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바보들의 배>
보스는 죄를 주제로 상징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로 묘사했는데 그에게는 무지가 죄였다.
성서에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가 곧 죄라고 적혀 있다.
그가 갖고 있던 계몽적·사회적 이념은 육욕적 성적 충동, 방탕함, 게으름, 낭비벽, 지나친 욕심, 분별 없는 성급한 행동, 욕구불만에 기인한 공격, 불안정, 변덕 등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가 찬양한 이상의 것들과 반대되는 덕은 욕심을 다스리는 자제력, 욕구불만을 다스리는 훈련, 겸손, 검약, 비축, 성급한 행동을 억제하는 조심성 등이었다.
가장 혐오한 것은 섹스에 대한 갈망으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고 보았으며 종교적으로 말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만든다고 보았다.
육욕적 열정을 보스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보았으며 이에 비하면 그 밖의 죄들은 상황에 따른 것이라서 비교적 덜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어리석은 행위에 의해 비롯되는 죄는 자신의 영혼을 망칠 뿐만 아니라 사회질서를 파괴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우려했는데, 이는 새로운 사고는 아니었고 후기 중세 문학에서 이미 반영되고 있었다.
쾌와 색욕에 대한 비난은 <폭음폭식의 우화 Allegory of Gluttony>와 <바보들의 배 Ship of Fools>에 잘 나타나 있으며 두 작품은 원래 하나의 패널로 구성되었다.
성직자 계급에 대한 보스의 비난은 <마술사>와 <돌 제거 수술(바보 치료)>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났지만 더욱 심하게 비난한 작품은 중기인 1480년과 1516년 사이의 창작으로 추정되는 <바보들의 배>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와 두 수녀가 배 안에서 농부들과 더불어 떠들석한 주연을 베푸는 장면이다.
배 안의 구조는 기이하며 돛대는 잎이 무성한 나무이다.
부러진 나무가지가 배 뒤에 부착되어 있고 그 위에 광대가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이는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 작품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중세에 바보들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다.
1399년 프랑크푸르트 시는 밤에 벌거벗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미친 남자를 붙잡아 마인 강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기록에 의하면 1406년 밤 어부들이 미치광이를 프랑크푸르트로부터 마인츠로 운반했으며 1418년 프랑크푸르트 시민은 미친 여자들을 배에 태워 아샤펜부르크로 보냈다.
1427년 정신 나간 대장장이의 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예는 유럽 전역에서 예사로운 일이었다.
각 도시는 바보들만 사회로부터 추방한 것이 아니라 걸인, 날품팔이, 해직된 군인, 앉은뱅이, 병자들도 추방했다.
보스가 펜과 브라운 잉크로 스케치한 드로잉에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습작했음을 본다.
이런 사람들은 육지로도 추방되었지만 배에 실어 멀리에까지 보내는 건 보통이었다.
그래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아주 많았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인구의 30퍼센트나 되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배회하며 먹을거리를 찾아 다녔다.
중세의 성벽과 성문은 적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데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방랑자들 그룹이 성내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마을에 미치광이가 생길 때 마을사람들은 그 사람을 가두고 격리시켰다.
이들을 격리시킨 곳을 ‘바보들의 궤 Fool’s Chest’ 혹은 ‘정신병원 Madhouse’이라고 불렀으며 작은 오두막집이 보통이었다.
이들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치유되지 못한 채 여생을 구박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보나 미치광이들만 격리된 것이 아니라 심한 병에 걸린 사람들도 격리되었으며 이들은 오로지 신과 성인의 가호가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격리정책은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데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종교적인 이유가 컸다.
바보, 미치광이 , 심한 병을 앓는 사람들을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 간주하는 것이 예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서 병자나 미치광이가 생기면 집에 가둬놓고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은 마을사람들에 의해 ‘바보들의 궤’로 보내지거나 동네 밖으로 추방될 수밖에 없었다.
보스가 생존하던 때는 중세 말과 종교개혁이 막 시작되려던 때였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교회 문에 신학적 반박문을 내건 때는 1517년이었다.
중세의 사고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을 때라서 바보와 미치광이 그리고 병자들을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믿는 경향이 퍽 줄어들고 있을 때였으며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줄 알던 때였다.
공장의 수가 늘어 도둑놈, 걸인, 게으른 자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고 일을 맡길 수 없는 바보와 미치광이들만 격리시켰다.
바보들을 배에 실어 먼 곳에다 버렸다는 증거는 없지만 보스의 <바보들의 배>를 보면 격리시킨 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보스는 단순히 이런 사회적 현상을 그린 것이 아니다.
배에는 수도사와 두 수녀도 타고 있으며 생소하게도 주연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수도사와 수녀는 각기 따로 살고 있었으므로 함께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면 이는 본분을 잃은 행각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