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 - 자연에서 찾은 우리 색 보림 창작 그림책
백지혜 글.그림 / 보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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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 <꽃이 핀다>의 부제는 자연에서 찾은 우리 색입니다. 이 책을 만든 백지혜 작가는 우리 옛 그림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채색화를 가르치고 있는 화가입니다. 여러 한국화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 옛 그림의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림 색깔 그림책이에요. 아름다운 색을 표현하려고 옛사람들은 흙이나 돌, 꽃이나 열매, 풀뿌리 등에서 얻은 천연 재료로 물감을 만들었어요. 이 책을 만들 때도 비단 위에 옛 어른들이 쓰던 천연 물감과 전통 채색 방법을 그대로 써서 그림을 그렸답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 색과 멋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거든요.” - 작가의 말 에서 -


 




<꽃이 핀다>는 이러한 작가의 우리 고유의 색과 한국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나 있는 책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꽃과 열매들을 한국화 기법으로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오묘한 색감과 한국의 전통적인 에 대해서 자연에서 얻은 석채와 연지, 등황, 쪽 등 천연 물감을 통해 표현하였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밭의 노래><노랑나비랑 나랑>도 작가의 그림이 담겨있는 책이지만, 본 도서 <꽃이 핀다>는 저자의 다른 책과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꽃이 핀다>는 작가의 그림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글도 작가가 직접 쓴 책이라는 점입니다. 작가가 직접 자연에서 포착해 낸 열세 가지 색깔이 작가가 직접 지은 시적인 글과 은은한 아름다움이 담긴 그림과 어우러져 독특한 미의 세계로 독자들을 매혹시킵니다. 꽃 피는 봄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물론 좋은 책이지만,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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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의 잠 도란도란 우리 그림책
박완서 글, 김세현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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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는 한여름을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노래 부르기 위해 몇 년이나 어두운 땅속에서 날개와 목청을 다듬는단다. 보아하니, 이 매미는 5년도 넘게 참고 기다렸겠는데? 내 짐작이 틀림없다면, 7년은 족히 됐을라, 한여름의 노래를 위해서 7년을...“

 


개미들은 지속되는 흉년 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고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 일개미가 우연히 크고 싱싱한 먹이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는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깊은 땅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 노래를 부를 날만을 기다리던 매미 애벌레였습니다. 지혜로운 늙은 개미는 이제 곧 땅 위로 올라가 빛을 볼 매미를 먹이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개미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결국 개미들은 생명과도 같은 먹이를 포기하고 매미를 도와주기로 합의를 합니다. 개미들의 도움을 받아 두꺼운 콘크리트를 비집고 세상에 나온 매미는 마침내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펴고 날아오릅니다.

 


<7년 동안의 잠>은 한여름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보내야 하는 '매미'와 땅 속에서 잠들어 있던 매미 애벌레를 발견한 '개미'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그림 동화 입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이 글을 쓰고, 출판미술상 수상자이자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도 참가했던 김세현 작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7년 동안의 잠>2015년 화이트 레이번즈 선정한 한국도서이자 현재 초등학교 2학년 국어활동 교과서에 수록된 책이기도 합니다.

 


매미가 짧은 전성기 동안 누리는 영광은 오랜시간 고독을 견디고 두려움을 극복해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극심한 가뭄 속에서 매미 애벌레를 발견한 개미들이 어렵게 발견해 낸 매미 유충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번민하는 모습 속에서 원초적인 욕망 해결과 물질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중시되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배불리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보다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통해 깨닫습니다. 아직은 책에 담긴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딸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빠와 함께 책을 읽었던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길, 또 이를 통해 삶에 대한 가치를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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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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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1914년에 시작되었다."

 

에릭 홉스봄은 말했다. 그의 표현처럼 사실상 20세기의 모든 것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1차 대전은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차 대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만의 관심사, 사상적 배경, 고민과 감정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또한 명시적으로 표명된 것과 이와 반대로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관례와 도덕, 관습과 가치까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이는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사건이자 미래의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자리하고 있는, 20세기 시대정신의 발현이기도 한 1차 대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이러한 시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모더니즘의 탄생을 바라보고 있다. 책의 제목 <봄의 제전>은 현대 예술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는 발레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는 모더니즘의 탄생과 1차 대전의 발발을 국가 간의 역학관계라는 거시적 접근 보다 사회 문화적 '움직임 (Movement)'과 이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대중과 관객, 시대 앞에 놓은 개인의 모습이라는 미시적인 접근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역사적 현실이나 구체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생각이고,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적합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역사보다 삶에 더 진실할 수도 있다는 태도 자체는 책이 쓰여진 당시에도 새롭게 제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또 지배적으로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새롭고 진보적인 주장이라 할 만하다.

 

"개인적 고통의 층위에서만 전쟁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은 집단적 해석이라기보다는 개인적 경험의 문제였다.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가 됐다. 예술이 역사 보다 더 중요해졌다." (p. 487)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의미에 대해 다룬 수많은 저술서 중에서 만족스러운 저작들은 대부분 시인과 소설가, 문학 비평가들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역사는 이성이 살아 있던 18세기와 19세기 합리주의 시대에 널리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세기의 감수성에 적응하지 못했고, 전쟁의 배경과 그 참혹한 현실, 전쟁의 의미에 상응하는 설명을 찾는데 실패했다. 에곤 프리델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도 '집단적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사회 환경과 접점을 잃어버린 개인적 반응, 꿈과 신화만이 있을 뿐'이라며 역사를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다. 역사학자 허버트 피셔는 '현명한 이들은 역사에서 플롯과 리듬, 예정된 패턴을 파악해왔지만, 자신의 세기에는 이러한 조화로운 패턴들은 숨겨져 있고 자신은 단지 파도가 연속적으로 밀려오듯 한 위기 상황 뒤에 다음 위기 상황이 따라오는 것을 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는 통합 보다는 해체의 시대였고, 역사가 권위를 상실한 반역사적인 시대였으며, 삶과 예술이 뒤섞인, 존재 자체가 미학화되는 시대였다.

 

"자유를 얻기 위해 분투하다가 궁극의 파괴력을 얻게 된, 원심적이고 역설적인 우리 세기 최고의 상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허무주의적 광란의 아이러니가 담긴 죽음의 춤이다." (p. 10)



 

1913529일 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발레 '봄의 제전'의 막이 올랐다. 발레단 단장 댜길레프가 기획하고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니진스키가 안무를 맡았다. 작품은 윤리 이전의 원시적 인간의 모습을 통해 모든 존재의 근본적 경험인 삶과 죽음을 다뤘다. 제의에 선택된 처녀는 마지막 순간 희생되었고, 이 희생은 애도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로운 것으로 기려졌다. 작품은 찰나의 미학적 순간과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고, 무의미한 관습과 규범, 가식적 행위 등은 도덕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희망은 도덕이 아닌 생명력 넘치는 삶의 에너지에 있었다. 음악도 작품의 테마만큼이나 원시적이었다. 불규칙적인 강세, 잦은 변박, 불협화음으로 폭발적인 역동성을 표현하였고, 이는 관악기가 선율을, 현악기가 리듬을 맡는 상식에 반하는 구성을 통해 구현되었다. 고전 발레가 지향한 가볍고 유연한 동작을 위한 기교와 규칙을 거부하고, 원시적이고 묵직한 동작으로 채운 니진스키의 안무는 발레 본연의 아름다움 대신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봄의 제전의 초연은 무엇보다 진보적인 이벤트로서 그 시대의 상징이자 모더니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이정표로 평가 받는다. 봄의 제전은 전통주의자들에겐 예술을 부정하고 예술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예술에 무한한 자유를 주어 20세기 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적인 작품이었다. 봄의 제전은 정해진 형식을 부정하고, 원시주의 등 문명과 상충되는 가치를 받아들이며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거부함으로서 새로운 가치와 미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전통적 가치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탄생했다. 이를 통해 당시 유럽 각국의 개개인이 가진 변화의 방향성이 모두 한 곳을 향해 있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대중들이 변화를 받아들일 유연한 자세와 그러한 사상적 흐름이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파괴를 통한 창조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고, 이는 도덕과 무관한 운명이라는 것이라는 작품의 테마는 전쟁이라는 대의명분에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모를 병사들을 연상시킨다.



 

"사실 예술은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상관물이 됐다. 물론 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예술이 아니라 이전의 창작 규칙이 폐기되고 도발을 목적으로 삼는 예술, 이벤트이자 경험이 되는 예술이었다. 그 과정에서 삶과 예술은 함께 움직였다." (p. 362)

 

도덕이 부재하고 이성과 합리는 사라진 채 파괴적 에너지만 들끓었던 '봄의 제전'처럼 공연이 끝나고 1년 뒤 전쟁의 광기가 유럽을 점령하고 무고한 이들이 희생제물이 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현대인이 속도와 새로움, 일시성, 내향성에 열중하는 동안 내재적 가치와 윤리적 신념 체계는 뒤로 밀려났다. 저자는 당시 독일에게 전쟁은 물리적 팽창이 아닌 관념론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혁신과 쇄신의 상징이자 넘치는 활력과 기술적 탁월성의 화신이었다. 독일은 물리적 의미가 아닌 존재론적 의미의 독일 팽창이라는 전략과 비전하에 있었다. 문화의 토대로 간주하든, 창조성과 정신의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디딤돌로 간주하든 전쟁은 민족의 자존감과 이미지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헤르만 헤세는 아니러니 하게도 전쟁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문제였음을, 그것은 생기와 에너지, 덕성을 확인하는 예술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이는 자유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윤리, 문화적 헤게모니라는 기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영국과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시나 소설에서 전쟁 영웅들의 모험담만 다루었고, 전쟁의 참혹한 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전쟁에 대한 지나친 낙관도 있었다. 보불전쟁이후 40년 넘게 이어진 평화와 대규모의 전면전이나 긴 시간에 걸친 전쟁이 없었던 것도 전쟁을 참혹하고 잔인한 것이 아닌 모험과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했다. 산업혁명으로 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전쟁관은 여전히 중세, 전근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사의 군대는 유니폼을 입고 포화와 총격에도 꿋꿋이 전진하는 라인배틀에서 명예와 자부심을 느꼈다. 과거 유럽왕족은 친인척으로 얽힌 경우가 많았고, 전쟁을 스포츠처럼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따라서 나라 대 나라가 존폐여부를 걸고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몇 번의 큰 전투 이후 판도를 본 뒤 조약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평민들에게 전쟁은 주로 기사들이 출진하는 것으로 영주가 바뀌더라도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가 작아 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전쟁의 양상과 제1차 세계대전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전의 전쟁들이 왕조 간의 전쟁, 봉건적, 귀족적 이해관계의 전쟁, 군주간 대립에 기인한 전쟁이었다면, 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최초의 중간계급 전쟁이자 대규모 부르주아 전쟁이었다. 20세기에 애국심과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징집된 병력을 철도로 얼마나 빨리 집결시키는지가 승리의 큰 요소가 되었고, 국가적으로도 모병과 애국심 고취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무를 다한다는 생각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총이 개발되면서 더 이상 숙련된 병사가 필수적이지도 않았다. 1명의 숙련된 기관총 사수보다 5명의 초보 기관총 사수가 더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체제로 전쟁물자 또한 빠르게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영주 대 영주의 대결은 국가 대 국가의 국가 총동원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총력전은 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참전국 전부를 존폐의 위기에 몰아넣는 수준의 피해를 가져왔다.

 

기술의 발달은 변화를 야기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기술혁신과 변화가 주는 이점은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과거의 익숙한 삶은 고수하려 한다. 이 모순의 간극의 크기만큼 위기도 커진다. 이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반복된 사실이지만 산업혁명은 변화의 속도를 천문학적으로 높인데 비해 인간에게 이를 대비할 시간은 많이 주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그 간극으로 인한 파괴력이 가장 크게 발생한 사건이었다. 충력전은 단순 전투력만이 아닌 경제력, 외교력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영역 즉, 국가와 국민의 능력을 모두 투입하는 승부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전을 총력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전략, 전술을 적용하는 분야와 속도, 한 지점에 투입하는 병력과 물자의 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빨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일상의 전시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목적 없이 지속되는 참혹한 소모전에 들어서자 애국심, 국가적 의무, 명예라는 추상적인 가치들은 의미를 잃어갔다.

 

900만 명이 죽고 2,100만 명이 부상당하고 나서야 전쟁은 끝이 났다. 경제는 파탄이 났고, 각 국에서는 분쟁이 발생했다. 패전국은 거리를 배회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위장하였고, 승전국은 이겼지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자유, 존엄, 정의는 전쟁이 초래한 막대한 희생을 생각할 때 공허하기만 했다. 옛 권위와 전통 가치는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옛것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권위와 가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전쟁에 들인 막대한 노력, 특히 강렬한 정서적 헌신은 평화를 달성하는 작업에서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었고 유럽은 엄청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유토피아적인 사회적 꿈은 전쟁 후 닥친 인플레이션과 실업, 빈곤, 인플루엔자 유행병으로 잔인하게 지워졌다. 결국 평화에 뒤이어 불가피하게 환멸과 허무가 찾아왔다. 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끔찍한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한동안 그런 생각 자체를 묻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순간의 생생함 속에서 찾고 향락과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이런 현실 속에 등장한 나치즘은 세속적 이상주의의 극치였다. 절박한 실존적 위기감에 의해 추진된 그것은 현실의 토대 위에 있지도 않은 극단적인 이상주의였다. 나치 운동은 의고적인 동시에 미래지향적이었다. 나치즘은 미래 '멋진 신세계'를 향한 앞뒤 가리지 않는 돌진이었다. 나치즘은 무엇보다 자기애를 수반했지만, 그것이 사랑한 자기란 실제 자기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이었다. 거울에 비친 상, 나치가 자신들에 대해 품던 이미지는 강철처럼 강하고 니체적 권력의지를 지닌 영원한 젊은이였다. 나르시즘적 컴플렉스 안에서 존재는 미학의 문제, 즉 삶을 옳은 것이나, 선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된다. 파시즘이란 정치의 미학화라고 말했을 때 발터 벤야민은 이런 지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정치의 미학화에 그치지 않고 존재 전체의 미학화를 추구했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모더니즘 전반에 있어 심리적 전환점이었다. 창조하려는 충동과 파괴하려는 충동은 자리가 바뀌었다. 파괴 충동은 강화됐다. 창조 충동은 갈수록 비실제적인 추장으로 흘렀다. 결국 추상화는 광기로 바뀌었고 남은 것은 파괴, 신들의 황혼뿐이었다." (p. 547)

 

모더니즘은 나치즘과 파시즘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나치즘은 자기들이 경멸한다고 밝힌 모더니스트들처럼 주관주의와 기술주의를 결합시키려 했다. 나치즘은 이성이나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 자아, 감정, 경험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모더니즘의 경향이 낭만주의라는 그 근원부터 '주관'을 객관화하고 주관적 경험을 상징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치즘은 이러한 경향을 받아들여 삶과 사회의 일반적인 철학으로 탈바꿈시켰다. 히틀러에게 삶은 예술이었고, 그의 운동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노력과 그 자신의 당이 인정받기 위해 벌인 투쟁을 히틀러는 '아름다움'과 동일시한다. 히틀러는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라는 가사로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의 주인공 토스카 못지않게 자신이 예술을 위해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도덕은 추의 발명품, 즉 추의 복수로 예술은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미를 향한 해방은 집단적 노력이 아니라 에고티즘을 통해서, 사회적 작업이 아니라 개인적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전쟁과 모더니즘을 미학적 프리즘으로 들여다 본 후 윤리 의식 없이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예술은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2022년 봄, 유럽에선 또 다른 '봄의 제전'이 펼쳐지고 있다. 다시 시작된 봄의 제전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리는 그동함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시작되어 명분과 목적 없는 전쟁이 결국 황폐함과 절망만이 남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지켜봐왔다. 프란츠 마르크는 1차 세계대전을 '문화를 수호'하고 '유럽을 해방시키는', 유럽 정신 내부의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서는 전쟁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1차 대전은 허무와 환멸만이 남겼을 뿐이었다. 유럽정신, 유럽적 가치는 존재하는 것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며 나는 인류는 평화를 선호하며, 평화를 위해서 단결할 수 있는 정의감이 아직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국가는 스토리 위에 만들어지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앞으로 어두운 시대가 끝나고 난 후,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전할 스토리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는 대피할 곳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며 끝까지 수도에 남아 항전 의지를 전한 대통령, 항복하라는 러시아 함대 앞에 '엿이나 먹어 버려라'하며 굴하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한 13명의 스네이크 섬의 수비 대원들, 맨 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막아내려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라리는 국가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태어나며 장기적으로, 이 이야기들의 힘은 탱크보다 강하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크라이나에 하루 속히 봄이 찾아오길 바란다. 우크라이나의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의 가사처럼 적들이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가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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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endli 2022-04-20 0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세기는 통합 보다는 해체의 시대였고, 역사가 권위를 상실한 반역사적 시대였으며, 삶과 예술이 뒤섞인, 존재 자체가 미학화되는 시대였다.˝는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1차 세계대전과 모더니즘의 탄생을 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잭와일드 2022-04-20 13:01   좋아요 2 | URL
1차 세계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처참했던 참호전이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지, 이성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능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든보이 2022-04-21 15: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기사에서 본 “우리는 우리 문화,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예술가의 절규가 떠오르네요. 미학을 통해 본 전쟁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잭와일드 2022-04-21 16:49   좋아요 2 | URL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각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고나서 작가의 다른 저서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본서 <봄의 제전>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더라구요. 2차 대전이나 반고흐에 대해 다룬 저서도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같이 소개되어 읽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캡틴멍멍이 2022-04-21 18: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평자님의 깊은 사색과 놀라운 통찰력에 좋아요를 안누를 수 없습니다. 본 서적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가는 글과 정성스럽게 편집한 사진들을 보고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마음이 따듯해 짐을 느꼈습니다.

‘현대인이 속도와 새로움, 일시성, 내향성에 열중하는 동안 내재적 가치와 윤리적 신념 체계는 뒤로 밀려났다‘ 라는 필자님의 문장에 깊이 동의합니다.

자주 들러 필자님의 글 구독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잭와일드 2022-04-21 22:26   좋아요 2 | URL
너무 극찬을 해주셔서 부끄럽네요. 캡틴멍멍이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5-07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러블리땡 2022-05-08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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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어 놓은 선 저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소중함과 삶을 살아가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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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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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책 이름과 내용에 대한 요약이나 어떠한 직접적인 힌트도 제공하고 있지 않은 책 표지를 거치고 나면 이 책을 향한 수많은 찬사가 장장 4페이지에 걸쳐 펼쳐진다. 이들 중에는 메리 로치, 수전 올리언, 사이 몽고메리 등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빅네임‘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라고 불리는 메리 로치는 “서정적인 동시에 지적이고, 사소하면서 거대하고, 별나면서도 심오한 완벽한 책“으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가 ‘국보’로 칭한 작가 수전 올리언은 “큰 질문과 작은 순간들 사이를 우아하게 오가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라고 말한다. ‘인디애나 존스이자 에밀리 디킨슨’라는 별칭을 가진 세계적인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작가인 사이 몽고메리는 “이 책은 당신의 가슴을 사로잡고, 상상력을 장악하고,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책이 혼돈의 해독제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수 있는 건 책을 향한 수많은 찬사처럼 이 책은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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