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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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카프카의 <꿈>을 만났다. 어제 잠들기 전에 만났으니, 아직 헤어지지 못하였다. 세계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자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그가 꿈에 대해서 쓴 일기들, 연인에게 보낸 편지들. 역자 배수아는 카프카가 적은 꿈이 너무 아름다워 잊히지 않아 인용한 단편을 쓴 적이 있다 했다. 아름다운 꿈. 잊히지 않는 꿈. 


자기 꿈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곤 했다. 밤사이 일어난 인상적인 꿈을 몸을 써서 이야기해주려고도 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꿈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로또 맞는 길몽은 사고 싶어 할 테지만. 엄마는 항상 예지몽을 꿨다. 엄마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신기하다. 큰일을 앞두고 엄마에게 좋은 꿈을 꾸도록 당부한다. 


엄마 딸인 나는 예지몽을 꾸지 못한다. 일이 바쁠 때는 꿈에서도 일을 한다. 대부분은 낮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꿈을 꾼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이 좋다. 꿈을 이용하는 편이다. 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내게 보내는 신호로. 나 라도 나를 편하게 대해야한 한다는 합리화로, 해석으로. 카프카가 꿈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퍽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와의 공통점. 어떤 꿈들은 나에게 숙제처럼 반복되고, 그것들의 명령을 받아서 삶을 풀어 나가고 있다. 잘 풀리면 꿈은 안도한다. 안 풀리면 계속 꾼다. 


/


아침에 연필을 깎아서 영어 문장을 쓰다가 문득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다르게 읽히고 들렸다. 그래. 그게 맞고. 그건 맞지. 다짐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 살아야겠다. 


<이젠 나도 어엿한 블랙 윙 있는 여자다!?>


나는 그런 몽당연필을 처음 봤다. 샤프보다는 펜을 사용하고 연필은 거의 쓰지 않는 종족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게 너무 멋졌다. 어떻게 연필을 끝까지 쓸 수가 있어요? (= 어떻게 공부가 생활일 수 있어요?) 


친구들은 매일 공부를 한다. 거기에는 이유와 목적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처음 봤다. 있었는데 못 봤을 수도. 나는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사실은 있다. 물론 목적이 바뀌었다(내 목적에 대해서 설명해 보는 일기가 될 예정이다. 다짐만큼 큰 의미부여로 끝날테니 읽어달라).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내게 닥치는 것들을 *그냥* 견디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정말 어떤 부분이 변해버려서. 그냥. 도 견뎌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 날 늘상처럼 일기를 쓰다가 문득 끈끈한 언어들이 타닥타닥 엉겨 붙기 시작했을 때 (즉, 사후 해석이다) 마치 반복되는 꿈처럼. 반복되는 현실의 쟁점들. 나는 알아버렸다. 반복되는 그걸 다르게 이해해 보기 위해서. 다르게 해석해 보기 위해서. 나는 읽고 쓰기라는 가성비 좋은 행동을 하기로 했구나. 또 나는 왜가 있었네. 그냥은 없었네. 


사는 게 좀 재밌어졌다. 삶은 통제할 수 없지만 해석은 온전히 내 것이다. 언어를 무한정의 언어를 다 흡입하고 싶어. 작년 요맘때부터는 얼마나 또 큰 가르침 주시려고.라는 문장을 입에 달고 산다. 얼마나 또 크게 배우려고. 이러다 대천재를 넘어서는 대현자 되겠어요. 그런데 매번 똑같은 부분에서 울고 있는 건 비밀이다. 비밀 아니다. 눈물을 감출 수는 없으니까.   


다시 돌아가서. 연필 한 자루가 다 닳아지는 게 일상인,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읽고 쓰기를 하는 친구들. 그냥 잘난 척이야라고 웃으면서 스르르 넘어가지만. 그건 내게 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잘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게 일종의 아비투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출판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는 어떤 학자의 말에서, 눈을 뜨니 집에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는 저자의 문장에서, 나의 독서량에 기함을 하는 이제는 가끔 만나게 되는 친구들에게서. 공통점과 차이점. 배울 점과 다른 점. 이미 체득이 된 사람들 앞에서 한 번 씩 묻게되는 나의 당연하지 않은 조건. 


집 안에서 공부를 해본 기억이 없다. 나의 부모님은 내 공부에 관심도 없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해라) 내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으시다. 얼마 전에 동생과도 대화 나눴다. 우리 넷을 단 한 줄의 글도 참고하지 않고 키워내셨다는 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 육아에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어쩌면 그게 일관성이었겠구나. 노동이라는 일관성. 


읽고 쓰는 가족을 가진 적이 없으니, 읽고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이벤트였다. (그래서 읽고 쓰고 나면 이리도 뿌듯한가) 내게 공부는 도구였지 공부가 그 자체로 그냥 하는 것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도구는 버린다. 그 뿐. 그러다 나는 어쩌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목적 그 자체. 생활 그 자체. 일상 그 자체. 인 사람들을.


매일같이 아침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도서관에 놀.러. 나.오.는 (그녀들에게 집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의 공간이다) 사람들을 내.가. 한.가.해.져.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그냥 취미로 하는 공부란 것도 가능. 하구나!

(독서 시장에 다수를 차지하는 참고서와 자기 계발서에 대한 생각을 슬몃 해보게 된다.)


/


나의 목적 없는 뒤죽박죽 독서에 차라리 대학원을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따지고 보면 공부하는 게 제일 가성비란 종류의 말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시간 외에는 대체로 수험 공부 중이었는데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계급을 일정 부분 탈출했다.) 그 말이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난 할 말이 없었고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왜 그 말이 그렇게까지 안 받았을까. 


어떤 경험들. 투자라는 개념이 삶에 아예 없는 그저 비용. 공부라는 것이 가성비로 기능한다는 정도의 상식조차도 부모님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굴 탓해. 나 역시 학생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돈을 내고서 까지 학위 공부를 한다’라는 것이 어쩐지 꺼려진다는 (물론 대학원 갈 돈이 없기도 하다!) 애매한 흐림. 그러나 가장 1차적인 걸림돌은 자신 없었던 거다. 당선, 합격, 계급으로 계량, 평가, 수치화되는 자격증 혹은 시험 공부라는 것에. 난 솔직히 재능이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한번 만 더 그 소리 하면 너랑 안논다 으름장을 놓았지.  


나에게 읽고 쓰는 건 정말인지 너무 중요한 취미인데. 그게 일이 되고 업이 된다면.....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하게 된다면..... 내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삶의 어떤 영역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 하지만 역시 내게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는 것이기도 해서 (기본소득이여!) 지금은 최대의 사치를 이랑의 신곡대로 어떻게든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삼고 있으며. 그러니 나의 현실은 카프카다. (감히 카프카 자꾸 비벼서 미안하지만ㅋㅋ 그는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노동자들의 희망ㅋㅋㅋ 아니겠나요?ㅋㅋㅋ 다만 나는 오래오래 살겁니다ㅋㅋ)  


/


내 요지는 이것이다. 어떤 주장. 


공부를 해서 그걸로 지식을 쌓고. 그걸로 능숙해져 돈을 벌고. 유용하게 쓰고. 자격증을 획득하고. 자격증을 따는 법을 가르쳐서 돈을 벌고. 사회적 승인. 사회적 인정. 그리고 개인들이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 *만*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러니까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를 통한 다른 것이 목적이 된다면. 이제 그런 삶은 역으로 가성비가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 현시점의 인류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구성체를 이룬 탓에 훌륭하게도 AI를 만들어 버렸으니까. 딥 러닝. 마치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처럼. 가성비를 찾기 위해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이제 가장 가성비 좋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내 유희인 일상적 공부는 기계로 대체될 리가 없다. 그게 재밌으니까. 이게 자체로 목적이니까. 내게는 노는 것. 


이게 내가 내놓은 어떤 대답인 것 같다. 


삶의 방식을 읽고 쓰면서 살아가기로 바꾼 뒤에 내게 끈덕지게 따라붙던 질문. 

그걸 왜 해? 그걸 왜 읽어? 좀 써먹을 수 있는 걸 도모해야 하지 않나? 나 스스로에게도 주눅이 들곤 하던.

(그리고 요즘에는 생각이 좀 바뀐 부분도 있는 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ㅋㅋㅋㅋㅋ)


나는 이제 되려 되묻고 싶어졌다. 


이걸 왜 해? 왜-가 있는 공부.에 대해서. 왜 그것만 공부야?


목적이 있는 공부‘만’해야 한다면. 결국 공부란 건 신자유주의(자기착취)의 가장 기만적이고 강력한 통치술에 현실을 갈아 넣는 셈이 된다. 아마도 그 끝은 이길 수 없는 대상(ai)들과 분투하는 일이며. 어쩌면 ‘경쟁’이 원리인 현실의 한 부분이 ‘과도한 경쟁’의 결괏값으로 탈락되는 순간(지적 노동의 자동화)을 우린 목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나. 으아아. 정말로 현실은 언제나 오류를 배태하고 있나 보다. 슬픈 것은.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것.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ㅋㅋㅋㅋ 나는 제안해 보고 싶은 듯 하다.


왜? (기능으로서의)가 아닌. 앎의 통증이자 쾌락(정희진 샘ㅋㅋㅋ)으로의 공부에 대해. 


나와 세계를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을 자격증 취득을 위함이 아닌 삶에 습관이자 목적으로 삼는다면 (물론 그것은 쾌락과 욕망의 구조를 바꾸는 지난한 일이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적어도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언어는 쌓인다. 내게 그건 삶이 살만해지는 것으로 변화하는 경험이었다. 


흠흠. 목적없이 하는 공부가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자랑을 길게도 적었네. 


사람들이 ai랑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쫓아오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지친다.

그냥 가능하면 걔들이랑 잘 놀았으면 좋겠다.

멈추면 보인다. 

오늘도 내 핸드폰에는 챗gpt로 일 더 잘하고, 돈 더 잘 벌고, 자동 수익화를 도모하는 안내 알림들이 ...


다들 그만 좀 하지?


나는 가끔 외치고 싶은데.


/


음. 다 적고 나니 이것은 벵하민 라바투트의 소설 <매니악>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양자역학의 심연으로 시작해 극단적인 이성과 논리에의 집착으로 컴퓨터를 만든 천재 폰 노이만의 일생을 소묘하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끝나는 경장편 모음을 읽으면서 2월의 나는 즐거웠고 괴로웠다. (책의 존잼 포인트는 아주 많지만. 1. 이 젊은 작가의 장점은 압도적인 천재들의 곤란함을 쓰는 것이고. 천재 아닌 나는 천재들을 선망하기에 그들이 겪는 곤란이 즐거웠다. 2. 이 책을 일종의 근대성 비판으로도 읽는 독후감을 쓰겠노라 야심찬 계획이 있었는 데, 이제 소설 내용 다 까먹어버림.)


당시 나는 엄청난 일감을 쌓아두고 쳐내기를 허덕이면서 스스로를 아자황(알파고가 시키는 대로 바둑돌을 놓아주기 위해 이세돌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입하고 말았다. 아. 지금 나는 아자황이 아닌가. 인공지능은 바둑을 두지만 바둑 돌을 놓는 손 까지 만들 수는 없다!! 돈 버는 내 손 정말 소중해! 이러면서.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일에서는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매번 바닥을 치는 근로 의욕과의 사투. 사실 일할 때의 나는 클라이언트들의 아자황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간은 흘러 흘러 넉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OOO는 OOOOOO를 런칭했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안에 나는 곧 AI로 대체될 예정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아악. 두렵다. 정말 두렵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고. 급박. 초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나는 세상이 원하지 않는 별로 필요가 없는 존재인 것 같고. 다행스러운 것은 고양이 말고는 부양가족이 없다는 것. 정도인데. 으윽.  


하지만 이제 두려울 때, 술 대신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책이다.

홍홍!

책이나 읽어야지.

컹컹!  


대책은 없지만. 이대로라면 뭐 나만 죽겠는가. 다 죽겠지. 나는 이 난관을 헤쳐갈 능력이 없고 잘 몰겠다. 고민하느니 그냥 놀아야징~  


이제 알고리즘은 인간의 직관마저 넘어선다.

그런 우리에게 남는 것은? 

쓸데없이 기계랑 경쟁하지 말고 (나보다 똑똑한 기계의 기획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이여, 놉시다. 한가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그리고 푹 자자. 잠을. 


인공지능은 놀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 인공지능은 꿈을 꾸지 않으니까. 걔들이 못하는 걸 하는 걸로.


/


"(226)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논문의 아이디어를 더 밀고 나가 오늘날 우리가 '폰 노이만 탐사선'이라 부르는, 자기 구축과 수리, 개량이 가능한 우주선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우주선을 발사해 태양계의 외행성을 식민화하고, 거기서부터 우주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이 기계라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가 닿을 수 있는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머나먼 세계와 범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의 우주선은 외계 해안에 착륙해 필수 자재를 캐내어 자기 복제본을 만든 뒤 개량된 자손을 무한한 공간 속으로 떠나보낼 것이다." 

"(229) 비록 튜링은 실패했으나 그가 자기 '아이들'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얻은 핵심적인 통찰이라고 한다면, 기계가 진정한 지능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런 기계는 오류를 저지르고 원래 설정된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하며, 무작위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튜링은 바로 이런 무작위성이 지능을 가진 기계의 관건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놀 줄 알아야 한다고.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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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6-26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엥?! 저거 언제 저렇게 깎아 씀?!아깝게! ㅋㅋㅋ 블랙윙은 관상용이야…. 다른 거 깎아요. 예-스테들러 마스루모그래프.

쟝이 매니악 공부쟁이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글이로군!

근데 난 책 읽는데도 여전히 술로도 도피하는데…..😂

공쟝쟝 2024-06-26 18:02   좋아요 0 | URL
관상용이라니 ㅋㅋㅋㅋㅋ 진정한 연필 마니아 여기도 있으셨군요!!!! 스테들라 마스루모그래프 검색 때렸어요! 나 그 연필 있어요! ㅋㅋㅋㅋ h로 사서 책에 줄 긋습니다!! 그러나 블랙윙은 간지가 간지가 터집니다!!!!! 그냥 들고 있으면 나는 학인이다 ㅋㅋㅋㅋㅋ 이런 포스랄까요? ㅋㅋㅋㅋ
 
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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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써둔 문장을 읽었다. 

생존과 실존. 두 가지 장르에서라고 적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둘 모두의 적정한 익숙함이라고. 그게 목표라고.

두 가지를 다 갖겠다는 건가. 그때는 좀 간절했는데, 지금 보니 꽤 오만하다. 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적정함의 기준이 애매했거나 높았던 건 아닐까.  


나는 삶을 관계를 통해 적절히 외주화하는 것에 능하지 못하고. 그래서 꾸역꾸역. 그러다 오바하고. 어쩌면 거기에 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사실은 고작 1인분의 일상이지만 종종 너무 버겁고. 내 간신함보다는 관계에서 오는 희로애락이 더 무섭고 무겁고.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 적절한 온기들을 나누어준다면 정성들여 취하며 지적 호기심은 억압하지는 않는 채로. 


넘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기다시피 해서 집에 왔고, 다음 날 인대 파열 및 약간의 골절까지 진단받아… 목발을 짚고 네 다리가 되어서 집에 겨우 돌아왔으니. 꽤 아픈 것이 맞고 막 땅바닥과 인사했을 때는 번쩍할 만큼였는데. 나는 다친 직후부터 뭔가 웃겨서 계속 웃었다. 왜 아픈데 웃어요, 왜 힘든데 웃어요, 괴로운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네요, 그런 목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음. 어쩔 수 없다. 나는 좀 웃기다. 당황했을 때도 웃었고, 너무 싫었을 때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기게 만들지 않으면 웃어버리지 않으면 로코나 시트콤이 신파되는 상황. 심각하거나 비참하거나 철학하는 건 예술 영화에서나. 그런가 하면 언제부턴가 나는 너무도 자주 우는데.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시도 때도 없이 펑펑 아주 눈물의 여왕이다.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 상황에 맞는 감정 반응. 아니, 나를 느끼는 것. 그냥 내가 느껴야 할 것을 느끼는 것. 나에게 주입하는데… 이젠 반쯤 포기다. 무얼 느낄지를 누가 정해? 내가. 이젠 내가. 그래서 사실 이건 부조리극이다.


병원에서도 로보캅처럼 움직이면서 샐샐 웃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표정이 굳어있었는데 하지만 정말로 별로 짜증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웃겼으니까. 이참에 누워서 책 읽어야지. 중증이다 중증 이러면서. 그리고 오래전의 이제는 많이 잊은 듯도 한 비참한 상황들 속웃음들에 비하면 좀 건강한 웃음,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오늘의 부상은 스스로 자초한 것. (음치 박치 몸치 런치… 달리기하면서 정형외과만 몇 번째냐. 난 또 나를 몰랐니.) 


사소한 불운에 친구들이 음식을 동생은 책을 보내주었고… 맘 편하게 누워서 한가로이 책이나 읽었다. 읽다 목이 아프면 도파민 걱정 안 하고 모로 누워 그동안 참아왔던 인스타 중독자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책 사진 잘 찍는 사람들도 실컷 팔로잉 하면서 밤이 늦도록 훔쳐보았다. 이제 나도 사진 대충대충 안 찍고 잘…찍으려고 하면 결국 안 찍을 테니 대충 예쁘게 찍어야지. 앱도 받았다. 


그러다 내가 작년에 적어둔 문장에 닿았다. 생존과 실존이라. 일 년 전의 나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암담했고. 그때 나는 두 가지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냥. 이모냥이니까. 뭔가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져서 어딘가가 깨져버리니까. 익숙함. 적정한 익숙함. 적정함.을 나는 잘 모르지. 그렇다. 암담을 잘 지나왔는데도 나는 잘 모른다. 계속… 계속해서 나를 잘 몰라서, 나를 잘 알아주려고 하지를 않아서. 나를 나 스스로 별로 그다지 많이 엄청 충분하게 좋아하지는 못해서… 울어야 할 때는 웃고 웃어야 할 때는 우는 이상한 발연기를 혼자 하고 있어서. 내가 죽어야 끝나는 이 드라마의 대본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내가. 어쩌겠어. 이게 난데. 미련하고 미련 많고 그런 주제에 이상한 자존감. 굽히기는 싫은데 소화는 안되고 착한 척을 하는 건지 모아뒀다 푸는 건지.



아구아 비바를 누워서 여러 번 읽었다. 좋다. 그냥 좋다. 사실 ‘이게 뭐얔ㅋㅋㅋㅋ’ 싶은 데 너무 좋다🤪🤪🤪 승모근 뭉쳐서 침 맞으러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흉내도 못내는 그런 아주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말초 신경 하나하나 살아있는 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걸 ‘글로’ 쓴다… 🫶🏻🫶🏻🫶🏻🫶🏻 (확실히 나의 욕망은 여기에 있나 보다. 글에. 이런 걸 어떻게 쓰지? 이런 걸? 처음에는 감동받고 다시 읽을 때는 ‘어떻게’ 생각을 계속하면서 읽는다.) 추측건대 이건… 몸이 살아있는 사람이 쓰는 글이다!!! 싶은… 그러니까. 


나 같은. 몸이 통제가 잘 안되는. 잠깐 정신을 못 차리면 관념의 성에서 허우적대는. 실은 몸이 너무도 무겁고 귀찮은. 내가 싫어하는 몸을 멸시하는 구 서양 남자 철학자들처럼(언제나 싫어하는 건 나의 일부라는 알기 싫은 진실). 그러고 있는 내게.는 그녀의 문장들이 이계의 문장처럼 느껴져 해방적이다. (아… 남성들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나는 전혀 공감이 안되는 그런 해방감을 느꼈다는 평이 비슷한 맥락일까나…) 


그래서 나와 달라서 좋은 거구나 하게 된다. 나도 닿고 싶다. 생생한 삶에 불가능에 용감하고 싶고 열려있고 싶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삶의 어느 순간에 절묘하게 나를 중단시켜 버리는 주눅이 가시처럼 담석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약간 어딘가에. 왜일까. 어쩌면 그건 내가 버리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실은 포기하지 못하는 너무 소중한 무엇인 것일지도 모른다. 두 가지 다에 배팅할 수 있을까. 자유와 부자유. 일상과 초월에. 생존과 실존에. 소중하니까. 둘 다.



매혹되어 읽게 된다. 나도 클라리시 선생님을 따라 감각을 내장까지 열기 위해 당장 지금부터 몸을 단련하고 싶지만… 현실은 극단의 부자유… ㅋㅋㅋㅋㅋㅋㅋ 😮‍💨 (이쯤 되면 달리기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친거냐?ㅋㅋㅋㅋ 하는 합리적 의심ㅋㅋㅋㅋ) 어쨌든 걷지 못하는 몸 상태로 읽기에는 고난도의 작품이었다. 백자평을 어디 끄적여놨는 데. 나중에 한꺼번에.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것과 쓰고 있는 걸 이해하려 노력해 보라. 내가 설명하겠다: 나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도 내가 보는 순간을 정확히 보려 한다—과거의 순간에 보았던 기억을 통해 보지 않는다. 그 순간은 여기 이것이다. 숨 막히는 절박함을 지닌 순간. 그 자체로 절박한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살고, 나는 그 순간이 다른 순간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으로 뛰어든다. 이 둘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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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4-14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의 몸을 좌지우지 하지요. 일단 말실수를 들 수 있겠구요. 또 넘어지기.............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와중에 실컷 웃으셨다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자리 편 김에 독서 많이 하시고요, 최근에 헤겔 레스토랑 읽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4 23:16   좋아요 0 | URL
아… 그 독서 땜에 하늘 위로 둥둥 떠 다녀서 이제 땅으로 내려오라 땅과의 진한 키쑤를…🤣🤣🤣 (탈레스냐며)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4-14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작년 이무렵에 발목인대파열에서 혈전까지 골로 갈 뻔했잖아요… 골절이랑 파열이랑 최소 고정기간 끝나면 불편하더라도 많이 움직이시고 (실금 골절 정도면 뼈 앵간히 붙으면 체중 일부 부하해서 걸어도 되…는데 의사한테 잘 물어보구) 이참에 누워서 책이나 보자, 이러고 너무 오래 안 움직이면 혈전 생길 수도 있습니다(그럼 폐색전증으로 죽어…) 나보다 조금 젊은이니까 건강하겠지만… 귀찮아도 자주 다리랑 몸 움직여주시고…얼른 나으시길…

공쟝쟝 2024-04-14 23:19   좋아요 0 | URL
반님!!! 넘나 경험이 묻어나는 진지하고도 뼈아프고 혈전 온 조언 감사드려요…. 이 참에 누워있….으려던 마음이 호다닥 달아나서 안보인다 쓰윽 미뤄둔 설거지를 호다닥 해치우고 온 참입니다!!! 잘 움직일게요! 고마와요😉

잠자냥 2024-04-14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와중에 고양이 똥 치우기 어렵겠는데…. 싶어지는;;;
얼른 나아~!! (낳아 아님 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4 23:22   좋아요 2 | URL
흐아앙 잠자먕밈~! 다행스럽게도 아이들 사료를 한놈이 독식하는 사건이 펼쳐진 덕에 얼마전 자동급식기를 들였고!! 아가들 감자는 바로바로 캐고 있습니다!! ㅋㅋㅋ 그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4-04-14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매년 한분씩 부상자가 나오는군요 ㅜㅜ 다치신게 안타깝긴 하지만 또 책도 편히 읽으시고 맛있는것도 드시니 그렇게 나쁜건 아닌거 같습니다 ~!!

그래도 빨리 나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공쟝쟝 2024-04-14 23:23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내년엔 새파랑님 예약입니다! 맛난 것도 드시고 책도 편히….. 넝담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쾌유될게요! 이참에 하루키인가? 하루키를 빌려오긴 했는데 아직 잡진 않았습니다 …ㅋㅋㅋ!!

2024-04-14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sona 2024-04-15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다리 어서 나으시길…

공쟝쟝 2024-04-16 07:14   좋아요 1 | URL
펄도사님 🥲 고마워요😆

2024-04-15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6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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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집중력은 약간 어려운 것을 목적 없이 해야 생긴다고 한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주로 독후감)이다. 쓰다 보면 재밌게 쓰고 있다. 그리고 몰두하게 되지. 친구가 글 쓰다가 과집중해버린 사연을 말해주었다. 내게 글 효율이 가장 좋을 때는 일하기 싫을 때이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니까. 


강조점은 ‘목적 없이’에 찍힌다. 친구도 그랬던 건 아닐까? 혹시 일하기 싫으셨던 건 아닐까요?


취미로 하는 활동을 SNS에 올려서 수익화하라는 조언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목적이 없기(쓸데 없었기)’ 때문이라는 최신 신경과학의 권위에 기댄다면, 그런 식의 (생산성의 외피를 쓴) 조언들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도입한 목적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두기를. 당신의 몰입은, 집중력은 중요하다. 모든 것을 생산성으로 치환하지 않을 것. 그것이 개인의 삶을 식민화하지 않는 유효한 투쟁 방법이라고 현시점의 나는 생각한다. 


요즘 집중력이 엉망이라서, 오늘부터 ‘집중’해서 밀린 독후감을 써댈(?) 생각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기록들을 모아와야 하는 데, 어제 야당 지도자의 체포 동의안 가결(이 나라의 정치 무슨 일인가)을 적어두며. 7월 초에 읽은 <제노사이드>부터 쓰려고 한다. 


소설 자체는 재밌어서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못 놓고 세 번에 나눠서 읽었다. 


세번의 기록들  갈무리.  



1 .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스스로 고심해 결단하는, 

선택을 하는 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고독한 남자들이 보인다.


라는 메모. (10년 전 소설인데)


주인공 ‘예거’ 중령이 네메시스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일할 때 처지지 않기 위해 도파민용(얼굴을 보면 기분이 조크든여)으로 차은우가 나오는 <여신강림> 드라마를 밥 먹는 시간대를 이용해 감상하고 있었는 데, 옆의 메모도 함께 읽어야 더 재밌다. 


드라마 속 남주만 여주인공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준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착한’… 

2023년에 이 무슨 개떡같은 시나리오인가


가부장제 하의 여성(이라고 쓰고 바로 나)의 의존성이 어떤 식으로 장려되는지 보려면 메이크 오버 장르의 로맨스 드라마를 보라! 


드라마가 내는 결론 : 얼굴만 예쁘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차은우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볼 수 있으니깐여. 차은우 정도의 알파남을 가지려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꼭 간직해야죠. 아무에게나 빼앗길 수 없는. 차은우. (또 그 얼굴이 좋다고 보고 있는 나…ㅋㅋㅋㅋ) 나의 본모습을 알아봐주는 남자를 위해서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이중의 노동을 해야만하는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처리하느라 고독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나란 여자란 또 예쁜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시각에 약함) 결국 드라마 <여신강림>을 통틀어 가장 관심이 간 것은 처음 알게 된 배우 문가영의 프로필인데. (나무 위키를 열심히 읽은 결과)



아니 배우 문가영님, 자크 라캉 왜 읽어요? 내면+외면+지성미, 반칙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지성미 나 응원하고요, 그 옆의 배우 차은우님은 혹시라도 설마 라캉은 읽지 말고요, 당신은 머리에 뭐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건 내가 채울...(누나가 요즘 라캉 입문서 읽는...중인데....ㅋㅋ) 


교차 편집된 서스펜스가 매력적인 소설은 영화처럼 재밌고, 주인공 남자들은 목숨을 걸고 인류를 구하는 결단들을 스스로 내리며 분투하는데. 클리셰 폭발 로맨스 드라마 속 못생긴 여자 주인공은 화장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구하며, 그 과정에서 알파남을 얻는다! 


두달 전, 두 작품을 함께 보는 나는 그게 못마땅 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내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고생하며 인류를 구할래, 화장하고 차은우를 구할래?라고 물어보면 인류보단 역시 차은우를. 벋 문가영처럼 매일 매일 화장하는 건 이제는 정말 못하겠고요. 세안도 열심히 해야하고... 후... 물도 아깝고… 그냥 인류도, 은우도 싫고. 나는 나나 잘 구하렵니다. 

 


2.


<제노사이드>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생각들이 각종 심리학에 능통한 두뇌파 등장인물 루벤스의 입으로 구구절절 나열 되는 데, 대략 이런 대사들이다. 


"(55) 그러면 수십 만 명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전쟁을 지시하는 국가 지도자의 잔학성은 보통 사람과 같을까? 아니면 역시 그들은 이상한 사람이며, 남들과 벗어난 공격성을 사교적인 미소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일까? 루벤스는 후자일 거라고 추론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모든 정치적 투쟁을 승리한 인간은 정상의 범위에서 이탈한 호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을 리더로 선출하는 시스템이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뽑힌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의사를 체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했다.

(258) 그가 특히 주시한 점은 국가나 군산복합체 같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였다.

(259)

루벤스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번즈 대통령이라는 사람 자체였다. 그의 발언 내용을 보면 이라크 독재자를 깊이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만 어째서 죽일 정도로 미워하는지 석연치 않았다. 거기에는 국익이라거나 군산복합체로 이익을 유도하는 것뿐 아니라, 어쩌면 번즈 본인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잠재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루벤스는 제한된 매스컴 정보로부터 대통령의 살아온 이력을 더듬어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가정에서 독재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라크 독재자와 겹쳐 보고 타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루벤스 본인조차 데이터 부족에서 오는 단편적인 분석이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만약 그것이 진짜 핵심이라면 무서운 일이었다. 지구상에 있는 한 남자의 부자 관계 때문에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 되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적을 때려 부순 뒤에 번즈는 허무함을 느낄 터였다. 애초에 그가 싸울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인 것은 자신의 심층 심리가 낳은 허구의 적에 지나지 않았다."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자신의 심층 심리가 낳은 허구의 적에 밑줄. (제가 또 푸코 읽기 전까지는 심리학 많이 읽었다 아닙니까 ㅋㅋㅋ) 그래서 국가 지도자의 내면세계가 이렇게나 중요한데,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인데, 어쩌다가 내 나라의 대통령은 서울대 출신의 한남 검사인가. (K-하늘 아래 발에 채이듯 보이는 게 윤석열스러운 인격이긴 함…) 


내가 나라에 잘못한 게 무엇인가. 내가 애 안낳는 거 빼고는 세금도 잘내는 데, 왜 나까지 매도되어야 하는 가. 나는 아니다, 나는 윤석열과 같은 인격이 아니란 말이다! 아무리 항변해 보아도. 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2찍 바보! 이래봤자, 2찍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금내는 국민이 할 일은 2찍에 대한 비난과(을 하지 말자고 쓰려다가 차마 내가 못하겠음. 윤석열 싫어!!!!~!!!) 동시에 어쩌다가 윤석열이 나왔는 지에 대한 보다 풍부한 해석이지 않을까. (딱 잘라내진 어떤 단선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저는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2찍이 아닌 1찍의 멘탈을. 


승리자 혹은 자수성가한 자들은 자아도취를 경계해야 하는 데, 결국 자.적.자(😲자기 적은 자기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밝힙니닼ㅋㅋㅋㅋ)라고, 변화의 시기에 효과를 본 방식만을 계속해서 고집하면 포트폴리오가 망가지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민주당의 패착은 방식의 혁신 없음(권력 도취 + 도덕적 우월감/만족감 + 피해의식 => 같은 편은 모르겠고… 옆에서 보기엔 비호감, 꼴비기 싫음) 거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계속해서 혁신하는 기업가(자본가) 정신이 권력 나누느라 바쁜 우리 편 힘줘! 정치를 이기는 것도 말은 된다.


민주화와 산업화 모두에 성공해버린 한국의 정치는 1/2찍으로 싸우는 게 아니다. 국민의 멘탈리티(정신 건강)를 가지고 싸우는 거다. 국민을 사랑해서 하는 정치라면, 제발 한국인의 피폐해져가는 심리상태를 똑바로 보라!! 걱정스럽지 않나?


소설에 나온 권력자들의 모습과 현실 정치를 연결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좀 있었는 데, 오늘의 페이퍼에서 내가 기억해두고자 하는 것은 이 개념. 


사후확증편향 (유튜브 하나 가져옵니다) https://youtu.be/Sy6sFrZVONA



(심리학) 행동 경제학의 개념이고(여러분 저는 경영학도 였습니다ㅋㅋㅋ)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애써 외면하는 무의식, 즉 자기 정당화)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심각한 사후 확증편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것은 분단이라는 조건에 의해 오랜 시간 구조화되어 왔으며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가 갱신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지 없이를 여지 없이 해버려서 편향이 강화만 된다. 흠🤫 어쩌면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하는 데, 이걸 정치가 부추기고 있다. 대의제의 한계를 봉합하던 광장을 포함. 정치가 아무런 효능감을 주지 못할 때. 한국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탈정치화되는 것 같기도 해.


인간의 뇌는 익숙한 걸 좋아한다. 익숙한 관계, 익숙한 방식, 익숙한 맛, 익숙한 마음과 정서. 불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서 (정치적) 진보가 어려운 것이고. 


문제는 인간이 약 15년 전에 새로 만들어낸 이 스마트 기계(+SNS)의 알고리즘이 그러한 인지 왜곡을 더 강화시키는 방식(익숙한 것에만 노출)으로 설계되었다는 거다. 이걸 다 집어던질 수는 없을 테지만, 우리 자신의 무엇을 바꾸는지는 알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24시간 떨어져 있지 않은 기기가 인간 무의식이 가진 편향들을 계속해서 더 가속화 시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채면, 의식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훈련해야 하는 거구나 하게 된다. 자기갱신.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역시 속담이 최고여.)


몸뿐만 아니라 지식의 섭취만큼은 그래야겠다고 다시 한번 맘을 먹는다. 앎비앎. 내가 옳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읽으려 들지 말자. 다름을, 불편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적인 불편함.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의심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소설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인류를 구하기 위한 그 자신들의 싸움을 각각 떠안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생각하지 않음. 넘겨 짚지 않음. 듣고 싶은 말만 듣지 않음. 자신을 끝까지 의심함. 우리 편이라고 마음 놓지 않음. 이들이 극도의 위기의 순간에 하는 결단은 의외로 멈춰서 다른 의견들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숙고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중한 주인공들이 싸우는 이들은 권력에 도취된 확증편향의 정치가들이고. 


3.

마지막 이 책 <제노사이드>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서양남 일본남 아프리카남 심지어 피그미족남에 한남까지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여성은 엄마, 부인, 임산부… 말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민첩한 액션을 강조해야 하는 서사 구조상 알탕일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관심 없어도 너무 없고 있어봐야 후지다. 여성은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재생산을 위해 쓰이거나, 강간을 당하거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역할이 배정되어 있으며 그런 방식으로만 기능한다고 보면 됨. ​


나는 이게 일본 책의 폐해ㅋㅋㅋㅋ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일본보다 한국이 차라리 낫다. 


실제로도 핵 단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권한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생물학적 여성이 오른 적은 아마 없다. 인간은 똑똑한 여성(힐러리 로댐)을 그 자리에 앉히느니 도람푸를 앉힌다. 엄밀히 말하면 그게 이 지구의 수준인 것이지. 인간의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나지. 나의 수준에 창피함을 느꼈다. 

여자도 인간이니까. 인간들아 잘 좀 하자.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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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3-10-14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글 너무 좋네요. 공장쟝 님 팬이 될 것 같아요. ^^ 저도 외칩니다: 인간들아 잘 좀 하자.

공쟝쟝 2023-10-14 14:11   좋아요 1 | URL
잘좀하자! 나도 하자! 블루욘더님 안녕하세요!~ <세계 그 잡채>저도 이 책을 샀습니다! ㅋㅋ (읽지는 못하고..)

잠자냥 2023-10-1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쳐 ㅋㅋㅋㅋ 소설 읽고 철핫 금지.

공쟝쟝 2023-10-14 14:12   좋아요 1 | URL
철학 아니고 ㅋㅋㅋ 페미니즘 섞인, 정치 비!평! (훌륭해라!)

단발머리 2023-10-14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우리나라와 같은 극단의 이분법은 분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지 싶어요. 보수는 또 부끄러워할 판이다. 진짜, 차라리 이명박이 낫다, 라는 말이 나오기 직전........

앞모습 옆모습이 다 이쁘군요, 차은우는...........

공쟝쟝 2023-10-14 15:35   좋아요 0 | URL
동원캉이랑 비교 많이 되던데.. 차가 탱탱하니 더 이쁩디다 제겐 ㅋㅋ

잠자냥 2023-10-14 15:37   좋아요 1 | URL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사진 보니 뒷모습도 이쁘더군요. 저는 물론 그 사진 속 강쥐 세 마리가 더 이뻤습니다만….

공쟝쟝 2023-10-14 15:42   좋아요 1 | URL
잠자냥이 차은우 뒤통수 예쁘다고 하는데 왜 나 속상해? 안돼 잠자냥만큼은 차은우에게 넘어가면 안돼요!!ㅋㅋ 일루오지마!!! ㅋㅋㅋ 그러다가 막 나처럼 임영웅 노래 들으며 효도하고 싶어지는 그런 감성에 몸부림 친다!! 남연예인에 흔들리지 말아주세요!

잠자냥 2023-10-14 15:49   좋아요 0 | URL
웅 나 안 좋아해 ㅋㅋㅋㅋㅋㅋ 좋아하는 여자들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봤으나 강쥐가 더 이쁘더라능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52   좋아요 0 | URL
나도 은우를 예뻐하지 좋아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건 프랑스고양이잠자냥의 두뇌입니다 ❤️ 뇌성애자💘

은오 2023-10-1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은 글이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36   좋아요 2 | URL
쉿 .😽🧐

잠자냥 2023-10-14 15:50   좋아요 2 | URL
다 읽은글이구먼22222

은오 2023-10-14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은우는 놀기 바쁜 것 같던데.... 평생 라캉 읽을 일은 없을 듯합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38   좋아요 1 | URL
우리 은우도 연기 잘하려면 인간 심연도 좀 들여다 보고 그래야하는데, 누나가 원하는 건 그런게 아니란다. 네게서 그런 걸 원했다면 여신강림을 봣겠니? 연기 잘하지 않아도 난 이해해. 내가 너라도 그랫을거야! 진정한 팬의 자세라고나 할까.
 
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밀레니얼의 사랑과 섹스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아니다.
관계(특히 젠더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학/피학적 역학에 대한 스케치다.

내게 이성애 섹스가 재미없고 피곤한 이유(나에게는 피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희열이며 지식이자 예술로도 다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좀 하려고 하는 요즘이다)는 권력의 비대칭 혹은 낙차가 존재하며, 관계를 둘러싼 참조할 만한 다양한 각본들이 문화적으로 과잉 생산되어 있고, 그것을 재료 삼아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섹텐. 섹슈얼텐션. 그러니까 텐션.

삶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지나치게 긴장을 하는 몸으로 변했고, 그래서 게임같은 관계에는 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게 너무 보여서 일지도. 나는 솔로, 환승 연애 이런 프로그램 너무 끔찍하다.) 이런 생각 역시 내 머리가 좀 썩어서라는 걸 인정한다. 관계를 통해 생겨나는 순간들이 그저 힘의 작용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친밀하고자 하는, 보호하고자 하는, 다정한 동기로 이루어진 온기의 교환이기도 하단 걸 알고 있다. 알고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음. 말을 아끼겠다.

행위 혹은 말의 이면에 대한 곤두섬없이 관계를 내 좋을대로 낭만화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나의 비관적인 시선은 일견 타당하다. 염두에 둘 것은 ‘일견’이어야 한다는 것. 이견. 삼견. 사견. 인류애를 꽤 많이 잃어버린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치열하게 골라진 시선이었음 해서 책을 읽는다.


*표제작 <캣 퍼슨>

극장에서 만난 20살 여자 아르바이트 생이 자신과 첫 경험일 거라 기대한 34살 뱃살 남의 웃픈… 섹스 이야기.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좀 잘 하지 좀… 아니다. 이것도 틀린 말 같다. 니가 뭘 아냐. 에그. 니가 뭘.

‘뭘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고, 그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그런 식으로 섹스 판타지를 구축하는 남성성에 대해 난 질문하고싶다. 동등한 관계, 평등한 관계는 끌리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남들에게 대체 섹스는 뭐지? 물론 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언젠가 마리 루티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종류의 말을 쓴 적이 있다. 여성은 복종을 성애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쁜 아이>

섹스로 이것 저것 다 해볼 수 있는 시대(인지는 모르겠다)의 판타지란 이렇게 진부하다. 진부한 섹스의 진부한 폭력. 진부한….

나는 BDSM이 우려스럽다. 도대체 그게 쾌락이 되는 이유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물리적 폭력이 싫다. 정말 싫다. 어린시절에 경험한 물리적 학대는 근막에 남는다라는 말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폭력은 몸에 새겨진다. 사유는 머리로만 하는거라 믿고 싶은 데카르트스러운 사람들에겐 안타깝지만 현대의 신경과학-뇌과학이 부단히 해체하고 있는게 바로 머리(의식)와 몸(신체)의 이분법이다. 언어가 신체에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물리적 폭력은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에 법이 규제하는 것이다. 상추만 던져도 특수 폭행이 성립되는 게 현대의 법 체계인데 왜 섹스는 사적인 영역이라 법이 개입하면 안되는 거지? (그걸 하자는 것도 아니며 거기에 대해서 논할 건 아니다.)

BDSM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을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지만)가 단순히 금지의 위반에 대한 쾌락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 디테일한 완급 조절에 대한 쾌감을 즐기는 것이라면… 스스로를 혹은 계약서를 과대평가하는 자아감이 우려스럽고, 그러한 성관계를 통한 무력감 혹은 통제감의 회복이 목적이라 항변한다면 섹스 말고 다른 관계부터.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때리는 게, 지배하고 복종하는 게 사랑이 되냐. 그걸 못하게 세세하게 법률로 만들어온 인류와 문명이 폭력이냐? 그래 그게 폭력이라고 치자. 내가 또 너무 모르고 막 쓰는 것 같아서 지금 당장 좀 찔리니까 관련된 책을 읽어야... 에휴... 그래... 읽자...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책을 쓴다.

근데 아니, 이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나는 모르겠는 데 (아, 페미니즘은 이토록 나를 과계몽시켜버렸도다. BDSM을 쿨내나는 힙으로 여기는 거에 진짜 포르노 문화가 없다고 할 건가? 쓰면서 점점 짜증이 올라와서 밥을 먹으러 다녀왔다. 그런데 이제 졸리네.🥱)

우리는 도를 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찬다. 그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는지 살펴보고 싶다면 이 단편을 추천한다. 전형적임.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천착했고 이제는 힘을 휘두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다. (재미도 없고, 뻔하다.)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넘겨주는 사람에 대해 차라리 관심이 더 많고 그들의 ‘복잡함’을 어떤 의미로는 이해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소설 속의 남주에 이입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가져야 했다. 최소한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대칭적이다. 아니다. 방금 한 말은 취소, 취소다.

삶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 신체에 대한 통제권까지 고스란히 반납하게 만드는 존재 내 결여…를 들여다보는 것 보다 나 자신을 아예 잊어 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좀 알고 있다. 그것은 정도의 문제이며 삶과 사람이 그래서 컴플리케이트 한 거다.

그러므로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는 거다. 그러지 말자는 거고. 운전대 꽉 잡아라. 자기 인생의 운전대는 자기가 잡고 가는 거고 가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면… 보험이 있잖아요?은 헛소리고 암튼 운전대 옆 사람한테 내주지 말라는 소리다.


*<좋은 남자>

이 소설은 진짜 징그럽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가 대단한데, 좋지 않은 의미로 대단하다. (그래서 난 이 책에 별 다섯을 쾅쾅쾅쾅쾅 박기로 한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 가지는 지저분한 심연을 이렇게까지 알려주다니 감사합니다. 놀랍습니다. 놀랬고요. 막판에 단지 사랑받고 싶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똥 싸고 있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랑 뭐냐. 참내...


*<풀장의 소년>

“(307)그는 피뢰침 같은 존재다. 그뿐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거친 에너지를 받아내는 피뢰침. 욕망이 향하는 대상일 뿐, 욕망이 생겨나는 근원은 아니다”

욕망이 향하는 대상과 욕망이 생겨나는 근원이라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에 대해서. 아리까리 잘 모르겠어서. 생각해 봐야지.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욕망은 책 구매욕…인데. 대상이자 근원임.


*<겁먹다>

요 단편이 소설집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가학적인 권력’ 혹은 ‘권력의 도취’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듯. 크리스틴 루페니언이 특별히 이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독자를 어떤 사유의 장으로 안내하기 위함이 아닌 정말로 이러한 권력‘관’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투명한 시선의 반영이라면 문득 난 정희진의 말을 좀 옮겨주고 싶다. 권력(힘)은 *영향력/책임감*이라고. 그것을 잘 다루는 것은 어렵지만 책임감으로 권력을 이해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말이다.


*<성냥갑 증후군>

오래 전 연애 경험이 떠올라서 현타왔다. 확실히 나는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평생의 목표는 셀프 럽~이 되시겠다.


*<죽고 싶어 하는 여자>

고통이 자아의 경계를 결정짓는 자아감을 가늠하는 척도라면 오랫동안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밀도 높은 폭력에만 자아감/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때려달라고 한다고 때리지는 말자. 문득 생각나는 건 <노멀 피플>의 코넬인데… 코넬 정도만 되면 정말 훌륭한 이성애자 남성이구나 하게 되는 것이 서글프다. 이성애 여자들은 언제까지 남자 보는 눈을 낮춰야 하는가?


*

나는 미국의 젊은 소설가 크리스틴 루페니언이 아주 예리하게(그리고 무척이나 비관적이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사적인 관계 안에서의 역학 관계를 꿰뚫는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소설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읽은 소설이 많지가 않아서, 이 책은 내게 별 다섯 개다. 다만 작가의 인간 혐오를 충분히 이해하는 동시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나 역시 인간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어 버렸다. 알기 싫었는데. 투덜투덜. 그런데 이런 *면*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책이 정말로 밀레니얼의 섹스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면 그 까닭은 보편화된 포르노/이미지/판타지가 장치로 전제로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젊은 사람들이 백신처럼 이런 소설을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판단은 독자의 몫. (의외로 나이 지긋한 여성 독자들에게서 열광적인 공감의 메일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모든 단편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단편에서 생각이 많아졌고, 읽어볼 만한 단편 몇 편만 추려서 휘리릭 썼다. 나중에 소설 집을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 들어서 중고로 구매했고, 구매한 중고에는 섹쉬한 표지가 없어서 초금 서글펐다. 어쨌든 <82년생 김지영>처럼 읽는 사람이 할 말이 없으면서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인 건 확실하다.

(이 리뷰를 읽고 마음이 동해 읽으신다면…. 읽고 난 뒤 꼭 트랙백 걸어주세요!)


(캣퍼슨)마고가 침대에 앉아 있는 동안 로버트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발목 밑으로 내리다가 아직 신발을 신고 있었 다는 걸 깨닫고 허리를 숙여 신발 끈을 풀었다. 어정쩡하 게 몸을 숙인 자세, 털에 가려진 물렁하고 불룩한 배를 보며 마고는 생각했다. 아, 싫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발동을 걸어놓고 이제 와서 중단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이 요구 될까, 생각만 해도 까마득했다. 대단한 재치와 상냥스러움이 요구될 테지만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런 수준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의 의사에 반해 그가 억지로 그녀에게 뭔가를 시킬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모든 것을 주도해 놓고 이제 와서 그만두자니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놓고 정작 음식이 나오자 마음이 바뀌어 돌려보내는 꼴이다. 마고는 자신이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비칠까 두려웠다. 그녀는 저항감을 억누르려고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 P37

(좋은남자) 그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었다.
앤절라가 흐느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를 때 테드가 말했다.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 당신도 알잖아"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 앤절라가 말했다. "난 당신한테 늘 정직했어" 테드가 말했다.
"언제나, 이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 말을 믿을 수도 있었는데 당신은 내 감정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판단했어. 내가 가벼운 관계를 원한다고 말 했을 때 당신도 같은 것을 원한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러고는 뭔가 특별한 관계로 만들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기 시작했지.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우리 둘의 관계를 진지한 관계로 만들고 싶어했고, 그러지 못하자 상처받았어. 알아. 하지만 당신한테 상처를 준 건 내가 아니야. 당신이 그런 거야, 내가 아니라. 나는, 나는 그저 당신 이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데 이용당한 도구일 뿐이야" 앤절라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작게 기침을 했다.
- P196

(좋은남자)
그는 절대로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애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다. 그저 충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것 같은, 약을 먹고 있는 것 같은, 혹은 채소를 먹고 있는 것 같은 표정. 으음 내 삶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으니 차라리 테드와 섹스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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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13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좀 그랬(?)었는데 공쟝쟝님의 리뷰를 읽으니까 완전 흥미가 생기네요~!!
트랙백이 뭔지는 모르지만 새책을 구매한다면 땡투 하겠습니다~!!

공쟝쟝 2023-05-13 20:33   좋아요 2 | URL
단편마다 편차들이 있긴한 데, 제가 적어둔 단편들은 읽을만 합니다.

책먼지 2023-05-13 2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BDSM의 어디가 힙하고 쿨내..??? 쟝님 말씀처럼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폭력이 대체 어떻게.. (말잇못) 인용해주신 37쪽은 진짜 미치겠네요. 마고야 나가! 제발 나가라고!! 음식도 맘에 안 들면 돌려보내고!!!
꼭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구는 것처럼 비칠까’ 두려워서는 아니지만 뭔가 말도 안되는 어떤 두려움 때문에 훨씬 더 파괴적인 일을 그냥 감내하는 저 마음은 알 것 같기도 하면서요ㅠㅠ (거절 공포증 극복못하면 약혼 당할 수도 있다는 쟝님의 짧지만 강렬했던 감상평이 떠오르네요)

공쟝쟝 2023-05-14 21:44   좋아요 1 | URL
후….. 일단은 <그레이의 그림자>… 가 있고요… 넷플릭스에 <모럴센스> 라는 한국 영화가 있습죠. 막내 서현 나오길래(소녀시대 좋아함) 보다가 읭??잉?? ㅋㅋㅋ 그런데 끊을 수 없어서 다 보고 난 뒤…. 세상이 참 문제다 문제여… (꼰대 마인드 ㅋㅋㅋ) 내 안의 유교 걸… 아 어쩌란 말이냐….
사회의 정상성의 기준과 규범이 너무 높은 건 사실이고 문제인데, 왜 섹스는 비정상적인 섹스를 해야만 더 진보적으로 느끼는 걸까요? 그건 *남성사회 기준의 진보* 아닌감?ㅋㅋㅋ 안하는 게 젤루다가 급진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ㅋㅋ 그렇다고 딱히 제가 진보급진을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혼자가 편합니다…ㅋㅋㅋ

저는 마고도 딱히 이해는 안가지만 로버트씨… 쌤통입니다…ㅋㅋㅋ

persona 2023-05-14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캣퍼슨은 뉴요커에 대박 소설 있다고 입소문이 나서 그때 읽어보고 징글징글하다고 나가떨어졌었지요. 근데 ㅋㅋㅋ 번역서 나왔다고 반가운 마음만 가지고 저도 샀어요. 근데 아직 읽을 자신은 없어요. ㅠㅠ
루페니언이 대단한 작가이긴 한 것 같아요.

공쟝쟝 2023-05-14 21:47   좋아요 1 | URL
저는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인간사가 웬걸 다 권력관계로 보여가지고 (지금까지 30여년 살아온 나의 삶까지도) 공황+우울 상태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그리고 고민이 더 깊어져 결국 푸코를 읽기로 했다) 여튼 쭉 더 더 더더 이러면서 새로 덧붙여진 시각에 생각을 후벼파다 보니… 지금은 그런 시선으로 봐도 세상이 그렇게까지 비관적이지는 않게 보이거든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할 수 있는 삶과 관계들도 보이기 때문에 ^^

근데 분명히 루페니언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좀 있긴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그런 식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여전히 인간에 대해 낙관보다는 비관적인 시선이 더 우세하긴 하지만 루페니언의 인간혐오ㅋㅋㅋ는 못따라가겠어요ㅋㅋ
그런 의미에서 별 다섯입니다!

은오 2023-05-14 0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환승연애 나는솔로 이런거 좋아하는데 다양한 인간군상 구경하고 관찰하는 재미로 봐요. 합숙 리얼리티 프로그램 너무 재밌는게 그 안에서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거기 대처하는 인간들이 너무 찌질하고 추해지는거 보면 아 저러지 말아야지.... 반면교사 삼게 되기도 하고 그안에서도 매력적이고 잘 대처하는 사람이 보이면 신기하기도 하고 ㅋㅋㅋㅋ
글고 노멀피플 보고있는데 반갑네요!!! 얘네 이제 대학갔는데 아 코넬.... 얘 정신차리나요? 정신차리겠죠? 일단 다 보고 다시 얘기하는걸로 ㅋㅋㅋㅋ
이거 저도 땡투하겠습니다 쟝님!! 저도 마음이동함 너무재밌을거같음 ㅋㅋㅋㅋ

공쟝쟝 2023-05-14 21:53   좋아요 1 | URL
아.. 보면 재밌겠죠? ㅋㅋㅋ (사실 재밌게 볼까봐 안보는 것도 있음) 안보는 채로 까서 좀 그렇긴 한데. 다른 건 모르겠고… 그걸 안보는 이유는… 그게 정상처럼 보인달까?….

저는 솔로가 더 정상(?)이고 연애 중 보다는 연애 안함이 더 디폴트고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런 식의 짝짓기 프로그램+로맨스까지도 일종의 게임으로 치면ㅋㅋㅋ 인연이 맺어지기 위해 달려가는… 그런 서사랄까요? ㅋㅋㅋㅋ
너는 내 운명.. 제 짝은 있다.. 짚신도 짝이 있다 ㅋㅋㅋ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 있다… 뭐…. 그런 담론들이 몸에 새겨지는 것 같거든요.

은오님은 애긔애긔라 아직 모르겠지만, 삶의 어느 시기에 미친 듯이 청첩장을 받는 날이 와요. 그럴 때 나는 묻는 거죠. 내가 문제인가?? 내가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나를 하자있는 존재로 여겨요 ㅋㅋㅋ 저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기 위해서 미친 사람(ㅋㅋㅋㅋ) 처럼 책을 읽었고요. 니들이 틀렸어! 결혼제도 엿바꿔먹어! (푸코 돋넼ㅋㅋ)

그래서요. 그냥 남들이 다 보고 남들이 다 저게 맞나보다… 그렇게 가던 삶에서 나를 비난하기 싫어서 어떤 것들을 안보기 시작하니까, 정말로 세계관이 더 이상해졌지만ㅋㅋㅋ 내 인생이잖아요ㅋㅋ? 그런 나 자신에 대해 지금은 매우 만족합니다.

코넬은… 아아. 코넬… 저는 코넬에 이입했어요…ㅋㅋ 다 읽고 제 <노멀피플>독후감 읽어주실거죠?
알라딘 서재 막 재미붙이던 시절의 귀요미 독후감일것입니다 ㅋㅋㅋ

얄라알라 2023-05-14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님께서 단편 하나하나 세심히 소개해주셔서 읽지 않고도 친근해지긴 했지만, 작년인가 알라딘 서재에서 제목을 기억해두었다가 [수영장 도서관] 읽었을 때의 정서적 충격이 생각나서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ㅎ

게으른 저는 은오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땡투하시겠다니 이미 반은 읽으신 바와 같습니다 ^^

공쟝쟝 2023-05-14 21:21   좋아요 1 | URL
얄라님… 저는.. 부끄럽게도… <수영장 도서관>을 읽지 못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 책은 걸드문트님과 잠자냥님이 좋다고 하셨는데요? 여름이고 도서관이고 수영도 하고 찐하다고(?)해서…. 도전했다 장렬하게 실패했음… 제가 거기까진… 아직…. 허허…..
그러므로 제 페이퍼를 읽고 정서적 충격을 받으신 얄라님이 승자! ㅋㅋ

2023-05-15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9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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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소설에 대해 할 이야기는 별로 없지만, 반납하려고 책을 후루룩 뒤적이다 작가 연보를 이슬아의 평과 함께 발견한다.


아니 에르노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알게된다. 그러니까 인생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알게 되는 날은 매우 중요한 해가 되는 것이 맞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게도 인생의 나침반을 수정해야하는 위기에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에게도.


아니 에르노가 보부아르를 만난 해, 1959년. 울엄마가 태어난 해.
내가 보부아르와 <제2의 성>을 만난 해. 2019년. 내 독서에도 분기점이 되는 해다.

이슬아의 표현대로
쾌락은 고독과 함께가는 것일까.
나는 다른 말을 덧붙여본다.
고독이 딸려오지 않는 쾌락은 앎을 선사하지 못한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책을 덮고 난 후 나의 고독에서 건져 올려지는 것들.
책이 흔들고 지나간 자리 이후에 남는 앎이 나에게는 쾌락이다.
그 만남이 좋으면 좋을 수록 나는 고독(혼자임)이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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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09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책이 흔들고 지나간 자리 이후에 남는 앎이 나에게는 쾌락이다. 멋진 말!
쾌락의 의미가 다시 쓰여지는군요?
1959 년과 2019 년....시간을 넘어 보부아르는 계속 살아있는 듯 합니다.
여성들 모두에게요!

공쟝쟝 2023-04-09 15:28   좋아요 2 | URL
보부아르여!!

수이 2023-04-09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고독은 제한적이지 않나 그래서 더 쾌락 쪽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이슬아 말에 좀 더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되는. 한편 고독이 무한정인지라 쾌락 쪽으로 가려고 아니 에르노 언니가 그러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구요.

공쟝쟝 2023-04-09 15:34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모든 것이 좀 늦다고 생각해요(응?) 19살의 아니 에르노가 보부아르를 만났다면, 저는 훨씬 늦게 만났고, 어떤 문법이나 수행이 아닌 자아라는 측면에서 선명한 자의식을 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ㅋㅋㅋㅋ!!! (제 글이 처절한 이윱니다 ㅋㅋㅋㅋ) 그러므로 앞으로 제한적인 고독도 살아보고 쾌락도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ㅋㅋㅋ 시간과 몸과 체력은 유한하잖아여!?? 그런데 스스로를 혼자 놓아보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자의식 없이 살았을 것 같아요 ㅠㅜㅜㅜㅠㅠ 자의식 이후의 쾌락이라면…. 투비컨티뉴!!!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이야 말로 아니 에르노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슬아 매우 좋아해요!!

수이 2023-04-09 20:53   좋아요 1 | URL
저는 이슬아를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ㅋㅋㅋㅋ

공쟝쟝 2023-04-10 00:28   좋아요 0 | URL
이슬아는 소설쓰고 싶은데 에세이만 쓰게 된다며 투덜 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놓고 생각하니 아니 에르노랑 컨셉이(?) 비슷해요! 그래서 서평썼구나 싶다!!! 오오 한국에는 이슬아가 있다!!

바람돌이 2023-04-09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흔들고 지나간 자리 이후에 남는 앎이 나에게는 쾌락이다.
이슬아작가님의 문장보다 공쟝쟝님 이 문장이 나는 더 좋아요. ^^
다만 다음 문장
만남이 좋으면 좋을 수록 나는 고독(혼자임)이 절실해진다.
에이 고독해지지 말고 술을 마셔요 술을..... ^^ (금주는 항상 내일부터..... 다이어트와 금주의 공통점은 항상 요것만 먹고 나서.... ㅎㅎ)

나의 친애하는 공쟝쟝님이 이슬아작가님을 매우 좋아하신다니 한권도 안 읽은 저는 또 찔려서 이슬아 작가 막 검색하고 있습니다. 뭣부터 읽을까하고 말이죠. ^^

공쟝쟝 2023-04-10 00:26   좋아요 0 | URL
이슬아 좋아요! 수필집이 백미인데 너무길고 인터뷰집 좋았어요 저는! ㅎㅎㅎ 찐 mz의 맛을 느껴보셔요! 근데 의외의 유기농입니당!! 술도녀2 보고 안그래도 요즘 술 자주 마시구있다능..🥲

건수하 2023-04-09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둘다 루앙에 있었던 시절이 있더라고요.. 보부아르는 저때 파리에 있었겠지만 ^^

공쟝쟝 2023-04-10 00:29   좋아요 0 | URL
진짜 멋있는 여성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수하님은 보부아르를 알아본다 🤗

난티나무 2023-04-09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킹과 루앙!!! 저 작년 가을에 딱 두 곳 찍어서 잠시 다녀왔는데 괜히 반갑네요?!
읽으면서 어… 나는 공쟝쟝님보다 더 늦네…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4-10 00:29   좋아요 0 | URL
후후 ㅋㅋㅋ 나도 루앙!!!

난티나무 2023-04-10 01:50   좋아요 0 | URL
왠 오타 ㅋㅋㅋ 킹 아니고 캉 ㅋㅋㅋㅋ 아놔 자동완성 이번에는 칼 될 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