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호수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스라엘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수려한 곳이 갈릴래아 호수 지역이다.
호수의 모양이 마치 옛날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작은 하프 모양의 악기 수금처럼 생겼다.
그 악기를 히브리어로 ‘긴노르(Kinnor)’라고 부르는데 호수가 긴노르처럼 생겼다고 구약시대에는 ‘긴네렛 호수’라 했으며, 신약시대에는 ‘게네사렛(Gennesaret) 호수’라고도 불리었다.

17년 분봉왕 헤로데 안디바스는 호수 근처에 도시를 새로 건설한 후 로마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그 도시의 이름을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라고 불렀으므로 갈릴래아 호수를 ‘티베리아(Tiberias) 호수’라고도 했다.
안디바스는 아버지 헤로데 대왕과 마찬가지로 친로마 정책을 써서 티베리우스의 별궁을 호수 서안에 건립하기도 했다.
예수님께서는 간교한 안디바스를 ‘여우’라고 했다. 호수는 평상시에는 대체로 잔잔하나 가끔 광풍이 불면 심한 물결이 인다.

갈릴래아 호수는 매우 아름답다. 고기 잡는 배들이 여기저기 떠있고 호수 주변의 푸른 산과 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다.
예수님께서 “들에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고 하신 말씀에 나오는 꽃은 실제로는 백합이 아니라 주홍색 양귀비꽃처럼 생겼다.
줄기는 약 10cm로 우리나라의 할미꽃처럼 줄기 하나에 꽃이 한 송이씩 핀다.
갈릴래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갈릴래아 호수는 남북으로 길이가 21km, 동서로 폭이 14km이며 넓이는 170km2나 된다.
호수의 둘레는 약 50km이다.
갈릴래아 호수 물은 요르단 강을 통해 사해까지 이르는데 그 길이가 거의 105km나 된다.
갈릴래아 호수면의 높이는 해저 215m이고 사해의 수면 높이는 해저 396m이므로 요르단 강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계곡으로 흐르는 강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강의 전체 길이는 260km에 이른다.

요르단 강은 성서적으로 의미 있는 곳으로 예언자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제자 엘리사와 함께 요르단 강으로 갔다.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만 후 그것으로 강물을 치자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그들은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엘리야가 승천한 후 엘리사도 스승 엘리야가 남긴 겉옷으로 요르단 강물을 치니 강물이 갈라졌다(열왕기하 2:6-14).
시리아의 군사령관 나아만은 나환자였는데 예언자 엘리사의 말대로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이나 몸을 씻고 병이 나았다.
나아만은 그때부터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다(열왕기하 5:1-19).
요르단 강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띤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사역을 시작했으며(마르코의 복음서 1:9) 세례자 요한의 영향으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다” 하고 설교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대부분의 제자들을 모으셨는데 그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던 어부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물을 깁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를 불러 제자로 삼았으며, 제자들에게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여 풍성한 물고기를 수확하게 하시기도 했다.
또한 갈릴래아 호수 물 위를 걸으셨으며,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다.
가파르나움, 베싸이다, 납달리, 고라신, 막달라 마리아가 살던 막달라 등이 모두 갈릴래아 북쪽 해안에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들을 걸어서 찾아다니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병자들을 치유한 기적, 마귀 들린 자로부터 마귀를 내쫓은 기적, 그리고 자연을 다스린 기적이 그것이다. 아래의 구절은 자연을 다스린 기적의 한 예다.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마르코의 복음서 4: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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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싸이다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갈릴래아 언덕 베싸이다에 있는 오병이어(五餠二魚) 교회로 향했다.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조각과 물고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으며 먹은 사람은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다. 【마르코의 복음서 6:41-44】

오병이어 교회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있는데 400년대에 건축된 이 유적을 1930년대 초 독일 고고학자들이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있는 타브가(Tabgha)에서 발굴했다.
아랍인들이 파괴한 후 일천 년 이상 땅 속에 묻혀 있던 교회의 일부가 발견된 것이다.
바닥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 오병이어가 장식되어 있었다.
독일 가톨릭 교회는 그곳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곳이라고 믿고 1936년에 커다란 교회를 건립했다.
발굴한 오병이어 모자이크는 고스란히 제단 앞에 장식되었다.

베싸이다는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치신 곳이기도 하다.

예수의 일행이 베싸이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주시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는 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말아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마르코의 복음서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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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나움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가파르나움은 구약성서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문헌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도시이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의하면 가파르나움은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4:13)에 위치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서편에 있는 가파르나움에서 세리(세관원)로 근무하던 마태오(레위)를 제자로 삼으셨다(마태오의 복음서 9:9).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0년대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였다.
고고학자들은 특이한 팔각형의 교회 유적을 발굴했는데 5세기의 건축물로 판명되었다.

가파르나움은 길이가 약 1km에 달하는 중요한 상업도시였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약하던 지역이며,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마르코의 복음서 1:16-20).
그들이 “랍비, 묵고 계신 곳이 어디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거주하시는 곳을 본 그들은 그날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
고향 나자렛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예수님께서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그곳을 갈릴래아 지방의 전도본부로 삼았으므로 그곳은 그에게 제 2의 고향처럼 정든 곳이다.

며칠 뒤에 예수께서는 다시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집에 계시다는 말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마침내 문 앞에까지 빈틈없이 들어섰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마르코의 복음서 2:1-2】

예수님께서는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셨고(마르코의 복음서 1:21),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마르코의 복음서 1:23, 2:12, 루가의 복음서 4:33-41).
그는 어느 동네보다도 이곳에서 기적을 많이 행했는데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치유해주셨고(요한의 복음서 4:46),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해주셨으며(마르코의 복음서 1:29-31),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주셨고(루가의 복음서 6:6-11), 죽은 야이로의 딸을 소생하도록 했으며(마르코의 복음서 5:35-43), 중풍환자를 치유해주셨고(마르코의 복음서 2:1-12), 마귀 들린 자를 치유해주셨으며(마르코의 복음서 1:21-28), 어느 고관의 아들을 치유해주셨다(요한의 복음서 4:46-53).
당시 로마의 군사주둔지는 북쪽 갈릴래아 호수와 접하여, 요르단 강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가파르나움에 살고 있던 한 백인대장의 종의 병을 고쳐주시기도 했다(루가의 복음서 7:2-10).
또한 가파르나움에서 ‘생명의 빵’에 관하여 가르치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의 복음서 6:26-27】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 6:35-40】

예수님께서는 가파르나움에서 이같이 놀라운 기적과 설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 사람들이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지 않자 이렇게 저주하셨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마태오의 복음서 11:23】

호숫가에 베드로의 집터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주 묵으시던 그곳에 지금은 배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5세기 초에 베드로의 집을 개축하여 팔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의 경당을 지어 갈릴래아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침입하여 경당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 후 1200여 년 동안 인적이 끊긴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894년에 비로소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1921∼26년에 나자렛 출신 고고학자이자 프란체스코 수도회 신부 G. 오르팔리가 가정집과 흡사한 경당의 흔적을 찾아냈다.
베드로라는 그리스어로 씌어진 푯말과 어선 그림이 발견되어 베드로의 집터였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옆에서는 400년대에 건축된 유다인 회당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회당은 예수님께서 종의 병을 고쳐주신 백인대장이 지은 회당 터에 다시 건립된 것이다.
처음의 회당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와서 간곡히 부탁드리기를 “그 백인대장은 도와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까지 지어주었습니다” 하였다. 【루가의 복음서 7:4-5】

그곳에서 북쪽 언덕으로 올라가니,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했다고 믿어지는 곳에 팔복(八福) 교회가 현대식으로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가톨릭 교회 수녀원에 속한 팔복 교회는 1937년에 건립되었다.
여덟 가지 복음을 상징하여 팔각형으로 설계되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여덟 가지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을 말씀하신 후 이렇게 설교를 마치셨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마태오의 복음서 5:11-12】

교회 뜰에는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연자맷돌이 놓여 있다.
연자맷돌을 바라보면서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루가의 복음서 17:2】

베드로의 집터 서쪽 호숫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 “MENSA”라고 새겨져 있다.
“멘사”는 ‘식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위 아래 물가에는 하트 형태의 바위가 세 개 있는데 물결이 출렁일 때마다 물에 잠겼다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한다.
이 세 바위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을 연거푸 물으신 것을 상징하는 아주 인상 깊은 곳이다.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요한의 복음서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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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우리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로 가는 길에 게르게사 비탈을 통과했다.
게르게사는 예수님께서 마귀들린 광인을 고치신 곳이다.

마귀들은 자기들을 지옥에 처넣지는 말아달라고 예수께 애원하였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죽고 말았다. 【루가의 복음서 8:31-33】

우리가 통과한 비탈이 바로 돼지들이 내리달아서 호수에 빠져 죽은 곳이었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헤르몬 산 기슭에 위치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헤르몬 산은 높이 2,814m로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100m 가량 더 높다.
산 정상에는 눈이 쌓이며, 날이 흐릴 때는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골란 고원 북쪽에 있다.
갈릴래아 호수 동쪽으로 해발 1,000m 이상의 높이로 병풍처럼 호수를 두르고 있는 골란 고원은 남북이 약 70km, 동서가 약 20km이며, 넓이는 1,150km2나 된다.
구약시대에는 그곳을 “바산(Bashan)”이라고 불렀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20년경에 이 지역 일대, 곧 헤르몬 산의 남쪽지역을 헤로데 대왕에게 주어 통치하도록 했다.
그러자 헤로데 대왕은 황제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동굴 옆에 대리석 신전을 건축하여 황제에게 바쳤다.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기원전 4∼서기 34년)는 기원전 2년경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고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덧붙여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황제의 도시란 의미의 가이사리아와 구별되도록 한 것이다.
가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이 건설하여 황제에게 기증한 도시로 로마 총독이 주둔하고 있었다.
아그리파 2세(재위 53∼94년)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를 더욱 확장하고는 네로 황제(재위 54∼68년)에게 충성하는 뜻으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네로’라고 개명까지 했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가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코스가 되는 이유는 베드로가 그곳에서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당도했을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말하더냐고 여론에 관심을 보였다.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의 복음서 16:13-19】

예수님께서는 시몬 바요나에게 베드로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베드로의 그리스어 발음은 페트로스(Petros)인데 페트라(Petra)는 반석이란 뜻이다.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교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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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렛

<성지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나자렛은 해발 380m의 작고 평화스러운 마을로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보인다.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분지로서 다른 도시나 마을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아주 한적한 곳이다.
구약성서에서 언급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청동기 시대, 즉 기원전 3000∼200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유대인들의 마을로 알려진 것은 기원전 200년대부터였다.
나자렛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연유했는데 ‘지키다’ 또는 ‘수호하다’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식 발음을 따라서 나자렛이라고 부른다.

유다인들은 갈릴래아를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불렀는데 갈릴래아 사람들 모두를 얕잡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베싸이다 출신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 자신이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을 만났다고 예수님을 만난 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했다.
그러자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말했다(요한의 복음서 1:44-46).

나자렛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며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사람 예수’로 불리웠는데 네 형제와 적어도 둘 이상의 누이와 함께 성장했다.
예수님의 생가는 돌담으로 된 동굴과도 같았으며 방이 칸칸마다 막혀 있어 예수님께서 가난한 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목수 일을 배웠고, 그 자신의 직업 또한 목수였다.
당시 목수는 일종의 조각가이기도 했다.

70년에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많은 유다인들이 갈릴래아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나자렛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상당했다.
바르 코시바가 132∼135년에 폭동을 일으키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이 더 이상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에서 살지 못하도록 했다.
따라서 갈릴래아 지방으로 온 이주민들이 더 늘어났으며, 나자렛은 유대인들의 거주지로 번성했다.
소수 유대계 그리스도교인들만이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연명해왔다.
성전이나 경당을 짓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마리아의 집터에 처음으로 마리아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였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의 요청으로 326년경 그곳에 교회를 건립했다고 한다.
십자군이 패망의 기로에 서게 된 1187년 살라딘은 나자렛을 점령하고 모든 사제들을 추방했다.
나자렛은 회교도들의 주거지로 변했으며 교회는 1263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오늘날 나자렛에는 약 4만5천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는데 유대인이 약 2만 명이고 아랍인들이 2만5천 명 가량 된다.
아랍인들의 혼잡한 시장을 지나면 마리아를 기념하는 웅장한 모습의 수태고지 교회에 이르게 된다.
베이지색 건물에 옅은 벽돌색 줄무늬가 장식된 아름다운 교회이다.
폭은 30m이고 길이는 70m로 성지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가장 크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수태한 사실을 알렸다는 마리아의 집터에 건립되었다.
1960년에 짓기 시작해서 1969년에야 완공된 지금의 교회가 그 자리에 건립된 다섯 번째 교회라고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신부이자 고고학자 벨라르미노 바가티는 교회를 짓기 위해 거의 11년 동안 고고학적 발굴작업을 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로부터 쫓겨나 가파르나움에 거처를 정하고 갈릴래아의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활동하셨는데 고향을 떠나시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루가의 복음서 4: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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