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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80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삼십 분을 온전히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8주간 세 번씩, 24번 뛰면 될 것을 미련하게도 80번이나 뛴 것은 내가 그만큼 달리기에 서툰 사람이라는 뜻이고, 작년 여름부터 서너 번 도전했다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만큼은 언제나 꼴등이었다. 달리기를 하고 싶었던 적? 없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달리는 게 싫어 헬스장도 등록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강화되는 덕에 요가를 갈 수 없었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만 잊기엔 더 이상 청년이 아니었다. 안 좋은 것을 하면 몸은 안 좋아졌고, 좋은 것을 하면 몸이 확실히 좋아졌다. 더 이상 젊은 몸이 아니라는 증거였지만 나란 인간에겐 그게 좋은 편이다. 아무리 자신을 해치는 선택을 해도 그게 뭔지 모르는 건강한 몸은 대체로 당연해서 젊은 시절 난 몸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가 고장의 신호를 여기저기서 보내오기 전까지. 

다행스럽게도 젊음과 건강이 빠져나가는 것을 다소 이른 이십 대 후반에 느꼈다. 그 후로 몸 혹사를 그만둔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했다(기보다는 운동에 돈을 꾸준히 썼다). 운동으로 체력이 좀 생기면 술도 더 잘 마실 수 있었고, 일도 기운내서 할 수 있었고, 덜 지친 몸으로 돌아와 영화 한 편 -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렇게 운동이 가져다주는 선순환을 조금은 맛본 터라 운동없이 과로만 있는 코로나19의 시간은 너무도 괴로웠다.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카페인과 니코틴으로 각성상태를 유지하기를 반년이 지나니 몸에서 또다시 고장 신호를 보내왔다. 7월이 넘도록 코로나19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극한에 달할 때쯤, 퇴사 대신 달리기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었고, 운동화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런데이라는 어플을 깔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영화 <아워 바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달리기 뽐뿌가 왔냐면, 전..ㅎㅕ.... (달리기만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잃을 뻔). 한 가지 교훈은 있었다. 달린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변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겁나 힘들었다. 그런데 그거라도 하니 살 것 같았다. 확실한 건 달리기보다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18~9) 야행성 러너야 말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임을 이내 깨달았다. 밤의 뜀박질은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위안을 품에 안겼다. 달리는 이유라면 수십 가지도 댈 수 있지만 그중 가장 뾰족한 건 내 안의 자존감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일상에서 숱한 파도를 겪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 순간 무척 작고 초라해진 내 모습과 조우한다. 스트레스야 어떻게든 잊거나 풀면 그만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소멸하는 기분마저 들 때면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굴렀다. 


심야의 뜀박질은 그때마다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렸다. 뛰는 순간만큼은 근육부터 호흡까지 몸의 변화에만 집중하며 생각을 비워냈다. 멘탈에 놓는 모르핀 주사처럼, 도무지 떨치지 못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달릴 때는 잠시나마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 목표로 했던 거리를 어렵사리 완주해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자존감의 회복은 위대한 성과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성취가 금 간 마음의 빈틈을 메우고, 그런 성취들이 모여 단단한 삶의 방파제가 되어준다. 짧은 거리라 할지라도, 혹은 빠른 속도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세운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할 때면 어김없이 자기애를 손에 쥐었다.  - <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 



어떻게든 부여잡아야 하는 자기애의 몸부림. 검색 및 지인 추천으로 런데이 어플을 설치한 건 신의 한  였다. 1분 달리고 2분 걷기부터 시작해 끝끝내 30분을 달리게 만들어버리는 이 앱은 나이스 한 목소리의 청년이 뛰는 내내 계속해서 “좋아요~” “정말 훌륭합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칭찬을 해준다. 쪽팔리지만 고마워서 두 번 정도 울었다. 원래 이 나이 먹으면 누구한테 칭찬받는 경험이 별로 없어져서 상업용 칭찬에도 마음이 녹고 막 그런다. ㅋㅋㅋㅋㅋㅋ 난 대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아주 의존적으로 달렸다. 새 신발을 사거나 새 옷을 사진 않았지만, 뛰라면 뛰고 멈추지 말라면 죽을 것 같아도 멈추지 않았고 30미터 앞을 보라면 30미터 앞을 보고 막 그랬다.

달리기가 몸에 좀 붙을라 치면 야근 폭풍이 몰아치는 탓에 보름 뛰고 한 달 쉬고를 몇 번 반복했다. 주말에 조금 뛰는 것 말고는 도저히 루틴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할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뛰기를 반복했다(24번을 80번 뛰게 된 사연). 영원히 8주 차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마스크를 쓰고 요가를 할 자신은 없었고, 내 달리기는 5분 언저리에서 멈춰 있었으므로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 번에는 정말 다 달릴 거고, 목표는 삼십 분을 뛰는 거야. 맘을 잡으려고 책도 한 권 읽었다. 우리의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달리기>였다. ‘페이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LSD, 하프 마라톤 등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어 졌냐고? 전혀. 지금도 저~언혀. 다만 작가님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나에게 맞는 루틴과 밤/낮 달리기 스타일 등을 좀 찾을 수 있었고… 스마트 워치를 사고 싶은 뽐뿌에 맞서 싸워 이겼다.🙄 



겨우내 달리기를 쉬었으므로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오로지 30분을 쉬지 않고 뛰어보고 싶었다. 1분 조차 수월하게 뛰지 못하는 내게 30분은 30만 광년처럼 멀게 느껴졌고, 30분 달리기가 가능한 고성능 심장과 다리가 생기는 건 굉장히 근사한 일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유튜브에서는 드라마틱한 몸의 변화를 간증하는 영상들이 즐비했고, 나도 달리기를 통한 체중감량의 소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거짓말이다. 중간에 살짝 다이어트 욕심이 돋아서 저녁 식사를 샐러드로 일주일 먹어봤는 데, 인생이 우울해져서 그만뒀다. 


대신 맥주 보상을 조금씩 해주었다. 매일은 아니고 2회 성공 후 1회 맥주 정도?? 그리고 석 달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삼십 분을 달릴 수 있게 된 지금 저의 체중은요.... (두구두구두구///) -1kg 되시겠습니다!!!!! (너 이 씨.. 맥주 새끼..)

“(263) 달리기의 이상함은 한 번 한 것은 그것이 실현되었다는 것 이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달리기를 하고 나서 뭐가 변했냐면, 요로케~요로케~ 되었답니다^^쨘! 이런 글을 쓸 수 있지도 않을까?라고 달리면서 몇 번 생각했었는 데,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변한 게 없다. 1킬로그램의 체중감량을 성과로 제시하기에는 달릴 때 얼마나 힘들었냐면 막 숨이 가빠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온몸이 천 근 만 근, 땀이 줄줄, 마스크는 얼굴에 엉겨 붙고, 중간에 무릎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병원 가고 엉?!...!!!!!! 그 고생해서 1 킬로그램…… 장난해? 그 힘듦을 근력운동에 투자했으면 살이 더 빠졌을 것이다… 워… 이처럼 1분도 못 뛰어서 헥헥 대던 사람이 30분을 뛸 수 있게 된 것 말고는 정말 레알 아무것도 변한 게 없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냥 나는 30분을 달려보고 싶었고. 달렸고, 잘 못 달리면 반복해서 달렸고, 🏃🏻‍♀️🏃🏻‍♀️🏃🏻‍♀️🏃🏻‍♀️


그렇게 조금씩 달릴 수 있는 분을 늘려서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3분을 못 뛰던 내가 30분 동안 달린다.


그리고.


그게 다다. (씨익)

“(10) 달리기 위해서는 빨리 걷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걷기에서 두 발은 지면에 머문다. 두 발은 피할 수 없는 중력을 번갈아 흡수한다. 문제는 한 발 한 발 체계적으로 지면을 탐색하는 것이다. 반면 달리는 사람은 이 중력의 법칙과 작별한다. 그에게는 두 발이 더 이상 지면에 놓이지 않는 짧은 순간이 존재한다. 그때 그는 어떤 시간과 공간에 놓일까? 무중력의 섬광과 같은 아주 짧은 순간, 지상의 존재 조건 바깥으로의 탈출, 지상에서의 삶의 괄호 치기. 


달리기와 함께 두 발은 더 이상 지상의 축제에 머물지 않는다. 물론 두 발은 번갈아 차례로 지면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발은 걷기와 다른 것을 한다. 따라서 걷기와 달리기 사이에는 환원할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비록 양쪽 모두 육상이라는 같은 이름에 속하는 다른 종류의 운동일지라도 말이다. 두 발 중에 한 발을 지면에서 떼지 않는 한, 당신이 아무리 빨리 걷는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걷는 사람이다. 반면 당신의 두 발이 더 이상 지면에 머물지 않는 순간, 당신은 달리기 상태에 있고, 당신은 다른 차원으로, 걷기의 경험이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모험 속으로 진입한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

걷기와 달리기는 다르다. 다른 경험이다. 이어폰 속 런데이 청년은 “힘들어서 걷기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달리더라도 달려야 한다”라고 했다. 처음에 난 그 말이 뭔 말인가 했다. 걸을 때 팔을 앞뒤로 더 거세게 흔들라는 걸까? 걷는 것보다 느리게 달리라니? 걷는 것을 더 빨리 하는 것과 달리기는 무어가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내 뇌는 내 몸에 다른 명령을 내렸다. 나는 런데이가 시키는 대로 분명히 걷기보다 느린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무엇이? 책을 읽다가 알았다. “두 발이 지면에 놓이지 않는 짧은 순간”이 달리기의 순간에는 있었다. 아하. 

중력에서 벗어나 보려 하는 그 순간이 내 심장을 이렇게 뛰게 하는 걸까. 쿵쿵. 처음에 달릴 때 내가 가장 크게 인식하는 것은 심장의 존재감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호흡기의 존재감, 무릎의 존재감, (PMS때는) 가슴의 존재감, 골반의 존재감, 장경인대 - 대퇴근막장근의 존재감 (아팠던 곳들 쓰고 있다...) 

요즘 가장 강하게 느끼는 존재감은 어찌저찌 다시 돌아와서 호흡기의 존재감. 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호흡량이 많아진 건지, 서울의 공기는 여름에 더 안 좋아지는 건지 달리고 난 후에 목이 칼칼해서 이제는 무릎 때문이 아니라 목 때문에라도 하루~이틀 씩 달리기를 걸러야 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런데이 청년도 오버하지 말고 일주일에 세 번씩 달리라고 했었다(말 안 듣고 매일매일 달렸다가 인대 부어서 병원 신세를 지고 보름 동안 못 달리게 되기도 했음...). 과유불급. 이젠 좀 지키자, 하루 걸러 하루. 하루 걸러 하루. 

하루 나온 김에 하루키 책 이야기를 하자면(ㅋㅋㅋ 자연스러웠어!!), 이 엄청 유명하고 표지가 부담스러븐 책은 달리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던 11월부터 읽다가 말았다가 30분을 뛰는 러너가 된 것을 스스로 자축하기 직전에 다시 읽었다. 허허. 하루키는 작가 데뷔 후에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가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러너라는 정체성에 대한 애정과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과 장거리 달리기를 한다는 것의 닮은 점 등을 꽤 즐겁게 읽었다. 듣던대로, 명성답게 확실히 스타일 있는 아재였다... 

“(116)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키 소설이라곤 딱 한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에세이가 소설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지만, 읽다 보니 그에 대한 없던 애정이 생겼다(모두 가진 중년 남성이라고 생각하며 재수 없어했던 것도 사실). 소설가로서도 러너로서도 퍽 훌륭한 태도로 살아가는 어르신이지 싶어서 소설도 흔쾌히 읽어주마 싶었다. 참, 그 야구 보다가 불현듯 소설 쓰고 싶어진 썰도 바로 이 책에 나온다. ㅋㅋㅋ 고작 일 킬로그램의 감량 외엔 달라진 게 없는 줄 알았는 데, 책 읽다가 하루키와 나 사이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61) 그래서 나는 스포츠 종목으로, 거의 망설임 없이 혹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담배를 끊었다. 매일 달리게 되면, 담배를 끊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물론 금연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달리기를 매일 계속할 수는 없다. ‘더 달리고 싶다’는 자연스런 욕구는 금연을 계속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는 것은 이전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그렇다!!! 나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끊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끊었냐면, 끊은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끊어져 있다. 아마 4월 중순쯤으로 기억하는 데. 일기를 찾아보니, 

“(21/4/16) 쉬지 않고 5분을 뛸 수 있게 되었다. 놀랍다. 여전히 무리를 하지는 않지만 (무리하면 하기 싫어질까봐) 조금씩 조금씩 페이스를 올려보라던 OOO 말이 생각나서 겁 안 먹고 내리 높였더니... 정말로 뛰어졌다. 그치만 5분에서 15분으로 바로바로 늘릴 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겁먹게 되어 암튼 이번 주는 5분 뛴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저녁 하늘이 핑크 핑크 너무 근사해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의 코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트랙을 도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는 데, 어제도 그렇고 인조잔디 한가운데 누워서 땀 흘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은... 엄청나게... 쾌감이다.. 행복...!!! 처음으로 잘 달리고 싶어서 담배를 끊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런데이 아저씨가 담배는 스트레스 때문에 피우는데 달리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가셔서 자연스럽게 끊게 된다고 하였는 데, 너무 맞는 말인 거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담배 -> 스트레스 때문에 피움 -> 백수, 스트레스 요인 없음 -> 달리기 할 때 호흡 딸림 -> 끊을까? 생각해봄 -> 피우러 나가는 게 더 귀찮음 -> 사러 나가는 건 더더 귀찮음 -> 안 삼 -> 끊음 -> 달릴 때 호흡이 좋아짐 -> 스트레스 풀림 -> 담배생각 안남

 

10년 흡연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진 않겠지? 스트레스받으면 다시 피울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일단락된 것으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금연을 마음먹을 때는 항상 금연을 마음먹으면서 담배를 생각했고, 얼떨결에 금연 중인 지금은 그냥 아예 담배 생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드링킹>작가, 캐럴라인 냅 언니...  알콜을 끊을 수는 없었답니다?... (대신 담배를...)

“(225) 달리기는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부상과 더불어, 신체 안에 고통을 느끼면서 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어깨, 허리의 고통, 무릎 통증, 근육통 등등.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반해서 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그렇다면, 1킬로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신체와 더불어 달린다. - <달리기>, 기욤 르 블랑”

30분을 달리기 전 보다, 나는 건강해졌을까? 글쎄. 여전히 근육은 없고, 뱃살은 있고, 되려 안 하던 달리기 때문에 삐걱대는 무릎과 담배를 피울 때 보다 더 기분 나쁜 칼칼한 목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체력이 더 좋아졌을 수 있긴 한데, 막상 일을 안 하니까 체감 못하고 있다. 그럼 정신이 더 건강해졌나? 아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담배 중독에서 달리기 중독으로 중독된 종목이 변했을 뿐 뭔가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는 같을 지도...?

음...
음...
....

그런데 오늘도 분명히 달릴 것 같다. 
왜지?... 런데이 앱도 다 했고... 30분 달리기의 목표도 이뤘는 데... (목표를 이룬 자의 허망함) 

지금 생각나는 것은. 죽을 것처럼 힘든 데 머리 위로 떨어지던 벚꽃이 아름다웠던 거랑, 땀 흘리고 난 뒤에 부는 미적지근한 바람이랑, 달리는 내 속도를 따라서 천천히 바뀌던 거리의 풍경들, 인조 잔디운동장에 벌렁 드러누웠을 때의 하늘. 그리고 뭔가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로운 느낌. 이 느낌은 러너스 하인(runner’s high)가 뭐시깽인가하는 경험은 아직 아니다. 그냥 너무 힘드니까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 나는 뛸 때마나 겁나 힘들기만 했다. 단 하루도 안 힘든 적이 없었다.... 

지난주부터 런데이 청년🤖이 너무 잘했으니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자기를 추천하라고 했다. ㅋㅋㅋ 나에게 생애에 없었던 달리기라는 힘든 시련을 겪게 해 준 그의 부탁에 따라 알라딘 마을 친구들에게 자랑과 추천을 해본다. 솔직히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 


추천사 : 석 달 달려도 살 안 빠진다. 스트레칭 충분히 안 해주고 좋다고 맨날 달리면 무릎 등에 부상 생긴다. 힘들다.  힘들다. 뿌듯함? 힘든 거에 비하면 진짜 조금 있다. 하루키가 달린다고 합디다. 그리고 하루키 본인도 추천하진 않... 던데요?

오늘의 창밖은 축축해 보인다. 역시 달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삼십 분을 달릴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하면 된다. 할 수 없는 건 안 하면 되고. 근데 겨우 할 수 있어진 것을 다시 할 수 없어지 게 만드는 건, 다른 할 수 있는 게 생겼을 때 아닐까? 달릴 이유가 없지만 안 달릴 이유도 별로 없고, 안 달리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 달리는 게 좋을 것 같고, 더군다나 내가 달리는 코스는 축축한 날씨에 특별한 흙냄새를 뿜어내고, 그 냄새를 맡는 것이 나쁘지 않았고. 오늘은 축축하고. 어찌저찌 나는 달릴 수 있게 되어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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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5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공쟝쟝님 완전 의지의 한국인이시네요~!!. 실천하는 책 읽기라니~ 전 걷기만 하는데 대단합니다😄
대신 보상은 맥주 대신 소주가 좋지 않을까요? 살도 안찔거 같고 ㅎㅎ

공쟝쟝 2021-06-15 17:32   좋아요 3 | URL
실천하는 책읽기....... (후두둑 소름이 돋았다..) 아니요. 실천에 도움되는 책읽기!로 합시당. ㅋㅋㅋㅋ
운동하기 싫을 때는 운동 에세이 읽는 게 짱이예요. ㅋㅋㅋ
파랑님.. 맥주는 안주 없이 마시지만 소주는 안주 없이 마실 수 없습니다. 보상하다 10킬로 찔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요.

새파랑 2021-06-15 17:44   좋아요 3 | URL
아 깡소주 드실꺼 같으셔서...안되면 보드카라도 ㅎㅎ 열 운동 응원합니다~!!

잠자냥 2021-06-15 17:50   좋아요 5 | URL
새파랑 님 운동하고 나서 소주 마시면 더 목타욬ㅋㅋㅋㅋㅋ 하, 생각만으로도 목타ㅋㅋㅋㅋㅋㅋㅋ 시원하게 맥주를 마셔야지!

공쟝쟝 2021-06-15 17:55   좋아요 5 | URL
깡쏘쥬요? 보드카요… ? 파랑님 러시아 소설 당분간 금지ㅋㅋㅋㅋ 미국소설 읽어요 ㅋㅋ 맥주마시는 ㅋㅋ

새파랑 2021-06-15 18:03   좋아요 5 | URL
아~목타는 걸 생각 못했네요 ㅎㅎ 운동 후에는 🍺가 확실히 맞네요~!! 전 독한걸 좋아해서...제가 러시아 문화에 너무 빠졌나봐요 😅

mini74 2021-06-15 1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추천안하신다니 자랑만 받을게요 ㅎㅎ

공쟝쟝 2021-06-15 20:11   좋아요 2 | URL
자랑 받아주셨으니 저는 감사해서 인사드립니다. 🙇🏻‍♀️ 좋은 저녁 보내시어요 ㅎㅎㅎ

붕붕툐툐 2021-06-15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쟝쟝님, 왤케 멋있는 거예요? 인간이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구욧? 와~ 그리고 글을 왤케 실감나게 쓰는 거예요? 제가 달리고 있는 줄 알았잖아요. 멋지다, 진짜~~ 진심 축하드려요!!

공쟝쟝 2021-06-17 10: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삼십분짜리 심장을 가진 멋진사람 🫀꺄~~~

단발머리 2021-06-1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십분 달리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랍디다. 의지의 한국인, 놀라운 실천력에 기립박수 보내드려요.
평생 운동과 담쌓은 사람이어서 달리기 실천은 자신 없지만, 거실에 저기 저기 저~~~ 자전거라도 좀 타볼까. 나는 내 몸을 너무 아끼는구나,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가요. 날로 진화하는 그대야말로 알라딘 최고의 신인류!!!

공쟝쟝 2021-06-17 12:26   좋아요 0 | URL
의지의 한국이라니요. 중독을 중독으로 대체하는 중독순환의 법칙이랄까요. 도파민이랑 엔돌핀이요. 어차피 그거얻으려고 하는 거거덩요… 안 얻을 순 없으니 대상을 다른 걸로 교체하며… ㅋㅋㅋㅋ 신인류 좋다…. 일 안하면 책이라도 읽어야쥬.. 솔직히 요즘 신이난 신인류…맞습니당💪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1-07-0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모나리자 2021-07-0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나 따위가 책을 평가할 기준이란게 있나? 읽은 책은 다 좋은 책!! 했었는 데, 읽기가 쌓일 수록 ‘내’가 읽기에 너무 좋은 책들은 별 다섯을 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별 반개가 없는 북플의 특성상 (도입좀 해주라 제발), 모든 책이 별 네개가 되어가고 있었고…. 또 그건 아닌 것 같아 깎다보니 좋은 책들도 별 세개가 되어 본의아니게 좋은 책들에게 별점 테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또 별 셋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라고 항변하기 위해 페이퍼를 써보는 중이다. 시작은 이러한데 언제나 그렇듯 쓰다보면 맨날 다른 글을 쓰고 있는 나…. 두시까지 후딱 쓰고 일하러가자.


사실 책에서 만큼은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인 내가 마지막 장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완독하는 책은 내게 좋은 책에 속한다 싶다… (예외 : 너무 좋아 아껴 읽는 경우, 너무 어려워 못읽은 경우가 있음)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서 다양한 책을 고를 선택지가 많아지니까 더 뒤적뒤적 하게 되서 완독이 수월하지 않으니 점점 더 ㅋㅋㅋ 그렇게 될 예정이다..


도서관에서 일단 책을 편 후 나는 보통 세가지 기준으로 완독 할지 말지를 판단한다. 


1.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거나

2. 재미있거나

3. 아름답거나


과거 1-2-3 이 충족되었던 저자라서 아묻따 의리로 읽는 경우도 있음. 중요도 순서는 평등한거 같다. 사회과학이나 철학, 인문교양 책에 1 번이 2,3은 주로 에세이나 소설에 해당한다.


1. 정보 혹은 의미


기실 모든 책은 정보를 주기 때문에 별 다섯에 다다르기는 좀 까다롭기로 해보자. 


(내 기준에)새로운, 알아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주는 책의 최고는 별 넷

새로운 지식 + 인식하는 방법론 자체를 재구성하게 하는 책 에는 별 다섯 (정희진과 푸코가 별다섯인 이유)

읽었고 의미가 있었던 독서 였다면 별 셋 -> 별 셋을 기준으로 더 깔지 더 할지 생각함

새로운 지식을 줬는 데 빻았으면 별 하나씩 깜 (윌 스토)

새로운 지식을 ‘재밌게’ 풀면 별 하나 추가 (유발 하라리) 

같은 맥락에서 정보전달을 아름다운 문체로 하면 더욱 관대해짐(별 하나가 아까울 때가 있어 반개가 필요함ㅋㅋㅋ)

정보가 새롭진 않았지만 분석력, 통찰력이 돋보이거나 설명을 정말 잘했거나. 취재 과정에서 너무 열심히 쓴 노고가 느껴지면 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굳이 상향평준화 되어있는 평점들이 보이면 일부러 별을 낮게 매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하다.. 

좀 싫었던 책은 별하나… (이건 별점 테러용...)



2. 재미


음… 재미는 진짜 주관인데… 내 개그 코드가 기준이며.. 그래서 이 부분 만큼은 기준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도ㅋㅋㅋㅋ? 일상에서 보통 재밌는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인데, 글로 독자를 웃기는 건 눈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봄. 전적으로 지적 설계의 문제임 ㅋㅋㅋ (읭?) 세상에서 글이 재밌는 사람이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번역을 했는데도 재밌어 버리면? 음.. 헤어나올 수 없어지지요. 최근에 에런 라이크 책이 그랬고, 페미니즘 책 읽다보면 풍자와 해학의 고급 개그코드들이 느껴지는 데, 그럴 때 가끔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져… (마음만 그래) 


독서에 습관이 붙으면서, 책과 책의 연결 고리로 아는 게 많아질 수록 웃기고 더 재미도 생겨나는 것 같다. 금며들었다고 표현했는 데… 예전엔 이뭥뮈 했던 금정연 작가가 좀 그랬음. 책 덕후용 유머였어.


웃기겠다고 노력하다가 불편하게 만드는 유머(김영민 교스님ㅋㅋㅠㅠ)를 구사하거나,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두세 페이지 안에 너무 많은 유머가 들어가 과유불급이 안타까운(혼비님의 아무튼 술😭이 그랬다.. 웃기려고 너무 애쓰는게 티났어…) 경우도 있다. 이렇듯 저는 글로 웃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재밌기만 참 재밌고 웃기기만 겁나 웃기다고 생각하던 도중 뼈가 있어 버리면 바로 폴인럽.. (사실 혼비님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가 그랬는 데 ㅠㅠ 아무튼 술에서 ㅠㅠ..무리하셔가지고 ㅋㅋㅋ) 여하튼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중 독보적인 분으로 손꼽는 에세이스트에 <계간 홀로> 발행자이신 이진송님이 있음. 20대 부터 그녀의 글을 읽어왔으나 생각해보니 제가 애정하는 만큼 그분의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쓴 적은 없었더라고요? (왜지? 스스로 의아함)


여하튼 그녀의 주옥 같은 책을 살짝 페이퍼에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묵혀둔 리뷰도 써보겠음다.
















신예로 이주윤님 있다 들었으나 (대놓고 웃기다는 오빠 맞춤법을 아직 읽지 못한 고로) 아직은 판단을 유보. 솔직히 요즘 에세이 시장이 활활 타올라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웃기신 분 진짜 많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소설 계에서는 독보적으로 박상영(나오는 사람들 하는 짓이 웃김..)이 있고, 그 밖에는 소설을 안 읽어서 나 잘 몰라… 앗;;;


참고로 알라딘 마을에 글로 웃기는 분 많다 ㅋㅋㅋㅋ 특히 댓글로.. (여러분 내가 애정해여😚) 이는 이 마을의 지적 능력이 한국의 평균 이상이라고 ㅋㅋㅋㅋㅋ 쓰려고 했는데, 가끔 유튜브 댓글들 보다보면 한국의 지적 총량이 이렇게나 세계적임을… 아 어떡해 쓰다보니 또 쓸데 없는 소리 계속 쓰고 있어…. 


암튼 소설의 별표 기준은 이렇다.


흡입력있는 (페이지터너) 소설 < 생각할 것이 많은 소설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 = 구조가 촘촘한 소설

문장이 이쁘고 좋은 소설 < 내 마음 같은 공감이 많은 소설 


힘빼고 그냥 즐겁게 읽는 소설이 많아져야 할텐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뭘까?를 많이 생각하는 편(황정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읽다 보니 자꼬 힘이 들어가고 읽는데 힘들면 피로해지니까 소설 안읽고… 고치고 싶은 점임.



3. 아름다움


글이 아름다운 책 < 태도가 아름다운 책

 

이 좋지만 점점 문장이 아름다운 게 왜 중요한지 알아가고 있는것도 같다… 아, 이 문장을 만나려고 내가 이 책을 읽었나? 싶을 때도 있고. 이 아름다움 역시 재미만큼 주관적이라서ㅋㅋ 그래도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글들도 있다. 한강 작가님 김애란 작가님 아름답고, 신형철 평론가 글도 아름답고, 김혜리, 이슬아… 아, 아름다운 글 너무 많지만… 근래에 읽은 책중에는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이 탁월하게 지적이면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 지적이더라… (물리학이라고는 에프는 엠에이밖에 모르는 문돌이가 과학책에 매료되는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이과가 글까지 잘쓰면 그거 진짜 반칙 아닌가?)  


버뜨!! 문장을 꾸미지 않아도 진실한 통찰이 묻어나는 글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주 가끔 미문으로 만들어졌는 데 지적이지도 재밌지도 않으면서 하나마나한 착한 소리를 하면 빡이 칠 때도 있다. 어이 당신,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째려보고 싶달까… 그 문장력으로 착할거면 차라리 아름다운 개소리를 해줘. 물론 개소리보다는 하나도 안꾸민 소박한 문장으로 적혔을지라도 하루를 살아가는 데 용기를 주면 그 글, 그 책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전업 소설가들(에세이 김연수님 만큼 쓸거 아니면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자.. 물론 에세이 잘쓰시는 분들이 소설 잘쓰는 경우도 거의 없더라... 헛...)보다 직업인(?)이나 엔잡러(!)들의 글이 더은 것 같다. 예를 들자면 허혁님의 <나는 그냥 버스운전사입니다>같은?


태도의 아름다움도 주관적이다. 주관적이기만 한가, 나 자체가 일관성 없어서 자꾸 자꾸 좋아하는 태도들이 변한다. 솔직히 나는 잘 살고 싶다. 그 잘사는 게 어떤 건지는 공부하는 중이고, 그 공부로 책만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열심히 읽는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잘 사는 태도를 삶에 적용해보는 것 말고 다른 잘 사는 방법이 있다면, 책 따위 다 불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해석하는 이야기가 정말 중요하다. 또 그렇기에 못사는 사람들의 글도 중요하다. 정 반대의 의미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별표를 다는 것이 다 뭔가 싶다가도. 이거 잊지 않고 해보려마하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우리가 같은 이유로 이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좀 덜 외롭다. 


사실 요즘은 외롭다는 감각에 꽂혔다. 그래서 요즘 내 별표의 기준은 ‘멋지게 외로운 태도’다. 


(+)

정리 및 추후에 덧붙임,

⭐️별하나 별점 테러용 (ㅋㅋㅋ)

⭐️⭐️별둘 굳이 안읽었어도 상관없었을 책

⭐️⭐️⭐️별셋 한번은 꼭 읽어야하는 책

⭐️⭐️⭐️⭐️별넷 재독해도 좋은 책

⭐️⭐️⭐️⭐️⭐️별다섯 (내 기준에)여러번 거듭 읽을 책


나도 몰랐던 나의 기준을 하나 추가하면, 디자인이다. 고유의 기능을 잃지 않은 범위 안에서의 가독성을 보장한 아름다움과, 종이 벌크감과 때타는 것과 휴대성과 들었을 때의 그립감을 포함한 ㅋㅋㅋㅋ 여러가지 면을 본다 ㅋㅋ 그게 많이 충족되면 내용까지 좋게 느껴지더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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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02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캬 이 페이퍼 참으로 재미납니다?!

그나저나 쟝쟝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6-02 14:19   좋아요 2 | URL
아이 참, 그대 내가 만난 알라딘 서재인 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웃긴 사람 ㅋㅋㅋ (이라고 쓰고 천재라고 생각한다)

잠자냥 2021-06-02 14:27   좋아요 2 | URL
사실 왠지 어머 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런 댓글 달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다부장님 자뻑 닮아간다....)

공쟝쟝 2021-06-02 14:37   좋아요 2 | URL
큰 엄지 손가락에 다코타 부장님 계신다고 합디다??? 그나저나 이 행간의 맥락을 읽어내는 웃긴 것 아는 잠자냥님... 이제 아시겠죠?? 페이퍼 안에 재밌음의 티키타카를 설계하는 저의 재미력(천재력)을 요?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02 15:37   좋아요 2 | URL
다코타 존슨 부장님의 자뻑력이 세상에 널리널리 퍼져야 합니다. 모두모두 자뻑으로 하나되는 세상 만들어가도록 해요.

그럼 이만.

공쟝쟝 2021-06-02 15:48   좋아요 1 | URL
다부장님의 자뻑은 천재력을 구성하는 코어라고 할 수 있죠. 자뻑력을 단련할 수록 재미력이 증가하는 근력형 유머의 세계. 글로 웃기는 사람에게 누가 근육이 없다고했던가.. 커몬커몬 !! 다 오ㅏ랏!!!

난티나무 2021-06-02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아직 안 썼지만 쓸 지 확실치 않지만 오빠를 위한 맞춤법, 음 저는 글케 웃기지 않더라고요. 내가 어떤 시선으로 글을 읽고 있는지 가끔 헷갈렸어요. ㅎㅎㅎ
떨림과 울림, 그렇단 말이죠? 담아만 두고 살 생각은 안 했는데 흠흠.

공쟝쟝 2021-06-02 15:49   좋아요 1 | URL
야한걸로 웃기면서 피씨하기가 어디 쉽당가요… ㅋㅋㅋ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이 알라딘 마을에 있다니까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6-02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제가 별을 다슷 개! 드립니다.
(웃겨보려고 애 쓰는 거 보이시죠?;;;)

공쟝쟝 2021-06-02 15:51   좋아요 2 | URL
만두님.. 하아, 정말.. 의미와 재미와 아름다움을 두루갖춘 천재님을 쉽게 알아보는 당신은 안목의 천재…🤭??

붕붕툐툐 2021-06-02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게 외로운 태도 넘 좋네요~ 저도 타인을 웃기는 게 최고의 지식&재능이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얼마전 읽었던 syo님의 글에서도 소설 읽을 때 작가에게 감정이입하신다 했는데, 공쟝장님도 그러신 거 같아요. 비법 알았어! 글 잘쓰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ㅎㅎ

공쟝쟝 2021-06-03 14:06   좋아요 1 | URL
잉? 쇼님이랑 저랑 읽는 스타일 다른 편 인데 ㅋㅋㅋ 저는 이 사람 뭔 말하고 싶은 지(서사나 문장 뒤에 숨긴 하고 싶은 말)를 생각하는 데, 쇼님은 스타일까지 두루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어떻게 이렇게 ‘쓸‘수 있지? 이렇게요ㅋㅋ 저는 스타일 잘 안 보고요. 내용 좋으면 형식 신경안쓰고 문체에 관대하며 엉망인 번역도 용서 가능해요 ㅋㅋㅋ 쇼님은 번역에 자비 없으심.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면 한달 전에 치킨 뜯으면서 만나서 이야기했던 내용)

붕붕툐툐 2021-06-03 14:19   좋아요 1 | URL
앗! 하나 더 추가. 글 잘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읽기 방식을 디테일하게 알고 있다!ㅎㅎㅎㅎㅎ

공쟝쟝 2021-06-03 14:21   좋아요 0 | URL
매번 잘쓴다고 칭찬해주셔서 제가 정말로 잘쓰는 줄 알겠네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는 재밌게 쓰고 싶다!!!!!!!!! (천.재.되.고.싶.다)
 

동생이 차곡차곡 모은 스타벅스 쿠폰(?)으로 타다준 2020년의 몰스킨 일기장이 4/5는 채워져있지 않은 고로(작년에 거의 못씀) 2021년의 일기를 2020년 일기장 빈칸에 색깔이 다른 펜으로 적는 중이다(종이를 아껴쓰는 착한 사람입니다). 가끔 작년의 일기를 읽으며 어제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곤하는 데... 2020년 4월 29일의 나는 맥주에 안주로 고로케를 세개 먹었다. 


“고로케 세개는 느끼하다. 과유불급. 두개에서 딱 끊어야 한다. 내일부터 연휴다. 나는 맥주 책 영화 그리고 또 맥주 책 영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잖아. 너무 좋잖아!! 행복은 정말 언어가 없나보다. 쓸말이 없다. 그냥 어. 음. 행복하다.”

휴일. 맥주. 책. 영화. 네가지 조합으로 언어마저 잃은 행복감을 느끼던 나를 떠올리니… 오, 역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바뀌는 법. 요즘은 매일 매일이 휴일인데 영화는 볼 생각이 안들고, 책은 슬슬 지겨워지고, 맥주는(!) 주말 말고는 안마신다!! (고도 적응형 알코홀릭에서 벗어나려 미세한 노력 중) 매일 매일 행복하긴 하지만 은은한 행복이라서… 고작 3일 연휴로 격렬한 행복함을 압축해서 느끼는 당시의 일기를 보니… 작년의 내가 너무 짠해😭 (정말 고생 많았다 과거의 나여) 어쨌든 일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동네 고로케 집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겠지만, 생각해보니 그 후로 난 고로케를 사먹지 않았던 것 같아, 친절했던 주인 아주머니 죄송해요. 자주자주 조금씩 사먹는 거였는 데, 무식하게 간식을 배불리 먹고 질려서 잊고 지내버렸… 😢 모처럼 생각나서 찾았다가 문닫은 게 어찌나 안타깝던지. 겨우 1년, 쉽게(그러나 분명히 매우 어려웠을)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잠깐의 애도를.

***

또 이런 메모도 있다.

“나는 대체로 슬프고 아주 가끔 행복하다. 인생뭘까.
눈물 사이로 비치는 빛.”

작년 초봄에 술을 마시며 친구에게 이렇게나(!) 시적인 말을 해줬던 것도 떠올랐다. 당시 N번째의 시험과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스트레스로 졸도를 해버린 썰을 풀며 인생뭘까 진지하게 묻던 그를 나는 쉽게 위로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다. 스스로도 이 악문 채 하루들을 버텨내고 있었고, 친구의 상황도 나 못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만했으면 그만두라는 말은 말이 쉬운말이라서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견뎌야 하는 시기들도 있었고, 결국은 그만두는 결론을 내더라도 내가 나에게 지는 느낌으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게 우리가 하는 위로의 암묵적 룰이었다.

솔직히 정말 너무너무 힘든거야. 맨날 욕먹고 야근하고 야근해도 다 못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자꾸 서러워서 눈물이 터지는 겨. 알지? 나 잘우는 거. 어느 날 또 평소처럼 아 존나 힘들다 쓰바 엉엉 울고 싶다 이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차올랐는 데, 춥기도하고 차마 눈물을 떨구기가 싫어서, 눈에 힘 꽉 주고 그렁그렁 한채로 걸었다? 근데 가로등 빛이 반짝 반짝. 그래서 울락 말락 하는 와중에 그 생각이 들더라. 어, 이쁘다. 하나만 하지. 슬프려면 슬프고 이쁠려면 이쁘고. 근데 슬픈 와중에 이쁘니까. 좀 살거 같았어. 그러니까, 인생은. 인생은 원래 대체로 슬픈건데- 눈물 꽉 찬 그 와중에 뭔가 가로등 빛 같은게 눈물이 뿌연대로 보이고, 그게 보이는 나는 울다 말다 울면서 빛 번지는, 찰나, 엉? 이러면서 콧물을 막 먹으면서 그 와중에 또 이쁘다 이러고 있는 나한테 피식 웃어주는 거. 상황은 눈물나도 나한테 내가 웃어주는 건 할 수 있으니까. 그래. 오오. 근데 이거 내가 말해놓고 보니 그럴듯 한데? 나중에 써먹을테다. 앗싸. 킵킵.

일년 넘게 지난 시점에서 써먹기 위해 적어둔 두줄짜리 메모 발견하고 그날의 불행배틀 술자리를 생생하게 떠올려버렸다ㅋㅋㅋ. 그러고 보면, 기억… 뭘까? 작년에 먹은 세번째 고로케의 느끼함은 기억이 나는 데,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그렇게 힘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게 맞는 거겠지? 그런데 또 울면서 봤던 가로등의 반짝임은 어제 본 것처럼 잊히지가 않고.

무튼 아주 진심으로 그 이야기를 했다. 인생 밤길에 울다가 만난 가로등 빛 같다고. 엄청 슬픈데 또 슬퍼야만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너나 나나 지독히도 의미를 찾아야하는 의미주의자인데 힘들고 슬픈 것 자체도 언젠가는 교훈이 되겠지..? (눈치) 알아, 위로 안되는 거. 나도 위로 안돼. 미안해 ㅜㅜ 위로 안돼서.. ㅜㅜ.. 그냥.. 힘든게 꼭 힘들기만 한건 아니라능.... 인생 단짠단짠... 내 인생 짠짠짠짠짠단짠... 니 인생은 짠짠짜라자라자짠짠짠단짠짠짠.. 뭐...? 술이나 마시라고? 알았어. (한숨) 취하자! 짠!! 이렇게 아마도 우리는 재빠르게 술이나 마시고 헤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 날의 위로에 대해서 생각한다. 친구는 아마 잊었을거다. 나도 저 두줄을 써놓지 않았다면, 저걸 꺼내서 다시 읽을 기회가 없었다면, 기억하지 못했을게 틀림없다. 어떻게든 친구를 위로해보고 싶은 마음에 아무말대잔치처럼 말로 꺼내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내가 보았던 가로등 빛의 웃픈 반짝임 역시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 거다. 이 글의 시작은 어디일까? 가로등? 메모? 아니, 위로. 더 정확하게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와 진심이었던 내 마음. 덕분에 글이 보존시켜 줄 것들은, 얻어걸린, 웃펐던 겨울의 가로등.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무상한 것, 슬픈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불편한 것들을 일상에서 만나고 언어화 시키지 않은 채로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담아둔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느꼈던 것들을 더 생생한 언어로 말하게 될 때가 있다. 입 밖으로 꺼내고 난 후에서야 안다. 내가 그것들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구나 하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기장에 휘갈기듯 적어놓거나,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메모해둔다. 짤막짤막한 단상들로 이루어진 메모와 문장들에 기대어 요즘의 나는 제법 긴 글을 쓴다.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그 느낌들을 온전하게 복구시킬 수는 없지만, 얼추 비슷하게 클라우딩 되어 있구나 싶어진다. 요 몇년간 그런 식으로 글을 써왔다(기억이 맺히는 방식으로의). 기억해 둠직한 시간들을 후루룩 쓴 복사본(노트들과 메모장에)으로 잔뜩 가지고 있는 편이다. 예전 일기는 더는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고발 리포트 느낌이 강했으나, 요즘의 일기는 행복해지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아, 요즘의 나는 행복의 순간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 구나.

***

반대의 경우에도 쓴다. 어떤 대화의 순간이(좋고 싫고와는 별개로) 인상적이었다면,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때때로 길게는 한달 까지도 내 안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말들이 빼곡히 쌓인다. 대화의 상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나자신에게 되짚어 물어 보아야할 질문들이라는 걸 알게된다. 나는 또 그 질문들을 메모해둔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질문 자체를 해석하는 글을 써본다. 이 경우는 쓰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편이다. 쓰지 않았다면 기분이나 인상으로 휘발되어버릴. 글로 적어 내리다보면 열에 일곱은 엇비슷한 내용임을 알게된다. 나 자신이 결론일테니 결국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쪽의 글 이란 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시간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즐겁다. 비슷한 방식으로 서재에 독후감을 쓴다. 어떤 책이나 문장을 만나고 왜 거기서 눈길이 멈추었는지 나에게 거듭 물어보면서 떠오르는 심상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기억 - 사람 - 질문 - 해석 - 글 - 기억 - 사람 - 질문 - 해석 - 글

치킨을 먹기위해 만난 독서가들은 소설 읽기에 각자의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포인트를 듣는 것은 너무 즐거웠다. 각자들의 포인트를 훔쳐서 그런 기분으로, 그런 눈🥺을 하고서 읽고 싶어졌다. 아마 나는 또 내 멋대로 오독하겠지만, 오독과 오독 사이에서 확인되는 서로의 다름이 언제나 기꺼웠던 것은 우리, 책에 대해서 만큼은 진심이니까. 진심은 통한다. 아아, 상투적인 표현이라 서글프다... 상투적 ‘진심 통함’이 아니라 각자의 진심들이 있으면, 달라도 어딘가는 통해서 그 다름이 더 사랑스럽다는 그런 이야기다. ... (아, 이역시 상투적이야.. 지울까?)

몇개 째의 닭 조각을 삼키고 배가 부를 때 쯤엔 구관이 명관, 간장맛이 나는 순살 치킨은 역시 교촌이 최고인 듯 하며 속으로 궁시렁댔다. 톨스토이도 도스트도예프스키도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읽을 생각이 없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나는 오로지 최은영에 대한 팬심으로 “소설가는 맘 속에 하고 싶은 어떤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 같아여!!!” 라고.. 말해.. 버렸다. 톨스토이와 쿤데라와 제임스 설터와 줌파 라히리(이름도 어렵네) 사이에 갑분 최은영 던지기!!! (작가님 미안. 그래도 나에겐 톨스토이보다 당신이야…) 저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읽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데, 이게 문학시간에 배운 주제찾기 이런 학습효과 일지도 모르겠지만(쭈굴), 어쨌든 제가 좋아서 비명 지르는 소설은 제가 하고 싶었던 나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이야기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소설이예요. 그래서 저는 최은영이 짱이예요. <내게 무해한 사람> 짱....😫 내가 전하는 소설 읽기 포인트에 한 이웃은 자기도 그런식으로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는 것 같다고 동조했고 다른 이웃은 신기해했(던 것 같)다. 뭐, 나는 항상 그래왔듯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그런 방식으로 소설을 읽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려버렸고. 어쩐지 최은영까이면 내가 까인것 같더라니…. 엉엉, 그런데 내 마음 같은 최은영 작가님 다음 소설 언제나와요…? 


나의 자랑스러운 책에 미친(?) 이웃들은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으로서 읽게 되는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는 데, 맙소사 그 이야기들도 너무 신기했다. 저렇게(방식) 읽으니까 그렇게(양) 읽을 수 있었구나. 우리 자주 만나요. 저랑 많이 놀아주세요!!! 우리집에서 비록 1시간 45분 걸리지만 저 자주 놀러올수 있어여!!😤

전두엽과 측두엽에서 이 사람들을 붙잡아!!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다. 그래 언제까지 내 뇌를 알콜과 맛있는 것으로만 행복하게 할 수는 없지. 좋아하는 걸로 대화하는 거 너무 좋잖아!! (명랑한 은둔자 2달째.. 사람 그리웠구나 나..) 엄청 행복해하며 이야기 듣다가 나는 그다지 ‘쓰는 정체성’을 가지고 글을 바라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서 적잖이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는 물론 있었지만(cf. 정희진, 푸코, 양효실, 정성일, 보부아르, 엄기호, 김혜리, 신형철 - 대부분 에세이 or 사회과학, 순서는 애정도 순서)… 이것은 사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지? 나도 이렇게 생각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뇌에 즐거운 자극을 주는 이웃들로 부터 파생되기 시작한 질문 하나.
쓴다.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쓰는 사람’으로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이 여기에 닿자 조금 소름이 끼쳤고, 어렴풋이 그것은 굉장한 자기학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와, 시기심과, 비교와, 약간의 안도와, 결국은 또 질투와, 자기부정과, 시샘과, 질투와, 또 질투로, 점철된!!!!!!! 똑똑. 여보세요들. 많은 작가님들? 혹은 작가지망생, 예비 창작자님들아..? 당신들의 속 안에 어떤 독한 것이 앙금처럼 맺혀있을지내 모르겠으나.. 인생이 뭐냐면요.. 아아, 그것은 눈물 사이로 비치는 빛이라오. 독기 뺄려면 많이 우세요.. 토닥토닥.. (또... 슬퍼짐.. 아, 그 인생 살지도 않았는 데,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퍼😭)

***

난 다행스럽게도 나를 알기 위해서만 쓴다. 썼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한 서른 살 이후 부터는 더 그랬다.
질문을 조금 더 파고 들어가보자. 내가 쓰는 중심 이유가 나를 알기 위해서였다면, 나는 왜 이토록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일까. 본격 일기쓰기 만4년, 오늘에 와서야 슬쩍 대답해봐야겠다.

오랫동안 자신을 없애 나를 먹이는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나는 성인이 된 후 사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을 어렵사리 폐기처분하면서, 사랑하지 않고-존재하고-싶다 생각했다.

‘사랑=(인어공주처럼)물거품이 되는 것.’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내게 체화된 사랑의 능력이란 게 그런 거였다. (바란다, 내게 인이 박힌 일종의 고정관념을 남을 생을 다써서라도 바꿀 수 있다면.)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있고’ 싶었다. 어떻게 ‘있을’ 것인가? 이제와 끼워맞춰보는 것이지만 나는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몰래 일기를 썼다. 나는 왜 이모냥일까로 점철된, 대체로 사랑하는 게 힘들고 슬퍼서 쓰는 글이었다. 어쨌든 글을 쓰고 있을 때라도 가장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또한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그 기억이 생생할 수록 적어도 당시의 나는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억을 글로, 글을 기억으로 남겼다. 그렇게 해두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있고 싶었다. 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 울컥한 아이유 노래 가사처럼) ‘겨우 내가 되려고’ 써왔다는 사실을 느끼는 지금, 안도한다.

나를 ‘있는’ 존재로서 자명하게 대하는 것이,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큰 과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요즘들어 공부하는 페미니즘과도 매우 맞닿아있는 것이라 앞으로는 의식적으로라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질끈 마음 먹어 본다. 이는 스타일을 구축하는 문제라기 보다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 존재하고 싶다’는 몸부림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 글은 <메두사의 웃음> 때문에 썼다. 드디어 페미니스트들의 인용글로만 접하던 엘렌 식수를 만나버렸다. 통째로 밑줄을 다 그어서 그냥 안 긋는 게 낫지 않을까? 거듭 읽고 싶었고 문득 쓰고 싶었다. 끝없는 분열을 쓰면서도 명료해지길 원해 부끄러워하던 내 과거의 글쓰기가 사랑스러워지려했다. 나는 불분명한 채로, (알수없음)의 괄호 속에 묶어놓고, ~인 것 같다로 언어의 끝을 애매하게 흐리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로 판단을 유보시키더라도 글을 써보기로 한다.

묶어두지 않은 채로 쓰기. 존재하기 위해 쓰기. 나 자신을 쓰기. 내 몸을 쓰기.
이미 쓰고 있었지만, 쓰는 사람이 되기.

















“(19) 그대 자신을 글로 써라, 그대 육체의 목소리가 들리게 해야만 한다. 그러면 무의식의 거대한 자원이 분출할 것이다. … 글을 쓴다는 것은 행위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여성에게 자기 고유의 힘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여성과 그 성, 여성과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존재와의 탈-검열화된 관계를 ‘실현’시킬 것이다. 탈-검열화된 관계는 여성에게 여성의 행복, 여성의 기쁨, 여성의 기관들, 봉해진 채로 유지되어 왔던 여성의 거대한 육체적 영역을 되돌려줄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 행위는 여성은 죄인이라는(여자는 매번 모든 것에 대해 유죄이다. 욕망을 가져서 죄, 욕망을 갖지 않아도 죄, 냉담한 죄, 너무 ‘뜨거우’ 죄, 동시에 둘 다가 아닌 죄, 지나치게 어머니인 죄, 충분히 어머니이지 않은 죄, 자식을 둔 죄, 자식을 갖지 못한 죄, 먹을 것을 먹인 죄, 먹이지 않은 죄…) 늘 똑같은 자리만 마련되어 있는 초자아화된 구조에서 여성을 끄집어 내 줄 것이다. ... 반이성적인 무기를 벼루어 가지기 위해 글을 쓰기. 모든 상징 체계 속에서, 모든 정치적 절차 속에서 여성 마음대로, 여성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이해 관계자, 전수자가 되기 위해 글을 쓰기.” - <메두사의 웃음/출구>, 엘렌식수 -

“(443)엘렌식수는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들을, 즉 생각할 수 없는 것/생각되지 않는 것을 글로 표현할 것을 촉구했다. 엘렌식수가 여성 자신의 것이라고 확인한 그러한 종류의 글쓰기(표시하기, 낙서하기, 휘갈겨 쓰기, 메모하기)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항상 변화하는 강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을 내포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엘렌 식수가 남성과 연관시킨 글쓰기는 이른바 축적된 인류의 지혜를 총망라한다. 남성적 글쓰기는 사회의 공식적 승인 도장을 받았기 때문에 너무나 큰 책임을 지고 있어서 변화하거나 이동할 수 없다. -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을 자신을 아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에서 나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어떤 대상과의 동일시인 정체성(正體性, identity),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거나 부정되는 당파성(partiality, 당파성은 영어 표현 그대로 부분성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적 주체로서 유목성,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위치성(positioning), 글과 글쓴이와 독자 사이의 사회정치적 맥락 상황, 흔히 성찰로 번역되는 재귀성……. 이 책을 읽으면서 위의 개념들을 떠올리면 가성비 높은 독서가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나는 협상과 성찰의 산물이지 외부의 규정이어서는 안 되므로/아니므로 우리는 늘 생각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글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알라딘 eBook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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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4-27 1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쓰기의 시작지점에서 이 수준이라면 1년쯤 뒤에는 거장 되겠네?

공쟝쟝 2021-04-27 12:30   좋아요 2 | URL
이웃님의 읽는 스타일을 들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글쓰기란 무엇인가.

새파랑 2021-04-27 1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왠만한 에세이 보다 더 재미있고 잘 쓰신 것 같아요 ㅎㅎ
무엇보다 최은영 작가님에 관심이 가네요 ^^

공쟝쟝 2021-04-27 13:09   좋아요 3 | URL
ㅠㅠ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과몰입...하기 때문에 아주 조심히 읽고 또 가끔 그리워 빼들어 한 줄만 읽고 덮어요.... 정말 제게는 유해한 최은영님... 사랑합니다.. (댓글에다 대고 또 고백해...)

단발머리 2021-04-27 1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무 일 없이 누워서 읽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메모, 기록들, 짧은 일기, 긴 일기, 핸드폰 속까지 삭삭 뒤져서 ‘쓰는‘ 쟝쟝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전해주세요. 진지한 독자, 집중해서 듣는 쟝쟝님의 독자가 될께요!!!

공쟝쟝 2021-04-27 13:12   좋아요 2 | URL
단발님...................... 최고다....... 제가 방사형으로 쏟아낸 이 글에서 제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제대로 캐치해버리시다니 ㅜㅜ 나 이런 독자 가진 쓰는 사람인거야??? (행복해서 운다) ....... 맞아요. 저. 흩어져있는 그 것들 표현인지도 몰랐던 그 부스러기들이 식수가 말하는 여성의 글쓰기였다는 거 보고 심장이 짜릿해서 이거 썼어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덥썩... 단발님 사랑해 ㅜㅜ

단발머리 2021-04-27 14:35   좋아요 3 | URL
아이러브유! 😍😍😍😍😍😍😍😍😍😍😍😍😍😍

모나리자 2021-04-27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부터(뒤늦게)ㅎ 정희진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인용하신 문장을 보니 책에서 느꼈던 그분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공쟝쟝 2021-04-28 18:49   좋아요 2 | URL
정희진슨샌님을 좋아하신다면, 모나리자님은 인생의 단짠을 즐길줄 아시는 분이라 생각되옵니다. 절절하게 함께 읽어요!!

라파엘 2021-04-27 15: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는 제가 보고 배워야 할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쓰는 사람으로서 읽는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쟝쟝 2021-04-28 18:56   좋아요 2 | URL
라파엘님 반갑습니다. 알라딘 서재라는 곳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지 않나요? 사실 책벌레라는 종족은 한반에 많아야 두명 정도였던 희귀종족이기도 해서... 저는 이 날까지 책읽는 친구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요.. 뒤늦게 알게된 이곳은 읽고 또 쓰는 것에 너무 진심이고 독려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붕붕툐툐 2021-04-27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출판은 언제 하시는 거예요? 그거죠? 그거 맞죠? 책 낼려고 회사 그만 두신 거잖아요~🙆

공쟝쟝 2021-04-28 18:58   좋아요 2 | URL
이제 진심으로 써보려고 하는 새싹에게 책이라니....(하지만 어마어마한 칭찬이라 몸둘바를 모르겠다) 😝 회사는 힘들어서 그만 둔거예요. 오늘도 알차게 놀았답니당!!! 깔깔

scott 2021-04-27 2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고로케 3개 이상 먹는 1人

일단 요기에
공장쟝님 출간 예정작
예약 축하 꽃다발 놓고감
 〃∩ ∧_∧
 ⊂⌒( ・ω・)
  \_ っ💐c

공쟝쟝 2021-04-28 19:00   좋아요 2 | URL
얽, 고양이가 꽃을 놓고 갔네? 두리번 두리번~ 줍줍!! 🪴화분에 심어서 잘 키워봐야지 ^^

Vita 2021-04-28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멋진 이 사람들. 치킨 먹으면서 어떻게 그런 심오한 이야기를 마구 나눌 수 있었던 거죠. 아 치킨 모임 못간 1인은 웁니다. 쟝쟝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아침이야. 은둔 생활 당분간 지속하면서 다음번 치킨 모임에는 꼭 불러주셔요.

공쟝쟝 2021-04-28 19:01   좋아요 1 | URL
은둔생활 중인데 왜 또 이번주만 약속 세개 됐지?.... ( 저 은둔 지겨워 졌나봐요... 악.. 앙대..)
 

마지막날 하루 전이니까 써볼까. 올해 배운 것.

새로 적응한 직장에서 나를 제대로 먹여살리는 법을 배웠다. 지독한 야근을 소화하면서도 아침엔 1분의 지각도 용납치 않는 방법. 먹고만 사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일과 일을 위한 휴식을 위해서만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

코로나 덕에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는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생각보다 내향형 인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좋긴했지만, 계속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가 제일 편하고 편한게 좋다. 신기한 건 내게 남겨둘 관계만 남겨도 내 인생은 제법 풍족하게 만날 사람들이 있었다. 고마웠다.

고양이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내 공간에서 나는 생각 보다 청소기를 자주 돌리고, 집을 위해 사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

대체로 업무스트레스와 회사에서의 진상을 견디느라 너무너무 힘들었다. 견디고 나니 견디길 잘한 것 같긴 한데 그렇게까지 견딜 필요가 있었을까? 는 여전한 물음표다. 물론 견뎌서 갚을 할부가 많았다. 불안하기도 싫었고. 일을 제대로 익혀 앞으로 30년은 먹고 살 자립의 토대를 쌓아야했다. 솔직히 힘들 줄은 알았는 데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해야했다. 나에게만 힘든거라면 너무 억울해서 내면이 망가질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매일 마주보는 게 특히 괴로웠다. 아무리 괴롭다고 진상은 되지 말아야지. 반면교사.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힘듦에 모조리 잡아먹히지 않을 지성을 갖추는 일이었다. 부족하나마 책읽기와 글쓰기는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잘했지 싶다.

그러고 보니 어찌되었든 어느 선에서는 피아가 확실 한 게 좋아.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이 혼재되어 다 삼키러 버둥대던 날들이 생각난다. 아직 그 습관을 버리지는 못했다. 절대적으로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휴식할 자기만의 방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배겨내지 못하는 인간임을 배웠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건강한 루틴을 (달리기나 요가 등 운동)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문제는 저녁이 없는 삶이라는 나의 계급이었는 데, 집에만 오면 매일 혼절할 정도로 힘들었던 나는 (심지어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하는 날들이 태반이었다) 악착같이 겨우 쌓아 놓은 운동 루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야근 일정에 무너질 때마다 깊은 빡침을 느꼈다. 그리고 빡치기 싫어서, 그러다 일이 싫어질 것 같아서 부러 루틴을 만들지 않는(?) 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몸이 나빠지는 기분은 좋지 않지만 게으르고 또 게으르게 늘어져있는 시간은 달콤하다. 올해 해본 것들 중 특히 달리기는 의외로 너무 좋았다. 요가도 항상 너무 좋았지만, 달리기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당분간은 달리기.

*

올해의 소설은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 아아... 너무 좋아! (꼭끌어안기)


올해의 에세이는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되게 천천히, 틈틈히 다 읽어냈는 데, 철학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올해의 페미니즘 책은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을 때는 몰랐는 데, 결산하는 시점에서 지나고 보니 가장 생각이 많이 바뀐 건 요책인 듯. 
물론 다른 책들도 다 너무 좋았다. 두번째에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꼽고 싶다.

*

참, 두달에 한번씩 서울에 오는 엄마와 함께 좀비물을 몰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가 이토록 좀비물을 좋아할 줄이야ㅋㅋㅋ 킹덤에 월드워Z에....워킹데드 시즌2까지 달리다 말았는 데, 이번엔 집에 오자마자 시즌3보자고 해서, 잠시만 진정시키고... 크리스마스엔 스위트 홈을 봤다. 무서웠다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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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30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스위트홈 제목만 들어봤지 무서운건지 몰랐어요. 헐... 나도 볼까. 킹덤만큼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ㅋㅋㅋㅋㅋ

올해도 열심히 살았어요, 쟝님. 장해요. 대견합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티끌같은 나가 쟝님의 올해의 소설이라니 너무 좋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내가 좋지? 내가 쓴 소설도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론적으로 쟝님이 밑에 링크해둔 책 네 권을 내가 다 읽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우리 부산 만남이 너무 좋았거든요. 바다 앞에 자리한 곳에서 다같이 먹고 마시면서 수다 떨고 음악 듣고 노래 부르고 그랬던 거. 내년에도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헷.

연말 잘 마무리해요, 쟝님. 소중한 쟝님!
:)

공쟝쟝 2020-12-30 09:49   좋아요 2 | URL
아 하고 싶은 말 많은데 스위트홈은요 킹덤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여성캐릭터들이 아주 아주 아주우우우 칭찬해 ㅋㅋㅋ 남캐다 때려잡습니다 ㅋㅋ

공쟝쟝 2020-12-30 21:27   좋아요 1 | URL
저두 올해 생각하면 그 기억이 너무 소중해요.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티끌 같은 나도 요!! 내년에도 많이 읽구 함께 나눠요, 소중한 그대🥰

잠자냥 2020-12-30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끌 같은 나> 올해 가장 좋은 책이었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0-12-30 21:28   좋아요 2 | URL
꼭 끌어안고 눈물을 적신다...! 이거 올해의 소설이라고 말하려고 출근하면서 페이퍼썼어여. 잠자냥 독서가님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해에는 쟝쟝님한테 저녁을 돌려죠라 회사야... 저는 오히려 진상이 되는 법을 익힌 한 해 같아서 떫떠름 한데 어쨌거나 지지 말고 잘 살아봅시다 ㅠㅠ

공쟝쟝 2020-12-30 21:29   좋아요 1 | URL
진상이 되기도 하고 밥상이 될때도 있고...! 반님 만나서 독서욕(만) 가득한 2020이었어요. 우리 내년엔 더 돈독해지구 공감 독서생활이어나가요~! 새해복😊

syo 2020-12-30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경의 터널을 지나온 쟝쟝님 앞에 펼쳐질 2021년이 기대된다!

공쟝쟝 2020-12-30 21:30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기대는 독서가님, 내년에는 시간을 확보하여 철학입문에 도전합니다. 지도편달 부탁합니다.

비연 2020-12-30 1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애썼어요.. 올 한 해 잘 버텨낸 쟝쟝님, 멋짐~
내년에는 좀더 쟝쟝님에게 집중하며 남에게서 받는 나쁜 에너지 따윈 확 물리치며
당당히 살아나가는 쟝쟝님의 ‘더없이 멋진‘ 2021년이 되길 바래요^^

공쟝쟝 2020-12-30 21:32   좋아요 1 | URL
자주 지지만 결론적으로는 당당하게! 내년에는 추천해주신 김승섭 작가님을 비롯해 미미여사까지 독파하는 소설 독서가로 거듭나 볼테다! 비연님 만나서 좋았던 한해였어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라로 2020-12-30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멋지십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이 한 페이지에서 많이 배웠어요!!
<티끌 같은 나>는 예전 좋아한다고 올리신 글 읽고 찜했는데 잊고 있었어요. 😢 이 글로 당장 구매하겠어요!! 그 다음 글 쓰시면 그 때 읽게 될테니 (😓) 이 책에 대한 글 더 써주세요. 😅😅😅

공쟝쟝 2020-12-30 21:42   좋아요 0 | URL
으헤헤 사시면 그 책의 맞춤한 판형과 디자인 때문에 바로 거들떠 보실 겁니다. 내년에는 부디 더 많은 책으로 더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기를! 한 해동안 고생많으셨고, 내년에도 함께 읽어요 ^.^

Vita 2020-12-30 1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티끌 같은 나_ 그렇게 좋은 거야? 그런 거야? 아 그러면 사서 읽어야지!! 그리고 쟝쟝님, 웃는 게 예뻐.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진짜로 만나기 전에는 웃는 모습 보기 전까지는 몰랐지요. 내년에는 회사 가지 마요. 하고 싶어진다. 자주 웃고 책도 막 읽고 행복한 새해 되어요. 철학공부 까짓 거 해버렷!!!

공쟝쟝 2020-12-30 21:44   좋아요 1 | URL
실업급여 받을 때 까지만 존버하자고 오늘 방금 도원결의 했어요. 조만간 퇴사하고 탱자탱자 놀면서 하하하 웃으며 철학도 읽을래여~!! 수연님 만나서 저에게도 얼마나 의미있는 한 해 였게요:) 내년에도 많은 읽기와 삶나눔 부탁드려요😍

붕붕툐툐 2020-12-30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공감 가득 구절이 넘치는 일년 결산이네용~ 소중하게 품으신 책을 읽고 싶은 책장에 살포시 넣어놓습니다. 지금의 고생은 30년간 편하게 먹고 사시는 토대가 될거라는 어설픈 위로 놓고 갑니다~

공쟝쟝 2020-12-30 21:45   좋아요 0 | URL
툐툐님 어랫만이예요! 어설프지 않고 강력한 위로였나니!!! 내년에도 바지런히 허락되는 안에서 읽고 써요 우리 ^.^ 새해복많이받으셔요 :)

:Dora 2020-12-30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근은 넘넘 시러용 한해 수고ㅠ많으셨습니당

공쟝쟝 2020-12-30 21:47   좋아요 1 | URL
넘넘 싫어요 ㅠㅠ 그치만 일을 못하니까 흑흑흑! 내년엔 좀 더 나아지려고 올해 야근 다 몰아서 해버렸어요! 도라님두 한 해 고생 많으셨구!! 해피뉴여~~~~!!😌

단발머리 2020-12-30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티끌 같은 나> 읽어보려구요. 올 한 해 우리 쟝쟝님 너무너무너무너무 수고많았어요.
고생한 만큼 좋은 기술, 고급 기술 많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흥해라, 쟝쟝님! 열어라, 도서관!!

잠자냥 2020-12-30 17:34   좋아요 1 | URL
<티끌 같은 나>는 꼭 읽으셔야 합니다. 저의 올해의 책!!!

단발머리 2020-12-30 17:39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올해의 책 <문체 연습> 아니었던가요?!? @@ 궁금궁금

잠자냥 2020-12-30 18:19   좋아요 1 | URL
그건 하반기 올해의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티끌>은 2020년 전체!

단발머리 2020-12-30 18:21   좋아요 2 | URL
<문체 연습> 준비해둔 단발머리는 터벅터벅 <티끌 같은 나>에게로 갑니다.

잠자냥 2020-12-30 18:2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안 그래도 저 댓글 달면서 단발머리 님이 저렇게 물으실 거 같았어요. 예리한 분 같으니라구 ㅋㅋㅋㅋ 저도 곧 2020 하반기 책 정리 포스팅을 올리겠습니닷!

단발머리 2020-12-30 18:26   좋아요 0 | URL
예리한 단발머리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아, 기대된다!!!!! 🤭

공쟝쟝 2020-12-30 21:49   좋아요 0 | URL
저도 함께 잠자냥님의 페이퍼를 기다리며!! 그대의 따뜻한 댓글이 종종 게을리 쓰는 저에게 어찌나 큰 동력이 되었던지! 방학이 없었던 올 한해, 고생 정말 많으셨구..! 내년에도 우리 함께 책 이야기 나눠요. 제가 서재에서 건져올린 보물들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단발님! 새해복😊

scott 2020-12-31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장장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복주머니 하나 놓고 가여 ㅋㅋ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공쟝쟝 2020-12-31 20:58   좋아요 1 | URL
귀여운 복주머니 덥썩~>.< 스콧임두 새해복많이 받으세용!

2020-12-31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rasibaya 2021-01-14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끌 같은 나를 번역한 승주연입니다. 번역하는 동안 솔직히 저만 재미있는 걸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서평도 잘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공쟝쟝 2021-01-15 18:36   좋아요 0 | URL
역자님 좋은 책이었어요 ^.^ 토카레바 책 또 나오면 찾아볼게요!! 제가 영업많이 했어요 ㅋㅋㅋㅋㅋ
 

지난 주에는 블레이드 러너를 1983년~2017년 것 까지 쭉 (중간중간 프리퀄 단편들까지 전부다)정주행했다. 미래를 다루는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주얼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있는 데다, 내용적으로도 생각할 것들이 많으니까. 대부분 영화들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넘치긴 하지. 리들리 스콧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83년판 블레이드 러너도 좋았지만(기억에 진하게 남는 것은 역쉬 룻거 하우어의 연기였다), 드니 빌뇌브가 감독한 2049가 던지는 질문들이 더 흥미로웠다. 영화에 대해서 쉼 없이 수다 떨고 싶지만, 오늘 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고...















1983년에 그리는 2019년의 모습, 2017년에 그리는 2049년의 모습.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것은 그대로이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소재는 레플리칸트(안드로이드 인간)인데, 두 영화 모두 남성형 레플리칸트는 전쟁용, 노동용으로 쓰이고 여성형 레플리칸트는 전투용으로도 개발되지만 대부분 성판매용으로 생산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존재하고 우주의 식민지가 개척되는 된다하여도, 계급이 그대로고 차별(인간-레플리칸트)도 그대로인 미래의 인류는..... 당연히(!) 기어코(!) 성판매용 복제인간을 만들버린 것이다! 미래에서도 돈이 없는 인간들은 복제 인간을 살 여력이 없으므로, 대신 AI와 사랑을(아,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래 사랑이라고 넘어갑시다)나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엄청 많지만, 지금은 또 그걸 더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여튼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레플리칸트 안에서의 ‘재생산(출산)’문제였으니... 아, 재생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의 인류가 또 다른 인류인 레플리칸트를 박해하고 혐오하고 차별할 수 있는 근거이며, 레플리칸드들이 바라마지 않는 기적인 것이며, 현실에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엄청나게 논쟁한 그것이었고, 오늘날 저출생이라는 전사회적 문제인 것일 지니....


 “(92-9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들이 교육적·법적·정치적 평등을 얼마나 획득하든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공적 산업에 투입되든지 간에 자연 재생산이 규칙으로 남아있고 인공적인 또는 보조적인 재생산이 예외로 남는 한, 여성들에게 근본적인 것은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출산의 기쁨은 가부장적인 신화다... 더군다나 자연 재생산은 더 많은 악의 근원이고, 특히 인간들 사이에 적개심과 질투의 감정들을 야기하는 소유욕이라는 악덕의 근원이라고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말했다... 그녀는 소유욕이라는 악덕, 즉 한 아이가 자신의 자궁 혹은 정자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선호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구분적 위계질서를 종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극복해야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마지 피어시는 그녀의 공상과학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마지막 주장을 발전시켜 나갔다. 마지 피어시는 급진주의 문화 페미니스트였지만, 여성이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면 인공 재생산이 여성과 사회에 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여성들이 출산의 힘에 대한 독점을 포기한 결과로 본래의 힘과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파괴되었고, 마타포이셋 주민은 모두 자신들이 선악, 고저, 강약, 그리고 특히 지배-종속의 위계질서적 개념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재구성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유토피아가 마르크스주의적 유토피아보다 더 급진적인 이유는,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정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단위로서의 가정도 제거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유 재산도 사적인 자녀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렇다. 난 파이어스톤이 명쾌해서 좋다.
재생산이여, 소유욕이라는 악덕이여. 


2049에서 레플리칸트인 주인공 K(는 남성형이다)에게 돌봄과 보살핌, 애정을 제공하는 것은 홀로그램 AI인데, 이 인공지능 홀로그램은 대량생산 되고 판매되고 있다. 상품의 이름은 JOY인데, 고객님의 취향에 맞추어서 옷을 갈아입긴 하지만 광고는 헐벗은 채인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한다. K는 진심으로 조이를 좋아한다. 케이에게 접근하는 성판매 레플리칸트인 마리에트(꺅!! 이 역할은 우리의 맥켄지 데이비스다)도 당연 여성형이다. 그러타... 페미니즘이 없는 미래의 SF영화의 설정은 이러하였다. (복제인간과 AI마저도 여성의 성은 착취 당한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행하고 있는 현재의 반영일 수 밖에 없으니, 이렇게 그릴 수 밖에 없으리란 걸 안다. (난 그래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가 너무 좋다... 흑흑...!!!)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있는 미래는 어떨까.

페미니스트들이 쓴 미래(혹은 과거)와 관련된 소설들을 몇 편 읽긴 했었다. 시녀이야기, 허랜드, 읽다 말긴 했지만 이갈리아의 딸들 등등. 그와 궤가 조금 달랐던 페미니즘 소설에 책에 언급된 ‘시간의 경계에선 여자’가 있었다. 유토피아인데 조금 더 페미니즘적으로 구체화되었다고나 할까. 

1970년대 가난한 이혼녀인 코니는 정신병동안 갇혀서 2137년에서 신호를 보내는 루시엔테(미래의 인류)와 접속한다. 코니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미래인인 루시엔테가 되묻는 현재에 대한 질문들도 되게 재밌다. 이를테면

“(1권 95) 루시엔테는 극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 ‘음 당신들이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사람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게 일반적이었나요? 아니면 혹시 그게 노예제도예요? 당신 시대쯤엔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루시엔테는 성매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노예제냐고 물어본다...
흑....

“(95) 아. 섹스와 관련된 것이군요. 성매매? 책에서도 봤고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몸을 파는 사람에 대한 드라마도 본 적 있어요!”

아, 성매매를 역사 책으로 배운 미래인이여...
미래인들의 사랑에 소유욕은 없다. 그 까닭은.

“(164) 그건 여성들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개혁의 결과였어요. 오랜 계급제도를 전부무너뜨릴 때였죠. 우리가 누렸던 유일한 권력이지만 마침내 역시나 포기해야 할 게 남아 있었어요. 그 대신 누구에게도 더 큰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죠. 그건 바로 생산의 원천인 출산의 권력이었어요. 생물학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동등해 질 수 없어요. 그리고 남성들도 결코 다정하게 사랑을 베푸는 인간으로 교화될 리 없고요. 그래서 우린 누구나 어머니가 될 수 있게 하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전부 어머니가 셋이예요. 지나치게 긴밀한 유대감을 깨뜨리기 위해서죠.”

미래의 여성들은 출산의 권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모성’을 정립했다.(참고로 미래세계에서 이 모성은 생물학적 남성들도 가지고 있다. 성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기도 하지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코니는 묻는다. 아이에게 젖을 물려본 적 없고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고, 모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미래인들이 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코니는 자신이 때렸던 딸을 생각한다. 

“(165) 앤젤리나, 나같은 어머니가 셋이었다면, ... 너는 이미 죽었겠지.”

울컥!!
......
여러모로 할 말이 없어지는 장면이어서..
밑줄을 그어놨었다...


또 미래인들은 아래와 같이 지낸다.

“(2권 35) 우리는 자기방어 훈련을 받아요. 서로를 존중하는 훈련도 받고요. 기록을 읽은 적은 있지만 나는 실제 강간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건.... 우리가 보기에 특히나 끔찍한 일이에요. 역겨워요. 식인 습성처럼. 현재도 일어나고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건 알지만 믿기지 않아요.”

“(107) 우리의 존엄성은 일에서 나오죠. 누구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거 눈치 못챘어요? 로맨스, 섹스, 출산, 아이, 당신을 구속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여자들의 일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의 몫이죠.”


성역할이 해체되고, 빈부의 격차도 해소되고, 육아와 출산을 모든 공동체가 함께하며, 가장 사적인 문제가 가장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곳.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미래의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도 반전은 있고(반전은 누군가 이 소설을 읽을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기로), 무엇보다 미래인들은 이미 우리가 망쳐놓은 지구의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더란다. 헐.. 너무 그럴듯한 설정이다..... 미래의 인류여, 미안해.. ㅜㅜ 우리가 만들 유토피아는 아무리 그게 유토피아라도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 일거라고 뭔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102) ‘더 갖고 싶다고 바란 적은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좀 더 생산성이 좋아져서 과거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에너지를 덜 쏟아붓게 되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즐겁고 기쁨을 주는 물건들을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더 투입할 거예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여기까지는 마지 피어시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페미니즘 유토피아이고, (미래인들이 그리는 재생산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예술, 사랑, 연애, 노동과 죽음에 대한 태도도 즐겁게 읽었다. 절판된 책이긴 하지만, 구해서 읽어보면 좋을 듯.) 책을 읽는 나는 오오- 하면서 신났더랬다. 아, 그렇구나. 페미니즘이 그리는 미래는 이러하구나! 그 미래 왔으면 참 좋겠다!! 하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급진주의 문화페미니스들은 이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96)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의존하는 유일한 자원을 여성이 포기한다면 여성의 억압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지자 알 히브리는... 인공재생산은 남성들이 번식하기 위해 여성에게 ‘굴욕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게’ 한다. 즉 재생산 기술은 여성을 해방하기는커녕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재생산 기술은 남성들에게 여성의 참여 없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이부분 읽는 데........ 급 소름 돋았다.    
아, 그러네? 성적억압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재생산마저 여성의 일이 아니라면, 정말 여성은 대상화된 섹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아, 그것 마저도 성노동에 최적화된 레플리칸트가 대신할테니까.... 여성 쓸모가 없고, 그냥 사라지겠구나... 안녕, 여성이여. 우리는 이렇게 멸종할 종족이었구나, ... 굿빠이.... .... 
.......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감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지금에 빗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면 역시나 디스토피아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뭐 주절 주절 썼는데, 여성들의 성과 재생산에 관해 아직 말해지지 않은 담론들 너무나 많고, 미래를 다 꿰뚫고 있는 것 같은 SF대작 영화들도 페미니즘을 흡수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요즘 계속 나오는 것 같긴 한데, 부족해!! 그리고 납작해!!!!)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미 치열하게 논쟁하셨던 페미니스트들의 교차하는 관점들을 읽고 있자니.
너무... 굉장해!! 대단해!!!

요지는,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많아서 어떡한담.
행복한 데.......
글쓰는 동안 월요일이 돼서 안행복해졌다.. 금새...


오지않은 미래는 다음에 걱정하고, 일단은 월요일의 노동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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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0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1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09-21 07:56   좋아요 1 | URL
리들리 스콧, 니가 임신에 대해 뭘알아!! 빼액!! 마지피어시의 소설은 도서관에서 교차대출로 겨우 구해 읽었어요. 소설속 미래인들이 상당히 목가적이고 평온해섴ㅋㅋㅋㅋ 좋았는 데, 그걸 현실 문법에 옮겨 놓으니 살벌한 주장이 되더라고요 ㅋㅋ (출산을 기계로 대체하자) 그것이 선택 가능하려면 ... 먼저 콘돔부터 잘쓰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멀리갈 필요 없다, 예, 뭐 그거죠. ㅋㅋ

2020-09-21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9-21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 너머의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네요. 맙소사, 2020년이라니...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이나 현재나 미래가, 내가 보기엔 서로 너무 비슷한거 같아요. 어차피 여자는 주인공이 아니고... ㅠㅠ
블레이드 러너부터 마지 피어시 소설까지 새롭게 읽고 갑니다. 읽는 맛의 대가 공쟝쟝님 출근 잘해요!!!!

공쟝쟝 2020-09-21 07:44   좋아요 0 | URL
83년의 인류는 2019년의 인류가 마스크쓰고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며 sns를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듯해요 ㅋㅋㅋㅋㅋ 소유에 기반한 사랑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더 많은 텍스트가 필요해졌어요. 단발님 추천해주세요~~~ 안토니아스라인 부터 봐야하나요??ㅋㅋㅋ

Vita 2020-09-21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_ 읽어야지 했는데 쟝쟝님은 주말 쓩쓩 읽고 계셨군요. 오늘은 월요일, 그대는 이미 출근을 하고 있을지도...... 일교차 심한데 따뜻하게 잘 껴입고 나갔을까?! 감기 조심! 읽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하면 되는데!! 걱정하지 말자요!

공쟝쟝 2020-09-21 08:00   좋아요 0 | URL
책은 작년 여름에 읽었는 데... 페교관에서 언급되길래.. 주말의 나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중국무협영화 두편을 보고ㅋㅋㅋ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열심히 읽다가 ㅋㅋㅋ 장강명 신간 에세이를 읽다가 ㅋㅋㅋ 급 비숲을 보고 밀린 문명특급을 보고ㅋㅋㅋㅋ 아침에 출근하려고 거울보니 눈알에 핏줄이 터져있었다..? ㅠㅠ (tmi 대방출ㅋㅋㅋ) 아 오늘부터 추석까지... 손꼽아..기다립니다...

비연 2020-09-21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조용히 열심히 읽고 계시는군요. 오늘 출근도 홧팅..

공쟝쟝 2020-09-21 10:51   좋아요 0 | URL
출근해서 댓글 달기 시전중. 오늘부터 진짜 열심히 읽을거예욘.

다락방 2020-09-2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레이드 러너가 저런 거였어요? 뱀파이어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우리가 함께 읽은 책 [여자는 인질이다]에도 언급되잖아요. 저는 sf 잘 못읽어서 읽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미뤄뒀는데, 오늘 쟝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쟝님이 말한것처럼 정말 읽을 책이 많아요!! 언제 다 읽죠?

아무튼 남은 부분도 열심히 읽고 써요, 쟝님. 화이팅!

공쟝쟝 2020-09-21 10:58   좋아요 0 | URL
블레이드 러너..... 그러고 보니 이름만 봐서는 ㅋㅋㅋ 그런느낌이댜ㅋ 저는 공각기동대 이런거 좋아해서, 블레이드러너도 재밌었어요. 사실 2049를 제대로 보고 싶어 앞시리즈 부득불 보긴 했지만,,,, 의외로 재미써서 책도 읽어볼까 싶음...

맞아요, 시간의~는 여자는 인질이다 보면서 함께 읽었었어요. (아, 옛날이여. 왤케 까마득하게 느껴지죠?) 책을 읽다보면 점점 더 읽고 싶어져서 큰일이예요... ㅜㅜ 근데 또 너무 행복하고. 저 어제 깔깔거리면서(아는 부분 나올때마다 너무좋아서) 교차하는 페미니즘 읽다가.. 밤되서 놀랐잖아여..... 독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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