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대형 매트릭스
김광우의 <비디오아트의 마에스트로 백남준 vs 팝아트의 마이더스 앤디 워홀>(숨비소리) 중에서
백남준은 1982년에 32대의 컬러텔레비전과 여덟 대의 흑백텔레비전을 사용하여 <비라미드 V-yramid>를 제작했다.
이것은 1987년에 제작한 <보이스/보이스 Beuys/Boice>와 그 이듬해에 제작한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와 함께 기념비적인 스케일의 작품이다.
휘트니 뮤지엄의 회고전에서 선보인 <비라미드>의 형태는 영상의 내용에 있어서 <TV 십자가>와 같다.
휘트니 뮤지엄이 구입 소장한 <비라미드>는 비디오와 피라미드의 합성어이다.
이 작품은 직각을 이루며 각각 20대의 텔레비전이 쌓아올려졌는데, 위로 갈수록 화면이 점점 작아진다.
이 작품에 사용된 비디오테이프는 특별히 편집한 <글로벌 그루브>와 <레이크 플레이시드 ‘80 Lake Placid ྌ>의 연속적인 장면이며, 여기에 누드소녀, 피아노건반이 인쇄된 숄, 비디오테이프 <조곡 212>(1977)의 가옥 정면 등이 추가되었다.
1980년에 개최된 동계올림픽 장면을 담은 <레이크 플레이시드 ‘80>은 제13회 동계올림픽 기념예술제 조직위원회로부터 제작을 의뢰 받아 현지에서 촬영한 것이다.
전체 장면은 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스키, 스키점프 등과 같은 다양한 스포츠 종목의 동작에 집중되었다.
또 다른 모티프는 비행기와 거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알렌 긴스버그이다.
상영시간 4분의 짤막한 테이프이지만 1981년에 개최된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사용했다.
자료는 순전히 시각적인 관점에서 선택되었으며 이런 경향은 이후 지속된다.
백남준이 1982년에 제작한 <삼색 비디오 Tri-Color Video>는 여태까지 제작한 작품들 가운데 가장 큰 멀티 모니터 설치로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선보였다.
256대의 컬러텔레비전과 128대의 흑백텔레비전이 사용되었고 여덟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다양한 영상을 반영했다.
384대의 텔레비전은 4대를 한 단위로 가로 세로 8블럭 12블럭의 거대한 직사각형을 이루면서 화면을 위로 향한 채 퐁피두센터의 무대 바닥을 거의 채웠다.
퐁피두센터를 찾은 관람자들은 이 설치작품을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비디오 바닥으로 생각했다.
백남준에 의하면 비디오아트는 늘 절반만 예술에 속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상의 문화에 속한다고 했다.
<삼색 비디오>는 프랑스 국기를 모방한 것으로 청색, 백색, 적색의 영상을 반영했다.
백남준은 <삼색 비디오>를 통해 프랑스인에게 거대한 전자국기를 선사한 셈이다.
헝거리 조각가 니콜라스 셰퍼Nicolas Schaffe는 300m가 넘는 인공두뇌학적인 조명탑을 건설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고, 조명탑을 세울 수만 있다면 레이저로 삼색을 하늘에 쏘아 프랑스 국기를 만들겠다고 장담했지만 셰퍼의 아이디어는 물리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큰소리만 치고 실행하지 못한 셰퍼에 비하면 백남준의 전자 프랑스 국기는 프랑스인에게 대단히 흡족할 만한 것이었다.
전시회를 위해 발행한 화첩 표지에 백남준이 이 작품을 위해 콜라주로 스케치한 것이 실렸는데, 미국 우표 여섯 가지를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같은 우표가 네 장씩 한 단위를 이루며 하나의 정사각형이 되고 있음을 본다.
다양한 우표의 모티프들은 384대의 모니터 위에 대각선으로 배열되었음을 또한 볼 수 있다.
우표에는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1980년의 소방열차, ‘글 쓰는 능력-민주주의의 뿌리’라는 표제가 붙은 모래상자와 깃털, ‘국민의 보상 청원 권리’라는 표제가 붙은 여자 얼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1950년에 흑인 정치가로 처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랄프 붕체Ralphe Bunche, 그리고 인디언 추장 ‘미친 말’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이다.
이 우표들의 공통점은 인권과 평화로서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다.
지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을 듣는 백남준은 우표를 선정한 이유를 그것이 가장 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레이저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은 1980년에 제작한 <레이저 비디오 공간 Laser Video Space>에서 구체화되었다.
레이저laser(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에 대한 관심은 1965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소논문들에서 레이저를 이용하여 소수의 TV 방송국의 독점방송을 극복하고 다수의 전문방송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이상을 피력했다.
레이저는 처음에는 군대에서만 사용되었으나 농축된 가는 빛으로 흩어지지 않고 곧게 나아가는 레이저빔의 특성에 예술가들이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적 근거가 일찍이 1917년에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에 들어서서였다.
레이저는 1965년에 일부 예술가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시각적 설치, 시청각적 설치, 거대한 크기의 환경작품, 그리고 홀로그래피라는 특수 영역에 사용되었다.
백남준의 레이저작업은 방송보다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비디오 이미지를 공중에 띄우는 영상작업으로 진전되었다.
백남준은 1980년 3월 25일 모마에서 강의했고 그 내용을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Barbara London이 정리하여 ‘임의의 추출방식의 정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백남준은 말했다.
“21세기 회화는 극도로 복잡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전자벽지가 될 것이다.
규격화된 전자캔버스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정보가 가득 차 있더라도 그것을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어느 항목이건 어느 페이지이건 찾고 싶은 곳만 찾아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디오테이프나 텔레비전을 볼 때는 만들어진 순서대로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임의로 찾아볼 수 있는 임의 추출random access 방식이 개발될 때까지는 책이 존재할 것이다.”
<레이저 비디오 공간>은 백남준과 사진작가이자 디자이너 호르스트 바우만Horst H. Baumann의 공동 설치작품이다.
바우만의 기술적 도움이 없었다면 백남준은 성취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
오래 전부터 비디오 프로젝션 작업을 해온 바우만은 1971년에 첫 프로젝트를 암스테르담에서 실현시킨 적이 있었다.
그가 백남준과 함께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전통적으로 규격과 모니터에 한정되어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해체하고 더 큰 공간적 효과를 이루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화면을 설치하지 않은 채 바른 비디오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980년 가을 뒤셀도르프에서 그리고 이듬해 초 베를린에서 선보인 <레이저 비디오 공간 I>은 하나 또는 두 개의 레이저 외에 일곱 대의 모니터를 활용한 작품이다.
모니터의 영상이 레이저 프로젝션으로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커닝엄의 춤추는 장면도 있어 그의 춤은 무중력 속에 활보하는 우주인처럼 보였다.
이 영상 자료는 1975년에 제작한 <백남준의 머스에 의한 머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페터 콜프가 편집한 이 비디오테이프는 댄스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모은 것으로 추상적이며 선 모양을 한 영상의 특성 때문에 레이저 프로젝션에서 매우 효과적이었다.
<레이저 비디오 공간 I>이 모니터 화면에 동시에 나타나는 영상을 복사해 비디오 설치의 확대를 묘사한 데 반해 <레이저 비디오 공간 II>에는 모니터가 사용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레이저 비디오 공간 I>에 사용된 동일한 비디오테이프가 두 개의 레이저에 의해 공중에 투사되었다.
이런 형식의 비디오 환경을 1982년 휘트니 뮤지엄에서의 회고전에서도 볼 수 있다.
<레이저 비디오 공간 II>에 사용된 레이저 기술이 영상의 비물질화를 한층 진척시켰다.
멀티 모니터 설치가 비디오테이프의 영상을 임의의 숫자로 확대시킨 것이라면 레이저 프로젝션에서는 레이저 영상이 윤곽의 흐려짐이 없이 모든 지면에 투사되어 벽과 바닥, 천장 또는 자유롭게 공간에 걸린 그레이팅(격자)에서 동시에 관찰될 수 있었다.
<레이저 비디오 공간 I>에 이어서 개발된 <비디오 레이저 환경 Video Laser Environment>은 백남준의 멀티 모니터 설치와 바우만의 레이저 프로젝션을 결합시킨 것이다.
36대의 모니터가 직사각형으로 접합되었고, 비디오벽에 설치된 레이저는 양측 벽에 대칭적으로 투사되어 가느다란 영상들을 천장에 투사했다.
<글로벌 그루브>와 백남준이 레이크 플레이시드 동계 올림픽 장면을 담은 <레이크 플레이시드 ‘80>으로 편성된 비디오테이프가 레이저 프로젝션과 비디오 설치에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모니터의 나열이 전자상가의 텔레비전 벽면을 상기하게 했고, 공간이 밝아 레이저 프로젝션이 쉽게 지나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니터의 다면체는 새로운 요소로 백남준은 <비디오 문>(1982)에서 이런 형식을 취했다.
브라운관의 전선을 바꿔 접합함으로써 영상을 거꾸로 혹은 측면을 바꾸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기법을 1963년 부퍼탈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멀티 모니터 설치작품에서는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가 1982년 베를린의 국제 무선전신 전시회에 출품한 <비디오 환경>은 <비디오 레이저 환경>의 형식을 약간 변형한 것이었다.
<비디오 환경>에서는 레이저가 사용되지 않았다. 32대의 모니터를 두 개의 직사각형 평면이 되게 했으며, 각 평면은 각각 4대의 모니터로 만든 네 개의 열이 되게 했다.
화면의 다면체는 비슷한 회로도에 따라 이루어졌다.
비디오테이프도 <글로벌 그루브>와 <레이크 플레이시드 ‘80>의 합성 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