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은 종종 인간주의humanism라는 용어로 정의되곤 한다. 인간의 탄생을 찬양하거나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는 두 가지방식 중 하나로. 그러나 이러한 습관 자체가 근대적인데,
근대적 습관은 비대칭적인 채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성의 탄생은 ‘비인간성’nonhumanity - 사물, 대상, 혹은 야수-의 탄생과 동시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방관자의 자리로 밀려나면서 소거된 신crossed-out God이라는 마찬가지의 불가해 - P49

한 기원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성 자신은 양자 모두를 모른 체한다. 근대성의 발생은 우선 이러한 세 가지 존재들[인간, 바인간, 소거된 신]을 연속해서 창조함으로써,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일련의 존재들의 탄생을 은폐함으로써, 그리고 세 공동체에 대한 각각 다른 처방 -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이 서로 다른 처방의 결과로 하이브리드들이 증식하게 되는ㅡ을 내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다음과 같은 이중의 분리작용이 바로 우리가 재구성해야 할 대상인데, 한편으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의 분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위에서‘ 일어나는 것과 ‘아래에서’ 일어나는 것 사이의 분리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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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친족 관계>

오늘 밑줄.

나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에 다소 격분하면서 "하지만 그게 법이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이 갖는 위상은 무엇인가? "그것이 법이다!"라는 말은 법이란 것 자체가, 실행되어야 한다는 법에 그 실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수행적으로 부여해 주는 발화가 된다.
따라서 "그것이 법이다"는 법에 충성한다는 기호이고, 그 법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법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기호이며, 상징적 아버지, 즉 정신분석학의 법 자체에 대한 모든 비판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정신분석학 이론 속에 내재된 일종의 신학적인 충동이다. 따라서 법에 주어진 위상은 바로 남근에 주어진 위상이자 아버지의 상징적 위치, 반박할 수 없는 것, 저항할 수 없는 것에 주어진 위상이다. 이러한 이론은 자신의 동어 반복적인 방어를 드러낸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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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하딩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 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

제 5장에서의 주장을 다시 요약하자면, 성별 위계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지배집단 내 남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거나 별 두드러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가설들과 실천들을 설명이 필요한 낯선 것으로 만드는 과학적 관찰과 직관을 가져옴으로써,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증대시킨다.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친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데, 낯설음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시작이다. 18)
왜 이 성별의 차이가 과학적 자원이 되는가? 성별의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사회관계들에 대해 평가 절하되고 방치된 삶들의 관점에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가 그 문화제도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또한 시민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진 "원주민들"을 사회화하는 방식에서 배제된, "이방인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사회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며 또 별 관심이 없는, 체계적으로 억압과 착취와, 지배를 받은 자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남성들의 삶에 대한 남성들의 해석이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는, 자연과 사회세계에 대한 "승자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성별간의 전투의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생활세계에서 생각을 시작하는데, 생활세계는 여성들에게 우선적으로 책임이 부여되는 곳이며 지배집단의 활동들의 결과들 - 그 활동 - P228

18) 제 5장과 제 7장에서 강조했듯이,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은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 배워야 할 어떤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P228

들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결과들 - 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것은 문화의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이중성들을 - 특히 자연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 중간에서 조정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방인들이나 외부인들이 아닌,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좀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들"의 삶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타자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함으로써, 타자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익명으로" 응시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주체를 향해 "뻔뻔하게" 맞응시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모든 지식에의 주장들을 해석하는 데 그 핵심을 부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사람들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것은 역사의 현 시점에서 특히 광범위하게 노출된 사회모순들을 보여주는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리고 필시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과 사회관계들 내부의 규칙성들과 그 밑에 놓여있는 인과적 성향들을 특히 잘 드러내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더 많은 다른 방식들이 있다.
제 3부에서 더 분석하겠지만, 어떤 점에서 이 세상에 "여성들" 자체나 "남성들" 자체는 없으며 - "젠더"란 없다 - 단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문화, 종교 집단 등이 자원과 권력에 접근하기 위해 서로 투쟁을 벌이는, 그런 구체적인 역사적 투쟁들을 통해 구성된 여성들, 남성들, 젠더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입장론적 지식론들 자체가, 그 점을 명료하게 표현했든 안했든, 성별과 계급 위계에만 관심 있는 이론가들이 아니라(계급분석에서 출발한 입장론을 생각해보라),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는 이론가들에 의해 전개됐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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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1-0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수업 목록에서 본 책이네요. 난티나무님 밑줄로 살짝 맛보기 :)

난티나무 2026-01-06 13:52   좋아요 1 | URL
수업 안 들으면서 책만 모조리 구비한 자 ㅋㅋㅋ 접니다. ㅎㅎㅎ

건수하 2026-01-06 14:33   좋아요 1 | URL
아니 저거 절판책 아닙니까? 👍👍

난티나무 2026-01-06 14:4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본이에요. 친구 찬스!!!!!!!

하이드 2026-01-06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시작했는데, 첫페이지부터 ‘입장론‘이 뭔데? 띠용 되어서 입장론부터 대충 훑고 읽고 있습니다. ㅎㅎ

난티나무 2026-01-06 14:54   좋아요 1 | URL
저는 대충 맥락적 읽기 중 ㅋㅋㅋ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데 서문 후 일단 6장 먼저 보고 있어요. 제본이라 책 아래로 엄청나게 종이 자잘부스러기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ㅎ 하이드님 책 부럽
 

텍스트에서 자신의 한계와 이론적 결함에 대해 정직한 것이 그런 결함들에 대한 세간의 비평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는 것일까? 동시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의 맥락에서, 이런 종류의 자기를 낮추는 정직은 수사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효과적이거나 전복적일까? 아니면 그것은 여성에 대한 상투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일까?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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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챕터 [나이 듦에 관한 이중 잣대] (1972년)


영화 <서브스턴스>가 머리를 스친다. 

항상 문제는 주로 여성들만 깨닫는다는 것이지. 


아령 들러 간다. 여자는 근육이지. 



(전자책이라 페이지 표시가 종이책과 다를 수 있음.)





노년은 아무리 의연하게 견딘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역경이다. 아무리 용기 있게 항해를 계속하겠다고 고집해도 노년은 조난 사고와 같다. 그러나 노년의 이 객관적이고 성스러운 고통은 나이 듦이 주는 주관적이고 계속적인 고통과는 종류가 다르다. 노년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진짜 시련이다. 반면 나이 듦은 주로 상상 속의 시련(정신적 병폐이자 사회 병리)이며, 본질적 특성상 남성보다 여성이 피해를 훨씬 많이 본다. 나이 듦(실제로 늙기 이전에 찾아오는 모든 것)을 그렇게 불쾌하게, 심지어 수치스러워하며 경험하는 건 특히 여성이다. - P16

사람들은 상업화된 행복과 개인적 안녕의 이미지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진짜 기쁨을 주는지에 대한 인식을 좌우하게 놔둔다. - P17

완경기(수명이 늘어나면서 갈수록 늦게 찾아오고 있다)에 겪는 혹독한 상실감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 노화로 인한 우울감이다. 이 우울감은 여성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 비롯된 게 아닐 수 있다. 이 우울감은 여성의 상상력이 자꾸 ‘억제되는‘ 상태이며, 이 상태를 명하는 것은 바로 사회다. 즉, 이 우울감은 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자유롭게 상상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 P25

일반적인 몸의 개발은 여성의 과제가 아니다. 여성은 몸이 단단하고 굵고 뚱뚱해지지 않게 관리한다. 즉 몸을 보존한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정치적으로 더 보수적인 것도 여성이 자기 몸과 매우 보수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P38

여성에게 가장 가혹한 태도 중 하나는 나이 드는 여성의 육체에 본능적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는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여성을 향한 근본적 두려움, 암여우와 여장부, 요부, 마녀 같은 신화 속 인물로 드러나는 여성 악마론을 보여준다. 수 세기 동안 지속되며 서구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학살 중 하나의 원인이 된 마녀 공포증은 이러한 공포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시사한다. 노인 여성에게 느끼는 역겨움은 우리 문화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미적∙성적 감정 중 하나다.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이런 역겨움을 느낀다. (억압자는 대체로 피억압자 ‘고유의‘ 미적 기준을 부정한다. 피억압자는 결국 자신이 추하다고 믿는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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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9-10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는 근육이죠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복근을 위해 아령을 ㅋㅋㅋㅋㅋㅋㅋㅋ 들고 싶지만 현실은 2달째 헬스장 자체 파업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 너무 예뻐요. 손택은 진짜 사진만 봐도 힐링이 됩니다!!

난티나무 2025-09-10 15:14   좋아요 1 | URL
자체 파업 저도 오래 됐는데 ㅋㅋ 책 읽다 보니 심술이 나서 굳이 아령을 찾아 들어야 겠다 싶었어요. 무거운 거는 옆에 없어서 달랑 가벼운 거 하나 들고 시늉만 했습니다.ㅋㅋㅋ 복근 그게 머야요…@@ 제 배는 몇 달 전부터 부풀어올라 들어갈 생각 없어 보여요… 😞 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건가 손택이 째려보는 건가…ㅎㅎㅎ 반려지방이 생겼다네 유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