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양주의와 이념의 전쟁

 

 

동양주의라는 말은 지리적, 문화적 존재로서의 동양을 규명하려는 20세기 일본인이 만든 개념입니다. 단순히 동쪽 바다를 지칭하던 이 용어가 서구를 자각하면서 그 뜻이 변하기 시작해 지리와 문화 영역의 동일한 개념으로 굳혀졌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동양이라는 이상적인 문화공간에 대한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일본의 학자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출판사 민유사를 설립하고 조선총독의 요청으로 <경성일보>의 감독을 맡은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도쿄 제국대학(현재 도쿄 대학)의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등에 의해서 서양에 대한 반대 측면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동양주의는 현재 서구에서 통용되는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의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되고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20세기 전반까지 아시아에서의 동양주의는 19세기 말경 서구에 대해 위기를 느낀 일본이 아시아의 연대를 주장하며 내세운 아시아주의에 연원을 둔 용어였습니다.

그 후 아시아의 여러 학자들이 아시아의 문화를 진지하게 다룰 때면 동양주의 라며 비난받기 보통이었습니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지와 사랑)의 저자 바삼 티비도 그런 점을 인식했습니다. 티비는 학자를 동양주의자로 비난하는 데에는 사상과 언론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 문화로서의 동양주의를 언급하는 가운데 티비는 이념의 전쟁에 휘말린 혹자가 동양주의를 민주주의와 이슬람주의자들의 지하드운동의 전쟁으로 해석하는 극단적인 선택도 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는데,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티비는 서양의 학자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잘못이 크다면서 그들이 신앙과 불신앙 간의 전쟁을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갈등으로 서양에 비쳐지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신앙과 불신앙 간의 전쟁은 본질상 종교적 교리를 둘러싼 싸움일 뿐이며,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갈등이라기보다는 이념의 전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성전聖戰(지하드)을 선포하며 “이슬람세계의 평화를 위한… 이슬람세계의 혁명으로 규정한다. 이슬람교 교리에 근간을 둔 질서를 성취하려면 지하드가 불가피하므로 폭력을 배제한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념의 전쟁에 모티프가 되는 발언입니다.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하나의 이슬람교가 있을 뿐이라면서 진정한 신도가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슬림도 예외 없이 이슬람교의 원수가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념의 전쟁에는 이런 불신앙을 지닌 사람들을 이슬람혐오증환자Islamophobes로 낙인찍는 무서운 논리가 있습니다. 티비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불신앙을 지닌 사람들을 이슬람혐오증환자로 배격하는 까닭이 종교적 광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야말로 이슬람주의가 부각되는 데 일조하므로 그들이 벌이는 이념의 전쟁의 적절한 표적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념의 전쟁의 일환으로 “신앙심 없는 자들”을 호도한다는 기만iham(이함) 전술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슬람주의를 해방신학이자 과격한 반세계화운동으로 간주하는 유럽인들 가운데서 은연중에 동맹이 나타나게 되었다. 비티에 따르면 그들은 온건파 이슬람주의자라면 중동 외교정책의 파트너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여긴 미국의 실용주의 분석가와 반목한 것은 실용주의의 충격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이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포린 어페어스』지의 정책기사가 바로 그런 점을 말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티비는『포린 어페어스』지의 정책기사는 이데올로기와 조직의 정책을 오해한 것이, 무슬림 형제단과의 협력을 지지하는 주장은 조직에 무지하다는 방증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티비는 무슬림 형제단은 폭력으로든, 비폭력으로든 정치적 이슬람교에서 으뜸가는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면서 새로운 이슬람세계의 질서를 표방하는 조직의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적인 정치적 아젠다를 철저히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념의 전쟁은 이런 몰이해에서 더욱 과격한 형태로 나탄다는 것이 티비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논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들

 

 

 

 

 

 

신간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지와 사랑, 원제: Islamism and Islam)의 저자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무슬림과 서방세계 모두가 이슬람주의의 사상과 관습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면서, ‘급진적 이슬람교’를 추종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전투적인 작태로 치부하거나, 이슬람답지 못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들을 파문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티비는 ‘급진적 이슬람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혹 가장 보수적인 무슬림을 가리켜서 급진적이라고 말한다면 그 또한 몰이해라고 말합니다. 티비는 무슬림에 대한 이런 오해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에서 정치가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정책을 잡거나 학자들은 쟁점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함을 경고합니다.

티비는 이슬람세계에 ‘급진적 이슬람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정치를 종교로 승화시킨 초국가조직의 전체주의적 이슬람주의가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질서를 이슬람교에 접목시켜 신정정치를 꿈꾸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교란 이런 것이다 하고 운운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자신 독실한 이슬람교 가정에서 성장하고 진보주의 입장에서 이슬람교를 옹호하는 학자로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치적 속셈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신실한 신도로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냉소합니다.

티비는 서방세계의 정책 입안자들과 영향력 있는 학자들이 이슬람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그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을 소외된 소수민족이자 “급진적 무슬림”으로 낮잡아 부르거나 이슬람화 정책을 “또 하나의 근대화” 로 부풀리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방세계의 주요 정치가들이 과거에 범한 잘못은 이슬람주의가 번성하는 것을 실용적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을 포섭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에서 정권을 잡아 통치권을 내세우면 이슬람주의자들이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생각한 데에 있었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의 조직이 그러했듯이 이슬람주의자들도 통치권을 주면 제풀에 사그라지거나 현실에 적응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알고 있듯이 이슬람세계에서의 포스트이슬람주의의 조짐은 여태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저자는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꾸며낸 전통의 모태가 되는 이슬람교의 전통을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서 이슬람교의 전통을 파악하기 위한 여섯 가지 주제를 제시합니다. 그 여섯 가지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운

동이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전체주의와 파시즘, 공산주의, 동시대 이슬람주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전체주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의 초기 사상들은 종교와 무관했던 반면 이슬람주의는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일 뿐입니다.

“이슬람주의”는 본래의 사상을 이데올로기로 전환할 때 “주의ism”를 붙인다는 보편적인 관행을 반영합니다. 예컨대,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에 “주의”를 덧대면 유럽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의 사상을, 본래의 것과 늘 일치하는 사상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주의자들이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로 발전시킨 것으로 마르크스의 원래 의제와는 사뭇 다른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의 정치화란, 이슬람교 신앙과는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종교가 이용되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정치적 종교가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 것으로 저자는 이런 점에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가 다르다고 재차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슬람주의가 종교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란 점을 보탰습니다. 이는 이슬람주의가 종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가 이런 결론에 도달은 것은 그가 30년간 이슬람주의를 연구하면서 전 세계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자신들을 진정한 신도로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정민 교수의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중앙일보)

 

 

2010년 내내 미국 뉴욕에서는 모스크를 포함한 이슬람센터 건립을 놓고 거센 논란이 일었다. 그 장소가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 인근이었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의 보수파, 일부 기독교단체, 9.11테러 희생자들은 극렬히 저항했다. 이슬람 ‘종교’가 9·11테러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자들의 지지와 더불어 이슬람 문화센터 ‘파크 51’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다.

 ‘파크 51’ 완공은 시리아 출신의 독일인 무슬림 바삼 티비(Bassam Tibi)가 추구하는 시각의 결정체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 종교를 분리해서 보자는 것이다. 티비는 정치적 성향의 이슬람주의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진보주의 이슬람학자다. 40년에 걸친 그의 진보주의적 학문적 경험과 시각을 녹여 은퇴 직전 집필한 저작이 바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다.

 티비에 따르면 이슬람교는 비정치적인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시스템이다. 반면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를 순수한 종교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신정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무슬림의 사명으로 여기는 정치적 이념이다.

 그는 “이슬람주의는 신앙이 아닌, 정치질서에 중점을 두면서도 단순한 정치가 아니라 ‘종교화한 정치(religionized politics)’라는 점에서 이슬람교가 아니다”라는 ‘위험한’ 주장을 펼친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는 과격 이슬람단체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슬람은 종교로서, 그리고 이슬람주의는 정치이념으로서 추구하는 목적이나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티비가 역설하고 싶은 점이다. 이런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서양의 학자,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들이 사실상 ‘문명의 충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티비는 강조한다. 이런 저변의 인식 속에서 펼쳐지는 중동 및 이슬람세계에 대한 서방의 정책과 개입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활동영역을 넓혀주는 역효과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티비는 17억 명의 무슬림들이 물리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이슬람주의자들 지지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문명의 충돌이 초래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따라서 그는 ‘파크 51’의 개장을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미국 내 다양한 문화와 종교 안에서 이슬람교가 순수한 종교로 받아들여진 상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테러로 연상되는 문명의 충돌의 구도에서 이슬람 종교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티비의 이런 시각에는 허점도 있다. 그는 이슬람주의를 종교를 빙자한 정치세력으로 지나치게 획일화했다. 이슬람주의도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세속온건 성향의 터키의 집권 정의개발당과 과격테러단체 알카에다 모두 이슬람주의를 주창한다. 더불어 이슬람이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지도자였던 사도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Hadith)도 『쿠란』과 더불어 이슬람의 경전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하늘 기자의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천지일보=고하늘 기자]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무슬림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저자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진보주의 이슬람교 학자로 명성이 나 있다. 40여 년간 이슬람문화를 연구한 그는 은퇴하기에 앞서 혼신의 힘을 쏟아 마지막 작품을 내놓았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다.

 

진보주의 이슬람교 학자인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도피생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40여 년간 연구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예일 대학에서 책을 집필하고 탈고한 후에 두 차례에 걸쳐 전문가 여덟 명이 검토하고 네 차례의 편집과정을 거쳐 최종 통과됐다. 예일 대학 출판부는 다시 세 명의 검토자를 선정해 몇 차례의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민감한 주제임에 그 같은 과정이 있어졌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그만큼 간절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가장 역설하는 점은 이슬람교 신앙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슬람교의 종교성을 도입한 이슬람주의의 종교화된 정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슬람권 밖의 사람들이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까닭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의 뿌리가 이슬람교라고 확신하며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교를 순수한 종교로 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해 신정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무슬림의 사명으로 간주하고 17억 무슬림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선동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다시 말해 이슬람주의는 국가질서를 위한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고 이슬람교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 종교적 제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슬람주의를 반대하는 무슬림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 안에서 이슬람교가 새로이 인식돼야 함을 주장한다. 진보주의 무슬림으로서 그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의 전체주의적 외관은 반유대주의와 관계가 깊으며, 이슬람주의자들이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양극화를 부추길 뿐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의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주의자들이 자살테러 등 폭력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데도 영향력 있는 서양 학자와 정치가들은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동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정책을 펴고 있어 현재 이슬람교가 문명의 충돌 혹은 문명의 위기에 분수령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 관한 무지는 서양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예외라 할 수 없는데 이는 17억 인구를 가진 이슬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정책에도 큰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계한다. 우리는 종교로서의 이슬람교는 존중해야 하나, 종교를 빙자해 정치적 목적을 무력으로 달성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종교가 종교화된 정치의 탈을 쓰고 공공영역에 귀환한 것은 이슬람교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슬람교의 이데올로기는 여느 종교적 원리주의보다 세계의 정치에 중요하다. 전통적인 보편주의를 종교적 토대 위에 제기된 새로운 국제주의로 옮기는 데 이슬람주의가 다른 원리주의보다 더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9・11테러 사태 이후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발광하는 폭력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주의는 팔레스타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릇된 서양식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이다. 이는 아랍 및 이슬람세계의 구조적・규범적 위기에 매우 깊이 내재되어 있다.” -2장 이슬람주의와 정치질서 p86


바삼 티비 지음 / 知와 사랑 펴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람주의는 왜 이슬람교가 아닌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지와 사랑)의 저자 바삼 티비는 저서에서 ‘이슬람주의는 왜 이슬람교가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종교와 종교로 채색한 이데올로기를 구분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가 아닌 이유로 이슬람주의가 신앙에 본질적인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질서를 신정정치에 기반을 두는 가운데 이데올로기를 종교로 채색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치질서를 “종교화한 정치”로 규정합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말하는 종교화한 정치란 국민의 주권이 아닌, 알라 신의 뜻에서 비롯된 정치질서를 장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슬람교는 신앙과 종교 및 윤리적 기틀로서 정치적 가치를 내포하긴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질서를 전제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슬람주의는 자주 회자되는 이슬람교의 부흥도 아닐 뿐만 아니라 부흥은커녕 전통과는 다른 선입견을 부추기는 사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삼 티비는 “상상 속의 신정국가인 알라 신의 통치hakimiyyat Allah(하키미야트 알라)라는 이슬람교의 유토피아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에서는 제도적인 이슬람주의와 지하드운동이 뚜렷이 대별되나 수단만 다를 뿐 둘 다 목적은 같다”면서 “이슬람주의가 전통을 꾸며낸 경위와 까닭을 이해하려면 이슬람교 조직의 아젠다부터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주의를 이해하려면 이슬람주의가 세계화의 시류에서 식민지로부터 독립 후 개발이 중단된 데 대한 문화적, 정치적 대응책으로, 정치색을 띠긴 하나 종교적인 면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관계를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이슬람교와 구별되는 이슬람주의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생 이 분야에서 연구하여 명성을 얻은 저자는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의 휴머니즘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여 이슬람교가 태동한 이슬람문명의 위기에 전 세계 역사, 사회학 사상을 적용했습니다.

우선 그는 전통적인 신앙을 따르는 무슬림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슬람주의가 꾸며낸 전통임을 증명합니다. 독실한 무슬림인 그의 눈에는 이슬람주의가 전통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이고 그것을 지적합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자신들의 공약을 지키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자들로 전락하여 반대파를 억압한 실상을 지적합니다. 그는 정교가 분리된 세속 민주국가인 터키에서조차도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정의개발당AKP: Adalet ve Kalkınma Partisi 집권당은 언론의 자유를 저해하고 언론인들을 재판 절차 없이 강제 투옥시키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2010년 11월, 유럽연합EU은 연례보고서에서 터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슬람주의의 가면은 바삼 티비에 의해서 신간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서 완전히 벗겨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