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복잡한 문장구조는 금물이다

 

할 말을 갖고, 되도록 그것을 명확하게 말하라.
그것은 문체의 유일한 비밀이다.
✚ 매슈 아널드

 

철학은 문장구조의 어려움 말고도 읽기에 충분히 어려움이 많다. 어떤 학생들은 아주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한다. 그런 문장은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작성자가 주제에 집중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몇몇 위대한 철학자들도 그런 식의 문장을 구사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학생 수준의 논술에서 길고 복잡한 문장을 고집하면 자신의 철학적 이해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예를 들면, 마르셀 프루스트나 헤겔 같은 인물들의 문장을 무작정 모방한 채 좋은 점수를 바라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문장은, 하나의 생각을, 즉 밀접하게 연결된 일련의 개념들을 전달하는 짧은 문장의 형태를 띨 경우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 해럴드 에반스, 『언론인, 편집인, 저술가 등을 위한 필수영어Essential English for Journalists, Editors and Writers』

 

작성한 논술을 수정할 때는 긴 문장을 찾아낸 뒤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이 문장을 잘게 나누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복잡한 문장이나 지나치게 긴 문장은 간략한 문장으로 고치고, 긴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나눠야 한다.
명료하고 명료하고 또 명료해야 한다. 하나의 문장에서 궁지에 몰릴 때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복잡한 문장과 씨름하려 애쓰지 마라. 대개의 문제는 어느 시점에서 문장구조가 너무 복잡해지면서 발생한다. 복잡한 문장은 두 개 이상의 문장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애매함은 단순히 문장의 방해물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파괴자, 희망의 파괴자다. 그것은 잘못 적힌 도로 표지판 때문에 일어나는 교통사고이고, 좋은 의도로 보낸 편지의 잘못된 표현으로 인한 연인의 이별이며, 철도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잘못 입력한 전보 때문에 만나지 못한 여행자의 고통이다. 모호함에서 비롯된 비극을 생각하라. 명료해야 한다! 무언가를 말할 때, 말할 내용을 확인하라. 그렇게 했을 때만 올바르다.
✚ 윌리엄 스트렁크 주니어와 E. B. 화이트,
『스타일의 원리』

 

글쓰기 tip

답안을 보다 명료하게 작성하고 싶으면 제출하기 전에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기 바란다. 글 쓰는 행위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삭제하거나 다듬어야 할 문장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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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으면서 명상하기

 

 

걸으면서 하는 명상은 많이 선호되는 수행이다.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앉거나 눕는 위치보다는 무엇인가를 할 때 우리가 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걸으면서 하는 명상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기 때문에 처음 명상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한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일상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할 수 있는 멋진 명상법이다.

 

걸으면서 명상하기
나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걸으면서 명상하기를 좋아한다. 걸으면서 하는 명상은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다. 그것의 목적은 걸음을 즐기는 데 있다. 가능하다면 공원이나 그 밖의 자연 속을 걸으면서 명상한다면 정말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서두를 필요 없이 편하게 걸으면 된다. 운동할 때처럼 서둘러 걷는다면 몸과 마음에 어딘가로 속히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되므로 긴장하게 된다. 따라서 목적지로 가는 걸음이 아닌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라.
걷기 시작하면서 발에 닿는 지면에 주의를 집중하라. 우리의 걸음이 지면에 닿는 느낌을 즐겨라. 그 느낌에 주목하게 되면 우리 마음속의 잡념이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호흡에도 주의를 기울여라. 걸음으로 호흡의 길이를 재어 보라. 숨을 들이쉬면서 보통 몇 걸음을 걷는가? 또 숨을 내쉴 때에는 몇 걸음을 가는가? 들숨, 날숨 모두 두 걸음씩 걷거나 들숨에는 두 걸음 날숨에는 세 걸음 이렇게 걷기도 할 것이다. 이는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에서는 달라질 것이다. 특정 숫자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몸이 원하는 대로 우리가 따르면 된다.
원한다면 호흡과 걸음에 맞춰 짧은 게구를 읊어도 좋다. 예를 들어 들숨에 ‘들이쉰다,’ 날숨에 ‘내쉰다’ 하고 속으로 말하라. 아니면 들숨에 ‘여기’ 날숨에 ‘지금’이라고 해도 좋다. 푸른 하늘이나 산, 아름다운 꽃, 나무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보이면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대상에 충실하라. 호흡과 게구를 의식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명상에서 벗어나 평소처럼 근심이나 집착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이때에는 그냥 미소를 짓고 그 체험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 ● 서서 명상하기
서서 명상하기도 비슷한 방법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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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지와 사랑의 신간 <법왕 달라이 라마> 중에서

 

 

 

불교의 실재 탐구, 고통과 인간성의 탐구

 

 

불교의 실재 탐구
이는 불교가 실재를 탐구하는 방식에서 원리적이고 경험적인 증거가 아무리 숭배받는 경전일지라도 경전의 권위를 능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성이나 추론에서 도출된 지식인 경우에도 그 타당성은 궁극적으로 경험을 통한 관찰에서 얻어져야만 합니다. 이러한 방법론적 관점 때문에 저는 종종 동료 수행승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대 우주학과 천문학을 통해 경험적 통찰을 얻게 되었으므로 고대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많은 전통적인 우주 지식을 수정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거부해야 합니다.”

 

고통과 인간성의 탐구
불교가 실재를 탐구하는 일차적 동기는 고통을 극복하고 인간의 조건을 완벽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탐구 전통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마음의 다양한 기능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불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음으로써 생각, 감정,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성향을 바꾸는 방법을 찾아 더욱더 건전하고 충만한 존재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정신적 특성을 키우기 위한 명상 기법과 함께 풍요로운 정신 상태를 추구해온 불교의 전통과 맥을 같이합니다. 따라서 불교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인식과 정서에서 인간 뇌의 고유한 변화 능력에 이르기까지 인간 마음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연구하는 현대 과학과 진실한 교류를 한다면 매우 흥미롭고도 유익할 것입니다.

 

변화의 잠재력
불교는 인간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의 잠재력이 내재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불교 전통은 두 가지 기본 목표를 세우고 광범위한 명상 기법, 명상 수련 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두 가지 목표는 연민 어린 마음을 함양하는 것과 실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 통찰력을 연민과 지혜의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명상 수련의 중심에는 두 종류의 중요한 기법이 존재합니다. 집중력과 더불어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적용법을 개발하는 것이 하나이고, 감정을 조절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 두 종류 모두에서 불교의 명상 전통과 뇌과학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뇌과학은 주의력과 정서에 관련한 뇌의 작용에 관해 많은 부분들을 알아냈습니다. 한편 오랜 역사를 통해 마음 수행에 관심을 가져온 불교의 명상 전통은 주의력을 향상시키고 감정을 조절하며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기법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뇌과학과 불교의 명상 수련이 만나면 특정한 정신 과정에 중요하다고 밝혀진 뇌 회로에서 일어나는 의도적인 정신 활동의 효과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 간의 교류를 통해 많은 핵심 영역에서 중대한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감정과 주의력의 규제 능력
예를 들어 개인마다 감정과 주의력을 규제하는 능력이 정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불교 전통에서 주장하듯 누구나 이 기능과 관련한 행동과 뇌의 체계가 엇비슷하게 유연하므로 이러한 정신 과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요?
불교의 명상 전통은 연민의 마음을 수련하는 실용적인 기법을 개발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마음 수행에 관해서는 주의력과 감정 조절 기법에 따라 시간적 감도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지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야 연령과 건강상태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요인들에 맞춰 새로운 방식을 개발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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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복福이다

 

 

1937년 5월 20일에 상경하겠다고 말한 안창호는 설사로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6월 중순에 종로경찰서 유치장으로 잡혀왔습니다. 수양동우회 회원들은 종로경찰서 유치장과 경기도 경찰부 유치장에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서울 지방법원 검사가 종로경찰서로 출장 와서 안창호에게 “지금까지 잘못하였느냐” “세상에 나가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두 가지를 묻자 안창호는 “지금까지 수양동우회에 관하여서나 기타에 관하여서는 잘못한 일이 없다. 또 세상에 나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점에 대하여서는 아무 말도 하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검사가 “너는 독립 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나는 밥을 먹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서 해왔다. 이것은 나의 몸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검사가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믿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이 독립할 것이요, 세계의 공의公議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대한이 독립이 될 것이요,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너는 일본의 실력을 모르느냐?“는 검사의 심문에 안창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다. 나는 일본이 무력만한 도덕력을 겸하여 가지기를 동양인의 명예를 위하여서 원한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대한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 될 것이다. 원한 품은 2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하는 것보다 우정 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복福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이광수는 안창호 등 44명이 1937년 7월과 9월에 수차례에 걸쳐 나누어 수감되고, 나머지 80여 명의 회원들은 기소유예로 풀려났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1937년 6월부터 서울지회 관계자 55명, 11월에 평양, 선천지회 관계자 93명, 이듬해인 1938년 3월에 안악지회 관계자 33명 등 모두 181명이 붙잡혔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49명이 기소되었고, 57명이 기소유예, 75명이 기소중지처분을 받았으며, 기소된 49명 가운데서 1938년 3월 사망한 안창호를 제외한 41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들에 대한 예심이 1938년 8월에 종료되고, 193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1940년 8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이광수 징역 5년, 김종덕 등 4명 징역 4년, 김동원 등 4명 징역 3년, 조병옥 징역 2년 6월, 오봉빈 등 7명 징역 2년, 나머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고 했습니다. 1941년 11월 경성고등법원 상고심에서는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면서 그 무렵에 수양동우회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친일파로 전락하여 일제에 충성을 바쳤으므로 그들을 처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4년 5개월간의 구금기간 동안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최윤세崔允洗(이광수의 기록에는 최윤호崔允鎬), 이기윤李基潤은 옥사하고, 김성업金性業은 종신지질終身之疾(죽을 때까지 고칠 수 없는 질병)으로 불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광수는 재판부가 수양동우회는 흥사단과 동일한 것으로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한 단체임을 회원들로부터 고백하도록 만들어 기소된 피고들의 방증을 삼았으며, 조선총독부에서는 상해에까지 손을 뻗쳐서 상해에 있는 흥사단 원동 지부로 하여금 흥사단이 독립 운동 단체임을 자인하고 자진 해산한다는 성명서를 발하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수양동우회사건은 검거, 공판, 판결에 이르기까지 일절 신문 보도를 금했으므로 상세한 내용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는 안창호를 포함하여 많은 저명인사들을 재판에 회부한 것이라서 인심에 끼칠 영향을 꺼렸던 것입니다.

1937년 6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안창호에게 친구 윤치호와 안창호를 평소에 흠모하던 김성수가 영치금을 보내주었고, 조선총독부에 보석금을 제출하여 석방, 구명 운동을 했습니다. 안창호의 병세가 심하여 12월 보석을 신청하여 받아들여져 12월 24일 신병으로 병보석 출감하여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광수는 안창호가 대전 감옥 이후 숙환인 소화불량으로 몸이 쇠약해진 데다 폐환이 급성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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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음성인 아-옴aum이 무엇입니까?

 

 

영어로 aum는 옴이라고 발음하지만, 정확하게는 아-옴이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아-옴에 관해서는 <우파니샤드Upanishad>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인 우파니샤드는 우파(가까이), 니(아래에), 샤드(앉다)의 합성입니다. 죽 심오한 가르침을 전수받기 위해 제자가 스승에게 가까기 다가가 그 발아래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우파니샤드>를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문헌’이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명상할 때에 아-옴을 사용하지만 아-옴은 불교 훨씬 이전부터 인도인이 사용했습니다.

사탸까마가 물었습니다.

이 생生이 끝날 때까지 신의 음ㅅ겅 아-옴의 명상에 몰입하는 사람은 죽은 후에 어디로 갑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아-옴은 최고의 브라만임과 동시에 최저의 브라만이다. 그러므로 이 아-옴의 명상에 의해서 현자는 최고의 브라만인 ‘절대유일의 브라만Nirguna Brahman과 최저의 브라만인 ’상대 인격신Saguna Brahman‘에 이를 수 있다. 앙-옴의 첫째 ’아‘를 명상하게 되면 그는 그 ’아‘ 음절의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뒤 다음 리그베다의 인도를 받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 다음 그는 신념과 자비에 넘치는 순수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오의 첫째와 둘째 음절을 명상하게 되면, 그는 야유르베다의 인도를 받아 기쁨이 충만한 저 소마의 세계somaloka(지상과 하늘 그 중간에 있는 이상향)로 가게 된다. 그는 거기서 천국의 환락을 마음껏 누린 뒤 이 인간의 세계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아-옴의 전 음절을 명상하게 되면 사마베다의 인도를 받아 그는 태양빛과 연결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듯 그는 거기서 그가 지은 모든 죄업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존재 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존재(브라만)를 보게 된다.

아-옴의 세 음절을 각각 분리시켜 명상한다면 우리는 이 가벼운 차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아-옴의 세 음절을 모두 명상하게 되면 깨어 있을 때나 꿈꿀 때나 잠잘 때나 늘 세 음절을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게 하면 그는 모든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리그베다(‘아’의 상징)는 우리를 이 세상으로 다시 오게 한다. 야유르베다(‘오’의 상징)는 우리로 하여금 소마의 세계에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사마베다(‘음’의 상징)는 태양의 빛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아-옴 전체의 우주적 진동을 통해서 현자는 공포와 죽음마저 초월하여 저 궁극의 차원에 이르게 된다.

스승이 말한 ‘궁극의 차원’이란 아-옴의 네 번째 단계로 모든 음이 사라진 침묵의 상태로서 순수 의식의 상징입니다. 현자는 아-옴의 진동을 통해서 아-옴의 마지막 단계인 묵음의 상태에 이르러 마침내 불멸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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