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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축한 늦은 퇴근을 완주하여, 집에 가면 난 읽다만 이 책을 읽을거야. 다 싫으니까. 정말 다 맘에 안드니까. 그런데 생각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걸 생각하겠어. 우주를 생각해 버릴테다!! 이 징글징글한 산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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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4 0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까...저 분명 이 책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한 개도 안 나네요...내 존재가 하찮은 떨림인 건 알 거 같고...

공쟝쟝 2020-07-14 07:51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도 읽다가 너무 좋은데 저번에 읽었는 데 왜 다 새로움!?? 하가가 딥슬립..😴ㅋㅋㅋ

북깨비 2020-07-14 10:08   좋아요 1 | URL
어휴 읽다가 중간에 며칠만 내려놓아도 앞부분이 생각이 안나는데요. 그래도 어딘가에 마음의 양식으로 남아있겠지요 ^^;; 음식도 먹는 족족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어딘가 살로 남아서 체중이 늘잖아요.. 😅

단발머리 2020-07-1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김상욱 교수와 유지원씨가 같이 쓴 책 읽었거든요. <뉴턴의 아틀리에>요.
나, 다시 김상욱 책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몇년 전 아팠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까지 몸은 옷처럼 입는 것, 혹은 걸치는 것이라 여겼다. 반대였다. 원래 먼저 내 몸이 있고, 마치 거기에 기생하듯 그냥 딱 달라붙어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그게 사실은 진짜 ‘나’였던 거다.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던 아픈 몸은 내가 얼마나 내 존재를 잊고 지냈는 지의 반증 같았다. 몸에게 미안했었다.

_

이별 후에 느꼈던 해방감은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습관적으로 자아를 축소시키곤 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앞으로는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어, 단단히 맘먹었다. 그러나 이리저리 요목조목 다 따지려고 들어도 결국에는 뭐든 퍼주고 있을 나라는 인간의 생겨먹은 기본값을 알아서. 전략을 바꿨다. 방파제를 세우자. 뚝딱뚝딱. 더 쓸려가면 안된다. 이젠 쓸려갈 것도 없다....

_

가까이 있는 자매들이 비명지르지 않았더라면, 버럭버럭 화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돌아보지 않았을 거다. 방긋방긋 사람 좋은 척, 좋은게 좋은 척, 이해심 넓고 배려하는 척 하며- 평판관리 힘썼겠지. 다행인건 내가 당하는 것이 폭력인지는 몰라도, 남이 아프다고 하면 그건 못참아 하는 사람이 또 나인거라. 나를 잡아챘던 울음들, 비명들, 날선 분노들. 어떻게 해줘야 하나 꿀먹은 벙어리처럼 굴다가, 할 수 있는 건 듣는 것 밖에 없어 듣다가, 들어주고 토닥여주다가 결국 나도 아픈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비명지르고 싶어했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이건 페미니즘 이야기다.


_


결국,
어쨌든.
균열.
정상(이라고 믿었던)의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벗어났을 때.
부숴질 때. 금이 갈때. 자잘이 갈라지는 틈 사이로, 침잠해 있던 무언가가 드러날 때. 그때 다시 알게 된 것들. 사실은 잘은 모르고 있었던 것들.
관계든, 건강이든, 사랑이든, 삶이든, 세계든.

다시 인식하기 시작하면, 다른 앎이 시작되면,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도 변한다. 물론 긍정적으로만 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기도.....허허...더 살아봐야 알듯.)

그런데, 어떤 균열 없이- 갈라진 틈 없이- 매끈한 상태로 아는 것을 과연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대체로 균열 속에서 발견되는 치명적인 앎들은 사는 걸 참 버석거리게 한다. 버석버석 하면서, 쭈뼛쭈뼛 대면서, 당장은 변하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어렵기만 하게.

매끈매끈, 꿀떡꿀떡, 호로록호록, 앎을 삼켜가며 살던 어릴 때가 그립다. 그때는 아프지도 않고 이별도 적어서였던지, 굳이 부숴지는 경험없이도, 내가 알고자 한다면 알아지는 거라 생각했다. 아는 게 안무섭고 배불렀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무엇들을 해치거나 착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꼭 마리아 미즈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경험적으로 저질러왔단걸...씁쓸...또륵.)

_

알게 되면 싸워야 한다니, 아니 싸우기 시작해야 제대로 알게 된다니...그게 무려 에코 페미니즘 연구의 방법론이라니..
아, 정말 페미니즘은 너무. 너무. 너무. 치명적이다.
그러나 깨달은 뒤에는 자유를 얻을지니.
그 자유는 또 외롭기도 한 것이라서...
...
읽어.. 말어...? (이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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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 쓰는 사람 정지우가 가득 채운 나날들
정지우 지음 / 웨일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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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후배님께 생일 선물로 책 한권을 보냈더니,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서 연달아 톡을 보내온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했다가 흐뭇해서 미소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내가 알게된 텍스트를 소개해 줄 수 있을 때. 물론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몫일 테지만, 그래도 어떤 문장을 함께 읽고 공명했다는 것은 기쁘다.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앎에 대한 내 기준은 일관되게 삶이었다. 삶에 필요한 만큼만 읽자. 앎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자. 자기의 앎을 기준삼아 자신을 갉아먹고 타인을 해치는 사람들이 싫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될까봐 무서웠다. 알고도 눈감는 게. 아는 것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게.

요즘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쩐지 살아갈 수록 점점 더 많은 앎이 필요하다 느낀다. 알아서 무엇을 너무 잘 알아서 이용하고 해치기보다, 몰라서 정말로 몰랐기 때문에 저지르는 폭력이 훨씬 많다는 걸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니까.

아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아 그는 이걸 정말 모르는 구나.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느낌과 비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때때로 그 고생스러운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부러워질 정도.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 책읽기 정도가 다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출퇴근은 멈출 수 없다ㅋㅋ) 읽기를 통해 코딱지 만큼 알아낸 것이나마 지인들과 이야기 나눠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부족하다 느끼는 내 독서가 가져다주는 의외의 소소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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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사온 책을 펴서 겨우 두 페이지를 읽고 잠들었다. 정말 엄청나게 피로한 월요일이었기 때문에 실은 책을 편 것 자체도 억지였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겨우 두페이지 만에 저런 문장이 나왔다. 단단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본질적으로 결코” 망가뜨릴 수는 없는 사람이라니. 쏟아지는 졸음을 거역하지 않으며, 스탠드를 껐다. 이 정도면 오늘 읽을 치를 다 읽었으므로.


본질적으로 망가뜨릴 수는 없는 사람, 망가뜨릴 수는 없는, 결코, 본질적으로. 읊조리면서 잤다.


무너지는 나, 훼손되는 나, 스스로를 속이는 나, 자꾸 나를 망치는 선택을 하는 나, 토끼의 꾀에 넘어가 뜨거운 돌을 떡이라 생각하고 삼켜 위장이 데어 죽었다는 전래동화 속의 멍청이 호랑이 같았던 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덥썩 입에 넣고, 입에 넣었다는 책임감으로 그저 꿀꺽꿀꺽 삼켰던 수많은 시행착오들. 왜 이 문장을 더듬으며, 그 동화가 생각났던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속이 데어있는 모양이다. 죽지는 않고 살기는 살아있는 요즘은 식은 떡도 호호 불어서 먹지는 못하고 눌러만 보는 그런 상태다.

*

한 인간에 대한 찬사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코”,“본질적으로”,“망가뜨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찬사는 탐난다. 앞에 붙은 조건까지 더해지니 더 그렇다. “단단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니. 그렇다면, 이거 꽤 노려볼만 하잖아. 난 확실히 단단한 편은 아니니까.

*

더는 무언가가 삼켜지지 않았을 때, 왜 먹지를 못하니, 스스로 질책했었다. 그래도 몸이 거부했다. 모르겠다, 먹기 싫음 먹지마, 질책을 그만 두고 시간이 흐르자 내 속이 속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맛있다 하기에 무슨 맛인지 느낄 생각도 못하고 일단 삼켰던 그 소화되지 않던 것들이 뜨겁게 익힌 돌 같은 거였나봐. 이 역시 실체는 확인하지 못한 합리적 의심 같은 것이지만. 어쨌든 앞으로 꽤 오랫동안(혹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만 먹어야 할 것 같다.

*

그래서.

본질적으로는/망가뜨릴 수 없다
는 말이 그렇게 눈에 새겨졌나보다.
있었는 지도 모르는 생존본능(?) 비스무리 한 것 덕분에, 미련하게 꾸역꾸역 아주 다 먹어 버리지는 않아서. 호랑이처럼 죽지는 않았잖아. 물론,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잖아.

*

그러니까. 나는 ‘본질적’으로는 망가지지 않은 사람. 이라는 쪽에 슬쩍 발을 담궈볼 수도 있는 거 아냐? 탐내보자. 탐내겠다. 탐을 내기 위해 마저 읽는다. 오늘도 피곤하지만, 탐나니까. 자, 시모어 선생님 가르쳐 주십시오. 그 비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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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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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구로-가디 지하철은 얼마나 지독하던지. 영화 부산행처럼 문을 비집고 질서 없이 들고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허우적 대었다. 지하철 인구밀도가 심각한 날이면, 나는 예의 그 소설을 떠올린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리 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야! 코치 형이 고함을 질러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놈의 먹이가 되었을테지. 정신이 들고 보니,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 있던 구토물을 다시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발전(發電)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힘! 그때 코치 형이 고함을 질렀다. 해서, 엉겁결에 - 영차,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人類)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박민규, 카스테라

*

부득이한 인류들.
각자의 사정으로 서둘러야 하는.
굳이 한발 재겨설 수 없는 그 틈으로 온몸을 우겨넣어야 하는.
어제 회식한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코트에 배인 찌든 고기와 알콜냄새를 한껏 맡으며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미간을 찌푸려 안쓰러워하며 오져하며 물어볼 것 같다고. 
“고생이다야, 그래도 어떻게 먹고는 살아보겠다고 나왔냐잉?” 
그러면 또 난 대답할 거다. 
“넵넵! 전 아직 괜찮은 데, 이렇게 많이 이 모냥으로 만드는 건 무슨 악취미래요? 하나님 좀 너무함.”

*

누군가를 쉽게 연민할 수 있었던 시기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내가 감히 그러했구나 하고. 그때 내 주머니 속에는 이만원이 있었는데, 밀린 방값 육십만원이 없어서 우는 친구가 너무 불쌍했었다. 무슨 용감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방값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었다. 
그 순간 그게 왜 떠올랐을까. 그때의 내가 정말 이상하다. 하나님과 나의 거리만큼.

*

자수성가가 자랑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때때로 존경심을 갖기도 했던. 그 시절 그들의 운과 그들의 출발선은 극복할 수 있을것도 같았다면, 다만 나에겐 젊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겠구나, 한다.

*

집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뉴스에서 본 고양이가 인덕션과 함께 재가 되었다더라,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인덕션에 락을 걸면서, 나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네? 했었다. 잘 포장해봐야 박스 세네개 겠지만, 그만큼을 잃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염없었다. 
다 내손으로 이룬거야 하기엔 아직 갚고 싶은 빚이 많이 있다.

*

자수성가하지 못해서 다행이다. 아직은 어떤 식으로든 감사함을 느끼니까. 당연한 것이 없으니까.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믿음을 설파하기 어려우니까. 술잔이 졸고 누군가가 자신의 성공담과 실패담에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인생은 그런거야 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어져서, 막막함을 함께 까무룩 막막할 수 있으니까, 그 속상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시대를 지나는 모두가 자기 세대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생각이 깊어졌다.연민은 줄고, 책임 질 것들은 많아지고, 더 얻고 싶은 것은 없으나 잃을 것들에 대해서 셈하고 있다.

*

매일을 겪어내면서, 고단해지면서, 용감함이 사라지면서, 지킬 것들을 지켜가면서, 미워할 것들은 미워하면서.
부득이하게 폐를 끼치기도 하면서.
쉽게 슬퍼하기보다는 자주자주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더디 갈 수는 없어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던 그 사람들과 함께.


*

금요일의 심야버스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잠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게 되더이다. 서로 미안해하며 몸을 밀착시키던 오늘의 지하철과, 치열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결전의 태세를 갖추던 나와, 이만원. 택시를 타지않아 아낀 내돈 이만원. 등등.

누군가의 곤란함에 대해 수월하게 연민하지않게된 것은, 불행일까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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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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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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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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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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