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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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힘들었던 것 같아. 항상. 사는 게. 항상. 항상. 한 번도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었다.

“유튜브를 봤는데. OO 작가가 그러는 거야.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려서 병실에서 눈만 뜨고 있는 데. 그 생각이 들더래. 한 번도 나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구나. 겨우 깨어나서 책을 읽었대. 책만 읽었다고.”

- 2호선이었던가. 앞뒤 꽉 찬 에스컬레이터에서 갑자기 너무 내리고 싶고 토할 것 같았는데 부들부들 내가 주저앉으면 계단에 매달린 사람들 모두가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야. 그 몇 분이 지옥 같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공황인건데, 여튼. 여기서 내리고 싶어요. 나 여기서 내릴래요. 그 느낌 알지? 나 여기서 내릴래요. 그날 지하철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나도 그 생각 했던 거 같아. 한 번도 나로 살아본 적이 없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일 분도. 일 초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딱 한 시간만 나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나로 산다는 게 뭔지는 모르고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나 책 읽었던 거 같아. 근데 그 선택조차 너무 착한 거 같아서 가끔 짜증나.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자기 객관화를 왜 못해?”

- 그러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너 아프다고.라고 말하면서 나는 울었다. 내가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 너는 몰랐으면. 하지만 알게 되겠지. 인생은 기니까.




*

선이의 순진함

미주의 오만함

가은의 회피

한희의 합리화

내가 나이가 좀 들었나 보다. 소설 속의 그녀들을 이상하리 만치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너, 그러다. 당한다. 그런데 당해야 하는 것도 알았다. 다 나 같고, 내 친구들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아팠다. 평론가는 핍진하다고 했다. 핍진.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읽는 것 같지 않다. 이미 삶이 핍진한데. 더 핍진할 필요가 없어서 일지도.

이제 나는 좀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읽을 수 있어졌다.

*

니들만 마미냐? 나도 곧 마미 된다.

뭐? 쟝쟝? 결혼해?

마흔 미혼녀….

친구들이 깔깔 웃는다.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 곧 사십이구나. 한다. 서로 주름 자랑 흰머리 자랑하다가. 언제나 건강 염려로 끝맺는다.

어느 날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친구들이 신경정신과 약을 먹거나, 술을 자주 많이 마셨고, 갑자기 졸도를 했다고 했고, 느닷없는 수술 소식을 알렸다. 지나치게 혹독하고 평가적인 말을 했고, 어떤 밤에는 전화를 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나는.

나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는 채로

돈을 벌고

책만 읽었다.

학교 앞 공원에서 깡통이나 차고 놀던 내 흰머리 난 친구들의 얼굴들이 기억난다. 그래도 얘들은 다 뭐라도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무엇도 이룬 것이 없고, 아무도 것도 되지 못한 채로 사십 대를 앞두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참 이상한 것은.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렸고.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어떤 슬픔과 환멸과 낙담에 이젠 거의 완벽하게 익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은 더 낙담할 게 있고, 더 실패할 것도 있고, 아직도 비틀어 없애버려야할 어떤 희망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을 느껴야하는 지에 익숙하다. 있는 것도 없지만 없는 것도 없는 나는 이제 좀 나한테 적응이 되었다. 물론, 세상에는 부적응.

- 나는 세상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29)

- 나는 말이 더는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당신들은 틀리지 않았다. 맞다, 내가 틀렸다. (121)

- 이젠 이유를 묻는다. 왜? 왜? 집요한 물음표 살인마로 살기로 했다. 어차피 답은 없을 것이다. 더 집요하게 왜, 왜,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한테 주면 된다. (173)

- 기꺼이 아쉬워진다. 아쉬운 건 나지만. 아쉬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는 못하겠으면. 떠난다. 떠나면 돼. 어차피 내 자리는 원래 없었고, 나는 틀렸고, 그래서 나는 시간을 만들어 물어보기로 했다. 나한테. (239)

소설의 #백자평 을 이렇게 적었다.

“나의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들이 점점 파리해지고, 어느 날인가부터는 약을 먹는다고 울먹일 때, 밖에 있는 너가 제일 부럽다고 할 때. 나는 네가 부러웠었는 데… 말을 삼키기를 다행였을까.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며 살아남아있고, 너무 혹독해지지는 말자고.”

살아남으려다 보면, 순진하기만 할 수도, 오만하기만 할 수도, 회피만 할 수도, 합리화만 할 수도 없게 된다.

나의 성공 공식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행운은 나의 위치와 조건에서 기인할 테지만 덕분에 나를 변화시키지 않는 행운은 곧 불행의 구조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건 좀 희극적인 부분 같다. 비극에서 배울 기회가 더 많다는 게. 특별히 내 인생만 고통은 아니고, 나만 피해자는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혹독해지지 말자. 가능하면 편파적으로 따뜻하게 바라보자.라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자리는 원래 없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조건을 잘 수행한다. 이해하기. 받아들이기. 잘 느끼기.

내가 하는 반항은, 느낀 점을 표현하기. 그게 틈이다. 고작 그만큼의 틈. 그걸 얻어내기까지.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오만했고, 회피했으며, 합리화했다.

그래서.


*문장들*

(29) 선이는 이제야말로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21) 미주는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온갖 말을 간신히 삼켰다. 당신은 틀렸어.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이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당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173) 가은은 이유 문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배우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은이 이유를 그다지 묻지 않으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은은 자신이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가은에게 사람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와 같았다, 어느 날 주어진 것.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

(239) 대체할 강사는 없었다. 한 명이라도 빠지겠다고 하면 한희가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희는 누구도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대학의 어학당들은 모두 학기 중이었고, 지금 단기 과정에 열흘 내내 일하는 조건에 응했다는 것은 다른 대학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미주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아쉬운 사람은 너야. 한희는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그러나 약속이라는 것이, 예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 알아차린다면, 누구도 미래를 단언할 수 없을 거라고 한희는 생각했다. 아무리 굳게 의지를 다지고, 모든 상황이 하나의 추측만을 가리킨다고 해도 그렇다
- 나는 내일 떠난다.
한국어 문법은 때로 예정된 미래, 혹은 확실한 미래를 현재형으로 표현한다. 너무나 확실하기에 현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선명한 미래라고 해도, 절대로 바뀔 리 없는 예정이라고 해도, 이 역시 부서져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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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19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미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별 거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써놓으신 문장을 읽고 있자니, syo의 마미와 공쟝쟝의 마미는 저마다의 마미로군요. 당연하게도.
그러면 공쟝쟝의 마미는 별 거 있는 세계일 수도 있겠어요.

아 화이팅.

공쟝쟝 2024-11-19 17:38   좋아요 0 | URL
마미쇼~! 당연한 말이지만 마미쇼도 엄청날 것 같아요. 화이팅! ㅋㅋ
난 그래도 윤석열 나이 때문에 몇년 더 남았어요. 서기쟝 될 수도 있는 거고 앞일은 모.른.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11-2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파적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저도 장착하려고요, 당장 오늘 점심 시간부터 ㅋㅋㅋㅋㅋㅋㅋ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요즘 성경을 못 읽고 있는데 쟝님 방에서 지혜의 말씀을 듣게 되네요. 일단 오늘은 잘해 볼려고요.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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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 감격하고 사랑하기만도 바쁜 나날들이 지나가는 중이다. 

나는 한강의 #여수의사랑 을 가장 좋아하지만…

#소년이온다 의 이 문장을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 



총을 들었는데, 그걸 차마 쏘지 못한 사람들.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책은 한강 디 에센셜의 332페이지다.)



특별히 소극적이었던 군인들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는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 한강 덕분에. 

어떤 응시의 시선을 붙잡기로 했었다.



사무쳐 쓰고자 하는 이의 깊은 고립감이 벼려지고 날카로워져서… 이른바 보편성을 획득할 때…의 감동 같은 건가… 오늘의 이 일렁이는 마음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과함, 나의 뾰족해짐, 헤집음, 그래서 불가피하게 구축하게된 고립에의 상황. 그덕에 한 켠으론 더 두터워진 연결의 갈망이… 내가 느끼는 것들 역시도 어쩌면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래도 된다는 사회의 인정을 받은 것처럼…


어느 시기 내 영혼을 붙잡아 세운 한강의 책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에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다. 


모두가 건강과 긍정에 집착하는 이런 시절에. 

상처에… 문학은 겨우 문학은 여적 문학은 혹시 문학은 그럼에도 문학은 정말로 거기에 자리를 내주겠다 하는 걸까. 이상한 희망이 생길 뻔도 하다. 


아, 한강 작가님 축하해요!

언어를 다뤄줘서 고마워여 ㅠㅠㅠ

깊게 곱씹어줘서, 피해도 되는 거 안 피해서.

결국 이렇게 세계적인 상을 받아버려서!! 

문학이라는 자리에 당당히 당신을, 당신의 독자들을 기입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쓰는 거예요. ㅠㅠㅠ


덧, 때는 2021년 9월... 공쟝쟝은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을 진심으로 기원했던 전적이 있으며...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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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10-10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에서 불꽃놀이라도 해얄듯요 ㅋㅋㅋ 굿나잇요 !!!!

공쟝쟝 2024-10-11 00:06   좋아요 1 | URL
서곡님!ㅋㅋㅋㅋㅋㅋ 센스쟁이!!! 그으렇습니다. 우리는 한강에서 불꽃 놀이를 이럴 때 한 번 더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서괭 2024-10-11 0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선견지명!! 😆😆😆 최애가 노벨상이라니 얼마나 좋으셔요~~ 전 채식주의자만 읽고 안 읽어가지고 ㅜㅜ 소년이온다 읽어봐야지 하고는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계속 미뤘는데 말이예요. 어휴~

공쟝쟝 2024-10-11 08:58   좋아요 1 | URL
ㅠㅠㅠㅠ 아직도 이 감덩이 빠져나가지 않아유 ㅠㅠㅠㅠ 에헤라디여 덩실덩실~~~~

저는 한강 특유의 응시하는 시선을 좋아해요.
소년이온다에서도 그렇고,
앓는 거를 치열하게 응시해요…
고통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참여하는 것보다 더 뜨겁게 느껴지는 데.
그게 초반부터 쭉 그랬던 거 같더라고요…그걸 쭉 밀고 계속 가서 작품세계 구축 한 거 같고.. 20대의 한강 책은 그런 거대서사랑 조우하진 않고 그냥 개인의 고통을 치열하게 응시하는 느낌였거든요. 그러면서 518-43 이렇게 가는 게 너무 대단하고..

노벨상은 작가한테 주는 상이라죠. 내 모국어로된 대표 ‘작가’가 한강이 될거란 사실이 넘나 뻐렁쳐요..

2024-10-11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4-10-11 09:41   좋아요 0 | URL
진짜다 큰일은 여자가….!!! !!!! !!!!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이게 문학이라는 사실이 정말 크게 다가옵니다…. 하…. 개인이 돌파할 수 있는 가장 천진한(?) 성취랄까요…. 다른 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문학은 오로지 오로지 고독이 자원이라 생각하는 저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얼마나 이걸 쓰며 힘들었을까… 근데 그걸 써야했고, (아무도 안시킨 걸텐데…) 써냈다에 ㅠㅠㅠ 박수를! 박수를! 박수를!

단발머리 2024-10-11 1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도 안 시킨 거‘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광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완전 변하게 된 사람들... 얼마나 많아요. 얼마큼은 외면하고 또 싸우기도 하구요. 그걸 연필 들고 싸웠다는 거 아닙니까. 너무 대단하시고....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백인 남성의 인정에 이토록 찐한 감동 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이제 좋아하는 작가로 한강을 말할 때, 얼마나 자부심 가득할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너무 기뻐요. 원서로만 읽을까, 번역서로도 읽어볼까 하는 ㅋㅋㅋㅋㅋㅋ 번역 비교 가능한 사람 ㅋㅋㅋㅋㅋㅋ 우리 모두 다 원문 보며 번역 이야기 나눌 수 있는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0-11 18:40   좋아요 0 | URL
저도 518에 빚 많이졌고 평생 갚기로 다짐했던 사람이구요… 한참 홍어 어찌고 할 때 작가님이 이 책 내줘사.. 더 많이 펑펑 울며 읽었고요… 도청 앞 분수대.. 잊지 못하고요…

124년 동안 비백인 여성 두명 받았다는 노벨문학상.. 근데 울 작가님이 받아버리셔서.. 이제 10년 동안 까방권ㅋㅋㅋ ‘내가’ 드릴거고요… 아니 아직도 이 기쁨이 안가시고 계속 커져만가는 것은 ㅋㅋㅋㅋㅋ 왜때문일까요!?

갑자기 어딘가 저기 어딘가에 꽁꽁 싸매둔 문학에 대한 갈망에 일이 손에 안잡힙니다….!!! 철학 집어치우고 문학 뽀갤까!!!!!!!!!! 이리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강 발 텍 힙이 터져버리는 그런 날이지 말입니다!!ㅜㅜㅜ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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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카프카의 <꿈>을 만났다. 어제 잠들기 전에 만났으니, 아직 헤어지지 못하였다. 세계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자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다. 그가 꿈에 대해서 쓴 일기들, 연인에게 보낸 편지들. 역자 배수아는 카프카가 적은 꿈이 너무 아름다워 잊히지 않아 인용한 단편을 쓴 적이 있다 했다. 아름다운 꿈. 잊히지 않는 꿈. 


자기 꿈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곤 했다. 밤사이 일어난 인상적인 꿈을 몸을 써서 이야기해주려고도 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꿈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로또 맞는 길몽은 사고 싶어 할 테지만. 엄마는 항상 예지몽을 꿨다. 엄마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신기하다. 큰일을 앞두고 엄마에게 좋은 꿈을 꾸도록 당부한다. 


엄마 딸인 나는 예지몽을 꾸지 못한다. 일이 바쁠 때는 꿈에서도 일을 한다. 대부분은 낮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꿈을 꾼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이 좋다. 꿈을 이용하는 편이다. 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내게 보내는 신호로. 나 라도 나를 편하게 대해야한 한다는 합리화로, 해석으로. 카프카가 꿈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이 퍽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와의 공통점. 어떤 꿈들은 나에게 숙제처럼 반복되고, 그것들의 명령을 받아서 삶을 풀어 나가고 있다. 잘 풀리면 꿈은 안도한다. 안 풀리면 계속 꾼다. 


/


아침에 연필을 깎아서 영어 문장을 쓰다가 문득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다르게 읽히고 들렸다. 그래. 그게 맞고. 그건 맞지. 다짐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 살아야겠다. 


<이젠 나도 어엿한 블랙 윙 있는 여자다!?>


나는 그런 몽당연필을 처음 봤다. 샤프보다는 펜을 사용하고 연필은 거의 쓰지 않는 종족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게 너무 멋졌다. 어떻게 연필을 끝까지 쓸 수가 있어요? (= 어떻게 공부가 생활일 수 있어요?) 


친구들은 매일 공부를 한다. 거기에는 이유와 목적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처음 봤다. 있었는데 못 봤을 수도. 나는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사실은 있다. 물론 목적이 바뀌었다(내 목적에 대해서 설명해 보는 일기가 될 예정이다. 다짐만큼 큰 의미부여로 끝날테니 읽어달라).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는 내게 닥치는 것들을 *그냥* 견디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정말 어떤 부분이 변해버려서. 그냥. 도 견뎌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 날 늘상처럼 일기를 쓰다가 문득 끈끈한 언어들이 타닥타닥 엉겨 붙기 시작했을 때 (즉, 사후 해석이다) 마치 반복되는 꿈처럼. 반복되는 현실의 쟁점들. 나는 알아버렸다. 반복되는 그걸 다르게 이해해 보기 위해서. 다르게 해석해 보기 위해서. 나는 읽고 쓰기라는 가성비 좋은 행동을 하기로 했구나. 또 나는 왜가 있었네. 그냥은 없었네. 


사는 게 좀 재밌어졌다. 삶은 통제할 수 없지만 해석은 온전히 내 것이다. 언어를 무한정의 언어를 다 흡입하고 싶어. 작년 요맘때부터는 얼마나 또 큰 가르침 주시려고.라는 문장을 입에 달고 산다. 얼마나 또 크게 배우려고. 이러다 대천재를 넘어서는 대현자 되겠어요. 그런데 매번 똑같은 부분에서 울고 있는 건 비밀이다. 비밀 아니다. 눈물을 감출 수는 없으니까.   


다시 돌아가서. 연필 한 자루가 다 닳아지는 게 일상인,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읽고 쓰기를 하는 친구들. 그냥 잘난 척이야라고 웃으면서 스르르 넘어가지만. 그건 내게 척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잘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게 일종의 아비투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출판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는 어떤 학자의 말에서, 눈을 뜨니 집에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는 저자의 문장에서, 나의 독서량에 기함을 하는 이제는 가끔 만나게 되는 친구들에게서. 공통점과 차이점. 배울 점과 다른 점. 이미 체득이 된 사람들 앞에서 한 번 씩 묻게되는 나의 당연하지 않은 조건. 


집 안에서 공부를 해본 기억이 없다. 나의 부모님은 내 공부에 관심도 없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해라) 내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으시다. 얼마 전에 동생과도 대화 나눴다. 우리 넷을 단 한 줄의 글도 참고하지 않고 키워내셨다는 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 육아에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어쩌면 그게 일관성이었겠구나. 노동이라는 일관성. 


읽고 쓰는 가족을 가진 적이 없으니, 읽고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이벤트였다. (그래서 읽고 쓰고 나면 이리도 뿌듯한가) 내게 공부는 도구였지 공부가 그 자체로 그냥 하는 것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도구는 버린다. 그 뿐. 그러다 나는 어쩌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목적 그 자체. 생활 그 자체. 일상 그 자체. 인 사람들을.


매일같이 아침밥을 차려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도서관에 놀.러. 나.오.는 (그녀들에게 집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의 공간이다) 사람들을 내.가. 한.가.해.져.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그냥 취미로 하는 공부란 것도 가능. 하구나!

(독서 시장에 다수를 차지하는 참고서와 자기 계발서에 대한 생각을 슬몃 해보게 된다.)


/


나의 목적 없는 뒤죽박죽 독서에 차라리 대학원을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던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따지고 보면 공부하는 게 제일 가성비란 종류의 말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시간 외에는 대체로 수험 공부 중이었는데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계급을 일정 부분 탈출했다.) 그 말이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난 할 말이 없었고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왜 그 말이 그렇게까지 안 받았을까. 


어떤 경험들. 투자라는 개념이 삶에 아예 없는 그저 비용. 공부라는 것이 가성비로 기능한다는 정도의 상식조차도 부모님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굴 탓해. 나 역시 학생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돈을 내고서 까지 학위 공부를 한다’라는 것이 어쩐지 꺼려진다는 (물론 대학원 갈 돈이 없기도 하다!) 애매한 흐림. 그러나 가장 1차적인 걸림돌은 자신 없었던 거다. 당선, 합격, 계급으로 계량, 평가, 수치화되는 자격증 혹은 시험 공부라는 것에. 난 솔직히 재능이 없다. 


그래서 친구에게 한번 만 더 그 소리 하면 너랑 안논다 으름장을 놓았지.  


나에게 읽고 쓰는 건 정말인지 너무 중요한 취미인데. 그게 일이 되고 업이 된다면.....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하게 된다면..... 내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삶의 어떤 영역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 하지만 역시 내게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는 것이기도 해서 (기본소득이여!) 지금은 최대의 사치를 이랑의 신곡대로 어떻게든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삼고 있으며. 그러니 나의 현실은 카프카다. (감히 카프카 자꾸 비벼서 미안하지만ㅋㅋ 그는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노동자들의 희망ㅋㅋㅋ 아니겠나요?ㅋㅋㅋ 다만 나는 오래오래 살겁니다ㅋㅋ)  


/


내 요지는 이것이다. 어떤 주장. 


공부를 해서 그걸로 지식을 쌓고. 그걸로 능숙해져 돈을 벌고. 유용하게 쓰고. 자격증을 획득하고. 자격증을 따는 법을 가르쳐서 돈을 벌고. 사회적 승인. 사회적 인정. 그리고 개인들이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 *만* 공부를 해야 한다면. 


그러니까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를 통한 다른 것이 목적이 된다면. 이제 그런 삶은 역으로 가성비가 떨어질 것이라는 소리. 현시점의 인류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구성체를 이룬 탓에 훌륭하게도 AI를 만들어 버렸으니까. 딥 러닝. 마치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처럼. 가성비를 찾기 위해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이제 가장 가성비 좋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나 내 유희인 일상적 공부는 기계로 대체될 리가 없다. 그게 재밌으니까. 이게 자체로 목적이니까. 내게는 노는 것. 


이게 내가 내놓은 어떤 대답인 것 같다. 


삶의 방식을 읽고 쓰면서 살아가기로 바꾼 뒤에 내게 끈덕지게 따라붙던 질문. 

그걸 왜 해? 그걸 왜 읽어? 좀 써먹을 수 있는 걸 도모해야 하지 않나? 나 스스로에게도 주눅이 들곤 하던.

(그리고 요즘에는 생각이 좀 바뀐 부분도 있는 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ㅋㅋㅋㅋㅋ)


나는 이제 되려 되묻고 싶어졌다. 


이걸 왜 해? 왜-가 있는 공부.에 대해서. 왜 그것만 공부야?


목적이 있는 공부‘만’해야 한다면. 결국 공부란 건 신자유주의(자기착취)의 가장 기만적이고 강력한 통치술에 현실을 갈아 넣는 셈이 된다. 아마도 그 끝은 이길 수 없는 대상(ai)들과 분투하는 일이며. 어쩌면 ‘경쟁’이 원리인 현실의 한 부분이 ‘과도한 경쟁’의 결괏값으로 탈락되는 순간(지적 노동의 자동화)을 우린 목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나. 으아아. 정말로 현실은 언제나 오류를 배태하고 있나 보다. 슬픈 것은.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것.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ㅋㅋㅋㅋ 나는 제안해 보고 싶은 듯 하다.


왜? (기능으로서의)가 아닌. 앎의 통증이자 쾌락(정희진 샘ㅋㅋㅋ)으로의 공부에 대해. 


나와 세계를 읽고 쓰고 배우는 것을 자격증 취득을 위함이 아닌 삶에 습관이자 목적으로 삼는다면 (물론 그것은 쾌락과 욕망의 구조를 바꾸는 지난한 일이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적어도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언어는 쌓인다. 내게 그건 삶이 살만해지는 것으로 변화하는 경험이었다. 


흠흠. 목적없이 하는 공부가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자랑을 길게도 적었네. 


사람들이 ai랑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쫓아오면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면 지친다.

그냥 가능하면 걔들이랑 잘 놀았으면 좋겠다.

멈추면 보인다. 

오늘도 내 핸드폰에는 챗gpt로 일 더 잘하고, 돈 더 잘 벌고, 자동 수익화를 도모하는 안내 알림들이 ...


다들 그만 좀 하지?


나는 가끔 외치고 싶은데.


/


음. 다 적고 나니 이것은 벵하민 라바투트의 소설 <매니악>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양자역학의 심연으로 시작해 극단적인 이성과 논리에의 집착으로 컴퓨터를 만든 천재 폰 노이만의 일생을 소묘하며,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끝나는 경장편 모음을 읽으면서 2월의 나는 즐거웠고 괴로웠다. (책의 존잼 포인트는 아주 많지만. 1. 이 젊은 작가의 장점은 압도적인 천재들의 곤란함을 쓰는 것이고. 천재 아닌 나는 천재들을 선망하기에 그들이 겪는 곤란이 즐거웠다. 2. 이 책을 일종의 근대성 비판으로도 읽는 독후감을 쓰겠노라 야심찬 계획이 있었는 데, 이제 소설 내용 다 까먹어버림.)


당시 나는 엄청난 일감을 쌓아두고 쳐내기를 허덕이면서 스스로를 아자황(알파고가 시키는 대로 바둑돌을 놓아주기 위해 이세돌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이입하고 말았다. 아. 지금 나는 아자황이 아닌가. 인공지능은 바둑을 두지만 바둑 돌을 놓는 손 까지 만들 수는 없다!! 돈 버는 내 손 정말 소중해! 이러면서.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일에서는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매번 바닥을 치는 근로 의욕과의 사투. 사실 일할 때의 나는 클라이언트들의 아자황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간은 흘러 흘러 넉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OOO는 OOOOOO를 런칭했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안에 나는 곧 AI로 대체될 예정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아악. 두렵다. 정말 두렵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고. 급박. 초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나는 세상이 원하지 않는 별로 필요가 없는 존재인 것 같고. 다행스러운 것은 고양이 말고는 부양가족이 없다는 것. 정도인데. 으윽.  


하지만 이제 두려울 때, 술 대신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책이다.

홍홍!

책이나 읽어야지.

컹컹!  


대책은 없지만. 이대로라면 뭐 나만 죽겠는가. 다 죽겠지. 나는 이 난관을 헤쳐갈 능력이 없고 잘 몰겠다. 고민하느니 그냥 놀아야징~  


이제 알고리즘은 인간의 직관마저 넘어선다.

그런 우리에게 남는 것은? 

쓸데없이 기계랑 경쟁하지 말고 (나보다 똑똑한 기계의 기획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이여, 놉시다. 한가하게 책이나 읽으면서. 그리고 푹 자자. 잠을. 


인공지능은 놀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 인공지능은 꿈을 꾸지 않으니까. 걔들이 못하는 걸 하는 걸로.


/


"(226)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논문의 아이디어를 더 밀고 나가 오늘날 우리가 '폰 노이만 탐사선'이라 부르는, 자기 구축과 수리, 개량이 가능한 우주선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우주선을 발사해 태양계의 외행성을 식민화하고, 거기서부터 우주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이 기계라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가 닿을 수 있는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머나먼 세계와 범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의 우주선은 외계 해안에 착륙해 필수 자재를 캐내어 자기 복제본을 만든 뒤 개량된 자손을 무한한 공간 속으로 떠나보낼 것이다." 

"(229) 비록 튜링은 실패했으나 그가 자기 '아이들'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얻은 핵심적인 통찰이라고 한다면, 기계가 진정한 지능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런 기계는 오류를 저지르고 원래 설정된 프로그래밍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하며, 무작위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튜링은 바로 이런 무작위성이 지능을 가진 기계의 관건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놀 줄 알아야 한다고.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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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6-26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엥?! 저거 언제 저렇게 깎아 씀?!아깝게! ㅋㅋㅋ 블랙윙은 관상용이야…. 다른 거 깎아요. 예-스테들러 마스루모그래프.

쟝이 매니악 공부쟁이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글이로군!

근데 난 책 읽는데도 여전히 술로도 도피하는데…..😂

공쟝쟝 2024-06-26 18:02   좋아요 0 | URL
관상용이라니 ㅋㅋㅋㅋㅋ 진정한 연필 마니아 여기도 있으셨군요!!!! 스테들라 마스루모그래프 검색 때렸어요! 나 그 연필 있어요! ㅋㅋㅋㅋ h로 사서 책에 줄 긋습니다!! 그러나 블랙윙은 간지가 간지가 터집니다!!!!! 그냥 들고 있으면 나는 학인이다 ㅋㅋㅋㅋㅋ 이런 포스랄까요? ㅋㅋㅋㅋ
 
아구아 비바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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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써둔 문장을 읽었다. 

생존과 실존. 두 가지 장르에서라고 적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둘 모두의 적정한 익숙함이라고. 그게 목표라고.

두 가지를 다 갖겠다는 건가. 그때는 좀 간절했는데, 지금 보니 꽤 오만하다. 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적정함의 기준이 애매했거나 높았던 건 아닐까.  


나는 삶을 관계를 통해 적절히 외주화하는 것에 능하지 못하고. 그래서 꾸역꾸역. 그러다 오바하고. 어쩌면 거기에 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사실은 고작 1인분의 일상이지만 종종 너무 버겁고. 내 간신함보다는 관계에서 오는 희로애락이 더 무섭고 무겁고. 그렇다 하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 적절한 온기들을 나누어준다면 정성들여 취하며 지적 호기심은 억압하지는 않는 채로. 


넘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기다시피 해서 집에 왔고, 다음 날 인대 파열 및 약간의 골절까지 진단받아… 목발을 짚고 네 다리가 되어서 집에 겨우 돌아왔으니. 꽤 아픈 것이 맞고 막 땅바닥과 인사했을 때는 번쩍할 만큼였는데. 나는 다친 직후부터 뭔가 웃겨서 계속 웃었다. 왜 아픈데 웃어요, 왜 힘든데 웃어요, 괴로운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네요, 그런 목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음. 어쩔 수 없다. 나는 좀 웃기다. 당황했을 때도 웃었고, 너무 싫었을 때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기게 만들지 않으면 웃어버리지 않으면 로코나 시트콤이 신파되는 상황. 심각하거나 비참하거나 철학하는 건 예술 영화에서나. 그런가 하면 언제부턴가 나는 너무도 자주 우는데.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시도 때도 없이 펑펑 아주 눈물의 여왕이다.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 상황에 맞는 감정 반응. 아니, 나를 느끼는 것. 그냥 내가 느껴야 할 것을 느끼는 것. 나에게 주입하는데… 이젠 반쯤 포기다. 무얼 느낄지를 누가 정해? 내가. 이젠 내가. 그래서 사실 이건 부조리극이다.


병원에서도 로보캅처럼 움직이면서 샐샐 웃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표정이 굳어있었는데 하지만 정말로 별로 짜증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웃겼으니까. 이참에 누워서 책 읽어야지. 중증이다 중증 이러면서. 그리고 오래전의 이제는 많이 잊은 듯도 한 비참한 상황들 속웃음들에 비하면 좀 건강한 웃음,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오늘의 부상은 스스로 자초한 것. (음치 박치 몸치 런치… 달리기하면서 정형외과만 몇 번째냐. 난 또 나를 몰랐니.) 


사소한 불운에 친구들이 음식을 동생은 책을 보내주었고… 맘 편하게 누워서 한가로이 책이나 읽었다. 읽다 목이 아프면 도파민 걱정 안 하고 모로 누워 그동안 참아왔던 인스타 중독자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책 사진 잘 찍는 사람들도 실컷 팔로잉 하면서 밤이 늦도록 훔쳐보았다. 이제 나도 사진 대충대충 안 찍고 잘…찍으려고 하면 결국 안 찍을 테니 대충 예쁘게 찍어야지. 앱도 받았다. 


그러다 내가 작년에 적어둔 문장에 닿았다. 생존과 실존이라. 일 년 전의 나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암담했고. 그때 나는 두 가지 모두에서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냥. 이모냥이니까. 뭔가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져서 어딘가가 깨져버리니까. 익숙함. 적정한 익숙함. 적정함.을 나는 잘 모르지. 그렇다. 암담을 잘 지나왔는데도 나는 잘 모른다. 계속… 계속해서 나를 잘 몰라서, 나를 잘 알아주려고 하지를 않아서. 나를 나 스스로 별로 그다지 많이 엄청 충분하게 좋아하지는 못해서… 울어야 할 때는 웃고 웃어야 할 때는 우는 이상한 발연기를 혼자 하고 있어서. 내가 죽어야 끝나는 이 드라마의 대본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내가. 어쩌겠어. 이게 난데. 미련하고 미련 많고 그런 주제에 이상한 자존감. 굽히기는 싫은데 소화는 안되고 착한 척을 하는 건지 모아뒀다 푸는 건지.



아구아 비바를 누워서 여러 번 읽었다. 좋다. 그냥 좋다. 사실 ‘이게 뭐얔ㅋㅋㅋㅋ’ 싶은 데 너무 좋다🤪🤪🤪 승모근 뭉쳐서 침 맞으러 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흉내도 못내는 그런 아주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말초 신경 하나하나 살아있는 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근데 그걸 ‘글로’ 쓴다… 🫶🏻🫶🏻🫶🏻🫶🏻 (확실히 나의 욕망은 여기에 있나 보다. 글에. 이런 걸 어떻게 쓰지? 이런 걸? 처음에는 감동받고 다시 읽을 때는 ‘어떻게’ 생각을 계속하면서 읽는다.) 추측건대 이건… 몸이 살아있는 사람이 쓰는 글이다!!! 싶은… 그러니까. 


나 같은. 몸이 통제가 잘 안되는. 잠깐 정신을 못 차리면 관념의 성에서 허우적대는. 실은 몸이 너무도 무겁고 귀찮은. 내가 싫어하는 몸을 멸시하는 구 서양 남자 철학자들처럼(언제나 싫어하는 건 나의 일부라는 알기 싫은 진실). 그러고 있는 내게.는 그녀의 문장들이 이계의 문장처럼 느껴져 해방적이다. (아… 남성들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나는 전혀 공감이 안되는 그런 해방감을 느꼈다는 평이 비슷한 맥락일까나…) 


그래서 나와 달라서 좋은 거구나 하게 된다. 나도 닿고 싶다. 생생한 삶에 불가능에 용감하고 싶고 열려있고 싶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삶의 어느 순간에 절묘하게 나를 중단시켜 버리는 주눅이 가시처럼 담석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약간 어딘가에. 왜일까. 어쩌면 그건 내가 버리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실은 포기하지 못하는 너무 소중한 무엇인 것일지도 모른다. 두 가지 다에 배팅할 수 있을까. 자유와 부자유. 일상과 초월에. 생존과 실존에. 소중하니까. 둘 다.



매혹되어 읽게 된다. 나도 클라리시 선생님을 따라 감각을 내장까지 열기 위해 당장 지금부터 몸을 단련하고 싶지만… 현실은 극단의 부자유… ㅋㅋㅋㅋㅋㅋㅋ 😮‍💨 (이쯤 되면 달리기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친거냐?ㅋㅋㅋㅋ 하는 합리적 의심ㅋㅋㅋㅋ) 어쨌든 걷지 못하는 몸 상태로 읽기에는 고난도의 작품이었다. 백자평을 어디 끄적여놨는 데. 나중에 한꺼번에.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것과 쓰고 있는 걸 이해하려 노력해 보라. 내가 설명하겠다: 나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릴 때도 내가 보는 순간을 정확히 보려 한다—과거의 순간에 보았던 기억을 통해 보지 않는다. 그 순간은 여기 이것이다. 숨 막히는 절박함을 지닌 순간. 그 자체로 절박한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살고, 나는 그 순간이 다른 순간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으로 뛰어든다. 이 둘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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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4-14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의 몸을 좌지우지 하지요. 일단 말실수를 들 수 있겠구요. 또 넘어지기.............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와중에 실컷 웃으셨다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자리 편 김에 독서 많이 하시고요, 최근에 헤겔 레스토랑 읽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닌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4 23:16   좋아요 0 | URL
아… 그 독서 땜에 하늘 위로 둥둥 떠 다녀서 이제 땅으로 내려오라 땅과의 진한 키쑤를…🤣🤣🤣 (탈레스냐며)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4-14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작년 이무렵에 발목인대파열에서 혈전까지 골로 갈 뻔했잖아요… 골절이랑 파열이랑 최소 고정기간 끝나면 불편하더라도 많이 움직이시고 (실금 골절 정도면 뼈 앵간히 붙으면 체중 일부 부하해서 걸어도 되…는데 의사한테 잘 물어보구) 이참에 누워서 책이나 보자, 이러고 너무 오래 안 움직이면 혈전 생길 수도 있습니다(그럼 폐색전증으로 죽어…) 나보다 조금 젊은이니까 건강하겠지만… 귀찮아도 자주 다리랑 몸 움직여주시고…얼른 나으시길…

공쟝쟝 2024-04-14 23:19   좋아요 0 | URL
반님!!! 넘나 경험이 묻어나는 진지하고도 뼈아프고 혈전 온 조언 감사드려요…. 이 참에 누워있….으려던 마음이 호다닥 달아나서 안보인다 쓰윽 미뤄둔 설거지를 호다닥 해치우고 온 참입니다!!! 잘 움직일게요! 고마와요😉

잠자냥 2024-04-14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와중에 고양이 똥 치우기 어렵겠는데…. 싶어지는;;;
얼른 나아~!! (낳아 아님 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4 23:22   좋아요 2 | URL
흐아앙 잠자먕밈~! 다행스럽게도 아이들 사료를 한놈이 독식하는 사건이 펼쳐진 덕에 얼마전 자동급식기를 들였고!! 아가들 감자는 바로바로 캐고 있습니다!! ㅋㅋㅋ 그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4-04-14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매년 한분씩 부상자가 나오는군요 ㅜㅜ 다치신게 안타깝긴 하지만 또 책도 편히 읽으시고 맛있는것도 드시니 그렇게 나쁜건 아닌거 같습니다 ~!!

그래도 빨리 나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공쟝쟝 2024-04-14 23:23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내년엔 새파랑님 예약입니다! 맛난 것도 드시고 책도 편히….. 넝담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쾌유될게요! 이참에 하루키인가? 하루키를 빌려오긴 했는데 아직 잡진 않았습니다 …ㅋㅋㅋ!!

2024-04-14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sona 2024-04-15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다리 어서 나으시길…

공쟝쟝 2024-04-16 07:14   좋아요 1 | URL
펄도사님 🥲 고마워요😆

2024-04-15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6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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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집중력은 약간 어려운 것을 목적 없이 해야 생긴다고 한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주로 독후감)이다. 쓰다 보면 재밌게 쓰고 있다. 그리고 몰두하게 되지. 친구가 글 쓰다가 과집중해버린 사연을 말해주었다. 내게 글 효율이 가장 좋을 때는 일하기 싫을 때이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니까. 


강조점은 ‘목적 없이’에 찍힌다. 친구도 그랬던 건 아닐까? 혹시 일하기 싫으셨던 건 아닐까요?


취미로 하는 활동을 SNS에 올려서 수익화하라는 조언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목적이 없기(쓸데 없었기)’ 때문이라는 최신 신경과학의 권위에 기댄다면, 그런 식의 (생산성의 외피를 쓴) 조언들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도입한 목적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두기를. 당신의 몰입은, 집중력은 중요하다. 모든 것을 생산성으로 치환하지 않을 것. 그것이 개인의 삶을 식민화하지 않는 유효한 투쟁 방법이라고 현시점의 나는 생각한다. 


요즘 집중력이 엉망이라서, 오늘부터 ‘집중’해서 밀린 독후감을 써댈(?) 생각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기록들을 모아와야 하는 데, 어제 야당 지도자의 체포 동의안 가결(이 나라의 정치 무슨 일인가)을 적어두며. 7월 초에 읽은 <제노사이드>부터 쓰려고 한다. 


소설 자체는 재밌어서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못 놓고 세 번에 나눠서 읽었다. 


세번의 기록들  갈무리.  



1 .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스스로 고심해 결단하는, 

선택을 하는 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고독한 남자들이 보인다.


라는 메모. (10년 전 소설인데)


주인공 ‘예거’ 중령이 네메시스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일할 때 처지지 않기 위해 도파민용(얼굴을 보면 기분이 조크든여)으로 차은우가 나오는 <여신강림> 드라마를 밥 먹는 시간대를 이용해 감상하고 있었는 데, 옆의 메모도 함께 읽어야 더 재밌다. 


드라마 속 남주만 여주인공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준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착한’… 

2023년에 이 무슨 개떡같은 시나리오인가


가부장제 하의 여성(이라고 쓰고 바로 나)의 의존성이 어떤 식으로 장려되는지 보려면 메이크 오버 장르의 로맨스 드라마를 보라! 


드라마가 내는 결론 : 얼굴만 예쁘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차은우는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볼 수 있으니깐여. 차은우 정도의 알파남을 가지려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꼭 간직해야죠. 아무에게나 빼앗길 수 없는. 차은우. (또 그 얼굴이 좋다고 보고 있는 나…ㅋㅋㅋㅋ) 나의 본모습을 알아봐주는 남자를 위해서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이중의 노동을 해야만하는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처리하느라 고독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나란 여자란 또 예쁜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시각에 약함) 결국 드라마 <여신강림>을 통틀어 가장 관심이 간 것은 처음 알게 된 배우 문가영의 프로필인데. (나무 위키를 열심히 읽은 결과)



아니 배우 문가영님, 자크 라캉 왜 읽어요? 내면+외면+지성미, 반칙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지성미 나 응원하고요, 그 옆의 배우 차은우님은 혹시라도 설마 라캉은 읽지 말고요, 당신은 머리에 뭐 채우지 않아도 된다. 그건 내가 채울...(누나가 요즘 라캉 입문서 읽는...중인데....ㅋㅋ) 


교차 편집된 서스펜스가 매력적인 소설은 영화처럼 재밌고, 주인공 남자들은 목숨을 걸고 인류를 구하는 결단들을 스스로 내리며 분투하는데. 클리셰 폭발 로맨스 드라마 속 못생긴 여자 주인공은 화장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구하며, 그 과정에서 알파남을 얻는다! 


두달 전, 두 작품을 함께 보는 나는 그게 못마땅 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내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고생하며 인류를 구할래, 화장하고 차은우를 구할래?라고 물어보면 인류보단 역시 차은우를. 벋 문가영처럼 매일 매일 화장하는 건 이제는 정말 못하겠고요. 세안도 열심히 해야하고... 후... 물도 아깝고… 그냥 인류도, 은우도 싫고. 나는 나나 잘 구하렵니다. 

 


2.


<제노사이드>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생각들이 각종 심리학에 능통한 두뇌파 등장인물 루벤스의 입으로 구구절절 나열 되는 데, 대략 이런 대사들이다. 


"(55) 그러면 수십 만 명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전쟁을 지시하는 국가 지도자의 잔학성은 보통 사람과 같을까? 아니면 역시 그들은 이상한 사람이며, 남들과 벗어난 공격성을 사교적인 미소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일까? 루벤스는 후자일 거라고 추론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모든 정치적 투쟁을 승리한 인간은 정상의 범위에서 이탈한 호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을 리더로 선출하는 시스템이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뽑힌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의사를 체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했다.

(258) 그가 특히 주시한 점은 국가나 군산복합체 같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 바로 그 자체였다.

(259)

루벤스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번즈 대통령이라는 사람 자체였다. 그의 발언 내용을 보면 이라크 독재자를 깊이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지만 어째서 죽일 정도로 미워하는지 석연치 않았다. 거기에는 국익이라거나 군산복합체로 이익을 유도하는 것뿐 아니라, 어쩌면 번즈 본인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잠재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루벤스는 제한된 매스컴 정보로부터 대통령의 살아온 이력을 더듬어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가정에서 독재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라크 독재자와 겹쳐 보고 타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루벤스 본인조차 데이터 부족에서 오는 단편적인 분석이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 만약 그것이 진짜 핵심이라면 무서운 일이었다. 지구상에 있는 한 남자의 부자 관계 때문에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 되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적을 때려 부순 뒤에 번즈는 허무함을 느낄 터였다. 애초에 그가 싸울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인 것은 자신의 심층 심리가 낳은 허구의 적에 지나지 않았다."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자신의 심층 심리가 낳은 허구의 적에 밑줄. (제가 또 푸코 읽기 전까지는 심리학 많이 읽었다 아닙니까 ㅋㅋㅋ) 그래서 국가 지도자의 내면세계가 이렇게나 중요한데, 국가의 인격이란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인데, 어쩌다가 내 나라의 대통령은 서울대 출신의 한남 검사인가. (K-하늘 아래 발에 채이듯 보이는 게 윤석열스러운 인격이긴 함…) 


내가 나라에 잘못한 게 무엇인가. 내가 애 안낳는 거 빼고는 세금도 잘내는 데, 왜 나까지 매도되어야 하는 가. 나는 아니다, 나는 윤석열과 같은 인격이 아니란 말이다! 아무리 항변해 보아도. 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2찍 바보! 이래봤자, 2찍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금내는 국민이 할 일은 2찍에 대한 비난과(을 하지 말자고 쓰려다가 차마 내가 못하겠음. 윤석열 싫어!!!!~!!!) 동시에 어쩌다가 윤석열이 나왔는 지에 대한 보다 풍부한 해석이지 않을까. (딱 잘라내진 어떤 단선적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저는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2찍이 아닌 1찍의 멘탈을. 


승리자 혹은 자수성가한 자들은 자아도취를 경계해야 하는 데, 결국 자.적.자(😲자기 적은 자기라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밝힙니닼ㅋㅋㅋㅋ)라고, 변화의 시기에 효과를 본 방식만을 계속해서 고집하면 포트폴리오가 망가지는 것 같다.


내 생각에 민주당의 패착은 방식의 혁신 없음(권력 도취 + 도덕적 우월감/만족감 + 피해의식 => 같은 편은 모르겠고… 옆에서 보기엔 비호감, 꼴비기 싫음) 거기에 있다. 그러고 보면 계속해서 혁신하는 기업가(자본가) 정신이 권력 나누느라 바쁜 우리 편 힘줘! 정치를 이기는 것도 말은 된다.


민주화와 산업화 모두에 성공해버린 한국의 정치는 1/2찍으로 싸우는 게 아니다. 국민의 멘탈리티(정신 건강)를 가지고 싸우는 거다. 국민을 사랑해서 하는 정치라면, 제발 한국인의 피폐해져가는 심리상태를 똑바로 보라!! 걱정스럽지 않나?


소설에 나온 권력자들의 모습과 현실 정치를 연결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좀 있었는 데, 오늘의 페이퍼에서 내가 기억해두고자 하는 것은 이 개념. 


사후확증편향 (유튜브 하나 가져옵니다) https://youtu.be/Sy6sFrZVONA



(심리학) 행동 경제학의 개념이고(여러분 저는 경영학도 였습니다ㅋㅋㅋ)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애써 외면하는 무의식, 즉 자기 정당화)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심각한 사후 확증편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것은 분단이라는 조건에 의해 오랜 시간 구조화되어 왔으며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가 갱신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지 없이를 여지 없이 해버려서 편향이 강화만 된다. 흠🤫 어쩌면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하는 데, 이걸 정치가 부추기고 있다. 대의제의 한계를 봉합하던 광장을 포함. 정치가 아무런 효능감을 주지 못할 때. 한국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탈정치화되는 것 같기도 해.


인간의 뇌는 익숙한 걸 좋아한다. 익숙한 관계, 익숙한 방식, 익숙한 맛, 익숙한 마음과 정서. 불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서 (정치적) 진보가 어려운 것이고. 


문제는 인간이 약 15년 전에 새로 만들어낸 이 스마트 기계(+SNS)의 알고리즘이 그러한 인지 왜곡을 더 강화시키는 방식(익숙한 것에만 노출)으로 설계되었다는 거다. 이걸 다 집어던질 수는 없을 테지만, 우리 자신의 무엇을 바꾸는지는 알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24시간 떨어져 있지 않은 기기가 인간 무의식이 가진 편향들을 계속해서 더 가속화 시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채면, 의식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훈련해야 하는 거구나 하게 된다. 자기갱신.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역시 속담이 최고여.)


몸뿐만 아니라 지식의 섭취만큼은 그래야겠다고 다시 한번 맘을 먹는다. 앎비앎. 내가 옳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읽으려 들지 말자. 다름을, 불편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적인 불편함.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의심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소설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인류를 구하기 위한 그 자신들의 싸움을 각각 떠안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생각하지 않음. 넘겨 짚지 않음. 듣고 싶은 말만 듣지 않음. 자신을 끝까지 의심함. 우리 편이라고 마음 놓지 않음. 이들이 극도의 위기의 순간에 하는 결단은 의외로 멈춰서 다른 의견들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숙고하는 것이었다. 


반면 신중한 주인공들이 싸우는 이들은 권력에 도취된 확증편향의 정치가들이고. 


3.

마지막 이 책 <제노사이드>에 대한 나의 총평이다.


서양남 일본남 아프리카남 심지어 피그미족남에 한남까지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여성은 엄마, 부인, 임산부… 말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민첩한 액션을 강조해야 하는 서사 구조상 알탕일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관심 없어도 너무 없고 있어봐야 후지다. 여성은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돌보거나, 재생산을 위해 쓰이거나, 강간을 당하거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역할이 배정되어 있으며 그런 방식으로만 기능한다고 보면 됨. ​


나는 이게 일본 책의 폐해ㅋㅋㅋㅋ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일본보다 한국이 차라리 낫다. 


실제로도 핵 단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권한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생물학적 여성이 오른 적은 아마 없다. 인간은 똑똑한 여성(힐러리 로댐)을 그 자리에 앉히느니 도람푸를 앉힌다. 엄밀히 말하면 그게 이 지구의 수준인 것이지. 인간의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나지. 나의 수준에 창피함을 느꼈다. 

여자도 인간이니까. 인간들아 잘 좀 하자.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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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3-10-14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글 너무 좋네요. 공장쟝 님 팬이 될 것 같아요. ^^ 저도 외칩니다: 인간들아 잘 좀 하자.

공쟝쟝 2023-10-14 14:11   좋아요 1 | URL
잘좀하자! 나도 하자! 블루욘더님 안녕하세요!~ <세계 그 잡채>저도 이 책을 샀습니다! ㅋㅋ (읽지는 못하고..)

잠자냥 2023-10-1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쳐 ㅋㅋㅋㅋ 소설 읽고 철핫 금지.

공쟝쟝 2023-10-14 14:12   좋아요 1 | URL
철학 아니고 ㅋㅋㅋ 페미니즘 섞인, 정치 비!평! (훌륭해라!)

단발머리 2023-10-14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우리나라와 같은 극단의 이분법은 분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지 싶어요. 보수는 또 부끄러워할 판이다. 진짜, 차라리 이명박이 낫다, 라는 말이 나오기 직전........

앞모습 옆모습이 다 이쁘군요, 차은우는...........

공쟝쟝 2023-10-14 15:35   좋아요 0 | URL
동원캉이랑 비교 많이 되던데.. 차가 탱탱하니 더 이쁩디다 제겐 ㅋㅋ

잠자냥 2023-10-14 15:37   좋아요 1 | URL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사진 보니 뒷모습도 이쁘더군요. 저는 물론 그 사진 속 강쥐 세 마리가 더 이뻤습니다만….

공쟝쟝 2023-10-14 15:42   좋아요 1 | URL
잠자냥이 차은우 뒤통수 예쁘다고 하는데 왜 나 속상해? 안돼 잠자냥만큼은 차은우에게 넘어가면 안돼요!!ㅋㅋ 일루오지마!!! ㅋㅋㅋ 그러다가 막 나처럼 임영웅 노래 들으며 효도하고 싶어지는 그런 감성에 몸부림 친다!! 남연예인에 흔들리지 말아주세요!

잠자냥 2023-10-14 15:49   좋아요 0 | URL
웅 나 안 좋아해 ㅋㅋㅋㅋㅋㅋ 좋아하는 여자들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봤으나 강쥐가 더 이쁘더라능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52   좋아요 0 | URL
나도 은우를 예뻐하지 좋아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건 프랑스고양이잠자냥의 두뇌입니다 ❤️ 뇌성애자💘

은오 2023-10-1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은 글이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36   좋아요 2 | URL
쉿 .😽🧐

잠자냥 2023-10-14 15:50   좋아요 2 | URL
다 읽은글이구먼22222

은오 2023-10-14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은우는 놀기 바쁜 것 같던데.... 평생 라캉 읽을 일은 없을 듯합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4 15:38   좋아요 1 | URL
우리 은우도 연기 잘하려면 인간 심연도 좀 들여다 보고 그래야하는데, 누나가 원하는 건 그런게 아니란다. 네게서 그런 걸 원했다면 여신강림을 봣겠니? 연기 잘하지 않아도 난 이해해. 내가 너라도 그랫을거야! 진정한 팬의 자세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