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타이거스 - 2013년 제1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최지운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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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아무 이유 없이 끌리는 책들이 있다. 내 경우는 제목이 독특할 때 손이 가는 편인데 그런 책들은 높은 확률로 재미가 있다. 반대로 죽어도 손이 가지 않는 책들도 있다. 나의 코드와 감성에 맞지 않으면 베스트셀러든 스테디셀러든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믿을 만한 게 공모전 수상작이나 대회 당선작이다. 상까지 받았으면 일단 검증은 된 거니까 느낌이 오지 않아도 읽어는 본다. 근데 간혹 어떻게 수상했지 싶을 만큼 의심되는 작품들도 있는데 이럴 때면 굉장히 당혹스럽다. 당선이 될만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당시 심사자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되고, 인재가 그 정도로 없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여하튼 끌리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으며 다시는 내 촉을 무시하지 말자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이 작품은 서울 옥수동 주변에 다섯 학교 일진들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 구역의 미친개가 누군지를 가리기 위해 날마다 싸운다. 여기서 랭크 1위의 용공고는 전국의 문제아 집합소였고, 정부는 용공고의 폐교와 옥수동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한다. 전설의 용공고 일진이 해체 위기라는 소식에 주변 학교 미친개들은 이상한 전우애를 느끼고서 애도한다. 이후 랭크 2위가 마지막 싸움을 걸어와 그들만의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아마추어 웹 소설도 이보단 낫겠다. 화자가 과거 일진들의 활약을 회상하며 기록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대사와 문장을 순화했다. 게다가 일진들의 폭력성은 조폭이나 갱단 못지않은데 이상하게 학생다운 순진함을 갖고 있어 괴리감이 느껴진다. 여튼 화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일진들은 마냥 인간쓰레기가 아니라 지들 나름의 신념을 갖고 행동해서 타 학생들에게 추앙받을만한 존재였단다. 누가 자기네 학생들을 건들면 가차 없이 응징했으니 그야말로 지구방위대 후레쉬맨이나 다름없었다. 여하튼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고, 내가 불만이었던 건 작품의 구성 방식이다. 일진 한 명 한 명을 챕터마다 소개하는데 무슨 게임 캐릭터 가이드북을 보는 기분이었다. A의 성장 배경, 싸움의 승패 및 활약, 인물의 특징 같은 이런 내용들을 내가 왜 읽고 있나 싶었다. 그리고 항상 ‘이날에 있었던 싸움은 XXX 전투로 불리며 XXX은 전설이 되었다‘라는 식으로 끝나는데, 아니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 쓰신 줄 알겠더라. 차라리 진득하게 어느 일진들의 방황기를 라이브로 들려줬다면 좋았을 듯.


물론 일진들의 이야기 뒤에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민낯이 숨어있다. 옥수동 주변 일대는 더 나은 지역을 만들자는 명분으로 용공고 폐교와 옥수동의 뉴타운 계획을 밀어붙였다. 지역민들의 마음도 이해는 되는 게, 문제아들이 험악한 동네로 만들고, 옥수동 주민들이 지역의 수준과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 대접도 못 받는 옥수동 사람들이 용공고를 옹호해준 것은 이들의 주먹만이 옥수동의 자존심을 지켜줘서였다. 언제나 패자였던 옥수동이 승자로 바뀌는 유일한 상황은, 용공고 일진들이 타 학교들을 때려눕혔을 때다. 이렇게 용공고는 옥수동을 단합시켰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학교와 지역을 지켜내려 한다. 정녕 대항수단이 주먹질밖에 없다는 것도 난센스지만 일진이 정의롭고 개념 있다는 것부터가 설정 미스여서 몰입이 깨진다. 일진을 환상의 동물처럼 묘사한 걸로 봐서 이 책은 현실 반영이 필요 없는 판타지 소설이 분명하다.


정작 중요한 옥수동 이야기는 일진들 전투씬에 가려져 평범한 액션 소설이 돼버렸다. 소재들은 따로 노는 데다 소재 간에 비율도 조화도 균형도 영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실패작들이 옵션에 문제가 있었지, 이처럼 기본 사양을 문제 삼지는 않았던 터라 아주 신선하게 당황스럽다. 보면 볼수록 심사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그건 그거고 일진을 대놓고 미화하는 것이 내내 신경을 계속 긁어댔다. 초식하는 사자가 없고 육식하는 소가 없듯이 멀쩡한 일진은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공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일방적인 폭력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가 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저자의 속을 모르겠다. 언론은 매일같이 학교폭력을 보도하는데 어째서 저자는 한 번도 일진 구경 못 해본 사람처럼 글을 써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지. 나 이러다 제명에 못 살겄다. 이제는 느낌 없는 책에 절대 도전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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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10 22: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별 두개... 맞아요~ 느낌 없는 책은 과감히 제낍시다. 점점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ㅎㅎ

물감 2021-05-10 22:40   좋아요 3 | URL
원하는 책만 읽기도 모자란 세월이니깐요ㅎㅎ

새파랑 2021-05-11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부터 영 끌리지 않는데 리뷰가 확실하네요 ㅋ 물감님 리뷰가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물감 2021-05-11 10:02   좋아요 2 | URL
간만에 성격나오게 만드는 책이었습디다... ㅋㅋㅋㅋ
리뷰쓰는동안 커피 두잔 마셨어요 ^^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장편소설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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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본좌, 김호연 작가가 돌아왔다. 뜨뜻한 귀뚜라미 보일러 감성의 작품을 가지고서. 단군 이래 경제가 늘 위기였다던 대한민국은 코로나 창궐 이후 역대급의 불황을 앓고 있다. 이제 일확천금이 삶의 목표가 된 국민들은 행복의 부재를 주식과 도박으로 대신하는 추세다. 그러든 말든 목표도 의욕도 없는 나는 저텐션의 일상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건지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인생에 아무런 낙이 없다. 독서가 취미라면서 책을 구매하는 즐거움도 잘 못 느낀다. 내 안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가 제대로 고장 났는지 사계절 내내 겨울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내가 이 책으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걸 보면 사람 냄새가 그립긴 했나 보다. 웃음이 사라진 판국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가의 수고가 고마울 따름.


김호연 작가의 팬이 된 것은 그가 슬픔을 읽을 줄 알고 작가의 소명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라서다. 그의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속에는 곳곳에 삶의 애환이 새겨져있다. 시종일관 코믹했던 <망원동 브라더스>도 그렇고,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슬픔을 노래하였다. 우리는 수많은 책을 읽고서 리뷰까지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기억에서 지워져버린다. 그건 내 머리가 나쁜 탓도 아니고 작품성의 문제도 아니다. 저자가 독자를 생각지 않고 일방통행의 글을 써서 그렇다. 반대로 양방통행의 글은 이렇게 리뷰를 쓰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명백한 후자인 김호연 작가는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와의 핑퐁을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미있고 여운이 오래간다.


여사님의 잃어버린 가방을 서울역의 한 노숙자가 되찾아준다. 잽싸게 노숙자를 스캔한 여사님은 그를 자신의 편의점 야간 알바로 고용한다. 이 신입 편돌이의 충격적인 비주얼은 직원도 손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어딘가 나사 빠진듯한 의사소통은 편의점을 불편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그는 뼈 있는 오지랖과 전지적 참견으로 타인의 고민을 해결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암튼 여러 유형의 손님들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와 부쩍 심란해진 편돌이. 대체 그는 어쩌다가 기억을 잃고 노숙자가 된 걸까. 그를 괴롭게 하는 과거는 또 무엇일까.


이 작품은 뭐랄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소설로 만든 인상을 받았다. 회차마다 다른 게스트가 나와서 이런저런 토크 좀 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유유히 퇴장하는. 순서나 분위기가 비슷해서인지 처음 읽는데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작중의 손님들은 각자 아픈 개인사를 들고 주인공을 거쳐간다. 참 많이 모자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관심법 장인이다. 손님들이 생판 모르는 편돌이에게 주절주절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얕잡아봤던 편돌이가 꼰대짓을 하자 하나같이 발톱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럼에도 주인공은 한결같은 진정성으로 남들을 대했고, 사람들은 그의 오지랖 속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고 고마워한다. 타인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도 같은 고민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실패자로 살아온 덕분에 타인의 아픔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처럼 세상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을 포함해 여러 인물들은 갖가지 패널티로 힘들어한다. 그러나 생계가 걸린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바로 무너진 관계망이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끊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외톨이가 되었으나 먹고살기 바빴던 현대인들은 알지 못했다. 실패한 인간관계가 곧 패가망신의 시발점이었음을. 그래서 작가는 인물들의 고민 해결방안으로 ‘관계 회복‘을 택했다. 관계가 틀어지는 원인은 이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인과관계를 지난날의 죄와 벌로 똑똑히 알게 된 주인공은 남들을 존중하며 공감했다. 그렇게 닫혔던 마음 문들이 열리자 가정을 되찾고 일자리를 얻는 등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핵심이 희망이라면, 이 책은 위로가 핵심이다. 위로의 순기능은 솔루션 제공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다. 멀어져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이어주고픈 주인공의 바람이 곧 작가의 바람일 테다. 주인공으로 인해 흩어진 마음들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이 작품으로 코로나에 지친 이들의 격분과 우울함이 잠시나마 진정되기를.


작가는 현재 국내에서 마주하는 온갖 불편한 상황과 감정들을, 편의점이라는 좁디좁은 공간 속에 압축해놓았다. 코로나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작은 피해조차 용납하지 않고 피해주는 사람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서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어느덧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해져 버렸고 남을 신경 쓸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근데 이 나라가 헬조선이 돼버린 건 단지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다. 취업과 경제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사람들은 자발적 아싸가 되었고 일인 가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불편한 사회의 시스템을 감수하느니 포기하고 맘 편히 살겠다는 뜻이렸다. 나 역시 병든 이 나라에 희망을 버린 지 오래인데 김호연 작가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기억이 돌아온 주인공이 코로나 피해지역에 의료봉사를 하러 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결말에 내포된 메시지는 직접 읽고 파악하길 바란다. 끝으로, 다 좋은데 분량이 너무 짧은 게 흠이다. 이런 작품은 분량 조절 실패로 한 사백 페이지 정도는 써줘야 했다. 차기작은 그런 미덕을 가져주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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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3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3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디어 에드워드 - 살아남은 아이, 유일한 생존자이자 신이라 불린 소년에게
앤 나폴리타노 지음, 공경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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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일생일대의 대사건을 말할 기회가 찾아왔다. 군대를 나오고 첫 직장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 교통사고가 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를 신호위반의 승용차가 들이받았다. 이후 긴 시간을 망가진 육체보다 집 나간 멘탈로 괴로워했다. 목숨은 건졌으나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불구로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박탈당한 사회활동으로 불투명해진 미래, 하는 것도 없이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는 나날들. 나는 이토록 죽겠는데 태양은 여전히 눈이 부시고 새들은 노래하며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차라리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분노는 곧 염세주의로 바뀌었고 이내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집착했던 모든 게 다 부질없고 헛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욕심과 미련이 사라지고 나니 불안과 열등감으로 요동치던 내 삶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갑자기 내 인생사를 꺼낸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의 입장이 나의 과거와 여러 가지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미는 없었는데 내 옛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잡 미묘한 작품이다.


에디는 추락한 항공기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소년이다. 이모 집에서 살게 된 소년은 학교를 다닐 만큼 회복하지만 마음은 낫질 않는다.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기를 수년째, 어느 날 차고에서 편지가 가득 담긴 가방을 발견한다. 편지는 전부 항공기 사고의 유가족들이 소년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겨우 삶의 의미를 되찾은 소년은 그를 기다리는 유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보통 이런 소식을 듣게 되면 당사자의 아픔보다 앞으로의 생계 문제가 더 걱정이 된다. 다행히 에디는 곧바로 보호자가 생겼고, 치료비와 학비와 생활비 등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생계문제를 단박에 해결해버린 작가는 이제 소년의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남들은 아이가 없는 이모 집안에 소년이 와서 서로가 잘 된 거라고 한다. 그러나 소년은 이모를 방해하고 감정을 망치는 존재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이모와 이모부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지만 소년의 문제로 자주 다툰다. 그 광경은 친부모의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웃집에 사는 동갑 친구 쉐이에게는 자유분방하고 당차던 형의 모습이 보였다. 이모를 보면 얼마 얼굴이 생각났고, 수학시간에는 수학자였던 아빠가 생각났고, 위축된 자신을 볼 때마다 정반대 성격이었던 형이 생각났다. 원치 않는 유명인사가 된 에디는 차라리 형이 살았어야 했다며 수없이 자책한다. 내 삶이 중요했던 나는 자기혐오가 겉으로 마구 표출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먼저였던 에디는 자기혐오를 속으로 삭히고만 있었다. 그러니 아픔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년을 일으키는 데에 공조한 삼 인방이 있다. 첫 번째는 교장 선생님이다. 화분에 심은 고사리들을 기르는 게 취미인 교장쌤은 소년에게 화분 관리를 맡긴다. 묵묵히 고사리를 가꾸며 심신의 안정감과 차분함을 얻은 소년은 병으로 죽어가는 식물을 보며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였던 그가 처음으로 다른 대상을 불쌍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에디의 정신 치료 담당 의사다. 수십 번의 상담으로도 진척이 없는 소년을 포기하지 않고 그의 졸업식까지 찾아와 축하해준 의사. 그에게 부친의 애정을 느낀 소년은 받기만 하던 입장에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세 번째는 단짝 친구 쉐이이다. 모든 일이 두렵고 낯설었던 소년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별것도 아님을 깨닫게 해준 친구. 무엇이든 겁 없이 맞서고 행동하는 쉐이의 영향으로 속앓이를 겉으로 표출하는 데에 성공한 소년. 겨우 본인의 삶을 우선시하는 법을 터득하고서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감당 못할 큰일을 당해서 도저히 치유가 불가할 때 흔히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픔에 무뎌지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성숙해진 자신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확실한 건 스스로 성숙해질 수는 없다. 나무가 잎사귀를 내고 열매를 맺으려면 햇살과 비와 바람이 있어야 한다. 소년은 그런 햇살 같고 비 같고 바람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회생할 수 있었다. 공청회를 참석한 유가족들의 시선도, 그들의 편지 속 내용들도 감당키 힘들었던 에디. 희생자들의 삶과 이상을 소년이 이어받아 살아주길 당부하는 유가족들. 고통 속에서 자신을 꺼내주었던 주변인들처럼 자신도 유가족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이제 삶의 일 순위는 가족에서 자신으로, 그리고 타인으로 바뀌었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건 나의 쓸모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었을 때 솟아나는 벅찬 감정이 나를 살게 해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나와 같은 결말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남 얘기 같지가 않았고 슬픔을 이겨내어 삶의 의미를 되찾은 주인공이 참 대견했다. 사실 이런 감동 실화들은 교훈이나 메시지를 두지 않아 독자들의 반응이 갈리는 편이다. 슬픈 이의 마음은 슬픔을 아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큼 본인도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는 뜻일 테니. 슬픔이 현재진행형인 분들도 곧 해 뜰 날을 볼 것이다. 부디 지금의 시간들을 잘 견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쓸모를 꼭 발견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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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4-25 2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힘든 시기가 있으셨군요.ㅠㅠ 보통 힘든 시기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시간만큼 성숙해진 자신이 해결한거라는 물감님 글이 가슴에 와닿네요. 우리 안에 그런 힘이 있다는 의미니까요.

물감 2021-04-25 22:25   좋아요 1 | URL
당시에는 죽도록 힘들었지만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좋아요~ 근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성숙해질 필요는 없겠어요🙂

붕붕툐툐 2021-04-25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얘기라고 말씀 안하셨으면 그냥 작품 얘기인 줄 알겠어요~ 터널을 통과하신 후 더 멋진 삶을 살게 되신 거겠죠?
【아픔에 무뎌지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그 시간만큼 성숙해진 자신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이 말 너무 좋아요~ㅠㅠ
고난이 사람을 가장 성장시키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성장하기 싫지만, 고난이 온다면 성장의 기회로 당당하게 맞이하겠다고 늘 다짐해요~

물감 2021-04-25 22:38   좋아요 2 | URL
저도 그냥 작품얘기였으면 좋겠어요ㅎㅎ터널이 참 길었거든요. 아픔을 잊어보려고 독서에 취미를 들인것도 있었는데 정말 효과를 많이봤어요. 그래서 저는 책을 못 끊을거 같아요^^ 고난이 성장의 기회라면 저도 성장하긴 싫어요.하하하

scott 2021-04-26 0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슬픈 이의 마음은 슬픔을 아는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 합니다. 의지가 희망이 되어 긴 터널속에 갇히지 않고 빠져 나오신 물감님! 지금 현재 더 멋지고 건강하게 살고 계시리라! ㅎㅎ이책 그리 재미없다는 솔직한 리뷰에 ㅎㅎ 역쉬 💥세개 냉정 하쉼 ^ㅎ^

물감 2021-04-26 08:06   좋아요 1 | URL
더는 잃을게 없다고 생각하고나서부터 노빠꾸 인생이 되었습니다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4-26 0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께서 사고를 당하셨군요. 그래도 잘 이겨내셔서 다행입니다.^^:)

물감 2021-04-26 08: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행히 좋아져서 이렇게 알라딘 이웃들도 알게 되었네요🙂

그레이스 2021-04-26 06: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드셨겠어요. 겪으셨을 고통을 다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이런 글을 쓰실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떠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이런 글을 쓰시는 걸 보니,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물감님도 글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보내실 수 있으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감 2021-04-26 08:25   좋아요 3 | URL
책을 읽지 않던 시절에도 글을 자주 썼었는데요, 힘든 때에 글을 쓰면 치유의 효과가 있더라고요. 혼잡한 심정을 재우려 독서를 하고 리뷰를 쓰면서 스스로를 다독여나갔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멀쩡히 잘 살고 있었네요^^

그레이스 2021-04-26 08:27   좋아요 1 | URL
독서와 글쓰기, 힐링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어릴 때는 누가 어깨를 살짝만 주물러도 아파했었다.

지금은 제발 누가 좀 어깨를 주물러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릴 때는 건강식품을 꼭 챙겨 먹으라는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다.

지금은 종합 비타민, 오메가3, 홍삼액, 삼계탕 등등 몸에 좋은 건 다 찾아먹는다.


어릴 때는 너무 팔팔해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속 버려서 매운 것도 못 먹고 라면도 끊고 오직 살기 위해 러닝을 한다.


어릴 때는 인맥 넓히는 게 중요해서 매일같이 약속을 잡고 누군가를 만났다.

지금은 나 자신을 챙기기도 벅차서 일부러 인맥을 잘라내는 중이다.


어릴 때는 커피를 마시면 48시간을 깨어있어야 했다.

지금은 하루에 커피 넉 잔을 마시고도 숙면에 전혀 문제가 없다.


어릴 때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락 음악이 최고였다.

지금은 높은 데시벨을 못 견뎌서 발라드만 듣고 산다.


어릴 때는 더위를 많이 타서 덥기만 한 여름을 혐오했다.

지금은 몸에 열이 없어 여름이 가진 활력과 청량함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뭐든지 앞서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늘 열등감에 차있었다.

지금은 지치거나 멈추지 않기 위해 오히려 적당한 템포를 유지하려 한다.


.

.

.


이렇게나 많이 변했는데도 너는 내가 예전과 똑같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슬며시 과거로 가서 그 시절의 나를 억지로 데려온다.

가면을 벗은 내 모습에 네가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니까.

다른 건 다 변했어도 이것만큼은 좀처럼 바뀌지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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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4-22 16: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훠엄훠 이거 사랑 얘깁니까?(눈치가 없는 편)

물감 2021-04-22 17:12   좋아요 4 | URL
아니어도 맞다고 해야겠는데요?(별 생각 없는 편)

새파랑 2021-04-22 17: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와 지금의 비교 완전 공감이 가네요~ 특히 젊었을 때 들은 락 음악들이 잘 안들어지게 된다는 ㅎㅎ

물감 2021-04-22 17:24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도 락을 좋아하셨나요? ㅎㅎ
전 지금도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즐겨듣지는 않네요🙂

새파랑 2021-04-22 17:28   좋아요 4 | URL
저도 예전처럼 안듣게 되더라구요. 새로운것 찾아듣기 보다는 들었던 그룹만 듣게된다는 ㅜㅜ

물감 2021-04-22 17:33   좋아요 4 | URL
요즘은 들을 노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죠. 그래서 한참 듣던 노래와 가수만 평생 찾게 된다더군요ㅎㅎ 지극히 정상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4-22 18: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락 => 발라드 => 를 지나 나이가 더 드니 이제 음악도 귀찮습니다...ㅠㅗㅜ 홍삼 효험 보셨는지요? 요즘은 비교적 잘 먹고 잘 자는데도 기력이 너무 딸리네요.

물감 2021-04-22 18:32   좋아요 4 | URL
홍삼은 체질에 따라 갈릴거에요. 만성피로시면 간 때문일 확률이 높습니다. 병원가서 상담후에 우루사 처방 받으세요. 약국서 파는 우루사말고 처방전 전용 우루사가 따로 있어요. 효과 대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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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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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삼대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지만 이게 부족하다 해서 욕구불만이 생기진 않는다. 그럼 언제 욕구불만이 생기느냐. 집 없고, 직장 없고, 자신이 쓸모없을 때다. 적어도 내가 사는 현대에서는 그렇다. 이 중에 하나라도 가지기 어려워 N포세대가 생겨났고 포기하면 편하다는 관념에 지배되기 시작했다. 이미 수 년 전에 시작된 과도기가 해마다 갱신되는 한국은 참 어메이징한 국가이다. 서두에 이런 우울한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에 나온 스티븐 킹의 신작이 한 사람의 인생 파탄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인생은 외로운 원맨쇼라 했던가. 과연 그 말이 딱이었다. 


남자의 집과 직장이 있는 지역은 고속도로 확장공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회사 건물도, 집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 긴 시간을 함께한 남자는 회사도 집도 비켜줄 생각이 없다. 결국 회사에 사표 내고 아내와도 갈라섰지만 절대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불행을 지긋지긋하게 겪어온 주인공의 불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모든 불행을 끌어안으며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한 그는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키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자기 연민, 자기혐오가 너무나 강렬해서 그것만 보다가 진짜 핵심을 놓치기 딱 좋다. 과연 작가가 한 개인의 불행을 보여주려고 이런 장편의 글을 썼을까. 흔한 내용일수록 심드렁하기보다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의 포인트를 크게 두 가지로 간추렸다. 첫 번째는 인생의 굴레이다. 사춘기가 뭔지 모르는 친구들도 세상의 불공정함을 잘 안다. 인맥과 관계, 경험과 직감, 운과 노력, 하다못해 타이밍까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이 세상은 우리가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SF 영화 세트장 같은 것이다. 따라서 왜 나는 불행할까,가 아니라 원래 인생의 사이클은 불행한 게 정상이다. 심지어 잘 살고 멀쩡한 사람도 불행하다고 말하거든. 하물며 이 책의 주인공은 어떤가. 직장을 잃고, 가족과 멀어지고, 터전도 뺏기게 생겼다. 철저하게 고립된 그는 술과 약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작가가 너무 진흙탕에 쑤셔 넣는 기분도 들지만 그보다도 정제되지 않은 삶의 날것을 골고루 먹여주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마치 세상은 원래 시궁창이고, 인간은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사실 이 같은 메시지는 타 작품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크게 와닿는 이유는 주인공이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같은 남자로서 참 마음 찢어진다.


두 번째로는 주인공의 부성애이다. 오래된 집에 온갖 추억이 깃들어서 차마 떠날 수 없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데 직장도 관두고 아내와 헤어지면서까지 해서 집을 지키려는 그의 행동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화염병 던지고 총질하는 무법자가 되어 정부와 싸우려는 건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면 이 남자의 외로운 투쟁이 옳지는 않아도 납득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만큼 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주인공처럼 소중한 기억일 수도 있고, 굳건한 신념이 될 수도 있고, 나를 살려준 은사의 말 한마디가 될 때도 있다. 반대로 그것들이 당사자의 발작 버튼이라서 건들었다간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평소 조용한 사람이 빡 돌면 더 무섭듯이 말이다. 그럼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와서, 남자가 지키려던 건 병으로 떠나버린 자식과의 시간들이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보냈는데, 이제는 집까지 못 지키고 떠나보내게 생겼다. 그에게 집은 곧 자식이나 다름없으며, 집을 지키는 건 곧 아들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자식을 빼앗으려는 정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의 저항은 당연한 거였다. 이걸 캐치하지 못하면 주인공을 그저 정신 나간 사람으로만 보게 될 테니 주의하시길.


놓치면 안 될 또 한 가지는 바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과정이다. 별거 중에도 식을 줄 모르던 아내 사랑이 갑자기 확 식은 건 아내가 아들에 대한 미련을 접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한데 아내는 벌써 아들을 보내줄 준비가 끝나있었다. 아내는 이만 아픔을 정리하려고 집을 나간 거지만 그에게는 자식을 내다 버린 무정한 여자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아내가 다른 누굴 만나서 새 출발을 한다 해도 아무렇지가 않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자살할 생각도 품게 된다. 어쩌면 그의 발작 버튼을 누른 건 아내였는지도 모른다. 과연 주인공의 말대로 삶이란 그저 지옥으로 가기 전의 준비 장소에 불과한 것일까.


킹 슨생은 본인만의 확고한 철칙과 철학을 가진 글쓰기로 유명하다. 하루키는 ‘문장의 울림‘을 중요시하는 듯하고, 스티븐 킹은 ‘문단의 개연성‘을 더 신경 쓰는 듯하다. 그래서 하루키의 세련된 글은 담백한 순문학에 어울리고, 킹의 계산된 글은 치고 빠지는 장르문학에 적절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재밌게도 장르소설에 순문학 감성을 입혀놓았다. 정말 스티븐 킹이 괜히 천재 작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장르소설이 다루는 휴머니즘은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런 게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해준다고나 할까. 부디 당신도 이 거칠고 퍽퍽한 작품 속에 숨겨진 따스함을 꼭 발견하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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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7 2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문장의 울림‘을 중요시하는 듯하고, 스티븐 킹은 ‘문단의 개연성‘을 더 신경 쓰는 듯하다. 그래서 하루키의 세련된 글은 담백한 순문학에 어울리고, 킹의 계산된 글은 치고 빠지는 장르문학에 적절하다]우와! 물감님 두 작가 비교가 정확! 하루키옹은 음악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킹슨생은 그야말로 대중들에게 널리 읽혀지는 글이 뭔지 잘 아는 영리한 ㅎㅎ 물감님 리뷰 읽고 난후 곧바로 킨들에서 로드워크 구매 완료 함 ^ㅎ^

물감 2021-04-17 23:50   좋아요 2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력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확실히 연구하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어요ㅎㅎ
어깨너머로 공부를 배우는 기분이랄까요? 단점은 필력 구경하느라 작품에 집중이 잘 안될때가 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