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과장은 그것이 과장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과장이다
롱기누스Longinus의 『숭고에 관하여 Peri hypsous』 중에서
롱기누스는 너무 많이 경계를 넘으면 과장의 효과가 없어지고 표현들이 가소로워진다면서 그 예를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을 예로 들었는데, 이 『연설』은 데모스테네스가 쓴 것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뇌를 발꿈치에 넣고 그것을 딛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롱기누스는 지나친 긴장은 이완을 낳아 때로는 의도했던 것과 상반된 효과를 산출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소크라테스가 모든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함에 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선의 과장은 그것이 과장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과장이 심오한 감정에서 나와 어떤 중대 상황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에 가능하다면서 시켈리아에서 죽은 자들에 관한 투퀴디데스의 이야기를 한 예로 들었다.
쉬라쿠사이인들이 내려와서 주로 강江 안에 있던 자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물은 즉시 오염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흙 그리고 피와 함께 그것을 계속해서 마셨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여전히 그것을 위해 싸울 각오가 되어있었다.
진흙 그리고 피로 오염된 물이 여전히 싸울 가치가 있다는 것은 상황에 의해 유발된 격렬한 감정에 의해서만 믿어질 수 있다.
롱기누스는 어떤 종류의 대담한 표현이든 그것을 완화해주는 만병통치약은 망아忘我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 감정이라고 말한다. 희극적 표현이 설사 개연성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그것이 우리를 웃기기 때문인데, 웃음도 쾌감에 근거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과장은 축소할 수도 있고 확대할 수도 있는 것은 모두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조롱도 저열한 것의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