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결정되었나?
이 글은 호킹이 1990년 4월 캠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시그마 클럽Sigma Club 세미나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호킹뿐 아니라 생존하는 혹은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20세기의 중요한 물리학자들은 철학적 질의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물리학의 끝에 도사린 문제는 역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적 신비주의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자유로운지 그리고 의지의 한계와 그 책임에 관심을 나타낸다.
호킹도 이 강연에서 물리학적 결정론 혹은 운명론을 제시하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운명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했다.
형이상학metaphysics은 '물리학 이후'라는 뜻이다.
meta는 after란 뜻이다.
물리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논리의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주제의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학문이다.
분석철학 이후 특히 비트겐슈타인이 대부분의 형이상학적 질의들을 무의미한 것들로 취급한 이래 형이상학은 허황된 분야로 떨어지고 말았다.
대신 물리학의 발달로 우리는 본질적인 질의를 계속 논할 수 있게 되었는데
호킹을 포함한 20세의 중요한 물리학자들의 역할이 크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의 호킹의 강의를 읽기 바란다.
줄리우스 시저는 극중에서 카시우스 브루투스에게 말한다.
"남자들은 때로 자신들의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정녕 우리 자신들의 운명의 주인이란 말인가?
혹은 모든 것을 우리가 결정했는가?
결정론에 대한 논쟁으로 신은 전지하신 분이므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알고 계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Free Will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은행을 털도록 결정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죄여야 할 것이다.
헌데 그 사람은 왜 자신의 행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는가?
최근 결정론은 과학에서 논쟁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우주에는 잘 규정된 법칙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의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시간 안에서 발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비록 우리가 이런 모든 법칙들을 수용하는 완전한 법칙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장 극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결정하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나는 앞으로 20년 내에 완전한 법칙을 우리가 발견할 확률이 반반으로 믿는다.
만약 우리가 그 법칙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이 강연 제목에 대한 논쟁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주의 시작으로부터 우주의 진화를 결정짓는 완전한 법칙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법칙들은 신에 의해 결정된 것 같은데
신은 우주 안에서 법칙들을 어기는 데 간섭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법칙에 의해서 진화되기로 결정되어 있는 듯 한데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운명의 주인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워진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어떤 커다란 통일된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첫째, 통일된 이론은 수학적으로 보면 함축되고 정밀한 것인데
어떻게 그 그 통일된 이론이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하고 하찮은 세부적인 것들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통일된 이론이 신니아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이번 주에 있을 시위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혹은 마돈나가 코스모스폴리탄 잡지의 표지모델로 선정될 것인지를 이미 결정하고 있겠는가?
두 번째 문제는 그 통일된 이론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어떤 것들도 이 이론에 의해 벌써 결정되어진 것들일 텐데
왜 그것들은 옳아야만 하는가?
그런데 얼마나 많은 오류의 이론들이 있는가.
세 번째 문제는 그 통일된 이론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스스로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자유의지란 환상이란 말인가.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어떤 이유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런 결정론의 문제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거론되어 왔다.
첫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통일된 이론이 어떻게 하찮은 세부적인 것들까지 예고할 수 있을까?
우주 초기에 모든 것이 아주 가까이 한 데 있었으며,
그때 아주 많은 불확정한 것들이 있었고,
그때는 우주의 가능한 상태들이 많았다.
이런 상이하고 가능한 초기 상태들은 우주의 상이한 역사들의 전체 가족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비록 확률은 낮더라도 나치가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역사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연합군이 승리한 역사 속에 살고 있으며 마돈나가 단순히 코스모폴리탄 잡지의 표지가 되는 역사 속에 살고 있다.
두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의 행위가 통일된 이론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이론은 왜 우주에 관해 틀린 것보다는 바른 결론을 결정해야 하는가?
우리가 말하는 어떤 것들도 왜 어떤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찰스 다윈의 자연적 선택의 개념에 근거한다.
아주 원시적 생명체가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원자들의 우연적 결합에서부터였다.
원시적 생명체는 아마 커다란 분자였을 것이다.
그 생명체는 아마 DNA가 아니었을 것인 즉 닥치는 대로의 결합에 의해 온전한 DNA 분자가 형성될 우연은 적기 때문이다.
초기 생명의 형태는 스스로를 재생했을 것이다.
양자 불확정 원리와 원자들의 닥치는 대로의 열운동들은 재생에 어떤 결함이 있음을 뜻한다.
이런 결함들의 대부분은 유기체의 생존 혹은 재생의 능력에 치명적이다.
이와 같은 결함들은 차세대에 유전되기보다는 스스로 소멸되어버렸을 것이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의 발전은 초기 상태의 개량이었으며 이것이 어떤 초기 생명체들로 대신할 수 있는 진전이었다.
진화는 진전되어 그것이 중앙 신경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인간인 종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고도의 원숭이와도 같았는데 우리의 몸과 우리의 DNA 모두 이와 비슷했다.
우리의 DNA 속에 있는 약간의 다양함이 우리로 하여금 언어를 발전시키게 했다.
우리는 말로서 자료들과 경험들을 차세대에 알렸으며 나중에는 문자로 그렇게 했다.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는 무려 30억 년 이상 소요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문자를 발전시킨 것은 1만 년 동안이었으며 문자는 동굴 속에서 거주하던 우리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여 오늘날 우주의 궁극적 이론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지난 1만 년 동안에 우리는 신체적으로 특별히 진화되지 않았고 DNA에도 변화가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 얻은 자료들로부터 바른 결론들을 끄집어내는 우리의 능력, 지성들은 우리가 동굴 속에서 살던 때 혹은 그 이전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제 세 번째 문제 우리의 행위에 대한 자유의지와 책임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체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이는 그저 환상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 혹은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 모두가 옳을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실험해보자.
가령 우리가 다른 유성으로부터 온 손님 '작은 푸른 사람'을 맞이했다고 하자.
우리는 그 작은 푸른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처럼 행위하는 프로그램을 가진 로보트인지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는가?
궁극적인 자유의지의 실험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 우주인이 유기체의 행동을 예언할수 있는가?
만약 그가 예언할 수 있다면 분명 그에게는 자유의지가 없고 미리 결정되어 있는 대로 행위할 뿐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행동을 예언하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자유의지의 정의에 불만을 갖고 우리가 완전한 통합이론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예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두뇌 역시 불확정 원리가 적용되어야 할 분야이다.
사람의 행동 속에 양자역학에 관련되는 닥치는 대로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두뇌 속에 관여되는 에너지들이 너무 작아서 양자역학적 불확정은 매우 작은 결관만을 말해줄 뿐이다.
우리가 사람의 행동을 예언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두뇌작용에 대한 기본 물리학적 법칙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들은 비교적 단순하다.
몇몇 미분자보다 더욱 많은 미분자들이 관여되면 그것들을 방정식으로 정립하기가 너무 어려워지며 중력의 단순한 뉴턴 이론에서도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미분자들에 대해서일 뿐이다.
세 미분자들이나 그 이상의 미분자들을 위해서는 근사치 밖에는 방정식화할 수 없으며 미분자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어려움은 가중된다.
사람의 두뇌는 10의 26자승 혹은 1억 10억 10억 미분자들을 가지고 있다.
이 숫자는 너무 많아서 우리로 하여금 방정식을 정립하지 못하게 하며 두뇌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예언할 수 없게 한다.
우리는 두뇌의 최초 상태조차도 측정할 수 없는데
만약 측정하려고 한다면 두뇌를 모두 분해해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기록할 미분자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두뇌는 최초의 상태에 아주 예민하여서 최초의 상태 안에서의 작은 변화는 아주 크게 다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두뇌를 작용하는 근원적인 방정식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람의 행동을 예언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유용한 이론들을 사용할 뿐이며 이것들은 근사치이다.
예를 들면 물은 전자들, 양자들, 중성자들로 된 분자들이 수십 억의 수십 억 개가 있다.
이것은 훌륭한 물에 대한 근사치이고 속력, 밀도, 온도들의 성격도 갖고 있다.
물에 관한 유능한 이론의 예언들은 정확하지 않고 마치 일기예보와 같으나 기름파이프나 배들을 디자인하기에는 충분히 훌륭하다.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의 개념들은 이와 같이 유동체 역학들 안에서 유용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무엇이 진행되기로 결정되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행위들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이유 가운데 다윈의 동기가 작용하는데 그이 이론에 따르면 사회 안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을 때 이런 것들이 모두 함께 작용하여 사회는 사회의 가치들을 퍼뜨리며 생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통계적이다.
'거의 자유의지'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신은 다음 코스모폴리탄 잡지의 표지에 누가 모델로 선정될지를 이미 알고 있을까?
양자역학의 불확정 원리로는 우주는 어느 한 역사가 꼭 이루어지게 되어 있지 않으며 가능한 역사들의 한 집합으로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역사들은 거시적으로 본다면 비슷하게 보일른지 모르지만 매일 매일의 단위로 본다면 그것들은 대단히 다르다.
우리는 어느 특별한 역사 속에 어쩌다 살고 있는 것이다.
결론으로 이 글의 제목은 질문으로서 "모든 것은 결정되었는가?"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무엇이 결정되었는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