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서… 아마도 그럴 듯한 이유 중 하나를 더 대자면 중고 구매한 이 책 <트라우마>엔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붙어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신학자, 철학자, 법학자가 된다. 그들은 묻는다. ‘왜?’ 정답은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다”


어차피 인간의 이해의 너머에 있다는 것 나도 압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게 트라우마 적인 상황이 되곤 하는 것은 마치 평생 건강할 것 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자기 삶에는 외상 따윈 없다는 듯 완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자기기만 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 까지 깨닫지 못하고 죽어버리기도 합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대상은 이제 없습니다. 왜? 글쎄요. 이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다만 질문은 남겨둡니다. 그건 나의 조건이며 덕분이고 재능이니까. 살아 남았으니 필요한 것은 내게 남은 것들을 잘 보다듬으면서 사라지는 것들과 충분히 이별하는 것 일 테죠… 헤어진 것들과 또 헤어지는 일이며. 헤어지기 싫어서 그걸 다 끌어안고 살겠다 우겨대느라 우울증자로 버티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정답도 옳고 그름도 없는 듯 합니다. 사는 건 말이죠. 하물며 책 사는 것은 더 그러합니다.



마지막 충동 구매 한 책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어슬렁거리다. 띠지에 붙어있는 이 문장을 보고 홀린 듯 결제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은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 행복해하면서 쓴 글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냥. 그랬어요.


요즘. 나는. 다행스럽게도 행복이 궁금한가 봅니다! 




덧붙임. 서재에 관심 없어서 트랙백 서비스도 스팸을 이유로 들어 중단한 (문의했으나 기약 없다고 함) 알라딘이여. 이미지 파일 사이즈 마저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잘라 붙여야 하면 내 페이퍼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어떡하라고. 여기 사람 있어요. 책 읽는 사람 있다고요. 관심 좀. 제발 관심 좀.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4-12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어마무시하네요. 근데 너무 두꺼운 책 많아서 어쩌지 못하겠는 분위기 알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의 발견>이 이럴 줄이야. 두꺼운 줄 알았지만, 헤겔 레스토랑이랑 막 겨루는데요.

저는 <자아>가 좀 궁금하네요. 한 문장평,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각종 심리학/사회학 이론 + 라캉과 함께 콤팩트하게 다루고 있는˝이 마음에 들어요. 고닉 책은 저도 읽는 중이고, 아렌트 책은, 나는 아렌트 표지로 있지롱!!!
<한눈에 보는 서양철학사> 저 연표, 어디 가면 살 수 있어요? 혹 헤겔레스토랑 사야 주는건 아니겠죠? @@

공쟝쟝 2024-04-12 16:14   좋아요 2 | URL
그 아렌트 책들 정말 부럽습니다 ㅠㅠㅠ 에이 또 나오겠지 나오겠지… 기다리다가 ㅋㅋㅋ 그냥 샀습니다! 아렌트 좋대놓고 저작 하나도 안 읽은 거 찔려서요!!!!
자, 북플에 직접 링크된 저 연표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약 25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히히😎

단발머리 2024-04-12 16:27   좋아요 2 | URL
나는 아렌트 표지 아렌트 책은 있고, 저 연표는 없는 사람이었죠.
이제, 아렌트 표지 아렌트 책 있고, 저 연표도 있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

잠자냥 2024-04-12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명란하다...
냥이들은 잘 있나요?
냥이들아 니네 집사가 밥 안 사주고 책만 사는 거 아니니?!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2 20:00   좋아요 1 | URL
명란책탑📚냥이들 근황도 전하겠습미다 ㅋㅋ!! 고층 캣타워를 설치하였거든요!! 넘나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는 뻥!) 의사 표시를 뭘 밀어서 떨치는 걸로 배운 새냥이 땜에 😢😢 집 살림이 남아나는 게 없습니다… 잠자냥 추천표 스크래처도 너덜너덜 해졋어요!!

2024-04-13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3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indy 2024-04-15 0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고 갑니다. 멀리오래보기란 책을 제 장바구니에도 담았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4-04-16 22: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신디님. 댓글 감사합니다!
자기서사 혹은 에세이의 장인이라고 많이 알려진 비비언 고닉이 아주아주 진지한 독자이자 훌륭한 서평가 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확 드러나는 책 입니다. 물론 등장하는 미국 책들을 잘 몰라서 난해할 때도 있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하기 위한 고닉의 지난한 과정이 느껴지기도 해서요, 독후감 잘쓰고 싶어라하는 저는 곁에두고 틈틈 꺼내 읽기로 했답니다.^^
 

오늘은 나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대해서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스타그램은 정말 요즘에 나를 웃기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솔직히 웃기기로 따지면 나도 엄청난 개그 욕심을 지닌 자매님들 사이에서 훈련이 되어있지만. 왜일까. 요즘 나의 개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성미가 줄줄 철철 넘쳐흘러서.......


돼지 국밥을 먹으면서 아구아 비바를 읽는 나의 활기찬 개그에 아무도 웃거나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인친이 많지는 않습니다만....그렇다하더라도) 웃기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내 인친 중엔 클라리시를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래도 이 농담... 여기서는 통하지 않을까? 기대 중)


그런데 진짜 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너무 좋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아구아 비바가 정말 너무 좋았던 건데 왜 좋은지 쓰고 싶은데 왜 좋은지 쓸 수가 없다는 것이 클라리시 언니에 대한 평가의 중론이라는 걸 압니다. 쓰는 것에 욕심이 제법 있는 사람으로서 샘이 났습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못쓴다. 저건 아무나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감정에 몸과 언어가 열려있는 천재 여자 사람이 써서 이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건드는 문장. 문장. 문장. 어쨌든 이런 걸 쓰는 리스펙토르여사가 너무 궁금해진 공쟝쟝은 역시 뭐랄까 모든 덕질의 시작은 사생활을 아는 것으로부터. 일기장을 훔쳐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엔 오늘 오만 원어치 클라리시를 질렀는데 책탑 사진은 애껴뒀다 나중에.



그런데 내가 이거 산 줄 어떻게 알고 오늘 오전 인스타는 내게 클라리시를 보여주었다.



.......... 나만 좋아하고 싶은데 광고 이렇게 떠버리면.... 내 좋아함이 진부해지잖아.

그렇다고 안 좋아할 내가 아니다. 그런데. 사실 클라리시에 대한 사랑 고백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본론입니다. 문제의.... 문제의... 문제의 페이지를.... 가져오도록 해보겠습니다. 기대하시라.


.

.

.





............ 미셸 푸코 티셔츠 미친 거 아닌가.......

하... 근데 내가 푸코 좋아하는 거 인스타는 어떻게 안 건가...........

처음에는 웃어넘겼는 데.....

다음 날엔.. 니체가...... 그다음 날엔 마르크스가 .......... 여러분 마르크스 바지 보실래요? 제법..핏이... 이걸............... 누가 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광고란 욕망을 촉발하고 현대의 자본주의 작동 원리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데다가...

그래도 살 만한 게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사이트에 방문해서

스피노자와 파이어스톤을 발견했다...

그리고 왠지 입고 있으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도끼옹까지.................


철학 독서로 터져오르는 공쟝쟝의 지적 허영심이 패션이라는 형태로 현실 OOO(본명)의 내 컨셉 마저... 잡아먹을 위기에 처했다 삐뽀삐보.....🚨🚨



(자꾸 이렇게 인 스타 알고리즘에서 나를 사달라고 꼬시는 이상한 독서인을 위해 만들어진 옷 쇼핑몰....)

......

늦은 밤, 어쩐지 올 여름엔 파이어스톤 반팔 셔츠를 입고 읽다만 성의 변증법을 완독을 굳세게 해내는 나 자신을 이미 상상하고 있고. 그 상상 속의 언니 머리 스타일 내 머리 스타일 언니 쓴 안경 비슷한 거 찾아서.. (응?) 이런 물욕 따위.... 아니 대체 이게 물욕이 생기는 종류의 옷입니까?라고 내 마음 속 깊은 나 자신에게 물어봤는데. 솔직히 만약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입어보고도 싶은 것이다.


아우씨. 입어서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좋쟈냥.


근데..... 푸코 셔츠를 정말 사는 사람 있을까? ... 나는.. 그를 좋아하지만 옷까지 해 입기엔 자신이 없다......


근데... 자꾸 보다 보니까 끌려서...... 이렇게 이러다 패션테러리스트너드익명의독서중독자가되는건가...심지어티셔츠에파이어스톤을걸치고 바지로 마르크스를 입고있으면......한국에서가장위험한페미빨갱읍읍...... (쿨럭!)


오늘의 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이딴 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쇼핑몰 광고 아님.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04-06 05: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ㄴ 나 저 니체 티셔츠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06 08: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06 0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 사서 입고 와요. 올여름 펜타포트 철학콘서트에~!!

공쟝쟝 2024-04-06 09:30   좋아요 1 | URL
ㅋㅋ그런 콘서트는 없는 것으로 밝혀져 🤣(또 뻥!)🤣 어쩐지 가면 냄새 날 것 같은 콘서트네요? ㅋㅋㅋㅋ 지식인냄새 ㅋㅋ

독서괭 2024-04-06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라라라하라라라ㅣㅎ

공쟝쟝 2024-04-06 09:3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안웃긴데 웃어준다 ㅋㅋㅋ 착한 잠사모 회장님 ㅋㅋㅋ 😆😆😆😆😆 자냥님 패션 케어 부탁드립니나!!!

독서괭 2024-04-06 10:08   좋아요 2 | URL
아니 진짜 웃긴데요 ㅋㅋㅋ 푸코랑 니체 어쩔 거예요 ㅋㅋㅋ 자냥님이 아무리 남의 시선 신경 안 써도 니체 티셔츠를 입고 다니지는 않고 은바오 감금 시키고 일 시킬 때 입히는 걸로 압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4-04-06 10:27   좋아요 2 | URL
니체 티셔츠를 입고 체인을 두른 펜타포트 락스타 잠자냥… 입술에 피어싱 두개 있고…. 그의 지하실에는 다크서클 내려온 카프카 셔츠입은 은바오가 학교다녀와서 자냥 청혼빙자 여심강탈 댓글생산…ㅋㅋㅋㅋ 검은 티셔츠는 고양이털 붙어요. 조심조심!! 돌돌이 드륵드륵!

잠자냥 2024-04-07 22:46   좋아요 2 | URL
체인 두르고 간 적은 없는데….. 그런 곳일 수록 저는 범생이 패션으로 갑니다… 😝

단발머리 2024-04-06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테일러 스위프트 티셔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일러는 예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공쟝쟝 2024-04-06 10:37   좋아요 1 | URL
입고 인증샷을 찍어보내지 않으면 펜타포트 철학감옥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갇힌채 감시와 처벌!! 재독 3독 4독. 수형자의 신체 다시!!!

달자 2024-04-06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돼지국밥엔 아구아비바(우적우적)”>>>여가서 1차로 피식하다가 푸코 티셔츠에서 폭소해버렸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심지어 9번째 재입고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06 23:50   좋아요 1 | URL
헤헤헷😆점입가경. 기승전결. ㅋㅋㅋㅋ 근데 정말 사입는 사람이 있다는!!!! 충격!!
 


그 문장이 왜 나를 불러 세우느냐면.
그 목소리가 왜 들리느냐면.

불렀으니까. 나를. 쓰는 그 사람이.
들렸으니까. 나는. 쓰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부르는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더 잘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가당치 않게도 내가 불렸다고 느끼는 사람은.

글씨의 사실은
비어있음을. 행간을. 백지를. 그 공백을 읽어보려 애를 쓰지.

그러므로 베유의 이 문장은 정말로 베유가 부르는 까닭에 가깝다.
비어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로 읽어 달라는 말. 그가 간절하게 부르는 사람.
실은 그것이 읽는 이의 엉큼한 쾌락이라는걸.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적어 보낸 편지들을 모조리 도둑질해서 쪽쪽 빨아먹는 기분. 아니, 그가 부르는 것이 나라고 착각하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면서.


#그렇게읽어도되냐고물으시면
#그렇게읽을때잘읽힌다
#도둑맞은편지가아니라도둑질한편지ㅋ


라캉이 기독교는 ‘진정한’종교라고 설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신은 모든 것과 관련해 탈-존 한다. "그는 탁월한 탈-존입니다. 즉 간단히 말해 사람으로 나타난 억압이며, 심지어 억압 속에서 전제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진리인 것은 이와 관련해서 입니다." - P203

라캉은 여기서 "나는 ‘스스로 있는’ 나", 즉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이 들려준 대답을 가리키고 있다. 라캉은 이것을 시니피앙이 결여되어 있는 지점, 상징적 질서에 구멍이 있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고 있다. — 그리고 이것은 강력하게 재귀적인 의미로, 즉 신은 우리의 언어가 미칠 수 없는 곳에 있는 심원한 현실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뿐만 아니라 신은 단지 상징적 질서(큰 타자) 안에 있는 이 결여일 뿐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성한 ‘나는 스스로 있는 나’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는 실제로는 데카르트적 코기토, 빗금 처진 주체를, 언표된 모든 것에 의해 드러나는 언표의 이러한 순수한 망실점evanescent point을 예시하고 있다. 이 아무것도 없음無 — 그것의 대리인(또는 플레이스 홀더 place-holder [빠져 있는 다른 것을 대신하는 기호나 텍스트의 일부])가 *대상a*이다. - P204

이 사랑의 초점 또는 베유(Simone Weil)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없거든 내가 당신을사랑한다는 말로 읽어라’이다. -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