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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피의 선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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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어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 주인공 소피를 생각하면 ‘학습된 무기력(혹은 무력감)’이 떠오른다. 선택지 같지도 않은 선택을 해야 하거나 자명한 생존의 선택 앞에 죄짓는 선택을 해야 하거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잃는 경험들의 반복은 그녀에게 지독한 죄책감과 학습된 무기력을 심어주었다. 


고통은 그 자체로 악은 아닐 거다. 다만 고통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동안 고통만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나쁘다. 고통을 방어하는 동안 다른 가능성이 소거된다. 더 좋은 선택지를 보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당장의 고통을 약화시켜줄 선택들을 한다. *분명 어디까지는 그것이 삶을 구원한다.* 그러나 어딘가부터는 삶을 옥죄기도 한다. 그 적절한 어디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어느 수준까지 망가져야 회복이 가능한 거지? 상처가 너무 깊어 그것을 방어하는 데 온 삶을 다 써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사실 그런 삶은 도처에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책은 아우슈비츠를 다루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상처 이후의 삶을 재건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인간의 무력감에 대해, 의존심리에 대해, 구원에 대해 생각한다. 


‘무기력-무력감’은 한때 많이 생각했던 주제다. 사춘기 이후부터 종종 방문했던 우울증의 징후는 언제나 경미한 무기력을 시작 지점으로 찾아왔다. 점점 일상을 돌보는 것이 소홀해지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그 시간이 시작되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삶 자체가 되었다. 나는 종종 지옥이 있다면 한증막 같은 곳 일거라 지금도 생각하는 데(덥고 습한 것을 정말 싫어한다) 내 우울은 그런 모습이다. 매우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하고 시야를 가리는 뿌연 습기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 나는 누워있고, 몸을 일으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는 데, 누워서 숨 쉬고 있는 상황조차 너무 버거운. 무거운 공기. 축축한 공기. 더운 공기.


그 무기력의 근본 원인까지는 모른다. 어떤 선택이나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 앞에 빈번히 조건과 현실을 이유로 거부당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지지나 격려가 없는 상태에서 보란 듯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내면에 내 선택이나 욕구를 믿을 수 있는 힘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학습된 무기력. 자포자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 무기력을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니 어차피 내 삶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내 자유의지로 해볼 만한 선택은 나를 망치는 것들이었다.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빤히 보이는 불행을 선택하는 주인공들— 그 이상한 심리적 역동을 이해한다. 그들과 다른 점은 다만 아주 대놓고 신나게 보란 듯이 스스로를 망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 제대로 망치는 것 역시 에너지를 (그게 분노 에너지라도) 요구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적당히 망쳐지고 적당히 수습된 나는 아주 간장 종지만 한 에너지 그릇을 수시로 비우고 채우면서 지내고 있다. 당신은 우울증을 극복했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어느 정도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울증이 찾아오기 전의 증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하고 있지 못할 때, 곧바로 무기력이 신호를 보내온다. 읽거나 먹거나 움직이기 싫다. 예전에는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실의에 빠졌는데 요즘은 내 무기력이 고맙다. 지금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중이구나, 알아서 척! 알려준달까. 싫은 것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꾹 참고 잘하기 대장이라서 좋고 싫음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무기력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기준으로 싫은 것을 골라낸다. 그리고 왜 싫은지 생각해본다. 전체인지 부분인지 부분이면 어디까지인지 잘 골라내서 싫은 건 되도록 피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나눠보고 현실적인 방법을 글로 써본다. 만약 우울증이 다시 찾아온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한증막의 기분을 느낀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토록 무겁게만 느껴지던 삶 자체가 살아볼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167) 그녀는 자신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음식을 먹기 직전의 그 신나는 순간, 그녀의 콧구멍이 피클의 짠 냄새와, 겨자 냄새, 그리고 레비스의 유대식 호밀빵에서 나는 캐러웨이 향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배에서 육감적인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만 보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호숫가에 배를 깔고 누워서 안도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겨우 살아남은 폴란드 여성 소피는 미국으로 이주해 음악과 음식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살아있음의 감각을 회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대도시의 지하철에서 성적 침범을 당하게 되고(이 장면도 역했다 ㅜ_ㅜ) 애써 그러모은 생의 의지를 순식간에 상실한다. 


그녀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가 구원해주길 원했던가. 글쎄. 도저히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기억한다. 내 앞에 놓인 어떤 삶도 살고 싶지가 않았었다. 누군가 그 삶에서 꺼내준다면 기꺼이 였을 것이다. 일단 거기서 빠져나와야 하니까. 죽은 듯 살던 소피에게 영화처럼 동화처럼 짠 네이선이 나타난다. 죽을 것 같은 그녀에게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부족한 영양상태와 건강을 돌봐준다. 나는 안도했다. 소피만큼이야 했겠냐만은, 곧 죽을 것만 같은 그녀에게 나타난 네이선이  고마웠다. (그가 스팅고에게 200달러 주는 것도 고마웠다. 나란 인간. 친절에 취약해ㅋㅋ)


“(248)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감을 느낀 그녀는 다시 피곤에 겨운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메스꺼움과 으슬으슬한 기운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를 사랑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연하지!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다만 너무 편하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잠이 와. 항상 불안했는 데, 안전하고 보호받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 사랑이 막 설레고 가슴 터질 것 같고 그런 건 아닌 듯. 이것은 나의 진술. 그 옆에서는 항상 졸렸다. 사는 게 치열했는 데 함께 있으면 무풍지대 같았다. 이해하고 이해받고 그런 건, 공감하고 공감 못하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 몰라라 의탁해버리고 싶은 기분. 그러고 다 너 때문이야! 탓해도 그는 기꺼이 자신 때문이라고 할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의존이 필요했다. 내가 안전함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순간부터 관계가 으깨졌지만. 어쩌면 그 의존의 경험이 꼭 필요했을지도 모르겠군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사실 그전까지는 의존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힘들다고 말하는 게 굴욕인 것 같고 그랬다. 생애 대부분 누군가들을 계속 보호하는 역할을 떠맡고 원치 않는지도 모른 채 반복했었다. 의존의 이면, 혹은 건강한 의존에 대해서 예전엔 정말 많이 생각했었다. 모두의 성격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맞는 의존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연애할 때의 나는 건강한 의존 상태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으나, 요즘 나의 화두는 의존하지 않고 —혹은 적당한 의존을 분배/관리하며— 살아가는 방법인 걸 보면 성격만큼 시기도 타는 것이 ‘의존’ 인 듯. 


“(2권 - 184) 어젯밤에 말이에요. 어젯밤에 스팅고, 당신에게 코네티컷에서 있은 일을 얘기해 주고 난 다음에 말이에요, 처음으로 깨달은 게 있어요. 네이선이 그런 식으로 나를 떠난 것을 내가 기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로요. 정말로 기뻐하고 있다고요. 그동안 나는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했어요. 하지만 그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죠. 그가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었어요. 아주 작은 일을 결정할 때조차 먼저 네이선을 떠올렸어요. 아, 알아요, 그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는 거. 그가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해 주었는지도요. *다 알아요. 하지만 그의 귀여움을 받는 새끼 고양이처럼 사는 것은 싫어요. 귀여움 받고 섹스하는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도 아슬아슬하고 취약한 상태에 있던 소피를 네이선은 말 그대로 구원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수시로 기분이 바뀌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네이선이지만 소피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착을 느낀다. 소설의 2권에서 네이선이 소피에게 대해 자아가 없는 것 같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 부분이 정말 역했다. 소설 주인공 스팅고를 포함해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욕망하는 까닭이 탁월한 미모에만 있지는 않았다는 확신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원한다. 아름답고 자아가 없는 그녀를. 방점은 ‘자아가 없다’는 데에 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학습된 무기력으로 삶에 대한 통제 감각을 잃어버린 아름다운 소피는 네이선의 통제를 기꺼워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오럴 섹스를 포함한 폭력적인 섹스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그걸 20세기 최고의 섹스라고 말하는 네이선에게 진짜 치가 떨렸다. (이건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 본인의 섹스 판타지이자 욕망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함)


나는 네이선의 말대로 그녀가 자아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과 아우슈비츠를 겪으면서 망가진 복구 불가능한 자아를 누군가에게 의탁이라도 해서 살아야 했던 생존 의지를 차라리 느낀다. 원래 간절하고 절박하고 허기진 인간이란 휘둘리기 쉬운 존재다. 휘두르고 싶은 자들은 휘둘리기 쉬운 연약한 존재를 알아보는 법, 네이선이나 스팅고나 여타의 다른 등장인물들이 소피를 사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지배욕이고 통제 욕 딱 그 정도의 수준이고 그래서 소설의 ‘나-스팅고’도 싫었다.) 사회나 공동체가 해야 하는 몫이 있다면 인간이 쉽게 휘둘리지 않도록 간절하지 않게 절박하지 않게 허기지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20세기는 특별히 더, 그렇지 못했다.


쓰다보니 연약한 자아에 대해서 자꾸 적게 되는데 내가 읽은 소설의 포인트는 선택권의 박탈(소피의 선택에는 선택하지 않을 권리는 없다)에 따른 ‘학습된 무력감’에 있되 자아의 취약함에 있지는 않다. 무력감과 공포에 많이 노출된 사람이 얼마나 쉽게 구원자에 자아를 의탁하는지 그것이 비합리적인 요구라도 받아들이는 지를 소설 <소피의 선택>이 잘 드러내 준 다고 생각했다.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고.)


“(422) 강제 수용소는 대량 학살장으로서의 역할만을 했을 때 인간의 미래에 끼쳤을 위협보다 훨씬 더 크고 영속적인 위협이 되었다. 대량 학살을 위한 수용소는 시체만을 만들어 내겠지만, 완전한 지배의 사회는 살아 있지만 죽은 자들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


밥 먹으면서 넷플릭스 다큐를 즐겨보는 편인데 최근에 30분짜리 <폭군이 되는 법>이라는 다큐가 올라왔다. (아마 <독재가가 되는 법>이라는 책과 관련이 있는 듯) 재밌다. 추천한다. 1편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내용인데, <소피의 선택>을 읽은 후에 봐서 더 흥미로웠다. 1920년대의 독일 사람들이 우리보다 어딘가 모자라서 나치에 휩쓸린 것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의 대중들이 시달렸던 것도 무력감이었으며, 자아를 의탁할 구원자를 찾았던 것 같다. 소피에게 네이선이야 말로 가장 치명적인 구원 자였듯 독일의 국민들에게 히틀러도 치명적인 구원자였다. 


당연히 구원은 구원하지 않았다. 



얼마 전 친애하는 알라디너 다부장님께서는 본인은 무척 구원 서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일침을 놓으셨다. 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구원 서사는 좋아하지 않지만 쌍방 구원 서사는 아주 환장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쌍방 구원 서사라 할지라도 - 결국 구원은 구원이니 구원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독후감이 그 과정의 일환이다.) 내가 취약했던 (젊은) 시절에, 취약한 나를 알아보고 사로잡은 인물과 관계들이 있었는 데, 그런데 어쨌든 달콤했던 그 관계들은 결론적으로는 치명적인 상처들로 남았고,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혼자가 되어 돌이켜보니, 그때 그 관계들 참 별로다 하면서도 당시의 나에게는 구원이 맞았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 아 그랬네. 그런데. 구원. 어쨌든 어디까지는 좋았는 데, 어느 순간부터는 왜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건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지금도.


스스로에게 내려보는 결론은 나는 아직까지도(!) 구원물을 좋아한다는 거다. 차라랑 샤라랑 신이 임재하는 그런 구원 말고,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면서 함께 우당탕탕 성장하는 이야기. 상처가 치유된다기보다는 자기 상처에 심드렁해지고 그렇게 그냥 한 명의 사람이 되는, 일상을 되찾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 역시 이야기라는 장르가 가져다주는 일종의 신화일까? 현실에서 그런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걸까? 잘 풀리면 소설 <노멀 피플>이 되겠지만 언제나 안 풀리면 소피와 네이선이 되는 걸까. 아, 그건 싫은 데. 어디에 배팅해야 하나. 차라리 인생에서 구원 서사라는 장르 자체를 지우는 게 좋을지도…? <노멀 피플>이나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좋아하는 나의 이 취향은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의 반영인 걸까. 내 개인에게 아직 남아있는 건강하지 못한 의존증/무력감의 증거인 걸까. 


글의 마무리. 지난 세기에 구원 서사가 대중들에게 소구 하는 힘이 있었고, 특히 그게 백마 탄 왕자님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건 여성들의 처지에 기반한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었지싶다. 지금 미디어 서사들의 주축은 여자가 여자를 돕는 이야기라는 생각이고 그것은 고무적이다. (다크 페이트와 퀸즈 갬빗, 블랙위도우를 보라. 벌써 pc 묻었다고 광광대는 자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구원을 바라는 인간 심리 이면에는 현실에 대한 진한 무력감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참 길게도 썼다. 그러므로 나의 이 구원서사에 대한 욕구(?)는 학습된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구하긴 누굴 구해. 상처를 누가 알아봐. 그냥 내가 나를 구하고, 내 상처는 내가 빨간약 바르고 호호하믄 되지. 실은 그것도 성공적 구원만큼이나 차마 어렵다. 누가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 말로 환상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스스로 강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 강해지면서도 남을 덜 해칠 수 있을까.



[스포일러 주의하며 덧붙이는 글들.]


1. 1권에서 스팅고 총각 떼는 날이 소설 끝나는 날이 될 거라는 내 예감은 적중했다. 450페이지 이상의 2권으로 된 소설에서 대충 850페이지를 읽고 있는데도 가련하게도 그의 슐롱(소피의 표현ㅋㅋㅋ)은 “눈처럼 순결(스팅고의 표현)”했다. 700페이지쯤에 가서 스팅고는 이럴 바엔 차라리 동성애를 하겠다고 한다. 그즈음 해서 결국엔 나마저 그의 고추를 불쌍해하는 지경이 되었고, (약간의 자아 분열을 느끼며) 스타이런 이 변태 새끼라고 욕했다.  


2. 영화는 1982년 작이었고 듣던 대로 수작이었다. 메릴 스트립은 정말 소피만큼 아름다웠다. 추천해 주신 구스 맥주와 함께했다. 탕수육도. 나는 찍먹과 부먹의 이분법을 경계한다. 이날은 그냥 부었다. 사진에서 표현 안됐는 데, 녹색의 눈을 가진 메릴스트립은 진짜, 너무, 아름다웠고 연기도 잘했다. 그리고 소설 속 핑크 하숙집은 저렇게 표현되었다. 신기했다.  



3.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겨우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 나온 소피가 음식을 사 가지고 와 공원의 구석에서 음미하며 아주 천천히 조금씩 먹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소피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구원은 구원하지 않는다. 


레슬리만큼 재치 있지는 않지만 멋진 가슴을 가졌다. 토머스 울프가 지적했듯이, 이 유대인 아가씨들은 가슴이 정말 멋지게 발달해 있다.

- 🤔 뭘까. 재치있는 가슴 🤔 - P231

시몬 베유는 이런 종류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경멸감, 타인과 심지어 자기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죄책감을 인간의 영혼에 깊숙이 각인시킨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범죄가 그러해야겠지만 실제로는 고통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파괴적인 죄책감과 단순하지만 강한 동기에 의해 유발된 과묵함이 한데 어우러져 소피로 하여금 일부 사실에 대해서 침묵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피는 대체로 지옥의 중심에 머물렀던 시간에 대해서는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비밀을 지키려고 했고, 그녀가 정말로 그것을 원한다면 이는 존중받아야 했다.
- P264

문제는 그들의 양심을 극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물리적인 고통이 다가왔을 때 정상인이면 누구나 느낄 동물적인 연민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용된 기술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그런 본능적인 감정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었다. *즉 살인자들은 ‘내가 이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고 말하는 대신,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런 끔찍한 일을 지켜봐야 하다니. 이 엄청난 임무가 하필이면 왜 내게 떨어진 것일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275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더 숭고한 목표가 있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작가였고 예술가였다. 세상의 위대한 작품들 중 상당수는 예술에 헌신한 사람, 자신의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성기가 더 중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아름다움과 진리라는 더 큰 목표를 파괴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그 런 사람들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까전진해라, 스팅고, 나는 축 처진 기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글쓰기에 매진하는 거야. 색욕은 뒤로하고, 네 안에서 태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매혹적인 야망을 이루는 데 모든 열정을 쏟는 거야. 이런 수도승의 다짐을 반복하자 그다음 주에는 산뜻하게 정화되어 비교적 욕정이 가라앉은 상태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되었고, 내 소설에 몰려들기 시작하는 요정들과 악마, 얼간이, 광대, 딸 때문에 고통받는 부모들과의 씨름을 용감하게 재개할 수 있었다.
- 😓 항마력 딸린다.. - P323

소피가 아우슈비츠 역 플랫폼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날 오후, 노스캐롤라이나 주 롤리는 화창한 봄날 아침이었고, 나는 거기서 미친 듯이 바나나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데도 계속 바나나를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 뒤에 해병대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키는 벌써 180센티미터가 넘었지만 몸무게는 55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입대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1.5킬로그램은 더 찔 필요가 있었다.
- 😠 소설을 통틀어 가장 탁월했다 싶었던 부분.. 바나나먹는 스팅고. - P387

그때 나는 —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성차별적인 생각이라면 용서를 바란다—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실은 그런 초자연적인 전율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웠지만, 소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마치 다른 데서는 성차별 안한 것처럼 말하네 이 시키가 ㅋㅋㅋ 야, 너는 존재 자체가 성차별적이야 … ㅋㅋ 네 머릿속 사고의 핵심! 코어!라고! 그게 없으면 이 소설도 못썼을 걸? 짜증난다 진짜ㅋㅋ - P101

언젠가 아우슈비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용감하지만 터무니없는 문장이었다. 어느 누구도 아우슈비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게 썼어야 옳았다.언젠가 소피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글을 쓸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 악이 결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제까지 아우슈비츠에 대해 나온 설명 중 가장 진리에 근접한 것은 단정 짓는 문장이 아니라 되물음이었다.

질문 :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 -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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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7-22 2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구원 받고 나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해서 쫓아버리고, 를 반복하면 안 되는 걸까 ㅋㅋㅋ누군가는 스스로 구할 만큼 작은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타고나거나 물려 받은 유산이 저혼자 구할 만큼 (심리적으로든 체력적으로든) 탄탄하지만 아닌 사람도 많으니까. 예전에 누군가 ‘내가 너한테 좀 기대면 안 되는 거냐’ 절박하게 달라 붙는 걸 아 망했다 도망쳐야 돼 하고 도망쳐봤는데 지나고보니 오죽 힘들면 저랬을까 싶어 짠 하기도 했어서 하여간에 저는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구해야겠지만 절대적으로 기대는 건 안 되겠지만 거기 도움 줄 만한 누군가가 있는 건 산소포화도 부족한 환자가 산소호흡기 다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숨쉬게 되면 그때 떼어버리면 되지 뭐…

공쟝쟝 2021-07-22 21:01   좋아요 4 | URL
절박하면 구원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그 절박하고 거북 스러운 냄새가 나잖아요. 평범한 우리 모두는 슬쩍 구원자가 되길 거부하고. 그래서 당사자는 더 절박해지는데, 현실에서는 절박함을 결핍을 역이용하는 자들이 많죠. 구원해주겠다고 나서는 구원같은 사람들은 애초에 절박해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선 손내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사이비종교의 법칙 비슷한거. 그래서 애시당초 구원서사는 거대한 사기인 건 아닐까 무튼 그런 딥한 고민을 해봤어요.

2021-07-22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2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1-07-23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옥이 있다면 한증막 같은 곳일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기력증과 의존욕구, 구원서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소피의선택과 관계없이 이 글 자체가 너무 좋네요.

공쟝쟝 2021-07-23 12:51   좋아요 1 | URL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리뷰는 쓰다보면 항상 제 이야기 (다른 리뷰는 아닌 것 마냥?) 하더라구요ㅋㅋ 소설의 스포를 피하기 위해 나름 신경을 쓰다보니 구렇게 되는 건가.. 싶기도?

새파랑 2021-07-23 0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V가 크네요 ^^ 그 옆으로 정리되지 않은 책들과 맥주사진이 인상적이네요👍 리뷰가 너무 흥미롭네요 😊

공쟝쟝 2021-07-23 12:52   좋아요 1 | URL
정리안돼다니…. 정리 한거라고요😂😂 책정리가 가지런해야한다는 편견을 버렷!!!! 티비는 거거익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티비에 비해서 집이 작아 목이아픕니다 ㅠㅠ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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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의 단편 집에서도 느꼈지만, 이번의 장편을 읽으니 확실히 알겠다. 나는 장류진 소설 속 자기객관화가 특별히 잘 되어 있는 또래 여성 캐릭터들이 좋다. 그녀들은 현실적이고 똑똑하고 야무지며 기꺼이 영악하다. 뭇 사람들이 ‘영악하다’는 말에 섞어쓰는 은근한 째림의 시선을 담대하게 받아친다. 어쩌라고? 나에게 참으라고 하지마. 


“(309) 언니가 투정하듯 말했다.

“저 사람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했단 말이야.”

“무슨 말?”

“나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너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난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나. 은상 언니가 목소리를 낮춘 채 이어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정말로 싫어한다고. 그렇게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하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정도’라는 말 앞에 ‘나한테는 아니지만’이 생략된 것 같다고 했다. 나한테 아니지만 너한테는 그 정도면 족하지. 그 정도면 감사해야지, 그런 말들. 기만적이라고 했다. 그런 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의 면면을 잘 봐두라고 했다. 그게 정말로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 인지를.”


자신의 욕망을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소설 속 캐릭터들이 좋았다. 내 욕망이 니 욕망 니 욕망이 내 욕망인 채로 양육되거나, 모든 욕망을 싸그리 나쁜 걸로 눙쳐 억압해버리는 한국 사회에서 다해, 은상, 지송 같은 친구를 만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욕망’이라는 퀘스트를 통과한 그녀들은 자신들의 능력/무능력에 대해서도 잘알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그냥 알아지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착취 두 스푼, 사회에서 그 정도 열심으로는 살아남지 못해 꼰대들의 후려침 네 스푼, 무능력자들의 공 가로채기 두 스푼 정도를 넣고 휙휙 잘 저은 뒤 앙금처럼 맺혀 가라앉을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기간의 지속 - 혼탁해진 내 세계가 본연의 투명한 빛깔이 찾아질 때 즈음에야 내 능력은 나에게만 사용해야 한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법이나니. 


이 후에는 적절한 운용이 필요하다. 너무 능력이 없어보여서도 안되지만, 내 온전한 능력치가 간파당하는 순간 피곤할 일들이 생겨나므로 잘 숨겼다 필요한 곳에서 안들키게 사용해야한다. 주인공 다해는 그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나도 쫌 그건 아는 편이다. 혹시 몰라 팁처럼 적어두는 데- 내 능력을 잘 사용하게되는 과정에서 내 무능력에 대한 허심한 인정 역시 필수다. 대다수의 흙수저들은 능력이 생기기 전에 무능력과 한계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지만 억세게 운이 좋거나 자존감이 과도해 잘 모르는 경우도 가아끔 있긴 하더라. 


다시 돌아가서, 나를 사로잡은 캐릭터의 이야기를 더 하자면. 그녀들의 자아가 누군가(특히 남자)에게 의존하거나 타인의 덕을 볼 생각이 없다는 점이 내 치임의 포인트였따.. (스읍- 🤤침닦자) 잘돼도 내가 잘되는 거고, 망해도 내가 망하는 거. 정확한 경계선이 있는 똑똑한 욕망들은 ‘계급에서 탈출하려거든 가진자원을 잘 가꾸어 백마탄 왕자한테 시집이나 가’라는 온 사회의 노래와 같은 주문을 상냥하게 거절한다. 그러니까… 역시 백마탄 왕자 보다는 이더리움을 탄달까. ㅋㅋㅋ


“(98)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세개쯤의 나은 점과 한개쯤의 별로인 점이 있는곳으로 조금씩, 플러스마이너스를 해보면 결국 두개쯤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셈이었다. 비단 주거 공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 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싶었다. 내 인생에서 한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

J.

마주하는 순간 내가 그것을 원해왔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들은 일생 일대의 기회를 알아볼 만큼 지혜롭고, 거기에 배팅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며(빚투라니 레버리지라니… 와우)… 함께 곤궁한 전우-친구들을 챙기는 센스하며… 아 …  진심, 사랑해요. 은상언니. 혹시 만나면 싸인 좀 부탁드려요. 언니가 이더리움 쏴줄 때, 캡틴 마블 보는 것 처럼 제 가슴 웅장해졌어요. 가즈아~ 가즈아~ 언니라면 달을 넘어 북극성까지 갑니다. ㅠㅠㅠ 또르르… 자기 능력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한 현실적 욕망을 찰지게 조절하는 생생한 캐릭터들. 아오, 야무져. 아오, 오져. 현생에서 만난다면 악착같이 내 친구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달까지 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서로를 위해 외치는 거지. “달까지 가자! 가즈아~!🌝” 그것은 주문이 되고 응원이 되어 감당 가능한 만큼의 행운으로 우리 옆에 안착할 것이다. 우리들은 행운을 행운으로 인식할거고 행여나 그것을 자기 능력인 척 스리슬쩍 포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164) 유기농 목장의 우유를 사 먹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때그때 그날 파는 가장 싼 우유를 샀다. 그러다보면 경영방식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회사의 제품을 살 때도 있었다. 같은 식품 업계이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속속들이 다 사실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랬다. 뭐랄까, 그게 내 소비의 기본 모드였다. 최저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코드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것처럼 항상 제일 싼 것만을 골랐다. 이제 더는 아니었다. *처음 먹어본 유기농 목장의 우유는 맛도 물론 좋았지만, 그걸 고르는 나 자신이 비로소 건전한 시민이되었다는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로고가 그려진 유기농 우유를 유유히 집어 장바구니에 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악덕 기업의 사장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내려와 어쩐지 수갑을 찬 채 촘촘한 창살 안에 들어가 있었고, 그 위로는 우리에 갇혀 있지 않고 너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젖소들과 밀짚모자를 쓴 선한 농부의 땀과 미소가 오버랩되었다. *그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소비 경험이었다.*”


나와 세상에 조금 더 다정하고 관대한 소비를 ㅎㅎㅎ ㅎㅎㅎ 

암튼 나도 앞으로는 돈 많이 벌어서 생필품도 ESG 우수 기업 이용하고, 생태계 친화적인 유기농 우유도 사먹어야지!! 불끈!!


소설 중간에 세 친구가 신세대(!) 무당을 찾아가는 장면 읽는데, 작년 가을에 동생들과(우리는 세자매다) A대학 최고의 유물론자가 소개시켜 준(ㅋㅋㅋ)용하다는 선녀님을 찾아갔던 기억 떠올랐다. 사주카페는 가봤지만 사주+신점은 처음이어서 설렜다. 각자 직장운과 연애운과 사업운 등등 궁금한 게 참으로 많아 다 물어 봤는 데, 심리상담을 받는 것 못지 않는 치유와 정화 효과가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특별히 큰 용기를 준 것은 미래의 안녕에 대한 장담보다는 성격 진단이었는 데.. “그런데, 제가 욕심이 없어가지고요…”라고 말끝을 애매하게 흐리자마자 선녀님 왈, “무슨 소리? 왜 욕심이 없어? 자기야, 자기 사주에 욕심없다고 안나와. 이것도 부족한 것 같고, 저것도 좀 부족한 것 같고 그렇지? 진짜 욕심없는 사람은 안 그래. 자기야! 너 욕심 없는 거 아니야!!”  바로 인정하고 그자리에서 감사합니다. 절할 뻔 했다. 까스 활명수 먹고 속이 다 화해지는 기분. 


순간 바로 알아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인식은 엄마의 것이었다는 걸. 한편으로는 큰딸로서 ‘양보의 미덕’을 설파당하고 또 한편으로는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한다는 엄친딸과 비교당하며 ‘너는 (왜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없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누군가의 욕망에 마주서면 양보가 더 수월했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몰라 이따금 무기력했던 것은 욕심이 없는게 아니었다. 그날 선녀님이 툭 치듯 알려준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한 편견하나가 확 깨졌다. 난 사회나 엄마가 말하는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이미 오랜기간 인정욕구의 노예였고, 식욕과 수면욕과 지식욕은 언제나 많았으며, 드립 하나를 꼭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개그 욕심까지… 공부와 물욕은 조금 덜했을 지언정 총체적으로 뜯어보면 남부럽지 않은 욕망의 화신이 나였다. 내 안 깊숙한 곳에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는 욕심을 알아채는 순간 갑자기 삶의 의욕이 돋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욕심을 욕심내야지! 하고 싶었던 거 다 할꺼야~! 난 욕심쟁이닷!!! 우하하하하!!!


“(95) 왜 인지 짤랑거리는 소리가들리는 것 같은 기분,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돈벼락을 맞은 기분. 그런 기분들에 나는 꼼짝없이 휩싸였다. 그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깊이 바라왔던 게 있다는 것을 J. 이거였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 그래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모양, 이런 곡선이었다는 진실을 그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나는 매일매일 모래알처럼 작고 약한 걸 그러모아 알알이 쌓아올리고 있었지만 그걸 쌓고 쌓아서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기대도 희망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그런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태껏 쌓은 건 지나가는 누군가의 콧김 같은 것에도 쉽게 부스러져내릴 수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직시하지 않을 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부터 였나… 메모 덕후 답게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가기 시작했던 게. 이번에 쉬면서는 각 잡고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순식간에 오십개가 찼다. 하려고 보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야, 나 코로나 끝나면 아이언맨이 조깅하던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 할래. 졸라 뉴요커처럼, 맥북들고 가서 잔디에서 책 읽다가 글 쓸래!! 겁나 멋있겠지? 근데 그 모습 사진을 누가 찍어줘야할 것 같으니까 너 나랑 센트럴 파크 같이 가야할 듯. 친구에게 후다다닥 메시지를 보내자 “조타조타~ 서타벅스 커피 벤티로 사가지고잉~” 바로 답톡이 왔다. 오케이. 뉴욕이라니, 맥북이라니, 스타벅스 벤티라니…. 헐... 너무 조아 너무!!! 꺅!! 😆 야밤에 고양이랑 댄스타임을 갖다가 문득 지금까지 해외나갈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동남아나 신혼여행으로 가야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음…. 아 짜증나. 왜 신혼여행이었는 데, 왜!!)는 사실이 더 놀라울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봐주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린거지? 나 정말 헛똑똑이였구나. 으으.



“(105) 아…… 그래서 이렇게 월급 짜게 주는 회사 다니면서도 저렇게 표정이 좋았구나. 일도 재밌게 하고, 야근해도 보람있어 하고, 열정이 넘치고, 저런 애들은 여기서 박봉 받으면서 일해도 결혼할 때 엄마 아빠가 집 사주고 차 사주겠지? 못 사줘도 일부라도 보태줄 거 아냐? 마음이 되게 편하겠다…… 야…… 진짜로…… 걱정이 없겠다…. …저렇게 살 수만 있으면…… 되게 든든하겠다…… *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옹졸하다는 걸 모르겠지? 아마 날 좋아할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까지 오면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부러웠다.* 반대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좀스럽게 굴면서 쉽게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은상 언니, 지송이와 이야기할 때는 그런 게 없었다. 첫날부터 우리는 우리가 ‘같은 부류’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고, 그 느낌을 바탕으로 한 호감으로 자주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전히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아무리 탈탈 털어도 부모가 대졸자라거나, 더 나아가 공무원이라거나, 전문직이라거나 즉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라는 정보값은 없었다. 대신 여러가지 이유들로 집안에 빚이 있고, 아직 다 못 갚았으며, 집값이 싸고 인기 없는 동네에 살고, 주거 형태가 월세이고5평, 6평, 9평 원룸에 살고 있다는 공통 정보가 나왔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놈의 돈, 돈이 지독하게 문제였다. 너무 문제라서, 어차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라서, 아예 없는 것 처럼 지워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한 걸 찾아야 해, 하고. 나는 나에게 계속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저것은 사치라고, 원하는 것보다 필요한 게 먼저라고, 욕망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라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내 욕심을 돌아보지 않은 죄로 치른 댓가가 더 큰 것 같다. 다행이지,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기 시작한 것은. 하마터면 남의 욕망대로 살면서 내 욕망인 거라고 착각하고 알 수 없는 분열과 억울함, 무기력 증에 시달리며 누군가의 분별있는 욕망마저 못마땅해 하는 개씹꼰대가 될 뻔 했다. 


“(194) “야! 니가 그럴 자격이 왜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너도, 나도, 우리 엄마도. 그건 다 마찬가지인 거야. 세상에 좋은 게, 더 좋은 게, 더 더 더 좋은 게 존재하는데, 그걸 알아버렸는데 어떡해?” 

은상 언니가 야광봉을 쥔 한쪽 팔을 허공에 쭉 뻗고서는 내 귀에 대고 속닥였다.

“걱정 마. 우리 저기까지 갈 거잖아.” 노란 빛살을 내뿜는 야광봉의 끝이 밤하늘의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소설에 다가 대고 일확천금은 옳지 않고, 한탕주의는 나쁘며… 같은 소리는 별로 안했음 싶다. (물론 나의 불안함과 취약함이 곧 나의 정당함이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하나마나한 소리라서 그렇다. 평범한 인간은 돈을 벌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작가는 그걸 시간탐험대에서 돈테크만이 여는 포털에 비유한다) 앞에서 도덕군자스럽지 않다. 게다가 자본주의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아마 이 코인열풍에 탑승한 현실의 대다수는 인생이 더 혹독해졌을 거다.


내 경우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 원하는 것을 다 이루진 못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물어보고 알려고 노력한다는 것 만으로도 삶에 생기가 생겼었다. 청소년 시기에 진작 졸업했어야 할 생애주기 과업 일지라도 그게 잘 안됐던 나같은 사람도 있다. <달까지 가자>는 그것이 진짜 자신의 욕망이라면, 힘내서 실컷 추구해도 된다는 해방의 이야기였다. 요는 자신에 대한 객관화고 욕망의 완급 조절이다. 부풀려지지 않은 자아로 알뜰하게 삶을 쓰는 소설 속의 똑똑한 여자들을 오래오래 자주자주 만나고 싶어서 작가님의 다음 소설을 열렬히 기다리기로 했다. 



앗, 다 적고 보니 문득 생각나 기사 검색해 가져와 본다. “30대 여성의 주식 수익율 1위. 20대 남성 꼴찌.” 어떤 징후처럼 느껴지지 않나? 이미 완급조절된 욕망으로 성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흥겨운 소식ㅋㅋㅋ 


달까지 가려다가 깡통을 차버린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욕망이라는 게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거다. 객관화라는 게 그렇게 힘든거다. 에효~. 그 어려운 걸 모두가 해야하는 시대가 온 것은 좀 씁쓸하지만… 안할거면 벼락거지가 되어버릴 거라… 기본소득 오는 그날 까지, 일단은 모두 살아남아 성.투. 하시기를... !!

이른바 분리형 원룸이나 투룸에 살 수 있기를 늘 바라왔다.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곳에 살 수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날이 오긴 올까? 서른 될 때까지는 그른 것 같고 마흔쯤 되면 가능한 걸까? 하고 아득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실은 그런 날이 더 많았다.

- 🌜돌이켜보면 참 고되었던 나의 서울살이여. - P72

*알게 된 즉시 쪼그라들었다. 당연히 이런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건 제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똑같은 회사에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겉으로는 나랑 같은 처지인 것처럼 보여도,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 다른 세계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갑자기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가 하염없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곤했다.

- 🌜...흙수저는 운다... - P104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악의가 없다. 그냥 자기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로 평범한 대화를 했을 뿐이다. *나를 쪼그라들게 하려는 의도 따위는 티끌만큼도 없었을것이다. 그런 게 사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것이다.* 타인을 주거지와 부모의 직업으로, 재력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교양있는 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천박하다고 생각할것이다. 사람을 사람 자체로만 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태도가 형편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지나가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선을 그은 다음 나 자신을 아래에 위치시키고 거리를 뒀다.

- 🌜...흙수저는 두번 운다... - P104

"언니, 그때 기억 나? 언니가 그랬잖아. 우리에겐 이제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코인은 엉뚱한 곳에 난데없이 뚫린 만화 속 포털 같은 거라고. 요란하고도 희귀한 소리를 내면서, 기이하게 일렁이는 푸른 빛을 내뿜으면서 열려있는 이상한 구멍 같은 거라고. 께름칙해도 있을 때 들어가야 한다고. 이 기묘한 파장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이 요상한 소리는 대체 왜 나는 건지, 그런 거 계산하고 알아볼 시간이 없다고. 닫히기 전에 얼른 발부터 집어 넣으라고.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 🌜...애들아 잘했어 ㅜㅜ - P328

바라기는 했어도 내심 그런 걱정도 했다.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욕망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욕심 부리다가 큰코 다치고 괘씸죄로 천벌받으면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이욕을 추종한 죄, 주제넘게 재물을 탐한 죄,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을 좇은 죄.

- 🌜..괜찮아, 잘했어 진짜 잘했어.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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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24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코인수익률 -20 ㅋㅋㅋㅋㅋㅋ빠른손절 칭찬해!!

공쟝쟝 2021-06-24 15:36   좋아요 2 | URL
아잇 ㅋㅋㅋ 태그에 숨겨 놓은거 댓글로 이렇게 까버리면 부끄럽잖아요 ㅋㅋㅋㅋㅋㅋ -_-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4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시작하자마자 마이너스야. 부자 되기로 약속했잖아. 나 용돈 타쓰는 삶 살고 싶은데.. ㅠㅠ

공쟝쟝 2021-06-24 15:39   좋아요 2 | URL
드디어 조정장이다! 이보다 더 하락할 쏘냐! 하면서 지난 달에 들어갔다가, 계속 저점 갱신하길래 놀래서 나왔어요. 30대 여성으로서 그냥 주식할래... 나의 카카오!!!!!!!

공쟝쟝 2021-06-24 15:39   좋아요 2 | URL
소소한 40평대 아파트........ 하아.. ㅜㅜ 지금 내 버킷리스트 1번이라고...

다락방 2021-06-24 15:58   좋아요 4 | URL
소소하게 40평대 아파트 사서 사이좋고 다정하게 오래오래 지내자. 서로 가끔 들여다봐주면서. 등에 파스 붙여야 되면 불러요..

공쟝쟝 2021-06-24 16:19   좋아요 2 | URL
다정하게 파스 부쳐주러 벨 누르는 옆 단지 사람ㅠㅠ 정말 소박한 우리의 꿈

vita 2021-06-24 16:20   좋아요 3 | URL
좀 가까이 살아요. 그래야 와인 자주 마실 거 같은..... 했다가 안되겠다 가까이 살면 매일 마실지도;;;;

vita 2021-06-24 16: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용돈은....용돈은......결국.......

공쟝쟝 2021-06-24 18:19   좋아요 2 | URL
기다려요. 다음 포털이 열릴거야.

다락방 2021-06-24 16: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 용돈 줘 용돈 용돈!! (바닥을 마구 구른다)

공쟝쟝 2021-06-24 18:22   좋아요 2 | URL
어차피 용돈 주면 그걸로 책바꿔 먹을 검시롱!! 여기도 기다려봐요! ㅋㅋㅋ 이참에 선녀님 좀 찾아가야되것네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6-24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인은 아닌데 -20만… 이주차… 그냥 노역이나 해서 호구나 하는 걸로….이번 생은 그런 거구나…

공쟝쟝 2021-06-24 18:24   좋아요 3 | URL
속은 쓰리겠지만 ㅋㅋㅋ 겨우 2주 가지고 그만두지마요ㅋㅋㅋㅋ 코인은 단타지만, 주식은 존버야!!🧘🏻‍♀️ 종목공부 더하자 ㅋㅋㅋ

붕붕툐툐 2021-06-24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가 댓글 쓰면 쟝쟝님께 용돈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그곳입니까?

공쟝쟝 2021-06-24 22:14   좋아요 1 | URL
무슨 소리여 ㅋㅋㅋㅋ 워 ㅋㅋㅋㅋ 큰일날 소리 하고 있어 ㅋㅋㅋㅋ 근데 기다려봐요 ㅋㅋㅋㅋ 다음 포털 열리면 가는 거야 우리. 내가 용돈 쏜다 쏜다 ㅋㅋㅋㅋ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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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울었다. 어찌나 섧게 울던지 엄마가 녹아서 없어질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엄마를 달랬던가, 그냥 지켜만 봤던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기억들을 떠올리면 그걸 하나하나 손가락에 꼽으라면 일곱 개쯤은 엄마가 우는 장면이다. 슬픈 것은 엄마였을 텐데, 정작 나 자신은 슬프지 않았을 텐데, 슬픈 엄마를 바라보는 슬픔은 내가 겪는 슬픔보다 강렬했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 엄마는 알까. 난 아마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나의 세계가 작았기에 가능했을 사랑 혹은 나 자신보다 컸던 것 같은 사랑.

“(81) 엄마가 하루 종일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저를 불렀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목안에 덩어리 같은 게 걸린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이 얼마나 오래 계속됐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가끔은 화장실에 가서 울기도 했어요.”

소설은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던 무렵, 뉴욕의 병실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루시 바턴)’은 아직 어린 두 딸이 있는 엄마로 맹장 수술로 삼 주째 입원해 있는 상태이다. 오랜 기간 만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엄마가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병문안에 와서 닷새 동안 딸 곁에 머문다. 썩 다정다감하거나 친하지 않은 모녀 관계였기에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했던 ‘서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을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와중에 주고 받는다. 작은 괄호로 묶은 이유는 이렇게 밖에 표현 못하는 내 조악한 어휘력을 변명하고 싶어서다. 말로 꺼내 놓는 것이 곤란한, 좋기만 할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는 마음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을 찾고 싶다. 아니다. 그런 표현은 없을 것이다. 이 소설 전체가 그 마음에 대한 해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어떤 애틋한 마음—‘나’와 엄마 사이의 마음—은 대화 안에서 표현되지 않는다. 말과 말의 사이에, 이야기와 이야기의 사이에, 딸이 삼키는 말과 엄마가 꺼내놓지 못하는 언어 사이에—이것은 그러나 결국 소설이니까— 글과 글의 사이에, 어떤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고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채로, 그리하여 되려 선명한 존재감을 가지지만 정작 형태는 어렴풋한, 표현되지 않는 그런 마음이.

“(68~9)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보같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 나는 불쑥 “엄마, 내가 단편 두 편을 발표했어요”하고 말해버렸다. 엄마는 마치 내가 발가락이 더 생겼다고 말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흘깃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그냥 작은 잡지에 실렸어요.” 그래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베카가 밤새 잠을 안 자요. 엄마한테 물려받았나 봐요. 베카도 쪽잠을 잘지 모르겠네요.” 엄마는 계속 창밖만 내다보았다.”

보통의 사람이 가장 어리광 부리고 싶어지는 순간은 몸이 아플 때이지 않을까. 북적이는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자라온 나 역시 그랬다. 자라며 어쩌다 한 번 앓게 되는 날 “엄마.. 나 아파…”라고 말할 때, 엄마가 이마 위에 손을 얹으며 걱정의 말을 건넬 때, 열에 달뜬 채 혹은 비몽사몽 와중에, 평소라면 없었을 엄마 손길을 느낄 때, 바쁜 엄마의 신경을 앗아가는 것이 못내 미안하면서도, 그 관심이 좋아서 아프다는 핑계로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렸다. 아픈 건 싫지만 엄마의 걱정은 좋았다. 엄마를 독차지하는 느낌. 작가는 그런 마음까지 염두에 두고 소설을 설계한 것일까.

“(13) 엄마가 이곳에 와서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나를 부르자 내 몸이 따뜻해지면서 액체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느끼는 모든 긴장감이 예전에는 고체였는데 이제는 아닌 것처럼. 대체로 나는 한밤중에 깨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거나, 유리창 밖 도시 불빛을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어제 앉아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표현되지 않은 마음, 혹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부러 표현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 어마어마하게 똑똑한 소설이다. 각각 다른 (어쩌면 같은) 이야기들이 마치 뒤섞인 카드처럼 배치되고, 나는 그 모든 잘려나간 이야기들을 이해하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다.

“(169)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걱정할 게 없어요. 그건 오로지 하나니까요.”

타인의 불가해함에 대한 존중은 (지금의) 나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은 거의 유일한 윤리가 되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138)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이 소설의 구절만큼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59)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책이 좋았다. 나는 진실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뉴햄프셔 주 작은 타운의 쇠락한 사과 과수원에서 자라 뉴햄프셔 주 시골 지역에 대한 글,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자신의 책에서 조차 진정한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늘 뭔가에서 멀찍이 비켜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말할 수 없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그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가-아-끔 내 영혼 어딘가를 흔들어 놓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소설이 있다. 이 느낌은 소설에서만 가능한 체험이다. 너무 호들갑스러운 평 같아서 쓰기 싫었는 데,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소설을 덮고서 마음이 일렁일렁했다. 작가가 다 쓰지 않은, 부러 감춰놓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 나역시 글로 옮기지 않을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나만 알 수 있는 감정들. 내 안에 그런 것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뭐라는 거야? 이렇게 읽힐 소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난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음,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읽고 있는 나 자신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이해받은 느낌이 들었다. 소설로 이해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이런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더는 사람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 것이 좋다.

나 역시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되풀이해 쓰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든다. 

아니, 다 쓰고 보면 언제나 하나의 이야기였더란다. 그렇더란다.



"곧 괜찮아 질거야." 엄마가 조금 전처럼 수줍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아무 꿈도 꾸지 않았거든."

- 😔 언제나 많은 꿈을 꾸고 꿈이야기를 자주해주는 울 엄마가 생각난 장면 - P13

지금은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 😔 겨우겨우 그렇게 여기고 있었는 데 이 소설이 막 헤집어버렸다네. - P21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하지만 그건 나만의 비밀이었다. 남편과 만나면서도 그 얘기를 바로 털어 놓지는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진지하게 여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지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혼자 남몰래—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 제 외로움도 덜어주셨어요. - P34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 칭칭 . 칭칭칭.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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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6-17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예전에 이 책 원서로 읽었는데 큰 감동이 없어서 ㅎㅎㅎㅎㅎ 영어 때문이 아니라 이 소설가가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다시, 올리브> 읽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나만 알고 있는 거를 작가가 말해줄 때 친구에게처럼, ˝정말? 너도 그랬어?˝ 하고 물어보았더랍니다. 쟝쟝님 덕분에 이 책 다시 읽어보려구요. 엄마 이야기 너무 좋네요. 나도 오늘 효도해야할텐데..... 쩝....

공쟝쟝 2021-06-17 11:00   좋아요 1 | URL
저는 되려 올리브키터리지 읽다가 이건 좀 더 나이들고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좀 덮어두었어요. 전 인제사 막 어른스러워지나바여 ㅠㅠ 루시바턴은 뭐랄까 성장소설 이후의 남는 잔해물들을 펼쳐놓은 것 같았어요. 저의 지금에 꼭 들어맞는… 띠로리… 아직도 마음이 울렁울렁 ~~~

유부만두 2021-06-24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최애 스트라우트는 바로 이 <루시 바턴>입니다. 그 시퀄 (뭐든지 가능하다?)은 별로 였고요. 정말 루시 바턴 최고에요. 얇아서 제가 이야기를 채워넣는 기분도 들고 막 그렇게 울렁울렁....

공쟝쟝 2021-06-24 15:18   좋아요 0 | URL
ㅜㅜ 울렁울렁....... ㅜㅜ... 널찍널찍한 여백들이 정말 .... ㅜㅜㅜ 아 좋아... 루시바턴 진짜 좋았어여...ㅜㅜ
 
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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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데미안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십대시절의 어느 날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는(아, 데미안이야 말로 성장고전의 고전아닌가), 그시절 그토록 많은 만화책을 읽었음에도 최애 만화는 슬램덩크(천재 강백호는 매 경기마다 성장한다)와 필소굿(이 시리즈야 말로 모든 인물이 다 성장하는 사춘기시절에 가장 사랑한 이야기다)인 나는, 드라마 <학교>의 대본이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고 대놓고 ‘성장 드라마’였던 <반올림>을 보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세월이 흘러 마블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가 누구냐 묻는다면 언제나 진심을 다해 <스파이더 맨>이라 외치는(역시 피터파커가 철들어가는 모습이 좋달까) 나로 자라나 버렸고... 그 기이한 취향을 버리지 못해 아직도 ‘나이 어린’ 주인공이 여차저차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에 매우 깊게 치이는 편인데... 이게 영화 쪽으로 가면 편력이 더 심해져서 생각난 김에 비슷한 종류를 묶어서 적어보기로 한다.


🎞순서는 의식의 흐름대로.. 

* GO(스기하라가 성장하는 영화다) /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한 영화겠지만 여하튼 쿠노라도 성장한다고 생각하자) / 노다메 칸타빌레 (참 어릴 때 일본 영화ㆍ드라마 많이 봤다, 그치? 노다메쨩과 치아키 센빠이가 성장한다) / 굿윌 헌팅(맷데이먼이 성장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펑펑~) / 콜미바이유어네임 (티모시샬라메가 성장한다) / 완득이(유아인이 성장한다) / 동주(강하늘이 성장한다) / 빌리 엘리어트(이역시 성장분야의 고전 아니겠는가, 빌리가 성장한다) / 보이후드(는 정말로 레알로 주인공이 성장합니다) / 플립(남주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뼈아프게 성장해버리는 소녀 줄리...) / 위플래시(내 손이 다 아픈, 성장이 얼마나 개같은지 보여주는 반성장서사 같지만 그래서 더 제대로 찐인 성장서사다) / 레이디 버드(소녀의 성장서사에는 치명적인 남주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티모시라던지, 샬라메라던지ㅎㅎ) / 프란시스 하(내 프사이기도 하고 철부지 뉴요커 주인공이 뒤늦게 철드는 영화다) / 벌새(근래에 본 성장영화중 가장 좋았다)* 


를 적고 보니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이란... 🤔

넷플릭스도 이것저것 많이 보긴 했지만 역시 최애를 꼽는다면 <빨강머리 앤><오티스의 비밀상담소(섹듀케이션)><빌어먹을 세상따위>입니다.... -_-; (번외로 킹덤)


조건이 있는 듯 하다 (조건 분석중) 🤖


1. 교복입고 등장한다 (안입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10대 중반~20대 초반이다)

2. 주로 주인공이 남자이고 세상과 대결 혹은 불화한다 (이건 지금까지 만들어진 대중매체 속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대부분 소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소위 하이틴물의 여주인공은 로맨틱 코미디로만 소비되는 듯.. 그런 의미에서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 벌새의 여주인공들은 확실히 다르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갑자기 또 빡치기 시작한다. 세상과 대결하는 소녀들 이야기가 판치길 바란다.)

3. 로맨스인 경우에도 성장이 중심, 로맨스는 양념이어야 하며 깨발랄 미국계 하이틴(cf. 내.사.모.남)보다는 살짝 다크한 영국계 하이틴(cf. 빌.세.따)을 선호한다.


..왜 때문인가. 대체 왜...? 나는 나이가 반칠십이 되어서도 교복입은 애들이 좌충우돌 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가. 좀 창피한 걸 알아도 어쩔 수가 없이 매료되어 버리는 겐가....이것은 일종의 피터팬 콤플렉스 뭐 그런건가?(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온 생을 걸고 노오력하여 교훈을 찾아내 성장하고 성공하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영향인가?(라고 말하기엔 읽은 자기계발서가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암튼 그런게 대세이던 시절을 살긴 살았다, 내가) 그냥 철이 덜들어서 인가?(정답!!) 


***


그런 의미에서 <노멀피플> 읽다가 오랜만에 심장이 찌릿해서 혼쭐이 났습니다. 

아주. (네, 이 글은 노멀피플 리뷰입니다.)


일단 1. 주인공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2. 코넬과 메리앤이 주인공인데, 내가 감정이입한 사람은 이번에도 여주인 메리앤이 아니라 남주인 코넬이었다. 3. 그러고 보니 영국계 소설이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워떻게 써도 나의 취향저격 일 수 밖에 없는 장르로..

다 읽은 이 시점에서는 ⭐️별 다섯개가⭐️결코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드라마로 나왔다고 해서 볼까 했는데... 돌아다니는 짤의 남주가 너무 번듯하게 생겨서 안보기로 꽝꽝! 이미 다 커버린 느낌이랄까. 자고로 성장영화의 소년은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처럼 생겨야 한다. <빨간머리 앤>의 길버트가 최근의 좋은 예이다. 건강한 미래로 가기 위해 부단히 자라나야할 과제가 느껴지는 작지만 똘람똘람한 얼굴이랄까. 근데 노멀피플 주인공은 똘람하기에는 너무 떡대가 좋았다.. 적어도 섹듀케의 오티스나 빌세따의 제임스처럼 유약하게(!!) 생겼거나, 얼굴에 기스가 났거나... 하다 못해 메리야스라도 입고 있었어야 했다.



빌리 - 스기하라 - 치아키센빠  

오티스 - 제임스 - 길버트 - 티모시


모아놓고 보니, 새삼 취향의 일관성 대단하다. 

한국계에는 (생긴걸로만)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



가난한 김수현, 조신하게 밥짓는 현빈, 짠내나게 우는 강하늘, 쳐맞은 이제훈, 죽을날 받아놓은 강동원...


와씨, 내가 써놓고도 웃겨죽겠네 ㅋㅋ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ㅋㅋㅋ (너무 열심히 사진 찾다가 급 현타옴)

또 까먹을 뻔 했는데, 난 노멀피플 독후감을 쓰려고 오랜만에 글쓰기 앱을 켰다고!!!



***



소설에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아싸 소녀 메리앤(은 부자다)과 어디서든 사랑받는 것만 같은 학교의 인싸소년 코넬(은 가난한 편). 둘은 썸을 타다 눈이 맞아 섹스파트너가 된다. 암요, 밀레니얼 세대는 먼저 자야지 사랑도 된다는 것이 중론(인 거?). 선잠후럽... 

“(83) 결국에는 그녀를 가엾게 여겼지만, 그녀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그녀와 섹스를 했고, 그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녀에 대해서보다는, 아마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일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평범한 인싸 소년은 학교의 어두운 아싸 소녀와 섹스 파트너가 되었는가. “(61)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알았지?” 불과 20페이지 전에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것도! 침대에서!!!), 왜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잤다는 걸 숨기는가. (그렇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건 또 아니지만;) 어쨌든 소설의 초반에 코넬은 둘의 사이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그런 태도는 당연히 메리앤에게 상처를 주지만, 어쩌겠는가? 그 나이 때는 또래 사이에서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 나는 코넬을 십분 이해했다. 작가가 친절하게도 설명해주는 이부분의 포인트는 번듯해보이는 코넬이 어딘가 불안하고 뒤틀린 메리앤에게 대책없이 끌린다는 것이다. 


평범한 세계에 속한 코넬이 비슷한 결은 아닌 게 분명한 메리앤에게 홀랑 투항해버리는 순간을 다시 읽어본다.

(60-61) 너는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겠지? 그녀가 묻는다.

맙소사, 당연히 아니지. 왜 그런 걸 물어봐?

그냥.

내가 여자들이나 때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 같아?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더욱 깊이 파묻는다. 우리 아빠는 엄마를 때렸어. 코넬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이내 그가 입을 연다. 세상에. 미안해. 몰랐어. 괜찮아.

아버지가 너를 때린 적도 있어?

가끔.

코넬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한다.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알았지? 절대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는 너 때문에 정말 행복해.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이야. 그녀는 다시 눈물이 가득 차올라 두 눈을 감는다. 그녀는 심지어 훗날 기억 속에서도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든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처음으로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


쁜 코넬새끼. 이래 놓고, 나중에 메리앤을 생까??라고 썼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을 남자 주인공인 코넬의 시점으로 읽었다(그가 넉넉한 집안이 아니라는 지점 때문이지 싶다).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여자 주인공에게 이입할 법도 한데, 여기서도 나는 코넬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다음에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라고 까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받는 사랑에는 연연하지 않는 편),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개 연민의 순간이었으므로(이부분은 나 자신에게 가장 짜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코넬을 이해한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 아껴주고 싶은 마음, 누군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내보일 때 어쩐지 무장해제 당해 버리는 마음, 구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식으로 한 사람에게 정말로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정도인 것이고, 대상에게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이 보이면 어쩐지 입을 다물게 되거나 뒷걸음질 치게 되는 비겁한 마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소년의 뒷걸음질이 보호본능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따위’였던 것에 대해서는 살짝 비난하고 싶지만 그게 용서가 되는 나이였기도 하고, 20페이지 뒤에서 코넬은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 후 20페이지 뒤에서는 진심으로 메리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느꼈다). 코넬이 사과할줄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용서해준 메리앤이 더 훌륭하지만.



***


(134) 그녀가 옆에와서 앉자 그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는 불현듯 그가 그녀의 얼굴을 때릴 수도 있고, 그것도 아주 세게 때릴 수도 있고, 그러면 그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거라는 소름끼치는 느낌이 든다. 그 생각에 그는 몹시 놀라서 의자를 홱 밀치며 일어선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는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에 그는 토할 것 같다.

왜그래? 그녀가 묻는다.

그는 손가락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미안해.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그런거 아니야. 미안, 그냥 기분이 좀 이상했어…… 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일어서라고 하면 그녀는 일어설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때때로 상대방이 가진 취약함을 파고들어 힐난하는 형태로 상처줄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 지금 이 순간, 관계에서의 권력이 나에게 있구나를 미세하게 인식할 때.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내가 얼마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지 퍼뜩 깨달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생겨버리는 죄의식에 대해 표현된 저 구절에서 - 나 역시 코넬처럼 약간의 공황을 느끼면서 아득해졌다. 


정말 모처럼 저작근이 뻐근해져버렸다고! 살짝 턱이 떨리는 이 느낌, 너무 오랫만이어서 지금 내가 이 장면에서 엄청시리 슬프구나 싶었다. 이 공감, 무엇. 샐리루니 천재. 이게 말로만 듣던, 프레카리아트의 샐린저이며, 더블린의 제인 오스틴의 문장력인 것입니까? 작가에게 따라붙는 유난스러운 상찬에 수긍하게 되던 지점.


***


“(210)코넬은 느닷없이 궁지에 몰렸음을 느끼고, 방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침묵에 잠겼다. 헬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녀의 가치관이 얼마나 구식인지 이따금 잊어버리곤 했다. 잠시 후 그는 거북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메리앤은 내 친구야, 알겠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마. 헬렌은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팔짱을 낀 팔을 가슴팍 위로 더 높이 치켜들었다. (...) 코넬은 자신의 여러 측면 중 헬렌과 잘 맞는 면들이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실성,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관점, 좋은 남자로 여겨지고 싶은 욕망 등등이다. 헬렌과 함께 있으면, 그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고, 섹스를 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도 없으며,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결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끈질기게 따라붙지도 않는다. 메리앤은 한동안 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던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그녀와 비슷하고, 그들에게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똑같은 정신적 상처가 있으며, 둘 다 결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녀처럼 망가져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뿐이었다.


이 부분은 사적인 경험으로 인해서 더 공감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있고, 나 역시 그가 속한 세계에서 번듯하게 웃으며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더 옹호하고 싶고 - 결국 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인 대화를 하면서 - 동시에 나는 내가 옹호하는 친구들과도 완벽히 같지는 않다는 것, 마치 그와 나의 간격만큼, 벌어진. 그 틈을 알게 되었을 때, 양 쪽 모두에 대해 느끼는 외로움과 마치 양자택일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관계의 난해함. 


그런데 헬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코넬-헬렌을 은근 지지하긴 했지만(그렇게 되면 코넬은 속편하게 살 것 같았다), 코넬은 절대 헬렌과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도 했다. 시작은 그가 메리앤의 조언에 따라 트리니티 대학에 지원한 지점 부터라고 생각한다. 메리앤이 코넬을 알아본 것이다. 


그 때, 망가진 너는 나의 아픈 부분은 알아보았고, 나는 내 통증을 알아보는 너에게 몹시 끌리는 내가 무서웠고, 망가진 것과 아픈 것은 다르다는 것 역시도 분명히 알 수 있었지. 그러나 망가진 네가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을 거야. 



***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지만 너무 스포일러 같아서 패스~ 책을 덮고 결말까지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이거.... 내가 딱 좋아하는 성장서사야.... 하앍... (허우적 허우적) 그러니까, 뒤틀리고(메리앤) 취약한(코넬) 주인공들이 만나 지지고 볶고 애를 쓰다가 서로의 약점이 막 시너지가 되어가지고 아주 아주 어렵게 어렵게~ 겨우~겨우~ 일인분의 몫을 습득하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성장서사 성애자인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아오, 그게 찐 성장이라고!!! 


현실에서 믿고 따르고 존경할만한 어른 그딴거 없고(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래서 영화에 그런 어른 나올때 마다 주먹 씹어가며 막 퍼우는 데, 울면서 우는 내가 싫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뒤틀린 부분 하나 없이 밝고 명랑한 핵인싸로 좋은게 좋은거지 살고 있다는 거 그게 성장이 멈춘 인간이라는 증거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서 얻는게 성공이 아니라 겨우 한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은 굉장한 비극이긴 하지만, 어쩌겠니. 태어나버렸는 데... ㅜㅜ (삶이라는 지독한 형벌이여..)


그르니까... 애들아, (위에 적어둔 사랑했던 모든 성장서사의 주인공들에게💌) 

알아서 잘 살겠지만 부디 훌륭한 어른까진 되려 하지말고 딱 1인분의 삶만 어찌어찌 잘살아가보자. 잘 크고 있는 거야, 니네. 토닥토닥. (p.s. 이건 비밀인데, 내가 나이 반 칠십에 겨우겨우 일인분을 살고 있거덩. 이게 아직까지도 성장서사를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이란다. 부디.. 이 비결을 내 나이 때의 너희는 모르고 살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게ㅋㅋ)


***


이 책이 밀레니얼의 연애 이야기라 들었다. 느슨하게 잡으면 나도 밀레니얼 세대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1도 힘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예전에는 김삼순 같은 씩씩한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는 데(최근에 만난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런온>의 오미주가 있다), 딱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니- 맑고, 또렷하고, 분명하고, 도덕적이고, 옹골찬 내면과 자아를 가진 주인공들에 예전처럼 매료되지 않는다. 물론 필요하고, 드라마로라도 보면서 박카스 마신 것 같은 피로회복을 느끼지만, 왜지? 요즘의 나는 개망나니 같은 주인공들에게만 홀딱 빠져버린다... 


최근에는 그게 <빌.세.따>의 주인공들이었고(이 도라이들에 비하면 코넬과 메리앤은 세상 양반이다...), 특별히 넷플릭스 <앤>의 시즌 중 가장 좋아하는 편은 너무 말이 많아서 귀가 터져버릴 것 같은 시즌1의 앤 셜리 커스버트이며, <섹듀케이션>을 떠올리면 자위를 알아버린 에이미와 섹스로 머리가 가득찬 릴리만 떠오르는 것이다. (애들아 잘 지내니..? 행복한 성생활 하고 있지...?) 이런 내가 이상한거야? 그랬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뇌과학’으로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비밀 분석하는 매우 재밌는 책(‘이야기의 탄생’이다)이 말해주기를 “(84)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라고 한다. 


네, 제 뇌가 결함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제가 결함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원래 그렇다는 군요? 🧠🙄


특별히 아직 청소년인 개망나니들에게 더더 끌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 세상의 생겨먹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버려서 인 것도 같다. 냉턱없는 위악을 떨어도- 그게 다 발버둥 같아서- 걔들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진짜로는 하나도 밉지가 않으니까. (사실 정말 미운 것은 엉망인 세상에서 망나니 아닌 척 하며 점잔 뺄 수 있는 어른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어른이 되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그러나 결국은 그저 그런(normal) 어른이 되고마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서사를 사랑할 것 같다고.


그르게.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요 전날 밤 메리앤이 그에게 어른스럽게 잘 자란 것처럼 보인다고, 그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고 말한 뒤로, 그는 부지불식간에 종종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떠올리면 기분 좋은 말이었다. 너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너를 좋아해. 정말 그 말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확인해보려고,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다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가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 P65

내가 너한테 했던 모든 말에 죄책감이 들어. 코넬이 덧붙였다. 만일 누군가한테 들키면 상황이 안 좋을 거라고 한 것도.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강렬했어. 사실 애들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나 혼자 불안감에 시달렸어.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감을 너에게 투사했던 것 같아. 그게 말이 된다면 말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도 왜 내가 그렇게 정신이 나간 것 처럼 행동했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
그녀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가 너무 세게 맞잡아서 손이 아플지경이었지만, 그의 이런 필사적인 몸짓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용서해줄게.
고마워. 그 일로 깨달은 게 많아. 그리고 내 희망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변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변했다면, 그건 너로 인해서야. - P117

코넬은 사실 지금껏 자신이 특별하다고 확신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그에게 장학금은 난데없이 나타난 으리으리한 유람선처럼, 거대한 물질적 사실이다. 이제 그는 원하기만 하면 무료로 대학원 과정을 밟을수도 있고, 더블린에서 무료로 거주할 수도 있으며, 대학을 마칠 때까지 결코 다시는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갑작스럽게 빈에서 페르메이르의 회화 예술을 보며 오후를 보낼 수도 있고, 날씨가 더우면 값싸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사 마실 수도 있다. 마치 그가 지금껏 채색된 무대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온 것이 진짜 풍경이라고 밝혀진 기분이다. 외국의 도시들은 진짜고, 유명한 예술품, 지하철 시스템,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잔존물도 진짜다.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은 돈이다. 돈에는 무언가 너무나 부도덕하고 섹시한 데가 있다. - P199

그때쯤 코넬은 너무 기진맥진하고 비참해서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했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거나 공황 발작이 일어났지만, 그런 상황은 그의 내부 어딘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외부에서 불시에 그를 덮치는 것 같았다. 내적으로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겉은 너무 빨리 해동되어서 줄줄 녹고 있는 반면, 속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냉동식품 같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더 무뎌져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P264

그는 자신이 너무 빠르고 장황하게 말하고 있다고 느끼며 숨을 들이마시지만 중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캐릭클리를 떠났는데, 여기가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도 없고요. 그 우정이 다 사라지고 없으니까요. 롭은 가고 없어요. 나는 다시 롭을 볼 수 없고, 다시는 그 삶을 되찾지 못할 거예요.
이본이 테이블 위의 티슈 케이스를 그를 향해 밀어준다. 그는 야자나무 잎사귀 무늬가 찍힌 그 케이스를 바라본다음, 다시 이본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만져보고야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말없이 화장지를 뽑아 얼굴을 닦는다.
죄송해요. 그가 말한다. - P267

메리앤은 다시 한 번, 잔인한 짓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어쩌면 가해자에게도 더 깊고 더 영구적인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괴롭힘을 당할 때만 자신에 대해 통찰력 있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법이다. - P277

작년 여름에 그녀는 처음으로 코넬의 소설들 중 하나를 읽었다. …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가장 사적인 생각들을 목격한다는 기분에 이루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 자신만의 어떤 복잡한 일, 그러니까 그녀는 결코 동참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녀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물론, 세이디 역시 딱히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세이디는 자신만의 내밀한 상상 속 삶이 있는 작가다. 반면 메리앤의 삶은 순전히 실재하는 개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만 펼쳐진다. 그녀는 코넬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알기 쉬운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는 그녀에게 없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내면의 삶 말이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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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20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되는 글이네요ㅋㅋㅋㅋ저도 성장영화마니아♡ 거의 일치하는데 제가 못본 몇개는 믿고 봐야겠어요! <어바웃어 보이>도 아마 보셨겠죠? 최근에 scott님 덕분에 알게된 <submarine>도 성장영화예요. 약간 빌어먹을 세상따위랑 스타일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더 나은듯해요. 다만, 유튭에서 보셔야하고 대신, 무료이며 다만2,번역이 없음요.🥲 영국영화ㅋㅋ

공쟝쟝 2021-03-20 23:52   좋아요 2 | URL
어바웃어 보이! 안봤습니다!(인생의 재미 1이 추가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아니 빌세따랑 비슷한 영국성장영화가 번역이 없다니.. 제가 무료라도 당연히!!! 못보죠!!!

미미 2021-03-20 23:5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영상 조금이라도 함 보시라고 강추드리고파요! 그정도예요ㅋㅋㅋㅋ저도 영어잘못하는데 대충이해할수 있는 그런느낌? 아님 그 영화에대한 누군가의 리뷰도 유튭에있는데 그영상만 보셔요.매력있는영화임요ㅋ

공쟝쟝 2021-03-21 00:01   좋아요 2 | URL
저 요즘 밥먹으면서 유튭보는 데 아쉬운대로 리뷰볼게요 ^.^ 앞으로도 많은 성장영화 추천부탁드립니다.

미미 2021-03-21 00:14   좋아요 2 | URL
아! 리뷰영상은 유튭에 한글로 ‘영화 서브마린‘치심되요.😆

새파랑 2021-03-21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공쟝쟝님 리뷰 보니까 책을 그대로 다시 읽은거 같아요. 마지막 문장에 공감 합니다~!

공쟝쟝 2021-03-21 09:08   좋아요 2 | URL
소설읽다가 등장인물에 과몰입하는 경험 오랫만이었어요. 아, 애들아 이러지마.. 하면서요.. ㅋㅋ 재밌지만 힘겨운 책이었습니다.

바람돌이 2021-03-21 00: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우 슬램덩크에서 찌리릿 전기가.... ㅎㅎ 저는 슬램덩크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 폼 내볼려고 일본 가마쿠라까지 갔다온 여자입니다. ㅎㅎ (슬램덩크 배경이 가마쿠라예요. 폼은 안났지만..... ) 다른 목록들 보면서 우와 나랑 좋아하는게 많이 겹치는구나 했어요. 하지만 역시 마블은 배트맨이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특히 배트맨 비긴즈의 그 배트맨!! 스파이더맨은 제 2번째 마블 애정맨이에요. 최애 캐릭터를 두고 갑자기 불끈 하는 기분이..... ㅎㅎ
이 글 보다가 또 치아키 보고싶어서 드라마를 다시 볼까싶기도.... 아 이글은 노멀 피플의 리뷰인데 추억돋는 저 목록들 때문에 좋은 리뷰가 가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공쟝쟝 2021-03-21 09:20   좋아요 3 | URL
슬램덩크여... 와 찐덕후들은 정말로 일본 가더라고요? 진짜 폼나시네요. 지금보면 그때처럼 사랑하게 될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강백호랑 북산고 망나니들 너무 좋아...
배트맨!!!도 좋죠. 그렇지만 스파이더맨은 아직 어른이 아니예요ㅋㅋㅋㅋ ! 😆제 애정을 받으려면 어른이면 안되나봅니다. 아마 피터파커도 어른되면 내쳐질 겁니다 ㅋㅋㅋ
치아키 센빠... 는 처음에 너무 싫었는 데(원래 만화로 먼저봤거든요. 만화 비주얼이 더 좋지만), 점점 잘생겨보이다가 결국 타마키히로시=치아키 가 되버린 예...
그렇죠.. 저도 분명히 노멀피플 좋다고 쓸 생각이었는 데 다쓰고 보니 추억여행이야😩 나를 성장시킨 성장영화들. 뭐 이런.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1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관성 연속성 자아정체성 굳건히 다져가며 자라난 쟝쟝 어른이ㅋㅋㅋ깨알같이 재미나네요. (선잠후럽...이라든가 난 20세기소년인데 왜 공감해!!!) 난 이거 좋아 하고 딱 말할 수 있는 취향을 갖추기 위해 여기 나온 거 말고도 얼마나 무수한 빻거나 빻지 않은 서사를 두루 섭렵하셨을지 쟝쟝님 댁 앞에 리스펙트 하나 놓아드리고 갑니다...

공쟝쟝 2021-03-21 09:26   좋아요 3 | URL
남자애들 얼굴이 하나 같이 짠내나게 생겼다는 일관성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이 댓글에서 <20세기 소년>을 발견하고, 그렇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외치고.. 갑자기 만화책 보고 싶다... 그러고보면 한국물에 <말죽거리 잔혹사>나 <바람>도 재밌게 보긴했는 데 한국 영화 속 청소년들은 자아는 없고 거들먹만 있어서 싫었어여 ㅋㅋㅋ 역시 내맘에 들려면 좀 병약해야 하나봨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0:33   좋아요 2 | URL
저도 원래는 저런 타입 좋아했는데 실제로 겪고 보니 좀 동글동글 납작한 애들이 모나지 않고 좋다더라...(속닥속닥)

공쟝쟝 2021-03-21 10:45   좋아요 2 | URL
영화에서 짠내나는데도 애정이 생긴다는 건 사실은 잘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ㅋㅋ 실제로는 병약미로 잘생기려면 절세가인이어야 할걸요? ㅋㅋㅋ
저도 현실에서는 약간 다부진 타입 좋아해요. 흐느적거리는 거는 보는 걸로만(속닥속닥)

scott 2021-03-21 1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샐리루님 신작 올 9월 7일 출간 예정
[가제- 아름다운 세상, 당신들은 어디에??]
노멀 피플 시즌 2는 올 연말 쯤 ??

이페이퍼는 성장 서사 덕후를 위한 모든 것이 담겨 있네요.

치아키 센빠이 요즘 황태 보다 더 말라버려서 안쓰 러움 ㅋㅋㅋ

공쟝쟝 2021-03-21 17:24   좋아요 1 | URL
와우, 역시 이바닥의 정보왕 스콧님! ^^// 나오면 챙겨서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치아키 센빠이... 더 마르면 안되는데.... (아련)ㅜ_ㅜ

다락방 2021-03-2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간이 나이 먹어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성장하는 거 너무 좋아하지만(사람은 연애로도 성장하고, 직업에서도 성장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성장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네이름으로 불러줘였나, 그 영화만큼은 너무 싫어해요. 저는 그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좋아하는건가, 대체 저거 왜 좋아하나 싶었는데, 오늘 공쟝쟝님 보니까 거기에서 티모시의 성장을 읽었네요. 제가 읽지 못한 부분, 제가 건너뛴 부분이요. 사실 제가 그 영화에서 본 건 티모시의 성장이 아니라 어른과 미성년자의 섹스였고, 그리고 티모시는 자신이 동경하던 어른 남자와의 섹스 전에 자신을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이용하는 걸로 저는 보였고요. 그 후에 여자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사랑해‘ 라고 말함으로써 남자 감독의 로망에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저에게는 정말 싫은 영화거든요. ㅎㅎㅎㅎㅎ 책도 사놨다가 영화보고 짜증나서 책도 안읽었어요. 티모시의 성장이라니, 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우리는 이렇게나 다릅니다. (저는 아마도 다른 식으로는 영화를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는가 봅니다 ㅎㅎ)

저는 [빌리 엘리어트] 너무 좋아해요. 이건 다시 봐도 좋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야말로 성장 영화의 최고봉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빌리도 그렇지만, 빌리의 친구도 자신의 성정체성 깨달아가며 성장하잖아요. 너무 완벽한 영화에요, 찐이에요, 그 영화는. 빠샤!!

공쟝쟝 2021-03-21 22:59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피드백이 좋아서 책 읽고 나면 다른분들 리뷰를 다시 읽어보는데 너무 신기하구 좋아요 ㅎㅎㅎㅎ😬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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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취함의 단계에도 상중하가 있으니 중상에서 상으로 넘어가기 직전. 끊기려고 하는 필름을 붙잡아야겠어, 나는 지금을 기억하고 싶어, 도리도리. 그래도 자꾸 정신이 혼미+몽롱해지고, 입에서는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만 새어나오고, 어쨌든 사람은 자기가 불리한건 까먹는 법이니까, 결국은 내가 했던 말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않고, 그러므로 이제와서야 내가 기억하는 건 나에게 가장 유리한 말. 속편하게 술에 취해가는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A가 했던 말. “네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기억해야지. 기억할게. 잡아탄 택시에서 유리창에 쿵쿵 머리를 박으면서 메모 앱에 적어놓았다.

*“나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할 것.”*


**


다음 날, 이를 닦으면서, 테이블을 닦으면서, 먹은 그릇을 닦으면서, 동네를 달리면서, 머리를 말리면서, 연필을 깎으면서, 드문드문 - 띄엄띄엄 - 문득문득 - 조금씩 생각했다(너무 깊이 생각하면 다다르고 싶지 않은 결말에 가닿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로 사랑받고 있는 지(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뭔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한건가). 어쨌든 난 왜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자주 잊어버리는 지(지금도 하얗게 잊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받고 싶은 사랑에 대한 모양이 따로 있는 지(확실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타 등등. 


하지만 내가 ‘받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하기는 역시나 익숙한 쪽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생각은 이런 종류로만 흘러갔다. 그때, 어떻게 그걸 사랑이라고 여겼던 거지? 사랑이라는 말을 입혀 놓은 온갖 오염된 사랑들. 거기엔 숱한 언어적/비언어적/물리적 폭력과 나르시시즘도 있었지만 사랑을 지킬 용기없음도 포함되었다. 비겁함, 피곤함, 혹은 무지, 무지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등등. 지금껏 기를 쓰고 내가 해온 ‘주는’ 사랑 역시도 그런 오염 천지라서, 나는 사랑이 싫었다. 사랑의 이데아 같은게 있다면 걔는 걔 대로 남겨두고,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도록 사랑을 입에 담거나 쉽게 사용하지는 말자. 뭐, 거칠게 정리하면 난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


이를 닦고 나서, 닦아낸 테이블 위에서, 밥을 먹고 난 후에, 동네를 달리고 와서, 씻고 난 뒤 앉아, 연필을 깎고 난 후에. 일상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시간들 빼고 남아있는 시간들 동안엔 <밀크맨>을 읽었다. 이 소설, 어려웠다. 돌아가서 다시 자꾸 읽어야 했다. 복잡했다. 실은 단순한 이야기임에 불구하고 정말 복잡한 의식의 흐름이었다.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집중했다.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할 때가 있다는 곤란함까지 포함했기에 더 좋은 소설이었다. 돌아가서 다시 읽을 때 마다 또 다르게 보였고, 이 복잡한 와중에도 소설이 응시하려는 방향이 느껴졌다. 읽는 동안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언어적 폭력에 대해 / 루머와 소문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에 대해 / 억압적인 시대와 정치적 분위기에 대해/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마구 끓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이틀 후에,

묘하게도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랑. 

혹은 빛나는 것.

에 대해 느끼는 내면의 일그러진 거부감.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인식. 


**


“(375) 나는 언니가 왜 독을 먹이는지 알아내고 생각이 꼬인 데를 풀고 언니가 정신을 추스르게 하려고 했어. 언니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나쁜 일들이 있는데, 잊을 수 없는 나쁜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좋은 일만 보면 위험하다고 했어. 새로운 나쁜 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쁜 일들도 기억하고 새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헛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했어. 나는 그걸 몰랐고 언니가 무슨 뜻으로 ‘헛된 일’이라고 하는지도 몰랐지만 언니한테 과거의 일이 헛된 일이 아니었더라도 안타깝지만 이제는 내려놓고 돌아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 그때 언니가 나한테 처음으로 독약을 먹였어.”


**


오랜기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종교ㆍ정치적 분쟁에 시달리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밀크맨>에는 이제 그만 내려놓고 돌아기를 권유하는 동생에게, 그 모든 일이 ‘헛된 일’이 되지 않기 위해라며, 독약을 먹이는 언니가 등장한다. 잊어서는 안되는 나쁜 일들을 해결하지 않은채 혹시라도 좋은 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이 나쁜 일들 역시 모두 ‘헛된 일’이 될거라는 인식. 나쁜 일 보다 더 끔찍 한 것은, 행복해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헛된 일’이 아니어야 한다”는 매우 강한 당위(에 대한 집착). 일부의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위가 작동하는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먼 나라 과거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전에 통과했던(혹은 통과 중인) 시절과 닮아있어 기시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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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물론 딱 맞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만약에 바로 그 사람, 내가 사랑하고 원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과 진실하고 건실하고 충만하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합을 이룬데다가, 내 짝의 사랑도 식지 않고 나의 사랑도 식지 않고 두 사람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살해당하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고 즐겁다면? 정말로, 진실로,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나? 이곳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바라는 것은 과도한 일로 봤다. 그래서 의심, 죄책감, 후회, 두려움, 절망, 원망 속에서 끔찍한 자기 희생을 치르며 결혼하는 것이 이 곳에서는 암묵적인 필수 코스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려고 결혼을 안하고 버텼다. 어쩌면-남자친구와 나 사이를 정식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은 갈망이 이따금 들기도 했고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도 내내 어쩌면-관계를 고수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엉뚱한 사람과 결혼했다.”


“(382)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취약한 상태를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자 오빠는 운명에 의해서건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건 그걸 잃거나 뺏기기 전에 스스로 끝내는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그때 아무도 오빠에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오빠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대체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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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하는 것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 두려움을 차단하기 위해서 감각을 차단하고 행복감마저 차단해 버리는 존재들. 하늘이 파랗지 않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다르고 빛나는 것이 있다면 저주를 퍼붓는 마을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못했던 것은 나역시 “(135)안전한 어둠에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진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이 나쁜 이유는 고통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많은 수고로움들이 삶을 왜곡한다. 나의 경우 그것은 선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고,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도 못한 채로 선택당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순간순간을 자책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는 인식을 차단하고 감각과 감정을 차단하며, 고통의 위계를 짓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고유한 각자의 욕망을 억압하고, 타인의 욕망을 비난한다. ‘안전한 어둠’에 머무르려 하는 것. 빛을 인식하고, 그것을 살아보려 하는 이들에 대한 부정과 시샘. 끝내 타인에 대해서는 물론 자신의 행복감마저 저주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안에 자리잡아 그늘을 만들고, 집단 안에서 일종의 ‘윤리’로 기능하게 되는지 그 숨막힘을 함께 느끼며 알 수 있게 된다. 슬프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표정을 잃고, 더 이상 걸으면서 책을 읽지도, 저수지를 힘껏 달리지도 않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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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지금은 안다. 내가 어떻게 했든 간에 소문이 잦아들거나 멈추거나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때는 일단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멍한 얼굴을 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긴 했다. …  당연히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당연히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내 몸에서 자연적인 반응이 들끓는다는 것도 당연히 알았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으로 내가 살아 있고 여기 내 몸안에 있으면 내면의 격랑을 경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삶에 대한 나의 무감한 접근이 겉으로만 그렇게 꾸민 가면이 아니라 점점 실제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먼저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리가, 처음에는 “좋아, 잘했어. 사람들을 잘 속여서 내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게 만들었어”라고 칭찬을 해주던 머리가 이제는 내가 거기에 있기는 한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우리 반응은 어떻게 된 거야? 속으로 표현하던 감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어디 갔지?” 감정이 표출되기를 멈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무감함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지역 사람들 만 내 속을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내면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신, 밀고 당기기, 저격, 응사, 우회, 왜곡 등이 신체적으로도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사람들과 내가 최종 맞대결을 향해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기분이었다. … 사람들을 경계하고 피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이렇게 암울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소모되었다. 애초에 속마음을 숨기려고 했던 까닭이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한순간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나의 몰락을 초래했고 몰락에 기여했고 몰락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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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같은 날들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당시를 통과할 때는 몰랐지만 나는, 있다.

일그러진 이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누구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통과 중이거나. 


때때로 악몽에서 깬다. 횟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그 시기를 떠올리는 꿈을 꾸고 나면,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의 결과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울감에 빠진다. 상처에 신세진 기분, 덕분에 성숙해진 기분이랄까. 여하튼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깨끗히 지워져있던 내면세계를 복구하고 있고, 이것은 생각지 못한 행복한 경험이라, 너무 소중해서 가끔 전전긍긍하게 된다. 책 속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이게 너무 좋은데 뺏길까봐. 이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데, 너무 많이 의존해 버릴까봐. 없던 때로 돌아가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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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하늘은 파랗죠. 하늘이 또 무슨 색일 수 있어요?”

물론 우리는 사실 하늘이 파란색 말고 다른 색일 수 있다는 것, 다른 색이 두가지 더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인정할 이유가 없었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그날 저녁에도 하늘의 색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세가지 색 - 파란색(낮하늘), 검은색(밤하늘), 흰색(구름)- 에다 그 밖에 더 많은 색이 있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인정한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고 선택은 책임을 뜻하는데 우리가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본 탓에 추궁을 당하고 무너지게 되면 어쩌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 그게 좋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좋았고 마음에 들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에서 위안을 얻고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면, 그것을 빼앗긴다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나? 애초에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하늘은 파란색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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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면을 갖추는 일에 열렬히 의존 중인 요즘의 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점이 있다면 “애초에 없는 편”을 절대로 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그 프레임 안에서 막연히 생각할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을 사는 삶이란 건.


그래서 프랑스어 선생님 처럼 나역시 통과 중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것은 빼앗거나 가져갈 수 있는,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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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저녁놀을 보고 불편해하는 것도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는 것도 다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니까. 깨어난다는 의미니까. 본심을 들켰다고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우리가 자기를 보고 더 용맹하고 모험적인 정신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지 심호흡을 몇번 더 했다. 그렇지만 그 문학반 교실 안에서 모험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나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더 모험심이 없었다. 나는 적어도 하늘이 주는 충격, 일몰의 전복성을 일주일 전에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보아하니 다른 사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일몰을 처음 맞닥뜨려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공황에 휩싸일 것 같은 심정이었다. 충격이 공기 중에 감돌고 잔물결처럼 밀려오고 파도처럼 덮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번 일몰을 보았을 때 똑같은 공황을 경험했지만 가만히 서서 공황에 압도되지 않게 버티면 차차로 가라앉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살짝살짝 정신을 조종했고 이윽고 거슬리고 낯설고 불편한 느낌이 사라졌길래 고개를 숙여 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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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공황 주의. ㅎㅎ

그것에 너무 압도되지 않게 살짝살짝 정신을 조종할 수는 있어야 함.


누군가 물었던 적이있다. 내 이상주의에 대한 의구심을 섞어서. 폭력없는 세계가, 상처 없는 세상이 가능할거라고 믿냐고. (그 질문은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의 냉소였을까.) 적당히 곰곰히 생각해봤는 데,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현실주의를 근거로 들어 어떤 폭력은 눈감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본심은 알 것 같다. 그만큼의 숨  쉴 공간, 그 만큼의 자유로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137) 이미 적응한 좁아진 세상에 남아있기가 더 쉬웠다.”


쉬운 선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더 이상 쉬운 선택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또 선택에 따르는 댓가가 너무 어려워서 내가 많이 고통스러워지는 것 역시도 사절이다. 


폭력없는 세계? 가능하지 않다. 때리거나 죽이는 것만, 혹은 성기를 집어 넣는 것만, 폭력으로 인식하는 납작한 세계에서의 폭력이라면- 그건 가능할지도? 다만 그만큼의 폭력이 사라진 세계라면- 그때의 우리는 폭력에 대한 훨씬 많은 해석과 정의를 갖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껏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폭력들을 포함한 더 많은 폭력들이 당분간은- 생겨나는 것 처럼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겨우 숨 쉴 공간이 빼앗겨질지도 모르겠고, 종종 공황의 시간이 찾아올 지라도. 하늘의 색깔은 파랗지만은 않은거니까. 그건 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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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우리는 작은 대문을 열고 닫고 할 것도 없이 작은 산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고 나는 초저녁의 빛을 들이마시며 빛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부드러워진다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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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 여느 유명한 싯구처럼. 내게 있는 분노, 아픔과 슬픔을 해석하다보니 고통이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상처가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가장 치명적으로 아팠던 것은 가장 사랑했을 때라서, 사랑과 고통을 따로 떼놓기도 어렵다. 


인정하고 있다. 상처가 내게 굉장한 교훈을 준 건 맞다. 그런데 그건 ‘교훈’일 뿐, ‘나’는 아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온 건 나 자신이다. 넘어질 때 마다 적절한 순간 누군가들에게 의지도 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그 기운에 기대어 이별하고, 해석하고, 다시 걷고, 조금씩 행복해질 수 있었다. 아, 어떤 날은 정말로는 이해받지 못해서 차라리 이데올로기에 기댈 때도 있었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보다 책 속의 한문장, 영화나 드라마속 인물을 부여잡을 때도 있었다. (… 음 … 확실히 현실인간보다는 그쪽이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만약 현실에 없는 그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쳤다면, 내가 그것들의 ‘흔적’ 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곁에 두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왔기 때문일 거다. 그러고 보면 난 왜 노력했던 걸까. A의 말대로, 사랑 ‘받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는 망가질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없다라는 내 안의 어떤 단단한 잠금장치의 기저에는 잊어버린 ‘사랑받은 기억’ 같은 게 있나. 잘 모르겠다. 어렵다. 고통의 가운데를 건너는 순간 고통을 인식하기는 어려운 것 처럼, 사랑을 받고 있는 순간엔 사랑을 인식하기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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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불신이 너무 강해서 나를 도와주고 지지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있었을 텐데도 친구를 만들고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을 못 믿었고 나 자신을 못 믿었고 나한테 도움을 구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때에는 정신을 붙잡고 추스르는 게 내 최대 목표였고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정신을 붙잡고 추스르려 애쓰고 있었으니, 어쩌면 나로서는 도움이나 위안이라는 개념을 알아차리거나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접근하기는 했고 그중 몇몇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정말 좋은 뜻으로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움츠러들었는데, 두려움과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무엇이라도 사람들에게 말할 만한 일이 있는지 아닌지조차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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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난 내 방식대로 ‘나에게 다가온 곱씹을 말들 목록’에 아래의 말을 추가해 놓기로 한다.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할 것.”*


그 말은 어떤 격려였다고. 

종종 삶에서 만나는 힘든 과정에 사로잡혀 버리고 싶을 때, 부디 네가 받은 사랑을 기억해내서 조금씩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아무래도 사랑받는 방법을 조금은 배워야지 싶다.


"그런 사람도 있단다. 딸아. 고통을 한껏 누리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정신병을 일으킬 이유가 많은 사람, 고통스러울 이유가 더 많은 사람도 있어. 그런데도 어둠에 굴복하거나 한탄에 빠지지 않고 용기있게 자기 갈 길을 가고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이렇게 엄마는 위쪽을 바라봐야 한다며 고통의 단계를 구분해가며 말했다.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있는 사람. 자격이 있긴 하지만 자기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몫을 심하게 넘어선 사람. 아빠처럼, 다른 사람에게 속한 고통 받을 권리를 빼앗아온 난데없는 무자격자. "네 아빠 말이다." 엄마가 말했다. - P130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안도감이었다. 내 몸이 외치고 있었다. ‘할렐루야! 그가 죽었어! 씨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 말이 내 전두엽에서 떠오른 정확한 단어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 P428

‘인생은 다 끝났어. 내 인생은 끝났고 다 지나갔고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근근이 사는 거야’ 하는 식의 노인 같은 태도.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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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8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4-09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밀크맨이 이달의 당선작을 선물로 줌 ㅎㅎ
축하해요 ^ㅎ^

공쟝쟝 2021-04-09 16:37   좋아요 0 | URL
엇 이거 나름 공들여 썼는데 알라딘이 알아봐 주셨당!!!!

공쟝쟝 2021-04-09 16:37   좋아요 0 | URL
감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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