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들 메두사 컬렉션 2
제프리 디버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 사랑 제프리 디버의 작품으로 2019년을 장식하려 했는데 벌써 해가 바뀌어버렸네. 이제는 책도 잘 못 읽고 글 쓰는 것도 줄어서 리뷰 쓰는 게 어려워진다. 잘 쓸려고 하면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나는 잘 쓰려고 하지도 않는데 어려워하는 걸 보면 점점 머리가 굳어지는 게 실감이 난다. 최근에는 리뷰 쓰기가 막막한 작품이 엄청 쏟아져 나오는데, 고차원 작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님은 그냥 이런 대중소설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 작가는 ‘링컨 라임 시리즈‘로 이름 날렸지만 스탠드 얼론도 여러 권 발표했는데, 이번 작품은 솔직히 ‘빅 재미‘ 타입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재미 오브 재미‘ 타입이랄까. 다른 작가의 책이라면 대박이라고 느꼈을 텐데, 제프리 디버가 썼다고 하니 평범하게만 느껴지는군. 맨날 자극적인 것만 먹다 보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더 맛있고 그런 거지 뭐. 나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 거니. 진짜 뇌가 안 돌아가네. 퇴화한 게 확실함.


인적 없는 호숫가의 별장에서 두 킬러에게 부부가 살해된다. 그곳을 방문한 여경찰 브린은 킬러들의 다음 타겟이 된다. 차도 고장 나고,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무기마저 없어 곤란한 상황. 여기에 피해자 친구까지 보호해야 한다. 주인공은 산악 지형을 이용해 킬러들을 속이고 따돌리지만 철없는 동행인 때문에 사태가 점점 악화된다. 한편 연락 두절된 아내를 구하러 별장으로 달려가는 남편과 경찰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감시자가 있다. 숨 막히는 추격전과 함께 드러나는 흑막의 실체. 과연 브린은 죽음의 그림자를 끊어내고 무사할 수 있을까.


단순한 소재에 평범한 플롯이라서인지 주목받지 못할만하다. 그런 조건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라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일단 스릴감은 충만하나 임팩트가 약한 것은 산속에서 써먹을만한 무대 장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면 별 자극 없는 밋밋한 전개가 되는데, 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작가가 캐릭터 설정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정말 캐릭터만 잘 잡아도 웬만큼 스토리가 산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전체 줄거리를 먼저 구상하고 나서 캐릭터를 만드는데, 디버는 반대로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줄거리를 짠다. 근데 이렇게 되면 스토리보다 개인의 성장에 더 비중이 커져버린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캐릭터는 3D의 느낌이지만, 스토리는 2D의 느낌이라서 양쪽이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구간이 꼭 생긴다. 그러나 디버는 어느 지점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에 위화감이 없고 작위적인 기분도 들지 않는다. 증말 인간미 없는 알파고 같으니.


주인공 브린은 완벽한 모범 경찰이었지만, 가정에서는 온통 불안함 투성이였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재혼한 남자는 딴 여자와 바람난 상태다. 게다가 문제만 일으키는 아들 소식으로 정신이 없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는 이유는 집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도, 나만 참고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지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 이거 너무 공감되는데? 살면서 총대를 메야 하는 때가 왜 그리도 많은 건지 참. 암튼 일이나 훈련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개인의 문제는 상황을 회피하기 바쁜 그녀는 전형적인 외강내유 컨셉이다. 이랬던 그녀가 킬러들과의 생존게임을 통하여 약점을 극복해내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진짜 액기스는 따로 있으니 너무 액션 쪽만 보지 마시고 인물의 불안함 쪽에 더 주목하시길.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쉴 때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말이었다. 내 성격상 처리할게 생기면 잠들면서도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게 잘 안된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방지턱도 많고, 유턴 구간도 많고, 기름도 자주 바닥나는 걸까라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방지턱이야 살살 넘으면 되고, 길을 잘못 들면 돌아가면 되는 거고, 기름이 없으면 채우면 된다는 것을 작가가 상기시켜주었다. 긁어 부스럼이 싫다고 피하기만 하는 것은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마주하고 부딪혀서 결론을 내야만 얽매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니 주인공 브린처럼, 애써 모른 척 중인 미처리 건이 있다면 새해에 다 풀고 해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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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1-07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문>제목의 ˝남겨진 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살해된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기타 등등인가요? 왜 제목이 ‘남겨진‘일까요? 내용과의 연관성을 잘 모르겠습니다.^^;;

<동감>마지막 단락. 그 느낌 뭔가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처리할 일이 있으면 그것만 계속 생각했거든요. 자발적으로 생각한다기보다는 계속 생각이 나는 거요. 일이건 사람이건 어떤 대상이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그런 성향을 보였다는ㅠㅠ 한 번 필 꽂히면 내 눈엔 너만 보여~이런 식이죠. 흠.. 은근히 지가 저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작년에 읽은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에 나오는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전부터 조금씩 노력은 해왔지만 이 말에 얽힌 일화를 읽고 나니 생각을 내려놓는 게 조금 더 잘 되더라구요. 새해에는 찜찜한 거 빨리 잊고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인간상으로 거듭나보려구요.ㅎㅎ

물감 2020-01-07 21:3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나비종님 ㅎㅎㅎ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목에 대해서 일부러 코멘트를 달지 않았습니다. 듣는 순간 바로 스포일러가 되는 작품이라서요 ^^;; 스포를 피하다보니 리뷰가 계속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는...

생각하기 싫어도 계속 생각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이다지도 갉아먹고 있었구나 싶어요. 전 완벽주의자도 아닌데 왜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ㅎㅎ
저 역시 내려놓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걱정하는 습관을 줄이다보면 점차 마음에 평화가 오겠죠 뭐 ㅋㅋㅋ

참, 이번주부터 모래그릇 1권을 읽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아서 2권다 금방 읽겠더군요. 전혀 무리하실 필요 없을듯 합니다. 2월에 몰아서 보셔도 될 듯해요 ㅋㅋㅋ

나비종 2020-01-07 22:17   좋아요 1 | URL
그렇게 깊은 뜻이!!^^ 그렇군요~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리뷰 쓰기를 조금 난감해하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전히 MSG 없는 국물맛이 느껴지지만, 뭐랄까 살짝 덜 끓인 김찌찌개 같은 맛이 나더라는 ㅎㅎ^^;;

갉아먹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는 완벽주의자였는데 요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구멍들이 생기더라구요ㅜㅜ 내려놓기가 잘 되지는 않지만 계속 노력하다보면 내려놓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은 짧아지겠죠? 물감님과 나비종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화이팅!! 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불안의 책>인데요, 가독성은 개나 줘버릴까 어느 순간 읽다 집어던질까 불안불안합니다ㅋㅋ 무모하게 도전했나 싶기도 하고..하아~
내일부터는 22일에 할 독서토론책 먼저 읽고, 독후감 쓰고, <모래그릇>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가독성이 좋다니 다행이네요~ㅎ
 
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나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소설이 다 존재하지? 올해의 베스트 도서는 무조건 이 책이다. 이 한 권에 웬만한 장르가 다 들어가 있다. 심리, 액션, 추리, 첩보, 정치, 역사, 미스터리, 사회 등등. 이 많은 요소들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균형을 갖추었고 스토리 또한 고퀄리티를 보여준다. 난 가끔 ‘예술의 경지‘에 이른 모든 것들이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 예술성에 이런저런 이유와 코멘트를 붙일 필요 없이 그저 멋지다, 대단하다는 말로도 충분하다고나 할까. 내게는 이 작품이 딱 그런 느낌이어서 굳이 내 생각과 견해들을 넣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리뷰인데 뭐라도 써보도록 하겠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말이 안 나올 때 있잖아? 그런 경험을 문학으로 느껴본 건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 이후로 이 책이 두 번째다. 별점 짠돌이인 내가 이런 평을 했으면 말 다한 거임. 감히 별 다섯 개만 가지고는 부족해. 지구인들아, 부탁한다. 나에게 별점을 나눠줘!


소련의 국가안보부 요원인 레오는 그를 시기하던 부하의 계략으로 지방 민병대에 좌천된다. 그곳에서 알게 된 어린아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국가는 이 사건들을 은폐하려 하고 레오 부부를 반역죄로 죽이려 한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마침내 살인마를 만난 주인공은 잃어버린 과거를 직면하게 되는데...


밑반찬까지 완벽한 맛집 같은 작품이다. 모든 장면과 요소에서 글맛이 느껴진다. 먼저 배경부터 보자면 스탈린이 통치하던 구 소련이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이 사회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반혁명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오직 국가와 본인, 이 관계 외에는 어떤 관계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가족이든 동료든 의심되는 자는 죽어마땅했다. 국가안보부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든답시고 국민에게 주기적으로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그런 일에 앞장 서던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감정을 거세당한 그였기에 아내가 스파이로 밝혀졌을 때 가차 없이 끌고 가 고문할 줄 알았건만, 인조인간이었던 레오는 아내로 인해 인간다움을 점차 갖춰갔고 살신성인하는 모습마저 보여주었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바뀌는 것인가.


레오를 사신처럼 따라다니던 바실리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출세와 승진에 눈이 멀어 자신의 상관을 좌천시키는데 성공한 그는 훗날 레오의 상관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레오가 아닌 그의 가족들을 괴롭혀서 레오의 고통스러움을 즐긴다. 여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했는데, 더 이상 괴롭힐 상대가 없어져 허전함에 어찌할 바 모르는 꼴이나, 레오가 탈출했을 때 다시 만날 생각에 기뻐하는 꼴을 보니 그냥 변태 스토커일 뿐이었다. 잘만 다듬었다면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같은 캐릭터가 탄생할 수도 있었는데, 이건 뭐 열등감으로 무장한 드래곤볼의 ‘베지터‘에 가까웠다. 뚜렷한 악역은 얘 하나인데 비중이나 존재감에 비해 너무 평범한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그래도 이놈 덕분에 레오 부부가 누명을 벗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뻔한 결말도 좋더라고요.


현대 스릴러 작가들은 두 사건이 교차되다가 후반에 하나로 엮는 플롯을 주로 쓰는데, 이 책은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은듯한 플롯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레오 이야기와 연쇄살인사건, 두 줄기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진행된다. 여기에 등장인물을 줄여서 불필요한 장면들을 최소화하였다. 이런 장치들 덕분에 두꺼운 분량에도 읽는 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이것이 서른 살에 쓴 데뷔작이라니, 참 여러 번 놀래키시는 작가일세. 작품 속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신기하게도 추리가 필요한 듯 필요 없었으며, 범행 동기가 궁금하면서도 중요치 않은 캐릭터였다. 당최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읽어보시길. 범인이 러시아의 실제 연쇄 살인마를 모델로 탄생되었다는데, 과연 러시아는 무서운 나라였다. 어떤 서평가가 말하길 범인이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서구의 문명을 원치 않는 소련이 변화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라 해석하였다. 그렇게 보니 독재정치의 무서움과 위험성이 실감이 난다. 근데 진짜 무서운 건 민주주의에서 일어나는 독재일지도 모르지.


주인공을 보면서 계속 생각나던 인물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의 바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앞장서서 잡아넣고 죽이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진리를 깨달은 뒤 완전히 딴 사람이 된다. 이전의 지식들과 스펙은 전부 배설물로 여겼고 전도여행을 하면서 죽을 위기도 여러 번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간 것은 믿음과 소망 이전에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도 똑같다. 완벽한 스펙을 가진 레오는 사회주의의 오류를 깨닫고 나서 국가의 적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을 막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정한다. 레오 역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또 자신의 지난 죄를 속죄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 않았을까. 여차여차해서 범인도 잡고 레오 부부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절대 바뀌지 않을듯한 이 나라가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이상, 재미와 교훈과 감동의 삼박자가 완벽했던 소설, ‘차일드 44‘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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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12-18 0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정말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2,3권도 있으니 레오가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세요. 그나저나 이 작가 작품 신간을 늘 기다리는데 전혀 소식이 없네요.

물감 2019-12-18 07:42   좋아요 1 | URL
저는 한 권짜리로 읽은거에요ㅎㅎ분권되기 전에 나온거^^ 진짜 대박이란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coolcat329 2019-12-18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네 정말 👍👍👍입니다.

coolcat329 2019-12-18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시크릿 스피치>,<에이전트6>가 합쳐져 있는게 아닌거 같은데요...레오 시리즈가 이렇게 세 권이거든요.

물감 2019-12-18 10:50   좋아요 1 | URL
아 그러면 이 한권이 세권으로 나뉜게 아닌건가요? 이런 빅뉴스가! 2,3권도 재미있나요? 급 흥분되네요ㅎㅎㅎ다 구매해야겠습니다! 좋은정보 감사해요^^

coolcat329 2019-12-1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각각 별개의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레오에요. 레오가 좋으시다면 꼭 읽어보세요. 🤗

물감 2019-12-18 11:00   좋아요 0 | URL
ㅎㅎㅎ넵 쿨캣님 좋은하루 되세요😁😁😁

짜라투스트라 2019-12-18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책이죠ㅋㅋ

물감 2019-12-18 18:04   좋아요 0 | URL
역시 알고계시네요ㅋㅋ
진짜 돈이 안아까운 책입니다😃😃😃

나비종 2019-12-20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빵한 별 다섯 개를 획득한 맛집의 고퀄이 궁금해지는데요?ㅎㅎ

사람이 사람으로 바뀐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같은 맥락일까요? 책에는 작가가 담겨있으니 종이로 된 사람과 마찬가지이니까요.^^;

물감 2019-12-21 16:31   좋아요 1 | URL
이 별점 짠돌이를 함 믿어보십쇼ㅎㅎ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위해 책을 읽는건 아니지만, 읽기전의 나보다는 좀더 괜찮은 내가 되어있다고 믿습니다ㅎㅎㅎ

서니데이 2019-12-24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물감 2019-12-24 18:00   좋아요 1 | URL
저는 매번 서니데이님을 통해 마니아소식을 듣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하구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열심히 달려오시느라 수고많으셨어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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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히틀러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다. 가수들의 가수가 조용필이라면, 작가들의 작가로 손꼽히는 그런 분이다. 보통 유명 작가들은 저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다.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통찰력, 정유정의 혼수상태 분위기 조성, 장강명의 강속구 팩트, 하루키의 우주를 갈아 넣은 감성, 스티븐 킹의 기괴한 상상력, 요나스 요나손의 B급 유머 코드 등등.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장점들 중에 헤밍웨이는 문장의 간결함으로 유명하던데 과연 읽어보니 잘 알겠더라. 문장들이 주인공인 노인의 이미지를 닮아있다. 근육이 다 빠져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느낌이랄까? 간결함의 영역을 초월하신듯. 이렇게 살을 붙이지 않으면 글의 방향이 뚜렷하고 읽기가 수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다. 단점은 글맛이 없어서 독자의 문학적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이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가 감성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노인이 바다에서 청새치 잡는 내용이 전부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대체 어떤 교훈을 주길래 전 세계가 열광했을까. 짧은 내용을 더 짧게 요약해보자. 오랜만에 소개팅 나간 늙은 어부는 끈질긴 구애로 까칠한 그녀의 마음을 쟁취한다. 그녀와 드라이브 좀 하다가 집 구경도 시켜줄 계획이었는데 왠 양아치들이 쫓아와 두 사람을 방해한다. 격렬한 공방전 끝에 그녀는 목숨을 잃었고, 순정파 어부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비록 그녀를 지키진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용맹함에 존경을 표한다. 디 엔드.


어쩌다 보니 슬픈 이야기가 돼버렸는데 절대 슬픈 이야기가 아닌 거 다들 아시제? 암튼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얼핏 보면 노인의 생존기 같지만 사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내용에 더 가까웠다. 먼저 노인은 84일간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이건 마치 음식점에 파리만 날리는 꼴과도 같다. 엄청 괴로웠을 텐데도 노인은 자신을 따르는 소년 앞에서 허세 부리지 않았고 오로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또한 바다에서 홀로 긴 시간 동안 외로움에 버려졌지만 자신의 양손과 대화를 해가며 고독을 이겨내곤 했다. 특히 청새치와의 사투가 길어져 멘탈이 휘청일 때에도 노인은 끝까지 싸워서 스스로를 증명해 보였다. 이렇게 연속적인 시련에도 불평 없이 답을 찾아나가는 인생 선배님의 다이나믹한 이야기는 길이길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었다.


물고기 잡으면 끝인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상어의 등장도 쇼크였고, 청새치의 운명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나 싶더니 그것도 아니고 말야. 상어들에게 다 뜯긴 청새치를 보고 허탈함에 빠진 노인이 혹여 바다에 목숨 버리진 않을까 걱정되더라. 어쩌면 이 여정은 한여름 밤의 꿈만도 못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괜히 항해를 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상어에게 죽을뻔 한 일이나 잡아온 고기를 다 뺏긴 것보다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지 못한 게 더 속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년에게 증명해 보이지 못한 점에서 가장 괴롭지 않았을까. 곁에 아무도 없는 노인의 삶에 빛이 되어준 소년에게 늘 실망만 안겨주었던 지난날들. 겨우겨우 베테랑 어부의 위엄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뼈만 남은 청새치를 가져가려니 그 비참함을 어떤 말로 표현하리. 그렇게 모든 면에서 대실패한 항해인 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비록 수확은 없었지만 소년과 어부들에게는 노장의 투혼을, 독자들에게는 고난을 헤쳐나가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 짧은 노인의 이야기는 작가의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다. 헤밍웨이도 바다낚시를 즐겨 했고 고독과 자주 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노인의 혼잣말이나 생각들이 그렇게 생동감 있었나 보다. 노인이 배 위에서 겪은 수난들처럼 작가도 많은 수난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헤밍웨이는 그 어려움들을 다 받아들이고 살다 간 게 아닌가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영웅이란 타이틀은 꼭 지구를 구하고 시민을 지켜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책 속의 노인처럼 어떤 일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가진다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런 영웅들을 매일매일 만난다. 집 앞에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청소부들, 낙엽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 새벽부터 김밥 팔고 토스트 만드는 어머님들... 노인처럼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모든 분들이 진정 이 시대의 영웅이다. 그러니 고난을 마주하여도 절대 기죽지 말자. 어차피 이번 거 지나가도 고난은 또 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게 속 편하고 좋아. 어디든 오랫동안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더라고. 여하튼 배울 점이 많았던 할배의 나이스한 이야기였습니다. 한 5년 주기로 읽어주면 좋을 듯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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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9-11-26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읽은 지 5년이 넘었네요. 다시 읽어야되겠습니다. 이웃 영웅들이 주는 힘을 생각하면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11-26 07:08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아 기분이 묘합니다. 우리 함께 알라딘의 영웅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coolcat329 2019-11-2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올해 두 번 읽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온몸을 던져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숭고함에 존경의 마음이 솟아납니다.글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19-11-26 16:05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 분들이 없다면 우리는 날마다 위기를 맞을테죠. 세상에서 당연한건 정말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나비종 2019-11-26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헤밍웨이 문장의 간결함에서 까진 귤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가끔 심심하면 껍질 까고 그물처럼 둘러싼 하얀 거를 한 가닥 한 가닥 떼어내어 훌러덩 벗길 때가 있잖아요. 그 말끔해진 이미지요. 지금 귤 먹고 있는 거, 맞습니다.ㅎㅎ
예전에는 기막힌 묘사로 데코된 표현들에 눈길이 가더니 요즘은 헤밍웨이풍의 직설 화법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읽는 내내 후련했습니다.

양아치ㅋㅋㅋ 개고생하며 잡은 청새치를 인터셉트하여 가로챈 상어의 야비함을 어찌 그리 적절하게 비유하셨을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물감님의 표현력에 오늘도 감탄하며 빵터집니다.ㅎㅎ

이 책이 작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 여겼는데 책 마지막 부분의 연보를 보고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구요. 62세에 우울증 등에 시달리다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더군요. <노인과 바다>와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연보를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첫째, 부모의 삶이 자식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요. 작가의 아버지 역시 우울증으로 권총 자살을 했다는 점이 작가의 무의식에 깊이 자리잡았을까요?
둘째, 건강하게 살아야 오래오래 글을 쓰겠다 싶었어요. 사냥 중 팔 부러지고, 권총 오발 사고로 다리에 총상 입고, 자동차 전복 사고로 늑골 부러지고 얼굴 찢기고, 두 차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중상을 당한 작가가 말년에 정신쇠약, 우울증, 고혈압, 간염, 알코올중독, 편집증에 시달린 건 그의 삶에 켜켜이 쌓인 흔적의 결과물인 것 같거든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 이후 10여 년 간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삶을 마감한 작가를 보며 몸의 건강이 새삼스럽게 확 다가오더라구요.

매일매일 만나신다는 영웅들을 떠올려보면서 저와 비슷한 울림점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폐지 주워모으시는 어르신들도 자주 눈에 밟히더라구요.

‘어차피 이번 거 지나가도 고난은 또 오니까‘ㅋㅋ 물감님의 리뷰를 오래 기다린 보람을 찾도록 마지막까지 유쾌한 멘트를 날리시는군요~^^

물감 2019-11-26 23:06   좋아요 1 | URL
말끔하게 벗겨진 귤같은 문장이라... 멋진 비유네요! 제가 언급했던 살이 하나도 없는 문장이 그렇게도 표현될수도 있군요 ㅎㅎㅎ

줄거리 요약을 색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다 아는 내용인데 어떻게 말하면 신선하고 재밌을지 계속 생각했어요. 이번 리뷰에서 가장 고민많이하고 시간투자도 많이된 단락이 저 두세줄의 요약글입니다 ㅋㅋㅋㅋ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만 집중하느라 작가에게 큰 관심을 못가졌었는데, 헤밍웨이의 배경이나 가족사는 심상치 않았군요. 제게도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저역시 온전치 못했을거 같아요. 저는 20대 중반에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던 적이 있는데요, 그후로 몇년을 좌절과 우울함으로 고생했거든요.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회복이 된다지만 그때 겪었던 괴로움은 어지간히도 회복이 안되더라구요. 하물며 저보다 더한 헤밍웨이는 더 괴로웠을거 같아요. 그 아픔들이 작품으로 탄생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노인같은 평범한 영웅들 덕분에 오늘도 세상은 무사히 굴러갑니다. 말씀하신 폐지줍는 어르신들도 당연히 해당되구요ㅎㅎ 여하튼 이번 모임도 이렇게 잘 끝나서 뿌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리뷰는 쓸 말이 없어서 걱정했거든요 ㅋㅋㅋ
다음 독서모임은 1월이 되겠네요! 연말 연초는 바빠질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죠 뭐 ㅋㅋㅋ 화이팅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해 스토리콜렉터 52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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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텀 소설도 꽤 오랜만에 읽는다. 나는 독서 슬럼프에 빠졌거나, 앞서 읽은 책들이 연달아 꽝일때 기분전환을 위해 찾는 작가가 몇몇 있다. 이 작가도 그중 하나인데, 내놓는 작품마다 평타 이상의 수준으로 빅재미를 보장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처방전 용도로만 찾기 때문에 맘대로 읽지 못하고 아껴두게 된다는 리스크도 있다. 여하튼 이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소개가 필요 없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을 간략히 말하자면 파킨슨병 1기가 진행 중인 심리학자로써, 매사건마다 경찰과 얽혀 가정을 챙기지 못하는 데다 여러 가지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아내와 별거 중이다. 지금은 제 일만 하면서 인생 제3막 독거생활을 보내는 중인데, 이번에도 사건은 제발로 찾아와 그를 괴롭혀댄다. 그의 은퇴 희망은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려나.


런던 어느 마을의 축제날, 두 여학생이 실종되어 마을은 발칵 뒤집어지고 나라 곳곳에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겨울날, 호수 안에서 실종자 한 명이 익사체로 발견된다. 부검 결과 최근까지 생존했었다는 진단하에 남은 한 명도 살아있을 가능성을 두고 경찰은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확신해하는 용의자는 주인공 눈에 영 시원치 않았고, 납치범 프로파일과 묘하게 어긋나있었다. 그러던 중 익명의 제보자가 건넨 실종자들의 사진을 입수하면서부터 용의자들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한다. 갈수록 판이 커져가는 이 사건을 어떻게 축소할 수 있을까.


보통 머리 좋은 주인공들은 대개 똥고집에 외골수에 한 성깔 하시는데,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조 올로클린이다. 그의 처지와 주변 상황은 언제 멘탈이 무너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건만, 그 많은 폭풍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게 중심을 잘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없는 유머도 가끔씩 날려주시는데 그 소재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이다. TV에서 아무리 깐족거려도 선은 절대 넘지 않는 프로 예능인들 본적 있지? 이 책의 주인공도 딱 그런 캐릭터이다. 먼저 심리학으로 상대를 파악한 다음 그에 맞춰주는 대화를 한다. 까칠한 타입은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잘난척하는 타입은 계속 우월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대가 불쾌해하지 않을 수준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늘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다.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렇게 매력 발산하느라 오늘도 열일중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 여러 번 주인공의 심정을 무너지게 하였다. 몇 년 전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던 그때의 공포가 계속 떠오른 그는 어쩐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제발 찾아달라고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과, 계속 헛다리만 짚어 비난받는 경찰과, 예산 부족으로 점점 줄어드는 수사인력. 이 모든 것들이 수사의 사기를 꺾고 있다. 경찰의 막다른 수사를 이어나갈 방법은 실종자들을 프로파일링 하는 것뿐이었다. 조는 소녀들의 성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주변인 중에서 납치범을 물색하는 역수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소녀들의 어두운 가정사를 통해 알게 된 용의자가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지난 작품들이 큰 산을 두세 번 넘어야 했다면, 이번 작품은 작은 산들을 열 번 넘는 듯한 기분이랄까. 사건만으로도 바쁜 그는 가정에도 신경 써야 했다. 아내가 곧 있을 크리스마스에 그를 초대했으나 이번 약속도 펑크가 난다. 아내는 조가 싫은 게 아니라 조가 경찰과 자꾸 엮이는 게 싫은 것이고, 그 사실을 조도 잘 안다. 이미 레드카드를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는 더 이상 실망 주고 싶지 않지만 세상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 게 문제였다. 여전히 일과 가족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그가 참 안쓰럽다.


음. 솔직하게 이번 편은 스토리 면에서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캐릭터에게 재미를 찾아야 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주인공의 심경 변화가 가장 볼만하다. 위에서 말한 딸의 납치 사건과 오버랩되어 과몰입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수사반장 아내와 밀회를 가져서 괜히 멜랑꼴리해졌다가, 자신의 판단 부족으로 동료가 희생당해 자책하는 등 내면의 롤러코스터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두 번째로는 심리학자에 대한 이모저모를 구경할 수가 있는데, 주인공의 심리학 강연이나 용의자와의 대화씬을 통해서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사건 수사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경찰과 전혀 다른데, 경찰이 증거와 결과만을 주목한다면 심리학자는 원인과 동기를 더 주목한다. 인간을 이해하려 하다 보면 환자도, 범죄자도, 정신이상자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대강 알게 되고, 그러면 남들이 놓쳤던 것들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나 유용한 지식들이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되고 가정을 파괴하는 저주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끝없이 재능기부를 해야 하는 그만의 고뇌는 작품의 색깔을 뚜렷하게 나타내줄 베이스가 되므로 그의 앞날에 따스한 햇살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세 권쯤 읽어보니 이 시리즈만이 가지는 장점과 차별점을 알겠더군. 상대의 내면을 통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범인에게 접근하는 독특한 전개 방식. 단점은 액션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 그런지 진도가 매우 더디다는 것. 여기서 작가는 상황 설명과 인물의 독백씬을 번갈아 씀으로써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분위기를 멋지게 상쇄시킨다. 전개도 전개지만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할 건지 궁금하게 만드는 기교가 엄청난 작가이다. 근데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시리즈가 이어져왔다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작품이 한계에 부딪힐 것만 같은 불길함이 든다. 어쩐지 스토리의 힘보다는 심리 묘사 쪽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느낌을 받았거덩. 아직은 그게 먹어준다지만 앞으로도 쭉 먹혀들지는 미지수이다. 로보텀 슨생님도 이제 슬슬 새로운 도약이 필요해 보입니다. 똑같은 반찬만 먹으면 금방 질리니깐요. 독자들의 심리도 파악해주십사 이렇게 한 말씀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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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지마 저택 살인사건
아마노 세츠코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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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실종사건, 납치 사건 등등. 제목에 ‘사건‘이 들어간 작품만큼 올드한 것도 없을걸. 본격 추리물이 사랑받던 영광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이다. 그래서 이제는 장르소설계의 고전작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뜬금없는 고백인데 나는 셜록 홈스, 괴도 뤼팽 시리즈도 읽지 않았고, 애거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같은 스탠다드 추리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정통 추리물은 썩 재미있지도 않고, 딱히 두뇌 훈련도 되지 않는다. 트릭의 방식만 다를 뿐, 작품의 기승전결은 항상 비슷하여 이만큼 클리셰가 많은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투덜댈 거면서 왜 읽었냐 하신다면, 이 작가의 데뷔작 ‘얼음꽃‘에서 받은 감동이 가히 허리케인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내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고 절대 올드함이 전부일리 없는 작가라고 강하게 믿었으나 슬픈 예감은 역시 틀리는 법이 없다. 도대체 왜 어쩌다 이 정도로 수준이 낮아졌나 싶을 정도로 망작이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련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님.


이 작품에서 나는 크게 두 번 실망했는데 먼저는 이 최첨단 시대에 낡고 식상한 소재를 썼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뻔하지 않게 다루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는 점이다. 과거 수많은 작가들이 너도나도 탐을 냈던 만큼 밀실 살인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수십 번 우려먹은 이 한물간 장르를 두근대는 심정으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현대 작가들이 그런 독자의 취향이나 반응을 모를까?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작가들이 절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제는 옛날처럼 정통 추리보다는 사회소설에 추리물을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가고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파에 발 담그지 않았다. 그렇다고 본격 추리로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 속에서 방황하다가 낭패본 케이스였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들을 붙잡아두고 수사를 해나간다. 근데 이 책은 첫 번째 피해자가 자살로 판명이 나면서 용의자들은 다 풀려나고 수사는 싱겁게 종결된다. 그대로 며칠이나 지나버려 시간,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특수한 전개로 흘러간다. 기존 작들과 차별화된 플롯을 보여주려는 건 알겠다만 그냥 정형화된 플롯대로 쓰시고 욕이나 먹지 말지. 이런 게 바로 문학의 새로운 시도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믿는 독자는 제발 없길 바랄 뿐.


무엇보다 추리소설인데 추리하는 맛이 없어서 낭패다. 먼저 용의자 간에 원한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작품 내내 모두가 진득한 가족애를 보여주어 경찰뿐 아니라 독자까지 애를 먹는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가 등장하나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한 용의자가 밝혀지면서 또 한 번 김이 팍 샌다. 당연히 범인은 따로 있겠지만 아무도 범행 동기가 없는데 굳이 진범을 찾아낼 필요 있나 싶더라. 게다가 등장인물이 전부 선한 사람들뿐이라 분위기는 지겨울 정도로 루즈하다. 악인이 없어서 몰입감은 떨어지고 뒤 내용도 그닥 궁금하지 않은 이 책은 장르문학으로서 대 실패작이라 하겠다. 여하튼 망해버린 분위기 속에서 범인을 어떻게 수면 위로 꺼내고 마무리할까 궁금하긴 했는데 아 맙소사, 여기에도 김전일께서 등장하시어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추리 원맨쇼로 사건을 끝내버렸다. 아니 이럴 거면 열심히 수사해오던 경찰 삼인방은 뭣하러 등장시켰대? 이거는 독자에 대한 배려 없음 뿐만 아니라, 자기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 없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렇게 트릭이나 수사가 볼품이 없다면 범행 동기라도 그럴싸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쏘쏘해서 읽은 시간이 다 아까울 지경이다. 마무리 짓기도 힘든 걸 보면 이번 리뷰는 그냥 망친듯싶다. 아 몰라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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