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 Protestantism
<미셀파스투로의 색의 비밀>(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 가운데서 우상파괴 운동은 잘 알려져 있는 데 반해, 함께 주장한 ‘색채 다변화 운동’19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색채 전쟁(모든 기존 색채에 대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어느 특정 색에 대한 전쟁)은 루터와 칼뱅 및 그들의 후계자들이 제정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윤리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인쇄된 책과 판화(요컨대 “흑백”문화)가 승리를 거둔 시기인 16세기 초에 생겼으나, 중세의 색채 윤리관을 계승하고 있는 동시에 완벽하게 그 시대의 부산물이기도 했다.
이 교의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몇몇 분야(예배의식, 옷, 집, 미술, 상업)에서 “검정―회색―하양” 축상에 전체적으로 통일된 색채체계를 장려하고 실행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색들(파랑만은 가끔 남겼다)은 축출되었다.
이 점은 칼뱅과 츠빙글리가 제일 철저했다.
그러나 1527년에 『의복론』(츠빙글리도 이 책에서 몇몇 개념들을 받아들였다)을 저술한 신학자 메란피톤은 이 두 사람에 앞서서 이미 흑색 윤리, 암색 윤리를 펼쳤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제국의 윤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옷 색깔에 관한 이 윤리관은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왔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적 가치관은 18~19세기에 걸쳐 당시 생겨나고 있던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되고, 다음으로 산업사회의 가치관, 그리고 서양 사회에서 “부르주아 가치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부르주아 가치관은 지금도 우리의 의복 관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검정양복, 흰 와이셔츠, 신사복, 턱시도, 야회복 등은 색채에 관한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관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색이 남성복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후에 검정에서 벗어날 때 너무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현대사회는 하나의 안전한 대책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군청색이다.
20세기를 통해서 이 군청은 검정이 점하고 있던 스포츠나 레저 의류, 그 밖의 모든 제복으로 거의 모든 영역을 점령해갔다.
청바지(Jeans,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도 앵글로색슨의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의 산물로 생각된다.
청바지도 매우 밝은 색이 있고 빨아서 바랜 듯한 색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개념적으로 이 청바지도 어두운 색이고 이러한 윤리를 받아들인 앙시앙 레짐의 귀족들이 입던 “검정 바지”를 이어받은 것이다.
2) 의복이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다른 물건도 같을 것이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서조차도 일상의 공산품들은 대부분 남자 옷처럼 검정, 하양, 회색, 갈색이었다.
여기에는 염색 기술상의 이유뿐 아니라 이념적인 이유도 있다.
위생기구, 취사용품, 전화기, 만년필, 타자기, 카메라, 자동차 등은 수십 년 동안 색을 가질 수 없었다.
말하자면 이것들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색, 즉 검정, 회색, 하양만이 있었던 것이다.
검정, 회색, 하양 이외의 색, 특히 따뜻한 색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물질문명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하양에서 노랑으로, 검정에서 녹색이나 파랑으로 갑자기 이동한 것은 아니다.
그 추이는 도중에 파스텔 색조라는 단계를 거쳤다.
1960년대 주방 색, 목욕탕, 자동차, 속옷, 잠옷, 테이블보, 냅킨, 수건의 색 등이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서 진하지도 선명하지도 않고, 분명하게 무슨 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파스텔 색을 거쳐 갔다.
플라스틱 제품들도 최근까지 선명하고 진한 색을 갖지 못했다.
파스텔 색은 처음에는 미술과 그림에, 다음에는 광고에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색이 서서히 화학적으로 또한 윤리적으로 가능해짐에 따라 점차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까지 사용되었다.
현재는 일상에서 “선명하고”, “튀는” 색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복고주의의 반동을 피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선명한 색이 너무나 범람하여 오히려 이 색들이 싫어지고 원래의 검정, 회색, 하양 계열의 색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 「퇴색」, 「영화」, 「자동차」, 「속옷」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