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에서
클림트와 뭉크 그리고 여자
클림트와 뭉크는 여자의 일생을 나타낸 그림들을 그렸다.
클림트는 여자의 일생을 세 시기로 표현했고 뭉크는 네 시기, 또는 세 시기로도 표현했다.
클림트는 <여자의 세 시기 The Three Ages of Woman>에서 여자 아이와 그 아이를 안은 채 수면으로 빠져든 여인, 그리고 늙은이로 여인의 연령을 상징적으로 셋으로 나눴다.
깊이 잠든 여인의 모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관능적 여인의 매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젊은 여인과 대조가 되게 절망적인 모습의 늙은이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등이 휘고 아랫배가 나온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 삶을 위협하는 죽음을 묘사했음을 본다.
<생의 네 시기 Four Ages in Life>에서 뭉크는 여자의 일생이 꿈으로 시작되지만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무뚝뚝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고독해지는 존재로 묘사했다.
여자에 대한 생각이 다른 뭉크, 클림트, 쉴레는 자연히 사랑이나 섹스, 키스장면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표현했다.
<연인들 Lovers>을 보면 클림트는 남자와 여자를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성적 파트너로 그렸지만,
<남자와 여자>를 보면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이루지 못한 뭉크에게 섹스는 서로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원만치 못한 행위로 표현되었다.
<포옹하는 두 여인(두 친구)>의 경우 쉴레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성에 대한 변형적인 충동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성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당시 터부시한 레즈비언의 사랑, 자위행위를 하는 모습 등을 거침없이 표현함으로써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음을 본다.
동성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쉴레의 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클림트의 섹스장면과 쉴레의 것을 비교하면 클림트의 그림은 노골적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도취된 모습이고 쉴레의 그림에는 관람자의 눈과 마주치는 당혹감과 함께 은근히 관람자를 부추기려는 변태적 요소도 내포되어 있다.
열렬히 포옹하고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은 둘이 하나가 되는 영원한 모티프로서 예술가들이 선호한 주제였다. <키스 The Kiss>에서 보듯 뭉크의 키스에서는 심리적 상황이 배제되고 애정의 표시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삼키려는 두려운 존재들로 나타난다.
클림트의 <키스>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일체가 되고 사랑의 무아지경에 빠져는 반면 뭉크의 것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매력에 이끌려 키스를 하지만 종국에는 배반하고 서로를 괴롭히게 되는 이중적 존재의 모습이다.
뭉크의 <키스>가 어두운 화면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클림트의 <키스>는 사랑을 매우 미화한 장면으로 가장 우아하고 화려하게 나타난 애욕주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