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트리 스피박 라이브 이론
마크 샌더스 지음, 김경태 옮김 / 책세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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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이 (알아먹을 수 없는) 책의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두둥.



0.

스피박은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읽으면서 ‘모더니스트’였던 스스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과정이었을지는 그냥 나는 좀 알아볼 수 있었다. (아, 못 쓰겄다. 부끄러…라고 하면서 결국 써서 올리겠지… 감당이…될 것인가?ㅋㅋㅋㅋㅋㅋ) 반쯤은 모더니스트, 그리고 반쯤은 덜 모던화돼서 부대끼던 나의 읽기가 떠올려졌으므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스피박의 인터뷰처럼 ‘결과물이 드러날 수록’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페미니즘을 읽기 싫었던 이유와 읽으면서 또 읽기 싫었던 이유… 내가 사랑했던 것들과 이미 끝난 줄 알았던 헤어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나를 질식시켜 왔음을 똑바로 보기. 자유, 불안, 자유 불안, 그러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사랑하고 이별하는 존재로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 갈 것. 질식되기 전에 숨 구멍을 만들고, 또 다음의 또 다음. 나는 사랑하고 헤어진 존재들이 남긴 흔적이다. (이제야 겨우) 이렇게 만들어져온 나를 사랑한다. 


1.


해체의 심오함이 넘나뤼 복잡하다는 걸 느껴보라고 난삽한 문체로 쓰였다는 스피박이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해 지식인 계층에게 하는 윤리적 요청을 내 입 말로 쉽게(;;가능할까?;;) 풀자면. 자기비판/타자비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지독하게 서구화되어 버렸고 “(147) 자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경향”이 심하다. 타자비판을 하려거든 자기비판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기준조차 못 잡겠으면 공부를 하고 오세요! 하지만 안 하겠지. 왜냐면 자기비판은 하기 싫은 법이니까.) 그게 아닐 거라면. 빛 좋은 포스트모던이든, 마르크시즘이든, 페미니즘까지도 개념과 이론을 자기중심적 우월감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만 사용해 온 구(?)서백남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는 지적 같다. (흠… 쓰면서 뜨끔…) 


“(39)읽는다는 것은 독자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누군가의 자아 밖으로 나오는 것, 아마도 ‘동시대 독자’를 알아보는 것, 알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관점을 자주 형상화하는 것이다.”


요즘 내 시간을 잡아먹는 원흉 중에 하나는 스레드인데… (쓰레기 같은 글을 재생산하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함) 와, 거기엔. 별의별 세속적인 자랑성 정보들이 다 올라오지만 글을 타자 분석, 타자 비난의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한 바가지라서 안 본 눈 삽니다. (지금 나도 비난하고 있네?ㅋㅋㅋ 근데 왜 보냐면 그러게, 볼 수 밖에 없게 설계가 되어있다ㅋㅋㅋㅋ) 


1%들은 다한다는 아침 이불 개기 습관과 믿고 거를 사람 알아보는 안목 세 가지! 가 좋아요를 많이 먹어 배를 불리며 돈버는 글쓰기 강좌가 폭봘하는 시절에 인터넷에 쓰는 자기분석, 자아비판이 치열한 글은 아마 열등감에 찌든 루저의 자기 고백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읽힐 거란 걸… 나도 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까지는 아니더라도 루저인 70%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그것들을 배워갈수록… 우린 자존감이 높은 척 자기 확언을 하다가 자아 중독에 빠지고 말며, 그걸 안하는 사람들을 은연 중에 째려보고, 자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뭐… 그러나 그런 글쓰기는 긴장 안 타면 은연중에 크리스테바 언니도 하는 그런 것 ㅋㅋㅋㅋㅋ 


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게 되지만 문제는.

그걸 고민하며 써봤자 내 글 아무도 안 읽어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쓰자.


모두가 판관이 되어, 나만 아니면 돼. 나는 아님. 남을 혹독하게 단죄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떤 편에 서거나 도무지 판단이란 걸 하기가 좀 어려운… 사람들… 복잡함과 알 수 없음이 사람의 기본이라고 바라보는 이들의 언어는… 갈 길을 잃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책을 읽을 수록 점점 생각이 많아져 개인의 특성을 본질화하는 언어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퉁쳐서 밀어내고 싶은 어떤 타인들의 특성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것의 조건을 살피는 글을 읽고 싶고 쓰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성찰의 시간은 여유에서 나오니까). 결국 돈을 벌고 싶다. 


이 문장에 또박 또박 밑줄을 그어두었다. “(24) 스피박은 자신의 ‘내포 독자implied reader’, 즉 외국계 미국인과 탈식민화된 남반구 출신의 경제적·정치적 이주민에게 “스스로를 희생자가 아니라 착취를 할 수 있는 행위자로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 그것은 현재 전 지구적 국면을 독해하는 것 그리고 그 독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궤적 …”


그래도 돈을 벌고 싶은 나는 가담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돌아보기 두렵지만, 내가 뭐라서? 나도 공동체에 속한 존재인데. 그래서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는 않는 채로. 돈은 벌고 싶다. ㅋㅋㅋㅋ  



2. 


‘서발턴subaltern’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인도의 사티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피해 여성. 대~충~ 말할 수 없는, 재현 불가능한, 말하지 않음이기에 읽어내야 하는 ‘언어 없는 민중’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개념을 조금 더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약간은 변화된 개념이었다. 


“(165)나는 ‘서발턴’을 통해서 대도시 공간의 모든 유색인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고자 한다*. ‘개발과 여성’은 여성들을 외국이 직접 투자하는 제조업(특히 직물 및 전자산업)과 수출 가공 지구로 여성들을 데려가면서 최하층 범위에서 사회적 이동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젠더와 개발’은 서발턴 여성에게 소상공인을 위한 소액대출을 제공하면서 보다 공평한 기회를 준 것처럼 보인다” 


“(158) 영토 제국주의(시대에는) 그 국가를 식민화하려는 어떤 노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사회적 임무-양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그것의 중심적 과제와 *정당화가 되었던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취한다.* .. 그 훈련은 (…) 소비주의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성문법, 새로운 교육 체계, 새로운 요구 인식이 마음의 형태와 사람을 폭력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인식론적 폭력을 작동시켰다. 그 폭력은 개인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진입할 기회를 잡은 오랜 식민 주체를 생산했다. (162) 이러한 단계에서 대출자는 공장 노동자일 필요가 없다. … 그/그녀는 대출 이자를 상환하기 위한 돈을 필요한 절대적 잉여 가치를 얻고자 그 혹은 그녀 자신의 노동일을 조정할 것이다.” 


아래 부분을 읽으면서 스피박의 지적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페미니즘의 이면. 페미니즘적 주체의 생산. 으악. 너무 날카롭잖아? 


“(167) 스피박은 특히 ‘젠더 훈련’에 비판적이다. 국제적 기관이 부여한 그 명명은 젠더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젠더 훈련은 남반구의 여성들 사이에서 소유적 개인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가 스피박의 비판에 함의되어 있다.”


“(167)여성을 위한 임시변통의 자유로운 선택은 내가 사티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연구 대상이었다. ‘자유로운 선택’을 만들어낼 것을 제안하는 ‘젠더 트레이너들’은 문화적으로 상이한 주체들이 충분한 준비 없는 의사결정에 집중하도록 애쓴다. (…) 존중의 피상적 몸짓으로 주체 생산에 관여하는 ‘젠더 훈련’은, 자본을 위해서, 여성들 위에 있는 여성들의 도움으로 문화적 통합이라는 가장 큰 위반을 가한다.”


사회적으로 이동할 수 없는 사람. (그게 가족이든 빚 때문이든…) 그리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람…이 변화된 시대의 ‘서발턴’이라는 말에. 얼마 전까지의 나… 여전히 ‘나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게 그랬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우리 모두는 일정 정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푸어. 사지 않을 수 없어서 사야 하는 아이템들. 빚을 갚기 위해서 벌어야 하는 돈. 물론 여전히 나는 나를 속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동할 수 없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노마드임ㅋㅋㅋ 게다가 부단히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 원한다면 이동할 수 있다는 것, 영원한 관계는 없고 어떤 관계와 든 이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알게 되었다. 


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졌고, 처음으로 그런 욕망들이 생겼었다. 


그래서. *서발턴 :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이라는 문장이 서글펐다. 



3.


나에게 <가야트리 스피박>의 백미는 4장 <국제화된 페미니즘>에서도 바로 *‘젠더 및 개발’과 전지구의 금융화* 챕터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스피박의 ‘입문서’로는 추천하지는 않는데, 이 챕터 만큼은 정말로 읽어봄 직하다. 어렴풋이이런저런 페미니스트 아닐까? 추측만 하던 가야트리 스피박에 대한 호기심이 확실히 생기고야 말았다!! 


뭔가를 더 쓸 수 있는 기력은 내일의 노동을 위해 남겨야 하겠으니 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던 부분에 대해 사진을 첨부한다! 미래의 내가 다시 읽으면서 사유를 발전시키기를 바라며… 6월의 독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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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1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경향…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지만 타자비판을 하려거든 자기비판을 전제하라는 쟝님 말씀에 우리 예수님 말씀이 겹쳐지네요ㅋㅋ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1-5>

나도 이 책 리뷰 얼른 써야하는데…
일단 굿나잇~~😘

공쟝쟝 2024-07-01 00:07   좋아요 2 | URL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뱃 살 속에 훌라후프를 빼어라.. 그러려면 밀가루를 덜 먹어야하고… 밀가루를 끊으려면 외식을 덜해야하고… 집밥을 셀프로 해먹으려고 하면 너는 하루에 삼시 세끼 땀흘리며 밥을 하고 설거지 하고 다음 밥을 하고설거지를 하고 다음 밥을하고…. 다이어트는 자동으로될 것이니….

껄껄.
예수님 천재.

단발머리 2024-07-01 00:08   좋아요 2 | URL
그리하여 너는…
아침에는 요거트 점심에는 외식
저녁에는 샐러드를 먹도록 하여라~~
여름에 집밥세끼는 불가하나니…

공쟝쟝 2024-07-01 00:1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요거트 아멘!!!! 저는 타자비판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7-01 00:12   좋아요 2 | URL
타자비판의 제1대상은 늦잠꾸러기이니 너는 이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느닠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7-01 09:28   좋아요 1 | URL
선생님은 어쩌면 이렇게 늦게 취침하시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실 수 있나요? (마이크를 내밀면서) 비법을 좀 알려주시죠!!!

단발머리 2024-07-01 0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글하고 좀 바뀐듯 하네요. 뒷부분이 추가된 거죠? 정리 잘 해 주셔서 소듕하게 잘 읽고 갑니다.
뭐라 덧붙이고 싶지만, 나도 이 책 읽었지만ㅋㅋㅋㅋㅋ참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공쟝쟝 2024-07-01 06:48   좋아요 1 | URL
본문에 괄호가 잘못 < 붙어서 북플에는 내용이ㅜ잘려서ㅠ안뜬 거 보고 호다닥 수정! 늦잠꾸러기 되기 싫어 일찍 인났습니다! 굿 모닝!!!

수이 2024-07-01 07:46   좋아요 2 | URL
아니 다들 저리 늦게 주무시고 이리 일찍 일어나셔서 활동하시는 겁니까? 청년들은 역시 다르구먼;;;;;

수이 2024-07-01 0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 먼저 재우고 두 분이서 늦게까지 토론하셨네요? 하지만 자비로운 제가 넉넉한 마음으로 삐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요거트는 드셨습니까? 저는 어젯밤에 만들어놓고 잤는데 또 망했네요;;;; 새로 또 만들어야지 에휴

수이 2024-07-01 0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을 디따 많이 벌고 싶어요. 하지만 게을러서...... 스피박 이 책 읽는 동안 너무 어려워서 저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읽어볼래요. 그래도 이렇게 이리똑똑쟝선생님이 요약해주시니까 머릿속에 한번 다시 쏙쏙 잘 들어오네요. 좋아라.

공쟝쟝 2024-07-01 08:18   좋아요 2 | URL
돈을 디따 많이 벌면 저도 좀 주세여! (거지냐??) 스피박을 읽었는데도 ㅋㅋㅋㅋ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을 글에 너므 많이 썼다 ㅋㅋㅋㅋ 물가가 너무 무서운 영세자영업자는 서발턴이 나구나 또르륵 웁니다…

수이 2024-07-01 09:27   좋아요 0 | URL
스피박을 읽었는데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이렇게 쟝님처럼 스피박 읽고 돈 벌고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많이 생기기만을 바랄뿐. 그나저나 요거트 폭망해서 전 다시 요거트를 만들러 이만 퐁퐁퐁. 서발턴이 님인가.... 나인가..... 그러한가..... 모르겠다! 울지 마! 운동해! ㅋㅋㅋ

2024-07-01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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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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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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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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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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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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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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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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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 한국 2060 여성들의 일 경험과 모험
김현미 지음 / 봄알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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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일감 쳐내다 근로의욕 상실하고 농땡이치러 나온 흠결 많은 파편.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신자유주의하 K-여성의 노동을 사유하는데…




플래그 붙이다가 모든 페이지에 붙이다가 화나서 걍 구매한 책 #흠결없는파편들의사회

현실감 바짝 조여오는 문장들이 살을에고 뼈를 때려서 개🐶강추를 하지 않을 수 없네.

“(15)신경아의 표현대로 “여성들은 종속적 안정성을 잃은 대신 독립과 표류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얻었다”
(16)하지만 이들 여성 모두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딸, 부인, 어머니라는 역할 질서 바깥에 존재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런 이들에게 조금 더 확실한 삶과 자족의 근거는 무엇일까? 괜찮은 일과 일터다. 임금노동이, 일이 정말 중요해졌다. 자립할 만한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 자신의 삶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를 안 만들기로 한 여성들, 그를 떠나보낸 여성들, 남성 배우자 없이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 여성들끼리 벌어 먹고사는 여성들, 혼자 사는 여성들, 고양이나 개와 같은 다른 동료 종을 돌보는 여성들 등, *이들 모두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혹은 일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존재하는가*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이들의 존재감을 구성한다.
한편으로 여성들이 사무직·전문직 일자리로 대거 진출한 현상은 ‘비혼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돌봄 노동을 하지 않는 남성을 표준적인 노동자상으로 삼아 조직된 남성 중심적인 일터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 ‘비혼‒무자녀 상황의 유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도 많다. 공적인 일 경험과 결혼, 출산, 양육과 같은 사적 경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임금노동과 돌봄 노동은 시간, 정서, 노력 면에서 갈등 관계에 있다. (17)돌봄 노동에서 상대적으로 면제되어왔던 남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듯, 남성 중심의 일터에 들어간 여성들 또한 결혼, 출산, 양육을 수행할 여력을 상실한다. *한쪽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에서* 여성들은 자발과 강제를 구분할 수 없도록 사회가 구성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선택권을 잃거나,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몰려왔다.”

#한쪽을말끔히정리한다고생존이가능할줄알았더냐


딸 가진 많은 모부가 성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중산층 집안의 똑똑한 딸들은 경력 단절로 좌절한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독박 가사노동의 서러움에 공감해주고 손을 보태고자 하며, 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한다. 엄마가 ‘꼰대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행동, 말투, 매너를 살피고 교정해주며 유행을 알려준다. 한편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양산된 딸 바보 아버지들은 사랑하는 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때 딸은 그 자신의 독립성이나 인격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현대판 ‘으스대기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떠안는다. - P34

왜 일터에서 혹은 노동의 조건으로 여성성을 수행하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가는 정치경제학적 질문을 필요로 한다. 젠더 수행성은 문화규범으로서 자본의 축적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여성의 관계는 "엇갈린 축복mixed blessing"이라 불린다. 어떤 여성들에게는 긍정적인 기회를 선사했으나 동시에 가중된 억압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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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2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 --> 응원합니다!! ㅎㅎ 사진 멋지네요 ㅋㅋ 저도 내일 카푸치노 사 마셔야겠습니다~~

공쟝쟝 2024-05-23 23:46   좋아요 1 | URL
먹다말고 헝ㅋ분ㅋ해서 일단 사진 찍은ㅋㅋ 시나몬 퐝퐝 뿌려서 드셔요. 서곡님. 더 더워지기 전에 따수운 걸루~

단발머리 2024-05-23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왼쪽에.... 노트가 보이네요. 많이는 안 보이고 쪼금 보이지만, 공부하는 사람의 공부 중일 때 나오는 노트같네요. 참 멋있습니다. 따봉!

공쟝쟝 2024-05-23 23:50   좋아요 1 | URL
매의 눈! 종횡무진 제 노트 맞습니다. 이런 저런 공부는 사실 좀 지쳐요...... ㅜㅅㅜ 근데 신자유주의가 훈련시켜줘서 숙련된 자기계발러답게 자기계발이다 생각하고 걍 합니다 ㅋㅋㅋㅋㅋ

은오 2024-05-24 0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아 액상과당이랑 정제탄수화물 단거단거단거 너무 젛아요!!!!!!!!!! 사진 보자마자 혈당스파이크 처맞는 느낌에 행복 ㅋㅋㅋㅋㅋㅋㅋ
고닉 언니 책도...😭 저 지난주엔가 다읽었는데 넘 좋았다요 쟝님!!!!

공쟝쟝 2024-05-24 08:47   좋아요 2 | URL
단 거 먹으면 안된다는 유튜브 보고 단 거 더 땡기는 거 내 안의 죽음충동인가요? ㅋㅋㅋ 고닉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사랑이시며!! 은오님 이 책 흠결 정말 너무 짱짱 좋아요! 저도 동감되지만… 취준기간 긴 딸들이 일케 힘들었겠구나 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진짜 진짜 힘들겠구나 하면서 ….!! 그래도 내 안의 능력주의를 똑바로 보면 나한테 좀 관대해지니까! 추천합니다…!! 아직 안 읽었음 꼭 읽어요!! (간절🥹) 젠더는 섹슈얼리티, 계급 그리고 ‘나이’에 따라서 무지무지 다르게 경험된다는 거!!를 새삼느끼고 은오님 생각도 많이 났어요 ㅠㅠ

은오 2024-05-25 05:34   좋아요 3 | URL
헐... “이 책 읽으면서 니 생각 했어!!” 이거 반칙인데 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럼 안 읽을 수가 없자나요!!!!!! 알게써요 >_<♥️♥️

공쟝쟝 2024-05-26 14:14   좋아요 1 | URL
반칙 ㅋㅋㅋ 아앗!! 찐으로 이대녀 은오님 생각났다! 물럿거랏 요망한 팬더!!! ㅋㅋ

2024-05-25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 지음, 박경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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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슬러는 함께 한 모든 여성들이 백인이었음을 담담하게 시인하고 있으나, 내게 보이는 것은 이제는 미치거나 죽어버린 70년대의 그녀들 거의 모두가 글을 읽고 책을 썼다는 것. 




내가 읽었던 미국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책들 대부분은 자신을 치장하거나 누군가(특히 남성)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이해해 보고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스스로를 치열하게 분석한 작업들이었다.(읽으면서 징징대자.) 보이지 않는 억압을 기어코 보겠다며 긁어내는 모두에게 가혹한 문장이라, 어렵다기 보다는 아리지. 못 보는 위치에선 안 보임. 그런 글들이 내게 닿는다는 기적이 항상 감사하지만, 그래서 읽는 것이 매번 도전이었다.

너무 천재였고 너무 뜨거웠고 너무 똑똑했고 또 너무 정치적이었고 올바르지도 않았던 그녀들. 여성의 사랑을 질병이라고 썼지만, 이제는 내가 사랑하게 되어버린 슐리.(당연히 그녀 역시 사랑에 미친 여자였고. <성의 변증법>) 또 타인들이 아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여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전투에서 지지 말고, 절대 미치지 말라고 했던 체슬러.(미치기 직전에서 한 연구 맞는 듯. <여성과 광기>) 그때 내가 왜 그 관계를 떠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문장까지도 나는 왜 알 것 같은 건가.

지적 오만 어쩌고를 떠벌리는 나는. 내가 미친 걸까?라는 물음표보다는(실제로 어떨 때는 광인마즘) 나는 너무 천재이고 왕 똑똑해!라고 (근거없는) 주문을 걸 때야 간신히 이다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분명한 건 함께 똑똑해지자고 하는 여성들이 없었다면 가다 말았을 거란 거.

어떤 사람의 삶을 단시간에 섭취하는 일(독서)는 확실히 잔인한 데가 있는 취미인 것 같다. (취미라고 하기는 실례스러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난폭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하고 싶은 붕대 푼 다음 날 아침이다. 걍 다 덤벼라 싶은데 실은 꾸물꾸물. (혼남) 그래도 나는 나다. 그게 뭐냐고?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나는 나다. 나 라는 주어가 너무 많아서 거슬릴 정도로 나는 나다ㅋㅋㅋㅋ  안미쳣슴.



나는 지금 역사적인 영웅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들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해낸 일이지, 그들이 저질렀던 지독한 실수가 아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성차별적 가치들을 내면화한다. 하지만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런 가치들이 아니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자들은 여성 해방에 남자들만큼이나 큰 걸림돌이었다. 가령 우리는 너무나 근사하게 "자매애는 힘이 세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런 자매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서로에게 친절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여성이고 페미니스트라면 다르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했지만, 페미니스트라고해서 늘 서로를 존중과 연민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점차 깨닫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걸 1967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 P58

흔히 여자는 남자보다 연민이 많고 공격성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 2세대는 아주 거세게 싸웠다. 이투쟁을 본질주의에서 볼 것인가 사회구성주의에서 볼 것인가,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개혁인가 혁명인가, 음란물을 포르노그래피로 볼 것인가 검열할 것인가, 성매매는 성을파는 것인가 ‘성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여성의 권리인가, 여성을순진무구한 피해자로 볼 것인가 일의 행위자이자 책임 주체로 볼것인가, 적(남자)과 동침하는 여자가 정말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을 두고 싸웠다.
페미니스트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헐뜯거나 따돌렸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 대부분은 지독하고 노골적인 싸움에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모든 갈등을 정치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어 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때로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했다. - P59

이제야 우리는 *모든 여성, 즉 백인 여성이든 다른 인종의 여성이든, 인종 차별을 내면화해 왔음을 이해한다. 또한 여성 역시 성차별주의자들이며 호모포비아라는 사실도. 그러나 성차별 반대 입장을 계속 고수하려면 매일 의식적으로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완전한 극복은 없으리라는 사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래전에 나는 모든 여성은 친절하고 다정하고 용감하며, 공격을 받아도 우아하게 대응하고, 엄마의 자질을 가진 존재라고믿었다. 또 모든 남성이 여성들의 압제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소수 페미니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듯, 이는사실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여자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잔인함과 질투심을 가졌음과 동시에 관대함과 연민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쟁할 수도, 협력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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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4-28 15: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붕대 푼 거 축하해요!!

공쟝쟝 2024-05-02 08:12   좋아요 2 | URL
아직은 절뚝이지만 오늘은 상태 매우 좋음 입니다 ♥️♥️♥️

단발머리 2024-05-02 1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엄청 좋아하고, 두 번 읽었는데 읽을 때 하도 놀라서 중요한 사건 많이 까먹었어요. (이게 인과관계가 성립되나요? ㅋㅋㅋㅋ)
나중에 꼭! 다시 읽을 책으로 꼽아두는 책입니다.
‘자매애는 없다‘와 ‘여자는, 여자에게 너무 많이 바란다‘가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요지인데, 그 잔혹한 시대에 서로를 의지했던, 의지할 이가 서로밖에 없었던 그네들의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가, 현재까지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모순을 깨달았을 때, 직면했을 때, 미치지 않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타협점을 찾아내는 여정, 포기든 혁명이든, 설득이든 합리화든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찾는 과정 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요. 그네들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 미친 세상을.... 잘도 살아가고 있다니. 이런순, 하면서요.

공쟝쟝 2024-05-02 08:16   좋아요 1 | URL
아, 말씀주신 책의 요지가 그러고보니 정확하네요. 이 책을 무협지처럼 읽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했던 나의 페미영웅들! 그들의 인간적이며 비열한 모습까지… 실망없이, 실망없이, 실망없이….!!! (그래도 로빈 모건은 용서가 안된다 ㅠㅠ) 저는 역시 슐리가 좋습니다!!!! 슐리 짱 😭😭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 혹은 존경의 대상은 아니니까요! ㅋㅋ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앳(at) 시리즈 3
신성아 지음 / 마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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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의 잘한 일:
이 책을 이웃의 글에서 발견한 일.
책을 공유한 문장에 몸을 떨고 당장 도서관에 가서 펴서 읽은 일.
그리고 이 책을 돌보면서, 초조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읽는(었던) 이들에게 선물한 일.
우리에겐 내 삶을 억압하는 말들을 찢어낼, 삶과 일상과 사유에서 건져올린, 더 많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필요해요. 

언니, 안 읽고 뭐해요? 안 쓰고 뭐해요?



“(100) 그는 알아야 했다. 그를 비롯해 이 시대 남자들의 돌봄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는 천편일률적이고, 현실을 외면한 채 관념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키치다. 소도시 변두리에 느닷없이 들어선, 먼 나라의 르네상스 양식을 조야하게 흉내 낸 왕궁 예식장 같은 키치다. 책에서 본 성평등을 흉내 내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인간해방을 추종하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가부장제인 가짜 성곽이다. 또한 그것은 밀란 쿤데라의 키치, 똥을 부정하다 못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태도로서의 키치다. 돌봄의 현장은 어디나 처절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똥기저귀처럼 추하다. 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독박 육아의 현실을 부정하고 말뿐인 가사분담, 공동육아를 앞세우며 좋은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행세하려는 허위가 바로 키치다. 그들은 돌봄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끝내 모른다. 이 키치적 돌봄은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라는 키치의 특성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모성이 타인이 만든 환상이라면 부성은 스스로 만든 키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여전히 이해하고 싶다. 용서나 체념은 답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남편에 비해 부당할 정도로 과도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그가 잘한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남자가 자행하는 ‘남녀차별’을 철폐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 때마다 스스럼없이 기대온 바로 그 어깨에 언제쯤 정치적 잣대도 나란히 드리울 수 있을까? 아포리아다.”


그는 알아야 했다. 그를 비롯해 이 시대 남자들의 돌봄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그들이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는 천편일률적이고, 현실을 외면한 채 관념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은 키치다. 소도시 변두리에 느닷없이 들어선, 먼 나라의 르네상스 양식을 조야하게 흉내 낸 왕궁 예식장 같은 키치다. 책에서 본 성평등을 흉내 내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인간해방을 추종하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가부장제인 가짜 성곽이다. 또한 그것은 밀란 쿤데라의 키치, 똥을 부정하다 못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태도로서의 키치다. 돌봄의 현장은 어디나 처절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똥기저귀처럼 추하다. 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 P100

모성이 타인이 만든 환상이라면 부성은 스스로 만든 키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여전히 이해하고 싶다. 용서나 체념은 답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남편에 비해 부당할 정도로 과도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또 그가 잘한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남자가 자행하는 ‘남녀차별’을 철폐할 수 있을까? 내가 힘들 때마다 스스럼없이 기대온 바로 그 어깨에 언제쯤 정치적 잣대도 나란히 드리울 수 있을까? 아포리아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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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0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맹이 없는 돌봄이라도, 그런 돌봄의 시늉이라도 내는 남성이라도,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공쟝쟝 2024-03-21 10:29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곰곰 생각해보아요. 시늉과 위악과 선의와 의도. 구조와 언어. ☺️🥹

자목련 2024-03-20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출연한 다큐를 보고 책이 궁금했는데 쟝쟝 님은 바로 읽으시네요. 기민하게 실천하는 모습!

공쟝쟝 2024-03-21 10:30   좋아요 1 | URL
궁금하게 많은데 그걸 모참는 조급한 사람을 기민하다 해주시니 몸 둘 바!!ㅋㅋㅋ
 

-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참고 살아야지. 여기 말고 어딜 가겠어. 너 땜에 산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물론 할머니는 대체로 내게는 천사셨다) 관절 마디마디가 부어오르는 병에 걸리도록 같이 사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뎠는데 엄마가 우리에게 했던 아주 많은 조언의 말이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이었다는 걸 이젠 안다. 그 말은 딸들에게 겸손의 미덕, 자기 한계 짓기, 엄마 때문에 살아야 할 것 같은 저주로 작용해서.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낮은 자존감과 알 수 없는 분노에 허덕였다. 


페미니즘이 필요했다.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처음엔 엄마의 노동(돌봄)은 안 보였고 나를 억압한 말들이 작용하는 지점들이 보였다. 엄마라는 제도에 묶인 엄마의 말들. 그러니까 언어. 그 자신을 살리기 위해 타이르는 말이 자신을 죽이는 말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를 살리는 동시에 죽이기도 한다. 


일기 너무 쓰면 자의식이 오만해져서 (주체가 되어버려서) 안되니까 기록 남기지 말고 그냥 물 흐르듯이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서양 철학의 한계 어쩌고 글로 먹고사는 인문학을 한다는 남자들이 실은 자기 삶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한테 하던 말. 들은 삶에 언어가 부족해서 지식인(가끔은 스님…)의 고견을 들으러 온 여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을까. 여성으로 호명하기도 전에 미리 엄마로 호명하고, 부르는 자신의 위치는 탐색하지 않는 채로 들어주는 대상을 넘겨짚음이 역력한(그때는 몰랐다) 마이크의 말들. 나는 또 불리는 대로 불렸고 유명인의 말을 유명해서 탐욕스럽게 섭취했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공부를 독려하지 않았다. 그건 지들에게도 힘든 거니까. 아니, 엄마가 될 사람은 엄마를 공부해야지. 오은영 선생님께로 떠밀려진 것 같기도. 여튼 내가 쓰지 않아도 될 까닭은 너무 많았고 넘쳤다.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까지는.



서른 이후의 일기 쓰기. 아니 페미니즘.


가끔, 글을 쓰는 까닭을 거창하게도 살기 위해서라고 썼던 것은. 가부장제라는 판타지, 아버지라는 보호막이 찢어져 버린 imf 이후를… 시어머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엄마의 말들만으로 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들이. 다른 대타자의 말들이 필요했다. 평범한 한국 여성에게 쏟아지는 아주 많은 무거운 중력을 지닌 말들은 돌처럼 날아와서 나를 퍽퍽치고 휘청이게 하였다.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일기를 써야 했다. 그 인문학자의 말처럼 주체가 되기 위해서 자의식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칫하면, 내가 나를 돌보는 말이 없으면. 타인의 말들에 자기를 검열하다가 뼈를 말리면서도 베이글녀가 돼야 하고. 너무 똑똑하면 안 되지만 개념은 장착해야 했던 20대를 지나. 


남부럽지 않은데 취직은 하되 특정 나이 대부터는 일하지 않기를 독려 받으며… 혹… 안정적 직장이라면 워킹맘이라는 이중 노동을 감당하면서도 자책하고, 전업주부라는 사실로는 기생충 취급을 받고, 노처녀라서 히스테리인가 봐. 시집가 시집이나 가. 좋은 남자 만나야지. 사랑 못 받는 여자들은. 그런 너를 누가 사랑해 주니. 여자는 여자는 여자는…. 그것도 아니면 돈 성공 돈 성공.


<서른 이후의 일기장들. 많이도 썼다.>


나를 말에 맞게 더 바꿨다간 흉측한 히드라가 될 것 같아서. 공부. 모든 말들을 어쩌면 30년 치를 한꺼번에 급속하게 찢어내는 과정에서 내 삶은 유달리 심각해졌고 결과적으로는 남들이 뭐라든 무서울 게 별로 없다. 120살까지 80년. 이제는 공처럼 날아오는 말들을 라켓으로 팡팡 튕겨내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 다만 억압이 여성 하나만은 아닌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성별은 정말 거대하고도 기본적인 억압이다. 여남 모두에게.) 겹겹이 싸인 다른 담론들. 


나는 나를 잘 보호하고, 나의 곁을 이루는 나와 손잡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분석하고 사유하고 적합한 저항의 말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는 나름의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저 말들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셀프 자아 규정을 해야겠다 / 주체가 되어야 합니까? 해체되기 위해서? / 주체가 되고자 하는 나는 본질주의자인가? / 정체성의 정치는 불가능 한가? 


라고 좌충우돌 물었던 질문들을 지나. 


1월에는 책으로 라캉과 바디우를 만났고. 사건으로서의 주체에 대해 힌트를 얻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기를 쓰지 말라는 인문학자들의 말은 (부분적으로) 맞다. 모두를 끊임없이 소비자로 호명하는 자아 중독의 시절, 근대적 의미의 주체는 인류세의 원흉이며 해체되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감히 쓰고 싶다. 재현의 윤리, 잘 모르지만 그것도 탐사해가면서 읽고 쓰면서 내게 맞는 말들을 찾는 재미, 쾌락. 내 공부. 인생은 생각보다 더 길고. 이 재미를 멈출 수는 없으니. 찬찬히 더듬더듬 읽는 나는 진지하고 쓰는 나는 좀 허심해지자고 같이 읽고 쓰고자 하는 친구들과 말했다. 


지금의 최선. 나의 적정선.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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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3-20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지 않아도 될 그 많고 많은 이유를 넘고 넘어서 이제 읽는 인간, 쓰는 인간이 되신 거 축하드려요.
여성이라는 하나의 억압만 존재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성별억압의 그 음흉하고 끈질김을 우리 같이 파헤쳐봐요.
주체와 해체와 전략적 본질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나는 시간이 많아요…. 🤔🤪

공쟝쟝 2024-03-21 02:27   좋아요 1 | URL
분명 2월에는 읽고 쓰기 따위 … 이러면서 돈이나 벌자고 하던 나는…. 막상 못하게 되자 너무 그리워졌고… 청개구리 ㅋㅋ 저도 시간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