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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년의 미학 썅년의 미학
민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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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래의 인용된 페이지로 제 할 일을 다했다. 속이 다 시원해서 동치미 한사발 들이킨 것 같다!
(나의 경험에 한정) 지금까지 만나온 대부분의 또래 여성들은 자기관리에 투철하고, 여행이든 독서든 취향과 취미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고 그걸 향유할 줄알며, 정말인지 대충대충 안살고 열심히 산다. 지성부터 성격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리하는 여성들에게는 화장 안한다고 뭐라고 하면서, 눈이 높으면 왜 은근 비아냥 거려?? 눈 높아서 일정 수준 이상 아니면 안만나겠다는 데 왜 자꾸 아무나 짝지어주려고 하는 건데.. 어딜 가져다 붙이냐고.. 그리고 괜찮은 여자는 주변에 너무 많은데 어떻게 괜찮은 남자는 주위에 항상 없냐고!!! (나만 그래?)
사회는 남자들에게 너무도 관대하고, 우리들은 흐린눈을 한채로 ‘적당히’ ‘눈낮춰서’ ‘다 그렇게 (참고)사는 거야’라면서 현실에 맞춰 이상을 조절하라는 요구들을 귀에 피나도록 들으며(그걸 전문 용어로 착즙이라고 합디다) 살아왔다. 놉! 자매들아 이제는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노력할 수록 한쪽이 계속 하향 평준화되고 있어.. 그리고 언니들아 엄마들아 딸들한테는 그 말좀 하지마.. 다 그러고 산다는 말...!! 그거 위로 아니고, 그냥 자기 신세 한탄이라고 ㅋㅋㅋ
우린 이미 너무 수준이 높아. 노오력 해서 수준이 높아진 건데 눈까지 낮추라곤 하지말자, 좀. 눈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수준을 올려야 하는 쪽은, 당장 거울을 보며 진지한 성찰과 시술을 고민해야하는 쪽은 여자들이 아니라고!!

그래서 싫다. 못생긴 남자가 싫다. 꾸미지 않는 남자가 싫다. 자기 관리를 안 하는 남자가 싫다. 술이라고는 싸구려 국산 병맥주와 소주밖에 모르는 남자가 싫다. 인생에서 해본 최고의 모험이나 경험이 주체적이지 못한 남자가 싫다. 여행을 가보지 않은 남자가 싫다. 책을 안 읽고 영화를 안보고, 콘텐츠를 즐길 줄 모르는 남자가 싫다. 경험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남자가 싫다. 자기 취향이 뭔지 모르는 남자가 싫다. 남의 취향을 존중할 줄 모르는 남자가 싫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인지 못하는 남자가 싫다. 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사과하지 않는 남자가 싫다. 1년 후에 뭐하고 있을지, 5년 후에 뭐하고 있을지 물어봤을 때 아무 대답도 못하는 남자가 싫다. 대충대충 사는 남자가 싫다. 미래가 없는 남자가 싫다. 싫다. 싫다.

😫 우린 다 아는 데, 우린 다 하는 데, 심지어 공부까지 하는 데... 대체 뭘 믿고 대충 살면서 징징대고 역차별입네 당당하냐고...- P59

자기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남자가 여자 앞에서 설치는 거, 같잖다. 정말 같잖다.
나는 원해, 괜찮은 남자, 아니 좋은 남자를 원해. 멋진 남자를 원해. 최고의 남자를 원해. 이런 글을 쓰는 내가 괜찮은 여자일 리 없다고? 아니, 네가 상대하기 괜찮은, 그러니까, 만만한 여자가 아닌 거겠지.
나는 요구한다. 솔직히 다른 여자들도 요구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여자, 괜찮은 여자이고, 대단한 여자이다. 적당히 어떻게 그래도 되는 여자가 아니다.

😭 여자들이여... 원하는 것을 타협하지 말자.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걸 갖자. 욕심을 욕심내!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남자를 통해 원하려 하는 것을 딱 분리해내자. 자기들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끌려다니지 말자!!- P60

그러니 내 기준을 낮추라고 강요하지 말라고, 양심 챙기고, 수준을 올려야 하는 건 남자 쪽이지, 우리가 아니야. 적당히 만족 못해.
내 이상형은 하향 패치 금지야.

😠적당히 만족하고 참고 살 바에 혼자 산다고!! 아무나 붙여주지마!!- P61

변변찮은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사회가 그 너절함을 용인해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은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인생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자신을 여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사람을 만날 바에는 애초에 아예 안 만나는 게 낫다는 걸 나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 글을 본 누군가는 나에게 눈이 높다고 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자뻑이너무 심해서 재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무려 사랑에 빠지는 데 조건부터보는 속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 그러게. 맞아. 나 속물이야. 내 기준에맞지도 않는 남자를 적당히 타협해서 만나느니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하게 밝히고, 속물이라고 욕을 먹든 말든 내 기준에 맞는 남자를 만나고 싶어.

👏👏👏👏👏👏 옳소.- P58

이 글 읽기 전까지 여자들이 단 한 번의 섹스에 이런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남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알았다면, 당신과 섹스 하지 않는 여성을 조르고, 협박하고, 회유하거나 비난하기보단 당신 자신을 유전적 가치가 있는 존재로 계발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더 현명하지 않을까. 가장 사적인 행위인 섹스 할 때조차, 여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꺾인 운동장 끝에 서 있다.
이것을 인정하고 바로 펴지 않는 한 당신들 차례는 영원히 안 온다. 만날 자격이 없다면, 번식 탈락은 당연하다.

🤭 남자들 힘내자! 자기계발 화이팅!-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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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6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제목에 끌려서 읽었었는데 완전 재미있더라구요 ㅎㅎ 신선했던~! 역시 책은 제목이 중요한거 같아요^^

공쟝쟝 2021-04-16 07:51   좋아요 2 | URL
지금은 신선하지 않고 대세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1-04-16 0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오 쟝쟝님 재밌게 읽으셨다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인용하신 문장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싫어요 쟝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이 시원한게 아니라 뭘 이렇게 남자남자 거리나 싶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문장들이 자기 생각 아니라 트윗에서 다 긁어온 것 같아요.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4-16 07:49   좋아요 1 | URL
알쥬 남자 못잃어의 모순 ㅋㅋ 공부가 깊어지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 현실에서 대화할 땐 딱 저 내용이 먹히죠.. 저책 근데 만화예여. 페미니즘 초창기 만화!

공쟝쟝 2021-04-16 07:50   좋아요 1 | URL
그치만 모두가 4b할 수 없고 로맨스 끊는 거 너무 힘드니까(ㅋㅋㅋ 아 ㅋㅋㅋ) 적어도 흐린눈은 하지말자, 나여! (마음을 다잡는다)

지유 2021-04-16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시원하게 읽었는데 공쟝쟝님의 시원한 후기 읽으면서 다시 떠올렸어요. ㅋㅋ

공쟝쟝 2021-04-16 09:11   좋아요 2 | URL
호르몬 때문에(?) 시야하 흐려질 땐 이 책 읽어줘야 할거 같아요 ㅋㅋㅋ
 

동정심, 혹은 연민, 불쌍함에 대한 어쩌지 못함. 내 욕구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활짝 웃고 괜찮다고 말하면서, 나의 상처를 능숙하게 감추는 일.
요구를 요구한 적이 없어서 이따금, 도대체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모르겠는 거.
그래서 되려 타인의 요구 뒤에 숨는 것.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누군가를 도울 때만 나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
나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거. 그건 사실 내가 누구보다 의존하고 싶다는 것의 반증.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타인의 판단에 맡겨버리는 거.
책임감과 의무감, 해야한다 속에서만 기능하는 삶. 그것이 없다면,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거칠게 단정짓던.

‘나’를 마주보게 된 것은
사실 전적으로 프로이트 덕분이다.

내가 내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너무너무 잘 아는 데, 그걸 해결할 도리가 없어서. 거기에는 나도 미처 모르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걸 거라고, 네 어린시절의 상처를 톺아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너의 관계 맺기와 선택들을 ‘의식화’해야 한다고 그의 이론을 풀어쓴 책들이 일러줬을 때.

엉망진창인 내 무의식 속의 상처를 들여다 보는 것은 약간의 부담스러운 비용과 꽤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고, 나의 경우는 특별히 아주 많이 울어야 하는 일이었다. 제대로 울기 위해, 각잡고 울기 위해, 그만 둘 수 있는 것은 다 그만두고, 시간내서 울고, 힘이 빠질 때 까지 울고, 울기 위해 밥을 먹고, 밥먹고 기운차려 또 울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골이 울릴 때까지 울고, 아무튼 어쨌든 울다가 가끔 한번 씩 눈물의 의미를 묻는 일기를 쓰고.. 그렇게 반년 정도 보냈나? 그렇게 프로이트의 제자들에게 돈을 쓰고, 도움을 받아, 건진 것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이다. 

그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았을 거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 내 삶과 상처를 해석하고 싶다. 그런데 수학 공식을 풀거나, 1000조각 퍼즐을 맞추는 것 처럼 나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나는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나는 계속 변할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도 변하고 있고. 내 몸이라는 유기체도 매 순간순간 변한다. 프로이트를 알게 된 이후, 내가 새롭게 가지게 된 나에 대한 자세는 나를 공부하되, 나에 대해 잘 안다고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나를 모르는 존재로 대할 것. 알기 위해 노력할 것. 살아있는 한 꾸준히. 그렇게 지낼 것. 

그리고 그것을 유난 떤다고 취급하는 이들과는 친구하지 않을 것.

*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파트는 6장 정신분석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스트들에게 대표적으로 미움받는 위인을 딱 두명만 꼽자면 하나는 마르크스요 그와 동급 혹은 한단계 위에 프로이트가 있는 듯 하다. 20대 내내 나는 마르크스를 좋아했고(세상을 미워했다), 30대가 되어 프로이트를 만나 조금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다.

프로이트를 공부한 상담샘에게 비용을 꼬박꼬박 지불한 덕에 이별하는 방법(분리되는 방법)을 겨우겨우 습득하였고, 인생은 실전! 비싸게 배운 그 기술을 프로이트에게 아주 잘써먹고 있다. 한 때, 사랑하고 의지했던 두 아재들이 페미언냐들에게 욕을 배불리 먹고 있는 광경을 팝콘각을 하고 아주 재밌게 즐겁게 관전하는 것이다. 

원펀맨 느낌으로 한번에 죽사발을 만드는 싸움도 좋지만. 정말 즐거운 관전 쾌감 포인트는 적의 무기로 적이 제 발등을 찍을 때인 데. (부연하자면 쿵푸팬더가 자기의 힘이 아니라 적의 힘을 반사하는 기술로 싸움에서 이기는 것 같은 느낌의?) 특히 마르크스가 그랬다. 캘리번과 마녀 등을 읽으며 마르크스가 보고도 못 본 ‘재생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을 땐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아!! 이겼다!! 언니들이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겼어!!

그들이 만든 언어와 논리안에서 그들의 맹점을 논파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서양 철학사 전반이 그렇다고는 하나, 철학도 역사도 언어도 지금껏 여성의 것이 아니었기에 철잘알, 역잘알, 말잘러인 언니들이 제대로 각잡고 고고한 철학자 아재들 뚝배기 깨는 글을 읽는 건 더 큰 쾌감. 쾌쾌쾌감. 

그래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마르크스를 비판 + 갱신한 것 처럼, 정신분석 페미니스트들도 어떻게 보면 더 악독한(?) 프로이트를 호로록 갈아서 마셔버리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 데. 슬프게도 아직까진 “프로이트 이 바보, 그걸 몰랐어? 으이그, 아재여. 옛다. 니 전제부터 갱신해🥱.” 이렇게 해준 언니는 없는 듯 하다. 
“(314) 대부분의 현대 정신분석 페미니스트들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자크 라캉을 넘어선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비가부장적인 정신분석 페미니즘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지는 열린 질문으로 남아있다.”

이리가레 부분을 읽으면서(당연히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많이간 거 아녀? 싶긴 했는 데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라캉의 ‘착한 딸’ 이라면 이리가라이는 ‘못된 딸’” 이라는 종류의 언설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이 더 있나봄. 라캉의 딸.. 그것도 못된 딸이라니. ... 그런데 나도 못된 딸이어서 이리가레 좋다... 핫!

“(307)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정의를 전복하기 위해 .... 여성은 여성에 대한 정의를 ‘과도하게 실천’하기를 시도하다가 무심결에 그 속으로 다시 함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에도 여성은 모든 기회를 활용해 상징적 질서에 소란을 일으켜야만 한다. 앞의 논의를 살펴볼 때 궁극적으로 명칭화와 범주화 과정을 끝내야만 한다는 이리가레의 확신과 어쩔 수 없이 이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경쟁적 확신 사이에 분명한 긴장이 드러난다. 뤼스 이리가레는 자신의 글에 나타나는 모호성과 양가성에 당혹감을 느끼는 대신에, 점점 더 즐거워했다. 뤼스 이리가레에게 자기모순은 남근중심주의가 요구하는 논리적 일관성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이리가레 글쓰기가 불명료하다고 비판 많이 받은 모양인 데, 그걸 즐거워하신다고... 멋져.

“(p.410-여성주의고전을 읽다: 뤼스 이리가라이) 이리가라이는 가부장제 문화적 근간 전체를, 상상계와 상징계(언어) 그 자체와 그것을 반영한 지적 체계의 핵심을 모조리 문제삼는다. 그 효과적인 대상, 가부장제 사회와 문화의 저변을 담당하는 것이 철학이기에, 그녀는 여성을 체계적으로 배제시켰던 남성-동일자의 표현양식인 서양 철학사와 철학전통 전체의 계보 곳곳에 깃들어 있는 남성중심성을 저며내고, 성적차이를 사유하는 새로운 지평, 새로운 초월의 방식을 만들고자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같은 책 413) 그녀는 1974년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의 팔루스중심주의를 비판한,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 ‘스페큘럼’을 간행한다. 이 책의 출간은 이리가라이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직업적으로는 평생의 어려움을 가져다준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벵센느 대학의 교수자리를 잃었고 라캉학파에서도 파문되었으며, 말년까지도 프랑스 대학에서는 정식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리가레의 글쓰기 스타일도 멋있는 데, 서양 철학사 통째로 씹어드시겠다는 그 포부도 멋지고, 살아온 인생은 더 멋져버린다. 팔루스중심주의 얼마나 대차게 깠길래 (읽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고추중심주의ㅋㅋ를 공부해야하는 가?? ) 라캉학파에서 파문당한거여..😮😱  교수도 못됐으면 뭘로 먹고 산거여.. 언니야😭ㅜ_ㅜ... 이렇게 멋짐이 뿜뿜한 이리가레가 궁금해서 뒤져보았으나, 그의 생애사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하는 데, 까닭은 여성 사상가를 하나의 일대기로 축소시키는 전기론(의 가장 큰 예시가 선배 보부아르)에 반대하는 이리가레 본인의 신념인 듯 하다고 위의 책에서 그러더라. 아 일관되다. 대쪽같은 사람이야. 참! 

어쨌든 생애사는 글렀고, 그의 사상을 요약한 것을 읽었으나 (이해는 거의 못한)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리가레가 엄청 훌륭한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라는 건 알겠지만,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는 내 지식의 비루함이 좀 슬펐다. 뭐 스페큘라까지는 먼 훗날에 읽어보기를 기약하더라도 최근에 나온 신간 <식물의 사유>는 읽어보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생각해보니까 파이어스톤도 좋다고 좋다고 그래놓고 <성의 변증법> 어려워서 못 읽었다. 

에효. 진짜. 책읽고 싶어서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상황이 연거푸 발생하는 중인 데-... 결국.. 공부해야 하는 가. 
프로이트도 모르는 데, 라캉을?.... 로 ㅏ.......캉...?

*

어쨌든 앞서 밝혔지만, 나는 나를 아는 게 중요하고. 적어도 요즘의 나를 알아가는 데에는 페미니즘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이 독후감을 쓰면서 알아낸 나 자신은 이러하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그리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느라 한 권의 책에 도통 집중을 못한다. 그런데 또 어떻게든 읽기로 한 책은 읽는다. 독서 자체는 아무 목적없이 즐기는 편이다. 다만 집어든 한 권의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은 전적으로 ‘책임감’ 때문이다. K-장녀에게 책임감이란, 의식화를 해서 떨쳐내려고 해도 골수에 박혀있는 DNA와 같은 것이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의 숙제는 책임감의 범위를 어떻게든 협소하게 줄이고 줄여 홀가분해지는 거다.) 그러므로 평소처럼 오로지 즐기기 위한 독서에 머물렀다면 나는 이름만으로도 어려워했던 이리가라이를 조금이나마 알게되는 즐거움을 놓쳤을 거다. 

결론 : 이토록 좋은 ‘책임감’을 심어주신 알라딘 서재 마을에 서식중이신 페미니즘 벽돌책 깨기 집단에게, 새책을 사면서 땡스투로 꼭 보답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라딘에게만 좋을 일이다. 결국 승자는 알라딘이다. 아이씨. 아직 추석전에 시킨 택배도 덜 왔는 데 또 사고 싶다. 아까 안사기로 마음먹었잖아... 황정은, 백수린은 언제 읽을건 데.. 올해엔 소설도 좀 읽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잖아. 그런데..... 10월에는 10월의 책이 있어.. 이번엔 두권이야.. 하지만, <식물의 사유>....ㅜㅜ 오오 이리가라이여. “이리가레에게 자기모순은 남근중심주의가 요구하는 논리적 일관성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 나는 저항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 나는 모순이다... 나는..... ....

....

과연 나의 장바구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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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0-10-06 0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x 10개입니다.

공쟝쟝 2020-10-06 07:56   좋아요 0 | URL
그 좋아요 나도 좋아요 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10-06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를 모르는 존재로 대할 것. 알기 위해 노력할 것. 그리고 내가 책을 사 봤자 배때기 부른 건 알라딘이지만 내 배도 조금 부르길 바라며 ㅋㅋㅋ 저는 한 달에 소설 다섯 권 읽기 시집 한 권 읽기 하고 있는데 쟝쟝님도 소설 한 권 할당제 도입합시다 ㅋㅋㅋ사회학 여성학 한 세트 당 소설 한 권 2 1 같은 거ㅋㅋㅋ

공쟝쟝 2020-10-06 07:59   좋아요 1 | URL
저의 든든한 한국 소설 친구 ㅋㅋㅋㅋ 이미 땡스투 몇번 쐈는데?? 몰랏죠?? 사회학, 여성학?? 그거 안읽은지 오래 ㅋㅋㅋㅋ 요즘 저의 읽기는 모두 에세이로 수렴됩니다.. 에세이 넘 좋아, 에세이 쵝오! 소설도 좋은데 중간에 끊으면 너무 힘들어서 ㅠㅠㅠㅠㅠ 중간에 끊기는 소설은 재미가ㅠ없고 ㅠㅠ

수연 2020-10-06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백만개 얹어놓고 갑니다. 쟝쟝님 쌩얼 같은 글이라서 더 좋은.

공쟝쟝 2020-10-06 19:26   좋아요 0 | URL
이 글에 좋아요가 백만20개 되었다!! 비록 탈코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지지)글이라도 코르셋을 벗고 생얼로 쓸 수 있다면..!

다락방 2020-10-06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x 10개입니다. 2

쟝쟝님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또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도 잘 들어주는 것 같아요. 쟝쟝님과 대화 하다가 나도 모르게 위로받았던 적도 있었거든요. 얼마전에 책읽기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지요? 저는 책읽기를 같이하려고 만났다가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게 되어서 좋아요.

:)

2020-10-06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10-06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 사장님 전화번호 좀 줘봐요. 전화 좀 하게요.
나는 쟝쟝님 글을 더 많이, 더 자주 읽고 싶어요.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요!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공쟝쟝 2020-10-06 19:35   좋아요 0 | URL
전 그분의 번호는 물론 회사의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의식적 잊음도 아니고 ㅋㅋㅋㅋ 이건 진짜 무의식이 기억을 방해하는 듯ㅋㅋㅋ 기다렸다니 ㅠㅠ 우왕 ㅠㅠㅠ 나 막 또 쓴다..?

syo 2020-10-06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발 일 좀 줄이고 글 좀 더 써봐요.... 잘하잖아...

공쟝쟝 2020-10-06 19:39   좋아요 2 | URL
앗싸! 어디를 잘썼는 지는 모르겠지만 잘쓰는 사람에게 칭찬 들었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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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타자와 괴물을 몰아낸 기반에 뿌리 내린 철학에서, 여성은 타자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자신의 입말이 아니라, 자기를 탄압하고 옥죄는 언어로 사유와 철학을 시작한다. 여성을 타자로 규정한 철학 안에서 철학적 사유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어붙고 어두운 시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온 힘을 다해 힘겹게 머무는 일이다.”

“(12)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J헤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여섯 명의 여성 사상가이자 철학자는 주로 20세기에 활동하면서 근대 주체를 비판하고 근대 이후를 모색했다. 이들은 타자와 소수자의 문제를 철학적 문제로 성찰하고, 타자를 동일성의 범주로 판단해버리지 않고, ‘즉시 이해가능하지 않은’ 겸손한 지평에서 타자와 맞닿았다. 말을 길어 올려 새로운 사유를 끌어낸 그들로부터 알게 된 것은, 동일자로 호명되어온 인간이 실은 이방인이며, 타자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여성철학자들을 단일한 혈통의 계보로 묶기보다는, 이들이 각각의 위치에서 벌인 치열한 사유와 아직 쓰이지 않은 삶에 대한 전망을 축으로 엮었다. 확실히, 사유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살기 위한, 삶을 계속하기 위한, 함께 존재하기 위한 깊은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랫동안 홀로 생각해온 여자들과 이제는 같이, 문턱 너머 저편으로 건너가고 싶은 갈망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존재하려는 열정이 그녀의 몸에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때까진,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에이드리언 리치).’”


까지 책정리를 했는 데, 혼술에 취해서 뭔가 더 이상 책을 정리할 수가 없다.


괴물과 잠을 자기에는 너무 쫄보고(생각하기가 싫어요), 그러나 그게 궁금하긴 하니까 괴물이랑 잔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실망한....(응?) 나로서는, 제목부터 넘나리 매력적인 책이었지만, 여기에 나오는 그녀들을 다 모르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읽는 책 중에서 나오면 한편 씩 독파해야지! 마음먹고 읽기를 어언 2년(참 길었다)... 2018년 4월부터 읽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쥘리아 크리스테바와 도나J해러웨이를 도통 어느 텍스트에서도 만나기 힘들었는 데... 다행스럽게도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 에서 다들 등장해주셨다.

연휴의 막날이라 안취하기 싫은 데, 한 줄이라도 써야할 것 같아서. 
흩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한줄 쓴다.

나는 언제나 처럼 아마 내일도 후려쳐질거다. 절반은 노동자이기 때문이겠지만 절반은 ‘나이들어가는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기도 할거다. 네가 여길 벗어나서, 가봤자 얼마나 좋은 곳이겠어?를 묵음처리한 말들이 펼쳐질 것이고, 때때로 호의를 가장하지만 그래서 더욱 비참해지게 하는 염려의 말들을 들으며, 속에서는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방긋 웃겠지. 씩씩한 척도 할거다, 아마. 매일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런 말들을 들으면서, 표정관리와 멘탈관리와 근태관리까지 하면서. 아무리 의식적으로 싹싹 그러모아도 원체 빈약한 내 자존감은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어나갈거다.

술을 (적당히)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하거나, 운동장 트랙을 달리거나.... . 깎여나가는 것 만큼의 자기애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지친채로 악착같이, 애써하다가,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위장에 구멍이나고(여기까진 슬픈 실화), 쌍코피가 줄줄 흐를 수도 있다.

*

여성이 자아를 축소하고 겸손해지길 독려하는 사회에서 기실 내가 배워왔고 익숙한 것은- [겉으로] 일은 완벽하고 빈틈없이 쨍쨍 잘하면서도, 공은 티나게 티내지 않고 그래도 은근히 드러내면서도, 와중에 겸손해야 하고 또 그게 너무 내숭떠는 것처럼 보여선 안되는. [속으로] 사심없는 헌신인 양 애쓰면서도 은근히 나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응큼하고 모순적인 것들. 분열적이고 때로는 징그럽기도 한.

생각해보면 이미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적응하려면(변혁하는 방법도 있지만 진즉 투항했다), 역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더 수월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비하와 자조좀 섞어 투덜거리는 게 그나마 건강하다는 생각이다. 또 그런 모습이 - 적어도 자기애가 막 만땅에 차있는 것보다는 덜 이질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정제된 자기혐오나 잘 포장된 자기연민을 난 좋아한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난 익숙한 데, 그거 마저 이쁘게 포장하는 정성스러움이 느껴지면, 기분이 좋크든요. 유머러스한 고오급 자기혐오.

*

오늘 모순에 대한 지적을 희열로 받아들였다는 어느 페미니즘 철학자를 읽으면서. 한발짝 더 내딛기로 했다. 나를 망치지 않겠다(는 소극적 자세)에서 한 걸음 더. 개소리 하지마, 나는 더 건강해질 거고, 아주 아주 잘살아버릴거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당신 보다 잘 살고 있다.!!! 감히 너따위가 걱정해줄 나님이 아니시란 말이다!! (아니... 이걸 인제 깨닫다니 ㅠㅠㅠㅠㅠㅠㅠ 오 나여,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쪼렙이여..) 으하하하하! 언젠가 곰곰히 생각해서 적어볼 기회가 있다면 써보고 싶다. 

나는 나를 긍정하고 나를 사랑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신보다 잘 살아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어째서
자기혐오나 자기연민보다 더 어려웠는 지.

*


자야겠다. 내일은 여섯시에 일어날거다.
생각하는 (한국) 여자는 고양이와 함께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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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0-05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정말 잘 살아버리자 ㅋㅋㅋ

공쟝쟝 2020-10-05 07:55   좋아요 1 | URL
잘 살려면 술을 끊어야 하려나봄 속쓰려 ㅠㅠ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10-05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연휴 때 삼일 연속 음주 ㅋㅋㅋㅋ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지음, 정금나.김은정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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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에 연필로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더 강조되는 부분은 형광펜으로 그어야지, 하며 두가지 펜으로 책을 읽다 101페이지에서는 형광펜도 모자라 별표치고 ‘아니다 그냥 형광색 물에 통째로 페이지를 담그는게 좋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캐슬린 배리의 관점에 따르면 한국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거진 완성된 나라이지 않는가 하고.

베이글녀, 꿀벅지. 미디어에서 연예인의 특정 신체부위만을 따로떼어 이름 붙이는 것이 진심으로 칭찬이던 대략 10여년 전,(말라야하는 데 특정부분은 통통해야한다니, 무슨 소리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살을 빼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하나만 했어도 문제지만 그 두개를 다 하고 쳐자빠져있던 여혐의 시대...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화나가나서 말잇못....) 나는 20대였다.

당시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 꼬리뼈 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된장녀’. 하필 그시기에 20대였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머리가 비어보여서도 안되지만 남자를 이겨먹을 정도로 똑똑해서는 안되었고, 명품백은 커녕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였으며, 혹시라도 남자한테 얻어먹으면 큰일이 났다고 한다... 더치안하면 된장녀....되기 십상..(응?) “난 너한테 얻어먹지도 않고, 데이트 했어, 그러니까 난 개념녀지^^??” 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때 남자들에게 마냥 얻어먹는 것이 불편했던(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커피라도 꼭 사야 속이편했던...)맥락에 뒤에는 혹시 된장녀처럼 보일까봐라는 자기검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웩......) 여하튼 이 환장할 멸칭에 대해 곰곰히 곱씹을 수록 화가난다.

‘모든 여성은 (사고팔 수 있는) 섹스’라는 관념이 기저에 깔리지 않고선 공감대를 사거나 유포가 될리가 없는 말아닌가.. 된장녀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쓸데 없이 비싼 여성이라면, 적정한 가격의(소위 가성비가 좋은) 여성이 ‘개념녀’였던 거다. 환장하겠는 게, 개념녀가 된장녀보다 좋은 게 아닌데도 나는 된장녀이고 싶지 않아서 개념녀인 척 했던 거..... 팔 생각이 없었는 데, 이미 가격표 붙여서 팔리고 있었던 거.. 온 세계가 가부장제의 매트릭스였어......

싸고 비싼 것- 값을 매기는 건-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지는가? 남자다. 성을 사는 것은 누구인가? 역시 남자다. 된장녀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당연 남자일테다. 처음에 맞아맞아 하며 공감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을 사람들? 다 남자였겠지. 그 때 그 남들은 여자를 대체 뭘로 보고 있었던 걸까.
뭐 어렵지는 않다. “여자란? 답: 섹스해주는 기구(p.39)” 였겠지.

그런데 그때 우리는 왜 그 말에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던 걸까.
도리어 자신을 검열하며 때로는 먼저 나서서 나는 된장녀가 아님을 항변했던 걸까.

...

미러링이 없었다면, 메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p. 101)
“다른 방식은 있을 수가 없다. ... 매춘을 마치 성착취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곧 성적 비인간화가 본래의 인간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
매춘은 일탈로 여겨져왔지만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그 일탈적 성격을 잃어가고 있는데, 왜냐하면 매춘이 점점 더 정상적인 섹스 경험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춘 여성이 자신의 행위를 노동이라고 변호하고 장려할 때 그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부과된 일탈의 딱지를 중화시키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을 위한 섹스의 교환을 그저 단지 섹스로만 취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섹스’라는 명명하에 포괄되는 모든 형태의 대상화와 비인간화가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매춘의 섹스가 정상화되는 방식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상화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속에서, 섹스의 경험은 성적 고양이 있었는지 아니면 성적 비하가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어진다. 매매춘의 정상화는 자유 의지 또는 동의만이 강조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산물이다.
많은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 옹호를 지지하는 이유를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에는 매매춘의 낙인을 없애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을 옹호하는 것은 스스로와 매춘 여성 사이의 구분을 더욱 강조할 필요성에서 오는데, 특히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로 인해 성행위 자체에서는 두 집단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매춘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섹슈얼리티가 단지 매매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비매춘 여성들이 자신이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특정 여성들을 매춘부라고 부르건 ‘성 노동자’라고 부르건 간에 어쨌든 그들을 분리된 범주로 묶어두는 것이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를 통해서, 비매춘 여성들과 매춘 여성들 사이의 분리가 유지된다. ‘성인들간에 동의한 섹스’(의 매매ㅡ옮긴이)를 하는 여성들이 ‘성 노동자’라고 불린다는 것을 앎으로써, 일반 여성들은 자신들이 결혼, 데이트, 익명적 관계, 무불 성관계에서 똑같은 섹스를 하더라도 창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되는 것을 안다.”


성매매는 많은 여성문제 중에, 나와 가까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그것은 정말로 내 문제이며 본질에 가까운 문제였다.

˝나는 된장녀가 아니야 = 나는 창녀가 아니야˝
매춘과 매춘이 아닌 것의 분리를 통해 여성은 자유로워지는 가?
아니다. 아니었다.
성매매 합법화/불법화/양성화? 매춘은 동의에 의한 섹스라고?
틀렸다. 전제가 틀린 질문이다.
질문을 돌려주자.
성을 구매하는 자는 누구인가.
성은 구매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아주 중요한 통찰을 준다.
매매춘 자체가 비인간화 된 섹슈얼리티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것은 동시에 모든 성착취(‘성착취란, 여성을 섹스로 환원시킴으로써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p.17)의 토대이자 조건이 된다는 것. 그것이 많든 적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매매춘이 존재하는 한 여성의 억압(혹은 가부장제)은 존속하리라는 것. 슬프게도 한국사회는 끝없이 섹슈얼리티를 매춘화하고 있다는 것.
매춘(혹은 성상품화)이 정상인 상태로 보일만큼.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고들 한다. 가져다 대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의지의 문제겠지. 얼마전까지 나에게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 처럼 여겨졌던 것은 온국민이 다 함께 마스크를 차는 것이었다. + 그걸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 역시 매우 불편했고 불편하지만, 뭐 바이러스가 그만큼 퍼지기 쉽고 유해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너무 신기하게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조심하는 오늘들을 보며 따지고보면 불가능한 것도 없지 싶기도 하다.

사실 매매춘이야 말로 바이러스 못지 않게 해로운 폭력의 온상 같은 데, 법으로 딱 정리해버리면 안되나요? 이 책에 나오는 스웨덴 모델로다가. 현!실!적으로 온 국민이 모두 매일 마스크 쓰는 것 보다는 쉬운 것 같은 데... 아, 성구매자는 그게 안되나? 설마 마스크 쓰는 것보다 힘들라고?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하는 건 아닐 테니, 일부! 만 불편해도 참으면 되는 거잖여. 뭐? 그런데 진짜 경제가 마비될 수가 있다고? 설마? 코로나 보다 더?
에이, 그거 참 한남같은 소리다, 그쵸?


"(p.46) 사회의 성적 탐닉 상태는 남성지배의 정치적인 성과이다. 성차별주의와 함께 지배는 성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여성의 몸에 전달된다. 섹스가 대상화되고 인간이 단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매개물로 환원될 때 성적지배는 몸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이 매매춘의 기본 토대이고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매매춘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P46

"(p.93) 성 착취를 촉진시키는 사람들이 매춘과 포르노에 참여하는 여성의 선택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성폭력에 대항하는 캠페인이 여성의 동의를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접근은 모두 남성의 성적 권력을 가부장적 억압의 체계, 즉 계급으로서의 남성들이 여성을 섹스 계급으로 환원하여 종속시키고 있는 체계로부터 분리시킨다."- P93

"(p.120)성 착취는 억압이다. 이 말은 성 착취가 피억압자 집단 안에서 수용되고 심지어 장려될 것임을 뜻한다. 억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형태의 억압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 그리하여 나는 동의의 문제나 강제의 개념은 법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매매춘을 강간으로부터 잘못 분리시킨다고 본다. ... 여성들이 증명해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창녀가 아니라는 사실, 즉 그들은 섹스를 위한 몸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점점 더 "싫다는 말은 싫다는 것"(No means No)이라는 캠페인 수준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들은 강간이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이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 취급하고 있다. 해방 투쟁은 이러한 얕은 수준의 요구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성적 권력에 전면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여성들이 우리의 온전한 해방을 쟁취하겠다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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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24 0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과 멸칭에 대해 쓸까 생각하다 말았는데 쟝님이 써주셨네요. 김치녀, 된장녀가 과거의 여성멸칭이었다면 현재는 terf 가 여성멸칭이죠. 트랜스 젠더에게 위협을 가하는 성별은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남성’ 을 칭하는 단어는 없으며 누구도 사용하지 않지요. 세상은 여자를 욕하기 위한 단어를 참 잘도 만들어내요. 그 많은 남자 성착취자나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요. 김치녀를 만들어서 김치녀가 아닌 나, 를 증명하는 세상속으로 풍덩 빠졌는데 이제는 터프가 아닌 이렇게 피씨한 나, 를 증명하기 위해 또 세상은 여자들을 자연스럽게 혐오하고 분류합니다. 멸칭에 속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건 멸칭에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성주의 공부하면서 깨달은 건, 무엇을 욕으로 쓰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겁니다.

쟝님이 이렇게 완독하고 여유롭게 리뷰까지 써주니 저는 가슴이 뿌듯함으로 가득 차옯니다. 보통 폰으로 댓글 안다는데 기쁜 마음에 달아요. 저는 출근길입니다. 글 고맙고 우리는 9월 도서로 만나요!

2020-08-24 0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8-25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 읽어도 좋은 글.....
메갈이 아니었다면, 미러링이 없었다면.... 정희진샘과 똑같은 질문, 똑같은 답에 다시 한 번 박수를...
회사를 계속 다닐 수 밖에 없고, 다녀야 한다면, 우리 쟝쟝님 글 쓸 시간을 어떻게 보존할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고민 필요함

공쟝쟝 2020-08-25 19:59   좋아요 1 | URL
저의 읽기와 쓰기는 일상의 고통에서 나옵니다. 흐아아. 고통스러버...
 

일을 배우는 시기를 지나, 정말로 일을 하면서 부터는 일 빼고 별다른 생각이 안생길 정도로 일이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야하는 프로젝트들. 더 책임감을 키우고, 비판에는 귀를 열어야 한다. 전에 비하면 많이 관대해진 편이지만 어쨌든 스스로를 볶아대는 스타일이라 이래저래 압박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열심히 성장하고 능숙해지면 수월해질 줄 알았는 데. 몹쓸. 나는 잊을뻔 했다. 나를 갈아(!) 고작 ‘생존’해야 하는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것을.

“(180)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곤 했지요. ‘남들이 너를 이용해 먹지 않도록 해라. 너의 권리를 힘주어 말하되 일은 제대로 해주어라. 그네들이 너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올바르게 대하도록 요구하거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을 그만두면 된단다’.”


내가 처리하는 업무의 난이도가 높아갈 수록 위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커졌다. 일에 대한 통제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통제이기도 해서, 업무처리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이런저런 잡다한 것이 많이 섞여있는 평가의 말들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말만 들을 뿐인가. (혼도 나고 욕도 먹고) 투사가 분명한 감정 표현들도 겪어내야 하고, 실제로 요구되는 어떤 모습은 당장 고쳐야만 하며, (이게 가장 힘든 데) 평소라면 빻아서 상대도 안할 (개)소리들을 허허 웃어넘기기도 한다. 어쨌든 “일은 제대로 해준”다. 언제든지 그만두면 되긴 하지만 그게 사실 어려우니, 권리를 말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는 곱씹으면서.


*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빌런은 나의 일터에도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빌런들에 비하면 원체 대놓고 타노스급의 절대 빌런이라 나는 내심 다행이다 느꼈더란다. 이분법은 쉽고, 절대악을 굳이 에너지를 들여 이해할 필요도 없으므로. 너는 너. 나는 나. 일은 일. 삶은 삶. 당연히 걸러듣고, 원래처럼 적당히 연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것 역시 순진했다. 아무리 피아가 구분된다고 하더라도, 학대가 오랜시간 지속된다면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다는 걸.

길고 긴 5월 첫주의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날의 저녁. 일찍 자려 누웠는 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몸이 떨렸다. 내 몸이 왜 이러지? 경미한 공황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더란다. 

지금 나는 뭔가가 불안하다. 그건 대체 뭔가...? 답은 쉽게 나왔다.
“내일 일가기 싫어서.”
오랜만에 쉼을 맛본 내 몸이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튕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랑비 젖듯 스며든 나를 의심하게 하던 언어들.
잘못이 아닌 내 잘못들.

항상 피아를 의식하는 삶이라니, 언제나 전투상태인 몸이라니, 그것 역시 나에게는 몹쓸짓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울었다.
의지할 수 있다면 의지하고 싶고, 의존할 대상이 있으면 한껏 의존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게 얼마나 독이 되는 마음인지 알아서, 안돼 안돼 머리 저으면서.
혼자서 씩씩한 것은 가끔 너무 힘들어.

“(211)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은 자립의 중요한 측면인 경제적 자립성을 존중의 요구와 연결한다.예를 들어, <존중하라>에서 아레타는 “당신의 키스는 꿀보다 달콤해요. 그렇지만 내 돈도 그렇지요”라고 노래하면서 흑인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고 흑인 여성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

아직은 일터를 당장 박차고 나올 만큼의 능력이 내게는 없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만족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생각 이상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류의 방식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가까운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괴롭히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페미니즘을 통해 얻게된 생각이다. 나는 사회생활의 괴로움을 이유로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가부장제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힘들어도 열심히 일을 할 거고, 그래서 결국은 일을 잘하게 될거고, 또 그 와중에 악착같이 책을 읽을 거고, 삶을 해석하기 위한 능력을 키울 거다.

조금 울고 난 그날 밤에 나는 일기장에 두가지 문장을 적었다.
- 학대에 익숙해지지 말자.
-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213) 주인공이 자신에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의미심장하게는 자신의 무능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히 환경 제약과 자신의 한계에 구속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오로지 이전에 구획된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직접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바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법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혼동과 우연성의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자신의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서만, 유의미한 삶을 건설하는 법을 독자에게 가르쳐준다.”

흑인 페미니즘의 사상의 5장, 특히나 이 구절이 좋아서 나는 몇번이고 읽었다.
삼십살이 훌쩍 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무능을 존중하게 된 것 같다.
비록 어떤 경계를 뛰어넘지는 못했고, 유의미한 삶이 무엇인지는 오히려 하나도 모르게 되어버렸지만,
적어도 책에서 말하는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너무나도 정확한 문장을 찾았다.

“(214)[그녀는]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인물”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부서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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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5-29 0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또르르..... 쟝쟝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

공쟝쟝 2020-05-29 08:12   좋아요 1 | URL
저는 격렬한 표현이 좋으니까, 일의 환희(...그런게?)와 좌절로 하자...

다락방 2020-05-29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고통을 거쳐서 비로소 창작이 되고 또 아름다워지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쟝쟝님의 글을 보니 노동의 고통 때문에 글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몹쓸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글 따위, 필요없이 고통이 없는 삶이 가장 좋을텐데요...

쟝쟝님, 오늘은 금요일. 힘냅시다. 화이팅!

공쟝쟝 2020-05-29 08:15   좋아요 0 | URL
요즈음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느낄새가 없는 류의 고통이라......흑흑.... 오늘은 금요일 흑페상을 다 읽어야 한다!! 화륵🔥

비연 2020-05-29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회사생활의 비애와 고통은... 흑.

공쟝쟝 2020-05-29 20:51   좋아요 1 | URL
부서지지 말아요 우리, 비연님❤️

수연 2020-05-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페상 페이퍼 중에 제일 심금을 울리는! 저도 좋아서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페이퍼. 공장쟝님 힘.

공쟝쟝 2020-05-29 20:52   좋아요 0 | URL
힘이 아니날리 없는 댓글과 금요일 저녁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주 행복감만땅입니다. 수연님도 힘! (코로나 물럿거라)

감은빛 2020-05-30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터라는 건 일의 객관적인 노동강도와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나 일요일 저녁에는 우울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월요병을 견디고, 무기력한 수요일을 버티고, 금요일의 해방감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선택해왔고, 비교적 일을 즐기는 편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잘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냥 일은 일이고, 아무리 상대적으로 좋은 일터라도 일터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더라구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입장에서 늘 압박감과 우울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삶은 현대인의 큰 불행이 아닐까 싶어요.

공쟝쟝 2020-05-31 21:14   좋아요 0 | URL
해방의 금요일이 가고, 슬픈 일요일 저녁입니다. 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책읽고 글쓰는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길!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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