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신약성경 저자들 9명을 중심으로

베드로
바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작자미상
야고보
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복음(gospel)은 기쁜 소식(the good news, 그리스어로 to evangelion)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이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는 구두로 전래되었다.
마가는 문자로 복음을 선언했다.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사람들이 많지만 신약성경에는 아홉 명의 저서만 수록되었다.
이것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예수의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그들의 응답이다.
저서들 가운데 베드로(2권), 바울(13권), 마태(1권), 마가(1권), 누가(2권), 요한(5권) 여섯 명이 24권을 썼다.
나머지 세 명은 예수의 두 남동생 야고보와 유다, 그리고 작자미상의 히브리서 저자이다.
이들 아홉 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대체로 각자의 저술에 대한 근거를 확보했다.


역사적인 예수의 생애에 관해 저술한 사람은 네 명인데 이들의 저서를 복음서라 부른다.
이들 외의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저서들은 외경으로 취급되는데 내용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누구의 저서가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이냐 하는 문제로 수세기 동안 논쟁을 거듭해 왔다.


구약성경과의 관련

신약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켜서 해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유대인과 반목할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쳤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린도전서 10:2-4)


바울은 새 언약(그리스어 diatheke는 계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과 옛 언약을 구별했는데 옛 언약은 율법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새 언약은 성령으로 생명을 준다고 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린도후서 3:6-14)


마태는 예수가 모세보다 위대한 분이며 율법이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예수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했다.
구약성경을 주로 인용하면서 마태는 구약성경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이며 그분에 의해 완성된 예언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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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저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활약을 기록한 책은 네 복음서뿐이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된다. 복음서가 쓰인 연대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마가가 먼저 50년대 후반에 썼고, 누가가 61년경에, 마태가 70년경 전후에, 요한이 90년경 썼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어거스틴은 마가가 마태를 전적으로 따랐으며 마가의 복음서는 마태의 것을 약분한 것이라고 했다.
근래 일부 신학자들이 어거스틴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대부분 신학자들은 마태보다 마가가 먼저 복음서를 썼으므로 마태가 오히려 마가의 저서를 참고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서를 당시 사람들은 베드로복음서라고 불렀는데 베드로가 기억한 내용을 마가가 기록했다고 믿은 때문이다.
베드로로부터 아람어로 들은 예수의 생애를 마가가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그가 50년대 후반에 복음서를 먼저 쓴 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 생전에 쓰였으므로 베드로도 그 내용을 읽었을 줄 안다.
그는 예수의 활동을 시기적으로 제대로 배열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복음서에는 반복되는 구절이 많으며, 문장이 대칭적으로 구성되었고, 지성적이지 못한 점이 특징이다.
마가는 예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 모두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마가복음서는 누가와 마태의 저술에 참고가 되었다.
두 사람이 마가복음서를 주로 인용했음을 본다.
마태는 무려 90%나 인용했으며 누가는 절반이 넘는 53%가량 인용했다.


1830년대 이후에는 50년대 말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서가 가장 먼저라는 학설이 유력하였다.
근래에 제기된 학설이 이 같은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마태복음서가 마가복음서보다 십 년가량 먼저 쓰였다는 것이다.
독일 신학자 카르스텐 티데(Carsten Thiede)는 옥스포드의 막달렌 대학이 소장한 근래 발견된 마태복음서의 파피루스 세 조각을 분석한 결과 파피루스 잎사귀가 50년 또는 그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가 오히려 마태복음서를 대부분 인용해 간결하게 요약했다고 해야 할 것이며 누가 또한 마태복음서를 인용했다고 추론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로부터 받은 영향에다 구전되어 온 예수의 가르침을 보태 썼다는 기존의 학설을 따르며 마태와 누가가 마가로부터 받은 영향에 관해 언급하였다.


누가 먼저 썼느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복음서 저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마가·마태·누가복음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약 150년 전이었다.
그리스바하(J. J. Griesbach)가 1776년에 세 사람이 같은 견해를 가지고 복음서를 썼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세 복음서를 가리켜서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라고 불렀다.
공관이란 함께 본다는 뜻이다.
네 복음서 저자 가운데 요한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는 많은 점에서 같은 관점을 가지고 기록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공통으로 기록한 내용이 무려 330절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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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요한은 세 사람과 ‘함께 보는 seeing together’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록하였다.
가장 늦게 기록한 요한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신학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 치중했다.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요한이 유대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네 사람 모두 유다의 배반, 예수의 체포, 빌라도의 재판, 십자가처형, 부활을 기록함으로써 이 같은 사건들의 중요함에 동감을 표명했다.
특기할 점은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하늘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다룬 데 반해 요한은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요한복음 3:5).
그리고 공관복음서에서 같은 견해를 발견하더라도 세 사람의 저술의도와 신학은 상이한 데 이 점을 본문에서 언급했다.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는 공관복음서가 익히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졌으므로 그가 공관복음서를 참고했겠지만 예수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그들과는 달리 관념적인 방법으로 저술했다.
니고데모에 관한 내용과 다시 소생한 나사로에 관한 내용, 산상수훈 등은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요한에게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그는 복음의 의미를 진리라 했으며 진리가 자유를 얻게 한다고 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전통악기로 ‘신세계 교향곡’(New World Symphony)을 연주했다면 요한은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여 독주했다고 할 수 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 모두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일을 기록한 데(마가복음 1:13, 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비해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것도 특이한 점이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구체적으로 기록했다(마태복음 4:1-11, 누가복음 4:1-13).
두 사람의 사건 기록방법은 비교할 만한데 마태는 대중적인 대화체로 기록했지만 문장력이 탁월한 누가는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기술하면서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말로 사탄으로부터 시험받은 사건이 널리 알려졌음을 시사했다(누가복음 4:14).
간결한 문체가 특징인 마가는 예수가 시험받은 사건을 두 줄로 간략하게 적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복음 1:12-13)


이처럼 복음서 저자들의 개인적 관심과 기술 방법에 따라서 내용의 질과 양이 결정되었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마가는 15장 가운데 마지막 다섯 장을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까지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며칠 동안의 일을 기록하면서 그는 구약성경을 57번 인용했으며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은 무려 160번이나 된다.


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인 예수를 고스란히 발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수의 생애는 역사적인 사건들과 신학적 해석이 한데 어우러져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아홉 명 저자들 모두의 저술의도와 저서의 주요 내용을 알아봄으로써 신학의 생성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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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베드로(Peter)는 예수가 붙여 준 별명이고 원래의 이름은 시몬(Simon)이다(마태복음 16:18).
그리스어 페트로스(petros)는 바위란 뜻으로 아람어 게바(kepha)의 번역이다.
예수는 베드로를 기반으로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다.


요나(Jona)의 아들 베드로는 벳새다(Bethsaida) 태생인데 동생 안드레(Andrew)와 함께 가버나움(Capernaum)으로 이주하여 갈릴리 호수에서 소규모로 어업에 종사했다.
작은 하프 수금처럼 생긴 갈릴리 호수는 유대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수려한 곳이다.
호수의 길이는 남북으로 21km에 달하고, 폭은 동서로 14km나 되며, 넓이는 170평방 km, 둘레는 약 50km에 이른다.
워낙 커서 바다로 불리었는데 어획량이 커서 어업에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들이 가버나움에는 많았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고 예수는 그들을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하자 형제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마가복음 1:16-18).


베드로는 예수를 동행하여 산에 등정했다가 예수의 모습이 변형되면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것을 목격했으며(마태복음 17:1-2), 체포되기 전날 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마태복음 26:36-37), 그가 처형된 후 시신이 무덤에 장사했는데 며칠 후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요한복음 20:6).


예수가 죽은 후 베드로는 요한과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우고 두드러지게 목회했다(사도행전 1:15-22, 3:11-26, 5:1-11, 8:14-25, 10:1-11, 1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48-53)


예수는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는 말을 남기고 승천했다.
그가 승천하는 동안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사도행전 1:11) 했다.


예수의 분부를 받은 제자들은 사도로 변신했다.
사도(apostolos)란 그리스어로 ‘앞서 보내다(to send forth)’라는 뜻이다.
‘보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미테레(mittere)는 영어로 전도자(missionary)로 번역된다.
예수가 체포될 때 달아난 제자들은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한 사도가 되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Jerusalem Council)를 결성했는데 이 교회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선교의 본부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사도들은 교인들과 공동생활을 했으며 교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사도행전 2:45-47).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베드로(Peter)는 예수가 붙여 준 별명이고 원래의 이름은 시몬(Simon)이다(마태복음 16:18).
그리스어 페트로스(petros)는 바위란 뜻으로 아람어 게바(kepha)의 번역이다.
예수는 베드로를 기반으로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다.


요나(Jona)의 아들 베드로는 벳새다(Bethsaida) 태생인데 동생 안드레(Andrew)와 함께 가버나움(Capernaum)으로 이주하여 갈릴리 호수에서 소규모로 어업에 종사했다.
작은 하프 수금처럼 생긴 갈릴리 호수는 유대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수려한 곳이다.
호수의 길이는 남북으로 21km에 달하고, 폭은 동서로 14km나 되며, 넓이는 170평방 km, 둘레는 약 50km에 이른다.
워낙 커서 바다로 불리었는데 어획량이 커서 어업에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들이 가버나움에는 많았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고 예수는 그들을 향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하자 형제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마가복음 1:16-18).


베드로는 예수를 동행하여 산에 등정했다가 예수의 모습이 변형되면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것을 목격했으며(마태복음 17:1-2), 체포되기 전날 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고(마태복음 26:36-37), 그가 처형된 후 시신이 무덤에 장사했는데 며칠 후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요한복음 20:6).


예수가 죽은 후 베드로는 요한과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우고 두드러지게 목회했다(사도행전 1:15-22, 3:11-26, 5:1-11, 8:14-25, 10:1-11, 1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48-53)


예수는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는 말을 남기고 승천했다.
그가 승천하는 동안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사도행전 1:11) 했다.


예수의 분부를 받은 제자들은 사도로 변신했다.
사도(apostolos)란 그리스어로 ‘앞서 보내다(to send forth)’라는 뜻이다.
‘보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미테레(mittere)는 영어로 전도자(missionary)로 번역된다.
예수가 체포될 때 달아난 제자들은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한 사도가 되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Jerusalem Council)를 결성했는데 이 교회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선교의 본부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사도들은 교인들과 공동생활을 했으며 교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사도행전 2: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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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다음으로 중요한 신학의 개념은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베드로는 120명가량의 크리스천들이 모였을 때 열두 제자들 가운데 자살한 가롯 유다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두 후보자 중 맛디아를 뽑았다(사도행전 1:15-26).
베드로는 사도의 자격으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사도행전 1:21-22) 한다고 했다.


사도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 의식을 받아들여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물은 상징이었을 뿐 성령에 의한 세례를 의미했다.
그리스도교를 잉태한 것은 부활이었다.
부활이 사도들로 하여금 모임에 힘쓰게 했으며 나아가서 교회 건립에 총력을 경주하게 했다.
부활 없는 그리스도교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부활 다음으로 중요한 신학의 개념은 성령이다.
부활이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면 성령은 교회를 떠받치는 대들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가복음서에 의하면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500명의 교인이 한 곳에 모였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내렸다.
이는 초대교회의 가장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예수가 처형된 지 불과 50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크리스천이 500명이나 한곳에 모인 것은 사도들의 전도활동이 얼마나 활발했는가를 말해 준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성령 받은 사람이 방언했는데 방언(strange language)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란 뜻이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여러 가지 외국어’로 표기되어 있어 각국 사람이 모였음을 알게 한다(사도행전 2:8).
성령이 무엇이기에 방언하게 했을까.
베드로는 크리스천들에게 성령의 의미에 관해 설교하는 가운데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했다(요엘 2:28-30).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성령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표징을 보이며)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2:16-21)


성령은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려는 사람에게 내려진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내용은 요엘의 예언과 유사했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다.
요엘은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는(요엘 2:28) 날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는데(요엘 2:30)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된다고 했다(요엘 2:32).
베드로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고(사도행전 2:15-17),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부활을 통해 표적과 기적을 나타냈으므로(사도행전 3:19, 22, 4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를 용서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사도행전 2:38-39).


베드로는 방언을 성령 받은 것으로 해석하면서 방언하는 사람은 예언할 수 있고, 예수가 여러 가지 표적과 기적을 나타낸 것처럼(사도행전 2:22)
사도들 또한 표적과 기적을 나타낼 수 있으며(사도행전 2:43),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고 했다(사도행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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