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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 Protestantism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 가운데서 우상파괴 운동은 잘 알려져 있는 데 반해, 함께 주장한 ‘색채 다변화 운동’19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색채 전쟁(모든 기존 색채에 대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어느 특정 색에 대한 전쟁)은 루터와 칼뱅 및 그들의 후계자들이 제정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윤리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인쇄된 책과 판화(요컨대 “흑백”문화)가 승리를 거둔 시기인 16세기 초에 생겼으나, 중세의 색채 윤리관을 계승하고 있는 동시에 완벽하게 그 시대의 부산물이기도 했다.
이 교의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몇몇 분야(예배의식, 옷, 집, 미술, 상업)에서 “검정―회색―하양” 축상에 전체적으로 통일된 색채체계를 장려하고 실행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색들(파랑만은 가끔 남겼다)은 축출되었다.
이 점은 칼뱅과 츠빙글리가 제일 철저했다.
그러나 1527년에 『의복론』(츠빙글리도 이 책에서 몇몇 개념들을 받아들였다)을 저술한 신학자 메란피톤은 이 두 사람에 앞서서 이미 흑색 윤리, 암색 윤리를 펼쳤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제국의 윤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옷 색깔에 관한 이 윤리관은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왔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적 가치관은 18~19세기에 걸쳐 당시 생겨나고 있던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되고, 다음으로 산업사회의 가치관, 그리고 서양 사회에서 “부르주아 가치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부르주아 가치관은 지금도 우리의 의복 관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검정양복, 흰 와이셔츠, 신사복, 턱시도, 야회복 등은 색채에 관한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관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색이 남성복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후에 검정에서 벗어날 때 너무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현대사회는 하나의 안전한 대책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군청색이다.
20세기를 통해서 이 군청은 검정이 점하고 있던 스포츠나 레저 의류, 그 밖의 모든 제복으로 거의 모든 영역을 점령해갔다.
청바지(Jeans,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도 앵글로색슨의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의 산물로 생각된다.
청바지도 매우 밝은 색이 있고 빨아서 바랜 듯한 색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개념적으로 이 청바지도 어두운 색이고 이러한 윤리를 받아들인 앙시앙 레짐의 귀족들이 입던 “검정 바지”를 이어받은 것이다.

2) 의복이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다른 물건도 같을 것이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서조차도 일상의 공산품들은 대부분 남자 옷처럼 검정, 하양, 회색, 갈색이었다.
여기에는 염색 기술상의 이유뿐 아니라 이념적인 이유도 있다.
위생기구, 취사용품, 전화기, 만년필, 타자기, 카메라, 자동차 등은 수십 년 동안 색을 가질 수 없었다.
말하자면 이것들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색, 즉 검정, 회색, 하양만이 있었던 것이다.

검정, 회색, 하양 이외의 색, 특히 따뜻한 색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물질문명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하양에서 노랑으로, 검정에서 녹색이나 파랑으로 갑자기 이동한 것은 아니다.
그 추이는 도중에 파스텔 색조라는 단계를 거쳤다.
1960년대 주방 색, 목욕탕, 자동차, 속옷, 잠옷, 테이블보, 냅킨, 수건의 색 등이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서 진하지도 선명하지도 않고, 분명하게 무슨 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파스텔 색을 거쳐 갔다.
플라스틱 제품들도 최근까지 선명하고 진한 색을 갖지 못했다.
파스텔 색은 처음에는 미술과 그림에, 다음에는 광고에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색이 서서히 화학적으로 또한 윤리적으로 가능해짐에 따라 점차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까지 사용되었다.
현재는 일상에서 “선명하고”, “튀는” 색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복고주의의 반동을 피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선명한 색이 너무나 범람하여 오히려 이 색들이 싫어지고 원래의 검정, 회색, 하양 계열의 색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 「퇴색」, 「영화」, 「자동차」, 「속옷」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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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법규 Traffic rules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색을 신호체계로 연구하려는 사람에게 교통법규는 대표적인 연구영역이다.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기호학, 그리고 언어학이 이 영역에서는 서로 만나고 얽혀서 서구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신호체계(나중에 서서히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가 되었다.
그런데 교통법규와 그 표현수단인 신호표지가 사회학자뿐만 아니라 기호학자나 이미지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에게도, 이렇게 적은 언급과 연구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도로표지는 해운신호, 철도신호의 유산이다.
19세기 말, 도로표지가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던 체계와 완전히 새로 완성된 도로표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표지와 신호의 엄밀한 계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 관계로 이 계보를 다 더듬을 수 없다.
다만 교통법규와 색채세계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교통법규에 사용되는 주요한 색의 기능 방식만 지적하고자 한다.

신호표지는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수평 표지(도로면에 그려지는 지시사항), 수직 표지(도로표지판), 빛에 의한 표지(교통신호, 점멸신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각 색의 의미, 함축성(말의 명시적인 의미에 상대되는 암시적인 의미, 그 말이 띠고 있는 풍성한 감정적·사회적·문화적 의미)은 변하지 않는다.
사용되는 색은 빨강, 파랑, 노랑, 녹색, 흰색, 검정에 한정된다.
이들 여섯 가지 색은 서구에서 중세 이래로 문장(紋章)이나 상징해 온 색채 체제의 기본색이다.
15∼17세기에 확립된 색상체계에 의한 흰색과 검정의 배제나, 원색과 보색의 ‘과학적’ 구별이나 근래의 보라색, 분홍색, 주황색의 지위향상도 이들 여섯 색의 우월한 위치는 넘볼 수 없었다.

교통표지판에서 가장 중요한 색은 흰색, 빨강, 파랑의 세 가지이다.
그러나 흰색은 하나의 색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다른 색과 대조를 이루며 사용된다.
흰색이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갖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 바탕색으로 사용된다(크림색이나 밝은 베이지색도 좋다).
때문에 흰색은 대부분 다른 색과 조합되어 의미를 유발한다.
반면 빨강은 언제나 위험과 금지의 관념과 결부된다.
빨강이 표지를 덮고 있는(무수한 예가 있다) 경우에는 위험을 나타내어 흰색과 함께 통행금지, 정지, 그리고 파랑과 함께 쓰인 몇몇 경우에서는 주차금지를 나타낸다.

파랑이 바탕색인 경우 ― 그러한 예는 많다 ― 규제(최고속도, 방향규제 등)나 지시(주차, 병원, 고속도로구간 시작)를 의미한다.
이 경우 파랑은 흰색과 함께 사용된다. 노랑은 특히 일시적인 지시의 표지로 사용된다.
노랑은 차선변경 혹은 노선변경(사고, 공사, 작업 등)의 상황에서 운전자에게 신중한 주행을 요망하는 표지판의 바탕색으로 사용된다.
사용빈도가 가장 적은 녹색은 언제나 허가의 의미로 사용된다(이 책의 항목 가운데 하나인 「신호등」이 이것에 해당한다).
녹색은 또 이용이 권장되는 주 도로(예컨대 우회도로)나 어떤 범주의 도로(파랑, 노랑, 녹색, 흰색 등 각 색의 서열은 일반적으로 고속도로, 간선도로, 중간규모 도로라는 교통도로망의 서열에 대응한다)를 지시하기도 한다.
검정색은 단순히 어떤 정보(흰색 바탕 위에 검은 기호)를 지시하거나, 사선을 부가하여 금지(추월금지, 제한속도, 클랙슨 금지)의 해제를 알려준다.

이렇다 하더라도 교통법규의 색채는 우리의 생각만큼 엄밀하지 않고 유연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아마도 이러한 유연성 때문에 이 신호체계가 유효함이 틀림없다.
각각의 색은 여러 개의 암시적 의미와 명시적 의미를 가지며, 또 같은 관념도 다양한 색으로 표시할 수 있다.
또한 나라에 따라서(독일, 이탈리아, 영국) 지방이나 도로의 종류에 따라서 표지가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나 금지를 의미하는 빨강과 같은 강한 개념은 어느 나라에서나 같다.
옛날의 교통법규 교본에 빨강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는데(그러나 파랑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금지항목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두꺼운 교본에는 빨강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위험과 금지가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만으로도 20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현대사회가 얼마나 변모했는가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 「자동차」, 「국기」, 「문장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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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Money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돈에 냄새는 없다지만 색은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오랫동안 이미지로서 또 상상의 세계 속에서 돈은 귀금속으로 각인된 동전과 동일시되어 왔다.
이 때문에 동전(은 혹은 은도금, 금 혹은 금도금한 동전)의 색은 도상학적으로는 물질적 실체로 받아들여진 돈의 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돈이라는 관념에 가장 자연스럽게 결부되는 색은 금색도, 은색도 아닌 녹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된 이유의 하나는 미국의 통화단위를 나타내는 은행권, 요컨대 달러 지폐가 녹색이라는 점에 있다.
현대에서 돈에 얽힌 모든 것은 상징적으로(신화적이라고 해도 좋다) 달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달러 지폐의 색이 돈의 색으로 되어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명한 녹색의 달러 지폐가 처음으로 인쇄되기 훨씬 이전부터(달러 지폐는 1792~1863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났으며, 1863~1913년에 규격이 통일되었다) 녹색은 행운의 여신을 나타냈기 때문에 돈을 녹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당연한 일이다.
이미 중세의 상징체계에서도 녹색은 행운과 불운, 변덕스러운 운명의 신, 희망의 실현이나 좌절을 상징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자 녹색은 자연스럽게 도박의 색(그리고 도박꾼이 사용하고 있던 비유가 풍부한 언어를 ‘녹색언어’24라고 하였다)과 노름, 특히 돈 내기 노름의 색이 되었다.
15세기 말에 이미 도박판의 색은 녹색이었다.
의미의 확대에 따라 앙시앙 레짐 아래서 녹색은 점차 도박과 카지노의 세계와 관계되었을 뿐 아니라 화폐, 은행, 금융의 색이 되기에 이른다.
달러 지폐는 미합중국 독립 이전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던, 색의 상징체계를 강화하고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이 시대의 전자화폐가 계속 녹색과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돈은 냄새를 잃어버린 후 색도 잃어버리게 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공학에도 색이 있기 때문이며, 그 색도 대부분 스피드와 유동성, 변환성의 상징인 녹색이기 때문이다.

녹색은 화학적으로나 상징기호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색이다.
앞으로도 이 색은 가장 불안정한 여신, 즉 행운의 여신을 상징하는 색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 「녹색」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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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Subway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지하철은 색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예컨대 지하철에서는 시민들이 실제로 입고 다니는 의복의 색들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도시 시민이 일상적으로 입고 있는 의복 색과 쇼윈도나 잡지에서 보는 요란한 의복 색 사이의 큰 차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디자이너가 뭐라 하더라도 서양의 대도시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파란색(이 다른 색을 크게 제치고) 옷을 제일 많이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도 지하철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사회학자, 기자들도 자주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이다.

2) 색에 의한 표지도 열차나 비행기보다 지하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선도는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행선지를 정할 때 도움이 되도록 엄밀한 지도제작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노선도에서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은 이용자가 잘못 타지 않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선이 많은 복잡한 도시(런던, 모스크바, 파리)의 노선도가 다양한 색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어느 색이 할당되었는가(나는 어떤 표시도 규칙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용자가 자신이 자주 타는 노선의 색을 알고 있는가 또한 흥미로운 질문이다.
또 가까이 있는 노선에 비슷한 색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남북의 색이나 동서의 색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을까.
또는 부르주아 지구를 통과하는 색과 빈민지구를 통과하는 색(갈색, 주황, 보라)이 따로 있는가.
특히 지도제작에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어느 노선에 할당된 색(런던 등에서는 때로는 백 년 이상 전부터 같은 색)을 갑자기 변경할 수 있을까?
이용자는 이러한 변경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싫다고 아우성을 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도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연구해볼 만한 문제이다.

3) 지하철이나 기타 교통수단의 1등석과 2등석(어쩌면 3등석)의 구별을 색의 역사로 연구하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구별을 위해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는 어떤 색이 조합되었는가.
1등석과 2등석에는 어떤 색이 제일 많이 사용되는가.
같은 체계가 여러 도시에서 여러 교통수단으로 공히 사용되고 있는가.
차표의 색과 차량의 등급색이 연결되는가.
이러한 규격이(오늘날에는 좀 흐려졌지만)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소라도 악영향을 미쳐 어떤 색의 가치를 변화시킬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파리 교통국의 새로운 파랑과 녹색의 표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4) 지금까지 객차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이런 것들도 색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즉 색이 얼마나 이념적이고 상징적이며, 숨겨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이 상징적 의미들이 생리적 효과뿐 아니라 우리의 선택, 행동 방식까지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초 파리의 교외 급행전차(R.E.R.) 13호선에 새로운 차량이 도입되었을 때의 일이다.
2등석에는 빨강과 파랑 좌석이 번갈아가며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출퇴근 시간이 아닐 때, 말하자면 승객이 자유로이 좌석을 택할 수 있는 시간에 대부분 빨간 좌석을 피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그 색이(위험, 금지를 알리는 색, 금기의 색 ― 그러나 금기를 침범하는 색이기도 하다) 공포심을 유발하거나 적어도 파랑보다는 중립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때 나는 한가한 시간대에 일부러 빨간 좌석에 앉는 사람들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적극 관찰하지 못했다.
이러한 조사는 절대로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후회가 되는 것은 빨간 좌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가 끼거나 낡고 망가져서 일반 승객이 색을 알아볼 수 없을 경우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 관찰하지 못한 점이다.
그랬더라면 기존문화를 파괴하고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지하철 안에서의 색채 민족학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 「파랑」, 「빨강」, 「옷」, 「교통법규」, 「스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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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Car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실시된 몇 차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선택기준으로서 색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격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에게 제조사와 모델, 성능, 그 밖의 다른 품질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의 색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러한 조사결과에 놀랐지만 1950년대 초에는 이것을 거의 무시했다.
그 후 소비자의 수요에 떠밀려, 색에 관한 방침을 약간 수정하여 대중의 요구와 변덕스러운 유행을 고려해야 했다.
마지못해서라고 하기엔 좀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제조사들의 이런 방침 전환은 언제나 망설임 속에서 행해졌다.
기술자들에게 차체의 색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제조공정 중에서 도장(塗裝)은 마지막 공정이다.
판매 전략에서 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알아야만 한다) 것은 ‘영업사원’뿐이었다.
그런데 자동차산업에서 영업은 중요한 영역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그것을 유감스럽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에도 새 차를 구입할 때 여전히 색을 고르는 데 어려운 이유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이지만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물론 영업사원은 다양하고 풍부한 색 견본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어떤 색은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든가, 어떤 색은 초과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든가, 어떤 색은 그가 선택한 모델에는 없다든가, 그 옵션에 그 색은 어울리지 않는다든가이다.
따라서 이 색 저 색을 그렇게 빼고 나면 재고에 있는 고작 3~4종의 색에서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마음에 드는 색이 아니라 싫은 색을 제외해가면서 가장 덜 싫어하는 색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마음에 드는 색을 선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제외해가는 방식 또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참는 선택방식은 옷을 살 때와 매우 비슷한 문제다.)
차의 색을 실제 자신의 기호대로 선택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아직 이론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사회학자와 사회심리학자(!)가 지역, 국가, 시대, 사회 환경에 따른 자동차 색에 대한 선호도 통계조사에서 이끌어낸 교묘한 결론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수치들은 실제 대중들의 선호도보다 제조사의 상상력 부족, 한심한 미적 감각, 도덕적 복고성향, 기술혁신에 대한 유치한 욕망을 표현할 뿐이다.

2) 그렇다 하더라도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에 관계없이 우리가 가진 차(차뿐 아니라 그 밖의 물건도)의 색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고, 계급과 서열이 정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색과 우리 본래의 취향이 일치하지도 않으며, 우리들 스스로가 나타내고 싶어 하는 이미지와도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차 색의 선택은 일회성 사건에 불과하다.
눈에 튀는 화려한 색의 차를 탄 사람은 상식을 벗어난 도발적인 운전자가 되는 것이다.
빨간 차를 탄 사람은 위험하고 난폭한 사람이고, 검정색 차의 소유주는 엄격한 성격이거나 공적인 인물이 된다.
흰색 차, 베이지색 차를 타는 사람들은 여성적이며, 녹색 차를 타는 사람은 더 젊고, 밤색, 겨자색, 주황색 차를 타는 사람은 미적 감각이 한심한 사람이 된다.
반면 회색, 파랑 계열의 차를 타는 사람은 절도 있고 우아한 인물로 보인다.
적어도 1992년의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형편이었다.
그런데 독일, 이탈리아, 미국에서는 차체의 색에 부여하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프랑스에서조차 현재 감성적으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20년 전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으며, 5년이나 10년 후에는 진부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색채의 상징적 의미는 어느 시대에나 문화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장소와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그 때문에 이 의미는 역전되기도 하고 파기되기도 하며, 새로운 가치체계가 출현하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좋은 아버지나 지방에서 존경받는 명사가 분홍색이나 주홍색 차를 운전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가치체계를 뛰어넘는 사치를 즐길 만한 명예와 존경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3)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관리규정과 계급에 따라서 미리 정해진 색의 상표를 운전자의 등에 붙이게(행운인 경우는 드물지만) 된다.
이 상표를 떼어내기는 어렵다.
나에게도 또렷한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60년대 초, 몇몇 보험회사는 빨간색 차의 소유주에게 특별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었다.
차가 빨간색인 이유가 아니라 빨간색일 경우 소유주가 거의 대부분 젊고 평균보다 더 많은 사고를 일으킨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 세대 정도 이전일 뿐인데도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보험회사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랬다.

나 자신도 빨간색 차에 관한 그와 같은 경험을 특별한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
80년대 초 중고차를 사려던 무렵 흔해빠진 보통 차를(물론 소거법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매우 싼 가격의 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차의 본체가 발랄한 빨간색이었다.
판매원은 나에게 이 모델은 중년이나 품행이 방정한 사람, 스피드나 성능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데 막상 그 사람은 이 색을 싫어하고, 반대로 젊은 사람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이 색은 좋아하겠지만, 모델이 ‘한물간’ 것인데다 엔진도 ‘털털거리는’ 힘없는 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은 그 차는 아주 낮은 가격이 아니면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해서 내 차지가 되었다.

4) 이러한 관찰을 통해, 차체의 색에 대한 사회문화적 조사의 한계를 인식한 이후, 19세기 말에 출현한 자동차 색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차가 탄생하고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대부분 차의 색은 검은색이나 회색, 또는 하얀색이나 크림색이었다.
‘색다운 색’이 없었던 이유는 도료 화학과 결부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도덕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자 프로테스탄티즘 가치관의 부산물이기도 하다는 이유에 의해, 자동차는 ― 기타 많은 제품과 마찬가지로 ― 색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었다.
즉 신중하면서도 결백하고 정직하며 존경할 만한 시민과 고결한 기독교도의 이름에 부끄럼 없는 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서 헨리 포드를 생각해보자.
이 자동차왕국의 창시자는 엄격한 청교도주의의 신조에 따라서 검정색 차밖에 팔 수 없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 중엽에 걸쳐서 이 경향은 역전된다. 검정색과 흰색의 차는 적어지고, ‘컬러’ 자동차가 많아졌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부터 복고주의에 의해 수수한 어두운 색, 특히 회색이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얼마나 지속될까?

이 긴 사이클 안에 훨씬 짧은 사이클이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기에도 또 유행과 속물주의에 의한 특유의 어떤 시계추운동이 작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검은 차를 타면 ‘세련된 멋쟁이’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차를 타게 된다.
또 모든 사람이 화려한 색의 차를 타면 첨단의 첨단은 회색 차를 탄다.
20세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차에 한정되지 않고, 패션으로부터 일상의 자질구레한 물건, 책이나 잡지의 표지, 담뱃갑에 이르기까지 이 시계추운동의 리듬은 점점 빨라져 색을 둘러싸고 구축되어 온 가치체계가 전면적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 「옷」, 「담배」,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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