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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난 서른이 넘으니까 너무 좋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나도. 요즘엔 그 생각을 해. 이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사십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오십대는 더, 육십대는 더더.
- 맞아 맞아. 건강관리만 잘하면 살 수록 좋아질 것 같음.
- 있지, 그거 산타의 존재처럼 어른들이 치는 거대한 거짓말은 아닐까? 살아보니까 나이먹을 수록, 늙을 수록 좋은거야. 너무 좋아서 상대적으로 젊은 시절이 힘드니까 위로의 차원에서 “그때가 좋을 때다”라고 하는 거지.

극장을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동생과 대략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알 수 없는 인정투쟁 속에서 조울 섞인 이십대를 보낸 동생과 나는 꽤 근사한 영화 메이트다. 어떤 영화도 함께보고나면 대화의 소재가 된다. 우리는 보통 유년의 슬픈 기억을 경유해 각자의 고집스런 방법으로 쟁취해낸 독립까지의 노고를 치하해 준다. 어제의 영화는 모처럼 대화의 끝이 ‘감사함’에 가 닿았다.

고맙지. 고맙긴한 데, 그 고맙다는 말이 잘 안나와.

우리는 잘 안다. 나 역시 최선을 살아왔 듯, 우리의 가족도 각자의 최선을 살아왔다는 걸. 일개미 본능, 각자 알아서의 생존 본능은 부모님이 몸소 실천해 주신 자원임에 틀림없다. 아빠도 엄마도 소처럼 열심히(만) 살았다. 네 남매는 어쩔 수 없이 모두 초중고 개근을 이뤄내버렸다. 우린 정말 쓸데없이 성실하였고, 성실하기만(!)했다. 그래서 가끔 억울하다!!!!!!

“22: 상처는 지구에서 받는 거야”

지구에서 받은 상처들. 서른을 넘기고 나니까 동생도 나도 상처보단 나 자신이 더 강하다는 걸 체득한 것 같다. 아니다. 체득 아니다. 공부였다. 그것도 열심히(!)했다. 비용을, 시간을, 에너지를 투여한 노력의 댓가이다. 우리는 상처를 직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결국, 그러므로. 앞으로는 더 괜찮아 질거다.

동생과 나는 하나 더 알고 있다.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 혼란한 상처를 긍정하게 되기까지 앞으로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이란 걸. 꼭 긍정이어야만 하냐고? 이건 must라기 보다는 운명의 데스트니 같은거다. 꽉 닫힌 결말의 드라마. 아무리 망쳐보고 싶어도 더 안망쳐지는 지점.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 그러니 어쨌든 우린 결국은 긍정하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고 말거야. 그래도 대충 퉁쳐서 긍정하지는 말자. 결국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진다면 그건 아주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각자의 언어로 감사해 할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뜻으로 생각하자. 안녕. 얻어탄 동생 차에서 내렸다.

*

디즈니-픽사가 그리는 ‘생전의 세계’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지구로 가기 위한 패스권을 따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불꽃을 장착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불꽃은 무얼까 사색하고 이야기 나누게 된다.

생전의 나는 쏘맥을 맛있게 마시는 불꽃을 장착했나보구나, 그 불꽃에는 숙취와 이불킥이 딸려온다는 걸 멘토샘들이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또 나에겐 버튼이 눌리면 아무말 대잔치와 독설을 씹어뱉는 불꽃도 장착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역시 다음날 이불킥을 하니까 설마 내 불꽃은 .... 이불킥? 🤭

좋은 불꽃을 생각해보자!! 22랑 비슷한거! 있다. 하늘 올려다 보기랑 겨울 불냄새 불꽃🔥 비교적 최근에 장착되어 있다는 걸 알게된 불꽃은 (반년에 한 번씩) 정희진 샘의 책을 읽으며 완전 다른 곳에서 감동 포인트를 발견하는 ‘재발견의 불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정희진에 해당했으나 앞으로 살면서 발견/재발견해야 할 저자들이 풍부해질테니 ‘좋아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느끼는 황홀함의 불꽃🔥’ 으로 이름붙이자. 하하! 생전의 나는 그것을 장착하여 지구로 오는 패스권을 따내버린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오늘도 불꽃을 불태우자!!

*

남서향으로 창이난 집은 아마 곧 긴 햇빛이 들어올 것이다. 암막커튼을 사이에 두고 들어오기 시작하는 겨울 햇살을 힐끔 건네다 보며 빨래 널 생각을 한다. 사소한 순간들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끼는 불꽃은 아직 잘 작동되지 않는다. 언제나 할 일, 그 다음의 할 일을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직 발견할 불꽃들이 많다. 이 지구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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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1-24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여동생이 없어서... 아니지, 모든 언니/여동생이랑 그런 좋은 관계를 갖는 건 아닐 테니까요.
아무튼 근사한 영화 메이트 부럽습니다.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공쟝쟝 2021-01-24 13:10   좋아요 1 | URL
저흰 영화볼때만 좋아요! ... 평화를 알게해주기까지 전쟁을 혹독하게 겪은 자매애.. 아직도 전쟁중 ㅋㅋ 영화만이 휴전!!

공쟝쟝 2021-01-24 13:11   좋아요 1 | URL
그치만 여동생 너무 좋구 요즘은 언니들도 좋아요(소곤소곤)

수연 2021-01-24 14: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0세 시대니까 지구에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습니다. 가끔 무수한 자연재난과 사건사고들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인류는 어떻게든 살아남지요. 뭐라는거야;;;; 소울이 그리 좋다 하시니 저도 가서 봐야겠습니다. 근데 영화관 가도 될까? 사람들 엄청 많이 있으면 어쩌지;;;;

공쟝쟝 2021-01-25 19:17   좋아요 0 | URL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음 오히려 방역을 어느 곳보다 철저히 하는 곳이 영화관이라는 생각. 소울은 가족과 함께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ㅡ^

다락방 2021-01-24 16: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글 좋아 좋아 좋다. 쟝님 이 글 참 좋다요. 여동생은 사랑입니다. 물론 남동생도 사랑이고요. 샤라라랑💕

공쟝쟝 2021-01-25 19:18   좋아요 0 | URL
아 샤라라라랑~ 제 글 좋다고 해주시면 기분 진짜 샤라라라랑~ 30년만에 알라딘에서 숨겨진 글쓰기 재능을 찾을 줄이야! 아핫. 그러고보니 요즘 저의 불꽃은 알라딘 페이퍼!!!

바람돌이 2021-01-24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착하산 모든 불꽃들이 다 훌륭하십니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져서인지 이 글 때문인지 술이 확 땅기네요. 집에 맥주도 와인도 다 있는데 지금 집이 가는 길에 뭘 마실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쟝쟝 2021-01-25 19:2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집에가셔서 무엇을 드셨을까요? (궁금) 적당한 혈중 알콜농도로 일상의 시름을 잊을줄 아는 사람~ 우리는 같은 불꽃을 가지고 있군요 *^^*

scott 2021-01-2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여동생은 행운!이런 언니 속이 확트인 언니가 있다는것 세상 어느 누구보다 내편이 되어주는 !소울속 ost재즈 넘 좋지 않나요 공장쟝님에 황홀함에 불꽃 꺼질까봐 난로 위에 놓아드려야쥥 ╰┳🔥┳╯

공쟝쟝 2021-01-25 19:21   좋아요 1 | URL
재즈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인공이 재즈를 좋아하고 몰입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어요. 저도 재즈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따끈따끈 난로 덕에 페이퍼 불꽃이 지펴지고 있습니다!! 화르르륵

syo 2021-01-24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씩씩해.
씩씩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착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인데 대단해요!




.....하지만 결국 귀여운 게 이긴다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1-25 19:24   좋아요 0 | URL
그렇지! 저 대학교 다닐때 별명 오뚜기였어요. 응? 씩씩하면 나야 나!!! 귀여움은....... (잠시 침묵) 귀여움이란 역시 인간보다는 개와 고양이죠..

붕붕툐툐 2021-01-25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과 동생분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너무 멋지당~😍😍

공쟝쟝 2021-01-25 19:25   좋아요 2 | URL
영화 보고난 후 한정입니다. 자매들과의 평소 대화는 ...... 차마 옮겨적을 수 없나이다... 입험한 자매들? 정도로 유튜브를 준비해볼까 싶을 정도입니다 ㅋㅋ

붕붕툐툐 2021-01-25 19:27   좋아요 0 | URL
구독자 1명 추가요!!ㅎㅎ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최희서 외 출연 / 인조인간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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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핑계대고 운동 너무 안하는 게 맘에 걸려, 운동 뽐뿌기대하며 본 영화였으나... 사는 것에 대한 현타가 왓다..(생의 의지가 10 감소하셨습니다) 오늘의 달리기를 끝내면 내일의 달리기가, 지금의 전투를 마치면 다음의 전투가, 뭐 그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이라는 게 베이스고 그냥 저냥 버티는 게 아니라 아주아주 온힘을 다해 힘을 써야하는 데, 좀 힘이 생겼나? 견딜만 하다는 느낌이 들면 더 힘든 코스가 눈앞에. 그렇게 뱃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겨서 건강해진 몸으로 더 힘든 달리기 코스를...
이 끝없는 달리기를 멈추려면!! 죽어야한다!!! (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여하튼 근육이 뭔가를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고, 그래도 근육이 생기면, 체력이 좋아지면, 술을 맛있게 마실 수 있다니까..이 번주에는 좀 달려볼까 싶기도 한데.. 비오네?...🌧☔️
너무 힘들었던 불투명한 시간들을 통과하며 지나온 과거의 내가 있고, 문제는 지금도 까마득 하다는 건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테고, 되는대로 멋대로 살더라도 (체력적으로) 너무 망가지지는 말자.. 라는 마음을 먹었던 영화. 그려.. 오늘은 비와도 달려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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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0-07-28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동하니까 오래전에 인스타에서 본 유머가 생각나네요. 의사와 상담중에 갑자기 체중이 불어난 이유에 대해 요즘 운동을 안해서 그런 것 같다고 셀프 진단을 하고 있으니까 의사가 원래 안하던 운동을 계속 안한다고 살이 갑자기 찌진 않습니다 살이 찌는 이유는 뭔가를 먹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아주 뼈때리는 말씀을 하셨는데 ㅋㅋ 제가 요즘 딱 그렇습니다. 자택근무하는 날들이 많아서 집에 있으니까 원래 안하던 운동 계속 안하고 있는데 냉장고 문을 그렇게 자주 열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저도 빨리 운동을 좀 시작해야 할텐데요. ㅠㅠ

공쟝쟝 2020-07-28 20:26   좋아요 1 | URL
냉장고 문을 열때 스쿼트를 하시면서 열어보시면.. (남일 이라고 막말한다 ㅋㅋㅋㅋ)

얄라알라북사랑 2020-08-18 19:08   좋아요 2 | URL
이런 유머라면 한 번 들어도 잘 안 잊혀질 거 같아요. ˝남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라서요 ^^

공쟝쟝 2020-08-18 19:31   좋아요 2 | URL
오예 저 얄라님께 유머 칭찬 받은 거 맛죠?

수연 2020-07-28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 와도 달릴 사람들이 누가 있지 했는데 공쟝쟝님이셨어!!! 그 누가!!!!

공쟝쟝 2020-07-28 20:26   좋아요 0 | URL
훗.. 오늘 저는 달릴 것인가...(뒹굴)

비연 2020-07-28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코로나...
저는 쟝쟝님 글이 왜 이렇게 보일까요? ㅜㅜㅜ

공쟝쟝 2020-07-28 20:27   좋아요 0 | URL
ㅠㅠㅠㅠㅠㅠㅠ 통곡 ㅠㅠㅠㅠㅠㅠ 아 정말인지 징징대고 싶은 요즘입니다..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매일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욕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나만의 글쓰기 어플을 켠다. (PEN이라는 앱이다) 정갈한 명조체 글씨로 그즈음에 읽는 책들에 대한 단상이나, 복잡한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음들을 적을 때, 조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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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언젠가 써봐야지!하는 글감 목록만 빼곡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대부분은 출퇴근 길에 쓰고, 주말에는 노트에 쓴다. 이 영화 주인공 패터슨 처럼 말이다(!).

_

그러니까 어젯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가 글쓰는 사람인게 정말 좋아졌다. “저기요! 저도요!” 손이라도 들고 나도 글쓰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시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써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과 작가도 있고요, 저만 아는 비밀 노트와 앱도 있답니다. 당신처럼... 저녁도 있으면 좋겠는 데... 저녁이 없네요(시무룩).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산책을 안시켜도 되니 그건 내가 당신보다 좋군요!




주인공 패터슨은 도시의 버스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시를 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틈틈히 글을 쓴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주는 회복의 시간을 알기에 휴식을 취하듯 쓸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내가 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서운함 그게 다 일 것 같다.
그러고 또 쓰겠지, 뭐.
_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아무럴 것 없는 이야기. 그게 다인 이야기. 그것 밖에는 없는 이야기. 그래서 꽉 찬 이야기. 나도 그처럼 아무럴 것 없는 일상을 더 본격적으로 살고 싶다. (저녁, 저녁이 필요해..)

_

오늘 아침의 지하철은 책은 커녕 손도 꺼낼 수 없을 지경이라서 패터슨을 흉내내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써보았더란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늦은 퇴근길. 아침에 머리로 썼던 글을 폰으로 적어보고 있다. 분명 아까 썼던 건 좀 더 근사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집에 다 와버렸네. 이 영화 너무 추천해! 두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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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

이런 식으로 글감을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부르더라구요.
쟝쟝님 작가 맞아요. 작가입니다. 쟝쟝님 작가님~~~

공쟝쟝 2020-05-21 08:10   좋아요 1 | URL
누가봐도 시인인데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이 영화속 주인공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 였어요. 뭔가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 고맙습니다 단발님! 헤헤

감은빛 2020-05-2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버티는 건 바로 글쓰는 상상이죠. 비록 신춘문예 응모했다가 떨어졌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일지라도 상상 속에서 내 글은 너무나도 멋진 글이더러구요. 비록 얼마 못 가서 그 현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공쟝쟝 2020-05-21 08:14   좋아요 1 | URL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바로 상상속의 내가 쓴 글...!! 공감하셨군요 ㅋㅋ
그래도 글쓰는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는 조금 근사하지 않나요? ㅎㅎㅎ
 

주말이라 영화한편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가박스에서 명작 리플레이를 한다. 저렴한 오천원에. 영화관에서 다시보고 싶은, 띵작인 건 아는데 선뜻 보지는 못했던 영화들이 리스트에 있었고, 그중에 슬플것 같아서 미뤄두고 있었던 로마가 있었다. 오- 너로 정했어 ㅋㅋ!! 바로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는 데, 관객이 두명 있었나? 널찍한 영화관에서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신나게 부스럭 거리며 실컷 쿨쩍거리며 잔잔 + 감동 + 오열의 두시간 반을 보냈다.


*

청소와 빨래, 또 청소와 빨래라는 집안일의 백색소음으로 가득한 영화는 중후반 쯤에 의외의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생각해보니 맥시코는 사파티스타의 나라 아니었던가!) 끝없는 파도의 물먹임을 삶에 은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 뒤 다시 청소와 빨래로 돌아온다.


영화의 백미라는 바닷가 씬에서 나는 몸서리를 쳤는 데,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의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호되게 당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난 파도, 짠물, 숨막힘, 통제할 수 없는 몸,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공포. 뒤집어진 바다에는 오만 쓰레기와 모래자갈이 섞여있어 온몸이 얻어 맞아 아팠다. 영화관 스크린에 꽉찬 검은 바다를 보며 그날 그 바다의 숨막힘을 떠올렸고, 지금 내가 겪어내는 것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져 지겨웠다.
인생=바다, 혹은 바다보다 더 무서운 우리들 인생살이여!


원치 않는 파도에 푹절어가며 물먹는 클레오, 휩쓸리지 않고 불러야 하는 이름과 구해야하는 존재들, 부둥켜 안음, 고백. 나는 펑펑 울었는 데, 이건 어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냥 짜증의 눈물이었다. 아, 사는 거 힘들어 ㅆㅂ~~~ 굳이 왜 다 이렇게 힘들어야 해??????

*

삶.
영화처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거나, 멀리서 조망했을 땐 쪼끔, 찰나,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 대체적으로 지겨운 일상의 노동을 반복해야하고, 그 와중에 환상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하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란 사랑스럽고 귀찮고, 고용주에게 굳이 아프고 슬픈 비극을 설명해야 잘리지 않고 쉴 수 있고, 술한잔 할려고 하면 옆테이블에서 잔 치고 가고, 매번 선택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신중해봤자 결론은 도찐 개찐, 할 일들은 언제나 발앞에 엎질러져 있고, 나만한 사연 가진 인생들이 주변에 드글드글 한데 이와중에 역사는 개입하고, 사건들은 생겨나고, 상처를 주고 받고, 느낄 새도 없이 일들은 벌어지고, 눈물도 아껴뒀다 가성비로 흘려야함. 아- 클레오ㅠ인생 지겨워!!!!! 내 인생 같아!!!!!!

*

그러니까 저는 황금같은 주말의 두시간 반동안 지겨운 인생을 편집한 영화를 본 것입니다. 의미부여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한참 인생이 지겨워진 저로서는 지겨워서 슬퍼버린 것입니다.

*
그렇게(이렇게) 사는 거
의미 있을까?
의미없지.
그런데 사는 거 의미 원래 없잖아.
그놈의 의미 땜에 데여놓고 그걸 몰라.
걍 살자.
중간중간 하늘 (혹은 물에 비친 하늘) 올려다 보며.
지겨운 개똥 같은 것들만 대충 쓱싹 치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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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8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겠다고 넷플인가에 찜 해두었는데^^

공쟝쟝 2020-03-08 23:30   좋아요 1 | URL
싸운드 빵빵하게 하고 보세요~! 추천추천

비연 2020-03-09 10:22   좋아요 0 | URL
오케! 다음 주 주말의 명화로 보겠나이다 ㅎㅎㅎㅎㅎㅎ
 

1.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는 정말 잘어울린다. 로리가 격정적으로 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결말을 알고 있었으므로) 거의 허벅지를 찌르다 시피하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가 조였으면 이미 입술로 대답했음ㅋㅋㅋ


의식적 자아는 비혼주의 조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으나, 무의식은 이미 연애와 사랑을 넘어 바람직한 엔딩~ 결혼으로 달려가고 싶어했다. 둘이 넘 잘어울리잖아. 그냥 싸우면서 행복해지라고!! 가만, 행복? 둘이 맺어지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아, 내 안의 낭만적 이성애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그럴 수도 그렇지도 않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커플이 잘되길 지지합니다! 따위로 생각이 빠질려고 해서 나 자신이 짜증났다. 하긴 나서 자라 지금까지 들어온 대다수의 이야기가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살았습니다였는 걸 뭐. 로맨스라는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 이건 뭐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종류 같다.
넷플 빨강머리 앤도 시즌3까지 보면서 손이 다 덜덜 떨리더라. 길버트랑 앤 잘되는 거 보고 싶어가지고... 흑흑.


2.
배우 그레타거윅은 물론 감독으로서의 그녀를 애정하다 못해 사랑하고 있으며(프사로 해놓을 만큼),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를 각각 2010년대 최애 외국 여남 배우로 꼽는 나로서는, 유년시절 못해도 스무번은 읽은 작은아씨들이란 소설을 그 감독이 이 배우들로 무려 페미니즘으로 다시 썼다고까지하니 너무너무 보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였다. 넷플릭스 크리스마스에 개봉이라는 말 듣고 크리스마스 날을 손꼽을 정도.
그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함께 보기로한 멤버와 만날 약속을 차마 잡을 수 없었고, 결국은 주말에 함께 방구석에 있을 자매1과 자매2를 꼬셔서 데리고 #다큰아씨들 을 급결성하여 함께 영화관람을 했다. 게으른 세자매에게 주말 세시 영화관람은 매우 이른 시각이었다. (다행이 광고중에 도착) 시작하자마자 완전 이입된 다큰아씨들은 ‘너무 좋아’를 외쳤다. 저거 정말 우리같아 ㅋㅋㅋ 하면서. 

영화 마치 가의 자매들은 박씨자매들에 준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기실 자매들은 모이면 시끄럽다. 만고의 진리인가. 조가 고데기로 메그의 머리를 태워먹는 신을 보며 소녀시절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각났다. 동생과 고데기로 싸우다가 (싸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고데기를 안껏다는 걸 잊어버려서, 시내에서 신나게 놓고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방이 다 타있었다. 타서 사라진 매직기, 까맣게 재가 앉아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내가 사랑했던 책과 cd들. 자욱한 연기를 배경으로 한 그날 저녁의 살벌하던 식사. 그 와중에 니가 안껐다는 책임전가와 추궁. 등등.
작은아씨들 보다 더 격정적이었던 우리들. (그리고 다 컸는 데도 싸움 ㅋㅋㅋㅋ 심지어 영화보고 오는 길에도 몇번 싸울뻔함)


3.
내가 왜 이 책을 그토록 좋아했는 지 기억났어.
우리집도 가난했잖아.
그래서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들을 실컷 요구할 수가 없었잖아.
메그는 옷, 조는 책, 베쓰는 피아노, 에이미는 물감 등등. 근데 옆집 할아버지가 쨘 나타나서 한번씩 정말 갖고 싶어하던 그것들을 선물해 줄 때,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넘 행복한 거야.
라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생들에게 말했더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여전히 자매들 각자의 욕망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기들의 힘으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어릴 때는 소망이, 물건처럼 참 단순했는 데, 다 커버린 지금의 소망과 욕망은 참 간단치가 않다는 것 등등을. 

작은 아씨들 속 작은 이야기들 처럼, 나와 자매들의 작은 이야기들이라면 유년시절 그것들을 포함해서 언제든지 넘쳐난다. 자주자주 그것들을 꺼내 써봐야겠다. 초딩시절 내 롤모델이었던 조 마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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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용하는 영화속 대사를 글 말미에 적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 
두번째 관람 한 후 다시 적어놔야지.
(집에 모셔둔 원작도 좀 읽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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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3-0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정말 좋아해서 수십 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어서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코로나19로 포기했어요~~
정말 아쉬웠는데
어쩔수없이 집에서 봐야겠어요^^

공쟝쟝 2020-03-01 18:50   좋아요 1 | URL
알고보니 모든 문학소녀들의 어린시절 최애 소설 리스트에 베스트였던 작은아씨들이네요~! 영화 참 좋았어요. 배우들의 호연도 연출도 최고😊 당분간 코로나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넷플 공개를 기다리고 있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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