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좋은 삶
왕증기 지음, 윤지영 옮김 / 슈몽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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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싼쯔얼 (吱儿)’은 갓 태어난 새끼쥐를 산 채로 먹는 요리다. ‘쯔얼(吱儿)’은 새끼쥐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기 때문에싼쯔얼은 새끼쥐가 세번하며 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막 세상에 태어난 새끼쥐가 접시에 담겨 나오면 젓가락으로 살아있는 쥐를 잡아 올리는 순간 첫번째쯔얼 (吱儿)’, 쥐를 들어 양념장에 담그는 순간 두번째쯔얼 (吱儿)’, 마지막으로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번째쯔얼’, 이렇게 세번 운다고 해서싼쯔얼이다.



대학시절 중국어를 처음 접했을 때, ‘싼쯔얼 (吱儿)’로 대표되는 중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놀라움을 넘어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장면과 탕수육, 굴소스, 두반장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음식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소에도 즐겨 먹는 것이었지만, 그 종류와 역사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었던 것이다. 비행기와 책상을 제외하고 네발 달린 건 다 음식 재료가 된다고 할 만큼 오래된 역사와 넓은 대륙이 지닌 지리적 특색 속에서 지역 마다 특화되어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온 수많은 종류의 음식들의 향연은 솔직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후 중국어를 배우면서 언어와는 별도로 중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 "맛있는 음식이 삶의 재미를 더하고, 삶의 재미가 음식의 맛을 낸다." 는 중국음식에 관한 에세이 <맛 좋은 삶>을 접하게 되었다. <맛 좋은 삶>은 왕성한 호기심과 식탐을 가진 중국 문학계의 거장 왕증기 선생이 쓴 음식이야기다. 왕증기 선생이 중국의 동서남북을 종횡하고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수집한 다양한 음식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미식가들이 주목하는 중국미식의 경전으로 이른바 왕미 (汪迷, 왕증기의 팬)’ 을 대거 양산한 <맛 좋은 삶>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단어절과 오리알 절임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전통 문화와 민간 예술이 빛나는 아름다운 산문 38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먹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먹는 것까지 뭐라 하면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저런 음식을 먹을 수 있냐.'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광둥 사람들이 먹는 뱀이나, 물방개, 태족 사람들이 먹는 똥곱창 같은 음식들 말이다. 이런 음식들은 광둥 사람이나 태족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음식이 아니다. 그들이 맛있어서 먹겠다는데 누가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p. 24)



인간은 모험하는 존재이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고,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의 모험심은 우리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욕구이고, 문명 발전의 근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를 받고, <톰 소여의 모험>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소설들이 모험을 위해 태어나 모험을 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인간의 원형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단절되어 삶에서 모험이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각자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모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소년이었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모험 그 자체인 소년, 모험을 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맛 좋은 삶>을 읽으며 현대인이 추구하는 모험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음식에 대한 탐구과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소비하는 것은 탄생과 소멸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생과 사의 윤회와도 같다. 또한, 그러한 행위의 반복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인 동시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탐구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 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소비되고 또 발전하고 있다.



'얘야 큰일 났구나. 며늘아기가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지 뭐냐.' 라고 말하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요.' 하고는 파 한 뿌리를 가지고 나가서 우물가를 한바퀴 돌았다. 그러자 며느리가 우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p. 22)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권 마다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맛 좋은 삶>에서 인용하고 있는 우물 안에 들어간 며느리 조차 뛰쳐 나오게 만드는 산동 대파에 관한 에피소드는 가을 전어굽는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한국의 사례와 유사한 것이 흥미로웠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그 무언가에 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한 공유된 기억들이 구체적인 음식에 대한 취향을 다를지라도 서로의 문화와 음식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맛 좋은 삶>에는삶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라는 저자 왕증기 선생의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입맛을 조금 더 폭넓게, 조금 더 잡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폭넓고 잡스러운 입맛이 있어야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라고 하는 중국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맛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자의 중국음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치즈 냄새가 취두부 냄새를 따라가려면, 단언컨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중국 사람들의 잡스런 입맛은 세계에서 일등이다." (p. 17)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너 두즙에 도전해볼 수 있겠냐?"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 유무를 묻는 이 같은 질문에 저자 왕증기는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털 달린 것은 먼지털이 빼고, 다리 달린 것은 의자 뺴고, 고기라고 하면 큰 고기중에서 사람 고기 빼고, 작은 고기 중에서 파리 고기 뺴고는 다 드시는 몸이시다.'라고 대답한다. 음식에 대한 선호와 취향의 문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문제고 강요의 대상도 아니다. 저자도 특정 음식의 대중화를 주장하며 억지로 권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 자신이 경험했던 맛있는 음식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길 권할 뿐이다.



애초에 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내밀하고도 고유한 추억, 그리고 집단으로 공유되는 기억이 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에 이란 의미를 부여할 때는 공통의 관습과 개인적인 취향이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유된 기억이 매개가 되어 타인의 내밀한 추억을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며 우정을 쌓기도 한다. 결국 맛 좋은 삶이 지향하는 건 소박한 중국 가정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중국인들,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삶의 방식이란 어떤 것일까?’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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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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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을 주제로 하는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빛의 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나온 집들에 대해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이다. <빛의 현관> 주인공 아오세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정주 (定住)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이주하게 건설현장의 숙소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창이 있었다. 그것은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이었다.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은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 이후 주인공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이었다.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그가 꿈꾸는 집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빛의 현관>, p. 40)



건축업계에서 절대적 신앙으로 떠받들고 있는남향 아닌북향으로 지어진 주인공 아오세의 집은 진정한 행복은 일률적이거나 보편적인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집은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겨 있는 집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또는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이 판가름 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이 우리가 추구해야 진정한 행복 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집들은 주인의 성향과 가족의 이원과 생활양식에 따라 다른 구성을 가진다.” (p. 131)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 작가의 지난 동안 거쳐 다양한 집과 방에 관한 이야기다. 지나온 삶의 이력을 집을 빼놓고 얘기할 있을까? 작가의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 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집과 관련된 행복했던 기억, 아픈 추억, 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누구도 부정할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p. 198)


정체성들이 모여 나의 취향과 불호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욕망의 많은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p. 181)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같은 노래 가사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 있다. 우리가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지나온 삶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하재영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소설 <빛의 현관> 닮아 있다.



책은 집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p. 218, 작가의 중에서)



하지만 작가는 책에서 단순히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하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 여성의 위치는 어떠했는지 되짚어보고, 그리고 고정된 역할에서 탈피하여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자리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집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관점에서 여성의 위치를 바라본 작가의 시도는 개인의 역사가 보편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새롭고 놀라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직 남아 있는 구시대의 전통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아직 자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른바 사생활의 영역인 집에서도 장소 상실을 겪고 있고, 안에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의 투쟁 보다 처절하다고 말할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김현경의 지적은 뼈아프다. (김현경, <사랑, 장소, 환대> 중에서) 작가는 주방이 가족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여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가사 노동이 여자만의 일이라는 것인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은 아내의 공간으로 구분할 , 부부 사람만 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 보낸 것은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 삶의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p. 175)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나는 존재를, 시절을 잃고 집에 왔다. 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삶의 새로운 배경이 것이다.” (p. 181)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빛의 현관>에서 아오세의 가족이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의 세례를 받았듯이, 구기동 자택이 작가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책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나 불온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올리기 조차 힘겨운 순간을 겪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위로로 다가온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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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드님 우와 이책 읽으셨군요.
히데오에 빛의 현관을 떠올리게 된다니 더더욱 궁금 ㅋㅋ
2021년 새해 연하장 와일드님 서재방에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21-01-01 09:27   좋아요 1 | URL
scot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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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한동안 나의 인생 소설이었다. 여러 사건과 갈등들이 밀도 높게 중첩되면서 서서히 장대한 서사의 결말을 향해 수렴해가는 <64>는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는 물론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킬 만큼 내게 강렬한 소설이었다. 그 후 나는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올해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의 신작 <빛의 현관>의 출간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빛의 현관>은 휴먼 미스터리의 정점이라는 홍보 문구에 걸맞는 작품이었다. 독서를 하면서 남아있는 분량이 줄어가는 것을 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기기가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가슴에 남은 진한 여운과 따스함을 느끼며 소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다가 우연히 작가의 대표작 <64>와 신작 <빛의 현관>을 비교해 놓은 출판사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오래전 읽은 <64>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짧은 소회라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찰 소설의 정수 <64> vs 휴먼 미스터리의 정점 <빛의 현관>


1. Round 1


출판사는 <64>의 장점으로 흠잡을 데 없이 강렬한 경찰 소설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64>는 작가가 되기 전, 12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작가의 경찰 조직에 대한 집요한 자료 조사와 더불어 1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인 들여 쓰고 다듬으면서 완성한 경찰 소설이다. 경찰조직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조직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포착해내고 이를 통해 사회와 조직, 조직 내의 인간을 투영해낸 걸작이다.


신작 <빛의 현관>은 우아하고 따뜻한 미스터리를 표방한다. ‘아름다운 미스터리라는 홍보 문구와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하고 부드럽게 내리쬐는 노스라이트 (north light)’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작가의 담백하고 건조한 문체는 휴먼 미스터리라는 서사를 만나 독자들의 감동의 폭을 넓힌다.


2. Round 2


이 두 소설은 분량과 서사 구조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64>14년전 일어난 유괴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면서 갈등의 중첩이 일어나고, 결국 이를 새로운 유괴사건을 통해 해결하는 절묘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다. 반면 <빛의 현관>은 주인공이 사라진 건축주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과, 주인공의 건축사무소가 혼연일체가 되어 설계 공모전을 준비하는 두 가지 사건이 이야기의 양대 축을 이루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라서, 상대적으로 등장인물 수도 적고 관련하여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간의 갈등 구조도 단순하다.


3. Round 3


,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면에서 보면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인간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맥은 일치하고 있으나, <64>는 경찰조직이라는 다소 무겁고 경직된 조직을 통해서 접근하는 반면, <빛의 현관>은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Y 주택을 설계하는 주인공 아오세와 타우트라는 전설적인 건축가, 작중에 등장하는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처럼 예술가의 작품과 철학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당신의 결론은...?


출판사의 블로그는 당신의 취향에는 어떤 작품이 더 가까운지 묻는 질문으로 <64><빛의 현관>두 소설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두 소설 중 더 나은 소설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어떤 밸런스 게임 보다도 내게 어려운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의 선택은 <64>의 오카사베 부장의 명대사로 대신하고자 한다.



"자네가 맡은 자리로 돌아가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허비하는 건 아둔한 짓이야."

"오늘은 오늘을 위해, 내일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네." (p. 320)



오카사베 부장의 말처럼 <64><64>만의 <빛의 현관><빛의 현관>나름대로 그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두 소설 중 양자택일에 관한 질문에 대해 <64>의 문구로 대신하며 말도 안되는 답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는 <빛의 현관> 보다는 <64>에 약간은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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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7년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경찰 내부조직을 작가가 굉장히 밀도높게 공들여 쓴 것은 기억나네요. 요즘 비밀의 숲 시즌2보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

잭와일드 2020-12-17 12:59   좋아요 2 | URL
아 네 굉장히 밀도 높은 소설이죠. 작가가 되기 전 12년의 기자 경험과 10년에 걸친 집필기간이 집약된 소설인 것 같습니다.

ITSABOUTTIME 2021-01-0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을 믿고 64를 읽어보려고요.
저는 원래 미미 여사님의 시대물을 좋아했어요.
그분의 문체도 좋고 신비하면서 인간적인 내용에 빠지면서 나도 글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죠. 왠지 요즘은 외출을 못 하게 되면서 우울해지고 책에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어요. 어쨌든 추천 믿고 구매삽니다. 감사합니다.

잭와일드 2021-01-04 12:09   좋아요 0 | URL
네 취향의 차이는 있을수 있어도 어떤 의미에서든 잘 쓴 소설이라는 건 부정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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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고 나서 언제나 머릿속에 남는 건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다.“ - <64> p. 691, 옮긴이의 말 에서 -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 ‘휴먼 미스테리의 정점이라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 <빛의 현관>의 홍보 문구를 보고 어쩌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이나휴먼과 같은 수사들이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빛의 현관>을 접하기 이전일지라도 이러한 홍보문구에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경찰 조직내 갈등과 암투를 그린 그의 대표작 <64> 조차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가슴에 따뜻한 온기와 여운이 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의 현관>의 홍보문구를 보고 나는 '아름다운' 이나 '휴먼'이라는 문구 보다 '가장''정점'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가슴이 설렜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휴먼 미스테리의 대가가 보여주는 그 정점이란 어떤 것일지 그 생각만으로 이번 신작소설에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오랜 팬으로서 대부분의 출간작을 읽어왔지만,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빛의 현관>의 출간 전부터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의 신작에 대한 정보를 갈구한 이유이다. 그러던 중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내리쬐는 한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된 순간 나는 이 소설이 작가의 커리어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일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신종 전염병으로 전세계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시기에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의한줄기 빛과 같은 위로란 어떤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했다.



여러 사건과 갈등들이 밀도 높게 중첩되면서 서서히 장대한 서사의 결말을 향해 수렴하는 <64>를 비롯한 그의 전작과는 달리 <빛의 현관>의 서사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크게 주인공인 건축가 아오세가 사라진 건축주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 그리고 아오세가 소속된 건축사무소가 설계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아오세는 전적으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라는 요청을 받고 잊고 지내왔던 건축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걸작 'Y 주택'을 완성한다. 건축계에서 신앙처럼 떠받드는 '남향'에서 벗어난 이 '북향'의 집에 대해 의뢰인은 찬사를 보냈고, 건축업계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선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주택의 완공 후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직접 찾아가본 'Y 주택'에는 사람이 산 흔적도 전혀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의뢰인 가족의 행방을 파헤치는 것이 소설의 주축이다. 또 다른 한 축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가 설계공모전에 입상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다. 건축 설계 공모를 두고 각 건축사무소가 벌이는 설계전쟁은 소설의 후반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너한테 가장 아름다운 건 뭐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바로 답이 튀어나오겠냐고 대꾸하려는데, 어디선가 머릿속을 향해 답이 던져졌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

"노스라이트"

"북쪽 빛이라... 기법이 아니었군. Y 주택은." (p. 363)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무엇인가? 이는 주인공 아오세의 친구이자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의 소장인 오카지마가 아오세에게 던진 질문인 동시에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또한,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랫말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착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땅에 뿌리를 내리겠노라 다짐하는 이도, 땅에 작별을 고하고 고층 건물에 여생을 맡기는 이도.“ (p. 321)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건축을 하다 보면 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 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역이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p. 30)



아오세는 지나온 삶 동안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에 따라 여러 곳을 이주하며 살았다. 떠돌이의 삶에 정주(定住)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겐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빛의 기억 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p. 33)



아버지를 따라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는 추후 아오세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한동안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또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이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만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p. 40)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문,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이다. 이는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투영된 집이고, 또한 동시에 아내 유카리의 소망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어진 Y 주택은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을 지향하는 집은 아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Y 주택은 아오세 가족만의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긴 집이다.



노스라이트란 '의식 아래의 행복'을 암시하는 은유입니다. 마음의 안녕에 바탕이 되는 것. 영혼의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남과 비교하거나,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에 좌우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 요코야마 히데오 인터뷰 中에서 -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채운다. 부족한 것을 채운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운다.” (p. 344)



우리는 수많은 상실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이란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 나가는 끝없는 작업이라는 작중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신조와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는 전설적 건축가 타우트의 철학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Y 주택이 아오세의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아오세의 가족이 Y 주택 안에서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를 받으며, 먼 훗날 Y 주택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또 다른 새로운 추억들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이 소설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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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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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2020년 올해는 슈만 탄생 2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동시에 그와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인 쇼팽의 탄생 2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슈만은 그만의 감성이 담겨 있는 독창적인 음악으로 유명하지만, 쇼팽, 멘델스존, 브람스 등을 발굴해낸 음악 비평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무명의 작곡가 쇼팽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보고, 천재의 탄생을 대중에게 알렸던 음악사상 최대의 찬사가 담겨 있는 그의 평론은 쇼팽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음악 애호가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다소 낯 간지러운 표현이 될지는 몰라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그림자 밟기>를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소회는 쇼팽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경이와 찬사, 존경이 담겨 있는 슈만의 표현을 빗댄 위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사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그의 전작 <64> 12년의 기자 경험과 치밀한 자료조사, 10년에 걸친 집필 기간이 쌓아 올린 걸작으로 요코야마 히데오를 명실상부한 거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는 어마어마한 극찬을 받은 <64>2012년 일본 최고의 소설로 꼽혔고,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인터내셔널 대거 최종후보, 독일 미스터리 대상 해외부문 1위에 오르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천재' 대신 '거장'이라 표현한 이유는 그의 오랜 팬으로서 이제는 '천재' 라는 표현 보다 '거장' 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 밟기>'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새로운 작품'로 표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를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휴머니즘이라는 코드를 조합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작가라고 생각한다. 미스터리 장르를 다루면서, 또 경찰 조직에 관한 여러 편의 소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추리력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나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거친 후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흐릿해진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 조각의 진실을 바라보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소설 속에서 미스터리를 쫓으며 진실을 갈구하는 인물들은 내면에서 욕망과 갈등이 꿈틀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에 대해 탐구하며, 인간 성장의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그림자 밟기>도 추리소설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삶에서 직면한 저마다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번민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의 전작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인공 마카베는 전도유망한 엘리트였지만 일순간에 밀려온 삶의 소용돌이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픔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떠나간 가족에 대한 오해와 원망 속에서 스스로 밑바닥 인생을 선택하여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카베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자, 부패한 형사, 비정한 야쿠자,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아들을 기다리는 노인 등 다양한 인물과 관련된 사건을 겪고 해결하면서 자신이 품고 있는 삶의 화두에 대해서 탐구해 나간다.

 


<그림자 밟기>는 동일한 등장인물과 배경이 반복되면서도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마카베가 겪게 되는 개별적 사건들이 하나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결되는 시리즈물로서 같이 읽으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구성이다. 더군다나 <그림자 밟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성장 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고, 여타의 사건들을 겪은 주인공이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에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편소설집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모든 에피소드를 같이 읽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 마카베는 정의로운 법조인을 꿈꿔왔지만 가족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 이후, 충격과 죄책감 속에서 스스로 도둑이라는 삶을 선택하여 살아간다. 이것이 그의 전작들과 대비되는 차별화된 요소를 만들어내는 기본 구도가 되고 있다. 그의 전작들이 세상을 사회의 빛을 지켜내는 경찰과 제도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빛 뿐만 아니라 빛에 가려진 그림자를 어둠의 시각에서,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곳에서는 바라보면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서 바라보면 밝은 곳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주인공 마카베는 음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밝은 곳을 바라보고, , 빛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빠짐 없이 조명하고 있다.

 


경찰 소설의 거장이 그 정반대에 위치한 범죄자의 시각에서 소설을 썼다는 점도 놀랍긴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 거장의 숨결이 살아있다고 표현할 만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소설 내내 그의 곁에 머무는 주인공 마카베의 쌍둥이 동생 '게이지'의 존재다. 셜록 홈즈의 든든한 동료로 그의 곁에 머물면서 홈즈의 지성을 이끌어내는 왓슨이 연상되기도 하고,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가 연상되기도 하는 '게이지'라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추리소설 팬으로서 수많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캐릭터를 봐왔지만 '게이지' 같은 독특한 형식과 매력을 가진 캐릭터는 보지 못했다.

 


"쌍둥이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마카베가 나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곧 게이지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했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생김새는 물론 자신과 마음속까지 똑같은, 복사판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차라리 사라져버려. 그렇게 빌었다." (p. 134)

 


<그림자 밟기>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쌍둥이라는 존재에서 나오는 캐릭터의 특징과 사고로 죽은 후 영혼이 되어 주인공의 곁에서 대화하면서 주인공의 심리와 사건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은 이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 포인트다. 또한, 동시에 '게이지'의 존재 자체는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수수께끼이자 질문이기도 하다. 쌍둥이 동생 '게이지'의 영혼은 정말로 실존하면서 주인공 마카베에게 머물렀던 것일까? '게이지'의 존재는 물리적인 이별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혼의 동반자를 이루는 쌍둥이로서의 숙명이 만들어낸 기적일 수도 있다. 또한, 동생의 존재를 부정하고 저주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늘 곁에 있던 형제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카베의 내면이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일 수도 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면 될 뿐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남기는 궁극적 질문은 주인공 마카베가 동생과 진정한 이별을 하며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마지막 대목에 있다. 바로 소설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그림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림자'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림자는 고단한 일상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친 내면의 목소리, 삶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이다.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와 삶을 이룬다.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면서 빛이 되고,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와 빛깔을 띠지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삶을 탐구하는 여정의 끝에서 마카베는 죽은 동생의 영혼에 얽매여 지나쳤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카베의 영혼의 목소리가 사라졌을 때, 그는 아스팔트에 드리워진 자신의 옅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 옅은 그림자는 마카베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연인 히사코의 자전거의 페달을 밟자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며 꼬리를 끌며 그를 따라왔다. 마카베가 긴 방황을 거친 후에 비로서 그림자를 만난 것처럼 앞으로의 삶은 행복의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의 그림자는 빛을 따라 묵묵히 그의 삶을 지지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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