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배우는 시기를 지나, 정말로 일을 하면서 부터는 일 빼고 별다른 생각이 안생길 정도로 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야하는 프로젝트들. 더 책임감을 키우고, 비판에는 귀를 열어야 한다. 전에 비하면 많이 관대해진 편이지만 어쨌든 스스로를 볶아대는 스타일이라 이래저래 압박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열심히 성장하고 능숙해지면 수월해질 줄 알았는 데. 몹쓸. 나는 잊을뻔 했다. 나를 갈아(!) 고작 ‘생존’해야 하는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것을.

“(180)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곤 했지요. ‘남들이 너를 이용해 먹지 않도록 해라. 너의 권리를 힘주어 말하되 일은 제대로 해주어라. 그네들이 너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올바르게 대하도록 요구하거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을 그만두면 된단다’.”


내가 처리하는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갈 수록 위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커졌다. 일에 대한 통제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통제이기도 해서, 업무처리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이런저런 잡다한 것이 많이 섞여있는 평가의 말들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말만 들을 뿐인가. (혼도 나고 욕도 먹고) 투사가 분명한 감정 표현들도 겪어내야 하고, 실제로 요구되는 어떤 모습은 당장 고쳐야만 하며, (이게 가장 힘든 데) 평소라면 빻아서 상대도 안할 (개)소리들을 허허 웃어넘기기도 한다. 어쨌든 “일은 제대로 해준”다. 언제든지 그만두면 되긴 하지만 그게 사실 어려우니, 권리를 말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는 곱씹으면서.


*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빌런은 나의 일터에도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빌런들에 비하면 원체 대놓고 타노스급의 절대 빌런이라 나는 내심 다행이다 느꼈더란다. 이분법은 쉽고, 절대악을 굳이 에너지를 들여 이해할 필요도 없으므로. 너는 너. 나는 나. 일은 일. 삶은 삶. 당연히 걸러듣고, 원래처럼 적당히 연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것 역시 순진했다. 아무리 피아가 구분된다고 하더라도, 학대가 오랜시간 지속된다면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다는 걸.

길고 긴 5월 첫주의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날의 저녁. 일찍 자려 누웠는 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몸이 떨렸다. 내 몸이 왜 이러지? 경미한 공황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더란다. 

지금 나는 뭔가가 불안하다. 그건 대체 뭔가...? 답은 쉽게 나왔다.
“내일 일가기 싫어서.”
오랜만에 쉼을 맛본 내 몸이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튕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랑비 젖듯 스며든 나를 의심하게 하던 언어들.
잘못이 아닌 내 잘못들.

항상 피아를 의식하는 삶이라니, 언제나 전투상태인 몸이라니, 그것 역시 나에게는 몹쓸짓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울었다.
의지할 수 있다면 의지하고 싶고, 의존할 대상이 있으면 한껏 의존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게 얼마나 독이 되는 마음인지 알아서, 안돼 안돼 머리 저으면서.
혼자서 씩씩한 것은 가끔 너무 힘들어.

“(211)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은 자립의 중요한 측면인 경제적 자립성을 존중의 요구와 연결한다.예를 들어, <존중하라>에서 아레타는 “당신의 키스는 꿀보다 달콤해요. 그렇지만 내 돈도 그렇지요”라고 노래하면서 흑인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고 흑인 여성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

아직은 일터를 당장 박차고 나올 만큼의 능력이 내게는 없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만족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생각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류의 방식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가까운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괴롭히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페미니즘을 통해 얻게된 생각이다. 나는 사회생활의 괴로움을 이유로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가부장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힘들어도 열심히 일을 할 거고, 그래서 결국은 일을 잘하게 될거고, 또 그 와중에 악착같이 책을 읽을 거고, 삶을 해석하기 위한 능력을 키울 거다.

조금 울고 난 그날 밤에 나는 일기장에 두가지 문장을 적었다.
- 학대에 익숙해지지 말자.
-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213) 주인공이 자신에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의미심장하게는 자신의 무능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히 환경 제약과 자신의 한계에 구속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오로지 이전에 구획된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직접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바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법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혼동과 우연성의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자신의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서만, 유의미한 삶을 건설하는 법을 독자에게 가르쳐준다.”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의 5장, 특히나 이 구절이 좋아서 나는 몇번이고 읽었다.
삼십살이 훌쩍 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무능을 존중하게 된 것 같다.
비록 어떤 경계를 뛰어넘지는 못했고, 유의미한 삶이 무엇인지는 오히려 하나도 모르게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책에서 말하는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너무나도 정확한 문장을 찾았다.

“(214)[그녀는]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인물”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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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5-29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르르..... 쟝쟝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

공쟝쟝 2020-05-29 08:12   좋아요 1 | URL
저는 격렬한 표현이 좋으니까, 일의 환희(...그런게?)와 좌절로 하자...

다락방 2020-05-29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고통을 거쳐서 비로소 창작이 되고 또 아름다워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쟝쟝님의 글을 보니 노동의 고통 때문에 글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몹쓸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글 따위, 필요없이 고통이 없는 삶이 가장 좋을텐데요...

쟝쟝님, 오늘은 금요일. 힘냅시다. 화이팅!

공쟝쟝 2020-05-29 08:15   좋아요 0 | URL
요즈음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느낄새가 없는 류의 고통이라......흑흑.... 오늘은 금요일 흑페상을 다 읽어야 한다!! 화륵🔥

비연 2020-05-29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생활의 비애와 고통은... 흑.

공쟝쟝 2020-05-29 20:51   좋아요 1 | URL
부서지지 말아요 우리, 비연님❤️

수연 2020-05-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페상 페이퍼 중에 제일 심금을 울리는! 저도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페이퍼. 공장쟝님 힘.

공쟝쟝 2020-05-29 20:52   좋아요 0 | URL
힘이 아니날리 없는 댓글과 금요일 저녁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주 행복감만땅입니다. 수연님도 힘! (코로나 물럿거라)

감은빛 2020-05-30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터라는 건 일의 객관적인 노동강도와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나 일요일 저녁에는 우울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월요병을 견디고, 무기력한 수요일을 버티고, 금요일의 해방감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선택해왔고, 비교적 일을 즐기는 편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잘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냥 일은 일이고, 아무리 상대적으로 좋은 일터라도 일터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더라구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입장에서 늘 압박감과 우울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삶은 현대인의 큰 불행이 아닐까 싶어요.

공쟝쟝 2020-05-31 21:14   좋아요 0 | URL
해방의 금요일이 가고, 슬픈 일요일 저녁입니다. 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책읽고 글쓰는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길! (ㅜ_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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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소주는 취하기 위해 마시고, 맥주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시던 (지금은 둘다 맛있어서 마심) 이십대의 초반이었다. 막 사회 초년생의 길에 진입한 선배가 술자리에 와서 ‘딱 한입짜리(중요하다)’로 쏘맥을 말아서 마시면서 말했다. “빨리먹고, 빨리취하게.” 어린 나는 그 쏘맥이 어쩐지 비윤리적으로 느껴졌다. 왜 빨리먹고 빨리 취해야 한단 말인가. 기왕이면 술자리를 오래오래 즐기고 취할거면 천천히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한 술자리를 왜 빨리 취해 급히 끝맺으려 한단 말인가!!!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얼토당토 않은 윤리의식은 정말인지 젊었기 때문이다. 소비할 시간이 넘쳐흘렀기 때문이며, 모부님들께서 다달이 용돈을 줬기 때문이며, 쌩쌩 놀수 있는 체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다. “빨리먹고, 빨리취하”고 난 후 “빨리 집에가서/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 빨리 일하러 가야한다” 뭐 그런 의무의 언어들이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렇군요. 그 후딱 취해버리는(?) 딱 한입짜리 쏘맥은 압축적 근대화라는 한국의 현대사가 오롯이 담긴(!) 밀도 있는 한잔이었군요. (당시 술자리는 아마 근현대사 동아리 술자리 뒤풀이었던 것으로 기억...) 아아, 선배님. 오랜시간이 흘렀는 데, 당신의 간은 안녕하신지.

정말인지. 그 과학적 까닭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쏘맥은 빨리 취한다. 소주만 먹을 때보다, 맥주만 먹을 때 보다 세배 정도 빨리 취하는 것 같다. 특히 오래 전 그 선배가 말아마시던 쏘맥은 진짜 최고👍 마시는 과정 마저도 한입 탁~ 연거푸 석잔 정도면 뿅~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압축 근대화 쏘맥’이렸다.

이후 그 압.근 쏘맥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수년 후 회식자리였다ㅋㅋㅋ 회식자리에서 나는 빨리 취하고 싶다. 어서어서 정신줄을 놓고, 취기에 딸려오는 희노애락을 즐긴다음, 그렇게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흘려보내고, 빠르고 진하게 술자리를 끝내고, 얼른 집에가서 발닦고 잠자고 싶은 것이다. 술마시는 시간도 아까워서 ‘빨리’ 취하기 까지 해야한다니. 이 얼마나 애잔한 월급쟁이의 삶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음. 이 책을 탁 덮는 순간 공교롭게도 난 그 쏘맥이 생각났다. (절대 술이 마시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리고 취하는 시간도 아까워져버린 ‘일에 매인 삶’에 숙연해졌다.

나에게 탈노동- 일에서 벗어남-이란, 아주 천천히 취해도 되는 시간이 아닐까. 천천히 기울이는 술잔과, 꼭꼭 씹어먹는 안주와, 중간중간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 혹은 너무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는 책, 스르르 이완되는 몸과, 도란도란 재잘재잘 시시콜콜 이야기를 느끼는 시간들. 음미하는 삶. 아, 여기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를 감각할 수있는 여유.

요즘의 일상에선 쉽게 도모하기는 어려운 순간이고, 혹여 그런 여가(!)스러운 날이 온대도 한 이틀은 그저 잠만 잘 것 같지만. 어쨌든 취하고 싶다. 아주 아주 천천히. 편하게. 그리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나서도 일어나 또 취하고 싶다. 으하하. 그렇게 닷새 정신줄을 놓고 나면, 분명히 나는 생각할 거다.

이제 생산적(!)인 일을 하자.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227) 우리는 우리가 이미 원하는 것을 하고자, 또는 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기본 소득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다른 것을 원하고 행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사람, 다른 종류의 삶을 고려하고 실험할 수 있게 허락하기 때문이다.”
“(264) 기본소득 요구에 대한 많은 반발 역시 비용보다는 윤리를 중심에 두며, 노동시간 단축의 가능성도 비슷한 우려를 일으킨다. ... 늘어난 비노동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할까 뿐만 아니라 무엇이 될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노동단축과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통상 임금으로 정리되는) 일하는 시간, 혹은 일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재생산의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에서 나를 빼면 나에게서 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는 데, 불현듯 책을 읽고 있다는 게 떠올라 안도감 들었다.

아아, 다행이다. 삶에서 일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가 했더니, 책 읽는 내가 남는다.
요즘은 무려 함께 책읽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까. 나, 정말. 필요해.
일을 제외한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들이.



*

회사에서 종종 라디오를 켜놓을 때가 있는 데, 코로나19를 맞이한 요즘 낮시간 라디오의 가장 핫한 주제는 가족과의 시간을 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인 모양새다. 모부의 재생산 노동을 놀이로 대체하는 유리창 닦기 놀이와 집안일 놀이 등의 발명부터, 수백번을 저어야 한다는 달고나 커피함께 만들기까지.... 끝나지 않는 방학 때문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육아맘들은 육아맘들대로, 또 가족과의 시간을 늘려야하는 아버지들은 아버지들 대로 힘든 모양새다. 차라리 일하러 가고 싶다는 일상을 돌려달라는 사연들이 빗발친다.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책에 있었는 데, 뭔가 쓴웃음을 짓게 만든 부분이라 공유해온다.

“(244 ) 난제는 이랬다. “가족 친화적인” 포춘 500대 기업 한 곳에서 일하는 부모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직원은 왜 이렇게 적은가? 많은 직원이 일과 집안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한계치까지 혹사당한다고 느낀다고 답했으면서도 말이다. 회사 정책에 대한 연구와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혹실드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일터가 점점 집같아지고 집이 점점 일터 같아지기 때문에 일터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시간을 덜보내는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혹실드는 미국인들이 무급 육아노동의 가치는 점점 폄훼되고 돈 받는 일은 과대평가되어, 결국 가족보다는 일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혹실드는 이런 시간 구속은 부모들에게 당연히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지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더 해롭다고 말한다.”

ㅋㅋㅋㅋㅋㅋㅋ기껏 저녁이 있는 삶 만들어줬더니 차라리 일터가 좋다는 모순.....ㅋㅋㅋㅋ 

코로나 시대의 우리네 삶ㅋㅋ

나 역시 내 생계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부터는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셈 방법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일하지 않는 시간 - 결국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그 시간- 들은 버리는 시간이고, 버리는 시간들이 버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끔은 휴일도 짬을 내 악착같이 알바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성비있는 소비를 하기 위해 분투했던 듯. 안그러면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가성비 찾다가 귀한 시간을 더 쓰기도 하는 모순) 혹실드가 불러내온 일화는, 돈받는 일을 과대평가하는 사회 속에서의 가정과 재생산 노동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볼 거리를 안겨준다.

“(253)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이 사유화되고 무급 가사노동의 젠더 분업이 여전한 것을 감안하면, 고용된 여성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해도 그녀의 가정 내 노동 -집안일, 장보기, 육아, 노인돌봄-이 늘어나 추가 시간을 금새 채워버릴 수 있다. 현재의 가정 내노동이 조직화된 방식이 문제시 되지 않고, 고용주들이 사회적 재생산노동의 책임을 지는지 여부로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차별할 수 있다면, 모든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저 긴 노동시간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던져 주는 것들 - 파트타임, 유연근무, 시간외근무, 복수의 불안정 노동 등의 증가-을 손에 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적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부족과 젠더 분업 문제 모두를 직면하고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
“(259) 노동윤리와 가족윤리가 여전히 일체의 역사적‧정치적‧문화적 타래들로 한데 엮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급 재생산노동의 조직화와 분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임금노동의 시간제에 맞서는 시도는 언제나 근시안적인 것이 된다.”


중요한 지적이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착취와 소외를, 페미니즘은 자본주의가 은폐해온 재생산 노동과 노동의 위계(젠더화된 노동)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나에게 이 이론들에 포섭되기 쉬운 또 다른이면 -노동윤리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에 맞선 삶. 노동해방이 아닌, 노동(윤리)으로 부터의 해방.

단순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읽기전 나의 오만이었다. 소득이나 재분배, 평등의 시각을 넘어 ‘일’과 ‘일의 윤리’에 대한 관점에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분석은 꼭 필요한 작업이며, 어쩌면 이 세계의 변화를 위해 보다 근본적으로 논파되어야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지금의 노동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가족윤리(혹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 무급 재생산 노동 / 젠더분업화를 함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193)델라코스타는 가족을 임금시스템과 연결지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이루는 한 축으로 설명함으로써 가족 제도가 노동 형태를 제공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책임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02) 여성이 요구하지 않는다면 가족은 계속해서 자본을 위해 기능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노동과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페미니즘이 너무도, 너무나도 절박하게 필요한 이유다.

일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져서 울고 싶었던 요 몇달 동안, 꼼꼼히 읽었던 이 책에 대해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다. 언제나처럼 첨부하는 아래의 두 단락은 어떤 다짐들로.


***

“(181) 정치적 전망들은 깨지기 쉽다. 전망들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한 세대에서 생겨난 사상은 다음 세대에서 흔히 잊히고, 또는 제지 당한다. 한 시대의 진보적 사상가에게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보였던 목표들을 이후에 온 이들은 공상적이라거나 유토피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선반으로 치워버린다. 급진적 시도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시기에는 목소리를 찾았던 열망이 다른 시기로 가면 사그라지거나 심지어 완전히 침묵한다. 모든 진보운동의 역사는 절반쯤 기억되는 그런 희망들과 실패한 꿈들로 어질러져있다. - 바버라 테일러 <이브와새로운 예루살렘>”

어질러진 실패한 꿈들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다시 이어 붙이는 것.

“(348) 아마도 더큰 위험은 우리가 너무 많이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잇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덜이 아니라 더 요구하게 되기를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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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 행복의 ㅎ을 모으는 사람
김신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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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맘때보다는 좀 전이 좋다. 1월의 중순쯤? 동지가 지나고, 점점 더 추워지겠지만 조금씩 해가 길어질 것이고, 추울수록 봄을 기다리게 되는 웅크린 시간.


*


모두들 추워 바삐 집에 들어가니까, 집을 좋아하는 나도 덩달아 집에 바삐 들어가도 되서 좋다. 바깥의 기온으로 깡깡하게 언 손을 쑤욱 덥혀놓은 방바닥에 밀어넣었을 때, 사르르 간질간질 손가락이 녹는 느낌이 좋다. 얼어있는 코나 귀가 녹는 느낌도 좋고, 잠깐 창문을 열었을 때 찬 공기가 한바퀴 휭 돌고 나가는 환기의 순간도 좋다. (집안이 식으면 안되니까 잽싸게 문을 닫아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귤이고, 귤이 왜 좋냐면 역시 귤은 깎을 필요가 없고, 접시에 이쁘게 담을 필요도 없고, 설거지가 나오지도 않으며,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알아서 제 몫을 까먹을 수 있고, 껍질도 잘 말려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니깐!~ 게으른 개인주의자 들에게는 정말 안성맞춤 과일 아니겠나요? 그리고 귤은 박스로 떼와서 겨울내내 실컷 먹어야 한다. 바깥에 내놓아서 차갑게 식은 귤을 담아서 까먹는 다. 냠냠. 역시 배깔고 누워서 귤 까먹으며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폭신폭신 무릎 담요를 덮고 반쯤 눕듯 앉아 자울자울 졸음을 조는 겨울 주말의 고즈넉함 정말 좋다. 고양이와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고양이 찹살떡을 만지면서, 마성의 인스타나 들여다 보다가, 너무 누워만 있는 것 같으면, 제일 좋아하는 패션인 벙벙한 후드티를 뒤집어써 떡진 머리를 감추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겨울에는 역시 길거리 음식이 최고다. 김 모락모락 오뎅도 맛있고, 막 찍어낸 팥앙금 붕어빵도 맛있다. 계란빵도 맛있고, 닭꼬치도 맛있꼬.. .. 그리고 소주가 맛있다. 추운 날엔 소주한 잔, 국물 한 입, 쨘 하고~ 캬캬 하고~ 한잔, 두잔, 세잔 하고 나면 몸이 따뜻해진다. 그때, 속이 덥혀질 때~ 알딸딸 해질 때! (거기서 멈춰야 한다!!) 소주 앞에서만 할 수 있는 마법의 수다를 떨고, 발그레 해진 볼을 하고 술집을 나왔을 때! 눈이 내리는 거다.


펄펄~ 고요하게 혹은, 막 쌓이라도 할 것 처럼 펑펑. 그럼 욕을 하는 거지. 에씨, 내가 너랑 눈을 맞다니. 정말 싫다! (불안정 애착유형) 하지만 너 말고 눈, 눈이 좋으니까. 지금 꽤 행복해! 난 눈이 좋다. 이토록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어내렸으나, 결국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좋아서.



*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

이것이 온난화인가.. 눈은 내리지 않는 데, 백신이 없다는 감기는 돌고, 잊을만 하면 미세먼지 공격으로 마스크는 필수였다. 제대로된 눈을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채로 이번 겨울을 지나며 정말 지구가 멸망할 때가 된건가봐절반의 아쉬움, 그리고 절반의 기대(멸망을 무서워하면서 원함..ㅋㅋㅋ)라는 오묘한 감정이 섞인 카톡을 보냈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의 밀린 업무들이 걱정이 되어, 부스스 좀비처럼 회사를 나가는 길.


드디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고 있다.

그것도 하얗게 펑펑펑.

천천히 고요하게.


주말에도 분주한 지하철과는 대조적인 고요한 눈날림에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나풀거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아주 잠깐 행복했다.


혼자있는 사무실 창밖으로 여전히 흩날리는 눈을 보면서 지금 떠오르는 책은 

김신지 작가님의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작가님의 구구절절한 여름사랑에 겨울주의자인 나는 겨울에 대해서 적어보마했었다

물론 눈이 안내려서 오랫동안 까먹고 있었지만.

 

*


불행한 기분이 들때 글을 쓰며 해소하는 습관이 있어서, 행복할 때는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그런데 지금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조근조근 쓰는 것 만으로도, 행복에 진하게 머무를 수 있구나 하고. 이 글을 쓰고 나면, 금새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휴일없는 휴일의 휴식 같은 글쓰기다.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기왕이면 망설임 없이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좋다. 다 별로라거나 다 좋다고 하는 대답보다. 가장 편애하는 하나의 계절을 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구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출근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자꾸 늘어나다 보면, 쉽게 잊게 된다. 일 바깥에도 삶이 있다는 걸. 그래서 틈틈이 일상에 여백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매번 다짐한다). 일과 일 사이, 스스로 ‘틈’을 만들지 않으면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은 영영 못 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말리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행복의 기쁨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아무리 대단한 성취나 환희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므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기쁨을 한 번 느끼는 것보다 다양하고 자잘한 즐거움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한 삶에는 훨씬 유리하다는 것.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그렇게 되뇌며 나는 책의 한쪽 귀퉁이를 접어두었었다.

그러니 우리가 보낼 이 겨울도, 눈이 아주 많이 오는 겨울보다 눈이 자주 오는 겨울이기를. 그럼 좀 더 자주 사진을 찍고, 좀 더 자주 나누고픈 순간을 전송하며, 좀 더 자주 창문에 붙어 서서 웃게 되겠지.

이를테면 나는, 어딘가에 마음을 쏟은 하루를 살면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또 하루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인생은 정말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억들로 이루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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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6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펄 날리는 눈 보며 휴일 없는
휴일의 휴식같은 산출물 잘 읽었습니다. 쟝쟝님은 겨울을 좋아한다 귤도 좋아한다 끄적끄적....ㅋㅋㅋ

공쟝쟝 2020-02-16 18:09   좋아요 1 | URL
이제 집가용 ㅎㅎ 휴식 해야지~!! 주말 잘 보내세용😔

반유행열반인 2020-02-16 18:56   좋아요 0 | URL
짧지만 알차게 푹 두껍게 휴식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비연 2020-02-16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출근이라니. 그래도 혼자 있는 사무실 창밖으로 눈을 바라보는건 운치있으리라 믿어보며. 이번 겨울 마지막 눈 같죠...?

공쟝쟝 2020-02-16 18:11   좋아요 0 | URL
운치 너무 있어서 눈물이...🥺눈이 너무 안와서 섭섭했던 겨울이었어요.. 아쉽게도 지금은 그쳤어요 흑흑 ㅠ

다락방 2020-02-17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이 제일 좋고요 눈을 싫어해요. 어제도 눈 오는 거 보면서 ‘어우.. 내일은 오면 안되는데..‘ 했고 오늘 아침에 눈 오는거 보면서 ‘으으 길 미끄럽고 차 막히겠다‘ 생각하면서 싫어했어요. 아아 저란 인간은 낭만을 모르는 인간인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24 08:04   좋아요 0 | URL
눈이 낭만적인건 제가 눈에 안당해봐서(?)일지도 ㅋㅋㅋ 다락방님은 어쩐지 여름 파 일것 같앗어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2-22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에서부터 쟝쟝님~~~ 오호~~~ 다시 봤어요. 전 겨울 싫어하고요. 초봄도 싫고, 가을도 싫고 ㅠㅠ 저도 다락방님처럼 여름을 제일 좋아해요.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걸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귤 이야기 읽으면서 제가 물개박수 쳤어요. 그걸 좀 알아주세요.
쟝쟝님 얼른 한가해져서 이렇게 재미진 글 많이 써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20-02-24 08:05   좋아요 0 | URL
아니 의외의 여름파!!! 그쵸, 귤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수박은 수박은 역시 공동체주의자의 과일이랄까..:
 

1.

매일 아침, A호선에서 B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 우글우글 사람들과 부대껴지는 그 시점. 읽던 책을 덮(거나 끄)고 숨을 한번 들이킨다. 책을 펴는 것 조차 민폐가 되는 좁은 간격의 인류 속으로 몸을 우겨 넣으면 오늘의 ‘일’이 시작된다. 일하기 위한 정신상태로 무장하기.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것 처럼, 나의 어떤 자아는 접어서 개워 넣고 다른 종류의 자아를 꺼낸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자아와 내 몸을 잊는 자아다.

부대껴오는 모든 몸들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처럼 안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면 말이다. 이 한칸의 객실 안에는 얼마 만큼의 사람이 탈 수 있을까? 100명, 200명, 설마 300명?... 세보진 않았지만, 300명 넘을 것 같다. 가끔 파업이 있거나, 지하철 연착이 되는 날이면 없는 인류애를 발휘하며 사람들을 아주 깊숙히 끌어안게 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진한 포옹이다.

지하철 파업이 이어지던 날의 출근 길이었다. 한발 재겨설 틈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자 누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와, 미쳤나봐. 진짜.” 만약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귓속말을 해줬을 거다. “안미쳐서 타는 걸거예요, 아마” 미쳤으면, 이 고생을 해가며 일하러 안나가겠지.

“(14) 오늘날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기 보다는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매일, 매일 또 매일. 출근길의 지하철을 탄다. 그때 마다 내 옆의 이 사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 몸만을 생각할 수도 없다. 모두들과 나까지 배려하려 들면, 그걸 지하철에서 매일 아침마다 해야한다면, 나는 아마 정말로 미쳐버릴 것이다.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몸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어버려야 하는 회사원 300명 x n명.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하러 가는가?

“(12) 하지만 보통의 시민이 일에 쏟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일로부터 회복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훈련하고 조사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만을 간단히 따져 보아도, 일의 경험은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나의 본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아를 장착한다. 앞으로 퇴근 시각까지 ‘잘 웃고, 잘 울고, 화내고, 생각이 많은 나’는 밀어 넣어둔다. 자주 웃으면 실없어 보이고, 회사 사람들에게 우는 ‘여자애’로 프레임 씌워지기는 정말 싫으며, 화를 폭발시키면 해고 당할 것이고, 생각을 하게되면 일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13) 일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은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말려들어 간다. 실제로 직장은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실체적인 권력관계를 흔히 경험하는 곳이다.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정치적인 현상으로서 탐색할 여지가 많은 대상이다.”

회의시간.
대표는 결과물로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대답은 큰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하품을 참는다. 빈틈을 보이지마. 퇴근 시각까지는 너희의 시간을 산 것이므로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빻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말이 틀려?”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다. 일과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다. 귀담아 듣는 ‘척’하기. 일이 하고 싶은 ‘척’하기. 왜 모든 대표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라면서, 뭘 저렇게 가르쳐주려는 걸까. 저는 일을 배우고 싶지, 인생을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그게 일이다. 당신의 노오력과 뛰어남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새겨듣는 ‘척’ 하는 일. 경청과 싹싹함으로 무장한 직원에게 나가는 월급은 덜 아까울 것이다. 나는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악착같이.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다보니 어느덧 이게 척이 아니라 나의 진심은 아닐까하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가 가르쳐준 (다른 의미의) 인생공부를 배워버렸다. 복종하면서 자발적이라는 연기까지 끼얹어 복종하기. 아아, 나의 일. 혹은 사회생활.

“(14) 일터는 사적 영역으로, 사회구조보다는 일련의 개별 계약이 낳은 산물로, 정치적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인간 욕구의 영역이자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3.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면 일에 집중한다. 사실 아침 회의에 비하면 본격적인 일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어렵다. 힘들고. 그런데 일은 일만 보면 된다. 굳이 윗사람들의 들볶아댐이 없어도 나는 내 노동이 투여되는 과정와 결과물을 좋아한다. 사실 일을 좋아하고 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쁘다.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혼을 빼앗기고, 하루 종일 일에 절어있다가, 어찌어찌 퇴근을 하고 또 한 시간을 꼬박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일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일이 싫다.

자아를 개워 넣는 것은 쉬웠는데 본디의 자아를 다시 꺼내서 입는 것은 어렵다. 일 모드에서 스위치를 끄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은 어떤 루틴을 거쳐야 한다. 나는 일년 넘게 동네 요가원에 다니는 중인데,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나면 이제서야 분리된 자아가 합쳐져 온전한 내가 된 것 같다. 잠에 들기까지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거나 일기나 글을 쓴다.

“(12) 결국 최고의 일자리조차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확실히 해 두자. 우리가 이런 조건을 그저 체념해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상할 것은 없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일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야근이 많아서, 회식 때문에, 생리중이라,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이 있어서, 너무 들볶여 피곤이 극에 달해서, 요가를 가지 못할 때 생긴다. 일하는 자아에서 원래의 자아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로 시체처럼 잠을 잘 수 있는 주말만을 기다려야 한다. 자아를 갈아입지 못한 나는, 시간이 생겨도 그냥 멍을 때린다. 에너지 소모가 제일 적은 (그러나 재충전은 되지 않는) 유튜브 보기나, sns에 좋아요 누르기, 인터넷 쇼핑하기, 그러다 스르르 잠자기. 회복이 안된 나는 별로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 욕구 불만의 상태.

심리상담 이후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이 생겼는데, 독서와 일기다. 정확히는 그를 통한 스스로를 공부하는 시간 갖기. 그 시간들을 꼭 만들어내야만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반드시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나를 돌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덧없이 분주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살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일(정확히는 임금노동)을 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그 시간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일해야한다. (그럼 기운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국 ‘일’로 보상받고 싶어지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정받아 직급과 연봉이 올라갈 수록 그에 맞추어 일을 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할 거다. 일에 바빠 일하는 ‘나’는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나 자신을 몰라 분열하는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일에서,
도망 칠 수는 없을까.
왜, 일이란 적당히가 없는 걸까.

“(62)일에 맞서 삶을 지키려는 더 광범위한 정치적 노력,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삶을 누리기’위한 노력의 일부로 두가지 요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일 대 삶’이라는 표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표어는 반노동 정치를 위한 힘센 프레임을 제시하고 탈 노동 상상에 기름부을 수 잇을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도 예리하다.”



4.

한때 나는 ‘효용 가치론’의 맹점을 비판하며 열렬히 ‘노동 가치론’의 옳음을 주장하는 비뚤어진 경.영.학도로서 (아, 그래서 학점이......) 누구보다 책에서 말하는 ‘노동윤리’의 시각을 체화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신성한 노동’의 의무 어쩌고 해왔으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드럽게 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본인의 모순 때문에 노동자 단결도 전에 자아분열로 환장하며, 나는 왜 이모양인가 잠시 방황하였다. 요즘은 기본소득 책 몇권과 때맞춰 발발한(?) ‘4차 산업혁명’ 기사들을 읽으며 아주 “일 그거 AI가 할건데?” 탈노동을 넘어 반노동, 게으를 권리, no노동 하는 (그러나 반전으로 입만 그렇고 일상은) 일벌레로 살아가는 중이다.

“(38) 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그리고 계급투쟁 대신 반노동 정치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뭔가 저자가 추구하겠다는 정치학에 엄청난 신뢰가. 옹, 내가 반노동 그거 마음으로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일에 쩔어 피곤해서 두페이지 읽다 딥 슬립.) 어렵긴 어려웠는데, 한문장 한문장 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 거라. 막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데, 마음만큼은 뭔말인지 다 알겠어. 게다가 내가 관심있는 페미니즘에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살펴보시겠단다. 얼씨구, 좋구나. 두 주의만으로도 황송했는데 기본소득에 주30시간 노동 이야기도 해주신다고 하고, 니체까지 끌어들여 유토피아에 대해 검토하신다니 지금 엄청 신뢰상승. 


일이 방해만 안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휴일! 신난다~




"(27) 전통적인 노동관을 문제 삼는 것은 노동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구성하고 분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노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 노동사회의 문제를 공론화 하고 정치적 문제로 제기 하기 전에 일을 수용하고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도록 이끌며, 일을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요 열망이 향하는 특권화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돕는 기제 (노동윤리 등)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8) 페미니즘의 두가지 전략 - 임금노동으로의 여성 진입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과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고 그 책임을 양성 간에 공평히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의 공통된 문제점은 노동에 대한 정통의 지배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41)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만, 그리고 부자유보다는 불평등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빈곤해진다. ... 고로 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대한 비판에 더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서의 권력과 권위의 정치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페미니즘의 몇몇 갈래를 살펴볼 것이다."

"(44) 나의 관심사는 일에 대한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발전시켜 일 그 자체 - 일의 구조와 윤리, 일의 싪천과 관계-가 불평등을 일으키는 기제일 뿐 아니라 자유에 대한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63)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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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왜오열] 인생은 단짠단짠
    from 게으른 독서생활자의 수기 2020-03-06 19:51 
    5.2019년의 매우 초반. 엄마는 올해를 시작하며 엄청나게 좋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덕분에 올해는 다 잘될거야, 그러니 우리 딸 화이팅! 전화를 받는 날은 파혼을 결심하고 언제쯤 집에 말해야 할까 우물쭈물 대던 시점이었다. 이때다, 대차게 결혼을 작파한 나의 선택(!) 그것이 바로 올해의 대운었노라 선언했다. 엄마는 할말하않으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이후의 나는 진심으로 결혼으로부터의 탈출보다 더 훌륭한 대운이 어디있나 싶어졌다고 하는데...
 
 
반유행열반인 2020-01-24 0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막 다 읽고 나니 내가 출근했다 퇴근한 거 같이 지치고 눈물나고...내내 수고하신 쟝쟝님, 연휴 동안에는 본디 쟝쟝님 갈아입은 채 잠옷 입고 종일 뒹굴 듯 그저 푹 쉬세요. 복직예정자는 점점 다가오는 출퇴근 급 두려워지는 시점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0-01-24 11:17   좋아요 1 | URL
두려워마요.... 제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듣고 본 경험담에 의하면 .. 엄마가 더 힘드니까요... 일하면서 해방감을 얻는 엄청난 삶의 내공을 느끼실 거예요 ㅋㅋㅋ 축하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13:47   좋아요 1 | URL
저는 엄마고 일이고 다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데... 제도권과 자본주의 내에서 월급 금액 슬며시 보며 적당히 타협하는 삶으로 버텨야겠지요ㅎㅎ 들이 받을 일 있음 적당히 들이받고 ㅎㅎㅎ축하 감사드립니다!!

공쟝쟝 2020-01-24 21:46   좋아요 1 | URL
반님을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세상으로 가야겠어요!! 다치지 않게 들이받는 생활! ^^ 참, 설 즐거이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1:56   좋아요 0 | URL
쟝쟝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24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연휴가 왔습니다.....
전 일을 처음 해 봐서 이제야 진짜 연휴가 뭔지 알겠어요... 슨배님..... 리스풱....

공쟝쟝 2020-01-24 11:18   좋아요 2 | URL
자 이제 잠옷 자아를 꺼내시고, 책을 읽으소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소서🙏 ㅋㅋ 기다리고 잇엇다!!

붕붕툐툐 2020-01-24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토닥토닥~ 넘 고생 많으셨어요~ 한 줄 한 줄 너무 공감이 됩니다. 플러스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감이 드네용....

공쟝쟝 2020-01-24 11:20   좋아요 0 | URL
분명 일만으로 삶이 구성되어 일로써만 인정받거나 받지 못하는 억울한 자들 일 것입니다.. 스에상에 일말고 재밌는게 얼마나 많은데..!

다락방 2020-01-24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의 일과 독서가 어우러진 페이퍼 너무나 좋고요! 여러가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명절 화이팅!!

공쟝쟝 2020-01-24 11:4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읽기 화력붙으니, 북플앱 알람이 저를 씹어 먹을 기세입니다 ㅋㅋ 같은 책 읽고 페이퍼쓰기 이거 재밌어요!!! 돈안주는 행복한 일 알려쥬셔서 감사해요 ㅋㅋ (매번 늦게 읽어서 나중에 밀린 페이퍼 읽던 사람)

무식쟁이 2020-01-24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에서 나온 후 분리되었던 자아를 다시 찾는 시간.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감백배입니다. 몸담고 있는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차 일 속에서도 자아가 고개를 드는 날이 다가올겁니다. 분리의 시간이 점차줄어들며.. 분리와 합체 과정 간소화서비스가 내재화되며 점점 업데이트 된달까요.. (요즘 한창 연말정산 기간이어서.. 뭐래..)
공쟝쟝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공쟝쟝 2020-01-24 12:10   좋아요 1 | URL
(다행스럽게도) 아직 아내와 엄마라는 자아는 장착하지 않아서 두가지 자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간소화서비스 간절히 바라는데, 일이란 간소화시키고 나면 또 어려운 업무를 제시하시더라구요!
설 잘쇠시구, 종종 좋은 글로 만나요^.^

단발머리 2020-01-24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쟝쟝님 페이퍼~~!!!
쟝쟝님의 지하철 속생각, 회의시간 속생각 넘 맘에 와닿네요. 어여 읽고 다음이야기도 풀어주세요~~

공쟝쟝 2020-01-24 21:47   좋아요 0 | URL
오 ㅋㅋㅋ 다음이야기를 시리즈로 적어볼까요? 부조리한 일의 세계 ㅋㅋ

블랙겟타 2020-01-25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사회생활이란걸 제대로 해보지 않은...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글로만 간접적으로 느껴보는데요... 언젠가 저도 저 안에서 아둥바둥 하고 있겠죠? ㅠㅠ
쟝쟝님의 정성글 잘 읽었어요. 휴일은 푹 쉬시길요.:D
 
[eBook] 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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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힘들고 싶어서 그토록 열렬히 읽었던 수많은 사회과학, 심리분석 책들. 울화를 게워내듯 일기에 썼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떤 관계에서는 도망치고, 어떤 인연과는 단호하게 이별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그 와중에 생활에 바빠하면서.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있었는 데, 그랬는 데.

훅 들어오는 무심한 (제 멋대로의 사랑을 근거에 둔)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일주일째 엉망이다. 몸의 컨디션도, 마음의 컨디션은 더더욱. 온 마음을 끌어모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는 데, 끌어모을 힘을 뺏겨버렸다. 다 헝클어졌다. 전화 한 통에.

건조하게 말하고, 다치지 않게 거절해도 됐는 데, 감정이 너무 많이 섞였다. 아플말만 골라찝어 딱딱 말하는 단호하고 독기어린 내 목소리가 낯설다. 문제는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고, 힘없이 잘못을 시인하는 그 역시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 굴레. 가족.

사랑이라는 권력에 있어서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쪽,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쪽이, 약자다. 그런데 약자이기에 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가해자인 약자.

사랑했으나 인식이 깊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잘못된 관점까지 수용해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는 둔탁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사랑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그들의 좁고 편견많은 사랑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랑의 형태가 생겨난 바탕까지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의 노동이었다. 사랑하기위해서.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덜 미워지게 되는 경험들은 나를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싶어서. 그런데 몰랐던 것을 알아갈수록 가닿는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나는 그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사랑과 상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나를 해치는 요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을 들이민대도 단호히 싸워야 한다는 것. 세상이 들이미는 사랑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되짚어 물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요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은 때때로 나를 폭군같은 가해자로 만든다. 뒤늦게 다그치는 것이다. 당신들의 편한 선택이, 스스럼없이 살아온 삶이, 사느라 바빠 잊은 질문없음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아느냐고.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답을 얻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질문은 그저 복수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앓았던 숱한 과거와 그 결론인 오늘에 대한.

대체로 난 그 많은 질문과 화를 아주 꾹꾹 눌러 담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냥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모르는 척. 힘 없는 척. 그런데, 참는 다는 것은. 결국 참는 것일 뿐. 참지 못하겠는 날은 온다.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나에게 마치 보란 듯이 - 내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때, 핏줄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요구를 할 때, 손톱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 그 밖의 어떤 때, 때, 때.

지난 주말의 통화가 그러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무례함을 튕겨내기만 했음 좋았을 텐데, 어떤 포인트가 건드려졌고, 안전핀이 뽑혀버렸고.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의 잘못을 꺼내는 몇마디를 얹고 말았고, 너무 쉽게 투항같은 사과를 받아버렸고. 결론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을 해버린 셈이 되었다. 난 일주일째 가해자가된 패자의 얼굴을 하고서 앓았다. 오늘 쯤은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가끔은 낯설다. 그 시절엔 그토록 날뛰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어린 것이 넌 뭘알아! 알필요없어!” 발언권은 커녕 알 권리 조차 보장해주지 않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명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어른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결국은 당신들이 기댈, 당신들 지난 삶을 보상할 어떤 결과물로 대한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너무 많이 이해하면 나에겐 독이 될 앎들이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이미 마음은 다 알겠어서 괴롭다. 당신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의 곤궁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겪고 아는 것들이기에.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부러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왜 날 이해시키려하는가. 결국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린 나는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인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애정을 동원해서 당신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이해되는 사정 앞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가 가닿을 곳은 무력감. 한계의 세계.

*

글을 쓰는 동안 얼마전 읽었던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생각났다.

책 속 벡델감독과의 대화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상과 심리학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즈음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가족들과 싸울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이 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나를 ‘나쁜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가족들을 추궁하는 나쁜 딸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족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드는 ‘골칫덩어리’였다. 어쨌든 나는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우리 가족의 역사와 트라우마로 파고들어 우리가 나눠야만 하는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매몰차게 밀어붙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들이 내 생물학적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혈연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때 진짜 가족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가족들에게서 많은 안정을 얻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독은 가족들이 남긴 상처에 대해 가족 직접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사랑할 수 있으려면, 정말로 그러려면 용감해야한다. 나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사랑의 대상 또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살짝 들추려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척이나 상처 주고있고, 또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무리다. 어쩌면 영원히 무리하지 않음으로 평화롭고 싶다. 감정을 쓰는 것이 싫다. 마음을 쓰는 것은 온 몸을 쓰는 일이다. 머리만, 머리로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라도. 이해하기. 미울 때는 밉다고 말하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

“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흔적을 남겼던 대화. 순전히 저 대화를 활자로 읽고 싶어서, 시나리오 집을 샀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영화관에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후드득 몸을 떨었다. 고마워서. 언제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나 스스로에게 해줄 때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타인의 목소리로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 영지샘이 너무 좋았다. 책으로 읽는데도 콧날이 시큰해져서 전철에서 혼났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쉬운 동정과 연민마저 허락하지 못하는 감정의 불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연대투쟁, 혹은 연민하기 정도가 다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연대할 수 없으니 대체적으로는 연민.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상상력이 없었던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심연과도 같은 고통을 흘깃 보게 될때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그 깊은 심연이라는 못은 있지만, 같은 겪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안다’ ‘이해한다’라는 댓글을 달 수도 없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준을 세운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을 것. 감정적 호들갑을 윤리적 안도로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것. 불쌍해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않을 것.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알려고 할 것.

*

토로하듯 써낸 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어쩌면 약자의)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택한 내가 사랑에 대해 이해한 바는 (지금까지는) 이렇다.
사랑의 출발점은 ‘인식’이며, 알고자 하는 노력없는 ‘사랑’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안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아는 것 이상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나 자신을, 세상을,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그 모두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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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보시는 거 보고 저도 어제 도서관 갔다 이 책 빌렸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0-01-18 13:32   좋아요 1 | URL
영화도 보셨나요? 대부분은 책이 좋은데, 벌새는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최은영, 정희진, 김원영님의 글과 벡델과의 인터뷰도 좋답니다(!)

- 2020-02-1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인생을 살면서 봤던 글중 가장 공감가는 글인 것 같아요 . 글 하나하나가 모두 공감이 되네요 . 글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 최근에 저도 책도 열심히 읽고 나름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 글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빼곡히 그동안 느꼈던 제 마음을 모두 적은 것 처럼 공감이 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는것만로 굉장한 위로가 됐어요 . 특히 사랑했으나 세상에 잘못된 관점까지 아이를 수용해서 사랑하고 , 때론 나를 가해자로 만들고 ,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 결국 더 많이 알아버린 사람이 약자가 된다는 것도 그래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 그리고 함부로 동정할 수 없다. 라는 부분이 가장 공감 됐어요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노력 해야하는 건 제 자신이지만 요즘은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인생이 처음인 것 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였을테고 . 아빠도 아빠가 처음 이였을 테고 , 오빠도 오빠가 처음 이였을테니 결국 고통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라고 생각 하면서요.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들이 저를 아프게 하겠지만 언젠간 아프지 않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 믿어요 .
책 관련 수기 처음 댓글을 다는 글이여서 굉장히 서툴고 두서가 없네요 ..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기다리며 읽을 수 있는 글이 생겨서 너무 기쁘네요 !

공쟝쟝 2020-02-12 19:5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이런 고맙고 위로되는 댓글이.... ㅠㅠ 책을 읽으면서 상처가 해석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긴 하지만 해석은 해결은 아니므로 그래도 아프죠...
글에 공감이 많이 가셨다니, 기뻐요. 두서가 없다셨지만 문장마다마다에 진심이 느껴저서 저또한 위로가 되었어요.
고통에 해석을 입히고 주석을 주렁주렁 달아가면서, 우리 함께 조금씩 숨쉴틈을 넓혀 나가요.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