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온다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2
알베르토 푸겟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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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바쁜 게 얼마나 나쁘냐면 소중한 게 성가셔져.‘ 지금 나에게 너무 해당되는 말이다. 정신없이 바빠져버리니 차 한 잔의 시간, 여유로운 독서, 초저녁의 산책 같은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나는 인생에 야망도 없고 부귀영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만인데, 왜 세상은 열심히 살아야만 톱니바퀴가 굴러가도록 되어있을까. 대체 무슨 직업을 가져야 ‘적당히‘ 하면서 살 수 있는 걸까. 정말 인생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공부 중인 요즘이다. 이런 나의 심정과 비슷해 보이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답답하다, 짜증난다‘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이 한 권을 완독하는데 20일이나 걸렸다니, 진짜 짜증난다잉.


1980년대 칠레는 연령 불문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있고 클럽에 들락날락하는 데다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이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이 나라는 거리마다 황폐한 기운이 가득했다. 또한 피노체트 정권의 선거기간이라 바깥은 시끌시끌했다. 이제 막 브라질 수학여행을 다녀온 칠레 소년은 모든 것이 싫었다. 자유로운 브라질에 비하면 이 꽉 막힌 칠레 사회는 숨 막혀 질식사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기 빼고 모두는 현 정권의 방침에 잘만 적응해서 지낸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남들과 여러 번 부딪히다가 결국 가출하고 답답함에서 해방되려 한다. 그러나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주인공은, 이 거친 세상에 부딪혀 보기로 한다.


온통 불평불만투성이의 내용뿐이라 꽤나 당황했다. 이런 게 호불호가 확 나뉠 작품이지 싶다. 별 내용도 없는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는 거며, 이 책은 어째서 고전문학으로 분류돼있는 거며, 이 책이 주는 진리와 깨달음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만사에 짜증 나는 주인공이 그래도 이해는 되는 게 나 또한 최근에 엉망진창이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마구마구 쳐댔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짜증의 원인이 딱히 안 보여서 뭔가를 빠뜨리고 지나가는 느낌을 내내 받았는데, 알고 보니 불의한 지배 사회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의 성장기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니 안 보이던 작품의 메시지와 교훈들이 차례차례 보인다. 단순히 스토리로만 접근하면 참 볼품없지만, 칠레 사회의 배경에 초점을 맞춘다면 읽을 맛이 날 듯하니 안 읽은 독자분들은 참고하시도록. 그렇다 해도 글맛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칠레에 문외한인 나님은 이해 안 되는 내용투성이라 역자 해설은 필수였다헤.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변해버린 주인공에게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권에 휘둘려 폐쇄적인 소통 방식을 갖고, 외래문화에 길들여져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등 칠레인의 삶은 다양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기존의 질서가 뒤집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사람들은 열렬히 피노체트 권력을 지지하였다. 그렇게 국민들은 권력에 길들여지길 원하였고, 불의와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스스로 유지해나가고자 했다. 반대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제 삶을 지키려는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와 점점 멀어졌고 거리를 둔 것이다. 해설에 따르면 칠레는 자유의 욕망을 포기하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죽음의 땅이었다. 자유의 땅 브라질을 보고 왔으니 칠레의 폭력적인 악취는 더욱 진동했던 거였다. 역시 해설을 읽으니 주인공의 짜증이 이해가 확 되는군.


이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마주한 책이다. 본문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여러 번 언급하는데다 닮은 구석도 많은 듯한데, 아쉽게도 그 책을 읽지 않아서 어림짐작으로 이해하고 넘기곤 했다. 보시다시피 주인공은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그것을 꺾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 거지 같은 세상 속에서 좌로 가든 우로 가든 다 거기서 거기인데, 왜 남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틀렸다는 듯이 떠드는 걸까.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계속 자신만의 질서를 세상에 끼워 넣으려고 행동했다. 너 혼자 반대해서 뭐 어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뚝심에 적잖은 감명을 받았다. 생각의 틀에 갇혀 논리적 판단을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올곧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던 마티아스. 그를 통해서 황폐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한 작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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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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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다. 이 작가의 책은 리뷰를 쓸 때마다 머릿속이 매번 백지가 되곤 한다. 그녀의 작품은 기승전결도 확실하고 이야기에 힘도 있고 재미마저 보장한다. 그렇다면 할 말이 글로 술술 써져야 정상인데 도대체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를 모르겠단 말이다. 나는 웬만하면 리뷰를 쉽게 쓰자는 편인데 이 분의 책은 그게 잘 안된다. 여하튼 유정 누님의 스릴러 3종 세트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악‘이 태어나는 배경을 다룬 작품으로 소개되어있다. ‘7년의 밤‘이나 ‘28‘의 하드한 맛에 비하면 나름 소프트한 맛이므로 이전작들보단 부담이 덜 할 것이다. 반면 정유정표 고유의 서늘함을 기대했던 나에겐 매우 순한 맛으로 느껴져 살짝 심심하기까지 했다.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필력보다는 분위기로 승부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잔잔한 긴장감 정도로는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기가 어려울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모든 작품 중에서 이 책의 평점이 가장 낮더군. 정유정 치고 구멍이 많긴 했지만 작품성은 인정할만하다.


스토리 요약은 생략하겠다. 아무래도 일인칭 작품이라 텐션도 높지 않고 템포도 느긋한 편이다. 인간의 악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마침내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이 책을 써냄으로써 집착에 가까운 연구에 종지부를 찍은 듯하다. 그리하여 더 이상 스릴러를 쓰지 않을까 봐 걱정도 된다. 안 그래도 한국의 스티븐 킹이니, 스릴러 여제니 하는 수식어에 잔뜩 부담스러워 하시더만. 아무튼 작가가 보여주려는 ‘순수한 악‘은 기대보단 우려에 더 가까웠다. 이유에 대하여는 나중에 말하겠다. 일단 초반에 등장한 엄마의 죽음은 우발적인 사고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엄마의 감시 속에 살아온 주인공은 두려움과 해방감에 몸을 떨었고, 사태 수습과 함께 플랜 B를 짠다. 이제는 고삐 풀린 괴물이 되었으면서도 같이 사는 친구에게는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대하려 하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엄마와 몸싸움이 있기 좀 전에도 밖에서 살인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캐릭터의 갈피를 못 잡고 비틀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머릿속의 청군과 백군, 어린 시절 수영선수 생활, 죽은 형과 하던 서바이벌 게임 등등. 지금의 인격이 형성되기까지 있었던 과거들이 그나마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어 몰입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초반부터 죽은 엄마였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끝나지 않았다. 어찌나 시달렸던 건지 어딜 가도 엄마가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그것이 주인공을 제어하든가 불을 지피든가 했어야 하는데 유진의 성격변화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였다. 악에 눈을 떠서 생각은 엄청 많이 하는데도 사고 회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렇게 흐름에서 멈춰버린 유진을 움직여준 것이 절친인 해진과 또 다른 감시자 이모였다. 엄마의 행방과 실종을 의심하는 두 사람 덕에 바퀴 빠진 스토리가 어떻게든 굴러간다. 유진의 진실과 마주하여 머리가 하얘지는 이모와, 슬픔과 분노가 들끓는 해진. 결국 두 사람도 유진에게 죽는다. 다만 해진을 죽게 한건 악감정으로 비롯된 게 아니어서 더 난감했다. 이렇게 감정이 많은 주인공이 상위 1% 사이코패스라니, 내 감정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거요?


엄마가 써오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수많은 의문이 차례차례 풀려나간다. 엄마의 삼엄한 감시와, 수영을 그만두게 한 이유와, 자신이 먹던 약의 정체, 엄마와 이모의 관계 등등. 그리고 아빠와 형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 이야기는 절정을 찍는다. 형이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고, 형을 구하려던 아빠까지 죽었던 그날. 유진이 형을 밀어서 죽인 것으로 오해 한 엄마는 그에게 분노를 품고서 차갑게 대해왔던 것이다. 엄마의 태도가 겨우 납득이 된 주인공은 생각한다. 나를 보통 자식처럼 키워줬다면 지금의 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근데 이 대목에서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일기장에는 유진의 잠재된 악이 싹트고 있다는 게 여러 번 증명돼있었다. 따라서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악마가 된 건 아닌데, 작가가 계속 그쪽 길로 가려고 해서 뜯어말리고 싶더라. 중전마마,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런 일인칭시점의 소설들은 흐름도 시각도 제한되어있어 지루하거나 갑갑한 인상을 준다. 주인공들도 대부분 정상인이 아닌 데다 회상씬도 많아서 때로는 인내심 테스트하는 기분도 든다. 그렇지만 이런 플롯의 작품성은 작가가 직접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글을 썼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혹자는 문체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는데 글쎄, 오히려 난 그것이 더 현장감 있고 좋았다. 확실히 이 책의 문체는 부자연스럽지만 그래서 더 불안정한 유진의 정신 상태를 볼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악에 근접하기 위해 사이코패스에 빙의되어 쓴 글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문체나 문법의 부자연스러움도 하나의 기교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정유정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암튼 정유정의 글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인데 그래도 나랑은 잘 맞는 편이다. 여러 리뷰들을 종합해본 결과 이 책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부실한 악의 통찰이다. 어쩌면 독자들이 원한 건 단순한 사이코패스의 심리가 아니라 악이 탄생하게 된 기원이나 유래를 보고 싶어 했던 게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제목부터가 기원이니까. 선이 악으로 바뀌는 과정이 궁금했는데 날 때부터 포식자 DNA가 있었다는 설정에 김이 새 버렸다. 우유만 빨던 사자 새끼가 커서 사냥 본능에 눈뜨는 건 당연한 건데 여기에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것처럼 원래부터 포식자였던 주인공의 살인은 당연해 보였고, 이 과정에서 악의 기원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대목에서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별점 테러를 한 게 아닌가 싶은데, 차라리 억눌려왔던 분노를 포효하는 괴물로 변했다면 어땠을까나? 이것저것 코멘트를 달긴 했지만 재밌게 잘 읽었답니다. 갑자기 급 포장하는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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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9-10-05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이 태어나는 배경을 다룬 작품이라는 설명에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났습니다.
정유정의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입장은 되지 못하지만 물감님의 리뷰로 대략 유추해봅니다. 나를 보통 자식처럼 키워줬다면 지금의 악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유진의 생각과, 날 때부터 포식자 DNA가 있었다는 설정은 정반대의 접근 방식이라 여기에서 독자들의 혼란이 오는 것 같습니다. 전자는 성선설의 관점이고, 후자는 성악설의 관점인 것 같아서요.
<프랑켄슈타인>과 비교해본다면 주제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메리 셸리의 관점은 성선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물의 상황이 이해되고 연민이 느껴졌거든요.

다양한 학생들을 접하면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하여 가끔 생각해보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야비한 기질은 타고 난다‘는 성악설에 가깝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물감 2019-10-05 09:48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설명은 못해도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캐릭터 설정붕괴에서 찾았구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같은 경우, 각성하게된 발단이 완벽했죠. 누가 봐도 이해되니까요. 이 책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면 큰 논란도 없었을거에요. 사패를 완벽히 이해한다는건 불가능한 영역일테니까요. 여튼 설정만 잘잡았으면 퍼펙트한 소설이었습니다ㅋㅋ

별의별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시는건지 참 대단하세요. 말씀하신 그런 기질들도 타고나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비종 2019-10-05 10:1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캐릭터 설정^^ 소설이 다큐는 아니니까 극한으로 몰고 가도 되었을 뻔했습니다. 세상에는 소설 속 캐릭터로 생각될만큼 비현실적 인물들도 차고 넘치는 것 같거든요. 진정 인간의 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괴한 영혼들이 많잖아요.ㅎㅎ 문학작품의 장점을 마음껏 활용하지 못하셨나 봅니다. 어차피 주제가 뚜렷하다면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나름의 해석으로 접근했을텐데 말이죠.

과연 별의별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걸까요. 요즘 헷갈리고 있다는 ㅋㅋ

물감 2019-10-05 11:24   좋아요 1 | URL
ㅎㅎㅎ고생하십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자주 접하시니 관찰력도 자연히 생기겠네요. 모쪼록 끌려가지만 마세요ㅋㅋ
 
프랑켄슈타인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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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진 만큼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자는 다짐과 달리 점점 독서와 멀어져서 큰일이다. 이제는 휴일마저 책을 멀리할 정도로 독서 습관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나마 고전문학 모임 덕분에 아예 놓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요즘이다. 자주 가는 알라딘에도 예전만큼 리뷰가 많이 올라오지 않는듯하다. 다들 바쁜 건지 어느새 활동을 끊은 인싸 이웃들도 여럿 보인다. 나라가 흉흉하니 마음도 뒤숭숭해져서 그러신가. 그러고 보니 요새는 동네 고양이조차 구경하기 힘들어진 듯? 가을이 주는 울적함에 내 기분을 전부 맡기지는 마시길. 이번 선정도서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 차례이다. 분명 유명한데 나는 뭔 내용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고전 반열에 들어선 과학소설로 소개되어있던데 SF가 어떻게 고전으로 분류되는 건지 궁금했다.


이 작품은 지가 싼 똥을 밟고 넘어져 머리 깨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대학에 들어가 화학자의 길을 간다. 생명의 신체를 연구하고 밤낮으로 작업한 끝에 그는 살아움직이는 무생물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창조자가 된 기쁨에 우쭐했다가 자신이 벌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는 두려움에 괴물을 외면했고 괴물은 세상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망연자실하는 중에 부친의 편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만든 괴물이 막냇동생을 죽인 것이다. 사실대로 말도 못하고 고통받는 주인공 앞에 나타나 파격적인 제안을 건네는 괴물. 그리고 진퇴양난에 빠진 프랑켄슈타인. 그러나 이 앞에는 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가독성도 좋고 진행속도도 적당하고 메시지도 뚜렷하고 정말 칭찬함.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을 지은 박사의 이름이었고, 해설에서도 이 오해를 자세히 해명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나 보다. 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태어난 이름 없는 괴물. 왜 하필 인간의 감정을 얻어서 그렇게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 괴물의 토로를 듣다 보니 이거 이거 너무 짠해서 내가 다 미안해지곤 했다. 괴물은 주인에게 말한다. 모두가 나를 혐오해도 창조자는 그래선 안된다고. 자신은 주인의 정의 그 자체이며 사랑받을 존재인데 이유 없이 쫓겨났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은 가족을 죽인 눈앞의 흉물을 만든 이가 자신임을 계속 상기시키는 괴물이 저주스러웠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괴물이 소개한 오두막집 가족의 이야기도 참 인상 깊다.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한 결과 괴물은 인간의 언어도 배우고, 감정도 터득하고, 문화도 습득했다. 그러나 인간에겐 선함도 있으면서 동시에 사악함도 들어있었다. 그 가족은 과거 누군가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조국에서 추방당한 것이었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 난해한 것은 착한 사람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인간성의 모순됨이었다. 순수한 심성의 그 가족들은 괴물의 겉만 보고 악마라 판단했다. 괴물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다가갔으나 그 내민 손을 뿌리친 건 인간이었다. 우리도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았나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친절을 베풀고도 욕먹은 괴물에게 분노와 복수심이 생겨남을 보면 모든 ‘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에게 멸시받아온 괴물은 자신의 행복의 권리를 주장한다. 자신만 짝이 없으니 동반자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거절하면 지옥행 관광열차를 태워주겠단다. 그리하여 피조물은 주인이 되고 창조자는 노예가 되는 반전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아 글쎄, 이런 내용을 작가가 19세에 썼다는 게 믿어지는가? 아무튼 한 놈 만들고도 이토록 후회하는데 동반자를 만들라니, 심란하다 심란해. 인류를 해칠지도 모르는 흉기를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배필을 만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폭주할 듯한 괴물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멘탈 바사삭 중인 프랑켄슈타인. 그의 의심은 결국 계약을 파기하였고 괴물은 약속대로 지옥을 선사했다. 이후로 그의 주변인들이 차례차례 당하는데 그럼에도 괴물의 존재를 함구하는 주인공이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만 있었으니. 이게 다 심은 대로 거둔 거야, 하기엔 좀 거시기하지만 아니라 하기도 뭐 한 상황이랄까.


나는 행복해져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차례 슬픔과 아픔을 겪다 보면 사소한 기쁨마저 크나큰 사치로 느껴지고 스스로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처럼 불행은 자신을 갉아먹고 소중한 것들과 담을 쌓게 한다. 프랑켄슈타인도 그것과 같은 수순을 밟는다. 연속되는 불운 속에 기사회생을 반복하나 말 못할 비밀과 고통으로 죽지 못해 살았다. 이 정도 힘들었으면 누가 봐도 자살했을 법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당할 일을 생각하면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괴물은 그의 절친을 죽여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살인죄를 누명 씌워 감옥신세가 되게 하고, 마을 전체에게 죄인 취급받도록 만들었다. 약속을 어길 시 지옥 관광을 선언했을 때 이런 지능 플레이를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내가 볼때 이 책은 고전보다는 메가 히트작 스릴러문학으로 분류가 되었어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일편단심 사모하는 엘리자베트도 그렇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들의 지주가 되어준 부친의 사랑 또한 위대했다. 타지에서 수년간 연락도 없는 아들을 대견하게 여겼고, 막내가 죽었을 때 본인도 괴로우면서 아들을 지치지도 않고 달래주었고, 다시 장기 여행을 떠난다는 아들을 응원해주었고, 머나먼 나라에서 감옥신세가 된 아들을 보러 달려와서 간병해준 아버지. 아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도 끝까지 캐묻지 않았던 속 깊은 부친이 있어줘서 주인공은 다행히도 고독사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또 한번 부친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어야 했다고 본다. 슈퍼맨도 지구에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따른다. 주인공도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그만 아파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고 모두 다 괴물의 제물이 된다. 그제서야 헌터가 되어 괴물을 추격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이야기...


역자는 이 작품에 대해 불경한 기술을 빌려 창조주를 사칭함으로써 멸절의 위기를 자초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하였다. 이 복잡한 말을 간단히 하자면 선을 넘지 말라는 뜻 아닐까. 이건 단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무모함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도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만 담을 수 있다. 욕심으로 더 많이 눌러 담다가 그릇이 깨질 수도 있다. 깨진 그릇은 복구도 안되고 조각 날에 상처도 입는다. 프랑켄슈타인도 괴물을 만들고 나서 지식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욕망에 눈이 머는 게 얼마나 죄악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곧 2020년에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과학기술들에 의존하며 사는가. 나날이 발달하는 그 기술들이 언젠가 선을 넘어서 인류에 큰 재앙을 불러오리라 확신한다. 위험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니 집안에 비상용 아이언맨 슈트 한두 개쯤 구비해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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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7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쁜 와중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 읽으시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쨕쨕쨕

선을 넘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반
작용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고딕 스타일의 소설로 메리 셸리
는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기술문명의 발전이 꼭 유토피아
로 귀결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도요.

물감 2019-09-27 12:28   좋아요 2 | URL
책을 못 읽는 것보다 글을 못쓰는게 더 답답하네요. 이러다 뇌가 굳을까봐 걱정입니다ㅎㅎ

보면 볼수록 작가는 천재같아요. 인류를 해할 지식의 위험함도 그러하지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다룬다는 게 대단했습니다.

핵전쟁이 가능한 것도 과학기술의 발전 덕이겠죠. 그런걸 보면 인간은 괴물의 말처럼 위대하면서도 어리석은 모순된 존재가 분명합니다.

페크(pek0501) 2019-09-27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지금 이 시간에도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미래를 위해 연구하고 있을 이들을 떠올리게 되고, 인간 수명이 150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학의 발전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고 싶다가도 망설여지는 건 그 과학의 혜택이 내게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령 허리 디스크를 낫게 해 주고 안구건조증을 낫게 해 주는 약을 만들어 낸다면 저로선 대환영이니까요.
그래도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에는 당연히 반대죠.

이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건 이 리뷰의 성공이라고, 소감을 남깁니다.


물감 2019-09-27 13:02   좋아요 0 | URL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유독 과학쪽은 의도가 불순하면 피해가 큰듯 싶네요. 의료나 교통같은 좋은 쪽으로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쩌면 이런 지식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조차 위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비종 2019-09-28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는 도자기를 굽는 것과 비슷한 건가 봅니다. 적어도 몇 번은 읽어줘야 제 맛이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사건의 뼈대만 보였을 겁니다. 초벌구이를 한 말간 도자기처럼. 삶의 고비를 그런대로 몇 번 넘어온 지금 읽으니 마음으로 다가오는 게 엄청 많네요.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고려청자처럼 이 생각 저 생각 이 느낌 저 느낌이 확 발색이 되어 마음으로 퍼지네요. 이런 면에서 나물은 소중한 모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

‘지가 싼 똥을 밟고 넘어져 머리 깨진 한 남자의 이야기!‘ 촌철살인의 한 줄 요약에 뿜었습니다! ㅋㅋ 이번 리뷰도 역시 물감님스럽습니다. 유쾌, 상쾌, 통쾌! 쾌변 3종 세트가 깔끔하게 포장된 느낌이랄까요. 낄낄거리며 읽다보니 아이언맨 슈트까지 왔더라구요.ㅎㅎ

물감님과 몇몇 공통점을 발견해서 반가웠습니다. 맞아!맞아! 하며 수다 떨 친구를 발견한 기쁨이었죠.
1. 분명 유명한데 뭔 내용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2.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가독성도 좋고 진행속도도 적당하고 메시지도 뚜렷하고 정말 칭찬함
3.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 줄
4. 이거 이거 너무 짠해서
5. 오두막집 가족의 이야기
6.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았나
7. 모든 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8. 19세에 썼다는 게 믿어지는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부친의 사랑을 언급해주셨군요. 책을 읽을 때는 인상깊게 들어오지 않았는데 물감님의 글을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동감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공유한다는 건 이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시선을 두지 못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거든요.^^

‘행복해져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살짝 색깔이 다른데 ‘행복하고는 싶었지만 행복해지지 못했던 시절‘이 떠올랐거든요.^^ 결론은.. 물감님의 글에 담긴 쾌적한 유머러스함을 응원합니다!ㅎㅎ

이번 달도 무사히 해냈습니다!!ㅋㅋ

물감 2019-09-28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 커서 독서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많이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제 성격상 그냥저냥 대충 읽고 넘어갔을 책들이 대부분이었을것 같아서요. 그래서 나름 작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이제야 읽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물모임 이전엔 고전문학은 내가 노려볼 레벨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역시 조촐한 이 모임이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기쁩니다요 ㅎㅎ

글을 쓰면서 왠지 이부분은 나비종님도 공감할거란 생각들이 몇몇개 들었어요. 마치 전파신호가 오듯이 말이죠^^ 대표적으로 괴물의 짠내나는 속사정과, 천사가 악마로 바뀐 배경 같은 것들인데요. 몇번의 모임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가 인간의 감성과 휴머니즘에 맞추어져있다는 생각을 자주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책이야말로 ‘아 이번엔 둘다 진짜 할말도 많겠구나‘ 싶었죠 ㅎㅎㅎ 그리고 개인적으로 괴물의 요구를 들어준 쪽으로 흘러가는 내용도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예전에 행복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기만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리뷰엔 프랑켄슈타인이 저와 같다고 적었지만, 진짜는 괴물이 저를 더 닮아있었습니다. 아무리 다가가고 손내밀고 남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어도 결국 혼자만의 뻘짓으로 되곤 했던 제 모습과 괴물의 한탄이 너무나 비슷해서 울컥했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ㅎㅎ 여튼 이달안에 무사히 읽어내서 다행입니다. 담달도 파이팅입니다 ㅋㅋㅋㅋㅋ

나비종 2019-09-28 22:28   좋아요 1 | URL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나이들어감이 건네주는 매력일까요. 같은 책이라도 어느 나이대에 읽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걸 보면 베스트셀러는 작가와 독자의 궁합이 잘 맞는 책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나물모임이라는 느슨한 테두리가 그나마 고전문학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혼자서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꾸역꾸역 읽어내고 느낌을 적고 다른 이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두근거리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물감님께 흐믓한 감사의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냈다는ㅎㅎ

헉! 저도 이 책이라면 물감님으로부터 내쳐지지는 않겠다 싶었거든요. 감성과 휴머니즘이라...흠... 그런 것 같습니다.^^
파트너 괴물이 만들어졌다면? 결말 바꾸기로군요. 괴물의 인성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조용히 손 붙잡고 북극으로 가서 이글루 짓고 잘 먹고 잘 살았을 것 같습니다만ㅎㅎ 역시 대화는 나누어봐야한다는.. 방금 제 사고의 폭이 2cm 쯤 넓어졌거든요~

저도 괴물에 애정이 느껴집니다. 괴물의 좌절과 상실감이 확 다가오더라구요.^^
이번 달은 독후감대회에 참가할 책 읽느라고 이 책은 맨 마지막에 읽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너무 좋았습니다.ㅎㅎ

물감 2019-09-28 22:55   좋아요 1 | URL
텔레파시 잘 받았습니다ㅎㅎ
같이 읽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게 더 좋아요. 전 사실 읽는것보다 글 쓰는게 더 좋거든요ㅎㅎㅎ 깨닫지 못한 점을 알아가고 공유한다는 게 가장 기쁩니다^^ 사고의 폭이 커지는게 보이네영ㅋㅋ

무엇보다 도서 선정에 성공해서 뿌듯하네요! 담 달에 읽을 ‘말라 온다‘는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던 작품입니다. 그 책도 이번처럼 재미있었음 좋겠네요ㅋㅋ10월에도 즐독입니다!
 
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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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인 남주는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파리의 임대 아파트로 온다. 그리고 경찰을 그만둔 여주도 똑같은 임대 아파트로 온다. 부동산 측의 전산 오류로 두 남녀는 같은 집에 계약된 것인데 서로 이 집을 전혀 양보할 맘이 없었던 것은 그 집이 유명 화가가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화가는 몇 년 전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현 집주인이자 절친이었던 친구가 아파트와 화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화가에게 관심 있어 하는 두 남녀에게 미스터리한 퀘스트를 던져준다. 화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딘가에 감춰둔 세 점의 미공개 그림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형사 본능이 발동한 여주는 귀찮아하는 남주를 자극하여 그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미공개 그림들은 화가의 가족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족애가 발동한 남주는 이 일에 손 떼고 싶어 하는 여주를 자극하여 화가 집안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미스터리 추리물인가, 아님 스릴러물인가. 그림을 찾는다고 하니 당연히 추리물이라고 믿었다. 보상 하나 없는 퀘스트였지만 그래도 고대 유물을 찾는 듯한 인디아나 존스의 도시 버전 느낌도 나고 나름 좋았더랬다. 비록 그 과정은 독자가 전혀 추리할 틈도 주지 않았지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계속 깔아주고 있었으니 오호라, 이번 작품은 분위기로 압도하는 작품인가 보다 하며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어나갔다. 걱정 반은 무슨 연고였냐면 그림을 찾아낸 것이 총 분량의 딱 중간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미제 사건인 화가의 죽은 아들 찾기 내용으로 2부가 시작되는데 갑자기 스릴러물로 바꾸려는 건지 이상한 구간에서 자꾸 텐션을 올리고 스피디한 전개를 진행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대 속도감을 내어선 안되었다. 오히려 1부처럼 천천히 분위기로 압도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화가도 이미 죽었고, 사망처리된 아들 사건도 이미 경찰과 대중의 관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흐름상 급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안 뺏어 먹는데 괜히 작가 혼자서 엄청난 속도로 밥 먹는 느낌이었달까.


아무튼 1부 그림 찾기에서 2부 아들 찾기로 이어지는 것이 매끄럽지 않고 뜬금없었다. 그림 찾는 건 희열과 설렘이라도 있지 아들 찾는 건 글쎄, 그 정도로 흥분하고 집착할만한 일인지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두 사람 다 아들을 찾아낼 임무나 사명은 전혀 없었고, 본인들 외에 이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불타는 정의감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어릴 적 가정불화를 겪은 남주가 갑자기 없었던 부성애가 생기면서 화가의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는 것도 영 개연성이 떨어졌다. 이미 초반부터 남주는 세상과 인간을 혐오하는 캐릭터였는데 어쩜 그리 단기간에 딴 사람으로 될 수가 있답니까? 나의 솔직한 심정은 ‘찾아서 어쩌게?‘ 정도였다. 그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 것처럼 보일뿐, 수사에 별다른 의미나 동기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두 남녀가 전혀 한가로운 것도 아니었다. 남주는 글 쓰려고 파리까지 날아왔고, 임신한 여주도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근데 본인들 사정은 전부 뒤로하고 왜 그렇게까지 수사에 열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의문점들을 보면 이 책의 장르는 미스터리가 맞긴 맞다.


엄청 복잡하게 꼬아논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스트레이트한 플롯이라 딱히 차별성을 갖진 않는다. 그래서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들에게 더 힘이 실린 편이다. 각자 아픈 과거도 있고 화끈한 성격도 있어서 이 대조된 캐릭터라면 보여줄 케미가 무궁무진하겠다 싶었다. 만나자마자 싸우는 두 남녀의 해프닝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얼마 안 가서 둘은 힘을 합치기 시작했고, 그러자마자 통통 튀던 작품은 급 평범해져 버렸다. 그러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인물 설정은 꽤 그럴싸했으나 크게 써먹질 못하고 있었다. 마치 피카츄가 전기 공격은 안 하고 죽어라 박치기만 하는 꼴이랄까. 그래 이건 그냥저냥 넘어가 주었다. 사건을 맡게 하려고 두 사람이 만난 과정 또한 억지스럽고 개연성 부족이라는 말에도 난 좋게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좋든 나쁘든 작가가 만든 많은 설정들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고 오로지 화가의 부성애만 조명하려고 한 것도 문제였다. 죽은 사람의 부성애를 아무리 강조해봤자 이미 힘을 잃었기에 이야기에 탄력이 붙질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자꾸 스릴러를 접목시키려 들어서 크리티컬 낭패였지. 더 안타까운 건 화가가 아들을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수차례 증명하시는데, 미안하게도 작가가 바랬던 만큼 부성애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짓나 했더니 자기들끼리 가설을 세우다가 이거다! 결론 내고서 끝이 났다. 이 책도 전형적인 타이타닉 플롯이었음. 차라리 부성애가 아닌 두 남녀의 휴머니즘에다 포커스를 두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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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9-16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욤의 책들 이제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요 ㅜㅜ

물감 2019-09-17 06:54   좋아요 0 | URL
기욤의 책이 용두사미가 많은가요? 딱 두 권 읽었는데 느낌이 쎄하네요ㅎㅎ

coolcat329 2019-09-17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기욤책 <구해줘>에 반해서 그 후로 5권을 더 읽었으나...저 또한 읽고나면 허탈한게 더이상 손이 가질 않더군요.

물감 2019-09-17 16:08   좋아요 0 | URL
음 그럼 저도 구해줘만 읽고 손절해야겠군요.... 근데 이 작가는 왜 그렇게 유명한걸까요?

레삭매냐 2019-09-17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욤 안녕...

물감 2019-09-17 16:09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도 끊으셨군여...

coolcat329 2019-09-17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해줘>실망하실 거에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잘 안나지만 로맨스 스릴러 sf요소가 섞여 산만하면서도 역시나 뜬금없고 가독성이 엄청났기에 처음엔 좀 신선했다고 할까요? 당시 기욤이 좀 화제이기도 했고 쉽게 읽히니까 그냥 읽은건데,후회만 남더라구요 ㅎㅎ

물감 2019-09-17 17:06   좋아요 1 | URL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기욤은 안녕입니다ㅎㅎ
 
12번째 카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6 링컨 라임 시리즈 6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근무지가 바뀌어서 이제 책 읽을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될 것도 같고. 아무튼 굉장히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어쩐지 손가락도 잘 안 움직이고 전두엽도 잘 안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감을 좀 찾고자 그동안 썼던 내 글들을 역주행하면서 읽어봤는데 원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리 너무 무겁고 딱딱하고 어두운 글의 방향으로 치우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시 초심을 찾아 원래의 나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꼈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면 남의 글을 많이 읽고 공부하기에 앞서 자신의 글들을 읽으며 단점을 보완하는 게 더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독서는 힘들지언정 글쓰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여 겸사겸사 애정 하는 제프리 디버의 책을 골랐는데 세상에나, 이제껏 읽은 이 분의 작품 중에 가장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결심을 하자마자 이런 책이라니. 아무리 애정 작가라도 내 안에 날뛰는 흑염룡을 말릴 순 없을거라규. 대체 그 엄청난 속도감의 스릴은 어디로 가고, 예리하던 법과학 추리도 왜 갑자기 영구와 공룡 쭈쭈처럼 돼버린거여? 엔간히 답답해서 산소호흡기로도 모자라 셀프 심폐소생술까지 해가면서 읽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읽냐고요? 난 의리의리한 남자니깐요.



한 흑인 소녀가 괴한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뒤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이 사건을 담당 맡은 링컨 일행은 소녀가 조사 중이던 자신의 조상 이야기를 듣게 된다. 140년 전 해방 노예였던 소녀의 조상은 거액의 돈을 훔친 죄목으로 쫓기는 신세였었고, 당시 가족에게 여러 차례 썼던 편지에서 조상이 차마 말 못했던 일급비밀에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그것이 소녀가 노려진 이유라고 생각하여 범인과 함께 140년 전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또한 이번 범인은 지극히 평범함을 자랑하여 뚜렷한 특징이 없어서 애를 먹었고, 수사진의 방향을 틀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도 가차 없이 죽이는 등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할렘가에 사는 소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할렘에 능통한 자들을 섭외한다. 반면 할렘에 대해 무지했던 링컨은 예측불허한 범인의 지뢰를 수차례 밟는다. 고생 끝에 범인은 붙잡히고 소녀가 죽어야 했던 이유 또한 공개된다. 과연 편지 속 140년 전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편은 어딘가 제프리 디버 답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 봐야 하나, 것도 아니면 그 두 사이 어디쯤에 있는 건가 싶은 아리까리한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일단 사건이 터지면 늘 그렇듯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고 법과학으로 범인을 물색한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똑같은데 별 내용도 긴장감도 없는 장면들로 3부까지 싹 날려버려서 어리둥절하다 못해 살짝 걱정되기까지 한다. 실컷 증거물 분석하다가 갑자기 번뜩하더니 모든 건 범인의 연출이었다며 김전일 코스프레를 시전하는 링컨의 연기력은 송강호도 울고 가겠던데? 그래 뭐 링컨도 사람인데 헛다리 짚을 수도 있지.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이 헛다리를 왜 자꾸 짚으시는 거야. 똑같은 패턴을 너무 울궈먹어서 뼈가 다 삭을 지경이던데? 정말이지 이건 디버답지 못한 행동이었슴돠.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 같다고 느낀 데에는 불필요한 대화 장면이 늘어난 것도 한몫한다. 원래 이 시리즈가 인물보단 사건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화 씬은 굉장히 보기 힘들었다. 근데 이번 편은 그런 장면이 유독 많아, 분량을 늘리기 위함인지 아님 새로운 변화를 주려함인지 작가를 직접 인터뷰해보고 싶어지더군. 여튼 조금도 분량을 허투루 날리는 법이 없는 양반께서 왜 갑자기 루즈해졌는지 알 턱이 없으나 그래도 명색이 스릴러 거장인 만큼 그레이트한 포텐은 빵빵 터뜨려주신다. 다만 그것이 후반전도 아니고 연장전에 나와서 지루해 죽을뻔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당이 떨어질 대로 떨어질 즈음 초콜릿 비를 내려주시는 밀당 작가의 불친절함을 그래도 용서해주고자 한다. 중박 좀 치면 어떠랴, 슬럼프만 아니면 됐지.



이번 범인은 경찰의 시선을 계속 돌려대는 연출의 달인이었다. 어쩐지 전편의 ‘사라진 마술사‘에서 범인이 자주 쓰던 미스디렉션과 비슷한가 싶지만 약간 다르다. 마술사 범인은 눈앞에 A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B를 진행하는 패턴이고, 이번 범인은 현장을 조작하여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추리하게끔 만드는 패턴이다. 오로지 증거물만으로 프로파일링을 하는 링컨에게 있어 이렇게 혼선을 주는 범인은 그야말로 링컨과 상극인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링컨이 자꾸 영구 같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동안의 위엄이 폭삭 가라앉아 부렀지. 그래도 여러 번의 뻘짓 끝에 꼬리가 잡히고 아 드디어 수사 속도가 좀 붙으려나 기대하던 차에 그마저도 범인의 계획이었다며 통수를 친다. 진심 이 정도라면 범인이 엄청난 캐릭터라야 하는데, 이제껏 등장한 악역 중에 가장 평범하고 밋밋한 설정이라서 그것이 많은 반전 중 베스트 반전이 아닐까 싶다. 혹시 이것마저 작가의 새로운 시도였을까나.



디버는 책을 낼 때마다 배경이든 직업이든 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다룬다. 이번 편은 흑인 문화의 고장, 할렘이다. 나는 이 할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1차 대전 이후 흑인들이 맨해튼 북부에 자릴 잡았으며 노후화된 주택과 가족관계가 엉망인 사람들이 가득한 빈민가의 상징이자, 반사회적인 사람들의 은신처라고 나온다. 이 책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흑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불만을 표출했는데 DJ, 랩, 브레이킹 댄스, 그래피티 같은 흑인 문화운동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나마 할렘에서는 그들만의 자유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데 흑인 문화들은 차츰차츰 변질되어 할렘 거리는 힘을 잃었다. 소녀의 조상이 살던 노예 시절이나 지금이나 흑인들이 받는 대우는 여전했다. 과거엔 육체를 뺏겼다면 현재는 그들의 정신을 뺏기고 있다. 겨우 이 책 한 권으로 할렘의 역사를 다 알 순 없으나 이렇게라도 관심을 갖도록 해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솔직히 이번 편은 링컨의 추리도 엉망이고, 색스의 액션도 거의 없고, 악역도 평범하고, 동료 간에 멤버십도 거의 없어서 등장인물에게 볼거리가 전혀 없었다. 하나같이 노잼이었지만 특히 사건의 중심이었던 흑인 소녀의 땡깡 때문에 몰입이 계속 틀어져서 힘들었다. 범인이 학교까지 찾아왔는데 그래도 남아서 시험 쳐야 한다며 우기는 게 너무 어이없어서 이 정도면 제대로 설정 미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소녀의 고집이 그렇게나 완고했던 건 하루빨리 졸업해서 할렘을 뜨고자 했던 것이며,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큰 그림이 틀어짐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그 간절함은 어쩌면 할렘가 빈민들의 희망이 응축된 게 아닐까. 뭐가 됐건 이번 작품은 메시지 면에서는 좋았지만 재미 면에서는 진짜 영 아니었다. 성대결절이 온 김경호 언니의 무대를 보는 듯했거든. 쉬지 않고 콘서트하면 목 나가듯이, 너무 다작해서 뇌에 과부하가 온 걸 거야. 그니까 힘들 땐 시험시험 하세요.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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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9-09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버는 책을 낼 때마다 배경이든 직업이든 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다룬다.˝
- 저는 직업이 나오는 소설이 흥미롭더라고요. 특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더욱.
알랭 드 보통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독자들은 의외로 직업 세계가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고요. 화가가 나오는 소설 <달과 6펜스>가 생각나는군요. ㅋ

물감 2019-09-09 16:33   좋아요 1 | URL
문학의 장점중 하나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직업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거요. 어쩌면 평생동안 관심조차 못가질 직업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게 해주니까요. 물론 그것이 얕고 넓은 지식에 그칠지라도 새로운것을 알아간다는건 기쁜일이죠ㅎㅎ
달과 6펜스는 아직 못읽었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