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세계의 샤리아와 샤리아 헌법 채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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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비롯하여 모든 영역을 망라한 신성한 이슬람법의 주장은 법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에서 해방된 이후 이라크의 여러 정당들이 신규 헌법을 논의할 때, 이슬람 울레마 위원회Committee of Islamic Ulema(이라크 정당에서 적극 활동하는 성직자 단체)는 어떤 헌법이든 이슬람 샤리아에 근거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위원회 대표연사인 이슬람 서기관 압둘살람 알쿠바이시는 “참정권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슬람법은 헌법의 주된 근본이 되어야 마땅하다” 고 강조했다. 이슬람국가를 둘러싼 이 같은 주장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샤리아식 헌법에 기초한 국가가 사담 후세인의 “공포 공화국” 을 민주적으로 대체하는 데 과연 필요할까? 이 책을 집필할 무렵에도 수니파와 시아파 이라크인들은 샤리아에 기초한 헌법제도의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이며, 죽고 죽이는 짓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이른바 이라크의 민주화로 헌법이 도입되었음에도 샤리아는 “이슬람교의 통치” 라는 또 다른 명칭으로 확립되었다. 미국 측 주장에 따르자면, 샤리아라는 말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추측컨대, 미군과 미 국무부만 모르고 나머지는 이를 알고 있다. 때문에 민주화 프로젝트가 법률의 이슬람화라는 라이벌 프로젝트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반론이 있긴 하지만, 코란을 탈피한 샤리아 규정은 개인의 인권38과 일치하지 않으며 모든 점에서 대립된다는 것이 굳게 자리 잡은 견해다.
그렇다고 논지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코란에서 제시한 도덕적 의미를 지닌 샤리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종교와는 무관한 민주정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샤리아라며 규정한 이슬람교의 신성한 율법이라든가 신의 법lex divina 따위는 왠지 석연치가 않다. 코란을 탈피한— 인간이 구성한— 샤리아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중세 샤리아를 규정한 이슬람법의 네 학파는 사상의 기반을 다양하게 해석한 코란에 두었다. 게다가 이 이슬람법은 성문화되지 않았다. 샤리아 법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샤리아는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법으로, 대개 민법과 형법에 국한되며 특정한 경우에서 얻은 개별적인 판례를 축적해둔 데 전적으로 기초한다. 그러나 오늘날 샤리아에 대한 요구는 이를 헌법으로 삼는 이슬람국가를 건설하라는 주문이다. 한편, 꾸며낸 전통을 둘러싼 의문을 제쳐두는 것은 1780년대의 국내 정치상황과 영국의 관습법 및 계몽주의 정치철학에서 미국의 헌법을 창출해낸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샤리아가 헌법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이슬람교화의 요구가 이슬람세계의 민주정치 비전에 얼마나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샤리아라는 허울로 종교가 귀환하느냐, 이슬람 정치를 샤리아화하느냐는 이슬람문명의 걸림돌이다. 이슬람주의가 무슬림에게 제시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이거나 위기의 근원이라야 옳을 것이다. 그 까닭은 종교와 정치의 소통과 관계가 깊다.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밝혀둔다.
첫째, 이슬람교의 율법은 샤리아지만 무슬림은 그 정의에 대한 공통된 견해가 없다. 샤리아를 둘러싼 논쟁은 학술과 종교 및 정치가 한데 섞인 것이다.
둘째, 헌법dustur(두스투르)과 헌법으로서의 샤리아는 최근 이슬람 사상에 추가된 것이다.
셋째,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 또한 최근 이슬람교에 추가된— 반론의 여지는 있으나— 것이다. 이 주제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이집트 무슬림들— 즉 무함마드 알가잘리와 무함마드 이마라와 같이 무슬림 형제단과 가까운 사람들— 은 인권이라는 이상의 원류가 바로 이슬람교에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단 이슬람주의자인 하산 투라비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 따르면, 인권은 이교와 무관하며 “우
리는 인권이 필요치 않다” 고 역설한다. 한편, 안나임처럼 종교와는 무관한 무슬림 학자들은 현대 이슬람문명의 사법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슬람 정치를 샤리아로 만든다면 개혁에서 일탈할 공산이 커 종교의 자유가 제한될 것이다.
경전에 중심을 둔 이슬람교와 역사가 중심인 이슬람교의 차이는 샤리아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자유를 논의하는 데 적절한 화두가 된다. 이슬람교의 전통은 비이슬람교의 세 가지 계급을 의식하고 있는데,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무슬림 일신론자들(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유일신을 믿는 소수집단(딤미)으로, 이슬람교의 지배와 특정 제약 아래 종교적 신앙을 누릴 수 있으나 무슬림과 동등하지 않다.
둘째, 다신론을 추종하는 자들(유대교와 기독교 및 이슬람교를 제외한 나머지)은 불신앙(쿠프르)으로 취급되며 코란에서 명시한 규정에 따라 투쟁의 대상이 된다. 다원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 이 같은 종교를 인정하는 유일한 이슬람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셋째, 개종을 통해 이슬람 신앙을 버리거나 아예 믿지 않으려는(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 무슬림은 배교riddah(리다)나 이단으로 취급되어 불신자로 처벌받아야 한다. 배교 원칙은 과거의 무슬림ex-Muslims이나 불신자로 규정된 자들takfiri(타크피리, 무슬림 공동체에서의 파문)의 살상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한다.
위 세 가지 계급은 이미 샤리아화와 민주적 헌법주의의 충돌을 예고했다. 혹자는 성문화되지 않았다는 본질을 내세워 샤리아가 매우 융통성 있는 법체제라고 주장한다. 고전 샤리아라면 그럴 수도 있으나, 오늘날 이슬람주의가 수용한 도그마는 엄격한 법전이다. 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세 계급은 대체로 붕괴되어 하나로 통합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들과 의견이 다른 자라면 무슬림도 포함하여 죄다 불신자로 취급하여 샤리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샤리아를 정치화하여 이를 헌법으로 승격시키는 것은 새로운 문명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것과 같다. 이 프로젝트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법의 지배” 라는 민주적 의미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이동법law of movement” 의 의미로 “법” 을 거론한다. 헌법에 명시될 내용이야 한도 끝도 없겠지만 샤리아가 현대의 법 기준과 상충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무슬림 선각자들도 이를 인정한다.
물론 그 방면에 이슬람주의자들만 있는 건 아니다. 샤리아를 “신이 베푼” 것으로 보는 무슬림 서기관들도 있는데, 이를 철저히 규명한 적은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기꺼이 샤리아를 적용할 것 같다. 또한 1930년, 이슬람교의 국제법에 관련된 책을 쓴 나집 알아르마나지, 그리고 최근 무함마드 사이드 알아슈마위가 그랬듯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무슬림 학자들도 있다. 탄탄한 근거를 갖춘 몇몇 이슬람 관련서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수비 알살리의 책이 읽어볼 만하다. 그는 샤리아의 이성적인 추론을 허용했으나, 요즘 이슬람교에서 샤리아를 보는 견해는 대체로 “샤리아식 논리” 로 이슬람주의가 재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