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형상으로서의 누스Nous 혹은 이성이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 자연이라는 말은 이성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며 순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에 대한 사고에서 연유한 것으로 갈릴레이 이래
과학으로 규정된 자연의 의미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오늘날 이성이란 말은 어떤 담론이 대상을 인식할 경우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게 되며 이때 담론이 고려할 규칙들이나 공리들의 총체 혹은 체제를 뜻한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는 대상 과학의 경우 관찰을 실행하고 반복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실험실에서의 과학자들의 경험은 이런 것들과 거의 관련이 없다면서 하지만 이런 경험이 인류학적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지적했다.
극히 추론적인 규칙들의 총체는 경험과는 무관하며 경험을 소흘히 함으로써 담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식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뿐이라면서 예를 들어 정신분석에 의한 꿈의 해석은 이런 인지적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말한 까닭은 자료, 즉 꿈에 관한 이야기는 동일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으며 따라서 보편적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담론은 그 자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고찰하는 담론들, 즉 넓은 의미에서 인식론들과는 구별이 되고 인식론들은 과학적 이성의 이념을 반성, 조작, 변용, 이데올로기화 한다.

과학에 대한 주석들이 갈릴레이 시대 이후 많아지고 있으며 오늘날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과학, 과학적 욕망과 같은 과학에 대한 정신분석, 과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역사 등이 존재하며 리오타르는 이런 것들이 기술적, 사회적, 심리적, 공상적인 경험적 변수들과 과학적 이성이 무곤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빈번한 혼동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존성이 과학적 담론의 규칙 체계보다는 오히려 그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규칙들의 지위에 관한 의문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리오타르는 오늘날 과학적 이성에 관한 주석이 어떤 커다란 불확실성의 감정을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런 지위를 고찰하게 되면 "이런 규칙들은 주어져 있는가, 자연적인 것인가, 신적인 것인가, 필연적인 것인가?" 하는 인식에 관한 규칙들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이성의 이성 혹은 그 근거를 회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오타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성의 이성은 순환을 범함이 없이는 제시될 수 없으며 새로운 규칙들 혹은 공리들을 확립하는 능력은 이런 규칙들에 대한 필요가 감지되는 정도로 나타난다.
과학은 이성을 '드러내는 수단 moyen de reveler'이며, 이성은 과학의 '존재 근거 raison d'etre'로 남아있다.
...
따라서 이성에 귀속된 지위는 필요와 수단의 변증법, 기원에 대한 동등성, '새로운 것'이라는 무한한 능력의 요청, 잉여권력에 의한 정당화라는 기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직접 유래한다.

리오타르는 인지적 이성이 인식 자체에서가 아니라 공공이나 공공의 위임들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발견된다면서 인지적 이성의 이성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과학이 더욱 많은 정의, 복지, 자유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음을 지적했는데
파스칼이 명확하게 구별한 대로 지식과 세계 사이의 야합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같은 이성들 사이의 혼란은 합리적으로 변명될 수 없으며 "혼란은 보편언어une langue universelle, 즉 개별적 언어들les langages partticuliers 속에 확립되어 있는 모든 의미를 수용할 수 있는 메타언어un metalangue에 대한 지극히 '근대적'인 기획에서 기인한다.
이성에 대한 이같은 회의는 과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메타언어에 대한 비판,
즉 형잇아학(그리고 또한 메타정치학)의 몰락에서 유래한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현재 철학적 사유가 처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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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는 분석, 상기, 재생, 변형의 과정을 뜻한다



패러다임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논문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말이 마치 모던 이후를 가리키는, 즉 모던과는 별개의 뜻으로 사용되는 예를 자주 본다.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미술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한 개념의 이해를 넘어서 미술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므로 나는 이 말을 하나의 장으로 충분히 정리하고 싶었다.
이 말을 철학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리오타르인데 그는 1979년 『거대한 이야기들 Grands Recits』에서 이 말을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파리 8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국제 철학원 원장으로 활동하는 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유럽의 지성을 대표할 만한 그가 처음 이 말을 사용했고, 그 밖의 저술에서도 이 개념에 관해 서술했으므로 그를 통해 포스트모던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리오타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포스트’는 단순한 연속이란 의미에서 각각의 시대가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는 통시적인 계열을 뜻하며, ‘포스트’는 이전의 것 다음의 새로운 방향, 즉 전향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12)으로 이해한다면서 이런 직선적 연대순의 사고는 진부한 것임을 지적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시계바늘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그는 모던이란 “개념 자체가 전통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유방식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연적이라는 원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오늘날 ‘단절’이 과거를 망각하는 방식 혹은 억누르는 방식이 아닌지, 즉 과거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하는 방식이 아닌지 불분명한데 그는 “이전 시대의 건축에서 새로운 건축으로 넘어온 요소들의 인용은 -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Traumdeutung』에서 설명하듯 - 꿈의 활동에 있어 과거의 삶에서 유래한 낮 찌꺼기의 활용과 유사한 방식으로 행해진다고 생각”13)했다.

그는 포토게시Portoghesi가 건축에 있어서 유클리드 기하학에 부여된 헤게모니가 폐기된 데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이 있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고, 그레고티Gregotti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를 모던적 건축 기획과 사회적·개인적 인류 해방의 점진적 실현이라는 이념 사이의 밀착관계가 소멸된 데서 찾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는데, 즉 포스트모던 건축이 모던으로부터 물려받은 공간에 일련의 미세한 변형을 가하고, 인류가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축을 포기한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보편성이 건축가의 눈에 제공될 수 있는 지평을 형성해 주지 않음을 뜻한다.
그레고티는 합리성과 해방이라는 자유에서의 진보이념이 사라짐에 따라 포스트모던 건축의 독특한 기질과 양식이 설명된다고 했는데 리오타르는 이를 일종의 ‘응급수리 bricolage’로 보았고, 이전anterieurs, 고전classiques 혹은 모던의 시대나 양식으로부터 차용해온 요소들의 풍부한 인용들 - 예를 들면 환경에 대한 약간의 고려 - 로 보았다.

인류를 위한 진보를 표방한 이념들을 지난 2세기에 난무했지만 결과적으로 진부해졌음을 지적한 리오타르는 그런 가능적·개연적 혹은 팔연적 진보 이념들은 예술, 기술공학, 인식, 자유의 발전이 전반적으로 인류에게 이익을 줄 것이란 확신에 그 근거를 두었지만 발전되지 못했음으로 해서 희생당한 주체 즉 빈민, 노동자 혹은 무식한 자에 대한 반성이 19세기와 20세기에 늘 있어왔음을 지적했다.14)
그러다 보니 이념의 발의들initiatives, 발견들, 제도들이 인류 해방에 기여할 때만 그 정당성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발전이 곧 진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기술과학의 발전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불안감을 확산시킴을 예로 들었다.
기술과학이 우리와는 무관하게 자율적인 신축기능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면서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간주했다.15)
보편성의 실현이라는 모더니즘의 기획은 파멸되고 청산되었으며, 오히려 탈정당화delegitimation의 과정을 촉진시켰다고 본 그는 새로운 실천, 사유대상을 축적하는 과정을 추구해야 할 상황에 우리가 봉착했음을 주장했다.16)

모더니티를 사유, 언술행위 및 감수성의 한 형태로 본 그는 19세기와 20세기에 있어 사유와 행위가 해방의 이념17)에 의해 규제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반문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세계로부터 발생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인류 보편사의 이념에 종속시킴으로써 계속해서 체계화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대답은 가능성뿐만 아니라 능력을 암시한다.
모더니즘의 기획을 계속 수행할 만한 능력, 힘 그리고 역량이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아마도 이런 요소들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근대적 주체의 소멸에 대한 문제라서 사실들을 통해서나 최소한 징표들을 통해 입증되어야 할 것인데 리오타르에게 이런 사실과 징표는 얼마든지 있다.
“휴머니스트는 보편역사를 전제하고 인류 공동체라는 보편적 과정 속의 한 계기로서 개별 공동체를 보편역사 속에 삽입시킨다.
대략적으로 이는 또한 사변적 거대한 이야기의 공리이며, 이것은 인류 역사에 적용된다.”18)
그러나 문제는 보편적인 인류 역사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대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념이 진부해졌으므로 새로운 실천·사유대상을 축적하는 과정을 추구해야 하는 데 포스트모더니즘의 둔 그는 포스트모더니티의 문제를 예술, 문학, 철학, 정치와 같은 사상의 표현들에 관한 문제로 구체화했다.
진정한 아방가르디즘의 과정은 실제로 일종의 길고, 집요하며, 극도의 책임성 있는 작업이었지만19) 오늘날 일반적으로 말하면 한물간 모더니티의 표현들인 아방가르드 운동은 예술 전반에서, 특히 시각예술과 조형미술에서 조소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마네에서 뒤샹 혹은 바네트 뉴만까지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정신분석학적인 치료의 의미에서 ‘상기 anamnese’와 비교되는 데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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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타르, 숭고한 감정은 발생, 사건, 동요이다



리오타르가 숭고한 감정을 ‘발생 occurence’으로 본 이유는 그것이 의식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의식에 의해 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식이 정립할 수 없는 것이고 의식이 스스로를 구성하기 위해 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 quid’이냐고 묻기 전에 ‘우선’ 일어나는 ‘사태 quod’로 보았다.

1950~51년에 이미 자신의 그림에 <숭고한 영웅 Vir heroicus sublimis>이란 제목을 붙인 바네트 뉴만Barnett Baruch Newman(1905-70)은 60년대 초 최초의 조각품 세 점에 <여기 I>, <여기 II>, <여기 III>란 제목을 붙였으며, 그림들에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 Not over there, here>, <지금 Now>, <존재 Be>라고 붙였다.
그는 1948년 12월에 에세이 「숭고한 것은 지금이다 The Sublime is Now」를 발표하여 벌써부터 숭고한 감정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나타냈다.

뉴만의 작품들은 리오타르의 말로 하면 “숭고한 것은 다른 어떤 곳, 저기 혹은 거기, 이전 혹은 이후 혹은 다른 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 …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이 그림이다라는 것에 존재한다. 이 그림이 여기 지금 존재한다는 것,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 바로 이것이 숭고한 것”4)으로 발생, 사건, 동요를 뜻한다.5)
사건은 하이데거가 사용한 말인데 그에게 ‘사건 ein Ereignis’이란 무한히 단순한 것으로 박탈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것이다.6)
칸트는 이를 ‘동요 agitation’라 했는데 판단력을 실행하는 정신의 활동을 의미한다.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의 동요는 규정되어야 할 어떤 것이 규정되고 있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리오타르는 숭고한 감정을 어떤 것이 기대될 때마다 “이제는 무엇이?”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비참함에 비유했다.
화가가 조형적인 면 앞에서, 음악가가 음적인 면 앞에서, 철학자가 사고의 황량함 앞에서 갖게 되는 비참함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종종 불안감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연관시킴을 지적하면서 실제로 기다림이 문제시될 때 부정적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런 기다림, 즉 ‘긴장 suspense’은 미지의 것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류의 쾌락이나, 혹은 스피노자Benedict (Baruch) Spinoza(1632-77)의 말을 빌려 사건이 수반하는 존재의 증가에서 오는 기쁨조차 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놀라움과 경탄을 함축한 이런 감정은 쾌와 불쾌·즐거움과 두려움·감정의 강화와 저하가 결합된 모순적 감정으로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 ‘숭고’란 명칭으로 불리었고, 이 명칭 하에 “고전시학의 모험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미학이 예술에 대해 비평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 것도 그리고 낭만주의, 즉 근대성이 승리를 거둔 것도 역시 이 명칭 하에서”7)였고, 모순적 감정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는 의문 자체로서 “‘일어나고 있다’가 억제되고 ‘일어나고 있는가?’가 언명되는 방식”8)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 예술적 반성에서 주요 쟁점이 된 숭고한 감정이 모던을 특징지우는 예술적 감성의 양식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리오타르는 가장 오래된 숭고한 감정에 대한 고찰을 1세기 말엽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에서 찾았다.
숭고성을 연설 속에서 규정하려고 한 롱기누스는 이를 망각할 수 없는 것, 저항할 수 없는 것, 많은 것을 상기하게 하는 것, 즉 “그것에 의해 많은 성찰 hou polle anatheoresis”이 야기된다고 했다.
리오타르는 롱기누스가 “연설가의 에토스와 파토스 속에서 그리고 비유 단어 선별과 표현색인 단어의 결합과 같은 연설기법 속에서 숭고의 원천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논문들(수사학, 시학, 정치학)의 규범에 따라 - 이것의 기능은 행위자들에게 모델로 되는 것이다 - 숭고의 원천을 찾으려 한다”9)고 보았다.
그러나 숭고가 주제가 되었을 때는 수사적인 혹은 시학적인 체계적 서술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면서 롱기누스가 연설에서 종종 극히 단순한 표현을 통해 알려지는, 즉 연설가의 어귀 강조나 단순한 침묵에 의해 더욱 큰 장엄성이 예상되는 사고의 숭고성이 존재한다고 본 것을 상기시켰다.
그는 롱기누스가 말한 침묵을 수사법의 한 형태로 보고 침묵이 모든 수사법들 가운데 가장 비규정적인 것임을 지적했다.

롱기누스는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문장론이 동요되는 것을 숭고 효과의 예로 제시했는데 그의 저서를 번역한 브왈로는 서문(1683년과 1701년에 첨가한 부록)에서 그리고 1713년 사후에 출간된 제10 성찰에서 고전주의적 기법제도에 대해 암시의 차원을 넘어 완전한 결별을 밝혔다.
그는 숭고란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라서 모든 교수법이 이에 대해 무력하다고 했다.
그는 숭고가 시학에서 확립될 수 있는 규칙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파악능력, 취미 및 “모든 세계를 지각하기 위한 감각”만을 독자나 청자에게 요구할 뿐이라고 했는데 리오타르는 그의 견해가 페레 부르Pere Bouhours의 것10)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브왈로에 의하면 “숭고는 증명되거나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다가와서 흔들어놓고 느끼게 하는 어떤 경이로운 것이다.”

숭고가 규칙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 숭고에 의해 비규정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점을 증언하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 미학의 과제가 되었다.
낭만주의 회화에서는 캔버스, 구도, 선, 색, 공간, 형상이 재현이란 것에서 제약을 받지만, 현시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표현하는 것은 재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모더니즘 회화는 재현에 관한 일련의 규칙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이는 회화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세잔의 그림을 예로 들면 선·공간·빛에 대한 고려가 없는데 그가 지각이 발생하는 순간에 지각을, 지각하기 이전에 지각을 포착하고 재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를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발생으로서 색채, ‘일어나고 있다(어떤 것 - 색채 - 이 일어나고 있다)’는 놀라움, 적어도 어떤 것이 눈에 비치고 있다는 놀라움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것”11)이라고 했는데 리오타르는 그의 판단이 경솔하다면서 세잔이 종종 미세한 감각들의 부적절성을 개탄했고, 이것들에 있어서는 추상들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캔버스를 모두 채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지적했다.
그는 회화에 틀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색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대상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고, 최소한 전시 공간조차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세잔, 말레비치, 바디아트와 해프닝 예술가들, 뒤샹, 뷔랑Daniel Buren의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모더니즘이 지각할 수 있는 ‘지금’을 거대한 재현적 회화의 붕괴 속에, 표현될 수 없는 ‘지금’을 앞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정시켰으며, ‘주체’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가?” 결핍에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았다.
이러므로 모더니즘이 숭고의 미학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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