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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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힘들었던 것 같아. 항상. 사는 게. 항상. 항상. 한 번도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었다.

“유튜브를 봤는데. OO 작가가 그러는 거야.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려서 병실에서 눈만 뜨고 있는 데. 그 생각이 들더래. 한 번도 나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구나. 겨우 깨어나서 책을 읽었대. 책만 읽었다고.”

- 2호선이었던가. 앞뒤 꽉 찬 에스컬레이터에서 갑자기 너무 내리고 싶고 토할 것 같았는데 부들부들 내가 주저앉으면 계단에 매달린 사람들 모두가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야. 그 몇 분이 지옥 같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공황인건데, 여튼. 여기서 내리고 싶어요. 나 여기서 내릴래요. 그 느낌 알지? 나 여기서 내릴래요. 그날 지하철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나도 그 생각 했던 거 같아. 한 번도 나로 살아본 적이 없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일 분도. 일 초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딱 한 시간만 나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나로 산다는 게 뭔지는 모르고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나 책 읽었던 거 같아. 근데 그 선택조차 너무 착한 거 같아서 가끔 짜증나.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자기 객관화를 왜 못해?”

- 그러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너 아프다고.라고 말하면서 나는 울었다. 내가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 너는 몰랐으면. 하지만 알게 되겠지. 인생은 기니까.




*

선이의 순진함

미주의 오만함

가은의 회피

한희의 합리화

내가 나이가 좀 들었나 보다. 소설 속의 그녀들을 이상하리 만치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너, 그러다. 당한다. 그런데 당해야 하는 것도 알았다. 다 나 같고, 내 친구들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아팠다. 평론가는 핍진하다고 했다. 핍진.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읽는 것 같지 않다. 이미 삶이 핍진한데. 더 핍진할 필요가 없어서 일지도.

이제 나는 좀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읽을 수 있어졌다.

*

니들만 마미냐? 나도 곧 마미 된다.

뭐? 쟝쟝? 결혼해?

마흔 미혼녀….

친구들이 깔깔 웃는다.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 곧 사십이구나. 한다. 서로 주름 자랑 흰머리 자랑하다가. 언제나 건강 염려로 끝맺는다.

어느 날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친구들이 신경정신과 약을 먹거나, 술을 자주 많이 마셨고, 갑자기 졸도를 했다고 했고, 느닷없는 수술 소식을 알렸다. 지나치게 혹독하고 평가적인 말을 했고, 어떤 밤에는 전화를 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나는.

나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는 채로

돈을 벌고

책만 읽었다.

학교 앞 공원에서 깡통이나 차고 놀던 내 흰머리 난 친구들의 얼굴들이 기억난다. 그래도 얘들은 다 뭐라도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무엇도 이룬 것이 없고, 아무도 것도 되지 못한 채로 사십 대를 앞두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참 이상한 것은.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렸고.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어떤 슬픔과 환멸과 낙담에 이젠 거의 완벽하게 익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은 더 낙담할 게 있고, 더 실패할 것도 있고, 아직도 비틀어 없애버려야할 어떤 희망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을 느껴야하는 지에 익숙하다. 있는 것도 없지만 없는 것도 없는 나는 이제 좀 나한테 적응이 되었다. 물론, 세상에는 부적응.

- 나는 세상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29)

- 나는 말이 더는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당신들은 틀리지 않았다. 맞다, 내가 틀렸다. (121)

- 이젠 이유를 묻는다. 왜? 왜? 집요한 물음표 살인마로 살기로 했다. 어차피 답은 없을 것이다. 더 집요하게 왜, 왜,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나한테 주면 된다. (173)

- 기꺼이 아쉬워진다. 아쉬운 건 나지만. 아쉬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는 못하겠으면. 떠난다. 떠나면 돼. 어차피 내 자리는 원래 없었고, 나는 틀렸고, 그래서 나는 시간을 만들어 물어보기로 했다. 나한테. (239)

소설의 #백자평 을 이렇게 적었다.

“나의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들이 점점 파리해지고, 어느 날인가부터는 약을 먹는다고 울먹일 때, 밖에 있는 너가 제일 부럽다고 할 때. 나는 네가 부러웠었는 데… 말을 삼키기를 다행였을까.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며 살아남아있고, 너무 혹독해지지는 말자고.”

살아남으려다 보면, 순진하기만 할 수도, 오만하기만 할 수도, 회피만 할 수도, 합리화만 할 수도 없게 된다.

나의 성공 공식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행운은 나의 위치와 조건에서 기인할 테지만 덕분에 나를 변화시키지 않는 행운은 곧 불행의 구조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건 좀 희극적인 부분 같다. 비극에서 배울 기회가 더 많다는 게. 특별히 내 인생만 고통은 아니고, 나만 피해자는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혹독해지지 말자. 가능하면 편파적으로 따뜻하게 바라보자.라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내 자리는 원래 없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조건을 잘 수행한다. 이해하기. 받아들이기. 잘 느끼기.

내가 하는 반항은, 느낀 점을 표현하기. 그게 틈이다. 고작 그만큼의 틈. 그걸 얻어내기까지.


나는 지나치게 순진했고, 오만했고, 회피했으며, 합리화했다.

그래서.


*문장들*

(29) 선이는 이제야말로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21) 미주는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온갖 말을 간신히 삼켰다. 당신은 틀렸어.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이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당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173) 가은은 이유 문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배우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은이 이유를 그다지 묻지 않으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은은 자신이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가은에게 사람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와 같았다, 어느 날 주어진 것.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

(239) 대체할 강사는 없었다. 한 명이라도 빠지겠다고 하면 한희가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희는 누구도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대학의 어학당들은 모두 학기 중이었고, 지금 단기 과정에 열흘 내내 일하는 조건에 응했다는 것은 다른 대학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미주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지금 아쉬운 사람은 너야. 한희는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그러나 약속이라는 것이, 예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 알아차린다면, 누구도 미래를 단언할 수 없을 거라고 한희는 생각했다. 아무리 굳게 의지를 다지고, 모든 상황이 하나의 추측만을 가리킨다고 해도 그렇다
- 나는 내일 떠난다.
한국어 문법은 때로 예정된 미래, 혹은 확실한 미래를 현재형으로 표현한다. 너무나 확실하기에 현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선명한 미래라고 해도, 절대로 바뀔 리 없는 예정이라고 해도, 이 역시 부서져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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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19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미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별 거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써놓으신 문장을 읽고 있자니, syo의 마미와 공쟝쟝의 마미는 저마다의 마미로군요. 당연하게도.
그러면 공쟝쟝의 마미는 별 거 있는 세계일 수도 있겠어요.

아 화이팅.

공쟝쟝 2024-11-19 17:38   좋아요 0 | URL
마미쇼~! 당연한 말이지만 마미쇼도 엄청날 것 같아요. 화이팅! ㅋㅋ
난 그래도 윤석열 나이 때문에 몇년 더 남았어요. 서기쟝 될 수도 있는 거고 앞일은 모.른.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11-2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파적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저도 장착하려고요, 당장 오늘 점심 시간부터 ㅋㅋㅋㅋㅋㅋㅋ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요즘 성경을 못 읽고 있는데 쟝님 방에서 지혜의 말씀을 듣게 되네요. 일단 오늘은 잘해 볼려고요.
 
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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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들이 점점 파리해지고, 어느 날인가부터는 약을 먹는다고 울먹일 때, 밖에 있는 너가 제일 부럽다고 할 때. 나는 네가 부러웠었는 데… 말을 삼키기를 다행였을까.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며 살아남아있고, 너무 혹독해지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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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이즈 섹스. 이 책은 섹스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최신(?)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 책이며, 나에게 이 책은 정확히 ‘페미니즘’ 책이다. ‘젠더’를 만나고 난 뒤 어딘가 시큰둥하게 되어버렸던 내 존재의 어떤 부분 (이 글에서는 ‘그것’이라고 임의로 설정해두겠다)에 ‘성차’라는 개념을 양념처럼 더하고 나니, 뭔가가 짭쪼름 맛이 나서 재밌어졌고, 더 집중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그게 무엇인지 앞으로 살아보는 걸로.

이해해 보기 위해 썼던 개념 난무한 문장들은 아쉽지만 다 지워버리고, 읽는 사람들의 재미와 호기심을 위해서 썰 풀기부터 시작한다.


1. 왓 이즈 섹스

오랜 S리스 상태에서 해방되어 연애와 사랑이 주는 격렬 주파수에 뿅 빠져버린 이웃님이 독서광 아니랄까 봐 “현실의 섹스, 그것은 전자책과 종이책이 주는 것의 차이랄까요”라는 댓글들을 다시며 나를 부럽게 하고 말았는데. 우우와.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이래?!?

그런데 *그전에* 왜어왜우어 기혼녀도 이혼녀도 비혼녀도 왜 리스인가요? (풍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나이 들면 못하는 건가요…? 😩 아, 결국 체력과 혈액순환… 그거시 젊음의 특권인가요? ㅠㅠ

풍족한 사람들은 풍족해서 숨기고, 없는 사람들은 없어서 숨기느라… 누구도 알 수 없어진 이 시대의 ‘섹스’. 우리 모두는 섹스로 태어난 존재이지만, 현시점 대한민국의 출생률을 보라. 드러워서 안하고 만다! ‘그것’은 매력 자원과 상호 노동(?)의 의지를 지닌 건강한 신체를 지닌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유니콘’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인가? 결핍은 과잉을 낳고… 그니까 부족해서, 없어서, 안 해서 이러는 거야? 정말로?!?!…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섹스는 그렇게 만인의 대상a가 되어 무더기의 이미지와 자본과 함께 유포되는 것이며… 쪽으로는 가지 말자. 자본주의 싫어하면 안 된다. 나는 원한다. 풍요와 부를. 끌어당김의 법칙이여, 방금 한 자본주의 비판은 취소 취소입니다. 나는 나는 부자가 될 거얏!

어디 가. 다시 돌아와. 현실의 섹스… 거기에 대해서 쓰자.



안 하고 살면 편해. 내 삶은 ‘그것’ 아니라도 문제투성이니까. 나는 지쳤다고. 너의 생물학적 한가함에 비하면 어딘가 조급해지는 나의 가임기의 시간을 견주며. 이것저것 안 따지기에는 과계몽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만약 연애를 한다고 치자. 내가 만날 수 있는 또래 남자 사람들 중에 결혼 생각 없이 연애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이미 결혼한 사람 빼고?

(연애)관계를 위한 관계에(결국 이성애가 주는 건 섹스 아니냐며, 그것만 지우면 컴팩트하다고) 기운 쓰고 싶은 생각이 없노라. 건조하게 발라낸 생선 가시 같은 말에 친구 역시 뾰족뾰족 말했었다. 님, 참 잘났네요. (물론 섹스‘만’을 위한 관계도 용어도 있지만, 당시 나는 리얼 참 트루 컨츄리라서… 언감생심ㅋㅋㅋ)

좀 접어주면 됐을 텐데 취했으니 할 말은 해야 했다.

“잘날 수 있을 때 좀 잘나면 안 되냐? 앞으론 계속 잘난 척 못할걸? 난, 애매하게 젊거든.

돌이켜보니 정말로 오만한 말이었다. 어떤 것을 빼버리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나를 조금 변호하자면, 연애가 곧 결혼으로 미끄러지게 되는 나이의 애매함은 매번 심판대처럼 다가왔고, 나는 의지대로 삶을 통제하고 싶었다. (물론 그래봤자 통제가 안된다. 그래서 더 애썼다.) 애초에 심판대에 서지 않으면 된다. 관계를 위한 관계, 전면 봉쇄. 그날 대화는 사랑 찾아 모여든다는 중년들의 자만추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고… 나는 지금보다 더 젊었기 때문에 남 일이라 여겼다. 구질구질하기 싫으면 돈을 더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닐까?라고 조금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게 맞나?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가져와보자.

“(51)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고통이 두려워 고통을 피해가려고, 적당히 사랑하고 음악이나 정치 참여나 정원 딸린 집 등의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 섹스 파트너를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보고 여럿 둔다는 것이 이해된다. 그렇긴 해도,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다른 고통에 비해 내 고통이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물의를 일으킨다고 여겨졌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하나의 사치로 여겨졌더라도, 그 고통이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 더 좋았다.

심지어, 학업과 악착스러운 노동, 결혼, 출산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갚아야 할 나의 몫을 다 지불하고 난 뒤, 드디어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게 된 듯했다.”

- <집착>, 아니 에르노


마흔일곱 살의 아니.

내가 사회에 모든 빚을 갚고(물론, 결혼과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 그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지지 ‘못했다’ 정도로 언제나 이 질문에서 빠져나간다…)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그녀처럼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언제나 삶은 예측하지 못한 기반에서 문제의 문제를 만들어내니까. (다만, 이제 나에겐 그걸 끈질기게 언어화하고자 한 이들의 글씨들이 참조점 처럼 생겨났다.😬 다행스럽다.)

섹스… 그건 내가 포기한 건데?

선택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쾌락에 딸려오는 그 많은 관계들이 주는 고통과 복잡함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는.

2/3 정도를 포함하는 진술이라고 고백한다.

4B가 돼버린 채로 살다 보니 그 상태가 주는 경제적임에 안착한 케이스인 나는… 연애 시장 어쩌면 결혼시장(그렇다, 내게 그것은 시장이다) 진입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부정은 시장 안에서 내 스펙이 경쟁력 없다는 조금 차거운 결론을 내렸기에 가능한 좁은 틈의 평안이기도 했다. 세상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만 불평했다. 그게 제일 편했다.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면 돼. 근지러운 노래와 로맨스를 끊었고 사랑 사랑 애절한 것을 촌스럽다고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내가 없다고. 내게 없다고. 남들에게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남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나를 계속해서 침범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섹스 역시 그렇다는 이야기다. 왓. 이즈. 섹스. 함께 읽은 친구는 what이라고 물었다. 나는 is를 가져온다. 그것은 ‘어떤 상태로 존재’ 하는가.



2. 유니콘과 섹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실재’를 말한다. 성이 곧 실재다. 존재의 틈에서 비집고 나오는 결여. 상징적 질서 안에서 의미를 완성하는 것의 불가능. 언어가 가닿는 실패, 그것으로서의 성. 비어있지만 있기에 의미가 계속 생산되어 버리는. 예시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전자책 읽기와 실물 책 읽기 사이에서 상실되는 쾌감 같은 것. 행위에만 초점을 두고 ‘말’한다면... 두 가지는 다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사이에는 뭐가 다르지? 뭐가 달라?

내 생각에 그건 ‘있다’는 것과 함께 붙어서 나타나기에 다르다. ‘있음과 연루된 설명할 수 없음’

책에서는 유니콘의 반대항을 예로 든다. 좀 길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46) 성이라는 역설적 지위는 말하자면 유니콘의 지위와 반대다: 성은, [유니콘처럼] 그것이 경험적으로 발견된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없는 어떤 존재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경험적으로 성이 존재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우리가 그것을 꽤 잘 식별하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성의 이데아, 성의 본질이다. 우리가 이것이 “성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알아본 것일까? … 성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 우리가 — 인간의 영역에서 — 어떤 것을 마주치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이 “성과 관련 있다"라고 꽤 힘주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식은 반어적인 것이 아니다. Il n’y a de sexe que de ce qui cloche: 오직 잘 작동하지 않는 어떤 것에만 성은 존재한다.”

이렇게 ‘성’은 인간 존재의 결여로서의 최종 심급에 위치하게 되어버린다. 라캉. 변퇴. 누가 프로이트 처돌이 아니랄까봐. 나는 설득되면 되는 거였다. 이 문단에서 괴로울 것은 없다. 내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세상의 원리가 그러하다는 데,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면, 언제나 나의 과계몽. 이게 문제가 되어버린다.

왜냐면 푸코 이후 한동안 나에게 섹스는 권력의 원리였기 때문이다.

글로만 배운 섹스. 입과 귀로 결론 내려버린 섹스. 섹스를 제거해버린 섹스. (인정하기 싫은데…) 신경증자의 섹스 🫠 ㅋㅋㅋㅋㅋ

있는 섹스를 없는 유니콘으로 만들고 꽝꽝 박아버린 섹스에 관한 문장을 좀 서글퍼하면서 가져와보자. 머머리 논리왕ㅋㅋㅋㅋㅋ 미셸 푸코는 본인의 저서 ⟪성의 역사 1권 : 지식의 의지⟫에서 이런 문장으로 나를 항복시킨 바 있다.



“(16) (성과 관련하여) 나는 이와 같은 담론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탱하는 의지와 이것을 옹호하는 전략적 의도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그토록 커다랑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19) 따라서 성을 긍정하는가 부정하는가, 금기를 내세우는가 허용을 명확히 표명하는가, 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가 성의 효력을 부인하는가, 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을 억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에 관해 말한다는 사실, 성에 관해 말하는 사람, 성에 관해 말하는 장소와 관점, 성에 관해 말하기를 부추기고 말한 내용을 수집하고 유포시키는 여러 제도, 요컨대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이 요점이다. 또한 어떤 형태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담론을 따라 권력이 가장 미묘하고 가장 개인적인 행동에까지 이르는가, 어떤 노정을 통해 권력이 희귀하거나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욕망의 형태에 도달하는가, 어떻게 권력이 일상의 쾌락에 침투하여 일상의 쾌락을 통제하는가 —거부, 봉쇄, 자격 박탈뿐만 아니라 선동과 강화일 수도 있는 결과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요컨대 ‘권력의 다형적 기술’을 아는 것이 중요한 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뭐 투항은 완전 백기🏳️🏳️였기에,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주디스 버틀러는 당연한 스텝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주디스 버틀러에 정박 중이다. (솔깃하긴 하지만 아직 신유물론으로 건너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데… 버틀러에게서 건질 것이 더 많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그렇다.)

그 모든 섹스 전쟁을 종식시켜 버리고, 대문자 여성을 해체해 버렸으며, 페미니즘을 넘어서는 페미니즘을 열어버린, 어쩐지 2010년대의 한국에서는 토착화(?)에 실패하여 ‘본질주의=반지성주의’ 공식을 만들어버린 듯도 한. 랟펨과 일베모두 싫어하는 궁극의 문장. 바로.

3.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 -주디스 버틀러-


섹스(생물학적 성)는 언제나 젠더(사회적 성)였다. 그렇다. 이 문장을 만나고부터 나 역시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 어쩌면 이 문장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순간에 난 섹스(그 섹스 맞닼ㅋㅋㅋ)와 내적 결별…을 한 것일지도 ㅋㅋㅋ


이후로 어떤 질문들은 가뿐히 지워진 것 같다. 인식이 어려웠지 인식 후에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어떤 해방으로 기능했고, 버틀러의 사고방식은 이내 익숙해졌다.


섹스가 젠더가 되는 것은 해방이다. 누가 자연스러운 거죠. 할 때, 그게 왜 자연스러운 거죠?라고 마음속으로 반문하면 되었다. 하물며 섹스도 젠더인데 모든 것을 담론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단 한 번의 숙고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생각해 봤다’는 것만으로 종종 지적인 우월함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나 우월감은 열등감의 요인이다. 열등감도 따라서 심해졌다.)

내 이미지를 위해 좀 더 쓰면… 와따시의 콘츄리함.에서 비롯된 어떤 진정성.도 있었다.

나에게 말하고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아서… 그 문장을 삶에 들인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수행이란… 조금은 다른 젠더…를 만들어보는 거였다. (규범을 보는 눈을 갖추고, 그 규범을 연기하면서도 조금씩 위반하기. 내 표현으로 발연기. 블랙 코미디 같은 것.) 어느덧 연애도 사랑도 빤히 반복하는 각본처럼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섹스는 남의 일이 되었고…

인식과 실천이 주는 분열이 없고, 이대로 나는 돈만 벌면 되었지만… 어쩐지 막상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돈 버는 것보다, 책 읽는 것에 습관이 들어서 거기에 몰빵을 하고 말았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억압된ㅋㅋㅋ 성충동으로 환원시킨다면… 더 이상 꽂을 곳이 없이 터져가는 나의 책장은 극심한 욕구불만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섹스를 읽지 말고 섹스를 해! 제발 좀! 라고 외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상대가 있어야 나오는 도파민과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도파민은 역시 그 경제적임과 효율성 측면에서… 세로토닌… 뇌과학까지 가져와서 비섹스 옹호할꺼면 꺼지라고 외치는 친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내면에서 화성악처럼 울려 퍼지는 그녀들의 목소리들을 훠이훠이 물리치며…

도달한 나의 정말 순수한 지적(성적ㅋㅋ) 호기심은 결국 이 책으로 현현하여

나를 ‘실재’에 가닿게 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ㅋㅋㅋㅋ 실제로 나는 실재를 억압한 흔적을 3년 전 버틀러 공부에서 찾고 말았다. 실재는 없다고 하는 버틀러~ㅋㅋ)

“(76) 조운 콥젝 : 젠더라는 *중성화*된 범주가 선호되면서 성차라는 정신분석 범주가 의심스럽게 여겨지고 널리 버림받게 된 것은 이 시대[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 이 용어가 젠더에 의해 대체되었을 때 누락된 것이 바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차이기 때문이다. 젠더 이론은 하나의 주요한 업적을 수행했다. 즉 그것은 성에서 그 성을 제거했던 것이다. 젠더 이론가들은 계속해서 성적 실천을 말하면서도, 그들은 성이나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질문하기를 멈췄다.

즉 성차의 개념에서 젠더의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실재’(존재 속 균열…)가 빠져버렸다. 즉. ‘성’이 빠져버렸다. 이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뼈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나는. 나는. 내가 그랬으니까!!!!!


그날부터 나의 독서는 다시 종횡무진 하게 되어 결국 젠더와 성차의 존재 속 균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아침일찍 일어나 열심히 공부하며 노동하며 또 갓생을 살아버리고… 그래 성급히 결론 내지 말자. 푸코랑 라캉… 버틀러랑 이리가레… 차분히 같이 읽도록 하자… (메이야수랑 들뢰즈도....?) 정도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요점은 이것이다.

“(81)라캉의 입장이 위에서 기술된 수행적 존재론과는 환원 불가능하게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다.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할 때 라캉이 주장하는 실재의 지위는 무엇인가?”​

“(86)인간의 섹슈얼리티는 그 빠져버린 기표의 대체기호/플레이스홀더이다. 그것은 엉망이지만 (쓰여지기)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성적 관계를 사실상 보충하는 것이 이 엉망이다. ... 섹슈얼리티는 이러한 간극을 엉망으로 봉합하는 것이다."

“(87)우리가 이제 이 모든 것이 존재론 일반, 더욱 특수하게는 동시대 젠더 연구의 수행적 존재론에 관하여 무엇을 함축하는가의 문제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음의 중대한 함축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즉 *라캉은 존재실재 사이의 차이를 확립해야 했다*. 실재는 존재나 기체가 아니라 존재의 교착상태, 그것의 불가능성의 지점이다. 그것은 존재와 분리할 수는 없으나, 존재는 아니다. 정신분석에게는 언어(또는 담론)와 독립해 있는 어떤 존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때문에 *정신분석이 자주 동시대 유명론의 형태들과 양립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존재는 상징적이다. 즉 그것은 타자 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중대한 추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상징계 안에는 오직 존재만 있다 — 실재가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 실재는 “있다.”그러나 이 실재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이외의 무언가가 아니고, 존재의 공간의 발작이자 장애물이다. 그것은 단지 (상징적) 존재에 내속한 모순으로서만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이 성과 실재를 연결할 때 관건이 되는 것이다.”


4. 성차라는 개념(은 투비컨티뉴드)

원래 내가 끝까지 붙잡고 쓰려고 했던 글은 *“성”에서 “젠더”로 옮겨 갔을 때 상실된 것* 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잃은 것 같지는 않고, 나 스스로로 변화해온 느낌이다. 성에서 젠더로 옮겨온 후 그랬다. 그러나 젠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한다. ‘그것’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 있고 없고 가 아니라 ‘그것’이 내게는 유의미한 의미를 생산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성차와 젠더에 관한 논쟁은 페미니즘 안에서 꽤 오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 긴장이 페미니즘을 빼어난 공부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213)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라캉의 성차 개념을 젠더 개념보다 더 선호하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특히 젠더 개념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 및 성적 관계가 쉽게 변화될 수 있다고 잘못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라캉은 생물학적 특성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관계가 남성 지배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다. 라캉의 경우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언어가 남성됨과 여성됨의 의미를 정한다.

그렇지만 라캉에게서 남성됨과 여성됨의 기본 의미가 단지 변화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 의미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남성 성기에 특권을 부여하고 여성을 수동적인 성적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지위를 더 낫게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에 언어가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라캉의 견해를 그들이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들이 라캉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라캉의 성차 개념을 수정하여 왜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성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지 설명하면서도 이러한 지위가 결코 향상될 수 없다고 [잘못] 시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이리가레가 바로 이 방식으로 라캉의 개념을 수정한다.* 그녀는 모든 언어가 “팔루스 중심적인” 성차 해석을 구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라캉의 추론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 <페미니즘 철학>, 앨리슨 스톤

“(266)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에서 버틀러는 신체와 쾌락이 전적으로 자연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의 질료(대문자 N의 자연)와 그것을 이후에 물질화하는 대문자 C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통해 재창조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빌어 *팔루스라는 남성적 특권의 상징이 사실 남근이라는 신체기관이 아니라 우연적인 리비도 투자의 결과로 인지되며, 신체로 인식되는 자아에는 팔루스와 남근의 불일치로 인해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재인식되는 의미화 연쇄가 작동*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상징계의 법인 언어가 내리는 금지와 명령에 대한 거부와 폐제를 통해 주체가 등장한다는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육체적/자연적/여성적인 것을 언어에 선행하는 결여로 환원시키는 입장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체로서의 주체를 구성하는 틀거리인 상징계/언어/문화와 상상계/전언어/자연의 이분법을 반박하고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재호명되고 재생산되는 언어의 불안정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데리다의 반복 가능성 개념을 활용한다.”<주디스 버틀러> 비키커비


성차와 젠더에 관한 조금 더 매끄러운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성차도 젠더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라캉의 성차 공식에 관한 페이퍼는 단발머리님 글에 단 댓글로 일단은 갈음한다ㅋ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해서, 여성의 주이상스에 대해서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974275

나는 삶이 아직 나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아

이해 불가능한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둔탁한 개념들을 접착 메모지에 써 붙여 놓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가 보기로 한다.

이 모든 것은

죽.어.야.끝.난.다.

5. 남은 질문들. 남은 공부들. 남은 농담들.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포함 권력은 ‘비-관계’를 전유한 채로 작동한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을 드러내는 글쓰기, 그것을 보려고 하는 습관, 새로운 기표.

“(260) 쓰이지 않기를 중단stops not being written”하는 그것을 라캉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세상을 사랑하는 걸까. 그러나 “‘쓰이지 않기를 중단하기’라는 기반 위에서 연명하는 모든 사랑은, 이 부정을 다른 부정, ‘즉 쓰이기를 중단하지 않기doesn’t stop being written’, 멈추지 않기로 변경시키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어느 지점에서 그만둬야 멋진 이별이 되는 것인지. 사랑의 좋은 부분만 취하게 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정정하겠다. 좋은 부분만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사랑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쓰고 또 읽을 때. 정말로 사랑을 하는 것 만 같으니까. 아무런 대가가 없는. 어떤 이득도 없는. 비이성적인 충동. 집중. 내일의 쓰기를 위한 오늘의 남겨 놓기.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했다.


이 책을 읽거나 내 글(자기고백)은 읽지 않아도 (좀 서운하겠지만?) 되지만, 아래의 성과 실재에 관한 주판치치의 농담은 읽어보시길. 분명 당신은 나처럼 웃을 것이다. (웃기지 않았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나만 웃긴 걸로.) 그녀는 슬라보예 지젝이 무려 ‘질투하는’ 친구이시다.

#아담의배꼽


“(274)인류 최초의 커플에게 배꼽을 그려 넣을 것인가, 배꼽을 그려 넣으면 안 되는가? 아담은 생기와 흙으로 만들어졌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여성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어찌 배꼽이 있으랴? 그러나 그들은 배꼽 없이는 이상해 보였다. 그들은 최초의 인간이었고 그들은 (다른) 인간들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나 인간인 그들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신 또한 배꼽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개념적 난국들을 만든다... (이것은 고스가 화석의 지질학적 연대와 창세기의 신의 창조를 화해시키려고 했을 때 직면했던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의 답은, 신이 아담을 창조했을 때, 그는 또한 배꼽도 창조했다는 것, 다시 말해 그의 “선조성”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직면한 문제는 꽤 실제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무화과 나뭇잎을 좀 더 크게 그려 넣어서 그 문제를 회피했다. 그들은 성기만 가린 것이 아니라 아랫배도 가린 것이다.

무화과 나뭇잎을 이렇게 크게 그려 넣어서 성기 그 이상을 가리려고 한 것은,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완벽한 삽화가 아닐까?

다시 말해, “성적인 것”을 덮으면 우리는 항상 또한 —그리고 아마도 일차적으로?— 다른 것도 덮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없지만 심오한 형이상학의 문제들과 모호성들을 떠오르게 하는 어떤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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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06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애도 결혼도 시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일단 단순하게 말해서 연애도 결혼도 교환관계가 되는 순간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라고 생각....이 교환이 잦아지면 쟝이 말한 것처럼 연애도 사랑도 결혼은 더 물론... 반복되는 각본이 되는 게 아닌지...) 그 지점을 안 넘기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그만이여.. 쟝이 책에 몰빵하는 이유는 책을 사랑하는데, 책과는 연애 및 결혼에서 느끼기 쉬운 드러운 교환관계가 성립하지 않아서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상 지퍼 터지는 섹스가 아니라 책장 터지는 (책과의) 섹스 중인 쟝에게 유니콘 올림


그나저나 푸코 인용 구절에서 오타 있음요.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그토록 커다랑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커다랑 열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1-06 11:53   좋아요 2 | URL
으아아 저 커다랑에 나의 커다란 사랑이 보이나요?!

잠자냥 맞아요, 저는 교환관계… 거기서 ‘돌봄’을 구출해 낼 거예요(포부도 크다 ㅋㅋㅋ) 그치만 제가 경제적 이해 관계를 어떤 심급 중의 하나로 보는 건 맞아요. 제도로서의 결혼은… 그런 부분이 분명 있죠. 그게 다는 아닌 것도 맞고요!

잠자냥은 혼인하지 않았으니 유니콘이 맞는 거 같고요! 그쪽은 리스 없나요? 📣📣 잠자냥이 귀찮아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미다 ㅋㅋㅋㅋ

저는 안하고 싶지는 않고요, 못하는 겁니다 ㅋㅋㅋ 그리고 추구하려면 일단 집을 찢고 나가야하는데…. 🙄

단발머리 2024-11-06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섹스리스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섹스와 섹슈얼리티, 젠더에 대한 생각으로 승화시킨 쟝님의 노고에 박수를 드립니다.

저 역시, 아니 에르노가 고백했던 그 나이대에 진입해가고 있는 중인데(아니, 이미 진입했던가요?ㅋㅋㅋ) 그녀의 열정과 정념이야말로 저의 탐구 대상입니다.

아담, 이브의 배꼽과 선조성에 대한 이야기 너무 재미있었어요. 성기를 가리려다가 배꼽도 가려버리는 ㅋㅋㅋㅋㅋ저는 쟝님 글 읽다보니 성에 대한 금기가 그래서 중요한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구요. 섹스와 젠더에 대한 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 번 들었으니까, 다음에 들을 때는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덕분에 나도 버틀러 좀 읽어보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키지 않은 귀한 공부를 가열차게 불태워온 쟝님의 섹스 에너지에 다시 한 번 존경을 표합니다. 메롱!

공쟝쟝 2024-11-06 11:59   좋아요 1 | URL
함께 읽어주셔서 다행예여. 성차이론이 본질주의에 정박해서도 안되지만 젠더가 현실의 섹스를 간과하며 말장난처럼 (혹은 입고 벗을 수 있는 어떤 것처럼) 오해되는 현상도 경계는 해야할 거 같아요.

정념에 대해서는 좀 더 가보도록 하죠. 어떤 결여가 되려 다형도착을 생산해낸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게 많았는데요, 일단은 이달에는 이달의 라캉을 사사키와 읽도록 하겠습니다! 🤗

청아 2024-11-06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C로 정독예정!🙄😘

공쟝쟝 2024-11-06 12:57   좋아요 1 | URL
미미님의 적절한 예시가 글의 윤활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수이 2024-11-06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할 말 많겠구만유. 어려운 책 읽고 이렇게 이해하기 편하게 만들어주시니 좋네요. 저는 아직 완독 못했습니다. 역시 저와는 다른 지점들을 예리하게 캐치하시는 당신, 11월 즐기시기를.

공쟝쟝 2024-11-06 15:19   좋아요 0 | URL
왜 왜 왜 11월이 또 6일인 걸까요?!! 좋은 하늘을 즐겨야겠습니다 ^^

청아 2024-11-06 18:21   좋아요 1 | URL
일터에서 당당하게 정독했는데 이번 글은 너무 어려워 쟝쟝님은 저 먼 곳에 이미 저 위쪽으로 가버렸어...
‘이해하기 편하게‘라니 수이님도 ... 나 일단 <괴물들>부터 완독 하겠어요^^

공쟝쟝 2024-11-06 18:57   좋아요 1 | URL
청아님... 먄먄~ 먼저 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가장 부러운 건 청아님이랍니다? 종이책 뿅뿅~
성은 있거든요, 성적 끌림도 있고요, 성은......있,.다. 그런데 무엇인가? 그러면 할 말이 너무 많고 너무 없.다.... ㅋㅋㅋㅋ
괴물들도 참 재미지죠 ? 이 책은 어려운 책 맞는 거 같아요.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두면.. 또 다음의 재료가 되고 하니까.. 끝날 때 까지 계속해 봅시다용!

청아 2024-11-06 19:10   좋아요 1 | URL
오늘도 <괴물들>지하철에서 읽다가 빵빵 터졌습니다ㅋㅋㅋㅋㅋ
 
왓 이즈 섹스? - 성과 충동의 존재론, 그리고 무의식 여이연이론 36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김남이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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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섹스가 궁금했는데 책은 성에서 성을 제거한 뒤 #유한성이후 로 데려다 놓았다. 이런 적이 뭐 한 두 번도 아니고ㅋㅋ 성을 성 그 자체로 사유하고자 하면 가장 빠르게 형이상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최종 심급의 *결여*”로서의 심오한 섹스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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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11-02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깐요. 내 말이... 가려는 곳은 인천인데 왜 자꾸 부산 표지판만 나오느냐고!!
.... 라며 <죽음충동> 글을 준비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외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1-02 19:14   좋아요 1 | URL
저도 엄청 재밌고 눈물나는 글을 준비중입니다. 투비건티뉴…

단발머리 2024-11-02 19:44   좋아요 1 | URL
드 🤣ㅋㅋㅋㅋㅋㅋ
 
위태로운 삶 - 애도의 힘과 폭력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윤조원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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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인종, 계급은 (우리에겐 특별히 국민국가까지) 섞여서 나타나고… 동일시의 환상… 정체성의 환상은 그것이 피해자의 것일 때 가장 위험하다. (타인을 억압해도 되는 자기 정당화로 작용하니까.)

나의 피해, 우리의 피해와 억압을 직시하는 것이 타자의 배제의 논리로 수월하게 작용하는 현상을 매일매일 발견해서 가끔은 괴롭다. 어제는 야구를 이겨서 (그렇다 나는 의도적임을 섞어서 무의식적으로 이겼다고 표현했다) 이기니까 봤다.

엘리트의 대중 혐오가 대중들의 자기혐오로 돌아왔다는 문장을 읽었다. 신자유주의는 정체성의 정치로 작동한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어쩌면 언어를 습득하는 일) 나에게는 억압을 발견하는 일이었고, 찾았다 안심하기도 전에 해체에의 요구를 받아서 심통이 나고 분통이 터졌었다. 똑똑한 지식인들, 처음부터 자기만의 방이 있었던… 너희들이 하는 그 잘난 말들. 그걸 누가 이해하냐고. 나는 애국가 틀어주면 만세 부르고 미투 하면 같이 미투 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라고. 나는 돈 좀 더 벌어서 내 식구들한테 잘하고 싶다고… 난 그냥 그런 사람인데… 좀 편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 평범한 욕망이, 이런 미디어의 시절에는 가장 홀리기 쉬운 뭐시 중헌디의 말이 된다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제 누군가가 부르는 대로 불리지 않기로 결단한 나는… 24시간 중 오롯이 쓸 수 있는, 내 시간에 글씨들을 읽어나가고… 내가 느끼는 그 감정들을 만든 말의 최초를 더듬다가 점점 심각한 구조주의자가 되어가고, 삶을 촘촘히 포화하는 그 말들을 다른 말로 써야 함을 계속해서 느끼지만, 저녁에는 일하고 피곤해서 모바일로 쇼핑을 하고 인터넷 뉴스를 본다. 어디를 가라고 무얼 사라고 저것들을 비웃고 메타인지를 문제 삼는 품행 평론자들의 방송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 나는…

다들 그만해.

그런 게 가끔 너무 슬프니까.
다.
내가다.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다.

,

삶의 통제권을 잃은 (혹은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이 수월하게 취하는 자율성(혹은 자아 정체성)이라는 잔인한 낙관에 대해… 무력한 내가 전능해지고 싶었던 환상들에 대해. 나의 동일시의 소스라치게 폭력적임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통치 방식. 그러니까, 자기착취 각자도생 = #신자유주의


"(58)무엇이 나를 사로잡는 지를 항상 알지‘는’ 못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안’에 있는 무엇을 잃은 것 인지를 내가 항상 알지는 못한다면, 바로 이 박탈의 영역이 나의 모름unknowingness을,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각인된’ 원초적 사회성의 자국을 노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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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10-30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는 제가 대중임에 많이 슬프지 않고요. 금방 혹!하는 성격인것에 상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쟝쟝님이 말하는 게 뭔지 조금 알것 같고요. 이제 막 찾았는데 잃어버리는, 해체를 요구받는 그 심정에 대해서도 쪼금 이해합니다. 아주 조금이요. 그걸 알아채는 당신의 지성을 원망하시기를..... 충분히 원망 바랍니다. 사자성어로 갑니다. 식자우환.

다만.... 그 무엇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주시기를 바래봅니다. 성조기 흔들면서 광화문을 뒤덮는, 어디엔가 속하고 싶은, 정체성의 정치에라도 발을 담그고 싶은 그 마음에 대해서요. 그 분들도 다 진심입니다.

공쟝쟝 2024-10-31 11:16   좋아요 1 | URL
저는 한강이 상받아서 울고(곰곰 생각해봤으나 그와 아무런 접점이 없음... 있다면... 518에 받은 영향?), 기아 37년 만에 홈에서 우승에 환호하는 그런 어디엔가 소속되고 싶고, 진심으로 온 맘과 성의를 다해 미혹되고. 뭐시중헌디 뭐시..(나홍진의 곡성에 ㅋㅋㅋ 명대사 입니다.. 계속 홀리죠. 나를 부르는 알 수 없는 목소리들) 하게 되는... 그런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가졌던 소속, 개인, 정체성... 그 안에서의 따뜻함, 동일시와의 청산적 긴박한 단절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나 잘났다 빠져나오는 걸 버거워하는 늘 미련이 너무 많아 계속 더디고 한 발 늦는 사람이고요...

그 미련 때문에.. 책 읽기를 시작해서.. 이런 시절에서는 그저 살아는 것만으로는 안돼고~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개인이.. 주체가.. 자아가(탈여성...ㅋㅋ 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합니다) 되어야 한다는 걸 푸코 좀 데리고 오면 내면을 발명해야한다는 걸...읽어버려서... 힘이 듭닏...... 정말로 거기서 성조기를 흔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이젠 스스로 생각하고 싶으니깐요....)

그들은 또한 나이기에 그분들의 ‘진심‘을...... 비웃은적이 없다고....... 써왔고요 ㅜㅅㅜ 만약에 그냥 비웃고 나는 아닌데? 지나치는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안 읽었을 거 같아요. 그 지점 알아주세요. 저는. 애써 획득한 제 지성ㅋㅋㅋ에 이제 죄책감은 갖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헤어져야 한다........

매번의 이별을 자주 틈틈 울면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