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본성론
Anthropomorphism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신학(theology)이란 신(theo)에 관한 이야기(logos)를 말한다.
Mythology와 theology 모두 신화이지만 theology는 Mythology와 달리 신의 본질에 관해 논리적으로 정립한 때문에 신학이라고 한다.
신학 이야기는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힘의 과시가 주류를 이루어 마치 영웅들의 싸움박질처럼 나타난 데 반해 신이 하나밖에 없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에는 우주 주재자 한 분의 고상한 목적과 경이로운 관리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 신학에도 신의 힘의 과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은 부수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유대교의 신학과 다른 점은 신이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지상으로 와서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고,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런 사건은 오로지 인류를 구원하려는 전제 아래 이루어진 신의 사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학의 독특한 점은 신과 인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신인본성론에 있다.
이것은 신이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가 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천 년 동안 섬긴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가 기원전 5년경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여호수아(Jehosuah)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30대 중반까지 살다가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서 그리스도 신학이 생겼다.
여호수아의 애칭은 예수아(Jeschua)인데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예수(Jesus)가 된다.


예수는 네 명의 남동생과 두 명 이상의 누이와 함께 산골짝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누가가 복음서에 열두 살 때 사건 하나를 소개한 것 외에는 예수가 서른 살이 넘도록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는 아주 평범한 유대인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 요셉(Joseph)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워 그 자신 직업도 목수였을 것이다.


예수의 활동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서른두세 살 때 유대 광야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였다.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이며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까지 이 년 남짓 활약상이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28년 봄 예수는 광야로 갔다. 그곳에는 주류에서 밀려난 종교 지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으며 유대교 정화운동을 한창 전개하고 있었다.
광야에서 활약한 지도자들 가운데 예수와 관련해서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은 요한이다.
세례의식에 중점을 두고 사역을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례자라고 불렀다.
요한은 낙타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가 화신한 분이라고 말했는데 요한이 왕의 부조리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정의를 외치는 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 광야는 모세와 엘리야가 활약했던 성지였으며 하나님의 계시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언니 엘리자벳이 말년에 얻은 아들로 예수에게는 육촌 형이다.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성장한 요한은 27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 사이 광야에서 활약했는데 분봉왕 안디바의 결혼이 불법임을 지적했다가 체포된 후 처형되었다.


예수는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은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 올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명을 받았다.
예수는 광야에 남아 금식하면서 명상의 나날을 보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제 아래 예수는 사탄으로부터 세 차례 유혹을 받았지만 그 유혹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기로 결심했다.


마태는 예수를 가리켜 동방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소문난 솔로몬 왕보다 더욱 지혜로운 분이라고 했다.
구약성경 저자들이 지혜와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했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지혜가 뛰어나다는 마태의 표현은 예수에게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예수의 지혜가 충만하여 부활한 사실은 역사가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세기에 활약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때쯤 지혜로 충만한 사람 (우리가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면) 예수가 살았다.
그는 말하자면 전혀 믿기 어려운 일들을 행했는데 즐겨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많은 유대인과 많은 이방인이 그에게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야)였다.
우리 가운데서 계획된 고소로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였다.
물론 전에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오늘날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많은 선지자들이 그에 대한 수천 가지 놀라운 일들을 선포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chisti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려진 사실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10년경에 쓴 『연대기』에서 타키투스는 64년에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방화한 혐의를 벗으려고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씌운 후 박해를 가했다고 적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이름은 티베리우스 황제 때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christos)에게서 유래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복음서
Gospel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활동을 기록한 책은 네 복음서뿐이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된다.
이것들이 쓰여진 연대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마가(Mark)가 먼저 50년대 후반에 썼고, 누가(Luke)가 61년경에, 마태(Matthew)가 70년경 전후에, 요한(John)이 90년경 썼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마가복음서를 당시 사람들은 베드로복음서라고 불렀는데 베드로가 기억한 내용을 마가가 기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가는 베드로를 믿음의 아버지로 존경했으며, 전도여행에 동행했고, 베드로가 로마에서 62년에 순교할 즈음 그의 곁에 있었다.
마가는 베드로로부터 아람어로 들은 예수의 생애를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마가가 50년대 후반에 복음서를 먼저 쓴 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 생전에 쓰여졌으므로 베드로도 복음서의 내용을 읽었을 줄 안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의 활동을 시기적으로 제대로 배열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복음서에는 반복되는 구절이 많으며, 문장이 대칭적으로 구성되었고, 지성적이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마가만이 예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마가복음서는 누가와 마태의 저술에 참고가 되었다.
두 사람은 마가복음서를 많이 인용했는데 마태는 무려 90%나 인용했으며 누가는 절반이 넘는 53%가량 인용하였다.


근래에 제기된 학설은 이 같은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마태복음서가 마가복음서보다 10년가량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학설의 근거는 근래 발견된 마태복음서의 파피루스(papyrus) 세 조각을 분석한 결과 파피루스 잎사귀가 50년 또는 그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가 오히려 마태복음서를 대부분 인용해 간결하게 요약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누군가가 마태복음서를 다시 인용했다고 추론해야 할 것이다.


마가·마태·누가복음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약 150년 전이었다.
신학자들은 이 복음서들이 같은 견해에 의해 씌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1776년에 그리스 바하(J.J.Griesbach)는 세 복음서를 가리켜서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라고 불렀는데 이는 ‘함께 본다(seeing together)’는 뜻이다.


요한은 마태, 마가, 누가와 달리 함께 보는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가장 늦게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신학적 해석에 치중했다.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가장 훌륭한 모델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복음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에 반기를 들자 로마 군대는 7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다양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로마 군대의 진입으로 이런 운동이 일시에 중단되고 말았다.


예수가 처형당한 30년부터 70년까지 40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래된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공관복음서를 비교한 신학자들은 누가와 마태가 마가 복음서를 참조한 외에 Q복음서도 참조했음을 발견했다.
Q는 독일어로 출처(Quelle)의 첫 글자이다.
Q복음서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문자로 존재했는지 또 Q복음서를 전래한 사람들의 활약상이 어떠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출처가 될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Q복음서가 현존하지 않는 이유를 신학자들은 그것이 2세기 초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근래 일부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누가와 마태복음서를 근거로 한 Q복음서를 재생하는 데 성공했는데 Q복음서의 내용은 도마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언급된 예루살렘 교회의 신학과 같지 않다.


Q복음서의 핵심은 가장 지혜로운 분인 예수를 따르는 일이 마땅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은 심판의 날에 그와 더불어 영광을 받을 수 있지만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반대로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은 Q복음서의 개요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57-62, Q복음서)


버톤 맥(Burton L. Mack)은 저서 『신약성경은 누가 썼나? Who Wrote the New Testament?』(1995년)에서 누가에게 영향을 준 Q복음서의 주요 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와 주린 자 그리고 우는 자에게 속하고(누가복음 6:20-21, Q복음서),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대접하는 자에게 속한다(누가복음 6:27-31, Q복음서).
남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며 용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속한다(누가복음 6:37, Q복음서).

2.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
(누가복음 9:57-10:11, Q복음서).

3.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누가복음 11:1-13, Q복음서).

4.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12:2-7, Q복음서).

5. 탐심을 물리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들이다
(누가복음 12:13-34, Q복음서).

6. 겨자씨와 누룩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누가복음 13:18-21, Q복음서).

7.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14:11, 16-24, 26-27, 34-35, Q복음서).

이상과 같은 Q복음서의 주요 신학을 근거로 해서 맥교수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누가복음 6:27, Q복음서).

네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라(누가복음 6:29, Q복음서).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누가복음 6:30, Q복음서).

남을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누가복음 6:37, Q복음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누가복음 6:42, Q복음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누가복음 9:60, Q복음서).

이리 가운데로 가는 양처럼 가라(누가복음 10:3, Q복음서).

전대, 주머니, 그리고 신을 휴대하지 말라(누가복음 10:4, Q복음서).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
(누가복음 10:9, Q복음서).

구하면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누가복음 11:9, Q복음서).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누가복음 12:22, Q복음서 ).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누가복음 12:31, Q복음서).


Q복음서는 위의 강령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5:45, Q복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Q그룹 사람들은 무소유 무욕한 생활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Q그룹 사람들은 무소유 무욕한 생활로 세상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진리만 추구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는 무관심했으므로 겉으로 보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성행한 견유학파들(the Cynics)과 다르지 않았다.
견유학파들은 일찍이 금욕주의 생활을 하면서 진리만을 옹호했는데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은 마치 견유학파 스승이 제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처럼 들린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복음 12:34, Q복음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누가복음 6:39, Q복음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누가복음 11:10, Q복음서)


그러나 Q그룹 사람들에게는 견유학파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려는 의욕이 있었으며 행동이 뒤따랐고 새 세상을 창조하려는 의지와 믿음으로 활기가 넘쳤다.
예수는 제자 70명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말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누가복음 10:4-11,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정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이웃에게 나타내는 일에 노력했고,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그릇된 신학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게 말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Q복음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에 반대하는 자들로 여겼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끝에 가서야 이루어질 일이겠지만 Q그룹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업에 반대하는 사악한 자들은 최후의 날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누가복음 19:26,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를 심판과 회개를 촉구한 훌륭한 선지자로 평가하면서 예수를 요한보다 위대한 분으로 인식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최후의 심판자이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누가복음 3:7-9, Q복음서)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3:16-17,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요한과 예수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이해했다고 믿었다.
요한은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 두 사람을 예수에게 보내어 내가 기다리는 메시야가 당신이냐고 물었다(누가복음 7:18-19, Q복음서).
예수는 자신이 질병과 악귀에 들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치고 있는 사실을 요한에게 전하라면서 요한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
요한에 대한 예수의 칭찬은 대단했는데 선지자보다도 위대한 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자가 낳은 자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는 말로 극찬했다(누가복음 7:22-28, Q복음서).
그러므로 Q그룹 사람들에게 요한은 예수와 비교될 만한 훌륭한 선지자였다(누가복음 7:31-35, Q복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관복음서의 문체는 다분히 선언적이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공관복음서의 문체는 다분히 선언적이다. 저자들이 구두로 전래되는 이야기를 명료하게 문자화했다는 느낌이다.
그들이 Q복음서 외에 참고한 것을 선언 이야기라고 한다.
예수를 따른 무리의 수가 한때 사천도 되고 오천 명도 되었으므로 그를 증언한 사람들의 그룹은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며 또한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각기 전래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선언 이야기도 이런 것들 중 하나이다.
누가는 신원미상의 데오빌로라는 인물에게 편지 형식으로 복음서를 썼는데 그도 자료를 수집해서 쓴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1-4)


선언 복음서의 특징은 누군가의 질문에 예수가 응답한 형식의구성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7, 선언복음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마가복음 2:19, 선언복음서)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9:35, 선언복음서)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가복음 10:25, 선언복음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누가복음 12:13-14, 선언복음서)


이런 문답 형식 문체는 그리스인의 문헌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리스인은 현인들의 가르침을 문답 형식으로 기록했다.
맥교수는 선언 복음서를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으로 마가를 지목하면서 그가 인용한 구절을 열거했다.
마가 복음서 1:35-38, 2:1-12, 15-17, 18-22, 23-28, 3:22-30, 31-35, 4:10-20, 6:1-6, 7:1-15, 24-30, 8:11-12, 31-33, 9:9-13, 35-37, 38-40, 10:2-9, 13-16, 17-22, 23-27, 35-45, 11:27-33, 12:13-17, 18-27, 28-34, 35-37, 41-44, 14:3-9.


선언 그룹 사람들도 Q그룹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새파와 대적했으며 예수와 바리새인과의 잦은 논쟁을 기록했다.
다음 구절들에 이러한 선언 복음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마가복음 2:17, 선언복음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가복음 2:18, 선언복음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마가복음 7:5, 선언복음서)

저희가 (제자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마가복음 2:24, 선언복음서)

왜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가?
(마가복음 14:5, 선언복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