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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판단력비판』 제1부에서 건축의 예를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내 눈 앞에 보이는 궁전을 아름답게 생각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물론 나는 그같은 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지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갓된 대상의 표상이 내 안에 즐거움을 동반하여 내가 그렇게 표상된 대상의 현존을 보는 데는 전혀 무관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단지 알고자 할 뿐이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내가 취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내가 이런 표상으로부터 내 안에 만들어낸 것이지, 내가 대상의 현존에 의존하게 되는 그러한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후 칸트는 다음의 설명으로 나아갔다.
“미에 대한 이런 해명은 그것이 일체의 관심을 떠난 즐거움의 대상이라고 했던 앞의 해명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에 관한 즐거움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일체의 관심과 무관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경우에, 그는 그 대상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즐거움의 근거를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즐거움은 주관의 어떤 경향성에 (또 그밖의 어떤 숙고된 관심에도)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대상에 몰두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에 관하여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주관만이 의거하고 있는 개인적 조건들이 즐거움의 근거라고 생각할 수 없으며, 또한 그 때문에 즐거움이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전제될 수 있는 그러한 것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그는 비슷한 즐거움을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갖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이런 전제들로부터 다음의 사실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낸다.
“따라서 그는 아름다운 것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마치 미란 대상의 성질이며 또 그 판단은 논리적 판단(객관적인 것의 개념에 의해서 객관적인 것의 인식을 형성하는)인 것처럼 말할 것이다.
그 판단이 미감적 판단에 지나지 않으며 한갓 대상의 표상과 주관의 관계만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까닭은 미감적 판단도 우리가 그 판단의 타당성을 누구에게 대해서나 전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판단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이 개념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념으로부터 쾌 혹은 불쾌의 감정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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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고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신의 요리사가 그들의 가장 재기넘친 창작자이고, 자신의 섬세한 취미의 작품들을 고작 자신의 창고에서 발견하는 뚱보들은, 세속적인 농담과 조야한 익살에서 생기넘치는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그들은 이러한 농담과 익살을 사람들이 고상한 느낌으로 자부심을 갖게 되는 바로 그러한 것으로 여긴다.
책을 읽으면서 잘 잠들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태한 사람이 있을 것이요, 모든 만족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상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인은 영악한 사람이 상업적 이윤을 계산할 때의 즐거움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또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간주되는 한에서만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파리쫓기를 즐겨하는 도미티안같은 새나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싶어하는 A씨같은 시냥애호가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특성에 따라 만족을 향유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개념을 형성할 수 없어도 된다.”
칸트는 미적 지각과 개념 형성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인간적인 천재가 어떤 전적인 파괴로부터 일종의 재생을 통해 다행히도 스스로 고양을 이루어낸 후라면, 우리는 우리 시대에 예술과 학문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견지에서도 미와 우아에 대한 올바른 취미가 꽃피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를 쉽사리 기만하는 거짓된 미광이 우리를 고상한 단순함으로부터 눈에 띄게 소외시킨다는 사실은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일찌감치부터 도덕적인 감정을 젊은 세계 시민들의 가슴 속에 활동적인 느낌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교육의 비밀을 낡은 광기로부터 떼어내야 한다는 것도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순수함이 우리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한 취미로 판단해버리는 데서 얻어지는 일시적이고 범용한 만족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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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미의 변종을 다음과 같이 목록을 만들었다

심오함profoundity, 창안invention, 조형성plasticity, 숭고sublimity, 개별성individuality, 정신성spirituality, 고귀함nobility, 감수성sensitivity, 취미taste, 적합성aptness, 어울림suitability, 잠재력potency, 고상미elegance, 품격courtliness, 완벽성completeness, 풍부richness, 따뜻함warmth, 매력charm, 우미grace, 매혹glamour, 기술skill, 가벼움lightness, 활력vitality, 미묘함delicacy, 광휘splendour, 세련sophistication, 맵시stylishness, 리듬성rhythmicity, 조화harmony, 순수성purity, 올바름correctness, 완전perfection.

타타르키비츠는 이런 광대한 목록도 부족해서 괴테가 간과한 여섯 가지를 더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그것들은 위엄dignity, 구별성distinctiveness, 기념비적 성격monumentality, 다산성luxuriance, 시poetry, 자연스러움naturalness이다.

이런 식으로 미의 특질들을 나열한다면 그 누구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느낌과 표현이 생길 때마다 목록을 늘여야 할 것이다.
이런 특질들은 미를 설명하겠지만 미를 보증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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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미의 판단들 다시 말하면


칸트는 미의 판단들 다시 말하면 취미판단을 범주의 네 국면들인 관계 양과 특성 그리고 양상에서 분석했다.
첫째, 취미판단이 일반 판단들처럼 한 개념 하에서 재현된 것을 포함시키지 않지만 재현과 특별한 무관심한 만족, 즉 욕망과 관심의 독자적 만족 사이의 관계를 제시한다.
둘째, 취미판단이 “이 장미가 아름답다”라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특이한 형태지만 동의할 것을 강제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단순한 감각적 쾌의 보고와는 달리 객관적인 수락에 타이틀을 둔다.
아직은 역설적으로 어떤 논쟁도 그 누구에게 취미판단과 더불어 동의할 것을 강요할 수 없는 한 그것은 이성들에 의해 지지받을 수 있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셋째, 미적 만족은 실제로는 목적이나 기능이 없더라도 목적적인 형태의 한 오브제에 의해 일깨워지는데 어떤 일체로 해서 그것이 마치 이해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목적적 목적성 Zweckmassigkeit ohne Zweck”을 지녔다.
넷째, 아름다운 것은 미적 만족에 필요한 참조를 가진 취미판단에 의해 주장된다.
이는 우리가 그 밖의 모든 것이 비슷하게 동요될 것임을 보장할 수 있는 한 오브제에 의해 우리 자신들이 이 방법으로 동요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만족하는 것과 같은 것을 그것들이 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네 관점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칸트는 그것들이 어떻게 이치에 맞게 당연한 결과를 유추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그런 판단을 미리 가정한 상태들이 그것을 만든 개인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납득이 될 만하게 모든 이성적 존재의 것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실마리가 미적 만족의 무관심에 제시되었는데 만약 우리의 만족이 개별적인 관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일종의 상호 주관성을 고용할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통합적인 정당성 선험적 취미판단에는 좀 더 직관적인 연역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된다.
칸트의 논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경험적 지식이 가능한 이유는 판단능력이 일반개념들과 특정한 감각-직관들을 상상 안에서 그것을 예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적인 판단의 경우들은 그렇지만 상상(재현들을 합성하는 사람처럼 자유로운 판단에서의)과 이해(판단의 우선하는 정당성 안에서의) 사이 한 일반적 조화를 미리 추정한다.
경험된 한 오브제의 형식상의 목적성은 칸트가 “상상의 자유로운 유희 a free play of the imagination”라고 하는 어떤 특정한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두 인식의 힘인 상상과 이해의 조화에 대한 의식에만 의존하는 강한 무관심한 즐거움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취미판단에서 확언하는 쾌이다. 상호 지식을 공유하는 일반 가능성이 허락되어 우리 각기에게 상상과 이해의 협동이 있다고 미리 추정한 이래 모든 이성적 존재는 이 인식적 힘들의 조화인 적합한 지각적 상태들 하에서 느끼는 역량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취미의 진정한 판단이 모두에게 사실임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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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도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칸트는 18세기 미학의 문제를 판단적 철학의 특징이 있는 형태에서 재조명했는데 미학을 철학적 시스템의 꼭 필요한 부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최초의 모던 철학자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자신의 고유한 예술론을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 헤겔도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가리켜서 “미에 관한 최초의 이성적 서언”이라고 극찬했다.
루카치는 『미학』에서 철학사의 발전과정에서 후계자들과 해석자들에 의한 관념론적 왜곡은 흔했던 일로서 원래의 서술을 훨씬 능가해왔다면서 칸트의 예술의 절대적 무관심성이라는 공리는 그래서 생겨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무관심성으로 인해 미학이 순전히 순수한 명상으로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칸트를 혹평했는데 “칸트 이래로 예술, 미, 인식, 지혜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온통 뒤섞이고 오염되어 버렸다”고 했다.
빙켈만과 괴테 그리고 고전주의자들에 비해 칸트의 새로운 인식이 미술품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거의 근거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랄 만한 점이었다.
쿠노 프랑케Kuno Francke는 이에 대한 자신의 놀라움과 감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가 어떤 미적 경험도 없이, 그리고 어떤 예술적 영향이나 심리적 경험의 형식도 배제된 환경에서, 오직 추상적인 사유만으로 이러한 이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진실로 그의 사변적인 천재성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준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다룬 것은 복잡한 방법이었지만 예술들 가운데서 순수예술을 분리시킨 것으로 예술을 기능적인 것과 미감적인 것으로 나눈 후 미감적인 것을 순수한 것과 쾌를 주는 것으로 다시 나눴다.
그는 이것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분화하면서 플라톤의 방식대로 진리의 예술과 현상의 예술로 나누고 전자에 건축을, 후자에 회화를 분류했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예술과 예술에 의해 창조된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하는 예술로 나눴다.
그는 인간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세 가지 방법 즉 말, 소리, 몸짓이 있다고 보고 이에 상응하는 세 종류의 순수예술을 분류했다.
시와 수사법은 말에, 음악은 소리에, 회화, 조각, 건축은 몸짓에 상응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칸트는 미를 “인상이나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보편적이며 무관심적인 방법에 의해 주관적 필연성을 갖고 쾌를 주는 것”으로 규정했으며, 취미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결정짓는 기능인 미적 공통감 sensus communis aestheticus”으로 규정하면서 “취미판단은 인식적이 아니므로 따라서 논리적이 아니라 미적으로 이는 내가 그것의 근거가 오직 주관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바이다”42)라고 했다.
칸트의 취미판단을 이해하기 전에 그가 확립시킨 역설적인 미적 경험의 특수성을 살펴보면 무관심성disinterested, 비개념성non-conceptual, 형식성form of the object, 심의 전체의 쾌pleasure of the whole mind, 필요성necessity(그러나 주관적이다) 보편성universality(그러나 어떠한 규칙도 없지만 주관적이다) 것들로 특징지워진다.43)
미의 가치가 보편적 원리로부터 추론되거나 증명될 수 없는 한 취미의 문제는 논증이나 증명을 통해 결정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척도와 선택된 모범의 평균치에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단순히 모방하는 것은 취미 본래의 개념이 아니다.
감성적 취미 영역에서는 모범과 표본이 탁월한 기능을 지니지만 칸트가 지적한 대로 이 기능은 모방의 방식이 아니라 계승의 방식을 따른다.
모범 혹은 실례는 취미가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지만 취미 고유의 과제를 빼앗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취미가 자체로 고유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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