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구술사 - 현대 한식의 변화와 함께한 5인의 이야기
주영하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식 구술사‘라는 신선한 제목처럼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인문학, 식품학, 인류학, 민속학 등 다양한 전공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조리사, 식품학자, 외식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현대 한식의 역사를 논한다는 것만으로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복의 성자>는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채 어느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수호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히즈라안줌이 부조리로 가득찬 세상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작은 잔나트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이야기다. '위로받지 못한 이들에게' 헌정된 이 책은 현실의 그림자로 살다가 역사의 얼룩으로 스러지는 가장 비속하고 성스러운 이들에게 바치는 찬가.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희망은 없는 듯 하지만, 희망에 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 자신들이 가진 유일한 품위p. 356라 말하며 불굴의 의지로 절망을 헤쳐나간다. ‘히즈라는 인도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히즈라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 쪽에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해결 가능한 외적인 문제를 고민할 때, 이들은 해결 자체가 불가능한 내부 문제로 고통 받는다.

 

전부 우리 내부에 있어. 폭동도 우리 내부에 있지. 전쟁도 우리 내부에 있고. 그것들은 절대로 해결이 안 돼. 해결될 수가 없으니까.” (p. 39)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모든 사람이기도 하다. 정상성을 가지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확실성으로 인해 축소되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모호성으로 인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늘 옳다고 믿었다.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늘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확실성으로 인해 축소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호성으로 인해 확대되었다. p. 166

 

이러한 모든 사람과 아무도 아닌 사람,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p. 14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속성을 가진 히즈라는 역설적으로 화해와 포용, 희망의 상징이 된다. 기득권들의 질서, 상식, 규범, 문화와 관습에 속하지 못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손에서 새로운 씨앗이 피어난다는 것은 큰 감동을 준다. 역설적으로 하키라트 (현실)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야말로 현실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세상에 정의와 평등, 사랑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지복의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이들의 존재는 양극단의 이분법적인 프레임에 내포한 폭력성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은 구자라트 폭동,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 카슈미르 분쟁,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종교 갈등, 카스트제도의 폐해, 자본주의의 추악한 민낯 등 인도사회의 어두운 역사를 빠짐없이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분쟁과 갈등은 성별과 인종, 국가, 종교, 신분 등 이분법적인 가치관의 충돌에 기인한다. 따라서, 소설 속 등장인물인 안줌이 세상에서 외면 받은 묘지 위에 게스트 하우스인 '잔나트 (파라다이스)'를 건설한 것은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모든 곳에 죽음이 있었고, 죽음은 모든 것이었다. 죽음은 또 다른 방식의 삶이 되었다.” p. 415는 표현이나 죽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척하는 죽은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 p. 452이라는 표현처럼 삶과 죽음, 남과 여, 빛과 어둠을 포용하면서 더 큰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검은 마차 셋, 흰 수레 셋

우리를 한데 모으는 것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

떠나간 우리 형제, 떠나간 우리 사랑.“ p. 355

 

또한, 소설은 여전히 마이너리티로서 피해자로 살아가는 여성에 관한 서사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는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되는 반면,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콰브가에서는 잘못된 몸에 갖힌 신성한 영혼들이 해방된다. 신성한 영혼이 여성의 몸에 깃든 남성인 경우 어떻게 되는지의 문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p. 78)

 

우리는 모두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그것이 누적되어 이루어지는 역사와 사회구조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종과 국가, 성별, 문화 등에서 기인한 수많은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다수자들이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 불편한 진실에 맞서 소수자로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세상을 향해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를 딪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것이 우리네 인간이라는 존재 아닐까

 

상실과 결핍,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고, 그렇게 쌓아올린 하나하나의 삶들이 모여서 시대와 역사가 되고 하나의 별자리를 이룬 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복의 성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그것은 불가능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티끌 같은 희망이라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고, 또한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 세계에 함께 맞서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 인간이 지닌 온기에 대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이었다. 한낱 낄낄거림으로라도 역사에 존재하는 건 부재하는 것, 완전히 누락되는 것과 천지 차이였다. 그 낄낄거림은 결국 미래라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오르는 하나의 발판이 되었으니까.” p. 76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를 읽으며 한 점의 그림이 떠올랐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flagship)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영광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 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안줌틸로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건 그동안 세계와 인류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평범한 개인들이었다.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과 투쟁,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며,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이름 없는 수많은 '지복의 성자'들이기 때문이다.

 

너희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내기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왕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던 남자들과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오직 히즈라들만이 꼬박 십사년을 숲가에서 충성스럽게 왕을 기다렸는데, 그건 왕이 그들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우린 잊힌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거네 p. 76)

 

소설 속에서 델리의 잔타르만타르는 정의를 위한 싸움, 악에 대항하는 선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카르발라 (이슬람교 시아파의 성지)” (p. 162)이며, 누군가는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누군가는 그들의 말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 (p. 168)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이곳에서 안줌틸로가 마주치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와 희망의 상징인 미스 제빈 2가 태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는 것 아닐까?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들어 딸아이가 유독 고양이 인형에게 무한의 애정을 보내면서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에게도 급관심을 보이고 있어 덩달아 고양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가고 있는 와중에 엘렌 심 (Ellen Shim) 작가님의 <고양이 낸시 (Nancy the Cat)>를 만나게 되었다. 제목부터 고양이가 언급되고 있고, 살인적인 귀여움으로 천적인 생쥐들까지 무장해제시킨고양이 낸시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 친근감을 가지고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딸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교감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었다.



<고양이 낸시>를 읽으며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는 삶의 동반자로서 고양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얼마 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떠올랐다. 애묘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꽤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 에세이집에서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한 고양이 뮤즈의 비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장수 고양이의 이름 뮤즈는 하루키의 아내가 푹 빠져 있던유리의 성이라는 순정만화 속 등장인물 이름을 본따서 지은 것이다. ‘뮤즈는 하루키와 여러 가지 비밀과 추억을 공유한고양이다. 그 비밀 중 하나는 뮤즈가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하루키는 에세이집에서 뮤즈는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던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또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뮤즈를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사례처럼 <고양이 낸시>도 만화의 모티브가 된 고양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엘렌 심 작가님과LA에서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가 그 주인공은 아닐까? 이 만화는 그 고양이에게 건네는 작가님의 감사의 인사 같은 것 아니었을까?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돌아온 여행자 헥터의 등장일 것이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면서 마을에서 떠나 있었던 헥터는 어린 생쥐들이 스스럼없이 고양이 낸시와 어울리는 모습을보면서 엄청난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헥터는 생쥐로서 고양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낄수 밖에 없는 두려움과공포를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위험을 상기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밖에 애들이랑 노는 저 커다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낸시”, “더거씨네 딸...?”, “우리 아들 친구

고양이!!! 고양이라고요 여러분...! 우리들의 천적!!” (p. 159)



하지만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낸시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진심을 깨닫고, 종국에는 낸시의 든든한 지지자로 변모하게 된다. 낸시는 고양이이지만, “더거씨의 사랑스러운 막내 딸이었고, “지미의 소중한동생이었으며, “친구들을 배려하는, 모두가 너무나도 아끼는 낸시였던 것이다



제가 틀렸어요...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건 저였어요. 고양이 낸시만 보느라 다른 낸시들은 못 봤어요.” (p. 225)

 

 

평범하게 태어난 대다수처럼 고양이 낸시는 자신이 남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일말의 의심도 없이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이 생쥐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생쥐의 천적인 고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은 낸시에게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헥터는 낸시가 고양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말이예요. 저는 고양이인 낸시도 낸시의 한 부분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낸시한테 낸시가 고양이라고 언제 알릴 거예요?” (p. 231)



어쩌면 우리는 모두 고양이 낸시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왜 여기에 있는가?'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그것이 누적되어 이루어지는 역사와 사회구조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종과 국가, 성별, 문화 등에서 기인한 수많은 차별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다수자들이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 불편한 진실에 맞서 소수자로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세상을 향해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처럼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


 

 


딸아이는 고양이 낸시의 살인적인 귀여움에 무한한 열광을 보내고 있다. 거실 곳곳에 제멋대로 붙여져 있는 고양이 낸시의 스티커를 보면서 아이와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고양이 낸시>의 이면에존재하는 철학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라서 아이가 성장한 후 다시 한번 <고양이 낸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 지금 보다 진보한 세상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아빠와 딸은 어떠한 대화를 나누게 될까? 멀지 않아 도래할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민혁 단편선 화점
오민혁 지음 / 거북이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웹툰으로 처음 접했을때 예리한 시각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 마저도 자본이 가진 물성으로서 회복하고자 했던 한인물의 실패담이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 ‘up’이라는 단어는 총 202번 등장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던 개츠비의 열망은 결국 그를 저 위쪽 어딘가가 아닌 파국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 p. 54,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내게 마지막 여행을 허락해주면 안 되겠나?” - p. 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갈 수 없다면> 중에서 -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 p. 31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중에서 -

 

어쩌면 불투명한 미래, 상처와 트라우마를 딛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불나방이 되어 불꽃 속에서 마지막 날개짓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 아닐까? 유토피아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행복의 근원을 찾아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찾아나선 데이지와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실패가 예견된 여정을 선택한 안나’, 삶의 의미를 찾아서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린 재경가윤처럼 말이다. 불꽃 속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이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면 이를 우리가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재즈의 선율을 따라 욕망이 흘렀던 시대에 살았던 개츠비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저마다가 직면한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만이 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초엽 작가가 그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그 아득한 시간의 간극이 걷히면 또 다른 우리의 모습으로 남는다. 언젠가 우리도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누군가와, 또는 <공생가설>의 이야기처럼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 공존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초엽의 소설은 다양한 시공간에 놓인 인간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들은 성좌(星座) 소설, ‘별자리 소설로 불린다. 인간의 삶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직선적 사건이 아닌, 별자리처럼 시공간이 뒤섞인 원심형의 배열에 가깝다는 작가의 철학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번째 심장이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게 아닌가.” - p. 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문제제기는 테드창의 단편 <거대한 침묵>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침묵>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앵무새들은 인류에게 잘 있어. 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지만 무심한 인류는 이마저도 인지하지 못한채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서 광대한 우주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만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기반으로 특정 세계관과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다루는 것이 SF의 장르적 속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기술이나 세계그 자체 보다는 그에 반응하는 인간에 주목하는 SF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 구현해내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 보다는 그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생가설> 속 류드밀라의 그림처럼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위대한 개츠비><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소설은 단지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외계생명체 루이의 연속성과,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스펙트럼>희진처럼 불가능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티끌 같은 희망이라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 세계에 함께 맞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데이지처럼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 p. 104, <공생가설> 중에서 -

 

우리가 잃어버린것들, 두고온 것들,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은 무엇일까? 상실과 결핍,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고, 그렇게 쌓아올린 하나 하나의 삶들이 모여서 시대와 역사가 되고 하나의 별자리를 이룬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비록 워프 버블조차 만들 수 없어서 빛의 속도에 한참 못미치는 구식 우주선이라 할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 p. 18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애니비평 2020-01-28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크레이지 트레인이 생각나는

잭와일드 2020-01-29 11:55   좋아요 1 | URL
오지오스본의 크레이지 트레인인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