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나는. 


데미안을 읽고 충격에 빠졌던 십대시절의 어느 날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는(아, 데미안이야 말로 성장고전의 고전아닌가), 그시절 그토록 많은 만화책을 읽었음에도 최애 만화는 슬램덩크(천재 강백호는 매 경기마다 성장한다)와 필소굿(이 시리즈야 말로 모든 인물이 다 성장하는 사춘기시절에 가장 사랑한 이야기다)인 나는, 드라마 <학교>의 대본이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고 대놓고 ‘성장 드라마’였던 <반올림>을 보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세월이 흘러 마블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가 누구냐 묻는다면 언제나 진심을 다해 <스파이더 맨>이라 외치는(역시 피터파커가 철들어가는 모습이 좋달까) 나로 자라나 버렸고... 그 기이한 취향을 버리지 못해 아직도 ‘나이 어린’ 주인공이 여차저차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서사에 매우 깊게 치이는 편인데... 이게 영화 쪽으로 가면 편력이 더 심해져서 생각난 김에 비슷한 종류를 묶어서 적어보기로 한다.


🎞순서는 의식의 흐름대로.. 

* GO(스기하라가 성장하는 영화다) /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한 영화겠지만 여하튼 쿠노라도 성장한다고 생각하자) / 노다메 칸타빌레 (참 어릴 때 일본 영화ㆍ드라마 많이 봤다, 그치? 노다메쨩과 치아키 센빠이가 성장한다) / 굿윌 헌팅(맷데이먼이 성장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펑펑~) / 콜미바이유어네임 (티모시샬라메가 성장한다) / 완득이(유아인이 성장한다) / 동주(강하늘이 성장한다) / 빌리 엘리어트(이역시 성장분야의 고전 아니겠는가, 빌리가 성장한다) / 보이후드(는 정말로 레알로 주인공이 성장합니다) / 플립(남주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뼈아프게 성장해버리는 소녀 줄리...) / 위플래시(내 손이 다 아픈, 성장이 얼마나 개같은지 보여주는 반성장서사 같지만 그래서 더 제대로 찐인 성장서사다) / 레이디 버드(소녀의 성장서사에는 치명적인 남주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티모시라던지, 샬라메라던지ㅎㅎ) / 프란시스 하(내 프사이기도 하고 철부지 뉴요커 주인공이 뒤늦게 철드는 영화다) / 벌새(근래에 본 성장영화중 가장 좋았다)* 


를 적고 보니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이란... 🤔

넷플릭스도 이것저것 많이 보긴 했지만 역시 최애를 꼽는다면 <빨강머리 앤><오티스의 비밀상담소(섹듀케이션)><빌어먹을 세상따위>입니다.... -_-; (번외로 킹덤)


조건이 있는 듯 하다 (조건 분석중) 🤖


1. 교복입고 등장한다 (안입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10대 중반~20대 초반이다)

2. 주로 주인공이 남자이고 세상과 대결 혹은 불화한다 (이건 지금까지 만들어진 대중매체 속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 대부분 소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소위 하이틴물의 여주인공은 로맨틱 코미디로만 소비되는 듯.. 그런 의미에서 레이디 버드, 프란시스 하, 벌새의 여주인공들은 확실히 다르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갑자기 또 빡치기 시작한다. 세상과 대결하는 소녀들 이야기가 판치길 바란다.)

3. 로맨스인 경우에도 성장이 중심, 로맨스는 양념이어야 하며 깨발랄 미국계 하이틴(cf. 내.사.모.남)보다는 살짝 다크한 영국계 하이틴(cf. 빌.세.따)을 선호한다.


..왜 때문인가. 대체 왜...? 나는 나이가 반칠십이 되어서도 교복입은 애들이 좌충우돌 성장하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가. 좀 창피한 걸 알아도 어쩔 수가 없이 매료되어 버리는 겐가....이것은 일종의 피터팬 콤플렉스 뭐 그런건가?(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니면, 온 생을 걸고 노오력하여 교훈을 찾아내 성장하고 성공하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자기계발서들의 영향인가?(라고 말하기엔 읽은 자기계발서가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암튼 그런게 대세이던 시절을 살긴 살았다, 내가) 그냥 철이 덜들어서 인가?(정답!!) 


***


그런 의미에서 <노멀피플> 읽다가 오랜만에 심장이 찌릿해서 혼쭐이 났습니다. 

아주. (네, 이 글은 노멀피플 리뷰입니다.)


일단 1. 주인공들이 교복을 입고 등장한다. 2. 코넬과 메리앤이 주인공인데, 내가 감정이입한 사람은 이번에도 여주인 메리앤이 아니라 남주인 코넬이었다. 3. 그러고 보니 영국계 소설이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워떻게 써도 나의 취향저격 일 수 밖에 없는 장르로..

다 읽은 이 시점에서는 ⭐️별 다섯개가⭐️결코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드라마로 나왔다고 해서 볼까 했는데... 돌아다니는 짤의 남주가 너무 번듯하게 생겨서 안보기로 꽝꽝! 이미 다 커버린 느낌이랄까. 자고로 성장영화의 소년은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빌처럼 생겨야 한다. <빨간머리 앤>의 길버트가 최근의 좋은 예이다. 건강한 미래로 가기 위해 부단히 자라나야할 과제가 느껴지는 작지만 똘람똘람한 얼굴이랄까. 근데 노멀피플 주인공은 똘람하기에는 너무 떡대가 좋았다.. 적어도 섹듀케의 오티스나 빌세따의 제임스처럼 유약하게(!!) 생겼거나, 얼굴에 기스가 났거나... 하다 못해 메리야스라도 입고 있었어야 했다.



빌리 - 스기하라 - 치아키센빠  

오티스 - 제임스 - 길버트 - 티모시


모아놓고 보니, 새삼 취향의 일관성 대단하다. 

한국계에는 (생긴걸로만) 아래와 같은 인물들이 있다.



가난한 김수현, 조신하게 밥짓는 현빈, 짠내나게 우는 강하늘, 쳐맞은 이제훈, 죽을날 받아놓은 강동원...


와씨, 내가 써놓고도 웃겨죽겠네 ㅋㅋ 이놈의 취향의 일관성ㅋㅋㅋ (너무 열심히 사진 찾다가 급 현타옴)

또 까먹을 뻔 했는데, 난 노멀피플 독후감을 쓰려고 오랜만에 글쓰기 앱을 켰다고!!!



***



소설에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아싸 소녀 메리앤(은 부자다)과 어디서든 사랑받는 것만 같은 학교의 인싸소년 코넬(은 가난한 편). 둘은 썸을 타다 눈이 맞아 섹스파트너가 된다. 암요, 밀레니얼 세대는 먼저 자야지 사랑도 된다는 것이 중론(인 거?). 선잠후럽... 

“(83) 결국에는 그녀를 가엾게 여겼지만, 그녀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그녀와 섹스를 했고, 그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녀에 대해서보다는, 아마도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일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평범한 인싸 소년은 학교의 어두운 아싸 소녀와 섹스 파트너가 되었는가. “(61)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알았지?” 불과 20페이지 전에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것도! 침대에서!!!), 왜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잤다는 걸 숨기는가. (그렇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건 또 아니지만;) 어쨌든 소설의 초반에 코넬은 둘의 사이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그런 태도는 당연히 메리앤에게 상처를 주지만, 어쩌겠는가? 그 나이 때는 또래 사이에서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 나는 코넬을 십분 이해했다. 작가가 친절하게도 설명해주는 이부분의 포인트는 번듯해보이는 코넬이 어딘가 불안하고 뒤틀린 메리앤에게 대책없이 끌린다는 것이다. 


평범한 세계에 속한 코넬이 비슷한 결은 아닌 게 분명한 메리앤에게 홀랑 투항해버리는 순간을 다시 읽어본다.

(60-61) 너는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겠지? 그녀가 묻는다.

맙소사, 당연히 아니지. 왜 그런 걸 물어봐?

그냥.

내가 여자들이나 때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 같아?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더욱 깊이 파묻는다. 우리 아빠는 엄마를 때렸어. 코넬은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이내 그가 입을 연다. 세상에. 미안해. 몰랐어. 괜찮아.

아버지가 너를 때린 적도 있어?

가끔.

코넬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한다. 나는 절대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알았지? 절대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는 너 때문에 정말 행복해.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이야. 그녀는 다시 눈물이 가득 차올라 두 눈을 감는다. 그녀는 심지어 훗날 기억 속에서도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든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처음으로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열렸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


쁜 코넬새끼. 이래 놓고, 나중에 메리앤을 생까??라고 썼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을 남자 주인공인 코넬의 시점으로 읽었다(그가 넉넉한 집안이 아니라는 지점 때문이지 싶다).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여자 주인공에게 이입할 법도 한데, 여기서도 나는 코넬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다음에 “그게, 내 삶의 시작이었어”라고 까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받는 사랑에는 연연하지 않는 편),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개 연민의 순간이었으므로(이부분은 나 자신에게 가장 짜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코넬을 이해한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 아껴주고 싶은 마음, 누군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내보일 때 어쩐지 무장해제 당해 버리는 마음, 구원자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식으로 한 사람에게 정말로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정도인 것이고, 대상에게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이 보이면 어쩐지 입을 다물게 되거나 뒷걸음질 치게 되는 비겁한 마음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소년의 뒷걸음질이 보호본능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따위’였던 것에 대해서는 살짝 비난하고 싶지만 그게 용서가 되는 나이였기도 하고, 20페이지 뒤에서 코넬은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 후 20페이지 뒤에서는 진심으로 메리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느꼈다). 코넬이 사과할줄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용서해준 메리앤이 더 훌륭하지만.



***


(134) 그녀가 옆에와서 앉자 그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는 불현듯 그가 그녀의 얼굴을 때릴 수도 있고, 그것도 아주 세게 때릴 수도 있고, 그러면 그녀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거라는 소름끼치는 느낌이 든다. 그 생각에 그는 몹시 놀라서 의자를 홱 밀치며 일어선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는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에 그는 토할 것 같다.

왜그래? 그녀가 묻는다.

그는 손가락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미안해.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그런거 아니야. 미안, 그냥 기분이 좀 이상했어…… 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일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일어서라고 하면 그녀는 일어설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때때로 상대방이 가진 취약함을 파고들어 힐난하는 형태로 상처줄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 지금 이 순간, 관계에서의 권력이 나에게 있구나를 미세하게 인식할 때.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로 내가 얼마만큼 잔인해 질 수 있는지 퍼뜩 깨달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생겨버리는 죄의식에 대해 표현된 저 구절에서 - 나 역시 코넬처럼 약간의 공황을 느끼면서 아득해졌다. 


정말 모처럼 저작근이 뻐근해져버렸다고! 살짝 턱이 떨리는 이 느낌, 너무 오랫만이어서 지금 내가 이 장면에서 엄청시리 슬프구나 싶었다. 이 공감, 무엇. 샐리루니 천재. 이게 말로만 듣던, 프레카리아트의 샐린저이며, 더블린의 제인 오스틴의 문장력인 것입니까? 작가에게 따라붙는 유난스러운 상찬에 수긍하게 되던 지점.


***


“(210)코넬은 느닷없이 궁지에 몰렸음을 느끼고, 방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침묵에 잠겼다. 헬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녀의 가치관이 얼마나 구식인지 이따금 잊어버리곤 했다. 잠시 후 그는 거북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메리앤은 내 친구야, 알겠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마. 헬렌은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팔짱을 낀 팔을 가슴팍 위로 더 높이 치켜들었다. (...) 코넬은 자신의 여러 측면 중 헬렌과 잘 맞는 면들이 그의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실성, 본질적으로 현실적인 관점, 좋은 남자로 여겨지고 싶은 욕망 등등이다. 헬렌과 함께 있으면, 그는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 않고, 섹스를 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도 없으며, 자신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결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끈질기게 따라붙지도 않는다. 메리앤은 한동안 그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던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그녀와 비슷하고, 그들에게는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똑같은 정신적 상처가 있으며, 둘 다 결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녀처럼 망가져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뿐이었다.


이 부분은 사적인 경험으로 인해서 더 공감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있고, 나 역시 그가 속한 세계에서 번듯하게 웃으며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더 옹호하고 싶고 - 결국 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인 대화를 하면서 - 동시에 나는 내가 옹호하는 친구들과도 완벽히 같지는 않다는 것, 마치 그와 나의 간격만큼, 벌어진. 그 틈을 알게 되었을 때, 양 쪽 모두에 대해 느끼는 외로움과 마치 양자택일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관계의 난해함. 


그런데 헬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코넬-헬렌을 은근 지지하긴 했지만(그렇게 되면 코넬은 속편하게 살 것 같았다), 코넬은 절대 헬렌과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도 했다. 시작은 그가 메리앤의 조언에 따라 트리니티 대학에 지원한 지점 부터라고 생각한다. 메리앤이 코넬을 알아본 것이다. 


그 때, 망가진 너는 나의 아픈 부분은 알아보았고, 나는 내 통증을 알아보는 너에게 몹시 끌리는 내가 무서웠고, 망가진 것과 아픈 것은 다르다는 것 역시도 분명히 알 수 있었지. 그러나 망가진 네가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을 거야. 



***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지만 너무 스포일러 같아서 패스~ 책을 덮고 결말까지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이거.... 내가 딱 좋아하는 성장서사야.... 하앍... (허우적 허우적) 그러니까, 뒤틀리고(메리앤) 취약한(코넬) 주인공들이 만나 지지고 볶고 애를 쓰다가 서로의 약점이 막 시너지가 되어가지고 아주 아주 어렵게 어렵게~ 겨우~겨우~ 일인분의 몫을 습득하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성장서사 성애자인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아오, 그게 찐 성장이라고!!! 


현실에서 믿고 따르고 존경할만한 어른 그딴거 없고(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고 그래서 영화에 그런 어른 나올때 마다 주먹 씹어가며 막 퍼우는 데, 울면서 우는 내가 싫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뒤틀린 부분 하나 없이 밝고 명랑한 핵인싸로 좋은게 좋은거지 살고 있다는 거 그게 성장이 멈춘 인간이라는 증거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쳐서 얻는게 성공이 아니라 겨우 한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은 굉장한 비극이긴 하지만, 어쩌겠니. 태어나버렸는 데... ㅜㅜ (삶이라는 지독한 형벌이여..)


그르니까... 애들아, (위에 적어둔 사랑했던 모든 성장서사의 주인공들에게💌) 

알아서 잘 살겠지만 부디 훌륭한 어른까진 되려 하지말고 딱 1인분의 삶만 어찌어찌 잘살아가보자. 잘 크고 있는 거야, 니네. 토닥토닥. (p.s. 이건 비밀인데, 내가 나이 반 칠십에 겨우겨우 일인분을 살고 있거덩. 이게 아직까지도 성장서사를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이란다. 부디.. 이 비결을 내 나이 때의 너희는 모르고 살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게ㅋㅋ)


***


이 책이 밀레니얼의 연애 이야기라 들었다. 느슨하게 잡으면 나도 밀레니얼 세대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이해하는 게 1도 힘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예전에는 김삼순 같은 씩씩한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는 데(최근에 만난 드라마 주인공으로는 <런온>의 오미주가 있다), 딱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니- 맑고, 또렷하고, 분명하고, 도덕적이고, 옹골찬 내면과 자아를 가진 주인공들에 예전처럼 매료되지 않는다. 물론 필요하고, 드라마로라도 보면서 박카스 마신 것 같은 피로회복을 느끼지만, 왜지? 요즘의 나는 개망나니 같은 주인공들에게만 홀딱 빠져버린다... 


최근에는 그게 <빌.세.따>의 주인공들이었고(이 도라이들에 비하면 코넬과 메리앤은 세상 양반이다...), 특별히 넷플릭스 <앤>의 시즌 중 가장 좋아하는 편은 너무 말이 많아서 귀가 터져버릴 것 같은 시즌1의 앤 셜리 커스버트이며, <섹듀케이션>을 떠올리면 자위를 알아버린 에이미와 섹스로 머리가 가득찬 릴리만 떠오르는 것이다. (애들아 잘 지내니..? 행복한 성생활 하고 있지...?) 이런 내가 이상한거야? 그랬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중에 ‘뇌과학’으로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비밀 분석하는 매우 재밌는 책(‘이야기의 탄생’이다)이 말해주기를 “(84)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라고 한다. 


네, 제 뇌가 결함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제가 결함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뇌가 원래 그렇다는 군요? 🧠🙄


특별히 아직 청소년인 개망나니들에게 더더 끌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친구들에게 세상의 생겨먹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버려서 인 것도 같다. 냉턱없는 위악을 떨어도- 그게 다 발버둥 같아서- 걔들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진짜로는 하나도 밉지가 않으니까. (사실 정말 미운 것은 엉망인 세상에서 망나니 아닌 척 하며 점잔 뺄 수 있는 어른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어른이 되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그러나 결국은 그저 그런(normal) 어른이 되고마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서사를 사랑할 것 같다고.


그르게.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요 전날 밤 메리앤이 그에게 어른스럽게 잘 자란 것처럼 보인다고, 그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고 말한 뒤로, 그는 부지불식간에 종종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떠올리면 기분 좋은 말이었다. 너는 착한 사람이고 모두가 너를 좋아해. 정말 그 말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확인해보려고,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다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가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P65

내가 너한테 했던 모든 말에 죄책감이 들어. 코넬이 덧붙였다. 만일 누군가한테 들키면 상황이 안 좋을 거라고 한 것도.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강렬했어. 사실 애들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나 혼자 불안감에 시달렸어.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감을 너에게 투사했던 것 같아. 그게 말이 된다면 말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도 왜 내가 그렇게 정신이 나간 것 처럼 행동했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어.
그녀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그가 너무 세게 맞잡아서 손이 아플지경이었지만, 그의 이런 필사적인 몸짓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용서해줄게.
고마워. 그 일로 깨달은 게 많아. 그리고 내 희망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변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변했다면, 그건 너로 인해서야. - P117

코넬은 사실 지금껏 자신이 특별하다고 확신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그에게 장학금은 난데없이 나타난 으리으리한 유람선처럼, 거대한 물질적 사실이다. 이제 그는 원하기만 하면 무료로 대학원 과정을 밟을수도 있고, 더블린에서 무료로 거주할 수도 있으며, 대학을 마칠 때까지 결코 다시는 집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갑작스럽게 빈에서 페르메이르의 회화 예술을 보며 오후를 보낼 수도 있고, 날씨가 더우면 값싸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사 마실 수도 있다. 마치 그가 지금껏 채색된 무대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온 것이 진짜 풍경이라고 밝혀진 기분이다. 외국의 도시들은 진짜고, 유명한 예술품, 지하철 시스템,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잔존물도 진짜다. 세상을 현실로 만드는 핵심은 돈이다. 돈에는 무언가 너무나 부도덕하고 섹시한 데가 있다.- P199

그때쯤 코넬은 너무 기진맥진하고 비참해서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했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거나 공황 발작이 일어났지만, 그런 상황은 그의 내부 어딘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외부에서 불시에 그를 덮치는 것 같았다. 내적으로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겉은 너무 빨리 해동되어서 줄줄 녹고 있는 반면, 속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는 냉동식품 같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더 무뎌져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P264

그는 자신이 너무 빠르고 장황하게 말하고 있다고 느끼며 숨을 들이마시지만 중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캐릭클리를 떠났는데, 여기가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도 없고요. 그 우정이 다 사라지고 없으니까요. 롭은 가고 없어요. 나는 다시 롭을 볼 수 없고, 다시는 그 삶을 되찾지 못할 거예요.
이본이 테이블 위의 티슈 케이스를 그를 향해 밀어준다. 그는 야자나무 잎사귀 무늬가 찍힌 그 케이스를 바라본다음, 다시 이본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만져보고야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말없이 화장지를 뽑아 얼굴을 닦는다.
죄송해요. 그가 말한다. - P267

메리앤은 다시 한 번, 잔인한 짓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어쩌면 가해자에게도 더 깊고 더 영구적인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괴롭힘을 당할 때만 자신에 대해 통찰력 있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법이다. - P277

작년 여름에 그녀는 처음으로 코넬의 소설들 중 하나를 읽었다. …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가장 사적인 생각들을 목격한다는 기분에 이루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그 자신만의 어떤 복잡한 일, 그러니까 그녀는 결코 동참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녀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물론, 세이디 역시 딱히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세이디는 자신만의 내밀한 상상 속 삶이 있는 작가다. 반면 메리앤의 삶은 순전히 실재하는 개인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만 펼쳐진다. 그녀는 코넬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알기 쉬운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는 그녀에게 없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포함되지 않은 내면의 삶 말이다. - P314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3-20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되는 글이네요ㅋㅋㅋㅋ저도 성장영화마니아♡ 거의 일치하는데 제가 못본 몇개는 믿고 봐야겠어요! <어바웃어 보이>도 아마 보셨겠죠? 최근에 scott님 덕분에 알게된 <submarine>도 성장영화예요. 약간 빌어먹을 세상따위랑 스타일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더 나은듯해요. 다만, 유튭에서 보셔야하고 대신, 무료이며 다만2,번역이 없음요.🥲 영국영화ㅋㅋ

공쟝쟝 2021-03-20 23:52   좋아요 2 | URL
어바웃어 보이! 안봤습니다!(인생의 재미 1이 추가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아니 빌세따랑 비슷한 영국성장영화가 번역이 없다니.. 제가 무료라도 당연히!!! 못보죠!!!

미미 2021-03-20 23:5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영상 조금이라도 함 보시라고 강추드리고파요! 그정도예요ㅋㅋㅋㅋ저도 영어잘못하는데 대충이해할수 있는 그런느낌? 아님 그 영화에대한 누군가의 리뷰도 유튭에있는데 그영상만 보셔요.매력있는영화임요ㅋ

공쟝쟝 2021-03-21 00:01   좋아요 2 | URL
저 요즘 밥먹으면서 유튭보는 데 아쉬운대로 리뷰볼게요 ^.^ 앞으로도 많은 성장영화 추천부탁드립니다.

미미 2021-03-21 00:14   좋아요 2 | URL
아! 리뷰영상은 유튭에 한글로 ‘영화 서브마린‘치심되요.😆

새파랑 2021-03-21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공쟝쟝님 리뷰 보니까 책을 그대로 다시 읽은거 같아요. 마지막 문장에 공감 합니다~!

공쟝쟝 2021-03-21 09:08   좋아요 2 | URL
소설읽다가 등장인물에 과몰입하는 경험 오랫만이었어요. 아, 애들아 이러지마.. 하면서요.. ㅋㅋ 재밌지만 힘겨운 책이었습니다.

바람돌이 2021-03-21 00: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우 슬램덩크에서 찌리릿 전기가.... ㅎㅎ 저는 슬램덩크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 폼 내볼려고 일본 가마쿠라까지 갔다온 여자입니다. ㅎㅎ (슬램덩크 배경이 가마쿠라예요. 폼은 안났지만..... ) 다른 목록들 보면서 우와 나랑 좋아하는게 많이 겹치는구나 했어요. 하지만 역시 마블은 배트맨이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특히 배트맨 비긴즈의 그 배트맨!! 스파이더맨은 제 2번째 마블 애정맨이에요. 최애 캐릭터를 두고 갑자기 불끈 하는 기분이..... ㅎㅎ
이 글 보다가 또 치아키 보고싶어서 드라마를 다시 볼까싶기도.... 아 이글은 노멀 피플의 리뷰인데 추억돋는 저 목록들 때문에 좋은 리뷰가 가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공쟝쟝 2021-03-21 09:20   좋아요 3 | URL
슬램덩크여... 와 찐덕후들은 정말로 일본 가더라고요? 진짜 폼나시네요. 지금보면 그때처럼 사랑하게 될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강백호랑 북산고 망나니들 너무 좋아...
배트맨!!!도 좋죠. 그렇지만 스파이더맨은 아직 어른이 아니예요ㅋㅋㅋㅋ ! 😆제 애정을 받으려면 어른이면 안되나봅니다. 아마 피터파커도 어른되면 내쳐질 겁니다 ㅋㅋㅋ
치아키 센빠... 는 처음에 너무 싫었는 데(원래 만화로 먼저봤거든요. 만화 비주얼이 더 좋지만), 점점 잘생겨보이다가 결국 타마키히로시=치아키 가 되버린 예...
그렇죠.. 저도 분명히 노멀피플 좋다고 쓸 생각이었는 데 다쓰고 보니 추억여행이야😩 나를 성장시킨 성장영화들. 뭐 이런.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1 0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관성 연속성 자아정체성 굳건히 다져가며 자라난 쟝쟝 어른이ㅋㅋㅋ깨알같이 재미나네요. (선잠후럽...이라든가 난 20세기소년인데 왜 공감해!!!) 난 이거 좋아 하고 딱 말할 수 있는 취향을 갖추기 위해 여기 나온 거 말고도 얼마나 무수한 빻거나 빻지 않은 서사를 두루 섭렵하셨을지 쟝쟝님 댁 앞에 리스펙트 하나 놓아드리고 갑니다...

공쟝쟝 2021-03-21 09:26   좋아요 3 | URL
남자애들 얼굴이 하나 같이 짠내나게 생겼다는 일관성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이 댓글에서 <20세기 소년>을 발견하고, 그렇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외치고.. 갑자기 만화책 보고 싶다... 그러고보면 한국물에 <말죽거리 잔혹사>나 <바람>도 재밌게 보긴했는 데 한국 영화 속 청소년들은 자아는 없고 거들먹만 있어서 싫었어여 ㅋㅋㅋ 역시 내맘에 들려면 좀 병약해야 하나봨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21 10:33   좋아요 2 | URL
저도 원래는 저런 타입 좋아했는데 실제로 겪고 보니 좀 동글동글 납작한 애들이 모나지 않고 좋다더라...(속닥속닥)

공쟝쟝 2021-03-21 10:45   좋아요 2 | URL
영화에서 짠내나는데도 애정이 생긴다는 건 사실은 잘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ㅋㅋ 실제로는 병약미로 잘생기려면 절세가인이어야 할걸요? ㅋㅋㅋ
저도 현실에서는 약간 다부진 타입 좋아해요. 흐느적거리는 거는 보는 걸로만(속닥속닥)

scott 2021-03-21 11: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샐리루님 신작 올 9월 7일 출간 예정
[가제- 아름다운 세상, 당신들은 어디에??]
노멀 피플 시즌 2는 올 연말 쯤 ??

이페이퍼는 성장 서사 덕후를 위한 모든 것이 담겨 있네요.

치아키 센빠이 요즘 황태 보다 더 말라버려서 안쓰 러움 ㅋㅋㅋ

공쟝쟝 2021-03-21 17:24   좋아요 1 | URL
와우, 역시 이바닥의 정보왕 스콧님! ^^// 나오면 챙겨서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치아키 센빠이... 더 마르면 안되는데.... (아련)ㅜ_ㅜ

다락방 2021-03-2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간이 나이 먹어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성장하는 거 너무 좋아하지만(사람은 연애로도 성장하고, 직업에서도 성장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성장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네이름으로 불러줘였나, 그 영화만큼은 너무 싫어해요. 저는 그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좋아하는건가, 대체 저거 왜 좋아하나 싶었는데, 오늘 공쟝쟝님 보니까 거기에서 티모시의 성장을 읽었네요. 제가 읽지 못한 부분, 제가 건너뛴 부분이요. 사실 제가 그 영화에서 본 건 티모시의 성장이 아니라 어른과 미성년자의 섹스였고, 그리고 티모시는 자신이 동경하던 어른 남자와의 섹스 전에 자신을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이용하는 걸로 저는 보였고요. 그 후에 여자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사랑해‘ 라고 말함으로써 남자 감독의 로망에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저에게는 정말 싫은 영화거든요. ㅎㅎㅎㅎㅎ 책도 사놨다가 영화보고 짜증나서 책도 안읽었어요. 티모시의 성장이라니, 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우리는 이렇게나 다릅니다. (저는 아마도 다른 식으로는 영화를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는가 봅니다 ㅎㅎ)

저는 [빌리 엘리어트] 너무 좋아해요. 이건 다시 봐도 좋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야말로 성장 영화의 최고봉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빌리도 그렇지만, 빌리의 친구도 자신의 성정체성 깨달아가며 성장하잖아요. 너무 완벽한 영화에요, 찐이에요, 그 영화는. 빠샤!!

공쟝쟝 2021-03-21 22:59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피드백이 좋아서 책 읽고 나면 다른분들 리뷰를 다시 읽어보는데 너무 신기하구 좋아요 ㅎㅎㅎㅎ😬
 
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날 저녁, 취함의 단계에도 상중하가 있으니 중상에서 상으로 넘어가기 직전. 끊기려고 하는 필름을 붙잡아야겠어, 나는 지금을 기억하고 싶어, 도리도리. 그래도 자꾸 정신이 혼미+몽롱해지고, 입에서는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만 새어나오고, 어쨌든 사람은 자기가 불리한건 까먹는 법이니까, 결국은 내가 했던 말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않고, 그러므로 이제와서야 내가 기억하는 건 나에게 가장 유리한 말. 속편하게 술에 취해가는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A가 했던 말. “네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기억해야지. 기억할게. 잡아탄 택시에서 유리창에 쿵쿵 머리를 박으면서 메모 앱에 적어놓았다.

*“나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할 것.”*


**


다음 날, 이를 닦으면서, 테이블을 닦으면서, 먹은 그릇을 닦으면서, 동네를 달리면서, 머리를 말리면서, 연필을 깎으면서, 드문드문 - 띄엄띄엄 - 문득문득 - 조금씩 생각했다(너무 깊이 생각하면 다다르고 싶지 않은 결말에 가닿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로 사랑받고 있는 지(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뭔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한건가). 어쨌든 난 왜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자주 잊어버리는 지(지금도 하얗게 잊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받고 싶은 사랑에 대한 모양이 따로 있는 지(확실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타 등등. 


하지만 내가 ‘받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하기는 역시나 익숙한 쪽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생각은 이런 종류로만 흘러갔다. 그때, 어떻게 그걸 사랑이라고 여겼던 거지? 사랑이라는 말을 입혀 놓은 온갖 오염된 사랑들. 거기엔 숱한 언어적/비언어적/물리적 폭력과 나르시시즘도 있었지만 사랑을 지킬 용기없음도 포함되었다. 비겁함, 피곤함, 혹은 무지, 무지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 등등. 지금껏 기를 쓰고 내가 해온 ‘주는’ 사랑 역시도 그런 오염 천지라서, 나는 사랑이 싫었다. 사랑의 이데아 같은게 있다면 걔는 걔 대로 남겨두고,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도록 사랑을 입에 담거나 쉽게 사용하지는 말자. 뭐, 거칠게 정리하면 난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


이를 닦고 나서, 닦아낸 테이블 위에서, 밥을 먹고 난 후에, 동네를 달리고 와서, 씻고 난 뒤 앉아, 연필을 깎고 난 후에. 일상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시간들 빼고 남아있는 시간들 동안엔 <밀크맨>을 읽었다. 이 소설, 어려웠다. 돌아가서 다시 자꾸 읽어야 했다. 복잡했다. 실은 단순한 이야기임에 불구하고 정말 복잡한 의식의 흐름이었다.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집중했다.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할 때가 있다는 곤란함까지 포함했기에 더 좋은 소설이었다. 돌아가서 다시 읽을 때 마다 또 다르게 보였고, 이 복잡한 와중에도 소설이 응시하려는 방향이 느껴졌다. 읽는 동안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언어적 폭력에 대해 / 루머와 소문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지에 대해 / 억압적인 시대와 정치적 분위기에 대해/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마구 끓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이틀 후에,

묘하게도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랑. 

혹은 빛나는 것.

에 대해 느끼는 내면의 일그러진 거부감.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인식. 


**


“(375) 나는 언니가 왜 독을 먹이는지 알아내고 생각이 꼬인 데를 풀고 언니가 정신을 추스르게 하려고 했어. 언니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나쁜 일들이 있는데, 잊을 수 없는 나쁜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좋은 일만 보면 위험하다고 했어. 새로운 나쁜 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쁜 일들도 기억하고 새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헛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고 했어. 나는 그걸 몰랐고 언니가 무슨 뜻으로 ‘헛된 일’이라고 하는지도 몰랐지만 언니한테 과거의 일이 헛된 일이 아니었더라도 안타깝지만 이제는 내려놓고 돌아서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 그때 언니가 나한테 처음으로 독약을 먹였어.”


**


오랜기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종교ㆍ정치적 분쟁에 시달리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밀크맨>에는 이제 그만 내려놓고 돌아기를 권유하는 동생에게, 그 모든 일이 ‘헛된 일’이 되지 않기 위해라며, 독약을 먹이는 언니가 등장한다. 잊어서는 안되는 나쁜 일들을 해결하지 않은채 혹시라도 좋은 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이 나쁜 일들 역시 모두 ‘헛된 일’이 될거라는 인식. 나쁜 일 보다 더 끔찍 한 것은, 행복해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헛된 일’이 아니어야 한다”는 매우 강한 당위(에 대한 집착). 일부의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위가 작동하는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먼 나라 과거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전에 통과했던(혹은 통과 중인) 시절과 닮아있어 기시감을 느꼈다.


** 


“(364) 물론 딱 맞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만약에 바로 그 사람, 내가 사랑하고 원하고 그도 나를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과 진실하고 건실하고 충만하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합을 이룬데다가, 내 짝의 사랑도 식지 않고 나의 사랑도 식지 않고 두 사람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살해당하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고 즐겁다면? 정말로, 진실로,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나? 이곳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바라는 것은 과도한 일로 봤다. 그래서 의심, 죄책감, 후회, 두려움, 절망, 원망 속에서 끔찍한 자기 희생을 치르며 결혼하는 것이 이 곳에서는 암묵적인 필수 코스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려고 결혼을 안하고 버텼다. 어쩌면-남자친구와 나 사이를 정식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은 갈망이 이따금 들기도 했고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도 내내 어쩌면-관계를 고수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엉뚱한 사람과 결혼했다.”


“(382)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취약한 상태를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자 오빠는 운명에 의해서건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건 그걸 잃거나 뺏기기 전에 스스로 끝내는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그때 아무도 오빠에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오빠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대체물을 만들었다.”


**


가장 원하는 것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 두려움을 차단하기 위해서 감각을 차단하고 행복감마저 차단해 버리는 존재들. 하늘이 파랗지 않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다르고 빛나는 것이 있다면 저주를 퍼붓는 마을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못했던 것은 나역시 “(135)안전한 어둠에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진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이 나쁜 이유는 고통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많은 수고로움들이 삶을 왜곡한다. 나의 경우 그것은 선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고,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도 못한 채로 선택당한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순간순간을 자책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는 인식을 차단하고 감각과 감정을 차단하며, 고통의 위계를 짓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고유한 각자의 욕망을 억압하고, 타인의 욕망을 비난한다. ‘안전한 어둠’에 머무르려 하는 것. 빛을 인식하고, 그것을 살아보려 하는 이들에 대한 부정과 시샘. 끝내 타인에 대해서는 물론 자신의 행복감마저 저주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안에 자리잡아 그늘을 만들고, 집단 안에서 일종의 ‘윤리’로 기능하게 되는지 그 숨막힘을 함께 느끼며 알 수 있게 된다. 슬프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표정을 잃고, 더 이상 걸으면서 책을 읽지도, 저수지를 힘껏 달리지도 않게 되고 말았다.


**


“(252) 지금은 안다. 내가 어떻게 했든 간에 소문이 잦아들거나 멈추거나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때는 일단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멍한 얼굴을 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긴 했다. …  당연히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당연히 나는 겁에 질려있었다. 내 몸에서 자연적인 반응이 들끓는다는 것도 당연히 알았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으로 내가 살아 있고 여기 내 몸안에 있으면 내면의 격랑을 경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삶에 대한 나의 무감한 접근이 겉으로만 그렇게 꾸민 가면이 아니라 점점 실제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먼저 감정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리가, 처음에는 “좋아, 잘했어. 사람들을 잘 속여서 내가 누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게 만들었어”라고 칭찬을 해주던 머리가 이제는 내가 거기에 있기는 한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우리 반응은 어떻게 된 거야? 속으로 표현하던 감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어. 어디 갔지?” 감정이 표출되기를 멈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사라져버렸다. 무감함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지역 사람들 만 내 속을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내면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신, 밀고 당기기, 저격, 응사, 우회, 왜곡 등이 신체적으로도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사람들과 내가 최종 맞대결을 향해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기분이었다. … 사람들을 경계하고 피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이렇게 암울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나는 점점 소모되었다. 애초에 속마음을 숨기려고 했던 까닭이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한순간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나의 몰락을 초래했고 몰락에 기여했고 몰락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


“내면 세계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같은 날들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당시를 통과할 때는 몰랐지만 나는, 있다.

일그러진 이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누구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통과 중이거나. 


때때로 악몽에서 깬다. 횟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그 시기를 떠올리는 꿈을 꾸고 나면,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의 결과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우울감에 빠진다. 상처에 신세진 기분, 덕분에 성숙해진 기분이랄까. 여하튼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깨끗히 지워져있던 내면세계를 복구하고 있고, 이것은 생각지 못한 행복한 경험이라, 너무 소중해서 가끔 전전긍긍하게 된다. 책 속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이게 너무 좋은데 뺏길까봐. 이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데, 너무 많이 의존해 버릴까봐. 없던 때로 돌아가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있다.


**


“(108) “하늘은 파랗죠. 하늘이 또 무슨 색일 수 있어요?”

물론 우리는 사실 하늘이 파란색 말고 다른 색일 수 있다는 것, 다른 색이 두가지 더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인정할 이유가 없었다.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 그날 저녁에도 하늘의 색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세가지 색 - 파란색(낮하늘), 검은색(밤하늘), 흰색(구름)- 에다 그 밖에 더 많은 색이 있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을 인정한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고 선택은 책임을 뜻하는데 우리가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본 탓에 추궁을 당하고 무너지게 되면 어쩌겠는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 그게 좋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좋았고 마음에 들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에서 위안을 얻고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진다면, 그것을 빼앗긴다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나? 애초에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하늘은 파란색이어야 했다.” 


**

다만 내면을 갖추는 일에 열렬히 의존 중인 요즘의 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점이 있다면 “애초에 없는 편”을 절대로 원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그 프레임 안에서 막연히 생각할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을 사는 삶이란 건.


그래서 프랑스어 선생님 처럼 나역시 통과 중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것은 빼앗거나 가져갈 수 있는, 무너지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만,


**


“(118)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저녁놀을 보고 불편해하는 것도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는 것도 다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니까. 깨어난다는 의미니까. 본심을 들켰다고 망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우리가 자기를 보고 더 용맹하고 모험적인 정신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지 심호흡을 몇번 더 했다. 그렇지만 그 문학반 교실 안에서 모험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나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더 모험심이 없었다. 나는 적어도 하늘이 주는 충격, 일몰의 전복성을 일주일 전에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보아하니 다른 사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일몰을 처음 맞닥뜨려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공황에 휩싸일 것 같은 심정이었다. 충격이 공기 중에 감돌고 잔물결처럼 밀려오고 파도처럼 덮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번 일몰을 보았을 때 똑같은 공황을 경험했지만 가만히 서서 공황에 압도되지 않게 버티면 차차로 가라앉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살짝살짝 정신을 조종했고 이윽고 거슬리고 낯설고 불편한 느낌이 사라졌길래 고개를 숙여 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


약간의 공황 주의. ㅎㅎ

그것에 너무 압도되지 않게 살짝살짝 정신을 조종할 수는 있어야 함.


누군가 물었던 적이있다. 내 이상주의에 대한 의구심을 섞어서. 폭력없는 세계가, 상처 없는 세상이 가능할거라고 믿냐고. (그 질문은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의 냉소였을까.) 적당히 곰곰히 생각해봤는 데,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현실주의를 근거로 들어 어떤 폭력은 눈감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본심은 알 것 같다. 그만큼의 숨  쉴 공간, 그 만큼의 자유로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137) 이미 적응한 좁아진 세상에 남아있기가 더 쉬웠다.”


쉬운 선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더 이상 쉬운 선택을 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또 선택에 따르는 댓가가 너무 어려워서 내가 많이 고통스러워지는 것 역시도 사절이다. 


폭력없는 세계? 가능하지 않다. 때리거나 죽이는 것만, 혹은 성기를 집어 넣는 것만, 폭력으로 인식하는 납작한 세계에서의 폭력이라면- 그건 가능할지도? 다만 그만큼의 폭력이 사라진 세계라면- 그때의 우리는 폭력에 대한 훨씬 많은 해석과 정의를 갖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껏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폭력들을 포함한 더 많은 폭력들이 당분간은- 생겨나는 것 처럼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겨우 숨 쉴 공간이 빼앗겨질지도 모르겠고, 종종 공황의 시간이 찾아올 지라도. 하늘의 색깔은 파랗지만은 않은거니까. 그건 진실이니까.


** 


“(492) 우리는 작은 대문을 열고 닫고 할 것도 없이 작은 산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고 나는 초저녁의 빛을 들이마시며 빛이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부드러워진다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 여느 유명한 싯구처럼. 내게 있는 분노, 아픔과 슬픔을 해석하다보니 고통이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상처가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가장 치명적으로 아팠던 것은 가장 사랑했을 때라서, 사랑과 고통을 따로 떼놓기도 어렵다. 


인정하고 있다. 상처가 내게 굉장한 교훈을 준 건 맞다. 그런데 그건 ‘교훈’일 뿐, ‘나’는 아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온 건 나 자신이다. 넘어질 때 마다 적절한 순간 누군가들에게 의지도 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그 기운에 기대어 이별하고, 해석하고, 다시 걷고, 조금씩 행복해질 수 있었다. 아, 어떤 날은 정말로는 이해받지 못해서 차라리 이데올로기에 기댈 때도 있었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보다 책 속의 한문장, 영화나 드라마속 인물을 부여잡을 때도 있었다. (… 음 … 확실히 현실인간보다는 그쪽이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만약 현실에 없는 그것들이 내게 영향을 미쳤다면, 내가 그것들의 ‘흔적’ 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곁에 두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왔기 때문일 거다. 그러고 보면 난 왜 노력했던 걸까. A의 말대로, 사랑 ‘받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는 망가질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는 허용할 수 없다라는 내 안의 어떤 단단한 잠금장치의 기저에는 잊어버린 ‘사랑받은 기억’ 같은 게 있나. 잘 모르겠다. 어렵다. 고통의 가운데를 건너는 순간 고통을 인식하기는 어려운 것 처럼, 사랑을 받고 있는 순간엔 사랑을 인식하기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고. 


** 


“(256)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불신이 너무 강해서 나를 도와주고 지지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있었을 텐데도 친구를 만들고 지원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을 못 믿었고 나 자신을 못 믿었고 나한테 도움을 구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때에는 정신을 붙잡고 추스르는 게 내 최대 목표였고 그곳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정신을 붙잡고 추스르려 애쓰고 있었으니, 어쩌면 나로서는 도움이나 위안이라는 개념을 알아차리거나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접근하기는 했고 그중 몇몇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정말 좋은 뜻으로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움츠러들었는데, 두려움과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무엇이라도 사람들에게 말할 만한 일이 있는지 아닌지조차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


A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난 내 방식대로 ‘나에게 다가온 곱씹을 말들 목록’에 아래의 말을 추가해 놓기로 한다.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할 것.”*


그 말은 어떤 격려였다고. 

종종 삶에서 만나는 힘든 과정에 사로잡혀 버리고 싶을 때, 부디 네가 받은 사랑을 기억해내서 조금씩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아무래도 사랑받는 방법을 조금은 배워야지 싶다.


"그런 사람도 있단다. 딸아. 고통을 한껏 누리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정신병을 일으킬 이유가 많은 사람, 고통스러울 이유가 더 많은 사람도 있어. 그런데도 어둠에 굴복하거나 한탄에 빠지지 않고 용기있게 자기 갈 길을 가고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이렇게 엄마는 위쪽을 바라봐야 한다며 고통의 단계를 구분해가며 말했다.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있는 사람. 자격이 있긴 하지만 자기에게 정당하게 주어진 몫을 심하게 넘어선 사람. 아빠처럼, 다른 사람에게 속한 고통 받을 권리를 빼앗아온 난데없는 무자격자. "네 아빠 말이다." 엄마가 말했다. - P130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평생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안도감이었다. 내 몸이 외치고 있었다. ‘할렐루야! 그가 죽었어! 씨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 말이 내 전두엽에서 떠오른 정확한 단어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 P428

‘인생은 다 끝났어. 내 인생은 끝났고 다 지나갔고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근근이 사는 거야’ 하는 식의 노인 같은 태도.- P473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3-08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4-09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밀크맨이 이달의 당선작을 선물로 줌 ㅎㅎ
축하해요 ^ㅎ^

공쟝쟝 2021-04-09 16:37   좋아요 0 | URL
엇 이거 나름 공들여 썼는데 알라딘이 알아봐 주셨당!!!!

공쟝쟝 2021-04-09 16:37   좋아요 0 | URL
감샤합니다😍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땐 소설을 좋아했다. 독서반이었고, 꼬꼬마용 고전소설들과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 어린이용 SF 소설도 꽤 진지하게 읽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라 집에 책이 없어서 학급문고 같은데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머릿 속은 공상으로 가득했다. 조금 엉뚱한 꼬마였던 나는 읽은 내용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동네를 걷다가 자주 넘어졌고, 수시로 어디엔가 부딪혀서 옷에 지저분한 것들을 묻혀왔다. 길을 잃은 적도 많았는데 그마저도 상상력으로 극복! 딱 한번 빼고는 어떻게든 집을 찾아냈었다. 중학생 때 동네에 영화마을이 생기고 퇴마록과 드래곤라자를 필두로 한 판타지에 푹 빠졌을 당시 내 머릿속에선 소설 속의 장면들이 꽤나 근사하게 플레이 되었던 것 같다. 중3 드디어 집에 김유정 소설을 위시로 한 논술용 고전 전집이 들어왔고 1/3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어린왕자와 데미안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꺼내 읽었다. 햄릿과 개선문을 좋아했고, 톨스토이와 괴테는 너무 두꺼워서 읽기를 미뤘던 듯. (그리고 영원히 미뤘...) 고등학교 때 가장 재밌었던 책은 역시 해리포터와 다빈치코드!! 그리고 국뽕이 무한대로 차오르는 김진명의 소설들!! ㅋㅋㅋㅋ 쉬는 시간엔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고 빡쳐하며, 야자시간엔 아라시의 노래를 듣고, 밤에는 고쿠센(일드)을 다운받아 보는 의식적 반일과 문화적 친일로 혼란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상할 정도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소설을 안읽었다. 고전은 아예 빠이빠이 했고 판타지도 딱 끊었다. 한겨레문학상 탄 소설들이나 겨우, 그것도 정치적 목적(?)으로 읽었던 듯. 다시 소설도 좀 봐야겠다 싶어진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인데, 그것도 동년배들의 한국소설 정도이지, 여전히 외국소설은 잘 안읽히고, 민음사/열린책들 등에서 나오는 고전은 세상 졸려서 못읽는 중이다. 정말! 안읽혀, 안읽힌다고!!!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다가 차라리 나에게 니체 입문서를 다오!이랬고 위대한 개츠비는 뭐시 위대하다는 거여 짜증이 치솟았다. 그렇게 몇번의 시도와 패배 끝에 내 뇌엔 소설 읽는 근육이 퇴화되어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져.. ☺️

인문-교양서들을 읽으며 개념과 맥락이 이해될 때 나는 즐겁다. 가벼워도 재밌고 무거워도 무거운대로 이해 될 때 반짝 작은 희열이 있다. 그런데 소설은 이게 즐기려면 ‘상상’을 해야하는 범위인거라.... 인생에 별 스펙터클이 없었던 데다, 여행은 거의 한 적이 없고, 소설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멀리 했던 모양인지.... 그러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상상이 안된다. 상상이 안되서 너무 슬프다. 슬프니까 안읽고, 안읽어서 더 퇴화하고 ㅋㅋㅋ

이게 어느 정도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는 데, 드디어 고전격에 속하는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싶어 흥미롭게 읽어. 읽다보니 상상이 잘 안돼. 안되겠다!!! 더 재밌게 읽고 싶어서 무려 1988년의 영화 ‘프라하의 봄’(구하기도 어렵다)을 찾아내. 그리고 그걸 열씨미 본다? 나의 버석버석한 상상력에 필요한 이미지라도 얻어보기 위해. 그러면 당연히 소설의 내용을 처절하게 스포당하지😂 그치만 나는 책에 관해서 만큼은 의외의 근성이 있고, 스포한방이면 폭싹 식어버리는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읽는 재미’라는 것도 있어서, 결국 이미지를 촉촉하게 추가해서 더 재밌게 읽어버린다규!! 😜

그렇게 ‘읽다가 상상이 잘 안되면 관련된 영화를 찾아서 보고 (없으면 시대적 배경이라도) 그걸 재료로 다시 읽기’는 비루한 상상력으로나마 재밌게 소설을 읽기 위해 고안해낸 나만의 방법이다. 상상이 안되서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덜 재밌게 읽는 것보단 스포를 당해도 그 재료들로 수월하고 풍부하게 읽는 편이 즐겁다. 



참고로 부작용도 있다. 이를테면 내 상상속 토마시는 훨씬 근사했는데 영화 속 토마시가 마른 멸치처럼 생겨서 소설 읽을 맛이 뚝 떨어진다거나 ㅋㅋㅋㅋ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를 보고 헤어나오지 못해 소설을 읽다 말아 버린다거나(이건 걍 디카프리오가 너무 좋아서 소설에도 인물에도 이입이 안된 경우)ㅋㅋㅋㅋㅋㅋ

*

서문이 길었다.......

그러니까 ‘올해엔 소설을 다섯권 읽었네. 후우- 다시(소설 안.못.읽.으로) 돌아와버렸군...’라고 생각하고 있던 도중 이 책을 선물받게 된거다. 친애하는 알라딘 서재 이웃님께서 스릴러는 한권도 안읽어봤다는 나의 댓글에 실화냐며...... 그러게요. 믿기진 않겠지만 실화입니다. 상상을 못하는 저에게 무려 외국의, 그것도 스릴러, 심지어 고..고딕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은 역시 장벽이 높았달까요;;;;;;;;;;;;;...... 읽어보라 다정하게도 책을 보내주셨다. 



응? 이게 은유가 아니라 진짜 뱀이라고? 응? 종교? 갑자기? 엉? 지금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하면서 600페이지 얇지 않은 책을 퇴근 후에 꼬박 3일만에 끝내버렸다. 확실히 재밌었다! 나는 범인이 궁금했고,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스토리가 애틋했고, 무엇보다 뱀이라는 소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등장하는 뱀들을 검색해서 봐가며 읽었는 데, 징그러우면서도 매혹된다고 해야하나. 그리고....(지금부터 본심구간) 읽으면서 너무 서운했다. 어쩌다 내 소설 뇌가 퇴화가 되가지고 참. 어쩌다가 내가 그 흔한 CSI같은 드라마도 본적이 없어가지고 참. ...아니 뱀 다큐라도보고 시작할걸 그랬나??.. 아이고.... 그니까 내가 상상력이 좋았다면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을 것 같은 데..ㅜㅜ 장면 장면이 재밌는 데 상상이 잘 안가....ㅜㅜㅜㅜㅜㅜ

“(343) 뱀들... 수십 마리.. 어쩌면 수백 마리인지도 몰랐다. 아이 장난감에서 리본이 풀려나오듯 뱀들이 풀밭에서 출렁거렸다. 미끈하고 촉촉한 몸체가 달빛을 받아 번득거렸다. 뱀들은 집단의 목적, 공동의 목표에 따라 이동했다. ...”

아.. 상상해보고 싶은 데, 뭔가 흡족하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내가 상상력이 풍부했다면,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정말 흡, 하고 숨멎할 장면이었을 것 같은 데.. ㅜㅜ 이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적으로 나의 비루한 상상력을 탓할 부분들은 너무 많았고, 그래서 앞으로 스릴러를 읽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영화를 많이 봐두리라 다짐했다. 이 재밌는 걸 더 재밌게 읽고 싶도다!!! 막판 저택에서의 결투(?)도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 데... 생각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그런데 읽다보면 다음이 궁금하니까 페이지 확확 넘어가고 그래서 ㅜㅜ 서글펐다ㅜㅜㅜㅜ 따싯, 앞으로 영화 많이 볼거야...ㅜㅜㅜ

*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이 본격적으로 흑화하면서 운전대를 잡으면서 이런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생각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자.”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고,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대사다. 쉽게 살고 싶을 때, 나약해지고 싶을 때, 나는 언제부턴가 이 장면을 떠올린다. 나를 구할 것은 나밖에 없다. 나를 먹여살릴 사람도 나 밖에 없다. 포기하고 싶으면, 의존하고 싶으면 댓가를 치러야한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하자.

여자 주인공이 절박한 상황에 쌩 혼자 내던져졌을 때. 결국에는 아무 것도 믿을게 없고 믿어서도 안되고 의존할 수 없고 의존해서도 안될 때. 그때 쨘 하고 남자주인공이 나타나서 구해준다면야 그거야 말로 클리셰고 신화고 동화(현실 속에서 그런 동아줄이야 말로 개 썩어문드러진 줄이기 십상이다. 걍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내 절박함 투사한거다. 그딴 거 없고 혹시 있으면 의심해라.)이고, 그런 방식으로 문제해결하는 거 너무 싫으니까 - 나는 바란다. 특히 그가 여주인공이라면 끝까지 정신줄 잡고 생각하기를. 의탁하지 않기를. 두다리로 일어서기를. 독하게 독립을 쟁취하고,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경험에 근거한 자존감으로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를. 만약 가능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관계맺고, 연대하기를.

친애하는 서재이웃님이 왜 이 소설을 좋아했는 지 알 것도 같다. 어쩜, 내가 이 소설이 좋다고 생각했던 이유와도 같을거라 추측해본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주인공 클래라는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그러한 그녀의 성향이 장점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해봐, 생각하자. 가만히 생각하자. 움직이자. 생각하자. 머리를 써! 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클래라. 결국은 생각해내는 클래라. 쉽게 모면하지 않는 사람. 그녀는 의존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건강한 의존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자기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만약 위기의 상황에서 클래라가 보다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타인과 함께하는 모험을 감수하고 헤쳐나가는 캐릭터였다면? 난 이 소설을 별로라고 생각했을 거다.


*

상처를 구실삼아 나를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어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물론 때때로 충분히 남탓, 세상탓을 할 필요도 있긴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498)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냥 흉터일 뿐이에요. 그게 제 인생을 망치지는 않아요.””

상처를 통해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내가 이만큼 망했다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건재하다는 뜻이고,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진실을 마주했다는 것이고, 결코 나 자신보다 흉터가 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가닿기 위해선 나만의 해석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언어가, 이야기가, 타인의 삶이 필요하다. 비록 소박하더라도 시간을 들인 나의 해석이 없다면 결국 상처에 삶을 갖다 바치게 되더라. 물론 해석은 살아가면서 계속 변한다.

살아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일어서야하는 나는, 아직까진 사람이 두려운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간접경험은, 타인의 언어는. 불가해해서 위독해져버린 해묵은 상처를 해석해 내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

덧, 아 물론 순수하게 인생의 락도 된다!! 소설.안.못.읽의 삶을 극복하쟈~~~ 뇌야, 훈련해서 진화하쟈~ㅇ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11-22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옳습니다. 논픽션은 속여도 소설은 안 속여요. 소설은 대놓고 거짓말이야! 하고 거짓말치니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1-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프라하의 봄 토마시는 진짜 별로였다..저는 차라리 밀란쿤데라 할배 얼굴을 토마시로 상상하고 읽습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0-11-22 10:51   좋아요 1 | URL
헐ㅋㅋ 젊은 쿤데라 고집스럽게 잘생겼네요?ㅋㅋㅋ 확실히 이편이 나앗겠어 ㅋㅋ 하지만 줄리엣비노쉬는 진짜 테레자였어요 ㅠㅠ 이뽀

단발머리 2020-11-22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데.... 특히 서문이 너무나 좋아요. 이렇게 공쟝쟝님 독서역사에 대해 알게 되네요.
저도 아직 소설은 어려운데 철학책 척척 읽는 쟝쟝님이 소설도 섭렵하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 200%에요.
햄릿이랑 개선문 좋아하는 중학생이라니!! 고급지고 품격있고 우아합니다. 전 중학교 때 뭘 읽었나 생각해봐요. 난 햄릿도 개선문도 모르는 중학생이었고, 흠....펄벅의 <대지>를 읽었네요. 난, 대지와 부활의 중딩.

공쟝쟝 2020-11-22 23:16   좋아요 0 | URL
매번 다정하게 좋아해주시는 단발님, 철학책 척척 이라고 말씀하시다니.. 철학입문서를 어려워하며 읽는 사람으로 정정해주세요. ㅋㅋㅋㅋ 펄벅의 대지는 개선문보다 두꺼워서 읽다 말았던 것 같아! 대지와 부활의 중딩 멋져 😘

수연 2020-11-2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른 멸치 대목에서 너무 웃어버렸어요, 쟝쟝님의 인생관을 짐작하게 하는 페이퍼, 그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이구나 싶은.

공쟝쟝 2020-11-22 23:18   좋아요 0 | URL
강인해지고 싶고 독립적이고 싶어서 꾸역꾸역 독서하는. 그런 사람 되고 싶다용🤧

비연 2020-11-22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른 멸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11-22 23: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안좋아하는 상임..ㅋㅋㅋ 대머리만큼 싫엇!!

deadpaper 2020-11-22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쟝쟝 읽히는 어감이 좋네요

공쟝쟝 2020-11-22 23:19   좋아요 0 | URL
마지막 쟝 드립을 알아차려주시는 센스✌🏻
 
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 시골에서 막 올라온 휘둥그래진 눈을 한 여자.
그녀가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발견하게 될지, 혹은 너무 순진한 나머지 비참한 세상의 매운 맛을 보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영화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처럼 혼란스럽고 외로워 할 것임을, 그러다 이내 돌아갈 수 없게 된 스스로를 알아차리게 될것임을 안다. 결국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야심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앞에 놓인 삶이 살기도 전에 지긋지긋해서 도망쳐온, 익명의 도시에서 더 지긋지긋해진 생계와 악전고투하게 되는, 그러다 본질이 변질되버리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다. 지긋지긋함은 같지만 살펴보면 다르다. 두번째의 것은 내가 선택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괴롭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혹여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많이 변해 본질이 없으니 돌아가지 않은 셈이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어찌 좋아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내 이야긴데.

“(15) 안젤라는 집(좀 더 정확히는 잠시 신세지는 여자의집)으로 3번 전차를 타고 갔다. 전차는 텅 비어있었다. 안젤라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모스크바 사람들을 보려다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왜 울어요?”라고 묻는 사람은 고사하고 그녀를 애써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인생은 길고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의 슬픔에 빠져들었고, 그들 역시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가씨의 슬픔과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흐느낌이었다. 물론 자기 연민 만으로도 눈물을 쏟을 이유는 충분했다.”

다정도 하여라, 함께 훌쩍여주는 모스크바의 사람들. 안젤라, 2020년의 서울 사람들은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을 본답니다. 눈물은 아마 마스크 속으로 감출 수 있을거예요.

지하철에서 서울사람들을 구경하려다 갑자기 통곡이 밀려왔던 날들이 생각났다. 사연있는 젊은 여자처럼 보일까봐 고개를 푹숙였는데 사람들은 내가 우는 거 다 알았겠지. 줄줄줄 흘러가지고 닦이지도 않을 정도로 터진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서울 살이 4년차까진가 그랬다. 정작 운 사연은 기억 안나는 데, 여튼 기분이 비참했고, 그 와중에 서울 사람들은 너무 다들 멀쩡해 보여가지고 더서러웠고 나만 이방인같았다. ‘저는 지금 어딜가나 사람이 있어 놀라운 인구밀도와 이동하기 위해 버려지는 속절없는 시간들이 3년 째 적응이 안돼서 눈물이 차오르는 데 여러분은 이게 일상이라는 거죠?’ 4년이 지나고 나자 놀랍도록 적응이 되었다. 지금은 도시의 이 무심한 다정함이 좋다. 그것도 매우.

“(319) 마리나는 앉아서 개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개미들은 모두 자기 힘 닿는 한, 혹은 힘에 부치는 양의 흙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등에 무거운 달걀을 이고서 일렬로 가고있었다. 개미는 무거운 짐에 눌렸다가도 계속 끌고 갔다. 가는 도중에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멈췄다 가기도했다. 아마 멈춘 그 순간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는지도 모른다.”

이번주를 버티게 한 것은 지난주에 읽은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이다. 아마 올해 최고의 소설이 될 것 같다. 나도 그녀들처럼 바삐 살아내자. 이악스러운 사랑스러움. 계산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아주 쪼꼬만 계산인. 사실은 다음의 생존을 위한,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선택과 현실인식. 그리고 그 현실인식에 도움되는 사랑, 현실, 또 사랑들. 사랑이 지날수록 그녀들은 뻔뻔해지지만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여자들에게 뻔뻔함의 의도와 선악을 묻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96) 그녀는 두 부류의 남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돈 많은 남자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일이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여자, 아직은 세상과 자신이 궁금한 여자. 자신을 잘 몰라 불분명한 경계선 때문에 많은 것을 침범당하게 내버려두는 여자. 혹은 침범하는 여자.

바삐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물정을 몰라 어물쩡하던 그녀들은 살아야하고 살아있으므로, 매일매일 먼지를 닦아내고 끼니를 만들어내면서도, 가진 자원들을 재료 삼아 삶에 불어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해간다. 문제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 와중에 사랑한다. 아무튼 기운이 넘치는 여자들이다.

“(197) 마리나가 창가로 다가왔다. 루스탐을 발견하고는 그녀 역시 시선을 그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들의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 엄청난 양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전기장에 모기나 딱정벌레가 앉는다면 그대로 죽어서 떨어질 것이다.”

빠지는 사랑에 속수무책인 시절을 지나 완숙해진 그녀들은 때때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려 하거나 사랑하기로 한 것을 사랑하기도 한다. 사랑은 불가항력일까? 천만에 어떤 사랑은 전혀 어렵지 않다. 젊음 혹은 매력을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가능성과 재능을 꽃피워보려는 그들 삶의 노력방식을 십분 이해했다. 내게 그런 재능과 목표가 있었다면, 하나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이 가능했다면, 뭐가 대수일까.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게. 하지만 그녀들은 다른 것을 포기하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가능하면 여러가지 다 갖는게 뭐가 어때서? 만약 가능하지 않다면, 깔끔하게 손터는 것도 방식이다. 애초에 가진 게 없었으니 0이 되어도 본전이라고 속편하게 생각한다.

“(122)
“내가 성공하다니요?” 안젤라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니콜라이(안젤라의 돈많은 애인) 말이야…”
“아…….” 안젤라는 영혼 없이 ‘아’를 길게 발음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공을 원했다.”


소설은 가까운 과거의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몇편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빠르게 크로키하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82년생 김지영보다 농밀하게 내면을 그려낸 55년생 마라쯤이라해둘까?

소설을 덮고서 심장이다 저릿저릿했다. 삶에 대한, 퍽이나, 깔끔한 인정. 아,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그것은 슬프거나 애석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과몰입할 필요도 없는 그냥 사실일 뿐이다. 가끔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을 때, 이렇게까지?하며 억울하고 서글펐는 데. 이렇게까지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었고, 그렇게까지해서 작게나마 얻어낸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더라. 열심, 그것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을 걸친 댓가일 뿐.

한동안 내가 천착해 읽었던 책들은 어떤 부분을 잡아채며 못견딜 순간들을 견뎌낼 자그마한 단서를 제공했었다. 응시하는 글들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살만큼 살아본 작가가 속도감있고 담담하게 그린 통째의 삶들은 그 머무름을 배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부분에 과몰입하지 않는 여성작가가 그리는 전체로서의 이야기. 나에게는 적당한 순간 적당히 찾아온 소설이었다. 부분에 천착하다 보면 과몰입하게 되고, 과몰입하는 순간 내가 가장 딱해지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술도 안마신 채로 자기연민에 빠진 어른을 보는 것은 볼썽사납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술을 마시고(자기연민 좋아), 그 상태를 자책없이 유지하고 싶어 결국엔 돈을 벌고 운동을 하는 것 같다. 알콜 중독자라는 소리다..

“(133) 나타샤는 여전히 술을 마셨지만 예전과 달리 매일은 아니었다. 며칠간 마시면 오랫동안 맨정신으로 생활했다. 이를테면 3일 동안 술을 마시고, 3일 동안 숙취가 지나고, 3주동안 금주를 하는 식이었다. 의학 용어로 ‘관해’라고 불렀다. 3주에 한 번 관해는 정말 엄청난 발전이었따. 하지만 의사들은 완치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최면술 치료를 권하지도 않았다.
최면술 치료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침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이 변하는데, 보통 상태가 악화되곤 했다. 나타샤가 지금처럼 근면하고 명랑하고 착한 상태로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맨정신으로 우울하고 탐욕스럽게 사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었다.”

중요한 진실에 굳이 가닿을 필요는 없다. 약간은 미친채로 (그러나 미친척한다고 믿는채로) 근면하고 명랑하고 착하게 살자. 어쩜 그게 진실아닐까. 버티는 티끌에게 필요한 것은 생활과 갈증해소일 뿐! 목이마르다. 더 많은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좋은 소설이라 많이 읽히면 좋겠다. 모처럼 자신있게 추천한다.



#고양이는달에도흔들리지않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1-01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1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1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무실은 읽지 않는 장식용 책들로 가득하다. 그냥, 너무 장식용 책들이라서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 날은 뭐라도 빼들고 가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무의미했다. 정확히는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툭 치거나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입자들처럼 남김없이 흩어지고 싶은 아주 늦은 저녁의 퇴근 길.

“(p.38) 먼지. ... 작고 쓸모없는 물질, 청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덧없이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형태. ... 한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날리며 지금껏 나는 살아왔으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할 때 마다 세상 곳곳을 누비는 먼지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으니까.”

단순한 제목의 단순한 표지. 소설의 시작은 무심하고 물끄러미 흘러갔다. 나 역시 무감각하게 읽기 시작했다. 더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기 싫을 때는 역시 누군가가 안내하는 이야기가 최고지 하면서.

“(p.43) 파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데도 노파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그러고 보면 나는 시시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왔다. ‘꽤나’라는 부사는 나 자신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애써왔으니까. 이따금 견딜수 없어지는 것은, 계속 애써야 하니까. 너무 바빠 혹은 너무 힘에 부쳐 정신 줄을 놓고 싶은 순간에,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그래도’를 꼭 마음 한켠에 품고 사니까. 숨막혀 하면서도 숨쉴 구멍 하나를 머릿속에 만들고 있을 때 나의 표정은 살아있기 보다는 정물같은 모습일 것이다. 매일 아침의 지하철에서 나는 그런 정물에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을 곰곰이 뜯어보기도 했었더랬지. 요즘은 꽉 낀 마스크 때문에 그 조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정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까. 아무리 표정이 없어도, 내가 알아챌 수 없다고 해도. 그러니까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내 고통이 아주아주 크다고 해서 쉽게 단정짓지는 말아야할. 누군가의 삶. 곡진한. (아직은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p.176) 이제 내게 추연희 라는 이름은 복희 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 생, 백복희의 두 번째 엄마.....”

사람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온기를 지닌 존재라는 건. 너무도 구체적이고 복잡한 궤적의 총체라 쉽게 알려하거나 품으려 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아직 나 자신도 모르잖아, 나 하나로도 이렇게 벅차잖아. 하면서. 여전히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퇴근길 꼬박, 늦은 밤 꼬박. 길지 않은 소설을 몰입해서 읽고 “사느라 살아내느라 너무 고생한” 한(혹은 여럿) 여성의 삶과 이별하며 정말 많이 울었다. (울고 싶어서 소설을 이용한 것인가.... ) 이 눈물의 의미는 뭔가, 생각하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여적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가 아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그냥 나도 덜 힘들고, 너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끝에 매달리는 나약한 나에 대한 불신의 마음. 완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기는 힘들겠다는 마음까지도.

내가 이렇게 치사해 엉엉.

그렇게 울고 나니까 그래도 쪼금은 더 잘 살고 싶어지더라. 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방법은 생각안나지만 누군가를 사랑은 못해도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그랬다. 그래, 나는 먼지가 될 것이고 언제고 암흑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고생이고, 이,그,저 고생하다 헤집어진 마음의 상처에 단정하지도 않은 짧은 댓글을 다는 것 말고는 맞서는 방법을 모르는 나이긴 하지만. 얼른 단단해져서, 조금은 더 강해져서, 스스로 믿는 구석이 손톱만큼이라도 생겼을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허락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 한 조각은 내어주자고.
그냥, 계산 없이, 단순하게.
가능한 만큼만, 진심으로.

시시 때때로 비릿한 냉소가 올라오긴 하지만, 난 역시 착하고 따뜻한 게 좋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위선보다는 진짜로 선한게.
그리고 기왕 선할거면 너무 무르기보단 적당히 단단했으면 좋겠어.
물론 단단함이 선함을 압도하면 안되지.
적당히 무른 단단함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 으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너무 쉽게 살지는 말자.

그러다 사는 게 너무 어렵고 아파지면,
어렵지 않고 착한 소설 한편 읽고 울다 자야지.
그런 날 읽기 맞춤했던 좋은 소설이었더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8-31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ex 2020-09-0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심 / 조해진 지음˝ 읽으란 얘기인지, 말란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독후감‘과 ‘외로움‘이 겹쳐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서 읽어도 될까요?

공쟝쟝 2020-09-07 18:21   좋아요 0 | URL
사서 읽으셔도 되는 소설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