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자신의 텍스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기 전에 이미 유명해진 사람으로, 텍스트의 역할을 잘 알았던 학자로,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도 살아있을 그 텍스트들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후대의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썩소를 날렸을까? 아니면 낱낱이 해부되어 알고 보니 별것 아닌 텍스트들이라는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웠을까? (본심은 아무도 모르니 상상해 본다.) 이름과 책들, 비평들, 말과 말들. 아무튼 한국어판 이 책 제목은 그럴듯하게 중의적이다. 현재를 탐구한 미셸 푸코, 현재에도 여전히 역사가이자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다. 푸코의 말마따나 우리는 지금도 '푸코의 유령'(p.225)들이 득실거리는 책의 세계에서 허우적댄다.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 누운 채로 일기를 적다가 생각하곤 한다. 만약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는 때가 오면 지금 이 일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 블로그에 비밀글로 저장해놓은 글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많지 않아도 기타 등등의 글들은.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지겠지. 가족 중 누가 발견하지도 않겠지. 아, 물론 이런 상상은 책꽂이 사이에 모아둔 현금 생각과 엇비슷하다. 발견되지 않고 사라질까 봐 거기 있다는 걸 미리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 알리고 싶지만 동시에 알리고 싶지 않은.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돈이 (되)고 하나는 돈이 안 된다는 사실? 텍스트 생각하면서 뻗어나가는 뻘가지들.
그런데 푸코 이후, 푸코와 '상관없이' 푸코 식으로 생각한 사람들(학자들)은 푸코를 알고 나서 좀 억울하지 않았을까? 응, 푸코가 이미 말했어, 너는 푸코주의자구나? 아닌데? 나는 푸코를 모른다고! 외쳐봐야 소용없다. 보잘것없는 내 일기가 존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비슷한 생각을 먼저 한 학자들의 결과물도 존재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수 있다. 파묻혔으나 사라지지는 않았던 누군가의 글이 몇십 년 후에 발견되어 푸코 이전의 업적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 (그가 여성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건... 음... 그나저나 비교할 걸 비교해라.)
저자 사라 밀스는 푸코에 우호적이다. 우호적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푸코 입문&개괄서를 쓰는데 우호적이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제아무리 '푸코의 가치를 의심하라! 때로는 과감한, 때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그의 일반화 논리를 절대 수용하지 말라! 그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가정하지 말라!'라고 책의 끝에서 외치고 있어도 푸코의 작업과 성과물을 축소, 전락시킬 위험(p.210)을 무릅쓰지는 않고, 푸코의 일반화에 대해서는 '그 시대의 특정한 문화적 경향을 드러내는 단초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p.219)고 말하고 끝이니까. (왜죠? 왜 그렇게 이해해 줘야 하죠?) 왜 안된단 말이냐고 떼를 쓰고 싶다. 물론 나는 미셸 푸코에 대해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게 다이고(워낙에 페미니즘 책들마다 안 나오는 데 찾기가 더 힘드니까) 번역서 중 가장 난해하다는 <말과 사물>을 종이와 글자만 구별하며 구경한 게 전부다. 그래서 용감하게 떼를 쓰고 싶은 건지도. 다행인 것은, 이 우호적인 저자가 푸코의 핵심 개념들을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아, 푸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였군요. 꾸벅. 그러나 그 해석은 여전히 사라 밀스님의 것임을 잊지 않을게요.
* 꼬집기
1. p.84 "... 하지만 의도적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타인의 권리와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집단이나 폭도 혹은 살인자의 권력을 옹호하는 것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
- 푸코가 '리비에르 사건'에 대한 책을 출판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다. '프롤레타리아 집단'이 앞 문장의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2. P.139 "... 이렇게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는 현재의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
-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앞부분의 방언 사용 집단('지방의 방언이나 특이한 액센트에 대한 연구')을 가리킨다.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3. p.191 "만약 광기가 동물성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치료는 단순히 이런 동물적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훈육과 폭력을 사용하면 된다. "
- 네? 폭력이요?
4. p.193 "파리에 있는 호피탈 제네랄Hôpital Général에만도 6,000명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 번역서의 아주 사소한 부분이 독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위 문장에서 Hôpital은 '오피탈'로 표기해야 한다. (h : 묵음) 프랑스어 발음을 적기로 했으면 제대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것이 많은 내가 이런 사소한 번역 때문에 여러 가지 사실을 잘못 알게 될 확률은 아마 매우 높을 것이다. 발음, 철자 표기뿐 아니라 인명, 지명을 비롯한 거의 모든 단어 번역이 그러하다.
+ 인용과 재인용의 문제. 학술서뿐 아니라 어떤 글이라도 인용문을 삽입할 때 맥락이 빠지고 부분만 떠다니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인용도 조심스러운 듯하다. 이렇게 말했다,라고 합니다,를 가져왔어요. 이중 옮김 속에서 안 그래도 정확하지 못한 의미 전달이 흐려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이 책에서도 재인용 문구들이 많이 보여 생각해 보았다.
5. p.237 푸코의 모든 것
- 이거 농담인가? 모든 '저작'도 아니고 모든 '것'이라니. 책 제목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는 적어도 웃기지는 않았는데 이 소제목은 나를 좀 웃겼다. 책 내용(푸코 주장)과 정확히 반대쪽에 있는 소제목이라니. (나중 보니 이 시리즈 책들 모두 저서와 관련서 모음 목록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