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아침, A호선에서 B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 우글우글 사람들과 부대껴지는 그 시점. 읽던 책을 덮(거나 끄)고 숨을 한번 들이킨다. 책을 펴는 것 조차 민폐가 되는 좁은 간격의 인류 속으로 몸을 우겨 넣으면 오늘의 ‘일’이 시작된다. 일하기 위한 정신상태로 무장하기.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것 처럼, 나의 어떤 자아는 접어서 개워 넣고 다른 종류의 자아를 꺼낸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자아와 내 몸을 잊는 자아다.

부대껴오는 모든 몸들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처럼 안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면 말이다. 이 한칸의 객실 안에는 얼마 만큼의 사람이 탈 수 있을까? 100명, 200명, 설마 300명?... 세보진 않았지만, 300명 넘을 것 같다. 가끔 파업이 있거나, 지하철 연착이 되는 날이면 없는 인류애를 발휘하며 사람들을 아주 깊숙히 끌어안게 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진한 포옹이다.

지하철 파업이 이어지던 날의 출근 길이었다. 한발 재겨설 틈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자 누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와, 미쳤나봐. 진짜.” 만약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귓속말을 해줬을 거다. “안미쳐서 타는 걸거예요, 아마” 미쳤으면, 이 고생을 해가며 일하러 안나가겠지.

“(14) 오늘날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기 보다는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매일, 매일 또 매일. 출근길의 지하철을 탄다. 그때 마다 내 옆의 이 사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 몸만을 생각할 수도 없다. 모두들과 나까지 배려하려 들면, 그걸 지하철에서 매일 아침마다 해야한다면, 나는 아마 정말로 미쳐버릴 것이다.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몸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어버려야 하는 회사원 300명 x n명.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하러 가는가?

“(12) 하지만 보통의 시민이 일에 쏟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일로부터 회복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훈련하고 조사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만을 간단히 따져 보아도, 일의 경험은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나의 본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아를 장착한다. 앞으로 퇴근 시각까지 ‘잘 웃고, 잘 울고, 화내고, 생각이 많은 나’는 밀어 넣어둔다. 자주 웃으면 실없어 보이고, 회사 사람들에게 우는 ‘여자애’로 프레임 씌워지기는 정말 싫으며, 화를 폭발시키면 해고 당할 것이고, 생각을 하게되면 일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13) 일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은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말려들어 간다. 실제로 직장은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실체적인 권력관계를 흔히 경험하는 곳이다.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정치적인 현상으로서 탐색할 여지가 많은 대상이다.”

회의시간.
대표는 결과물로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대답은 큰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하품을 참는다. 빈틈을 보이지마. 퇴근 시각까지는 너희의 시간을 산 것이므로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빻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말이 틀려?”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다. 일과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다. 귀담아 듣는 ‘척’하기. 일이 하고 싶은 ‘척’하기. 왜 모든 대표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라면서, 뭘 저렇게 가르쳐주려는 걸까. 저는 일을 배우고 싶지, 인생을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그게 일이다. 당신의 노오력과 뛰어남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새겨듣는 ‘척’ 하는 일. 경청과 싹싹함으로 무장한 직원에게 나가는 월급은 덜 아까울 것이다. 나는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악착같이.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다보니 어느덧 이게 척이 아니라 나의 진심은 아닐까하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가 가르쳐준 (다른 의미의) 인생공부를 배워버렸다. 복종하면서 자발적이라는 연기까지 끼얹어 복종하기. 아아, 나의 일. 혹은 사회생활.

“(14) 일터는 사적 영역으로, 사회구조보다는 일련의 개별 계약이 낳은 산물로, 정치적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인간 욕구의 영역이자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3.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면 일에 집중한다. 사실 아침 회의에 비하면 본격적인 일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어렵다. 힘들고. 그런데 일은 일만 보면 된다. 굳이 윗사람들의 들볶아댐이 없어도 나는 내 노동이 투여되는 과정와 결과물을 좋아한다. 사실 일을 좋아하고 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쁘다.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혼을 빼앗기고, 하루 종일 일에 절어있다가, 어찌어찌 퇴근을 하고 또 한 시간을 꼬박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일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일이 싫다.

자아를 개워 넣는 것은 쉬웠는데 본디의 자아를 다시 꺼내서 입는 것은 어렵다. 일 모드에서 스위치를 끄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은 어떤 루틴을 거쳐야 한다. 나는 일년 넘게 동네 요가원에 다니는 중인데,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나면 이제서야 분리된 자아가 합쳐져 온전한 내가 된 것 같다. 잠에 들기까지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거나 일기나 글을 쓴다.

“(12) 결국 최고의 일자리조차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확실히 해 두자. 우리가 이런 조건을 그저 체념해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상할 것은 없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일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야근이 많아서, 회식 때문에, 생리중이라,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이 있어서, 너무 들볶여 피곤이 극에 달해서, 요가를 가지 못할 때 생긴다. 일하는 자아에서 원래의 자아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로 시체처럼 잠을 잘 수 있는 주말만을 기다려야 한다. 자아를 갈아입지 못한 나는, 시간이 생겨도 그냥 멍을 때린다. 에너지 소모가 제일 적은 (그러나 재충전은 되지 않는) 유튜브 보기나, sns에 좋아요 누르기, 인터넷 쇼핑하기, 그러다 스르르 잠자기. 회복이 안된 나는 별로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 욕구 불만의 상태.

심리상담 이후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이 생겼는데, 독서와 일기다. 정확히는 그를 통한 스스로를 공부하는 시간 갖기. 그 시간들을 꼭 만들어내야만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반드시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나를 돌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덧없이 분주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살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일(정확히는 임금노동)을 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그 시간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일해야한다. (그럼 기운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국 ‘일’로 보상받고 싶어지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정받아 직급과 연봉이 올라갈 수록 그에 맞추어 일을 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할 거다. 일에 바빠 일하는 ‘나’는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나 자신을 몰라 분열하는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일에서,
도망 칠 수는 없을까.
왜, 일이란 적당히가 없는 걸까.

“(62)일에 맞서 삶을 지키려는 더 광범위한 정치적 노력,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삶을 누리기’위한 노력의 일부로 두가지 요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일 대 삶’이라는 표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표어는 반노동 정치를 위한 힘센 프레임을 제시하고 탈 노동 상상에 기름부을 수 잇을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도 예리하다.”


4.

한때 나는 ‘효용 가치론’의 맹점을 비판하며 열렬히 ‘노동 가치론’의 옳음을 주장하는 비뚤어진 경.영.학도로서 (아, 그래서 학점이......) 누구보다 책에서 말하는 ‘노동윤리’의 시각을 체화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신성한 노동’의 의무 어쩌고 해왔으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드럽게 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본인의 모순 때문에 노동자 단결도 전에 자아분열로 환장하며, 나는 왜 이모양인가 잠시 방황하였다. 요즘은 기본소득 책 몇권과 때맞춰 발발한(?) ‘4차 산업혁명’ 기사들을 읽으며 아주 “일 그거 AI가 할건데?” 탈노동을 넘어 반노동, 게으를 권리, no노동 하는 (그러나 반전으로 입만 그렇고 일상은) 일벌레로 살아가는 중이다.

“(38) 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그리고 계급투쟁 대신 반노동 정치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뭔가 저자가 추구하겠다는 정치학에 엄청난 신뢰가. 옹, 내가 반노동 그거 마음으로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일에 쩔어 피곤해서 두페이지 읽다 딥 슬립.) 어렵긴 어려웠는데, 한문장 한문장 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 거라. 막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데, 마음만큼은 뭔말인지 다 알겠어. 게다가 내가 관심있는 페미니즘에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살펴보시겠단다. 얼씨구, 좋구나. 두 주의만으로도 황송했는데 기본소득에 주30시간 노동 이야기도 해주신다고 하고, 니체까지 끌어들여 유토피아에 대해 검토하신다니 지금 엄청 신뢰상승.
일이 방해만 안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휴일! 신난다~

“(27) 전통적인 노동관을 문제 삼는 것은 노동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구성하고 분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노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 노동사회의 문제를 공론화 하고 정치적 문제로 제기 하기 전에 일을 수용하고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도록 이끌며, 일을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요 열망이 향하는 특권화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돕는 기제 (노동윤리 등)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8) 페미니즘의 두가지 전략 - 임금노동으로의 여성 진입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과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고 그 책임을 양성 간에 공평히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의 공통된 문제점은 노동에 대한 정통의 지배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41)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만, 그리고 부자유보다는 불평등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빈곤해진다. ... 고로 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대한 비판에 더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서의 권력과 권위의 정치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페미니즘의 몇몇 갈래를 살펴볼 것이다.”

“(44) 나의 관심사는 일에 대한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발전시켜 일 그 자체 - 일의 구조와 윤리, 일의 싪천과 관계-가 불평등을 일으키는 기제일 뿐 아니라 자유에 대한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63)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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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24 0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막 다 읽고 나니 내가 출근했다 퇴근한 거 같이 지치고 눈물나고...내내 수고하신 쟝쟝님, 연휴 동안에는 본디 쟝쟝님 갈아입은 채 잠옷 입고 종일 뒹굴 듯 그저 푹 쉬세요. 복직예정자는 점점 다가오는 출퇴근 급 두려워지는 시점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0-01-24 11:17   좋아요 1 | URL
두려워마요.... 제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듣고 본 경험담에 의하면 .. 엄마가 더 힘드니까요... 일하면서 해방감을 얻는 엄청난 삶의 내공을 느끼실 거예요 ㅋㅋㅋ 축하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13:47   좋아요 1 | URL
저는 엄마고 일이고 다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데... 제도권과 자본주의 내에서 월급 금액 슬며시 보며 적당히 타협하는 삶으로 버텨야겠지요ㅎㅎ 들이 받을 일 있음 적당히 들이받고 ㅎㅎㅎ축하 감사드립니다!!

공쟝쟝 2020-01-24 21:46   좋아요 1 | URL
반님을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세상으로 가야겠어요!! 다치지 않게 들이받는 생활! ^^ 참, 설 즐거이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1:56   좋아요 0 | URL
쟝쟝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24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연휴가 왔습니다.....
전 일을 처음 해 봐서 이제야 진짜 연휴가 뭔지 알겠어요... 슨배님..... 리스풱....

공쟝쟝 2020-01-24 11:18   좋아요 2 | URL
자 이제 잠옷 자아를 꺼내시고, 책을 읽으소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소서🙏 ㅋㅋ 기다리고 잇엇다!!

붕붕툐툐 2020-01-24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토닥토닥~ 넘 고생 많으셨어요~ 한 줄 한 줄 너무 공감이 됩니다. 플러스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감이 드네용....

공쟝쟝 2020-01-24 11:20   좋아요 0 | URL
분명 일만으로 삶이 구성되어 일로써만 인정받거나 받지 못하는 억울한 자들 일 것입니다.. 스에상에 일말고 재밌는게 얼마나 많은데..!

다락방 2020-01-24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의 일과 독서가 어우러진 페이퍼 너무나 좋고요! 여러가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명절 화이팅!!

공쟝쟝 2020-01-24 11:4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읽기 화력붙으니, 북플앱 알람이 저를 씹어 먹을 기세입니다 ㅋㅋ 같은 책 읽고 페이퍼쓰기 이거 재밌어요!!! 돈안주는 행복한 일 알려쥬셔서 감사해요 ㅋㅋ (매번 늦게 읽어서 나중에 밀린 페이퍼 읽던 사람)

무식쟁이 2020-01-24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에서 나온 후 분리되었던 자아를 다시 찾는 시간.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감백배입니다. 몸담고 있는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차 일 속에서도 자아가 고개를 드는 날이 다가올겁니다. 분리의 시간이 점차줄어들며.. 분리와 합체 과정 간소화서비스가 내재화되며 점점 업데이트 된달까요.. (요즘 한창 연말정산 기간이어서.. 뭐래..)
공쟝쟝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공쟝쟝 2020-01-24 12:10   좋아요 1 | URL
(다행스럽게도) 아직 아내와 엄마라는 자아는 장착하지 않아서 두가지 자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간소화서비스 간절히 바라는데, 일이란 간소화시키고 나면 또 어려운 업무를 제시하시더라구요!
설 잘쇠시구, 종종 좋은 글로 만나요^.^

단발머리 2020-01-24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쟝쟝님 페이퍼~~!!!
쟝쟝님의 지하철 속생각, 회의시간 속생각 넘 맘에 와닿네요. 어여 읽고 다음이야기도 풀어주세요~~

공쟝쟝 2020-01-24 21:47   좋아요 0 | URL
오 ㅋㅋㅋ 다음이야기를 시리즈로 적어볼까요? 부조리한 일의 세계 ㅋㅋ

블랙겟타 2020-01-2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사회생활이란걸 제대로 해보지 않은...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글로만 간접적으로 느껴보는데요... 언젠가 저도 저 안에서 아둥바둥 하고 있겠죠? ㅠㅠ
쟝쟝님의 정성글 잘 읽었어요. 휴일은 푹 쉬시길요.:D
 
[eBook] 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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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힘들고 싶어서 그토록 열렬히 읽었던 수많은 사회과학, 심리분석 책들. 울화를 게워내듯 일기에 썼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떤 관계에서는 도망치고, 어떤 인연과는 단호하게 이별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그 와중에 생활에 바빠하면서.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있었는 데, 그랬는 데.

훅 들어오는 무심한 (제 멋대로의 사랑을 근거에 둔)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일주일째 엉망이다. 몸의 컨디션도, 마음의 컨디션은 더더욱. 온 마음을 끌어모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는 데, 끌어모을 힘을 뺏겨버렸다. 다 헝클어졌다. 전화 한 통에.

건조하게 말하고, 다치지 않게 거절해도 됐는 데, 감정이 너무 많이 섞였다. 아플말만 골라찝어 딱딱 말하는 단호하고 독기어린 내 목소리가 낯설다. 문제는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고, 힘없이 잘못을 시인하는 그 역시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 굴레. 가족.

사랑이라는 권력에 있어서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쪽,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쪽이, 약자다. 그런데 약자이기에 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가해자인 약자.

사랑했으나 인식이 깊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잘못된 관점까지 수용해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는 둔탁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사랑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그들의 좁고 편견많은 사랑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랑의 형태가 생겨난 바탕까지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의 노동이었다. 사랑하기위해서.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덜 미워지게 되는 경험들은 나를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싶어서. 그런데 몰랐던 것을 알아갈수록 가닿는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나는 그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사랑과 상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나를 해치는 요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을 들이민대도 단호히 싸워야 한다는 것. 세상이 들이미는 사랑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되짚어 물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요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은 때때로 나를 폭군같은 가해자로 만든다. 뒤늦게 다그치는 것이다. 당신들의 편한 선택이, 스스럼없이 살아온 삶이, 사느라 바빠 잊은 질문없음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아느냐고.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답을 얻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질문은 그저 복수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앓았던 숱한 과거와 그 결론인 오늘에 대한.

대체로 난 그 많은 질문과 화를 아주 꾹꾹 눌러 담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냥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모르는 척. 힘 없는 척. 그런데, 참는 다는 것은. 결국 참는 것일 뿐. 참지 못하겠는 날은 온다.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나에게 마치 보란 듯이 - 내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때, 핏줄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요구를 할 때, 손톱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 그 밖의 어떤 때, 때, 때.

지난 주말의 통화가 그러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무례함을 튕겨내기만 했음 좋았을 텐데, 어떤 포인트가 건드려졌고, 안전핀이 뽑혀버렸고.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의 잘못을 꺼내는 몇마디를 얹고 말았고, 너무 쉽게 투항같은 사과를 받아버렸고. 결론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을 해버린 셈이 되었다. 난 일주일째 가해자가된 패자의 얼굴을 하고서 앓았다. 오늘 쯤은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가끔은 낯설다. 그 시절엔 그토록 날뛰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어린 것이 넌 뭘알아! 알필요없어!” 발언권은 커녕 알 권리 조차 보장해주지 않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명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어른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결국은 당신들이 기댈, 당신들 지난 삶을 보상할 어떤 결과물로 대한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너무 많이 이해하면 나에겐 독이 될 앎들이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이미 마음은 다 알겠어서 괴롭다. 당신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의 곤궁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겪고 아는 것들이기에.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부러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왜 날 이해시키려하는가. 결국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린 나는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인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애정을 동원해서 당신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이해되는 사정 앞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가 가닿을 곳은 무력감. 한계의 세계.

*

글을 쓰는 동안 얼마전 읽었던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생각났다.

책 속 벡델감독과의 대화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상과 심리학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즈음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가족들과 싸울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이 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나를 ‘나쁜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가족들을 추궁하는 나쁜 딸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족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드는 ‘골칫덩어리’였다. 어쨌든 나는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우리 가족의 역사와 트라우마로 파고들어 우리가 나눠야만 하는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매몰차게 밀어붙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들이 내 생물학적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혈연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때 진짜 가족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가족들에게서 많은 안정을 얻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독은 가족들이 남긴 상처에 대해 가족 직접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사랑할 수 있으려면, 정말로 그러려면 용감해야한다. 나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사랑의 대상 또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살짝 들추려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척이나 상처 주고있고, 또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무리다. 어쩌면 영원히 무리하지 않음으로 평화롭고 싶다. 감정을 쓰는 것이 싫다. 마음을 쓰는 것은 온 몸을 쓰는 일이다. 머리만, 머리로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라도. 이해하기. 미울 때는 밉다고 말하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

“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흔적을 남겼던 대화. 순전히 저 대화를 활자로 읽고 싶어서, 시나리오 집을 샀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영화관에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후드득 몸을 떨었다. 고마워서. 언제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나 스스로에게 해줄 때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타인의 목소리로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 영지샘이 너무 좋았다. 책으로 읽는데도 콧날이 시큰해져서 전철에서 혼났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쉬운 동정과 연민마저 허락하지 못하는 감정의 불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연대투쟁, 혹은 연민하기 정도가 다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연대할 수 없으니 대체적으로는 연민.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상상력이 없었던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심연과도 같은 고통을 흘깃 보게 될때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그 깊은 심연이라는 못은 있지만, 같은 겪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안다’ ‘이해한다’라는 댓글을 달 수도 없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준을 세운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을 것. 감정적 호들갑을 윤리적 안도로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것. 불쌍해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않을 것.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알려고 할 것.

*

토로하듯 써낸 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어쩌면 약자의)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택한 내가 사랑에 대해 이해한 바는 (지금까지는) 이렇다.
사랑의 출발점은 ‘인식’이며, 알고자 하는 노력없는 ‘사랑’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안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아는 것 이상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나 자신을, 세상을,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그 모두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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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보시는 거 보고 저도 어제 도서관 갔다 이 책 빌렸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0-01-18 13:32   좋아요 1 | URL
영화도 보셨나요? 대부분은 책이 좋은데, 벌새는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최은영, 정희진, 김원영님의 글과 벡델과의 인터뷰도 좋답니다(!)
 

힘들었다. 
읽겠다고 오만원빵까지 했는 데, 매일 20페이지도 채 못읽는 스스로를 한심해 하며.
두뇌 풀가동을 하는 데도 너무 잠이 쏟아졌다. 

나름 올해 페미니즘 책 읽으면서 독서근육 키웠다고 생각했는 데.. 나, 아직 멀었구나..
그나 저나, 이거 다 읽은 사람들 진짜 대단하다. 천잰가. 아니면 한문박사?

연말에 폭풍 야근을 하면서, 책을 도저히 읽을 기운이 안나서 5만원을 벌고 있으니 그냥 내기에 졌다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그래도 1권은 읽어야지.. 다시 굳세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내 굳센 마음이................굳센 빡침으로 바뀌었다.

325페이지 '음경적 결혼'에서. (뭐 이런 음경같은 번역이 다있어!!!) 


도저히 못읽겠네. 읽었던 사람들이 번역 엉망이라 할 때, 갈아탈걸. 말 좀 들을걸.
번역 땜에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읽은 게 너무 아까워 주문을 하기로 했다.
동서문화사 제2의성을. (가만.. 나 제2의 성에 돈 얼마 쓴거야.. 보부아르여...)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독서를 못한게 아니라 이 번역이 정말로 문제였다는 것을!! (번역하기 어려운 책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고전에 좀 취약한 것도 있지만!!!!!!)

이제서야 막 책읽기를 시작한 초보독서가로서 솔직히 지금까진... 번역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거품을 무는지 좀 이해도 안되고 고생한 역자도 안쓰럽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내가. 바로. 내가. 거품이 물어지더라. 이도 악물었다.

이건 페이퍼써서 찍어서 올려야해!! 제2의성에 제2의 피해자를 막아야해!! 다른 페이지들을 찾기 시작했다.


보이는 가? 저 양물이 설마 그 양물인가? 고민한 나의 물음표가??? 
양물, 
난 이 양물이 설마 그 양물? 하면서 국어사전을 뒤졌었지.
버마재비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면서. (버마재비의 악몽)

근데 국어사전 양물에는 한가지 뜻만 있었다. 그 양물이 맞았다. 
양물=남근=음경 다양한 한자말들이 있었다...


동서에서는 양물을 남근으로 바꿨을 뿐인데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허허...

그래.... 30년전 번역이니까... 30년전에는 남근을 양물이라고 했나보지.........

근데 꼭 그 선택밖에 없었느냔 말이다.



이를테면



양물의 자존심.......
응..... 자존심.....

자, 동서의 번역을 보자. 


유연하다. 남자의 자존심.

이 정도로 번역 했어도 됐잖아!!!!!!!!

어쨌든 "음경적 결혼" 이후에도 꽤 성실히 346페이지 까지 진도를 뺐었는데...


보이십니까? 저 '아....' 가 (진짜 제대로 화나서.. 저 페이지에서 그냥 결제를 해버렸다는.)

내재의 수면에서 뭘 어째?



아... 여자는 남자의 잠들어있는 내재성을 끌어낸다는 뜻이었어...

......지금까지 내가 읽은 거 무엇?........ 

어쩐지 아무것도 기억에 안남더라....

.........난...... 아마 제2의 성 1권을 읽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깊은 깨달음)

세상에..... 스에상에........


동서로 갈아타고 나서 눈이다 환해졌다~ 심봉사 눈뜨듯 진도 퐉퐉나간다. 
오늘 드디어 끙끙대던 1권 털었다!!! 한번에 100페이지 넘게 읽었다고!!!!!!!!

암튼 이번에 호되게 당했다...

사실 어느 정도 참아주고 읽을만 한 부분도 있었는 데,'신화'파트에 프랑스 문학작품들에 나타난 여성혐오 분석 부분은 정말 이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지나친 한문공격에 중요한 부분 읽는 것 같은 데, 무슨 말인지 당최 읽어도 읽어도 읽어도......... 읽어지지 않..



여하튼, 제2의 성을 포기한게 아니라 을유 제2의 성을 포기했다는 글입니다.
90년대 번역 정말 아니올시다!!! 
(30년전 책을 표지만 바꿔서 재인쇄할 때는 30년전 번역이라고 표지에도 써주는 양심을 기대합니다.)

우리나라 번역 수준 엄청 높아졌구나.
앞으로 번역된 책을 읽을 때는 2000년대 이후 번역본을 찾겠다고.. 
아무리 탑골뮤직이 유행이고 뉴트로니 레트로니 응답하라니 90년대의 힙이니 해도
나는 한문말고 영어가 더 중요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임을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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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삼천원..ㅠㅅㅠ
    from 게으른 독서생활자의 수기 2019-12-29 03:38 
    1권 제1부 사실과 신화 에서 1편 ‘숙명’까지 나는 바쁘므로 (나만 바쁜척ㅋㅋㅋ) 챕터별로 짧게 감상만 남기겠다.****서론 : 망했다. 을유문화사 번역좀 보소... *1편 1장 생물학적 조건 : 난 버마재비가 어떻게 생긴 생물인지도 모르는 데 그의 교미 습관을 알고 말았다. 여튼 여성은 남성보다 종(種, species)에 종속되어 있다. 종.. 이 나쁜 쉐키.. 안그래도 남은 인류애 조금 밖에 없는 데, 여성을 종속시키는 인류라는 종을 어떻게 대해
 
 
반유행열반인 2019-12-29 0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트로 탑골 번역...ㅋㅋㅋ막 웃을 일 아니고 위로할 일이네요. 쟝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올해보다 갑절로 행복하시길!(갑자기 막 새해 인사 하고 싶어짐 ㅋㅋㅋ)

공쟝쟝 2019-12-29 11:03   좋아요 1 | URL
댓글보고 저도 새해인사하고 싶어짐! ㅋㅋㅋㅋㅋㅋ 반님두 새해복많이받으시구, 올해에도 함께 읽어주시어 고맙습니다!

잠자냥 2019-12-2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저 번역 어쩔 ㅋㅋㅋ 이거 정말 매우 유익한 포스팅입니다! 전 출판사 이름만 보고 을유 것으로 살까 싶었는데 정말 큰일날뻔 했네요! 와 진짜 을유 버전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공쟝쟝 2019-12-29 11:52   좋아요 1 | URL
덥썩! 이렇게 제2의 피해를 막았네요! (그리고 돈을 많이쓰고..) 하하, 잠자냥님두 요책 내년엔 꼭 도전하고 승리하시기를 바래요!

원더북 2019-12-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 성 읽어보려고 두 가지 번역본 중 무얼 선택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이 글이 없었더라면 저도 제2의 피해자가 될 뻔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공쟝쟝 2019-12-29 17:55   좋아요 0 | URL
열심히 읽구 쓰실 원더북님의 페이퍼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보부아르 만세~^^

라로 2019-12-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다른 내용의 책 같아요.ㅎㅎ 진짜 좋은 정보에요. 그래서 30여년 전부터 번역책에 대해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이런 이유였겠다는 깨달음의 순간이!!!ㅎㅎ어쨌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공쟝쟝 2019-12-29 17:57   좋아요 0 | URL
요즘의 번역서는 입에 착착 붙더라구요! 라로님두 연말 마무리 잘하시구 새해는 더 행복하시기를🙏

syo 2019-12-2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상 ㄷㄷㄷ에서 올린 제2의 성 페이퍼 가운데 가장 유익한 페이퍼가 아닐까요?? 그리고 5만원 으하하하하하하하

공쟝쟝 2019-12-29 18:54   좋아요 0 | URL
누군가의 (그 누군가는 누가될 것인가!?) 5만원을 희생하여, 제2의성을 도전하실 분들께 유익함을 드렸다면.... *

야리바바 2019-12-31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쟝쟝님의 이 긴 글을 읽으며 공감했습니다. 전 이렇게 어려운 고전 아니고, 그냥 제인 오스틴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읽었었는데, 을유문화사의 책을 읽으며 그 미묘하지만 거슬리는 번역에 책을 덮고 다른 출판사의 책을 읽었거든요~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은 동서문화사가 문안하더라구요~ 오리지날 삽화도 있고... ANNE전집도 동서문화사가 컬러풀하고 완전 끝까지 출판되어서 좋더라구요~ 암튼 번역의 중요성과 동서문화사의 중간은 가는 번역에 공쟝쟝님의 심정과 공감해서 글 남겨요^^ 해피 뉴 이어입니다😀

공쟝쟝 2019-12-31 22:25   좋아요 0 | URL
으허허! 제인오스틴 찰스디킨스! 고전문학을 무려 번역까지 비교하며 읽으시는 이웃님이시군요!! (전 올해 그쪽분야는 한권 읽은 고전 못 읽는 병을 앓는 사람입니다) 비결 좀 알려주세요...!!!
내년엔 야리바바님 본받아서 문학도 좀 보고 그래야 할텐데요 ^_^ 오늘 너무 너무 추웟지요? 감기조심하시구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Comandante 2020-01-05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도움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이정도로 심각한 번역일줄은 몰랐네요...

공쟝쟝 2020-01-05 23:03   좋아요 0 | URL
하하, 역자도 노력 하셨겠지만... 역시 너무 오래전 번역이었달까.. 도움 드리게되어 기쁩니다! 새해 복많이 받자구요~!
 
여자 - 공부하는 여자 - 앎으로써 삶을 바꾸는 나의 첫 페미니즘 수업
민혜영 지음 / 웨일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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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읽으면 안될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2000년대 후반 쯤.
일단 어렵기도 했지만, 불편했다. 무슨 책인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당시의 내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무언가를(지금 추측해 보건대 모성애, 이성애, 가족, 계급, 민족, 국가, 역사, 이런 종류의 개념이었을 거다) 심각하게 공격 당한 느낌이 들어서 무서웠다. 알면 좋긴 하겠지만, 힘들어 질 것 같아, 안 읽을래.

2. 몇년 후에 내가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곳에 이런저런 젠더적 이슈들이 생겨서 참조하듯 얇은 책들을 골라 발췌해서 읽었다. 조심조심, 필요한 부분만 읽자... 처음에 접할 때의 그 무서움이 있어서, 페미니즘에게 완전히 설득 당하지는 않을 거야! 라는 마음이 있었다. ‘명예 남성’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이후 이 단어는 메르스 갤러리를 거치며 명예자지 흉내자지를 줄여 명자, 흉자가 되었다....) 이 글에 따르면 나, 명예 남성이네. 열심히 살았는 데, 네 사는 방식 별로였다고 갑자기 뺨이라도 맞은 듯 울고 싶었더란다😅 꽤 아팠는 데, 내가 사실은 명예 남성인 걸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했다. 나도 더 알고 싶지 않아졌고.

3.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2016년 겨울의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에 대한 여성혐오를 멈춰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이야기가 불편했던 건 아니었다.
정작 불편했던 건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 “그런 맥락이 아니잖아, 맥락으로 읽어야지 그게 어떻게 여성 전체에 대한 공격이냐?” 보다 참기 힘들었던 종류는 ‘공작’의 입장. “촛불을 꺼트리기 위해 일으키는 ‘작은’ 소란이다” 와 같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의’를 가로막는 작은 분란으로 인식하는 그 큰 목소리에는 박근혜 퇴진을 원하는 나의 마음도 있었지만, ‘나’의 또다른 어떤 모습들은 담겨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여성혐오를 멈춰달라’는 말을 완전한 나의 목소리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여성이었으니까.

조금은 긍정적인 입장에 서서 페미니즘의 텍스트를 읽어가기 시작한 것 역시 그 무렵이다. 당시에는 너무 급진적이라 생각했으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으로 온건한....(응?)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으면서, 나는 몇번 울었고, 20대의 나 자신을 참으로 진실로 회개(?)했으며,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관계들이 미워졌다.
그리고... 그리고........
이 종류의 책을 더 읽으면 왕따가 될 것이란 강한 직감이 왔다. 
온 세상이 불편해지리라, 안그래도 반골인데 더 심한 반골이 되리라, 어쩌면 연애도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아야 되리라, 나랑 술마셔 주는 사람들과 더 이상은 따뜻한 대화를 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직감은 맞아 떨어져... 3년 후 현재 인간관계 95% 정리하고 혼자사는 중... 뚜..뚜..😭....)
역시, 이 정도에서 멈추자. 페미니즘은 모르는 게 좋을지도.


*

페미니즘의 삼세번 공격에도 넘어갈 듯 넘어가지 않은 나였으나, 몇달 뒤 2017년의 초봄. 더 겁내다가는 도태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나의 측근(주로 여동생&후배들)들이 장난섞어 나를 명자라고, 흉자라고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 앗. 들켰다. 그런데 어쩐지 들킨 것이 반가웠단다.
왜냐면, 이젠 그것들을 읽어도 아예 ‘왕따’는 아닐 것 같아서. 물론, 좀 외로워지긴 하겠지만. 최소한의 안전망이 확보된 것 같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주 조금씩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책들을.


*

“(37) 질문을 바꿔보자. 그렇다면 가족은 해체되면 안되나? 그토록 극심한 폭력으로도 가족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 실은 더 큰 문제 아닌가? 이 문장은 작은 일상이 무너질까 두려워 페미니즘을 멀리하려 던 내가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통찰을 주기도 했다. 무언가를 자각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유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더욱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중요하다고 하는 ‘가정의 평화’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나의 삶이 무언가를 일부러 멀리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실은 그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어쩌면 나는 짧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식은, 내가 생각하는 형태로 나를 압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나의 삶을 바꿔줄지 모른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의 이야기가 변화하기 시작하고 그 변화의 내러티브를 써내려감으로써 나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가족의 취약성을 인식하는 것 만으로 더 자유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무엇이 바뀔지 혹은 바뀌지 않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지로 지속 가능한 현실을 지속하는 것이 더욱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이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리라.”

*

워킹맘이었던 저자는 일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학부시절 막 알아가기 시작한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까봐, 함께 어울리는 친구와 동료들과 멀어질까봐 걱정했던 나보다 훨씬 강도 높은 두려움이었을거라 짐작해본다.

저자와 내가(함께!) 좋아하는 정희진 샘의 글 대로 “‘지식을 습득한다’와 ‘안다’는 것은 다르다. 안다는 것은 깨닫고 반성하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세상이 넓음을 알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p.19 혼자서 본 영화)”, 어떤 앎은 알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이 곧 실천이 되기도 한다.(이 책의 부제는 “앎으로써 삶을 바꾸는 나의 첫 페미니즘 수업”이다.) 저자는 알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고, 깨달으면서 어느새 공부해 여성학 석사과정에 까지 진학해 공부 중이시다. 꼬박 만3년 동안 이 정도 수준으로 페미니즘 책을 읽어내려면, 얼마나 절박한 앎이었을까.

*

이책을 막 읽고서 100자평에 “역시 탈혼과 이성애거부, 재생산 노동(특히 임신, 출산, 육아)거부 만이 가부장제를 때려 부수는 페미니즘의 근본적 실천이라는 확신이 든달까.”라고 적었는 데, 책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여성이자, 결혼을 한 여성이자, 또 재생산 노동을 해야 하는 엄마로서 녹록치 않았던 그 경험을 해석하기 위한 공부의 힘듦이 글에 그냥 배겨있어서, 저절로 그런 결론이...
“(187)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이 필요 없는 세상은 페미니즘이 필요한 세상보다는 훨씬 더 좋은 곳”이라면 -> 내가 지금 당장 페미니스트로서 해야 할 일은 -> 지금까지의 내가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자각했으니, 미래의 나는 페미니즘이 필요 없어지도록 만드는 것 -> 여성을 그만둘 수는 없고, 일을 그만둘 수도 없으니, 일단 결혼과 재생산 노동(특히 임신, 출산, 육아)이라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깨달음. 그렇다면 그것은 어쩌다보니, 이미 내가 하고 있는 것? ㅋㅋㅋㅋㅋ 앗, 알면서 삶이 바뀐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

페미니즘 책들과 함께 점점 깊어지는 저자의 사색들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덧붙여 나는 그만큼 절실하게 읽고, 공부하고, 삶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각자가 소화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앎과 삶이 있다. 3년을 내리 페미니즘을 공부한 저자만큼의 절박함은 아니었을 지라도, 나 역시 지난 3년동안 어떤 태도들을 고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구성하는 관계들과 끊임없이 이별하게 되었다(어떤 의미에서는 이별 중에 있기도 하다). 나를 고치기 싫어서 페미니즘을 거부했었고, 어떤 헤어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 페미니즘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도 싶기도 했었다.

나는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고, 모르는 것을 더 몰라가는 사람이 되었고, 그 덕에 자유로워졌지만 또 외로워졌다. 외로우니 책을 읽고 책을 읽으니 더 알게되고 알게되니 또 모르겠고,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자유로워지고... 더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청산하고, 이별하고.... 그러다보니 더욱더 외롭....🤧 콧물이 난다.. 아, 춥다....

엄마와 아빠는 또 올해를 넘긴다고 시집 못가는 딸을 걱정한다. 원래도 불효녀였지만, 결론적으로 또 불효녀가 되었네. 나를 외롭게 만든 페미니즘은 이처럼 나를 불효녀로 만들었고, 효자를 싫어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 남자들 다 효자고, 그래서 난 결혼을 못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사연을 부모님께 털어놓으며 그 앞에서 가부장제 어쩌고 할 수는 없고, 다가올 설날을 또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도 추가되어서 또 코에서 눈물이....

음,
그래도 누군가가 페미니즘 알래, 모를래? 라고 물어보면 알래! 라고 대답 할거다.
기왕이면, 200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서 아예, 확 알아버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싶다.

*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함박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 앗차거 앗차거 피하던 어떤 여성이 발을 적시고 무릎을 적시더니 갑자기 배낭에서 전신 수영복을 꺼내 갈아입고 서핑보드들 들쳐메고 마구마구 헤엄쳐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그런 멋진 이미지. 그녀는 곧 서핑보드에서 일어나 파도를 멋지게 타실 것 같다. 응원해요🙌🏻🙌🏻🙌🏻

*

마지막으로 페이퍼 쓰다가 다시 꺼내서 읽게된 <정희진처럼 읽기>의 세 문단을 첨부 한다.

“(p.278)
생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생각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다. 나도 조금 생각한 적이 있다. 피학의 쾌락이 있었지만, 공부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에서 기름이 빠져나가는 느낌, 빛이 투과되지 않는 심해에서 괴물과 마주한 기분,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눈물만 흐르는 상태. 긴장을 견디다 못해 물건(연필)을 부수거나 더 큰 고통으로 상쇄하기 위한 자해(별로 안 아팠다.) 이 우주에 나도 타인도 없는 것 같은 무섭도록 외로운 상태. 단것을 먹어대도 두통만 올 뿐 배가 부르지 않았다. 무기력, 청소와 세수의 반복. 이것이 공부다.
내 무능력도 원인이겠지만 사유는 힘든 일이다. 생각할수록 공부할수록 무지의 공포는 비례 상승한다. 나 자신이 작아지고 우울해진다. 우울은 공부의 벗. 공부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에게 몰두한다. 계속 자기 한계, 사회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는 생각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

덧, 이전에 ‘여성주의 고전을 읽다’에서는 주디스 버틀러 하나도 이해 못했는 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다양한 페미니즘 책들을 저자가 공부한(이해한) 방식으로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어 지금 나의 인식 수준에는 적절했다. 추천해 주신 단발머리님께 감사! ^0^*



나는 그저 내가 ‘왜‘이렇게 힘든지 알고 싶었다. 힘든 것을 말하는 것이 ‘왜’ 치사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왜‘ 인생이 자꾸만 어깃장을 높는 것 같은지 알고 싶었다. 이유를 알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P21

자신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자신이 해야한다. 자기 몫의 재 생산을위한 노동은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마링 너무나 전복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P48

나는 최근 노동을 공부하면서 이 문제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차이에 맞추어서 육아 휴직을 강화하든, 평등에 맞추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든 여성의 처지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곤궁함은 여전하다. 이럴 때 그 기준 자체가 성인 남성의 노동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 기본값 자체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171

‘보이지 않는 손’만을 경제로 치고 ‘보이지 않는 가슴’을 비가시화 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은 결국 ‘돌봄의 공백’이다.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돌봄 공백 사회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자 돌봄을 해야할 주체라는 인정 아닐까.-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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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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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권고 사직을 당했다. 죽을 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내 만났더니 의외로 싱글벙글이다. 퇴직금은 없었지만 실업급여가 나온다나. 쉬는 김에 뱃살타파를 위해 헬스를 끊었다고 한다. 헬스를 다니다 보니, 문득 헬스 트레이너가 되볼까? 싶었다고. 아서라, 배나온 트레이너한테 누가 pt를 받겠냐. 아, 그건 좀 그렇지? ㅋㅋㅋㅋㅋ

너는 어찌 지내냐 묻는다. 나? 야근. 그제도 그그제도 아마도 내일도 모레도. 요가 끊어놨는 데 야근 보름 넘게해서 하루도 못감. 돈을 바닥에 버리는 중이야. 헬스라니 부럽당! 어제는 문득 걱정이 되서 구글에 과로사를 검색해보았어. 근데 나 정도로는 안죽는 대.

이상하다. 짤린건 쟨데, 죽을 상은 내 얼굴이었다. 꿱.

야, 니가 물어보니까 깨달았어. 요즘 삶이 실종됐어. 저녁이 있는 삶은 무슨, ...삶이....없다..... 그러고 보니 네놈의 싱글벙글은 ‘삶’을 가진자의 해맑음이로구나!!! 하나도 안부럽지만 어쩐지 약 오른다!!!!!!!!!

“... 너의 시간이 넘쳐 흐르는 얼굴을 보니 넉달 전 프리랜서 (반백수) 때 내 기분이 생각나”
“어쨌는데?”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했어.”
“헐ㅋㅋㅋㅋ표현 찰떡ㅋㅋ넘나 내 기분”
“웅, 내가 말해놓고도 괜찮아서, 놀람ㅋㅋ”
“근데 지금은?”
“지금은 (멋진 표현 생각중..) 불안하지는 않은데 행복하지도 않아. 그래도 불안한 것보단 나은 듯”

어떻게 인생에 중간이 없냐? 극단의 둘중 하나 밖에 없는 거여?? 어쩔수 없잖아. 어차피 빈민청년의 삶은 놀거나 갈리거나다. 그러니, 갈리지 않는 동안은 행복해라. 자주자주. 그러자, 그럽시다!

의미는 없는 데, 재미는 있는 이야기를 하며 쉴새 없이 큭큭댔다. 실업급여에서 나온 짠내나는 커피를 얻어 마시고 ..나는 칼국수를 사줬다. 우리는 끊임없이토크 박스를 굴렸지. 최근에 그가 본 사주 이야기, 나이드는 이야기, 살이 찌는 이야기. 그리고 바로 이 책 이야기를 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이 책 재밌더라ㅋㅋ
엇! 나도 읽고 있는 데.
졸라 공감되지.
응. 인간이 치사해지는 모습이 너무 우리들의 이야기야ㅋㅋㅋ

“맞아맞아. 있잖아 근데 말야, 여기서 주인공이 빛나언니가 잘살기를 바라잖아”
“웅 나도 비슷한 경우 있었는 데, 뭐랄까 떨떠름 하면서도 그녀의 방식으로 그냥 잘~살았음 싶던데”
“내 생각엔 주인공이 좀 더 형편이 나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만약에 빛나가 더 좋은대로 시집갔거나, 주인공이 더 못살았어봐. 배아파서 부러워서 잠도 못자고 저부 퍼부음 ㅎㅎ”

그런가.😯
그럴까.🤔
그럴 수도.🤭 (새로운 해석!!)

*

정말 후루루룩 읽히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단편 한편 한편이 다 막 공감이 된다. 

그래요, 요즘 젊은 것들은 이렇게 치사하고도 계산적이면서 합리화를 잘한답니다😘

아주 막연히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내가 만난 인간 군상들과 나 자신에 대한 풍자소설을 쓰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장류진 작가님이 다 써버렸네?... 내가 쓰려던 게 진짜 딱 이런 느낌이었는 데 ㅋㅋㅋㅋㅋ 아쉽다 쩝. 안녕.... 쓰지 않(았)을, 내 미래의 소설이여... 하지만, 다음 책이 기대되는 새로운 동년배 작가를 만난 것이 훨씬 더 반가우니. 내 쿨하게 너를 보낸다. ㅋㅋㅋㅋ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하던 반백수시절이 그리운.. 야근에 야근에 야근으로 연명하는 연말이다. 요즘 나에게는 유일하게 허락된 독서타임인 출퇴근 길, 좋은 벗이 되어준 소설!

추천합니다! 한 번 읽어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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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12-16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했어!! 명문장~

공쟝쟝 2019-12-17 14:3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ㅋㅋㅋ 🥰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비연 2019-12-1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고 싶은 1人, 예전 잠시 쉴 때가 문득 그리워지게 되는 글이네요... 인생;;;

공쟝쟝 2019-12-17 14:34   좋아요 0 | URL
쉬고 싶은데 ㅜㅜ 그럼 영원히 쉬게될까봐....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