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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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힘들고 싶어서 그토록 열렬히 읽었던 수많은 사회과학, 심리분석 책들. 울화를 게워내듯 일기에 썼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떤 관계에서는 도망치고, 어떤 인연과는 단호하게 이별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그 와중에 생활에 바빠하면서.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있었는 데, 그랬는 데.

훅 들어오는 무심한 (제 멋대로의 사랑을 근거에 둔)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일주일째 엉망이다. 몸의 컨디션도, 마음의 컨디션은 더더욱. 온 마음을 끌어모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는 데, 끌어모을 힘을 뺏겨버렸다. 다 헝클어졌다. 전화 한 통에.

건조하게 말하고, 다치지 않게 거절해도 됐는 데, 감정이 너무 많이 섞였다. 아플말만 골라찝어 딱딱 말하는 단호하고 독기어린 내 목소리가 낯설다. 문제는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고, 힘없이 잘못을 시인하는 그 역시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 굴레. 가족.

사랑이라는 권력에 있어서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쪽,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쪽이, 약자다. 그런데 약자이기에 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가해자인 약자.

사랑했으나 인식이 깊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잘못된 관점까지 수용해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는 둔탁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사랑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그들의 좁고 편견많은 사랑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랑의 형태가 생겨난 바탕까지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의 노동이었다. 사랑하기위해서.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덜 미워지게 되는 경험들은 나를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싶어서. 그런데 몰랐던 것을 알아갈수록 가닿는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나는 그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사랑과 상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나를 해치는 요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을 들이민대도 단호히 싸워야 한다는 것. 세상이 들이미는 사랑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되짚어 물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요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은 때때로 나를 폭군같은 가해자로 만든다. 뒤늦게 다그치는 것이다. 당신들의 편한 선택이, 스스럼없이 살아온 삶이, 사느라 바빠 잊은 질문없음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아느냐고.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답을 얻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질문은 그저 복수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앓았던 숱한 과거와 그 결론인 오늘에 대한.

대체로 난 그 많은 질문과 화를 아주 꾹꾹 눌러 담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냥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모르는 척. 힘 없는 척. 그런데, 참는 다는 것은. 결국 참는 것일 뿐. 참지 못하겠는 날은 온다.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나에게 마치 보란 듯이 - 내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때, 핏줄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요구를 할 때, 손톱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 그 밖의 어떤 때, 때, 때.

지난 주말의 통화가 그러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무례함을 튕겨내기만 했음 좋았을 텐데, 어떤 포인트가 건드려졌고, 안전핀이 뽑혀버렸고.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의 잘못을 꺼내는 몇마디를 얹고 말았고, 너무 쉽게 투항같은 사과를 받아버렸고. 결론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을 해버린 셈이 되었다. 난 일주일째 가해자가된 패자의 얼굴을 하고서 앓았다. 오늘 쯤은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가끔은 낯설다. 그 시절엔 그토록 날뛰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어린 것이 넌 뭘알아! 알필요없어!” 발언권은 커녕 알 권리 조차 보장해주지 않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명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어른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결국은 당신들이 기댈, 당신들 지난 삶을 보상할 어떤 결과물로 대한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너무 많이 이해하면 나에겐 독이 될 앎들이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이미 마음은 다 알겠어서 괴롭다. 당신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의 곤궁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겪고 아는 것들이기에.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부러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왜 날 이해시키려하는가. 결국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린 나는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인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애정을 동원해서 당신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이해되는 사정 앞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가 가닿을 곳은 무력감. 한계의 세계.

*

글을 쓰는 동안 얼마전 읽었던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생각났다.

책 속 벡델감독과의 대화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상과 심리학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즈음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가족들과 싸울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이 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나를 ‘나쁜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가족들을 추궁하는 나쁜 딸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족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드는 ‘골칫덩어리’였다. 어쨌든 나는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우리 가족의 역사와 트라우마로 파고들어 우리가 나눠야만 하는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매몰차게 밀어붙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들이 내 생물학적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혈연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때 진짜 가족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가족들에게서 많은 안정을 얻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독은 가족들이 남긴 상처에 대해 가족 직접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사랑할 수 있으려면, 정말로 그러려면 용감해야한다. 나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사랑의 대상 또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살짝 들추려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척이나 상처 주고있고, 또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무리다. 어쩌면 영원히 무리하지 않음으로 평화롭고 싶다. 감정을 쓰는 것이 싫다. 마음을 쓰는 것은 온 몸을 쓰는 일이다. 머리만, 머리로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라도. 이해하기. 미울 때는 밉다고 말하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

“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흔적을 남겼던 대화. 순전히 저 대화를 활자로 읽고 싶어서, 시나리오 집을 샀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영화관에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후드득 몸을 떨었다. 고마워서. 언제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나 스스로에게 해줄 때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타인의 목소리로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 영지샘이 너무 좋았다. 책으로 읽는데도 콧날이 시큰해져서 전철에서 혼났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쉬운 동정과 연민마저 허락하지 못하는 감정의 불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연대투쟁, 혹은 연민하기 정도가 다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연대할 수 없으니 대체적으로는 연민.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상상력이 없었던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심연과도 같은 고통을 흘깃 보게 될때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그 깊은 심연이라는 못은 있지만, 같은 겪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안다’ ‘이해한다’라는 댓글을 달 수도 없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준을 세운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을 것. 감정적 호들갑을 윤리적 안도로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것. 불쌍해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않을 것.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알려고 할 것.

*

토로하듯 써낸 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어쩌면 약자의)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택한 내가 사랑에 대해 이해한 바는 (지금까지는) 이렇다.
사랑의 출발점은 ‘인식’이며, 알고자 하는 노력없는 ‘사랑’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안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아는 것 이상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나 자신을, 세상을,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그 모두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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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보시는 거 보고 저도 어제 도서관 갔다 이 책 빌렸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0-01-18 13:32   좋아요 1 | URL
영화도 보셨나요? 대부분은 책이 좋은데, 벌새는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최은영, 정희진, 김원영님의 글과 벡델과의 인터뷰도 좋답니다(!)
 
릿터 Littor 2018.8.9 - 13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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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는 처음 사보았다. 그래도 주제가 여성-서사 라는데.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플래시 픽션도 좋았지만, 의외로 인터뷰도 꽤 재밌었고, 실려있는 단편 소설들도 집중해서 읽었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것은 ‘여성-서사’와 관련한 평론들.
소설도 이제 막 읽고 있는 나에게 평론이란 신형철의 책에 나온 몇 페이지 읽은 정도라 할만큼 낯선 분야(?)이지만, 요즘 점점 읽어가면서 취향을 발견중이기 때문에 ‘난 이런류의 글을 좋아하는가봉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텍스트 자체의 해석or주석도 좋지만, 소설-문학이 담지한 현실과의 맥락들을 짚어내는 부분들이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듯 하다. 꽤 오래전 부터 알고 싶어했던 것은 ‘세상과 나의 생겨먹음’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둥둥 떠다니는 상념들이 어떤 계기로 꿰맞춰질 때 (기왕이면 언어로) 약간의 쾌감을 느낀다.

삶과 세상을 더 깊고 다채롭게 이해하는 것이 내 목적없는 독서의 목적(?)이라면 그 이야기들을 분류ㆍ연결 시켜주는 이야기(평론)를 좋아하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릿터에 실린 몇몇 평론가들 평론집도 뒤적여볼까? 생각 중. (그렇게 또 한번 알라딘 보관함은 갱신되고...) 평론 마저도 재밌고 풍부하게 읽으려면 일단은 문학 작품들을 더 많이 봐야겠지 만은.

여하튼 가성비 갑이었다. 만원의 행복. 릿터~
다음 호는 ‘난민’이 주제라고 하눈데...살까말까... 하다가 오늘 지른게 있어서 참음...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와 쓰는 속도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읽고 느끼고, 느낀 점을 정리하고 적어둘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p.29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1997년의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경제는 호황을 이루지만 그녀의 주인공들은 시종일관 “내 생은 쭈욱 악화일로였다.”라고 쓰라린 비명을 토해 낸다는 점에서 공선옥 문학은 무섭고도 불편하다. 모자 가정의 어미로 공장에 다닐 처지도 되지 못해 불법적으로 생존을 영위하기 때문에 민중이라는 이름조차 가질 수 없는 ‘서발턴’인 그녀들은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외부이자 노마드적 주체의 자유에 들뜬 1990년대 페미니즘이 외면한 자매이기 때문이다. - 민주화 이후의 여성문학 : 억압된 것의 회귀와 성차화된 여성 주체의 등장, 김은하”

“(p.31 ) 어떤 픽션과 조우했다는 건 이미 익숙함이 아니라 낯섦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를 고정/확정하는 체험이 아니라 “분열하고 변이하며 증식하는 체험”을 통해 이야기는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 당대의 여성서사가 우리를, 백지은”

“(p. 38) 뻔하다는 말은 결국 지겹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텐데, 정말 끔찍하도록 지겨운 것은 클리쉐로 이루어진 소설이기 이전에 현실 그 자체임은 분명하다. -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 2018년 한국 문학의 여성 서사가 놓인 자리,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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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 : issue #2 - 1인 Work
Favorite Magazine 편집부 / Favorite Magazine(잡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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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야심없이 개인사업자 등록을 마친지도 거진 반년 가까이 되어간다. 취직이 아니라 혼자 하는 일을 선택한 건, (구직활동에 실패해서..일지도)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람들을 좀 안만나면 덜 휘둘리지 않을까?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넉달의 난..
사람이 아니라 ‘일’에 휘둘림 ㅋㅋ😭😭😭
정말 끊임없이 자기를 조절하는 과정이었다.
“일이 없을 때는 불안 - 일이 있을 때 : 바짝벌자!! - 무리 - 와병 - 강제 휴식, 병원비 지출 상승 - 가난 - 다시 불안” 뭐 이런 코스로.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다니던 파트타임을 그만두지 않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 꼼짝없이 배곯을 뻔.
아~ 사는 거, 타인/나를 아는 거 조절하는 거, 왤케 힘든 건지.
나만 힘든건 아닐꺼야....??!



#favoritemagazine 2권
막 사업자 등록을 하고, 책bar 놀러갔다가 1인 기업들의 인터뷰라고 해서 집어왔다. 나도 그들 처럼, 혼자서/좋아하는 일을/천천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며 읽었다. 

생각해보니 난 내 일을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천천히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빨리 끝내려다보니 무리 했구나 싶다.
결국 ‘혼자’빼고는 접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슬픔의 소감을 적고 있지만,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가꿔가며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나가고 있는 사업자들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이다.
_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 역시 지난한 노력이다. 그나마 조금 수월한 지점을 꼽자면, 남탓을 안하게 되니 핑계도 적어지고 조금은 정직하게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만나며 내 그릇(체력-심리적 한계)을 알았던 넉달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구청에서 신규사업자들 세금 교육 시켜준다 그래서 일 내팽개치고 왔지롱~~ 오랜만에 열심히 공부했더니 머리에 쥐났다. 무료 세무상담도 해주고, 책자도 주고, 커피도 주고, 볼펜도 준다. ... 난 정말 세금을 많이 내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
극도로 반체제(?)적이었던 스무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나 비웃을런지..ㅋㅋㅋ
쥐뿔도 없는데, 이상하게 뇌구조가 기득권이 되어간다.
아~~한치 앞도 못보는 인생이여!!

* 좋았던 문장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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