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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삶 - 애도의 힘과 폭력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윤조원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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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고통받는 것은 겸손과 취약함의 경험, 감수성과 의존성의 경험을 자아낼 수 있고, 이런 점을 우리가 너무 빨리 “해소”하려고 하지 않을 때 자산이 될 수 있다. 그것에 힘입어 우리는 전쟁에 대한 정당화를 무한정 재생산하는 편집증적 희생자 노릇에 반대하고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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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1-14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도도, 문제화도 되지 않은 그 시절의 첨예한 쟁점들이 결국 오늘 날의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닐런지. 매 챕터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얼마나 간절하게 어떤 목소리들을 붙잡아 세우는지 느껴져서 읽는 내내 가슴 아팠다. 그는 치열하게 사유하고 정확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들으려고 해야 들을 수 있고, 읽으려고 해야 읽을 수 있다. 듣고 싶고, 읽고 싶다. 책의 2장을 아주 여러번 읽었다. 버틀러의 사유는 아름답다.

단발머리 2024-11-18 08:50   좋아요 1 | URL
반유대주의 읽다가 반납하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버틀러 사유, 다음번에는 내 책으로 탐구해 보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1-19 06:20   좋아요 1 | URL
ㅋㅋ 아 반유대주의!! 제가 그걸 알라딘에 머리단발님 이라는 분 페이퍼로 배우고 있는데요, 요약의 달인이셔서 그분의 그거면 정ㅋ벅ㅋ
 

이 책을 결제하기 전.... 친구랑 깔깔대면서 말했다.

으악, 가격 사악합니다!

하지만, 미국 공산주의라고요?... 이걸 누가 읽어, 아무리 고닉이라지만…

근데 이걸 내가 읽는다. 바로 내가 ㅋㅋㅋ 읽는다.



읽기 전에 그런 농담도 했다. 솔직히 #비비언고닉 이 너무 잘 써버렸을까 봐 겁이 나여…

그런데...

진짜 우와 씨 우어어. 어나더 레벨이다. 독서 중단 사태에 이르렀음...


“(29) 나의 아버지는 30년간 손에 스팀다리미를 들고 뉴욕시 웨스트 35번 길에 있는 의류 공장에서 선 채로 일했다. 공장주는 삼촌들이었다. 아빠는 노동이었고 삼촌들은 자본이었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고 삼촌들은 시오니스트였다. 그러므로 노동은 사회주의였고 자본은 민족주의였다. 이 등식은 내게 의식 이전에 살과 뼈를 통해 흡수된 모유였다.”

“(40)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샘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만, 우리 세 여자만 남아서 주방 바깥에서 허물어가는 세상을 멀거니 쳐다보며 이 허물어져가는 집에 남아 있었다. 우리 사람들, 우리 민족, 우리의 정치는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고, 사라지거나 떠나버렸고, 짓이겨지고 살해당했다. 히틀러가 우리 세상의 절반을 파괴했고, 이제는 스탈린이 나머지 절반을 파괴했다. 나는 청년 특유의 피 끓는 분노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혼란에 빠져 자포자기 상태였다. 이모는 여전히 열혈 스탈린주의자였다. 매일 밤 우리는 사납게 으르렁댔다.

"거짓말!" 나는 이모에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거짓말에 반역에 살인에. 모스크바에는 미친놈이 앉아 있었던 거라구요!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거기 미친놈이 앉아 있었다구요. 사회 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이모 같은 사람들이 그 세월 동안 이 미친놈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망쳐놓고 또 망쳐놓은 거구요. 러시아 사람들 수백만 명이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공산주의자 수백만 명이 자기 자신과 서로를 배신했다구요!"

"빨갱이 사냥꾼 같으니라구!" 이모가 맞받아쳤다. "넌 아주 고약하고 같잖은 빨갱이 사냥꾼이 됐구나! 루이 고닉은 자기 딸이 빨갱이 사냥꾼이 됐다는 걸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거다!" ”

래디컬 페미니스트 비비언 고닉 슨상림의 문체로 해부되는 그 자신의 이야기와 공산주의자들의 사연 마다마다에서............. 나으 심장은 해체되어 버리고 있다. 나는 비비언 고닉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했지만... 아마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폴 인럽였던 까닭은 그녀가 모태 빨갱이었기.......🥵......


그러고 보면,


우치다 선생, 일본인이 한국 사람한테 막 조선 공산당 가르친다며 서문부터 오지랖... 님이 국가보안법을 아세여?!? 조선 빨갱이 부심에 스크라치… 이러던 게 지난 달이다...


세계는 어디로 왔나요…

오늘 아침의 나는 코민테른 3기 노선의 미국 적용에 밑줄을 치면서............ 겪어본 적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향수와 (2024년의 저 멀리 만국의 프레카리아트는 웁니다.....) 미국 공산당에 대한 애잔함을 느끼며..... 하..... 늼들 텅령 도람푸예여..... 그때 공산당 잘 나갈 때 타협하지 말았어야했....... 어쩌면 그때부터 문제였을지도........ (응???, 그거 아니란다 얘야)......

암튼 저는 바다 건너 비비안 선생님 걱정... 비비언 고닉이시여... 미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죠?......

울고 계신 건 아니죠?.....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오래오래 살아서 노벨문학상 또 받자.

선생님이 받자.

돈은 너네들의 것?

책은 우리들의 것… ㅠㅠㅠㅠ

넘 잘써서 마음아파 독서 중단 사태ㅋㅋㅋ

표지의 뒷부분에 코리 로빈의 추천사는 이러하다 "사회주의자의 내면에 대해 쓴 최고의 책"

추천사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살짝 찡했다. "이 책이 전하는 주제는 단지 미국 공산당만이 아니다. 오히려 횃불 이어가기다. 종착지를 모른 채 앞으로만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세대 전승은 고민거리도 아니겠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에는 세대 전승이야말로 '전부다'"


​나는 희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을... 고닉이 #사회화의감정 이라고 칭하는 그것을 더 낱낱이 해부하고 싶다. 고닉만큼. 아니 고닉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연결되지 않기가 연결되기 보다 수월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말들이 아닌 다른 말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건 싸움이고. 나의 읽고 쓰는 것은 거기를 겨냥하게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건강하게 몸을 단련해야 한다.


다루고자 하는 것이 내 몸에 체현되어 있는 여전히 신경을 갉아먹는 어떤 감정들이니까.
억압하지 않은 채로도. 다룰 수 있을까.


"(36) 당의 기막힌 구조는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을 마르크스주의로 몰고 간 그 맹아적인 감정을 활용했다. 당의 도덕적 권위는 추상성에 형태와 물질성을 부여했고, 그걸로 강력한 인간 경험을 만들어냈다. 당은 사람들의 고양감을 가장 깊이 있는 인간성의 감각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동지애에 경이로운 활력을 부여했고, 이로써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37)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곧 인간화의 가장 경이로운 과정, 한 인간이 어우러짐을 통해 발생하는 과정, 한 인간이 자아를 넘어선 자아 개념을 통해 자기 자신을 경험하고 기강 잡힌 맥락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통해서 자유롭고 전인적이며 독립성을 띠는 과정 중 하나에 참여했다는 뜻이었다. 요컨대 사회화의 감정, 사람들이 고유하고 개별화된 자아가 아니라 공통적이고 축소 불가능한 자아를 통해 스스로를 느끼게 하는 그런 작용력을 가진 감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향해 공산당은 말을 걸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공산당은 가공할 힘을 끌어냈다."


그렇게 깡그리. 어떤 용어(OO주의, OOO즘, 정체성의 정치, 팬덤, 또 뭐뭐머)로 한 단어로 딱 잘라내서 가두고 나만 빠져 나올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가락으로 지적해서 바뀌는 것도 아닐뿐더러. 세상에 불필요한 감정은 없다. 겪었어야 하는 것이라면 이유는 없지만 해석은 필요하다. 그리고 해석은 이어질 필요가 있다. 종착지를 모르는 그것들은 세대 전승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테니까. 


물론 신경전달 물질의 화학작용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이 다 똑같다고 말하면 안된다. 아무거나 막 섞지는 말아줄래.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요컨대 사회화의 감정, 사람들이 고유하고 개별화된 자아가 아니라 공통적이고 축소 불가능한 자아를 통해 스스로를 느끼게 하는 그런 작용력을 가진 감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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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11-12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봐야겠군요.

공쟝쟝 2024-11-12 12:58   좋아요 2 | URL
하 ㅜㅜ 빨겡고닉 못참져!! 저는 알렉셰비치보다 고닉에 박수칩니다. 고닉언니는 중립기어 못박음 ㅋㅋㅋ

단발머리 2024-11-12 13:03   좋아요 4 | URL
참고로.... 중립기어 운운하는 이 사람은...
운전을 못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운전 못 하는 이가 말하는 중립기어의 어떠함...............

유수 2024-11-12 13:32   좋아요 2 | URL
단발님 제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ㅋㅋㅋㅋㅋㅋ중립기어 어떠한가..
중립기어 많이 망가진 단어가 된지라 쟝님이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회생복권되었다..고 할게요!

단발머리 2024-11-12 1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의 나는 코민테른 3기 노선의 미국 적용에 밑줄을 치면서............ 겪어본 적 없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향수와 (2024년의 저 멀리 만국의 프레카리아트는 웁니다.....) 미국 공산당에 대한 애잔함을 느끼며..... 하..... 늼들 텅령 도람푸예여..... 그때 공산당 잘 나갈 때 타협하지 말았어야했....... 어쩌면 그때부터 문제였을지도........ (응???, 그거 아니란다 얘야)......

이 문단 너무 웃긴데 너무 잘 썼다!

공쟝쟝 2024-11-12 12: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때 싹 해먹엇으면 ㅋㅋㅋㅋㅋㅋㅋ 한국전쟁도 없고요? ㅋㅋㅋㅋ (막나간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11-12 13:02   좋아요 0 | URL
진짜 막 나가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회주의 실패했다고! 이미ㅋㅋㅋㅋㅋ 거대한 실험 실패했다니깐요!
왜 인정을 안 하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1-12 13:03   좋아요 0 | URL
우리의 횃불은 꺼지지 않는당!! 😤 흥!!!

단발머리 2024-11-12 13:03   좋아요 0 | URL
자중 바랍니다. 이러다 우크라이나전 참전하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공쟝쟝 2024-11-12 13:0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탈근대의 관점에서 서구를 패자니 나의 케이는 서구에 과잉 충성하고 ㅋㅋㅋㅋ 서구 인텔리들은 마오이즘 어쩔건뎈ㅋㅋㅋㅋ (ㅋㅋㅋㅋ 레닌이랑 마오 사진 붙이고 모임중인 고닉 선생님 나옵니다 ㅋㅋㅋ)

건수하 2024-11-12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에는 세대 전승이야말로 ‘전부다‘

좀 우울한데요... 근데 인정 안할 수가 없다...

공쟝쟝 2024-11-12 13:20   좋아요 1 | URL
가부장제랑 같이 작동하니 페미에 탑승합시다 ㅋㅋㅋㅋ 으아니 근데 페미도 대세는 파이찾는 거라 ㅋㅋㅋ 암튼ㅋㅋㅋ 로맨스는 공산주의도 한다고 헙…

건수하 2024-11-12 13:35   좋아요 2 | URL
얼마면 돼! 했는데 비싸네요....

공쟝쟝 2024-11-12 13:36   좋아요 2 | URL
그쳐그쳐 ㅋㅋㅋ 너무하네 이러면 누가 사보냐고 ㅋㅋㅋㅋㅋ 제목이 공산주의인데 가격은 부르주아여 ㅋㅋ 그래도 충성구매 했습니다! 오월의 봄 흥해라!!

초란공 2024-11-12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새롭게 발견한 고닉 여사입니다. 공쟝쟝님의 글을 보니 이건 사야할 것 같은데요~! ㅋ

공쟝쟝 2024-11-12 23:50   좋아요 0 | URL
역시 눈밝은 초란공님도 알아보는 고닉여사님 이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누가 읽어!!라고 했는데, 맙소사… 읽을 사람 많다ㅋㅋㅋ 의외로 페미니즘 에세이보다 잘 팔릴 지도요? ㅋㅋㅋ
우치다 선생님 ㅋㅋㅋ 남한에도 빨갱이 (밝혀지지 않은) 계보가 잇다!

달자 2024-11-13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고 싶어요..인용 달아주신 부분만 읽었는데도 가슴이 뻐렁치네요.. 이런 책은 이북으로 읽으면 안되고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데 밑줄 좍좍 긁으면서 ㅠㅠ (이북으로 아직 나오지도 않았네요ㅠㅠ)

공쟝쟝 2024-11-13 11:25   좋아요 1 | URL
아 밑줄 진짜 박박 긋고 있어요…. 고닉은 겨우겨우 분홍분홍해진 나를 왜 나의 레드에 왜 불을 지피는가!!! ㅋㅋㅋ 진짜… 넘 좋음요…. ㅠㅠㅠ
정치적 열정에 대한 묘사들이… 고닉 특유의 나를 분리하지 않는 시선이랑 엮이니까… 그냥… 이 사람 너무 치열했고 많이 반성했고, 그래서ㅜ이걸 다 써냈고… 남길 걸 남겼다 싶고… 할말이 넘 많네요!!! 달자님 읽고 싶겠다 ㅠㅠㅠㅠ 힝!!

syo 2024-11-17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가 왔다?! 😤

공쟝쟝 2024-11-17 06:16   좋아요 1 | URL
쇼님이!!! 돌아왓다!!!!! 나으 서양철학마니아는!!! 두구두구두구
 

그러니까 요 책의 인용처럼.
“예술이 요구하는 이 항복은 관대함 혹은 사랑에 가깝다”


잘 쓴 글을 읽을 때 내게 다가오는 그것은 언제나 항복, 투항 백기 들어!🏳️ 뭐 그런 종류인 거다.

이를테면… #아니에르노 의 #집착 페이지 같은.



나는 이런 종류의 메모를 붙여버렸던 것이다.

*“언니의 지성은 과잉이시며, 저는 이런 아니 언니를 ❤️합니다.”*
팬의 일이란 그저 관대해지고 항복하는 것 밖에는 없다.
가끔 그게빡’치기 때문에 예술을 멀리하고 싶을 정도.

그렇지만 그가 아니라면 이런 걸 어떻게 쓰나, 누가 쓰나, 아니가 잘 쓰지 않았다면 옹호 받을 수 있는 감정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감정을 없앨 수도 없고!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은 어쩌면 여성에게 작용해온 오랜 규범 그것들의 결과는 아닐까. 나는 세상에 잘 보이고 싶어서 알아서 스스로 억압했던 게 아닐까. 느끼지 않기 위해 참으며 살아가는 동안 나 역시 상처받았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이런 혼란함과 당혹감이 삶에서 나타나는 것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게 판단을 중지시키는 잘 된 예술…이 해내는 일 아닐까. 그런 질문들을 적으면서

#클레어데더러 #괴물들 

책을 펴자마자 흥분 중.

#언제나투항이쉬운독자의변






예술 작품을 두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항복하는 것보다 더 유혹적인 법이다. 예술이 요구하는 이 항복은 관대함 혹은 사랑에 가깝다. - 셜리 해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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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10-16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니 에르노 좋아하고 원서도 두 개(깨알자랑, 불어판, 영어판) 있지만서도 항상 그 ‘과잉‘에 놀라기는 합니다. 결핍이 아니라 과잉. 그러니깐 예술의 양 극단. 결핍과 과잉...........
제가 읽은 책에 이런 챕터가 있었죠. <‘과잉‘ 유대인>

공쟝쟝 2024-10-17 07:03   좋아요 0 | URL
아 이 이야기 또 천자 만자 쓰고 싶지만 ❤️❤️❤️❤️❤️❤️🥹🥹🥹🥹🥹🥹

2024-10-16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7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10-16 14: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투항 잘 합니다 ㅋㅋㅋ 항복, 백기!!

공쟝쟝 2024-10-17 07:04   좋아요 1 | URL
손들어 꼼짝마!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청아 2024-10-16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 글 스타일이 쟝쟝님 자꾸 떠오르게 함ㅋㅋㅋㅋㅋㅋ
저 지금 100페이지쯤 읽었어요.히히

공쟝쟝 2024-10-17 07:05   좋아요 1 | URL
책 보면서 공쟝쟝을??? 미미님 사랑에 빠졋군요? ㅋㅋ 쟝쟝을 사랑한다 ㅋㅋㅋ
 

원하는 걸 대충 알려주고 때려 맞추라고 하면서, 얼렁뚱땅 다른 관계자들의 핑계를 들어 제 맘을 읽어내라고 하는 클라이언트 즉,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가끔은 그걸 해야 한다. 아니, 언제나 그걸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돈이 나오니까.

서로 만족하는 거래는 거의 환상에 가깝다. 그러나 2024년의 서울에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거래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어떤 (자급의) 능력을 잃었으니까. 이 상황을 삶의 조건의 기본 값으로 놓더라도 지나친 능력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실은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지 않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하는—을 자주 본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나를 잘 책임지고 싶고, 기꺼이 내가 기쁜 돌봄을 나누고 싶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싶지가 않다.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고 싶지 않다” 즉, 교환가치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향유하고 싶다. —대체로 그건 돌봄이고, 노동이고, 작업이고. 즉 기쁨이고 공부인데—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일과 사랑, 목적 자체인. 하지만 사회적 분업의 결과로 우리는 점점 무능하게 되어버렸으니. 화폐로 떼우는 거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자립적이고자 하는 내 나름의 실험(?)들이 오만한 건 아닐까. 고민했었다. 대세를 따라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람에게 기대는 것을 너무 두려워(싫어) 하는 무의식의 발현 아닌가. 문득 오늘. 어떤 능력을 좀 덜어내서라도 외려 다른 능력들을 발달시키는 데에 더 적극적이고 싶었던 거란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실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려고 하는 그런 실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렌트 입문서를 읽다가.)




(아렌트의 '사이')


상호의존(관계)을 화폐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편감이었구나. (만나고 떠나보내온 숱한 가족❤️기업들이 생각나벌임.) 경제공동체인 그들 ‘사이’에서 정치란 가능했을까. 

내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사이’를 좁히는 일이고. 그게 정말로 ‘필요’해지면. 사이.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절박하게 되면 집착하게 되는.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타인과 나눠질 수 없는 영역이 분명있으니. 나의 다른 능력을 발달시켜야지. 그렇지만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는 잘 모른다. 어디까지 내어주고 어디까지 좁히고 어느 만큼 멀어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 

나는 고독을 “구매했어야”했다.

‘사이in-between’의 거리와 공간을 (정치뿐 아니라 삶에서도. 우정에서도. 그녀는 그것을 이론화하고 그것을 지켜보려한 진정한 철학자다!) 강조하는 아렌트가 옳다고 느끼면서도… 어쩜 나는 매번 그 어려움에 (어려움의 이상적임에) 어딘가가 긁힌다. 

착취적인 관계 말고는 자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악귀처럼 들러붙는 어떤 계선 없음은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으며… 혼자보단 하나같은 둘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좋고 기실 고독은… 비싸니까. —‘사이’를 구축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특권 계층이 아닌가— 고독 혹은 사이, 어쩌면 사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물론.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의 개념은 원래 그랬다. (public/private의 구분, 통상적인 구분과는 약간 다르다. 이 글에서 그걸 설명할 순 없고. 쉽게 읽는 한나 아렌트 부제를 달고 나온 나카마사의 이 책을 읽으세염ㅋㅋㅋ) 그리고 그러한 public의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든 ‘사이 없음’이 근대의 폐해고.

생각을 좀 더 벼리고 싶다. 그러려면 ‘사이’(생존과는 상관없는 시간과 공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게도 ‘사이’가 중요해졌고. 매번 긁히면서도 아렌트를 닮고 싶은 까닭이겠지만. 



“(32)이 여성 작가들의 거리 두기―연대보다 고독을 선호하는 성향―는 감동·감정·정서(비록 기술적으로 감정과 정서는 감동과 다르지만)의 사이성을 소거하고자 하는데, 그 여러 다른 이유가 앞으로 각 장에서 기술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의 영역에 머무르면서도 이처럼 감정에 저항하는 태도는 20세기 중반 부상한 각종 진보적 사회운동과도 선을 긋는다. 진보적 사회운동들은 하나같이 정서적 유대와 집단과의 동질성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실천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으로도 거부한 이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지지를 기대했던 집단 내부에서 ‘파리아pariah’(배척당한 사람)로 낙인찍혔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초반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On Revolution》은 시민인권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출간되었고 정치적 삶에서 동정의 “파괴적” 효과를 신중하게 해부했다. (중략) 20세기 후반 사회운동이 공감능력이 갖는 치유의 힘을 연대를 공고하게 만드는 접착제이자 진보 정치학의 목적으로 권장하자, 이 여성 작가들은 반감으로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사회정의라는 목표가 아니라 그리로 가는 길이 문제였다. 독자들로서는 이런 구분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부연하자면, 아렌트 특유의 ‘거리두기=사이’는 ‘공감’을 정치의 원리로 두지 않고자 한다) 

아렌트의 ‘복수성plurality’은 사람들 사이에 ‘사이in-between’라는 공간이 있다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중략) 한나 아렌트의 ‘사이’는 사람과 사람을 심적으로 결부시키는 끈인 동시에 거리를 설정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거리를 설정한다는 것은 물리적 폭력이나 동물적 충동 따위에 의해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매개로 인격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언어에 의해 생겨나는 이 ‘사이’가 사람들의 사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다양성을 낳는 기초를 이룬다.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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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는 일주일 더 해야 한다. 약 하루에 0.15킬로그램씩 증량 중이다ㅋㅋ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병상 일지 페이퍼를 쓰라는 권고를 들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쓰라는 건 안 쓰고. 어제는 쇼파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안착하여 밀린 <눈물의 여왕>시청으로 감정 낭비를… 하느라 그만 지치고 말았다. 


[독서 중독자는 이 책이 뭔 책일지가 궁금하다]


용두리의 엄마 사투리가 넘나 고향 집이 생각나서(워매. 으째야쓰까잉. 엄마……) 즐겁게 보다가 막화에 드라마 속도가 너무 질질… 주인공이 “내 기억이 바로 나”라고 하는 장면들에서 정말 그럴까? 그렇긴 하겠지만. 그것만이 정말 너야? 따지고 들고 싶었다. “나로 살았으니 나로 죽겠다”라는 말. 그 완고한 [‘나’ 임 = 일종의 자긍심]에 대해 인정, 킹정 드리고 싶었지만.


논리적으로… 너에 대한 기억은 네 해마 말고도(몸도 있고). 모두가 나눠서 가지고 있잖아. 그 사람들의 기억들 역시 너라고. 즉 그들과 함께라면 너 자신을 잃어도 아주 다 잃은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살아. (드라마 넘 늘어지쟈냐) 얼렁 뇌종양 수술해. (참고로 여자 주인공 평소에 논리왕 임) 새로 태어나서, 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다 흡수해서 또 너를 만들어 가!


어쩌면 이것은 나의 사춘기 이후 (나름의 심각한 숙고를 거친 관계론적) 세계관이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세계관이 얼마나 나 자신을 무책임하게 방치하게 되는 논리로 수월하게 작용했던지에 대해서 적고 싶진 않다. 즉, 해인은 옳기도 하다. 나는 죽도록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만겠는 사람들에 대해 차츰 차츰 이해하고 싶어져왔다.


다, 다르잖아. 누군가는 영혼을 질식시키느니 가스 오븐에 머리통을 스스로 넣어 질식사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예)


다리 다치고 난 뒤 느닷없는 불안이 우주 통째로 밀려와서 밤에 잠들기 전에 엉엉 울었던 날, 딱 하루 있다. 불안한 건 너무 당연하지. 실컷 울고 나니까 개운해서 푹잤다. 몇 년 전에는 그걸 느끼지 않으려고 술을 잔뜩 마셨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다. 아마, 다쳐서 술을 마실 수도 없었겠지만. 그때에 비해 상황이 딱히 좋아진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의 ‘실체 있는’ 불안을 셈할 수 있을 만큼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니. 역시 지금이 좋아. 가벼운데다 한가하기 까지 한 나는 드라마 속 무언가가 너무도 중요한 해인의 괴로움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았다.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것(남편 이름)을 외우면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 나는 무엇을 잃을 때, 가장 아까우려나.

불러야 할 것 같은 사람 말고 정말로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을까.

머리가 아닌 입술로 외워야 하는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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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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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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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벼움의 증거이며. 관계론 인생관 어쩌고로 살다가 제대로 큰코다친 자의 고독한 최후이다. (😭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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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기 전에 다시 태어날 내게 당부할 것으로 인간의 이름이 아닌 단어를 하나 정해두기로 한다. 체력, 체력, 체력 … 새로 태어난 쟝쟝아 너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야. (*나여, 온 몸에 새겨진 운동 못함 기억*을 상실해 줘.) 다시 태어나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시냅스들은 연결 안돼도 되니까… 근육 좀…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난 운동을 이렇게 못하는가. 왜 신은 내게 몸치, 박치, 음치, 런치를 주셨는 가.



서론이 길었네. 드라마 리뷰 아닙니다. 독후감 맞고요.

매일 쓰는 병상 일지는 좀 무리고 몰아 쓰는


#병상읽기 1.

“(55)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다리 부상으로 정형외과에서 읽기 좋은 책에 #카프카 의 #변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나는 출근을 안 해도 되고, 부모님은 내가 아직 그레고르가 된 것을 모르시며(영원히 모르게 할 계획), 살뜰히 들어둔 보험이 있는 데다, 각자의 *불행 앞에서만* 강해지는 자매애를 지닌 여동생이 둘이나 있다(그녀들은 마치 그레고르의 여동생처럼 청소기를 돌려주고 갔다). 그렇지만 고양이 털들과 먼지는 매일 쌓이는 법이다. 매 끼니는 내가 나에게 해서 먹여야 하는 것이다. 처음엔 확실히 거동이 힘들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든 것은.


“(60) 마침내 그 다리로 그가 원하는 동작에 성공했어도, 그 사이에 다른 다리들이 모조리 해방이나 된 듯이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버둥거렸다.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안 돼.” 그레고르가 혼잣말을 했다.”


ㅋㅋㅋㅋㅋㅋ 아....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이 나의 궁극의 수련 목적인 거시지만. 나는 타고 나기를 <눈물의 여왕> 속 홍해인이 아니라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에 이입하기가 더 수월한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불러보는 그 이름 잠자,냥) 드라마 속 홍해인은 재벌 3세라서 수술 만 받으면 살겠지만…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족 성원에게 닥친 불행을 인식하는 순간 부턴 잠자 씨네처럼 계산 촤륵촤륵 머리 굴리겠지.


- 꼭 살아. 살기만 해.

를 부르짖는 변호사 남편 김수현? 드라마는 판타지다. 로맨스는 판타지여. 즉 바쁜 현대인의 감정을 몰아서 쓰게 끔 잘 설계되어 있단 말. 나는 끊임없이 철철 눈물을 흘리는 두 배우의 절절함에 자동으로 함께 울고 웃는 것에 걸끄러운 나 자신을 의식하며 찔끔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닦아내고 현실로 돌아온다. 왜냐, 우리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찬찬히 느끼면서 곱씹기엔 할 일도 많고 걱정도 많고 사야 할 물건들이 너무 많으시다.


바퀴벌레가 된 *평사원* 그레고르는 일단 출근부터 생각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대출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부장제란 무엇인… 사랑의 공동체인가. 기능의 공동체인가. 카프카는 알고 있다. 가족이 사실은 서로에 대한 명분의 공......읍읍🫢


아들 그레고르는 출근을 해야 했지만. 2024년 출근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들들이. 일자리가 없어요. 아, 그럼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맞추어 자기 계발을 해야죠. 살뜰히 남는 시간에는 투자를. 주식을. 코인을. 돈 벌기 참 쉬운 시절입니다. 부의 파이프라인을 2개 만드세요. 부업으로 자동 수익화를. 여러분 가난은 지능 순이며, 수저 타령은 루저들이나.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모든 것은 여자들이 살만하니까 눈이 높아져서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재벌3세는 나를 잃는 게 싫고, 소설 속 그레고르는 출근 못하는 걸 걱정하고, 현실의 청년 그레고르들은 출근을 하.고.싶.어.서. 걱정일 것이다. 


뭐 그건 이제 여남 상관 없다. *취업 당사자*가 되려면 이미 변신된 그레고르 취급을 받으면서 스펙을 쌓거나, 시험 공부를 하며. 집이 그 처지도 안된다면 똥 값인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경력은 쌓이지 않는다. 숙련이 필요없는 플랫폼의 시절이니까. 키오스크가 대체해서 알바 마저 쉽지 않다. 누구나 투자자가 돼버린 현대사회는 누구나 녹아내린 돈을 복구하기 위해 엔잡을 뛰어야 하는 상황. 나랏님은 대파 값도 모르시니 알아서 각자도생 모두가 경쟁하는 한국은 빨리 빨리. 그런데 정이 많은 한민족 우리에겐 걱정도 참 많고 이 걱정 저 걱정 남눈치 보며 방어하기 위해 사야할 물건들이 특별히 더 많으시다. 바쁜 우리 쉴 때 도 가성비 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다 보면 안된다. 유튜브로 한번에 몰아보기. 


지난 주 수업 마지막 날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 뭔 책을. 왜 (일반인이) 푸코 강좌를? 이렇게 열심히?

대략 이런 대답을 했다.

- 선생님. 저 역시 이런 걸 읽고 싶어 하는 제가 괴짜라고. 뻘짓이라고. 현실 도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걸 하고 있으면. *적어도 다른 걸 덜 해요.* 어려워서… 읽으면 지치거든요. 집중하지 않으면 못 읽고요. 유튜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만 뒤처진 것 같고, 인스타 보고 있으면 뭔가 사야 할 것 같고, 내가 엄청 못나 보이고. 어차피 느낄 자괴감이면 차라리 어려운 책 읽으면서 느끼자 싶더라고요. 다들 각자가 욕망하는 것을 선망/책망하는 구조라면 난 책으로 하겠다. 물론 그것도 책 읽어서 알게 된 거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지금은 좋아요. 읽다보니 남들한테 중요한 것이 나한테는 안 중요해졌어요. 그게 주는 해방감이 있다. 그러니 샘, 더 열심히 공부하셔서. 공부 많이 나눠주셔야 해요. 저는 알 것 같아요. 인문학? 철학?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이 평범한 사람일 수록 더 필요해진 세상 같아요.


#병상읽기 2.


어쩌다 보니 #나카마사마사키 의 책들을 좀 훑어봤는데. 이 사람 문체가 재수 없다. 사람이 뭣도 없이 저렇게 시건방을 떨면 내가 동질감이…읍읍🫢🫢 아니다. 뭐시 있으니까 건방진 것이다. (나는 없지롱 ㅋㅋㅋㅋㅋ 무지의 지가 아니라 무지의 건방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캉. 푸코. 아마추어. 푸하하. 미리미리 나대지 말자고 일러두길 다행. 안 그랬으면 이거 읽고 수치스러워서 냅다 던졌음. 나대는 스스로를 나댄다 알고 있기를 다행인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치고는 행동이 교정이 안된다. 나.는.내.가.기.특.하.단.말.이.다. 옆에 김수현도 없는 데 누가 나를 기특해하나. 나나 나를 기특해... 


또 얼마 전에 주워듣게 된 풍문이 있는 데. 철학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현대 철학은 너무 쉬워서 쳐주지 않는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웅. 헤겔 레스토랑 읽다가 알 것 같아지긴 했다ㅋㅋㅋ너무 쉬운 것도 어려운 나 자신을 인정합니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것이. 내가 아무리 서백남 통째로 재수 없다 씹어도 걔네가 그냥 세계 제패했겠냐고 뭐가 있응께 했겄제. 인정한다니까? 근데 남들이 쳐준다고, 나도 쳐줘야 하는 거냐?? 


제대로 읽은 사람들의 고상함이야 내 알 바 아니고, 각자는 각자의 읽기가 있지. 나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서 달리기 연습을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그걸 이해를 못하더라) 나의 아마추어임은 겸허하게 인정하는 바지만... 그렇다고 겸손해지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 프랑스 철학 쉽게 읽는 사람들은 좀 쉽게 써달라. 나는 내 기량에 맞게 조금씩 더 어려운 것을 긴장하며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 아, 나는 못 읽어. 보단 이 태도가 낫지 않나? 그럼 마저 자뻑을 하면서 일본에서 건너온 입문서들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암튼 철학 꼰대 냄시 철철 나는 나카마사의 <인간의 조건을 읽는 시간>을 읽다가 점점 감탄하게 되어버려서 사람이 궁금해. 마지막 부분 저자 후기 먼저 읽다가 깨닫고 말았다. 나 *이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을 함께 싫어*한다. …… (역시 좋지는 않은 데. 싫지도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동질감을 느끼며.

“(520)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고) 세부 묘사 중에는 이러저러하게 불만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영화 관람이 끝나고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누구의 시점에 동화되고 감정을 이입할까? 거칠게 말해서 세 가지 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아렌트, ② 아이히만, ③ 아렌트를 아이히만의 편이라고 말하면서 비난하는 사람들. 그중 하나가 ‘정답’인 것은 아니다. 다만 무척 확실한 것이 있다. 아무런 의미 없이 ①에 동화하여 ‘감동’해 버리는 사람은 아렌트의 사상과 전혀 무관하다. 아니, 어떤 계기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상가를 만난다면 곧장 ③처럼 행동할 사람들이리라.

이런 질문을 하면 문화연구에 한쪽 발을 들인 바보들 중에 낭패 한 표정으로 이렇게 외치며 뛰쳐나올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니야, 제4의 선택지가 있어. 그건 이 영화도 표상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야. 여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나카마사는 수가 얕다고 해야겠지. 역시 심오한 사상을 이야기할 만한 인사가 못돼!” 영화 자체를 보지 않더라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이런 생각을 트위터에 중얼거리며 낄낄거리는 놈들에게는 듣는 약도 없다. ①에 단순히 동화하는 사람들보다 질이 더 나쁘다.”

그러니까. 나는. 푸하하 나카마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제기랄. 팬심보다 강한 건 *안티의 동질감*이다. 정체성의 정치와 혐오의 쾌락이 (그리고 그게 드러나는 선거 결과가…) 그토록 위험하면서 치명적인 이유다.


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마도 ③번의 시점에 이입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정희진에게 배운 영화를 보는 방식이며. 아렌트와 관련한 책들을 읽을 때 스스로 가장 긁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적 당하는 순간의 부끄러움. 아렌트가 요구하는 끝끝내 사유하기를 중단했던 순간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어쩔 수 없었음. 핑계대고 싶음. 다 그렇게 살아라는 익명성 속에서 책임을 면피하고 싶은 자기 기만. 그리하여 내가 사유하게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음.에 머물러 있다. 현실직시의 어려움에 대한 현실직시일까나. 


#병상읽기 3.


아렌트를 좋아한다. 멋있다. 나와 많이 달라서다. 아렌트를 배우고 싶다.

#사만다로즈힐 은 이렇게 <한나 아렌트 평전>을 마무리 짓는다. 거의 98프로에 가깝게 동의한다.

“(309)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한나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것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나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병상읽기 4.

다시 돌아가서 까먹기 싫어 써두자 싶은 부분이다. (이거 쓰려고 앞의 썰 풀다 보니 엄청 길어짐 🫠)



토요일에는 결국 나카마사의 <현대 철학의 최전선>까지 구매해서 1장을 순.식.간.에 읽고 말았는데. 두둔. 탁월하다. 그래서 더 재섭다. (1장 한정) 롤스의 ‘정의론’으로 뿌리(맥락이랄까) 잡고 논쟁적인 부분들 탁탁 잡아채 정리하는 데. 이해를 명쾌하기가 이를 데가 없네. 와. 정석적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의 노트다.


이런 책의 장점은 왠지 다 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지만… 그게 저자가 제일 싫어하는 읽기 일 게 뻔하지만… (나카마사 아재여, 당신의 빼어난 필력이 자국 내 트이타 날라리 철학 평론 사태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랑가요? 아님 말고ᄏᄏᄏ) 하지만 <OOO의 인생 강의>류의 철학 에세이조차 자기계발 시장에 밀리는 한국의 독서 생태계를 생각하면 이런 본격 인문학 입문서의 독자 시장 층이 형성되어 있는 일본 좀 부럽다.


그만 부럽고 <1장. 정의론 - 공정한 사회의 근거를 둘러싸고>을 읽다가 롤스와 하버마스에 동의가 절대로 안 되는 것이… 나의 당파성에 기인한 것임을 눈치 깠다. (아마 이래서 공부를 못했나 보다. 성질 급한 것도 있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과 학문의 ‘전제’에 동의가 잘 안됨.) 


이들의 (고상한) 주장에 대한 짜증스러움과는 별개로 그분들이 세우고자 하는 체계의 가치와 방향의 의도… 즉, 모종의 절박한 책임감으로서의 세계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인정하게 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언제나 우리의 문제는 [이론+도그마+기득권(옹호 무의식) => 내맞너틀, 내로남불]인 것이다. 그들의 이론을 무전제로 추종(?) 하는 세력들은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물음표를 압살한다. 그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인데, 나더러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므로… 기분이 드러워서 나의 물음표는 결국 ‘권력’으로 가게 되어버린 것도 같아. (여기서 푸코 쉼표, 한번 눌러주기ㅋㅋㅋ)


주체할 수 없는 나이브함과 직관은 내 읽기의 강점이지만. 내가 느끼는 책임감보다는 훨씬 더한 책임감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 세상에 책임질 거라고는 나불대는 내 손가락과 나 자신뿐인 안 겸손한 나는 겨우겨우 겸손을 찔끔 배운다. (나에게도 차릴 체면이 있었으면 좋겠...지않다. 없어 다행.) 그러나 겸손을 배운다고 재수 없는 기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는 나의 이 감정이 곧 지성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책의 54페이지를 가져오겠다.


“(54) (롤스를 포함한 자유주의자들 전제의 역설을 지적한 아시아인 최초 노벨 경제학 상에 빛나는 아마르티아 센과 그의 공동연구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잠재 능력 측면에서 가장 곤란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되는 (개도국의) 여성을 기준으로 그녀가 어떤 처지에 있든 반드시 있어야만 할 최소한의 잠재 능력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 가치 옹호 차원에서 정당화하려 시도한다. 단, 누스바움은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처하게 만드는 관습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여성들, 요컨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자연’이라 여기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잠재 능력의 목록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그런 것을 제안받아도 갈팡질팡하거나 도리어 성가셔 할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하고있다. 이는 노르웨이의 분석적 마르크스 주의 철학자 욘 엘스터(1940~)가 <신포도>1983에서  ‘적응적 선호 형성 adaptive preference formation’이라 칭한 문제로, 페미니즘과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 확대와 급진적 사회 변혁을 동시에 표방하는 사회사상 분야에서는 늘 부딪히게 되는 난제다. 누스바움은 적응적 선호 형성이 건전한 인간성의 발전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이미 그런 식으로 적응되어 버린 사람에게 무리하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적응적 선호 형성’. 나는 내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엄청나게 스스로 처박았다.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좀 억울했지만 그 빡침을 이리저리 방사하던 시기도 지났다. 그게 나의 조건과 처지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선 거기까지가 다였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서 ‘자연화’해 버린 나의 자기 기만을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성가시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만나기 이전까지 아니 그것을 포함하여. 나의 ‘스스로’가 있었는가. 있었던가. 있었을까. 질문을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실은 모두가 ‘적응적 선호 형성 중’인 것이다. 자기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고 거기서 성가셔서 멈춘다. 멈춘 채로 살다가 더.는.이.렇.게.는.못.살.겠.을.때. 그때. 그때. 다시 질문을 시작한다. (어쩌면 살만해질 때 질문은 끝난다.) 시작한 질문을 언제 어디까지에서 멈추는… 어쩌면… 거기까지가 딱 그 사람이 도달하는 인식이겠지만. 나는 치열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과정이 정말 너무 좋다. 고작 읽는 것뿐일 테니. 그 정도의 성가심은. 감수하다가 말겠지. 성가셔서 멈출 때 까지. 


아마도 그런 것 아닐까. 그 딜레마란 게. 특별히 제3세계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의 조건 아닌가. 홍해인에게도 잠자에게도 누스바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모두에게. 모두가. 각자의 적응적 선호 조건이 있다. 기억이. 재화가. 경험이. 문화가. 가까운 인간관계와. 매체들. 우리의 잠재성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 특히 나 자신이 가장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딜레마는 해결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간파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롤스의 정의론이 가진 역설들처럼. 심지어 다소 자명해 보이는 수학도. 물리학도. 아무리 엄밀한 체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에는 구멍과 역설이 있다. 누스바움의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것들이 화학 작용해서 빚어내는 알 수 없는 결과들을 진보로 애써 해석하지도 않지만. 다만. 이해를 다르게 하는 쾌락은 있다. 그 쾌락이 (이것 만큼은 공리주의적으로다가)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나도 책을 읽는 기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건 내게는 참 다행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로즈 힐.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변하는 현실이 있고. 내 삶이 있고. 계속 배열하는 내가 있다. 내게 이야기가 있다. 내가 누군가가 아닌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가진 딜레마를 간파하고 싶은. 다른 딜레마로. 다른. 또 다른. 


*


그날 달리지 않았던 게 좋지 않았겠느냐고?

아니요. 지금도 빨리 나아서 달리러 가고 싶은데요.

왜요?

달리지 않았다면 달릴 줄 몰랐을 테니까. 이제는 달릴 줄 알고(물론 잘 달리지는 못한다), 그 쾌감을 느끼며, 조심히 살살 달리면서, 바닥도 잘 살피면서, 느리게 천천히 달리면 돼요.

그걸 꼭 넘어져서 다리 부러져 봐야 알아요?

꼭 넘어져야만 아는 건 아닌 데, 달려봐야 알아요. 음~~~청~~ 못 달려도요. 달리는 걸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카프카를 생각한다. 일과 글쓰기. 글쓰기와 일. 생존과 실존. 그는 분열 속에 살았다. 딜레마 속에 살았다. 나는 그의 글에 깊게 감동했다. 문학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철학 역시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논쟁되며 열려 있는 채다. 괴델(수학)도 하이젠베르크(양자물리학)도 결국 그걸 말한다. 인간의 인식이 장담할 수 있는 닫힌 완결은 없다는 것. 요즘 들어 자주 낙담하는 동생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겨. 물론 삶을 꼭 길게 살 필요도 없다. 


자, 이제 생존하러 갈 시간이다. 나의 딜레마를 껴안는다. 미래를 설계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불안해하느라 술을 마시게 될 테니까. 다시는 그렇게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낮잠을 잘거다. 나는 시간이 많다. 느끼지 않기 위해 취할 시간은 없다. 매일의 절단면을 만들어 둔다. 할 수 있는 걸 한다. 못하는 건 미룬다. 쓸 데 없이 침대에 누워있으면 안돼? 놉. 돼. 침대에 누워있어도 돼. 쓸데 없지 않으니까. (다만 누워 있을 때 폰은 끄자.)


시간이 흐르면 다리는 붙을 거고. 나는 일어날 거고. 충분히 누워있어도 된다. 누워 있는 것이 쓸 데 없다는. 생각.이 바로 현대인의 질병이다.


덧붙임, 참고 참으며 읽다가 병상 읽기4에서 결국 읽기를 포기한 당신. 이 있다면. 미안하다… 4장은. 오로지 미래의 나를 향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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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4-22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쟝쟝님 다리 왜.. ㅜㅜ

공쟝쟝 2024-04-22 20:05   좋아요 0 | URL
네... 들켰어요... 제가... 너무 행복한 거.... 들켜가지고.... 운명이... 정신차리라고.... 자만하지 말라며... 아... 건방졌던 것입니다...

서곡 2024-04-22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 지금 ott에서 ‘눈물의 여왕‘ 보는 중입니다 잘 완쾌하시길요!!!

공쟝쟝 2024-04-22 23:52   좋아요 1 | URL
ㅇ ㅏㅋㅋㅋㅋ 멜랑꼴리아 부터 서곡님과 저는 드라마 메이트 ㅋㅋㅋㅋ 실은 재가 김수현(귀여움)과 이도현(천재느낌)을 좋아합니다…!!ㅋㅋㅋ

공쟝쟝 2024-04-23 00:03   좋아요 1 | URL
차은우와 임시완은 얼굴만 강하늘은 연기 잘 맞는 역할 맞을 때(좀 순딩한)… 완벽했던 현빈은… 이제 품절남… 끝 입니다! (안물어봤는 데 왜 알려드리냐면 ㅋㅋㅋ 나름 엄선된 목록인데 ㅋㅋㅋㅋ 비슷하거나 새로운 재질의 인력이 수급되면 재빠른 소식을… 배우 기근이다 기근…)

서곡 2024-04-23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김수현 귀엽네요 범자고모의 러브라인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차은우 연기는 본적 없지만 임시완 강하늘 저도 연기자로서 호감 있고 현빈 사랑의불시착 정주행했었습니다 ㅎㅎㅎ 안녕히주무세요 ~~~

공쟝쟝 2024-04-24 09:35   좋아요 1 | URL
저… 범자고모가 좋아요… 두 분의 사랑 응원해여….ㅋㅋㅋㅋ 찬실이에 나온 그 배우분 ㅋㅋㅋ 넘 웃김 ㅋㅋㅋ

2024-04-23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24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4-04-23 0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다치셨군요.
빨리 완쾌되시길,,,
그 와중에 이런 어려운 책들을!

공쟝쟝 2024-04-24 09:3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유쾌하게 완쾌하겠습니다…. 그 와중이므로 이렇게 되버린 것인 것 같기도 해요 (긁적)

단발머리 2024-04-23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대 철학의 최전선>을 제가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알아둬야겠네요. 그러나 구할 수는 없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사 누스바움 이야기 인상 깊네요. 저는 ‘~~라서 안 돼!‘ 중에 ‘여자라서‘가 아직도 가장 강력한 주문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역시나 ‘젠더는 힘이 쎄다‘이고요.

침대에 누워 있어도 돼....... 라고 쓴다는 건, 그 사이사이, 이러면 안 될텐데... 얼른 일어나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구요.
당신에겐 아직도 베짱이 습성이 부족합니다. 물론 이건 DNA가 중요하지만요. 타고난 베짱이인 제가 알려드립니다. 제 말을 따라하세요.
침대에 누워 있어도 돼.
침대에 누워 있어도 돼.
침대에 누워 있어도 돼.

공쟝쟝 2024-04-24 09:43   좋아요 1 | URL
젠더는 힘이 세죠. 다양한 각본들이 필요합니다.

책 구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 나카마사의 책 중 유일하게 절판 안된 책 입니다!!! ㅋ 이 책의 백미는 사변적 실재론일 듯 합니다. 단발님 좋아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 나오고, 항상 눈여거 보시는 데닛 등 ㅋㅋㅋㅋ 마음철학들도 나옵니다…!! 공부잘하는 사람의 정리에 감탄 합니다. 연결 고리를 잘 만들어 두시는 편.

자책 하면서 누워있을 바에야 ㅋㅋ
일어나 앉아있자 ㅋㅋㅋㅋㅋ
서 있지는 못하니까 ㅋㅋㅋㅋ

서곡 2024-04-2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쵸 찬실이에서 김영민 배우가 흰런닝(이라고 쓰고 난닝구라고 읽는다) 입고 돌아댕기자나여 ㅎㅎㅎ

공쟝쟝 2024-04-24 10:25   좋아요 1 | URL
이 번에도 ㅋㅋㅋㅋ 치명적인 척하면서 동네 뛰댕김 ㅋㅋㅋㅋㅋㅋ 장국영 ㅋㅋㅋ 김영민 배우 이름 기억해둘게요!!!ㅋㅋㅋ!! 눈여왕 이렇게 된 김에 마지막화까지 ㅋㅋㅋ

서곡 2024-04-24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여 치명적척 ㅎㅎㅎ 마들렌도 구워주고요 ㅋㅋㅋ 네 어느덧 거의 다 끝났습니당~~~

잠자냥 2024-04-2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 불러써? ㅋ
그런데 첫번째 짤... 책을 저렇게 읽으면 둘 다 자세가 너무 불편하고....
읽히냥??

공쟝쟝 2024-04-24 16:58   좋아요 0 | URL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자세라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24 18: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런 고백을 원한 건 아니었따….

공쟝쟝 2024-04-24 18:14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이 이 자세를 정수리에 서리내기리 전에 도전하고 싶게 하네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24 20:14   좋아요 1 | URL
아…. 쟝 댓글 폭발하는 이유를 알았따…. 거동불편자…. 손가락으로 세상을 만나다🤣🤣🤣

공쟝쟝 2024-04-24 20:17   좋아요 0 | URL
다리 아픈데 일하기 싫고 생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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