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요한은 세 사람과 ‘함께 보는 seeing together’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록하였다.
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신학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 치중했다.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요한이 유대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네 사람 모두 유다의 배반, 예수의 체포, 빌라도의 재판, 십자가처형, 부활을 기록함으로써 이 같은 사건들의 중요함에 동감을 표명했다.
특기할 점은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다룬 데 반해 요한은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요한복음 3:5).
그리고 공관복음서에서 같은 견해를 발견하더라도 세 사람의 저술의도와 신학은 상이한 데 이 점을 본문에서 언급했다.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는 공관복음서가 익히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졌으므로 그가 공관복음서를 참고했겠지만 예수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그들과는 달리 관념적인 방법으로 저술했다.
니고데모에 관한 내용과 다시 소생한 나사로에 관한 내용, 산상수훈 등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요한에게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그는 복음의 의미를 진리라 했으며 진리가 자유를 얻게 한다고 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전통악기로 ‘신세계 교향곡’(New World Symphony)을 연주했다면 요한은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여 독주했다고 할 수 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 모두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일을 기록한 데(마가복음 1:13, 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비해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두 사람의 사건 기록방법은 비교할 만한데 마태는 대중적인 대화체로 기록했지만 문장력이 탁월한 누가는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기술하면서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말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이 널리 알려졌음을 시사했다(누가복음 4:14).
간결한 문체가 특징인 마가는 예수가 시험받은 사건을 두 줄로 간략하게 적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복음 1:12-13)
이처럼 복음서 저자들의 개인적 관심과 기술 방법에 따라서 내용의 질과 양이 결정되었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마가는 15장 가운데 마지막 다섯 장을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까지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며칠 동안의 일을 기록하면서 그는 구약성경을 57번 인용했으며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은 무려 160번이나 된다.
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인 예수를 고스란히 발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수의 생애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신학적 해석이 한데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아홉 명 저자들 모두의 저술의도와 저서의 주요 내용을 알아봄으로써 신학의 생성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