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벌거벗겨진 신부>
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이 처음으로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이를 줄여서 큰 유리라고 한다)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은 1912년 7~8월이었다.(뒤샹 201, 72) 그는 뮌헨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그렸는데 향 레이몽을 위해 그린 <커피 분쇄기>(뒤샹 64)와 유사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기계 이미지는 문명예찬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으며 뒤샹 외에도 레제, 피카비아, 레이몽 그리고 몇몇 예술가들이 기계 이미지를 탐험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계 이미지에 비해 뒤샹의 것은 덜 현대적으로, <커피 분쇄기>의 경우 손으로 갈아야 하는 구식 기계의 모습이다. 그는 <처녀>(뒤샹 73)란 제목으로 기계의 몸체를 습작했으며, 젖가슴과 들어올린 무릎으로 여성을 상징했다.
1912년 7월 말에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을 그렸는데 그가 그릴 <큰 유리>의 부분적인 실험이었다.(뒤샹 74)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처녀에서 신부로 변화하는 마음과 육체의 운동이다. 처녀로부터 신부로 변화하는 데 무슨 운동이 필요할까? 문화사학자 제롤드 사이겔은 설명했다.
“처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여인 또는 아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신부가 되는 것은 처녀성을 상실하기 전의 준비상태이다.”
신부가 되는 것은 불확실한 육체적 축복을 기대하는 환희의 짧은 기간에 도달하는 것이다. 뒤샹은 누드의 운동을 묘사하면서 입체주의 예술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땅의 색들인 브라운색, 황토색, 노란색 그리고 검정색을 사용했다. 그의 작품에서 제목이 시사하는 신부의 미혼남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가는 선과 아주 가는 기다란 직사각형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을 그린 후 8월에는 <신부>를 그렸다. 그는 어느 날 술집에서 취하도록 맥주를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신부가 딱정벌레처럼 나타나 날개로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다”고 했다. 그의 꿈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시킨다. 이런 꿈을 꾼 후 그린 <신부>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더불어 매우 신비스러운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도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과 마찬가지로 입체주의 방법으로 운동을 묘사한 것이다.
뒤샹은 훗날 <신부>에 관해 말했다.
“<신부>에 관한 아이디어는 뮌헨에서 7, 8월 <처녀>와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을 드로잉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처녀 No. 1>을 먼저 연필로 드로잉했고, 다음에 <처녀 No. 2>를 드로잉한 후 수채를 조금 칠했다. 그런 뒤 이것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를 생각한 것은 그 후였다. 그때 그린 드로잉들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그린 것들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에서 ‘조차’란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제목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 시기에는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단어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콤마를 찍은 후 ‘조차’라고 적었는데 부사 ‘조차’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으며 제목 또한 작품과 무관하다. 그래서 가장 아름답게 시위한 부사적인 부사가 된 것이다. 의미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반감각적’ 언어는 문장의 관점에서 시적 차원으로서 내게 흥미로웠고 앙드레 브르통이 매우 좋아했다. 내게는 봉헌식과도 같았는데, 사실 그렇게 제목을 부칠 때 가치에 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영어로도 마찬가지이다. ‘조차’는 온전한 부사로 의미하는 바는 없다. 좀더 벌거벗길 수 있는 가능성들 모두란 뜻은 당치도 않다.“
<큰 유리>는 1923년까지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고 뒤샹은 완성시킬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뒤샹은 큐레이터 캐서린 쿠에게 말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완성하지 않으려고 했다. ‘완성’이란 말은 전통적인 방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전통주의에 따른 모든 장치를 수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큰 유리>를 더 이상 손대지 않은 채 센트럴 파크 서쪽에 있는 캐서린의 아파트로 운반했다.(뒤샹 202, 203, 223, 195) 그는 <큰 유리>에 대한 짐을 그런 방법으로 벗을 수 있었다.
현재 필라델피아 뮤지엄의 뒤샹 화랑에 소장되어 있는 <큰 유리>는 가로 175.8cm에 세로 272.5cm이다. 뒤샹은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두 개의 유리를 위아래 수직으로 세웠다. 그것은 너무 커서 한눈에 관람하기보다는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면서 보거나 또 뒤로 물러나서 보아야 한다. 그는 그것이 그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글을 묶어서 만든 <푸른 상자>(뒤샹 249)에서 그것을 ‘지연’이라고 했다. 그는 <푸른 상자>에 적었다.
“그림이라고 하는 대신 ‘지연’이란 말을 사용한다. ... 그것이 그림이냐 하는 질문 자체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진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지연을 만드는 것은 지연에 대한 다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우유부단한 재결합에서 가능하다.”
<큰 유리>의 아랫부분은 <독신자 기계>이다. 각 요소는 자위행위의 의식을 거행하는데 그는 <푸른 상자>에서 이런 요소들은 자위행위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독신자는 스스로 자기의 초콜릿을 간다”고 적으며, 굳어진 가스의 번쩍번쩍 빛남은 “매우 자위행위적으로 환각에 빠뜨리게 한다”고 했다. 뒤샹의 <자전거 바퀴>와 둥근 형태들에 대한 강박관념은 <회전하는 유리판>(뒤샹 183)에서도 나타난 적이 있는데, 둥근 회전하는 물체는 남자의 성기처럼 앞으로 나왔다가 들어가곤 했다. <로즈 셀라비>(뒤샹 186)는 여성에 대한 궁극적인 그의 이기심을 나타낸 것이다. <큰 유리>에서 불행한 독신자들은 의도는 갖고 있지만 거만하게 구는 신부를 벌거벗기지는 못한다.
카반느가 훗날 뒤샹에게 물었다.
카반느: <큰 유리>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뒤샹: 나도 모르네. 난 투명성 때문에 유리에 관심이 대단히 많았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겠지. 다음으로는 색이었어. 유리에 색을 사용하게 되면 뒤에서도 볼 수 있고, 색을 봉해버리게 되면 산화작용도 막을 수 있지. 색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한 오래 순수한 모습을 유지한다네. 이런 중요한 요소들은 기술적인 문제지. 원근법도 매우 중요하네. <큰 유리>는 완전히 무시하고 업신여긴 원근법을 회복하네. 내게 원근법은 절대적으로 과학적이었어.
카반느: 사실주의 원근법이 아니란 말입니까?
뒤샹: 아닐세. 이는 수학적이고도 과학적인 원근법이었어.
카반느: 산술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까?
뒤샹: 그래. 사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야. 이것들은 중요한 요소들이라네. 안에 내가 삽입한 것은 자네도 말할 수 있지 않겠나? 난 보통사람들이 그림에 사용하는 것 대신 덜 중요한 것을 시각적 요소에 부여하면서 일화를 좋은 의미로 시각적인 것들과 함께 섞었지. 난 이미 시각적 언어를 성취하기를 바라지 않았네.
카반느: 망막이었겠군요. (망막은 뒤샹이 먼저 사용한 말이다.)
뒤샹: 궁극적으로 망막으로 나타났지. 모든 것이 개념적으로 되었으며 망막보다는 재현한 것에 달린 문제가 되었네.
카반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개념 이전에 기술적인 문제가 먼저 대두되었을 겁니다.
뒤샹: 더러 그랬지. 근원적으로 몇 가지 개념들이 있었어. 대부분의 경우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없었고 유리니까 정교하게 작업해야 했어. ... 화가는 늘 장인과 같지.
카반느: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과학적인 문제들의 관계라든가 산술이라든가 더욱 문제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뒤샹: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모든 그림은 반과학적이지. 쇠라의 그림도 마찬가지라네. 난 사람들이 별로 문제로 삼지 않고 시도하지도 않은 분명하고 정확한 과학의 관점을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네. 과학을 좋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야. 반대로 과학을 신용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부드럽고 가볍게,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취급한 것이지. 하지만 아이러니가 내재했네.
카반느: 과학적인 점에서 말한다면 선생님은 과학에 많은 지식이 있었나요?
뒤샹: 아주 적었어. 난 과학자 타입이 아니지.
카반느: 아주 적었다구요? 선생님의 수학적 재능은 놀랄 만했는데 ...
뒤샹: 아냐, 천만에. 당시 우리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차원이었어. <푸른 상자>에는 사차원에 관한 글이 많이 적혀 있네. 자네 포볼로우스키란 사람을 기억하나? 그는 보나파트에서 출판사를 운영했네. 그 사람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군. 그는 잡지에 글을 썼는데 사차원에 관한 것이었고 널리 알려졌다네. 그는 납작한 이차원의 동물이 있다고 주장했지. 놀라운 이야기였어.
카반느: <신부>를 선생님은 “우리 안에 있는 지연”이라고 했는데.
뒤샹: 그래, 내가 좋아하는 시적 관심에서의 말이야.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시적인 말로 ‘지연’이라고 부르고 싶었네. ‘유리 그림’, ‘유리 드로잉’, ‘유리에 그린 것’이란 말을 피하고 싶었어. 그때 ‘지연’이란 말이 발견한 말처럼 마음에 들었지. 정말 시적이었어. 말라르메의 시어 같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