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블루 컬렉션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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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달간 바쁘고 피곤해서 읽는 속도가 구매 속도를 한참 못 따라가고 있다. 안 그래도 느린 독서가 더 느려지면서 쌓여만 가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없던 강박증도 생길 지경이다. 그만 사고 싶어도 어디서 돈이 자꾸 생겨 안 살 수도 없는 복에 겨운 웃픈 상황이고. 이렇게 책이 안 잡힐 때는 가벼운 책이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나님에겐 그런 책이 별로 없다. 그나마 있는 책 중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를 골랐는데, 반나절이면 다 읽을 분량을 일주일에 걸쳐서 읽어주었다. 아아,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퇴직 후 도시를 떠나 시골집을 구한 노부부. 실컷 꽁냥거릴 생각에 들떠있는 이들에게 이웃 노인이 찾아온다. 날마다 오후 네시가 되면 집을 방문하는 이 노인은 똥 씹은 얼굴로 말도 없이 앉아있다 여섯 시에 돌아갔다. 남의 집을 제멋대로 왔다 가버리는 이 불청객 때문에 대략 난감한 노부부는 예의 차리다 타이밍을 놓쳐 그만 오라고도 말 못하고 매일 네시만 되면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다. 마음을 바꿔 이웃 부부를 식사에 초대한 이들은 거대한 실루엣의 등장으로 할 말을 잃는다. 


프랑스라면 몰라도 한국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작품에 푹 빠지긴 어려웠다. 초대한 적도 없는, 아직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이웃을 집안으로 들여보내는 것도 납득이 안되지만, 재수 없기만 한 노인한테 뭘 그리 쫄아서 비위를 맞춰주는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나름 이웃이니까 친해져보겠다고 질문들을 던져봤지만 대답은 예/아니오뿐이고,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는 얼굴로 오히려 부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금껏 구경 못했던 요상한 캐릭터였다. 대체 어느 쪽이 집주인이고 방문객인지 모르겠더만요. 아무튼 넉살 좋고 사람 좋은 부부는 이 불청객을 어떻게든 좋게 해석하고 받아주다 지쳐서 확 손절하기로 맘먹는다. 그래 진작에 그랬어야지, 문화권을 떠나서 이건 좀 아니라니깐.


그러나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손절이란, 돼지를 도축하는 일만큼이나 두렵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어영부영하다 손절의 기회를 계속 놓쳐서 참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부부의 우유부단+결정 장애+팔랑귀+억지 긍정+스마일 가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독자를 골려주고 싶은 작가의 장난기가 다분하던데 그렇다면 나님이 순순히 당해줄 것 같으냐. 적당한 관대함과 쿨함을 장착하고 읽었더니 장면 장면마다 심어둔 작가의 블랙 유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품을 즐기시려면 작가의 스타일부터 빨리 파악들 하시길.


노인의 아내 또한 미스터리였다. 초고도비만의 실루엣도 그렇지만 소리 지르고 땡깡 부리는 세네살 아동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제서야 차가운 말투와 똥 씹은 표정을 했던 노인을 납득하게 된다. 이런 촌구석에서 아픈 아내를 홀로 돌보며 살아온 남편의 운명과 심정을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도대체가 말야, 남의 집 왔으면 뭔 푸념이라도 늘어놓던가, 어떤 도움을 요청하던가 해야 될 거 아냐. 부부도 독자도 방황하려 할 즈음에 구세주 같은 주인공의 애제자가 집을 방문해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네시에 들이닥친 노인과, 그에게 쩔쩔매는 부부를 보며 이상함을 느낀 제자는 서둘러 자리를 떠버린다. 제자의 실망한 얼굴이 세상 충격이었는지라 마침내 폭발해버린 주인공은 노인을 거칠게 대하며 쫓아내버린다. 그렇게 기다렸던 사이다 장면인데 제로 사이다처럼 뭔가 밍밍한 맛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냐며 독자에게 죄책감을 전가하는 참 얄미운 작가의 미워할 수 없는 밀당 이야기되시겠다.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불청객이 수상해 집을 찾아간 주인공은 차 안에서 자살 중인 노인을 구해낸다. 왜 자길 방해하느냐며 똥방귀 뀌는 이 노인을 당장 솥단지에 찜쪄먹어도 부족하지만, 방안에 갇혀 살아가는 그의 아내를 집 밖에 꺼내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택한다. 노인은 자신이 케어하던 방식과 딴판인 부부에게 승질 부리다 아내가 기뻐하니 마지못해져주는 척을 한다. 자, 그러니까 지겹게도 반복되오던 밀당이 결국 두 사람을 구원한다는 결론이다. 멋대로 찾아와 평온함을 깨뜨린 노인이 싫다면서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된 주인공.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이 경우 없는 방식으로 두 사람은 그렇게 지난날의 사슬에서 풀려난다. 노인은 주인공의 스마일 가면을 벗겨주었고, 주인공은 노인을 기나긴 터널에서 꺼내주었다. 그래 뭐, 나쁘진 않은데 이걸 개연성 있다고 봐야 할지는 잘...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 하나 봅니다. 아무튼 단순한 내용이지만 가볍게 넘길 순 없는 낫 배드한 작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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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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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잡힌 모태솔로의 심정으로 근로자의 날을 기다렸건만 올해는 일요일과 겹쳐버려서 굉장히 킹받았다. 생일보다 중요한 공휴일을 이렇게 날리다니.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량과 줄어드는 공휴일과 방전되는 체력과 눈치가 1도 없는 고양이들까지. 건강검진 결과는 다 정상이었고, 인바디 결과는 기초대사량이 표준 이하로 나왔다. 홈트를 하는데도 왜 이 모양인지, 근로자의 날보다 이게 더 킹받는다. 암튼 아프고 힘들어서 요즘은 독서보다 건강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피곤에 쩔은 동태 눈깔의 집사는 초롱초롱한 냥이들의 눈빛을 모른척하느라 오늘도 바쁘시다. 


우리 근로자들의 생계 걱정은 다이어트 마냥 끝이 없다. 이제 메타버스 시대까지 넘어왔건만 먹고사는 일은 우째 돌팔매질하던 시절하고 달라진 게 없는 걸까.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많은 가정의 평화가 무너졌다. 노동을 하고 삯을 받는 이 과정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근로자의 절박함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으랴. 이번에 읽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은 이처럼 일자리를 위협받는 최하층 근로자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코시국이라 그런지 작중 모든 인물과 상황에 공감하며 읽게 된다. 재미야 있지만 너무 현실과 오버랩 되니까 막 좋다고 하기도 좀 거시기하다는.


‘루공-마카르 총서‘ 7편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아들, 에티엔이 주인공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 한 탄광회사에 갱부로 들어간 소년은 겨우 굶지 않게 돼 감개무량하다. 고된 일과에 적응하며 자리를 잡아갈 때쯤 회사가 임금을 삭감하여 광부들의 분노를 산다. 조합장이 된 에티엔은 파업을 선언하지만 꿈쩍도 않는 회사 앞에 결국 폭동이 일어나고, 군대가 개입해 시위자들이 죽고 다친다. 그렇게 회사와 직원들은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며 끝없는 대립을 이어나간다. 끝내 아무런 득이 없자 에티엔은 원망의 대상이 되었고, 탄광촌에 처음 온 날처럼 이방인의 신세로 전락한다. 에티엔에게도 마카르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지독한 불운이 따라다녔다. 이 작가도 사디스트인 건가.


졸라의 작품들은 간단한 줄거리에 비해 분량이 압도적이다. 보통 뼈보다 살이 과하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졸라에게는 그런 거 없다. 기자와 비평가로 활동하며 얻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반영된 졸라의 글들은 사실 고전이라기보다 사회소설 쪽에 가깝다. 화두가 워낙 많아서 소화하기 힘들지만 그마저도 넘사벽 스토리와 미친듯한 전개로 다 쓸어버리는 졸라 표 내공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그니까 출구 없는 매력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목로주점>이 개인의 가난과 굶주림을 조명했다면, <제르미날>은 집단이 겪는 고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 탄광촌 사람들은 욕심도 야망도 없다. 기꺼이 노동하길 원하고 합당한 대가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회사와 부자들은 빵 조각에 온 가족이 의지하는 광부들 사정에 관심이 없다. 직원들의 항의에도 회사는 경영난을 들먹이며 수당을 낮추었고 그러면서 일은 일대로 부려먹는다. 회사가 완강한 태도를 꺾지 않았던 건 이 부당한 방침에 군말 없이 따르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 착취여도 상관없다는데 파업이 먹혀들 리가 만무하다. 아무튼 민중봉기를 다뤄보고 싶었다던 작가는 칼이든 톱이든 손에 잡히는 건 죄다 갈아서 이 책을 썼는데 수위가 어느 정도냐면 시위자들이 남성의 성기를 잡아 쥐어뜯기까지 한다. 그니까 문화충격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졸라는 광부들이 갱에 들어가는 장면을 두고, 제물을 집어삼키는 짐승으로 묘사하였다. 갱 아래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게 없었고, 그런 곳에 굶주린 직원들을 밀어 넣는 회사 또한 짐승이었다. 이 짐승은 탄광 사고가 터질 때마다 부실공사 문제라며 광부들 탓으로 돌렸다. 회사의 갑질에 당하기만 하는 광부들을 대신해 대표로 나선 에티엔은 똑같이 빠꾸먹고 잔뜩 체면을 구긴다. 믿는 구석이 다 떨어지자 조합원들은 이성을 잃고 짐승으로 돌변하여 회사와 임원들을 위협하는데, 이런 폭력적인 행사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건 앞뒤가 다른 회사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말로는 적자라지만 임원 가족들은 갈수록 살이 찌는데, 부자들의 이기주의를 보노라면 이래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하는 건가 싶다.


나라면 회사에 침 몇 번 뱉은 뒤 이 바닥을 뜰 것이다. 비전도 없는 데서 거지 대접 받고 살 이유는 없으니까. 반면 떠날 생각이 없는 에티엔은 조합장의 권력과 지위를 가진 동안 자기만족에 취해서 총명함이 사라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어떤 욕망에도 잘 참아왔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듯이 이제 에티엔도 대역죄인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하, 이제야 에밀 졸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겠다. ‘루공-마카르 총서‘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인간의 양면성이다. <목로주점>, <인간 짐승>, <제르미날>까지 읽고 나니 더욱 확신이 든다. 자연주의의 글을 쓰는 졸라에게는 성선설/성악설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고, 평소 인간이 감추어둔 본능과 자아가 해방될 때에 나오는 날것의 자연스러움,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졸라의 작품에는 매번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오는데, 그들을 통해 나의 양면성을 점검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결국 다 똑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생. 쯧.


대단원을 어떻게 장식할지 궁금했는데 과연 기대 이상이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방불케 하는 하이라이트였다. 읽는 내내 성경과 비슷하다고 느꼈었는데, 아무래도 성경이 모티프가 맞는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자연주의에는 선명한 교훈이나 주제가 없어 찜찜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 날것의 이야기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재밌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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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5-15 1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에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운동을 해서 조금이나마 늦춰보지만 밀려드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듯 해요. 귀여운 냥님들에게 오뎅꼬치라도 흔들어주셔야 할텐데요. 저와 함께 사는 냥님들은 정말 새벽에 놀자고 깨워서 힘들어요ㅠㅠㅠㅠ 집사는 아침까지 자야 한다고!!!

졸라 책은 행복백화점이랑 테레즈 라깽만 읽었어요. 리뷰들을 보니 점점 더 읽기가 무서워집니다.

물감 2022-05-15 13:55   좋아요 3 | URL
ㅋㅋㅋ 자주 불르는 곡 중 하나인데 이젠 힘들어서 노래도 안 하게 되네요ㅜㅜ 저는 화도 없고 스트레스도 잘 안받는 타입인데, 그래도 감정이 야금야금 쌓이나 봐요. 감정도 컨디션도 잘 조절해나가야죠 모...

냥이들은 왜이리 팔팔한 걸까요 ㅋㅋㅋㅋ 이제 놀아주기 힘들어서 조만간 레이저를 살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레이저가 안좋다고 들었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해...

읽으신 두 작품은 제가 안읽어봐서 모르겠네요. 제가 읽은 세권은 저한텐 취향 저격이었어요. 저는 참 좋아라 하는 작가인데, 부담되시면 그냥 패스하시는게... ^^;

꼬마요정 2022-05-15 15:19   좋아요 2 | URL
꺄앗 냥님들 너무 예뻐요!!! 노랑이와 하양이네요. ㅎㅎㅎ

물감 2022-05-15 15:33   좋아요 3 | URL
제 서재의 페이퍼 카테고리로 가시면 더 많은 냥이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

페넬로페 2022-05-15 14: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집사를 바라보는 냥이의 눈빛은 초롱초롱보다는 서로 손을 맞잡고 힘든 집사를 애처롭고 걱정스럽게 바라본다는 저의 느낌적 느낌입니다~~
제르미날의 기대를 한껏 높여 주시네요.
목로주점과 제르미날의 차이점을 상기하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목로주점이 집단이면서도 개인적인 고통이 교차되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고민이며 고통입니다^^

물감 2022-05-15 14:19   좋아요 3 | URL
세상에나, 목로주점과 제르미날을 반대로 썼지 뭐에요. 말씀해주셔서 바로 수정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나 상태가 나빠요 ... ㅎㅎㅎ 목로주점이 개인을 조명한 게 맞아요 ㅠㅠ 여튼 힘없는 근로자로써 너무 공감하며 읽은 작품이었어요 ㅎㅎㅎ

저희집 애들은 배고플 때랑 심심할 때만 울어대요 ㅋㅋㅋㅋ사진만 보면 냥이들 표정이 저를 딱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2-05-15 15: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막 노동자 모드 이입해서 분노의 으르렁으로 읽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냥 두 마리 사진 올려놓기란 있긔없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웃었잖아요!!

물감 2022-05-15 15:32   좋아요 4 | URL
사랑과 평화의 인프제에게는 희로애락이 필수거든요 ㅋㅋㅋ 아 역시 백날 글 써봐야 고양이 사진 한 장만도 못하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5-15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사벽 스토리와 미친듯한 전개‘ 딱 맞는 표현입니다. 목로주점 읽을 때, 재밌는데 미친듯한 스토리 전개에 제 마음도 너덜너덜 지치더라구요.
제르미날 더욱 더 기대되네요.

흰냥이 손이 노랑이 손 위에! 진짜 귀엽습니다. ㅋㅋㅋ
제 몸 하나 추스리기도 벅찬 저는 강아지, 냥이 키우시는 분들 참 대단해보여요. 아 뭔가를 바라는 듯한 저 눈빛들 ...😬

물감 2022-05-15 20:52   좋아요 2 | URL
스토리의 무게감이 상당한 작가죠. 좋아하는 작가지만 연속으로 읽기엔 무리에요...ㅎㅎ 여튼 졸라의 책을 읽고나면 뿌듯해져서 좋더라고요🙂

얘네들 사진 오랜만이죠?ㅋㅋ 여전합니다. 지금 느낀건데 아는형님의 민경훈, 김희철 같지 않나요?ㅋㅋㅋ

새파랑 2022-05-15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제르미날을 안읽었는데 곧 읽어야 할거 같아요 ㅎㅎ 요새 졸라를 잠시 쉬고 있습니다 😅 자연주의 작품은 일단 교훈이 없어서 읽기에 부담없더라구요.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는~!!

물감 2022-05-16 08:33   좋아요 2 | URL
읽어보시면 금방 또 빠져들 거에요 ㅋㅋ 초반에 탄광이랑 갱 내부의 배경 묘사가 조금 지루한데 그것만 넘기시면 쭉쭉 달려집니다. 어서 읽고 글 써주세요 ^^
확실히 자연주의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맛이 있어요. 고전의 장벽을 좀 낮춰주는 기분도 들고요ㅋㅋㅋ

공쟝쟝 2022-05-15 2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일요일 저녁의…심기가 편해지는 사진.. 좋아요 꾸욱🥹

물감 2022-05-16 08:34   좋아요 2 | URL
쟝쟝님 오랜만ㅎㅎㅎ 그냥 글 쓰지 말고 가끔씩 사진만 올려놓을까봐요...ㅎㅎㅎ

공쟝쟝 2022-05-16 08:53   좋아요 3 | URL
물감님표 노동에 쩐 독후감도 좋아요 꾸욱 입니다! 힘내요 👏👏

mini74 2022-05-16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이 분노하며 제르미날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 물감님의 냥이들을 보니, 내가 뭘 쓰려고 했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가 되어버렸어요 ㅎㅎㅎ 인간의 캣닢이 고양이 아닐까요 ㅎㅎ 아이고 예뻐라 ㅠㅠㅠ

물감 2022-05-16 19:5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한번 더 읽고 평에 대해 써주세요...다들 고양이 얘기만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5-20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읽었는데 역시 고양이가 귀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2-05-20 15:05   좋아요 2 | URL
아아 잠자냥님도 고양이 얘기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뭐 집사들끼리는 제가 이해해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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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장르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죄다 글맛도 없고 감성도 없고,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생김새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터져 나오는 근미래 배경의 작품들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손이 잘 안 가게 된달까. 그래서 과학 관련은 문학보다는 차라리 비문학 쪽이 더 어울린다고 봐왔다. 이 같은 나의 편견을 완전히 뒤바꿔준 작품을 지인의 권유로 만나게 되었다. AI 로봇들이 점점 보편화 중인 세대를 그리고 있는 <천 개의 파랑>은 기존의 대중소설과 별반 다른 게 없다고 할 만큼 자연스러운 글과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SF에 감성을 불어넣은 작가를 가즈오 이시구로 외에 처음 보는데, 읽어보니까 과연 과학 문학상 탈만 합디다.


오늘날의 사회층은 전혀 다른 성격의 세 그룹으로 나뉘어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노년층과, 어릴 때부터 스마트 문화를 접해온 청소년층, 그리고 양쪽 문화를 다 경험해본 중장년층. 이 같은 구분은 또 하나의 세대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현대 문명에 쩔쩔매는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고 나 또한 시대를 따라가질 못해서 자꾸만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다. 쉼 없이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가 나에게는 좀 무섭고 또 버겁다. 이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인간은 어느 순간 도태되고 말 것이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과학이 세대를 가르고 나누는 벽으로 작용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렇게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면서도 현대 과학이 나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천 개의 파랑>은 과학이 가져온 세대갈등을 다루고 있다. 로봇이 싫은 엄마는 로봇에 재능을 가진 둘째 딸이 고깝기만 하다. 로봇을 만지고 다루는 게 유일한 행복인 둘째 딸은 그 로봇 때문에 편의점 알바를 잘리고도 화를 내지 않는다. 언젠가 세상이 다 그렇게 바뀔 거란 걸 예상했다는 듯이. 남편을 잃은 후 바삐 살아왔던 엄마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둘째 딸은, 감정 쏟을 일 없는 로봇을 대할 때에만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한편 엄마는 애들이 다 자라고 나서야 어릴 때에 신경 써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책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과학은 누군가에겐 안식처였고 또 누군가에겐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또한 이 작품은 감정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과학의 역할을 다루고도 있다. 어려서부터 휠체어 생활 중인 큰딸은 세상과 멀어졌고, 언니를 챙겨야 했던 동생은 자기의 시간들을 뺏겼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딸들에게 소홀했던 엄마는 유대관계가 끊어졌다. 뿌리칠 수 없는 현실에 발목 잡힌 세 사람은 잃어버린 자유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99%의 체념과 1%의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에게 있어 구원의 손길은 바로 과학이었다. 그리고 무너진 연대를 회복해준 것도 다름 아닌 과학 기술 덕분이었다.


2035년에는 인간이 아닌 로봇 기수들끼리 경마 시합을 한다. 일등 성적을 거두던 경주마 투데이는 무리한 시합으로 관절이 망가져가고, 투데이를 걱정한 휴머노이드 콜리는 시합 도중 일부러 낙마하여 하반신이 부서진다. 달리지 못하는 말은 조만간 안락사를 할 것이고, 부서진 로봇은 폐기처분을 할 것이었다. 엄마네 식당 근처인 경마장을 놀이터처럼 들락날락하던 두 딸은 망가진 말과 로봇에게 마음이 기운다. 첫째 딸은 자신처럼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투데이를 틈나는 대로 돌보았고, 둘째 딸은 콜리를 데려와 수리하며 작게나마 로봇 연구원의 꿈을 대리 경험한다. 타인에게 도움만 받았던 첫째 딸은 처음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었고, 누구와도 잘 지내지 않았던 둘째 딸은 로봇의 수리를 적극 지원해준 학교 친구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엄마는 딸들에게 받지 못할 위로와 격려를 그렇게나 싫어했던 로봇인 콜리한테 받게 된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로봇은, 반드시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대답했다. 이 장면이 핵심이다. 과학의 발달로 삶의 질이 오를수록 서로 간에 대화와 소통은 끊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오해와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이 올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염려하고 책을 쓴 게 아닌가 한다.


고장 난 마음은 똑같이 고장 난 마음에게 이끌린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공감해줄 수 있으니까. 나의 아픔을 이해 못 할 이들의 삶에는 어떤 식으로도 자리할 수가 없다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안다. 마음을 얻어내는 시간은 너무도 길고,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현대사회의 공허함은 인간만이 해결해준다고 믿었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지닌 무수한 감정 표현은 말로 다 할 수도 없는데, 로봇이 무슨 수로 그 자리를 대신해서 교감과 이해를 나누겠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다 제 역할과 본분을 하는 건 아니라서, 때로는 소통 불가의 인간보다 반쪽짜리 공감능력의 로봇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이들이 과학의 장점에만 주목할 때 천선란 작가는 단점에 더 주목하고 그것을 장점으로 극복하여 조화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소설의 구조며 재미와 메시지 등등 모든 게 완벽한 이 작품에 도저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장르 불문하고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는 걸 또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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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4-24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별 다섯 개!!!
믿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인 거죠?^^
도서관에서 이 책 자주 봤었는데 빌릴까, 말까 망설이기만 했었는데 물감님 리뷰 읽어 보니 재밌을 것 같아요.^^

물감 2022-04-24 21:58   좋아요 2 | URL
저도 권유받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 정말 푹 빠져서 읽었어요🙂
SF와 휴머니즘의 조합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나 싶더라니까요ㅎㅎㅎ

coolcat329 2022-04-2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선란 작가 책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어야 겠네요.
재미 보장이 역시 최고에요!

물감 2022-04-24 22:34   좋아요 2 | URL
자주 눈에 띄던 작가였는데 그리 끌리진 않았거든요. 근데 이야기를 참 잘 만드는 분이네요. 겨우 한 권 가지고 논하긴 뭐하지만 이 분도 꾼인듯 합니다😀

다락방 2022-04-25 0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SF 에 통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 책은 그렇다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겟습니다!

물감 2022-04-25 14:01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이 가려 읽는 장르가 있을 줄이야...
아무튼 sf치고는 비교적 현실적인 작품이라 퍽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국내 작가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2-04-25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SF는 취향이 아니지만 표지랑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ㅋ 게다가 물감님 별 다섯이니~ (저번에 한번 실패하긴 했지만 😅)

물감 2022-04-25 14:09   좋아요 2 | URL
제목이 천 개의 새파랑이면 더 좋았을 텐데요ㅎㅎ
개인적으로 소설다운 스토리를 가졌거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들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 작품은 둘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새파랑님 보시기에 만족스러울진 몰라도 절대 시간 아까울 작품은 아닐 겁니다ㅎㅎㅎ 그리고 새파랑님, 저의 별다섯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저번 같은 일이 있을까봐, 저는 아무에게도 책 추천을 하지 않는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2-04-29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까 과연 과학 문학상 탈만 합디다.- 이 문장에서 웃음 나왔어요.ㅋㅋ

저는 과학이 너무 발달한 결과 로봇 도우미, 로봇 애인 등이 생겨서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될 거라고 보고 그러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여자 로봇 도우미를 질투하는 여자 애인이 생길 수도 있고요. 남자 로봇 도우미를 질투하는 남편도 있을 수 있어요. 재밌지 않나요?

물감 2022-04-29 11:35   좋아요 3 | URL
예전에도 페크님과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말씀하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고민하는 지금의 세대와 달리 미래 세대는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할 지도 모르고요. 그런 사회 분위기가 자리를 잡으면 도덕이나 윤리를 논하는 사람들만 바보가 되겠죠. 한 2030년대쯤 되면 책 읽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요. 과학의 발달은 환영하지만 로봇 쪽으로는 거부감만 드네요... ㅎㅎ

새파랑 2022-05-07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별다섯은 읽어야 하는데 당선도 되셨으니 이 책은 꼭 읽어야겠습니다 ㅋ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요 ^^

물감 2022-05-09 08:42   좋아요 1 | URL
당선이 되었었군요 ㅋㅋ 읽을 책도 많으실텐데 이건 나중에 보셔도 됩니다 ㅋㅋㅋ

이하라 2022-05-07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2-05-09 08: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당선된 줄도 몰랐네요 ^^

독서괭 2022-05-07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립니다~ 많이 들어본 작가지만 왠지 별 기대가 안 됐는데 물감님이 완벽하다 하시니 궁금해지네요!

물감 2022-05-09 08:45   좋아요 0 | URL
너무 제 평을 신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ㅎㅎㅎ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물감 2022-05-09 08: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덕분에 즐거운 주말 보냈습니다 ㅎㅎ

러블리땡 2022-05-08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ㅎㅎ 천개의 파랑 ㅠㅠㅠ 넘나 좋아하는 책인데 ㅎ우왕

물감 2022-05-09 08:46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도 공감하셨군요 ㅎㅎ 넘 좋쥬?ㅎㅎㅎ
축하 감사합니다 ^^

강나루 2022-05-08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물감 2022-05-09 08:47   좋아요 1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5월 되세요!
 
희생양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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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의 원작자인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을 드디어 접했다. 장르문학을 즐겨 썼다던 1907년 생의 여성 작가라는 것도 놀라운데,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였다고 하니 이 분도 진정 타고난 이야기꾼인 갑다. 장르소설은 싫다면서도 모리에는 좋아한다던 독자가 은근히 많더라고. 그 때문에 나도 참 궁금했던 작가였는데 겨우 이 한 권 만으로도 궁금증이 풀렸다. 그리고 고딕소설의 매력이 뭔지를 제대로 느꼈다. <희생양>은 모리에 작품 중 하위권이라 더만, 그럼 다른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있다는 말이냐. <레베카>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제목만으로는 감도 안 오는 이 작품은 도플갱어에 대한 내용이다. <왕자와 거지>의 현대판으로써 거지의 일인칭시점으로만 진행되며 언제 정체가 탄로 날지 모를 아슬아슬함이 작품의 액기스라 보면 된다. 프랑스에서 도플갱어를 만난 영국인 교수. 이것도 인연이라며 방을 잡고 술자리를 함께한 두 사람. 다음날 아침, 상대방은 보이질 않고 교수의 옷과 짐들도 없어졌다. 그렇게 타인의 신분이 된 교수를 찾아온 누군가에게 붙들려 어떤 성으로 인도를 받는다. 알고 보니 어제 그 남자는 이 성의 주인이자 귀족이었고, 교수는 낯선 이들 앞에서 영혼을 다해 연기를 펼친다. 어색한 성주인 노릇에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고, 까짓것 제대로 해보자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교수. 단 한 명도 의심치 않았다는 억지스러운 설정만 눈감아주면 나쁘지 않은 몰입감을 보여주므로 관대함을 가져주시기를.


도플갱어 장 드게는 무너져가는 집안을 버리고 도망친 인간 말종이었다. 가족관계도 엉망인데다 위태로운 사업에도 관심이 없는 본래의 성주인에겐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탈출한 그가 싸지른 똥 치우기에 급급한 교수였지만, 장 드게와 자신의 스타일을 적절히 섞어서 하나둘씩 사태를 바로잡는다. 이렇게 원래의 자신도, 장 드게도 아닌 제3의 인물을 연기하며 지난날의 슬픔과 근심에서 멀어져 가는 교수. 여태껏 가족 없이 살아왔던 그는, 어느덧 장 드게의 온전치 못한 가족들이 친가족처럼 느껴졌다. 한편 성의 가족들은 망나니였던 성주의 의젓함에 놀라다가도 금방 적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차분히 정돈해가는 작가의 클라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고딕소설 특유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메인 테마도 없이 자잘한 사건들로만 흘러간다는 건 역시나 아쉽다. 이토록 깔끔한 완급조절을 보여주는데도 밋밋하다는 인상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 같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여튼 모리에는 이 작품에서 최소한의 긴장감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눈치 못 챈 독자들도 많을 텐데, 전혀 딴판으로 장 드게를 행세하는 교수가 지닌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지점에 가서 들통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끝까지 들키지 않고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그속에서 가냘픈 긴장의 끈을 부여잡고 따라가는 독자들은 자신이 기대한 반전의 부재로 허탈과 동시에 안도를 느끼게 된다. 이런 게 바로 문학이 가진 매력이지 싶다.


그나저나 제목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입장이 바뀐 교수는 여러 번 총대를 메긴 했어도 이 연극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져보지 못했던 가족도 얻었고 신분도 누리면서 잘만 적응했으니, 대체 어딜 봐서 희생양이냐 싶었다. 그런데 역자의 글을 통해 보지 못했던 희생양들을 알고 나자 정신이 멍해지는 게 아닌가. 또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데 이 작품의 결말은 전혀 싫지가 않았다. 참 여러번 놀라게 만드는 작가다. 이 책은 대단한 반전이나 임팩트는 없었지만 작품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게 하위권이라니. 아무튼 모리에 입문용으로는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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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4-18 0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옷. 대프니 듀 모리에의 작품이 제가 모르는게 더 있군요! 대박. 저는 물감 님 덕분에 이 책을 알아갑니다. 물론 사야지요. 저는 <레베카>와 <나의 사촌 레이첼> 을 읽었거든요. 레이첼 먼저 읽고 오와 바로 이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하고 흥분했었는데 레이첼은 세상에, 더 좋더라고요? 거기엔 어떤 메세지까지 담고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알라딘에서 둘다 읽어보신 분들은 레베카가 더 좋다 레이첼이 더 좋다 의견이 갈리는데(당연하지요) 저는 레이첼 쪽입니다. 물감 님은 다 읽고 나면 레베카를 더 좋아하실지 레이첼을 더 좋아하실지 궁금하네요. 후훗.

물감 2022-04-18 10:18   좋아요 2 | URL
저는 다락방님 덕분에 이 작가를 알게 되었습죠ㅋㅋ너무 흥분하셔서 진짜 궁금했는데 오오 과연 그럴만하다 싶었어요😁 그리고 레베카보다 레이첼이 더 좋았다는 말씀이신거죠?? 오오 완전 기대하겠습니다요ㅋㅋㅋ
 
[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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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코로나에 확진된 후 현재까지도 컨디션이 썩 좋지 못하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있는데 유독 찝찝한 것은 코로나가 뇌의 어딘가를 손상시켜서 회전이 둔해진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 말대로 현재 하는 일마다 버퍼링이 걸려 애매하게 고생 중이다. 아이씨, 여기서 머리가 더 나빠지면 어쩌란 말이냐. 당분간은 서평도 예전같은 탄력은 없을 것 같다. 사실 쉬는 동안 나의 글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좀 해봤다. 뭐 하러 글을 그렇게 아등바등 써야 하지? 내가 무슨 작가를 할 것도 아니고, 파워 블로거도 아니고, 내 필력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여러 가지 규칙 때문에 글쓰기가 버거울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가볍게 써 버릇 해야겠다.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를 드디어 읽었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데 난 딱히 타이틀에 관심이 없다. 그저 엄청난 스릴러라는 소개 글 때문에 급관심이 생겼을 뿐. 두터운 분량답게 매우 더딘 전개였지만 읽기에 별 부담이 없었던 건 작가의 문체 덕분이었다. 읽는 내내 정유정 작가가 생각났다. 문장도 그렇고 캐릭터들도 그렇고, 뭐랄까 되게 중성적인 색채가 묻어난다. 특히 남성 작가들에겐 잘 없는 절제미가 장점인데 이게 반대로 단점이 되어 너무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만 빼면 별 만점 줘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미술관 테러 사건으로 엄마는 죽고 아들 시오는 겨우 살아남는다. 곁에서 죽어가던 노인에게 부탁받은 황금방울새 그림 때문에 마음고생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림을 경찰이나 관계자들에게 넘길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도난당한 미술품 뉴스를 볼 때마다 소년은 심장이 철렁한다. 고아가 되어 친구네 집에 살게 된 시오는 그림을 넘겨줬던 노인의 집 주소인 골동품 가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노인의 사업 파트너인 가구 수리상 아저씨와, 똑같은 테러 피해를 입은 소녀를 만난다. 이 두 사람은 시오 평생에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고 그가 위태로울 때마다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조금씩 상처와 충격에서 회복되나 싶더니, 오래전 집 나갔던 아빠가 나타나 라스베이거스의 사막으로 시오를 데려간다. 아픔을 잊고 새 출발 하기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전개냐 싶지만 이제 시오를 본격적으로 망가뜨릴 보리스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이 친구에게 술, 담배, 마약 등등 온갖 안 좋은 것들을 배운 시오는 이전의 순수를 서서히 잃어버린다. 이때부터 시오가 자기 파괴적인 형태로 현실도피를 반복하게 된다. 테러 사건 이후로 소년의 많은 것들이 무너졌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게 없음을 스스로도 잘 알기에 바르게 살려는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거다. 도박중독인 아빠도 그렇고, 1급 문제아인 보리스도 그렇고, 폭력적인 보리스의 아빠도 그렇고 죄다 막장인생인데 멀쩡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한참 성장기에 있는 소년이 받은 막대한 영향들은 훗날에도 여러 가지로 고생하게 될 요인이 된다.


작가는 소년을 지독하게 굴려댄다. 이 정도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반박 불가이다. 그래서 연속된 불행이 가져다주는 재미보다는, 얼마나 더 상황이 나빠질지를 상상하며 읽게 된다. 시오에게는 어중간한 관계의 인맥이 없었다. 완전히 멀리해야 하거나 평생 가까이해야 할 타입뿐인데, 어린이의 눈높이에선 무엇을 쳐내야 할지 몰라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대놓고 피해를 주는데도 관계를 끊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언제라도 다시 버림받고 혼자가 될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 하여 누구든 손만 내밀어 주면 그저 고마워서 진흙탕이라도 따라가고 만다. 술과 마약은 점점 소년의 총명함을 지우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실제로도 이런 케이스들이 가장 안타깝더라고.


1권에서는 그림 때문에 안절부절하는 내용이 거의 없다. 순전히 시오 인생에 끼어든 불행을 주로 다룬다. 빚쟁이 아빠를 잡으러 다니는 채권자들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죽어버리는 아빠. 아 정말 어린 나이에 인생 더럽게 꼬인다. 보고 있으면 숨이 턱 막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전개가 느린 편인데다 작가 특유의 절제미로 인해 갑갑함이 증폭된다. 그림만 들고 다시 뉴욕으로 튄 공황상태의 시오는 골동품 가게에 얹혀살면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아저씨에게 가게 일을 배우고 소녀와 친해지며 겨우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가나 싶더니 엄청난 변수가 등장한다. 2권부터는 그림의 행방을 알고 있는 인물의 등장으로 간신히 멘탈을 부여잡는 시오의 나날을 다루고 있다. 리뷰가 길어져 2권 내용은 생략하지만 딱히 분석할 건더기도 없다. 실망스러운 두 가지. 그 인물이 그림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설명이 없을뿐더러 결국엔 소리 없이 들어가 버린다. 또한 그토록 그림이 사라지길 염원했으면서 막상 없어지자 미친 듯이 찾으러 다니는 시오의 상반된 모습이 영 이해되지 않았다. 이 두 가지가 잘 나가던 작품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다 평범한 결말을 맺게 한 요인이다. 엄밀히 보자면 이 작품도 용두사미 플롯이다.


무거운 서사에다 분량도 많고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도 종종 다루고 있어, 어떤 메시지나 주제를 담은 듯해 보이지만 의외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인과응보나 사필귀정도 아니고 심지어 권선징악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걸 크게 확대해서 보여준다는 인상이랄까. 시오가 누구를 만나 어떤 길을 가든 지 간에 황금방울새의 그림에서 해방되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결말은 있을 수 없다. 우리도 때로는 일이 안 풀릴 때보다 잘 풀려서 불안할 때가 있지 않나. 이처럼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안의 싹이 언제 꽃을 피울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게 인생인가 보다. 만개한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짐을 볼 때면 꼭 이렇게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휑하고 쓸쓸한 가을겨울보다 화창하고 청량한 봄여름이 더 슬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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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0 1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뇌는 이상무 ! ㅎㅎ 물감님 글 마지막 문단 넘 좋은데요 *^^*

물감 2022-04-10 13:34   좋아요 2 | URL
정말요?ㅋㅋ 저 원래 글 하나 쓰는데 며칠 걸리는데 이번엔 금방 쓴거 거든요. 역시 강박을 버려야 하나봐요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4-10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 <황금방울새> 완전 몰입해서 읽었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좀 허~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재밌게 읽었어요.
물감님의 리뷰도 재미나게 읽혀요^^
코로나 때문에 고생 많으시군요?
헬쓱해지셨겠어요. 이동욱 얼굴이 반쪽이 된 얼굴이 상상되어 지는군요.ㅜㅜ
잘 챙겨 드세요^^

물감 2022-04-10 17:01   좋아요 3 | URL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가 않고 허~하네요ㅜㅜ 독서도 글쓰기도 집중이 잘 안되고요. 제가 유독 회복이 늦는거 같아요ㅋㅋ
재미는 있는데 이렇게까지 길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솔직히 결말은 쓰다가 막힌듯한 기분도 들고ㅋㅋㅋ 그래도 이 작가한테 관심이 생겨서 다른 작품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빨리 나아야죠! 책나무님도 건강하세요🙂

새파랑 2022-04-10 1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필력은 대단하신데 겸손하신거 같습니다~!! 저는 서평 까지는 아니고 독후감 쓰는건데도 어렵더라구요 😅 전 물감님 별 다섯개는 무조건 따라 읽겠습니다 ㅋ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물감 2022-04-10 17:08   좋아요 2 | URL
에이, 제 글은 인기없어요. 그건 제가 잘 알고 있거든요. 저랑 유머코드 비슷한 몇몇분이 계실뿐ㅋㅋㅋㅋ저보다 새파랑님의 독후감이 훨씬 낫습니다^^ 아마 알라딘에서 인기로는 탑텐에 드실걸요ㅋㅋㅋ 새파랑님을 위해 별5개를 열심히 뒤적거려볼게요😎😎😎

coolcat329 2022-04-10 18: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물감님 걸리셨군요 ㅠㅠ 그래서 조용하셨군요. ㅠ 아직 완전히 회복 안되신거 같은데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

물감님의 개성 넘치는 글 저는 늘 재미있게 읽으니 화이팅하세요~저는 물감님의 반만 써도 좋겠는데요...

도나 타트 ...저 아주 예전에 <비밀의 계절>이란 책 읽고 이해를 못했던 안좋은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요 책도 알고는 있었는데 선뜻 손이 안가더라구요.
도나 타트 다시 도전해 보고 싶네요.

물감 2022-04-10 19:52   좋아요 1 | URL
네 한동안 요양하느라 활동이 뜸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두꺼운 책을 골랐고요ㅎㅎ 곧 나아지겠죠 모😁 쿨캣님도 글도 충분히 개성있어요! 글도 잘쓰시고요ㅎㅎㅎ
비밀의 계절은 난해한가 보네요? 기회되면 읽어보고 평가해보겠습니다~ 일단 문체는 합격이에요😀

잠자냥 2022-05-20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물감님 저랑 비슷한 시기에 걸려버리셨었네요? 요즘은 회복 좀 되셨습니까? -몰아 읽기 뒷북 댓글 ㅎㅎㅎ-

물감 2022-05-20 15:11   좋아요 1 | URL
뒷북 읽고 댓글 환영이에요 ㅎㅎㅎ 코로나는 이제 다 나았지만 후유증이 있긴 해요. 피로감이 계속 떨어지지 않고 무기력 상태일 때가 너무 많아요 ㅠㅠ 처음엔 업무과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거 같아요. 그냥 빨리 걸리고 회복하는게 낫겠다고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안걸리는게 정답이었어요 아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