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띄운 선편소포가 도착했다.


이만큼 넣은 선편소포의 가격과 6권 넣은 항공소포의 가격이 같다. @@

코로나 이전처럼 한 달만에도 오고 늦어도 석 달 안에 온다면 선편소포를 애용하겠는데. 넉 달만에 왔고 다섯 달 넘게 걸려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중간에 뿅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추적 불가. 잃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나마 10월부터는 아예 선편소포 접수를 중지했다고.

좋아라 책탑을 쌓고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신바람이 조금씩 푸슈슈 빠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책을 꽂을 자리도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사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래서 될 일일까? 흐흐 실없이 웃으면서 고민해본다. 물론 책을 읽으려고 사는 거지만 정말정말정말로 꼭 갖고 있고 싶고 읽고 싶고 그래서 산 책이 이 모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배송비 아끼려고 중고책 고르고 골라 끼워넣은 책도 꽤 된다. 물론 관심책이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작년처럼 미친(?) 듯이 책을 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돼. 중얼중얼하면서 장바구니를 비우러 간다. 며칠째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옮겼다가 지웠다가 다시 옮기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다 삭제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러 간다. 잉? 그러면 안 된다니까. 알아 알아, 사려고 담아둔 거니까 이건 사야 하지 않겠어? 으... 사도 항공소포 띄워서 다 받는 건 무리야. 지금 사둔 책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그러는 겨? 알쥐알쥐.ㅠㅠ 내년에 한국 가서 읽든지 가져오든지 할랬더니 변종 바이러스 또 출현하고 3차 백신은 의무가 되고 아주 난리란 말이지. 하. 무룩 무룩 시무룩.


***

어제 이렇게 써놓고 오늘 알라딘 들어오자마자 냅다 책 주문. 그래도 세 권 빼고 샀다. 잘 한 건 아니지만 잘 했다. ㅠㅠ 어쩔.

***

책탑 사진 크게 띄워 확대해 보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사진~ (저만 그런 거 아니란 거 다 알아요)











내가 샀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책도 있고 옆지기 한국 갔을 때 산 제주 잡지랑 책들도 있고. 아주 다양하구나. 책상 위에 쌓아두고 즐겨야 하건만 방을 확 뒤집었다. 어디다 두어야 하나 고민 중. 그 자리에 그냥 쌓여있을 확률 아주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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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1-28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편은 정말,,,고뇌의 선택입니다요. 4달이 걸려서라도 5달이라도 오기만 하면야,,, 그런데 그노무 분실 위험이라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는 고통!!ㅠㅠ 우리 말고 또 누가 알까용??ㅠㅠ 우리는 그런 고통을 아는 동지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글 일으면서 내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같은 상황, 심정!! 감정이입 너무 잘 되어서,, 어디에 잘 두시길 함께 바랍니다요.ㅋㅋㅋ

난티나무 2021-11-29 00:02   좋아요 1 | URL
그니까 말이에요.ㅠㅠ 책은 좀 싸게 배송하면 안 되나요? 그쵸? 저거 잃어버렸다면 으아 생각만 해도 진짜 😱
선편은 분실 위험 항공편은 세금&수수료 위험!
일단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어요. 어디다 정리해야 하나 … 하아… ㅋㅋㅋ

mini74 2021-11-28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면서 봤는데 또 그런 비애가 ㅠㅠ

난티나무 2021-11-29 00:04   좋아요 1 | URL
모아서 쌓으니 많기는 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만큼 한국에 또 있어요.ㅠㅠ 어쩔…
가서 갖고 오고 싶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1-11-29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의 책탑 사진 보니 독서력이 불타오릅니다. 아 책 읽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찾아오네요!! >.<

난티나무 2021-11-29 15:08   좋아요 1 | URL
오 다락방님의 불타오르는 독서력! 에 땔감 하나 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저는 ‘언제 다 읽노’ 마인드로 접어들었습니다. ㅎㅎㅎ ㅠㅠ

그레이스 2021-11-29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 탑을 쌓는 난티나무님 👍 👍 👍

난티나무 2021-11-29 15:08   좋아요 2 | URL
불구하고! 아마 앞으로도 주욱? 되지 않을까요? ㅠㅠ 안 되는데. ㅎㅎㅎ 🤣

프레이야 2021-11-30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흠다운 책탑이에요. 넉 달이나 기다려 받았으니 더더 애착이 가겠죠.
분실의 위험까지 안고 ㅎㅎ 라로 님과 같은 대륙, 비슷한 마을인지 급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상세사진 보니 고작 몇 권이 겹쳐서 반가워요.

난티나무 2021-12-01 01:44   좋아요 0 | URL
이게 웃긴게요, 빨리 보고 싶거나 좀더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책들은 항공편으로 받거든요? 상대적으로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책들이 배를 탄 것인데 기다리다 뭘 넣고 뭘 뺐는지조차 가물거릴 때쯤 받아서 일차로 막 좋다가 이차로 음 언제 다 읽지 삼차로 아니 왜 이런 책들인 거지? 이렇게 생각이 흐른다는 거예요. ㅎㅎㅎ 막 다른 책들이 더 좋아(?)보이고… 아쉽고… 이래서 아마 계속 책을 사는 거겠지요. 아이고야 ㅎㅎㅎ

라로님은 미쿡, 저는 푸랑수.^^ 거리로 따지자면 한국까지보다는 미국이 가깝긴 하겠어요.^^

프레이야 2021-12-01 01: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프랑수에서 사시다니 부럽지 뭐여요 ㅎㅎ 암튼 지구마을 가까운 곳에 사시네요 라고 말하기엔 코로나 때문에 좀 멀어진 느낌이 들긴 해요. 🇫🇷
 















<여성성의 신화> 함께 읽기를 시작했다. 알라딘에 며칠 글을 안 올려서^^;; 며칠 전 쓴 것 가져오기. 


서문~ p.146

1장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들 / 2장 더없이 '행복한' 주부의 등장

일반적으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주부'들의 하루일과를 늘어놓는 일은 해봐야 쓰잘데기없는 소리, 영양가 없는 말(영양가 있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하나마나 한 소리, 들어봐야 뻔한 소리, 다 아는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특히 경험하지 못한('않는') 자들이 단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다 걸러버리는, 지겨운 잔소리라고 여긴다. 정말 그런가? 지겨운가? '주부'는 그 '지겨운' 일을 매일, 주말도 없이, 일년 내내, 이십년 삼십년 그 이상을 한다. 정말 듣기만 해도 지겨운 것은 바로 이 사실이다.

"주부들의 하루는 산산조각이 나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일에 15분 넘게 보낼 수 없다. 잡지를 읽을 시간도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집중할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86)

이 구절을 읽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맞아맞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집중할 힘도 없다, 라는 말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다. 이런 말에 여자들의 입장을 상상하여 공감할 남자는 없다. 산산조각난 하루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과 글자로만 읽는 것은 다르니까. 결국 경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인간은 경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을,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여자의 삶을 짐작하는 일은 가만 두면 그냥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이만큼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이만큼 부르짖었으면 이해하겠지, 택도 없는 소리이다.

'집안일', '살림'에 대해서는 말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어놓으면 그저 경험담에 넋두리밖에 안 되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천지개벽할 정도의 깨달음이 주어져야 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왜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언어'를 부르짖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말할 언어가 없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단어로 이루어진 언어를 갖고 있지만 우리 언어가 모든 사물과 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해내지는 못한다.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그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경험이 여자들의 경험이 되면, 어려움은 두 배 세 배 열 배 백 배가 되고, 결국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스러진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식의 말이 되어야 지겹다고 듣기 싫다고 되받지 않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겹다고. 지겨운 건 너네들이야.

"그러면 어떻게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진실을 내면의 목소리가 거부할 때, 여성은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가 있든 없든, 누구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남편이 어떤 말이든 콧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자신의 생활도 나아질 기미가 없을 것이며 이러려고 포기한 경력과 직장과 자유로운 시간들을 앞으로도 후회하면서 그리워할 거라는 사실을. 이만한 남자면 결혼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속인 사실을. 혼자 사는 여자라고 여기저기서 오만 가지 오지랖으로 공격할 때,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나면서도 조금은 그렇다고 속으로 인정한 사실을.

나는 어떻게 그 목소리를 믿을 수 있었나? 너는 왜 그 목소리를 '아직' 믿지 못하나? 어떻게 말하면 알아들을까?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그 목소리를 믿는가. 앞으로 얼마쯤 계속 믿을 수 있을까. 하나 둘 바뀌는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건 아닌가.

"또한 오랫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낡은 문제들, 즉 생리 불순, 불감증, 난혼, 임신 공포증, 산후 우울증, 20대와 30대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정서 불안과 높은 자살률, 여성의 갱년기 위험, 이른바 미국 여성들의 수동성과 미성숙성, 어린 시절에는 여자아이가 지적 능력이 우수하나 성인이 되면 성공하지 못하는 이런 점들의 불일치, 미국 여성들의 오르가슴의 다양한 범위, 그리고 심리치료법과 여성 교육의 끈질긴 문제 등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89)

갱년기 증상이 조금 무서웠던 적이 있다. 공황장애라 불리는 것과 증상이 비슷해 사람들이 착각하기 쉽겠다 싶었다. 그 이후 책들을 읽으면서 의심이 생겼다. 갱년기를 혹독하게 겪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 갱년기 증상 때문일까. 완경 말고 호르몬 변화 말고 갱년기가 되면 온다는 그 수많은 증상들이, 과연, 정말, 갱년기 탓일까. 어쩌면 말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닐까. 많은 여성의 질환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대체로 그 즈음 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갱년기'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퉁치는 게 아닐까? 혹시 그 나이 즈음 되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아를 깨달은 혼란스러움을 몸이 대신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갱년기 역시 다른 수많은 '여성질환'들처럼 호르몬제를 처방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몸은 정직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걸 알린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점점 정직해지는 몸이라 하겠다.)

갱년기 이야기만 했으나 생리 불순 같은 경우도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위의 인용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가 미국 사람이라 미국 여성들이라고 했지만 우리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책은 1973년에 나왔다.) 당연해보이나 당연하지 않음이 계속 밝혀지면 좋겠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남성과 함께 일하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이,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독립심을 지니는 것이 금지된 여성들은 결국 가정 일에서도 남자가 결정해주길 바랄 정도로 수동적인 의타심을 지니게 되었다. 단조로운 집안일을 하며 자아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주부들에게 그것을 메꿀 수 있는 종교적 운동이 필요하며, 공존성이 그것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광적인 환상은 여성이 입은 피해와 여성상의 공허함을 드러낸다. 남성이 가사를 함께 한다고 해서 드넓은 세상사를 저버린 여성의 피해가 보상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부부가 함께 거실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해서 가정주부가 어떤 신비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118)

"신화가 강한 힘을 발휘할 때 신화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신화는 그 신화에 모순되는 사실 때문에 더욱 커지고 사회의 평가조차 무디게 만들면서 문화의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133)

'현대판 가정주부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는 것.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여성상이 많았다는 것. 전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결과를 여자들에게 가져왔다는 것. 여성이 "시인에서 잔소리꾼"(74)으로 저도 모르게 변화해갈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 아직도 잘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것.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여성성의 신화>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5분의 1을 읽었을 뿐이다.



"그냥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내가 아는 다른 모든 여성들이 거짓된 삶을 살아왔으며, 우리를 진찰한 의사들과 우리를 연구한 전문가들이 그런 거짓을 영속시켰고, 우리 가정과 학교, 교회와 정치, 직업들이 그 거짓을 둘러싸고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들이 더도 덜도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여성들을 우리 사회에서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만든 모든 것들이 변화되어야 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성의 신화를 깨뜨리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바라본다면, 자신들이 서 있는 잘못된 기초를 인식하고, 성적 대상으로서 받는 찬미도 거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 1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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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읽기를 미루다가 <페미니즘 철학 입문>의 첫번째 철학자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나와서 미리 조금 훑어보고 있다. 전자책으로 사다 보니 이 책을 골랐는데 원서에서 몇 장을 뽑아서 실은 거라 조금 아쉽다. 전문이 실린 책을, 종이책으로 나중에 다시 사고 싶다. 종이책에 밑줄 박박 별표 따란따란 하고 싶다. 이 훌륭한 언니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일찍 갔다. 십 년만 아니 이십 년만 더 살다 가지. 아래와 같은 뛰어난 통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얼마나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인가. 1,2장 부분 밑줄. 




"여성들이 하루살이 무리가 아닐진대 왜 순수라는 특수한 이름 하에 무지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가? 남성들이 우리의 무모한 열정과 비굴한 사악함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빈정대지 않으면서, 우리 여성의 어리석은 짓들과 변덕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지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전자책 14 - 제1장 인류의 권리와 연관된 의무들을 고찰함) 



"결국, 내가 보기에, 가장 완벽한 교육은 육체를 강화하고 정서를 함양하기에 가장 적합하도록 지성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혹은 다른 말로 하자면,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독립적이게 해주는 미덕의 습관들을 체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실, 스스로 이성을 활용함으로써 미덕을 갖추지 않은 어떤 존재를 덕망 있다고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것이야말로 남성들과 관련한 루소의 견해이다. 나는 이를 여성들에게로 확대하여, 여성들이 자신의 본분으로부터 끌어내려지게 된 것은 헛된 세련됨으로 인해서이지, 남성적인 특질들을 획득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게다가 여성들이 받은 왕 같은 존중은 매우 취하게 하는 것이어서, 시대의 예의범절이 바뀌어 보다 이성적인 원칙들에 토대하게 되기 전에는, 여성들이 자신을 낮춤으로써 획득한 비합법적인 권력이 저주라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 그리고 순박한 애정이 주는 평온한 만족을 얻기 원한다면 자연과 평등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 아마도, 왕과 귀족들이 이성에 의해 계몽되어, 유치한 상태보다는 인간의 진정한 존엄을 선호하면서, 자신들에게 세습되어 온 천박하고도 과시적인 요소들을 버리게 될 때까지 -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때에도 만일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전체적인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가 남성들보다 열등한 지성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전자책 33 - 제2장 성별 특성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를 논함) 



"여성이 남성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일반적인 의견은 어쩌면 모세의 시적인 이야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측건대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진지한 사고를 해본 사람들 중에서 이브가 말 그대로 아담의 갈비뼈들 중 하나였다고 가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그 추론은 실패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아니면, 가장 먼 고대 이래로 남성은 자신의 동반자를 종속시키는 데 힘쓰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과, 전 피조물이 오로지 자신의 편리나 즐거움을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여성도 그 굴레에 목을 들이밀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모세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그 추론이 인정될 수 있다." (전자책 44 - 제2장 성별 특성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를 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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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가면무도회로 내가 무엇을 이해하는가? 그것은 특히 프로이트가 '여성성'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한 여성이, 게다가 '정상' 여성으로 되어가야만 한다는 믿음임에 반해, 남자는 처음부터 남자가 된다는 믿음이다. 남성은 자신의 남성이라는 존재를 성취할 뿐이지만, 여성은 정상 여성으로 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여성성이라는 가면무도회에 들어설 뿐이다. 여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궁극적으로 그것은 여성이 자기 것이 아닌 가치 체계들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고, 이 체계에서 여성은 다른 사람들·남자들의 필요-욕망-환상으로 가려진 채로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통행할 수 있다." (178)



" '생식 능력' 훨씬 이전에 소녀가 소년과는 성적으로 다른 신체를 지닌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생식 능력'은 분명 정상적이고 규범적 성욕의 한 유형일 뿐이다. 내가 두 성의 차이에 관한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이 '생식 능력'에 대한 언급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생식 능력 이전에 성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 이것은 '여성'을 가장 낡고, 가장 힘센 '유형' 속에 가두는 것이다. " (187)



"지배자 자리에 있는 자는 쉽게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 즉 이미 '거기에서' 제외된' 자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남성'은 담화의 주도권을 공유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그는 여성과 관계 있는 영역에서 이 다른 존재에게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거나, '행동'의 권리를 부여하기보다는 말하고 쓰고, '여성'으로부터 쾌락을 누리려고 애쓰는 쪽을 더 좋아한다. 여성에게 가장 단호한 금기 사항은 당연히 어떠한 여성적 쾌락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 쾌락은 담화의 한 '영역', 남자들이 만들어 낸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사실 이 쾌락은 남성적 담화에게 있어서는 가장 치명적인 위협을 의미한다.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외재성'·'치외법권'일 수도 있을 것이다. " (205)



"내 욕망은 여성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차를 인정하면서 여성에게 여성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이 성차- 남성/여성 -는 늘 주체(남성)의 재현 체제들, 자동적 재현 체제들 '내부에서' 작동해 왔다. 게다가 이 체제들은 실제적인 성적 무관심을 메우기 위해 분절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여러 차이들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성기, 그것이 없음, 그것의 위축, 그것의 부정, 이런 것들이 두 성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여성은 남성의 이면, 게다가 반대로서만 늘 규정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 결핍 속에 정지하는 것, 이 부정을 폭로하면서 그 속에 정지하는 것, 여성으로부터 '성적 차이'의 기준을 만들면서 동일함의 체계를 전복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차이를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와 문체·해석·증명의 다른 어떤 양식이 남성인 당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여성인 나의 양식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차이가 다시금 서열화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일이 가능한가? 타자를 동일성에 복종시키는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가?" (207~208)



"내 입장을 말한다면, 나는 여성 해방 운동의 유일한 '집단'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특히 이 집단이 권력 행사라는 함정에 사로잡힌다면, 이 집단이 여성의 '진실'을 결정하고, '여성의 상태'에 대해 규칙을 정하며, 이 집단의 것과는 다른 그 당장의 목적을 가지게 될 여자들을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착취를 드러내는 일, 그리고 여성 각자가 처해 있는 곳에서, 즉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직업과 사회적 계급, 성적 경험, 다시 말해, 그녀가 당장 가장 견디기 힘든 억압의 형태에 따라서 각자에게 알맞은 투쟁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16~217)



책 무지 어렵지만 [질문들] 부분은 좋은 구절이 많았다. 이 장 밑줄 많이 그었는데 이 정도 가져다 두고. 뤼스 이리가레가 스스로 질문하는 책이라고 말했듯이 정말 질문을 많이 던진다. 생활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겹치는 구절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그의 질문들에 존경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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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 두 사람의 케미라고 할까, 서문 초반부터 느껴지는 연대의 향기. 함께 책을 쓴다는 건 어떤 일일까 상상해본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끈끈하면서 보이지 않는 신뢰가 느껴진다. 서문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런 느낌만으로 좋았다. 무엇보다 개정판 서문 마지막 부분의 자신감!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저자들. '페미니스트 비평의 선구자, 기원의 순간.' 훌륭하다.

서문에서부터 수많은 작가와 학자들 이름이 나온다. 너무 모르는 나는 그저 가끔 아는 이름 나오면 반가울 뿐이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작가들의 작품도 거의 읽은 것이 없다.ㅠㅠ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 가지를 뻗는 다른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쓰는 동안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책이 나온 후의 반응들, 거기에 대한 저자들의 생각을 풀어놓는데 개정판 서문이라 가능했겠지만 신선했다. 이를테면, "그러한 연구의 섬세함을 찬양하는 주장과 그러한 연구가 보여 주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반대하는 주장이 우리를 "대학에서의 미친 여자"로 만들었다고 외치는 수밖에, 우리가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49) 같은 구절들.ㅋㅋㅋ 그리고 평소 생각지 못했던 학계의 문제들. "그것은 "고급" 이론(이 형용사를 주목하라!)을 향한 문학비평의 이동은 전국적이거나 지역적인 학문의 영역에서 인문주의자가 과학자들과 연구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 경쟁에서 승자는 항상 "부드러운" 인문주의자보다는 "강한" 과학자이고, 앞으로도 의심할 바 없이 항상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51) 그 세계도 장난 아닌 세계군 생각했다.ㅠㅠ 짧은 설명이었지만 이해가 간다. 그러할 듯.

올해 함께 읽은 <소설의 정치사>가 떠올랐다. 어려워서 이건 글자 이건 여백 이렇게 읽었는데 ㅎㅎ 그래도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 느낌?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내용을 아직 모르지만 읽으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중에 나중에 19세기 문학작품을 두루두루 찾아 읽고 나면 <소설의 정치사>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책들이 다시 읽히겠지? 그것도 잘? (과연?ㅎ)

"예를 들면 중요한 노예 내러티브의 저자인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가 <폭풍의 언덕>의 저자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서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가 메리 셸리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리고 왜 (평가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면) 더 활기를 주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20세기 초 참정권 투쟁의 시대는 더 열등한 예술적인 목소리(시인들 중에서는 크리스티나 로세티 대신에 앨리스 메이넬, 소설가 중에는 조지 엘리엇 대신 메이 싱클레어)에 의해서 특징 지워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 질문이 시사하고 있듯이 페미니스트 비평을 위해서 19세기 연구는 여전히 탐색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 " (38~39)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해리엇 제이콥스와 서저너 트루스가 나왔었는데 여기서도 만나서 검색.

*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189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로 태어난 해리엇 제이콥스는 여주인을 통해 글을 배웠다. 제이콥스는 여주인이 죽자마자 다른 백인 남성 주인에게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그녀와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거부하고 다른 백인 남성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고, 두 아이는 그녀의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강제에 복종하는 것보다 자신을 줘버리는 편이 자존심에 상처를 덜 받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녀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다음, 자신이 북쪽으로 갔다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붙잡혀 다시 노예가 되어 처벌받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주인이 살고 있는 같은 읍내의 할머니 집에 숨어 캄캄한 다락방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그녀는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을 훔쳐보면서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북부로 도피해, 뉴욕 주 로체스터에 정착하게 되었다. 로체스터는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노예 제도 반대 신문 《노스 스타(North Star)》를 발행한 곳이며 가까운 곳에 있는 세니카폴스는 여권신장대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로체스터에서 제이콥스는 퀘이커 교도이며 페미니스트이자 노예 제도 폐지론자인 에이미 포스트와 친구가 되었다. 포스트는 제이콥스에게 자서전을 쓰도록 권고했다. 《노예 소녀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Incidents in the Life of a Slave Girl)》은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되었으며 편집은 리디아 차일드가 담당했다. 이 책은 흑인 여성 노예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있다. 제이콥스의 책은 더글러스의 책처럼 식민시대의 올라우다 에퀴아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예설화(slave narrative) 장르에 속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리엇 제이콥스(Harriet Jacobs, 1818년~1896년)

* 서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

1797년 미국 뉴욕 주 얼스터 카운티의 네덜란드 지주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이자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으며 어린 시절 여러 차례 노예로 팔려 다녔다. 1810년대에 다른 노예와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았다. 1826년 갓난아기인 딸을 데리고 탈출하여 그녀를 받아준 밴 왜그너(Van Wagener) 집안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를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때부터 이름을 이자벨라 밴 왜그너(Isabella Van Wagener)라고 했다. 1829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시로 이사했다.

1843년 이름을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로 바꾸고 본격적인 설교와 노예제폐지, 여성인권과 관련된 연설을 시작했다. 1851년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열린 오하이오 여성 인권회의에서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Ain't I a Woman?)〉라는 유명한 즉흥연설을 했으며, 이후 10년 간 크고 작은 청중 앞에서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고 글도 몰랐지만 누구보다 설득력 있고 열정적인 연사로 유명했고, 이를 통해 소저너 트루스는 미국의 노예제폐지, 여성참정권 운동에 크나큰 족적을 남겼다. 1857년 9월 미시건 주 배틀 크릭(Battle Creek)에 집을 사서 이사했으며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남북전쟁 시기에는 북군의 신병 모집과 군수품 지원을 거들고, 1864년 10월에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만났다. 이후의 재건 시대에는 연방정부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해방노예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나눠주도록 하자는 운동을 전개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1870년에는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을 만났다. 1883년 11월 26일 배틀 크릭의 집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장례식장에는 3,000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배틀 크릭 오크 힐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소저너 트루스가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의 권유로 친구 올리브 길버트(Olive Gilbert)에게 구술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소저너 트루스 이야기 : 어느 북부 노예(Th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 A Northern Slave)』가 1950년에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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