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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 조용하게 이긴다 우아하게 바꾼다.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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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박근혜 탄핵을 기념하면서 구매한 5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가 있다. (비싼걸 지를 때는 꼭 뭔가를 기념해서 라는 명분을 만들어 두는 편…) 퇴사 기념 맥북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기 전까지 그 아이패드로 글을 썼고, 전자책도 거의 크레마 사운드보다는 아이패드로 읽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텔레비전이 없었으므로 아이패드로 영화나 유튜브를 보면서 무튼 아주 알뜰하게 사용했다. 지금은 할미패드가 되어 충전하기 바쁘게 방전이 되지만… 앞으로 유사한 급의 정치이슈(?)가 터지지 않는 한ㅋㅋㅋ 3년은 더 사용할 예정이다. (음, 코로나 퇴치기념으로 구매하면 좋겠다?) 여하튼 당시 제법 큰 마음을 먹고 막 출시된 애플펜슬까지 구매했었는 데, 막상 사놓긴 했지만 펜슬자체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걸 괜히 샀네… 속상해하다가 펜슬 뒤의 뚜껑을 잃어버리고  별도 구매해야하는 뚜껑가격에...(실화냐) 한숨 쉬곤했었더란다. (물론 뚜껑을 3달러에 팔던 우리의 애플은 다음에는 뚜껑없는 굴러가지 않는 가벼운 자석형 펜슬을 내놓았다ㅋㅋㅋ)


작년이었나, 여느날 처럼 인스타그램을 눈팅하던 중 *#공스타그램*을 돌리다 뭔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tmi) 내가 팔로잉하는 해시태그는 딱 네개가 있는데 #북스타그램 #어반스케치 #공스타그램 #womanreading 이다. 그게 무엇인가 모르실 분들을 위해 안내하자면 공스타그램은 공부하는 책상과 필기노트를 주로 올리는 해시태그다. 추측컨대 고3수험생들과 여러 고시생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 내가 수험생이나 고시생은 아니고(😏 그냥 반백수) 그걸 또 왜 팔로잉하고 있냐면 오늘의 집 인테리어 사진 구경하는 느낌으로 깔끔한 노트필기와 정갈한 책상과 그날할 공부를 다(!)하고 형광펜으로 칠한 타임테이블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정말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좋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당시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아이패드에 깔끔하게 정리된 필기노트였다. 노트와 펜이 아니라 아이패드와 아이펜슬로 필기가 되어있는 데, 적절한 이미지를 사용한 그 우아한 자태가 눈돌아가게 깔끔하고 공부하고 싶게 생긴 모습인거라… 그래서 관련된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아이패드는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이젠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된 듯 하였다. 심지어 그냥 별다른 편집없이, 암것도 안하고 아이패드로 공부만하는 브이로그도 있었다. 가히 신세계였다. 아이패드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나도 아이패드로 공부했으면 공부 엄청 잘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기분만). 아무튼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책 읽을 때(특히 페미니즘책) 메모를 아이패드로 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영상 속의 필기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뭔가 한군데 모아짐 없이 방사형으로 펼쳐지기만 하는 페미니즘 공부를 적으면서 하니까 조금씩은 더 축적되고 쌓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졸리기도 덜 졸렸고.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면 정말 유튜브를 틀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는 게 도움이 된다. 몇 시간이고 볕 잘 드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대학생, 타지 유학생활 중 터진 코로나로 귀국하지도 못하고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 재택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집밥을 살뜰하게 챙겨 먹는 또래 직장인, 밖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베란다를 멋진 정원으로 꾸며 난생처음 보는 온갖 식물을 능수능란하게 키워내는 주부 등 사소한 순간도 자신만의 에너지로 채워가는 이들을 보노라면, 삶은 큰 의미를 발견하진 못하더라도 꾸준히 살아가는 데서 동력을 얻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닿게 된다.

-알라딘 eBook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이혜미 지음) 중에서


뭐든사면 끝까지 살뜰하게 아주 잘 사용하는 (이 집에서 내가 내 돈으로 사놓고 사용하지 않는 건 책과 에이비슬라이더 두가지 뿐이다ㅋㅋㅋ) 나 답게 그 이후로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은 주로 어려운 독서를 할 때 활약하기 시작했다. 지나고 나니까 그게 브이로그(혹은 공스타그램)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은 것이구나 한다. 어쨌든 이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평소에 브이로그를 보면서 꽤 동기부여를 받아온 사람이었다는 걸 전혀 인식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읽고나니 알겠다. 요 몇년 간, 내게 가장 효과적인 삶의 동기부여는 명사의 강연도, 자기계발책도, 지인의 뼈때리는 조언도 아닌 바로 유튜브의 브이로그였다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 아무럴 것 없는 소소한 영상들을 보면서 일상을 가꾸는 것의 중요함을 배우고, 또 만들어 왔다는 것도.  


“나는 세상을 위해 엄청난 혁신을 하겠다는 도덕 의지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됐다. 세상은 “바꾸겠다”는 선전포고가 없더라도 실천하는 이성들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한 사람들로 인해 내일은 그만큼 진보한다고 믿는다.” 

 -알라딘 eBook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이혜미 지음) 중에서


이 책은 똑똑한 영향력을 가진 서재 친구가 MZ가 궁금하여 샀다고 한걸 보고… 나도 내 자신이ㅋㅋㅋ 궁금해져서 샀는 데… 자기계발서를 증오하면서 달리기 어플 도장에 목을 매고, 주식과 코인 책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의 모순을 씁쓸해하고, 비혼과 비출산을 다짐하면서도 지구의 미래를 걱정해서 여러가지 소소한 실천을 하고 있는(… 저 조금 진심인 데 너무 소소해서 알리고 싶지는 않네요?ㅋㅋ) 나를 누가 대신 설명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렇구나. 나는 혼자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라 나역시 세대를 구성하는 일원이였구나! 뭔가 살랑 한줌 바람이 불어온 느낌으로다가 상쾌한 느낌~ (솔직히 저자는 저보다 훨씬 훌륭하게 잘 살고 계심… 서울에 아파트도 있으심… 저는 그녀보다는 훨씬 나태하고 무기력합니다만^^;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넘나 비슷해서 사실 너무 놀랐음돠... MBTI에 진심이고, 심지어 햇반 절대 안사먹는 것 까지도...?)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 같다. 워낙 86세대의 그 카리스마가 강렬했고, X세대의 그 스타일이 리쉬~했으므로, 이른바 Y세대(밀레니얼)였던 나는 20대 내내 우리 세대의 서사적 빈곤이 아쉬웠던 것도 같다. 88만원세대니, N포 세대니 하는 건 일종의 멸칭처럼 느껴졌고(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이 생각난다..), 안O수나 법O의 청춘콘서트 같은 이야기에(이제와 생각하니 참 아련…)는 괜히 어깃장을 놓고 싶었고(예? 아재여, 청춘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 더는 청년이라고 하는 것이 머쓱해진 나이에,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좀 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이준석이 청년…ㅋㅋㅋㅋㅋㅋ (!!창피하다!!)으로 과대대표되는 거는 또 너무 싫고…, 그 와중에 밀레니얼 MZ 어쩌고 너무 쏟아져 나오는 데 그게 다 마케팅 포인트같고…, 뭐 여튼!! 이래저래 밀레니얼 세대론에 좀 뚱해 있다가 또래 기자가 쓴 본격 세대 표방(물론 세대라는 성긴 카테고리화에 대해서도 저자는 회의적입니다) 자기계발(?) 에세이가 살랑~ 불어와 우리는 늬들이랑 다른데 일케일케일케 달라!!!!!!! 이렇게 짚어주면서, 근데 그는 또 너무 다행스럽게도 여성이어서… 


아무튼. 책 덕분에. 너 밀레니얼이야? 그럼 전, 네!  그렇습니다! 여기 이 책이 밀레니얼이라는 데, 이 책 어때? 그러면, 뭐 제 경험에만 한정하면 거의 88% 일치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가려운 것들이 좀 긁혔다고나? 그러므로 혜미님, 흥하세요! 꼭 흥하셔야합니다. 우리 조용하게 이기고 우아하게 바꿉시다. 그리고 난 확신해. 세상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남들과 지구에게 폐끼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결국 조용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란 걸. 

MZ세대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모든 담론과 정치·경제 권력에서 비켜나 있으면서, 때로는 오랫동안 취업을 못 하는 집안의 걱정거리로, 차곡차곡 저축할 생각은 안 하고 ‘영끌 투자’로 아파트 쇼핑에 나서는 한탕주의로, 가상화폐와 주식에 올인하느라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느낄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로 쉽게 대상화됐다. 때때로 ‘비 새는 단칸방에서 만들어가는 사랑’의 맛을 알지도 못한 채, 허영만 가득해서 결혼과 재생산까지 미루는 이기적인 세대로 치부된다. ‘가진 자들의 시선’에서다.

권력, 권한, 권위를 모두 독점한 기성세대는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의 고군분투에 쉽게 훈수를 둔다. ‘요즘 애들’이라고 뭉뚱그리면서도, 그들이 왜 이런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수년 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각자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나는 적어도 견고한 기성 질서에 굴하지 않고, ‘요즘 애들’이 사부작사부작 그리고 꼼지락꼼지락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기간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싶다. 6월 민주 항쟁이나 탄핵을 이끈 촛불집회처럼 거대한 혁명의 물결은 아니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생활 양식과 사고방식을 조금씩 우리의 감각으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말이다.

*누군가 내게 ‘혼자 사는 여성이 존엄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코어 근육과 통장 잔고’라 일러준 적이 있다.*

새벽에는 마치 ‘무소유’의 태도로 명상과 요가를 하지만, 오전 9시가 되면 월가의 트레이더라도 된 것처럼 주식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누군가는 ‘모순’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겠다. 하지만 판이한 두 행동의 기저에는 무척이나 간단하고 일관된 명제가 깔려 있다. 나라는 작은 존재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큰 구조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분투할 것. 구체제를 전복하고 신체제를 세울 명분도, 의지도, 힘도 없기에 지금의 테두리 안에서 안락한 요새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명상과 요가를 하며 비움을 실천하면서도 동시에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까닭이다.

조용하게 이기고 우아하게 바꾸는 한 편의 ‘세대 복수극’을 한번 상상해본다. 이 극에서는 주어진 질서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닦아온 일상력과 주체적 라이프스타일이 결국 우리를 우리답게 지켜줄 무기가 될 것이다.

‘요즘 애들’이 열렬히 갈망하는 것은 바로 ‘경제적 자유’다. 언제부턴가 세대의 경구로 떠오른 이 단어. 산업화 세대가 열렬히 부르짖은 ‘자유민주주의’나 글로벌 자본이 숭배해 마지않는 ‘신자유주의’ 할 때의 그 자유. 혹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중앙 집권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이들이 주창하는 그 시민의 해방감, 자유. 그러나 단어는 같지만 사상적 맥락에서는 조금 다른 ‘경제적 자유’. 앞선 자유가 구舊체제의 해체,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전제한다면 오늘날 내 또래가 정언명령으로 받드는 ‘경제적 자유’는 철저히 체제 순응적인 자유다. 고도화한 자본주의에 십분 동화되어 우위를 점하고, 평생 쓸 돈을 모아 매일을 옥죄는 구조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매우 수동적인 해방이다.

‘시발 비용’의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금융 치료’의 문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퇴근길마다 "오늘 회사에서 열 받아서 시발 비용으로 립스틱 하나 샀어"라고 친구들에게 보내던 카카오톡 메시지가 종적을 감췄다. 요즘 친구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오늘 커피값 벌었다"면서 주식 단타 결과를 공유한다. 아직 ‘사이버 머니’ 형태의 잔고를 보며 흐뭇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이다.

당신이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김종철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사회적으로 잃을 것이 많은가? 학력, 경력이 뛰어난가? 그렇게 시민의 곁에서 여성 인권 증진을 이끌었던 박원순 전 시장도 가해자가 됐는데, 도대체 무슨 ‘선의’로만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경계를 풀고 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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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30 0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은 아직 많이 젊으시군요~!! 저는 북플보고 MZ가 뭔지 첨 알았어요. 자기개발서는 잘 안읽는데 이 책은 재미있을거 같아요~!! 공스타그램 해쉬태그 팔로잉 해봐야 겠군요. 궁금 🙄

공쟝쟝 2021-08-30 01:26   좋아요 4 | URL
앗, 이 책은 에세이예요… !! 그런데 저에겐 자기개발서 같았어요..!! ㅋㅋㅋ 공스타그램 장인들중엔 04년생들도 있으니 넓은 세대 통합을 위해 ㅋㅋㅋ 추천..? 🤭

반유행열반인 2021-08-30 0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읽어주는 쟝쟝 좋다...책은 인용구 따온 거보면 참 갓 잡아올린 우럭마냥 싱싱해보이네요 ... 그치만 나는 세대론에 설득 당하지 않는가 봅니다ㅋㅋㅋ 우리또래끼리(?)도 너무 다르잖아요. 주변에 일반화 안 되는 사람만 차고 넘치나 봄...

공쟝쟝 2021-08-30 12:11   좋아요 2 | URL
무슨 댓글평이 이리 고급지나요? 갓잡아 올린 우럭이랰ㅋㅋ 전 또래집단이 공유하는 정서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나 자신은 세대로 환원되기 싫어도 86세대는 86세대로 퉁쳐부르기를 좋아한답니다 ^^

잠자냥 2021-08-30 0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젊은이, 난 오늘 아이패드 펜슬 뚜껑도 따로 사야하는지 처음 알았다네....! ㅋㅋㅋㅋㅋ 그놈의 애플놈들 상술은 하여간

공쟝쟝 2021-08-30 12:15   좋아요 2 | URL
1세대 펜슬 한정입니다. 당시 처음 출시된 거라 본인들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완전 적용하지 못하고 뒤에 꽁다리에 뚜껑있었어요. ㅋㅋㅋ 저 서재마을에서는 젊은 이인거죠? 스스로는 중년이라 여기고 있는 데... 여봐요 MZ 세대 나만 있는거 같아? 왜?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8-30 1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개럭시탭은 펜 다 닳으면 펜 촉만 갈아끼울수 있는데 아이패드는 펜 전체를 다 사야하나봐요@@

공쟝쟝 2021-08-30 12:16   좋아요 1 | URL
아이펜슬도 펜촉만 갈아 끼울 수 있어요 ㅋㅋㅋㅋ 근데 그 펜촉이 그렇게 싸지는 않습니다ㅋㅋㅋ 그러나 전 앱등이입니다. 애플만세!ㅋㅋㅋ

다락방 2021-08-30 11: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작 궁금해서 샀던 나는 아직 안읽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은 것인가..

그런데 유튭 얘기 보고 뭔가 좀 충격이네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그걸 보고 도움이 된다니.. 저는 그런 생각을, 그러니까 유튭을 보자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이 트위터 너무 싫다, 그거는 악영향만 미친다, 나는 그래서 트위터 안한다..고 하셨을 때, 하면 좋은 점도 많은데 왜 하지 않고 나쁜점만 얘기할까 생각했었거든요. 저는 유튭 하지 않으면서 유튭 나쁜 것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 같아요.

아아 역시 나란 인간.. 이제 꼰대의 길로 들어섰어...Orz

잠자냥 2021-08-30 11:09   좋아요 4 | URL
저도 다락방 님과 비슷한 이유로 유튜브 거의 안 보는 사람입니다. ㅋㅋㅋㅋ (고양이 동영상 정도만 봄)

다락방 2021-08-30 11:11   좋아요 5 | URL
저는 요가 영상만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 꼰대 대마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8-30 12:21   좋아요 1 | URL
아..... 공스타그램 모를 분들을 위해서 공스타그램 설명을 곁들였는데... 이분들은 브이로그를 안봐서 그게 뭔지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부장님.............브이로그 보세요...아, 아니다... 여러분한테 영화 5분만에 몰아보기 영상보고, 자기는 영화 다봤다고 생각하는 청년 이야기 해주면 꺄무러칠거지?

다락방 2021-08-30 12:24   좋아요 2 | URL
미안해, 젊은사람아..................................

공쟝쟝 2021-08-30 12:55   좋아요 1 | URL
훌쩍... 사과하면 어떡해요... ㅜ_ㅜ 꼰대부장님...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bgm.김윤아 ‘담‘)..

독서괭 2021-08-30 12: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날할 공부를 다 하고 형광펜으로 칠한 타임테이블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쟝쟝님 귀여우세요 ㅋㅋ 쟝쟝님의 아이패드 필기 사진을 기대하며 읽었는데 없네요..? ㅜㅜ

공쟝쟝 2021-08-30 12:23   좋아요 2 | URL
제 눈이 공스타그램으로 너무 상향평준화 되어 있어서 그런지 제 비루한 필기는 보여드리기가 부끄럽네요. 그러나.. 언젠가.. 이건 내가봐도 너무 잘 그렸다!! 싶은 날이 온다면 꼭 공개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8-31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 브이로그 본 적 있어요. 일주일간 그것만 봤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이쁘고 부지런하고 아이패드도 다 있고 근데 밥도 잘 챙겨먹어서(요거트에 시리얼에 과일/정성가득 집밥) 너무 놀랐더랬죠. 아이패드 필기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인것 같아요. 펜슬 없어서 필기 못한다는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대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쟝쟝님 우리쪽 아니고 아이패드 필기쪽으로 갈려는 거 느껴짐요. 나 서운하지 않아요 (엉엉)

공쟝쟝 2021-08-31 19:53   좋아요 0 | URL
공부 브이로그 하는 사람들 막 05년생 이런다고요... ㅜ_ㅜ 저 05학번인디요.... ㅜ_ㅜ 그쪽으로 갈 수는 없어요.. 차마 그를 수는 없어요..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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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라면 출근 지하철에서 짓눌려지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서 각종 영양제들을 입에 털어 넣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씻고 청소를 하고 간단한 요리를 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밥하기 싫으면 나가서 먹는다. 나가서 먹는 날엔 그냥 도서관으로 간다. 아닌 날엔 일이 있으면 일을 처리하고 것도 아니면 뒤적뒤적 앞으로의 일을 위해 공부할 것들을 공부한다. 커피를 직접 내려서 텀블러에 담아 에어컨 빵빵한 도서관에 간다. 이거 좀 집었다 던지고 저거 좀 집었다 또 던지고,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데 나만 백수 같다. 아 나만 백수 같은 게 아니라 나만 백수 맞지. 

모두들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문제집을 풀며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도서관에서의 나는 현재만 산다. 현재만 사는 것이 너무 대책 없이 느껴질 때는 재테크 금융 코너를 돌아다녀 본다. 뒤적뒤적 이내 생각한다. 아, 돈, 지겨워…. 앞으로는 고작 두 달 남았다. 나는 지금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가장 궁금한 주제나 그냥 읽고 싶은 걸 읽는다. 슬렁슬렁 훑다가 그 상태로 십 분쯤 지나면 좀 열심히 읽는다. 한쪽에 노트 펴고 필기하면서 읽는 책들도 있다. (공부하는 느낌내기~) 어느새 주변에 아이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방과 후?) 글씨가 살짝 피곤해진다. 저녁 뭐 먹지를 고민한다.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보고 이른 저녁을 만들어 먹으면서는 쉬엄쉬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좀 보다가 낮잠을 잔다. 먹고 바로 자면 소 된다는 데, 먹으면 잠이 솔솔 온다. 일어나서 설거지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고양이가 찝적대고 고양이랑 좀 놀아주다가 여덟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때로는 좀 더 늦게) 달리러 나간다. 사람들이 트랙을 설렁설렁 돌고 있다. 보여주겠어. 중간에 지쳐하지 않고 세 바퀴쯤은 같은 속도로 뛰는 단련된 나의 모습을~ㅋㅋㅋ 웜업! 트랙을 지나 달려보고 싶은 곳으로 뛰기 시작한다. 이제 쉬지 않고 삼십 분을 뛸 수 있다. 물론 뛸 때는 항상 힘들다. 힘든 데 좋다. 우리 인체의 심장은 적응력이 좋다고 한다. 안 쓰면 되려 무뎌진다고 한다. 삼십 분 달리기에 적응된 내 심장은 속도를 높이면 아직 적응 안됐다며 바운스~!! 띵동. 알람이 울리면 손바닥을 펴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찐으로 심장이 터질 거 같을 때 혈액이 핏줄 사이에 낀 콜레스테롤을 팡팡 무찌르며 흐르는 상상을 한다. 세로토닌 뿜뿜. 기분 너무 좋은데 숨이 가빠 당장은 죽을 거 같다. 흐어엉. 별이 총총 달도 떠있다. 오분 뛰고 삼십초 질주하고 일분 걷고 반복, 어느덧 다섯 번 완료 삼십 분. 또 예의 무릎이 흐느적거린다. 스트레칭 더했어야 했나. 괜히 어깨와 팔을 휙휙 휘저으면서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온다. 이걸 격일로 한다. 안 달리는 날은 산책. 대략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 씻고 소파에 착석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좋아하는 노래 틀어 놓고, 맘대로 읽는다. 어떤 의무감도 없다. 노트에 맘대로 끼적인다. 자세도 맘대로다. 내 고양이는 바닥에 누워있다. 맥주 한 캔을 아주 아껴서 홀짝이며 읽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읽기도 한다.


“(40) 기분은 평온하다. 나는 찢어진 레깅스, 티셔츠, 목욕 가운을 입고 있다. 내개는 거실 소파에 흡족하게(그리고 말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전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몇 통 와 있다고 불이 깜박이는데, 내가 일부러 받지 않은 전화들이고 내일이 되어야 응답할 생각이다. 이때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단순한 사실적 진술 하나가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을 듣는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것은 정말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만화경 같은 변화랄까, 나 자신에 대한 기정사실들이 저절로 모습을바꾸더니 새로운 질서에 따라, 놀랍고 신선한 시각에 따라 재구성 되어 내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되는 듯한 순간*이다. 오래된 생각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뀐다. 기존의 정의가 새로운 전개를, 새로운 분위기를, 새로운 의미를 취한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어제 —한 시간 전, 10분 전이라도 마찬가지다—내게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고 말했다면, 나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는 독신 여성이에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서른여덟 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이말이 슬픈 노처녀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내 목소리에 변명의 기미가 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휴,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지금이면 진작 결혼했어야 하는 건데, 하고 말하는 듯이 약간 멋쩍게 어깨를 으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시리얼 그릇을 앞에 두고 서 있던 순간, 내 정신의 만화경이 살짝 돌아가더니 변명은 흐릿해지고 대신 새로운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 새로운 장면은(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까?) 행복과 아주비슷해 보였다. 행복하게 혼자라고? 은둔하는데 명랑하다고? 그런 모순이 어딨어! 그건 불가능해! 안타깝게도,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 시간의 내가 얼마나 명랑한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ㅎㅎㅎ 알 필요 없지만 자랑하고 싶어서 글로 써보는 중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두시반(세시에 잠든다)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든 지 제법 되었다. 사실 백수 초반에는 엄청 헤맸다. 하루가 너무 짧게만 느껴졌고, 술 마시고 늦게까지 놀다가 열한시 다 돼서 일어나고. 하고 싶은 건 많은 데 뭐부터 해야 할지, 읽고 싶은 건 또 엄청난 데 막상 읽다 보니 피곤하고, 달리기도 밤에 했다가 아침에 했다가. 그러다 베테랑 백수 친구가 알려준 오후에 안배한 낮잠의 시간이라는 팁은 하루를 아주 길게 만들어 주었다. 예전이라면 퇴근하느라 고단할 시각에 잠을 자는 것이다(!) 피곤할 일도 없기 때문에 잠도 많이 안 온다. 

삼십 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달리고 씻고 나면 그때부터는 하루 중에 가장 정신이 말똥말똥 해진다. 대부분 그냥 읽고 싶었던 것들을 읽고 정리하는 데만 몰두한다. 어제 다 읽은 책을 오늘 정리한다. 그런데 어제 읽었는 데 왜 또 새롭게 읽는 것 같지? 읽은 책을 한번 더 읽는다. 읽다가 멈춘다. 어? 나 이 책 좋아하네. 읽은 책을 한번 더 읽는 것이 굉장히… 좋다. 그러다 삘받으면 독후감 페이퍼를 쓰는 날도 있는 데, 삘은 잘 오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 다닐 때 글을 더 후다닥 써재꼈던 듯. 

가끔 비가 와서 바깥을 뛰거나 산책할 수 없는 날은 혼자서의 고립된 시간들이 무한하게만 느껴진다. 널찍 널찍하게 널어놓은 시간들 사이로 보글보글 잡생각들이 끓어오르면 스마트폰 알람을 확인한다. 연결되어 있는 느낌. 하지만 실컷 연결될 수는 없는 느낌. 실컷 연결되어 있길 바란다는 건 내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나의 심심함이 조금 미안하게도 느껴진다. 길어야 넉 달, 아마도 석 달이면 끝날 여유의 시간인 건데 난 왜 지금이 송구스럽나.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일기를 쓴다. 내용은 대체로 오늘 달리기 페이스와 이미 혼자인데 왜 혼자인 것이 두렵다고 생각하느냐와 난 뭐가 되려고 이러나, 뭐라도 될 거고 이미 무엇이다에 대한 푸념들. 사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인식들.

문득문득 올라오는 공상의 시간들도 있다. 사실 공상은 익숙하지 못한 범위라서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것도 백수의 특권이려니 하면서 대놓고 공상을 시전해 보지만,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들로 돌아온다. 너무 심각한 자의식 아닌가 하면서도, 생각할 것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은 어찌나 홀가분한 경험인지. 지금의 혼자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186) 내가 외로움을 경험하는 방식에는 늘 예민한 자의식이 함께한다. 내가 방의 다른 곳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실시간 해설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 내가 커피를 만들고 있네. 여기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네. 여기 내가 집에 혼자 있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내면의 영상이 너무 공허하고 황량하게 보인다는 점 때문에—외로움이 이토록 무섭게 느껴지고 내가 본능적으로 달아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당장 달아나서 새 신발을 여섯 켤레 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대신 소파에 앉아서 생각을 했다.
*내 경우에 이 공허함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족스럽거나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나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예의 실시간 해설을 유심히 들어보면, 그 목소리는 더 크고 무서운 질문들을 던진다. 커피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이 사람은 누구지? 이 사람은 무엇에서 삶의 쾌락과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두렵고 공허한 시간을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으로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하지? 이런 것들은 어려운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을 앞질러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이 질문들에 답할 기회를 회피해왔다. 물론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새 신발의 치유력을 열렬히 증언하는 바다. *하지만 더 큰 질문들을 피하기만 했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돈을 펑펑 쓰면서 종종거릴 때, 보통은 내가 평범한 일요일을 계획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느낌이 강화될 뿐이다.” 


어쩌면 나는 캐럴라인 냅의 말대로 내면의 어떤 공허함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혼자 두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공허하지 않기 위해 사람을 옆에 두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한 만족감과 불만족을 느끼고 미래를 생각하고 또 나의 현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느라- 지난 삶을 다 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을 이유로 구실로 삼으면 지금 못마땅한 내 모습은 내가 아닌 것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는 데 급급하여 타인들을 재료로 삼았다. 모든 것을 떨쳐낸 지금, 세상에 나와 고양이밖에 없다고 여겨도 좋을 지금, 먹고사는 문제를 두 달 뒤로 유보해 놓은 지금. 나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마주 본다. 큰 질문들을 물어본다. 

나는 누구지?

열심히 안 살았던 건 아니었다. 아니, 항상 열심히 살았다. 문제는 나 자신을 잘 몰랐던 것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세상을 잘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는 또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문제였을지도. 지금은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세상도. 사람들도. 지난주에는 이것이 현재의 내가 지키고픈 거의 유일한 윤리적 태도라고 적었다. 대상이 불가해한 존재이므로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내가 윤리적 태도라고 삼은 어떤 삶의 방식은 —안다, 모른다 단정 짓기 전에— 내 인식론에 대한 점검이다. 음. 말이 어렵다. 시간과 여유가 생긴다면, 그것이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더욱더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꼬투리 잡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기. 그러기 위해서 시간과 여유를 반드시 마련하기. 나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다른 중독(알코올, 담배, 관계, 스마트폰, 연애)으로 달아나지 않기. 이 정도의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제대로 마주 본 공허와 외로움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깊이 생각하는 것에는 —때로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의심하면서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심리적 여유가 필요하고, 또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을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 심리적 여유, 물리적 고독은 굉장히 비싼 거다. 이 비싼 것들을 불안함 없이 누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해왔는가. 퇴직금 소중해. 실업급여 소중해. 내 집 너무너무 소중해. 지금의 나는 이 것들을 풍부히 누린다. 누리는 것도 연습과 연마가 필요했다. 놀아도 되는 시간과 물리적인 고독을 얻었는 데, 심리적인 여유를 갖는 것은 도통 수월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내내 나는 대부분 불안과 싸워왔고, 불안이 삶을 굴리는 동력이기도 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불안을 지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 가. 계룡산에 올라가 머리에 폭포라도 맞아야 할 판이었다. 얼마 전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을 마인드 맵에서 벅벅 지우고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들. 적고 나니 불안들이 차분하게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이젠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욕망을 살아야겠다. 불안에 쫓겨다니면서 자책하며 살지 말고, 내 능력과 자원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겠다. 불안으로 삶을 굴려온 나로서는 (현실적) 욕망이 동력인 삶이 넥스트 미션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욕망을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수준이다.


“(219) 불안이 다가오면, 당신은 생각한다. 내가 이래서 술을 마셨던 건데, 슬픔이 밀려오면, 생각한다. 내가 이래서 술을 마셨던 건데. 분노나 자기 의심이나 자기 혐오가 일어나면, 생각한다. 내가 이래서 술을 마셨던 건데. 중독은 누가 뭐래도 자기 보호 효과가 뛰어난 방법이다. *중독은 대처 기제이고, 강렬한 감정들에 대한 해독제다.* 그러니 우리가 중독을 내려놓은 뒤에는 그동안 중독으로 마비시키고변화시키려고 애썼던 감정들이 모조리 표면으로 부상하기 마련이다. 가끔은 급류처럼 덮쳐서 버거울 지경으로, 이것은 자명하고 불가피한 이치다.”


혼자 있는 나는 굉장히 자주, 아니 거의, 이십 분에 한 번 꼴로 멍을 때린다. 고양이를 쳐다보거나 창밖을 쳐다보거나. (지금 도 멍- 때리다 말고 글을 쓰고 있다) 멍-에 너무 오래 잡아먹히면 안 된다. 뭔가 심심해지고, 졸려지고, 비스듬해지다가 핸드폰을 하게 된다. 백수에게 스마트폰은 정말 나쁜 물질인 듯. 검색으로 불안을 떨구려는 성향이 있는 나는 중독-디톡스 등에 대한 검색을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참, 드링킹을 읽고부터는 취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술 마신 나를 좋아했는 데, 술 마신 내가 좀 싫어졌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출근이 없으므로 술을 입에 대면 절제를 못했다. (정말 싫지만 고도 적응형 알콜중독자, 임을 인정하게 된 듯하다) 아무 일 안 하고 숙취와 싸우기… 그건 좀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경험이었다.

나도 내가 싫지만 왜일까. 술을 무조건 바닥을 본다. 소주? 한병이든 두병이든 세병이든… 바닥을 본다(꽐라 잼) 와인? 바닥을… 본다…(숙취+가산탕진 잼) 다른 독주와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안 마셔봐서 잘 모르고 어차피 바닥 보려고 먹는데 비싸면 무슨 소용이냐 싶은… 그래서 주종은 보통 맥주다(친구들이랑 마실 때는 나만 쏘맥)… 솔직히 말하면 맥주 한 캔으로는 간에 기별이 안 간다… 문제는 네 캔 만원을 사 오면 네 캔을 홀랑 다 깐다는 거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미치도록 술이 땡길 때가 있다. 그런 날을 위해 냉장고 안에 술을 떨치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마트에서 술을 살 때가 책을 고를 때보다 더 힘들다. 네캔 만원을 살 것인가, 딱 한캔 혹은 두캔 인가. (안사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냐) 나 자신을 대상으로 한 숱한 실험의 결과로 인해 —술이 쟁여진 상태에서의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주3회 바프 카라멜 솔티드 땅콩앤 프레첼(ㅜㅜ바프사랑해, 와사비 맛도 좋아요)과 750ml 캔으로의 타협하였다. 사람들과 함께 마시지 않고 더 사러 나가지 않으므로 취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요즘은 밤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술 약속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부모님과 복닥복닥 열흘을 지내고, 잠깐 프로젝트가 생겨서 닷새 정도 일을 했고, 친구와 함께 피카소 전시를 보러 간 것 이후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피카소 전시는 6/9일. 오늘은 6/24일. 약 보름의 시간 동안 혼자 지냈고, 생각해보니 이번 주는 입을 한 번도 열지 않은 듯. 월요일 아침에 엄마랑 통화한 것이 살아있는 인간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나의 카톡 생활은 하루 평균 9분. 책을 열심히 읽고 있어서 북플을 좀 자주 하긴 했지만 sns도 안 하는 데… 자각 조차 하지 않은 채로 히키코모리와 다름없이 지내다니, 이 몸의 혼자력이 새삼 놀랍다. 외로웠냐고? 이건 확실히 아니다. 외로웠으면 약속을 만들었을 테니. 심심했냐고? 오늘, 조금..? 문제는 아까 금요일의 약속이 취소되었는 데 기뻤다는 거다.


“(45) 내가 부적응자라는 낯익은 괴로움이 느껴졌고, 우선 순위와 사회적 가치에 관한 의문이 무의식을 긁어대는 게 느껴졌다. 홀로 있음의 폭넓은 스펙트럼 중에서도 *나는 극단에 기우는 편이다.* 나는 혼자 살 뿐 아니라 혼자 일하므로, 하루 종일 타인에게 “안녕하세요” 같은 말조차 건네지 않고 지내기도 한다. 하루에 나눈 대화가 동네 스타벅스에서 말한 다섯 마디, “카페라테 라지로 한 잔 주세요”가 전부일 때도 있다. 나는 또 혼자 운동하고, 혼자 장을 봐서 혼자 요리하고 먹고 TV를 보고, 개를 논외로 친다면(나는 그러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밤에도 혼자 자고 아침에도 혼자 일어난다. 대체로 이런 상태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지내지만 그냥 이런 거니까 체육관에서 그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그의 삶을 생생하게그려보았더니(그에게는 체육관 옆 스테어마스트에서 운동하는 단짝 친구가 있을 테고, 회사 동료들이 있을 테고, 집에는 약혼자가 있을 테고, 결혼식에 올 친구들과 친척들이 200명쯤 있을 테고, 그로부터 이삼 년 뒤에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내가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나만의 어둡고 외로운 동굴로 조용히 돌아가는 돌연변이 종족처럼 느껴졌다….”


나는 스타벅스도 안 가는 데… (커피도 집에서 내려마심) 이번 주엔 가난해져서 어쩐지 꼬박꼬박 밥도 만들어 먹었다. 지금까지 나의 일상을 이렇게 낱낱이 적어내려 온 것을 지루해하지 않고 당신이 읽었다면 아시겠지만, 정말인지 지금의 내가 기꺼이 겪고 있는 이 고독은 명랑하고 충만한 경험이다. 어… 나 혼자 있는 거…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했네? 체질이었을지도…?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혼자 잭 리처를 읽으며 낄낄 거릴 때처럼, 남들이 두려워하는 외로움을 아주 실컷 쌓아놓고 지내는 중인데도 되려 실컷 충만하다니, 어쩐지 음흉한(!) 쾌감이 든다. 어쨌든 진짜 은둔생활 15일 돌파 기념으로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다시 읽다가 이걸 썼다. 다시 읽으니, 지금 내 상황과 똑 닮아 책에 별 다섯개를 아니드릴 수 없었다. 숱한 관계의 헛발질을 거쳐 비로소 자기 자신과 잘 지내게 된 캐럴라인 냅의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나 역시 나와 더 잘 지내고 싶어 진다. 혼자가 외롭다고 느껴질 때, 무언가에 중독되어 또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싶어질 때, 내가 취약해진 상태라는 느낌을 받을 때, 그녀의 에세이를 다시 찾아 쓰다듬으며 읽겠다. 


(49~50)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가 내게 아무도 사귀지 않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때, 나는 혼자라는 상태에 절망하고 혼자 있는 것은 무섭고 열등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주말에 계획이 없다는 말에 친구 웬디가 불편해하는 것을 볼 때, 나는 한때 내가 아무 계획 없는 시간을 얼마나 겁냈는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 안의 감정이 밖으로 나오도록 여유를 주는 일을 얼마나 어려워했는지 새삼 떠올린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만난 여자처럼 사람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수시로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 *나는 마치 타인과 결부되지 않은 나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듯이 남들과의 관계로만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애썼던 고통스러운 시절을 떠올린다.*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 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 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하고도 소통하거나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안겨주는 작은 성취감. 나는 말했다. "이건 선택의 문제, 스타일의 문제야. 그리고 나는 이 스타일이 편해."

-🤭 안도감에 너무 익숙해져서, 인간과의 접촉이 점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 P43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가 물어야 할 "왜?"는 "왜 혼자 지내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으로 바뀐다. *"왜 혼자 지내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늘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활의 속도와 리듬에서 *사치스러운 안도감 같은걸 느꼈다.* (...) 나 자신의 선택이라는 이유밖에 없더라도, 나는 내 난장판을 다스리는 자이고, 내 텔레비전 리모컨의 왕이고, 중요한 일이건 엉뚱한 일이건 내 생활의 모든 세부 사항을 손수 쓰는 작가다.

-🤭 그러게. 지난 주에 통화했던 지인님한테 물어볼 걸. 왜 혼자지내지 않죠?ㅋ 난 계속 내가 괜찮다고 항변하기만 했다. 젠장. - P47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프랑스까지 헤엄쳐서 가려고 시도하는 것 못지않게 버거운 일로 느껴진다.*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 유지.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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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5 15: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스- ˝숙취 가산탕진잼˝ 이건 저의 라이프?! 네 캔 만원 사놓고 홀라당 까먹는 것도 저의 라이프! ㅎㅎ 심지어 저는 더 사러 갑니다... -_-;; 요즘 울 동네 마트에선 버드와이저 750ml 한캔에 2500원이라서 이거 네 캔 사놓고 또 다 먹는다는... ㅠㅠ 내가 맥주만 끊어도 돈 많이 모을 거예요. 아마도.. ㅠㅠ 근데 왠지 오늘도 편의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공쟝쟝 2021-06-25 16:28   좋아요 5 | URL
그렇게 말씀하시니 ㅜㅜ 오늘쯤은… 아… 정신줄 놓고 싶다 ㅠㅠㅠ 하지만 참아볼 거예요.. 근데 그마트 어디에요? 저는 3500원인데… 뭐 천원이나 비싸…

잠자냥 2021-06-25 16:43   좋아요 3 | URL
롯*마트인데... 정확히는 롯*슈퍼. 동네에 있으면 한 번 가보세요. 전체적으로 다하는 거 아닐까요. (술까지 권한닼ㅋㅋㅋㅋ)

공쟝쟝 2021-06-25 17:00   좋아요 2 | URL
와 나쁜 g*… 같은 대기업임시롱… (제가 얼마전에 매그너스 애플을 마셨는데요 ㅋㅋㅋ 사이다더라고요?? 술을 함께 권한닼ㅋㅋ)

유부만두 2021-06-25 19:03   좋아요 2 | URL
구스 마셔보셨습니까? (조용히 사라진다)

공쟝쟝 2021-06-25 20:13   좋아요 1 | URL
구스 구스 구스 (잘적어둔다)

유부만두 2021-06-25 20:18   좋아요 1 | URL
구스도 두 가지 맛이 있습니다. (구별 못함) 캔은 두 가지 색입니다. 연두랑 노랑. (다시 조용히 사라진다)

잠자냥 2021-06-25 22:20   좋아요 1 | URL
구스 둘 다 당근 마셔봤지요. ㅎㅎㅎㅎㅎ 별게 다 자랑이다 ㅠㅠ (하나는 IPA, 하나는 밀맥주 계열이에요)

nasom 2021-06-25 16: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독했어요... ㅠㅠ 명랑한은둔자를 처음 읽었을때와 비슷한 소름이 돋았습니다😭 언젠가 찾아올 백수생활에 길잡이가 되줄 글이에요ㅠㅠㅠㅠ 제 로망을 실천하고 계셔서 부럽습니다 ㅠㅠ

공쟝쟝 2021-06-25 16:28   좋아요 2 | URL
알찬 백수생활의 대미는 “낮잠”에 있다는 것 기억하세요 ^^

붕붕툐툐 2021-06-25 17: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얘기했죠~ 공쟝쟝님은 제가 가장 바라는 삶을 살고 계시고, 게다가 잘 살고 계셔서 완전 멋지다고요!!

공쟝쟝 2021-06-25 18:37   좋아요 3 | URL
붕선생님께는 방학이 있지요? 안식월 한달 만들자, 자 저의 루틴을 알려드렸으니 이번 여름방학에는 함께 (아 그때 즈음엔 저도 일을 하고 있겠군요 ㅜㅜ) 광대하고 게으르게 지내봅시다!

Falstaff 2021-06-25 17: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하여튼 알라딘엔 글 좋은 고객들이 넘칩니다. 넋놓고 읽었어요!

공쟝쟝 2021-06-25 18:40   좋아요 5 | URL
하여튼 이렇게 고품질 고객들을 잔뜩 들여놓고도 뭔가 업데이트(북플 너무 불편하고/서재는 이것저것 삐꾸가 많아)에 소홀한 너란 알라딘. 도도해서 맘에 들어 (찡긋!)

유부만두 2021-06-25 19: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욕구들’을 읽었어요. 냅 으로 통한 (낮잠도 냅) 우리.

공쟝쟝 2021-06-25 19:43   좋아요 3 | URL
얽ㅋㅋㅋ 그러고 보니 냅!! 저 욕구들 ㅠㅠ 아끼고 있어요 ㅠㅠ 냅이랑 해어지기 싫어. ㅠㅠ

새파랑 2021-06-25 1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맥좋아하시는 공쟝쟝님은 술잘알이신듯~!! 보드카에 탄산수 섞어 먹어도 맛있어요 ^^
이 책 저번에 빌리고 나서 못읽고 반납했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공쟝쟝 2021-06-25 19:44   좋아요 3 | URL
훗 소주에 탄산수 섞어드셔보세요 . 레몬 있으면 좀 뿌리고요 ㅋㅋ 보드카?? 훗 ㅋㅋㅋ

새파랑 2021-06-25 19:46   좋아요 3 | URL
아!..맞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는지 ㅡㅡ

공쟝쟝 2021-06-25 20:12   좋아요 3 | URL
어디 누가누가 맛난거 잘 마시나 술자랑 한번 해볼까요? ㅋㅋㅋ 그치만 파랑님 저위에 폴스타프님이랑 잠자냥님 앞에서 우리는 살짝 비껴있읍시다..

Falstaff 2021-06-25 20:40   좋아요 5 | URL
아, 다른 증류주는 몰라도요, 역시 보드카는 스트레이트가 진립니다!!!!
게다가 가격도 좋잖아요. 마트에서 흔히 보는 러시아 보드카 앱솔루트도.... ㅋㅋㅋ 저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없어서 아까 마셨다는 거 아닙니까. 아마 그래서 카렐 차페크가 <압솔루트노 공장>...이라는 작품도 썼다지요? ㅋㅋㅋ 아님 말고.
알라딘에서 비껴 있겠다고 해도 그게 비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6-26 13:51   좋아요 1 | URL
그 그래 !! 보드카라면 스트레이트로 바닥을 보진 않겠지!!!!!!!! 도전… 인건가? (이게 대체 뭔 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syo 2021-06-25 20: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훗..... 베백친. 나란 남자🤦

공쟝쟝 2021-06-26 13:51   좋아요 1 | URL
베백친 유용해!!!!!!!!!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 우울증을 이해하고 견디기 위한 엄마와 딸의 혈투
최지숙.김서현 지음 / 끌레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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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먼 것은 너무 멀어서, 너무 가까운 것은 너무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때로는 멀리 그리고 때로는 가까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엄마를 데려다줘도 내 엄마와는 바꿀 수 없을 만큼 (대다수의 딸이 그러겠지만)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의 마음을 안다지만 당분간은 엄마가 될 리 없을 것 같으니, 엄마의 마음이 아닌 딸의 마음이 가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내가 가진 마음의 용량이 가능한 만큼 사랑한다.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를 넘나들며 엄마를 잘 보려고 노력한다. 

법이 정하는 성인이 되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개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공평하고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엄마는 모르겠지만(아마 알겠지만), 나는 그랬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와 정말 많이 싸우기를 거진 5년, 지난한 악전고투 끝에 (역시 내 마음속에서) 화해했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독립해서 / 엄마와 대등한 존재로서 / 엄마와 다시 사귀는 것 / 은 곧 내 삶을 사는 것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엄마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비겁한 욕망과 이별하는 것이었다. 더 거칠게 말하면 엄마한테 사과받기를 포기하는 것이었고,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중단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이 엄마를 사귀는 중이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히 여긴다. 가깝게 보고 멀리 본다. 장점을 보고 단점을 본다. 공정하게 생각하고 배려한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내 행동을 점검해본다. 안 해본 대화들을 나눠본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엄마에게 주목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알아가고 있는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딱 보편적인 엄마들 만큼의 잔소리(시집가 공격)와 걱정을 놓아서는 안 되는 엄마의 건강 상태까지 포함하더라도 지금의 엄마에 매우 만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고 점점 더 그래 진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조금 부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있긴 있다. 그건 책 읽는 엄마다. 조금 더 욕심내면 글 쓰는 엄마. 어릴 때 잠들기 전까지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말고, 책을 읽는 엄마를 본 기억이 없다. 사춘기 시절 공부 잔소리(별로 심하지도 않았다)에 “그러는 엄마는 왜 책 안보냐”고 따졌을 때, 엄마는 “나는 노안이 와버렸어!”로 응수했다. 그 대답이 어찌나 충격이었던지 뇌리에 생생히 박혀서, 이십 대 후반부터 내 쓸데없는 걱정 중 하나는 노안이다.

종종 책 추천을 해주는 모녀 관계를 보면 놀랍다. 아, 모녀 관계에 읽기와 쓰기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신기하다. 나라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거부의 제스쳐였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엄마가 책 읽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텔레비전 만이 아닌 다른 노후의 여흥 거리가 있길 바라는 거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드린다. 시골집에 넷플릭스를 설치해드리고, 유튜브를 알려드린다. 당연히 엄마는 엄마의 방식이 있었다. 유튜브로 다육이를 검색한다. 몸고생을 많이 시키지 않는 식물들을 키우면서 예뻐 죽겠다고 한다. 딸들은 자식을 넷을 키우고도 키울게 남았냐, 그쯤 하면 양육 중독 아니냐고 놀리고 엄마는 중독 맞으니 손주를 내놓아라 한다. (아이고)

***

이 책이 이미 성인인 딸의 우울증에 엄마의 책임이 있었다는 식으로 흐를까봐 내심 걱정했다. 다행히 그렇지도 또 아주 그렇지 않지도 않았다. 깊은 사랑을 가진 - 조력자로서의 자세, 딱 그만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 함께 가기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사랑의 방식을 서로 조율하는 이야기.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에세이는 아니었다. 

읽으면서는 엄마의 마음에 이입을 할 것인지 딸의 마음에 이입할 것인지 입장을 딱히 정하지 못해서 곤란했다. 굳이 정하고 읽을 필요는 없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읽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주되는 글쓴이가 엄마라서 엄마의 마음으로 책을 읽을 때는 속을 몰라주는 것 같은 서현 씨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나 

“(P.107) 서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겁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들이 연주회장을 빌려 작은 음악회를 갖기로 했었지요. 서현이는 선생님과 곡목을 정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연습했습니다. 공연 일주일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중간에 곡목을 한 번 바꿨던 서현이에게 제가 지나가는 말로 “엄마는 원래 치려고 했던 곡이 더 좋더라”라고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서현이는 공연 당일, 생각보다 넓고 관객이 많던 무대 위에서 오른손으로는 ‘연습했던 곡’을, 왼손으로는 ‘원래 치려 했던 곡’의 반주를 연주했습니다.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저지할 때까지,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저도 서현이가 연주한 불협화음의 실체를 알았고요.
때로 궁금합니다. 제가 서현이를 양육한 방식과 딸의 우울증에는 얼마만큼의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양쪽의 인과관계가 생각보다 더 촘촘한 듯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서현이가 먼저 자리를 뜬 놀이터 그네 위에서, 아무리 애써도 답을 낼 길 없는 문제 때문에 저는 조금 많이 울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울었다) 딸 서현씨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엄마의 곡을 다른 손으로는 내가 쳐야 하는 곡을 연주하는 사랑. 결과적인 불협화음. 아직 자라고 있는 중인 아이의 마음은 저처럼 연약하다. 그런데 우리는, 또 나는 대체 어떻게 저 시절을 거치고 통과해서 나의 곡을 연주하는 진짜 어른이 되게 된 걸까. 진짜 지금 연주하는 곡이 내 곡이긴 한가? 그렇다고 치면,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왜, 언제, 나를 나 자신으로 인식하고 나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 걸까. 그게 물 흐르듯 저절로 되는 사람들도 있나. 아니 세상이 그게 ‘자연스럽게’ 되도록 구축이 되어있단 말인가? 나만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왜 다들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 같지? 어떻게, 정말인지 어떻게.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모두들은 깨우치지 못했을 거다). 엄마가 돼봐야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세상은 쉽게 말하지만,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 이것은 배운 적이 없다. 덧붙여, 엄마 역시 배운 적이 없을 테다. 자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 말이다.

“(P.37) 자신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는 딸을 믿고 지지해준 엄마였니?’ 하고 말이지요. 머릿속에 핑곗거리만 가득한 걸 보니, 답은 ‘그렇지 않다’ 인가 봅니다. 애써 감춘 민낯을 들킬까 봐 두려워 선생님 앞에서 그처럼 경직되고 울컥했나 봅니다. 지금 딸이 겪는 고초가 행여 엄마의 모자람 때문은 아닌지, 저는 불현듯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맙니다.”

딸의 우울증에 엄마의 양육 방식이라는 몫이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주양육자와의 관계 문제가 한 인간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저자가 느끼는 죄책감이 온당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 죄책감의 아주 많은 지분을 적어도 90% 이상의 지분을 사회가 나눠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10프로 미만의 적은 지분 안에서 아빠 역시 엄마와 같은 무게와 농도로 죄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수치화할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 없는 영역임은 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계량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한 사람의 탓(주로 엄마)을 할 수 있게 되어버리는 거다. 그게 너무 답답하고 슬프다. 

하지만 지금의 조건에서 결국 서현 씨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력에 엄마인 저자의 몫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사회가 만든 상처(학교폭력, 외모차별, 성차별 등등)의 치유에까지도 엄마의 몫이 있다고 하는 거 진짜 너무 엄마한테 가혹한 거 아닌가 싶다. 보호자에 양육자에 가장에 교사에 보디가드에 치유자에 상담자에 친구까지… 왜 다 엄마가 해야 하는 건지, 심지어 엄마들은 그렇게 자식에게 묶여 있으면서도 자아의탁까지 자식한테 안 하고 선 긋는 것도 저들 알아서 해야 하는 거다. 사회 이딴 식으로 거지같이 구성할 거면 엄마 자격증제 도입해야 한다. 스펙 쌓듯 뭐 몇 점 연수 몇 번 하고 난 뒤에 훌륭해짐 인증받은 다음에 엄마 해야지, 이게 뭐냐고. 왜 엄마들만 못살게 구냐고, 암 것도 모르고 엄마를 사랑하며 자라나는 애들은 또 무슨 잘못이냐고… 

“(P.72) 엄마가 나를 도와준 만큼 잘 자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두렵다.
그렇지만, 나는 새벽 2시에 내 방문을 여는 엄마가 싫었다.
내 실패와 성공을 엄마의 것으로 생각하는 그 부적절한 마음이 싫었다.
엄마와 내게 부족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알맞은 선을 긋는 일이었다.
어디까지가 엄마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른 채 함께 녹아내리는 대신 우리는 선을 그어야 했다.
서로의 삶을 더 존중하기 위해서.”


견고한 가부장제와 엉망인 사회 속에서 마음속의 단단한 선을 긋는 것. 혹은 내가 치고 싶은 곡과 엄마가 치고 싶은 곡을 정확히 갈라보고 단호하게 내 곡을 쳐가는 것. 당장은 가능한 개인들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고, 말이 쉽지 나는 5년 넘게 걸린 것 같다. 절연을 (혼자) 각오하고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고, 중간에 엄마가 아프시면서 미칠 것 같은 날들도 있었고… 

***

요즘 나는 엄마를 새롭게 사귀는 중이고,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는 자꾸자꾸 등장한다. 너무 심한 사투리, 구시대적인데도 이상하게 진보적인 데가 있는 엄마의 말들, 일상에서 엄마만의 작은 도전들과 끝없이 바지런하고 자연친화적(?)인 행동들이 매력적이라 동생들과 때 아닌 엄마 덕질(-_-;;)을 하게 되었다. 무릇 덕질이란 함께하면 행복이 열 배 이나니. 차마 하지 못하는 애교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뿍담뿍 보내는 동생들에게 배우기도 한다.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 표현하면서 더 많이 행복해지는 법, 등등등. 

“(P.231) 아니, 난, 가끔 옛날이야기하면서 그때 엄마는 왜 그랬는지,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고 대답 듣는 거로 괜찮은 거 같은데?” 

지은 지 33년이 되어가는 우리 집은 아빠의 은퇴와 동시에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착수했다. 오늘은 20년 넘게 묵혀있던 묵혀있던 다락을 치웠던 모양이다. 아침에는 엄마에게서 느닷없는 카톡을 받았다. 2000년 여름에 엄마가 쓴 일기였다.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책을 읽는 엄마도 본 적이 없지만 글을 쓰는 엄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엥? 엄마가 일기를? 알고 보니 가계부였다. 정말 속상할 때 가계부 뒷장에 쓴 엄마의 일기 두 편. 엄마 팬들은 더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딱 두 편만 있다고 했다. 하나는 나에 대해 엄마가 엄청 화나서 쓴 일기였는데 사실 오해였고, ‘기억난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그건 좀 억울해!’라고 했더니, 엄마가 ‘큰딸 그래 미안해. 사과할게’라고 해서 나는 아침부터 울었다. 나조차 잊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것도 20년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사과를 할 줄 아는 분이셨다. 언제부턴가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엄마가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게, 그게 기억나서 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메모는.... 이거는 그냥 너무 엄마 같아서 올려놓겠습니다. (허락 없이 무단 전재)

“날씨 탓도 있지만 아빠가 너무 힘들어한다. 식구들은 용돈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어른이든 애들이든 똑같다. 내가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야 할 텐데 마음뿐이고 한다고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고 집안 일만 해도 힘들고 피로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점심 차리는 것은 헛일 같아 짜증도 난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일을 하고픈 심정이다. 가을에는 아빠에게 약이나 좀 해줘야 할 텐데.”




아... 네 명의 자식들 밥보다(자식들은 급식 먹음) 시부모님 밥을 더 많이 차린 우리 엄마.... 
그리고 아빠에 대한 그냥 찐 사랑.... + 가난... (잠깐만요, 코 좀 풀고 올게요...)

근데 울 엄마 글 너무 잘 씀. 놀라버림. 아... 이건 진심으로 몰랐던 엄마다. 대반전. 나는 글 쓰는 엄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던 것은 바로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문장에 페미니즘적 요소가 가득하다니..(기승전페미니즘...)!!

쓰다보니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최근에 입덕 한 엄마에 대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슬퍼서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 내가 써보려고 메모해 둔 독후감의 첫 문장이 ‘엄마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였기 때문이다. 내게 ‘엄마’와 ‘글’ 이란 둘 다 너무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케이크와 함께 먹는 김치만큼의 조화랄까? 엄마가 책을 읽고 글을 썼다면 엄마한테는 좋았겠지만 나한테도 좋았을까? 막 진짜 말도 안되는 이런 글을 쓰게 돼버릴까 봐 쓰기도 전에 벌써 슬퍼서 계속 걱정했는데. 

땡!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아무리 가까워도 사람을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되는 거고, 나에게 읽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한테도 중요 할리 없으며, 엄마를 생각하면 슬펐던 감정은 조금 습관성 슬픔인 것.... 물론 찡하고 짠함은 있긴 한 데, 결론만 놓고 보면 울 엄마 아빠 요즘 가장 행복하신 듯. 꿈꾸면서도 웃으시더라?? 그럼요, 나도 행복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지금 당장 많이 함께 행복해하는 걸로. 일상의 소소한 이벤트를 꾸려가면서 친하게 지내는 걸로. 우리들은 그걸 누릴 자격이 있고, 그래도 된다. 아무튼, 자매들 카톡방에서 맨날 하는 말인데.. 꽃길만 걷자. 울 엄마 짱임. 엄마 짱! 그리고 역시 케이크엔 김치죠. 

“(P.194) 서로를 아끼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데는 여러 갈래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느슨한 듯, 너무 멀지 않은 거리가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는 ‘사랑의 모양’이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 지숙씨와 서현씨도 고유한 사랑의 모양을 잘 찾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덧, 마지막 사진은 버섯처럼 솟아난(?) 산책 중인 엄마를 파파라치함 (요즘엔 이런 용어 안쓰나?)ㅋㅋ 덕질은 역시 엄마 덕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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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2021-06-02 09: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태그 보고 깜놀했습니다. 덕질은 역시 시엄마 덕질로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하신 책은 눈물바람 너무 불 거 같아서 차마 읽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패스하겠습니다.

공쟝쟝 2021-06-02 09:36   좋아요 4 | URL
시엄마덕질…… 은 어나더레베루의 사랑이네요. 가부장제철폐 먼저 하고 가실께요…ㅋㅋㅋ

바람돌이 2021-06-02 1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딸과 엄마의 애증관계, 공쟝쟝님 글 읽으면서 제 엄마 생각을 많이 하게되네요.
제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를 대하는 저의 태도, 생각 이런 것들이 계속 바뀌어가는걸 많이 느끼는데 당연한거겠죠. 그래도 엄마 덕질하는 공쟝쟝님 귀여우세요. 저도 요즘 약간 저희 엄마를 방치했는데 오늘은 덕질하러 가볼까나 싶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1-06-02 11:23   좋아요 5 | URL
엄마 덕질의 팁을 알려드릴게요. “엄마 귀여워”를 연발한다. 내 엄마 최고! 를 시시때때로 외친다. 유튜브에서 주접댓글을 공부한뒤 엄마와의 카톡에 적용한다.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엄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드린다, 가능한 현질(?)을 아끼지 않는다…!! ㅋㅋㅋ
아무래도 덕질 자체를 좀 더 배워야할까 봅니다 ^^;;

단발머리 2021-06-02 1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72쪽의 세번째 문장..... 제가 6-7년 전에 알라딘에 썼던 문장과 거의 같아요. 제가 그런 심정이었고요. 지금도 그래요. 제 딸이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거든요. 그게 그 애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어요.
엄마로부터 무한의 사랑을 받은 내가, 딸애에게 무한의 사랑을 주지 않고, 주지 않겠다 결심했거든요. 딸이며 엄마인 내 마음이 이리저리 휘몰아칠 때마다 쟝쟝님의 이 글을 읽어야겠어요. 오늘 글 오래오래..... 너무 고마워요.

엄마 닮았네요, 쟝쟝님! 어머님 무단 전재 일기가 아주 찡해요. 엄마 닮았어요. 훌륭한 사람이 될거에요. 확신합니다!!!

공쟝쟝 2021-06-03 14:14   좋아요 1 | URL
통상 ‘무한한 애정‘으로 유포되어버리는 ‘유한한 자원‘인 엄마의 사랑을 사회와 개인이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면 정말 ‘부적절‘해지는 것 같아요. 그 부적절 때문에 괴로웠던 당사자로서...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까지 알아오기까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요.. 그것도 운이 좋았던 거지.. 여튼 그래서 저는 그게 개인보다 사회의 몫이 엄청 크다고 생각하고요, 당장 사회구조 바꾸기 힘드니 그래서 반대로 개인들이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은 개인들이 많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6년전에 하신 옳은 결심을, 그리고 하고 있는 많은 노력들을 우리 부족하더라도 많이 써나갔으면 좋겠고.. 또 이 부족들을 써 두면, 후대의 누군가는 부족들을 수정해주지 않을까. (그것이 훗날의 나라도)
단발님의 마음이 휘몰아칠 때마다 이 글 읽으시면서 꼭 힘내세요!! 제가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저의 페미니즘은 비혼주의자만큼 페미니스트 양육자를 소중해 한답니다.

엄마 닮았죠? 제가 훌륭해진다면 팔할이 엄마 닮아서예요. (2할은 내가 잘나서)ㅋㅋㅋ

2021-06-0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3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6-02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어머님이 글도 잘 쓰시고 글씨도 잘 쓰시네요. 엄마 덕질은 왠지 남는 장사일 거 같아요! 딸이 덕질해 주면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실 듯!!(무뚝뚝한 딸이라 미안해, 엄마~)

공쟝쟝 2021-06-03 14:20   좋아요 1 | URL
시상 제일 남는 장사지요. 저도 엄청 무뚝뚝한 딸 인걸요? 저도 직접적 애교와 표현은 서툴러서.. 아쉬운대로 귀여운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헛...... 엄마 때문에 산 잔망루피와 텔레토비...

scott 2021-07-07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이달의 당선 축!카!

7월 행복, 행복!!

새파랑 2021-07-07 16:33   좋아요 2 | URL
엄마덕질 공쟝쟝님 축하드려요~!!😄👍

공쟝쟝 2021-07-07 16:53   좋아요 2 | URL
스콧님 어케 아신거예요?ㅋㅋㅋ 신기해 ㅋㅋ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7-07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07-07 16:5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더위조심 하세용~~~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1-07-0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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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모습을 과거의 나들은 단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다는 게 인생이 드러내 보이는 진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산책’을 백수 루틴에 집어넣은 것은 5월부터이다. 매일 하기로 마음먹었던 달기리를 무릎이 견뎌내지 못해 처방한 임시방편이다. 얼마 전 읽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책을 읽으며 걸어본다. 걸어 다니면서 책 읽기란 중학교 때 딱 한 번 해보고 말았던 일이다. 


실은 책이 아니라 만화책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띵작 몬스터.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해 미치겠어서 만화방에서 공수해오자 마자 펼쳐 읽으면서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 계절이 이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이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하는 덕에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 앞에 잔상이 생겼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 읽다가 그늘진 집에 들어오니 맙소사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래 시력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마? 나 이대로 앞이 안 보이는 거??? 걱정보다는 만화 속 닥터 덴마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더 걱정했던 흑빛역사가 있다. 


그날 쨍한 햇살 아래에서 책 읽는 행위란 자칫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후 걸으면서 종이에 쓰인 무언가를 읽어본 적은 없다. 그 흔한 수첩에 영단어 써서 외우기조차도 ㅋㅋㅋ (이건 그냥 공부를 안 한 거 아닐까?)

“(P.11) 나는 홀린 듯 집을 나선다.”

문장에 눈이 멈췄다. 산책하면서 핸드폰 보기보다는 산책하면서 책 읽기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홀린 듯 책을 챙겨 산책 독서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재밌어 중간에 못 끊어 눈이 멀면 안 되니까 소설 대신 에세이를, 읽다가 넘어질 수 있으므로 고르고 평평한 땅바닥이 있는 산책 코스를, 너무 밝거나 어둡지 않은 적당한 조도의 햇빛이 드는 시간대를 찾았고,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한적한 장소가 보이자 책을 펼쳤다. 


짧지 않은 인생에 책을 읽으면서 걷는 경험은 단 두 번. 공교롭게도 두 번의 독서에 간택받은 책 모두 훌륭한 책들이었다. 몬스터야 내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알 것이고, 이 책 ‘시와 산책’은 아아- 이 연사 큰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읽으세요. 읽어주세요. 제발 흑흑. 저 아껴가며 읽었는 데, 최소 다섯 번 코끝 찡해짐. 오늘 영업 독후감 쓰려고 다시 읽다가 같은 대목에서 계속 더 찡해지기만 함.


“(P.18) 말도 사람도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리가 남은 것.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상상하면 울컥할 만큼 좋았다. 누군가는 실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테지만, 나는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려는 삶에서도 내밀한 상상을 간직하는 일은 필요하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히는 일이다.”

꽁꽁 언 강을 배경으로 한 시인이 눈을 감고 생각하다 이내 울컥해하는 장면을 나 역시 눈 감고 상상해 보다가 함께 울컥한다. 삶에 환상의 몫이 있을까. 있었으면 싶지만, 그건 고스란한 문장으로 읽기에 예쁜 말. 누군가의 삶에는 켜켜이 들어차 있기를 바라지만 나 자신의 삶에는 허용하기 어려웠던 어떤 것. 소설 읽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게 공상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며, 환상은 퍼뜩 내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 쑥스러운 일이라고 내심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책을 읽다가 ‘백일몽(데이드림)’을 검색한 적이 있다. 어릴 때 하는 공상 정도로만 생각했었는 데, 책에서 나오는 백일몽은 좀 더 심각(?)했고, 더 찾아 읽어보니 꽤 보편적인 현상 같았다. 정말로 백일몽을 꾸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 신기했다. 사실 그 무렵엔 백일몽은커녕 꿈속에서도 일을 했다. 나는 보통 현실의 연장선인 꿈을 꾼다. 일이 잘 안 풀려 스트레스받고 있으면 더 그렇다. 나도 그러기 싫은데 꿈을 내 맘대로 꿀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퍽퍽한 현실을 꿈속에서 마저 살고 있는 나에게 백일몽이란 사전을 뒤져가며 찾아야 할 만큼 ‘없는 현상’이었다. 


공상, 환상, 상상이라니. 인생에 그런 게 끼어들 틈이 있다고? 문제-해결-문제-해결-문제-해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조금 더 써볼까. 상담 선생님이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길 주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감정이 본인의 베이스 감정인 경우가 많다고. 먼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 그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을 계속 생각했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의 내가 너무 불안했다. 아, 이게 바로 나구나. 선생님 아무것도 안 할 때 저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끝내고 난 후에 할 일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상담 샘이 이런 말도 몇 번 했다. “상담 모범생이세요. 숙제처럼 자기 분석을 해오시네요.” 그때는 칭찬이라고 생각했는 데, 좀 더 편하게 와도 된다는 의미였을까나. 


한참 요가 수련에 열심일 때, 맨 마지막 사바아사나 타임 대부분은 돌아가서 할 일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으으, 사바아사나를 해야 하는 데, 또 할 일을 생각하고 있네, 나여 어서 사바아사나를 하란 말이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는 어디를 들러서 뭘 사 가지고… (최소한의 동선을 위한 두뇌 풀가동🤯)… 그런 내가 좀 징그럽고 싫었으나 달리 방도는 없었다.

지금의 ―실업급여 수급 중인 백수 상태로 ‘넘치는 시간과 오롯이 혼자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의― 나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백수 초반에 일(혹은 먹고 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불안이 몰려오고 안절부절못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불안하게 살 텐데, 딱 백일만 참고 불안해하지 말아 보자!! 일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한 달을 수련(?)했고 두 달이 지나자 겨우 적응이 되었다. 


불안은 습관이다. 재밌는 사실은 불안이 조절되는 것과 동시에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 밖의 몇 가지 요인도 더 있지만) 주로 불안할 때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는 것과 엄청나게 불안한 상황에서 처음 담배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이제 와서 깨닫는다. (유레카!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담배를 떠올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 거였어….)

“백수가 되면 좋은 점도 있어요. 평소라면 사는 게 바빠 생각 안 해본 것들을 곰곰이 따져서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 이때다 하고 생각 안 해본 것들 생각해봐요”라고 백수 만렙 친구가 일러 주었다. 역시 베테랑은 달라!! 바로 적용해보겠습니다요.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은 훈련이 되어있는 편이다. 어떤 질문들은 언젠가는 던져보려 아껴만 놓았었다. 이 때다 하고 의식적으로 미뤄왔던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아주아주 심각하게. 


보통은 제대로 느껴볼 새가 없었던 감정들이다. 아, 내가 당했던 그것은 기만이었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경멸이었던 걸까. 수치감을 느낄 때 내 얼굴 근육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그런데 아, 안돼. 아직은 아픈 것 같아. 생각이 자꾸 후회와 자책으로 흐를 때면 뇌과학 책을 읽는다. 뇌의 상승곡선을 부여잡아야 해… 산책을 나가자… 햇빛을 쬐자… 세로토닌이여….

그리고 공상. 


해야 할 일을 부러 다 없애버리고, 읽어야 할 책도 저리 밀어둬 버리고, 공기처럼 호흡하던 불안과 걱정들을 꾹꾹 눌러 잠가버린 나의 하염없는 시간들 틈으로 생소한 외로움이 그리고 공상이 들어찬다. 가만 생소하다고 썼나? 이 외로움은 대학교 2학년 때, 이 공상의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각각 겪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부러 기억해낼 수도 있을 만큼 시간이 많다). 어쩌면 그리웠을지도. 나에게도 드디어, 드디어 공상의 시기가 찾아왔는 데(백수생활 80일 만에 이룬 쾌거)!! 맙소사 공상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세상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고, 그 나들은 너무 피곤한 유형의 타입이라 별로군😰(절레절레)….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는 말이 “상상은 믿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문장이 때맞춰 정확히 제 시각에 당도했다. 행운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공상을 하지는 않았다는 인식 뒤에는 그 이후로는 어른스러워지려 애썼던 내가 있는 것도 같다. 이런저런 공상들로 자주 넘어지고 길을 잃던 시절의 내가 좀 더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랜 기간 할당하지 않은 그 몫을 할당하면, 현실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내쳐온 상상들이 앞으로의 나를 지탱할 믿음으로 바뀌기도 하는 걸까. 그때는 조금 덜 불안하고, 덜 피곤한, 성마르지 않은, 느긋하고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P.55-56)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을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그러니 성별도 세대도 달랐지만,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무 일 없이 혼자 보내는 하루는 상상력 없는 인간에게 공상의 시간을 열어줄 만큼 길고, 비로소 혼자가 된 이의 공상의 주제는 대체로 ‘혼자’ 일 때가 많다. 넉넉하지 않은 채로 혼자 늙어갈지라도 이런 식의 곁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근사한 삶이야, 나는 찬성🙋🏻‍♀️!! 마음이 조금 긍정적으로 되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거나,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10대 때도 20대 때도 30대 초반까지도 서른다섯 살의 내가 혼자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피식 웃게 되는 지점은 혼자인 상태를 그 어느 때 보다 안녕하다고 느낀다는 것과 그리하여 어떻게 이 안녕을 건강히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는 것(악착같이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안 하던 운동을 합니다…). 


몇 년 전의 내가 막연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삶을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처럼, 또 미래의 나는 현재 상상력의 범위 바깥 어딘가에서 분투하고 있을 테지만. 자주자주 지금의 이 상태로 나이 들어감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이면 충분한 데… 지금 같을 수는 없겠지!? 역시 답은 기본소득인 건가… 하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자체 기본소득이 가능해지는 방법은 재테크인가? 이 시간에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애써 확보한 공상의 시간이 자꾸 인생계획으로 변질(;;)되고 마는 주된 이유는 혼자인데 가난할까 봐 + 지금의 근로소득만으로는 내 집 마련은 어렵다는 현실 인식 때문에. ‘그래. 이 걱정들은 앞으로 살면서도 계속할 거니까, 나여!!! 제발!! 지금 만큼은 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혼자인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함께이길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는 이런 모양으로 사랑을 해요, 힘들어도 내 곁엔 그가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글들이 좋을 때도 많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약한가 보다. 글을 읽다 문득문득 함께하는 것을 ‘잃어버렸거나 아직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은 상태’로 여기곤 한다. 이 글들을 실컷 좋아하면 나의 현재를 덜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느끼는 곤란한 마음의 상황이랄까. 그리하여 그토록 좋아하던 밀레니얼 에세이스트(김혼비, 홍승은, 정지우, 서늘한 여름밤 등등)들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었다. 진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혼자? 함께? 혼자? 왔다, 갔다, 굳이 마음을 딱 정하지는 않더라도 혼자여도 좋은 글들을 좀 더 읽어볼 필요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 내 외로움으로 타인의 외로움을 건네다 보면서 미지근한 온도로 조심스럽게 이웃과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라니요. 작가님, 글에 와사비 발라 놓으셨나요, 자꾸 매워 죽겠는 제 코 어쩔??? 현재의 내 상황(혼자서 풍족하지 않은 채로 나이 들어가기)에서는 가장 도모하여 볼만한 형태의 연대(그러나 저자님 레벨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로 느껴지자 이런 장면 또 없나 기대하고 책장을 넘겼더랬다. 너무도 당연히!! 계속 나왔고!!!! 어느새 나는 위로당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좋은생각><연탄길> 감성은 절대 아니고요…. 그렇다고 <나 혼자 산다> 이런 느낌도 정말 아니고요…. 암튼 표현이 비루해서 죄송한데요… 저도 이제 에세이 읽을 만큼 읽어서 엥간치 잘 쓰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데(?) 요, 이건 잘 쓰는 게 아니라 주관적인 저의 기준에 정말로 ‘잘 사는’ 사람의 이야기여서… 여러분 이 책 꼭 삽시다. 작가가 돌보는 길냥이들 사료값에 인세 보태라고…. (오랜만에 등장한 아무도 안 시키는데 저 혼자 뜨거운 영업 모드 자아)

혼자되기를 선택했다고 한들 너무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 채울 필요는 없으며, 외롭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담담한 에티튜드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시간도 삶도 관계도 사랑도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온당한 자기애와 사람에 대한 사색.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한다면 꼭 그처럼 알았으면 좋겠다. 


“(P.124~125) 나는 시와 저녁이 잘 어울리는 반려라고 느낀다. 모호함과 모호함, 낯설음과 낯설음, 휘발과 휘발의 만남. 바로 그러한 특질 때문에 시도 저녁도 어려운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기대서만 간신히 살아간다. 뚜렷하고 익숙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되어서이다 …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저녁은 그렇게 시를 읽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


마지막으로 영업멘트 쐐기박기.

실은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반하고 말았다. “(P.11) 눈이 더 쌓였을 것 같은 길을 부러 골라, 머리카락과 뺨과 발목이 젖도록 걷고 또 걷는” 산책자를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나에게는 없다. 


정말인지 오랜만이다. 닮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닮고 싶은 사람을 글로 만난 것은.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 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 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 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끝을 가면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 P25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 P34

다시 지하로 내려가기 전 볕을 또 한번 멀리서 바라보았다.
어떤 일을 겪고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살 수는 없어, 그건 거짓된 삶이야, 하지만 이제 볕이 보이네, 라고 생각했다. 아니, 거의 중얼거릴 뻔 했다.
다시 이전과 같이 나의 미래를 낙관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도 끝과 죽음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몸을 둔 채로 볕을 보는 사람, 내 몫의 볕이 있음을 아는 사람, 볕을 벗어나서도 온기를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P96

그 모든 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고 해도, 그녀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디킨슨이라는 사람을 그보다 가볍게, 이렇게 이해한다.
그녀는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살았다. 바깥세상에 나가봤는데 별 마음을 끄는 게 없길래 은둔했고, 흰옷을 입은 자신이 가장 멋져보이길래 흰옷만 입었다. 그것 뿐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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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5-31 09: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감은 눈꺼풀처럼 순하게만 보인다! 인상적입니다.
이해하는 사람이 적어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책을 찾아 읽어가며, 스스로 길을 찾는 산책.
좋아보여요.

공쟝쟝 2021-05-31 09:56   좋아요 5 | URL
달아주신 댓글에서 그레이스님의 인품(!)이 느껴져요. 이해받지 못하는 서운함을 이해하는 능력 키우기로 전환시켜보렵니다. 그러게요. 저는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1-05-31 11: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걸으면서 책 읽는 거 한번 해봤는데 (옥상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ㅎㅎ 이 책 완전 좋아요~리뷰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공쟝쟝 2021-05-31 18:34   좋아요 3 | URL
ㅋㅋㅋ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데 말이죠? 별게 다 어렵다 참 그쵸?

바람돌이 2021-05-31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끔 에세이 중에 이렇게 꼭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글이 있더라구요. 저는 얼마 전에 읽은 ˝지지 않는 하루˝가 그랬어요. 이래서 에세이를 읽는다는..... ^^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은 많지만 나에게 꼭 맞고 마음이 저자에게까지 가 닿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듯한데 공쟝쟝님이 오늘 만난 책이 그렇네요. ^^

공쟝쟝 2021-05-31 18:43   좋아요 3 | URL
네, 모처럼이요! 닮게 쓰고 닮게 생각하고 싶은 저자들은 너무 많았으나 닮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오랜만이라 저도 오랜 친구를 만난듯 반가웠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친구는 책이겠지요. 저는 에세이가 정말 좋아요.

단발머리 2021-05-31 15: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부분 읽는데 산문 아니라 시 같네요. 평소의 저라면 읽지 않을 책인데 ㅎㅎㅎㅎ 이 책을 읽으면 쟝쟝님을 더 잘 알게될 거 같아요. 나도 함 읽어볼까나^^

공쟝쟝 2021-05-31 18:45   좋아요 3 | URL
이런 외로움은 근사해요. 저는 외로움을 자꾸 해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해왔을지도요. 꼭 읽어주세여.. 문장 자체도 아름다웠어요 ㅠㅠ

scott 2021-05-31 16: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공장쟝님의 이런 글솜씨를 담고 싶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이런 만화 요근래 만나기 힘듬 ૮₍ ˶• ˔ ต ₎ა

공쟝쟝 2021-05-31 18:46   좋아요 5 | URL
정말요? ㅋㅋㅋ 닮? 담?! (장난)
몬스터 재밌었죠. 전 웹툰 안봐서 모르는데 한국 웹툰이 아주 웅장하다대요. 신 매체(ㅋㅋㅋㅋ)를 저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만화 많지 않을까요??

붕붕툐툐 2021-05-31 21: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의 영업에 이끌려 평소 에세이만 보면 질투해서 잘 못 읽는 저지만 읽고 싶어졌어요!!ㅎㅎ
쟝쟝님 늘 느끼는 거지만 지금의 시간을 너무 잘 보내고 계신 거 같아요. 내가 닮고 싶은 사람!!😍

공쟝쟝 2021-06-01 08:38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더 잘 보내리라!!!!!

난티나무 2021-06-02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을까 살까 말까 아니야 그래도? 뭐 이런 마음이었던 책인데 결국 사야 하나요. 종이책으로 사고 싶다.... 왠지 들고 나가서 걸어야 할 거 같아요.

공쟝쟝 2021-06-03 13:59   좋아요 1 | URL
이 <말들의 흐름> 시리즈는... 두께에 비해 비싸요.. 그런데 판형이랑 디자인, 본문 글씨체도 특이해서 소장용으로 한 권 정도 ^^? 갖춰 놓고 싶으시다면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와 산책>입니다!! 저는 전 편 <영화와 시>도 샀다능... 산책하면서 읽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 호호

scott 2021-06-04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예감 적중!!
공장쟝님 추카~~
이달의 당선!!

그레이스 2021-06-04 2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축하합니다~♡
정보가 없어서 scott님 쫓아다니면서 축하댓글 달고 있어요^^

서니데이 2021-06-04 21: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6-04 2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전 좋아하는 책인데 더 기쁘네요. 축하드려요^^

모나리자 2021-06-04 2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편안한 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6-05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6-05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06-12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두 모두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이달의 당선작되면 축하해주는 게, 요즘의 분위기인 거죠? 앗~~~ 하지만 쑥스럽다구욧.. >_<
 
내가 그때 왜그랬을까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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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나는 거절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거절 당할 수도 있는 존재다. 라는 것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난 좀 바보였다. 색맹은 테스트 하기 전 까지 자기가 색맹인지 모르는 것 처럼 나는 관계맹 비슷한 거였던 것 같다. 다른 관계가 가능할 거라는 것을 몰랐으므로 아주아주 밀착된(솔직한, 안불편한, 거리조절이 잘 안되는 가까운)관계만이 ‘진짜’관계라고 여겼다. (그런 관계들에 언제나 술이 함께였음은 최근에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는 사실이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듣고 또 할 수도 있다 여겼으므로 인간관계 나름 자신있어! 뭐 이렇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마저 바보였다. 맹. 맹추. 모른다는 걸 모르는 진짜 바보. 


꼭 친밀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연이 닿은 어떤 사람을 내가 먼저 손절 할 수도 있다는 걸 안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 5년이 흘러있네?) 전문가에게 한달치 월급쯤을 쓰고 난 뒤에야 나를 감정적으로 착취하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때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알고는 있었다. 나한테 너무 소중한 거라서 그게 그거 일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아 보았다. 문자도 씹어보았다. 어색했다. 혹시 길가다 마주치면 변명할 거리들을 수백가지 생각했다. 헤어짐의 초기 단계에는 그랬다.(이젠 아니다,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 충분히 끊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 데, 내 쪽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구에게라도 그랬다. 살면서 내 선에서 먼저 '얘랑은 절교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어본 것은 스무살 때 정말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 딱 한명이었다. (심지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고, 오해였따) 언제나 열려있었던 나는 처음에는 좀 친해지기 어려워도 친해지고 나면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편이었다. 굳이 닫을 필요성을 못느끼는 나를 사람들은 머물렀다가 떠나가곤 했다. 항상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떠나보낼 수는 있는 사람이지만, 떠날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제멋대로 내 경계를 넘나들면서 휘젓고 어느날 보니 멀어졌다 또 느닷없이 나타나서 헝클어 놓고 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열에 아홉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는 언제나 맏이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손 윗사람들에게 서툰걸까?하고 고민을 많이 했더란다. 영 아닌 것 같을 때는 사소한 반항들도 해봤지만, 그럴 때 마다 내가 예민하고 복잡한게 문제가 되었다. (지금와서 알게된 나라는 인간은 나무보다는 부레옥잠ㅋㅋ 같은 사람이고, 생각이 복잡하긴 하지만 예민하지않고 둔감한 쪽에 가깝다.)


“(95)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They do because they can.)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  왜 나를 떠났을까? 왜 내가 아닌 그(그녀)지? 이건 우문도, 문장도, 질문도 아니다. 그냥 잘못된 진술, 나를 괴롭히는 지배 담론이다. 트라우마는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같은 것은 필요없다. 전직 연인들은 그저, 이별이 한 인간의 정치학과 윤리학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일 뿐임을 인식하면 된다.”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건 나였는 데, 상처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가끔 그 시절의 나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의 나는 정말 깔깔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정색하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뿐이다. 아주아주 어렵게 마음속으로 ‘이번 생에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봐요’ 다시는 안 볼 결심을 하고난 뒤에야 그것들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인 걸 안다. 


나는 후회하는가? 약간. 스스로에게 해명하고 싶은 건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취약했을까?하는 질문. 어쩜 그 질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취약했던 것은 개인의 특성(이건 읽고 쓰면서 찾아본다)도 있지만 분명 구조적인 부분(이건 분노스럽지만 이해한다)도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누구라도 내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나를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몰랐기 때문에 그도, 그들도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나였고, 부정? 부정할 수는 없고, 분노? 글쎄 그냥 그건 나니까. 그때 그건 나니까. 그건 비극이지만 역시 웃긴 비극이랄까. 웃게 된다. 


웃지만 헛헛한 나는. 나는 일기를 쓴다. 나야. 왜 난 나를 몰랐니. 왜 내가 나를 몰랐을까. 그 때의 나야. 나는 나를 알았어야지. 나라도 나를 알았어야지. 또 다른 내가 말한다. 모르긴 뭘 몰라. 알았지. 딱 그 만큼을 알았겠지. 더 알려고 노력 안했던 거지.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사랑받고 싶었을테니까. 나를 아는 것보다 그게 훨씬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요즘엔 덜 쓰는 편인데, 한 일주일 신나게 나여 왜그랬니를 쓰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왜’를 묻는 빈도가 매우 줄었다는 거다. 가끔 트리거가 눌리면 떠올려지긴 하지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더는 “사로잡혀”있고 싶지 않으니까다. 


“(101) 그러나 애초부터 원인은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대단히 복합적이다. 혹 인과 관계가 밝혀졌다 치자. 하지만 그 뒤에는 ‘왜 하필 나지?’라는 더 치명적인 의문이 기다리고 있다.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는 것이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지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내 자신의 문제에서만 빼고(어쩌면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별로 도망쳐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잠수탄 적 없음과 어떤 일에서도 도망친 적 없음이 나의 자랑이었다. 뒤늦게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모든 연락에 답장할 필요도, 모든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진짜진짜 도망쳐서 안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렇게 분노해마지 않던 잠수타는 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일 때가 있다는 것도.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잠정적인 약속처럼 챙기고 있던 굉장히 많은 관계들과 이별했음은 덤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았어도, 그 시절의 나는 모두들을 다 만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듯. 지금의 나 역시도 끊고 끊고 끊어도 또 끊어낼 관계들이 생겨나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재평가하게 되는 의외의 좋은 사람들도 있다. 


“(107)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개 자기 자신, 가족, 연인……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줄 사람은 거리에서 처음 만난 이라도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여기 없는 이’는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심지어 나는 돌아가신 엄마, 죽은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답한 것이다. 

인간이 옆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하는’이유는, 시간(미래나 과거)을 매개로한 권력욕 때문이다. 오지 않을 미래의 권력을 위해 현재 소중한 사람을 버리는 영화 속의 광해군이나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과거에 살고 있는 나나, 어리석기가 한량이 없다.”


그 많은 이별에도 불구하고 끊어야한다는 생각을 재고해본 적 조차 없었던 마음속 깊이 소중하게 여겨온 관계가 있었다. 나는 변했고, 내가 변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나 입을 떼는 순간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마음속으로만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도 바로 알아차렸다.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은 나였고, 관계를 박제해두려 했던 것도 나다. 재빨리 사과했다. 네가 그대로 일 거라고 생각했어. 사과를 하고나니 이건 내가 손절당해도 할말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 어쩜 이미 진즉에 그쪽에서 먼저 나와 멀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아, 그렇지. 인간관계에서 거리두기는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내가 떠나온 만큼 너도 떠나왔을 것이다. 서글펐다. 조금 눈물이 났다. 헤어짐-멀어짐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285) ‘미안’의 사유가 구조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구조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제 상황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친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줬지만 복잡한 것은 내 습벽이다. 아니다. 언어에 기대는 것이 내 습벽이다. 도서관에서 한동안 필요없어 밀쳐둔 심리 에세이들을 또 실컷 찾아 읽었다. 머리로는 다 알아도 여전히 난 실전에서 관계맹이다. 별로인 사람들에게 단호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또 내 시선으로 넘겨짚고 있다. 공감도 잘 못해주고, 위로는 더욱 못한다. (네, 제가 관계에 대해 열심히 학습하고 있으나, 역시 그것마저 학습으로만 저장되는.. mbti에서 T-사고형-입니다...)


잘 돌본다고 돌보았는 데, 다육이 화분 하나를 죽이고 말았다. 뭔가 말라보여서 물을 듬뿍 준게 문제였다. 말라보였던 녀석은 쏟아지는 물공격에 까맣게 타버린 것 같은 모양새로 죽어버렸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하나씩만 주라고 했는데, 봄이되서 마른 건가? 마른게 아니라 애시당초 물을 자주자주 줘서 썩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상태가 안좋아보여서 더 신경쓴게 잘못이었을지도. 내가 화분을 대하는 방식이 관계를 대해온 방식과도 닮았다는 통찰에 닿았다. 아파보이고 시들어보이면 더 자주자주 많이 신경을 쓰고, 진지해지고 심각해지고, 그게 종종 어떤이들에게는 피로감을 줬다는 생각. 말좀 해주지. 니문제 아니라고. 나 자신없어서 더 그랬던 건데. 어쨌든 이건 모두 과거의 이야기고, 난 다육과의 사람들과는 친할 수가 없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건 좀 알겠다. 


무튼 집에는 다섯개의 화분이 있다. 한달에 한번 물을 줘야하는 식물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씩 듬뿍 줘야하는 화분도 있는 데, 물을 아주 조금씩만 상태를 봐가면서 줘야하는 종류의 다육이도 있었다. 가장 먼저 제일 예쁜 다육이를 보냈다... 흑흑.. 이젠 네 그루의 화분이 남았다. 물을 애정이라고 놓고 보면, 나는 선인장과 인 것 같다. 대체로는 방치일 정도로 내버려 두다가 어쩌다 한번, 그러나 줄 때는 아주 철철 넘치도록 많이.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빈번히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진득진득해지다가 뿌리부터 썩어 흘러내려 버릴 것이다. 나는 한번 듬뿍 받은 애정을 마음에 머금고 힘들 때는 조금씩 그걸 꺼내서 쓰며 살아간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맞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 모두 선인장 같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엔 다육이도 있고. 요즘엔 이쁜 다육이가 대세인 것 같기도..?


“(76) 사람마다 인간관계 방식이 있다. 나는 깊고 짙고 부담스러운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추구할 뿐 실현된 적은 별로 없다. 그런 관계로 살기엔 세상은 너무 바쁘고 나는 참을성이 없다. … 이해 관계든 진실한 관계든 어차피 모든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한 관계는 두 사람이 동시에 동작을 멈추거나 끝없는 자기 갱신의 매력이 교환될 때 가능하다. 전자는 죽는 것이고 후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넘쳐났던 요 얼마간 과거의 관계 맺기 방식과 이제서야 알게된 나의 패턴을 추적해보면서, 내가 생각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어떤 적극적인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체감했다. 한때 나는 이 관계를 잃으면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 처럼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팔은 무슨. 고통의 강도로 치자면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 나흘된 딱지를 뜯는 정도의 조심스러움과 신경쓰임과 통증이었다. 이내 새살이 차오를 것이고, 우리는 멀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없었다가 있었다가 흔적을 남기고 이내 없어지는 것. 이것이 인연의 본질이었는 데, 난 미련해서 답답하게 뿌리내린 채로 오래오래 혹은 영원히 거기에 있고 싶어했던 건가 보다. 그래도 조금 서글펐다. 서글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때 나에게는 내 몸처럼 아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근데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나는 그 시절을 떠나왔으며,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지금을 산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없던 시절들에 대해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 시간들을 보낸 건 분명 나였으니까. 내가 그때 왜그랬을까. 왜그렇게 어리석고 멍청했을까. 왜, 왜... 왜그렇게 한심했던거야, 대체 왜..

나는 삶의 다른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분명 그랬다. 그 때는 그게 나였다. 내가 그런 나였던 게 좀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지금도 내내 가슴이 아픈채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지금을 산다.

- 다락방,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이 상태에 대한 페이퍼를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터에 다락방님의 서재에서 위 문장을 읽고서 다락방님의 글이 가리키는 것과 마지막에 쓰여진 문장이야 말로 지금의 내 상태를 가리키는 문장으로 훔쳐다 쓰기에 완벽하다는 😌 곤란하고 행복한 감동에 휩싸였다고 한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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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9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나 인용당했어. 영광입니다!! >.<

저는 쟝님이 언어에 기대려고 하기 때문에 덕을 보는 사람에 속합니다. 쟝님이 언제나 언어, 언어를 언급해주어서 그럴 때마다 저 역시 그래 언어, 하고 되새기게 되거든요.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한순간 아 이것은 언어의 문제다, 우리는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쟝님은 진작에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대화가 어느 순간 언어의 문제로 흐를 때면 저는 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돼요.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공쟝쟝 2021-05-09 18:27   좋아요 1 | URL
이렇게 다락방을 정희진의 반열에 올려 드렸다!!!! ㅋㅋㅋㅋ 언어에 대한 사유는 조금씩 더 구체화해보겠나이다!!!
실은 요즘 한창 뭉뚱그려 덮어놓고 싶었던 어떤 시절과의 좋은이별을 위해 지내는 중이었거든요.
어제 만난 다락방님의 페이퍼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는 제가 다락방님이 아니라서 감히 알수는 없지만, 그냥 저자신을 거기에 대입해 놓고 읽어도 너무 좋았어요. 쓰는 다락방님은 가슴 아프셨겠지만, 읽는 전 걍 너무 좋았다고요. ㅎㅎㅎ
다부장님!! 일요일이 얼마 안남았습니다요!!어서 건필하세요!

새파랑 2021-05-09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에 대한 공쟝쟝님의 글에 정말 공감이 되네요. 사람이 한결같기는 정말 어려운거 같다는......

공쟝쟝 2021-05-09 23:37   좋아요 1 | URL
한결같고 싶은 게 욕심이죠. 그 아집을 부릴 수 있는 건 어떤 권력이기도 하구여... 특별히 더 요즘 같은 세상에선 말이죠. 저는 시골아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답니다.

단발머리 2021-05-10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 글에 대한 감상을 수없이 읽어보았고 저 역시 선생님 글을 읽고 또 다시 읽는 사람이지만 쟝님처럼 잘 읽는 사람은 처음 본 듯 해요.
내가 정희진쌤 더(!!!) 좋아하지만 쟝님을 ‘정희진쌤 1등 해설가‘로 ‘임명‘합니다, 내가!!!!!

공쟝쟝 2021-05-11 13:48   좋아요 0 | URL
생의 어려운 고비를 희진님 만나 무사히 넘어왔더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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