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솔, 수상한 커튼, 이아립 - 우리의 만춘
강아솔 외 노래 / 미러볼뮤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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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만춘의 한낮. 차분해지는 좋은 음악들… 다음에 제주에 가면 만춘서점에 가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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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선언문 -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 책세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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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몰트를 오래 머금고 있듯,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있다... 해러웨이의 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소중한 타자의 느낌을....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 모두 <트러블과 함께 하기>에 나왔던 사고와 개념들의 발생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트러블과 함께 하기>의 kin은 <사이보그 선언에서는 결연집단(affinity group)으로 언급되고, "카밀 이야기"의 플롯의 재료들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을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 SF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30, 78-83).

또 <트러블...>에서 나오는 "촉수사유"는 화이트헤드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모든 명사는 문어보다 발이 더 많이 달린 동명사"(123).

화이트헤드는 "구체적인 것"을 "포착의 합생"("the concrete" as "a concrescence of prehensions")으로 기술했다. 그는 "구체적인 것"을 "실제의 사건"으로 이해했다. 실재(Reality)는 능동태 동사이며, 모든 명사는 문어보다 발이 더 많이 달린 동명사처럼 보인다. 존재자들은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며 "포착"이나 파악을 통해 서로와 자신을 구성한다. 모든 존재자는 관계에 선행해 존재하지 않는다. "포착"에는 결과가 있다. 세계는 운동 속의 매듭이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문화적 결정론은 모두 잘못된 곳에서 구체성을 구성한 사례들이다. "자연"이나 "문화"와 같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추상 범주를 세계로 착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잠재적 결과를 선행하는 기초로 오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리 구성된 주체나 객체는 없으며, 단일한 근원이나 단일한 행위자, 최종 목적과 같은 것은 없다.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면 "잠정적 기초"밖에 없다. - P122

기호와 육신, 이야기와 사실. 내가 태어난 집에서는 이 생산적인(generative) 커플이 별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둘은 항상 왈왈거리면서도 떨어질 줄 몰랐다. 성인이 된 내 안에서 문화와 자연이 내파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내파가, 명사로 유통되지만 사실상 동사인 반려종을 말하거나 그 관계를 직접 살아갈 때보다 더 큰 폭발력을 발휘한 적은 없다. 세례 요한의 "말씀은 육신이 되었다"는 말의 뜻은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기사 마감 5분 전, 베어스가 2점차로 지고 있는 9회말 2사 만루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138

어원학적으로 팩트(사실)는 이미 이루어진 수행, 활동, 행위, 간단히 말해 업적을 일컫는다. 팩트는 과거분사이며, 이미 한 것, 끝난 것, 고정된 것, 입증된 것, 수행된 것, 성취된 것을 뜻한다. 팩트들은 마감을 지켰기 때문에 다음날 신문에 실린다. 픽션(서구)은 어원학적으로 팩트와 매우 가깝지만, 품사와 시제가 다르다. 픽션은 팩트와 마찬가지로 활동을 일켣지만 가장이나 속임수뿐 아니라 형태를 만들고 구성하며 발명해내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픽션은 현재분사에서 유래했고, 진행 중이며, 아직 문제로 남아 있고, 마감되지 않았으며, 사실과 어긋날 가능성이 남아 있고, 아직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알게 될 것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동물들과 함께 살고, 그들/우리의 이야기에 거주하면서 관계의 진실을 말하려 애쓰는 것, 진행 중인 역사 속에서 공존하는 것. 이게 바로 반려종의 일이며 반려종에게 가능한 최소 분석단위는 "관계"다.
- P139

trope: 수사 -> 비유
figure of speech: 문형 -> 비유(어)
- P140

141: 5: 방향이 -> 의도가
141: 13: 취향도 -> 흥미(관심)도

육신과 기표, 몸과 말, 이야기와 세계, 이 모두가 자연문화 속에서 결합된다.
Flesh and signifier, bodies and words, stories and worlds: these are joined in naturecultures.
메타플라즘은 실수나 헛디딤, 몸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비유를 의미할 수 있다. ...
의미의 전도, 소통 중인 신체들 간의 자리 이동, 개형, 개조, 진실을 말하는 방향 선회. 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만 말한다. 컹.
Inverting meanings; transposing the body of communication; remolding, remodeling; swervings that tell the truth: I tell stories about stories, all the way down - Woof. - P141

나는 <반려종 선언>에서 소중한 타자의 관계 맺음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짝을 이루는 이들은 이 관계를 통해 육체와 기호 모두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다. 뒤에 나오는 진화, 사랑, 훈련, 종류 및 품종과 관련된 이야기는 인간이 이 행성에 자신과 함께 출현한 무수히 많은 종과 더불어 시간, 신체, 공간의 그 모든 척도 속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볼 때 도움이 된다. 내가 제시하는 설명은 체계적인 형태로 되어 있지는 않다. 그 대신 색다르고 시사적이며 신중하기보다는 과격하고, 명석판명한 가정보다는 우연한 근거(contingent foundations)를 따른다. 여기서 개는 반려종이 이루는 거대한 세계에서는 하나의 행위자에 불과하다. - P146

이 선언이나 자연문화의 삶에서는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마릴린 스트랜선이 말한 "부분적 연결"을 찾고 있다. 이와 같은 연결 속에서는 자기 확실성이라는 신의 속임수나 불사의 성체(deathless communion)을 택할 수 없고 반직관적인 기하학 및 부적합한 번역이 필요하다. - P147

3행 이후:
인간주의적 기술 예찬론자들은 가축화(가축으로 길들이기)를 남성 한부모의 혼자 낳기의 전형적인 행위(the paradigmatic act of masculine, single-parent self-birthing)로 묘사하는데, 이는 마치 남성이 그의 도구를 발명(창조)하는 것처럼, 남성이 가축화를 통해 자신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보는 것이다. 가축은 인간의 의도를 그 몸 안에 체현한 것, 곧 자위행위가 개의 몸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남성은 (자유로운) 늑대를 잡아 (복종하는) 개를 만들고 그로써 문명의 가능성을 수립했다. 그렇다면 헤겔과 프로이트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견이라고 보면 될까? 개를, 길들인 동식물 전체의 상징으로 만들고 인간의 의도에 복종하게 만들되, 점차 진보할 것인지 타락할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에 맡기면 될 것이다. 심층생태론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문화로 추락하기 전에 있었다는 야생의 이름으로 혐오하기 위해 기꺼이 믿는다. - P150

6행: 늑대를 동경하던 개들 -> 개가 되고 싶었던 늑대들 (wolf-wannabe-dogs) - P152

개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보면서 목축 및 농경 사회의 출현처럼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변화는 문화적 변화라고 본 뒤 공진화 사례에서 제외하는 것은 실수다. 나는 인간 유전체가 적어도 개와 같은 반려종이 감염되는 병균에서 유래한 분자적 기록을 매우 많이 간직하고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자연문화에서 면역계는 사소한 부분이 아니다. 사람을 포함한 유기체가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을 결정하고 함께 살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규정하기 때문이다. 인간, 돼지, 가금류, 바이러스 사이에 공진화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인플루엔자의 역사를 상상하기 힘들다. - P155

네덜란드의 환경여성주의자인 바버라 노스케는 고기를 생산하는 "동물-산업복합체"의 스캔들로 우리의 시선을 돌린 사람이기도 한데, 동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SF에 나오는 "다른 세계"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애컬리는 튤립의 중요한 타자성/차이들(significant otherness)을 흔들림 없이 지지했던 경험을 곱씹으며 노스케의 주장을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튤립은 중요했고, 바로 이 점이 둘 모두를 바뀌게 했다. 애컬리 역시 튤립에게 중요했다. 이 중요성은 언어적이든 아니든 모든 형태의 기호학적 실천에 특유한 헛디딤을 통해서만 읽어낼 수 있다. 오인(misrecognition)은 극히 드물게 발생하는 적중의 순간만큼 중요했다. 애컬리의 이야기에는 몸으로 부대끼는 세속적 사랑에서 경험하기 마련인 것, 즉 육감적(fleshly)이면서도 의미를 생산하는 세부 사항이 매우 많이 나온다. - P160

남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용납하기 힘든 신경증적 환상이다. 반면, 골치 아픈 조건들을 맞춰가면서 사랑을 지속하려는 노력은 아주 다른 문제다. 친밀한 타자를 더 잘 알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별수없이 겪게 되는 우습고도 비극적인 실수들은, 그 타자가 동물이건 인간이건 또한 무생물이건 간에 내 존경심을 자아낸다. 애컬리와 튤립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 P161

헌과 개릿은 한 꺼풀만 벗기면 피로 맺어진 자매다.
이 근친 교배의 핵심은 두 사람 모두 개가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는 점이다. ... 방법에 관한 한, 행동주의 조련사와 헌 사이에 중요한 견해차가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하지만 대부분의 반려종 관계에서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넘어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상황 속의 부분적 연결이 중요하며 (Situated partial connection is what matters;) 그 결과로 개와 인간이 실뜨기 놀이(game of cat‘s cradle) 속에서 함께 출현한다. 놀이의 이름은 존중이다. 좋은 조련사는 중요한 타자성(significant otherness)의 기호 아래 반려종으로 관계 맺는 훈련을 한다. - P176

아담은 범주 노동으로 일을 간편하게 처리했다. 대꾸가 돌아올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그를 그로 만든 것은 개(dog)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를 창조한 신(God)이었다. ... 그 모든 말들은 철학적으로 미심쩍을 수는 있어도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물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계속 의식하기 위해서는 이 말들이 필요하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누구인가는 영원한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 P177

핵심은 타자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항상 질문하는 것이다. [The recognition that one cannot know the other or the self, but must ask in respect for all of time who and what are emerging in relationship is the key. -> 타자나 자신을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가 그리고 무엇이 출현(창발)하는가에 대해 언제나 존중심을 갖고 물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과 관계 없이 진정한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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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 선언문 -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 / 책세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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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May Day 오전 5시 

목성과 금성의 랑데뷰를 보고....


메이데이가 일요일이라 아쉬울 것도 없는, 노동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인 나는 <공산당 선언>이 아니라 <사이보그 선언>을 읽는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일단 한 문장 안에, 한 문단 안에 있는 반대말들을 신경쓸 것...


지구의 안쪽 궤도와 바깥쪽 궤도를 도는 금성과 목성이 어떤 찰나의 순간에는 태양이 뜨기 직전 아주 가까이 함께 빛난다. 

2015년 7월 이후 7년만이라 하고, 다음에는 2080년이나 되어야 보인단다.

2015년 난 뭐하고 있었나?

2080년에는 없겠다... 


신성모독은 믿음을 배반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이러니는 변증법을 통하더라도 더 큰 전체로 통합할 수 없는 모순에 관한 것이며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필연적이고 참되기 때문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관계가 깊다. 아이러니는 유머이며 진지한 놀이다. 일종의 수사학적 전략이자 정치의 방편인 아이러니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더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나의 아이러니한 믿음, 신성모독의 한복판에 사이보그의 이미지가 있다. - P17

사이보그는 양성성,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비롯하여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 또는 모든 부분들의 힘을 하나의 더 높은 통일성으로 가공하는 최종적 전유라는 유기적 전체성에의 유혹과 상대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어떤 면에서 서구적 의미의 기원 설화가 없다. 이것이 사이보그 "최후"의 아이러니다. ... "서구의" 인본주의적 의미의 기원 설화는 본원적 통일성, 충만함, 은총과 공포의 신화에 의존하며, 이는 남근 달린 어머니로 표상된다. ... 사이보그는 이와 같은 본원적 통일성, 서구적 의미의 자연과의 동일시 단계를 건너뛴다.

사이보그는 전체론을 경계하지만, 연결을 필요로 한다. 사이보그는 전위당 없는 통일전선의 정치에 친숙함을 느낀다. - P20

세계를 바꾸기로 결심한 인민들이 이뤄낸 성과인 인식론, 곧 혁명관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정체화(identification, 동일화)의 한계를 드러내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내놓은 강산성(acid) 도구들과 혁명 주체의 존재론적 담론을 구성하는 도구들은, 서구적 자아를 생존의 이해관계 속에 녹이면서 아이러니한 동맹을 맺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의식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원이 순수성을 잃으면서 에덴으로부터의 추방도 사라진다. 우리의 정치는 순수성의 순진함과 더불어 면죄부도 상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위한 또 다른 정치 신화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 어떤 유형의 정치가 부분적이고 모순적이며 영원히 개방된 개인적, 집합적 자아의 구성을 포용하면서도 충실하고 효과적이며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적일 수 있을까? - P35

나는 네트워크라는 이데올로기적 이미지를 선호한다. 이 이미지는 공간들과 정체성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과 개인의 신체와 정치적 신체의 경계의 투과성을 암시한다. "네트워킹"은 페미니즘 실천이자 다국적 기업의 전략이다. 네트워크 짜기는 대항적인 사이보그를 위한 것이다. ...

신기술이 매개하고 강제하는 사회관계의 ... 네트워크에는 여성의 "자리(place)"란 없으며, 여성이 사이보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차이와 모순의 기하학만 있다. 이와 같은 권력과 사회적 삶의 그물망을 읽는 법을 배우면, 새로운 결합 또는 새로운 연합을 이뤄낼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제시된 목록은 통합된 자아의 관점, "정체화(동일시)identification"의 관점에서 읽어낼 수가 없다. 쟁점은 분산되어 있고, 과제는 디아스포라에서 생존하는 것이다. - P62

총체성이 있을 때만 잘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진실한 언어를 향한 꿈, 경험을 완벽히 충실하게 명명하는 가능성을 향한 모든 꿈과 마찬가지로 공통 언어를 향한 페미니스트의 꿈은 전체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꿈이다. 모순을 해결하려 하는 변증법 역시 그런 의미에서 꿈의 언어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및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서구 로고스의 체현인 (남성)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통해 불가피해진, 강력하고 금기시되는 융합에서 체험하는 쾌감에 주목하면 페미니즘 과학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 P68

사이보그 정체성이란 ... "아웃사이더" 정체성들을 융합하여 합성되는 강력한 주체성이다. ... 로드(1984)는 Sister Outsider라는 책의 제목에서 이 느낌을 포착해낸다. 내 정치 신화에서 시스터 아웃사이더(이방인 자매)는 외국인 여성으로, 여성이거나 여성화된 미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연대를 방해할 뿐더러 안전을 위협하는 적이라고 여기게끔 가정된 상대이다. 미국 국경 안에서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같은 산업에서 분열과 경쟁을 유도하고 착취하기 위해 조작당하는 여성들의 인종적, 민족적 정체성의 한복판에 놓인 잠재력이다. "유색인 여성"은 과학 기반 산업에서 선호되는 노동력이며 전 세계의 성 시장, 노동 시장, 재생산 정치의 만화경을 일상으로 도입하는 현실의 여성들이다. 성산업과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 고용된 젊은 한국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모집되고 집적회로를 만드는 교육을 받는다. 읽고 쓰는 능력, 특히 영어 능력은 다국적 기업에 이처럼 "값싼" 여성노동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 P71

글쓰기 놀이의 해방은 더없이 진지한 문제다. 미국 유색인 여성의 시와 이야기들은 글쓰기, 곧 의미화의 권력을 쟁취하는 문제와 반복적으로 관련되지만 이때의 권력은 남근적이거나 순수해서는 안 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곧 언어 이전, 글쓰기 이전, (남성)인간의 등장 이전, 옛날 옛적의 총체성을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보그 글쓰기는 본원적 순수함이라는 기반 없이, 그들을 타자로 낙인찍은 세계에 낙인을 찍는 도구를 움켜쥠으로써 획득하는 생존의 힘과 결부된다. ...

- P72

사이보그 저자들은 기원 설화를 다시 들려주면서 서구 문화의 핵심적 기원 신화들을 전복한다. 이와 같은 기원 신화, 그리고 묵시록(apocalypse)을 통해 그 내용을 실현하려는 열망이 우리 모두를 식민화해왔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 기원설화는 글쓰기 기술 - 세계를 쓰는 길술, 즉 생명공학 및 전자공학 - 안에 구축된 채, C3I의 격자 위에서 우리의 신체를 코드의 문제로 텍스트화했다. 페미니스트 사이보그 이야기의 과제는 통신(소통)과 첩보(지능)을 재코드화해서 명령과 통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 P73

사이보그 정치는 언어를 향한 투쟁으로, 완벽한 소통에 대항하며, 모든 의미를 완벽하게 번역해내는 하나의 코드, 즉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라는 중심 원리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사이보그 정치학이 소음을 고집하며 오염을 긍정하고 동물과 기계의 정당성이 결여된(illegitimate) 융합을 기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결합은 남성과 여성을 문제 삼고 언어와 젠더를 생산한다고 상상되는 힘인 욕망의 구조를 전복함으로써 자연과 문화, 거울과 눈, 노예와 주인, 육체와 정신이라는 "서구의" 정체성이 재생산되는 구조와 양태를 전복한다. "우리"는 본래부터 사이보그가 되기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텍스트"가 널리 복제되기 이전 시대의 개체 재생산을 상상하는 자유주의 정치와 인식론을 좌초시킨다(grounds).

- P74

다른 모든 유형의 지배를 포함하는 억압, 결백한 피해자라는 순수성, 자연에 더 가깝게 뿌리내린 자들의 지반 같은 "우리의" 특권적 위치에서 정치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에서 벗어난 사이보그의 시점에서, 우리는 강력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페미니즘과 맑스주의는 억압들의 위계, 그리고/또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순수하며 자연과 더 닮은 잠재적 위치에서 혁명 주체를 구성하라는 서구의 인식론적 정언명령에 묶여 있었다. 공통 언어에 대한, 또는 적대적인 "남성적" 분리에서 보호해주겠다는 본원적 공생에 대한 본원적 꿈을 버리고, 최종적으로 옳다고 인정되는 읽기나 구원의 역사도 포기하고, "자신"을 세계 안에 완전히 새겨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이 정치의 근거를 정체화/동일시(identification), 전위정당, 순수성, 그리고 어머니 역할에서 찾을 필요에서 해방시켜준다. ... 본래부터 읽고 쓰기 능력을 지닌, 생존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어머니 ... - P75

문학적 해체가 아니라 문턱의 변환(liminal transformation). ... 본원적인 순수성에서 출발해 온전성으로의 회귀에 특권을 부여하는 모든 이야기는 삶의 드라마가 개체화, 분리, 자아의 탄생, 자율성의 비극, 글쓰기로의 추락, 소외로 이루어진다고, 즉 대타자(the Other)의 젖가슴에서 상상적인 휴식을 취함으로써 완화되는 전쟁이라고 상상한다. 결점없는 재탄생, 완성, 추상이 구현하는 재생산 정치가 이와 같은 플롯을 다스린다. ... 하지만 남성적 자율성에 덜 의존할 수 있는 길이 또 있다. 이 길은 원형적 여성, 원시성, 영점, 거울 단계와 그 가상을 통과하지 않는다. 이 경로는 타고난 여성이 아니라, 다른 현재 시제의 사생아 사이보그, 피해자화를 이데올로기적 자원으로 삼기를 거부하며 진짜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을 통과한다. ... 이 현실세계의 사이보그들은 자신들의 몸과 사회라는 텍스트를 능동적으로 다시 쓰는 중이다. 이 글 읽기 놀이에 생존이 걸려 있다. - P76

...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 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동원된 타자 - 로 이루어진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
자아는 지배받지 않는 하나의 존재(the One)이며, 타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로 인해 그 사실을 안다. 타자는 미래를 부여잡고 있는 하나의 존재(the one)이며, 자아의 자율성이 거짓임을 알려준 지배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안다.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되고, 강력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환상이며, 타자와 함께 묵시록의 변증법에 연루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가 된다는 것은 해져서 올들이 드러난 소매 끝처럼 분명한 경계가 없고 하나의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것, 곧 여럿이 되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 P77

하이테크 문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이원론들에 도전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는 누가 생산자이고 누가 생산물인지 불확실하다. 코딩 작업으로 구성되는 기계에서는 무엇이 정신이고 무엇이 육체인지 분명치 않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생물학 같은) 공식 담론과 (집적회로 속 가사 경제와 같은) 일상적 관행 모두의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이보그, 하이브리드, 모자이크, 키메라임을 깨닫게 된다. 생물학적 유기체들은 생체 시스템, 다른 기계들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되었다. 기계와 유기체, 기술적인 것과 유기체적인 것에 관한 공식적 지식에서 근본적, 존재론적 분리는 없다. ...

기계는 우리에게 상상과 실천 모두에서 보철 장치, 친근한 구성 요소, 다정한 나 자신들이 될 수 있다. 침투 불가능한 총체성, 완전한 여성 및 그 페미니즘 적 변이(돌연변이?)를 내놓는 유기체적 전체론은 우리에게 쓸모가 없다. - P78

우리의 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Our bodies, ourselves). 몸은 권력과 정체성의 지도다. 사이보그도 예외는 아니다. 사이보그 신체는 순결하지 않다. 에덴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신체는 통일적 정체성/동일성(unitary identity)를 추구하지 않으며, 따라서 끝없이 (또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적대적 이원론들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아이러니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오직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 기계는 우리이고, 우리의 과정, 우리가 몸을 갖게되는 것의 한 측면이다. ... 우리는 경계에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다.... 사이보그는 부분성, 유동성, 때로는 섹스와 섹유얼한 몸의 체현을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젠더는 심오한 역사적 폭과 깊이를 지녔어도, 결국에는 보편적인 정체성/동일성이 아닐 수도 있다. - P83

사이보그 젠더는 전면적 복수를 행하는 부분적 가능성이다. 인종, 젠더, 자본은 전체와 부분에 대한 사이보그 이론을 요청한다. 사이보그에게는 총체적 이론을 생산해내려는 충동이 없지만, 경계 및 경계의 구성과 해체에 대한 친숙한 경험은 있다. 파급력 있는 행위를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 한 관점과 지배의 정보과학에 도전하는 방법을 하나 제시할 정치적 언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신화 체계가 있는 것이다. - P84

유기체와 유기체적인 것, 전체론적 정치는 부활(rebirth)의 은유에 의존하며 재생산을 위한 성이라는 자원을 반드시 소환한다. 나는 사이보그가 재생(regeneration)과 관계가 더 깊고, 출산과 재생산의 기반 대부분을 의심한다고 말하고 싶다. 도롱뇽의 경우 다리를 잃는 것과 같은 상처를 입은 뒤 재생하는 과정에서 신체 구조가 재생되고 기능이 복원되는데, 이 때 다쳤던 부위에 다리가 두 개 돋아나는 등, 기묘한 해부학적 구조가 생겨날 가능성이 늘 있다. 다시 자란 다리는 괴물 같고 덧나 있으며 강력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부활이 아닌 재생을 요구하며, 우리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에는 젠더 없는 괴물 같은 세계를 바라는 유토피아적 꿈이 포함된다. - P85

사이보그 이미지는 두 개의 핵심 주장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보편적이고 총체화하는 이론을 고안하면, 아마도 언제나, 지금은 확실히, 현실 전반을 놓치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둘째, 과학기술의 사회관계에 대한 책임은, 반과학적 형이상학과 테크놀로지를 악마와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타자와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우리를 이루는 부분 모두와 소통하면서 일상의 경계를 능숙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입말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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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위해 죽다 - 애플, 폭스콘, 그리고 중국 노동자의 삶
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 지음, 정규식 외 옮김 / 나름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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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만드는 i-Slaves의 살아 있는 죽음과 같은 삶... 착취가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닌데...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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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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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들이 많은, 아이러니가 살아 있는, 무지개빛 생애사. 훌륭한 아스케시스,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부러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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