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이즈 섹스. 이 책은 섹스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최신(?)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 책이며, 나에게 이 책은 정확히 ‘페미니즘’ 책이다. ‘젠더’를 만나고 난 뒤 어딘가 시큰둥하게 되어버렸던 내 존재의 어떤 부분 (이 글에서는 ‘그것’이라고 임의로 설정해두겠다)에 ‘성차’라는 개념을 양념처럼 더하고 나니, 뭔가가 짭쪼름 맛이 나서 재밌어졌고, 더 집중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그게 무엇인지 앞으로 살아보는 걸로.

이해해 보기 위해 썼던 개념 난무한 문장들은 아쉽지만 다 지워버리고, 읽는 사람들의 재미와 호기심을 위해서 썰 풀기부터 시작한다.


1. 왓 이즈 섹스

오랜 S리스 상태에서 해방되어 연애와 사랑이 주는 격렬 주파수에 뿅 빠져버린 이웃님이 독서광 아니랄까 봐 “현실의 섹스, 그것은 전자책과 종이책이 주는 것의 차이랄까요”라는 댓글들을 다시며 나를 부럽게 하고 말았는데. 우우와.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이래?!?

그런데 *그전에* 왜어왜우어 기혼녀도 이혼녀도 비혼녀도 왜 리스인가요? (풍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나이 들면 못하는 건가요…? 😩 아, 결국 체력과 혈액순환… 그거시 젊음의 특권인가요? ㅠㅠ

풍족한 사람들은 풍족해서 숨기고, 없는 사람들은 없어서 숨기느라… 누구도 알 수 없어진 이 시대의 ‘섹스’. 우리 모두는 섹스로 태어난 존재이지만, 현시점 대한민국의 출생률을 보라. 드러워서 안하고 만다! ‘그것’은 매력 자원과 상호 노동(?)의 의지를 지닌 건강한 신체를 지닌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유니콘’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인가? 결핍은 과잉을 낳고… 그니까 부족해서, 없어서, 안 해서 이러는 거야? 정말로?!?!…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섹스는 그렇게 만인의 대상a가 되어 무더기의 이미지와 자본과 함께 유포되는 것이며… 쪽으로는 가지 말자. 자본주의 싫어하면 안 된다. 나는 원한다. 풍요와 부를. 끌어당김의 법칙이여, 방금 한 자본주의 비판은 취소 취소입니다. 나는 나는 부자가 될 거얏!

어디 가. 다시 돌아와. 현실의 섹스… 거기에 대해서 쓰자.



안 하고 살면 편해. 내 삶은 ‘그것’ 아니라도 문제투성이니까. 나는 지쳤다고. 너의 생물학적 한가함에 비하면 어딘가 조급해지는 나의 가임기의 시간을 견주며. 이것저것 안 따지기에는 과계몽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만약 연애를 한다고 치자. 내가 만날 수 있는 또래 남자 사람들 중에 결혼 생각 없이 연애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이미 결혼한 사람 빼고?

(연애)관계를 위한 관계에(결국 이성애가 주는 건 섹스 아니냐며, 그것만 지우면 컴팩트하다고) 기운 쓰고 싶은 생각이 없노라. 건조하게 발라낸 생선 가시 같은 말에 친구 역시 뾰족뾰족 말했었다. 님, 참 잘났네요. (물론 섹스‘만’을 위한 관계도 용어도 있지만, 당시 나는 리얼 참 트루 컨츄리라서… 언감생심ㅋㅋㅋ)

좀 접어주면 됐을 텐데 취했으니 할 말은 해야 했다.

“잘날 수 있을 때 좀 잘나면 안 되냐? 앞으론 계속 잘난 척 못할걸? 난, 애매하게 젊거든.

돌이켜보니 정말로 오만한 말이었다. 어떤 것을 빼버리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나를 조금 변호하자면, 연애가 곧 결혼으로 미끄러지게 되는 나이의 애매함은 매번 심판대처럼 다가왔고, 나는 의지대로 삶을 통제하고 싶었다. (물론 그래봤자 통제가 안된다. 그래서 더 애썼다.) 애초에 심판대에 서지 않으면 된다. 관계를 위한 관계, 전면 봉쇄. 그날 대화는 사랑 찾아 모여든다는 중년들의 자만추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고… 나는 지금보다 더 젊었기 때문에 남 일이라 여겼다. 구질구질하기 싫으면 돈을 더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닐까?라고 조금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게 맞나?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가져와보자.

“(51)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고통이 두려워 고통을 피해가려고, 적당히 사랑하고 음악이나 정치 참여나 정원 딸린 집 등의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한다는 것이, 섹스 파트너를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보고 여럿 둔다는 것이 이해된다. 그렇긴 해도,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다른 고통에 비해 내 고통이 비이성적이고 심지어 물의를 일으킨다고 여겨졌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하나의 사치로 여겨졌더라도, 그 고통이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 더 좋았다.

심지어, 학업과 악착스러운 노동, 결혼, 출산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갚아야 할 나의 몫을 다 지불하고 난 뒤, 드디어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게 된 듯했다.”

- <집착>, 아니 에르노


마흔일곱 살의 아니.

내가 사회에 모든 빚을 갚고(물론, 결혼과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 그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지지 ‘못했다’ 정도로 언제나 이 질문에서 빠져나간다…)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그녀처럼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언제나 삶은 예측하지 못한 기반에서 문제의 문제를 만들어내니까. (다만, 이제 나에겐 그걸 끈질기게 언어화하고자 한 이들의 글씨들이 참조점 처럼 생겨났다.😬 다행스럽다.)

섹스… 그건 내가 포기한 건데?

선택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쾌락에 딸려오는 그 많은 관계들이 주는 고통과 복잡함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는.

2/3 정도를 포함하는 진술이라고 고백한다.

4B가 돼버린 채로 살다 보니 그 상태가 주는 경제적임에 안착한 케이스인 나는… 연애 시장 어쩌면 결혼시장(그렇다, 내게 그것은 시장이다) 진입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부정은 시장 안에서 내 스펙이 경쟁력 없다는 조금 차거운 결론을 내렸기에 가능한 좁은 틈의 평안이기도 했다. 세상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만 불평했다. 그게 제일 편했다.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면 돼. 근지러운 노래와 로맨스를 끊었고 사랑 사랑 애절한 것을 촌스럽다고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내가 없다고. 내게 없다고. 남들에게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남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나를 계속해서 침범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섹스 역시 그렇다는 이야기다. 왓. 이즈. 섹스. 함께 읽은 친구는 what이라고 물었다. 나는 is를 가져온다. 그것은 ‘어떤 상태로 존재’ 하는가.



2. 유니콘과 섹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실재’를 말한다. 성이 곧 실재다. 존재의 틈에서 비집고 나오는 결여. 상징적 질서 안에서 의미를 완성하는 것의 불가능. 언어가 가닿는 실패, 그것으로서의 성. 비어있지만 있기에 의미가 계속 생산되어 버리는. 예시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전자책 읽기와 실물 책 읽기 사이에서 상실되는 쾌감 같은 것. 행위에만 초점을 두고 ‘말’한다면... 두 가지는 다 ‘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사이에는 뭐가 다르지? 뭐가 달라?

내 생각에 그건 ‘있다’는 것과 함께 붙어서 나타나기에 다르다. ‘있음과 연루된 설명할 수 없음’

책에서는 유니콘의 반대항을 예로 든다. 좀 길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46) 성이라는 역설적 지위는 말하자면 유니콘의 지위와 반대다: 성은, [유니콘처럼] 그것이 경험적으로 발견된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으로 어디에서든 발견될 수 없는 어떤 존재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경험적으로 성이 존재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우리가 그것을 꽤 잘 식별하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성의 이데아, 성의 본질이다. 우리가 이것이 “성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알아본 것일까? … 성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 우리가 — 인간의 영역에서 — 어떤 것을 마주치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이 “성과 관련 있다"라고 꽤 힘주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식은 반어적인 것이 아니다. Il n’y a de sexe que de ce qui cloche: 오직 잘 작동하지 않는 어떤 것에만 성은 존재한다.”

이렇게 ‘성’은 인간 존재의 결여로서의 최종 심급에 위치하게 되어버린다. 라캉. 변퇴. 누가 프로이트 처돌이 아니랄까봐. 나는 설득되면 되는 거였다. 이 문단에서 괴로울 것은 없다. 내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세상의 원리가 그러하다는 데,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면, 언제나 나의 과계몽. 이게 문제가 되어버린다.

왜냐면 푸코 이후 한동안 나에게 섹스는 권력의 원리였기 때문이다.

글로만 배운 섹스. 입과 귀로 결론 내려버린 섹스. 섹스를 제거해버린 섹스. (인정하기 싫은데…) 신경증자의 섹스 🫠 ㅋㅋㅋㅋㅋ

있는 섹스를 없는 유니콘으로 만들고 꽝꽝 박아버린 섹스에 관한 문장을 좀 서글퍼하면서 가져와보자. 머머리 논리왕ㅋㅋㅋㅋㅋ 미셸 푸코는 본인의 저서 ⟪성의 역사 1권 : 지식의 의지⟫에서 이런 문장으로 나를 항복시킨 바 있다.



“(16) (성과 관련하여) 나는 이와 같은 담론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탱하는 의지와 이것을 옹호하는 전략적 의도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그토록 커다랑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19) 따라서 성을 긍정하는가 부정하는가, 금기를 내세우는가 허용을 명확히 표명하는가, 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가 성의 효력을 부인하는가, 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을 억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성에 관해 말한다는 사실, 성에 관해 말하는 사람, 성에 관해 말하는 장소와 관점, 성에 관해 말하기를 부추기고 말한 내용을 수집하고 유포시키는 여러 제도, 요컨대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이 요점이다. 또한 어떤 형태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담론을 따라 권력이 가장 미묘하고 가장 개인적인 행동에까지 이르는가, 어떤 노정을 통해 권력이 희귀하거나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욕망의 형태에 도달하는가, 어떻게 권력이 일상의 쾌락에 침투하여 일상의 쾌락을 통제하는가 —거부, 봉쇄, 자격 박탈뿐만 아니라 선동과 강화일 수도 있는 결과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요컨대 ‘권력의 다형적 기술’을 아는 것이 중요한 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뭐 투항은 완전 백기🏳️🏳️였기에,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주디스 버틀러는 당연한 스텝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주디스 버틀러에 정박 중이다. (솔깃하긴 하지만 아직 신유물론으로 건너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데… 버틀러에게서 건질 것이 더 많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그렇다.)

그 모든 섹스 전쟁을 종식시켜 버리고, 대문자 여성을 해체해 버렸으며, 페미니즘을 넘어서는 페미니즘을 열어버린, 어쩐지 2010년대의 한국에서는 토착화(?)에 실패하여 ‘본질주의=반지성주의’ 공식을 만들어버린 듯도 한. 랟펨과 일베모두 싫어하는 궁극의 문장. 바로.

3.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 -주디스 버틀러-


섹스(생물학적 성)는 언제나 젠더(사회적 성)였다. 그렇다. 이 문장을 만나고부터 나 역시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 어쩌면 이 문장을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순간에 난 섹스(그 섹스 맞닼ㅋㅋㅋ)와 내적 결별…을 한 것일지도 ㅋㅋㅋ


이후로 어떤 질문들은 가뿐히 지워진 것 같다. 인식이 어려웠지 인식 후에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차라리 어떤 해방으로 기능했고, 버틀러의 사고방식은 이내 익숙해졌다.


섹스가 젠더가 되는 것은 해방이다. 누가 자연스러운 거죠. 할 때, 그게 왜 자연스러운 거죠?라고 마음속으로 반문하면 되었다. 하물며 섹스도 젠더인데 모든 것을 담론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단 한 번의 숙고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생각해 봤다’는 것만으로 종종 지적인 우월함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나 우월감은 열등감의 요인이다. 열등감도 따라서 심해졌다.)

내 이미지를 위해 좀 더 쓰면… 와따시의 콘츄리함.에서 비롯된 어떤 진정성.도 있었다.

나에게 말하고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아서… 그 문장을 삶에 들인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수행이란… 조금은 다른 젠더…를 만들어보는 거였다. (규범을 보는 눈을 갖추고, 그 규범을 연기하면서도 조금씩 위반하기. 내 표현으로 발연기. 블랙 코미디 같은 것.) 어느덧 연애도 사랑도 빤히 반복하는 각본처럼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섹스는 남의 일이 되었고…

인식과 실천이 주는 분열이 없고, 이대로 나는 돈만 벌면 되었지만… 어쩐지 막상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돈 버는 것보다, 책 읽는 것에 습관이 들어서 거기에 몰빵을 하고 말았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억압된ㅋㅋㅋ 성충동으로 환원시킨다면… 더 이상 꽂을 곳이 없이 터져가는 나의 책장은 극심한 욕구불만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섹스를 읽지 말고 섹스를 해! 제발 좀! 라고 외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상대가 있어야 나오는 도파민과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도파민은 역시 그 경제적임과 효율성 측면에서… 세로토닌… 뇌과학까지 가져와서 비섹스 옹호할꺼면 꺼지라고 외치는 친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내면에서 화성악처럼 울려 퍼지는 그녀들의 목소리들을 훠이훠이 물리치며…

도달한 나의 정말 순수한 지적(성적ㅋㅋ) 호기심은 결국 이 책으로 현현하여

나를 ‘실재’에 가닿게 하고 말았다.고 하는데.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ㅋㅋㅋㅋ 실제로 나는 실재를 억압한 흔적을 3년 전 버틀러 공부에서 찾고 말았다. 실재는 없다고 하는 버틀러~ㅋㅋ)

“(76) 조운 콥젝 : 젠더라는 *중성화*된 범주가 선호되면서 성차라는 정신분석 범주가 의심스럽게 여겨지고 널리 버림받게 된 것은 이 시대[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 이 용어가 젠더에 의해 대체되었을 때 누락된 것이 바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차이기 때문이다. 젠더 이론은 하나의 주요한 업적을 수행했다. 즉 그것은 성에서 그 성을 제거했던 것이다. 젠더 이론가들은 계속해서 성적 실천을 말하면서도, 그들은 성이나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질문하기를 멈췄다.

즉 성차의 개념에서 젠더의 개념으로 넘어가면서… ‘실재’(존재 속 균열…)가 빠져버렸다. 즉. ‘성’이 빠져버렸다. 이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뼈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나는. 나는. 내가 그랬으니까!!!!!


그날부터 나의 독서는 다시 종횡무진 하게 되어 결국 젠더와 성차의 존재 속 균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아침일찍 일어나 열심히 공부하며 노동하며 또 갓생을 살아버리고… 그래 성급히 결론 내지 말자. 푸코랑 라캉… 버틀러랑 이리가레… 차분히 같이 읽도록 하자… (메이야수랑 들뢰즈도....?) 정도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요점은 이것이다.

“(81)라캉의 입장이 위에서 기술된 수행적 존재론과는 환원 불가능하게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다. 정확히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할 때 라캉이 주장하는 실재의 지위는 무엇인가?”​

“(86)인간의 섹슈얼리티는 그 빠져버린 기표의 대체기호/플레이스홀더이다. 그것은 엉망이지만 (쓰여지기)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성적 관계를 사실상 보충하는 것이 이 엉망이다. ... 섹슈얼리티는 이러한 간극을 엉망으로 봉합하는 것이다."

“(87)우리가 이제 이 모든 것이 존재론 일반, 더욱 특수하게는 동시대 젠더 연구의 수행적 존재론에 관하여 무엇을 함축하는가의 문제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음의 중대한 함축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즉 *라캉은 존재실재 사이의 차이를 확립해야 했다*. 실재는 존재나 기체가 아니라 존재의 교착상태, 그것의 불가능성의 지점이다. 그것은 존재와 분리할 수는 없으나, 존재는 아니다. 정신분석에게는 언어(또는 담론)와 독립해 있는 어떤 존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때문에 *정신분석이 자주 동시대 유명론의 형태들과 양립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존재는 상징적이다. 즉 그것은 타자 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중대한 추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상징계 안에는 오직 존재만 있다 — 실재가 있다는 것만 제외하고. 실재는 “있다.”그러나 이 실재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이외의 무언가가 아니고, 존재의 공간의 발작이자 장애물이다. 그것은 단지 (상징적) 존재에 내속한 모순으로서만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이 성과 실재를 연결할 때 관건이 되는 것이다.”


4. 성차라는 개념(은 투비컨티뉴드)

원래 내가 끝까지 붙잡고 쓰려고 했던 글은 *“성”에서 “젠더”로 옮겨 갔을 때 상실된 것* 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잃은 것 같지는 않고, 나 스스로로 변화해온 느낌이다. 성에서 젠더로 옮겨온 후 그랬다. 그러나 젠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한다. ‘그것’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 있고 없고 가 아니라 ‘그것’이 내게는 유의미한 의미를 생산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성차와 젠더에 관한 논쟁은 페미니즘 안에서 꽤 오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조금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 긴장이 페미니즘을 빼어난 공부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213)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라캉의 성차 개념을 젠더 개념보다 더 선호하는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특히 젠더 개념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 및 성적 관계가 쉽게 변화될 수 있다고 잘못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라캉은 생물학적 특성이 남성과 여성의 성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관계가 남성 지배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다. 라캉의 경우 생물학적 특성이 아닌 언어가 남성됨과 여성됨의 의미를 정한다.

그렇지만 라캉에게서 남성됨과 여성됨의 기본 의미가 단지 변화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 의미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남성 성기에 특권을 부여하고 여성을 수동적인 성적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지위를 더 낫게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에 언어가 이렇게 남성과 여성의 의미를 고정시키는 라캉의 견해를 그들이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지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들이 라캉의 생각을 전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라캉의 성차 개념을 수정하여 왜 여성의 열등한 사회적·성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지 설명하면서도 이러한 지위가 결코 향상될 수 없다고 [잘못] 시사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이리가레가 바로 이 방식으로 라캉의 개념을 수정한다.* 그녀는 모든 언어가 “팔루스 중심적인” 성차 해석을 구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라캉의 추론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 <페미니즘 철학>, 앨리슨 스톤

“(266)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에서 버틀러는 신체와 쾌락이 전적으로 자연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의 질료(대문자 N의 자연)와 그것을 이후에 물질화하는 대문자 C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통해 재창조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그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빌어 *팔루스라는 남성적 특권의 상징이 사실 남근이라는 신체기관이 아니라 우연적인 리비도 투자의 결과로 인지되며, 신체로 인식되는 자아에는 팔루스와 남근의 불일치로 인해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재인식되는 의미화 연쇄가 작동*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상징계의 법인 언어가 내리는 금지와 명령에 대한 거부와 폐제를 통해 주체가 등장한다는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육체적/자연적/여성적인 것을 언어에 선행하는 결여로 환원시키는 입장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체로서의 주체를 구성하는 틀거리인 상징계/언어/문화와 상상계/전언어/자연의 이분법을 반박하고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재호명되고 재생산되는 언어의 불안정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데리다의 반복 가능성 개념을 활용한다.”<주디스 버틀러> 비키커비


성차와 젠더에 관한 조금 더 매끄러운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성차도 젠더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라캉의 성차 공식에 관한 페이퍼는 단발머리님 글에 단 댓글로 일단은 갈음한다ㅋ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해서, 여성의 주이상스에 대해서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974275

나는 삶이 아직 나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아

이해 불가능한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둔탁한 개념들을 접착 메모지에 써 붙여 놓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가 보기로 한다.

이 모든 것은

죽.어.야.끝.난.다.

5. 남은 질문들. 남은 공부들. 남은 농담들.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포함 권력은 ‘비-관계’를 전유한 채로 작동한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을 언어화하는 작업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을 드러내는 글쓰기, 그것을 보려고 하는 습관, 새로운 기표.

“(260) 쓰이지 않기를 중단stops not being written”하는 그것을 라캉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세상을 사랑하는 걸까. 그러나 “‘쓰이지 않기를 중단하기’라는 기반 위에서 연명하는 모든 사랑은, 이 부정을 다른 부정, ‘즉 쓰이기를 중단하지 않기doesn’t stop being written’, 멈추지 않기로 변경시키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어느 지점에서 그만둬야 멋진 이별이 되는 것인지. 사랑의 좋은 부분만 취하게 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정정하겠다. 좋은 부분만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사랑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쓰고 또 읽을 때. 정말로 사랑을 하는 것 만 같으니까. 아무런 대가가 없는. 어떤 이득도 없는. 비이성적인 충동. 집중. 내일의 쓰기를 위한 오늘의 남겨 놓기.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했다.


이 책을 읽거나 내 글(자기고백)은 읽지 않아도 (좀 서운하겠지만?) 되지만, 아래의 성과 실재에 관한 주판치치의 농담은 읽어보시길. 분명 당신은 나처럼 웃을 것이다. (웃기지 않았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나만 웃긴 걸로.) 그녀는 슬라보예 지젝이 무려 ‘질투하는’ 친구이시다.

#아담의배꼽 구글링 ㅋㅋ 12세기 말, 성 마르코 성당 소재.


“(274)인류 최초의 커플에게 배꼽을 그려 넣을 것인가, 배꼽을 그려 넣으면 안 되는가? 아담은 생기와 흙으로 만들어졌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여성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어찌 배꼽이 있으랴? 그러나 그들은 배꼽 없이는 이상해 보였다. 그들은 최초의 인간이었고 그들은 (다른) 인간들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나 인간인 그들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신 또한 배꼽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개념적 난국들을 만든다... (이것은 고스가 화석의 지질학적 연대와 창세기의 신의 창조를 화해시키려고 했을 때 직면했던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의 답은, 신이 아담을 창조했을 때, 그는 또한 배꼽도 창조했다는 것, 다시 말해 그의 “선조성”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직면한 문제는 꽤 실제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무화과 나뭇잎을 좀 더 크게 그려 넣어서 그 문제를 회피했다. 그들은 성기만 가린 것이 아니라 아랫배도 가린 것이다.

무화과 나뭇잎을 이렇게 크게 그려 넣어서 성기 그 이상을 가리려고 한 것은,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완벽한 삽화가 아닐까?

다시 말해, “성적인 것”을 덮으면 우리는 항상 또한 —그리고 아마도 일차적으로?— 다른 것도 덮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없지만 심오한 형이상학의 문제들과 모호성들을 떠오르게 하는 어떤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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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06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애도 결혼도 시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일단 단순하게 말해서 연애도 결혼도 교환관계가 되는 순간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라고 생각....이 교환이 잦아지면 쟝이 말한 것처럼 연애도 사랑도 결혼은 더 물론... 반복되는 각본이 되는 게 아닌지...) 그 지점을 안 넘기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그만이여.. 쟝이 책에 몰빵하는 이유는 책을 사랑하는데, 책과는 연애 및 결혼에서 느끼기 쉬운 드러운 교환관계가 성립하지 않아서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상 지퍼 터지는 섹스가 아니라 책장 터지는 (책과의) 섹스 중인 쟝에게 유니콘 올림


그나저나 푸코 인용 구절에서 오타 있음요.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그토록 커다랑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커다랑 열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1-06 11:53   좋아요 2 | URL
으아아 저 커다랑에 나의 커다란 사랑이 보이나요?!

잠자냥 맞아요, 저는 교환관계… 거기서 ‘돌봄’을 구출해 낼 거예요(포부도 크다 ㅋㅋㅋ) 그치만 제가 경제적 이해 관계를 어떤 심급 중의 하나로 보는 건 맞아요. 제도로서의 결혼은… 그런 부분이 분명 있죠. 그게 다는 아닌 것도 맞고요!

잠자냥은 혼인하지 않았으니 유니콘이 맞는 거 같고요! 그쪽은 리스 없나요? 📣📣 잠자냥이 귀찮아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미다 ㅋㅋㅋㅋ

저는 안하고 싶지는 않고요, 못하는 겁니다 ㅋㅋㅋ 그리고 추구하려면 일단 집을 찢고 나가야하는데…. 🙄

단발머리 2024-11-06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섹스리스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섹스와 섹슈얼리티, 젠더에 대한 생각으로 승화시킨 쟝님의 노고에 박수를 드립니다.

저 역시, 아니 에르노가 고백했던 그 나이대에 진입해가고 있는 중인데(아니, 이미 진입했던가요?ㅋㅋㅋ) 그녀의 열정과 정념이야말로 저의 탐구 대상입니다.

아담, 이브의 배꼽과 선조성에 대한 이야기 너무 재미있었어요. 성기를 가리려다가 배꼽도 가려버리는 ㅋㅋㅋㅋㅋ저는 쟝님 글 읽다보니 성에 대한 금기가 그래서 중요한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구요. 섹스와 젠더에 대한 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 번 들었으니까, 다음에 들을 때는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덕분에 나도 버틀러 좀 읽어보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키지 않은 귀한 공부를 가열차게 불태워온 쟝님의 섹스 에너지에 다시 한 번 존경을 표합니다. 메롱!

공쟝쟝 2024-11-06 11:59   좋아요 1 | URL
함께 읽어주셔서 다행예여. 성차이론이 본질주의에 정박해서도 안되지만 젠더가 현실의 섹스를 간과하며 말장난처럼 (혹은 입고 벗을 수 있는 어떤 것처럼) 오해되는 현상도 경계는 해야할 거 같아요.

정념에 대해서는 좀 더 가보도록 하죠. 어떤 결여가 되려 다형도착을 생산해낸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게 많았는데요, 일단은 이달에는 이달의 라캉을 사사키와 읽도록 하겠습니다! 🤗

청아 2024-11-06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C로 정독예정!🙄😘

공쟝쟝 2024-11-06 12:57   좋아요 1 | URL
미미님의 적절한 예시가 글의 윤활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수이 2024-11-06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할 말 많겠구만유. 어려운 책 읽고 이렇게 이해하기 편하게 만들어주시니 좋네요. 저는 아직 완독 못했습니다. 역시 저와는 다른 지점들을 예리하게 캐치하시는 당신, 11월 즐기시기를.

공쟝쟝 2024-11-06 15:19   좋아요 0 | URL
왜 왜 왜 11월이 또 6일인 걸까요?!! 좋은 하늘을 즐겨야겠습니다 ^^

청아 2024-11-06 18:21   좋아요 1 | URL
일터에서 당당하게 정독했는데 이번 글은 너무 어려워 쟝쟝님은 저 먼 곳에 이미 저 위쪽으로 가버렸어...
‘이해하기 편하게‘라니 수이님도 ... 나 일단 <괴물들>부터 완독 하겠어요^^

공쟝쟝 2024-11-06 18:57   좋아요 1 | URL
청아님... 먄먄~ 먼저 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가장 부러운 건 청아님이랍니다? 종이책 뿅뿅~
성은 있거든요, 성적 끌림도 있고요, 성은......있,.다. 그런데 무엇인가? 그러면 할 말이 너무 많고 너무 없.다.... ㅋㅋㅋㅋ
괴물들도 참 재미지죠 ? 이 책은 어려운 책 맞는 거 같아요. 그래도 꾸역꾸역 읽어두면.. 또 다음의 재료가 되고 하니까.. 끝날 때 까지 계속해 봅시다용!

청아 2024-11-06 19:10   좋아요 1 | URL
오늘도 <괴물들>지하철에서 읽다가 빵빵 터졌습니다ㅋㅋㅋㅋㅋ
 

같은 페이지들을… 이틀 연속으로 되풀이해서 읽었지만…

타자에서 향유()을 제거하는 것과 (그냥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ㅋㅋㅋㅋ) 언제나 문제는 내가 아무리 제거했다고 주장해도 그 주장이 타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고… 그런 문제를 정리해버린 존잼 기계 ‘안티섹수스’에 대한 재밌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체력이 없다… 하루키가 왜 운동 열심히 해야만 글 쓸 수 있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당없는 사유는 불가능하고, (여러분 그 당 아님ㅋㅋㅋ) 당에만 의지하기에는 정보 사회의 폐해로… 당 스파이크를 알아버린 나… 당을 끊고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데.

“(58) 안티-섹수스,

우리는 성과 영혼이라는 전 지구적인 인간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우리 기업은 성적 느낌을 상스러운 근본적 충동에서 고상한 메커니즘으로 변형함으로써, 세계에 윤리적 행위를 제공해 왔습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성이라는 요소를 제거했으며 순수한 영적 우정을 위한 길을 닦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여전히 필연적으로 성 접촉을 수반하는 값비싼 순간적 쾌락을 계속 골몰하기에, 우리는 이 도구에 이런 쾌락의 최소 세배 이상을 제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10년간 갇혀 있다가 갓 풀려난 죄수가 이용한 여성이 주는 가장 큰 매력과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Platonor, 2013, 50)”

이 기계가 목적하는 바는 무타자 향유를 제공하여, 관계에서 성의 순수한 정수를 뽑아 내버린 고로… 모든 혁명과 ㅋㅋㅋ 우정의 방해자…성…! 이 사라져 “(57) 정말로 의미 있는 (의미가 있냐며 ㅋㅋㅋ) 타인들과 관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다: 즉 실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순수한 영적 우정)를 창조하는 것이다”

역시 1920년대 러시아산 마르크스주의자의 소설답다. (칭찬이다.... 진심이다.. 정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아주 탐이 나는 데.

그거 나 좀 주라. 혼자서만 가능한게 아니라서 문제라, 같이 사용하실 분?

자… 이 기계는 웃지마라,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한다. 이른바 라캉의 ‘비-관계’ 으악!!! 바로 여기다. 여기서부터 써보면서 이해를 높이고 저 노력해야 하는 데…. 어렴풋할 뿐… 배고파서 밥 먹고 일하러 가야 함.


[성 없는 타자들이여 생존신고하라!]


의도치 않게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자신을 자위되게 만드는 안티-섹수스의 정식화를 추구하며 살게되어버린 (🥹) 나,는 여하튼 이런 걸 읽고 쓰기에 …. 엉덩이 근육을 움직이는 시냅스를 발달시키지 못한 근육세포마저 가난한 중년의 여자 사람일 뿐이다. 선생님 중둔근이 어디죠? 그건 어떻게 느끼는 거죠? 필라테스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 이해 안 되는 거 이해하기 위해서… 더 계속… 쭈욱-


“(54)라캉에게 비-관계는, 그것이 구조와 다른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구조에 내속적인 것으로서, 모든 경험적 관계와 함께 나타난다는 바로 그 의미에서 선험적인 것이다. 선택은 관계냐 비관계냐가 아니다. 비관계에 의해 구부러진 담론적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관계들(유대들) 중에서의 선택일 뿐이다. 비관계는 특수한 요소들 사이에 (고정되고 선결된)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관계는 이러한 요소들 자체 안에 있는 기울어짐과 비틀어짐을 가리키는 것이다.”


“(62)라캉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비-관계는 담론적 질서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유대의 모든 형식에서 작동한다. 즉 그것은 "사랑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의 영역은 오히려 그 영역에서 때때로 관계가 “쓰여지지 않기를 멈추는”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라캉이 더 나아간 지점은, 권력의 사회적 관계 -지배, 착취, 차별-가 다른 무엇보다 비-관계를 착취하는 형식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섬세함이 필요한 지점인데, 왜냐하면…”


….

비 관 계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나는 비관계를 쓰고 싶었는 데 기운도 이해력도 딸려서 안티-섹수스나 쓰고 자빠짐...ㅋㅋㅋㅋ 그냥 나는 이런 존재입니다ㅋ)


결국에는 말해지기 힘든 무엇이다. 그러나 그 비 관 계.

이쯤에서 도가도비상도 떠올리는 나에게 내면의 누군가가 외친다 응 그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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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10-23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기 읽었는데, 벌써 지나왔는데 ㅋㅋㅋㅋㅋㅋ 그 깊고 오묘한 의미를 깨닫지는 못한 거 같아요ㅋㅋㅋㅋ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박테리아처럼 어떤 곰팡이는 비생식적인 방식의 마주침을 통해 유전자를 교환해왔다. (‘수평 유전자 전달‘) (263쪽, 버섯책)

저는 지금 읽는 책이랑 ‘읽고 있어요‘의 이 책이 겹쳐지면서, 내가 탐구해야하는 것은 ‘유성생식의 발달/유성생식으로서의 진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비 관 계 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0-23 20:51   좋아요 1 | URL
수평유전자전달.......... 넘나 매력적입니다............. 나도 이미 자웅동체 아메바인데 생식력도 낡아가는 마당에.... 박테리아처럼 곰팡이처럼 내 안의 유전자를........ (응, 그거 또 아니야.)....... 나 진짜 남자뇌인가..... (아니야 또 그것도 아니야)

단발님. 그래서 저는 비-관계로서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입니다..... 이게 그렇게 진지할 일입니다.... 사실 여기에 어디에 무언가가 있는데..... 아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계속 굴려볼 생각입니다.

아침에 바빠서 적지 못했지만
안티-섹수스와 오늘날의 모바일/메타버스 ㅋㅋㅋ 세계 ㅋㅋㅋ
안티-섹수스와 우정........ 하지만 저는 여성-여성들간의 그리고 남성-남성들 정말로 일반적인 우정에도 ‘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심각한 성애자여서가 아니라....... 그래요... 음.....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생각을 구체화 해야할 것이며....(진도 안나가네요...ㅋㅋ)

그래서 성을 뽑아내버린 정신적 우정을 운운하는 장치.. 라는 이 픽션을 고안해냈을 때. 대체. 그것을 뽑아낸?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으음. 그것을 또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그 성이란(3배 만족?ㅋㅋ) 무엇인가. 추출 못하면 또 성은 무엇인가. 그게 그러니까 없지만 있는. 있지만 없는. 성은 무엇인가. 비-관.계. ........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려면 역시 한가함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잔인한 낙관
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 / 후마니타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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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꿈은 안이한 낙관처럼 보이는 반면 실패는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9) 나의 이야기를 지배했던 것은 잘 살아가는 환경이 아니라 실망, 경멸, 위협으로 이루어진 일반적 환경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폭력과 사랑 둘 다를 비개인적인 것으로 재개념화함으로써 사람들에 대해 애착심을 품는 나의 능력을 지켜냈다.”


아이러니로 점철이 되어서 고백인지 비평인지 자기 고백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복잡해서 혼란한 (나의 상처는 투명하고 이해가능하게 말해져서는 안된다. 이해받고 싶지만 그게 아무나여서는 안됨.)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페이지에서 로런을 나의 동족으로 삼기로 했다. 으아악!! 투항! 🏳️🏳️


읽기를 통해 느끼는 은밀한 친밀감에 대해서 이토록 세심하게 파헤쳐 고백해버리면… 이해와 욕망과 방어기제와 윤리에 대한 (나만 알고 남은 모르면 좋겠는) 나르시시즘을 막막 써 버리면…. 못 참겠다. 여러분… 이게 이게 내 쾌락입니다. 자기의 정수리 냄새를 굳이 맡아보는 종류의 것이라고나고나아??? 🌝 쾌락은 왜왜 약간의 죽음 충동을 포함하고 있는 걸까.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


꿈과 환상, 오인과 투사의 읽기를 안이하다고 싸잡아 수치 주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오독에 대해 자주 힘주어 말하지) 결국 당신들의 실패하고 마는 읽기를 저주와 섞어 당부드리며. 나는 나의 오독에 언제나 당당하다! 메롱! 친구들아, 멋대로 읽으세요. 그게 당신입니다. ㅋㅋㅋㅋ 나도 이게 나라는 것이 좀 문제 ~🙄



[0730 "읽기는 친밀성의 비개인성(로런 벌랜트의 용어)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행해질 수 있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가장 상처받는 것이 친밀감을 느끼는 저자에 대한 신랄한 비평일 때.]


한동안 안 읽다가 다시 잡은 까닭은 동족 선언하자마자 점점 괴로워졌기 때문이다(섣부른 선언에 대한 후회랄까ㅋㅋ 동족 아닌 거 같아짐ㅋㅋㅋ). 


이 책은 트라우마를 트라우마적으로 읽는 것에 대한 불평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상처 이후의 일상을 견디는 개인 나름의 방법들. 가끔은 지나치게 뻔하고 빤한 규범적 도식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과하고  이상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정동들에 대한 해설.  



4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얼마나 ‘퀴어’하지 않은 인간인지를 절감하게 되어 버리는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험이 그들의 경험이 아니므로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가부장 구조의 부분적 겹침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그럼에도 어렴풋이 이해해 볼 만하다고 느낀 부분들.

관념을 과대평가하고, 비판적 부정을 즐기고, 읽기에 애착심을 품고, … 그렇게라도 평정심을 누려보고자 하는. 뭐. 시작은 나의 평정심을 위해서였다 치더라도, 지금은 내 일상으로 굳어져 로런 표현대로 “다른 시간성”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는 까마득한 상태로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의 형식으로 지내고 있는 중이고, 그것이 견딜만하다는 데에서 오는 일종의 해방감에 내심 즐겁기까지 하다는걸, 과거의 나는 알랑가몰러…. 

“(239)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 즉 취약성은 우리를 가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러니까 생존은 견고한 정체성의 형식을 만들어 내고 부드러운 나머지를 벽장에 숨기는 것에 달려 있다.”

#잘숨기자 ㅋㅋ



내면을 갖추는 ‘사치’에 대해 지적해 보고 싶었는데, 그게 나의 습관적인 재는 방식이라는 게 좀 빤하게 느껴져서 그렇게는 이제 그만 읽어야지 함. 도식 정비 삐비비비비빅——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땡겼고.



모처럼 기운이 남는다.라기 보다는 끝나지 않는 열대야를 조용한 에어컨 아래서 보내기 위해 스카. 출석. 어려운 거 (호호) 읽어야지.


“나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 거야”


영화 #로제타 에게 이입하는 건 너무 수월해서 놀라웠다.


정상성에 대한 갈망과 집착, 어떻게든 내 힘으로 쓸모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음. 일자리와 친구. 최소한의 사회적 소속감. 너는 왜 그러느냐 그랬느냐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 나도 내게 해봤는 데. 어떤 기반이 희미해지면 다른 부분은 선명해지길 원하는 것 같다. 영화속 로제타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했던 것이며, 지금의 내가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두려워서 언제나 너무 과했다. (로제타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본 고로. 지금의 나는 어딘가 과한 사람들(곧 나)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생존방식에 눈을 흘기며 저렇게까지?를 입에 담는 한갓진 사람들에게 주눅들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던 사람들의 지당하신 훈계는 가뿐히 반사. 가끔은 훈계 아닌 좋은 말도 발작하며 반사. 


좋은 말이 잘 안 받습니다. 이런 나의 과함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지만서도… 그렇다. 지금 나는 잘난 척을 하고 있다. 나는 잘났다. 나의 잘남을 아무도 안알아주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가스라이팅을 해서 이런 나를 알아보는 당신은 천재! ㅋㅋㅋ


나는 잘났습니다. 일 끝내놓고 밤 아홉시에 목적없는 공부하러 스카 오는 멋진 잘남ㅋㅋㅋㅋ 요즘 텍힙 이라는 말이 있다던데 이제 세상은 나의 것이 되는 것이며…(망상)


“(299) 낮은 임금에 재미없는 노동이라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은 로제타에게는 거의 유토피아적인 것에 가깝다.”


“(305) 이 장은 능력주의라는 환상, 누릴 자격이 있다는 환상, 그리고 이 환상이 가정, 직장, 소비 세계에서 친밀성 실천과 맺는 관계를 다룬다. 이 장은 충만합과 희소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너무나 많은 임시 고용 노동자가 우연히 구하는 너무나 많은 고약한 일자리, 결코 충분치 못한 돈, 결코 충분치 못한 사랑,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휴식, 그럼에도 만연한 인정사정없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장은 호혜적 관계를 가늠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규범적인 환상적 삶과의 근접성이 어째서 우리 시대 경제적 밑바닥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계속 살아가기[라는 과제]를 활성화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산*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MZ라는 호명 보다는 저성장(혹은 신자유쥬의)이 강제하는 만성적인 실업과 비정규직이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는 인간(특히 여성), 어떻게든 사회에 한 뼘이라도 내 있을 자리를 만들어 내려는 과정에서 망가져버리는, 그게 아니라면 망가지지 않기 위해 삶의 도전을 유예하는 그런 사람들의 조건 분석이 나에게는 필요했고. 내가 남들 따라 품었던 삶의 전망에 대한 포기안됨(사실 거의 포기 다 됐는데. 그냥 가끔 부러움이 올라오는 거 보면 다 포기는 안되었나부다 한다.), 너무도 쉽게 입으로 내뱉게 되는 이미 습관인 능력주의가 잘못된 인식이라면 왜 잘못인지를 설명해주기를 바랬다. (근데 어려워. 정말 너무 어려워.) 


그리고 책으로 설명 받는 중이다. 보다 첨예했던 1세계의 결론같은 교훈들.


그리고 어제 결국 패배한 독서는...



로런 선상림 버틀러가 둔탁하게 넘어간… 규범, 권위에 대한 집착 혹은 애착심을 설명하시고저… 

(그래요, 나 이거 궁금해요. 나는 그런 나와 화해하고 싶어요.. 불가능할지라도….)


너무 흥미로운데 졸리다…🥴 자야징! ㅋㅋㅋㅋㅋ


오늘도 무사히 안지치고 일을 마치고 후련하고 가뿐한 건강함으로 완독에 체크할 수 있기를 바라며.

포스트포드주의의 긱워커 청년 아니 중년은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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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8-23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제타> 봤어요? 영화 참 잘 만들었죠? 아니 근데 로제타한테 감정이입....을 하다니 힘들 텐데ㅠㅠ
아무튼 이 책에 로제타가 나오는가 보군요! 나도 얼릉 읽어야 하는데....

공쟝쟝 2024-08-23 10:36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일자리가 계속 불안정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래요 ^^) x세대와 mz의 간극일지도 모르겠구요!!! 로제타를 그녀의 신발을 사랑합니다!!

단발머리 2024-08-23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요. 만약 어떤 사람이 정상성의 규범에 충실하고, 원하던 바를 이루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안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도 마음 깊이, 영혼 깊이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요. 그니깐, 그게 인간 존재의 근원적 측면이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또 이야기 나눌 때가 있겠지요.

저도 이 책 있는데, 제 책은 너무 새거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줄은 많이 그었는데, 새 책이라서... 쟝님 책 보니깐 너무 학인의 책 같아서 보기좋네요. 당신의 잘남을 알아본, 일찍이 알아본 나는 천재! 음하하하하하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공쟝쟝 2024-08-23 12:12   좋아요 2 | URL
그것이 바로 라캉이 정식화 하신 결여. 루티님이 말씀하신 내 안 어딘가에서 흐느끼는 존재의 빈구멍.... ㅋㅋ 인가봅니다.

제가 쪼 아래 글 댓글에도 적었는 데, 내 안에 없는 것은 나를 자극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천재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8-23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요..? 많이 읽으셨네요! 밤 아홉시에 스카!! 므찌다!!
당신은 퀴어하지 않은 유교걸..ㅋㅋㅋ

공쟝쟝 2024-08-24 09:46   좋아요 1 | URL
후후- 애들 재우고 조용히 영어 독서하는 이시대 지성의 총체 낭만 고양이☺️
 
가야트리 스피박 라이브 이론
마크 샌더스 지음, 김경태 옮김 / 책세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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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이 (알아먹을 수 없는) 책의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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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은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읽으면서 ‘모더니스트’였던 스스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과정이었을지는 그냥 나는 좀 알아볼 수 있었다. (아, 못 쓰겄다. 부끄러…라고 하면서 결국 써서 올리겠지… 감당이…될 것인가?ㅋㅋㅋㅋㅋㅋ) 반쯤은 모더니스트, 그리고 반쯤은 덜 모던화돼서 부대끼던 나의 읽기가 떠올려졌으므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스피박의 인터뷰처럼 ‘결과물이 드러날 수록’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페미니즘을 읽기 싫었던 이유와 읽으면서 또 읽기 싫었던 이유… 내가 사랑했던 것들과 이미 끝난 줄 알았던 헤어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나를 질식시켜 왔음을 똑바로 보기. 자유, 불안, 자유 불안, 그러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사랑하고 이별하는 존재로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 갈 것. 질식되기 전에 숨 구멍을 만들고, 또 다음의 또 다음. 나는 사랑하고 헤어진 존재들이 남긴 흔적이다. (이제야 겨우) 이렇게 만들어져온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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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의 심오함이 넘나뤼 복잡하다는 걸 느껴보라고 난삽한 문체로 쓰였다는 스피박이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해 지식인 계층에게 하는 윤리적 요청을 내 입 말로 쉽게(;;가능할까?;;) 풀자면. 자기비판/타자비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지독하게 서구화되어 버렸고 “(147) 자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경향”이 심하다. 타자비판을 하려거든 자기비판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 기준조차 못 잡겠으면 공부를 하고 오세요! 하지만 안 하겠지. 왜냐면 자기비판은 하기 싫은 법이니까.) 그게 아닐 거라면. 빛 좋은 포스트모던이든, 마르크시즘이든, 페미니즘까지도 개념과 이론을 자기중심적 우월감을 재생산하기 위해서만 사용해 온 구(?)서백남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는 지적 같다. (흠… 쓰면서 뜨끔…) 


“(39)읽는다는 것은 독자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누군가의 자아 밖으로 나오는 것, 아마도 ‘동시대 독자’를 알아보는 것, 알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관점을 자주 형상화하는 것이다.”


요즘 내 시간을 잡아먹는 원흉 중에 하나는 스레드인데… (쓰레기 같은 글을 재생산하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함) 와, 거기엔. 별의별 세속적인 자랑성 정보들이 다 올라오지만 글을 타자 분석, 타자 비난의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한 바가지라서 안 본 눈 삽니다. (지금 나도 비난하고 있네?ㅋㅋㅋ 근데 왜 보냐면 그러게, 볼 수 밖에 없게 설계가 되어있다ㅋㅋㅋㅋ) 


1%들은 다한다는 아침 이불 개기 습관과 믿고 거를 사람 알아보는 안목 세 가지! 가 좋아요를 많이 먹어 배를 불리며 돈버는 글쓰기 강좌가 폭봘하는 시절에 인터넷에 쓰는 자기분석, 자아비판이 치열한 글은 아마 열등감에 찌든 루저의 자기 고백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읽힐 거란 걸… 나도 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까지는 아니더라도 루저인 70%가 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그것들을 배워갈수록… 우린 자존감이 높은 척 자기 확언을 하다가 자아 중독에 빠지고 말며, 그걸 안하는 사람들을 은연 중에 째려보고, 자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뭐… 그러나 그런 글쓰기는 긴장 안 타면 은연중에 크리스테바 언니도 하는 그런 것 ㅋㅋㅋㅋㅋ 


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게 되지만 문제는.

그걸 고민하며 써봤자 내 글 아무도 안 읽어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쓰자.


모두가 판관이 되어, 나만 아니면 돼. 나는 아님. 남을 혹독하게 단죄하는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떤 편에 서거나 도무지 판단이란 걸 하기가 좀 어려운… 사람들… 복잡함과 알 수 없음이 사람의 기본이라고 바라보는 이들의 언어는… 갈 길을 잃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책을 읽을 수록 점점 생각이 많아져 개인의 특성을 본질화하는 언어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퉁쳐서 밀어내고 싶은 어떤 타인들의 특성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것의 조건을 살피는 글을 읽고 싶고 쓰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성찰의 시간은 여유에서 나오니까). 결국 돈을 벌고 싶다. 


이 문장에 또박 또박 밑줄을 그어두었다. “(24) 스피박은 자신의 ‘내포 독자implied reader’, 즉 외국계 미국인과 탈식민화된 남반구 출신의 경제적·정치적 이주민에게 “스스로를 희생자가 아니라 착취를 할 수 있는 행위자로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 그것은 현재 전 지구적 국면을 독해하는 것 그리고 그 독자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궤적 …”


그래도 돈을 벌고 싶은 나는 가담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돌아보기 두렵지만, 내가 뭐라서? 나도 공동체에 속한 존재인데. 그래서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놓지는 않는 채로. 돈은 벌고 싶다. ㅋㅋㅋㅋ  



2. 


‘서발턴subaltern’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인도의 사티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피해 여성. 대~충~ 말할 수 없는, 재현 불가능한, 말하지 않음이기에 읽어내야 하는 ‘언어 없는 민중’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개념을 조금 더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약간은 변화된 개념이었다. 


“(165)나는 ‘서발턴’을 통해서 대도시 공간의 모든 유색인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고자 한다*. ‘개발과 여성’은 여성들을 외국이 직접 투자하는 제조업(특히 직물 및 전자산업)과 수출 가공 지구로 여성들을 데려가면서 최하층 범위에서 사회적 이동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젠더와 개발’은 서발턴 여성에게 소상공인을 위한 소액대출을 제공하면서 보다 공평한 기회를 준 것처럼 보인다” 


“(158) 영토 제국주의(시대에는) 그 국가를 식민화하려는 어떤 노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사회적 임무-양상은 일부 사람들에게 그것의 중심적 과제와 *정당화가 되었던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취한다.* .. 그 훈련은 (…) 소비주의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성문법, 새로운 교육 체계, 새로운 요구 인식이 마음의 형태와 사람을 폭력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인식론적 폭력을 작동시켰다. 그 폭력은 개인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진입할 기회를 잡은 오랜 식민 주체를 생산했다. (162) 이러한 단계에서 대출자는 공장 노동자일 필요가 없다. … 그/그녀는 대출 이자를 상환하기 위한 돈을 필요한 절대적 잉여 가치를 얻고자 그 혹은 그녀 자신의 노동일을 조정할 것이다.” 


아래 부분을 읽으면서 스피박의 지적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페미니즘의 이면. 페미니즘적 주체의 생산. 으악. 너무 날카롭잖아? 


“(167) 스피박은 특히 ‘젠더 훈련’에 비판적이다. 국제적 기관이 부여한 그 명명은 젠더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젠더 훈련은 남반구의 여성들 사이에서 소유적 개인주의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의미가 스피박의 비판에 함의되어 있다.”


“(167)여성을 위한 임시변통의 자유로운 선택은 내가 사티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연구 대상이었다. ‘자유로운 선택’을 만들어낼 것을 제안하는 ‘젠더 트레이너들’은 문화적으로 상이한 주체들이 충분한 준비 없는 의사결정에 집중하도록 애쓴다. (…) 존중의 피상적 몸짓으로 주체 생산에 관여하는 ‘젠더 훈련’은, 자본을 위해서, 여성들 위에 있는 여성들의 도움으로 문화적 통합이라는 가장 큰 위반을 가한다.”


사회적으로 이동할 수 없는 사람. (그게 가족이든 빚 때문이든…) 그리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사람…이 변화된 시대의 ‘서발턴’이라는 말에. 얼마 전까지의 나… 여전히 ‘나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게 그랬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우리 모두는 일정 정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푸어. 사지 않을 수 없어서 사야 하는 아이템들. 빚을 갚기 위해서 벌어야 하는 돈. 물론 여전히 나는 나를 속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동할 수 없지만 (사이버 세계에서는 노마드임ㅋㅋㅋ 게다가 부단히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 원한다면 이동할 수 있다는 것, 영원한 관계는 없고 어떤 관계와 든 이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알게 되었다. 


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졌고, 처음으로 그런 욕망들이 생겼었다. 


그래서. *서발턴 :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이라는 문장이 서글펐다. 



3.


나에게 <가야트리 스피박>의 백미는 4장 <국제화된 페미니즘>에서도 바로 *‘젠더 및 개발’과 전지구의 금융화* 챕터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스피박의 ‘입문서’로는 추천하지는 않는데, 이 챕터 만큼은 정말로 읽어봄 직하다. 어렴풋이이런저런 페미니스트 아닐까? 추측만 하던 가야트리 스피박에 대한 호기심이 확실히 생기고야 말았다!! 


뭔가를 더 쓸 수 있는 기력은 내일의 노동을 위해 남겨야 하겠으니 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던 부분에 대해 사진을 첨부한다! 미래의 내가 다시 읽으면서 사유를 발전시키기를 바라며… 6월의 독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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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01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경향…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지만 타자비판을 하려거든 자기비판을 전제하라는 쟝님 말씀에 우리 예수님 말씀이 겹쳐지네요ㅋㅋ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1-5>

나도 이 책 리뷰 얼른 써야하는데…
일단 굿나잇~~😘

공쟝쟝 2024-07-01 00:07   좋아요 2 | URL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뱃 살 속에 훌라후프를 빼어라.. 그러려면 밀가루를 덜 먹어야하고… 밀가루를 끊으려면 외식을 덜해야하고… 집밥을 셀프로 해먹으려고 하면 너는 하루에 삼시 세끼 땀흘리며 밥을 하고 설거지 하고 다음 밥을 하고설거지를 하고 다음 밥을하고…. 다이어트는 자동으로될 것이니….

껄껄.
예수님 천재.

단발머리 2024-07-01 00:08   좋아요 2 | URL
그리하여 너는…
아침에는 요거트 점심에는 외식
저녁에는 샐러드를 먹도록 하여라~~
여름에 집밥세끼는 불가하나니…

공쟝쟝 2024-07-01 00:1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요거트 아멘!!!! 저는 타자비판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7-01 00:12   좋아요 2 | URL
타자비판의 제1대상은 늦잠꾸러기이니 너는 이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느닠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7-01 09:28   좋아요 1 | URL
선생님은 어쩌면 이렇게 늦게 취침하시고 이렇게 일찍 일어나실 수 있나요? (마이크를 내밀면서) 비법을 좀 알려주시죠!!!

단발머리 2024-07-01 0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글하고 좀 바뀐듯 하네요. 뒷부분이 추가된 거죠? 정리 잘 해 주셔서 소듕하게 잘 읽고 갑니다.
뭐라 덧붙이고 싶지만, 나도 이 책 읽었지만ㅋㅋㅋㅋㅋ참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공쟝쟝 2024-07-01 06:48   좋아요 1 | URL
본문에 괄호가 잘못 < 붙어서 북플에는 내용이ㅜ잘려서ㅠ안뜬 거 보고 호다닥 수정! 늦잠꾸러기 되기 싫어 일찍 인났습니다! 굿 모닝!!!

수이 2024-07-01 07:46   좋아요 2 | URL
아니 다들 저리 늦게 주무시고 이리 일찍 일어나셔서 활동하시는 겁니까? 청년들은 역시 다르구먼;;;;;

수이 2024-07-01 0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 먼저 재우고 두 분이서 늦게까지 토론하셨네요? 하지만 자비로운 제가 넉넉한 마음으로 삐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요거트는 드셨습니까? 저는 어젯밤에 만들어놓고 잤는데 또 망했네요;;;; 새로 또 만들어야지 에휴

수이 2024-07-01 0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을 디따 많이 벌고 싶어요. 하지만 게을러서...... 스피박 이 책 읽는 동안 너무 어려워서 저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읽어볼래요. 그래도 이렇게 이리똑똑쟝선생님이 요약해주시니까 머릿속에 한번 다시 쏙쏙 잘 들어오네요. 좋아라.

공쟝쟝 2024-07-01 08:18   좋아요 2 | URL
돈을 디따 많이 벌면 저도 좀 주세여! (거지냐??) 스피박을 읽었는데도 ㅋㅋㅋㅋ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을 글에 너므 많이 썼다 ㅋㅋㅋㅋ 물가가 너무 무서운 영세자영업자는 서발턴이 나구나 또르륵 웁니다…

수이 2024-07-01 09:27   좋아요 0 | URL
스피박을 읽었는데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이렇게 쟝님처럼 스피박 읽고 돈 벌고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많이 생기기만을 바랄뿐. 그나저나 요거트 폭망해서 전 다시 요거트를 만들러 이만 퐁퐁퐁. 서발턴이 님인가.... 나인가..... 그러한가..... 모르겠다! 울지 마! 운동해! ㅋㅋㅋ

2024-07-0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1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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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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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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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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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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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03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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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 한국 2060 여성들의 일 경험과 모험
김현미 지음 / 봄알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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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일감 쳐내다 근로의욕 상실하고 농땡이치러 나온 흠결 많은 파편.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신자유주의하 K-여성의 노동을 사유하는데…




플래그 붙이다가 모든 페이지에 붙이다가 화나서 걍 구매한 책 #흠결없는파편들의사회

현실감 바짝 조여오는 문장들이 살을에고 뼈를 때려서 개🐶강추를 하지 않을 수 없네.

“(15)신경아의 표현대로 “여성들은 종속적 안정성을 잃은 대신 독립과 표류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얻었다”
(16)하지만 이들 여성 모두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딸, 부인, 어머니라는 역할 질서 바깥에 존재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런 이들에게 조금 더 확실한 삶과 자족의 근거는 무엇일까? 괜찮은 일과 일터다. 임금노동이, 일이 정말 중요해졌다. 자립할 만한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 자신의 삶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를 안 만들기로 한 여성들, 그를 떠나보낸 여성들, 남성 배우자 없이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 여성들끼리 벌어 먹고사는 여성들, 혼자 사는 여성들, 고양이나 개와 같은 다른 동료 종을 돌보는 여성들 등, *이들 모두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혹은 일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존재하는가*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이들의 존재감을 구성한다.
한편으로 여성들이 사무직·전문직 일자리로 대거 진출한 현상은 ‘비혼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돌봄 노동을 하지 않는 남성을 표준적인 노동자상으로 삼아 조직된 남성 중심적인 일터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 ‘비혼‒무자녀 상황의 유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도 많다. 공적인 일 경험과 결혼, 출산, 양육과 같은 사적 경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임금노동과 돌봄 노동은 시간, 정서, 노력 면에서 갈등 관계에 있다. (17)돌봄 노동에서 상대적으로 면제되어왔던 남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듯, 남성 중심의 일터에 들어간 여성들 또한 결혼, 출산, 양육을 수행할 여력을 상실한다. *한쪽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에서* 여성들은 자발과 강제를 구분할 수 없도록 사회가 구성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선택권을 잃거나,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몰려왔다.”

#한쪽을말끔히정리한다고생존이가능할줄알았더냐


딸 가진 많은 모부가 성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중산층 집안의 똑똑한 딸들은 경력 단절로 좌절한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독박 가사노동의 서러움에 공감해주고 손을 보태고자 하며, 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한다. 엄마가 ‘꼰대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행동, 말투, 매너를 살피고 교정해주며 유행을 알려준다. 한편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양산된 딸 바보 아버지들은 사랑하는 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때 딸은 그 자신의 독립성이나 인격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현대판 ‘으스대기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떠안는다. - P34

왜 일터에서 혹은 노동의 조건으로 여성성을 수행하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가는 정치경제학적 질문을 필요로 한다. 젠더 수행성은 문화규범으로서 자본의 축적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여성의 관계는 "엇갈린 축복mixed blessing"이라 불린다. 어떤 여성들에게는 긍정적인 기회를 선사했으나 동시에 가중된 억압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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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2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 --> 응원합니다!! ㅎㅎ 사진 멋지네요 ㅋㅋ 저도 내일 카푸치노 사 마셔야겠습니다~~

공쟝쟝 2024-05-23 23:46   좋아요 1 | URL
먹다말고 헝ㅋ분ㅋ해서 일단 사진 찍은ㅋㅋ 시나몬 퐝퐝 뿌려서 드셔요. 서곡님. 더 더워지기 전에 따수운 걸루~

단발머리 2024-05-23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왼쪽에.... 노트가 보이네요. 많이는 안 보이고 쪼금 보이지만, 공부하는 사람의 공부 중일 때 나오는 노트같네요. 참 멋있습니다. 따봉!

공쟝쟝 2024-05-23 23:50   좋아요 1 | URL
매의 눈! 종횡무진 제 노트 맞습니다. 이런 저런 공부는 사실 좀 지쳐요...... ㅜㅅㅜ 근데 신자유주의가 훈련시켜줘서 숙련된 자기계발러답게 자기계발이다 생각하고 걍 합니다 ㅋㅋㅋㅋㅋ

은오 2024-05-24 0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아 액상과당이랑 정제탄수화물 단거단거단거 너무 젛아요!!!!!!!!!! 사진 보자마자 혈당스파이크 처맞는 느낌에 행복 ㅋㅋㅋㅋㅋㅋㅋ
고닉 언니 책도...😭 저 지난주엔가 다읽었는데 넘 좋았다요 쟝님!!!!

공쟝쟝 2024-05-24 08:47   좋아요 2 | URL
단 거 먹으면 안된다는 유튜브 보고 단 거 더 땡기는 거 내 안의 죽음충동인가요? ㅋㅋㅋ 고닉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사랑이시며!! 은오님 이 책 흠결 정말 너무 짱짱 좋아요! 저도 동감되지만… 취준기간 긴 딸들이 일케 힘들었겠구나 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진짜 진짜 힘들겠구나 하면서 ….!! 그래도 내 안의 능력주의를 똑바로 보면 나한테 좀 관대해지니까! 추천합니다…!! 아직 안 읽었음 꼭 읽어요!! (간절🥹) 젠더는 섹슈얼리티, 계급 그리고 ‘나이’에 따라서 무지무지 다르게 경험된다는 거!!를 새삼느끼고 은오님 생각도 많이 났어요 ㅠㅠ

은오 2024-05-25 05:34   좋아요 3 | URL
헐... “이 책 읽으면서 니 생각 했어!!” 이거 반칙인데 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럼 안 읽을 수가 없자나요!!!!!! 알게써요 >_<♥️♥️

공쟝쟝 2024-05-26 14:14   좋아요 1 | URL
반칙 ㅋㅋㅋ 아앗!! 찐으로 이대녀 은오님 생각났다! 물럿거랏 요망한 팬더!!! ㅋㅋ

2024-05-25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